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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10-10 16:48:103548 
중국의 드라큐라 - 조사관(趙思綰)
운영자

조사관(趙思綰 : ?-949)은 하북(河北) 위주(魏州) 출신이다. 오대(五代) 후한(後漢) 때 영흥절도사(永興節度使)로 성격이 잔폭한 성격에 사람 고기를 즐겨 먹은 일로 유명해졌다. 영흥절도사는 오대십국 시기에 장안성을 관할했다.




일찍이 하중절도사(河中節度使) 조광찬(趙匡贊)의 아장(牙將)으로 후한의 고조 유지원(劉知遠)이 칭제 후 영흥절도사로 임명된 조광찬이 입조할 때 수 백 명의 군사와 함께 조사관을 영흥에 남겨 지키도록 했다. 얼마 후에 유지원은 대장 왕경숭(王景崇)과 장군 제장진(齊藏珍)에게 군사를 이끌고 봉상(鳳翔)으로 나아가 명목상으로는 회흘(回紇)의 군사를 격퇴시키도록 했으나 실제로는 후촉(後蜀)의 침입을 방비하기 위해서였다. 이윽고 왕경숭이 군대를 이끌고 조사관이 지키고 있던 영흥에 당도했으나 조광찬이 끌어들인 후촉의 군대는 이미 자오곡(據子午谷)을 점거하고 있었다. 이에 왕경숭은 조사관과 함께 군사를 이끌고 출전하여 후촉의 군사를 격퇴시키기 위해 서쪽으로 진격했다. 그때 조사관을 의심한 왕경숭이 그의 얼굴에 글자를 새겨 그 뜻을 살펴보려고 했다. 조사관이 주저하지 않고 즉시 왕경숭의 명에 응하겠다고 대답하자 왕경숭은 대단히 기뻐했다.

 왕경숭이 봉상에 당도하자 유지원은 다시 명을 내려 봉상절도사 후익(侯益)과 조사관을 경사로 불렀다. 조사관이 매우 두려워하여 부하장수 상언경(常彥卿)에게 물었다. “ 조광찬 장군이 래조한 결과 그의 목숨은 이미 다른 사람의 손에 좌우되게 되었는데 내가 명을 따라 다시 래조한다면 같이 목숨을 잃지 않겠소? 어찌해야 하겠소? ” 상언경이 대답했다. “ 변은 이미 일어났습니다. 다른 말을 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 조사관은 상언경의 말을 쫓아 유지원의 명을 받들지 않기로 했다.

이윽고 조사관이 후익 등의 일행과 함께 장안성의 영흥부에 당도하자 영흥부절도사 안우규(安友規)가 장안성을 나와 영접하여 교외의 정자에서 주연을 베풀었다. 조사관이 안우규에게 말했다.

“ 군사들이 묶는 관사는 성의 동쪽에 있습니다. 그러나 장교와 병사들의 가족들은 성안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원컨대 군사들을 성안으로 보내 그 가족들과 만나도록 해 주고 싶습니다.” 후익이 그 말을 믿고 허락했다. 그 즉시 부하 군사들과 함께 성안으로 들어간 조사관은 성문을 지키던 주교(州校)에게 재빠르게 달려가 그의 패검을 빼앗아 목을 벤 다음 이어서 수문을 지키던 10여 명의 군사들을 살해하고 재빨리 성문을 닫은 후에 무기고를 탈취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괵주(虢州) 인 정변정(靖邊庭)이 단련사(團練使) 전령방(田令方)을 살해하고 주민들을 이끌고 조사관에게 투항하려고 했으나 동관을 지키던 수장의 복병에 걸려 격퇴되어 조사관의 반군과 회합하지 못했다.

  당시 봉상에서 반란을 일으킨 왕경숭이 조사관과 함께 하중(河中)절도사 이수정(李守貞)에게 손을 내밀어 이수정을 진왕(秦王)으로 받든다는 표장을 보냈다. 이수정은 조사관을 진창군절도사(晉昌軍節度使)로 임명했다. 세 사람의 반란소식이 전해지자 후한의 은제(隱帝)는 총사령관에는 추밀사(樞密使) 곽위(郭威)를, 진녕절도사(鎮寧節度使) 곽종의(郭從義)를 영흥행영부서(永興行營都部署)로 황제의 친위군을 이끌고 출전하여 조사관을 토벌하도록 하고 다시 보의절도사(保義節度使) 백문가(白文珂)를 하중행영부서(河中行營都部署)에, 내객성사(內客省使) 왕준(王峻)을 도감(都監)으로 삼아 이수정을 토벌하도록 하고 계속해서 영강절도사(寧江節度使)、시위보군도지휘사(侍衛步軍都指揮使) 상홍천(尚洪遷)을 서면행영도우후(西面行營都虞侯)로 삼아 왕경숭을 각각 토벌하도록 했다.

곽종의에 의해 수개 월 동안 포위된 장안성은 성중에 양식이 모두 떨어지자 조사관은 사람을 죽여 식량으로 삼았다. 더욱이 조사관은 여러 차례 사병들을 위해 수 백 명의 사람을 죽인 고기로 잔치를 벌리곤 했다. 성격이 잔인하고 포학한 성격의 조사관은 산 사람을 간을 도려내 안주로 삼아 술을 마시며 부하들에게 말했다. “ 내가 수 천여 명의 사람을 죽여 간을 먹었으니 나는 천하에 견줄 바 없는 용기를 지니고 있다. ” 그러나 포위망이 오래 지속되자 궁지에 몰린 조사관은 결사대를 모집하여 땅굴을 파서 후촉으로 도망칠 준비를 했다. 그러나 부하였던 판관 진양능(陳讓能)이 알고 말했다.

“ 장군께서는 나라에서 용기로써 자신과 겨룰 수 사람이 없다고 천하에 호언하고 다니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단지 죽음을 피하여 타국으로 도망치려고 하십니다. 오늘 조정이 세 곳에 각각 용병하여 그 피폐함이 극에 이르렀습니다. 마땅히 진실된 마음으로 먼저 조정에 귀의한다고 하면 그 공로는 이미 잘못을 덮을 수 있으니 잘하면 목숨을 부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외로운 성에 의지하기만 한다면 그것은 곧 앉아서 죽음을 기다리는 것과 같습니다.”

진양능의 말이 옳다고 생각한 조사관이 교련사(教練使) 유규(劉珪)에게 명하여 곽종의 진영으로 보내 항복할 뜻을 전하도록 하고 동시에 아장 유균(劉筠)에 표장을 주어 조정에 보내 항복하겠다고 했다. 후한의 은제는 조사관을 진국군유후(鎮國軍留後)에 임명하여 속히 임지에 부임하도록 명했다. 그러나 조사관은 지체하며 장안성을 떠나지 않았다.

이때 후촉이 사람을 장안성으로 보내 조사관의 투항을 권유했다. 이에 조사관이 후촉으로 들어갈 채비를 갖추기 시작하자 곽종의가 이 사실을 알고 후한의 추밀사 곽위에게 보고했다. 곽위가 곽종의에게 명하여 조사관을 속여 성안으로 유인하여 복병을 숨겨 사로잡았다. 949년 조사관과 그의 아들은 저자거리에서 참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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