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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화의 개요와 감상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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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화의 개요와 감상법


1. 그림과 주변장르의 통일


크게 詩 書 畵를 일체로 보고, 여기에 篆刻(落款)까지 네 가지가 모두 그림의 영역에서 언급된다. 그림에 글씨와 낙관을 곁들이는 것은 동양적인 특성이었는데, 특히 낙관의 경우는 단조로운 흑백의 색상을 더욱 돋보이게 하였을 뿐 아니라 독특한 조형미를 창출하였다. 후대로 오면 자기의 그림 뿐 아니라 남의 그림에 대해서도 題跋을 쓰고 낙관을 찍는 것이 관례처럼 되어 있었는데, 권위 있는 사람의 낙관은 그림의 가치를 더욱 높여주거나 그림의 소장내력을 알려주기도 하였다.



2. 바탕재료의 형식

백화(帛畵), 화상석(畵像石), 화상전(畵像塼), 벽화, 비단그림(絹本畵), 종이그림(紙本畵) 등이 있다. 백화는 춘추전국시대와 한대에 주로 장례용으로 천에 그려진 그림이다. 명청대 이후로는 화가들이 견본화보다 지본화 선호했다.



3. 그림 틀의 형식

족자(軸). 두루마리(卷). 병풍. 화첩(畵帖). 扇面 등. 그림을 담은 틀이 서양과 다르다는 점은 중국화를 감상할 때 소홀히 하기 쉬운데, 이 틀의 형식이 가지고 있는 내면의 의미를 이해하면 중국화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 훨씬 자연스러울 것이다. 이 네 가지 형식 중에서 그림의 전경을 한번에 감상할 수 있는 것은 족자뿐이다. 그러나 족자 역시 서양처럼 하나에 집중된 투시법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다양한 시점을 요구한다. 두루마리는 한쪽을 펼치면서 동시에 이미 본 부분을 되감아야 하므로 공간적인 시각예술에 시간성이 부여되는 하나의 이야기그림 구조를 갖게 되는 데 이는 매우 중요한 특징이다. 때문에 작가는 감상자가 감춰진 다음장면에 흥미를 갖도록 많은 숨겨진 장치를 하곤 했다. 긴 것은 수 미터에 달하기도 한다. 동양에서 병풍의 설치는 단순히 그림의 진열이라는 의미 외에도, 병풍 앞과 뒤의 두 세계를 분리시키는 벽의 역할을 하기도 하고, 병풍 앞에 있는 대상(주로 중요한 인물)을 병풍 뒤와 분리시켜 강조하는 역할을 수행하기도 하였으며, 두루마리 그림 속에서는 두 정경(씬) 사이의 분리를 꾀하기 위해 그려지기도 하였다. 화첩은 일종의 스케치북이라 할 수 있는데, 서양의 스케치북이 연습 본이라는 기능이 강한 데 반해, 동양의 화첩은 작가의 소품들을 모아놓은 것이라, 그 자체로 작가 작품의 결정체를 보여준다. 이것은 그림이 전시용으로만 제작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이러한 화첩은 비슷한 종류의 작품을 모으기도 하고 다른 작가들의 작품을 모으기도 한다.



4. 재료에 따라

벽화를 제외하면 먹물과 물감(돌가루)으로 비단이나 종이에 그린다. 서양화에서 캔버스에 오일물감으로 그릴 때 부단한 수정과 여기서 드러나는 터치가 중요한 기법이 되는 것과 달리 동양화에서는 만족스럽지 않은 그림은 폐기해버릴 망정 수정을 하지 않는다. 일단 비단이나 종이에 붓을 댄 순간 이미 돌이킬 수 없게 된다. 만약 시작하는 순간부터 마음속에 그리려고 하는 완전한 영상이 없다면 실수하기 쉽다. 이런 특성 때문에 동양화(중국화)에서는 서양화같은 실사(실물 본뜨기)가 발달하지 않았다.



5. 준법(준法)에 따라

산이나 바위의 질감을 나타내기 위해서 가하는 규칙적인 필법(일종의 터치 방법)으로 당대에 시원적 형태가 나타나 송대에 들어와서 본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여러 종류가 있다. 그러나 명 청대에는 정형화된 준법을 무시한 그림도 많이 나타나는 등 후대에는 이 필법이 그림에서 필수적인 요소가 되지 못하였다. 준법의 대표적 예를 보면,

◇披麻준: 삼(麻)껍질을 벗긴 것 같은 주름이라는 뜻으로 동원(董源)이 시작했다고 전해지며, 주로 南宗畵에 사용된 선(線)적인 주름. 解索준, 亂麻준, 芝麻준, 牛毛준, 荷葉준 등이 이 계통에 속한다.

◇斧壁준: 도끼로 쪼갠 면과 같은 주름으로 면(面)적인 성격이 강하여 북종화에 많이 사용되었다. 大부벽준은 李思訓, 소부벽준은 李塘이 시작하였다고 전해진다.

◇雨點준: 빗방울이 떨어진 듯이 점으로 나타낸 준법. 王維가 시작하였다 하며 동원, 巨然 등이 사용한 뒤, 미불(米불)이 완성하였다고 한다.


6. 기교의 미적 판단 기준은 무엇인가

대체로 붓놀림(運筆)의 질이나 선의 생동감에 기초하고 있다. 선의 세련도는 아주 많은 범주로 구분된다(중봉(中鋒), 편봉(偏鋒) 따위). 머뭇거리는가 혹은 대담한가, 약한가 혹은 강한가, 거친가 혹은 섬세한가, 물결치는 힘이 느슨한가 혹은 떨리는가 등등이다. 하나의 정신과 인격이 그의 필법에 드러나는 것으로 생각되었고 주제와 화풍을 이해함과 동시에 작가의 심상과 교감하도록 기대되었다.


7. 주제에 따라

송대 이후 회화의 주된 소재가 된 것은 크게 초상화와 풍속화를 포함한 인물화, 꽃과 동물그림을 포함하는 중국식의 '화조화'(그중 털 가진 짐승을 그린 것은 또 영모도(翎毛圖)라 한다. 화조화는 주로 부귀나 자손의 영달, 화목을 기원하기 위해 많이 그려졌다), 자연경관을 담은 '산수화'로 나뉜다. 특히 화조화는 18세기 이후 유럽인들에게 모방되기까지 하였다. 산수화는 서양의 20세기 이후 후기 인상파 운동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화조화: 옛날부터 동양화에는 [정물]이란 개념이 없었다. 꽃이나 새는 정물이 아니라 풍경으로 받아들여졌다. 그 이유는 한송이의 꽃은 야경(野景)을 가져야 하며, 꽃은 그 자체가 풍경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양의 화조화는 꽃이나 새보다는 그 배후의 것에 집중되는 특징을 갖는다. 이러한 집중은 화조화뿐 아니라 모든 동양화에 공통되는 것이다. 그 집중이 완성되는 것을 격(格)이라 하고, 그 격이 높은 것을 노(老)라고 한다.(백기수, 《미의 사색》서울대, 15쪽)

◇산수화: 육조시대부터 많이 그려진 산수화는 처음에는 도교적 측면에서 그려지게 되었다. 송대 이후로는 그 주제가 화가를 자기 자신으로부터 해방시켜 주는 위대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인식되었는데, 그것은 그래서 정신적인 위안과 원기회복의 원천으로서 널리 인정되었다. 郭熙같은 화가는 자신의 화론 서두에서 산수화를 즐기는 자는 가장 덕이 높은 사람이라고 단언하였는데, 그것은 덕이 높으면(달리 표현해서 유교적인 인격자), 공적인 도시 생활이 그를 구속하여 사회와 국가에 대한 자신의 책임을 지게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현실사회를 피하여 은둔생활]을 할 수도 없고, 몇 년 동안 산속에서 노닐 수도 없으므로, 결국 산수화 속에서 상상의 여행을 떠날 수밖에 없는 바, 화가가 창조한 자연의 아름다움과 장대함과 靜閑 속에서 마음을 살찌게 하여 상쾌한 기분으로 또다시 자신의 직무에 충실히 임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미술 기법적인 측면에서 산수화가 발달한 원인으로는 인물화나 화조화보다 산수화가 필묵의 미를 펼쳐 보이기가 더 다양했기 때문이라는 측면도 있다. 그것은 마치 붓으로 그린 무대와 같았다.

◇수묵화: 수묵화는 그림의 대상이 아니라 색감에 의해 구별되는 명칭이다. 수묵화의 성행은 신유학 곧 성리학의 발달과 관련이 깊다. 성리학은 채색보다 무채색에서 깊이를 더 추구하였고 성리학자 역시 수묵화를 선호하였기 때문에 결국 채색화의 쇠퇴를 가져왔던 것이다.



8.(산수화의) 기법과 구도에 의한 남북의 차이는 무엇인가

남종화와 북종화의 차이는 지리적 구분은 의미가 없다. 선불교에서 북파는 점수(漸修: 점진적 깨달음)를 남쪽은 돈오(頓悟: 자연발생적이고 직관적인 깨달음)에 가까웠는데, 회화의 영역에 이 개념이 적용되어 북종화는 기본적으로 다색물감을 쓰고 여백을 별로 남기지 않았고, 초상화나 화조화를 주로 그려서 궁전을 장식하는 직업적인 궁정화가들의 기법을 대표한다. 남종화는 주로 학인관료들의 양식을 가리키는데 그들은 여기(이것은 결코 아마추어를 뜻하지는 않는다)로서 그림을 그렸으며 수묵산수화로서 잘 알려져 있다. 이와 같은 구분은 畵院畵(궁정양식)과 문인화(사대부들의 그림) 화가들의 회화양식에도 적용된다. 물론 이러한 구분들을 엄격하게 적용할 수는 없다. 때에 따라 남종화 양식을 추구한 궁정화가도 있고, 생계를 위해 북종화 양식의 초상화나 화조화를 그려야 했던 문인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화의 전형이 완성된 원대 이후, 즉 명청대에는 절충적인 양식을 추구하는 화가들이 대거 등장하게 된다.


9. 중국화와 서양화의 차이 몇가지

(一) 중국인들은 그림의 대상을 사실적으로 파악하려 들지 않았다. 그들은 보통 살아있는 물체를 대상으로 그린 경우는 많지 않았다. 그들의 예술은 실내예술이었고 고도로 지적인 것이었다(寫意的). 즉 어떤 특정한 현실과 관련을 맺지 않아도 되는 내적 심상을 비단이나 종이 위에 표현한 것이다. 중국의 화가가 표현하는 것은 단순한 시각적인 대상이 아니고, 자연의 아름다움 앞에서 한순간에 고양된 미적 경험의 집적이랄 수 있다. 이러한 경험은 보편성을 지녔을 뿐 아니라 고도로 상징화된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다.

서구의 화가들은 특수화하는 작업을 하므로, 그 작품은 바로 그들 앞에 전개되고 있는 세계에 대한 직접적인 통찰의 결과로서 얻어진다. 그러나 중국의 화가는 일반화하는 작업을 하므로, 그들의 작품은 특수한 것이 아니라 숙달된 운필과 예기에 의해서 이루어진 자연의 본질적인 모습이다. 이러한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마치 피아니스트가 그러하듯이 아름다운 상상을 실체화하는 데 있어서 기술적인 장애와 형식 및 붓놀림에서 갈등을 겪지 않도록 손놀림의 완벽한 표현수단을 터득하여야 한다. 이러한 연습의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옛날 대가의 작품을 연구하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 화가는 아마도 원본의 선을 그대로 따라가며 정밀한 복제를 만들기도 하고(摹), 원본을 앞에 놓고 그것을 못하거나(臨), 원작가의 방식을 자유롭게 해석하여 응용(倣)해야만 했을 것이다.

(二) 중국인들은 일반적으로 화폭을 전부 채워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느끼지 않았다. 전통적 화가들은 때로 전혀 배경을 그리지 않는 경우도 있으며, 대부분 구도 중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보이는 것들만을 묘사하였다. 그것은 사실적으로 그릴 때건 추상적인 기법으로 그릴 때건 마찬가지였다. 이러한 경향은 남송 이후 나타나기 시작해, 원대의 문인화에서 두드러지며, 명청대에 다양한 방식으로 응용되었다.

(三) 전통적인 중국화가는 서양화에 쓰이는 투시법에 구애받지 않는다. 중국회화를 감상하는 사람은 마치 시점이 한곳에 일정하게 고정되어 있지 않는 것처럼 느끼게 된다. 특히 산수화의 경우에 감상자는 마치 허공에 떠서 부유하면서 감상하는 것 같으며 전혀 방해받지 않고 아주 명료하게 풍경의 여러부분을 잘 보기 위해서는 시점을 이곳 저곳으로 옮겨야 한다. 예컨대 세로로 된 족자(軸) 형태의 그림을 바라보면 근경에서부터 중경, 그리고 마지막에 원경으로 올라감에 따라 시점 역시 옮아간다. 그러나 각각의 경우에 각각의 부분은 정면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수평으로 된 橫卷 형태의 그림을 보려면 사람들은 각각의 부분을 번갈아 가면서 정면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 가장 좋다. 이러한 점을 알고 감상하면, 중국회화는 평면적이 아니다. 여기에는 보통 무한한 깊이와 공간감이 있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림으로 빠져들게 한다.

(四) 모방의 전통(臨摹)- 중국회화사를 연구할 때, 골치가 아프다고까지 할 만한 점은 모방의 전통이 하나의 형식으로 자리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청나라 초기의 화단에서는 청나라가 개국하기 290년전에 죽은 원4대가 중의 하나인 黃公望을 모방하는 것이 하나의 시대적 사조였다. 이 17세기의 화가들에 의해 그려진 황공망 풍의 그림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이것은 고화법에 대한 애착에 자극을 받아서이건, 아니면 모범이 된 화가 안에서 자기세대 정신의 완벽하고도 만족스러운 표현을 발견했기 때문이건, 죽은 화가를 후대의 화가들에 의해 빈번히 새롭게 재 등장하게 했으며, 이것이 시대가 더 앞설수록 후대의 감별가들을 곤혹스럽게 하곤 한다. 그러나 중국화가들이 초기의 많은 걸작을 모방함으로써 과거 대가들의 기법을 익혔으며, 원작을 충실히 복사해왔기 때문에 오늘날에는 소실된 초기의 많은 명화들의 특성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는 장점도 무시할 수 없다. 우리가 당대이전의 그림이라 여기는 상당수의 작품은 모두가 송대 이후에 제작된 것이다. 그러나 모방이라는 딱지가 붙은 것도 사실상 창조력에 견줄만한 새로운 해석이 가미되어 있다. (오늘날 골동품의 가치를 따져 모방한 것은 이러한 차원이 아니다.) 송대 이후에 제작된 임모본들은 각기 나름대로 제작가 당대의 미술적 사조를 조금씩 반영해 놓았다.(예컨대 인물의 복식이라든지, 소품의 양식이 다르든지 하는) 결과적으로 사실상 미술가들은 그 어떤 것을 그대로 복사하기 보다는 오히려 전대의 대가들을 고무하였던 본래의 창조정신을 화가 자신 안에 불어넣으려 했던 셈이다. 이런 사실로 볼 때, 고대의 명작들은 후대의 작가들에 대해서 단순히 걸작으로서만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따라 그려야 할 하나의 형식(장르)으로서 존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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