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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05-11 06:04:173654 
간장주검(干將鑄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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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오왕 합려(闔閭)는 월나라의 유명한 장인(匠人) 구야자(歐冶子)와 한 스승 밑에서 같이 배운 오나라 출신 간장(干將)이란 장인을 얻어 오나라의 새로운 도성의 장문(匠門) 근처에 살게 하고 별도로 명검을 주조하도록 했다. 간장은 즉시 천하의 명산에서 나오는 좋은 쇠만을 캐다가 하늘과 땅의 형세를 살펴 길일을 신중하게 택한 다음 쇳물을 만들려고 하자 이 장관을 천지의 온갖 신령들이 내려와 구경했다. 불을 때기 위해서 준비한 숯은 산을 이루었고 동남동녀(童男童女)들을 300명이나 모아 숯에 불을 피워 풀무를 돌리도록 했다. 불을 계속해서 석 달이나 때도록 했지만 금철(金鐵)은 녹지 않았지만 간장은 그 이유를 알지 못했다. 그의 처 막야(莫邪)가 간장에게 말했다.

“ 무릇 신령스러운 물건이란 반드시 사람의 기를 받아야만 만들어 질 수 있는 법입니다. 지금 당신이 칼을 만들기 위해 석 달을 계속해서 풀무를 돌렸지만 아직까지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한 것은 사람의 기운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간장 “ 옛날에 나의 스승이 쇠에 불을 땠으나 녹지 않자 부부가 화로에 같이 들어가 몸을 바친 결과 신물(神物)을 얻을 수 있었오. 지금까지 산에서 쇠를 녹일 때 반드시 삼으로 꼰 띠를 머리에 두르고 풀로 엮어 만든 옷을 입고서 화로에 제(祭)를 올리고 난 다음에 불을 때야만 한다고 했오. 오늘 쇠가 녹지 않은 것은 내가 그 제를 올리지 않아서인지 모르겠오!”

막야 “ 당신의 스승은 능히 몸을 태워 신기(神器)를 이루셨는데 우리라고 그 스승을 따라 하지 못할 이유가 있겠습니까?”

이어서 막야가 목욕을 깨끗이 한 다음 머리를 짧게 자르고 손톱과 발톱을 자른 후에 동남동녀들로 하여금 화로에 풀무를 돌리게 하였다. 이윽고 화로 안은 불꽃이 작열하여 이글이글 타오르기 시작하자 막야는 화로 속으로 스스로 몸을 던졌다. 막야의 몸은 삽시간에 타서 없어지고 잠시 후에 화로 속의 쇠들이 녹기 시작하여 이윽고 모두 쇳물로 변했다. 간장이 즉시 쇳물을 부어 두 자루의 칼을 만들었다. 만든 순서에 따라 먼저 만든 것을 양(陽)이라 하여 이름을 간장(干將)이라 하고 나중에 만든 것은 음(陰)이라 하여 이름을 막야(莫邪)라고 지었다. 간장검(干將劍)에는 거북이 문양을 새기고 막야검(莫冶劍)에는 물결 무늬를 넣었다. 이윽고 간장(干將)이 오왕 합려에게 간장검은 숨기고 막야검만을 가져다 바쳤다. 합려가 막야검을 시험하기 위해 돌을 내리치자 돌덩이가 둘로 갈라졌다. 오늘도 소주부(蘇州府) 내의 호구(虎邱)1)라는 곳에 시검석(試劍石)이라고 있는데 이것은 당시 오왕 합려가 막야검을 시험하기 위해 자른 바위이다. 오왕이 기뻐하여 간장에게 상으로 백금을 주었다. 나중에 오왕이 간장검 한 자루가 더 있는 것을 알고 사람을 보내 뺏어 오라고 시켰다. 만일 간장이 나머지 한 자루의 칼을 내 놓지 않으면 그를 죽이라고 했다. 간장이 사자에게 바치기 위해 간장검을 숨겨 둔 곳에서 꺼내는 순간 검 스스로가 칼집에서 튀어나오더니 청룡으로 변했다. 이윽고 간장은 청룡을 타고서 하늘로 날아가 버렸다. 사람들은 간장이 검의 신선으로 화했다고 짐작했다. 사자가 돌아와 그 일을 합려에게 고했다. 합려가 탄식해 마지않으며 이후로는 보검 막야를 더욱 귀하게 여겼다. 막야검은 오나라에 계속 있다가 나중에 어디로 사라졌는지 알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나서 600여 년이 지난 서진(西晉) 때 승상(丞相)이었던 장화(張華)2)가 밤중에 천문을 보고 있다가 북두칠성 간에 붉은 색 기운이 있어 천문과 도참(圖讖)을 잘 아는 뇌환(雷煥)이란 사람을 불러 물었다. 뇌환이 대답했다.

“ 그것은 천하의 명검 정령(精靈)으로써 예장군(豫章郡)3) 관하의 풍성(豊城)4)을 비치고 있습니다.”

장화가 즉시 뇌환을 풍성의 현령으로 임명하여 그곳에 가서 보검을 찾도록 했다. 뇌환이 풍성의 현령으로 부임하여 옛날의 감옥자리였던 곳을 파게 하여 한 개의 돌로 된 궤를 얻었다. 그 궤의 크기는 길이가 여섯 척이 조금 넘고 넓이는 세 척이었다. 그 궤를 열었는데 그 안에는 두 자루의 검이 들어 있었다. 이 칼들을 남창 서산의 흙으로 닦으니 칼날의 눈부신 광채가 살아났다. 두 자루의 칼 중 한 자루만 장화에게 보내고 남은 한 자루는 자기가 허리에 차고 다녔다. 장화가 그 칼을 살펴보고 말했다.

“ 칼에 새겨진 문양을 상세히 살펴보니 이 칼은 곧 간장검(干將劍)이라! 그렇다면 막야검(莫冶劍)도 같이 있었을 터인데 어찌하여 같이 보내지 않았는가? 비록 지금은 떨어져 있다 하나 신물은 결국은 합쳐져 같이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훗날에 장화와 뇌환이 연평(延平)5)의 나루에서 배를 타고 건강(建江)6)을 건너던 중에 두 사람의 허리에 차고 있던 칼이 칼집에서 저절로 튀어나오더니 물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급히 사람을 시켜 칼을 찾기 위해 물 속으로 들어가게 했으나 그들은 단지 두 마리의 용이 갈퀴를 세우고 오색찬란한 빛을 발하고 서로 쳐다보며 헤엄을 치고 있는 것을 보았을 뿐이었다. 물 속에 들어간 사람들은 두려워하여 더 이상 칼을 찾지 못하고 물 속에서 나왔다. 이후로 두 자루의 칼은 다시는 세상에 나타나지 않았다. 세상 사람들은 용으로 변하여 하늘로 올라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지금도 풍성현(豊城縣)에 가면 검지(劍池)라는 연못이 있는데 그 연못 앞에는 흙 속에 반쯤 묻혀 있는 돌로 된 함이 있다. 사람들이 석문(石門)이라 부르고 있는 그 함은 뇌환이 간장검(干將劍)과 막야검(莫冶劍)을 얻은 곳이다. 이상은 두 보검에 대한 자초지종의 이야기이다. 후세 사람이 쓴 <보검명(寶劍銘)>에 다음과 같이 구절이 있다.




五山之精(오산지정)

오산(五山)7)의 정화와




六氣之英(육기지영)

육기(六氣)8)의 영령을




煉爲神器(연위신기)

단련하여 신검를 만들었다.




電燁霜凝(전엽상응)

번개와 같은 빛에 서리 같이 차가웠다.




虹蔚波映(홍울파영)

파도 무늬는 무지개처럼 찬란하게 빛나고




龍藻龜文(용조귀문)

거북 문양은 용이 승천하는 듯 하였다




斷金切玉(단금절옥)

쇠를 자르고 옥을 가르니




威動三軍(위동삼군)

삼군을 진동시켜 위엄을 세울 수 있었다.




1)호구(虎邱)/ 지금의 소주시 교외의 서북쪽에 있는 호구진(虎丘鎭)을 말한다. 소주시를 상징하는 호구탑(虎丘塔), 합려의 묘, 손무정(孫武亭), 검지(劍池), 시검석(試劍石) 등의 유적이 있다.


2)장화(張華)/ 서진(西晉) 때의 저명한 학자이자 정치가로 서기 232년에 태어나서 300년에 죽었다. 자는 무선(茂先)이고 하북성 출신이다. 위(魏)나라 초에 태상박사(太常博士)가 되었고 정권이 사마염(司馬炎)으로 넘어가자 그가 세운 서진(西晉)을 섬겼다. 오(吳)나라 토벌에 공을 세워 벼슬이 사공(司空)에 이르고 장무군공(壯武郡公)에 봉해졌으나 서기 299년 팔왕(八王) 란에 조왕(趙王) 사마윤(司馬倫)과 연루되어 그 일족과 함께 살해되었다. 시문에 능했고 저서로는 박물지(博物志)가 있는데 천하의 이문(異聞)과 신선(神仙) 및 고대 일화 등을 모았다. 10권으로 되어 있다. 그가 죽은 뒤에 그의 집에는 많은 책 외에 다른 재산은 아무 것도 없었다고 했다.


3)예장군(豫章郡)/ 지금의 강서성(江西省) 성도(省都)인 남창시(南昌市) 일대


4) 풍성(豊城)/ 지금도 강소성 남창시(南昌市) 남쪽 약 50키로 되는 곳에 풍성현(豊城縣)이라고 있음.


5)연평(延平)/ 현 복건성(福建省) 남평(南平)을 말하며 복건성의 서북쪽에서 동쪽의 복주로 흐르는 민강(閩江)이 이곳을 지난다.


6)건강(建江)/ 지금의 복건성(福建省)을 동서로 가로지르며 흐르고 있는 민강(閩江)의 명나라 때 이름


7) 오산(五山)/ 동서남북의 산과 중악(中嶽)을 합한 중국의 명산. 동악(東嶽)은 산동성의 태산(泰山), 서악(西嶽)은 섬서성의 화산(華山), 북악(北嶽)은 항산(恒山), 남악(南嶽)은 호남성의 형산(衡山), 중악은 하남성의 숭산(嵩山)을 가리킴.


8)육기(六氣)/ 하늘과 땅의 천지(天地)와 동서남북(東西南北) 여섯 방향의 기운


(연의 제74회 내용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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