頍弁(규변)

- 고깔 -

모서(毛序)는 ‘ 규변(頍弁)은 여러 공경들이 주유왕을 풍자한 시다. 잔인하고 무친(無親)한 주유왕이 동성을 위해 잔치를 열어 즐길 수도 없었고 구족(九族)과 친목할 수도 없어 결국은 혼자가 되어 장차 망할 위험에 처하게 되었음을 걱정하여 공경들이 이 시를 지었다.’고 했다. 구설은 모두 이 설을 따르고 있다. 그러나 모서의 작자는 주유왕에 대한 자신의 생각에 근거하여 이 시가 가지고 있는 고유의 내용을 간과하고 있다. 이 시의 원래의 내용에는 주유왕을 풍자했다고 믿을만한 문구는 어디에도 없고 군자가 주왕을 지칭하는지를 의심할만한 점도 없다. 조나(蔦蘿)와 송백(松柏)의 비유와 머리에 쓴 규변(頍弁)에 의한 경계 등이 그 증거다. 시 내용 중 매 장마다 나오는 질문과 반문은 친족과 화합해야 한다고 고창하는 시인의 마음을 묵시적으로 표현하는 말이며 실제로는 당시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사회적인 갈등에 초점을 맞추고 있음이다. 동시에 ‘사상무일(死喪無日)’이라는 의기소침한 구절은 ‘고위장망(孤危將亡) 즉 고립되어 장차 망한다.’는 예감을 들게 함으로써 서주 말 겪은 견융(犬戎)의 란을 표현하고 있는 듯하다. 이로써 유추해보면 이 시는 주려왕이 주선왕 때의 작품이 아니라 아마도 동주 시대 두 왕이 병립했을 때 지어졌다는 설이 보다 신빙성이 있다고 하겠다.

一

有頍者弁 實維伊何(유규자변 실유이하)

우뚝한 가죽 고깔 무엇하러 썼는가?

爾酒旣旨 爾殽旣嘉(이주기지 이효기가)

맛있는 술에 좋은 안주 앞에 놓여있네

豈伊異人 兄弟匪他(기이이인 형제비타)

어찌 우리 남남인가? 다름 아닌 형제 아닌가?

蔦與女蘿 施于松柏(조여여라 시우송백)

담쟁이와 새삼넝쿨 소나무를 감고있네

未見君子 憂心奕奕(미견군자 우심혁혁)

그대 보지 못할 때 시름 가득했었지

旣見君子 庶幾說懌(기견군자 서기열역)

이제 그대 보니 마음껏 즐겨보세

부(賦)이자 흥(興)이며 또 비(比)다. 유규(有頍)는 규규(頍頍)로 모서리가 각진 모양이다. 모전(毛傳)에 규(頍)는 기(跂)로 모서리가 각지고 끝이 뾰죽한 모양이다. 변(弁)은 가죽으로 만든 고깔이다. 가(嘉)·지(旨)는 모두 미(美)이다. 비타(匪他)는 타인(他人)이 아니라는 뜻이다. 조(蔦)는 기생하는 풀이니 잎은 당로(當盧)와 비슷하고 씨앗은 복분자(覆分子)와 같으며, 적흑(赤黑) 색에 단맛이 난다. 여라(女蘿)는 토사(兎絲)이니, 풀 위에 뻗어 자라고, 황적색의 금빛을 내는 새삼넝쿨이다. 군자(君子)는 형제로서 빈객(賓客)이 된 자이다. 혁혁(奕奕)은 끝닿는 곳이 없는 마음의 근심이다.

〇 이는 또한 형제와 친척을 연향(燕饗)하는 시가다. 따라서, “우뚝한 가죽모자! 실로 무엇인가. 맛있는 술과 훌륭한 안주가 있으니 우리가 어찌 남남이리오? 우리는 바로 형제요, 다른 사람 아니다.”라고 했다. 또 “조라(蔦蘿)는 나무 위에 뻗쳐 있다.”라 말하여 형제(兄弟)·친척(親戚)의 면면히 이어지는 관계를 비유했다. 이에 보지 못했을 때에는 근심했으나 이제 보게 되니 기뻐함이다.

二

有頍者弁 實維何期(유규자변 실유하기)

우뚝한 가죽 고깔 무엇하러 썼는가?

爾酒旣旨 爾殽旣時(이주기지 이효기시)

맛있는 술에 철에 맞는 안주가 있네

豈伊異人 兄弟具來(기이이인 형제구래)

어찌 우리가 남남인가? 형제들이 다 모였네

蔦與女蘿 施于松上(조여여라 시우송상)

담쟁이와 새삼덩쿨, 소나무를 감고있네

未見君子 憂心怲怲(미견군자 우심병병)

그대 보지 못할 때 근심걱정 깊었으나

旣見君子 庶幾有臧(기견군자 서기유장)

이제 그대를 보니 좋은 일만 즐겨보세

후(賦)나 흥(興)이며 비(比)다. ‘하기(何期)’는 위의 ‘이하(伊何)’와 같다. 시(時)는 철에 맞음이요 구(具)는 함께 함이다. 병병(怲怲)은 근심이 끝간데 없음이다. 장(臧)은 선(善)함이다.

三

有頍者弁 實維在首(유구자변 실유재수)

우뚝한 가죽 고깔 왜 머리에 쓰고 있나?

爾酒旣旨 爾殽其阜(이주기지 이효기부)

맛있는 술에 안주 또한 푸짐하네

豈伊異人 兄弟甥舅(기이이인 형제생구)

어찌 우리가 남남인가? 형제들과 숙질이지

如彼雨雪 先集維霰(여피우설 선집유산)

눈비가 오기 전에는 싸락 눈이 오는 법

死喪無日 無幾相見(상사무일 무기상견)

살면 얼마나 살겠으며 보면 얼마나 보겠는가?

樂酒今夕 君子維宴(악주금석 군자유연)

오늘 밤에 술 즐기며 한바탕 놀아보세

부(賦)나 흥(興)이고 비(比)다. 부(阜)는 자(多)와 같다. 생구(甥舅)는 어머니와 고모, 자매(姉妹)와 처의 친족을 호칭하는 명사다. 산(霰)은 눈이 처음 엉긴 것으로 싸락눈이다. 장차 크게 함박눈이 내리려면 반드시 먼저 날씨가 약간 따뜻해지나니, 눈이 내리다가 온기를 만나 엉겨서 내리는 싸락눈을 산(霰)이라고 하고 산이 오래되어 한기(寒氣)가 커지면 큰눈이 된다. 싸락눈이 모이면 장차 큰눈이 내릴 징조이니 사람도 늙으면 장차 죽게 되는 징후라고 말했다. 그래서 끝으로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아 오래도록 서로 볼 수 없게 되었으나 단지 즐겁게 마셔서 오늘밤의 즐거움을 다하리라!”라고 말하여 친친(親親)의 뜻을 돈독히 했다.

頍弁 三章이니 章 十二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