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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05-11 11:30:584318 
제43회. 假鴆復衛(가짐복위), 縋城說秦(추성세진)
양승국
 그림43. 정나라를 공격하는 진진연합군.jpg  (935.5K)   download : 86
일반

제43회

假鴆復衛 蜀武說秦(가짐복위 추성세진)

가짜 짐독(鴆毒)으로 위후를 복위시키는 지혜로운 영유와

섬진(陝秦)의 군주에게 유세하여 정나라를 구한 촉무(蜀武).

1. 借助鬼神 曹伯復位(차조귀신 조백복위)

- 귀신의 힘을 빌려 군주의 자리에 복위하는 조백(曹伯) -

열국의 제후들로부터 조현의 예를 받는 의식을 끝낸 주양왕은 낙읍의 왕성으로 돌아가기 위해 길을 떠났다. 제후들은 모두 하양 땅의 경계에까지 나와 양왕을 전송했다. 선멸에게 명하여 위성공을 왕도까지 호송하도록 명한 문공은 다시 한질에 걸린 위성공을 위해 이름이 연(衍)이라는 의원 한 사람을 뽑아 왕성까지 동행하며 보살피도록 했다. 그러나 실은 위성공의 병을 돌보게 한다는 것은 핑계이고 도중에 짐독(鴆毒)을 먹여 살해하려는 뜻에서였다. 문공이 가슴에 품고 있던 분노를 밖으로 드러내며 말했다.

「만일 그가 마음을 다하여 뉘우치지 않는다면 내 필히 용서하지 않고 죽이고 말리라!」

다시 선멸을 별도로 불러 당부했다.

「일을 가능하면 빨리 거행하고, 끝나는 대로 의원 연과 함께 돌아와 일의 결과에 대해 복명하도록 하시오!」

양왕이 주나라로 돌아가기 위해 온읍을 떠난 뒤에도 여러 제후들은 진후의 눈치를 보며 여전히 헤어지지 못하고 있었다. 진문공이 여러 제후들을 향해 말했다.

「과인은 이번의 회맹에서 천자의 말을 듣지 않는 나라가 있다면 별도의 허가를 얻을 필요 없이 정벌하라는 명을 받았습니다. 지금 허나라가 오로지 초나라만을 받들고 있으면서 우리 중화의 나라와는 통하지 않고 있습니다. 천자의 어가가 이곳에 임하시자, 여러 군주들께서는 나라 안의 여러 가지 일로 바쁘신 와중에도 불원천리하고 이렇게 멀리까지 참석하셨습니다. 그러나 허나라가 있는 영양(潁陽) 땅은 이곳 하양땅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곳임에도 불구하고, 천자가 왕림하시고 천하 열국의 제후들이 이렇게 모인다는 소식을 틀림없이 들었을 터인데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천자를 대하기를 심히 태만히 하여 불경죄를 저질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원컨대 여러 제후들께서 허나라로 같이 가서 그 죄를 묻고 싶은데 여러 군주님들의 생각은 어떠십니까?」

여러 제후들이 모두 한 목소리로 말했다.

「군후님의 명을 받들겠습니다.」

진문공이 맹주가 되어 제(齊), 송(宋), 노(魯), 채(蔡), 진(陳), 섬진(陝秦), 거(莒), 주(邾) 등의 여덟 나라의 군주들이 각기 그들이 거느리고 온 병거와 군사들을 이끌고 일제히 영양 땅의 허성(許城)으로 진군했다. 그러나 원래 초왕과 혼인을 맺어 수호를 맺은 사이였으나 당진의 세력을 두려워하여 이번 조현의 의식에 참석했던 정문공은 당진의 군주가 위와 조 두 나라에 행한 조치를 보고 그 정도가 너무 지나치다고 생각하여 매우 못마땅하게 여기고 이었다. 정문공이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당진의 군주가 유랑할 때 우리도 역시 예를 갖추어 대하지 못했는데 그가 입으로는 조백과 위후에게는 복위를 허락해 놓고는 갑자기 마음을 바꾸어 기꺼이 놓아주지를 않으니 당시 그가 당했던 일에 대해 이렇듯 원한이 깊다면 어찌 우리 정나라에 대한 원한인들 잊었겠는가? 여러 제후국들이 물러날 때까지 참고 기다렸다가 초나라 편에 서서 후에라도 다시 제후국들이 토벌하러 오게 되면 초나라에 구원병을 청하여 나라를 보존하는 편이 차라리 낫겠다.」

그때 상경 숙첨(叔詹)은 정문공이 마음속으로 진문공의 명을 받들기를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는 기색을 느끼고 즉시 문공 곁으로 다가가서 조용한 말로 간했다.

「진후가 정나라를 용납하여 옛날의 무례를 불문에 붙인 일은 우리 정나라로써는 진실로 과분한 처분을 받은 것입니다. 주군께서는 결코 두 마음을 갖으시면 안 됩니다. 만약에 두 마음을 품으시어 당진의 군주에게 다시 죄를 얻게 된다면 다시는 용서받지 못할 것입니다.」

정문공이 숙첨의 말을 듣지 않고 사람을 시켜 소문을 퍼뜨리게 했다.

「정나라에 역병이 퍼졌다!」

그리고는 자신이 급히 본국으로 환국하여 하늘에 기도를 올려 역병을 물리쳐야 한다는 핑계를 대고 진후에게 작별인사를 올린 후에 정나라로 돌아온 정문공은 몰래 사람을 초나라에 사자를 파견하여 자기의 뜻을 전하게 했다.

「상국과 친하게 지내는 허나라를 괘씸하게 생각한 진후가 열국의 제후들을 이끌고 쳐들어가 그 죄를 물으려 하고 있습니다. 저희 주군께서는 상국이 이를 책하지나 않을까 두려워하여 감히 군사를 거두어 진후의 뒤를 따르지 않았습니다. 감히 이를 고하는 바입니다.」

허나라도 역시 여러 제후들이 군사를 이끌고 죄를 물으러 오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초나라에 구원을 청하는 사람을 보냈다. 허와 정 두라 군주로부터 동시에 구원요청을 받은 초성왕이 두 사자를 향해 말했다.

「우리 초나라가 당진에게 성복에서 크게 패한 지가 얼마 되지 않아 그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았다. 지금 우리의 처지로써는 당진과 다시 싸울 수 없으니 그들이 싸움에 싫증을 낼 때를 기다렸다가 화의를 청하는 수밖에 다른 수가 없는 것 같다.」

초성왕은 결국 허나라의 구원 요청을 허락하지 않았다. 이윽고 제후 연합군이 허나라에 경내로 들어와 영양성(穎陽城)을 물샐틈없이 포위했다.

그때 아직 오록의 성안에서 감금되어 있던 조공공 양은 진후의 사면령을 받지 못하자 자신의 사면을 청하기 위해 언변에 능한 사람을 찾게 했다. 조나라의 말단 관리였던 후누(侯獳)가 듣고 찾아와 당진에 가져갈 뇌물을 많이 청한 후 자기가 가서 진후를 설득해 보겠다고 자원했다. 조공공이 허락했다. 진후가 허나라에 있다는 소식을 들은 후누는 곧바로 영양 땅으로 가서 문공의 알현을 청했다. 그때 마침 문공은 연이은 과로에 피로가 쌓여 감기를 앓고 자리에 누어있었다. 그때 문공이 침상에 누워 잠이 들어 꿈을 꾸었다. 의관을 단정하게 갖추어 입은 귀신이 문공을 향해 먹을 것을 달라는 꿈이었다. 꿈결에 문공이 소리치자 귀신은 물러갔으나 문공의 병세는 더욱 악화되어 병석에서 일어날 수 없었다. 즉시 태복 곽언(郭偃)을 불러 점을 쳐서 문공이 꾼 꿈에 대해 길흉을 점치게 했다. 그때 마침 황금과 비단을 한 대의 수레에 싣고 영양 땅에 당도한 후누는 문공이 꾸었다는 꿈이야기를 들었다. 후누는 짐도 풀지 않고 곧바로 곽언을 먼저 찾아와 자기가 찾아온 목적을 말하고, 귀신의 일을 빌려 조백을 풀려나게 해 달라고 청했다. 일을 성사시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꿈을 증거로 하여 진언을 드려야만 조백이 풀려 날 수 있다고 말하면서 자기가 가져온 황금과 비단을 곽언에게 바쳤다. 곽언은 뇌물을 받고 후누의 말대로 꿈을 해몽하여 그 부탁을 들어주기로 했다. 문공이 곽언을 불러 자기가 꿈속에서 본 것을 말했다. 곽언이 산가지로 점을 쳐서 얻은 천택(天澤)①의 괘는 곧 음(陰)이 변해서 양(陽)이 되는 괘였다. 곽언이 점괘를 설명하는 점사(占辭)를 문공에게 바쳤다. 그 점사는 다음과 같았다.

음이 극에 달하여 양을 만들고

땅속에 웅크려 잠자던 벌레들이 꿈틀거리니

천하에 대사령을 내리면

북소리가 천지를 진동하리라!

陰極生陽(음극생양)

蟄蟲開張(칩충개장)

大赦天下(대사천하)

鐘鼓堂堂(종고당당)

문공이 곽언을 보고 물었다.

「무슨 뜻이오?」

「이 점사는 전하의 꿈과 일치하는 것으로 사료됩니다. 필시 제사가 끊어진 귀신이 있어 주군에게 그 용서를 구하고 있는 괘입니다.」

「과인은 조상의 제사를 모시는 일에 있어서 아직까지 다른 사람의 제사를 끊은 적이 없는데 그 귀신은 과인에게 무슨 죄를 지어서 그 용서를 빌고 있다는 말이오?」

「신의 어리석은 의견으로 헤아려 보건대, 점괘가 말하는 나라는 아마도 조나라인 듯합니다. 조나라에 처음 봉해진 사람은 문왕의 아들 숙진탁(叔辰鐸)으로써 태묘의소(昭)②자리에 올라 있으나 우리 당진에 처음 봉해진 분은 문왕의 손자이시며 성왕(成王)의 동생이신 당숙우(唐叔虞)님이 봉해져 태묘의 목(穆)자리를 차지하고 계십니다. 옛날 제환공이 제후들과 회맹을 열고 북적(北狄)의 수장인 수만(瞍瞞)의 침입을 받아 멸망한 형(邢)과 위(衛)를 다시 일으켜 지금의 땅에 봉했습니다. 이는 제나라로 봐서는 이성(異姓)의 나라입니다. 그러나 지금 주군께서 회맹을 행하시고도 그 두 나라를 멸하려고 하는데 이는 우리나라와는 동성의 제후국을 멸하려고 하시는 일입니다. 하물며 두 나라는 이미 다시 복국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러나 천토의 회맹에서 주군께서는 위후를 복국시켰지만 조백은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같은 죄를 지었음에도 그 벌을 다르게 내리신 관계로 제사가 끊어지지나 않을까 걱정한 숙진탁께서 주군의 꿈속에 나타나신 것으로 생각됩니다. 주군께서 조백을 복위시켜 주신다면 숙진탁님의 영혼은 안심하고 물러가실 것이며 인자하시고 넓으신 마음으로 영을 내리시어 종소리와 북소리를 울리게 하여 천하의 평화로움을 즐기신다면 어찌 조그만 질병을 걱정하겠습니까?」

곽언의 이 한 마디의 말로 문공의 마음은 활짝 열려 의심과 미혹이 깨끗이 풀려 병세가 말끔히 나은 것처럼 느껴졌다. 문공은 그 즉시 사람을 오록으로 보내 조백을 불러오게 하였다. 조백이 영양 땅에 당도하자 문공은 그에게 자기 나라로 돌아가 복위를 허락하고 송나라에도 사자를 파견하여 조나라의 땅을 돌려주라고 하였다. 구금상태에서 풀려난 조백은 마치 새장 속에서 풀려난 새가 날개를 저어 하늘을 마음껏 날아다니듯, 우리 속에 갇힌 원숭이가 풀려나 다시 숲 속으로 들어가 마음껏 나무를 타고 기어 다니는 듯한 기쁜 마음이 되었다. 조공공은 즉시 본국의 병사들을 있는 대로 다 모아 친히 자기가 인솔한 후에 문공이 머물고 있는 영양 땅에 와서 복국 시켜 은혜에 대해 감사의 말을 올리고, 이어서 허나라를 포위하고 있던 여러 제후들과 그 힘을 합했다. 그리고 얼마 후에 문공의 병은 완전히 회복되었다.

한편 허나라 희공(僖公)은 초나라에서 구원군을 보내지 않자 다시 사자를 파견하여 나라의 위급함을 고했다. 그러나 초나라로부터는 여전히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결국 초나라의 구원병은 결코 기대할 수 없다고 생각한 허희공은 그 즉시 스스로 팔을 뒤로 묶고 헌물(獻物)을 입에 물어 당진의 군중으로 나아가 항복을 청하며 황금과 비단을 대거 꺼내어 당진군과 여려 제후국의 군사들을 호군 했다. 허나라의 항복을 흔쾌히 받아들인 진문공과 제후들은 영양에 대한 포위망을 풀고 각기 자기 나라로 돌아갔다. 섬진의 목공이 돌아갈 때 진문공에게 청했다.

「앞으로 만약에 군사를 일으킬 일이 있어 섬진의 군사가 출병하게 되면 당진이 돕고 또한 당진이 출병하게 되면 섬진이 돕기로 약속하면 어떻겠습니까? 두 나라가 서로 협력하여 그 중 한 나라가 위험에 처하게 되면 좌시하지 않고 서로 돕기로 하는 맹약을 맺기를 청합니다.」

문공이 허락하여 두 나라 군주가 서로 약조하고 하늘에 맹세했다. 이어서 진진(晉秦) 두 군주는 서로 헤어져 각기 자기나라를 향해 행군을 시작했다. 당진의 문공이 회군 도중에 정나라가 사자를 초나라에 보내어 통호를 요청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문공이 대노하여 다시 군사의 행군 방향을 돌려 정나라를 토벌하려고 하였다. 조쇠가 간하며 말렸다.

「주군의 옥체가 아직 정상이 아니라 과로하면 안 됩니다. 또한 사졸들도 이미 고향을 떠난 지 오래고 제후들도 이미 서로 흩어졌으니 이번에는 그냥 귀국하심이 옳습니다. 일 년 정도 휴식을 취한 후에 정나라를 도모하여도 늦지는 않을 것입니다. 」

문공이 조쇠의 말을 따라 정나라를 정벌하려는 생각을 바꾸어 본국으로 돌아갔다.

2. 가짐사석(假鴆赦釋)

- 가짜 짐독으로 위성공을 석방시키는 지혜로운 영유 -

한편 왕도에 돌아온 주양왕을 향해 주나라의 군신들이 알현하며 칭하의 말을 올렸다. 양왕의 일행 뒤를 따라 왕성에 당도한 선멸이 머리를 숙이며 진후의 뜻을 양왕에게 전하고 위후를 주왕실의 사구(司寇)에게 맡겨 죄를 물어주기를 청했다. 그때 주공열(周公閱)은 태재(太宰) 자리에 있으면서 주나라 정사를 맡고 있었다. 주공열이 청하여 위후를 관사에 가두어 그가 반성하는 마음을 갖도록 하겠다고 주왕에게 고했다. 양왕이 주공열에게 말했다.

「위후를 큰 감옥에 가두게 되면 그의 죄를 지나칠 정도로 무겁게 하는 것이며 공관에 머물게 한다면 또한 너무 가볍게 하는 것이다.」 주양왕은 즉시 주공열에게 명하여 위후를 민간의 빈방을 구해 별도로 죄인을 가두는 방을 만들고 그곳에 유폐시켰다. 원래 위후를 구해 주고 싶었던 주양왕은 단지 진후의 분노가 너무 크고 또한 선멸이 감시하고 있어 너무 관대하게 대해 줄 경우 진후의 뜻을 거스르게 되지나 않을까 걱정하여 별실을 만들어 유폐시킨 것이다. 그러나 겉으로는 민가에 유폐시켜 구금했다고 하지만 실은 관대한 처분을 내린 것이다. 영유는 위성공을 위하여 곁을 떠나지 않고 잠을 자는 것도, 밥을 먹는 것도 모두 같이 행하고 한 발자국도 그 곁을 떠나지 않았다. 모든 음식물은 필히 그가 먼저 맛을 본 연후에 위후에게 바쳤다. 선멸이 의원 연(衍)에게 위후를 짐독(鴆毒)을 먹여 죽이라고 여러 번 다그쳤다. 그러나 영유가 위후의 곁을 한 발자국도 떠나지 않고 그 곁을 지키고 있어 어쩔 도리가 없었다. 의연(醫衍)이 할 수 없이 자기의 난처한 사정을 영유에게 고백했다.

「우리 군주이신 진후께서는 고집이 세고 은원(恩怨) 관계에 분명하다는 사실은 귀하도 잘 알고 있을 것이오. 죄를 범하면 반드시 죽이고 원한을 품고 있으면 반듯이 보복을 하시는 분이십니다. 이 연이 이번에 그대들과 동행을 한 목적은 실은 주군의 명을 받들어 짐독을 써서 위후를 죽이기 위해서요. 내가 이 일을 행하지 못하면 죄를 얻어 죽임을 면치 못할 것이오. 내가 장차 죽음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그대의 군주를 필히 죽여야 되겠으니 대부께서는 저의 일에 관여하지 마시고 모르는 척하시기 바랍니다.」

영유가 의연(醫衍)의 귀에다 대고 속삭였다.

「그대가 이미 마음속에 있는 말을 나에게 말해 주었으니 내가 어찌 감히 그대를 속일 수 있겠소? 그대의 군주는 이제 몸이 늙어 사람의 생각을 멀리하고 귀신의 생각을 더 가까이 하고 있소. 근자에 들으니 조백이 그대 군주로부터 용서를 받았다고 하는데 단지 태사의 말 한마디로 그리 되었다고 했소. 그대는 짐독을 약하게 타서 우리 주군에게 먹이고 나서 죽지 않게 되면 단지 귀신 탓으로만 돌리면 진후는 그대에게 죄를 내리지 않을 것이오. 그래서 우리 주군께서 목숨을 구하게 되면 그대를 박절하게 대하지는 않을 것이오!」

의연이 머리를 끄덕이며 물러갔다. 영유가 아무도 몰래 보옥이 들어 있는 상자 한 개를 뇌물로 의연에게 전했다. 그리고 잠시 후에 다른 사람이 들을 수 있도록 큰 소리로 위후가 자기의 병을 약주로 치료하고 싶다고 했다면서, 의연에게 위후의 병을 치료할 수 있는 약주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의연은 선멸에게 독을 탄 약주를 먹여 병을 치료하는 척하며 위후를 죽이겠다고 고했다.

「위후가 죽을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의연은 즉시 선멸이 보는 앞에서 단지 안에 들어 있는 술에 짐독을 탔다. 그러나 사실은 극히 적은 양의 짐독과 다른 약을 섞어 그 색깔을 어지럽게 만든 것이었다. 이윽고 의연이 짐독을 탄 술병을 영유에게 건넸다. 영유가 맛을 보려고 하자 의연이 짐짓 허락하지 않고 위후를 윽박질러 마시게 했다. 의연은 위후에게 세 모금씩 두 번에 걸쳐 술단지 안의 술을 마시게 했다. 그러다 갑자기 의연이 눈을 크게 뜨더니 관사의 뜰 안을 노려보다가 큰소리로 비명을 지르며 땅에 쓰러져 버렸다. 땅바닥에 넘어진 의연은 입에서 선혈을 토하고 인사불성이 되었다. 의연이 넘어질 때 단지도 같이 엎어져 짐독을 탄 술이 땅위에 흘러 낭자하게 되었다. 영유가 아무 것도 모르는 척하면서 짐짓 크게 놀란 표정을 짓고 괴이한 일이라고 말했다. 영유는 즉시 좌우에게 명하여 의연을 부축하여 자리에 눕히고 안정을 취하게 했다. 그리고 얼마간을 기다리자 의연이 정신을 차렸다. 좌우에 있던 사람이 왜 갑자기 쓰러져 인사불성이 되었냐고 묻자 의연이 대답했다.

「술을 위후에게 먹일 때 갑자기 귀신 한 명이 나타났는데 신장이 한 장이 넘고 머리는 마치 말 통 만큼 커다랗고 그 차림새는 매우 위엄이 있었는데 하늘에서 내려와 방안으로 곧바로 들어와서 나에게 말 했습니다. ‘당숙(唐叔)의 명을 받들어 위후를 구하러 왔다.’ 말을 마친 그 귀신이 쇠뭉치를 꺼내 짐주가 들어 있는 술단지를 깨뜨려 버리고는 저와 위후의 혼백을 빼앗아가는 바람에 정신을 잃고 쓰러진 것입니다.」

위후도 자기가 본 것을 스스로 말했는데 그 내용이 의연이 한 이야기와 같았다. 영유가 화를 내는 척하며 말했다.

「네가 원래 독주를 써서 우리 주군을 해치려고 했음이 아니냐? 만약 하늘에서 신인이 내려와 구하지 않았더라면 어찌 우리 주군이 죽음을 면할 수 있었겠느냐? 나는 너 같이 간악한 자와는 같은 하늘 밑에서 살지 않으리라!」

그리고는 팔을 걷어 부치고 의연에게 싸움을 걸려고 달려드는 영유를 주위 사람들이 붙잡고 말렸다. 그때 민가를 떠나있던 선멸이 소식을 듣고 수레를 타고 나는 듯이 달려와서 영유에게 말했다.

「그대의 군주는 이미 하늘의 도움을 받았으니 그 작위가 아직 끊어지지는 않겠소! 내가 마땅히 돌아가 우리 군주께 아뢰도록 하겠소!」

위성공은 짐독을 탄 술을 마셔 그 양이 비록 극소량이라 할지라도 독물에 중독되어 그 후유증이 경미하다고는 할 수 없어 곧바로 몸져 눕게 되었다. 자리에 누워 얼마 동안의 간병을 받은 위후는 이내 기력을 회복하여 병석에서 일어났다. 병석에서 일어난 위후의 모습을 확인한 선멸은 의연을 데리고 당진으로 돌아갔다. 두 사람이 위후에게 일어났던 일을 문공에게 복명했다. 문공이 그 말을 믿고 의연을 용서하여 죽음을 면하게 하였다. 사관이 이를 두고 시를 지었다.

무슨 죄목으로 위후를 짐주로 독살하려 했는가?

의연에게 부질없이 술단지만 깨뜨리게 했구나!

문공의 노기가 비록 불과 같았지만

어찌 영유의 꾀에서 벗어날 수 있었겠는가?

鴆酒何名毒衛侯(짐주하명독위후)

漫敎醫衍碎磁甌(만교의연쇄자구)

文公怒氣雖如火(문공노기수여화)

怎脫今朝寧武謀(즘탈금조영무모)

한편 노희공(魯僖公)은 원래 위나라와는 오랫동안 친하게 지내 왔었다. 그는 진후가 보낸 의연이 짐주를 먹였으나 위후가 죽지 않았음에도 문공이 그에게 더 이상 죄를 주지 않았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대부 장손신을 불러 물었다.

「위후가 아직 복국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습니까?」

「복국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무슨 확실한 이유가 있습니까?」

「무릇 다섯 가지에 형벌에는 먼저 대형(大刑)이 있는데 중한 벌은 갑병(甲兵)을 동원하여 토벌하고 경한 벌은 죄인을 잡아다 부월로 목을 치는 것이고, 중형(中刑)의 중한 벌은 팔이나 다리를 톱이나 칼로 절단하며, 경한 벌은 사람의 신체부위에 문신을 뜨는 것입니다. 또한 하형(下刑)으로는 채찍으로 등을 때리거나 곤장으로 엉덩이를 때리는 것이고. 비교적 가벼운 형벌로써는, 죄지은 사람을 넓든 들판에 묶어 놓고 오고 가는 사람들에게 구경하게 하거나 죄인을 시정에 데리고 다니면서 그 자가 지은 죄를 세상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는 것입니다. 지금 당진의 군주가 위후에게는 이 다섯 가지 형벌로 다스리지 않고 사사로이 짐독을 마시게 하여 죽이려고 하였으나 죽일 수 없었고 또한 의연을 벌주지 않았으니 이것은 위후를 죽이는 일이 명분에 닿지 않기 때문입니다. 위후가 짐독을 마시고도 죽지 않았으니 이제 그는 주나라에서 늙어 죽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만약 주군께서 위후를 위해 청하신다면 진후는 틀림없이 위후의 죄를 용서해 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위후가 복국하면 우리 노나라와는 더욱 친밀하게 지낼 수 있게 될 뿐만 아니라 제후들 중 누가 감히 우리 노나라의 높은 의기를 칭송하지 않겠습니까?」

노희공이 기뻐하며 장손신에게 명하여 주나라에 가서 양왕에게 벽옥10쌍을 바치게 하고 위후의 석방을 청하게 했다. 양왕이 말했다.

「위후의 일은 진후의 뜻이라! 진후가 뒷말을 하지 않는다면 내가 어찌 위후를 석방하지 않겠소?」

장손신이 대답했다.

「저희 군주께서 저를 시켜 당진의 군주에게 위후의 사면을 청하게 했다 한들 어찌 천자의 명도 없이 하신(下臣)이 감히 스스로 찾아갈 수 있겠습니까?」

장손신이 바친 벽옥을 받아들인 양왕은 진후의 허락만 받아 내면 자기도 위후를 석방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장손신이 즉시 당진국으로 가서 문공을 배알하고 역시 가지고온 벽옥 10쌍을 바치면서 말했다.

「저희 군주께서는 위군과는 오래 전부터 형제의 정을 맺고 있습니다. 위후가 군주님께 죄를 얻어 황송한 마음으로 몸둘 바를 모르고 있습니다. 군후전하께서 이미 조백을 석방하셨다는 소식을 들으신 저희 주군께서는 변변치 못한 물건이나마 이 벽옥으로 위군을 위하여 속죄를 청하시고자 소신을 보내셨습니다.」

문공이 말했다.

「위후는 이미 왕도로 보내져, 이제는 천자의 죄인이 되었는데 과인이 어찌 스스로 위후의 죄에 대해 왈가왈부할 수 있겠소?」

「군후께서는 천자를 대신하여 제후들을 호령하시고 계십니다. 군후께서 위후의 죄를 용서한다고 하면 어찌 왕명과 다르다고 하겠습니까?」

선멸이 앞으로 나서며 상주했다.

「노나라가 위나라와 친하니 주군께서 노나라의 청을 받아들여 위후를 석방한다면 두 나라가 서로 더욱 친교를 맺어 우리 당진 편에 설 것입니다. 주군께서는 어찌하여 이러한 이로운 점을 취하시지 않으십니까?」

문공이 선멸의 말을 듣고 위후의 석방을 허락했다. 이어서 선멸에게 명하여 장손신과 동행하여 주나라에 가서 두 사람이 같이 천자에게 위후의 석방을 청하게 했다. 위성공은 드디어 석방되어 위나라로 돌아가게 되었다.

3. 위후복위(衛侯復位)

- 또다시 동생을 죽이고 두 번째로 복위하는 위성공 -

그때 원훤은 이미 공자괄(公子适)을 받들어 위후의 자리에 앉히고 성을 정비한 후 경계를 철저하게 하고 성문의 출입을 엄격하게 통제하고 있었다. 혹시 성공이 석방되어 귀국하지 않을까 우려해서였다. 성공은 석방되어 귀국하려고 하였으나 혹시 원훤이 군사를 동원하여 자기에게 대항하지나 않을까 걱정하여 영유와 비밀리에 상의했다. 영유가 말했다.

「제가 들으니 주천(周歂)과 야근(冶厪) 두 사람은 공자괄을 옹립하여 공을 세워 경의 벼슬을 원했으나 거절당했다고 합니다. 필시 가슴속에 원망하는 마음을 품고 있을 것이니 그들과 연락을 취하면 내응하겠다고 응할 것입니다. 신에게는 공달(孔達)이라고 하는 친한 친구가 한 명 있습니다. 송나라의 충신 공보가(孔父嘉)의 후손인데 가슴속에는 천하를 경영할 수 있는 넓은 경륜을 갖고 있습니다. 주천과 야근 두 사람도 공달과 서로 면식이 있으니, 공달로 하여금 주군의 명을 받들게 하고 다른 한편으로 두 사람에게 일이 성사되면 경의 벼슬을 준다고 회유하여 그들로 하여금 원훤을 죽이게 하면 그 나머지 잔당들은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대는 이 일을 결코 남이 알지 못하도록 비밀을 지켜야만 할 것이오. 이 일이 성사만 된다면 무슨 벼슬인들 내가 아끼겠소?」

영유가 자기 심복을 위나라 도성으로 보내 위후가 비록 하해와 같은 넓은 왕은을 입어 석방되기는 했지만 위나라에 돌아올 면목이 없어 초나라로 가서 몸을 의탁할 계획이라는 소문을 퍼뜨리게 했다. 그런 다음 위후의 친필로 쓴 편지를 공달에게 전하여 그로 하여금 주천과 야근 두 사람과 비밀리에 결당한 후 위성공의 복국을 도모하라고 했다. 영유의 청을 허락한 공달이 다시 주천과 야근 두 사람을 찾아가 위성공의 복국을 위해 안에서 내응하라고 했다. 공달이 돌아간 후에 주천과 야근 두 사람은 거사를 일으키기로 서로 상의하면서 말했다.

「원훤이 매일 밤마다 빠지지 않고 친히 성 주위를 돌아보고 있습니다. 우리가 자객을 성곽의 관문 주위에 매복시켜 놨다가 원훤이 다가오면 일제히 뛰어나와 죽인 후에 궁궐로 몰려가 자하(子瑕) 공자괄(公子括)를 죽이도록 합시다. 그런 다음 궁실을 깨끗이 청소하고 위후를 영접한다면 어느 누구도 우리 두 사람이 세운 공을 능가하지는 못할 것이오!」

두 사람이 가병을 모아 서로 성곽의 관문 있는 데에서 만나기로 약속한 후에 시간이 되자 가병을 끌고 와서 그 뒤에 숨었다. 날이 어둑해질 무렵 성곽을 순시하다 동문에 당도한 원훤을 동문 앞에서 서성거리던 주천과 야근이 보고 일제히 그의 앞으로 달려가 영접하는 척했다. 원훤이 놀라 물었다.

「두 분 대부께서 어쩐 일로 이곳에 계십니까?」

주천이 대답했다.

「외부 사람이 와서 전하기를 구군이 이미 위나라 경내로 들어왔다고 했습니다. 조석지간에 이곳에 당도한다는데 대부께서는 그 소문을 듣지 못했습니까?」

원훤이 깜짝 놀라 말했다.

「그 소문을 어디에서 들으셨습니까?」

야근이 나서서 대답했다.

「소문에 듣자니 대부 영유가 이미 성안으로 들어와 여러 신료들과 만나 성 밖으로 나가 구군을 맞이하기로 약속했다는데 대부께서는 그 사실을 아직도 모르고 계십니까?」

「이것은 미친 소리라! 어찌 그런 말을 믿습니까? 하물며 이미 위나라 신군의 군위는 이미 정해졌는데 어떻게 옛날의 군주를 다시 복위시킬 수 있단 말이오?」

주천이 본색을 드러내 원훤을 힐난했다.

「대부의 벼슬은 정경(正卿)이니 마땅히 만리 밖의 일도 통찰해야 되거늘 이렇게 중차대한 일을 아직도 모르고 있으니 그대의 처사는 너무 심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주천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야근이 갑자기 달려들어 원훤의 두 손을 잡았다. 원훤이 황급히 야근의 손을 뿌리치고 대항하려고 하자 주천이 허리에서 칼을 뽑아 큰소리를 한번 지르면서 원훤의 머리를 위에서부터 내리쳤다. 원훤은 두개골이 두 조각나서 죽었다. 그와 동시에 성문 뒤에 숨어 있던 복병들이 일제히 일어나자 원훤을 수행했던 군사들은 놀라 일시에 모두 달아나 버렸다. 주천과 야근이 가병들을 거느리고 길을 가면서 큰소리로 외쳤다.

「위후가 제와 노 두 나라의 병사들을 이끌고 성 밖에 당도하셨다. 성 안의 백성들은 각기 집안에서 머물고 밖으로 나와 절대 소란스럽게 하지 말라!」

위나라 백성들이 모두 집안의 대문을 걸어 잠그고는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한편 조당에 있던 관리들은 반신반의 하며 그것이 무슨 연고인지 알지 못했다. 모두들 소매를 늘어뜨리고 조용히 앉아서 밖에서 소식이 들어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얼마 있지 않아 주천과 야근 두 사람이 가병들을 데리고 궁중으로 몰려들었다. 그때 신군 공자괄은 마침 동생 공자의(公子儀)와 궁중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들은 궁문 밖에서 나는 소란스러운 소리를 듣고 병변이 일어났음을 알았다. 공자의가 자리에서 일어나 칼을 빼 들더니 궁 밖으로 나가 소식을 알아보려 하였다. 그때 궁궐을 향해 달려오고 있던 주천과 야근이 공자의를 발견하고 달려들어 살해했다. 두 사람은 궁중으로 돌진하여가 공자괄을 찾았으나 어디에 숨었는지 알 수 없었다. 궁중에서 한바탕 소동이 끝나고 아침이 되어 날이 밝자 공자괄은 궁궐 안의 우물에 몸을 던져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주천과 야근이 위후가 친필로 쓴 편지를 꺼내 조당의 벽에 방을 만들어 붙였다. 백관들이 모두 모여 성밖으로 나가 성공을 영접했다. 마침내 초구성에 재차 입성한 위성공은 세 번째로 위나라 군주의 자리에 올랐다.

후세의 사관이 영유에 대해 논평했다. 꿈 이야기를 지어내며 무수한 어려운 곡절 끝에 위성공을 위후의 자리에 복위시킨 일은 그의 뛰어난 지혜라고 했다. 그러나 그 당시 능히 위후의 유지로 공자괄로 하여금 위후의 자리를 양위하도록 권유했더라면 공자괄도 군사를 앞세워 감히 항거하지 않았지 모를 일이라고 했다. 영유가 일을 그렇게 처리했다면 공자괄은 군위를 양위하고 물러나 신하의 신분으로 남아 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두 형제를 같이 보전하지 못하고 주천과 야근을 사주하여 원훤을 습격하게 하고, 그들로 하여금 시역의 죄를 짓게 함과 동시에, 골육상쟁의 비극이 일어나게 했으니 비록 위성공이 야박한 사람이라 해도 영유도 책임을 면할 수 없다고 했다. 사관이 위성공의 무도한 행위와 영유의 지혜롭지 못한 처사에 대해 시를 지어 비난했다.

선발대를 보내어 활을 쏘아 동생을 죽여 원한을 사더니

이번에는 다시 신군을 압박하여 우물에 몸을 던지게 했다.

시종일관 욕심 많고 잔인한 위성공을 말리지 않았으니

영유가 어질다고 하는 말은 천추에 걸친 헛소리가 아닌가?

前驅一矢正含寃(전구일시정함원)

又迫新君赴井泉(우박신군부정천)

終始貪殘無諫阻(종시탐잔무간저)

千秋空說寧兪賢(천추공설영유현)

위성공이 복위하고 나서 길일을 택하여 태묘에 제사를 지내기로 하고, 이어서 옛날에 주천과 야근에게 한 약속을 저버리지 않고 두 사람을 경의 벼슬에 제수했다. 두 사람은 경상(卿相)이 입는 예복을 입고 위성공이 태묘에 지내는 제사에 참석을 허락 받았다. 이윽고 제사를 지내기로 한 날이 되어 오고가 되자 주천이 수레를 타고 태묘의 대문에 먼저 도착했다. 그러나 멀쩡하던 주천이 갑자기 눈을 부릅뜨고 허공을 쳐다보며 큰소리로 외쳤다.

「주천 소인배 도적놈아! 사악하고 더러운 역적 놈아! 우리 부자가 나라를 지키기 위해 충성을 바쳤는데 너는 경이라는 벼슬자리가 탐이 나서 우리들을 해쳤다. 우리 부자가 구천에서 원한을 잊지 못하고 있는데 너는 복장도 화려하게 차려입고 태묘의 제사에 배석을 하게 되었으니 네 마음이 참으로 즐겁겠구나! 내가 너를 잡아다 숙무님과 공자괄님 앞에 대령시켜 네가 무슨 말로 변명하는지 보겠다. 나는 곧 상대부 원훤이니라!」

말을 마친 주천이 구공에서 피를 쏟아 내더니 몸이 싸늘하게 굳어져 수레 안에서 죽고 말았다. 뒤따라오던 야근이 주천이 피를 쏟고 죽어 있는 모습을 보고 대경실색하여 황망하게 경이 입는 화려한 복장을 벗어버리고는 한질이 걸렸다고 핑계를 대고 집으로 돌아가 버렸다. 위성공이 태묘에 당도하여 다시 명령을 바꾸어 영유와 공달을 배석시켜 제사를 지냈다. 제사를 지내고 조당에 돌아왔을 때는 야근이 경의 자리를 사양한다는 표문이 이미 와 있었다. 주천이 죽은 정황이 심상치 않다고 생각한 위성공은 야근의 표문을 돌려보내지 않고 경의 작위를 받으라고 더 이상 강요하지 않았다. 그리고 한 달이 못되어 야근도 역시 병이 들어 죽고 말았다.

가련하게도 주천과 야근 두 사람은 단지 경이라는 벼슬에 눈이 어두워서 불의한 일을 저질렀지만 단지 하루도 경의 벼슬자리를 누리지 못하고 둘 다 모두 천년을 두고 욕을 먹게 되었으니 어찌 어리석다고 하지 않겠는가? 위성공은 영유가 자기를 보위한 공이 있다고 생각하여 상경으로 삼고자 했으나 영유가 상경의 자리를 공달에게 양보하고 자기는 아경이 되었다. 공달과 위후가 상의하여 사자를 진후에게 보내 원훤과 공자괄의 죽음은 모두 이미 죽어 버린 주천과 야근 두 사람이 저질은 짓으로 미루고 자기의 죄를 용서하여 준 것에 대해 감사의 말을 올리게 했다. 당진의 문공도 역시 더 이상 상세하게 묻지 않았다.

4. 촉무세진(燭武說秦)

- 진진(晉秦)을 이간시켜 정나라를 멸망의 문턱에서 구해낸 촉무(燭武) -

주양왕22년 기원전 631년은 당진의 문공이 군주의 자리에 오른 지 6년째 되는 해다. 당진의 군사들이 성복의 싸움에서 돌아와 휴식을 취한지 이미 일 년이 지났다. 문공이 어느 날 조당의 옥좌에 앉아서 군신들에게 말했다.

「정백의 무례함을 아직 묻지 못했는데 오늘 정나라는 다시 우리 당진을 배반하고 초나라 편으로 돌아섰다. 내가 제후들을 모이게 하여 죄를 묻고자 하는데 경들의 생각은 어떠한가?」

선진이 나서서 말했다.

「제후들이 누차 회맹에 소집되었는데 오늘 정나라의 일로 다시 군사를 동원하여 모이라고 하면 중원이 소란스럽게 될 것입니다. 하물며 주군의 명을 받들어 우리 군사들만으로 출병을 해도 능히 정나라를 정벌할 수 있는데 하필이면 외국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있겠습니까?」

「옛날 허나라를 정벌할 때 섬진의 군주와 약속한 일이 있었소. 당진과 섬진 두 나라 중 어느 한 나라가 군사를 움직일 때는 반드시 서로 도와야 한다는 약조를 했소.」

「정나라의 지리적인 위치는 사람이라면 목구멍에 해당하는 중원의 요충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연유로 제환공이 방백의 자격으로 천하를 호령할 때 항상 정나라 땅을 다투었습니다. 금일 만약 섬진과 힘을 합하여 정나라를 정벌하게 된다면 우리는 앞으로 정나라를 가운데에 두고 섬진과 서로 다투게 될 것입니다. 차라리 우리 당진의 군사들만으로 정벌하는 편이 옳을 줄 압니다.」

「정나라는 당진과 이웃해 있고 섬진과는 멀리 떨어져 있소. 섬진이 어떻게 정나라를 놓고 우리와 다툴 수 있겠소?」

선진의 말을 물리친 문공이 즉시 사자를 섬진으로 보내 군사를 일으킬 날짜를9월 상순으로 정하고 두 나라가 정나라 국경에서 만나기로 했다. 문공이 출정에 임하여 공자란(公子蘭)을 동행하려고 했다. 공자란은 곧 정문공과 연길(燕姞) 사이의 소생인데 자화(子華)의 란(亂)③당시에 당진으로 도망쳐 와서 대부의 벼슬을 하고 있었다. 뒤이어 진문공이 당진의 군주 자리에 오르자, 그는 곁에 머물면서 문공의 신변 잡일을 잘 처리했다. 또한 그의 성격이 충직하고 근면하기가 이를 데 없어 문공이 깊이 총애하고 있었다. 문공이 정나라를 정벌하기 위해 출병하는 길에 공자란을 향도로 삼고 싶어 불렀다. 공자란이 사양하며 문공에게 말했다.

「신이 듣기에 군자는 비록 타향에 나와 살고 있다 하더라도 부모의 나라를 잊으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주군께서 저의 부모나라인 정나라를 토벌하러 가시는데 신이 어떻게 감히 그 일에 낄 수가 있겠습니까?」

문공이 기특하게 생각하며 말했다.

「경은 가히 근본을 잊지 않는 군자라 하겠소!」

이어서 공자란을 당진의 동쪽 국경을 지키는 고을에 머물게 했다. 이때부터 문공은 공자란을 정나라의 군주로 삼아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윽고 당진군이 정나라 경계에 당도하자 섬진의 목공도 역시 모신 백리해와 맹명시를 대장으로 기자(杞子), 봉손(逢孫), 양손(楊孫)등의 장수를 부장으로 삼아 병거 200승을 이끌고 정나라 땅에 당도했다. 두 나라 군사들이 힘을 합하여 정나라 관문을 돌파하여 곧바로 곡유(曲洧)④까지 와서 길게 정성에 대한 포위망을 구축하고 아무도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하게 했다. 당진군이 계속해서 함릉(函陵)⑤으로 진군하여 영채를 세우자 섬진의 군사들은 사수(汜水)⑥의 남쪽에본영을 세웠다. 두 나라 군사들은 정성 주위를 밤낮으로 돌며 일체의 식량이나 땔감들을 성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철통같이 지켰다. 정문공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당황해 했다. 상경 숙첨이 말했다.

「섬진과 당진의 군사들이 힘을 합쳤으니 그 세력이 매우 날카로워 절대 대항해서 싸울 수 없습니다. 한 사람의 변사를 구하여 섬진의 군주를 찾아가게 해서 설득하여 군사를 물리치야 합니다. 만일 섬진의 군사들이 물러간다면 당진의 군사들은 고립되어 두려워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누가 가서 섬진의 군주를 설득시킬 수 있단 말이오?」

「일지호(佚之狐)라면 가능할 것입니다.」

정백이 일지호를 불러 섬진의 진영으로 가서 군사를 물리치도록 진백에게 유세하도록 했다. 일지호가 듣고 말했다.

「신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이 일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신이 한 사람을 천거겠으니 저를 대신하도록 하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그 사람의 구변은 물 흐르듯 하여 막힘이 없으며 그 세 치 혀는 깊은 산중에 사는 거사들의 마음도 움직일 수 있습니다. 단지 그는 나이가 들도록 천거해 주는 사람이 없어서 초야에 묻혀 살고 있는 중입니다. 만약 주공께서 그를 불러 관직에 임명한 후에 섬진의 진영으로 보내신다면 진백을 설득하지 못할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입니다.」

「그 사람이 누구인가?」

「고성(考城)⑦에 사는데 성은 촉(燭)이라 하고 이름은 무(武)라 합니다. 나이가 이미 70이 넘어 우리 정나라에서 어정(圉正)⑧의 일을 맡아보고 있습니다. 그의 집안은 삼대 째 어인(圉人)의 일만 계속 맡아와 다른 벼슬로 옮겨보지 못했습니다. 주공께서 예를 갖추어 부르시어 섬진의 진영으로 보내십시오.」

일지호의 말을 따라 정백이 즉시 촉무를 불렀다. 이윽고 정문공이 입궐한 촉무의 모습을 보니 그의 수염과 눈썹은 새하얗게 변해 버렸고 허리는 곱사등처럼 굽었을 뿐만 아니라 제 몸 하나도 가누지 못하고 비틀거리며 걸어 다니는 실로 형편없는 모양을 하고 있는 늙은이였다. 정문공의 좌우에 서 있던 사람들이 촉무의 몰골을 보고 웃음이 터지려는 것을 억지로 참았다. 촉무가 정백에게 절을 올리며 말했다.

「주공께서는 늙어 쓸모없게 된 이 사람을 어인 일로 부르셨습니까?」

「그대가 변설에 능하다는 일지호의 말을 듣고 불렀소. 그대가 수고롭겠지만 진백을 설득하여 그의 군사를 물러가게 한다면 과인은 그대와 함께 이 나라를 같이 다스리겠소!」

촉무가 다시 절을 올리며 사양하는 말을 올렸다.

「신은 배움이 많지 못하고 가지고 있는 재주는 자랑할 바가 없습니다. 소신이 젊어서는 나라를 위해 한 치의 공도 세울 수가 없었는데 하물며 이제 나이 70이 넘어 근력은 이미 힘이 빠지고 기침이 자주 나와 자유롭게 말도 할 수 없는 몸이 되었습니다. 어찌 이런 몸으로 타국 군주의 안전을 어지럽혀 설득하여 천승의 군사를 움직이게 할 수 있겠습니까?」

「그대의 집안이 삼대에 걸쳐 우리 정나라를 섬겼으나 내가 발견하지 못하여 늙도록 쓰지 못했으니 이것은 과인의 잘못이오! 오늘 그대를 아경(亞卿)의 직에 제수하니 과인을 위해 한번 행차하여 주기 바라오!」

일지호가 정백의 곁에 있다가 촉무를 칭송하는 말로 거들었다.

「대장부가 때를 만나지 못하여 몸이 늙은 것은 다 자기의 운명으로 돌린다고 하겠으나 이제 주군께서 선생을 불러 쓰고자 하시니 선생은 결코 사양하지 마시오.」

촉무가 즉시 명을 받들어 정백 앞에서 물러 나왔다.

이윽고 당진과 섬진 두 나라가 정나라 도성을 에워싸고 맹렬한 기세로 공격을 퍼부었다. 정성의 동쪽에 진채를 세운 섬진군과 서쪽에 진채를 세운 당진군은 서로 긴밀한 연락은 취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촉무는 알고 있었다. 그날 밤 촉무는 굵은 밧줄에 묶여 성벽을 내려와 정성을 탈출했다. 곧바로 섬진군의 진채로 달려간 촉무는 장수들과 군사들이 앞을 가로막았기 때문에 진백을 만날 수 없었다. 촉무가 할 수 없이 섬진군의 영채 밖에서 목을 놓아 크게 소리쳐 울었다. 진채를 경비하는 군리가 촉무를 잡아다가 목공 앞으로 데려와 보고했다. 목공이 물었다.

「그대는 누구인가?」

촉무가 대답했다.

「노신은 바로 정나라의 대부 촉무라는 사람입니다.」

「어찌하여 이곳까지 와서 곡을 하는가?」

「곡을 한 이유는 정나라가 장차 망할 것 같아서 입니다.」

「정나라가 망하는데 어찌하여 내가 있는 영채까지 와서 곡을 하는가?」

「노신이 곡을 한 것은 정나라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섬진을 위해서이기도 입니다. 정나라가 망하는 것은 그다지 애석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섬진이 망하는 것은 실로 애석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목공이 대노하여 큰 소리로 꾸짖으며 말했다.

「우리나라가 어찌하여 망하게 되어 네가 애석하게 생각한단 말이냐? 너의 말이 이치에 맞지 않으면 내 당장 너의 목을 베리라!」

촉무가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두 개의 손가락을 펴더니 한 손가락으로는 동쪽을 가리키고 다른 한 손가락으로는 서쪽을 그리며 쌍방간의 이해득실을 따지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마치 다음시가 말하고 있는 것과 같았다.

그가 설득하기 시작하면 돌로 만든 사람도 눈을 뜨고

도리를 설파하기 시작하면 토용(土俑)도 고개를 끄덕였다.

아침의 붉은 해를 능히 야밤에도 뜨게 할 수 있고

동쪽으로 흐르는 황하를 서쪽으로 흐를 수 있게 했도다.

說時石漢皆開眼(설시석한개개안)

道破泥人也点頭(도파니인야점두)

紅日朝升能夜出(홍일조승능야출)

黃河東逝可西流(황하동서가서류)

말문이 터진 촉무가 목공을 향해 말했다.

「섬진과 당진이 군사를 합하여 정나라에 임했으니 정나라의 멸망은 시간문제라 하겠습니다. 정나라의 멸망이 섬진에게 이익이 된다고 노신은 감히 말하지 못하겠습니다. 오히려 정나라의 멸망은 섬진에게 무익할 뿐만 아니라 해가 될 것입니다. 군주께서는 어찌하여 그 군비와 재물을 허비하면서 다른 나라를 위해 군사들의 수고로움을 아끼지 않는 것입니까?

「그대가 이번 군사의 일이 무익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손해라고 했는데 무슨 뜻인가?」

「우리 정나라는 당진의 동남쪽과 경계를 하고 있으며 섬진은 또한 당진의 서쪽과 경계를 맞대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린다면 섬진과 정나라는 당진을 사이에 두고 천리가 떨어져 있습니다. 섬진의 입장에서는 동쪽으로는 당진과 격해 있고 남쪽으로는 주나라와 경계를 접해 있어 우리 정나라에 오기 위해서는 필히 주나라 땅을 경유해야 합니다. 그러니 망한 우리 정나라 땅은 당진의 소유가 되지 않겠습니까? 즉 망한 정나라의 모든 땅은 당진의 소유가 되고, 또한 당진은 정나라 땅을 섬진과 나누어 가질 아무런 이유가 없습니다. 그리고 섬진과 당진 양국은 경계를 접하고 있는 이웃 나라이기 때문에 그 세력을 서로 다투고 있기 때문에 당진의 세력이 강해지면 섬진은 이와 반대로 세력이 약화되게 되어있습니다. 영토를 늘리고자 하는 이웃나라를 위해서 스스로 자기 나라를 약하게 하는 일은 지혜있는 사람이 취할 행동이 아닙니다. 옛날 당진의 혜공이 이미 하외오성(河外五城)을 군후께 할양하겠다고 약속을 한 후에 군주의 도움으로 입국하여 당진의 군주가 되자 그 약속을 저버린 일은 군주께서 직접 경험하시어 익히 알고 계시는 일입니다. 군후께서는 당진의 여러 군주들에게 은혜를 베푸셨지만 지금까지 추호도 그 은혜에 보답한 군주가 있었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습니다. 지금 군주님의 도움으로 복국하여 당진의 군위에 오른 지금의 진후는 군사의 수를 늘리고 장수를 뽑아 다른 나라를 병탄하여 하루가 다르게 국세가 강해진 결과 금일 그 영토를 동쪽까지 넓히고자 정나라에 쳐들어왔습니다. 후일에 당진은 반드시 그 영토를 서쪽으로 넓히려고 시도할 것입니다. 그것이야 말로 섬진의 근심거리가 되지 않겠습니까? 군주께서는 우(虞)나라와 괵(虢)나라의 일을 들어보시지 못했습니까? 우나라 군주로 하여금 괵나라를 멸하게 한 후에 우나라를 멸하여 결국은 두 나라를 병탄했습니다. 지혜가 부족한 우공이 당진을 도운 행위는 스스로 자멸했다고 밖에는 달리 말할 수 없습니다. 이것을 교훈으로 삼아야만 하지 않겠습니까? 군주께서는 당진에게 수많은 은혜를 베풀었다는 이유만으로 당진을 결코 믿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당진이 어떻게 섬진을 이용할 것인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군주전하께서 지혜를 갖추고 계심에도 불구하고 즐거이 당진의 계략에 떨어지고 계시니 이런 연유로 ‘이로운 점이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손해만 있을 뿐이라’라고 말씀드린 것입니다. 그런 연유로 이처럼 통곡을 했습니다.」

촉무의 말을 다 듣고 나서 오랫동안 생각에 잠겼던 목공의 얼굴에 이윽고 두려운 빛을 띄우더니 다시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촉무를 향해 말했다.

「그대의 말이 옳도다!」

백리해가 곁에 있다가 목공에게 간했다.

「촉무는 일개 변사일 뿐입니다. 우리와 당진 두 나라 사이를 벌어지게 하려는 이간책이오니 주군께서는 귀를 기울이지 마십시오.」

촉무가 다시 말했다.

「군주께서 만약 너그러운 마음으로 우리 정성의 포위를 풀어 주신다면 맹세컨대 초나라를 버리고 섬진에게 항복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군주께서 동방에 만약 무슨 일이 생긴다면 이곳에 왕림하시어 정나라에서 모든 것을 취하시어 마치 군주전하의 외부에 있는 나라처럼 받들어 모시겠습니다.」

목공이 크게 기뻐하여 즉시 촉무와 삽혈의 의식을 행한 후에 오히려 기자, 봉손, 양손 등의 세 장군과 보졸 2천 명을 남겨 두어 정성을 지키게끔 돕게 하고 자기는 당진의 진영에 통고도 하지 않고 비밀리에 군사를 이끌고 자기나라로 회군해 버리고 말았다.

다음날 아침 일찍이 당진군의 탐마가 달려와서 섬진의 군사가 물러갔다는 것을 문공에게 보고했다. 문공이 대노하자 호언이 곁에 있다가 섬진군의 뒤를 추격해야 한다고 진언했다.

《제44회로 계속》

주석

①천택(天澤) : 주역 64괘 중 10번 째의 괘로 상은 건(☰)에 하는 태(☱)다.

②소목(昭穆) : 종묘나 사당에 신주(神主)를 모실 때의 차례. 중앙에 문중을 창건한 태조를, 그 왼쪽에는 그 후대를 모시는데 이를 소(昭)라하고 그 오른쪽에는 소(昭)의 아랫대를 모시는데 이를 목(穆)이라 한다.

③자화(子華)의 란(亂) : 정문공의 세자 화(華)가 제환공을 찾아가 자기를 도와 정백의 자리에 앉혀주면 제나라를 받들겠다고 하자 관중이 그 사실을 정나라에 알려 자화가 정문공에게 살해된 일을 말함. 연의(演義) 24회 내용 참조.

④곡유(曲洧) : 현 하남성 언릉(鄢陵) 동남쪽 약 20키로 지점의 유수(洧水) 강안의 고을. 허창시(許昌市) 서쪽 약 40키로 지점

⑤함릉(函陵) : 지금의 하남성 신정시(新鄭市) 북 약 20키로의 노가촌(蘆家村)이다.

⑥사남(汜南) : 사수(汜水)의 남쪽이다. 사수는 지금의 하남성 공의시(鞏義市)와 형양시(滎陽市) 경계의 방산(方山)에서 발원하여 북쪽으로 흘려 사수진(汜水鎭)을 경유하여 황하로 유입되는 강이다. 호뢰관(虎牢關)은 사수진의 옛이름이다.

⑦ 고성(考城) : 지금의 하남성 란고현(蘭考縣)으로 개봉시(開封市) 동 20키로 춘추 때 대국(戴國)의 영토였다고 정나라에 병합되었다.

⑧ 어정(圉正) : 공실 소유의 말을 기르고 관리했던 관서의 장

[평 설]

진문공이 패업을 이룩한 방법은 제환공의 것과 거의 일치한다. 우선 제환공은 북쪽의 이민족인 융적(戎狄)의 침략을 물리치는 과정에서 패업을 완성시켰고, 진문공은 당시 형만(荊蠻)이 중원제후국들을 압박하는 과정에서 서로 이익이 일치하지 않은 제후국들과 연합하여 공동으로 초나라에 대항했다. 성복의 싸움에서 진문공은 섬진과 제 두 나라를 자기 진영에 끌어들임으로 해서 중원제후국들과 공동으로 초나라를 대표로 하는 남방세력들에 대립하는 국면을 조성했다. 싸움이 끝남과 동시에 중원제후국들은 각각의 상충하는 이해관계를 노출시켰다. 강력한 당진국의 존재는 섬진국이 중원으로 진출하는 데 가장 큰 장애요인이 되었고, 그런 원인으로 인하여 진목공은 천토의 회맹식에 참가하지 않은 것이다.

천토의 회맹에서 제후들은 삽혈의 의식을 행하며 맹세했다. “ 맹세를 어기는 자는 천지신명의 뜻을 밝혀 죽음을 내릴 것이다.” 라고 서로의 신의를 믿기로 맹세한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맹세도 제후들의 상충하는 이익을 해결하지는 못했다. 우선 천토에서 회맹의 의식이 끝나자마자 맹주에 해당하는 진문공 자신도 위성공(衛成公)을 독살하려고 했으며, 정문공(鄭文公) 역시 진문공이 천토의 회맹에 참석하지 않은 초나라의 위성국 허나라를 정벌하려는 계획을 비밀리에 초나라에 알려 초나라 세력이 북상할 경우에 대해 안전판을 마련한 것이다. 정문공의 배신 행위를 알게 된 진문공은 적천(翟泉)에서 진목공과 만나 당진과 섬진 두 나라 중 어느 한 나라가 군사행동을 할 경우 다른 나라는 군사를 내어 돕는 다는 내용의 비밀협정을 체결했다. 기원전 630년 당진과 섬진이 연합군을 결성하여 정나라 정벌에 나섰다.그래서 정나라의 운명은 조석지간에 달리게 되었다. “ 밧줄을 타고 성벽을 내려와 섬진의 군주에게 유세하는 정나라의 노신 촉무(燭武)” 편은 일종의 심리전이었다. 진목공이 심중에 갖고 있는 생각이 촉무의 몇 마디 말에 드러나고 말았다. 그래서 진목공은 정나라에 대한 공격을 중지했을 뿐 아니라 오히려 휘하의 세 대장을 남겨 정나라를 지키는데 돕도록 했다. 섬진이 정나라를 공격하는데 당진을 돕지 않고 철군해버리자 당진군도 부득이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 어째서 제후들 사이의 맹세와 약속이 서로 지켜지지 않았을까? 그것은 바로 제후들 각자의 이익에 서로 변화가 생겼기 때문이었다. 촉무의 “ 이익”이라는 말에 모든 것이 담겨져 있는 것이다. 당진의 동쪽에는 정나라가, 서쪽에는 섬진이 있어 정과 섬진은 당진을 사이에 두고 천리 밖에 떨어져 있음으로 해서 정나라가 망하면 정나라의 모든 것은 당진의 차지가 될 것이며 당진의 서쪽에 멀리 떨어져 있는 섬진으로써는 정나라를 차지할 수 있는 기회는 완전히 사라져버릴 것이라고 촉무는 진목공에게 유세한 것이다. 정나라가 한 번 당진국으로 넘어가게 되면 그것은 바로 당진은 강대국이 될 것이며, 섬진국은 더욱 약해져 국력은 극도로 차이가 벌어질 것이다. 하물며 당진국의 군주는 욕심이 한없이 많아 지금 현재는 동쪽의 정나라를 정벌하는 것이지만 내일은 서쪽으로 그 공격방향을 돌려 섬진을 공격할 것이다. 그 밖에도 당진국은 아름답지 못한 과거를 갖고 있었다고 했다. 진문공이은 옛날 초(焦)와 하(瑕) 두 땅을 섬진에 할양하기로 약속한 다음, 새벽에 황하를 건너 자기 나라로 돌아가더니 오후가 되어 그곳에 성벽을 쌓고는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결국은 약속한 땅을 섬진에게 넘겨주지 않은 일이 있었던 것이다. 촉무가 진목공에게 행한 유세는 <좌전(左傳).희공(僖公) 30년> 조의 역사상 실제로 있었던 일이며 동주열국지가 허구로 지어낸 일이 아닌 것이다.

『백전기략(百戰奇略)·모전(謀戰)』에 ‘무릇 적이 아군을 도모하기 위해 공격한다면, 상대방의 계략을 무력화 시켜 굴복시킨다.’라고 했듯이 촉무가 행한 전략이야말로 이를 두고 이른 것이다. 그는 섬진과 당진의 포위망을 풀었을 뿐만 아니라 두 나라를 이간시켜 한꺼번에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은 셈이 되었다. 촉무가 그와 같은 계책을 성공시킨 것은 심리적인 요인에 다방면적인 지식을 이용하여 진목공의 마음을 정복했기 때문이다. 여하히 적군의 이익과 모순점을 분석하여 분리시킨 촉무의 전략은 후세 사람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섬진국의 그와 같은 배신행위는 당진국의 신료들을 분노케 하였으나 진문공은 거시적인 전략차원에서 섬진에 대해 즉각적인 보복행동에 들어가지 않았다. 그러한 행동도 범인으로써 쉽게 따라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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