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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05-11 22:06:414562 
낭만주의자 테러리스트-예양 이야기
양승국
일반

예양은 원래 당진의 육경 집안 중 범씨와 순씨들의 가신 노릇을 차례로 하다가 후에 지백의 모사가 되었다. 한, 위, 조 삼가에 의해 지씨 종족들은 멸족되고 그 종주인 지백은 조양자에 의해 살해되자 예양은 지백의 원수를 갚기 위해 조간자의 목숨을 노리다가 성공하지 못하고 죽었다. 사마천의 사기 중 자객열전에 그 행적이 나와있다. 예양이야말로 의와 충이라는 것을 몸으로 실현한 사람이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다음은 열국연의 84회 후반부에 나오는 예양에 대한 이야기다.




용산의 석굴에 숨어 있던 예양(禮讓)은 조양자가 지백을 죽이고 그의 머리뼈는 소변통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흐느껴 울면서 혼자말로 했다.


" 선비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죽는다고 했는데, 내가 지씨의 두터운 은혜를 입었으나 지금은 지씨의 나라는 망하고 그 종족들은 멸족되고, 다시 그의 유해는 욕됨을 입고 있는데 내가 구차하게 목숨을 탐내어 살고자 한다면 어찌 사람의 자식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예양이 이어서 이름을 바꾸고 거짓으로 자기는 노역을 하다가 도망친 사람이라고 하면서 품속에 예리한 비수를 품고서 조씨부에 잠입하였다. 이어서 그는 내실과 가까운 곳에 있는 변소 안에 숨어 있다가 무휼이 와서 용변을 보고 있는 틈을 타서 찔러 죽이려고 하였다. 이윽고 무휼이 용변을 보기 위해 변소에 다가 왔다. 그러나 그의 심장이 갑자기 고동을 치자 좌우를 시켜 변소의 안을 살펴보라고 하였다. 조양자의 시종들이 변소에 숨어있던 예양을 끌고 나와 조양자 앞에 대령시켰다. 무휼이 예양에게 물었다.


" 너는 몸에 예리한 비수를 품고 있으니 그것은 나를 찌르려고 한 것이 아니냐?"


예양이 정색을 하며 대답했다.


" 나는 망한 지씨의 신하였던 예양이라는 사람이다. 내가 지씨를 위해 원수를 갚으려고 한 것뿐이다. "


조양자의 좌우에 있던 시종들이 말했다.


" 이 자는 반역도의 일당이니 마땅히 죽여야 합니다. "


무휼이 제지하면서 말했다.


" 지백은 이미 죽고 없고 그의 후사도 남아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예양이 그를 위해 원수를 갚아 주려하는 것은 진실로 의로운 사람이다. 의로운 선비를 죽이는 것은 상서롭지 못한 일이니 풀어 주도록 하라!"


조양자가 예양을 석방하여 집으로 돌아가게 하였다. 예양이 조씨부의 문을 향해 걸어나가려고 하던 순간에 조양자가 예양을 불러 세워 물었다.


" 내가 오늘 그대를 풀어주었으니 능히 너의 옛날 원수를 잊을 수 있겠는가?"


예양 " 공이 나를 풀어 준 것은 사사로운 은혜이지만 원수를 갚고자 하는 마음은 신하된 자로써 지켜야하는 대의입니다. "


조양자의 좌우에 있던 시종들이 말했다.


" 이자는 무례하기가 너무 심합니다. 그를 풀어주면 뒤에 필시 화근이 될 것입니다."


무휼 " 내가 이미 그를 풀어주도록 허락했는데 어찌 신의를 어길 수 있겠는가? 후에 내가 조심해서 그를 피해 다니면 될 것이다."


조양자가 그날로 강주성(絳州城)을 출발하여 진양성(晉陽城)으로 돌아갔다. 조양자는 진양성에 머물면서 조


씨들의 영지를 다스리면서 예양으로부터의 화를 피하려고 했다. 한편 예양이 집으로 돌아가 매일마다 종일토록 원수 갚을 방법만을 궁리했으나 뾰쪽한 계책을 생각해 내지 못했다. 그의 처가 그에게 한(韓)이나 위(魏)씨 가문을 섬겨 부귀를 추구하도록 했다. 예양이 듣고 노하여 옷소매를 뿌리치고 집에서 나왔다. 그는 집에서 나와 조양자가 묶고 있던 진양성(晉陽城)으로 다시 돌아가려고 하였다. 그러나 자기를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까 두려워하여 즉시 수염과 눈썹을 칼로 밀어버리고 그 몸에 옷 칠을 하여 문둥병 환자와 같을 모습으로 만들고 시중을 돌아다니며 구걸을 하고 다녔다. 그의 처가 자주 다니던 길목에 기다렸다가 그 뒤를 따랐다. 그의 처가 자기를 부르던 소리를 듣고 놀라서 말했다.


" 이것은 나의 남편의 목소리가 아닌가?"


예양의 처가 몸을 돌려 뒤따라오던 예양을 보고 말했다.


" 어찌하여 그 목소리가 남편과 그리 같은가?"


이어서 예양을 알아보지 못하고 자기 가던 길로 가 버렸다.


예양이 자기의 목소리가 여전히 옛날과 같은 것을 꺼려하여 숯가루를 삼켜 목을 쉬게 만들어 다시 시중에 나와 구걸을 하였다. 그의 처가 예양의 목소리를 들었으나 의아하게 여기지 않았다. 평소에 예양의 품고 있던 생각을 잘 알고 있던 친구가 있었는데 구걸을 하고 있던 거지의 행동을 보고 마음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다가 아무도 몰래 그의 이름을 부르자 과연 그가 예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친구가 예양을 자기집으로 데려가 밥을 먹인 다음에 말했다.


" 자네가 지백의 원수를 갚고자 하는 뜻을 결코 굽히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네! 그러나 아직까지 그 방법을 생각해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안타깝네 그려! 그대는 재주가 있으니 만약에 거짓으로 조씨들에게 투항한다면 조씨들은 자네를 중용 할 것인데 그때 기회를 보아 원수를 갚는다면 그것은 손바닥에 침 뱉기보다도 더 쉬운 일은 없을 것인데, 어찌하여 몸을 망가뜨리고 목소리까지 바꿔가며 고통 속에서 그 일을 이루려고 하는 것인가?"


예양(禮讓)이 그 뜻을 고맙게 생각한다고 하면서 말했다.


" 내가 다시 조씨들의 신하가 되어 그들을 다시 찔러 죽인다면 이것은 두 마음을 품는 것이 될 것이네. 내가 오늘 몸에 옷 칠을 하여 몸을 망가뜨리고 다시 석탄을 삼켜 목소리를 변성시킨 것은 지백(智伯)의 원수를 갚아주고자 하는 것은 바로 두 마음을 품고 있는 자들에게 나의 모습을 보고 부끄러워하는 마음을 품게 하려고 하고자 함이네! 청컨대 오늘 헤어지면 다시는 나를 아는 체 하지 말게나!"


예양이 친구와 헤어지고 난 다음 달려가 조양자(趙襄子) 무휼이 기거하고 있던 진양성(晉陽城)으로 들어갔다. 예양이 성내에서 구걸을 하며 돌아 다녔으나 그를 알아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조무휼(趙無恤)이 진양성(晉陽城)에 살면서 지백이 만든 인공하천(人工河川)을 살펴보고 구태여 메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고 사람을 시켜 그 위에 적교(赤橋)라는 다리를 세우고 왕래를 하려고 하였다. 다리의 이름은 적교(赤橋)라 한 것은 곧 붉은 색은 불을 뜻하며 불은 물을 이긴다는 오행설에 근거하여 진수(晉水)의 홍수를 불을 뜻하는 적교(赤橋)로 억누르려고 한 것이다. 이윽고 공사가 완성되자 무휼이 수레를 타고 건너면서 다리를 살펴보고자 했다. 이 사실을 미리 알게된 예양(禮讓)은 예리한 비수를 가슴에 품고 죽은 사람인 것처럼 가장하고 다리 밑에 숨어 무휼이 나타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무휼의 수레가 적교(赤橋)에 가까이 다가가자 수레를 끌던 말들이 비명을 지르며 뒷걸음질을 쳤다. 어자(御者)가 잇달아 채찍으로 말들을 내리쳤으나 말들은 결코 다리를 건너려고 하지 않았다. 장맹담이 옆에 있다가 나와 무휼에게 말했다.


" 신이 듣기에 '양마(良馬)는 그 주인을 위험한 함정에 빠뜨리지 않는다' 했습니다. 지금 이 말들이 적교를 건너지 않으려고 하는 것은 필시 간사한 무리가 다리 밑에 잠복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다리 밑을 철저하게 수색해봐야 될 것 것입니다."


무휼이 수레에서 내린 다음에 좌우에게 명하여 다리 밑을 조사하라고 명했다. 다리를 수색하러 출동한 군사가 돌아와 보고하였다.


" 다리 밑에는 숨어 있는 사람은 한 명도 없고 단지 죽은 사람의 시체가 한 구 있을 뿐입니다. "


무휼이 듣고 말했다.


" 새로 새운 다리 밑에 무슨 일로 사람의 시체가 있단 말인가? 그것은 필시 예양(禮讓)일 것이다."


좌우의 군사들에게 명하여 그 시체를 꺼내어 오도록 하여 살펴보니 신체의 모습은 비록 변하기는 했지만 무휼은 알아볼 수 있었다. 무휼이 큰 소리로 예양을 나무랐다.


" 내가 옛날에 이미 법을 어겨가며 너를 용서했거늘 오늘 다시 와서 나를 죽이려하니 어찌 하늘이 너늘 돕겠느냐?"


무휼이 좌우에게 명하여 예양을 끌고 나가 목을 치도록 했다. 예양이 끌려나가면서 하늘을 바라보며 외치면서 눈에는 피눈물을 흘렸다. 예양을 끌고 나가던 사람들이 예양에게 말했다.


" 죽는 것이 두려워서인가?"


예양 " 죽음을 두려워해서가 아니라 내가 죽게되면 지백의 원한을 갚아 줄 사람이 없어지게 되는 것이 슬퍼서 우는 것이다."


무휼이 예양을 불러 세우고 물었다.


" 그대는 옛날에 먼저 섬겼던 범씨(范氏)는 지백(智伯)에게 멸족 당했으나 치욕을 감수하며 구차하게 목숨을 건져 오히려 지백을 섬기면서 범씨의 원수를 갚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지금 지백이 죽었다고 해서 그대만이 유독 그 원수를 갚으려고 하는 것은 너무 심하게 하고 있다. 무엇 때문인가?"


예양 " 무릇 군신 임금과 신하는 의(義)로써 맺어지는 것입니다. 그 임금이 신하를 수족처럼 아껴주면 신하는 임금을 진정한 마음으로 섬깁니다. 임금이 그 신하를 말이나 개처럼 천하게 대하면 그 신하는 임금을 지나가는 길손처럼 섬깁니다. 내가 옛날에 범씨를 섬길 때 그들은 나를 단지 중인 중 평범한 한 사람으로 대했습니다. 나 역시 범씨들을 평범한 사람으로써 그들을 대했습니다. 이어서 내가 지백을 섬기게 되자 지백은 자기의 옷을 벗어 나를 입혀주고 자기가 먹던 음식을 나누어 먹게 해 주며 나를 국사(國士)로 대해 주었습니다. 나 역시 국사(國士)로 지백의 은혜에 보답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어찌 내가 범씨와 지씨를 모시는 것을 동일한 방법으로 할 수 있겠습니까?"


무휼 " 그대의 마음은 마치 철석과 같아 결코 바뀌지 않을 것 같아 내가 이번에는 그대를 용서할 수가 없구나! "


무휼이 자기가 차고 있던 칼을 풀어 예양에게 주며 스스로 목숨을 끊으라고 하였다. 예양이 칼을 받으며 말했다.


" 제가 듣기에 '충신은 자기의 몸이 죽는 것을 걱정하지 않고 밝은 임금은 다른 사람의 신하라 할지라도 그 의를 덮지 않는다' 했습니다. 지난날 한번 용서를 받은 것만으로도 저는 만족하고 있습니다. 어찌 제가 오늘 또다시 용서를 구해 목숨을 부지할 수 있겠습니까? 단지 두 번이나 조공(趙公)을 범하려고 했으나 모두 실패하여 그 분함을 풀 길이 없습니다. 청하옵건대, 조공(趙公)의 옷을 벗어 저에게 주시어 저로 하여금 이 칼로 내리칠 수 있게 허락해 주십시오. 이로써 원수를 갚으려고 했던 저의 뜻을 상징적으로나마 달성하여 제가 지하에 가더라도 눈을 감을 수 있겠습니다."


무휼은 예양의 뜻을 애처롭게 여겨 그가 입고 있던 비단도포를 벗어 좌우를 시켜 예양에게 주도록 했다. 예양이 칼을 뽑아 손에 들고는 눈을 부릅뜨고는 도포(道袍)를 노려보기를 마치 무휼을 대하듯이 하며 이어서 세 번을 발로 밟고 세 번을 칼로 내리치며 외쳤다.


" 내가 오늘 비로소 지하에 있는 지백을 위해 그 원수를 갚았다. "


예양이 그 칼로 목을 찔러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지금도 진수(晉水)의 지백거(智伯渠) 위에는 당시의 적교(赤橋)가 있으며 후세 사람들이 그 다리의 이름을 예양교(禮讓橋)라고 고쳐 불렀다. 무휼은 예양이 스스로 목을 찔러 죽은 것을 보고 마음이 심히 비통해져 즉시 예양의 시신을 거두어 장례를 치루어 주도록 했다. 군사들이 도포를 들고 와서 무휼에게 바쳤다. 무휼이 도포를 살펴보았는데 칼 맞은 자국에는 모두가 선혈이 흘러 얼룩져 있었다. 이것은 곧 '정성이 깃들면 하늘이 감동한다'고 했는데 이일을 두고 한 말일 것이다. 무휼(無恤)이 보고 마음속으로 매우 놀라 이 일이 있고 나서 병이 생겨 자리에 눕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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