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국연의

 

   
 
중국사
1. 선사
2. 삼대
3. 춘추전국
4. 진한
5. 위진남북
6. 수당오대
7. 송요금원
8. 명청
9. 국공
10. 인민공화국
11. 통사
· 오늘 :  20 
· 어제 :  58 
· 최대 :  2,389 
· 전체 :  1,509,394 
 
  2010-03-22 12:42:304853 
황천탕 싸움의 여장군- 양홍옥
운영자

황천탕 싸움을 승리로 이끈 남송의 여장군 양홍옥




서기 1130년 건염(建炎) 4년 한세충(韓世忠)과 양홍옥(梁紅玉)은 황제의 명에 따라 경구(京口) 수비를 맡았다. 금나라의 장수 올술(兀述)은 10만 명의 군사를 이끌고 장강을 도하하여 남정에 나섰다가 초산(焦山) 일대에서 송군과 조우하여 회전에 들어갔다. 기녀 출신으로 한세충의 부인이 된 양홍옥은 십 수장 높이의 망루에 올라 날아드는 화살을 무릅쓰고 친히 북을 울려 작전을 지휘했다. 송군 진영은 작전에 들어가기 전에 규정을 정하여 북을 울리면 앞으로 나아가고 북을 멈추면 진격을 멈추고 수비에 임하여 싸우거나 멈추거나 순리에 따르기로 규율을 정했다. 송나라 군사들의 사기는 싸움이 진행될수록 왕성해졌다. 금군이 비록 군사 수에서 절대적인 우위에 있었으나 결코 송나라 수군이 친 방어선을 돌파할 수 없었다. 결국 송군은 밤사이에 벌어진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었다. 금군이 장강 도하작전에 실패한 후에 황천탕에서 송군에 의해 철통과 같이 포위되어 여러 번에 걸쳐 강화를 시도했으나 모두 송군에 의해 거부당했다. 양홍옥은 한세충에게 권하여 승세를 타고 금군의 뒤를 추격하여 올술(兀述)의 금군을 제압하라고 했다. 그러나 한세충은 양홍옥의 제안을 따르지 않았다.

  

금군은 황천탕에서 포위되어 48일 간 진퇴유곡에 빠졌다. 이에 올술은 한인 토착민의 도움을 받아 당시 폐하천인 노관하(老鸛河)의 30리에 달하는 옛 물길을 굴착하여 한세충이 미처 깨닫기도 전에 황천탕을 빠져 나왔다. 이로써 남송 왕조는 가까스로 강남의 땅을 보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일로 해서 송사(宋史)에 시를 지어 양홍옥을 찬양했다.




舊是平康女(구시평강녀),

옛날의 평강방 기녀가




今為定遠侯(금위정원후),

금일에는 정원후가 되었네




戎装如月脖(융장여월발),

갑옷 입은 모습은 밤하늘의 초승달과 같고




帶劍亦嬌柔(대검역교유),

칼 차고 있는 자태 역시 아름다웠다.







眉鎖江心恨(미쇄강심한),

눈주름에는 장강의 시름이 드리웠고


心分國士憂(심분국사우),

국사의 가슴속에는 근심이 가득찼다.




金山曾擊鼓(금산증격고),

금산에 이미 울려퍼진 북소리에




贏得姓名留(영득성명유)。

그녀의 이름은 천추에 남았구나!





송사의 기사에 의하면, 금군이 패배하고 달아난 후, 양홍옥은 그 공으로 상을 청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녀의 남편 한세충이 실기하여 적군을 놓친 죄를 물어야 한다는 탄핵하는 내용의 상소를 올렸다. 그녀의 상소가 올라오자 송나라 조정의 관료들은 모두 놀라 전전긍긍한 나머지 그녀에게 양국부인(梁國夫人)이라는 봉호를 내렸다.




양홍옥의 그러한 행동은 당시 사람들로써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황천탕 싸움은 마땅히 전략상 일대 승리를 취한 싸움이었음에도 그녀는 남편의 전공에 대한 포상을 청하지 않고 오히려 파면을 요청했다. 그렇다면 어째서 그녀는 팔을 엉뚱하게 밖으로 뻗어 자기 남편을 탄핵한 것일까? 두 사람의 부부간의 정은 금탕(金湯)처럼 견고했으며, 그렇다고 양홍옥의 전공이 자기 남편보다 컸기 때문에 자기가 대신 취하려고 했던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결국 양홍옥이 탄핵한 것은 정말로 남편을 해치기 위해 독수를 펼친 것인가? 양홍혹의 자기 남편에 대한 탄핵한 참된 이유는 과연 무엇 때문이었는가?

 

양홍록이 남편을 탄핵한 진짜 이유는 단지 그를 황제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였지 진정으로 탄핵한 것은 아니었으며 그와 같은 행동은 당시 황제나 진회(秦檜)와 같은 부류들로부터 보신할 수 있는 방책으로써 실재로는 한세충을 구하기 위한 고도의 계산된 행동이었다.




만일 양홍옥이 서장을 올려 한세충을 탄핵하지 않았다면, 진회 등과 같은 부류들로부터 탄핵을 받게 되어 그 결과는 책임을 추궁 받아 파직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양홍옥의 예상치 못한 행동으로 한세충은 황제나 진회 등과 같은 부류들로부터 탄핵을 당하지 않고 황천탕 전역에서 금군을 놓친 책임을 면하게 되고 오히려 남송정권으로부터 중용될 수 있었다.

  

양홍옥이 한세충을 탄핵이라는 수단을 이용하여 그를 구한 것은 다음 세 가지 이유에서였다.




1. 황천탕 전역에서 금군이 포위망을 뚫고 달아날 수 있었던 것은 확실히 일정부분 한세충에게 책임이 있었다. 적을 가볍게 보고 방심한 것과 주위 사람들의 건의에 귀를 기우리지 않은 결과 금군을 노친 것이다.




2. 이 때 주화파 세력에게 일종의 눈에 가시였던 한세충으로써는 일종의 예리한 칼이 몸에 꽂힌 것과 같은 경우였다. 지휘상 전략적인 착오를 좌시할 리가 없었던 주화파를 이끌던 진희는 한세충에 대해 탄핵을 진행시키려고 했으나 뜻밖에 한세충의 부인이 그의 남편을 선수를 쳐서 탄핵함으로써 그 추이를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3. 세상사람들은 모두 한세충과 양홍옥의 부부애가 매우 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양홍혹이 자기의 남편을 탄핵하는데 주동이 된 것은 황제에 대한 충성심을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표현한 것이다. 부부 두 사람 모두 황제의 재산이고 양홍옥의 그와 같은 자기 남편에 대한 탄핵은 황제에게 충성을 표현한 것이다. 남편의 생명도 개의치 않을 정도로 나라를 위해 충성을 다한다는 양홍옥의 충심은 황제의 마음을 움직이게 만든 것이다.

www.stnn.cc









목록
2412
[] 명나라 왕세정이 편찬한 세설신어보

김장환(연세대학교 문과대학 중어중문학과 교수) ≪세설신어≫와 ≪하씨어림≫의 결합−≪세설신어보≫ 중국 위진남북조 송나
운영자 20-03-11
[] 진순신(陳舜臣)과 야율초재(耶律楚材)

진순신(陳舜臣)과 야율초재(耶律楚材) 지난 1월21일 일본에 살고 있는 화인(華人) 작가 진순신(陳舜臣)(1924-2015)이 세상을 떠났다. 90세였다.
운영자 15-02-10
[] 거울제국(Mirror Empires)

거울제국(Mirror Empires) 서력으로 13세기 초반. 중국에서는 한(漢)족의 송나라와 여진족의 금(金)나라가 각축전을 벌이고 있을 시기. 유럽은 십
운영자 13-12-19
[] 학경(郝经)

학경(郝经) 1223년에 태어나서 1275년에 죽은 원나라 초기 때의 명유(名儒) 자는 백상(伯常)이고 조상의 원주지는 지금이 산서성 릉
운영자 13-12-19
[] 야율초재(耶律楚材)

야율초재(耶律楚材) 천하를 정벌하고, 지혜로 원나라를 돕다 [5000년 중국을 이끌어온 50인의 모략가,] 야율초재는 금나라 장종 명창 원년인
운영자 13-12-19
[] 이묘환태자(狸猫換太子)의 진상 - 송인종(宋仁宗) 생모의 수수께끼

송인종(宋仁宗) 생모의 수수께끼 : 이묘환태자(狸猫換太子)의 진상 송인종 조정(趙楨)은 진종(眞宗)의 아들이다. 천희2년(1018년)에 왕이 되고,
운영자 13-10-13
[] 송사전( 宋史筌 ) 요열전( 遼列傳 )

송사전( 宋史筌 ) 요열전( 遼列傳 ) 야율경(耶律璟)의 어렸을 적 이름은 술률(述律)이니 덕광(德光)의 맏아들이요 어머니는 소씨(蕭氏)이다. 그의
운영자 12-10-10
[] 송사(宋史) 금열전(金列傳)-2

16년(금 선종 원광(元光) 2, 1223), 순(珣)이 죽었다. 순이 정력적으로 정치를 하여 정무에 부지런하고 백성을 잘 보살펴주었다. 그러나 본성이 남을
운영자 12-07-04
[] 宋史(송사) 金列傳(금열전) -1

宋史 金列傳 (<청장관전서> 제 23권 송사 금열전) 완안아골타(完顔阿骨打)의 개명은 민(旻), 한성(漢姓)은 왕(王)인데, 핵리발(劾里鉢)의
운영자 12-05-22
[] 바투의 유럽 원정

바투의 원정 개요 전쟁주체 : 몽골족, 루스, 폴란드-독일(슐레지엔), 헝가리 전쟁시기 : 1236년-1242년 전쟁터 : 현재의 러시아, 폴란드,
운영자 12-01-28
[] 징기스칸의 정벌

징기스칸의 정벌 -푸른 이리의 후예들, 대제국을 세우다. - 거울제국(Mirror Empires) 서력으로 13세기 초반. 중국에서는 한(漢)족의
운영자 12-01-09
[] 대제국을 지배한 여자 기황후

훗날 세계 제국의 지배자로 군림한 기황후의 출발은 절망뿐이었다. 고려인 기자오(奇子敖)의 막내딸이 원나라에 바쳐지는 공녀(貢女)로 결정되었을
양승국 05-06-01
[] 구양수의 종수론(縱囚論)

종수론(縱囚論) 군자에게는 신의를 행하고, 소인에게는 형벌을 내린다. 죄과가 매우 커서 극에 달하면 사형에 처하는데, 이는 소인 중 특
양승국 04-12-07
[] 황천탕 싸움의 여장군- 양홍옥

황천탕 싸움을 승리로 이끈 남송의 여장군 양홍옥 서기 1130년 건염(建炎) 4년 한세충(韓世忠)과 양홍옥(梁紅玉)은 황제의 명에 따라 경구(京口
운영자 10-03-22
[] 文天祥(문천상)

文天祥(문천상) 자는 송서(宋瑞) ·이선(履善)이고 호는 문산(文山)이다. 강서성(江西省) 길수현(吉水縣) 출신이다. 1255년 20세때 진사에 수석
운영자 09-05-02
[] 청명상하도

淸明上河圖(청명상하도)는 청명 절기에 강의 주변 시가지를 구경한 것을 그린 것이라는 의미로 보면 될 것 같다. (上河(상하)의 上(상)은 구경하다라
운영자 09-04-28
[] 송과 요의 투쟁

송과 요의 투쟁 ① 거란의 남진과 후진의 연운16주 할양 송과 거란(요)과의 국제관계를 고찰하는데 있어 거슬러
양승국 06-08-05
[] 한세충과 황천탕(黃天蕩) 싸움

한세충(韓世忠)(1088~1151), 자는 양신(良臣)으로 연안(延安)사람이다. 남송 때 활약한 사람으로, 금에 대항한 명장의 한 명으로 꼽힌다. 한세충은 악
운영자 08-03-02
[] 바투가 세운 Golden Horde 제국의 영역

바투 (Batu ; 1207 ?~1255) 킵차크한국의 제1대 군주로서 칭기즈칸의 손자로서 1227년 칭기즈칸의 맏아들인 아버지 주치[朮赤]의 영지를 계승
운영자 07-09-11
[] 몽골기마군단의 유럽정벌전2-사요강전투

사요 섬멸전 (Battle of the Sajo river, April 11, 1241) 기동 유럽원정 몽골군의 총 병력은 12만 명이었지만, 순수 몽골 기병은 5만 명이
운영자 07-06-12
1 [2][다음][맨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