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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11-05 08:39:376959 
열국지와 고건 대망론-옮김
양승국
일반
출전 : dailyseoprsie
고건 전 총리가 한나라당 성향의 지지자들에게 인기가 있다는 것은 의외의 일이기도 하고, 곰곰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고 전 총리는 김대중 정부 당시 서울시장에 이어 참여정부 초대 총리를 지냈다는 점에서 정치적 역정으로는 한나라당 지지성향과 조금 거리가 있다.



그러나 참여정부에서도 정체성 시비를 늘상 일으켰듯이 고 전 총리의 성향은 안정지향적이고, 보수성향의 기질에 맞는 측면이 있기도 하다. 사실 그가 참여정부 초대총리가 된 것도 당시 국회 압도적 다수당을 차지하고 있는 한나라당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에 그의 이런 성향이 점수를 얻었다는 분석이 정확할 것이다.



최규하 전 대통령에 이어 대통령 권한대행을 경험했던 고 전 총리가 공직에서 물러난 것은지난 5월 24일. 그 이후 고 전총리는 공식석상에 별로 나타난 적이 없다. 그러나 각종 여론조사에서 그는 항상 차기 대통령 후보로 일정한 지분을 차지하고 있다. 최근 한 주간지의 보도에 난 대로 고 전총리를 추적하기 시작했다.



고 전총리는 거의 매일 아침 서울 동숭동 뒤편에 있는 낙산공원을 산책한 뒤 십수 년째 이용하고 있는 명륜동 대중목욕탕에 들러 목욕을 한다. 집에서 아침 식사를 한 뒤 그는 문예회관 대극장 옆에 있는 카페 모짜르트를 찾는다. 동숭포럼 멤버들은 주로 동숭동과 명륜동에 살거나 사무실이 있는 각계 인사들이다. 이세중 변호사, 김재순 전 국회의장, 정경균 전 서울대 보건대학원장, 한종훈 아프리카미술박물관장 등이다. 그는 ‘동숭포럼’ 회원들과 만나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눈다.



고건 전 총리는 모짜르트에서의 티타임이 끝나면 종로구 연지동 사무실로 걸어서 출근을 한다. 카페에서 사무실까지는 도보로 10여분 거리. 여전도회관에 있는 사무실은 7~8평 규모. 10여년 전부터 쓰던 단출한 사무실이다. 3면이 책으로 둘러싸여 있어 작가의 집필실을 연상시킨다. 이 사무실에는 여비서 한 사람만 있다.



고건 전 총리는 이 사무실에서 찾아오는 손님을 만나고 책을 읽는 것으로 하루를 소일한다. 점심도 대부분 사무실 근처(동숭동, 이화동 등)에서 해결한다. 동숭동의 일식집, 이화동의 설렁탕집 등 그가 단골로 찾는 음식점들은 고건 전 총리와 인연을 맺은 지 최소 10~15년이 훌쩍 넘는다.



여기까지는 한 주간지의 보도 그대로였다. 보도에 따르면 그는 그는 측근들에게 “이곳에 사무실을 두고 있으니 정치인들과 만날 일이 없어 여러가지로 편한 게 많다”고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직함은 여럿 가지고 있다. 현재 그가 갖고 있는 직함은 국제투명성기구 자문위원 겸 한국본부 고문, 환경운동연합 고문, 에코포럼 공동대표직이다. 그는 지난 10월 초 국제투명성기구 자문위원에 위촉됐다. 독일 베를린에 본부를 둔 국제투명성기구(TI•회장 피터 아이겐)는 반부패 운동을 펼치기 위해 조직된 국제적인 비정부기구(NGO)로,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 등 34명이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국제투명성기구는 10월 중순 아프리카 케냐 총회를 열면서 그를 초청하기도 했으나 사정이 있어 가지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그의 사무실 문에는 ‘Transparency International KOREA’라는 영문이 붙어 있었다.



기자가 고 전 총리를 본 것은 그의 동선을 추적하면서 카페 모짜르트에 들렀을 때였다. 김재순 전 국회의장을 비롯한 보수 노정객들이 앉아 있었다. 안면이 없어 인사를 드릴까 말까 하고 있던 차에 고 전총리가 들어오는 모습을 보았다. 정권의 중요한 위치에 있던 사람이 물러난 뒤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며 언론과의 인터뷰를 적극 사양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어떤 방식으로 접근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불쑥 다가갔다.



예상대로 고 전 총리는 기자 신분을 밝히자 극구 인터뷰를 사양했다. 고 전 총리에게서 들은 얘기는 딱 두마디다. 먼저 한 얘기는 '의인물용 용인무의(疑人勿用 用人無疑)'라고 총리에서 물러날 때 뉴스가 됐던 한자성어로, 해석하면 “의심스런 사람은 쓰지 말고 쓰는 사람은 의심 말라”는 구절이었다.



당시에는 뒷부분 쓰는 사람 의심 말라고 노대통령에게 항변한 것처럼 기사가 됐지만 오늘 고총리가 강조한 것은 앞부분인 듯한 느낌이었다. 의심스런 사람은 쓰지 말라고 하면서 열국지의 고사인 ‘관포지교’에 얽힌 일화를 소개했다.



할 수 없이 이에 대한 해석은 모짜르트에 나와 있던 분들로부터 들을 수밖에 없었다. 그가 강조하는 열국지 인사철학, 즉 “관포지교로 소문난 관중이 후계자 선정에서는 포숙을 제외한 고사를 눈여겨 봐야 한다”는 얘기의 숨은 의미는 무엇일까.



관포지교 고사 이해찬 총리를 빗댔다?



고 전 총리 지인들의 해석을 종합하면 이렇다.



춘추시대 제나라의 명재상 관중은 임종을 맞는 자리에서 자신의 가장 절친한 친구요 인생의 은인인 포숙을 후임자 후보 자체에서 제외시켰다. 이유는 “포숙이 악을 미워하는 정도가 지나쳐 포용을 못하기 때문”이라고 관중은 설명했다.



수초라는 간신이 이 말을 포숙에게 전하며 둘 사이를 이간하려 하자 포숙은 “관중의 정치적 안목은 매우 탁월하며 나 또한 관중의 평가를 전적으로 신뢰한다”며 덤덤한 반응을 보였다.



고 전 총리가 포숙의 정치적 결벽성을 문제시한 것은 일단 여당의 개혁 강공 드라이브에 대한 우려 표명으로 해석된다는 것이다. 그는 지난 5월 퇴임 후 동숭동 카페에서 아침마다 김재순 전 국회의장 등 7~8명과 모임을 갖고 있다. 이 자리는 ‘보수’를 자처하는 원로인사들이 참석자의 대부분이다 보니 열린우리당의 개혁정책에 대해서는 지극히 비판적 견해만을 듣게 되는 날이 많다.



그러나 포숙이 자신에 대한 관중의 부정적 평가를 선선히 수긍했다는 대목을 통해서는 여당내 각 정치그룹에 지나치게 튀는 행동은 좋지 않다는 충고를 보내고 있다는 식의 해석이 가능하다.



그러나 여권의 차기구도와 관련지어 생각하면 대단히 의미가 함축적이란 생각이다. 관중이 포숙을 후계자로 지정하지 않은 것은 고 전총리의 해석대로라면 융통성이 없고 너무 강직해서인데, 마치 이해찬 총리를 지칭하는 듯한 인상도 들기 때문이다.



과연 고 전 총리의 본심은 무엇일까. 독자들에게 확실하게 전할 수 없어 안타깝게 생각한다. 고 전 총리는 하는 일이 없어도 인기가 유지되는 특이한 인물이다. 물론 이런 그의 인기는 보수적인 인사들이 볼 때 노무현 대통령과 대비되는 측면이 있기 때문일 것이고, 또한 한나라당의 차기 후보들이 모두 ‘2%’ 부족하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다음은 풀어 쓴 관포지교의 고사.



‘관포지교(管鮑之交)’로 잘 알려진 관중과 포숙은 춘추시대 제나라의 명 재상들이다. 두 사람은 어려서부터 동문수학하며 의형제 관계를 맺어왔다.

포숙은 관중의 형편이 어려운 줄 알았기 때문에 그가 부도덕하게 이익을 탐하더라도 이를 눈감아 줬다. 이에 대해 관중은 후일 “나를 낳아준 사람은 부모지만 알아준 사람은 포숙”이라는 또 하나의 고사를 남겼다.

제나라의 정세가 혼란해져 공자 소백과 공자 규가 제나라 제후의 자리를 다투자 관중은 포숙에게 각기 다른 공자를 섬기자는 도발적인 제의를 한다. 누가 이기든 살아남은 사람이 패한 쪽의 친구를 살려낼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결과는 공자 소백을 섬겼던 포숙의 승리였다. 약속에 따라 포숙은 관중을 살리도록 자신의 주인인 공자 소백을 적극 설득했다.

소백은 마침내 한때 적장이었던 관중을 기용하게 되고 그의 재능을 활용해 춘추시대 5패중 선두 주자인 제환공으로 이름을 떨치게 됐다.

관중이 정치와 경제 군사 외교 전 부문에서 실권을 행사하는 동안 포숙은 별다른 불만없이 정부의 기강을 잡는 역할만을 수행했다. 간혹 관중이 지나치게 사치하는 것 아니냐는 정도의 항의만 제기할 뿐이었다.

고건 전 총리가 강조하듯 ‘쓰는 사람에 대해서는 일체 의심을 말라’는 원칙을 제환공과 포숙이 관중에게 보여준 것이다.

관중이 임종을 맞게 되자 제환공이 먼저 “후임자로 포숙이 어떤가”를 물었다. 관중은 “포숙이 악한 것을 미워하는 마음이 지나쳐 오히려 정치를 그르칠 수 있다”며 다른 인물을 후임으로 추천했다. 고 전 총리는 이부분에 대해서는 ‘의심하는 사람을 쓰지 않는’ 전형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관중이 추천한 인물도 얼마 안가 세상을 뜨자 재상 자리는 선택의 여지 없이 포숙에게 돌아갔다. 관중의 예측대로 포숙은 조정에서 간신을 몰아내자는 개혁 정치를 강하게 밀어붙였다. 하지만 정치적 역량이 부족한 포숙의 개혁에 대해 제환공부터 피로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또 관중 시대에는 알아서 임금의 비위나 맞추는 것으로 만족한 간신들이 자구책의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정치적 술수를 꾀하기에 이르렀다.

정치현실에 자포자기한 포숙마저 세상을 뜨자 제나라 조정은 거칠 것 없는 간신판으로 타락했다. 여기다 제환공의 아들들마저 저마다 세자의 자리를 노리고 권력투쟁을 벌였다.

패자(覇者, 제후의 우두머리)로 이름을 떨쳤던 제환공은 아들과 간신들에게 감금돼 단 한명의 시종만 지켜보는 가운데 최후를 맞았다. 그의 시신은 한 여름에 수십일 동안이나 방치돼 완전히 부패하는데도 공자들은 아비의 상을 치루기는커녕 병력을 동원한 시가전만 지속했다는게 관포지교라는 고사의 마지막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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