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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05-11 22:05:144990 
가신(家臣)들의 귀감(龜鑑) 개자추(介子推) 이야기-상
양승국
일반

가신(家臣)들의 귀감(龜鑑)-개자추(介子推)


다시 중이(重耳)의 일행이 길을 걸어 십여 리를 갔으나 더 이상 배가 고파 길을 걸을 수 없어 큰 나무 밑에서 앉아서 쉬게 되었다. 중이가 허기가 져서 호모의 무릎을 배고 누었다. 호모(狐毛)가 중이를 보고 말했다.

“ 자여(子余)가 아직 호찬(壺餐)을 가지고 뒤따라오고 있으니 조금만 참으시기 바랍니다.”


▶호찬(壺餐)/ 밥을 말려 항아리에 담아서 짊어지고 다니던 비상식량


위주(魏犨)가 곁에서 듣고 말했다.

“ 호찬은 얻어먹기 힘들 것입니다. 자여 혼자 먹기도 부족한데 남겨 놓았겠습니까?”


중이의 일행들은 모두 산 속으로 들어가 고사리와 고비를 꺾어 물에 삶아 먹어 허기를 채웠다. 중이도 삶아 온 산나물을 먹으려 했으나 도저히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갑자기 개자추가 고기국 한 그릇을 들고 중이 앞으로 와서 바쳤다. 중이가 아주 맛있게 먹은 후에 개자추에게 물었다.

“ 어디서 이런 고기를 얻었는가?”


개자추 “ 신의 허벅지살 입니다. 신은 ‘효자는 그 몸을 바쳐 부친을 모시고 충신은그 몸을 바쳐 그 주군을 받든다’고 들었습니다. 오늘 공자께서 음식이 없어 매우 배를 고파해 하신 것을 보고 허벅지에서 살을 떼어 내어 국을 끓여 드시게 한 것입니다. ”

중이가 듣고 눈물을 흘리면서 말했다.

“ 유랑하는 처지에 그대의 신세가 너무 크구나! 장차 그대에게 어찌 보답을 할 수 있겠는가?”


개자추 “ 단지 공자께서 일찍 환국하시어 우리들이 바라는 바 고굉(股肱)의 뜻을 이루어 주기 바랍니다. 어찌 그 보답을 바라겠습니까?”


염선(髥仙)이 시를 지어 개자추위 충성심을 노래했다.


孝子重歸全(효자중귀전)

효자는 몸을 중히 보전하여야 하며


虧體謂親辱(휴체위친욕)

몸을 상하는 것은 부모를 욕되게 하는 것이다.


嗟嗟介子推(차차개자추)

아아! 개자추 그대는


割股充君腹(할고충군복)

허벅지 살을 베어 내

주군의 허기 진 배를 채웠구나


委質称股肱(위질칭고굉)

몸을 바쳐 충성을 하는 것을

고굉(股肱)이라 하는데


腹心同禍福(복심동화복)

가슴속의 생각은 주군과 화복을

같이 나누려고 하는 것 일뿐


豈不念親遺(개불년친유)

어찌 부친이 물려준 신체를 괘념치 않았겠는가?


忠孝難兼國(충효난겸국)

충효는 같이 이루기 힘든 것인데


彼哉私身家(피재사신가)

세상에 사사로운 몸만을 생각하는 그대들이여!


何以食君祿(하이식군록)

어찌 군주의 록을

받아먹기가 부끄럽지도 않는가?



한편 호숙(壺叔)은 공자 중이와 그 일행들의 재물과 가재를 맡아 관리하던 사람이었다. 그는 당진으로부터 공자를 따라나서서 조(曹)와 위(衛) 두 나라 사이를 굶주리면서 유랑할 때 죽을 뻔한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으며 또한 바꾸어 입을 옷도 없었고 배가 고파도 먹을 수 있는 양식을 구할 수 없었었다. 그러나 이윽고 오늘은 황하를 건너 그리운 고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행장을 수습하게 되었다. 그는 매일마다 사용하여 부서져 못쓰게 된 대나무 그릇과 나무로 깎아 만든 목기하며 해진 돗자리와 찢어진 수레의 휘장하며 하나도 버리지 않고 챙기고 심지어는 먹다 남은 술과 음식까지도 마치 귀한 보물처럼 다루며 하나도 빠짐없이 배 안으로 옮겨 싣게 하였다. 중이가 보고 크게 소리내어 웃으며 말했다.

“ 내가 오늘 당진에 들어가 군주의 자리에 오르려고 하는데 그때가 되면 진귀한 음식과 보물들이 사방에 널려 있을 터인데 이렇게 부서져 못쓰게 된 물건들이 도대체 어디에 소용이 된단 말인가? ”

즉시 큰 소리를 쳐서 부서져 못쓰게 된 물건들을 강물 속으로 던져서 버리도록 하여 하나도 남겨 놓지 않도록 했다. 호언이 보고 한탄하였다.

“ 공자께서 아직 부귀를 얻기도 전에 옛날의 어려웠을 때의 처지를 먼저 잊고자 하니 군주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면 옛 사람은 버리고 새로운 사람을 구하게 될 것이 아닌가? 곤궁할 때 곁을 떠나지 않고 지켜 준 우리들을 마치 오래 사용하여 부서지고 헤어진 일반 기물처럼 여기는 것이니 나는 저 험난했던 19년 동안의 고생을 헛되게 할 수 야 있겠는가? 오늘 아직 강을 건너기 전인 이 기회를 이용하여 주군의 곁을 떠나야 후일에 다시 서로 생각할 때가 있지 않겠는가?”

호언(狐偃)이 즉시 목공이 준 백옥 한 쌍을 들고 나와 중이(重耳) 앞으로 와서 무릎을 꿇고 바치면서 말했다.

“ 공자께서 지금 강을 건너시게 되시면 그곳은 당진의 땅이 될 것입니다. 안으로는 수많은 당진(唐晉)의 신하들이, 밖으로는 섬진(陝秦)의 장수들이 공자님을 도울 것이라, 신은 당진(唐晉)의 국권(國權)이 혹시라도 공자님의 손에 들어오지 않을까 걱정하지 않습니다. 신의 한 몸은 공자님을 따라 간들 아무런 득이 되지 않을 것 같으니 원컨대 섬진(陝秦)에 남아서 공자님의 외신(外臣)이 되고자 합니다. 제가 받은 백옥 한 쌍을 바치오니 저의 조그만 성의를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중이가 크게 놀라 말했다.

“ 내가 바야흐로 외숙과 같이 부귀를 함께 누리고자 하려고 하는데 어찌하여 그런 말을 하는 것이요?”

호언 “ 신에게는 공자님께 세 가지의 죄가 있다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습니다. 감히 따르지 못하겠습니다.”

중이 “ 그 세 가지 죄란 것이 도대체 무엇 무엇이오?”

호언 “ 신이 듣기에 ‘성스러운 신하는 능히 그 군주를 높일 수 있으며 어진 신하는 능히 그 군주를 편안하게 모실 수 있다’ 했습니다. 지금 신이 불초하여 공자님으로 하여금 오록(五鹿)의 땅에서 곤궁하게 했으니 그 첫 번째 죄이고 조(曹)와 위(衛)


▶오록(五鹿)/ 중이 일행이 적(翟) 나라에서 몸을 피하여 제나라로 가던 도중에 위나라로부터 입국을 거절당하자 가지고 간 양식이 떨어져 개자추(介子推)가 허벅지 살을 떼어 국을 끓여 바친 곳. 지금의 하북성과 경계인 하남성 복양시(濮陽市) 북 40키로 되는 곳의 청풍현(淸豊縣) 북.


두 나라로부터 모욕을 받게 했으니 그 두 번째이며 공자께서 술에 취한 틈을 이용하여 제나라에서 끌고 나와 공자의 분노를 샀으니 그 세 번째 죄입니다. 아직까지 공자께서 객지 생활을 벗어나지 못하시게 되었다면 제가 감히 떠나겠다는 말씀을 드리지 못하겠으나 오늘 드디어 고국 땅인 당진으로 들어가시게 되었습니다. 신은 이십 년 가까이 천하를 떠돌아다니며 하도 놀랜 일을 많이 당하여 혼백이 끊어질 지경에 있으며 심신은 피로하게 되어 닳아져 없어질 찰나에 있어 마치 저 닳아 헤어져 깨져서 다시 꺼내어 쓸 수 없는 그릇이거나, 찢어지고 부서져 다시는 수레를 치장하는 데 사용할 수 없는 돗자리나 장막과 같은 신세가 되었습니다. 신이 공자님의 곁에 남아 있더라도 전혀 이로운 것이 없을 것이며, 또한 신이 비록 떠나더라도 손해 되는 일도 없을 것이니 이로써 신이 공자님 곁을 떠나고자 간청을 드리는 것입니다.”

중이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 외숙께서 나를 이렇듯 심히 책망하니 이는 나의 크나큰 허물이라! ”

즉시 호숙(壺叔)에게 명하여 이미 버린 기물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거두어 배에 다시 싣게 하고 다시 강을 향하여 맹세의 말을 했다.

“내가 환국 후 당진의 군위에 올랐을 때 만약 여러분들의 노고를 잊고 또한 그들과 같이 힘을 합하여 정사에 힘쓰지 않는다면 내 후손들은 끊어질 것이다!”

중이가 말을 마치자 호언이 가져와서 바치려고 한 벽옥을 집어서 강물에 던져 버리고는 다시 맹세를 했다.

“ 하백은 이것으로서 내가 한 말을 지켜보시라!”

그때 개자추(介子推)는 다른 배에 타고 있다가 중이와 호언이 서로 맹세를 하는 것을 보고 웃으면서 말했다.

“ 공자가 환국하게 되는 것은 곧 하늘의 뜻이라 하겠는데 어찌 자범(子犯)이 하늘의 공을 훔치려 하는가? 이렇듯 부귀나 탐하는 무리들과 같이 조정에 나가서 벼슬을 한다는 것은 나의 수치로다!”

이때부터 개자추는 물러나 초야에 묻혀 살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개자추(介子推)란 위인은 사람은 워낙 강직한 성격을 갖고 있던 위인이라 그들이 하수를 건널 때 호언이 자기가 큰공을 세운 것처럼 이야기한 것을 듣자 마음속으로 매우 천하다고 여기고 그들과 같은 반열(班列)에 서는 것을 치욕으로 여기게 되었다. 그는 귀국한 후에 딱 한번 조당에 나가 문공이 당진의 군주 자리에 오른 것에 대한 경하(慶賀)의 인사를 드리고 돌아와 병을 핑계로 집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청빈을 즐기면서 스스로 몸을 굽혀 짚신을 삼으며 그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 문공이 군신들을 크게 모이게 하여 논공행상을 할 때 개자추가 보이지 않았으나 바쁜 와중이라 알아차리지 못하고 지나가게 되었다. 개자추가 사는 집의 이웃에 해장(解張)이란 사람이 살고 있다. 그는 개자추가 아무런 상도 받지 못하는 것을 보자 속으로 매우 불공평하다는 마음을 품게 되었다. 또한 성문 밖에 붙어 있던 문공의 조칙이 써 있는 방(榜)을 보게 되었는데 그 방문(榜文)에는 다음과 같이 써 있었다.

< 아직도 자기가 세운 공에 대해서 적당한 상훈(賞勳)을 받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스스로 자기 공을 고하기를 바란다.>

해장이 방문을 보고 즉시 개자추의 집을 찾아가 그 소식을 알렸다. 개자추는 웃기만 할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개자추의 노모가 부엌에서 일하다가 해장이 전하는 말을 듣고 말했다.

“ 너는 19년간이나 주군을 따라 다니며 모시면서 네 허벅지 살까지도 잘라 내어 국을 끓여 바치지 않았느냐? 그 노고가 적지 않거늘 지금 주군이 보위에 오르셨는데 너는 스스로 네 공을 고하여 몇 가마의 곡식을 구하여 조석으로 식사라도 배불리 먹으면, 짚신을 삼아서 궁색하게 사는 것보다야 낳지 않겠느냐? ”

개자추 “ 선군인 헌공의 아들은 모두 9명이었습니다. 그 중 오로지 현재의 주공만이 가장 어질었습니다. 혜공(惠公)과 회공(懷公)이 부덕하여 하늘이 그들의 군위를 뺏어 주공에게 준 것입니다. 여러 어리석은 신하들이 하늘의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그 공을 다투니 제가 그들과 같은 동류에 속했다는 것을 치욕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는 평생을 돗자리를 짜면서 살아 감히 하늘의 공을 자기의 공이라 하며 이를 탐하지 않겠습니다. ”

개자추의 노모가 듣고 말했다.

“ 네가 비록 봉록을 구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역시 한번 입조하여 주군을 한번 뵙고 네가 허벅지 살을 베어 내서 모신 것을 잊지나 않게 하면 어떻겠느냐?”

개자추 “ 제가 주군에게 바라는 것이 없는데 무엇 때문에 들어가 알현을 청하겠습니까?”

개자추의 노모가 다시 말했다.

“ 너는 정말로 청렴한 선비로다. 내가 마땅히 청렴한 선비의 어미가 되어야 하겠다. 우리 모자가 깊은 산중으로 들어가 숨어 이 더러운 시정에서 벗어나 살자꾸나!”

개자추가 크게 기뻐하며 대답했다.

“ 이 아들은 평소에 면상산(綿上山)이라는 곳에서 살고 싶었습니다. 산은 높고 계곡은 깊어 오늘 당장 가도록 하겠습니다. ”


▶면상산(綿上山)/ 지금의 산서성 개휴시(介休市) 동남 10키로에 있는 개산(介山)을 말함.


개자추는 즉시 그 부모를 등에 업고 면상산(綿上山)이라는 곳으로 들어가 깊은 계곡 가운데에 초가집을 짓고 풀로 옷을 만들어 입고 나무 열매를 따먹으며 살면서 남은 여생을 마치려고 했다. 이웃에 사는 사람들은 아무도 개자추가 간 곳을 몰랐다. 단지 해장만이 그 일을 알고 글을 써서 밤중에 조문 앞에 걸었다. 문공이 아침에 조회를 하는데 근시 중에 한 사람이 그 글을 보고 떼어 와서 문공에게 바쳤다. 문공이 그 글을 읽었다.


有龍矯矯 悲失其所(유룡교교 비실기소)

힘찬 용이 있었는데 집을 잃고 슬퍼하였다


數蛇從之 周流天下(수타종지 주유천하)

여러 마리의 작은 뱀들이 용의 뒤를 따라 천하를 떠돌아 다녔다.


龍飢乏食 一蛇割股(일기핍식 일사할고)

용이 먹을 것이 없어 배를 고파 하자

뱀 한 마리가 허벅지 살을 베어 내어 용을 먹였다.


龍返于淵 安其壤土(용반우연 안기양토)

용이 드디어 깊은 연못으로 들어와 그 땅을 안정 시켰다.


數蛇入穴 皆有寧宇(수사입혈 개유영우)

많은 뱀들은 자기 굴로 찾아가 모두가 편안히 지내게 되었는데


一蛇无穴 号于中野(일사무혈 호우중야)

뱀 한 마리는 들어갈 굴도 없어 들판에서 헤매며 울고 있구나!


문공이 읽기를 마치자 크게 놀라 묻는다

“ 이것은 개자추가 나를 원망하며 쓴 글이다. 옛날에 내가 위나라를 지날 때 먹을 것이 떨어지자 그가 자기의 허벅지 살을 떼어 내어 국을 끓여 나에게 바쳤다. 오늘 내가 공신들에게 큰상을 내렸으나 오로지 개자추에게만은 아무 상도 내리지 못했으니 내가 저지른 잘못을 어떻게 그에게 말해야 될지 모르겠구나!”

문공은 즉시 사람을 시켜 개자추를 불러오게 하였으나 개자추는 이미 집에 없었다. 문공이 그 이웃 사람을 잡아오게 하여 개자추가 간 곳을 물어 보면서 말했다.

“ 만일 개자추가 간 곳을 알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개자추와 함께 큰 벼슬을 내리겠다.”

해장이 앞으로 나와서 말했다.

“ 이 글은 실은 개자추가 쓴 것이 아니고 제가 그를 대신해서 쓴 것입니다. 개자추가 스스로 상을 구하는 것을 치욕으로 알고 그 모친을 등에 업고 면상산(綿上山)의 깊은 계곡으로 들어가 숨어 버렸습니다. 소인은 개자추의 공이 잊혀질까 걱정하여 제가 대신하여 글을 지어 조문 밖에 걸어 둔 것입니다.”

문공 “ 그대가 만약 이 글을 걸어 놓지 않았더라면 과인은 개자추의 공을 잊어 먹을 뻔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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