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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8-21 15:46:002888 
후한고조 유지원(劉知遠)과 남희(南戱) 백토기(白兎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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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한고조 유지원(劉知遠)과 남희(南戱) 백토기(白兎記)


1. 유지원과 이삼랑(李三娘)의 이별 그리고 다시 만남

− 유지원은 의리남이었을까?


《백토기(白免記)》는 당말 오대 후한왕조의 창업한 황제 유지원(劉知遠)을 주인공으로 하여 그의 개인사를 다룬 남희(南戱) 작품이다. 당이 망하고 분열 시기로 접어들어 후량, 후당, 후진, 후한, 후주의 다섯 나라가 이어지는 시기를 오대 시기(907∼960)라 하는데, 그중 후한(後漢)을 세운 인물이 바로 유지원이다.


당나라가 907년에 망하고 송나라 960년 망할 때까지의 50여 년에 걸친 혼란기를 오대십국이라고 부른다. 그때 패현(沛县) 사타촌(沙陀村)에 부친을 일찍 여의고 개가한 모친을 따라 계부의 집에서 人刘知远幼年丧父,随母改嫁,将继父家业花费至尽,被继父逐出家中,流落荒庙,后被同村富室李大公收留沛县位于江苏省徐州市西北部부모를 일찍 여의고 가난에 몰린 유지원이 마명왕(馬鳴王) 사당에서 재산가 이문규(李文奎)가 올리는 제사 제물을 훔쳐 먹다가 들키는 데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이것이 인연이 되어 이문규의 집에 머무르게 된 유지원은 보통 사람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갖가지 신기한 징조들을 나타낸다. 아무도 제압하지 못하는 사나운 말을 쉬 제압하고 뜰에서 소를 치다가 잠이 들자 코 고는 소리가 우레와 같았으며 그 위에 붉은 기운이 서리고 뱀이 그 몸의 일곱 구멍을 드나드는 것 등은 제왕이 될 징조이기 때문이다. 이를 본 이문규는 곧 딸 삼랑의 배필로 삼아 그를 눌러앉게 한다.

생각지 않게 이문규 부부가 일찍 세상을 뜨자 삼랑의 오빠인 이홍일(李洪一) 부부가 이들을 괴롭히기 시작한다. 가난뱅이 유지원과 재산을 나누기가 싫었기 때문이었다. 그를 쫓아버리기 위해 강제로 이삼랑과 이혼장을 쓰게 하고, 심지어 유지원을 죽이기 위해 귀신이 출몰하는 수박 밭을 지키게 했다. 그러나 유지원은 오히려 수박 밭에서 병서와 보검을 얻고, 셋째 숙부의 도움으로 병주(幷州)의 악절도사(岳節度使) 휘하에 들어간다. 거기서 악절도사의 딸 수영(绣英)이 헌 옷인 줄로 알고 잘못 던져준 부친의 붉은 전포를 인연으로 악절도사의 데릴사위가 되었다. 전포를 훔친 도적으로 몰린 그를 악절도사가 수영을 주어 사위로 삼은 이유는 그에게서 범상치 않은 징조들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든든한 후원자를 얻게 된 유지원은 전공을 세우며 승승장구하여 구주안무사(九州安撫使)의 지위에까지 올랐다.


한편 혼자 남은 삼랑은 재가하라는 오빠 이홍일의 뜻을 따르지 않아 온갖 구박을 받으며 마치 머슴과 같은 생활을 해야만 했다. 낮에는 물을 긷고 밤에는 방아를 돌리다가, 결국 아무도 도와주는 사람이 없는 가운데 방앗간에서 혼자 해산했다. 가위도 없이 이로 태를 물어 끊었다 해서 아기 이름을 교제랑(咬臍郞)이라고 지었다. 아들을 낳았다는 소식을 들은 올케가 달려와 그 아기를 연못에 던져 죽이려 하는데, 숙부의 명을 받고 온 화공 두씨가 아기를 구해 병주의 유지원에게로 보내면서 이삼랑은 이미 다른 사람에게 개가를 했다고 둘러댔다. 유지원이 한스러워하며 아기를 악수영에게 주어 기르기 시작해서 어언 16년이라는 세월이 흐르게 되었다.

여태껏 고통스런 삶을 이어가고 있는 삼랑이 여느 날 같이 우물가에서 피곤에 지쳐 쉬고 있는데, 교제랑이 사냥을 하다 흰 토끼를 쫓아 우물가에 이르렀다. 피곤에 지친 여인의 모습을 보고 사연을 물으니, 16년 전 남편이 병주 군영에 입대했는데 이름이 유지원이요, 아들은 교제랑이라고 했다. 이에 의혹을 품고 병주에 돌아온 교제랑이 아버지 유지원에게 다그쳐 물었다. 마침내 그 여인이 자신의 생모임을 확인한 교제랑은 충격을 받고 아버지는 의리를 저버린 사람이라고 강하게 비난했다. 아들로부터 힐난을 받은 유지원이 깨닫고 서둘러 방앗간으로 삼랑을 찾아와 그녀의 정절과 사랑을 확인한다. 사흘 후 다시 병사들을 이끌고 돌아와 이홍일에게 원수를 갚고자 하나, 삼랑의 부탁으로 이홍일은 살려두고, 홍일의 처는 그녀가 유지원을 쫓아 보낼 때 했던 맹세대로 초로 만들어 태워 죽인다.


《백토기》는 아내를 버리고 떠났다가 16년 만에야 아들의 요구와 비난으로 겨우 다시 돌아온, 부부간의 의리를 저버린 남자의 이야기다. 당나라 때의 전기소설(傳奇小說)에서부터 이러한 제재가 보이기 시작하여, 송원 대에는 소설, 희곡에도 적잖이 이러한 제재의 작품이 나온다. 특히 송원 대에 남방에서 널리 유행했던 연극인 ‘남희(南戱)’는 민간에서 발생한 것이니만큼 버림받은 여성의 입장에서 이러한 제재를 다룬 것이 적지 않다. 초기 남희의 대표적인 극목인 《왕괴가 계영을 저버리다(王魁負桂英)》, 《조진녀와 채이랑(趙眞女蔡二郞)》(이는 《비파기(琵琶記)》의 원형이다)을 비롯하여, 《장협장원(張協狀元)》, 《유지원(劉知遠)》 등이 모두 의리를 저버린 남자를 다루고 있다. 물론 지금 전하는 많은 판본에서는 남자 주인공을 이런저런 모양으로 합리화시키고 있지만, 작품 구석구석에 버림받은 여성이 겪는 경제적 어려움과 육체적, 심적 고통이 그려져 있어, 그것이 후에 개작된 것임을 확인하기는 어렵지 않다. 당 대 과거 제도가 정착된 이래, 많은 선비들이 일신의 영달과 가문의 영광을 위해 과거 시험에 매달렸다. 10년 공부로 일거에 급제하면 즉시 통치 계층으로 부상하여 신분이 달라질 뿐 아니라, 안정된 수입과 사회적 존경을 얻게 되므로, 이는 피할 수 없는 유혹이었다. 이렇게 신분이 바뀌면, 권력의 추구이든 그 사회의 상례이든 신진 사대부와 기성 권력의 결탁은 불가피하다. 신진 사대부가 권력의 비호를 얻게 되면 더욱 순탄한 벼슬길을 가게 되고, 기성 권력자가 유망한 신진 사대부를 자기 휘하에 두면 더욱 오래 권력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가장 좋은 방법이 혼인이었고, 이로 인해 시골에 남아서 부모를 봉양하던 조강지처가 어쩔 수 없는 피해자가 되었다. 이는 지금 우리 사회의 고시 열풍과 그로 인한 사회 문제와도 일맥상통하는 것으로, 종종 TV 연속극에서 접하게 되는 이야기들이다. 이런 류의 중국 희곡 작품 속에는 남자 주인공이 두고 온 아내를 그리워했지만, 임금과 정치 사회가 냉혹하여 또는 내내 전쟁터에 있어서 결코 시골집에 돌아갈 수 없었다든지, 편지를 보냈으나 사기꾼에게 걸려 전해지지 않았다든지 하는 각종 이유들이 묘사되어 있지만, 행동하지 않는 지성은 아무 소용이 없지 않은가? 유지원 역시 내내 전쟁터에 있었다고 하나, 아들 교제랑의 비난에 직면해서야 비로소 아내 삼랑을 찾아가게 된다. 유지원은 결코 의리남이 아니었다. 그러나 사대부는 물론 민중들조차도 그가 의리남이기를 원했으므로, 결국 그는 점차 의리남으로 변신했다.


[네이버 지식백과] 백토기 [白兎記] (고전해설ZIP, 2009.5.10, 지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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