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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06-08 23:03:437505 
무적함대의 최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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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16세기 에스파냐의 국력은 막강하여 수많은 식민지를 건설하고 법을 재정하여 세계에 널리 그의 힘을 과시했다. 그와 더불어 가장 걸림돌이 되었던 잉글랜드를 제압하고자 하였는데, 당시 에스파냐의 왕 필립2세는 이교도로 여겼던 신교도국 잉글랜드를 로마의 교회로 전향시키고자 결심하였고, 또한 에스파냐의 해상무역을 방해 해오던 영국의 여왕이자 라이벌인 엘리자베스 I 세에 대한 증오심에 타오르고 있었기 때문에 무적함대에 편입할 될 초대형 전함들의 건조를 지시하게 된다.





무적함대가 등장하게 된 몇가지의 이유 (1586 -1588 ) :


1. 영국해적들의 공격

거의 20년동안 아메리카의 식민지는 잉글랜드의 공격을 받아왔고, 또한 수송선 보물선들이 약탈 당해 왔다. 그러나 잉글랜드의 엘리자베스 여왕은 이러한 샤락함대들에 대한 처벌을 거절한데다가 나포하거나 약탈했던 부를 되돌려 주지 않았다.




2. 영국 카톨릭에 대한 탄압

엘리자베스 여왕은 잉글랜드 내에서의 카톨릭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를 어기면 벌금이 부과되었고, 공공의 장소에서 거론한다면 투옥시키기 까지 하였다. 1581년 이후, 영국 카톨릭은 종교적 범죄행위로 간주 되어졌다.




3. 스페인의 적대국에 대한 지원

엘리자베스 여왕은 에스파냐의 카톨릭을 적대시 하고, 오히려 신교도 즉 프로테스탄트들을 격려 하였다. 영국의 군인들은 수년동안에 걸쳐 에스파냐에 대항해오던 네덜란드를 지원했고, 1585년 엘리자베스 여왕은 에스파냐의 필립왕을 돌아선 네덜란드의 정부를 적극 지원하기로 외교조약을 맺었다.





1585년 에스파냐와 잉글랜드의 무력충돌이 빈번히 발생 되었고, 결국 국가간 전쟁으로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잉글랜드의 무력침략에 대해 에스파냐의 왕 필립2세는 1580년 리스본과, 1583년 아조레스의 육군과 해군 활동을 재게 시켰고 잉글랜드에 대한 공격이 불가피함을 표출했다.






에스파냐 국왕 필립 II세의 계획


그는 곧 잉글랜드를 공격하기 위해 네덜란드에 주둔시켜 두었던 대규모의 병력에 대기 명령을 내렸고, 이를 지휘하고 있던 파르마공작에게 지시하여 모든 병력을 집결시키도록 하였다. 친 에스파냐정부 소속이었던 그는 곧 잉글랜드 남부해안의 켄트주와 마주하는 여러항구들과 덩커크에 30,000여 명의 정규군을 집결시켰고, 그의 대규모 정규군이 바다를 건너 잉글랜드로 상륙할 수 있도록 칼레에 대형 운반선을 준비 시키도록 하였다.




곧이어 본국 에스파냐에서도 대형 수송선들이 파르마공작이 이끄는 정규군과 영국의 도버 해협에서 합류하기 위하여 장비 및 군수물자를 적재 하기 시작했다. 얼마후 산타크루즈후작의 지시 아래 130여 척의 무장된 함대가 구성되었고, 함대에는 모두 20,000 여명의 군인이 탑승했다. 또한 전쟁에 필요한 모든 도구들과, 노새, 말, 무기, 대포, 화약, 총 그리고 음식과 음료들도 모두 적재 되었다.




마침내 20,000여명의 정규군과 10,000여명의 수병을 태운 에스파냐의 함선 130척이 만반의 준비를 마쳤고, 메다나 시도니아 공작의 명령아래 1588년 5월 18일 전 함대가 포르투갈의 리스본을 출항하였다. 에스파냐의 무적함대가 잉글랜드와 프랑스사이에 뻗어있는 도버 해협으로 향한 것은 먼저, 잉글랜드의 전함들을 격파하고 뒤따르는 컨보이들과 프랑스 칼레에서 잉글랜드로 건너갈 파르마공작 정규군의 대형 수송선을 엄호하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하여 잉글랜드에 상륙한 육군은 런던으로 행군을 개시하였을 것이고, 런던을 포위한 후 여왕을 붙잡아 잉글랜드를 정복할 계획이었다. 그리고는 항복한 엘리자베스 여왕에게서 잉글랜드에서의 카톨릭계 인정과 네덜란드에 대한 지원중단, 그리고 신대륙의 식민지에서 약탈해간 부를 모두 배상할 것을 강요 하였을 것이었다.




한편, 잉글랜드의 여왕 엘리자베스는 전 해군들에 지시하여 해역을 방어하라는 명령을 내렸고, 즉각 모든 함선들이 일제히 방어태세에 돌입했다. 귀족 하워드 제독이 이끄는 80여척의 잉글랜드 해군함은 그의 명령에 따라 2개의 함대로 분할 되어, 제 1함대는 해협의 지리에 익숙했던 귀족 헨리 세이무어의 명령아래 해협에서 에스파냐의 정규군의 공격을 방어하는 것이었고, 나머지 함대들은 영국 플리머스항에 집결하여 접근해오는 에스파냐의 무적함대를 저지 하는 것이었다.




1588년 7월 19일, 서부 플리머스항에 집결된 함대의 사령관 하워드 제독은 해적 출신의 선장 프란시스 드레이크와 함께 잉글랜드의 남서부에서 북상해오는 에스파냐의 무적함대를 발견하였고, 즉각 전함대 전투명령을 하달했다. 영국 해군에게는 다행히도 당시 에스파냐 무적함대에는 대부분이 수송선인 컨보이로 구성되어 있었고, 이들을 호위하는 것은 20척의 대형 전함들었다.




해상 근접전을 예상했던 에스파냐의 대형 호위전함들은 모두 무거운 단거리 함포를 탑재한데다가, 상선을 개조한 작은 배들은 모두 정규군에게 지원되어질 엄청난 양의 화약을 적재했던 것이었다. 결국 갤리온들로 구성되어진 영국해군함들은 다가오는 에스파냐의 무적함대를 피해 주위를 선희하며 컨보이들을 향해 발포를 시작했고, 무거운 보급품들을 적재했던 컨보이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해야만 했다. 게다가 영국해군의 갤리온 선박에는 모두 장거리포 컬버린과 캬로네이드를 탑재하여 접근전을 펼치려고 다가오는 에스파나의 함대를 따돌리고 원거리에서 포격을 가하였다.






비록 무찌르지는 못하였지만, 에스파냐의 주력함대가 드레이크경에 의해 나포되거나 손상을 입었고, 수많은 화약 수송선들이 손한번 써보지도 못한채 갤리온선의 장거리 포 카로네이드의 포격을 받아 가라 앉거나 바다위에서 화염에 휩싸인후 폭발해 버렸다. 지리멸멸 흩어져 버린 에스파냐의 함대들은 황급히 영국본토와 와이트 섬 사이의 솔렌트 해협을 통과해 빠져 나갔고 영국 함대들은 그들이 칼레에 돛을 내릴 때까지 괴롭혔다.




7월 28일, 영국해군은 다시 화염선을 이끌고 정박해 있던 에스파냐의 함대로 돌진해 들어가 대열을 뿔뿔히 갈라 놓았고, 다음날인 29일은 그레이브라인스 전투가 절정에 달해 8시간 동안 이어지면서 에스파냐의 함대는 차츰 괴멸 되어 갔다.




7월 30일, 그레이브라인스의 전투는 계속해서 이어졌고, 파르마공작의 정규군은 잉글랜드와 네덜란드의 저지에도 불구하고 상륙을 계속해서 시도하였다. 한편, 잉글랜드의 해군은 45미터의 유효사거리를 갖춘 에스파냐의 무적함대들의 함포을 피해 또다시 화염선들로 공격을 이어갔고, 에스파냐의 함선들은 화염에 휩싸이며 바다속으로 가라 앉아 버리고 메디나 시도니아 공작의 기함마저도 폭발해 버렸다.







스페인 무적합대의 패배(1588년 헨리크 코르넬리즈)

군수품이 부족했던 영국의 해군으로서는 화약이 부족한점을 감안해 에스파냐의 전함 1척을 가라 앉히는 데 2척이 동시에 투입되었고, 종결되는 즉시 해안으로 운항하여 보급을 받거나 스코틀랜드해안으로 달아나는 에스파냐의 선박을 약탈하였다. 결국 대패를 예감한 에스파냐의 수병들은 더 이상의 참사를 막기 위해 북해를 떠나기로 결심했고, 77척만이 겨우 본국으로 선로를 잡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스코트랜드와 아일랜드 해에서 만난 모진 태풍으로 인해 치명적 손상을 견디며 겨우 회항해가던 함선들마저도 대부분 바다속으로 가라 앉아 버렸다.






살아남은 수백명의 수병들과 부상자들은 겨우 해안가로 헤엄쳐 갔고, 사로잡힌 루손의 돈 알론소 외 다른 장교들은 그들의 부하들에게서 분리된 후, 발가벗겨 진채 100마일 떨어진 드로그헤다 사령부에 도보로 끌려갔다. 불행중 다행스럽게도 무적함대의 기함이었던 산 마틴호는 9월 23일 무사히 고국 에스파냐로 귀항했고, 정비후 대서양 함대에 편입 되었다. 결국, 그렇게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아르마다는 에스파냐와 함께 몰락해 가기 시작했고, 이와는 달리 잉글랜드의 해군은 역사를 반전시켜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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