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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3-11 12:47:4623 
명나라 왕세정이 편찬한 세설신어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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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환(연세대학교 문과대학 중어중문학과 교수)




≪세설신어≫와 ≪하씨어림≫의 결합−≪세설신어보≫




중국 위진남북조 송나라의 문인 유의경(劉義慶, 403∼444)이 지은 ≪세설신어(世說新語)≫는 후한 말에서 동진 말까지 실존했던 제왕ㆍ고관ㆍ귀족을 비롯해 문인ㆍ학자ㆍ현자ㆍ은자ㆍ스님ㆍ부녀자 등 700여 명에 달하는 인물의 독특한 언행과 일화를 <덕행(德行)>에서 <구극(仇隟)>까지 36편에 수록해 놓은 필기소설집이다. 내용은 상당히 방대해서 당시의 문학ㆍ예술ㆍ정치ㆍ학술ㆍ사상ㆍ역사ㆍ사회상ㆍ인생관 등 인간 생활의 전반적인 면모를 담고 있다. 따라서 ≪세설신어≫는 중국 중고시대의 문화를 총체적으로 이해하는 데 매우 귀중한 작품이다.




≪세설신어≫는 중국 지인소설(志人小說)의 전범이며, 당시 “명사들의 교과서”로 인식될 정도로 애독되었다. 그 결과 후대의 여러 작가들이 본받는 지표가 되어 당나라 때부터 민국 초까지 역대로 그것의 서명ㆍ체재ㆍ문체 등을 모방한 속서들이 많이 지어짐으로써, 중국 지인소설사상 이른바 ‘세설체(世說體) 문학’이라는 영역을 형성했다.




≪세설신어≫의 주요 속서 가운데 하나인 ≪하씨어림(何氏語林)≫은 ≪어림≫이라고도 하며, 명대 하양준(何良俊, 1506∼1573)이 가정(嘉靖) 29년(1550)에 찬했다. ≪하씨어림≫의 서명은 동진 배계(裴啓)의 ≪어림≫에서 따왔으며, 그 체재는 ≪세설신어≫를 답습하되 <언지(言志)>와 <박식(博識)> 두 편을 추가함으로써, 총 30권, 38편, 2781조로 구성되어 있다. 이 책은 이전의 역대 사전(史傳)과 필기잡서(筆記雜書) 중에 기록된 문인ㆍ관료들의 언행과 일화를 뽑아 수록했는데, 그 시대 범위는 양한대부터 송ㆍ원대까지며, ≪세설신어≫에 수록된 고사는 제외되어 있다. 또한 ≪세설신어≫의 유효표(劉孝標) 주를 모방해서 각 조 밑에 다른 책의 기록을 인용해 주를 달아 해당 인물의 생평과 그와 관련된 고사를 소개함으로써, 본문의 내용을 보다 폭넓고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아울러 각 편 앞에는 소서(小序)를 두어 편목의 함의와 편집 의도 등을 밝혀 놓았으며, 일부 고사의 뒤에는 자신의 논단(論斷)을 끼워 넣어 찬자 자신의 관점을 드러내기도 했다.




≪하씨어림≫은 형식의 측면에서는 분명 ≪세설신어≫의 모방작 또는 속서라고 할 수 있지만, 사상 경향의 측면에서는 더 이상 ≪세설신어≫처럼 ‘현허(玄虛)’함과 ‘간원(簡遠)’함을 표준으로 삼지 않았다. 즉 ≪세설신어≫가 현학(玄學) 시대 문인ㆍ명사들의 정신을 응축해 놓은 것이라면, ≪하씨어림≫은 심학(心學) 시대의 색채를 은연중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왕학 좌파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하양준은 특히 인물의 개성과 진정(眞情)을 존중했기 때문에, 그가 선별한 인물 고사의 성격은 ≪세설신어≫와 같을 수 없었다.




≪세설신어≫의 속서로서 ≪하씨어림≫이 지니는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바로 수록된 인물 고사의 역사적인 연속성이다. 양한에서 동진까지 약 300년간을 시대 범위로 하고 있는 ≪세설신어≫에 비해 ≪하씨어림≫은 양한에서 송ㆍ원대까지 약 1500년간을 그 범위로 하고 있다. 따라서 약 다섯 배로 확장된 풍부한 역사 무대와 그에 따른 다채로운 문화 배경 속에서 뽑아낸 인물 고사는 당연히 독자들의 눈길과 마음을 붙잡기에 충분하다.




≪세설신어보≫는 유의경의 ≪세설신어≫와 하양준의 ≪하씨어림≫ 중에서 각각 일부분을 삭제해 합쳐 놓은 형태인데, 이러한 산정(刪定) 작업을 한 사람은 명대 왕세정(王世貞, 1526∼1590)으로 알려져 있다. 처음에는 산정된 ≪세설신어≫와 ≪하씨어림≫이 합각(合刻)한 형태로 있다가 나중에는 두 책이 혼합한 형태로 발전한 것으로 보인다.




왕세정은 ≪세설신어보≫를 편찬한 의도와 과정을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나는 젊었을 때 오중(吳中)에서 ≪세설신어≫를 얻어 마음속으로 이미 그것을 좋아했는데, 매번 읽을 때마다 쉽게 끝나 버리는 것을 흠으로 여겼다. 또 이 책이 겨우 후한(後漢)에서 진(晉)나라까지만 기술되어 있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했으니, 육조의 여러 군자 중에서 그들의 지론과 풍격에 대해 일컬을 만한 자가 어찌 한둘이겠는가? 맨 나중에 ≪하씨어림≫을 얻었는데, 대체적으로 ≪세설≫을 모방하면서 [시대를] 원(元)나라 말까지 좀 더 늘여 놓았지만, 그 고사와 언사가 뒤섞여 나오고 전아하지 못하니, 모름지기 [≪세설신어≫의] 그림자와 메아리일 뿐이다. ≪세설≫이 뛰어난 점은 한마디의 말에서 은미한 경지에 나아가기도 하고 한 줄의 문장에서 공교로움을 찾아내기도 하며, 칭찬을 통해 풍자를 드러내기도 하고 풍자를 통해 칭찬을 내보이기도 해, 종종 사람들로 하여금 조금만 읽고도 놀라 뛰게 하거나 끝없이 깊은 생각에 잠기게 하는 것인데, 하씨는 아마도 이것을 알지 못했던 것이다.




내가 연(燕)과 조(趙) 군국(郡國)의 옥사를 다스릴 때, 잠시 일이 없는 틈을 타서 봇짐 속에 넣어 두었던 것을 뒤져 보았더니 두 책이 그곳에 있었다. 그래서 약간 산정한 뒤 합쳐서 그 편목을 나누었는데, 대개 ≪세설≫에서 삭제한 것은 10분의 2를 넘지 않으며 ≪하씨어림≫에서 채록한 것은 10분의 3을 넘지 않을 뿐이다. 나는 평소에 늘 이렇게 생각했다. 송(宋)나라 때의 경학(經學) 선생들은 매번 청담이 난을 초래했다고 질책하곤 했지만 강좌[江左: 강남(江南)]에 있어서 진[동진]나라와 송[남송]나라가 똑같았다는 사실은 알지 못했다. 갑옷과 투구를 몰아내고 유생이 되게 할 것이면, 갑옷과 투구를 몰아내고 청담을 하게 하는 것도 어찌 택하지 말라는 법이 있겠는가!

[명] 가정(嘉靖) 병진년(丙辰年: 1556) 늦여름에 낭야(琅琊) 사람 왕세정 찬.




위의 기록에서 왕세정은 ≪하씨어림≫이 ≪세설신어≫의 심오한 뜻을 살리지 못했음을 지적하고, 이를 보완하기 위해 ≪세설신어≫를 중심으로 두 책을 산정해 ≪세설신어보≫를 편찬했음을 천명했으며, 마지막으로 송대 경학자들이 주장한 ‘청언치란지설(淸言致亂之說)’에 대해 반론을 제기했다. 또한 편찬 시기를 가정 35년 병진년(1556)이라고 밝혔는데, 이는 ≪하씨어림≫이 세상에 나온 지 6년 뒤의 일이다.




현존하는 ≪세설신어보≫의 판본은 20권본과 4권본이 있는데, 20권본이 먼저 간행되고 4권본이 나중에 간행된 것으로 추정된다. 20권본은 ≪세설신어≫와 ≪하씨어림≫을 산정해 조합해 놓은 것으로 별행본(別行本)으로 간행되었으며, 4권본은 거의 대부분이 ≪세설신어≫와 합각한 형태로 간행되었기 때문에 ≪세설신어≫의 고사를 다시 수록할 필요가 없었으므로 산정한 ≪하씨어림≫의 고사만을 수록해 놓았다.




≪세설신어보≫의 편목은 ≪하씨어림≫에서 추가된 <언지>와 <박식> 두 편이 다시 삭제되고 ≪세설신어≫의 본래 편목에 따라 36편으로 되어 있다. 전체 수록 고사의 수량에 대해서는 왕세정이 서문에서 “≪세설≫에서 삭제한 것은 10분의 2를 넘지 않으며 ≪하씨어림≫에서 채록한 것은 10분의 3을 넘지 않는다”고 밝혔는데, 대체적으로 들어맞는다. 필자가 조사한 통계에 따르면, ≪세설신어보≫는 총 1424조의 고사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중에서 ≪세설신어≫에서 채록한 고사는 849조고, ≪하씨어림≫에서 채록한 고사는 575조다. 이를 각 편목별로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편명 다음의 숫자는 각 편의 전체 조수, 소괄호 안의 앞 숫자는 ≪세설신어≫에서 채록한 고사 수, 뒤 숫자는 ≪하씨어림≫에서 채록한 고사 수를 각각 가리킨다.




<덕행(德行)> 81(35/46), <언어(言語)> 116(75/41), <정사(政事)> 30(18/12), <문학(文學)> 108(77/31), <방정(方正)> 61(38/23), <아량(雅量)> 58(32/26),

<식감(識鑒)> 34(19/15), <상예(賞譽)> 157(115/42), <품조(品藻)> 80(63/17), <규잠(規箴)> 43(18/25), <첩오(捷悟)> 14(5/9), <숙혜(夙惠)> 33(19/14),

<호상(豪爽)> 22(11/11), <용지(容止)> 49(36/13), <자신(自新)> 4(2/2), <기선(企羨)> 19(6/13),

<상서(傷逝)> 31(17/14), <서일(棲逸)> 41(13/28),

<현원(賢媛)> 41(30/11), <술해(術解)> 20(8/12),

<교예(巧藝)> 16(11/5), <총례(寵禮)> 23(7/16),

<임탄(任誕)> 64(40/24), <간오(簡傲)> 35(12/23),

<배조(排調)> 74(48/26), <경저(輕詆)> 53(28/25),

<가휼(假譎)> 14(12/2), <출면(黜免)> 11(7/4),

<검색(儉嗇)> 5(4/1), <태치(汰侈)> 11(5/6),

<분견(忿狷)> 17(8/9), <참험(讒險)> 3(2/1),

<우회(尤悔)> 13(9/4), <비루(紕漏)> 19(7/12),

<혹닉(惑溺)> 15(6/9), <구극(仇隟)> 9(6/3)




각 편에 수록된 고사는 시대순으로 배열되어 있으며, 그 시대 범위는 양한에서 원대까지다. 고사의 시대별 분포는 전체의 60%에 달하는 750여 조가 진대(晉代)에 집중되어 있는데, 이는 청담과 인물 품평이 극성했던 진대를 그 중심 시대로 여겼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것으로, 당ㆍ송대의 고사가 절반가량을 차지하는 ≪하씨어림≫과는 다른 양상이다. 또한 ≪세설신어≫의 유효표 주와 ≪하씨어림≫의 하양준 주 역시 약간의 산정을 거쳐 그대로 활용했다.




명대는 ‘세설체 문학’의 발전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시기로서, ≪세설신어≫의 속서가 가장 많이 나왔다. 그중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세설신어보≫는 ≪세설신어≫나 ≪하씨어림≫처럼 새롭게 지어진 것은 아니지만, 편찬자는 분명한 편찬 의도와 기준에 따라 이 두 작품을 재편집해 새로운 텍스트를 생산해 냈다. 그 편찬 의도는 ≪세설신어≫ 정신의 통시적 구현이었으며 그 기준 역시 ≪세설신어≫였다.




우선 ≪세설신어보≫는 ≪세설신어≫의 정신을 가장 잘 구현하기 위해 내용ㆍ형식ㆍ묘사에 있어서 고사 선택에 심혈을 기울였다. 따라서 ≪세설신어보≫에 수록된 고사를 읽다 보면 진대 이후의 고사임에도 불구하고 “진대 이후의 일임을 잊어버리게 된다”. 이것은 바로 그만큼 ≪세설신어보≫가 ≪세설신어≫의 정신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하겠다.




다음으로 ≪세설신어보≫에 수록된 고사의 시대 범위가 한ㆍ위ㆍ진대에서 송ㆍ원대까지 확대되었기 때문에, 그것을 통해 1500년간에 실존했던 700여 명의 인물 정보와 역사 지식을 한꺼번에 얻을 수 있다. 물론 ≪하씨어림≫을 통해서도 이러한 것이 가능하지만, ≪하씨어림≫에는 지식인들의 전통적인 애독물이었던 ≪세설신어≫의 고사가 들어 있지 않다. 따라서 당시 지식인들은 ≪세설신어≫의 본래 고사를 함께 감상할 수 있도록 편집된 ≪세설신어보≫를 선호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명대에는 ≪세설신어보≫가 크게 유행해 “학사ㆍ대부들이 다투어 지니고서 암송했으며”, “나라 안에 임천(臨川: 유의경, 즉 ≪세설신어≫를 말함)이 있는지 더 이상 알지 못하는” 정도가 되었다.




다음으로 ≪세설신어보≫는 한국과 일본의 ‘세설체 문학’의 발전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 한국의 경우는 조선시대에 전래되었고 일본의 경우는 에도(江戶)시대에 전래되었는데, 두 나라 모두에 ≪세설신어보≫가 중국에서 간행된 지 얼마 되지 않아 곧 수입되었다. 두 나라에 전래된 ≪세설신어보≫는 오히려 ≪세설신어≫를 밀어내고 지식인들이 탐독하고 연구하는 대상이 되었으며, 두 나라의 한문학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이런 과정에서 자국의 활자로 찍어 낸 각본이 간행되기도 했다. 이를 통해 국외에까지 미친 ≪세설신어보≫의 영향력을 충분히 알 수 있다.




≪세설신어보≫의 국내 전래에 관한 기록은 조선시대 영조(英祖: 재위 1724∼1776) 때의 대제학(大提學)으로 대문장가였던 이의현(李宜顯, 1669∼1745)의 ≪도곡집(陶谷集)≫ <잡저(雜著)>에서 찾을 수 있다.




그 담론 취향 서책의 문장은 모두 담박하고 고상해 즐길 만한데, 이것은 유의경의 ≪세설≫이 문인들에게 특히 사랑받은 까닭이다. 이로 말미암아 생각해 보니, 당시에 그 인물을 직접 보고 그 언어를 듣는 것 같으니 어찌 매료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명나라 사람이 그 번잡함을 산정하고 그 뛰어남을 보충해 한 권의 서책을 만들었으니, 진실로 문단의 진귀한 보물이다. 명나라 사신 주지번(朱之蕃)이 가지고 와서 서경[西坰: 유근(柳根, 1549∼1627)]에게 증정해 마침내 우리나라 문인들이 즐겨 보게 되었다.




여기에서 이의현은 ≪세설신어≫의 “담박하고 고상한” 풍격과 생동감 넘치는 인물 묘사를 호평했다. 또한 인용문의 “명나라 사람이 그 번잡함을 산정하고 그 뛰어남을 보충했다”는 구절로 보아 이때 들어온 것은 ≪세설신어≫가 아니라 명대에 간행된 ≪세설신어보≫인 것이 확실하다. 명나라의 사신 주지번이 조선에 온 시기는 조선 선조(宣祖) 39년(1606)이고 ≪세설신어보≫는 명 가정 35년(1556)에 처음 간행되었으므로, 간행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바로 국내에 수입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세설≫에 대한 국내 문인 학자들의 수요가 그만큼 많았음을 말해 준다 하겠다.




조선시대에는 ≪세설≫의 중국 판본이 집중적으로 수입되었는데, ≪세설신어보≫가 주류를 이루었으며 20권본과 4권본이 고루 수입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세설신어보≫의 중국 판본 수입과 함께 국내에서 직접 ≪세설신어보≫를 간행하기도 했다. 조선시대의 ≪세설≫ 간행에는 크게 두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는 간행의 대상이 ≪세설신어≫가 아니라 ≪세설신어보≫라는 점이다. 중국 판본의 수입도 ≪세설신어보≫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것을 감안하면, 당시 독서계에서 애독되었던 것은 ≪세설신어보≫였음이 분명하다. 둘째는 조선 숙종(肅宗: 재위 1674∼1720) 때 새로 주조한 현종실록자(顯宗實錄字)로 간행되었다는 점이다. 현종실록자로 간행된 책은 경서나 사서 같은 국가적인 주요 전적이 대부분이며, 소설류나 잡서류는 거의 전부가 목판본 아니면 필사본이다. 그런데도 ≪세설신어보≫가 현종실록자로 간행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당시에 특별한 중시를 받았음을 증명해 준다고 하겠다.




현재 간행 연대를 추정할 수 있는 판본은 숙종 34년(1708)경에 현종실록자로 간행된 ≪세설신어보≫ 20권 6책본(연세대 소장)과 20권 7책본(중앙도서관ㆍ고려대ㆍ한국학중앙연구원ㆍ성균관대ㆍ간송미술관 소장) 등이 있다. 이 책은 모두 권수(卷首)에 왕세정 <서>(1556), 왕세무(王世懋) <서>(1580)ㆍ<재지(再識)>(1585), 진문촉(陳文燭) <서>(1586), 유응등(劉應登) <구서(舊序)>(1227), 원경(袁褧) <구서>(1535), 고사손(高似孫) <구제(舊題)>, 동분(董弅) <구발(舊跋)>(1138), 육유(陸游) <구발>(1188), 문징명(文徵明) <하씨어림서>(1611), 육사도(陸師道) <하씨어림서>, <부석명(附釋名)>, <세설신어보목록(世說新語補目錄)>이 차례로 실려 있으며, 이어서 ‘세설신어보권지일(世說新語補卷之一)’ 아래에 “宋 劉義慶 撰, 梁 劉孝標 注, 宋 劉辰翁 批, 明 何良俊 增, 王世貞 刪定, 王世懋 批釋, 鍾惺 批點, 張文柱 校注”라는 제(題)가 있다. 또한 ≪하씨어림≫에서 뽑아 수록한 고사는 해당 조의 바로 상란(上欄)에 ‘보(補)’라고 표기해 ≪세설신어≫의 고사와 구별함으로써, 독자들에게 일종의 검색의 편리함을 제공하고 있다. 그리고 일부 고사는 본래 ≪세설신어≫에 소속된 편목에서 다른 편목으로 옮겨진 경우도 있다.




≪세설신어보≫의 국내 간행은 보다 많은 지식인들에게 이 책을 보다 쉽게 열독하고 소장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이런 과정에서 일부 독자는 등장인물이 700여 명에 이르고 고사가 1400여 조에 달하는 ≪세설신어보≫를 보다 효과적으로 읽어 낼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게 되었다. 그 결과로 나온 것이 바로 기존의 ≪세설≫ 판본의 체재와는 완전히 다르게 편집한 ≪세설신어성휘운분(世說新語姓彙韻分)≫이었다. 다시 말해 ≪세설신어성휘운분≫은 ≪세설신어보≫를 저본으로 삼고 이를 완전히 해체해 전체 고사를 등장인물의 성씨별로 재배치한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형식과 체재의 판본이 국내에서 간행되었다는 것은 당시 지식인들이 얼마나 ≪세설신어보≫를 탐독하고 애호했는지를 잘 대변해 준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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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몽골기마군단의 유럽정벌전2-사요강전투

사요 섬멸전 (Battle of the Sajo river, April 11, 1241) 기동 유럽원정 몽골군의 총 병력은 12만 명이었지만, 순수 몽골 기병은 5만 명이
운영자 07-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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