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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초보은(結草報恩)
양승국
일반

결초보은


진경공(晉景公)은 순림보(荀林父)가 로국(潞國)1)을 토벌(討伐)하는데 성공하지 못할까 걱정되어 스스로 대군을 끌고 직산(稷山)2)에 주둔하였다. 순림보가 부장(副將) 위과(魏顆)를 남겨 적적(赤狄)의 땅을 위무 하라 하고 자기는 먼저 직산으로 달려가 경공에게 전과(戰果)를 보고하였다. 적적의 땅을 위무한 위과가 군사를 이끌고 보씨(輔氏)3) 족이 사는 늪지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전방에 먼지가 크게 일어나고 함성소리로 천지를 진동시키면서 누구편인지 알 수 없는 수많은 군대가 다가오고 있었다. 섬진(陝秦)의 대장 두회(枓回)가 군사를 거느리고 아군을 향해 돌진해 오고 있다고 전초병(前哨兵)이 달려와 보고하였다.


당시 섬진(陝秦)에서는 강공(康公)이 주광왕(周匡王) 4년 즉 기원전 598년에 죽고 그의 아들 공공(共公) 도(稻)가 뒤를 이었었다. 몇 년 전에 당진(唐晉)의 장군 조천(趙穿)이 섬진(陝秦)의 속국인 숭국(崇國)4)을 침략하자 양국간에 틈이 생겨 섬진(陝秦)은 당진의 속국인 초(焦)5)를 공격했으나 별로 성과가 없자 로국(潞國)의 풍서(酆舒)와 결맹을 궂게 맺고 두 나라가 힘을 합하여 당진(唐晉)에 대항하고자 하였다. 섬진(陝秦)의 공공(共公)이 재위 사 년만에 죽고 그 아들 환공(桓公) 영(榮)이 즉위하였다. 환공이 즉위한지 십일 년 되는 해인 기원전 593년에 당진(唐晉)이 군사를 일으켜 풍서( 舒)를 토벌한다는 정보를 듣게 되었다. 섬진의 환공이 군대를 보내어 풍서를 구원하려고 했으나, 로국의 풍서(酆舒)는 이미 죽고 로나라의 군주는 당진에게 사로잡혔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섬진(陝秦)의 환공(桓公)은 로국의 영토를 당진(唐晉)과 다투기 위하여 두회(杜回)에게 군사를 주어 출정시킨 것이다. 섬진의 장수 두회는 천하에 둘도 없는 유명한 장사였다. 그의 긴 이빨은 무쇠라도 깨물 수 있을 만큼 단단했으며 두 눈은 이글이글한 금빛 광채를 발했으며 주먹을 쥐었을 때는 마치 철추처럼 크고 단단했다. 얼굴은 쇠로 주조한 것처럼 시커멓게 생기고 머리와 수염은 곱슬에 키는 한 장(丈)이 넘고 천근이 넘는 무게를 들 수 있는 힘을 지녔다. 항상 120 근이 나가는 큰 도끼를 지니고 다니면서 무기로 사용했다. 본래는 백적(白翟)사람인데 일찌기 청미산(靑眉山)6) 밑에서 살다가 하루는 산으로 사냥을 나가서 주먹으로 호랑이 다섯 마리를 때려잡아 모두 가죽을 벗겨 가지고 돌아왔다. 섬진의 환공(桓公)이 두회의 용맹함을 소문으로 듣고 불러 우장군으로 삼았다. 두회는 장군이 되자 삼백 명의 군사만을 데리고 아차산(嵯峨山)7)에 할거하고 있던 산적 만여 명을 잡아들여 그 이름이 섬진의 온 나라 안을 진동시켰다. 그 공으로 두회는 대장군이 되었다.


당진의 장수 위과(魏顆)가 진을 펼치고 두회와의 싸움에 대비하였다. 두회는 말도 타지 않고 큰 도끼를 손에 들고, 역시 손에 도끼를 든 역전의 용사 삼백 명을 거느리고 아무 것도 거칠 것이 없다는 듯이 당진군(唐晉軍) 쪽으로 돌입해 왔다. 두회와 300명의 용사들은 밑으로는 말의 다리를 찍고 위로는 장수들을 베는데 마치 그들은 모두 하늘에서 하강한 악귀처럼 보였다. 당진(唐晉)의 병사들은 그렇게 생긴 악귀를 그때까지 본적이 없었다. 두회와 그 부하들을 막을 수가 없었던 당진군의 전위부대는 크게 패하였다. 위과는 당진군에게 후퇴명령을 내리고 진을 굳게 봉쇄하고 절대 출전하면 안 된다고 명령을 내렸다. 두회가 삼 백의 도부수를 데리고 당진군(唐晉軍)의 진영 앞으로 나와 삼일 밤낮을 욕설을 하며 싸움을 걸어왔지만 위과는 감히 싸움에 응하지 못했다. 그러고 있던 중 어느날 갑자기 당진(唐晉)의 본국에서 위과의 동생 위기(魏錡)가 증원군을 끌고 도착했다는 보고를 받았다. 위기(魏錡)가 위과(魏顆)에게 자기가 온 까닭을 보고했다.

" 주공께서 赤狄의 무리가 秦國과 연합하여 공격해 오지 않을 까 걱정하여 특별히 저를 보내 형님을 도우라고 하셨습니다."

위과가 섬진(陝秦)의 대장(大將) 두회에 대해 이야기하고 용력으로는 당할 자가 없어 마침 본국에 원병을 청할 작정이었다고 말했다. 위기(魏錡)가 믿지 않으며 말했다.

" 저 풀잎 같은 도적이 무슨 능력이 그렇게 대단하겠습니까? 내일 제가 출전하여 이겨 보이겠습니다."

다음날도 두회가 당진군의 진채 앞으로 나와 싸움을 걸어왔다. 위기는 위과가 말리는 것을 듣지 않고 출전하였다. 위기는 자기가 새로 데려온 군사들에게 명령을 하달하여 전차를 몰아 곧바로 섬진군(陝秦軍) 진영으로 향했다. 섬진의 군사들이 사방으로 흩어지자 위기는 전차를 나누어 추격하도록 했다. 당진군이 섬진군의 뒤를 추격하고 있던 중에 홀연히 휘파람소리가 나더니 삼백 명의 도부수들과 두회가 혼연일체가 되어 큰칼과 도끼를 휘두르며 밑으로는 말의 다리를 찍고 위로는 장수를 찌르면서 돌격해 왔다. 북쪽으로 달아났던 보졸들도 전차에 쫓기다가 다시 방향을 바꿔 공격해 오자 당진군(唐晉軍)의 전차는 미처 방향을 바꿀 수가 없었다. 섬진의 군사들이 전후좌우에서 공격해 와 당진의 군사들이 빈틈을 보이는 대로 두회와 삼백의 도부수들은 도끼로 찍으면서 달려들었다. 위기의 군사들은 그 싸움에서 크게 꺾여 위기에 처했으나 다행히 위과가 병사들을 끌고 나와서 위기의 군사들을 구원하여 자기 진지로 데리고갔다.

그날 밤, 위과는 막사에서 앉아서 여러 가지 궁리로 고민을 하였으나 별 뾰쪽한 방법이 없었다. 이윽고 시간이 삼경(三更)이 되자 피곤을 못 이기고 몽롱한 상태에서 깜빡 잠이든 중에 누군가가 귀에 대고 "청초파(靑草坡)"라고 말해 주는 것을 들었다. 위과는 얼떨결에 꿈에서 깨어났으나 그 뜻을 풀 길이 없었다. 다시 잠을 청하여 자는데 똑같은 꿈을 꾸게 되었다. 위과는 동생 위기를 불러 자기가 꿈속에서 들은 이야기를 했다. 위기가 꿈 이야기를 듣고 말했다.

"보씨(輔氏)들이 사는 땅 왼쪽으로 십리를 가면 큰 언덕이 한 개 있는데 그 이름을 청초파(靑草坡)라고 합니다. 혹시 우리가 이곳에서 섬진군을 물리칠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한떼의 군마를 끌고 먼저 가서 매복을 하고 있으면 형님께서는 남은 군사를 이끌고 출전하여 이곳으로 적군을 유인한 하여 좌우에서 협공한다면 승리를 취할 수 있을 것입니다."

위기가 매복을 하기 위하여 먼저 가고 위과는 군사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 진채를 거두어 모두 여성(黎城)으로 돌아간다 "

위과가 후퇴를 한다고 군대를 물리치자 과연 두회가 그 뒤를 추격 해 왔다. 위과(魏顆)는 두회와 몇 합을 겨루다가 못 이기는 척하며 전차를 돌려 도주하여 두회를 청초파까지 유인하였다. 그러자 두회의 뒤쪽에서 갑자기 큰소리가 나며 위기(魏錡)의 복병이 쏟아져 나와 두회의 군사를 공격해 왔다. 위과도 도망을 치다가 몸을 돌려 위기와 함께 두회를 양쪽에서 포위하여 공격하였으나 정작 두회는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120근 짜리 도끼를 상하좌우로 힘껏 마구 휘둘러 많은 장졸이 두회의 도끼에 죽어 나갔다. 비록 두회가 거느린 살수들이 위씨 형제들의 포위 공격에 어느 정도 피해를 입었으나 싸움을 승리로 이끌지는 못했다. 위씨 형제는 군사를 독려하여 두회와의 싸움에서 끝까지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았다. 잠깐 사이에 청초파의 중간 지점까지 달려온 두회는 갑자기 헛발을 내딛고 앞으로 넘어졌다. 마치 신발 밑창에 기름을 바르고 빙판 위에 걷다가 미끄러지는 것처럼 두 다리로 버티고 서 있을 수가 없었다. 당진의 군사들이 지르는 함성을 듣고 위과가 두 눈을 크게 뜨고 섬진군 쪽을 자세히 살펴보니 한 노인이 멀리서 보이는데 도포를 걸치고 짚신을 신은 것이 마치 농부의 모습을 하고, 파란 풀들을 한 가닥으로 묶어 두회의 발목을 붙들고 있었다. 위과와 위기의 전차 두 대가 두회에게 다가가서 둘이 동시에 창을 겨눠 땅바닥에 쓰러트린 다음에 군사를 시켜 생포하여 결박을 지우게 하였다. 두회가 거느렸던 살수들은 사방으로 흩어져 도망가다가 당진 병사들의 추격에 거의 다 죽고 도망갈 수 있었던 사람은 사오십 명에 불과 하였다. 위과가 사로잡힌 두회에게 물었다.

"너는 스스로 영웅행세를 해 왔는데 어찌하여 포로가 되었는가?"

두회 " 나의 두 발이 마치 무었에 걸리는 것 같아 도저히 움직일 수가 없었다. 이것은 하늘의 뜻이라 내 힘으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위과가 속으로 참으로 기이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위기가 두회의 처리 문제에 대해서 의견을 말했다.

" 두회는 힘이 무쌍한 사람이라 군중에 그대로 놔두면 큰 변이 일어나지 않을까 근심이 됩니다."

위과 "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중이다 "

위과는 즉시 두회를 참수토록 하고 직산(稷山)에 있던 경공에게 전과를 보고했다. 그날 밤이 되어 위과가 막 잠이 들자 꿈속에서 한 노인이 읍을 하면서 다가와 말을 했다.

노인 " 장군은 두회가 어떻게 해서 잡히게 된 줄 아십니까? 그것은 이 노구가 결초하여 두회로 하여금 발이 걸려 넘어지도록 해서 잡게 된 것입니다. "

위과가 놀래어 꿈속에서 노인에게 말하였다.

" 나는 본래 노인장과는 일면식도 없는 처지인데 이렇게 큰 도움을 얻었으니 어떻게 은혜를 갚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

노인 " 나는 곧 조희(祖姬)의 아버지 되는 사람입니다. 장군이 부친의 치명(致命)을 받들어 부친이 돌아가신 후에 내 딸을 좋은 배필을 골라 개가 시켜 주어 노구(老軀)가 구천지하에서 딸의 목숨을 구해준 것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가 이번 차제에 미력한 힘이나마 사용하여 장군으로 하여금 군공을 이룩케 한 것입니다. 장군께서는 이후에도 부단히 공덕을 쌓기를 노력하시면 후세에 이르러 영화롭게 되어 존귀한 왕후의 열에 서게 될것입니다. 부디 이 말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


원래 위과의 부친 위주(魏犨)8)에게는 조희(祖姬)라는 애첩이 있었는데 위주가 매번 전쟁터에 나갈 때 마다 위과에게 당부하여 말하곤 했었다.

"내가 만일 전쟁터에서 죽게 된다면 너는 반듯이 조희(祖姬)를 좋은 배필을 구하여 개가시켜 주도록 해야 할 것이다. 반드시 이말을 이행하여 내가 이승에서 편한 마음으로 지낼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할 것이다."

이어서 위주(魏犨)가 병이 들어 임종할 때 위과에게 평상시 한 말과는 다른 유언을 하고 죽었다.

" 조희(祖姬)는 내가 사랑하는 여자이다. 내가 죽거든 나와 함께 순장(旬葬)을 해서 내가 구천을 가는데 동행을 하도록 해주기 바란다."

위과는 그 부친을 장사지내고 조희(祖姬)는 순장을 하지 않아 그 부친의 유명을 따르지 않았다. 동생 위기가 말했다.

" 형님은 아버님께서 유언하신 말을 잊으셨습니까?"

위과가 대답했다.

" 아버님께서 평일에는 조희(祖姬)를 개가시키라고 하시고는 임종하실 때는 평소와는 달리 순장을 하라고 하셨다. 효자는 평상시의 맑은 정신으로 하신 치명(致命)을 따라야지 임종시의 정신이 어지러운 때에 하신 란명(亂命)을 따르면 안될 것이다."

위과는 위주에 대한 장례의 모든 절차를 끝내고 조희(祖姬)를 좋은 배필을 찾아서 개가를 시켰다. 이러한 음덕을 쌓았던 관계로 구천에 있던 지상세계로 나와서 결초하여 은혜에 보답한 것이다. 위과가 꿈에서 깨어나서 동생 위기에게 말했다.

"나는 당시 부친이 평시에 하신 말씀대로 조희를 순장시키지 않고 개가 시켰던 것 뿐인데 뜻밖에 그녀의 부친이 지하에서 올라와 이렇게 은혜를 갚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

위기(魏錡)가 그형의 말을 듣고 탄식하기를 그치지 않았다. 염선(髥仙)이 시를 지어 칭송했다.


結草何人亢枓回(결초하인항두희)

누가 결초하여 두회를 잡게 했는가?


夢中明說報恩來(몽중명설보은래)

꿈속에서 노인이 나타나서 은혜를 갚기 위해서 왔다고 했다.


勸人廣積陰功事(권인광적음공사)

사람들에게 음덕을 널리 쌓으라고 권하노라


理順心安福自該(리순심안복자해)

마음을 순리에 맞추어 편안히 하면

스스로 복 받지 않겠는가?


섬진(陝秦)의 군사가 패하여 옹주(雍州)9)로 퇴군했다. 두회가 전사했다는 것을 안 섬진(陝秦)의 군주와 신하들은 사기가 크게 꺾여 이후로는 당진을 다시 넘보지 않게 되었다. 당진의 경공(景公)은 위과가 세운 공을 매우 장하다고 생각하여 위과(魏顆)를 영호(令狐)10)의 땅에 봉하고 다시 큰 종을 만들어 이 종 위에다 모년모일에 섬진(陝秦)의 장군 두회와 싸워 이겼다는 사적(事績)을 새겨 써넣게 하였다. 후세 사람은 당진의 경공(景公)이 만들었다는 이유로 경종(景鍾)이라고 불렀다. 경공(景公)은 다시 사회(士會)에게 군사를 주어 적적(赤狄)의 땅에 남아 있던 삼국을 공격하게 하여 멸망 시켰다. 그때 멸망된 삼국은 갑씨(甲氏)11), 유우(留 吁)12), 그리고 유우(留吁)의 속국 탁진(鐸辰)도 역시 당진의 영토로 복속되었다.


** 후기

위과의 후예들은 그 일이 있고 나서 140년 후인 기원전 453년 조(趙)와 한(韓) 두 종족들과 힘을 합쳐 지씨(智氏)들을 멸하고 당진(唐晉)의 땅을 삼분하여 전국칠웅 중 한 나라가 된다. 그 나라가 위(魏)나라이다. 전국시대 초기에 인재 등용에 성공한 위문후(魏文侯)의 치적에 의해 강국이 되었으나 그 뒤를 이은 양혜양 때 제나라와의 두 번에 걸친 큰 싸움에 패하고 약소국으로 전락하였다.


주석(註釋)


1) 로국(潞國)/ 지금의 산서성 장치시(長治市) 일대에 걸쳐 있었던 적적(赤狄)족이 세운 이민족 국가로소 성씨는 외(隗)이며 봉호(封號)는 자작(子爵)이다. 주평왕(周平王)때 이웃 국인 여국(黎國)을 병합하여 강국으로 등장하였다.

2)직산(稷山)/지금의 산서성(山西省) 문희현(聞喜縣) 서 20키로

3)보씨(輔氏)/지금의 섬서성(陝西省) 조읍현(朝邑縣) 북 15키로 있었던 춘추시대 때의 고을 이름.

4) 숭국(崇國)/지금의 하남성(河南省) 숭현(崇縣) 부근에 있었던 춘추 때의 소국으로 섬진의 속국이었다.

5) 초(焦)/ 지금의 하남성 삼문협시(三門峽市) 경내에 있었던 고을 이름.

6) 청미산(靑眉山)/ 지금의 섬서성(陝西省) 연천현(延川縣) 북쪽에 있는 산의 옛 이름.

7) 아차산(嵯峨山)/ 지금의 섬서성(陝西省) 경양현(涇陽縣) 경내 북쪽에 있는 산 이름

8) 위주(魏犨)/ 본국에서 쫓겨나서 19년 동안 천하를 유랑했던 진문공(晉文公)을 따라 다니며 공을 세웠다. 그 결과 위주는 지금의 산서성 예현(芮縣) 부근의 위(魏)에 봉해졌다. 시호는 위무자(魏武子)이다.

9) 옹주(雍州)/ 지금의 섬서성 봉상현 경내. 전국시대 영공(靈公: 재위 기원전 424-415)이 경양(涇陽)으로 옮기기 전까지의 섬진의 수도였다.

10) 영호(令狐)/ 지금의 산서성 임의현(臨猗縣)에 있었던 춘추때의 고을 이름

11) 갑씨(甲氏)/ 지금의 하북성 형태시(邢台市) 부근에 국가를 이루고 살던 춘추때의 이민족 이름

12) 유우(留吁)/ 지금의 섬서성 장치시(長治市) 서쪽 둔유향(屯留鄕) 부근에 살었던 이민족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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