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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8-23 11:14:053776 
오대십국시대의 정국을 주도한 사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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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십국시대의 정국을 주도한 사타족


사타(沙陀)는 처월(處月)、주사(朱邪), 혹은 주야(朱耶) 등의 이름으로도 불려진다. 원래 당나라 때 서돌궐의 일파로 지금의 신강성 준가르(俊噶爾) 분지일대의 유목민족으로 그들이 거주하고 있던 지형이 대사구((大沙丘)였음으로 사타라는 이름을 얻었다.



서역에서의 주도권 싸움


당태종 정관 7년(633년)처월부(處月部)의 수령은 일찍이 서돌궐의 귀족 아사나미사(阿史那彌射)가 조근을 올리기 위해 장안에 들어올 때 수행했다. 후에 처월부는 을비돌륙(乙毘咄陸) 가한(可汗)에 예속되었다가 642년 지금의 신강성 합밀(哈密)인 이주(伊州)로 침공하던 을비돌륙이 처월과 처밀(處密) 2부를 보내 천산군(天山軍)을 포위하게 했으나 모두 당군에 의해 격퇴되었다. 천산군의 치소는 지금의 신강성 탁극손현(托克遜縣) 서북이었다.


당고종 영휘(永徽) 연간인 653년 혹은 654년에 당군이 서돌궐의 아사나하로(阿史那賀魯)를 멸망시킬 때 처월부 역시 당군에 의해 타격을 받았다. 무측천(武則天) 장안(長安) 2년702년) 지금의 신강성 창길(昌吉) 길목살아(吉木薩爾)인 정주(庭州)에 북정도호부(北庭都護府)를 설치할 때 사타족 수령 주사금산(朱邪金山)이 철륵부를 정벌하는 당군에게 협력하여 공을 세워 “금만주도독(金滿州都督)”으로 피봉되어 북정도호부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후에 금산의 아들 주사보국(朱邪輔國)은 토번(吐藩)의 압력을 받아 정주(庭州)로 이주했다.


안사(安史)의 란 이후, 회흘(回紇)이 신강지구를 점령하고 토번은 혼란한 틈을 이용하여 당나라의 하서(河西), 농우(隴右) 등을 점거할 때 다시 회흘족의 압제를 받았던 사타족은 토번에 투항했다가 789년 회흘과 연합하여 정주(庭州)를 점령했다. 후에 토번은 사타족과 회흘족 간의 연합을 방해하기 위해 사타족을 지금의 감숙 장액(張掖)인 감주(甘州)로 이주시키고 보국의 아들 주사진충(朱邪盡忠)을 봉하여 사타족 군사의 대장으로 삼아 항상 토번의 군사행동에 선봉을 맡겼다.


중원으로의 이주


800년 좌우, 회흘족이 량주(涼州)를 점령하자 토번은 사타족를 량주 땅의 황하 이서의 고원지구로 이주시키려고 했다. [吐蕃以沙陀駐地靠近涼州,試圖將其再次遷往黃河以西的高原地區]

809년 이주를 원하지 않았던 사타족의 수령 주사진충은 부족 전체를 이끌고 당나라 조정에 투항했다. 토번이 사타족의 뒤를 추격하여 살해했음으로 사타족들은 전투를 하면서 달아났다. 3만의 사타족 중 목숨을 구해 달아나 영주(靈州)에 들어올 수 있는 병력은 단지 2천 명에 불과했다. 영주는 지금의 영하성 영무시(靈武市)다. 주사진충 역시 탈출 과정에서 전사했음으로 그의 아들 주사집의(朱邪執宜)가 사타족의 수령 자리를 이었다. 영염절도사(靈鹽節度使) 범희조(範希朝)가 사타족들을 염주(鹽州)에 안주시키려는 목적으로 주사집의를 음산도호부병마사(陰山都督府兵馬使)로 임명하고 뒤에 남은 사타족들을 유인하려고 했다. 염주는 지금의 영하성 오충시(吳忠市) 염지현(鹽池縣)이다.


후에 범희조의 임지가 태원부로 바뀌자 당나라 조정은 사타족의 이반을 방지하기 위해 그들을 지금의 산서성 삭주시(朔州市)인 산음현(山陰縣)인 황화퇴(黃花堆)로 이주시켜 범희조의 통제를 계속받게 했다. 후에 다시 사타족의 군사들을 나누어 각부에 속하게 하여 당나라 군대의 중추 병력으로 충원되었다. 당의종(唐懿宗) 때 의자의 아들 주사적심(朱邪赤心)이 방훈(龐勳)의 란을 진압하는 공을 세워 당나라 조정으로부터 이국창(李國昌)이라는 성과 이름을 하사받았다.


당말 대혼란기


876年,이국창의 아들 이극용(李克用)이 당나라에 반기를 들고 대동(大同)을 점령했다. 880년 이극용은 당군의 반격으로 패주하고 이국창 부자는 부족들을 이끌고 북쪽이 달단(韃靼)으로 도주했다. 황소(黃巢)가 장안으로 입성했으나 각 지방의 번진(藩鎭) 세력이 원군을 보내지 않았기 때문에 당희종(唐僖宗)은 어쩔 수 없이 이극용을 황소를 공격하라고 불렀다. 833년 이극용은 황소의 주력부대를 황피에 공격하여 패주시켰다. 당나라 조정은 그 공으로 이극용을 하동절도사에 임명했다. 황소가 죽자 그의 잔당을 규합하여 세력을 크게 발전시킨 주전충이 이극용을 화북에서 크게 물리치고 결국 907년 주전충은 후량(後梁)을 건국했다. 이로써 당나라는 망하고 오대십국 시대로 진입했다.


삼대일국(三代一國)의 후당왕조


923년 이극용의 아들 이존욱이 후량을 멸망시키고 후당(後唐)을 건국했다. 후당을 건국한 이존욱은 다시 투항과 배반을 밥먹듯이 저질렀던 유인공(劉仁恭) 부자를 살해하고 그들의 근거지인 유주(幽州)를 점령했다.


후당을 건국하여 황제의 자리에 오른 이존욱(李存勗)은 갑자기 혼미해져 놀이와 사냥에 탐닉한 나머지 국가대사는 모두 아첨배와 환관에게 맡겨 국정을 문란하게 만들었다. 926년 진왕(晉王) 이극용(李克用)의 양자로 대태보(大太保)의 직에 있었던 이사원(李嗣源)이 위주(魏州)에서 기병하여 같은해 변량에서 후당의 군사를 패배시키자 장종(莊宗) 이존욱은 집안 사람들과 함께 불에 타 죽었다. 이에 후당의 황제자리에 이사원이 오르니 이가 후당이 명종(明宗)이다. 933년 명종 이사원이 죽자 934년에 민제(閔帝)가 뒤를 이어 즉위했으나 그 해를 넘기지 못하고 양자로 들어온 그의 형 이종가((李從珂)에게 황위를 빼앗겼다. 황제의 자리에 오른 이종가는 석경당(石敬瑭)을 제거하려고 하자 석경당은 거란에 투항하여 자신을 거란 황제의 아들이고 스스로 칭했다. 거란으로부터 군사를 빌리는데 성공한 석경당은 후당을 멸하고 후진(後晉)을 세웠다. 936년 후진 왕조를 세운 석경당은 거란에의 황제를 아버지라고 부르고 연운 16주의 땅을 할양했으며 매년 공납금을 바쳤다. 석경당이 죽은 후에 그의 조카 석중귀(石重貴)가 요나라에 반기를 들고 요나라와 여러 차례 전쟁을 벌리다가 결국은 자신은 포로가 되고 후진은 멸망당하고 말았다.


그 후 원래 후진의 장군이었던 사타족 출신의 유지원(劉知遠)이 기병하여 후한정권을 세웠으나 곧바로 병으로 죽고 후한 왕조는 후주(後周)로 바뀌었다. 후한의 황족이었던 유숭(劉崇)이 태원을 근거지로 북한정권을 세웠으나 후한정권과 마찬가지로 요나라에 보호를 요청했다. 979년 북한왕조는 송나라에 멸망당하고 사타족 황족들은 모두 포로가 되어 개봉으로 이주해서 살았다.


후에 사타족은 한족과 거란 등의 민족과 융화되어 다시는 독립된 소수민족으로 등장하지 못했다. 요나라 때 음산(陰山)과 장성 부근의 흑고자실위(黑車子室韋)와 원대의 왕고(汪古) 일대는 사타족의 후예들의 거주지였다. 진왕 이극용을 선조로 무시고 점차적으로 몽고족으로 융화되었다. 어떤 사람은 진왕(晉王) 이극용을 조상으로 받들고 있는 아고특(雅庫特) 인들은 사타족의 살갈부(薩葛部)의 후예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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