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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05-11 21:57:265494 
대기만성 백리해-들어가는 이야기
양승국
일반

대기만성이라는 고사성어의 원 주인공은 강태공(姜太公)입니다. 그는 제가 보는 관점에서 봤을 때 참으로 게으르고 무능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30 살이나 어린 여자와 결혼을 했다고 했으니 아마도 50이 다 되도록 장가를 들지 못하다가 어떻게 간신히 부인을 얻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으로부터 3000여 년 전의 옛날이나,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와 마찬가지로 사내가 처자식을 간수하지 못하면 버림을 받는 것은 똑 같은 이치인 것 같습니다. 사내가 부인을 얻었으면 품이라도 팔아서 부양을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강태공은 전혀 그것을 의식하지 않고 빈둥빈둥 책이나 보고 앉아 있으면서 마누라가 벌어서 해 주는 밥만 축내고 있었으니 어떤 마누라가 가만히 당하고만 있었겠습니까? 결국은 결혼 생활은 몇 년만에 파탄이 나고 강태공은 집에서 쫓겨나게 됩니다.


집에서 쫓겨난 사내를 한문으로 축부(逐夫)라고 합니다. 축부 신세가 된 무능한 강태공이 집에서 쫓겨나서 푸줏간 일을 포함하여 온갖 잡일을 다하며 한 30년 동안 유랑하다가 위수(渭水) 강변에 낚시꾼을 생업으로 삼아 식생활을 해결했던 것입니다. 요새의 강태공들은 그들의 시조인 진짜 강태공보다 훨씬 형편이 좋은 사람들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강태공이 낚시를 하다가 사냥 나온 주문왕을 만났을 때가 그의 나이 80세였습니다. 그는 정확히 8년을 주문왕과 주무왕 밑에서 일하며 은나라를 멸하고 주나라를 세우는데 혁혁한 공을 세워 그 공로로 제나라에 제후로 봉해진 것입니다. 즉 88세에 제나라 군주가 된 태공은 한 10년 더 살다가 100살에 가까운 나이로 죽었습니다.


그가 제나라의 군주가 되어 금의환향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그의 부인이 알고 강태공을 찾아와서 옛날의 정을 생각하여 자기를 받아 들여 달라고 청했습니다. 당시 그의 부인은 한 60 정도 먹었을 것입니다. 태공은 아무 말도 하지 않더니 그 옛 부인에게 물동이에 물을 길어 오라고 했습니다. 부인이 물을 길어 오자 태공이 물동이를 땅에 쏟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부인을 향해 말했습니다.

"땅에 엎지러진 물을 다시 주워 담을 수 있다면 그대와 같이 살아 주겠다."


부인이 대답했습니다.

"엎지러진 물을 어떻게 다시 주워 담을 수 있단 말입니까?"


태공이 대답했습니다.

"엎질러진 물을 다시 주워담을 수 없듯이 당신과 나 사이의 관계는 다시 주워담을 수 없는 일이오!"


태공의 부인은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물러갔다고 했습니다. 그 나이에 자기의 게으르고 무능한 것을 반성하지 않고 그 때까지 시집도 가지 않고 혼자 살고 있던 부인을 용납하지 않았던 속 좁은 강태공의 소갈머리가 밉살스럽기도 합니다.


간단히 정리하면 나이 50에 장가를 들고 다시 마누라에게 쫓겨나서 30년을 거의 거지처럼 유랑한 끝에 낚시를 해서 잡은 고기를 팔아서 연명하다가 우연히 왕을 만나서 그 밑에서 8년을 일한 끝에 큰 공로를 세우고 그 공으로 제나라의 군주가 되어 10년을 더 살다가 100살에 죽은 사람이 강태공이 되겠습니다.


강태공 이야기는 그 기록이 정확하지 않아 여러 가지 설이 있습니다. 강태공과 주나라의 문왕과 무왕을 주인공으로 각색된 역사소설에 봉신연의라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기만성이라는 말의 본론에 해당하는 백리해(白里亥)에 대한 기록은 정확하고 그리고 해피엔딩입니다. 그리고 백리해의 심성은 강태공과는 달리 매우 착합니다. 백리해에 대한 기록은 사마천의 사기 진본기에 나옵니다. 동주열국지의 원작자인 풍몽룡이 그에 대한 이야기를 페러디하여 소설 속에 집어 넣은 것입니다. 한 5회에서 10회 정도 걸쳐 연재될 것입니다.




소설 속의 백리해에 대한 이력을 간단히 말씀드린다면


사마천의 사기를 택스트로 한 열국지의 등장인물 중 가장 인상적인 사람이 백리해란 사람입니다. 지금의 하남성 평륙현인 우(虞)나라는 제후국에 살고 있던 그는 나이 30이 조금 넘는 나이에 당시 중국 천하를 지배하고 있던 제환공에게 벼슬을 구하기 위해 제나라로 길을 떠납니다.


제나라에 간 백리해는 아무런 연고가 없었기 때문에 뜻을 얻지 못하고 노자가 떨어져 결국은 거지로 전락하고 말아 10여 년을 구걸하며 다녔습니다. 그는 지금의 안휘성 숙주시(宿州市) 부근인 질(銍)이라는 고을까지 흘러 들어가 그곳에서 건숙이라는 사람을 만납니다.


백리해는 건숙과 의형제를 맺고 그의 집에서 소를 치며 다시 10여 년 동안 살았습니다.


이어서 계속 제후국들로부터 벼슬자리를 알아보던 중 자기 고향인 우나라에 벼슬살이를 하던 건숙의 친구인 궁지기(宮之奇)의 천거를 받아 우공(虞公)의 신하가 되었습니다. 우공이 어리석었던 관계로 그 밑에서 별 활약을 못하고 10여 년을 벼슬을 살았습니다.


우나라는 이웃 나라였던 당진(唐晉)에게 멸망당하자 백리해는 그들의 포로가 됩니다. 당진국(唐晉國)의 대부 순식(荀息)이 우(虞)와 괵(虢) 두 나라를 멸하면서 전개한 가도멸괵(假道滅虢) 작전은 순망치한(脣亡齒寒), 기각지세(掎角之勢)와 함께 유명한 고사성어의 어원이 됩니다. 포로가 된 백리해가 출사를 거부하자 진헌공(晉獻公)은 섬진의 진목공 부인으로 시집을 보내게 되는 백희(伯姬 : 후에 목희)의 딸려 보내는 노예의 신분으로 백리해를 딸려 보냅니다. 백리해는 중도에서 탈출하여 건숙이 살던 지금의 하남성 상구시 부근에 있던 명록촌으로 가기 위해 초나라의 영토를 지나가다가 그곳의 관리에게 붙잡혔습니다. 그 사람 밑에서 소를 치는 목부를 하다가 그가 소를 잘 기른다는 소문이 초나라 왕의 귀에 들어가 초나라 왕은 그를 말을 기르는 하급 관리로 임명하여 지금의 광동성 광주부근에 있었던 남해(南海)라는 곳으로 보내집니다. 그곳에서 한 10년 말을 치고 있던 백리해를 섬진의 목공에게 천거하는 사람이 있자 진목공이 그를 초나라에 데려와 재상을 삼았습니다. 그때 백리해의 나이는 70이 넘은 나이였습니다.


소를 치던 일개 하급관리에 불과하던 백리해는 진목공에 의해 재상으로 임용되어 그 밑에서 10여 년 동안 벼슬을 살며 진목공의 패업을 보좌하다가 정나라를 공격하는 문제로 의견이 충돌되자 은퇴하여 100살 좌우를 살다가 죽은 사람입니다. 그가 40년만에 가족을 만나는 이야기는 참으로 감동스러운 대서사시라고 할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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