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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12-30 05:17:415505 
소순(蘇洵)의 관중론(管仲論)
양승국
일반

관중론(管仲論)

관중이 환공(桓公)의 재상이 되어 환공이 제후의 패자(覇者)가 되게하고, 오랑캐도 물리쳐서 그가 죽을 때까지는 제나라를 부강하여 제후들이 감히 제나라를 배반하지 못했다. 관중이 죽은 후, 수조(豎刁), 이아(易牙), 개방(開方) 등이 등용되면서 나라가 어지러워졌다. 환공이 변란 중에 죽고, 다섯 아들이 왕위를 다투게 되자 그 재앙이 만연하여 간공(簡公)에 이를 때까지 제나라가 편안할 날이 없었다. 무릇 그 당일에 갑자기 이루어지는 공훈과 업적은 세상에 없기 때문에 반드시 그 원인이 있는 법이며, 재앙도 마찬가지로 당일에 갑자기 발생하기 전에는 반드시 조짐이 있는 법이다. 그러므로 제나라의 치세는 관중 때문이 아니라 포숙(鮑叔) 때문에 이룩한 업적이고 , 제나라가 어지럽게 된 원인은 수조, 이아, 개방의 삼흉 때문이 아니라 관중 때문이었다. 왜냐하면, 수조, 이아, 개방 세 사람이 나라를 어지럽히기는 했지만, 그들을 등용한 사람이 환공이었기 때문이다. 순(舜)임금이 있음으로 해서 사흉(四凶)을 내쫓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고, 공자께서 계심으로 해서 소정묘(小正卯)를 제거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환공은 어떠한 사람이었던가? 생각해 보면 환공으로 하여금 이 세 사람을 등용하게 한 인물은 관중이었다.

관중이 병들었을 때, 환공이 관중에게 누구를 재상으로 삼아야 하는가 물었다. 이때 관중이 천하의 현자를 천거해서 대답해야 했는데도, 겨우 “ 수조, 이아, 개방 세 사람은 인정이 없으니, 가까이 하지 마십시오.”라고 대답했다. 아! 슬프다. 관중은 과연 환공께서 이 세 사람을 등용하지 않을 수 있으리라고 믿었단 말인가? 관중이 환공과 그토록 오래 있었으면, 당연히 환공의 사람됨을 알았을 터인데! 환공의 귀에서는 음악이 떠난 적이 없었고, 눈에서는 여색이 떠난 적이 없었으니, 이 세 사람이 아니고서는 그 누구도 환공의 욕망을 채워줄 수 없었다. 처음에 이 세 사람을 중용하지 못했던 것이 관중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루 사이에 관중이 없어진다면, 이 세 사람은 벼슬길로 나갈 준비를 하고 서로 축하했을 것이다. 관중이 유언 한 마디로 환공의 수족을 묶어둘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단 말인가? 사실 제나라는 이 세 사람의 존재를 근심한 것이 아니라, 관중의 부재를 근심했다. 관중이 있으면 이 세 사람은 편안한 사람일 뿐이었다. 그렇지 않다면 어찌 천하에 이 세 사람과 같은 무리가 적었겠는가? 관중이 그런 사람을 하나하나 세어 제거할 수 있단 말인가? 아! 관중은 근분을 모르는 사람이었다. 환공이 물어보았을 때를 이용하여 현명한 사람을 천거해 자기 죽은 후에 환공이 그렇게 비참하게 죽는 지경에까지는 이르지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되었다면, 어찌 이 세 사람을 걱정했겠는가? 그들 이야기는 꺼낼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오패(五覇) 중에 제환공(齊桓公)과 진문공(晉文公)을 능가하는 사람은 없었다고 하나 진문공의 재능은 제환공보다 낫지 못했고, 그 신하들도 관중만 못했다. 그러나 진나라는 문공이 남긴 유업을 이어받아, 백년 동안이나 제후의 맹주 노릇을 할 수 있었다. 군주는 불초했지만 경험이 풍부한 신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환공이 죽은 후, 단 한번의 싸움에서 패한 나머지 재기불능이 된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제나라가 유일하게 의존했던 관중이 죽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제나라에 현능한 인재가 없었던 것이 아니고, 현능한 인재는 있었지만 훌륭한 군주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환공의 재위시 천하에 관중과 같은 인재가 없었다고 한 말은 믿을 수 없다.

관중이 쓴 <관자(管子)>라는 책에, 그가 임종할 때 포숙과 빈수무(賓須無)의 사람됨에 논하면서, 그들의 단점을 기록해 놓은 부분이 있다. 그것은 이들 몇 사람은 나라를 맡기에 부족하다고 생각했고, 또 자신의 죽음을 미리 알았음을 뜻하는 말이다. 그래서 그 책은 거짓 된 것으로, 믿을 수 없다. 위(衛)나라의 사어(史魚)는 거원은 천거하지 못하고 미자하(彌子瑕)도 쫓아낼 수 없게 없게 되자, 스스로 목숨을 끊어 자신의 시신으로 간해 시간(尸諫)의 어원을 만들어냈다. 한(漢)니리 때 소하(簫何)는 병들어 죽게 되자, 조참(曺參)을 천거하여 후임으로 삼았다. 대신의 마음씀이란 마땅히 이래야 하는 법이다. 나라는 한 사람으로 흥하기도 하고 망하기도 한다. 현명한 사람은 자신이 죽음을 슬퍼하지 않고, 그 나라가 쇠망하는 되는 것을 걱정한다. 그래서 반드시 현명한 사람을 찾아낸 연후에야 죽을 수 있음이다. 그런데 관중은 어찌 이렇게 죽었던 말인가?


소순(蘇洵)


고문관지(古文觀止) 중에서






김용오
05-02-01 14:41 
하~ 참으로 탁견이군요. 저도 열국지에서 허망하게 쇠락해져버리는 제나라의 몰락을 역아, 수초, 개방에게만 뒤집어 씌우는것은 좀 우습게 보이긴 했었습니다만... 암튼 머 그렇다고 관중을 그렇게 비난하기에는 무리가 있겠지만, 후계구도를 정확히 세우지 않은 것은 아마도 자신의 능력에 대한 과신과 섣불리 타인을 인정할 줄 몰랐던 관중의 탁월한 재기에도 그 원인이 있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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