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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04-28 05:12:105241 
청명상하도
운영자

淸明上河圖(청명상하도)는 청명 절기에 강의 주변 시가지를 구경한 것을 그린 것이라는 의미로 보면 될 것 같다. (上河(상하)의 上(상)은 구경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으며, 河(하)는 개봉을 끼고 흐르는 변하(汴河)를 말한다.)

청명상하도(24.8x528cm)는 중국 송나라 때의 대화가 장택단(張擇端 11세기 말 -12세기 초)의 회화작품이다. 이 화가는 당시 송나라 서민 생활에 대한 생생한 묘사를 통해 북송 수도 변경의 평화로운 시기의 번화한 모습을 그렸다.


<<청명상하도>>는 북송때의 인물풍속화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작자인 장택단(張擇端)의 일생내력에 대하여는 알려진 바가 그리 많지 않다. 단지 그는 학자였고, 나중에 회화를 배워서 휘종(徽宗)때 궁중화가로 활약했다는 정도이다. 그는 <<청명상하도>>외에 <<서호탈표도(西湖奪標圖)>>도 그렸는데, 서호탈표도에서 그린 내용은 항주의 서호가 아니라, 당시 북송의 수도였던 변경(汴京, 현재의 하남성 개봉)의 금명지(金明池)에서의 청명절 때 용주 시합을 그린 그림이다. <<청명상하도>>가 그려진 것은 북송시대의 인물화가 장기간 발전해온 결과이고, 당시 세속의 생활에서 그림의 주제를 뽑아서 그린 선구였으며, 오늘 날 볼 때, 그림의 내용은 아주 귀한 역사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다.

<<청명상하도>>에서 그린 것은 청명절때 변경성 변하(汴河) 변의 아주 시끌벅적한 풍경을 그린 것이다. 화가는 변경성의 동문 대로와 동문바깥의 변하의 번화한 풍경을 아주 상세히 묘사하였는데, 각양각색의 점포와 형형색색의 인물이 있고, 가마를 몰고 배를 저어 노는 광경이 있다. 그림을 펼치면, 강남에서 공물을 싣고 오는 배가 줄줄이 이어져 있고, 거대한 조운선이 홍교(무지개다리) 밑을 지나가고 있으며 배 위와 다리 위에는 여러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시끄럽게 생활하는 모습이 그림 위에 펼쳐져 있다.

<<청명상하도>>를 제일 처음에 수장한 사람은 송휘종이었다. 송휘종은 그림에 그의 독특한 수금체(瘦金體)로 청명상하도라는 제목을 썼다. ‘정강의 변’ 때 청명상하도는 북송황실에서 소장하고 있던 다른 서화들과 함께 금나라에 빼앗겨 버린다. 이후 명나라에 들어서 <<청명상하도>>는 육완(陸完)의 수중에 들어간다. 육완이 죽은 후에는, 그의 부인이 그림을 베게에 넣고 꿰매어 버리고, 자신의 목숨처럼 아꼈으며, 친아들에게까지도 보여주지 않았다. 육부인의 조카중에 왕씨성의 인물이 있었는데, 그는 그림을 잘 그렸고, 유명한 인물들의 서화를 좋아했다. 육부인이 집안에 <<청명상하도>>를 수장하고 있는 것을 알고는 여러 번 부탁해서, 육부인이 결국은 보여주게 된다. 다만, 다른 사람에게 절대 말을 못하게 하였다. 왕은 10여 번 본 후에 그림을 모방하여 한 폭 그리게 된다. 명나라 때의 간신으로 유명한 엄숭(嚴嵩)은 이 때 사방으로 <<청명상하도>>를 손에 넣기 위해 찾았는데, 마침 왕도어사라는 사람이 800냥을 들여 왕모로부터 모방한 청명상하도를 입수하고, 엄숭에게 바친다. 엄숭이 그림을 표구하도록 맡기자, 표구하는 사람은 모방품이라는 것을 눈치채고 왕도어사에게 사실을 말하지 않는 대가로 돈을 요구하다 거절당한다. 표구상은 일부러 가짜임을 드러내도록 표구하여, 엄숭이 손님들 앞에서 그림을 보여주다 망신을 당한다. 이후 엄숭은 왕도어사를 모함하여 죽여버린다. 왕모도 연루되어 감옥에서 굶어죽는다. 이 이야기는 널리 퍼져, 이후 <<일봉설전기>>라는 극본으로 정리된다. 그러나 사실은 육완이 죽은 후, 육완의 아들이 돈이 필요해 그림을 팔아버리는데, 곤산의 고정신(顧鼎臣)이 이를 매입한다. 이후 엄숭과 그아들 엄세번(嚴世蕃)에게 빼앗긴다. 엄숭 부자가 탄핵을 받아 가산이 몰수되면서 <<청명상하도>>는 명황실로 들어간다.




청나라에서도 <<청명상하도>>는 몇번의 곡절을 겪는다. 우선 수장하게 되는 사람은 육비서(陸費犀)이다. 그는 안휘 상향 사람이며, 건륭제때 진사를 지낸 사람이며, 청명상하도에 발을 쓰고 도장을 찍어둔다. 오래지 않아 그림은 필원(畢沅)의 손에 들어간다. 필원은 강소 태창 사람으로 역시 건륭제 때의 진사이다. 필원은 금석과 서화를 좋아하여 많은 서화를 소장한다. 그는 <<청명상하도>>를 매입한 후, 동생인 필룡(畢龍)과 함께 낙관을 찍어둔다. 필원이 사망한 후 얼마되지 않아, 청황실은 필원이 호광총독을 지낼 때 직무유기와 군비남용을 하였음을 들어 가산을 몰수한다. 이 때 그림은 청황실로 들어간다.




청황실에서는 <<청명상하도>>를 자금성의 영춘각에 걸어두며, 이후 1860년의 영국프랑스연합군의 침입과 1900년의 팔국연합군의 칩입때도 빼앗기지 않고 살아남는다. 1911년 선통제 부의의 퇴위이후, 그림은 부의가 동생 부걸에게 상으로 내리고, 그림은 천진조계의 장원(張園)에 걸어둔다. 1932년 만주국을 세우면서 그림은 다시 장춘으로 가져가 동원 도서루에 걸어둔다. 1945년 8월 부의가 장춘에서 도망치면서 만주국황실의 많은 서화와 보물들이 민간에 흩어지게 된다. 1946년 중국인민해방군이 장춘을 점령한 후, 해방군 간부인 장커웨이(張克威)는 지방간부들을 통하여 만주국황실에서 흘러나온 유물 수십점을 수집하는데, 거기에 <<청명상하도>>가 포함되어 있었다. 1947년에 장커웨이가 동북행정위원회로 전근가면서 <<청명상하도>>를 비롯한 서화들을 당시 동북지방의 주요한 지도자중의 한 명인 린펑(林楓)에게 넘겨준다. 린펑은 <<청명상하도>>를 동북박물관에 넣고, 북경점령후, 그림은 다시 북경의 고궁박물관으로 보내진다. 오랜 동안의 방랑을 거쳐 <<청명상하도>>는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오게 되었다.

그림 전체에는 700여명의 사람들과 100여 채의 집, 34개의 점포, 48개의 마차, 배, 가마, 84마리의 가축, 190그루의 나무, 100여자의 낙관 글자와 6개의 도장 등으로 가득 차있다. 그림에는 사(仕),농(農),상(商),의(醫),승(僧),도(道)인이나 관리, 여성, 뱃사공 등의 인물 외에도 나귀, 말, 소, 낙타 등의 가축이 있다. 또 시장을 보거나 술 마시고 놀며 모여서 이야기를 하는가 하면 배를 밀고 차를 끌며 가마와 말을 타는 등의 장면이 있다. 그 외에도 크고 작은 거리에 상점이 있고 강과 부두와 연못이 있으며 곳곳에 배가 떠다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또 관아와 민가가 있는데 마치 서민 문학작품처럼 내용이 풍부하다. 이 그림은 그 시대 사회상을 예술적으로 포괄, 집약한 회화작품이다.




청명상하도의 작가 장택단(張擇端)에 대해서는 사서에 어떠한 기록도 찾아볼 수가 없다. 천 백년이래로 계속하여 수수께끼로 내려왔다. 일부 학자들은 장택단을 북송 사람이라고 하고, 어떤 전문가들은 남송 사람이라고 하고, 심지어 어떤 학자들은 장택단이 금나라 때 사람이라고 한다.




지금도 개봉의 민간에는 장택단과 청명상하도에 대한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개봉의 상국사는 남북조시대인 천보6년에 지어지기 시작했으며, 북송태종시기에 상국사는 가장 번성하게 된다. 부지가 540무이고, 승원이 64개, 전각이 웅장하며, 꽃과 나무가 무성했다. 그래서 "金碧輝榮, 雲霞失容(황금색과 파란색이 서로 빛나고, 구름과 노을이 빼어남을 잃을 정도였다)" 방대한 상국사의 기둥그림에는 대량의 화가들이 필요했다. 전설에 의하면 당시 북송 동경의 상국사안에는 사원회화를 그려 살아가는 민간화가가 있었는데, 그 중의 한 청년화가는 스스로 말하기를 수도인 동경성의 번화한 풍경을 그림 속에 옮겨올 수 있다고 하였다. 이 청년이 바로 산동 濟城에서 온 장택단이었다. 장택단은 상국사에 머물며 그림을 그렸다. 하루는 송휘종 조길이 황실 근위대의 호위 하에 상국사에 향을 올리러 왔다. 송휘종은 상국사에 재주가 뛰어난 젊은 화가가 있다는 말을 듣고, 재상 채경에게 명하여 상황을 알아보도독 시켰다. 송휘종과 재상 채경은 그림을 좋아할뿐 아니라, 훌륭한 화기이기도 했다. 송휘종 조길은 재상 채경에게 장택단을 한림도화원으로 부르도록 하고, 친히 명하여 장택단에게 북송 동경의 번화한 풍경을 그리도록 했다. 장택단은 궁중의 한림도화원에 불려왔다. 그러나 그가 요청한 것은 황궁 안에서는 그림을 그릴 수 없고, 조용한 농가에서 그림을 그리겠다고 했다. 송휘종은 장택단의 요청을 들어주었다. 그리고는 채경에게 명하여 장택단을 위하여 동경성의 교외에 있는 농가에서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조치하도록 했다. 이때부터 장택단은 밤낮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북송 동경의 번화한 풍경이 동경성 교외의 구석진 농가에서 창작 완성된 것이다. 재상 채경을 통해 장택단의 그림을 받아 본 송휘종은 대단히 기뻐했다. 이때부터 <<청명상하도>>는 송휘종 조길에 의하여 황궁 내부에 소장되었다. 북송이 멸망한 후, 송휘종 조길과 아들 송흠종 조환은 금나라에 포로가 되어 북방으로 끌려갔다. 북송 궁중에 보관되어 있던 청명상하도 및 6000여건의 예술품도 금나라에 의해 노략 당한다. 송휘종 조길의 11자인 송고종 조구는 남쪽으로 나라를 옮겨 항주에서 황제에 오른다. 장택단은 송고종에게 국가의 원한을 잊지 않도록 하고 금나라에 항거하게 하기 위하여, 문을 걸어 닫고 다시 한 번 <<청명상하도>>를 그려 송고종 조구에게 바쳤다. 송고종 은 부친인 송휘종과 성향이 달랐다. 근본적으로 그림에 흥미가 없었던 송고종은 그림을 장택단에게 돌려보냈다. 그림을 돌려받은 장택단은 그림을 길게 펼치고, 마음을 진정시킬 수 없었다. 그는 홧김에 각고의 노력 끝에 다시 그린 청명상하도를 불살라버렸다. 그러나 다행히 집안 사람들이 그 중의 절반을 구해낸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실의에 빠진 장택단은 우울증에 빠져 죽고 말았다.




장택단이 두 번에 걸쳐 청명상하도를 바친 이야기가 진실인지는 이미 고증할 방법이 없다. 그러나, 전설에서 장택단은 국가와 백성을 생각하는 애국화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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