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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분천하위삼십육군(分天下爲三十六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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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분천하위삼십육군(分天下爲三十六郡)
- 천하를 36군으로 나누어 군현제를 시행하다. -

진시황이 이사의 의견을 쫓아 천하를 36군으로 나누었다. 그 36군은 이름은 다음과 같았다.
내사군(內史郡), 한중군(漢中郡), 북지군(北地郡),
농서군(隴西郡), 상군(上郡), 태원군(太原郡),
하동군(河東郡), 상당군(上党郡), 운중군(雲中郡),
안문군(雁門郡), 대군(代郡), 삼천군(三川郡),
한단군(邯鄲郡), 남양군(南陽郡), 영천군(穎川郡),
제군(齊郡:랑야군(瑯琊郡)), 설군(薛郡:사수군(四水郡)), 동군(東郡), 요서군(遼西郡), 요동군(遼東郡), 상곡군(上谷郡),
어양군(魚陽郡), 거록군(鉅鹿郡), 우북평군(右北平郡),
구강군(九江郡), 회계군(檜稽郡), 장군(鄣郡),
민중군(閩中郡), 남해군(南海郡), 상군(象郡),
계림군(桂林郡), 파군(巴郡), 촉군(蜀郡),
검중군(黔中郡), 남군(南郡), 장사군(長沙郡).

시황은 천하를 36군으로 나누고 각 군(郡)에는 수(守), 위(尉), 감(監)①을 두었다. 군현의 경계와 관할 구역의 넓고 좁음은 모두 이사가 결정했다. 백성들을 검수(黔首)라고 바꾸어 부르게 하고 천하에 큰 잔치를 벌이게 하였다. 천하의 병장기들을 모두 함양에 모아 용광로에 넣어 녹여서 12개의 동상을 만들었는데 매 동상 하나의 무게는 천석②이 나갔다. 완성된 동상은 궁정 안에 세워 옛날 전설에 나오는 임조장인(臨洮長人)③의 상서로움을 나타내려고 하였다. 다시 천하의 병기를 거두어 함양(咸陽)에 모아놓고 녹여서 종과 악기를 만들고 다시 12개의 동상을 주조했는데 무게가 각각 1000 석(石)으로 모두 궁전의 뜰 안에 세워 두었다. 법률과 도량형을 통일하고, 수레의 폭을 표준화 시켰으며 문자의 서체는 한 가지만 쓰도록 했다. 진나라의 영토는 동쪽으로는 바다에 이르러 조선에 닿고 서쪽으로는 임조와 강중(羌中)④에 이르렀으며 남쪽으로는 북향호(北嚮戶), 북쪽으로는 황하를 천연의 방어선으로 삼아 음산(陰山)⑤에서 요동(遼東)에 이르렀다. 천하의 부호들을 모두 함양에 옮겨 살게 하여 그 호수가 무려 20만 호에 달했다. 조상신을 모시던 종묘와 황제가 거했던 장대궁(章臺宮), 그리고 상림원(上林苑)⑥ 등은 모두 위수의 남쪽 언덕에 자리 잡았다.
진나라가 제후들을 파할 때마다 그들의 궁실을 본떠 함양의 북쪽 언덕에 이궁을 축조하여 함양의 남쪽 위수 강안으로 나있는 옹문(雍門)의 동쪽으로 나가 경수(涇水)와 합류되는 지점에 이르기까지 구름다리로 연결된 전각(殿閣)과 주각(周閣 : 사방을 조망할 수 있는 망루)을 연이어 늘어세우고 제후들을 멸할 때마다 얻은 미녀들과 종고(鐘鼓)로 건물들의 안을 채웠다. 그리고 다시 함양궁과 마주 바라보이는 위수 남쪽 언덕에 아방궁(阿房宮)을 짓기 시작했다. 먼저 아방(阿房)에 전전(前殿)을 건축했는데 동서의 넓이가 500 보(步)이며 남북의 길이가 50 장(丈)으로 그 안에는 만 명의 사람을 수용할 수 있었고 아래에는 5장 높이의 깃발을 꽂을 수 있었다.⑦ 사방으로 구름다리를 만들어 궁궐에서부터 남산으로 직접 오를 수 있도록 했다. 아방궁은 완성되기 전의 임시적인 이름으로 완성된 후에는 다시 좋은 이름을 골라 명명하려고 했다. 아방에다 짓는 궁궐이라 세상 사람들은 그것을 아방궁이라 부르게 되었다. 후에 진나라를 멸망시킨 초패왕(楚覇王) 항우가 불태워 버렸다.
이사의 관직을 올려 승상으로, 조고는 랑중령(郞中令)으로 삼았다. 그밖에 천하를 통일하는데 공을 세운 왕분과 몽무와 같은 장군들에게는 만호의 녹봉을 내리고, 그 휘하의 장수들에게는 공의 크고 작음에 따라 몇 천 호씩의 녹봉을 내렸다. 그리고 각 지방마다 부세를 부과하여 관리들의 급여를 지불했다. 백성들은 잔혹한 형벌과 과도한 부역으로 신음에 허덕이며 목숨을 부지하는데 전전긍긍하였다.
다시 훌륭한 공인을 불러 조나라부터 가져온 화씨벽을 깎아 전국새(傳國璽)를 만들게 했는데 그 안에 다음과 같은 글자를 파게했다.

『수명우천(受命于天), 기수영창(旣壽永昌)』

그것은 곧 ‘하늘의 명을 받아 영원히 번성하리라!’ 뜻이었다. 그리고 정(正)이라는 글자는 진시황의 이름 정(政)과 동음이라 황제의 이름을 범할 수 없다고 하여 바를 정(正) 자를 칠 정(征) 자로 읽게 했다. 그래서 정월(正月), 정도(正道) 등과 같은 말을 정월(征月)이나 정도(征道)와 같이 발음하여 그 뜻이 상서롭지 못했으나, 그것은 모두 진시황의 뜻이라 아무도 감히 시비를 걸지 못했다.
천하를 이미 병탄한 진시황은 몽염에게 30만의 군사를 주어 융적(戎狄)의 무리들을 북쪽으로 쫓아내고 하투(河套)⑧ 지역의 하수 이남의 땅을 진나라 영토로 삼았다. 싸움에서 이기기만을 힘써 휴식도 잊은 채 다시 흉노를 공격하려고 하자 이사가 간했다.
「불가합니다. 무릇 흉노는 성곽을 짓지 않고 살기 때문에 창고에 저장해 놓고 지킬 것이 없습니다. 이리저리 옮겨 다니기를 마치 날아다니는 새 떼와 같아 그들을 잡아 제압할 수 없습니다. 가벼운 장비로 그들의 땅에 깊이 들어간다면 양식은 필시 떨어지게 되고 그렇다고 해서 양식을 짊어지고 행군한다면 무거운 치중으로 일을 이룰 수 없습니다. 또한 그 땅을 얻는다 해도 아무런 이익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들의 백성들을 만난다면 그들을 부려 지키게 할 수도 없으니 승리를 취하기 위해서는 그들을 반드시 죽여야 하는데 그것은 백성들의 부모로써 할 일이 아닙니다. 중국을 피폐하게 하면서 단지 통쾌한 마음을 얻기 위해 흉노를 치는 일은 좋은 계책이 아닙니다.」
진시황은 흉노로부터 빼앗은 땅을 지키기 위해 장성을 축조하기 시작해서 지형에 따라 험난한 요새를 연결하여 성채를 쌓고 임조(臨兆)에서 시작하여 갈석산(碣石山)에 이르렀는데 총 길이가 만리(萬里)에 달했다.


주석
①수(守)는 군(郡)의 행정장관으로 군수 혹은 태수, 위(尉)는 군(郡)의 군사 책임자, 감(監)은 군(郡)의 감찰관이다.
②석(石) : 중량의 단위로 한 석은 120 근이다. 진한 때 한 근의 무게는 약 250그람임으로 한 석의 무게는 30kg이다. 천석에 해당하는 동상 한 개의 무게는 30톤이다.
③임조장인(臨洮長人) : 임조는 지금의 감숙성(甘肅城) 민현(岷縣) 경내로 진시황의 만리장성 서쪽의 시발점이다. 옛날 신화에 신장이 3장에 달하는 거인 부족이름이다. 6국을 멸한 진시황이 자신의 위세를 과시하기 위해 천하의 모든 무기를 압수하여 하나에 30톤이나 나가는 동상 12개를 주조해서 함양의 성문 앞에 세워 이름을 전설상의 거인족 이름인 임조장인이라고 불렀다.
④강중(羌中) : 진한 때 강족의 거주지로 지금의 청해성, 서장자치구, 사천성 북부 및 감숙성 남쪽지방 일대를 가리킨다.
⑤음산(陰山) : 지금의 내몽고 중부의 동서로 뻗쳐있는 산맥의 이름으로 서쪽의 하투(河套) 평원의 북쪽에 있는 낭산(狼山)에서 시작하여 동쪽의 대청산(大靑山)을 지나 집녕(集寧)까지 이른다.
⑥상림원(上林園) : 진나라 때 조성된 함양성 남쪽의 황제 전용 사냥터를 말한다. 한나라 초 관리가 안 되어 황폐해 졌다가 고조 12년 백성들에게 개방되어 개간을 허용하여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무제 때에 그 이름을 궁원(宮苑)으로 바꿔 불렀다. 그 크기가 사방 200여 리에 달했고, 원내에는 짐승을 방목하여 황제가 사냥을 즐기게 했으며 원내 곳곳에 이궁, 관람을 위한 누각, 그리고 숙식을 할 수 있는 관사들과 같은 시설물을 축조했다.
⑦아방궁(阿房宮) : 1보(步)는 약 1.4미터로 500보는 약 700미터이고, 1장(丈)은 2.3 미터로 50 장은 115 미터다. 즉 아방궁(阿房宮)의 규모는 동서의 길이가 700 미터이고 남북의 넓이는 115미터로 현재의 단위로 환산하면 연면적 2만 4천 평의 거대한 건물이었다.
⑧하투(河套) : 북쪽으로 흐르는 황하(黃河) 음산(陰山)산맥의 남쪽 기슭에서 만곡하는 부분과 만리장성으로 둘러싸인 고원지대로 사막 ·초원 ·염호(鹽湖)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오르도스란 15세기 중엽 이후 이곳이 내몽골 여러 부(部)의 하나인 오르도스부의 목축지를 이룬 데서 연유한 것으로서 현재 어얼둬쓰[鄂爾多斯]라고 표기하나, 본래 중국에서는 BC 3세기 이래 하남(河南), 후에는 하투(河套)나 투중(套中) 등으로 불렀으며, 몽골 유목민과의 교섭 또는 공방(攻防)의 요지로 삼아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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