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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05-11 11:26:574780 
제37회. 錦上焚志 (면상분지) 怙寵通姦(호총통간)
양승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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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제37회

錦上焚志 怙寵通姦(면상분지 호총통간)

면상산의 화염 속에 절개를 태운 개자추와

총애를 믿고 왕중을 출입하며 왕비와 사통한 태숙 대(帶)

1. 기강지복(紀綱之僕)

- 3천의 기병을 보내 당진국의 기강을 바로 잡은 진목공 -

여성과 극예를 왕성으로 유인하여 죽인 진문공 중이는 절을 올려 진백 목공의 도움에 대해 감사를 표했다. 또한 그는 친영례(親迎禮)①를 행해 회영을 부인을 맞이하여 당진으로 데려가려고 했다. 목공이 듣고 말했다.

「이미 회공 어(圉)에게 몸을 버린 내 딸이 감히 군후전하의 부인이 된다면, 귀국의 종묘에 욕을 보이지나 않을까 심히 걱정됩니다. 단지 데려가서 비빈이나 궁녀로 거두어 주기만 한다 해도 그저 고마울 따름입니다!」

「섬진과 당진은 대대로 혼인 관계를 맺어 왔는데 어찌 그만한 일로 종사를 받들지 못하겠습니까? 군주께서는 겸양의 말씀을 하지 마십시오. 본국의 사대부들 대부분은 제가 이곳에 와 있는 줄 아직 모르고 있는데 이번 기회에 혼례를 크게 올린다면 이것 또한 아름다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크게 기뻐한 목공이 즉시 문공을 데리고 옹성으로 돌아가 혼례식을 성대하게 행했다. 그리고 며칠 후에 화려하게 장식한 치병(輜輧)②을 준비하여 회영(懷嬴)과 다섯 명의 잉첩(媵妾)들을 태워 문공과 함께 당진국으로 들어가게 했다. 목공이 친히 그 딸을 하수 까지 전송하면서 별도로 3천 명의 정예로운 기마병을 딸려 보내 문공과 회영의 일행을 무사히 호송한 후에도 계속 당진국에 머물러 문공이 조정의 기강을 바로 잡는데 돕도록 했다. 사람들은 문공에 딸려 보낸 섬진의 군사 3천 명을 『기강지복(紀綱之僕)③』이라고 칭했다. 이 일로 인해 집안을 다스리는데 쓰이는 기강(紀綱)이라는 말의 어원이 되었다. 문공의 일행이 회영을 데리고 하수를 건너자 미리 법가를 준비하여 하수의 나루터에서 기다리고 있던 조쇠를 위시한 당진의 여러 신하들이 문공 부부를 영접했다. 당진의 문무백관들은 문공이 탄 법가를 앞세우고 그 뒤를 따랐다. 그들 일행의 삼엄한 정기는 하늘을 가리고 북소리는 천지를 진동시켜 참으로 장관이었다.

얼마 전 문공이 강도의 궁궐에서 아무도 몰래 한 밤중에 잠행할 때는 땅 위로 기어 올라온 자라가 꼬리와 목을 움츠린 형상과 같았다고 할 수 있었으나, 다시 강도로 돌아가는 지금의 행렬은 마치 산등성이에서 나타난 봉황이 짝을 지어 머물다가 또다시 비상하는 모습의 호화로운 행렬이 되었다. 한마디로 말하면 ‘피일시차일시(彼一時此一時)’라는 뜻의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다’이라고나 하겠다.문공의 일행이 드디어 강도에 당도하자 성내의 모든 사대부들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밖으로 나와 만세를 부르며 축하의 뜻을 표했다. 조당에 들어가 옥좌에 앉은 문공을 향해 백관들이 경축을 올렸다. 문공은 회영을 정부인으로 세웠다.

처음에 당진의 헌공이 그의 딸 백희를 섬진의 목공에게 시집을 보낼 때에 태복 곽언에게 길흉을 알아보기 위해 점을 치게 하여 다음과 같은 점괘를 얻은 바가 있었다.④

대를 이어서 장인과 사위가 되어

우리의 군주를 세 번 세울 것이다.

世作甥舅(세작생구)

三定我君(삼정아군)

백희는 목공의 부인 목희(穆姬)를 말하니 섬진의 목공은 당진의 헌공에게 사위가 되며, 또한 회영은 목공의 딸이니 이것은 목공이 문공에게는 장인이 되는 것이다. 이로써 대를 이어 장인과 사위가 된다고 하는 곽언의 점괘가 어찌 맞았다고 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목공은 옛날에 이오를 도와 당진에 입국시켜 군주로 만들고 후에 중이를 다시 귀국시켜 진후로 세웠다. 그리고 오늘 당진국의 변란을 피해 탈출한 문공에게 군사를 빌려주어 여성과 극예 두 사람을 죽이는데 도움을 주고, 당진의 산하를 다시 안정시켰으니 어찌 이것이 당진의 군주를 세 번 세운 바가 아니겠는가? 또한 꿈속에서 보부인(寶夫人)에게 이끌려 천궁에 사는 상제를 만난 목공은, 상제가 자기의 이름을 부르면서 전하는 말을 들었었다.

「임호야! 내 말을 들어라. 너는 당진의 난리를 세 번 평정할 것이다.」

그리고 다시 조금 있다가 다시 한 번 똑 같은 소리를 듣게 되었었다. 그것은 목공이 먼저 리극의 란을 평정하여 진혜공을 세운 일을 말하고 다시 여극의 란을 란을 평정하고 진문공을 세운 공업을 말하는 것이니 점괘와 꿈이 모두가 들어맞았다고 할 수 있다. 이를 두고 후세의 사가가 지은 시가 있다.

세상 만물의 영고성쇠는 정해진 명이 있는데

부평초같은 짧은 인생을 헛된 일에 다 보내고

가소롭구나, 분수를 모르는 어리석은 자들이여!

동뇌하상(冬雷夏霜)을 억지로 찾으려 하는가?

萬物榮枯皆有定(만물영곳개유정)

浮生碌碌空奔忙(부생록록공분망)

笑彼愚人不安命(소피우인불안명)

强覓冬雷和夏霜(강멱동뢰화하상)

2. 寬容頭須 安定晉國(관용두수 안정진국)

- 재물을 훔쳐 도망친 하급관리 두수를 용서하여 나라를 안정시킨 진문공. -

문공이 여성과 극예 두 사람에 대해 한이 맺혀, 그 무리들을 모두 죽이려고 했다. 조쇠가 간하며 말했다.

「혜공과 회공이 백성들을 매우 엄혹하게 대하여 인심을 잃었습니다. 주공께서는 마땅히 넓은 도량으로써 임하여야 인심을 붙잡을 수 있습니다.」

문공이 마음을 바꿔 조쇠의 말을 쫓아 즉시 대사면령을 내렸다. 그러나 여성과 극예의 무리들은 너무나 많았다. 그들은 비록 문공이 내린 사면령이 적힌 포고문을 보았으나 믿지 못하고 스스로 불안한 마음이 되어 매일 유언비어를 퍼뜨리고 다녔다. 문공이 이 일로 해서 노심초사하고 있던 중 어느 날 아침 갑자기 소리(小吏) 두수(頭須)가 궁궐 앞에 와서 알현을 청했다. 그 때 마침 문공은 머리를 풀어헤치고 목욕을 하고 있던 중이었다. 궁문을 지키는 문지기가 두수의 청을 고하자 목욕 중이던 문공이 듣고 노하여 말했다.

「내가 적국에서 발제로부터 화를 피하기 위해 도망쳐 나올 때 그 놈은 나의 재물을 훔쳐 달아났다. 그 때문에 내가 도중에 노자가 떨어져 조(曹)와 위(衛) 두 나라를 지날 때 구걸하면서 거지처럼 다녀야 했다. 그런데 그놈이 이제 와서 무슨 얼굴로 나를 보자고 한단 말이냐?」

문지기가 와서 문공의 말을 두수에게 전했다. 두수가 듣고 그 문지기에게 물었다.

「주군은 혹시 지금 목욕 중에 계시지 않으십니까?」

문지기가 놀라서 묻는다

「어떻게 하여 그 사실을 알 수 있었소?」

「무릇 목욕을 하게 되면 머리와 허리를 굽혀야 되기 때문에 그 마음도 뒤집어 지게 됩니다. 그래서 하시는 말씀도 이치에 맞지 않아 내가 알현을 청해도 허락하지 않는 것입니다. 또한 주공께서 발제도 능히 용납하시어 여성과 극예의 난을 피하실 수가 있으셨는데 오늘 유독 두수만은 용납하지 않으려고 하십니다. 두수가 이렇게 찾아 뵈려고 하는 목적은 나에게 나라를 안정시킬 수 있는 방법이 있어서인데 주군께서 이 두수를 보시지 않으시겠다고 하니 나는 어디론가 도망쳐 살아야만 하는 신세인 것 같소.」

문지기가 두수가 한말을 문공에게 전했다. 문공이 듣고 말했다.

「그것은 나의 잘못이로다!」

목욕을 서둘러 마친 문공이 즉시 의관을 정제하고 두수를 불렀다. 두수가 들어와서 머리를 조아리고 죄를 빌면서 말했다.

「주공께서는 여성과 극예의 무리가 얼마나 되는지 아십니까?」

문공이 눈썹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실로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그 무리들은 자기들의 죄가 중함을 스스로 잘 알고 있어 비록 사면령은 받았다고 하지만 아직도 그들의 마음 한구석에는 의심하는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주공께서 마땅히 이 점을 생각하신다면 나라를 안정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나라가 안정되겠느냐?」

「신은 주공의 재물을 훔쳐 주공으로 하여금 굶주리게 했습니다. 이것으로 제가 주공께 큰 죄를 지었다는 사실은 온 나라 사람들이 모두 알고 있습니다. 만약에 주공께서 밖으로 나들이를 하실 때 신으로 하여금 주공이 타고 다니시던 수레의 말고삐를 잡게 하신다면 온 나라 백성들이 보고 듣게 되어 주공께서는 옛날에 저지른 다른 사람들의 죄에 연연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백성들에게 알릴 수 있습니다. 그리 되면 자연히 여성과 이극의 무리들도 의심하는 마음을 풀 것입니다.」

「좋은 생각이로다! 」

그 다음 날부터 문공은 즉시 두수로 하여금 어가의 말고삐를 잡게 하고 나라 안의 성들을 순시한다는 명목으로 돌아다녔다. 여성과 극예의 무리가 보고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조용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두수는 옛날 재물을 훔쳐 달아나 주군을 어려움에 빠지게 한 사람이다. 그런데 지금 그를 용서하여 다시 옛날의 그 자리에 쓰고 계시니 하물며 다른 사람이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그때부터 시중에는 유언비어가 없어지고 나라 안이 진정되었다. 문공은 두수를 옛날과 같이 창고 관리인으로 썼다. 진문공은 그렇듯 도량을 넓게 써서 당진의 국내정세를 안정시킬 수 있었다.

3. 조희취의(趙姬取義)

-정실과 적자의 자리를 남에게 양보하여 부덕의 모범을 보인 진문공의 딸 조희 -

문공이 옛날 공자였을 때 이미 두 사람의 여인을 부인으로 맞이했는데 첫 여인은 서영(西嬴)이라고 했다. 서영이 문공에게 시집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일찍 죽고 다시 복길(偪姞)이라는 여인을 맞이하여 아들과 딸을 한 명씩 낳았다. 아들의 이름은 환(驩)이라 하고 딸 이름은 백희(白姬)라 했다. 복길(偪姞) 역시 문공이 포성에 있을 때 일찍 죽었다. 그 후에 문공이 포성에서 쫓겨나 나라 밖으로 유랑하게 되었을 때는 환과 백희는 모두 나이가 어려 포성에다 버려두게 되었었다. 적(翟)나라에서 중이의 재물을 갖고 도망친 두수가 후에 뉘우치고 두 자매를 거두어 수씨(遂氏) 성을 가진 포성의 민가에 맡겨 기르게 하고는 해마다 양육에 필요한 양식과 폐백을 거르지 않고 보내 주었었다. 문공의 수레를 몰기 시작한 얼마 후 어느 날, 틈을 탄 두수가 문공에게 환과 백희의 일을 고했다. 문공이 듣고 크게 놀라 말했다.

「나는 그 애들이 본국의 군사들에게 잡혀 오래 전에 죽은 줄 알았다. 아직도 살아 있더란 말이냐? 어찌하여 진작 말하지 않고 지금에서야 고하느냐?」

「신이 듣기에 어미는 그 자식으로써 귀하게 되며 그 자식은 그 어미로써 귀하게 된다고 들었습니다. 주군께서는 열국을 유랑하실 때에 가시는 곳마다 여인들을 맞이하시어 자식들을 많이 두시게 되었습니다. 비록 주군의 큰아드님이신 공자께서 포성에 아직 살아 계시지만 주공의 뜻이 어떠한지 몰라 감히 고하지 못했습니다.」

「네가 말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천하에 몹쓸 사람이 될 뻔 했도다!」

문공은 즉시 두수에게 명하여 포성에 가서 수씨에게 후하게 사례를 하고 두 남매를 데리고 오도록 했다. 두 자매의 양육을 회영에게 맡긴 문공은 곧이어 환을 태자로 삼고 백희는 조쇠에게 시집을 보냈다. 이로써 백희는 조희(趙姬)라 불리게 되었다.

한편 문공이 당진에 환국한 후에 군위에 올랐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적국의 군주가 경축을 표하는 사자 편에 계외(季隗)를 보내왔다. 문공이 계외를 보고 그녀의 나이를 물었다. 계외가 대답했다.

「그 후로 8년이 지나서 이제 32살입니다.」

문공이 놀리며 말했다.

「다행히 25년은 지나지 않았구려!」

제효공 역시 강씨를 사자 편에 당진으로 보내왔다. 문공이 강씨와 상봉하여 그녀가 행한 아름다운 일을 칭송했다. 강씨가 말했다.

「첩이 부부생활의 즐거움만을 탐하지 않고 주군을 수레에 태워 세상에 내보냈기 때문에 오늘 이렇게 즐거운 날이 오게 되었습니다.」

문공이 저간에 있었던 일로 제강과 계외 두 여인의 현숙한 덕을 회영에게 말했다. 회영이 칭송해 마지않더니 부인의 지위를 두 여인에게 양보하기를 고집했다. 그래서 궁중에서의 부인의 순위는 제강을 제일 부인으로, 계외를 제이 부인으로 마지막으로 회영 자신은 제삼 부인이 되었다.

계외가 적나라에서 돌아 왔다는 소식을 듣게 된 조희 역시 그 부군 조쇠에게 적 땅에 남아 있던 숙외(叔隗) 모자를 데려오라고 권했다. 조쇠가 사양하며 말했다.

「주공이 은혜를 베풀어 당신과 혼인을 했는데 어찌 감히 숙외를 데려와 같이 살 수 있겠소?」

「그 말은 세상의 야박한 인심을 따르겠다는 뜻이라 첩으로써는 그런 말을 듣고 싶지 않습니다. 첩이 비록 귀한 집 딸이라 해도 숙외와 먼저 혼인을 맺어 살았고 더욱이 아들까지 낳았는데 불러오지 않는다면 이는 새사람을 아낀 나머지 옛사람을 버리게 되는 일입니다.」

조쇠가 입으로는 알았다고 하면서도 숙외를 불러오는 일을 감히 행하지 못하고 주저했다. 조희가 다시 궁궐로 들어가서 문공에게 고했다.

「첩의 지아비가 적나라에서 숙외를 데려오지 않으려고 하니 제가 현숙한 이름을 얻을 수 없습니다. 부친께서 이 일을 주선해 주시기 바랍니다.」

문공이 즉시 사람을 적국으로 보내어 숙외 모자를 데려오게 했다. 조희가 정부인의 자리를 숙외에게 양보하려고 하자 조쇠가 다시 받아들이지 않았다. 조희가 말했다.

「숙외는 첩보다 나이가 많습니다. 또한 첩보다 먼저 부군과 혼인을 했습니다. 나이에 따라 그리고 혼인을 맺은 선후를 따라야 일을 행하여야만 기강이 흩으러 지지 않게 됩니다. 또한 제가 소문을 들으니 아들 조돈(趙盾)은 나이가 이미 장성하고 재주가 있다 하니 마땅히 적자로 세워야만 합니다. 첩은 한쪽 구석방에 거하면 될 뿐입니다. 만약 제 말을 쫓지 않으신다면 첩은 이 집을 나가 궁중으로 돌아가 살겠습니다.」

조쇠가 부득이 조희의 말을 문공에게 고했다. 문공이 듣고 말했다.

「내 딸이 이렇듯 사양할 줄 아는 미덕을 갖추고 있으니 주나라의 태임⑤(太任) 보다도 더 현숙한 여인이라고 할 수 있구나!」

문공이 즉시 숙외 모자를 입조하라고 이르고는 숙외를 조쇠의 정부인으로 하고 아들 조돈을 적자로 삼게 했다. 숙외 역시 완강하게 사양하였으나 문공이 조희의 뜻을 알아듣게 설명하자 그 뜻을 받들어 감사의 말을 올린 후 조당에서 물러 나왔다.

그 때 나이가 17세 였던 조돈은 기개와 도량이 뛰어났으며, 거동에는 예의범절이 있었고 시서에 통하고 활쏘기와 말을 모는 재주가 남보다 뛰어났다. 조쇠가 그런 조돈을 매우 사랑했다. 후에 조희는 아들 셋을 낳아 이름을 차례로 동(同), 괄(括), 영(嬰)이라 지었다. 조희의 세 아들은 모두 그 재주가 조돈에게는 미치지 못했다. 이것은 나중의 일이다. 후세의 사관이 조희의 어진 덕을 찬미한 글을 지었다.

여자의 성격은 원래 폐쇄적이라

질시하지 않으면 투기를 하게 되고

부군의 사랑을 얻게 되면 교만을 떨게 되며

적자의 자리를 남에게 빼앗기면 분노한다

옛날에 포사는 적자를 신국으로 쫓아내고

백복을 세워 즐거움을 누렸으나 의구⑥를 두려워했다.

하늘의 이치가 바로 세워져 형세가 궁해지자

다른 사람을 그르치게 하고 스스로를 망쳤다.

陰性好閉 不嫉則妬(음성호폐 불질즉투)

惑夫逞驕 纂嫡敢怒(찬적감노 혹부정교)

褒進申絀 服歡臼怖(포진신출 복환구포)

理顯勢窮 誤人自誤(이현세궁 오인자오)

귀한 신분이면서 스스로 천하다 하였으며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 스스로 낮은 자리에 앉았고

그가 낳은 조동과 조괄도 모두 조돈 밑에 두었으며

스스로도 몸을 낮추어 숙외의 뒤에 섰도다

양보하고 양보하여 아름다운 덕을 행하였으니

무릇 군자들의 스승이로다

조희는 문공의 딸이었고 또한 조쇠의 처였다.

貴而自賤 高而自卑(귀이자천 고이자비)

隗壓于姬 同括下盾(외압우희 동괄하돈)

謙謙令德 君子所師(겸겸영덕 군자소사)

文公之女 成季之妻(문공지녀 성계지처)

4. 폐부개통자(肺腑開通者)

- 폐부(肺腑)를 개통하여 깨닫게 하는 자를 일등상으로 하다. -

한편 문공이 자기가 환국하여 군위에 오르기까지 자기를 따라 다녔던 사람들의 노고에 대해 논공행상을 행하기 위해 군신들을 대거 모이게 하고 모두 그 공을 3등급으로 나누었다. 우선 자기가 유랑할 때 따라다니던 신하들을 으뜸으로 하고 그 다음은 국내에 있으면서 문공이 환국 할 수 있도록 애쓴 사람들은 이등으로 하고 마지막으로는 문공이 귀국하자 즉시 항복한 사람을 삼등으로 했다. 삼등급으로 나뉜 신하들을 다시 그 공이 많고 적음에 따라 각기 상하로 다시 나누었다. 유랑할 때 같이 다녔던 신하들 중 조쇠(趙衰)와 호언(狐偃)을 일등의 상(上)으로 하고 그밖에 호모(狐毛), 서신(胥臣), 위주(魏犨), 호석고(狐射古), 선진(先軫), 전힐(顚頡)을 하(下)로 했다. 이등상에 해당한 사람 중에 란지(欒枝), 극진(郤溱)을 상(上)으로 하고 나머지 사회(士會), 주지교(舟之僑), 손백규(孫伯糾), 기만(祁滿) 등은 하(下)로 하였고, 삼등상은 극보양(郤步揚), 한간(韓簡) 등을 상(上)으로 하고 양요미(梁繇靡), 가복도(家僕徒), 극걸(郤乞), 선멸(先蔑), 도격(都擊) 등을 하(下)로 했다. 식읍이 없는 신하들에게는 봉지를 주고 이미 식읍이 있는 신하들에게는 그 봉지를 넓혀 주었다. 그와는 별도로 벽옥 다섯 쌍을 호언에게 하사하면서 말했다.

「옛날에 외숙이 하수에 던져 버린 벽옥 한 쌍에 대한 보상이오!」

또한 호돌의 원통한 죽음을 생각하여 진양성(晉陽城)⑦부근에 있는 마안산(馬鞍山)에 묘를 세우고 제사를 지내게 했다. 이후로 후세 사람들이 마안산을 호돌산(狐突山)이라고 바꾸어 불렀다. 다시 어명을 내려 성문밖에 방을 써서 붙였다.

「아직도 자기가 세운 공에 대해서 공훈을 받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자는 스스로 고하기를 바란다!」

문공을 따라 다니며 측근에서 수발을 들었던 호숙(壺叔)이 문공의 알현을 청하여 말했다.

「신은 포성에서부터 주공을 따라 발이 부르트도록 천하를 유랑했습니다. 어느 곳에 머무르게 되면 침식을 수발했으며, 길을 떠나게 되면 거마를 점검하면서 한 번도 주공의 곁을 떠난 적이 없었습니다. 오늘 주공께서 유랑할 때의 노고에 보상하는 상을 다른 사람에게 내리시면서 유독 저에게만 내리시지 않으신 이유는 혹시 신에게 무슨 다른 죄가 있어서 입니까?」

문공이 대답했다.

「그대는 이리 가까이 오라. 내가 이를 밝혀 주겠다. 무릇 나로 하여금 인의로써 이끌어 폐부(肺腑)를 개통하여 깨닫게 하는 자를 제일 높은 상을 내렸다. 나를 지모(智謀)로서 보좌하여 나로 하여금 여러 제후들 면전에서 욕됨을 면하게 하는 자를 그 다음 상으로 했다. 머리 위에 쏟아지는 시석과 날라 오는 화살과 창에 몸을 돌보지 않고 나를 보호한 사람을 맨 마지막 상으로 했다. 고로 제일 높은 상은 덕(德)을 칭송하여 상을 내린 것이며 다음 상은 그 재주에 대하여 상을 내렸고, 마지막으로 그가 세운 공에 대하여 상을 내렸음이라. 나를 위하여 천하를 유랑한 너의 노력은 단지 일개 필부가 행한 노력이니 세 가지 상을 모두 행한 후에 너에게도 상이 내려 질 것이다. 」

호숙이 얼굴에 부끄러운 빛을 띄우며 물러났다. 문공이 즉시 황금과 비단을 크게 내어 노역을 하던 미천한 일꾼들이나 천한 노예들에게 까지 두루 나누어주었다. 상을 받은 사람들은 모두 기뻐했다. 단지 위주와 전힐 두 사람만은 자기들의 재주와 용기를 믿고 조쇠와 호언 등의 말만으로 일을 처리한 일반 문신들이 더 높은 상을 받는 것을 보자 마음속으로 불쾌하게 생각하고 입 밖으로 원망하는 소리를 하고 다녔다. 그러나 문공은 위주와 전힐이 자기를 따라 다니면서 고생한 일을 생각하며 전혀 그들이 내뱉고 다니는 불만의 소리를 염두에 두지 않았다.

5. 무절천공(無竊天功)

- 하늘이 이룬 공을 탐하지 말라! -

한편 문공과 같이 유랑한 신하들 중 개자추(介子推)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워낙 강직한 성격을 갖고 있던 위인이라 그들이 하수를 건널 때 자기가 큰공을 세웠다고 스스로 자부한 호언의 태도를 보고 마음속으로 매우 천하게 여긴 나머지 그들과 같은 반열에 서는 것을 치욕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그는 귀국한 후에 딱 한번 조당에 나가 군위에 오른 문공에게 경하의 인사를 드리고 돌아와 병을 핑계로 집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이후로 개자추는 청빈을 즐기면서 스스로 몸을 굽혀 짚신을 삼으며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 문공이 군신들을 크게 모이게 하여 논공행상을 할 때 개자추가 보이지 않았으나 바쁜 와중이라 알아차리지 못하고 지나가게 되었다. 개자추가 사는 집의 이웃에 해장(解張)이란 사람이 살고 있다. 그는 아무런 상도 받지 못하는 개자추를 보고 속으로 매우 불공평하다는 마음을 품게 되었다. 또한 그는 성문 밖에 붙어 있던 문공의 조칙이 써있는 방문을 보았다.

「아직도 자기가 세운 공에 대해서 적당한 상훈을 받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스스로 자기 공을 고하기를 바란다.」

해장이 방문을 보고 즉시 개자추의 집을 찾아가 그 소식을 알렸다. 개자추는 웃기만 할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개자추의 노모가 부엌에서 일하다가 해장이 전하는 말을 듣고 말했다.

「너는 19년간이나 주군을 따라 다니며 모시면서 네 허벅지 살까지도 잘라 내어 국을 끓여 바치지 않았느냐? 그 노고가 적지 않거늘 지금 주군이 보위에 오르셨는데 너는 스스로 네 공을 고하여 몇 가마의 곡식을 구하여 조석으로 식사라도 배불리 먹으면, 짚신을 삼아서 궁색하게 사는 것보다야 낳지 않겠느냐?」

「선군인 헌공의 아들은 모두 9명이었습니다. 그 중 오로지 지금의 주공만이 가장 어질었습니다. 혜공과 회공이 부덕하여 하늘이 그들의 군위를 뺏어 주공에게 주었습니다. 여러 어리석은 신하들이 하늘의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그 공을 다투니 제가 그들과 같은 동류에 속했다는 것을 치욕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는 평생을 돗자리를 짜면서 살아 감히 하늘의 공을 자기의 공이라 하며 이를 탐하지 않겠습니다.」

개자추의 노모가 듣고 말했다.

「네가 비록 봉록을 구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역시 한번 입조하여 주군을 한번 뵙고 네가 허벅지 살을 베어 내서 모신 일을 잊지나 않게 하면 어떻겠느냐?」

「제가 주군에게 바라는 바가 없는데 무엇 때문에 들어가 알현을 청하겠습니까?」

개자추의 노모가 다시 말했다.

「너는 정말로 청렴한 선비로다. 나도 또한 마땅히 청렴한 선비의 어미가 되어야 하겠다. 우리 모자가 깊은 산중으로 들어가 숨어 이 더러운 시정에서 벗어나 살자꾸나!」

개자추가 크게 기뻐하며 대답했다.

「이 아들은 평소에 면상산(綿上山)⑧이라는 곳에서 살고 싶었습니다. 산은 높고 계곡은 깊은 곳입니다. 오늘 당장 모시고 가도록 하겠습니다.」

개자추는 즉시 그 부모를 등에 업고 면상산이라는 곳으로 들어가 깊은 계곡 가운데에 지은 초가집에서, 풀로 만든 옷을 입고 나무 열매를 따먹으며 살면서 남은여생을 마치려고 했다.

6. 면상분지(綿上焚志)

- 면상산의 화염 속에 절개를 태운 개자추 -

한편 개자추가 살던 마을의 이웃사람들은 아무도 그가 간 곳을 몰랐다. 단지 해장만이 그 일을 알고 글을 써서 밤중에 조문 앞에 걸었다. 문공이 아침에 조회를 하는데 근시 중에 한 사람이 그 글을 보고 떼어 와서 문공에게 바쳤다. 문공이 그 글을 읽었다.

힘찬 용이 있었는데 집을 잃고 슬퍼하였다

여러 마리의 뱀들이 용을 따라 천하를 유랑했다.

용이 배고파하자 뱀 한 마리가 허벅지살로 용을 먹였다.

용이 마침내 깊은 연못에 들어와 그 땅을 안정 시켰다.

작은 뱀들은 모두 자기 굴로 찾아가 편히 지내게 되었는데

들어갈 굴이 없는 한 마리 뱀은 들판에서 울고 있구나!

有龍矯矯 悲失其所(유룡교교 비실기소)

數蛇從之 周流天下(수타종지 주유천하)

龍飢乏食 一蛇割股(일기핍식 일사할고)

龍返于淵 安其壤土(용반우연 안기양토)

數蛇入穴 皆有寧宇(수사입혈 개유영우)

一蛇無穴 号于中野(일사무혈 호우중야)

문공이 읽기를 마치자 크게 놀라 묻는다

「이것은 개자추가 나를 원망하며 쓴 글이다. 옛날에 내가 위나라를 지날 때 먹을 것이 떨어지자 그가 자기의 허벅지 살을 떼어 내어 국을 끓여 나에게 바쳤다. 오늘 내가 공신들에게 큰상을 내렸으나 오로지 개자추에게만은 아무 상도 내리지 못했으니 내가 저지른 잘못을 어떻게 그에게 말해야 될지 모르겠구나!」

문공은 즉시 사람을 시켜 개자추를 불러오게 하였으나 개자추는 이미 집을 떠나고 없었다. 문공이 개자추의 집을 방문하여 이웃 사람을 잡아와 개자추가 간 곳을 물으며 말했다.

「만일 개자추가 간 곳을 알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개자추와 함께 큰 벼슬을 내리겠다.」

해장이 있다가 앞으로 나와 말했다.

「조문 앞에 걸어둔 글은 실은 개자추가 쓴 것이 아니고 제가 그를 대신해서 썼습니다. 개자추가 스스로 상을 구하는 일을 치욕으로 알고 그 모친을 등에 업고 면상산의 깊은 계곡으로 들어가 숨어 버렸습니다. 개자추의 공이 잊혀질까 걱정한 소인이 대신하여 글을 지어 호소한 것입니다.」

「그대가 만약 이 글을 걸어 놓지 않았더라면 과인은 개자추의 공을 잊어 먹을 뻔했다.」

문공은 즉시 하대부의 벼슬에 임명한 해장을 앞세워 어가를 움직여 친히 면상산으로 가서 개자추가 사는 곳을 찾아보려고 했다.

문공의 일행이 당도한 면상산은 첩첩한 산 봉오리들은 연이어 솟아 있었고 온갖 풀과 나무들은 무성하게 우거져 있었다. 시냇물은 졸졸 흐르고 하늘에는 조각구름이 유유히 떠다니고 있었으며 나무들 위에 앉은 새들이 울어대자 산골짜기에서 소리가 메아리가 되어서 울렸다. 문공이 데리고 온 군사들이 아무리 애써 찾았지만 개자추의 종적을 찾을 수 없었다. 이것은 마치 ‘ 산 속에 있는 것은 틀림이 없는데 구름이 너무 깊어 있는 곳을 알지 못하겠노라!’⑨라는 시구와 같았다. 주위의 농부들을 불러오게 하여 문공이 친히 묻자 농부들이 말했다.

「얼마 전에 한 남자가 등 뒤에 늙은 노파 한사람을 업고 걸어 와서 이 산 아래에 멈추어 쉬면서 물을 마신 후에 다시 노파를 등에 업고 산 속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지금은 어디에 거처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어가를 산 밑에 멈추게 한 문공이 사람을 시켜 산 속을 뒤졌으나 며칠이 지나도 도저히 그의 종적을 찾을 수 없었다. 문공이 얼굴에 노한 기색을 띄고 해장에게 말했다.

「개자추가 어찌 나에게 이렇듯 한을 심하게 품고 있는가? 내가 듣기에 개자추는 효자라서 만일 산에 불을 놓는다면 그는 틀림없이 그 모친을 등에 업고 산 속에서 나오지 않고는 못 베길 것이다!」

문공을 수행한 위주가 앞으로 나와 불평했다.

「옛날 천하를 유랑할 때 공을 세운 사람은 개자추 한 사람만이 아닙니다. 어찌하여 유독 그 한 사람만을 갖고 이렇듯 번거롭게 하십니까? 오늘 개자추가 주군으로 하여금 어가를 며칠간이나 머물게 하여 많은 시간을 허비하게 하였습니다. 만일에 그가 불을 피해 산 속에서 나온다면 신이 마땅히 그에게 수치를 알게 해주겠습니다.」

이어서 위주가 군사들을 시켜 산의 앞뒤에서 불을 놓게 하자 화기는 바람을 맹렬히 타고 하늘로 치솟고 불길은 몇 리를 뻗쳤다. 불길은 3일만에 꺼졌으나 개자추는 끝내 산 속에서 나오지 않았다. 문공이 군사들을 시켜 그들의 행방을 찾게 했다. 이윽고 군사들은 불에 탄 버드나무 밑에서 두 모자가 서로 껴안고서 타죽어 있는 시신을 발견했다. 군사들이 두 모자의 해골을 거두어 문공에게 가져와 바쳤다. 문공이 보고 눈물을 흘렸다. 문공이 좌우에게 명하여 면상산 산자락에 사당을 짓고 제사를 지내게 했다. 면상산 주위의 땅에서 나오는 세수를 모두 사당에 제사를 지내는 비용으로 사용하도록 하고 부근에 살던 농부 한 사람을 지명하여 매년 제사를 지내는 것을 주관하도록 했다. 문공이 다시 좌우에게 명하였다.

「면상산을 지금부터 개자추의 성을 따라 개산(介山)이라 불러라! 이것은 내가 개자추에게 지은 죄를 조금이나마 용서를 빌고자 함이다.」

7. 寒食節(한식절)

- 익히지 않은 찬 음식으로 개자추의 절개를 기리다. -

후세에 이르러 면상산이 있는 땅에 현을 세웠는데 그 이름을 개휴현(介休縣)이라 했다. 그 것은 개자추가 산 속으로 들어가다가 휴식을 취한 곳이라는 뜻이었다. 산을 태운 날이 3월 5일 청명절(淸明節)이었다. 나라 안의 사대부들은 불에 타 죽은 개자추를 추모하여 불을 지피지 않고 익히지 않은 찬 음식을 한 달 동안 먹었는데 후에 날짜를 줄여 3일로 했다. 지금도 산서성 북쪽 지방 일대의 태원(太原), 상당(上黨), 서하(西河), 응문(應門)등의 지방에서는 매년 동지 이후 105일 동안 마른 음식을 준비하여 냉수에 타서 먹고 있는데 이 기간 동안 불을 피우거나 연기 피우는 행위를 금하고 있다. 청명절 하루 전날을 한식절(寒食節)이라고 하고 그 때가 되면 집집마다 대문 앞에 버들가지를 꽂아 놓고 이것으로써 개자추의 혼을 부르고자 했기 때문이었다. 다른 한편 들판에 제사를 지내는 단을 세워 종이돈을 태우는 풍습은 모두가 개자추로 인해 생겨난 일이다. 호증선생이 시를 지어 개자추의 고고함을 노래했다.

말고삐와 재갈을 붙잡고 주유천하기를 장장 19년 동안

외로운 임금을 분주하게 쫓아다니며 모셨다.

허벅지 살로 임금을 먹였으니 그 마음 참으로 지극하도다!

녹봉도 마다하고 몸을 불태웠으니 그 뜻이 심히 굳도다.

羈紲從遊十九年(기세종유십구년)

天涯奔走備顚連(천애분주비전련)

食君刳股心何赤(식군고고심하적)

辭祿焚軀志甚堅(사록분구지심견)

면상산의 하늘 높이 나는 연기는 그 지고한 절개를 말하고

장한 개산사의 모습은 충성스럽고 어진 마음의 표시이리라!

지금도 때가 되면 불을 금하고 찬 음식을 먹으며 슬퍼하는 일은

해마다 지전을 태워 복을 비는 일보다는 뜻있는 일임이라!

綿上烟高標氣節(면상연고표기절)

介山祠壯表忠賢(개산사장표충현)

只今禁火悲寒食(지금금화비한식)

勝却年年掛紙錢(승각연년괘지전)

8. 疏不間親(소불간친)

- 집안 싸움에 이웃을 끌어들이지 말라 -

논공행상의 일을 마무리 지은 문공은 이윽고 국정을 크게 쇄신하기 시작했다. 선행을 하는 사람들은 천거하게 하고 재주가 있는 사람들을 등용했다. 형벌을 가볍게 하고 세금을 줄였으며 상업을 진작시키고 예의로써 외국의 손님을 대했다. 혼자 살아 외로운 사람들은 좋은 배필을 찾아 혼인을 시켰으며 가난한 사람은 나라에서 구제해 주었다. 당진은 이로써 크게 다스려졌다.

주양왕이 태재 주공공(周公孔)과 내사(內使) 숙흥(叔興)을 사절로 보내어 문공을 진나라 군주로 승인한다는 명을 전했다. 문공이 주나라의 사자를 예의를 갖추어 접대했다. 숙흥이 주나라로 돌아가서 양왕에게 고했다.

「당진의 군주는 틀림없이 제후들을 이끌 백주가 될 것입니다. 마땅히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합니다.」

주양왕이 그 후부터 제나라와는 소원해지고 당진과 가깝게 지내게 되었다.

이때 정문공(鄭文公)은 초나라에 신하의 예로써 복종하여 중원의 여러 나라와는 통호를 하지 않고 강한 초나라의 힘을 믿고 약한 나라를 깔보았다. 이때 활국(滑國)⑩의 군주가 위(衛)나라를 받들고 정나라를 외면하자 이를 괘씸하게 여겨 즉시 군사를 일으켜 활국을 공격했다. 이를 두려워한 활백(滑伯)이 강화를 청하며 정나라를 받들겠다고 하자 정나라 군사들은 바로 퇴각했다. 정나라 군사가 물러가자 활백은 다시 위나라를 섬기고 정나라에 복종하려고 하지 않았다. 정문공이 대노하여 공자 사설(士泄)을 대장으로 도유미(堵兪彌)를 부장으로 삼아 다시 대군을 일으켜 활국을 정벌하게 했다. 평소에 주나라를 잘 받들었던 위문공이 정나라의 행패를 주나라에 고했다. 주양왕은 활국을 위해 군사를 물리쳐 줄 것을 요청하기 위해 대부 유손백(游孫伯)과 백복(伯服)을 정나라에 사자로 보냈다. 그러나 주나라의 사신들이 정나라에 당도하기도 전에 이를 전해들은 정문공은 크게 노하며 말했다.

「정과 위 두 나라는 다 같이 동성의 나라인데 어찌하여 천자는 위나라는 후하게 대하고 우리 정나라는 박대하는가?」

정문공은 즉시 유손백과 백복이 정나라 경계에 들어서면 잡아오게 하여 가두어 두었다가 활국을 정벌하러 간 군사들이 싸움에 이기고 개선할 때를 기다렸다 풀어 주라고 했다. 유손백과 백복이 정나라 군사들에게 잡혀가자 그들을 따라 왔던 시종들이 달아나서 주양왕에게 고했다. 양왕이 듣고 큰소리로 외치며 욕을 했다.

「정나라 첩(輒)이란 놈이 어찌 이다지도 심히 짐을 기만하는가? 내가 필히 그 죄를 물으리라!」

주양왕이 군신들을 모아 놓고 물었다.

「누가 능히 짐을 위해 정나라에 가서 죄를 묻겠는가?」

대부 퇴숙(頹叔)과 도자(桃子) 두 사람이 앞으로 나와 말했다.

「정나라가 선왕 때 우리와의 싸움에서 이긴 이래로 더욱 방자하게 굴고 있습니다. 오늘 다시 형만의 오랑캐를 중히 여기고 함부로 천자의 사절을 잡아 가두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군사가 약해 만일 군사를 일으켜 그 죄를 물으려 해도 반드시 이긴다는 보장이 없으니 신의 어리석은 의견으로는 적국(翟國)으로부터 군사를 빌려 정나라를 토벌한다면 천자국의 위신을 세울 수 있을 것입니다.」

대부 부신(富辰)이 앞으로 나오며 큰 소리로 말했다.

「그것은 절대로 불가한 일입니다. 옛말에 ‘가까운 사람들의 일에 사이가 먼 사람을 끌어들이지 말라!’고 했습니다. 정나라가 비록 무도하다고는 하나 그들은 정백 우(友)의 후손들입니다. 정백우는 선왕의 동생이며 유왕의 숙부 되는 사람입니다. 또한 정무공 굴돌(掘突)은 우리가 동천할 때 큰공을 세웠으며 정려공 돌(突)은 왕자퇴(王子頹)의 란을 진압한 공이 있습니다. 우리가 그들로부터 입은 은혜는 잊을 수 없을 정도로 결코 적지 않습니다. 적(翟)은 곧 융(戎), 적(狄)과 같은 시랑(豺狼)의 무리이며 우리와 같은 동류가 아닙니다. 이족을 불러들여 동족을 멸하는 일은 작은 원한으로 큰 은혜를 버리는 일과 같습니다. 신이 보건대 그로 인한 해악은 많아도 이득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퇴숙과 도자가 다시 나와 고했다.

「옛날 우리 주나라를 창건하신 무왕께서 상나라를 정벌할 때 동쪽의 오랑캐 족속인 구이(九夷)들도 모두 와서 싸움을 도왔습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동성이라야만 원조를 청할 수 있다고 할 수 있습니까? 정나라가 천자의 명을 거역하는 행위는 마치 관(管)과 채(蔡)⑪두 나라가 일으켰던 변란과 같습니다. 따라서 정나라에 대한 토벌은 사실 과거 주공단께서 관채(管蔡)의 란을 평정하신 일과 같습니다. 또한 적국(翟國)은 우리 주왕실을 깎듯이 받들고 있어 아직 예를 잃어버린 일이 없습니다. 우리에게 순종한 나라의 군사를 빌려 우리의 명을 거역하는 나라를 토벌하는데 어찌 불가하다고 하는지 그 까닭을 모르겠습니다.」

주양왕이 말했다.

「두 대부의 말이 옳도다! 」

주양왕은 즉시 퇴숙과 도자를 적 땅에 보내 적주로 하여금 군사를 일으켜 정나라를 정벌하고 잡혀간 두 대부를 구하라는 주왕의 명을 전했다. 적주가 기뻐하며 주왕의 명을 받들었다. 군사를 일으킨 적주는 사냥을 나간다고 거짓 정보를 흘린 뒤에 정나라 땅으로 곧바로 돌입하여 주나라의 두 대부를 구하고 력성(櫟城)을 함락시켰다. 수장을 남겨 역성을 지키도록 한 적주는 두 사람의 대부를 왕도로 보내면서 주왕에게 승전을 고하도록 했다. 주양왕이 기뻐하며 말했다.

「적주가 나를 위하여 공을 세웠다. 지금 왕실에 왕비가 얼마 전에 죽어 중궁의 자리가 비어있다. 내가 적국의 여자를 맞이하여 혼인을 하고 싶은데 경들의 생각은 어떠한가?」

퇴숙과 도자가 나와 한 목소리로 말했다.

「신들은 적인(翟人)들이 ‘ 앞에는 전숙외(前叔隗), 뒤에는 후숙외(后叔隗), 옥구슬과 같이 빛나도다!’라고 부르는 노래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적군의 두 딸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모두가 이름을 숙외라 하는데 자색이 뛰어 납니다. 전숙외는 곧 망한 구여국(咎如國)군주의 딸로써 적군이 거두어 양녀로 삼아 길렀다가 이미 진후에게 시집을 갔고, 후숙외는 곧 적군의 친딸인데 아직 혼인을 안 하고 있습니다. 왕께서 구하시어 혼인을 올리십시오.」

주양왕이 크게 기뻐하며 다시 퇴숙과 도자에게 명하여 적국에 가서 혼사를 청하게 했다. 적주가 숙외를 주나라에 보내자 양왕이 숙외를 정비로 세우려고 했다. 부신이 보고 간했다.

「대왕께서 적군의 공로를 치하하심은 가한 일이오나 지금 존귀하신 천자께서 오랑캐 여인을 배필로 맞이해 들이는 일은 옳지 못합니다. 또한 적군이 스스로 공을 세웠다고 자만하고 있는데 더욱이 인척관계를 맺으시니 앞으로 반드시 우리를 넘보고 란을 일으킬까 두렵습니다.」

주양왕이 듣지 않고 숙외를 정비로 세워 중궁의 주인으로 삼았다.

9. 호총통간(怙寵通姦)

- 왕의 총애를 믿고 형수와 간통하는 태숙대(太叔帶) -

주양왕이 새로 맞이한 왕비 숙외는 비록 예쁜 얼굴에 뛰어난 미모를 갖추고 있었지만 평소에 부덕과과는 거리가 먼 여인이었다. 본국에 있을 때는 말을 타고 활을 쏘는 일에만 전념하고 적군이 사냥을 나갈 때는 자기도 청하여 언제나 따라 나갔다. 매일 장수나 사졸들과 함께 들판에서 말을 타고 동물들의 뒤를 쫓아다니며 아무 것도 거리낄 것 없는 생활에 익숙해 있던 여인이었다. 그러다가 금일 주왕에게 시집을 와서 깊은 궁궐에 갇혀 살게 되었으니 이것은 마치 새장 속에 갇힌 날짐승이나 우리 속에 갇힌 들짐승 신세와 같아서 도무지 마음이 자유롭지 못했다. 하루는 숙외가 양왕에게 청했다.

「첩은 어렸을 때부터 활쏘기와 사냥에 익숙하여 저희 부친께서는 그 동안 한 번도 저를 금하지 않으셨습니다. 요사이 제가 궁중에 갇혀 있다고 생각하니 가슴에는 답답증이 생기고 사지가 나른해져서 장차 위비(痿痹)⑫의 병에 걸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청컨대 큰 사냥대회를 한번 열어주시어 첩으로 하여금 관전하게 해 주십시오.」

숙외에 깊이 빠져있던 주양왕은 숙외가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들어주었다. 즉시 태사에게 점을 쳐 길일을 택하게 한 후에 수레와 병사들을 대거 모아서 북망산(北邙山)으로 사냥을 나갔다. 관리들이 북망산 허리에 장막을 세우는 일을 마치자 양왕과 외후가 사냥대회를 관전하기 위하여 자리를 잡고 앉았다. 양왕이 외후의 마음을 즐겁게 하기 위하여 영을 하달했다.

「오늘 해가 지기 전을 기한으로 짐승 30마리 이상을 잡는 자는 돈거(軘車)⑬3승(乘)을, 20마리 이상을 잡는 자에게는 충거(衝車)⑭2승을, 10마리 이상을 잡은 자에게는소거(轈車)⑮한 승을 상으로 내리고 10마리를 넘지 못한 자들에게는 상을 내리지 않겠다.」

주양왕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왕족을 포함한 일반의 크고 작은 장수들이 벌떼처럼 일어나 각기 여우와 토끼를 쫓으면서 그들의 재주를 뽐내며 상을 차지하려고 했다. 사냥을 시작한지 오랜 시간이 지나자 태사(太史)가 양왕에게 고했다.

「해가 이미 서산으로 기울었습니다.」

주양왕이 전령을 보내어 사냥대회를 파한다고 명했다. 여러 장수들이 사냥에서 잡은 짐승들을 가져와 바쳤는데 열 마리 이상이 대부분이었고, 간혹 스무 마리를 바치기도 한 장수도 있었다. 그런데 유독 한 사람의 귀공자가 서른 마리가 넘는 사냥감을 가지고 와서 바쳤다. 그 귀공자는 그 풍채가 준수하게 기골이 장대하게 생긴 빼어난 인물이었는데 곧 양왕의 서제로 대(帶)라는 이름의 왕자였다. 나라 안의 사대부들이 태숙(太叔) 혹은 숙대(叔帶)라고 불렀던 그는 감공(甘公)⑯의 작위를 가지고 있었다. 옛날 주양왕이 세자의 자리에 있을 때 혜왕(惠王)의 총애하여 그를 대신 세우려 했으나 관중의 지혜로 미수에 그친 일이 있었다.⑰ 후에 태숙대는 왕성 주변까지 진출하여 살던 이(伊)와 락(雒) 땅의 융족과 내통하여 그 군사들을 불러들여 낙읍을 공격하도록 했으나 융병이 싸움에서 패하고 물러남으로써 왕자대의 계획은 성공하지 못했었다. 후에 융병의 침입은 숙대의 음모에 의한 것이라고 밝혀져, 숙대는 제나라로 도망쳐 그곳에서 살았다.⑱ 후에 혜후(惠后)가 누차에 걸쳐 양왕에게 간청하여 용서를 빌었고 또한 대부 부신도 역시 숙대의 죄를 용서하여 형제간에 우애하기를 권하자 부득이 허락하여 제나라에 살던 숙대를 불러 주나라에 살도록 허락한 것이다. 오늘 그 숙대가 사냥 중에 온갖 재주를 발휘한 끝에 일등상을 받게 되었다. 양왕이 크게 기뻐하며 즉시 돈거 3승을 약속대로 하사하고 그 나머지 사람들에 대해서도 사냥감의 많고 적음에 따라 각기 상을 내렸다.

외후가 왕의 곁에 앉아 있으면서 숙대의 재주와 풍채가 뛰어나고 활솜씨는 뭇 사람들을 능가한 것을 보고 칭찬해 마지않았다. 숙대가 양왕의 동생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외후는 마음속으로 십분 좋아하게 되었다. 곧이어 양왕에게 말했다.

「해가 아직 하늘에 있으니 첩도 사냥을 한번 하여 풀린 근골을 단련시키고자 하오니 허락해 주시기 바랍니다.」

양왕은 원래 외후의 마음을 즐겁게 해주고자 하는 마음뿐이라서 즐거운 마음으로 허락을 하고는 즉시 장수와 사졸들에게 명하여 다시 한 번 사냥터를 정비하라고 명했다. 외후가 비단 두루마기를 벗어 던지자 미리 안에 입고 있던 소매가 좁고 길이가 짧은 저고리가 보였는데 또한 그 위에 이상한 형상의 가볍고 가느다란 황금으로 만든 쇠줄로 엮어 만든 갑옷을 덧대어 입고 있었다. 비단실로 엮어 만든 오색 허리띠와 검은색 비단 두건을 두르고 봉황이 새겨진 금비녀를 머리에 꽂은 외후가 허리에는 전통을 차고 손에는 주궁(朱弓)을 들고는 사냥을 나갈 채비를 갖추었다. 그녀는 왕비의 신분으로 그런 유별난 몸치장을 전혀 개의치 않았다. 이때 외후의 모습을 노래한 시가 있다.

꽃처럼 아름다운 용모에 옥같은 흰 살결,

갑옷을 입고 꿈속에서 나오니 그 모습 기이하구나!

궁녀들 속에 있으면서 무예를 힘껏 뽐내더니

장군들 대열 속에서는 교태를 마음껏 부리는 구나

花般綽約玉般肌(화반작약옥반기)

幻出戎裝態更奇(환출융장태경기)

仕女班中夸武藝(사녀반중과무예)

將軍隊里擅嬌姿(장군대리천교자)

외후의 몸치장은 일반 중국 여인들의 것과는 달라 유별나게 호사스러웠다. 주양왕은 그런 외후이 모습에 미소를 머금으며 기뻐했다. 좌우에 있던 시종들이 어가를 대령했다. 외후가 양왕을 향하여 말했다.

「수레를 모는 것 보다는 말을 타고 달리는 것이 훨씬 빠릅니다. 제가 모국에서 데려온 비녀(婢女)들은 모두가 말을 타는데 익숙합니다. 청컨대 대왕 앞에서 시험 삼아 달려 보게 하겠습니다.」

양왕이 양마 여러 필을 골라 마구를 얹게 하고 재갈을 물려 고삐를 매게 했다. 적국에서 데려온 몇 명의 시녀들을 나오게 하여 외후가 같이 말을 타고 달리려고 하는 순간 양왕이 말했다.

「잠깐 멈추어라!」

외후를 잠시 기다리게 한 양왕이 왕족들이 서 있는 쪽을 향하여 물었다.

「누가 말을 잘 타는가? 그 사람은 나와서 왕후를 사냥터까지 호위하기 바란다!」

숙대가 앞으로 나오더니 고했다.

「신이 마땅히 있는 힘을 다하여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그것이야말로 외후가 마음속으로 바라던 바였다. 시녀들이 외후를 앞세우고 한 떼의 기마대를 이루면서 말을 달렸다. 숙대도 즉시 좋은 말을 골라서 타고 외후의 뒤를 따라 달리며 그 옆을 떠나지 않았다. 숙대를 의식한 외후는 정신을 더욱 가다듬고 말을 달렸다. 숙대 역시 외후를 의식하고 온갖 수단을 다 발휘하여 그녀의 시선을 끌려고 했다. 그들은 활쏘기 시합에 앞서 말달리기 시합을 하는 듯 했다. 외후가 채찍으로 말을 연거푸 몇 번 때리자 말이 허공으로 한 번 솟구치더니 쏜살같이 앞으로 달려 나갔다. 숙대 역시 말을 한번 뛰어오르게 한 후에 외후의 뒤를 바짝 따랐다. 두 사람이 계속 달려 산허리를 돌아서자 금방 두 마리의 말이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었다. 외후가 비단으로 꼬아 만든 말고삐를 잡아채며 멈추어 서서 숙대를 크게 칭찬했다.

「오랫동안 왕자님의 큰 재주를 사모하여 왔는데 오늘에서야 보게 되었습니다.」

태숙도 말 위에서 몸을 낮추며 인사를 드리며 말했다.

「소신이 배운 말 타는 솜씨는 왕후마마에 비하면 만 분의 일에도 못 미치겠습니다.」

「태숙은 내일 아침 일찍 태후 궁에 문안 인사를 하러 들르시기 바랍니다. 내가 할 말이 있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에 뒤쳐졌던 시비들이 말을 몰아 당도했다. 외후가 정감 어린 눈짓으로 태숙을 쳐다보자 태숙도 가볍게 머리를 좌우로 흔들어 인사를 대신했다. 두 사람은 각기 말고삐를 채어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그때 마침 산언덕 밑에서 한 떼의 노루와 사슴이 뛰어나와 외후와 태숙이 있는 곳을 향하여 달려왔다. 태숙이 활에 화살을 당겨 왼편의 노루를 쏘고 연이어 오른편의 사슴을 겨냥하여 쐈는데 모두 명중했다. 외후도 역시 화살을 날려 노루 한 마리를 잡았다. 사냥터에 있던 군사들과 관리들이 모두 박수를 치며 기뻐했다. 외후가 다시 말을 달려 산허리를 돌아 양왕이 있던 곳으로 달려오자 양왕이 장막 밖으로 나오며 마중하면서 말했다.

「왕후께서 수고하시었소!」

외후가 사냥한 사슴을 가져와 양왕에게 바쳤다. 태숙 역시 노루와 사슴 각 한 마리씩을 양왕에게 바쳤다. 양왕이 크게 기뻐했다. 여러 장수들과 군사들은 말을 타고 다니며 사냥을 다시 한 번 더하고 사냥터의 포위망을 풀었다. 사냥터에 따라온 궁중의 요리사가 사냥에서 잡은 노루와 사슴을 삶아서 요리를 하여 양왕에게 바치자 양왕이 군신들에게 나누어주어 먹게 했다. 군신들은 모두 다 같이 즐겁게 먹고 사냥놀이를 파했다.

다음날 태숙이 입조하여 양왕에게 사냥터에서 받은 상에 대해 감사의 말을 드리고 곧이어 모친 혜후의 궁중에 문안 인사를 드리러 갔다. 그때 외후도 이미 그곳에 당도해 있었다. 수행 궁녀들에게 미리 뇌물을 후하게 주어 매수한 외후가 태숙에게 눈짓으로 마음을 전했다. 마음을 맞춘 두 사람은 혜후에게 돌아가겠다고 고한 후에 아무도 몰래 궁안의 다른 방으로 같이 들어가 남녀가 서로 탐하여 몸을 섞었다. 정을 맘껏 나눈 후에도 미련을 못 버린 두 사람은 차마 헤어지지 못했다. 외후가 태숙에게 당부했다.

「아무 때고 궁중에 들어오면 서로 만날 수 있습니다.」

「왕이 보고 의심할까 두렵습니다.」

「그 문제는 첩이 스스로 알아서 하겠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혜후의 궁인들은 두 사람의 관계를 알고 있었으나 숙대는 혜후가 사랑하는 아들일 뿐 아니라 일의 사안이 워낙 중대했기 때문에 감히 그 일을 입 밖으로 발설하지 못했다. 혜후도 역시 마음속으로 두 사람의 불륜을 짐작하는 바가 있었으나 오히려 궁인들에게 당부했다.

「쓸데없는 소리를 하는 자가 있다면 목숨을 부지할 수 없을 것이다!」

외후의 시녀들도 이미 그녀로부터 후한 뇌물을 받았기 때문에 오히려 남의 이목을 피하는데 거들기까지 했다. 숙대가 매일 새벽부터 깊은 저녁때까지 궁중에 숨어 있으면서 외후와 밀회를 즐겼다. 단지 궁중 안에서 이 일을 모르고 있는 사람은 양왕 한 사람뿐이었다. 사관이 시를 지어 한탄했다.

형도 죽이려 했던 태숙인데 형수인들 염두에 두었겠는가?

동생을 사랑한 양왕이지만 마누라는 간수 못했구나!

어느 날 아침 사냥터에서 은밀히 약속을 한 후로는

오랑캐의 여인을 중궁으로 삼은 일을 후회하기 시작했다.

太叔无兄何有嫂(태숙무형하유수)

襄王愛弟不防妻(양왕애제불방처)

一朝射獵成私約(일조사렵성사약)

始悔中宮女是夷(시회중궁녀시이)

다시 양왕이 태숙을 처벌하지 않고 다시 불러와서 스스로 화를 자초한 일에 대해 비난하는 시가 있다.

반골은 고치기 힘든다는 사실은 누구나 다 아는데

죽이지도 않고 또한 형제의 의도 끊지 않고서

집안으로 끌어들인 호랑이가 어찌 물지 않겠는가?

진실로 양왕은 꿈속을 헤맨 사람이었다.

明知纂逆性難悛(명지찬역성난전)

便不行誅也絶親(편불행주야절친)

引虎入門誰不噬(인호입문수불서)

襄王眞是夢中人(양왕진시몽중인)

무릇 세상일이란 좋은 일은 날이 거듭 될수록 적어지고 이와는 반대로 사악한 짓은 날이 거듭 될수록 크게 되는 법이다. 태숙대와 외후의 간통은 횟수가 늘어감에 따라 두 사람에게는 익숙하게 되고 또한 습관처럼 되어 점점 남의 이목이나 이해관계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스스럼없이 행하여 자연히 두 사람의 불륜관계는 밖으로 드러나게 되었다. 나이가 이미 50이 넘은 양왕은 아직 어린 나이에 정욕에 불이 붙은 외후를 도저히 힘으로 당해내지 못했다. 양왕은 때때로 외후와의 잠자리를 피해 다른 침실로 가서 휴식을 취하곤 했다. 태숙은 궁문을 지키는 군사들이나 궁궐의 내시들에게 약간의 뇌물을 주고 또한 얼마간의 권세를 이용하여 궁궐을 마음대로 돌아다니며 외후와 간통했다. 눈치가 빠른 궁궐의 파수꾼이나 내시들은 모두가 생각했다.

「태숙은 태후가 사랑하는 아들이고 만약 왕이 죽는다면 태숙이 왕위를 이어 받을 터인데 뇌물을 몇 푼 받고 말지 무엇 때문에 그들의 장막 뒤의 일에 관여한단 말인가?」

이런 이유로 해서 태숙이 아침저녁을 가리지 않고 무상으로 궁중을 출입할 수 있었다.

한편 궁중에는 소동(小東)이라는 궁녀가 있었다. 그녀는 얼굴이 그런 대로 수려했고 음률에 정통했다. 어느 날 저녁 태숙이 술자리를 즐기고 있으면서 소동으로 하여금 옥으로 만든 피리를 불게 하고 자기는 그 소리에 맞추어 노래를 불렀다. 태숙이 그날 저녁에 가슴을 풀어헤치고 술을 마음껏 마신 끝에 자기도 몰래 술에 취하게 되어 인사불성이 되어 날뛰기 시작하더니 갑자기 소동을 범하려고 했다. 외후가 알게 되면 벌을 받을 것으로 생각한 소동이 스스로 옷을 벗겠다고 태숙을 안심시켰다가 틈을 타서 태숙의 방에서 몸을 빼어 도망쳤다. 태숙이 대노하여 장검을 빼 들고 방에서 뛰어나와 소등을 찾아 죽이려고 했다. 소동이 도망치다가 양왕의 침실로 뛰어 들어가 문을 두드리면서 큰소리로 흐느끼며 태숙과 외후의 일을 고해 바쳤다.

「태숙은 현재 궁중에 머물러 있습니다.」

양왕이 대노하여 침상 머리맡에 있던 보검을 꺼내어 들고 중궁으로 달려가서 태숙을 죽이려 했다.

《제38회로 계속》

주석

①친영례(親迎禮)/ 육례(六禮)의 하나. 신랑이 친히 신부의 집에 가서 신부를 맞이해 오는 예

②치병(輜輧)/ 사방에 휘장을 두른 소가 끄는 부인용 수레

③기강지복(紀綱之僕)/ 훈련이 잘 된 능력 있는 병사와 노복

④본서 제 25회 참조

⑤태임(太任)/주문왕(周文王) 창(昌)의 모친을 말한다. 계력(季歷)의 부인으로 부덕이 높았다.

⑥의구(宜臼)/ 주유왕(周幽王)의 폐태자(廢太子)였다가 동주를 연 주평왕(周平王)을 말한다.

⑦진양성(晉陽城)/ 지금의 산서성 태원시(太原市) 남쪽에 있던 고을로 후에 조쇠의 후손들인 조씨들의 주요한 근거지가 되었다. 기원전 453년 이곳에서 한위조(韓魏趙) 삼가(三家)가 지백(智伯)이 이끄는 지가(智家)의 군사들을 물리쳐 지씨을 멸하고 이어서 당진을 삼분하여 전국칠웅(戰國七雄)이 열리는 계기가 되었다.

⑧면상산(綿上山)/ 지금의 산서성 개휴시(介休市) 동남 10키로에 있는 개산(介山)을 말함.

⑨只在此山中, 雲深不知處 /도사를 찾아갔으나 만나지 못했다는 뜻의 訪道子不遇(방도자불우)라는 제목의 시 중에 나오는 글귀로서 당나라 중기 때 문인(文人) 가도(賈島)라는 사람의 작품이다. 원래 중의 신분으로 그 법호를 무본(無本)이라고 하다가 당대의 문호 한유(韓愈)에게 인정받아 환속(還俗)하여 지은 이름이 가도(賈島)이다. 그가 <僧鼓月下門(승고월하문)>이라는 문구를 놓고 고심하다가 길거리에서 만난 한유(韓愈)에게 물어 한유로 하여금 퇴고(推敲)라는 말로 고심케 한 유명한 일화가 있다. 방도자불우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시인사전 참조)

松下問童子(송하문동자) 소나무 아래에서 동자에게 물으니/ 言師採藥去(언사채약거) 동자가 대답하기를 ‘스승은 약초 캐러 나가시어 /只在此山中(지재차산중) 이 산중에 계실 것이나 / 雲深不知處(운심부지처)구름이 하도 깊어 있는 곳을 모르겠다고’

⑩활국(滑國)/ 춘추 때 희성(姬姓)의 소 제후국으로 원래는 지금의 하남성 수현(睢縣) 서북에 있었으나 후에 지금의 하남성 언사시(偃師市) 서남의 비(費) 땅으로 나라를 옮긴 후 당진의 부용국(附庸國)이 되었다. 이 때의 활국을 비활(費滑)이라고도 한다. 주양왕 25년 기원전 627년 섬진(陝秦)의 정나라 정벌군에 의해 멸망당했다. 정나라를 정벌하기 위해 섬진의 삼수(三帥)인 맹명시(孟明視), 서걸술(西乞術). 백을병(白乙丙) 등이 500 승의 섬진군을 이끌고 활국의 경내에 도착하여 휴식을 취하고 있는 것을 본 정나라의 상인 현고(弦高)가 가지고 있던 소를 바쳐 호군하고 정나라가 이미 섬진군의 공격을 알고 미리 방비하고 있다는 것을 알렸다. 이에 기습작전이 실패로 돌아갔다고 생각한 섬진의 대장 맹명시는 활국을 멸망시키고 그 포로와 노획물을 가지고 귀국하다가 효산(崤山)의 험지에서 매복하고 있던 당진군에 의해 전멸하고 활 땅은 당진으로 편입되었다.

⑪관채(管蔡)의 란을 말한다. 서주 창건 초기 주공단이 섭정에 오르자 이에 불만을 품은 관숙과 채숙이 은나라의 구토에 봉해 그 유민을 다스리게 했던 무경 녹보를 부추겨 일으킨 소위 삼감(三監)의 란을 말한다.

⑫위비(痿痹)/신체의 어느 부분이 위축되어 기능이 상실되거나 마비가 오는 병

⑬돈거(軘車)/ 전투를 할 때 진지를 구축할 목적으로 만든 병거의 일종

⑭충거(衝車)/ 전투시 돌격용의 병거다.

⑮소거(轈車)/ 사닥다리나 망루를 장착한 수레로써 휴전 중에는 성안의 적진을 정찰하거나 전투 중에는 성벽에 사닥다리를 대어 군사들이 타고 오르는데 사용되는 전차를 말한다. 초거(軺車)라고도 한다.

⑯감(甘)/ 지금의 하남성 낙양시 남쪽의 성읍으로 즉 태숙 대의 봉지이다.

⑰연의(演義) 24회 참조. 제환공이 관중의 건의를 받아들여 열국의 제후들을 수지(首止)로 불러 당시 세자였던 양왕을 불러 군신의 관계를 정립하여 세자(世子) 정(鄭)의 지위를 기정사실화 하여 당시 혜왕의 총애를 믿고 세자의 자리를 넘보고 있었던 숙대(叔帶)의 뜻을 좌절시킨 일을 말한다.

⑱연의(演義) 29회 참조. 이(伊)와 락(雒)땅에 거주하던 융족을 불러들여 주나라 도성인 낙읍(洛邑)을 공격하게 하고 자기는 안에서 내응하여 양왕을 몰아내고 주왕의 자리를 차지하려고 하였으나 주왕의 요청을 받은 섬진의 목공과 당진의 혜공이 신속하게 군사를 이끌고 와서 구원하였기 때문에 융병들은 싸움에서 패하고 물러가고, 숙대는 뜻을 이루지 못했다. 제환공(齊桓公)이 융주를 불러 주나라를 침입한 행위에 대해 문책하자 융주는 주나라를 쳐들어 간 것은 숙대의 요청에 의해서였다고 고했다. 숙대의 음모라는 사실을 알게 된 양왕은 숙대를 나라 밖으로 쫓아냈다. 주나라에서 쫓겨난 숙대는 제나라로 망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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