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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상여열전(司馬相如列傳) 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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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열전57. 사마상여(司馬相如)


1313. <子虛>之事(<자허>지사)

<자허부(子虛賦)>에 실린 일과


1314. <大人>賦說(<대인>부설),

<대인부(大人賦)>에 실린 글은


1315. 靡麗多夸(미려다과),

아름답기 그지없으나 지나치게 과장되었다고 할 수 있다.


1316. 然其指風諫(연기지풍간),

그러나 그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정치를 풍자하며 간언을 올려


1317. 歸于無爲(귀우무위).

무위(無爲)로 귀의하려는 노자의 사상에 귀의하려는 생각에서 였다.


1318. 作<司馬相如列傳>第五十七(작<사마상여열전>제오십칠)

<사마상여열전> 제오십칠을 지었다.


사마상여는 촉군(蜀郡) 성도(成都) 출신으로 자는 장경(長卿)이다. 어렸을 때부터 독서를 좋아하고 검술을 배웠음으로 그의 부모는 그의 이름을 견자(犬子)라고 지었다. 공부를 마친 상여는 전국 때 명재상 인상여(藺相如)의 사람됨을 흠모하여 이름을 상여로 바꾸었다. 돈을 내고 랑(郞)이 되어 효경제(孝景帝)를 모시다가 직책이 무기상시(武騎常侍)로 올랐으나 상여는 그 직책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효경제는 사부(辭賦)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때 마침 양효왕(梁孝王)이 조현을 올리기 위해 래조했을 때 당대의 문장가들인 제나라의 추양(鄒陽), 회음(准陰)의 매승(枚乘), 오현(吳縣)의 엄부자(嚴夫子) 기(忌) 등의 유세객이 따라왔다. 그들을 만나본 사마상여는 기뻐하여 병을 핑계로 벼슬을 그만두고 양나라로 가서 효왕에게 문객으로 받아줄 것을 유세했다. 양효왕이 명을 내려 여러 학자들과 함께 머물게 했다. 상여는 그들과 함께 몇 년을 함께 지내며 유명한 자허부(子虛賦)를 지었다.

마침 양효왕이 죽었기 때문에 상여는 고향으로 돌아왔으나 집이 가난하고 스스로 일을 해서 생활을 꾸려나갈 방도도 없었다. 평소에 친하게 지냈던 임공(臨邛)의 현령 왕길(王吉)이 말했다.  

"장경이 오랫동안 밖으로 돌아다니며 관직을 구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으니 나에게 와서 지내시오."

그래서 상여는 왕길을 찾아가 도정(都亭)에서 지냈다. 임공의 현령이 애써 공경한 태도로 매일 아침 찾아와 문안했다. 상여는 처음에는 만났으나 후에는 병을 칭하고 종자를 시켜 왕길의 문안을 사양했다. 왕길은 상여를 대하기를 더욱 조심스럽게 대했다.

임공에는 부자가 많이 살고 있었는데 그 중 탁왕손(卓王孫)이라는 사람은 집에 가동만 8백 명을 두고 있었고 정정(程鄭)이란 사람 역시 수백 명을 두고 있었다. 두 사람이 서로 만나 말했다.

"현령에게 귀한 손님이 있다고 하니 우리가 연회를 열어 그를 초대합시다."

그래서 두 사람은 현령과 함께 초대했다. 현령이 도착했을 때 탁씨의 빈객은 백 수십 명이나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정오쯤 되어 사람을 보내 초대하자 상여는 병 때문에 갈 수 없다며 공손하게 거절했다. 그러자 왕길이 음식에는 손도 대지 않고 몸소 상여를 맞으러 나갔다. 상여가 하는 수 없이 왕길을 따라 나섰다. 연회에 모였던 사람들은 한결같이 사마상여의 풍채를 보고 흠모해 마지않았다. 연회가 한창 무르익었을 때, 왕길이 먼저 거문고를 연주한 다음 그 거문고를 상여에게 넘기면서 말했다.

"가만히 들으니 장경께서 거문고 솜씨가 뛰어나다고 했습니다. 원컨대 한 곡 연주하여 자리의 흥을 돋워주시기 바랍니다."

상여가 사양하다가 결국 그들을 위해 한 곡을 타고 다시 한 곡을 더 탔다. 그때 탁왕손에게는 막 과부가 된 문군(文君)이라는 딸이 있었는데 음악을 좋아했다. 원래 상여는 현령과 서로 짜고 서로 존중하는 척하며 거문고에 의지하여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으려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옛날 거마를 뒤따르게 하고 임공으로 들어올 때 상여의 거동과 모습은 조용하고 의젓하며 아름답고 품위가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사마상여가 탁씨의 집에 초대되어 술을 마시며 거문고를 타게 되었음으로 문군은 문틈으로 그를 엿보고 마음이 끌려 좋아하게 되었다. 문군은 상여와 부부가 될 수 없을까봐 염려했다. 한참 뒤에 연회가 끝나자, 상여는 사람을 시켜 문군의 시종에게 후한 선물을 주어 자신의 마음을 은근히 전하게 했다. 그러자 문군은 그 날 밤에 상여에게로 도망쳐 나왔다 상여는 곧바로 그녀와 함께 성도(成都)로 달아났다. 성도에 있는 상여의 집은 다 쓰러져가는 네 벽만이 갖추고 있었을 뿐이었다.

 탁왕손이 알고 대노하여 말했다.

"딸년이 변변치 못하다고 하나 내가 차마 죽이지는 못하겠다. 그러나 나는 한 푼도 나누어 주지 않겠다."

어떤 사람이 그러지 말라고 말했으나 탁왕손은 결코 귀를 기우리지 않았다. 가난한 생활이 오래 동안 지속되자 문군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말했다.

"장경, 함께 임공으로 갑시다. 내 형제들에게서 돈을 빌리면 생계를 꾸려 나갈 수 있습니다. 무엇 때문에 이렇게 고생을 하며 살아야 합니까?"

상여와 문군은 함께 임공으로 들어가 그들의 거마를 모두 팔아 술 집 한 채를 사서 술집을 열었다. 문군은 로(爐) 앞에 앉아 술을 팔고 상여 자신은 독비곤(犢鼻褌)을 입고 고용인과 함께 잡일을 하며 길거리에서 술잔을 닦았다. 탁왕손이 소식을 듣고 수치심으로 문을 걸어 잠그고 바깥으로 나가지 않았다. 문군의 형제들과 장로들이 번갈아가며 탁왕손을 찾아가 말했다.

"아들 하나에 두 딸을 둔 당신에게 부족한 것은 재산이 아니오. 지금 문군이 이미 사마장경에게 몸을 허락했으며 장경 또한 비록 가난하기는 하지만 그 사람됨과 재주는 믿어도 될만큼 충분합니다. 더군다나 그는 현령의 손님입니다. 어찌하여 상여가 욕을 당하게 놔두시는 것입니까?"」

탁왕손은 어쩔 수 없이 문군에게 노복 100명, 100만 전(錢)에 달하는 돈과 시집갈 때 준비했던 옷ㆍ이불ㆍ재물 등을 나눠주었다. 문군은 이에 상여와 성도로 돌아가서 밭과 집을 사서 부자가 되었다.

그로부터 오랜 시간이 지난 뒤, 촉나라 사람 양득의(楊得意)가 구감(狗監)이 되어 천자를 모시게 되었다. 그때 마침 자허부(子虛賦)을 읽어본 천자가 칭찬하며 말했다.

"짐은 어찌 이 부를 지은 사람과 같은 시대에 살 수 없었을까!"

양득의는 말했다.

"신의 마을에 사는 사마상여라는 자가 이 부를 지었다고 합니다."

천자는 놀라서 곧 상여를 불러들여 물었다. 상여가 말했다.

"제가 지었습니다. 그러나 이 부는 제후들의 일에 대해 지었음으로 천자께서는 볼 만한 것이 못됩니다. 천자를 위한 유렵부(游獵賦)를 짓게 해주시면 부가 완성되는 대로 바치겠습니다."

 천자가 허락하고 상서(尙書)에게 명하여 상여에게 붓과 찰(札)을 주도록 했다. 상여는 ‘빈말’이라는 뜻의 ‘자허(子虛)’라는 가공인물을 만들어 초(楚)나라의 아름다움을 칭찬하고, ‘어찌 이런 일이 있겠는가’라는 뜻의 ‘오유선생(烏有先生)’으로써 제(齊)나라를 비난하였으며, ‘이 사람이 없다’는 뜻의 ‘무시공(無是公)’으로써 천자의 대의를 밝히려고 했다. 그는 이 세 사람의 가공인물을 빌려서 문장을 만들어 천자와 제후의 원유(苑囿)를 논하고, 그 마지막 장에서는 절약과 검소함을 논함으로써 풍간(諷諫)하려고 하였다. 천자에게 이 글을 올리자 천자는 매우 기뻐하였다. 그 부의 내용은 이렇다.

『초나라가 자허(子虛)를 제나라에 사자로 보냈다. 제왕이 나라의 사대부들을 모두 불러 거마를 준비하여 사자로 온 자허와 함께 사냥을 나갔다. 이윽고 사냥이 끝나자 자허는 오유선생 찾아가 성대한 사냥을 자랑했다. 마침 그때 무시공도 함께 있었다. 세 사람이 좌정하자 오유선생이 자허에게 물었다.

"오늘 사냥은 즐거웠습니까?"

"즐거웠습니까?"」

"많이 잡았습니까?"

"그다지 많이 잡지는 못했습니다"「그런데 어찌하여 즐거웠다고 하십니까?」

"수많은 사람들과 거마들을 동원하여 행한 사냥으로 제나라의 위세를 저에게 자랑하는 제왕에게 제가 초나라의 운몽(雲夢)에서 사냥하는 모습을 이야기한 것이 즐거웠다고 한 것입니다."

"제가 들어볼 수 있겠습니까?"

"가능합니다. 제왕은 천승의 수레와 만 명의 기병을 이끌고 해변가로 사냥을 나갔습니다. 늘어선 군졸들은 늪을 메웠고 그물은 온 산을 덮었습니다. 토끼는 그물로 덮쳐서 잡고 사슴은 수레바퀴에 깔아 잡았습니다. 또한 고라니는 활로 쏘고 기린은 발을 걸어 넘어뜨렸습니다. 갯벌을 어지럽게 달린 수레의 바퀴에는 찢긴 짐승의 피로 물들었고 활로 쏘아 맞춘 사냥감이 실로 많았음으로 제왕이 스스로 으스대며 나를 돌아보고 ‘초나라 역시 평원과 넓은 늪지가 있어 이와 같이 풍요로운 사냥을 즐길 수 있소? 또한 초왕의 사냥하는 것은 과인과 비교해서 어떻소?’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대답했습니다. ‘ 신은 초나라의 비루한 사람입니다만 다행히 은총을 입어 초나라 궁궐에서 10여 년을 숙위(宿衛)하면서 때로는 왕을 모시고 후원(後園)에 나아가 사냥했습니다. 어떤 것은 보았고 어떤 것은 보지 못해 모두 두루 보지는 못했습니다. 어찌 궁궐 밖의 사냥터인 택(澤)에 대해서 언급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제왕이 ‘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그대가 듣고 본 것을 간단하게나마 말해보시오’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대답했습니다."

네, 네. 신은 초나라에 일곱 개의 택(澤)이 있다고 했습니다. 옛날 제가 그 중 한 곳을 가보았을 뿐 나머지는 보지 못했습니다. 신이 가본 그 택은 그 중에서 가장 적은 곳으로 이름을 운몽(雲蒙)이라고 합니다. 운몽은 사방이 9백 리이고 그 가운데에 산이 있습니다. 그 산세는 돌고 돌아 구불구불하고 숲은 빽빽하고 울창합니다. 하늘높이 치솟은 험한 봉우리와 바위는 들쑥날쑥하여 해와 달을 가리고 이지러지게 합니다. 서로 교차하여 어지러이 뒤섞여 위로는 푸른 구름이 솟구치고 밑으로는 완만하게 경사진 구릉이 면면히 강과 바다로 이어집니다. 그곳에서 나는 흙은 단청(丹青), 자악(赭堊),자황(雌黃), 백부(白附),석벽(錫碧), 금은(金銀) 등으로 여러 가지 색깔로 광채가 나서 용의 비늘처럼 빛났습니다. 그곳에서 나는 돌로써는 적옥(赤玉), 매괴(玫瑰),임미(琳渼), 곤오(琨珸),감륵(瑊玏), 현려(玄厲),연석(萩石), 무부(武夫) 등이 있습니다. 그 동쪽으로는 혜포(蕙圃)가 있어 형란(衡蘭),지약(芷若), 사간(射幹),궁궁(穹窮), 창포(昌蒲),강리(江離), 미무(麋蕪),제자(諸蔗), 박차(猼且) 등의 향초나 약초가 납니다. 택의 남쪽에는 드넓은 평원과 큰 택(澤)이 있는데 오르고 내리는데 구불구불하고 길며 어떤 곳은 움푹 파여 들어가고 어떤 곳은 편편하여 넓게 펼쳐지기도 하면서 장강에 이어져 무산(巫山)에서 끝이 납니다. 높고 건조한 곳에서는 짐(葴), 골(蓇), 포(苞), 려(荔),설(薛), 사(莎), 청번(青薠)이 나고 낮고 습한 곳에서는 장량(藏莨), 겸가(蒹葭),동장(東薔), 조호(雕胡),연우(蓮藕), 고로(菰蘆),암려(菴䕡), 헌우(軒芋)가 나는데 온갖 것이 모여 있어서 그것들을 모두 설명할 수 없습니다. 택의 서쪽에는 샘물이 솟아나 생긴 청지(清池)가 있어 급류가 되어 떠밀려 흘러갑니다. 바깥 쪽에는 부용(芙蓉)과 릉화(菱華)가 만발해 있고 안쪽으로는 거석(钜石)과 백사를 품고 있습니다. 연못의 물속에는 신령스러운 거북이, 교롱, 악어, 대모(玳瑁), 별원(鱉黿) 등이 서식하고 있습니다. 그 북쪽에는 울창한 밀림 깊은 곳에는 거대한 나무들이 있고 그 사이에 편분(楩棻), 예장(豫章),계초(桂椒), 목란(木蘭),벽리(蘗離), 주양(硃楊),사리(楂梸), 영률(梬栗),귤유(橘柚), 분방(芬芳) 등의 향기를 내뿜고 있습니다. 그 나무들 위에는적원(赤猿), 구유(蠷蝚),원추(鵷雛), 공란(孔鸞),등원(騰遠), 사간(射幹) 등이 살고 있고 나무 밑에는 백호(白虎), 현표(玄豹),만유(蟃蜒), 추(貙), 한(豻),시상(兕象), 야서(野犀),궁기(窮奇), 만연(獌狿) 등의 맹수들이 살고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전제(專諸)와 같은 용사들을 시켜 맹수들을 맨손으로 떼려잡게 합니다. 초왕은 길들여진 말 박(駁) 네 마리가 끄는 옥으로 장식한 수레를 타고 물고기 수염으로 만든 가느다란 깃대의 명윌주(明月珠) 깃발을 바람에 날립니다. 간장(干將)이 만든 예리한 극(戟)을 높이 들고, 아름답게 조각한 오호(烏嘷)라는 활을 왼쪽에 두고, 하(夏)나라 때의 화살통에 모진 화살을 담아 오른쪽에 두었습니다. 양자(陽子)를 참승으로 태우고 섬아(纖阿)를 어자로 삼아 수레를 서서히 달리기 시작하여 전력을 다해 짓치기도 전에 사나운 짐승을 따라잡습니다. 공공(邛邛)을 깔아 죽이고, 거허(距虛)를 바퀴로 깔아 죽이고 야생마를 들이받고 도도(騊駼)를 수레의 축으로 들이받아 죽입니다. 천리마 유풍(遺風)을 타고 내달아 기(騏)를 활로 쏘아 죽입니다. 수레와 말은 우레처럼 날쌔게 움직이고, 질풍처럼 빠르고 유성처럼 흐르며 벼락처럼 내리칩니다. 활은 헛되이 발사되는 일 없이 명중시켜 반드시 짐승의 눈꼬리를 찢거나 가슴을 꿰뚫어 겨드랑이를 지나 심장의 힘줄을 끊습니다. 이렇게 잡은 짐승은 마치 비가 쏟아지듯 풀을 덮고 땅을 가립니다. 그때 초나라 왕은 말고삐를 잡고 여유 있게 배회하고, 새가 날개를 펴고 나는 듯이 부드러운 모습으로 소요하며 그늘이 질만한 무성한 숲을 살펴보고 장수들의 성난 모습과 맹수들의 두려워하는 모양을 둘러봅니다. 앞을 가로막은 짐승들 중 힘이 다해 지친 것들을 사로잡아 여러 생물들의 다양한 자태를 골고루 살핍니다.

그러면 정나라의 아름다운 여인들은 부드러운 비단을 몸에 두르고 가는 삼베와 비단으로 만든 치마자락을 끌고 각양각색의 채색비단을 몸에 걸치고 안개처럼 엷은 비단을 늘어뜨립니다. 그녀들의 주름 잡힌 옷은 마치 나무가 우거진 깊은 골짜기처럼 겹처져 구불구불하지만, 긴 소맷자락은 정연하여 가지런하고, 섬(纖)을 날리고 소(髾)를 드리웠습니다. 수레를 붙들고 공손히 따라갈 때마다 옷에서는 사각사각 하는 소리를 냅니다. 옷자락 아래로는 난초와 혜초를 스치고, 위로는 깃털로 장식한 수레 위의 비단 덮개를 쓸고, 비취와 새의 털로 만든 목걸이에 구슬로 장식한 수레의 끈이 걸리며, 가볍게 솟아올랐다가 다시 내려지는 모습이 선녀를 방불케 합니다.

그리하여 모두 함께 혜포(蕙圃)로 나아가 밤에 하는 사냥을 합니다. 살금살금 천천히 걸어서 견고한 제방 위로 올라가 그물로 물총새를 잡고 화살을 쏘아 준의(鵔鸃)를 죽이고, 짧은 활에 가는 실을 매어 하늘 높이 날고 있는 흰 고니를 맞추고, 잇달아 오리를 쏘고, 학 두 마리를 쏘아 떨어뜨리니 검은 학이 소리에 맞춰 땅으로 떨어집니다. 사냥놀이에 지치면 청지(淸池)에 나가 놉니다. 물새의 문양을 그린 배를 띄우고 계수나무 삿대를 올리고 새털로 장식한 휘장을 치고, 날개로 장식한 덮개를 씌우며 대모(玳瑁)를 그물질하고 자패(紫貝)를 낚습니다. 황금 북을 치고 세구멍퉁소를 불면 뱃사공들은 화창합니다. 노랫소리의 여운은 물속의 생물들을 놀라게 하여 파도를 일으켜 분수가 내뿜는 것처럼 솟아올랐다가 한데로 모여 소용돌이치게 합니다. 물속의 돌들이 서로 부딪쳐서 울리는 소리는 수백 리 밖에까지 들리는 천둥이나 벼락소리 같습니다.

장차 사냥꾼들에게 휴식을 시키려고 영고(靈鼓)를 쳐 둥둥 울리게 하고 횃불을 들게 하면 수레는 서서히 출발하고 기병은 대열을 짓기 시작하여 기다랗고 면면히 줄을 지어 무리를 이룹니다. 초왕이 양운대(陽雲臺)에 올라 편안한 마음으로 좌정하면 작약으로 조미하여 맛을 낸 요리를 먹습니다. 그것은 대왕께서 종일 말을 달려 수레에서 내리지도 못하고 수레바퀴 사이에서 피로 물들인 산고기를 잘라 모닥불을 피워 구워 먹으며 스스로 즐거워하는 모습과 같지 않습니다. 신이 가만히 살펴보건대 제나라는 아마도 초나라보다는 못한 것 같습니다.」

그러자 제왕은 입을 다물고 저에게 아무 말도 못했습니다.」

오유선생이 자허의 이야기를 다 듣고 말했다.

"선생의 말씀은 너무 지나치십니다. 천리 길을 멀다하지 않고 제나라를 찾아온 선생을 제왕이 나라의 안의 모든 사대부들과 거마를 동원하여 함께 사냥을 하여 많은 짐승을 사냥하여 선생을 기쁘게 하려고 한 일을 어찌하여 선생은 제왕이 떠벌려 자랑한다고 하십니까? 초나라에 그러한 곳이 있는지의 여부를 물은 이유는 원컨대 초나라 같은 대국의 아름다운 풍속과 빛나는 공업을 듣기 위해서 선생의 아름답고 훌륭한 이야기를 듣고자 해서였습니다. 오늘 선생께서 초왕의 두터운 덕을 칭송하지 않고 오히려 운몽의 광대한 모습만을 추켜세워 호사스러운 말로 음탕한 놀이와 사치스러운 것만을 드러냈습니다. 내가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대의 그러한 언사는 취할 바가 아닌 것 같습니다. 만약에 그대의 말이 틀림없다고 한다면 그것은 본래의 아름다운 초나라의 모습이 아닙니다. 만일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난 일이라면 그것은 초왕의 악행을 폭로하는 일이며 그렇지 않고 꾸며낸 이야기라면 선생의 믿음을 해치는 일이 됩니다. 초왕의 악행을 드러내고 자신의 신의를 해치는 행위 중 한 가지도 취할 바가 못 됩니다. 그런데 선생이 굳이 그런 일을 행한 것은 필시 제나라를 가볍게 보고 초나라의 명성에 누를 끼치게 하는 행동입니다.」

『제나라의 동쪽은 큰 바다가 있고 남쪽으로 랑야산(琅邪山)이 있습니다. 성산(成山)에서 유람하고 지부산(之罘山)에서 활을 쏘며 발해에서 배를 띄우며 맹저(孟諸)에서 노니며, 옆으로는 숙신국(肅慎國)과 이웃하고 오른 쪽에는 탕곡(湯穀)을 경계로 삼고 있습니다. 가을에는 청구산(青丘山)에서 사냥하고 자유롭게 바다 밖으로 나가 항해를 즐기는데 운몽과 같은 사냥터는 8-9개를 삼켜도 그 가슴 속에는 겨자씨만큼도 걸릴 것이 없습니다. 비범하고 탁월한 인물들이나 다른 나라의 특이하고 진기한 조류나 짐승들을 물고기의 비늘처럼 한 곳에 모아 충만하게 그 가운데를 채우는데 모두 다 기록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것들은 비록 우임금일지라도 모두 이름 붙일 수 없고 설(契)일지라도 모두 계산할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그러네 제왕은 제후의 신분이었기 때문에 감히 유회의 즐거움이라든지 원유의 광대함을 말하지 않은 것 뿐입니다. 그리고 선생은 또 귀빈으로 접대해야 할 손님이었기 때문에 제왕이 선생의 말에 대답하지 않은 것이지 어찌 응대할 수 없어서이겠습니까?』

무시공이 오유선생이 하는 말을 듣고 미소를 띠우며 말했다.

「초나라의 이야기는 옳지 않고 제나라 이야기 역시 맞다고 할 수 없습니다. 무릇 제후들로 하여금 바치게 하는 공물은 재물이나 금전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천자에 대해 제후로써 해야 할 직무의 정황을 진술하기 위해서이고 흙을 쌓아 경계를 만드는 것은 땅을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분수를 넘는 행동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지금 제나라는 천자를 위한 동쪽의 번국(藩國)이 되어 밖으로 숙신(肅愼)과 사사로이 왕래하여 나라를 떠나 국경을 건너고 바다를 넘어 사냥을 즐기는 행위는 제후로써 해야 할 도리가 아닙니다. 또 두 선생의 논쟁은 군신의 도리를 밝혀서 제후로써의 예의를 바로잡는데 힘쓰지 않고 헛되이 유렵(遊獵)의 즐거움이나 원유의 광대함과 같은 것으로 다투며 사치스러움으로 서로 이기려하고 황음함으로 서로 상대방을 뛰어넘으려고 하니 이것은 이름을 높여 영예를 얻는 행위가 아니라 군주의 명성을 폄하하고 자신의 이름을 훼손하는 일에 적합할 뿐입니다. 또한 초나라와 제나라 같은 조그만 나라에 어찌 이야기할만한 일이 있겠습니까? 선생들은 아직 저 거대하고 화려한 것을 보지 못했습니까? 유독 천자의 상림원(上林園)에 대한 이야기를 듣지 못했단 말입니까?」

『상림원의 동쪽에는 창오(蒼梧)와 오른 쪽에는 서극(西極)이 있고, 단수(丹水)는 그 남쪽을, 자연(紫淵)은 그 북쪽을 통과합니다. 패수(覇水)와 산수(滻水)의 수원과 강줄기는 모두 원내에 있고 위수(渭水)와 경수(涇水)는 원 밖에서 들어와 흐르다가 원 밖으로 나갑니다. 풍수(酆水), 호수(鄗水), 요수(潦水), 휼수(潏水) 등의 네 강은 뱀처럼 구불구불 상림원을 안을 돌다가 탕탕하게 8개의 지류로 나뉘어 흐릅니다. 서로 등지고 형태를 각기 달리하며 동서남북 종횡으로 내달리다가 산초(山椒)나무가 자라는 언덕 사이의 계곡을 나와 모래섬의 물기슭을 흐르다가 계수나무 숲을 가로질러 이윽고 끝이 안 보이는 망망한 평원을 유유히 흐릅니다. 다시 강물은 세차게 흐르는 급류로 변하여 높은 구릉을 따라 밑으로 흘러 좁은 산구(山口) 사이를 뚫고 나옵니다. 물결은 거석을 세차게 때리며 모래섬의 구불구불한 언덕을 거세게 휘돌아 성난 듯 끓어올라 힘차게 용솟음쳐 일렁이며 거대하고 세찬 물결이 되어 서로 부딪쳐 펑펑 소리를 냅니다. 옆으로 흘렀다가 거꾸로 선회하고 공중으로 솟구쳐 요란한 소리를 질러댑니다. 부풀어 오른 물결은 울퉁불퉁한 강언덕을 내리치며 굉음을 토해내어 대지를 진동시키고 높이 솟구친 파도는 방향을 바꾸어 구름처럼 말아 구불구불 맴돕니다. 그러다가 뒤에서 일어난 파도는 앞선 파도를 부수고 깊은 곳으로 흘러 세찬 급류가 되어 모래섬의 여울을 돌아갑니다. 바위를 세차게 부딪치고 제방을 때리다가 공중으로 솟구쳐 오르는데 그 앞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세상에 아무 것도 없습니다. 망망한 물결은 작은 섬을 휘돌아 좁은 산곡으로 들어가 물살은 점점 완만해지고 가늘어졌다가 갑자기 밑으로 떨어져 깊은 연못에 모여 큰물이 되어 쾅쾅 요란한 소리로 포효합니다. 다시 물살은 거대한 몸체를 뒤집으며 공중으로 뛰어올라 가마솥의 끓는 물처럼 끓어오르고 포말을 일으키면서 급하게 방향을 바꾸어 쏜살같이 치달아 그 멀고도 먼 곳을 길게 흘러 마침내 대호에 들어가서 형체도 없고 소리도 없이 영겁의 세계로 편안히 돌아갑니다. 그런 다음에는 끝도 없이 망망한 바다와 같은 호수를 서서히 선회하며 흐르면서 은빛의 섬광을 내뿜고 동쪽으로 치달아 태호(太湖)로 들어가 다시 넘친 물은 흘러 작은 못이나 호수를 채웁니다. 이곳에는 교룡(蛟龍)ㆍ적리(赤螭)ㆍ긍몽(䱍䲛)ㆍ점리(螹籬)ㆍ옹(鰅)ㆍ용(鱅)ㆍ건탁(鰬魠)ㆍ우우(禺禺)ㆍ허(鱋)ㆍ납(魶) 등의 수중 동물들이 지느러미를 흔들고 꼬리를 움직이며 비늘과 날개를 힘껏 떨쳐 일어나고, 깊은 심연 속의 바위 아래에서는 물고기와 자라가 즐겁게 떠들며 무리를 이루고 있습니다. 명월(明月)과 주자(珠子)는 강기슭에서 반짝이고, 촉석(蜀石)ㆍ황연(黃<石+耎>)ㆍ수정(水晶)이 산처럼 쌓여 찬란하게 빛나고 다투듯이 광채를 뿜어내 물 가운데 쌓여 있습니다. 홍곡(鴻鵠)ㆍ숙보(鷫鴇)ㆍ가아(鴐鵝)ㆍ촉옥(鸀鳿)ㆍ교청(鵁鶄)·환목(䴉目)ㆍ번목(煩鶩)ㆍ용거(<庸+鳥><鳥+渠>ㆍ침자(針雌)ㆍ교(鵁)ㆍ로(鸕) 등 온갖 물새들이 물위로 떼지어 떠서 물결 따라 떠가고 바람 따라 떠돕니다. 파도와 함께 흔들리기도 하고 풀이 우거진 물가로 몰려가서는 물풀을 쪼아 먹고 연과 마름을 씹습니다.

여기에 높이 치솟은 산이 있는데, 산세가 험준하고 우람합니다. 깊고 깊은 밀림 속에는 거대한 나무가 자라고 험준하고 높은 산봉오리들은 들쑥날쑥하여 가지런하지 않습니다. 구종산(九嵏山)과 절벽산(巀㠔山)은 높고 험준하며, 종남산(終南山)은 깎아지른 듯 가파릅니다. 위아래는 크고 가운데는 작은 시루솥처럼 생긴 모양과, 세 발 달린 솥 모양을 닮은 암벽은 높고 가파르며 험준합니다. 냇물은 계곡으로 쏟아져 내렸다가 다시 골짜기를 지나 굽이굽이 흘러 시내를 이룹니다. 큰 입을 공허하게 벌리고 있는 크고 작은 언덕과 강 가운데에 떨어져 있는 섬들은 높고 험준하고 울퉁불퉁하여 평탄하지 않습니다. 경사가 진 산세는 밑으로 내려가면서 점점 평평해집니다. 계곡 사이로 흐르는 물은 사방으로 흩어져 천천히 흘러 내려가다가 아주 넓고 평탄한 평야에 이릅니다.

천 리에 달하는 망망한 평원은 그 어느 곳도 평평하게 다듬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향기 좋은 초록색 혜초나 강리(江籬)로 뒤덮여 있고, 미무(蘼蕪)와 유이(流夷)가 섞여 있으며, 결루(結樓)가 심어져 있고, 여사(戾莎)도 모여 있으며, 게거(揭車,) 형란(衡蘭),고본(稿本), 사간(射幹),자강(茈薑), 양하(蘘荷),침등(葴橙), 약손(若蓀),선지(鮮枝), 황력(黃礫),장모(蔣芧), 청번(青薠)은 큰 못에 두루 자라거나 넓은 들에 가득합니다. 서로 이어져 넓게 퍼져 있으면서 바람 따라 쓰러져 흔들리며 여러 가지 향기가 피어나 사람의 마음속까지 스며들면서 이따금 풍겨 나옵니다. 

여기서 그 풍물의 사방을 널리 둘러보면 픙경은 끝이 없어 분별할 수 없고 망망하고 아득하여 눈이 부실뿐입니다. 어디가 시작인지 알 수 없고 아무리 살펴보아도 끝은 보이지 않습니다. 해는 동쪽 못에서 나와 서쪽 언덕으로 사라집니다. 그 남쪽에는 날씨가 따뜻하여 아주 추운 겨울에도 초목이 무성하게 자라고 살아있는 물결은 일렁입니다. 짐승은 용(<牛+庸>)ㆍ모(旄)ㆍ맥(貘)ㆍ리(犛)ㆍ침우(沈牛)ㆍ주미(麈麋)ㆍ적수(赤首)ㆍ환제(圜題)ㆍ궁기(窮奇)ㆍ상서(象犀)등이 살고 있습니다. 그 북쪽은 한여름에도 얼음이 얼고 땅이 갈라지므로 옷자락을 걷어들고 빙판 위를 걸어서 내를 건넙니다. 그곳의 짐승으로는 기린(麒麟)ㆍ각단(角<角+耑>)ㆍ도도(騊駼)ㆍ낙타(駱駝)ㆍ공공(蛩蛩)ㆍ탄해(驒騱)ㆍ결제(駃騠)ㆍ여마(驢馬)ㆍ라마(騾馬) 등이 있습니다.

이궁(離宮)과 별관(別館)이 산에 가득하고 골짜기에 걸쳐 있습니다. 회랑은 길게 사방으로 이어져 있고, 2층으로 된 랑하는 굽이굽이 서로 이어져 있고 단청한 대들보와 옥으로 꾸민 서까래 끝 밑으로 임금의 수레가 다닐 수 있는 큰 길이 즐비하게 나 있습니다. 궁궐 주위로 길게 둘러져 있는 주랑(走廊)은 아득하게 멀어 끝까지 가려면 반드시 하룻밤을 묵어야 합니다. 높은 산을 편편하게 깎아 집을 짓고 누대를 겹쳐 쌓아올려서 바위틈의 깊숙한 곳에 방을 꾸몄습니다. 그곳에서 아래쪽을 굽어보면 아득히 멀어서 보이는 것이 없고, 우러러보면 대들보가 높아 하늘을 만질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유성은 궁궐의 작은 문을 지나가고, 무지개가 난간에 길게 걸려 있습니다. 그 사이에 청룡은 동상(東箱)으로 돌아나가고, 상여(象輿)는 서상(西廂)에 서립니다. 영어(靈圉)는 고요한 집에서 쉬고 악전(偓佺)의 무리는 남쪽 처마 끝의 햇볕 속에 몸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감미로운 샘물은 깨끗한 방에서 솟구쳐 흐르고, 밖에서 흘러들어온 물은 정원을 지납니다. 반석은 세밀하게 정리되어 있고 가지런하지 않은 작은 산을 닦고, 높고 험준한 산봉우리를 정리하여 조각한 듯 기이한 모습의 암석을 보존시킵니다. 매괴(玫瑰)와 벽림(碧琳)의 구슬들과 산호(珊瑚)가 떨기를 이루어 수북하게 나 있고, 민옥(瑉玉)과 문석(文石)에는 무늬와 줄이 있으며, 적옥(赤玉)은 아롱진 무늬를 띠고 그 사이에 섞여 있습니다. 수수(垂綏)ㆍ완염(琬琰)ㆍ화씨벽(和氏璧)이 이곳에서 나옵니다.

여름에는 노귤(盧橘)이 익고, 황감(黃甘)ㆍ등주(橙楱)ㆍ비파(枇杷)ㆍ소조(橪柿)ㆍ산리(山梨)ㆍ후박(厚朴)ㆍ영조(梬棗)ㆍ양매(楊梅)ㆍ앵도(櫻桃)ㆍ포도(蒲陶)ㆍ은부(隱夫)ㆍ울체(鬱棣)ㆍ답몽(榙濛)ㆍ여지(荔枝)등 온갖 과일들이 후궁에 가득 열려 북쪽 동산에까지 이어져 있고 언덕에 뻗혀 넓은 들로 내려갑니다. 푸른 나뭇잎과 붉은 줄기가 살아 움직이는 듯하고 성난 듯 피어난 붉은 꽃의 꽃봉오리는 광활한 들녘을 밝게 비춥니다. 사당(沙棠)ㆍ역저(櫟櫧)ㆍ화범(華氾)ㆍ엄로(弇櫨)ㆍ유락(留落)ㆍ서여(胥餘)ㆍ인빈(仁頻)ㆍ병려(並閭)ㆍ참단(欃檀)ㆍ목란(木蘭)ㆍ예장(豫章)ㆍ여정(女貞)과 같은 진기한나무들은 키가 큰 것은 천 길이나 되고 굵은 것은 아름드리입니다. 가지는 곧게 뻗어 시원스러우며 열매와 잎은 크고 무성합니다. 나무들은 한곳에 모여 있거나 서로 어우러져 의지하고 있고, 구불구불 서리고 뒤섞여서 헝클어져 있습니다. 혹은 꼿꼿하게 혹은 비스듬하게 혹은 축축하게 휘어진 가지 사이로 꽃잎이 떨어져 나부끼고 무성한 나무는 바람을 따라 산들산들 흔들립니다. 바람이 불어 나뭇가지를 흔들 때 내는 빠른 소리는 종경(鐘磬)의 소리나 피리 소리를 듣는 듯합니다. 빽빽이 들어선 수많은 나무들은 일정하지 않은 크기로 후궁을 빙 둘러싸고 자라고 있습니다. 나무들이 뒤섞여 겹쳐 있는가 하면 산을 뒤덮고 골짜기를 수놓으며 언덕을 따라 내려가 습한 지역으로 이어져 있습니다. 이것을 보려면 끝이 없고 자세하게 관찰하려 해도 끝이 없습니다.

 현원(玄猨)ㆍ소자(素雌)ㆍ유(蜼)ㆍ획(獲)ㆍ비류(飛鸓)ㆍ질(蛭)ㆍ조(蜩)ㆍ구유(蠗蝚)ㆍ점호(螹胡)ㆍ각(㲉)ㆍ궤(蛫)들은 모두 그 사이에서 살면서 길게 울부짖기도 하고 애달프게 울기도 하며, 민첩한 행동으로 서로 오가기도 하고, 나뭇가지에서 놀거나 나무에 거꾸로 매달려서 살고 있습니다. 짐승들은 끊어진 다리를 뛰어넘어 숲을 달려 지나가 늘어진 가지를 붙잡고 나뭇가지 드문 곳으로 훌쩍 건너뛰고 어지럽게 흩어져 먼 데로 이동합니다. 이러한 곳이 수천 수백 군데나 됩니다. 즐거이 유람하고 오가면서 궁궐에서 자고 별관에서 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하여 요리사를 먼 곳에서 데려올 필요가 없고 후궁을 찾아 데려올 일도 없으며 문무백관까지 다 갖추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가을이 지나가고 겨울로 접어들면, 천자는 목책을 만들어 놓고 사냥을 합니다. 상아로 꾸민 수레를 타고 구슬로 장식한 준마 여섯 마리를 세우고, 오색찬란한 무지개 같은 깃발을 날리고, 용과 호랑이로 운기(雲氣)를 상징한 깃발을 나부낍니다. 혁거(革車)는 앞에서 끌고, 도거(道車)와 유거(游車)는 뒤를 따릅니다. 손숙(孫叔)이 고삐를 잡고 위공(衛公)을 참승으로 삼아, 좌우 종횡으로 호위하며 병사들이 사방의 목책으로 나아갑니다. 북을 울려 행차를 엄중히 하고 사냥꾼을 내보냅니다. 장강과 황하를 막아서 짐승을 가두고, 태산을 망루로 삼고, 수레와 말은 우레처럼 일어나서 하늘을 흔들고 땅을 움직이며 흩어져 쫓아갑니다. 사냥하는 사람들이 길게 이어져 언덕을 타고 못까지 흘러내려가는 것은 마치 구름이 하늘을 가리고 비가 땅으로 쏟아지는 것과 같습니다.

이어서 비(貔)와 표(豹)를 산채로 잡고 승냥이와 이리를 두들겨 잡으며 곰과 큰 곰을 손으로 잡으며, 산양을 발로 차서 죽입니다. 갈(鶡) 새의 꼬리로 장식한 모자를 쓰고 백호의 가죽으로 만든 바지를 입고야생마에 올라타 가파른 언덕 위를 올랐다가 경사진 언덕을 짓쳐 내려가 험준한 지름길을 달려서 골짜기를 넘고 물을 건넙니다. 비렴(蜚廉)을 방망이로 치고 해치(解豸)를 사로잡아 희롱합니다. 하합(瑕蛤)을 두들겨 죽이며 맹씨(猛氏)를 창으로 찌리고 요뇨(騕褭)를 줄로 매어 붙들어 둔 후에 봉시(封豕)를 활로 쏘아 맞춥니다. 화살을 헛되이 쏘지 않아 시위소리가 났는가 하면 어느새 짐승이 거꾸로 넘어져 있습니다.

그러는 사이 천자의 수레는 깃대를 멈추고 배회합니다. 나는 듯이 오가면서 각 부대의 나아가고 물러남을 곁눈으로 바라보고 장수들이 지휘하는 모습을 살핍니다. 그런 다음 서서히 앞으로 나아갔다가 질풍같은 속도로 아득히 먼 곳까지 내달려 시야에서 사라집니다. 하늘 위를 날고 있던 새들은 놀라 흩어지고, 교활한 짐승도 짓밟으며, 흰 사슴을 깔아뭉개 죽이고, 토끼를 잡는데, 그 빠르기는 붉은 섬광을 앞질러 그 빛이 뒤에 남는 것 같습니다. 신기한 것을 쫓아 우주 밖으로 나가고, 번약(繁弱)에 흰 깃이 달린 화살을 가득히 메워 유효(游梟)를 쏘고 비거(蜚虡)를 치며, 살찐 놈을 골라 화살을 겨누어 쏘는데, 먼저 맞히기 전에 명중할 위치를 정하고 화살을 쏩니다. 화살이 활을 벗어나는 순간 짐승은 벌써 쓰러져 있습니다. 그리고 나서 깃발을 달아 하늘로 나부끼게 하여 거센 바람을 견디고, 허무를 타고 천상에 올라서 신선과 함께 노니는 기분으로 현학(玄鶴)을 짓밟고 곤계(昆鷄)의 행렬을 어지럽히며, 공작과 란(鸞)새를 쫓고 준의(鵕䴊)를 재촉하며, 예조(鷖鳥)를 덮치고 봉황을 잡으며 원추(鴛雛)를 잡고, 초명(蕉明)를 덮칩니다.

이윽고 더 나갈 길이 없는 곳까지 이르면 수레를 돌려 돌아옵니다. 마음 가는 대로 돌아다니다가 멀리 북쪽 끝으로 내려와 모입니다. 곧바로 가다가 다시 돌기도 하면서 석궐관(蹶石觀),봉만관(封巒觀), 모작관(鴾鵲觀), 노한관(露寒觀)을 차례로 지납니다. 계속해서 당리궁(棠梨宮)으로 내려와 의춘궁(宜春宮)에서 쉬고 다시 서쪽의 의곡궁(宜曲宮)으로 달려가 우수(牛水)의 못에 배를 띄워 노를 젓고 용대관(龍臺觀)으로 올라가 세류관(細柳觀)에서 쉽니다. 사대부의 근면함과 지략을 관찰하고 사냥한 포획물이 얼마 만큼인지 살펴봅니다. 보졸과 수레가 유린하여 잡은 것과 기병이 갈아 부쳐 잡은 것, 노역들이 발로 짓밟아 잡은 것들 및 그밖에 짐승이 기진맥진하여 놀라 엎드려 칼에 찔리지도 않고 죽은 것들 등이 뒤섞여 무수히 많아 구덩이는 넘쳐나고 골짜기는 가득하며 평지를 덮고 못을 메운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에 사냥놀이에 싫증이 나면 호천대(昊天臺)에 술상을 차려 놓고 넓은 방에 악기를 설치하게 합니다. 천 섬 무게의 큰 종을 치고 만 섬의 기둥을 세우며 비취 깃털로 꾸민 기를 꽂고, 악어가죽으로 만든 북을 세우고 도당씨(陶唐氏)의 무악(舞樂)을 연주하고 갈천씨(葛天氏)의 노래를 듣습니다. 천 사람이 노래하면 만 사람이 화답하니, 산과 언덕이 그 소리에 진동하고 냇물과 골짜기는 그 때문에 일렁입니다. 파유(巴楡)의 춤과 송(宋), 채(蔡), 회남(淮南) 등의 가무(歌舞)와 우차곡(于遮曲), 문성현(文成縣)과 전현(顚縣)의 민가를 한꺼번에 연주하기도 하고 바꿔가며 연주하기도 합니다. 종(鐘)과 고(鼓)는 교대로 치는데, 금석(金石)의 소리와 태고(太鼓)의 소리는 마음을 시원하게 확 뚫어주고 귀를 놀라게 합니다. 형(荊)ㆍ오(吳)ㆍ정(鄭)ㆍ위(衛)의 노랫소리와 소(韶)ㆍ호(濩)ㆍ무(武)ㆍ상(象)의 음악과 주색에 빠지게 하는 음악인 속악(俗樂)과 언(鄢)ㆍ영(郢)의 음악이 어지럽게 뒤섞여 일어나며, 격초(激楚)와 결풍(結風)을 연주합니다. 배우와 난쟁이 그리고 적제(狄鞮)의 명창이 있어서 귀와 눈을 즐겁게 하고 마음을 기쁘게 해줍니다. 앞에는 감미로운 음악이 흐르고 뒤에는 아리따운 미녀들이 있습니다. 

저 청금(靑琴), 복비(宓妃)와 같은 여인들은 절세미인으로 세속을 초월하여 아름답고 우아하며 정숙합니다. 짙은 화장과 곱게 꾸민 모습은 경쾌하고 곱고 가냘프고 부드러우며 섬세하고 나긋나긋합니다. 비단 치마 자락을 끌고 서 있는 모습은 아리땁고, 기다란 옷매무새는 마치 그림 속의 선녀와 같으며, 걸을 때마다 물결이 이는 아름다운 옷은 세속의 보통 옷과는 다릅니다. 짙고 좋은 향기를 풍기며, 가지런하고 빛나는 흰 이는 웃으면 더욱 선명합니다. 가늘고 긴 눈썹은 그린 것 같고, 먼 곳을 바라보는 듯한 눈결은 곁눈질을 하는 듯합니다. 여자의 미색이 오고 남자의 혼백이 가서 서로 만나니 마음이 기울어 즐깁니다. 술자리는 무르익고 풍악이 한창 흥을 돋우면, 천자는 갑자기 생각에 잠겨 무엇인가를 잃어버린 듯 이렇게 말합니다.

‘아, 이것은 지나친 사치로구나! 짐은 정치적인 일이 없고 한가로울 때 가을에는 사냥을 즐기면서 때때로 이곳에서 쉰다. 그렇지만 후세의 자손들이 사치와 화려함 속에 빠져들어 처음의 근검하고 순박한 데로 되돌아갈 수 없게 될까 두렵다. 이것은 선조가 후손들을 위하여 업을 일으켜 전통으로 남긴 본래의 뜻이 아니다.’

그런 다음 천자는 드디어 술자리를 끝내고 사냥을 멈춘 뒤 유사(有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 개간할 수 있는 땅은 모두 갈아 밭을 만들어 백성들을 돕도록 하시오. 담을 헐고 도랑을 메워서 산골의 백성들이 이곳으로 올수 있도록 하고, 저수지에서 물고기를 기르되 백성들이 그것을 잡을 수 있게 하시오. 이궁과 별관을 비워 백성들을 궁궐의 하인으로 채우는 일이 없도록 하시오. 창고의 곡식을 풀어 가난한 자를 구제하고, 모자라는 것을 보충해 주시오. 과부와 홀아비를 돌봐주고 고아와 의지할 곳 없는 늙은이를 위로해 주시오. 황제의 은덕이 되는 명령을 내리고 형벌을 덜어 주고 제도를 고치고 옷 색깔을 바꾸고 역법을 고쳐 천하 백성들과 함께 다시 시작하도록 하시오.’

그런 다음 황제는 길일을 가려서 재계한 뒤 예복을 입고 육두 마차를 타고 비취 깃발을 세우고 방울을 울리면서 육예(六藝)의 동산에서 놀면서 인의(仁義)의 길로 달리며 〈춘추(春秋)〉의 숲을 돌아봅니다. 이어서 이수(狸首)를 쏘고 추우(騶虞)를 아우르고 현학(玄鶴)을 쏘고 간척(干戚)을 세우고 운한(雲罕)을 꾸미게 하고 대아(大雅)와 소아(小雅)를 망라하고 ‘벌단(伐檀)’을 불러 슬퍼합니다. ‘악서(樂書)의 시를 즐기고, 예기(禮記)의 동산에서 위엄 있는 태도를 닦고, 상서(尙書)의 밭에서 배회하면서, 역경(易經)의 도를 서술합니다. 원(苑) 안의 기이한 짐승을 풀어주고, 명당(明堂)에 올라 태묘에 앉아서 신하들에게 정치의 득실을 마음껏 말하게 합니다. 마침내 사해 안에서 천자의 은혜를 입지 않는 자가 없게 됩니다. 이때에 천하의 백성들은 매우 기뻐하여 바람에 귀 기울이고 물의 흐름에 따라 교화되었으며, 급히 도를 제창하면 의로 가까이 옮겨갔고 형벌은 있었지만 쓰이지 않습니다. 덕은 삼황(三皇)보다 높고 공은 오제(五帝)보다 많아졌습니다. 이와 같았기 때문에 사냥도 기뻐할 수 있었습니다.

온종일 비바람에 몸을 맡기고 말을 달려서 몸과 마음을 수고롭게 하여 지치고, 거마를 혹사시키며 정예 병사들의 사기를 손상시키고, 창고의 재물을 말리며 은택과 은혜를 많이 베풀지 않으면서 일신의 향락만을 힘쓰고, 백성들을 돌보지 않고 국가의 정사를 잊은 채 꿩과 토끼 등의 사냥만을 탐내는 행위는 어진 사람이 할 일이 아닙니다. 이렇게 보면, 제나라와 초나라의 일이 어찌 슬프지 않겠습니까? 땅은 사방 천 리도 못되는데 원유(苑囿)가 900리나 됩니다. 이곳에서는 초목을 개간할 수도 없고, 백성들은 농사를 지어 먹을 수도 없습니다. 한낱 작은 나라의 제후로서 만승의 천자조차도 사치로 여기는 것을 즐긴다면 나는 백성들이 그 해를 입을까 두렵습니다.』

그러자 두 사람은 깜짝 놀라 안색을 바꾸고 멍하니 정신을 잃고 있다가 주춤주춤 자리를 물러나며 말했다.

“시골뜨기라 고루해서 사양하고 겸손하지 못했습니다. 오늘 가르침을 받았으니, 삼가 명을 따르겠습니다.”

상여가 이 부를 올리자, 천자는 그를 낭(郎)으로 임명했다.

무시공이 천자의 상림원의 광대함과 산곡(山谷)ㆍ수천(水泉)의 만물을 말하였고, 자허가 초나라 운몽택의 풍부함을 말하였는데 그것은 사실을 넘어선 매우 수사적이며 지나치게 화려한 언사였음으로 도리상 숭상할 만한 것이 아니었다. 그런 까닭에 여기서는 그 중 중요한 것만을 취하여 정도(正道)로 돌아갈 수 있도록 논했다.

상여가 랑이 된 지 몇 년 후에 마침 한나라의 사절이 된 당몽(唐蒙)이 계략을 써서 야랑(夜郞)과 서북(西僰)으로 통하기 위해 파촉의 관리와 군졸 천여 명을 징발했다. 또한 주변의 군(郡)에서도 그들의 군량을 대기 위해 동원한 인력이 만여 명이나 되었다. 당몽은 한나라 법을 시행하여 그들의 거수(渠帥)를 죽이니 파촉의 백성들의 크게 놀라 두려워했다. 황제가 듣고 상여를 사자로 보내 당몽을 꾸짖도록 하고 당몽이 한 일은 황제의 뜻이 아니라고 백성들에게 해명하도록 했다. 상여가 반포한 격문은 다음과 같다.

「파(巴)와 촉(蜀)의 태수들에게 고한다. 만이가 제 멋대로 발호한지 오래 되었으나 아직 토벌하지 못하고 있다. 수시로 한나라의 변경을 침범하여 사대부들을 힘들게 하고 있다.  이에 새로이 즉위하신 폐하께서는 천하를 위무하여 보존하시고 중국을 안정시키셨다. 이어서 군사를 일으켜 북쪽으로는 흉노를 정벌하자 선우(單于)가 놀라 공포에 떨며 두 손을 공손히 마주잡고 신하가 되기를 자처하며 무릎을 꿇고 화친을 청했다. 강거(康居)와 서역(西域)의 여러 나라들은 통역을 바꿔가며 조현을 자청하여 들어와 머리를 조아리며 공물을 바쳤다. 이어서 군사를 곧바로 동쪽으로 이동시켰더니 동월(東越)을 침략했던 민월(閩越)의 군주는 자신의 동생에게 살해당하고 말았다. 계속해서 군사를 남월의 도성 반우(番禺)로 진군시키자 남월왕은 태자를 입조시켰다. 남이(南夷)의 군주들과 서북(西僰)의 군장들은 언제나 공물 바치기를 감히 게을리하지 못하고 목을 길게 빼고 발꿈치를 들어서 물고기가 입을 위로 향하듯 모두 다투어 인의(仁義)의 자리로 돌아와 한나라의 신하가 되기를 원했지만 요원하게 먼 길에 산천으로 가로막혀서 그들 스스로의 힘으로는 한나라에 들어올 수 없었다. 지금은 복종하지 않았던 자들은 모두 주살되었으나 선행을 행한 자들에게는 아직 상을 주어 포상하지 못했다. 그런 까닭에 중랑장(中郞將) 당몽(唐蒙)을 보내 그들을 빈객으로써 대우하고 상을 주려고 파와 촉의 사졸과 백성 각각 500명을 징발하여 폐백을 받들게 하고, 다른 한편 가는 도중 사자가 불의의 변을 당하지나 않을까 걱정하여 호위하게 했던 것이다. 그래서 원래 병사들을 동원했다고는 하나 전쟁을 벌려 재난을 일으키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이제 들으니, 당몽은 군법을 발동시켜 자제들을 놀라게 하고 두려움에 떨게 했으며 장로들을 근심하게 만들었다. 또한 사사로이 파와 촉 두 군에서도 마음대로 식량을 운송시켰다고 했다. 이러한 일들은 모두 폐하의 뜻이 아니다. 징발된 자들 중에는 도망친 자도 있고 자살한 자도 있다고 하니, 이것 또한 남의 신하된 자의 도리가 아니다.

저 변방과 접하고 있는 군(郡)의 군사들은봉수(烽燧)가 올랐다는 소식을 들으면 모두 활을 잡고 짓쳐 달려가 병장기를 어께에 메고 뛰어다니며 땀에 뒤범벅이 되어 서로 부대에 속해 다른 사람보다 뒤지게 되는 일을 두려워한다. 그들은 예리하게 빛나는 칼날과 날아오는 화살을 무릅쓰는 일을 의로 여겨 자신을 돌보지 않고, 몸을 돌려 달아나려는 생각조차 않으며 그들의 가슴 속에 품고 있는 노여움은 마치 자신의 원수를 갚으려는 것과 같다. 그들이라고 해서 어찌 호적에 등재되어 있지 않은 백성들이라고 할 수 있겠으며, 파와 촉의 백성들과 달리 다른 군주에 속한다고 할 수 있겠는가? 다만 그들은 계책이 깊고 멀리 내다보고 국가의 어려움을 가장 급한 일로 여기며 신하로서의 도리를 다하는 일만을 기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부(符)를 쪼개어 봉읍(封邑)을 주고, 규(珪)를 나눠 작위를 주어 오르게 한 지위는 통후(通侯)에 이르게 되어 사는 집은 성의 동쪽에 줄지어 늘어서 있는 저택을 갖게 되고, 마침내 빛나는 이름을 후세에 남기고 토지를 자손에게 전하게 된다. 하는 일은 매우 충성스럽고 공경스러우며 맡은 관직은 매우 편하고 한가로우며 명성은 끝없이 전해지고 공업은 드러나 사라지지 않는다. 이 때문에 현인과 군자는 간과 뇌를 중원의 땅에 바르고 기름과 피로 들풀을 적신다 해도 결코 물러나지 않는다. 그럼으로 지금 폐백을 등에 지고 가는 관리가 남이(南夷)에 이르러서 즉시 자살하거나 달아나다가 목이 베인다면, 자신이 죽은 뒤에 이름을 남길 수도 없으니 이런 경우를 일컬어 ‘지극히 어리석다’라고 할 것이며, 그 치욕은 부모에게까지 미쳐 천하의 웃음거리가 된다. 사람의 도량이 서로 다름이 어찌 이렇듯 크단 말인가? 그러나 이것은 그 혼자만의 죄는 아니다. 앞서 아버지와 형이 가르치지 않아 자제들의 행위가 신중하지 못했으며, 백성들은 염치가 없고 스스로의 행동에 부끄러워하는 경우가 적어 풍속이 돈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이 형벌을 받아 주살되는 일은 또한 당연하지 않은가!

폐하께서는 사자와 관리가 저 당몽과 같지 않을까 걱정하고 또한 불초하고 어리석은 백성들이 그와 같이 행함을 슬퍼하신다. 그래서 사자에게 일러 군사들을 징발한 이유를 백성들에게 알려주고 나라에 충성을 바치기 위해 목숨을 바치지 않고 도망간 죄를 꾸짖고 삼로(三老)나 효제(孝弟)에게는 백성들을 인도하여 깨우치지 못한 잘못을 책망하는 바다. 지금은 바야흐로 농사철이기는 하나 백성들을 다시 번거롭게 해야 겠다. 가까운 현의 백성들은 직접 볼 수 있으나 멀리 떨어져 계곡이나 산택(山澤)에 있는 백성들에게는 널리 알릴 수 없을까 걱정되어서다. 이 격문이 당도하면 그 즉시 현내의 이족(夷族) 부락에 전하여 모든 사람이 폐하의 뜻을 알게 하라! 결코 소흘함이 있으면 알 될 것이다.」

상여가 돌아와 천자에게 보고하였다.

계략을 써서 야랑과 통하는데 성공한 당몽은 내친 김에 서남이와의 길을 열려고 파(巴)ㆍ촉(蜀)ㆍ광한(廣漢)의 군사를 징발했다. 노역자 수만 명이 길을 닦았으나 2년이 지나도 완성되지 않았고, 사졸의 대다수가 죽고 막대한 경비가 들었다. 촉의 백성들과 한나라 조정에서 파견한 관리들 중에는 그 일이 옳지 않다고 말하는 자가 많았다. 이때 공(邛)ㆍ작(笮)의 군장들은 남이가 한나라와 통하여 많은 상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한나라에 예속되어 신하가 되기를 청하면서 남이와 똑같이 관리를 보내 줄 것을 바라는 자가 많았다. 천자가 상여에게 묻자 상여가 대답했다.

「공(邛)ㆍ작(笮)ㆍ염(冉)ㆍ방(駹)은 촉군에 가까워 길을 열기 쉽습니다. 일찍이 진(秦)나라는 이들과 통하여 군과 현을 두었는데, 한나라가 일어나면서 폐지하였습니다. 이제 진실로 다시 통하여 군과 현을 둔다면 남이의 경우보다는 나을 것입니다.」

상여의 말이 옳다고 생각한 천자는 그를 중랑장(中郞將)으로 임명하고 사자의 부절을 세워 서이(西夷)로 보냈다. 부사 왕연우(王然于)ㆍ호충국(壺充國)ㆍ여월인(呂越人)이 사두마차의 급행 전마(傳馬)로 먼저 달려가 파와 촉의 관리를 통하여 서이에게 폐물을 뇌물로 주었다. 상여의 일행이 촉에 이르자, 촉군의 태수와 관리들은 모두 교외까지 나와 맞이하고, 현령은 몸소 활과 화살을 지고 앞장서서 길을 안내했다 이처럼 촉군 사람들은 상여를 맞이하는 일을 영광으로 여겼다. 이에 탁왕손과 임공현의 모든 부로들이 저마다 상여의 문하를 통하여 소와 술을 바쳐 환심을 사려고 했다. 탁왕손은 좀더 일찍 사마장경에게 딸을 시집보내지 못했음을 안타까워하며 재물을 많이 나눠 주어 다른 아들과 공평하게 했다. 사마장경은 곧바로 서이를 평정하였다. 공ㆍ작ㆍ염ㆍ방ㆍ사유(斯楡)의 군장은 모두 달려와 한나라의 신하가 되기를 자청했다. 이에 한나라는 서남이로 통하는 변경의 관소를 철거하여 변관(邊關)을 더욱 넓혔다. 서쪽으로는 말수(沫水)와 약수(若水)에 이르고, 남쪽으로는 장가강(牂柯江)까지 이르러 변방의 경계로 만들었으며, 영관(零關)까지 길을 내어 통하게 하고, 손수(孫水)에 다리를 놓아 공도(邛都) 땅과 쉽게 통하게 하였다. 돌아와 천자에게 보고하니, 천자가 매우 기뻐하였다.

상여가 사자의 임무를 띠고 촉 땅에 이르렀을 때 당지의 장로들은 대부분이 서남이와 통해봐야 별 소용이 없을 것이라고 말하고 조정의 대신들 역시 그걸 것이라고 했다. 상여가 일을 실패하지나 않을까 걱정하여 황제에게 간하려고 했으나 자기가 건의한 일들에 대한 계획이 이미 섰음으로 감히 행하지 못하고 대신 글로 지어 촉 땅의 부로들의 말을 빌려 자기가 힐난하는 것으로 천자에게 풍간했다. 또한 자신이 천자의 사자로 온 뜻을 밝혀 백성들로 하여금 천자의 뜻을 알게 했다. 그의 글은 다음과 같았다.

「한나라가 일어난 지 78년, 천자의 은덕은 6대에 걸쳐 흥성했고, 위무(威武)는 성대하고 은혜는 깊었다. 모든 백성들을 촉촉이 적셔준 천자의 은덕은 단비처럼 차고 넘쳐 먼 이방의 나라에까지 양양하게 흘러 들어갔다. 그래서 황제가 바야흐로 명을 내려 사자를 보내 서쪽 변경을 정벌하게 하니 물이 흐르는 듯한 형세가 되어 순응하지 않는 자들을 물리쳐 마치 바람에 쓸려 쓰러지는 초목처럼 되었다. 그리하여 염(冉)을 조정에 귀의시키고, 방(駹)을 복종시켰으며, 작(筰)을 평정하고, 공(邛)의 백성들을 어루만지며 사유(斯楡)를 공략하고, 포만(苞滿)을 점령했다. 그리고 나서 사자는 수레를 동쪽으로 돌려 돌아와 천자에게 보고하려고 했다. 사자의 일행이 이윽고 촉도(蜀都)에 이르렀을 때 기로(耆老), 대부 및 그 지역의 유력 인사 27명이 엄숙한 태도로 찾아와 인사를 올리고 말했다. 

“ 대체로 듣건대, 천자가 이적(夷狄)을 통제하는 목적은 그들과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였다고 했습니다. 이제 삼군(三郡)의 군사를 피로하게 하면서 야랑(夜郞)으로 가는 길을 열려고 한지 3년이 되었습니다만, 사업은 완성되지 않았고 사졸들은 지치고 백성들은 견딜 수 없을 지경입니다. 그런데 지금 또다시 서이(西夷)와 교통하려고 하니, 백성들은 지쳐 일을 마칠 수 없을 것입니다. 이것은 사자와 관련된 일이라서 우리들은 남몰래 당신을 위하여 걱정하고 있습니다. 하물며 저 공(邛)ㆍ작(筰)ㆍ서북(西僰) 등의 이족들은 중국과 어깨를 나란히 해 온 세월이 오래라 그 기록들조차 모두 명확하지 않습니다. 중국의 어진 이도 덕으로써 그들을 교화하여 부르지 못했고, 강한 자들은 무력으로써도 그들을 능히 병탄하지 못했습니다. 생각해 보시면 그들을 설복하거나 병탄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아실 것입니다. 지금 조정은 양민들의 재물을 빼앗아 이적의 재산에 보태주면서 오히려 한나라에 의지하고 살고 있는 백성들의 생활을 피폐시켜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이적들을 받들려고 하니 비루한 시골뜨기의 천박하고 짧은 식견으로 어떻게 말씀드려야할지 알 수 없습니다. ”

사자가 말했다.

“어찌 이렇게 말씀하실 수 있습니까? 여러분의 말과 틀림없다면, 촉 땅의 백성들은 원래 자신들이 입고 있었던 만이의 옷을 바꾸지 않았을 것이며, 파 땅의 백성들 풍속도 중국의 풍속으로 바뀌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 사람도 여려분들로부터 이런 말을 듣는 것이 싫습니다. 더욱이 이 일은 중대하여 원래 밖에 있는 자가 볼 수 있는 사항이 아닙니다. 나는 급히 돌아가 보고해야 되므로 상세하게 말씀드릴 수는 없으나, 이제 대부들을 위하여 그 대략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대체로 세상에는 반드시 비범한 인물이 있은 뒤라야 비범한 일이 있고, 비범한 일이 있은 뒤에라야 비범한 공이 있는 법입니다. 비범함이란 본래부터 평범한 것과는 다릅니다. 때문에 보통사람들은 비범한 일의 시초를 알기 어렵고 두려워한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그것이 성공하면 천하가 비로소 편안해집니다.

옛날 홍수로 인하여 온 땅이 범람하자 백성들은 짐을 꾸려서 높은 곳과 낮은 곳을 오르내리면서 이사를 다니며 험난하게 살아 편안할 수 없었습니다. 하후씨(夏後氏)가 이것을 걱정하여 마침내 홍수를 다스리게 되었습니다. 강을 트고 물길을 소통시켜 물이 차는 곳을 분산시킴으로써 재해를 줄였으며, 하수의 물길을 동쪽으로 돌려 바다로 모이게 하니, 천하가 영원히 편안해졌습니다. 그 당시 어찌 백성만 수고로웠겠습니까? 하후씨는 속으로는 번민하고 걱정했지만 몸소 노동을 하였으므로 몸이 말라 살집이 없어졌고 피부에는 털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런 까닭에 그의 아름다운 공적은 끝없이 드러나고 그 명성은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습니다. 또 어진 군주가 즉위하면 어찌 자질구레한 일을 처리하며 문자에 얽매이고 습속에 매이고 구습(舊習)을 따라 하며 그 시대의 의견을 듣는 것만을 좋아하겠습니까! 숭고하고 원대한 일을 생각하고, 사업을 열어 법통을 세워 만세의 모범이 되려고 할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런 까닭에 모든 나라를 포용하고 사방의 이적을 끌어안는 일에 힘써 대업을 천지와 나란히 하려고 합니다. 하물며〈시경〉에서 ‘넓은 하늘 아래 왕의 땅 아닌 곳 없고, 온 땅 위에 왕의 신하 아닌 자 없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이것은 육합(六合)의 안과 팔방(八方)의 밖에까지 적신 후에 다시 넘쳐흘러 살아있는 생명체 중에서 하나라도 왕화의 은택을 받지 못한다면 현능한 군주는 그것을 부끄럽게 여깁니다. 그래서 지금은 나라의 경계 안의 땅에서 의관을 갖추고 사는 사람들은 모두가 아름다운 복을 받아 한 사람도 빠진 자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적은 풍속을 달리하는 나라인 데다가 멀리 떨어져 있으며, 이민족의 땅이라서 배와 수레도 통하지 않고 인적도 드물며, 정치와 교화가 아직 미치지 않았고, 천자의 덕화(德化)도 미미합니다. 이들은 변경을 침입하여 의를 범하고 예를 침범하며, 밖으로 나가서는 제멋대로 간사한 짓을 저질러 그들의 군주를 내쫓고 죽였습니다. 군주와 신하의 위치를 바꿔 놓고 높은 자와 낮은 자가 차례를 잃게 하고, 아버지와 형은 죄 없이 형벌을 받고, 어린이와 고아는 종이 되어 매여진 채 울게 했습니다. 그러면서 중원을 원망하여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 대체로 들으지, 중국에는 지극히 어진 분이 있어서 덕이 성대하고 은택은 널리 덮어 만물 가운데 제자리를 얻지 못한 것이 없다고 하는데, 이제 어찌 우리만 버려두었는가? ’

그들은 가문 날에 비를 기다리듯 발뒤꿈치를 치켜들어 중국을 사모하고 있습니다. 포악한 자도 여기에 감동을 받아 눈물을 흘리는데, 하물며 성스러운 천자가 어찌 그대로 둘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북쪽으로 군대를 출동시켜 강한 오랑캐를 치고, 남쪽으로 사자를 보내 굳센 월나라를 꾸짖었습니다. 그러자 사방이 덕에 감화되었고, 물고기가 물의 흐름을 따르듯 우러러보며 작호(爵號)받기를 원하는 서이와 남이의 군주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런 까닭에 말수(沫水)와 약수(若水)에 관소를 두고 장가강(牂柯江)을 경계로 삼았으며, 영산(零山)을 뚫어서 길을 열고 손수(孫水)의 원천에 다리를 놓았습니다. 도덕의 길을 세우고 인의의 전통을 드리워 은혜를 널리 베풀고, 먼 곳의 백성들을 어루만져 소원한 자로 하여금 막히지 않게 하며, 미개한 자들에게 광명의 빛을 얻게 함으로써 한편으로 군사들을 움직이지 않을 수 있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토벌을 그치게 하여 먼 곳과 가까운 곳이 하나가 되며, 안과 밖을 안락하게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또한 즐거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대체로 백성들을 어려움 속에서 구제하고, 고상한 미덕을 받들어 말세의 쇠미한 형세를 원래의 상태로 되돌려놓고, 주나라의 끊어진 사업을 잇는 일이야말로 천자가 서둘러 해야 될 의무입니다. 설령 백성들을 수고롭게 할지라도 또 어찌 그칠 수 있겠습니까?

또 대체로 제왕의 일은 진실로 근심하고 부지런한 데서 시작하고, 편안하고 즐거워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천자의 명을 받은 사자로써의 사명은 바로 여기에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지금 천자께서는 태산에서 봉제(封祭)를 올리고 양보산(梁父山)에서 선제(禪祭)를 올리며 수레의 방울을 울리고 음악과 송(頌)을 연주하여 위로는 오제(五帝)와 같고 아래로는 삼왕(三王)과 같아지려 합니다. 곁에서 보는 자가 가르침을 보지 못하고, 듣는 자가 소리를 듣지 못하는데, 이것은 초명(鷦明)이 이미 하늘을 날고 있음에도 새그물을 치는 자와 같이 숲과 못을 들여다보고 있는 어리석은 행위와 같습니다. 슬픈 일입니다.」

이 글이 올려지자 여러 대부들은 망연자실하여 그들이 품고 있던 생각과 나아가 간언하려고 했던 말도 잊었다. 그들은 모두 감탄하고 이렇게 칭찬했다.

“ 한나라의 은덕은 진실로 위대합니다. 이것은 우리들이 듣고 싶어 했던 말입니다. 비록 백성들이 게으를지라도 우리들 스스로 앞장서서 실천하겠습니다. ”

부로들 또한 낙담하여 고개를 떨어뜨리고 작별 인사를 하고 물러갔다.

그 뒤에 어떤 사람이 상여가 사자로 갔을 때 뇌물을 받았다는 글을 올려 고발했다. 상여는 벼슬에서 물러났다. 그러나 그는 한 해 남짓 뒤에 다시 부름을 받고 낭이 되었다.

상여는 말을 어눌하였으나 글을 잘 지었다. 평소 그는 소갈병을 앓았지만 탁문군과 결혼하여 재물이 넉넉하였다. 그는 벼슬에 나갔으나 일찍이 공경이나 나랏일에는 관여하지 않으려 했고, 질병을 핑계 삼아 한가하게 살면서 관직과 작위를 흠모하지 않았다. 그는 항상 천자를 좇아 장양궁(長楊宮)으로 가서 사냥을 하였다. 이때 천자는 사냥을 좋아하여 친히 곰과 멧돼지를 쏘고, 말을 달려 들짐승을 쫒곤 하였다. 상여가 글을 지어 간언했다. 그 문사는 다음과 같았다.

「신이 듣건대, 만물에는 동류(同類)라 할지라도 그 능력은 달리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러므로 힘은 오획(烏獲)을 일컫고, 날래게 질주하며 활을 잘 다루는데는 경기(慶忌)를 숭상하고, 용감한 장사로는 맹분(孟賁)과 하육(夏育)을 기대한다고 합니다. 신의 어리석은 생각으로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와 같은 정황은 사람뿐만 아니라 짐승에게도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지금 폐하께서는 험준하고 가파른 곳에 올라 맹수 사냥을 즐겨하시고 계십니다. 그러다 아무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폐하의 어가와 뒤따르는 수레를 날래고 사나운 맹수가 갑자기 난폭하게 범하기라도 한다면 수레의 끌채를 돌릴 틈도 없이 주위의 사람들은 자신이 지니고 있는 기예와 무술을 사용할 기회조차 갖지 못하고 변을 당할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흉노가 월인들의 수레바퀴 밑에서 나타나고 강인(羌人)과 이족(夷族)이 수레의 뒤를 바짝 추격하는 경우와 같으니 어찌 위험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비록 오획과 봉몽(逢蒙)과 같은 힘과 기예를 갖추고 있다 한들 제대로 실력을 발휘할 수 없을 것이며 마른 나무나 썩은 나무그루터기도 모두 화로 변하여 해를 입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고 만전을 기하여 사고가 나지 않는다고 해도 그렇게 위험한 곳은 천자가 마땅히 발을 들여놓아서는 안 되는 법입니다. 하물며 길을 깨끗이 소제하고 기준에 맞게 정비한 후에 불의의 사고를 대비히기 위해 수레를 길 정가운데로 몰고간다 해도 때때로 말의 재갈이 벗겨져 날뛰는 변이 생기기도 합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무성한 숲속을 지나 구릉을 달리면서 눈앞의 짐승을 쫓아가는 즐거움에 팔린 나머지 생각하지 못했던 변고에 대해 경계하는 마음이 없으니, 그것이 바로 화로 변하리라고 예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만승의 존귀하고 소중한 신분의 천자가 몸을 가볍게 여기시는 행동을 행하심은 안전하다고 할 수는 없으며, 만의 하나 위험한 길로 나가는 일을 즐거움으로 삼으신다면, 신은 폐하를 위해 이런 일은 취할 바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대개 앞을 내다볼 줄 아는 자는 일이 싹도 트기 전에 미리 알고, 지혜가 있는 자는 위험이 나타나기 전에 피합니다. 재앙이란 본래 대부분 드러나지 않고 미묘한 곳에 숨어 있다가 사람들이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곳에서 나타나는 법입니다. 그러므로 속담에도 ‘집에 천금을 쌓아 놓으면 그 집의 자식들은 마루 끝에 앉지 않는다.’라고 한 것입니다. 이 말은 하찮은 듯하나, 큰일을 비유하고 있습니다. 신은 폐하께서 이 점에 유의하시어 신의 마음을 살펴 주시기를 바랍니다.」

황상은 상여의 글이 매우 훌륭하다고 생각했다. 돌아오는 길에 의춘궁(宜春宮)을 지나면서 상여는 진이세의 과실을 한탄하는 부를 지어 황제에게 바쳤다. 그 문사는 다음과 같았다.

「가파른 긴 언덕을 올라 층층이 높게 솟아 줄 지어 있는 궁전으로 들어서서 굽이진 강의 물가를 굽어보며 험준하고 들쑥날쑥한 남산을 바라본다. 높디높은 산은 공허하고 심대하며 확 트인 골짜기는 산간에 있다. 물의 흐름은 가볍고도 급하게 멀리 흘러가 평원의 넓고 평평한 연못으로 쏟아진다 온갖 무성하게 자란 나무들의 울창한 그늘을 보고, 많은 대나무 숲의 무성함을 본다. 동쪽으로는 토산(土山)으로 달려가고, 북쪽으로는 옷을 걷고 돌 있는 여울물을 건넌다. 잠시 조용히 걸으면서 진이세(秦二世)의 유적을 살펴 조문한다. 진이세는 몸가짐을 삼가지 않아 나라를 멸망으로 이르게 하고 자신은 권세를 잃었다. 그는 참언을 믿고 깨어 있지 못하여 종묘사직을 끊어 없어지게 하였다 아, 슬프구나! 그는 품행이 좋지 못하였기에 무덤에 풀이 수북해도 돌보는 이가 없고, 영혼은 돌아갈 곳 없고 제삿밥도 먹지 못한다. 아득히 세월이 멀리 흐를수록 더욱 더 황폐해져 암담해질 것이다. 정령(精靈)은 의지할 곳 없이 저 높은 하늘로 날아올라 돌아오지 않는다. 아 슬픈 일이구나!」

상여는 효문원령(孝文園令)에 임명되었다. 효문원령은 효문황제의 능원을 관리하는 책임자다. 상여는 자허부(子虛賦)를 이미 훌륭한 글로 여겼던 황제가 다시 선도(仙道)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고 말했다.

“ 상림(上林)의 일을 노래한 글은 아름답다고 하기에는 아직 부족합니다. 이보다 더 아름다운 문장이 있습니다. 신은 일찍이 대인부(大人賦)를 지으려 했으나, 아직 완성하지 못했습니다. 청컨대 완성하여 바치겠습니다.” 열선전(列仙傳)에 산과 못 사이에 살고 있는 신선들의 모습이 너무 파리하게 그려져 있었음으로 상여는 그것은 제왕이 그리는 선인의 모습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드디어「대인부」를 지었다. 그 문사는 다음과 같았다.

세상에 대인(大人)이 있어 중국에 살았다. 그의 저택은 만 리에 가득 찼건만, 일찍이 잠시나마 머무를 만하다고 여기지 않았다. 각박하고 비좁은 세속을 비탄하며 훨휠 가볍게 날아가 머나먼 곳에서 노닐었다. 붉은색 깃발을 날리며 흰 무지개를 드리운 채 구름의 기운을 타고 하늘로 떠올라갔다. 황백(黃白)의 긴 장대를 세우고 나는 깃발을 매달았으며 깃발 끝은 오색 빛깔을 늘어뜨려 꾸미고, 혜성을 끌어당겨 깃발을 장식한 깃털로 삼았다. 깃발은 바람 따라 높이 나부끼고, 아리따운 자태로 흔들린다. 참(欃)ㆍ창(槍)을 베어 깃발을 매달고, 깃발의 장대 위에 둥그런 무지개를 길게 엮어 도(韜)를 삼는다. 하늘에는 붉은 빛이 아득히 멀리퍼지나 암담하여 빛도 없고 바람처럼 솟아오르고 구름처럼 떠오른다. 날개 달린 응룡(應龍)이 끄는 수레를 타고 적룡과 청룡을 부마(副馬)로 삼아, 오르내리는 모습이 매우 기운차다. 목을 꼿꼿이 세워 교만한 자세로 달리고, 굽혔다가 우뚝 일어나 뛰는가 하면 똬리를 틀어 구불구불 감곤 한다. 머리를 끄덕끄덕 흔들며 목덜미를 길게 하고 앞으로 전진하며 때로는 방자하고 자유롭고 머리를 치켜드는 것이 가지런하지 않으며, 재빨리 앞으로 나아갔다가는 뒤로 물러서며, 눈을 움직이고 혀를 내민다. 쭉 위로 날아올라 좌우로 서로 따르고 여러 번 머리를 흔들고 달려서 서로 의지하여 뒤엉키고 이끌고 부른다. 땅을 밟고 내려섰는가 하면 훌쩍 날아오르고, 날아올라서는 미친 듯이 달리고, 나란히 날아가 서로 쫓곤 한다. 번개처럼 빠르고 갑자기 밝아지며 안개처럼 사라지고 구름처럼 흩어진다.

비스듬히 동극(東極)을 건너 북극(北極)에 오르니, 신선들과 서로 교유한다. 진인(眞人)이 서로 만나 오른쪽으로 돌았다가 옆의 비천(飛泉)을 건너올라 정동(正東)으로 간다. 여러 신선들을 불러 뽑아 정하고 요광(瑤光)에 여러 신선들을 배치한다. 오제(五帝)를 길잡이로 삼고 태일(太一)을 제자리로 돌려보내고, 능양(陵陽)을 시종으로 따르게 하고, 현명(玄冥)을 왼쪽에, 함뢰(含雷)를 오른쪽에, 육리(陸離)를 앞쪽에, 휼황(潏湟)을 뒤따르게 한다. 선인 정백교(征伯僑)를 부려 선문(羨門)에서 일하게 하고 기백(岐伯)에게는 명하여 의방(醫方)을 맡기고 축융(祝融)에게 경호를 하도록 하여 나아가는 사람을 멈추게 하고 악기(惡氣)를 맑게 한 뒤에 나아간다. 나는 수레 만 승을 모아 오색구름으로 수레 덮개로 삼고, 화려한 깃발을 바로 세운다. 구망(句芒)에게 시종들을 인솔하게 하여 남쪽으로 가서 즐기려고 한다.

숭산(崇山)에서 당요(唐堯)를 찾아보고, 우순(虞舜)을 구의(九疑)로 찾아간다. 수레 행렬이 어지럽게 뒤섞이고 겹치고 서로 교차하여 이어져 나란히 달려가려고 하는데, 서로 부딪쳐 시끄러운 소리로 가득 차 앞으로 나갈 수 없더니, 이제야 물이 아래로 흐르는 것처럼 행렬이 움직인다. 잇달아 모여드는 모습이 마치 모아놓은 듯하고, 넓게 퍼져 흩어지는 모습은 또한 광막하게 섞여 있는 듯하다. 뇌실(雷室)의 우르르 쾅쾅하는 우레 소리는 들리는 곳으로 곧장 들어가고, 귀곡(鬼谷)은 울퉁불퉁한 곳을 빠져 나온다. 팔굉(八紘)을 두루 보고 사황(四荒)을 본 뒤에 떠나 구강(九江)을 건너고 오하(五河)를 넘어 염화산(炎火山)을 지나 약수(弱水)에 배를 띄워 지나가고 작은 주(州)를 건넌다. 사막을 건너 총령산(葱嶺山)에서 쉬며 물장난을 친다. 여와에게 비파를 타게 하고, 풍이(馮夷)에게 춤추게 한다. 때때로 아득히 어두워지고 그늘이라도 지면 병예(屛翳)를 불러 풍백(風伯)을 벌주고 우사(雨師)에게 형벌을 내린다. 서쪽으로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는 곤륜산(昆侖山)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곧장 삼위산(三危山)으로 달려간다. 창합(閶闔)을 밀어젖히고 천제의 궁궐로 들어가 옥녀(玉女)를 태워 함께 돌아온다. 낭풍산(閬風山)에 올라 먼 곳에서 멈추니, 마치 까마귀가 높이 날아오른 뒤 한 번 멈취 쉬는 것과 같다. 음산(陰山)을 낮게 돌아 완곡하게 날아올라 내가 지금 본 서왕모(西王母)를 만난다. 하얀 머리에 옥장식한 꾸미개를 쓰고 동굴 속에서 살고 있는데, 다행히도 세 발 달린 까마귀가 있어서 그녀를 위해 일한다. 반드시 영원히 살아 이와 같이 된다면, 만대를 살아도 기뻐하기에는 부족하다.

수레를 돌려 돌아오는 길에 부주산(不周山) 옆으로 넘어 유도산(幽都山)에서 회식(會食)한다. 북방의 밤기운을 마시고 아침 이슬을 먹고, 지초(芝草)의 꽃잎을 씹고 경수(瓊樹)의 꽃잎을 먹는다. 머리를 들어 서서히 하늘 높이 날아오른다. 천문(天門)의 거꾸로 달린 그림자를 뛰어오르듯 꿰뚫고 나가 뭉게뭉게 피어나는 구름을 건너 유거(游車)와 도거(道車)를 달려 길다란 길로 내려가며 안개를 뒤로 남긴 채 멀리 달려간다. 인간 세상을 비좁다고 여겨 깃발을 펼쳐들고 북극으로 나간다. 주둔한 기병은 현궐(玄闕)에 남겨두고 선구(先驅)에게 한문(寒門)에서 앞질러 가게 한다. 아래는 깊고 멀어서 땅이 보이지 않고, 위는 넓고 넓어 하늘이 없다. 보려고 해도 눈이 아물거려 볼 수 없고, 들을려 해도 귀가 황홀하여 들리는 것이 없다. 허무를 타고 올라 앞으로 나아가니 초연히 벗도 없이 홀로 남아 있다.」

상여가「대인부」의 노래를 바치자, 천자는 매우 기뻐하며, 갑자기 구름 위로 두둥실 올라간 듯하고, 마음은 천지 사이에서 자유로이 노니는 것 같았다.

상여는 이미 병이 들어 벼슬을 그만두고 무릉(茂陵)의 집으로 물러나 살고 있었다. 천자가 말했다.

“ 사마상여의 병이 위독하다니, 가서 그이 책을 모두 가져오는 것이 좋겠다. 만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뒤에 그것을 잃을 것이다.”

천자가 소충(所忠)을 보냈지만 상여는 이미 죽고 집에는 책이 없었다. 그의 아내에게 물으니 이렇게 대달했다.

“ 장경이 본래부터 지녔던 책은 없습니다. 때때로 글을 지어도 사람들이 가져가 집에는 책이 없습니다. 장경이 죽기 전에 책을 한 권 지었는데, ‘사자가 와서 책을 찾거든 이것을 올리시오’ 라고 하였습니다. 그 밖의 다른 책은 없습니다.”

그가 남겨 놓은 서찰 형태의 글은 봉선(封禪)에 관한 글이었다. 상여는 아내로부터 그것을 전해 받은 소충이 천자에게 바쳤다. 천자는 상여의 긍를 소중하게 여겼다. 그가 남긴 봉선에 관한 글을 다음과 같았다.

「상고 시대에 천지가 처음 열려 하늘이 백성을 낳은 이래 역대의 군주를 거쳐서 곧 진(蓁)나라에 이르렀습니다. 가까운 시대의 군주들이 남긴 족적을 더듬어 살피고, 먼 옛날의 유풍을 들어보면, 예로부터 군주가 된 자는 많지만 이름이 묻혀 기록으로 남아 있지 않은 자는 이루 다 셀 수 없습니다. 순임금과 우임금의 뒤를 이어 밝고 큰 덕을 계승하여 생전의 이름과 사후의 시호를 후세에 높이 받들어 일컬을 만한 자는 대략 72명이 있습니다. 착한 행동을 따라하여 창성하지 않은 자는 없고 누구든지 이치를 거스르면 오래 존속할 수 없습니다.

헌원씨(軒轅氏) 이전의 일은 시간이 오래되고 아득하여 그 자세한 상황을 들을 수 없으나, 오제와 삼왕의 사적을 비롯하여 육경(六經) 등의 서적에 전하는 것은 대체적으로 볼 수 있습니다. 서경(書經)에 말하기를, ‘원수(元首)는 현명하고, 신하들은 선량하구나.’라고 하였는데, 이것에 의하면, 군주로는 당요(唐堯)보다 성대한 이가 없고, 신하로는 후직(后稷)보다 어진 이가 없습니다. 후직은 당(唐)에서 처음으로 공업을 세웠고, 공류(公劉)는 서융(西戎)에서 공적을 드러내었습니다. 문왕(文王)이 제도(制度)를 고치자 주나라가 크게 융성하고 대도(大道)가 비로소 이루어졌습니다. 그 뒤로 점차 쇠미해져 천 년 동안 누린 뒤에야 비로소 멸망했습니다. 어찌 처음도 잘하고 끝도 잘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된 데는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앞서 정한 업의 규범을 신중히 따르고, 뒷 세대에는 교화를 지켜 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나라의 사적은 평범하여 따르기 쉽고, 은덕은 깊고 넓어 풍성하여, 법도는 명백하여 본받기 쉽고, 법통을 드리우는 것이 이치를 따랐기 때문에 계승하기 쉬웠던 것입니다. 그래서 왕업은 성왕(成王)때에 이루어졌고, 공적은 주나라의 문왕과 무왕이 으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처음과 끝을 살펴보면, 특별히 상식을 뛰어넘는 사적이라고 할 만한 것은 없으므로 지금의 한나라와 비교됩니다. 그렇지만 주나라 사람들은 양보산과 태산에 올라 봉선하여 영광스러운 봉호(封號)를 세우고 높은 명성을 베풀었습니다. 위대한 한나라의 은덕은 수원(水源)처럼 솟구쳐 올라 널리 사방에 미칩니다. 그것은 구름처럼 퍼지고 안개처럼 흩어져서 위로는 구천(九天)까지 뻗치고 아래로는 팔방의 극까지 흘러들어 갑니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천자의 은택에 젖어 윤택해지고, 화창한 기운은 옆으로 흘러넘치고 당당한 절조는 질풍처럼 멀리 갑니다. 가까운 곳에 사는 사람은 그 은택의 근원에서 놀고, 먼 곳에 사는 사람은 그 은택의 끝에서 헤엄치는 것 같습니다. 엄청난 악을 지은 자는 연기처럼 사라지고, 어리석은 자는 지혜를 얻었습니다. 곤충과 같은 미물까지도 화락하여 모두 머리를 안쪽으로 돌려 천자의 은택을 바라고 있습니다. 그렇게 된 뒤에 추우(騶虞)와 같은 상서로운 짐승을 동산에서 기르고, 미록(麋鹿)과 같은 기이한 짐승을 잡습니다. 한 줄기에서 여섯 이삭이 달린 벼를 푸줏간에서 가려서 종묘에 바치고, 뿔이 한쪽에 쌍으로 돋아난 백린(白麟)을 희생으로 종묘에 제사지내며, 주나라 때 남긴 구정(九鼎)을 얻고, 놓아 주었던 거북이를 기수(岐水)에서 잡습니다. 취황색(翠黃色) 용을 못에서 부르고, 신마(神馬)를 시켜 영어(靈圉)를 만나 한가로운 관사에서 빈객으로 머물게 합니다. 기이하고 웅장한 물건의 다양한 변화는 이보다 더할 수 없습니다. 삼가 받들어야 할 일입니다.

상서로운 조짐이 여기에 이르렀건만, 오히려 덕망이 엷다고 생각하며 감히 봉선에 관한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대체로 주무왕이 은나라의 주왕을 칠 때 백어(白魚)가 튀어 올라 배 안으로 떨어진 일을 두고 상서로운 좋은 조짐이라고 하여 구워서 하늘에 제사 지냈습니다. 이와 같은 작은 일을 징험이라고 하여 태산에 올라가 봉선하였으니, 또한 부끄럽지 않습니까? 주나라의 앞섬과 한나라의 겸양의 도리가 아마도 어째서 이렇게 다릅니까?」

이에 대사마(大司馬)가 진언하여 이렇게 말했다.

「폐하께서는 어짊으로써 천하의 백성들을 기르시고, 도의로써 종속되려 하지 않는 자를 정벌하셨습니다. 중국 안의 제후들은 기꺼이 공물을 받들고, 모든 만이들은 폐백을 가지고와 바쳤습니다. 덕은 상고 시대의 제왕과 비견되고, 공은 함께할만한 자가 없으며, 아름다운 공적은 두루 미치고 않는 데가 없고, 상서로운 조짐은 여러 모습으로 변화하여 나타나고, 시기를 따라 계속 이어지고 유독 처음 나타난 것은 없습니다. 생각건대, 이것은 태산(泰山)과 양보산에 제단을 설치하여 폐하께서 오셔서 지난날의 영광에 비유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대체로 이름을 세워 영광을 드러내게 하려는 것입니다. 즉 하늘이 은혜를 내려 복을 쌓고 제사를 지내 성공을 아뢰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폐하께서는 겸양하여 출발하지 않으십니다. 그것은 지기(地祇)ㆍ천신(天神)ㆍ산악신(山嶽神)의 환심을 끊고 왕도의 예의를 잃는 행위로써, 여러 신하들은 부끄러워합니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하늘의 뜻은 어두워서 말을 하지 않고 상서로운 징조로서 그 뜻을 나타낸다. 상서로운 징조가 있으면, 사양할 수 없다.’ 고 했습니다. 만일 이것을 사양한다면, 그것은 옛날부터 태산에는 기(記)를 세울 기회가 없었을 것이고, 양보산도 제사를 받을 가능성이 없었을 것입니다. 또한 각각 때에 따라 한때의 영화를 다하고 그 세상을 지나는 데 그쳤을 뿐이라면, 뒷세상에서 이야기하는 자가 어떻게 72명의 군주가 있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대체로 덕을 닦은 이에게 부서(符瑞)를 주며, 그것을 받들어 봉선을 행하는 일은 예의를 벗어난 행위가 아닙니다. 때문에 성왕(聖王)께서는 봉선의 예를 폐하지 않고 예를 닦아 자기를 공경하고 정성을 다하여 천신을 기다리며, 중악(中嶽)에 공을 새겨서 지존한 신분임을 드러내고, 성덕을 서술하여 영광스러운 이름을 나타내며, 두터운 복을 받음으로써 모든 사람이 은혜를 입도록 했습니다. 얼마나 빛나고 성대한 일입니까! 이것은 천하의 장관이며, 왕자의 위대한 사업이니 가볍게 여길 수 없습니다. 바라건대 폐하께서는 이 일을 완성하십시오. 그렇게 한 뒤에 유학자들의 학술과 책략을 빌려서 일월의 찬란한 빛을 우러르는 것처럼 그것으로써 관직을 지키고 일을 처리하게 하며, 또 아울러 그 의를 바르게 처리하도록 하고 그 글을 교감하여 춘추(春秋)와 같은 경서를 짓게 하십시오. 그래서 종래의 육경을 칠경(七經)이 되게 하고, 후세에 길이 전하여 만세에 걸쳐 맑게 흐르도록 하여 그 미묘한 여파를 높이고 아름다운 명성을 진동시키고 풍성한 재능을 진동시킬 수 있도록 하십시오. 옛날의 성왕들이 길이 큰 명성을 보전하여 언제나 으뜸으로 칭송되는 까닭은, 이러한 도를 실천하였기 때문입니다. 마땅히 장고(掌故)에게 명하여 봉선의 의미를 모두 아뢰게 하여 참고하십시오.」

천자는 매우 감동하여 낯빛을 바꾸고 말했다.

“옳구나! 짐이 이 일을 시험해 보아야겠구나!”

그 즉시 생각을 바꾼 천자는 공경들의 의론을 종합하여 봉선의 일을 물었다. 그리고 천자의 덕택이 큰 것을 시로 읊게 하고, 표적(表迹)이 풍부함을 넓혀서 즉시 송(頌)으로 짓게 하였으니 내용은 이렇다.

「나의 하늘과 같은 덕이 만민을 덮으니 구름이 유유히 떠다닌다. 감로(甘露)와 단비가 저 대지를 충분히 적셔 주고 영양가 있는 유액(乳液)이 땅에 깊숙이 스며드니 어떤 생물인들 자라지 않으리? 아름다운 곡식은 한 줄기에 여석 이삭이 달리니 어찌 수확이 쌓이지 않으리?

비를 내려 적셔 줄 뿐만 아니라, 또 만물을 윤택하게 하네, 윤택하게 할 뿐만 아니라 널리 퍼지게 하네, 만물이 기뻐하며 그리워서 사모하네, 봉선을 행할 명산을 분명히 나타내며, 우리 군주께서 오시기를 바라네, 군주여, 군주여! 어찌하여 봉선하러 나가지 않으십니까!

아름다운 무늬의 짐승이 우리 군주의 동산에서 즐기네, 흰 바탕에 검은 무늬의 모습 아름답구나. 그 화목한 모습이 바로 군자의 태도로구나. 일찍이 그 짐승이 있다고 들었으나, 이제야 나타난 것을 보네, 그것이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지만, 하늘에서 내린 상서로운 조짐이라네. 이 짐승은 순임금 때 나타났고, 그로 인하여 우씨(虞氏)가 일어났네.

살찐 기린이 저 제단의 뜰에서 노니네. 10월 한겨울에 우리 군주가 교사(郊祀)를 지낼 때, 저 기린이 우리 군주의 수레 앞으로 달려오자, 우리 군주는 그것으로 제사를 지냈네. 삼대 이전에는 일찍이 이러한 상서로운 조짐이 없었네.

굽혔다 폈다 하는 황룡이 지극한 덕에 감동하여 날아오르니, 그 채색이 찬란하게 빛나네. 진정한 용 모습을 백성들에게 보여 깨우쳐 주셨네. 고서에도 육룡(六龍)을 타고 하늘에 오른다고 하였네.

용은 천명을 받은 자가 타는 것이고, 천명은 조짐으로써만 받을 뿐 말하지 않고, 사물에 기탁하여 태산에 봉선할 것을 군주에게 알려주네.

육경을 펼쳐보니, 하늘과 사람이 서로 합치되고 위와 아래가 서로 상서로움을 나타내어 성스런 천자의 덕망을 찬양하는데도 성스런 천자는 언제나 스스로의 부덕함을 두려워하고 삼가네. 그러므로 ‘일어날 때는 반드시 쇠락할 것을 염려하고, 편안할 때는 반드시 위태롭게 될 때를 생각하라!’ 고 말하였네. 따라서 상탕(商湯)과 주무왕은 지극히 존엄한 지위에 있으면서도 존경하고 삼가함을 잃지 않았으며, 순임금은 큰 법칙을 밝혀서 언제나 스스로 되돌아보고 자신의 잘못을 살폈으니, 이런 일들을 두고 말하는 것이네.」

사마상여가 죽은 지 5년이 지나서야 천자는 후토(后土) 신에게 제사를 지냈고, 8년 뒤에는 먼저 중악(中嶽)에 제례하고 태산에 봉(封)하고 양보산 자락의 숙연산(肅然山)에서 선(禪)하였다.

상여가 지은 다른 글로는〈유평릉후서(遺平陵候書)〉,〈여오공자상난(與五公子相難)〉,〈초목서(草木書)〉등과 같은 것이 있으나, 여기에서는 싣지 않고 그 저서들 중에서 특히 공경들 사이에서 이름이 나 있는 것만을 기재했다.

태사공은 말한다.

「춘추(春秋)는 드러난 사실을 추론하여 은밀한 것까지 이르렀고, 역경(易經)은 은밀한 것을 바탕으로 명백한 사실에 이르고 있으며, 대아(大雅)는 먼저 왕공(王公)과 대인(大人)의 덕을 말하여 백성들에게 이르렀고, 소아(小雅)는 비천한 사람의 행위를 말함으로써 정치의 선악을 풍자하여 그 영향이 왕공대인에까지 미쳤다. 때문에 춘추ㆍ역경ㆍ대아ㆍ소아에서 말하는 것은 겉으로는 서로 다르지만, 그것이 모두 덕에 합치된다는 점에서는 같다. 상여의 글은 공허한 문사와 함부로 하는 말이 많으나, 그 주가 되는 뜻은 절약과 검소함으로 돌아간다. 이것이 시경에서 말하는 풍간(諷諫)과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양웅(揚雄)은 ‘ 사치스럽고 화려한 상여의 부는 백 가지를 칭찬하고 한 가지를 풍유하였는데, 마치 정(鄭)ㆍ위(衛)의 음란한 음악으로 치닫다가 끝에 아악(雅樂)을 연주하는 것과 같으니,〔본래의 취지를〕훼손시킨 것이 아닐까?’ 라고 말했다. 나는 그의 말 중에서 말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만을 취해서 이 편을 지었다.”

- 사마상여열전 끝 -

주석

1) 인상여(藺相如)/ 열전21. 염파인상여열전 참조

2) 랑(郞)/ 랑관(郞官)으로 칭한다. 중국 고대 왕의 시종관을 통칭했다. 그 직무를 궁정의 낭하(廊下)에서 했다고 해서 낭(廊)이라고도 한다. 춘추 때 제환공과 진문공이 설치하기 시작해서 전국 때는 각 제후국들이 모두 따랐다. 진나라는 랑의 직분을 셋으로 나누었다. 황제의 여인들이 묶고 있는 곳을 드나들며 시위하도록 했던 직위를 중랑(中朗), 궁중에 거하며 황제를 시위했던 직위를 낭중(郎中), 궁중 밖에서 황제를 시위했던 직위를 외랑(外朗)이라 했다.

3) 무기상시(武騎常侍)/ 常侍騎, 騎常侍 등으로 부른다. 항상 말을 타고 황제를 수행하여 측근에서 경호했던 랑관이다. 진나라가 설치하고 한나라가 답습했다. 질록은 연 팔백석이다.

4) 양효왕(梁孝王)/ 한문제(漢文帝)의 아들이고 한경제(漢景帝)의 동모제다. 문제 12양왕(梁王)으로 봉국을 옮겼다가 경제(景帝) 3년 기원전 154년, 오초칠국(吳楚七國)의 란이 발생하자, 그는 중앙군과 협력하여 란을 진압하여 큰공을 세워 경제의 깊은 신임을 받았다. 경제의 신임을 과신한 그는 출입 시 항상 황제와 함께 수레를 타고 다녔다. 공을 믿고 자만한 효왕은 봉국에 거대한 궁궐과 후원을 축조하고 널리 금전과 재물을 모아 양나라의 부고의 주옥과 보기는 한나라의 서울보다 더 많았다. 또한 천하의 명사들을 사방에서 불러들여 제인(齊人) 양승(羊勝), 공손궤(公孫詭), 추양(鄒陽) 등을 문하에 두었다. 후에 경제가 태자 율(栗)을 폐하자 태후는 효왕을 그 후계로 삼으려고 했으나 대신 원앙(袁盎) 등의 반대로 성공하지 못했다. 이 일로 원한을 품은 효왕은 공손궤 등과 모의하여 원앙 등을 포함한 10여 명의 대신을 자객을 보내 암살했다. 얼마 후에 일이 경제에게 발각되었으나 태후의 비호를 받아 죄를 추궁받지 않았다. 봉국에서 재위 35년 만에 죽었다.

5) 추양(鄒陽)/ 열전23 노중련추양 참조

6) 매승(枚乘) /기원전 140년에 죽은 서한의 관리이며, 저명한 사부가(辭賦家)로 자는 숙이고 매생은 존칭이다. 처음에 오나라의 낭중(郎中)이 되었다가 오왕 유비(劉濞)가 반란을 획책하자 그는 표문을 올려 해롭고 이로움을 열거하며 중지할 것을 간했으나 오왕은 듣지 않았다. 그때 양효왕 유무(劉武)의 세력이 높아 귀하게 되어 문사들을 초빙하여 받들었음으로 매승은 즉시 오나라를 떠나 양나라로 들어갔다. 양효왕은 매승을 낭중으로 삼았다. 얼마 후에 관직을 물러나 향리로 돌아가 은거했다. 경제 3년 기원전 154년, 오초칠국이 군사를 일으켜 반란을 일으키자 그는 다시 오왕에게 천하정세를 분석한 표문을 올려 군사를 거두어들이기를 권했다. 오왕은 여전히 매승의 간언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칠국의 란이 평정되자 그의 이름은 천하에 알려져 한경제가 불러 그를 홍농도위(弘農都尉)에 임명했다. 군의 관리들이 불쾌하게 생각했음으로 병이 났다는 핑계를 대고 도위직을 그만두고 다시 양나라로 들어가 유유자적했다. 당시의 저명한 사부가(辭賦家) 추양, 엄기 등과 교우하고 양효왕의 문객이 되었다. 효왕의 문객들은 모두가 이름있는 사부의 대가였으나 그의 사부는 그 중에서 최고였다. 기원전 144년 양효왕이 죽자 양나라를 떠나 회음으로 돌아갔다. 태자로 있을 때 평소에 그의 명성을 들었던 한무제가 즉위하자 즉시 부들로 치장한 안거(安車)를 보내어 초빙했으나 노년으로 인하여 도중에 죽었다. <한서(漢書) 예문지(藝文志)>에 <매승부(枚乘賦)>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지금까지 전해진다.

7) 엄기(嚴忌)/ 대략 기원전 188년에 태어나서 전105년에 죽은 서한 초기의 사부가(辭賦家)로 오현(吳縣) 출신이다. 원래의 성은 장(莊)이 동한의 명제(明帝) 유장(劉莊)을 휘하여 엄으로 바꿔어 부르게 되었다. 문재와 구변으로 당세에 이름을 떨쳤다. 오왕 유비(劉濞)가 사방에서 유세객을 초빙하자 엄기와 당시의 명사인 추양, 매승 등이 응하여 유비의 문객이 되었다. 후에 유비가 반란을 꾀하자 엄기와 매승 등이 함께 상서를 올려 중지하기를 간했으나 유비가 듣지 않았음으로 오나라를 떠나 양효왕에게 의탁했다. 양효왕은 엄기를 후대했다. 한경제 원3년 기원전 154년 반란을 일으킨 오왕 유비는 싸움에 지고 주살되었다. 엄기는 일찍이 그에게서 떠나 화를 피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뛰어난 재주와 식견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그를 엄부자(嚴夫子)라고 불러 존경심을 표했다. 사부 24편을 지었으나 현재는 단지 《애시명(哀時命)》한 편만 전한다.

8) 임공(臨邛)/ 지금의 사천성 공래현(邛崍縣)으로 성도(成都) 남서 50키로다.

9) 도정(都亭)/ 한나라 때 최소의 행정기구로 매 10리마다 정(亭)을 두고 정장(亭長)에게 치안을 맡겨 여행객을 관리하고 민사를 관리했다. 성안에 설치한 것을 도정, 성문에 설치한 것을 문정(門亭)이라고 불렀다.

10) 로(爐)/ 사방을 흙으로 에워싸고 가운데에 술항아리를 설치하여 술을 끓일 수 있게 만든 화로다.

11) 독비곤(犢鼻褌)/ 여름에 농부가 일할 때 입는 무릎까지 내려오는 짧은 잠방이. 베로 허리 전면을 덮고 뒤로 돌려 맨다. 일명 쇠코잠방이 혹은 사발잠방이라고도 한다.

12) 구감(狗監)/ 천자의 사냥개를 관리하는 관리로

13) 원유(苑囿) 짐승을 기르던 곳으로 규모가 큰 곳을 ‘원(苑)’이라 하고, 작은 곳을 ‘유(囿)’라고 했다. ‘유’에는 담장이 있다.

14) 교청(鵁鶄): 다리에 붉은 털을 가진 오리 모양의 물새

15) 침자(<鳥+葴><此+鳥>) : 검 푸른색 털을 가진 새

16) 구종산(九嵕山)/ 지금의 산서성 함양시 서북 30키로의 예천현(禮泉縣) 경내에 소재한 해발 1100미터의 산이다. 당태종과 그의 비 장손황후가 묻힌 소릉(昭陵)이 소재한다.

17) 절벽산(嶻㠔山)/ 자아산(慈峩山) 혹은 차아산(嵯娥山)이라고 한다.  섬서성 경양(泾阳),삼원(三原),순화(淳化) 등 3개 현의 경계이며 고성은 서안에서 북쪽 60키로 북쪽에 있으며 주봉은 1400여 미터이다. 경위분명(涇渭分明)이라는 고사로 유명한 경수(涇水)와 위수(渭水)이 합류지점에서 발생하는 탁류와 청류가 함께 흐르는 섬서 10경을 구경할 수 있다.

18) 종남산(終南山)/ 태을산(太乙山)、지패산(地肺山)、중남산(中南山)의 여러 이름을 갖고 있으며 남산은 약칭이다. 섬서성 남쪽을 가로지르는 진령산맥의 여러 고봉 중 하나이며 진령은 섬서성 서쪽의 미현(眉县)에서 시작하여 동쪽의 남전현(藍田縣)에 이르기 까지 천리에 뻗쳐 있는 산맥으로 천봉만학에 경색이 깊고 아름다워 사람들은 선도(仙都) 혹은 천하제일복지(天下第一福地) 등으로 칭송하고 있다. 주봉은 장안구 경내에 있는데 해발 2600요 미터에 이른다.

19) 강거(康居)/ 영어 표기는 Kangju로 현재 우즈베키스탄 인근 지역에 세워진 고대 국가다. 강거의 여름 수도가 지금의 타슈켄트이다. 위치는 소그디아나의 북쪽이며 대원(大宛)(페르가나)의 북서쪽 1000km 떨어져 있다. 기원전 128년 장건이 방문한 후 기록에 남겼다. 수당(隋唐) 때 강국(康國)으로 개명하였지만 그 당시에 영역은 곡투르트 칸의 돌궐인들에 의해 지배당하고 있었다.

20) 열전53. 남월에 민월(閩越)이 남월을 공격하자 한나라가 개입하여 전쟁을 중지시켰다. 후에 한나라 조정은 장조(莊助)를 사자로 보태 남월왕 호(胡)을 설득하자 호는 태자 영제(嬰齊)를 한나라에 보내 숙위(宿衛)하도록 했다. 태자가 입조했다는 말은 이 일을 가리킨다.

21) 봉수(烽燧)/ 고대 외적의 침입을 알리는 경보체제로 봉화대에서 장작이나 섶을 태워 나는 연기로 낮에 올리는 것을 봉(烽), 밤에 올리는 것을 수(燧)라 했다. 낮에 하는 봉은 연기가 많이 나는 섶 즉 시(柴)로, 수는 화광을 일으킬 수 있는 장작 즉 신(薪)으로 했다.

22) 진나라의 12등급 중 가장 높은 등급이다.

23) 효제(孝弟)/ 한나라 때 향관(鄕官)으로 삼로와 함께 백성들의 교화를 담당했다.

24) 고조(高祖), 혜제(惠帝), 문제(文帝), 경제(景帝), 무제(武帝) 등의 다섯 황제와 여태후를 말한다.

25) ‘기(耆)’는 60세를 말한다. 따라서 기로란 나이가 많은 사람을 가리킨다.

26) 삼군(三郡)/ 익주자사부(益州刺史府)에 속하는 광한군(廣漢郡), 촉군(蜀郡), 파군(巴郡) 등의 세 군을 말한다.

27) 시경 소아 북산(北山) / 普天之下 莫非王土(보천지하 막비왕토), 率士之濱 莫非王臣(솔사지빈 막비왕신)

28) 육합(六合)/ 상하동서남북, 팔방(八方)/ 동서남북의 사방과 동남, 동서, 서남, 서북 등의 사유(四維)

29)초명(鷦明)/ 다섯 방위를 지키는 전설 속의 신령스러운 새

30) 오획(烏獲)/전국 때 천균(千鈞)을 들 수 있었다는 진(秦)나라의 역사로 진무왕(秦武王)의 호위무사다. 역시 힘이 장사인 진무왕이 힘겨루기를 좋아하여 그는 임비(任鄙), 맹열(孟說) 등과 함께 진나라의 높은 관리가 되었다.

31) 경기(慶忌)/ 춘추 말 오왕 료(遼)의 아들로 특히 민첩함으로 이름이 높은 용사다. 합려가 오왕 요를 죽이자 외국으로 망명했다. 이에 합려가 보낸 자객 요리(要離)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32) 맹분(孟賁)

① 춘추때 위(衛)나라 사람으로 <사기정의>에 의하면 그가 일단 노하여 고함을 치면 그 소리에 하늘이 움직였다고 했다. <시자(尸子)>에 “ 맹분은 물속에서는 교룡(蛟龍)도 피하지 않고, 산속을 다닐 때는 흉포한 호랑이도 마다하지 않았다.”라고 했다.

②전국 때 진무왕의 호위 무사였던 맹열(孟說)이다. 태어날 때부터 용력이 있어 평소에 산 소의 뿔을 뽑았다고 했다. 그는 오획(烏獲)과 함께 용력으로 제후들 사이에 이름이 있었다. 진나라 왕으로 즉위한 진무왕이 용사들을 좋아한다는 소식을 듣고 각지의 용사들을 이끌고 진나라로 들어가 높은 벼슬을 받았다. 무왕 4년 기원전 307년 무왕이 주나라에 들어가 구정 들기 시합을 맹열과 하다가 다리가 부러져 죽었다. 이에 그 죄를 추궁 받아 살해되고 그 종족은 멸족되었다.

33) 하육(夏育)/ 춘추 때 위(衛)나라 출신의 전설상의 력사다. 천균(千鈞), 즉 10톤의 무게를 들 수 있다고 했다. 후에 노나라 대부 신수(申繻)에게 살해되었다고 했다. 전박(田搏)에게 살해 되었다는 설도 있다.

34) 봉몽(逢蒙)은 궁술의 명인 예(羿)가 가장 사랑했던 제자였으나 마음 속으로 예만 세상에 없다면 자기가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활의 명수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항상 예를 죽일 생각을 갖고 있었던 흉악한 사람이었다. 그러다 어느 날 봉목은 길목에서 숨어 있다가 사냥 나갔다가 돌아오던 예를 복숭아나무 몽둥이로 때려죽이고 말았다.

35) 태산에 단을 쌓아 놓고 하늘에 지내는 제사를 봉(封)이라 하고, 양보산에서 땅에 지내는 선(禪)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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