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국연의

 

   
 
테마연의
테마연의
고사성어
열국영웅전
· 오늘 :  125 
· 어제 :  131 
· 최대 :  2,389 
· 전체 :  1,670,400 
 
  2004-05-11 22:00:234473 
너무나도 처절한 보은의 조씨고아 이야기
양승국
일반

너무나도 처절한 보은(報恩) 이야기





옛날 기원전 550년 대인 춘추시대 중반의 일이다. 공자가 기원전 551년에 태어났으니 공자보다는 한 세대 먼저 사람들 이야기이다. 당시 중국의 판도는 중원의 패권을 놓고 북쪽의 당진(唐晉)과 남쪽의 초(楚)나라가 매년 마다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전쟁을 하던 때였다.


이 이야기는 당진의 진경공(晉景公 : 재위 전599-581)과 진도공(晉悼公 : 재위 전572-558) 재위 연간에 일어난 일로서 당시 당진국의 유력 세가 중에 조씨(趙氏) 종족이 있었다. 후의 이야기지만 조씨 종족들은 기원전 453년에 벌어진 진양성 싸움에서 지씨(智氏)들과 싸움 끝에 위씨(魏氏), 한씨(韓氏)들과 연합하여 승리를 취한 후 당진을 삼분하여 전국시대를 연 전국칠웅 중의 하나인 조나라를 창건한다. 역사상 이를 삼가분진(三家分晉)이라 하여 춘추와 전국을 구분하는 기점으로 삼는다.


당시 당진에는 도안가(屠岸賈)라는 희대의 간신이 있었다. 도안가는 선대인 영공(靈公) 때에도 아첨을 하여 권세를 누리다가 영공이 조씨들에게 시해당하자 조씨 종족의 족장이었던 조돈에 의해 밀려난 사람이다. 후에 성공(成公)이 서고 다시 경공(景公)이 그 뒤를 잇자 도안가는 다시 경공의 눈에 띄어 그 측근이 되어 권력을 잡게 된다. 도안가는 옛날 조씨들에게 당한 원한을 잊지 않고 조씨들이 영공을 시해한 것을 빌미로 시군죄를 물어야 한다고 경공에게 참소했다. 경공은 조씨 일족들이 시군의 죄를 지었다고 판결하고 도안가에게 그 죄를 다스리라고 명했다. 도안가는 군사들을 이끌고 조씨들을 모조리 잡아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조리 죽였다. 그때 조씨 종족들의 수장은 조삭(趙朔)이었고 그의 아내 조희는 경공의 누이로써 임신 중이었다. 조삭이 만삭이 된 자기 부인을 궁궐로 보내 화를 피하게 하고 그 아이가 아들이면 이름을 무(武)라 짓고 딸이면 문(文)으로 지으라고 했다. 조희가 궁중으로 도망간 것을 알게 된 도안가는 사람을 시켜 궁궐을 철통같이 지키고 사내아이를 낳으면 빼앗아 죽이려고 했다. 이윽고 사내 아이를 낳은 조희는 주위 사람들에게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죽어 버렸다고 말했다. 그 말을 믿지 못한 도안가는 사람을 보내 확인하려고 하자 조희는 갓난아이를 자기의 바지가랭이 속에 숨겨 도안가가 보낸 사람의 눈을 속이고 궁궐의 깊은 곳에 감추었다. 궁궐을 감히 수색할 수 없었던 도안가는 의심을 풀지 않고 사람들을 시켜 궁궐의 주위를 철통같이 지켜 아무도 빠져나가지 못하게 했다. 합니다.


그때 조씨 집안에는 공손저구(公孫杵臼)와 정영(程嬰)이라는 두 사람의 문객이 있었다. 조씨 종족들이 멸족당하는 것을 본 공손저구는 정영을 찾아가 조씨들을 따라 죽겠다고 말했다. 정영은 조삭의 부인이 만삭의 몸으로 궁중으로 몸을 피했으니 아들을 낳으면 자기들이 살아 그 고아를 위해 할 일이 있겠지만 딸을 낳으면 그때 조씨들을 따라 죽어도 늦지 않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이어서 두 사람은 궁중에 사람을 보내 아이를 낳았는지, 그리고 낳았으면 사내아이인지 아니면 계집아이인지 알아보게 했다. 조삭의 부인이 무(武)라는 글자를 써서 보내자 태어난 아이가 사내아이라는 것을 알게 된 두 사람은 어린아이를 궁중에서 꺼내올 계책을 의논했다. 정영이 말하기를 ‘ 어린 갓난아이를 구해 조씨의 혈육이라고 속이고 대신 죽게 만든다면 조씨의 갓난아이의 목숨을 구해 낼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다음날 공손저구가 갓난아이를 구해 왔다. 정영이 어디서 구했느냐고 묻자 공손저구는 자기 아들인데 조씨의 갓난아이와 같은 날에 태어났다고 했다.


자기의 갓난아들을 품에 안고 온 공손저구가 정영에게 물었다. ‘ 지금 죽는 것이 쉬운 일인가? 아니면 살아서 조씨의 갓난아이를 키우는 것이 쉬운가?’ 정영은 ‘ 살아서 갓난아이를 키우는 것이 죽는 것보다 어렵다!’라고 대답한다. 저구가 말합니다. ‘그렇다면 내가 쉬운 일을 하고 자네는 어려운 일을 맡게!’ 말을 마친 공손저구는 어린 자기 아들을 안고 멀리 떨어져 있던 남쪽의 수양산 산중으로 들어갔다. 뒤에 남은 정영은 도안가에게 달려가 자기가 조씨의 갓난아이가 숨어 있는 곳을 알고 있다고 하면서 생활이 어려워 걸려 있는 현상금이 탐이 나서 고변 한다고 말한다. 도안가는 군사들을 거느리고 정영과 함께 수양산의 깊은 산중으로 달려가 보니 과연 공손저구가 갓난아이를 키우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공손저구와 함께 갓난아이를 죽인다. 공손저구와 정영은 조씨 문중의 신의를 생명처럼 여겼던 유명한 문객들이었기 때문에 도안가는 추호도 그 두 사람을 의심하지 않았다. 도안가는 조씨의 마지막 남은 혈육을 찾아서 죽였다는 안도감으로 궁궐에 대한 경계를 풀었다. 그 틈을 이용하여 조씨의 갓난아이는 궁중에서 몰래 나와 정영에게 넘겨졌다. 정영은 그 아이를 품에 안고 수양산과 반대 방향인 북쪽의 우산(盂山)으로 들어가 숨었다. 그리고 경공(景公)이 죽고 려공(厲公)이 섰으나 려공은 포학한 행동으로 반정이 일어나 그는 신하들에게 살해당하고 그 뒤를 명군의 자질을 갖춘 도공(悼公)이 새로 섰다. 옛날 조씨 문중에 은혜를 입은 한궐(韓闕)이라는 사람이 조씨 문중은 도안가의 참소에 의해 억울하게 멸족 당했으나 오직 조무라는 일점 혈육이 우산에 숨어살기를 15년이 되었다고 하면서 조씨들을 사면하고 도안가를 죄주라고 상주했다. 한궐은 전국칠웅 중의 하나인 한나라의 선조다. 도공이 도안가를 반역죄로 참수하고 도안씨 집안의 모든 재산과 전답을 조무에게 주라고 명하고 옛날 조씨들 소유의 봉지와 대부의 직을 회복시켜 주었다. 또한 조무를 맡아 키웠던 정영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진도공이 불러 등용하려고 했으나 정영은 지하에서 기다리고 있는 공손저구에게 이 기쁜 소식을 전해주기 위해 빨리 가봐야 한다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즉 그는 공손저구에게 살아서 조씨 고아를 기르는 것이 더 힘든 일이었다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준 것이다. 두 사람의 활약으로 살아남은 조무의 후예들은 그 후로 계속 번창하여 100년 후에는 조나라를 세워 전국시대를 연다.


어떤 사람이 시를 지어 두 사람의 이야기를 노래했다.


陰谷深藏十五年(음곡심장십오년)

아무도 모르는 계곡의 깊은 곳에서 숨어 지내기를 십오년


褲中兒報祖宗寃(고중아보조종원)

바지가랭이 사이에 숨겼던 아이가 자라 문중의 원한을 갚았다.


程嬰杵臼称雙義(정영저구칭쌍의)

정영과 저구를 한 쌍의 의로운 사람이라고 일컫으니


一死何須問后先(일사하수문후선)

어차피 죽는 것은 한 번인데 어찌하여 선후를 따지겠는가?


조나라에는 전국 시대 중반기에 무령왕이라는 걸출한 영웅이 태어나 조나라의 전성시대를 열고 막강한 진나라의 세력에 맞서 중국을 통일하려는 야심을 품었으나 잘못된 후계자 선정으로 일어난 내란으로 죽어 중국 통일에 대한 원대한 꿈을 실현시키지 못했다. 조무령왕은 중국에 기마전을 최초로 도입하여 전투양식을 획기적으로 전환시킨 사람으로 역사상 이를 호복기사라고 칭한다.


목록
6914
[일반] 薳啓疆諫恥晉之辭(원계강간치진지사)- 진나라 사신을 욕보이려는 초영왕에게 …

진나라 사신을 욕보이려는 초영왕에게 원계강이 간하다. (薳啓疆諫恥晉之辭) 진나라 상경 한선자(韓宣子) 기(起)가 초영왕의 비로 시집가
운영자 13-08-19
[일반] 12살에 진나라의 상경이 된 감라 이야기

치자상경(稚子上卿) 파격이라는 말이 있다. 특히나 파격인사라는 말은 모든 격식이나 규범을 따지지 않고 능력에 입각하여 인사를 행한다는 말
양승국 04-05-11
[일반] 가신(家臣)들의 귀감(龜鑑) 개자추(介子推) 이야기-상

가신(家臣)들의 귀감(龜鑑)-개자추(介子推) 다시 중이(重耳)의 일행이 길을 걸어 십여 리를 갔으나 더 이상 배가 고파 길을 걸을 수 없어
양승국 04-05-11
[일반] 가신(家臣)들의 귀감(龜鑑) 개자추(介子推) 이야기-하

문공은 즉시 해장을 하대부의 벼슬에 임명하고는 그날로 해장을 앞세워 어가를 움직여 친히 면상산(綿上山)으로 가서 개자추가 사는 곳을 찾아보려 (1)
운영자 07-04-03
[일반] 거문고로 빗대어 치국의 도를 설명한 추기자 이야기

추기자(騶忌子)가 북과 거문고를 들고 제위왕(齊威王)의 알현을 청했다. 위왕이 기뻐하며 추기자를 자기가 묶고 있던 방의 오른 쪽 방을 내주면서 머
양승국 04-05-11
[일반] 거시기 열전

일찍이 여불위는 조나라에 인질로 잡혀와 있던 진소양왕의 증손자 이인(異人)을 기화가거(奇貨可居)라고 알아보고 전 재산을 투자하여 진왕의 자리에
양승국 04-05-11
[일반] 결초보은(結草報恩)

결초보은 진경공(晉景公)은 순림보(荀林父)가 로국(潞國)1)을 토벌(討伐)하는데 성공하지 못할까 걱정되어 스스로 대군을 끌고 직산(稷山)2
양승국 04-05-11
[일반] 고금취상(鼓琴取相) - 거문고에 빗대 치국의 도를 설파한 추기

고금취상(鼓琴取相) - 거문고에 빗대 치국의 도를 설파한 추기 - 제위왕(齊威王)1)이 왕의 자리에 새로 올랐으나 매일 주색과 풍악소리에만
양승국 05-02-28
[일반] 관중의 경제정책

기원전 7세기 경 관중의 경제정책 < 관포지교(管鮑之交)>라는 고사성어의 주인공인 관중(管仲)이 제환공에게 발탁되어 부국강병책
양승국 04-05-11
[일반] 국군의날 우산을 바쳐들고 대통령을 따가리한 대한민국의 국방부장관...그리고 제나라…

한심한 대한민국의 국방부장관의 몰골을 보자니 나라의 장래가 심히 우려됩니다. 그것도 국군의날을 기념하는 자리에서 대한민국 60만 대군의
양승국 04-05-11
[일반] 굴원이야기

굴원(屈原) 이야기 기원전 295년 진(秦)나라의 새로운 왕에 소양왕(昭陽王 : 재위 기원전 295-251년))이 올랐다. 그는 얼마 전에 초나라가 제
양승국 04-05-11
[일반] 낭만주의자 테러리스트-예양 이야기

예양은 원래 당진의 육경 집안 중 범씨와 순씨들의 가신 노릇을 차례로 하다가 후에 지백의 모사가 되었다. 한, 위, 조 삼가에 의해 지씨 종족들은
양승국 04-05-11
[일반] 너무나도 처절한 보은의 조씨고아 이야기

너무나도 처절한 보은(報恩) 이야기 옛날 기원전 550년 대인 춘추시대 중반의 일이다. 공자가 기원전 551년에 태어났으니 공자보다
양승국 04-05-11
[일반] 당진의 군제 변천표

당진(唐晉)의 군제(軍制) 변천표 1. 문공 4년 기원전 633년 성복대전(城挓大戰) 직전의 편제 군별(軍別) 주장(主將) 부
양승국 04-05-11
[일반] 대기만성 백리해-들어가는 이야기

대기만성이라는 고사성어의 원 주인공은 강태공(姜太公)입니다. 그는 제가 보는 관점에서 봤을 때 참으로 게으르고 무능한 사람이었습니다.
양승국 04-05-11
[일반] 며느리를 빼앗아 신대에 같이 산 아버지 위선공과 죽음을 서로 다툰 형제 이야기

축대납식(築臺納媳) - 며느리를 가로채 신대(新臺)를 짓고 부인으로 삼은 위선공- 주우(州吁)의 뒤를 이어 위나라 군주의 자리에 오
양승국 04-05-11
[일반] 모택동전법과 기원전 565년 당진의 순앵이 착안한 이일대로 전법 비교

다음은 모택동이 그의 유명한 게릴라전 사대전법을 착안했다는 순앵(荀罃)의 이일대로(以逸待勞) 전법 원문 이다. >>>>>&
양승국 04-05-11
[일반] 무당을 하백에게 심부름 보낸 서문표 이야기

그때 업도(鄴都)1)에 수장(守將)이 비어 마땅한 사람을 찾고 있었다. 적황이 말했다. " 업도는 상당(上党)2).과 한단(邯鄲) 사이에
양승국 04-05-11
[일반] 무령왕과 호복기사-1

무령왕 19년 기원전 306년 봄 정월에 신궁(信宮)에서 백관들로부터 조하를 받았다. 비의(肥義)를 불러 천하의 일을 논하다가 5일 만에 끝마쳤다.
양승국 04-05-11
[일반] 무령왕과 호복기사-2

전국칠웅 중, 조나라는 전국말기 유일하게 진나라의 세력에 대항할 수 있었던 군사력과 경제력을 가지고 있었던 나라였다. 그것은 무령왕이라는
양승국 04-05-11
1 [2][3][4][다음][맨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