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국연의

 

   
 
중국사
1. 선사
2. 삼대
3. 춘추전국
4. 진한
5. 위진남북
6. 수당오대
7. 송요금원
8. 명청
9. 국공
10. 인민공화국
11. 통사
· 오늘 :  282 
· 어제 :  367 
· 최대 :  6,990 
· 전체 :  1,980,949 
 
  2011-03-29 16:21:075471 
상관완아 [上官婉兒, 664~710]
운영자

상관완아는 섬주(陝州, 지금의 河南省 三門峽) 사람으로 당(唐) 고종(高宗, 재위 649∼683) 때의 재상(宰相)인 상관의(上官儀, 608~664)의 손녀이다. 상관의는 육조(六朝)의 화려함을 이어받아 섬세한 기교를 구사한 시풍(詩風)인 ‘상관체(上官體)’를 유행시키며 태종(太宗, 재위 626∼649) 때부터 널리 이름을 떨쳤지만, 664년 고종을 도와 측천무후(則天武后, 624~705)의 폐위(廢位)을 도모하다가 처형되었다.




상관의의 가족도 모두 처형되었지만, 갓난아기였던 상관완아와 어머니 정씨(鄭氏)만이 외가 쪽의 도움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다. 상관완아는 어려서부터 매우 총명하였고, 시서(詩書)를 깊게 공부하여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상관완아는 677년(儀鳳 2년) 소문을 들은 측천무후에게 발탁되어 입궁(入宮)하여 궁중(宮中)의 일을 맡아보게 되었다. 당시 측천무후가 아버지를 죽인 자신을 미워하느냐고 묻자, “원망하면 불충(不忠)이요, 그러하지 아니하면 불효(不孝)가 됩니다”라고 대답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녀는 시문(詩文)에 뛰어난 재능을 보여, 측천무후가 시제(詩題)를 내어 신하들에게 시를 짓게 하면 상관완아가 심사를 맡았다고 한다. 측천무후는 그녀를 매우 총애하여 696년부터는 조서(詔書)를 담당하는 일을 맡겼다. 무주(武周) 시대 대부분의 조칙(詔勅)이 그녀의 손에서 나와, 사람들은 그녀를 ‘내사인(内舍人)’이라고 불렀다. 상관완아는 측천무후의 최측근으로서 큰 권세(權勢)를 누렸다. 《자치통감(資治通鑑)》이나 《신당서(新唐書)》 등의 기록에 따르면 그녀가 황제의 뜻을 거스르는 큰 잘못을 저질렀는데도, 측천무후는 그녀를 죽이지 않고 얼굴에 매화 문양을 새기는 경형(黥刑)만을 내리고 조서(詔書)를 작성하는 일에 계속 참여토록 했다. 얼굴에 매화 문양을 새긴 상관완아가 더욱 아름답게 보여 이 문양을 본떠 화장하는 것이 당대에 널리 유행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상관완아는 시적 재능만이 아니라 정치적 수단도 뛰어나 측천무후의 조카인 무삼사(武三思, ?~707)와 애인(愛人) 관계로 알려져 있을 정도로 가까이 지냈으며, 698년 다시 황태자가 된 중종(中宗, 재위 683∼684, 705∼710)과도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였다. 705년 장간지(張柬之, 625~706)가 정변을 일으켜 당(唐)왕조가 부활하고, 중종(中宗)이 복위(復位)를 한 뒤에도 중종(中宗)과 위황후(韋皇后, 660?~710)의 신뢰를 받으며 황제의 명(命)을 전담하며 대부분의 조칙(詔勅)을 기초(起草)하였다.




그녀는 중종의 후궁(後宮)으로서 소용(昭容)의 지위에 올랐으며, 위황후(韋皇后)와 무삼사 등과 연합하여 장간지를 견제하여 측천무후(則天武后) 통치기 때의 중신(重臣)들과 무씨(武氏) 세력이 회복되도록 하였다. 그리고 중종에게 서관(書館)과 학사(學士)를 늘릴 것을 건의하고, 조정(朝廷)을 대신하여 천하의 시문(詩文)을 품평(品評)하였다.




710년 중종이 죽고 위황후가 측천무후와 마찬가지로 스스로 황위(皇位)에 오르려 하자, 상관완아는 측천무후의 딸인 태평공주(太平公主)와 연합하여 이를 견제하였다. 결국 예종(睿宗, 재위 684~690, 710~712)의 아들인 임치왕(臨淄王) 이융기(李隆基)가 태평공주와 힘을 합하여 정변(政變)을 일으켜 위황후를 제거하고 예종(睿宗)을 다시 황제로 옹립하였다. 하지만 뒤에 현종(玄宗, 재위 712∼756)이 되는 이융기는 위황후에 대립했던 상관완아를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위황후(韋皇后), 안락공주(安樂公主) 등과 함께 처형하였다. 뒷날 현종은 상관완아의 글들을 모아서 20권의 문집(文集)으로 편찬하였다. 청(淸, 1636∼1912)에서 18세기에 당시(唐詩)를 모아 편찬한 《전당시(全唐詩)》에도 상관완아의 시 32수가 실려 있다.

목록
2612
[] 1200년 전 중국의 자유주의 경세가 유안(劉晏)

1200년 전 중국의 자유주의 경세가 유안(劉晏) 제1장 중국 경세가 중에서 대표적으로 특이한 인물 유안은 당현종 개원(開元) 4년인 718
운영자 22-09-15
[] 고선지와 탈라스전투

고선지와 탈라스(Talas)전투 A.D. 668년 나․당 연합군에 의해 고구려(高句麗)가 멸망당한 뒤 이국(異國) 땅인 당에 강제로 이주(移住)되어
운영자 15-07-06
[] 오대십국시대의 정국을 주도한 사타족

오대십국시대의 정국을 주도한 사타족 사타(沙陀)는 처월(處月)、주사(朱邪), 혹은 주야(朱耶) 등의 이름으로도 불려진다. 원래 당나라 때 서돌궐
운영자 14-08-23
[] 후한고조 유지원(劉知遠)과 남희(南戱) 백토기(白兎記)

후한고조 유지원(劉知遠)과 남희(南戱) 백토기(白兎記) 1. 유지원과 이삼랑(李三娘)의 이별 그리고 다시 만남 − 유지원은 의리남이었을까
운영자 14-08-21
[] 황소의 란

중국 당(唐)나라 말기에 일어난 대농민반란을 말한다. 당나라 말기 희종(僖宗)의 건부(乾符)∼중화(中和) 연간(875∼884)에 일어났다. 당나라 말기에
운영자 11-12-18
[] 중국의 드라큐라 - 조사관(趙思綰)

조사관(趙思綰 : ?-949)은 하북(河北) 위주(魏州) 출신이다. 오대(五代) 후한(後漢) 때 영흥절도사(永興節度使)로 성격이 잔폭한 성격에 사
운영자 11-10-10
[] <대의정성(大醫精誠)> 손사막

손사막(孫思邈)과 천금방(千金方) 중국 의학사상 불후의 업적을 남긴 손사막은 기원 581년에 태어나서 682년인 102살에 죽은 사람이다. 수나라
양승국 04-05-13
[] 상관완아 [上官婉兒, 664~710]

상관완아는 섬주(陝州, 지금의 河南省 三門峽) 사람으로 당(唐) 고종(高宗, 재위 649∼683) 때의 재상(宰相)인 상관의(上官儀, 608~664)의 손녀이다.
운영자 11-03-29
[] 수나라의 진나라 정벌도

북주의 왕권을 차지한 데 이어 북제를 북제를 멸하고 다시 남조의 마지막 왕조 陳나라를 정벌하여 병탄함으로 해서 삼국시대 이래 근 400년 가까이 분
양승국 06-03-15
[] 수(隋)

양견(楊堅:文帝)이 581년 북주(北周)의 정제(靜帝)로부터 양위받아 나라를 개창하고, 589년 남조(南朝)인 진(陳)을 멸망시켜 중국의 통일왕조를 이
양승국 06-06-26
[] 당나라 전도-전기

618년 이연(李淵)이 건국하여 907년 애제(哀帝) 때 후량(後梁) 주전충(朱全忠)에게 멸망하기까지 290년간 20대의 황제에 의하여 통치되었다. 중국의
양승국 06-06-26
[] 수나라의 대운하

수양제 양광은 605년 남북을 관통하는 대운하의 건설을 지시했다. 공사의 중요 부분은 로 통제거(通濟渠)와 영제거(永濟渠)의 건설이었다. 황하남안의
운영자 08-01-15
[] 수양제가 건설한 대운하

당시의 자연 하천과 하천 사이를 굴착을 해서 서로 연결하여 운하를 만들었다. 운하로 이용하기 위해 대상이 되었던 강은 하북성 북쪽에서 발원하여
양승국 04-09-09
[] 종규(鐘馗) - 중국의 역신(疫神)

종규(鐘馗) 중국의 역귀(疫鬼)를 쫓는 신의 이름이다. 《사물기원(事物起原)》에 의하면 당현종(唐玄宗)이 병석에 누워 있을 때 다음
운영자 10-03-31
[] 당나라 시단의 시대구분

당(唐)나라 시대는 위진남북조 시대의 문화를 통합하고 정치 경제는 물론 사회 문화의 모든 부문에 걸쳐 기틀을 정비했으며, 인도와 서역의 문
운영자 10-03-31
1 [2][다음][맨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