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국연의

 

   
 
중국사
1. 선사
2. 삼대
3. 춘추전국
4. 진한
5. 위진남북
6. 수당오대
7. 송요금원
8. 명청
9. 국공
10. 인민공화국
11. 통사
· 오늘 :  20 
· 어제 :  58 
· 최대 :  2,389 
· 전체 :  1,509,394 
 
  2015-02-10 22:50:112061 
진순신(陳舜臣)과 야율초재(耶律楚材)
운영자

진순신(陳舜臣)과 야율초재(耶律楚材)


지난 1월21일 일본에 살고 있는 화인(華人) 작가 진순신(陳舜臣)(1924-2015)이 세상을 떠났다. 90세였다. 그는 일본인 시바 료타로(司馬遼太郞)(1923-1996), 재일한국인 작가 김달수(1920-1997) 등과 함께 동북아시아에서 대한 좌담회를 통해 한중일 3국이 민족주의를 극복하고 대륙의 거대한 꿈을 키워야 한다고 이야기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특히 일본의 저명한 역사 소설가 시바 료타로는 진순신과 인연이 깊다. 두 사람은 각 각 오사카와 고베 출신으로 오사카 외국어 대학 1년 선후배 사이다. 진순신은 인도어를, 시바 료타료는 몽골어를 전공하였다. 시바 료타로는 사기(史記)를 지은 한(漢)의 역사가 사마천(司馬天)을 존경하여 필명을 그렇게 지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사마천에 가까이 가기에는 아직도 요원하다는 의미의 요(遼)를 넣었다. 본명은 후쿠다 데이이치(福田定一)이다. 시바 료타로는 해박한 역사 지식을 중심으로 TV대하드라마 작가로도 유명하다.

진순신은 우리의 이순신(李舜臣) 장군의 이름 한자가 꼭 같고 발음도 같아서인지 친밀감이 갔다. 언젠가 그가 한국에 와서 ‘한국 분들은 저의 이름을 모르는 분은 없을 것’이라는 농담으로 이순신 장군을 거론했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베이징의 한국 대사관에 근무하면서 우연한 기회에 그의 작품에 대해 관심을 가졌다.

베이징에 살 때는 서울에서 손님이 오면 세계문화 유산 이화원(?和園)으로 안내할 기회가 많다. 효자(孝子) 건륭제가 어머니의 장수를 위해 거대한 원림을 만들었다. 당시 옥천산에서 흘러나오는 물로 형성된 옹산박(瓮山泊)을 준설하여 그 흙으로 60m 높이의 인공산 만수산(萬壽山)을 만들고 더 넓고 깊어진 옹산박을 곤명호로 개명하였다. 원림의 이름은 청의원(淸?園)이라고 불렀다. 1764년도였다. 그러나 그로부터 거의 100년 만인 1860년 2차 아편 전쟁 시 영불 연합군에 의해 인근의 원명원과 함께 약탈당하고 불 태워져 폐허가 되었다.

광서제 때 서태후는 자신이 은퇴 후 살 곳을 생각하고 국가 예산을 무리하게 조달하여 1884-1895년간 청의원을 복구하였다. 그리고 화합을 추구하는 의미의 ‘이양충화(?養衝和)’ 즉 이화원이라는 이름으로 바꾸었다. 이화원으로 들어가면 서태후의 정전 인수전이 나오고 그 곳을 지나면 야율초재의 사당이 나온다. 사당을 지나면 곤명호 옆으로 지춘정이 나오며 그 옆으로 문창각이 서있다.

당시 야율초재(耶律楚材 1190-1244)는 누군지 잘 몰랐지만 이화원과 어울리지 않아 보였다. 귀에 익지 않은 이름으로 한족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야율초재에 대해 알고 싶을 때 진순신의 동명의 소설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진순신은 중국의 유명한 인물에 대해 중국 현지에서 취재하여 소설 속에 많은 에피소드로 풀어 넣어 그가 아니면 쓸 수없는 재미있는 역사 소설을 지었다.

야율초재의 가족은 요를 건국한 야율아보기의 직계 후손으로 요(거란족)의 왕족이지만 요가 망하고 여진족이 세운 금에서 벼슬을 하였다. 야율초재는 금의 중도(中都 지금의 北京)의 서쪽 이화원 근처의 옥천산 아래에서 태어났다. 그의 호가 옥천노인(玉川老人) 된 것도 이와 관련된다. 그의 아버지는 금에서 재상을 지내고 은퇴한 환갑노인이고 어머니는 한족 양씨였다. 아버지가 손자 같은 늦둥이 아들의 이름을 ‘초재’라고 지었다. 좌전의 고사 ‘수초유재 진실용지(雖楚有材 晉實用之)’라는 전고에 따와 지었다고 한다. 일반적인 4자성어로는 ‘초재진용’이라고 말한다. 초나라의 인재를 진나라가 영입해 쓴다는 이야기이다.

이미 금나라가 기울고 있고 어린 이 아이는 금이 아닌 몽골에서 쓰임을 받을 것이라는 예언이었다. 아버지가 죽고 나서는 어머니 양씨는 초재에게 일반 학문뿐만이 아니라 천문 지리 복술 등 모든 것을 골고루 배우도록 하였다. 초재가 24세 때인 1214년 칭기스 칸은 중도를 함락하고 많은 금의 명문 가족을 포로로 하였다.

포로 중에 재상의 아들로 장신인데다가 젊지만 수염을 길게 기룬 초재의 당당한 태도에 칭기스 칸의 마음을 움직였다. 특히 초재가 천문 지리에 밝고 점성술 등 복점에 능해 칭기스 칸은 ‘우르토사리(긴 수염 long beard)'라는 애칭을 지어주고 자신의 측근 참모로 만들어 두터운 신임을 주었다. 초재는 칭기스 칸의 중앙아시아 원정의 본대에도 수행한다.

초재는 아버지 거란족(유목민)의 유전자와 한족인 어머니(유교사상)의 유전자를 두루 갖추었다. 칭기스 칸 사후 그의 3남 오고데이가 ‘칸’이 된다. 초재는 오고데이 칸에게, 항복하지 않은 성민(城民)을 모두 학살하는 몽고의 옛 제도의 폐지를 건의한다. 몽골은 중국의 화북지방을 점령하고 그곳에 농사짓고 있던 한족을 모두 죽이고 화북지방을 거대한 초지로 만들어 양을 키우겠다는 황당한 발상을 내 놓았다.

초재는 전쟁의 목적은 사람과 땅을 얻기 위한 것인데 사람이 없으면 땅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고 설득한다. 그는 한족 포로를 조직화하여 농사를 짓게 하여 그 수확에 대해 과세하면 사람도 살리고 세수도 확보하여 전쟁 수행에 큰 도움이 된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조직이 움직이게 하기 위해 유학을 공부한 실무관료를 양성 몽골이 중국의 전통과 문화를 살리면서 중국 대륙을 통치하도록 권유했다. 몽골이 중앙아시아에서 보인 야만적 통치가 중국에서는 문명적이 된 것도 초재의 공로로 보인다. 초재를 몽골제국의 설계사라는 말이 이렇게 해서 나왔다.

초재는 풍수에도 능하여 자신이 죽은 후 태어 난 곳으로부터 멀지 않은 옹산박을 바라보는 곳에 자신의 묘 자리를 잡아 두었다. 그의 묘가 한동안 옹산박 동편의 호반에 있었는데 건륭제가 이곳을 대대적으로 준설하면서도 충신 초재의 사당을 그대로 보존한 것이 지금에 이른다.

야율초재의 소설을 보면 중국 사람이면서 일본 땅에 태어나 일본을 위해 활동하는 진순신이 자신의 이야기(초재진용)로 생각하고 이 방대한 소설을 썼는지 모른다. 지금 글로벌 시대에 많은 우리의 젊은이들이 서울에서 공부하고 미국 일본 중국 등 글로벌 기업에서 취업하여 활동하고 있다. 한국판 초재들이다. 그들에게 야율초재의 이야기는 참고가 될 것 같다.

진순신은 아편전쟁, 청일전쟁, 태평천국 등 수 많은 역사 소설로 일본에서 ‘중국역사소설’ 장르를 확립, 많은 독자를 가지고 있다. 작가 진순신의 명복을 빈다


백가쟁명 유주열(중앙일보. 2015. 2.11

목록
2412
[] 명나라 왕세정이 편찬한 세설신어보

김장환(연세대학교 문과대학 중어중문학과 교수) ≪세설신어≫와 ≪하씨어림≫의 결합−≪세설신어보≫ 중국 위진남북조 송나
운영자 20-03-11
[] 진순신(陳舜臣)과 야율초재(耶律楚材)

진순신(陳舜臣)과 야율초재(耶律楚材) 지난 1월21일 일본에 살고 있는 화인(華人) 작가 진순신(陳舜臣)(1924-2015)이 세상을 떠났다. 90세였다.
운영자 15-02-10
[] 거울제국(Mirror Empires)

거울제국(Mirror Empires) 서력으로 13세기 초반. 중국에서는 한(漢)족의 송나라와 여진족의 금(金)나라가 각축전을 벌이고 있을 시기. 유럽은 십
운영자 13-12-19
[] 학경(郝经)

학경(郝经) 1223년에 태어나서 1275년에 죽은 원나라 초기 때의 명유(名儒) 자는 백상(伯常)이고 조상의 원주지는 지금이 산서성 릉
운영자 13-12-19
[] 야율초재(耶律楚材)

야율초재(耶律楚材) 천하를 정벌하고, 지혜로 원나라를 돕다 [5000년 중국을 이끌어온 50인의 모략가,] 야율초재는 금나라 장종 명창 원년인
운영자 13-12-19
[] 이묘환태자(狸猫換太子)의 진상 - 송인종(宋仁宗) 생모의 수수께끼

송인종(宋仁宗) 생모의 수수께끼 : 이묘환태자(狸猫換太子)의 진상 송인종 조정(趙楨)은 진종(眞宗)의 아들이다. 천희2년(1018년)에 왕이 되고,
운영자 13-10-13
[] 송사전( 宋史筌 ) 요열전( 遼列傳 )

송사전( 宋史筌 ) 요열전( 遼列傳 ) 야율경(耶律璟)의 어렸을 적 이름은 술률(述律)이니 덕광(德光)의 맏아들이요 어머니는 소씨(蕭氏)이다. 그의
운영자 12-10-10
[] 송사(宋史) 금열전(金列傳)-2

16년(금 선종 원광(元光) 2, 1223), 순(珣)이 죽었다. 순이 정력적으로 정치를 하여 정무에 부지런하고 백성을 잘 보살펴주었다. 그러나 본성이 남을
운영자 12-07-04
[] 宋史(송사) 金列傳(금열전) -1

宋史 金列傳 (<청장관전서> 제 23권 송사 금열전) 완안아골타(完顔阿骨打)의 개명은 민(旻), 한성(漢姓)은 왕(王)인데, 핵리발(劾里鉢)의
운영자 12-05-22
[] 바투의 유럽 원정

바투의 원정 개요 전쟁주체 : 몽골족, 루스, 폴란드-독일(슐레지엔), 헝가리 전쟁시기 : 1236년-1242년 전쟁터 : 현재의 러시아, 폴란드,
운영자 12-01-28
[] 징기스칸의 정벌

징기스칸의 정벌 -푸른 이리의 후예들, 대제국을 세우다. - 거울제국(Mirror Empires) 서력으로 13세기 초반. 중국에서는 한(漢)족의
운영자 12-01-09
[] 대제국을 지배한 여자 기황후

훗날 세계 제국의 지배자로 군림한 기황후의 출발은 절망뿐이었다. 고려인 기자오(奇子敖)의 막내딸이 원나라에 바쳐지는 공녀(貢女)로 결정되었을
양승국 05-06-01
[] 구양수의 종수론(縱囚論)

종수론(縱囚論) 군자에게는 신의를 행하고, 소인에게는 형벌을 내린다. 죄과가 매우 커서 극에 달하면 사형에 처하는데, 이는 소인 중 특
양승국 04-12-07
[] 황천탕 싸움의 여장군- 양홍옥

황천탕 싸움을 승리로 이끈 남송의 여장군 양홍옥 서기 1130년 건염(建炎) 4년 한세충(韓世忠)과 양홍옥(梁紅玉)은 황제의 명에 따라 경구(京口
운영자 10-03-22
[] 文天祥(문천상)

文天祥(문천상) 자는 송서(宋瑞) ·이선(履善)이고 호는 문산(文山)이다. 강서성(江西省) 길수현(吉水縣) 출신이다. 1255년 20세때 진사에 수석
운영자 09-05-02
[] 청명상하도

淸明上河圖(청명상하도)는 청명 절기에 강의 주변 시가지를 구경한 것을 그린 것이라는 의미로 보면 될 것 같다. (上河(상하)의 上(상)은 구경하다라
운영자 09-04-28
[] 송과 요의 투쟁

송과 요의 투쟁 ① 거란의 남진과 후진의 연운16주 할양 송과 거란(요)과의 국제관계를 고찰하는데 있어 거슬러
양승국 06-08-05
[] 한세충과 황천탕(黃天蕩) 싸움

한세충(韓世忠)(1088~1151), 자는 양신(良臣)으로 연안(延安)사람이다. 남송 때 활약한 사람으로, 금에 대항한 명장의 한 명으로 꼽힌다. 한세충은 악
운영자 08-03-02
[] 바투가 세운 Golden Horde 제국의 영역

바투 (Batu ; 1207 ?~1255) 킵차크한국의 제1대 군주로서 칭기즈칸의 손자로서 1227년 칭기즈칸의 맏아들인 아버지 주치[朮赤]의 영지를 계승
운영자 07-09-11
[] 몽골기마군단의 유럽정벌전2-사요강전투

사요 섬멸전 (Battle of the Sajo river, April 11, 1241) 기동 유럽원정 몽골군의 총 병력은 12만 명이었지만, 순수 몽골 기병은 5만 명이
운영자 07-06-12
1 [2][다음][맨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