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국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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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05-11 11:31:354528 
제44회. 叔詹自救(숙첨자구), 弦高犒軍(현고호군)
양승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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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제44회 叔詹自救 弦高犒軍(숙첨자구,현고호군)

팽살형에 임하여 자신의 목숨을 구한 정나라의 숙첨(叔詹)과

섬진의 군사를 호군하여 정나라를 구한 상인 현고(弦高)

1. 숙첨자구(叔詹自救)

- 팽살형에 임하여 자신의 목숨을 구한 정나라의 숙첨 -

정나라와 화의를 맺은 진목공은 당진과의 약속을 배반하고 군사를 물리쳤을 뿐만 아니라 군사들 중 일부를 남겨 정나라를 지켜주도록 했다. 진문공이 알고 크게 노했다. 호언이 말했다.

「섬진군의 행렬은 아직 멀리 가지 못했을 것입니다. 신이 한 떼의 군마를 끌고 섬진군의 뒤를 추격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시기 바랍니다. 하루 빨리 고향에 돌아가려는 마음에 싸우려는 마음이 해이해져 있는 섬진군을 공격한다면 틀림없이 이길 수 있습니다. 섬진군와의 싸움에서 승리를 취한다면 정나라 사람들은 간담이 서늘해져 장차 우리가 공격을 하지 않아도 스스로 항복을 청해 올 것입니다.」

문공이 말했다.

「불가합니다. 옛날 섬진의 군주가 애써준 덕택에 과인은 군위에 올라 사직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섬진의 군주가 힘써 주지 않았다면 어찌 과인이 이렇게 당진의 군주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있겠습니까? 성복에서의 싸움에서 초나라의 자옥이 과인에게 무례를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를 피해 우리의 군사들을 삼사의 거리를 후퇴시켜 그의 군주로부터 받은 은혜에 보답했었습니다. 하물며 섬진과는 혼인까지 맺은 인척의 나라인데 어찌 뒤를 추격하여 싸울 수 있겠습니까? 비록 섬진군은 철수했다고 해도 우리 당진의 군사만으로도 충분히 정나라를 항복시킬 수 있습니다.」

문공은 즉시 군사를 반으로 나누어 섬진의 군사들이 주둔했었던 함릉(函陵)으로 보내어 진채를 세운 후에 예전과 같이 신정성에 맹공을 퍼붓도록 했다.

정백이 섬진군의 진영에서 돌아온 촉무에게 말했다.

「섬진군이 물러가게 한 일은 그대의 공이오! 그러나 아직 당진군은 물러가지 않으니 어찌해야 하오?」

「공자란이 당진의 군주에게서 총애를 받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사람을 보내 그를 귀국시킨 후에 그로 하여금 당진과 화의를 청하게 한다면 진후는 틀림없이 공자란의 요청을 받아들일 것입니다.」

「이 일도 노대부가 아니면 감당할 사람이 없으니 다시 한 번 수고를 해주기 바라오.」

대부 석신보(石申父)가 앞으로 나오더니 말했다.

「노대부께서는 너무 노고가 많으셨으니 신이 대신하여 공자란을 모시러 다녀오겠습니다.」

석신보가 즉시 귀중한 보물을 지참하고 곧바로 당진의 군영으로 가서 문공의 접견을 청했다. 문공이 석신보를 군영으로 불러 들어오게 했다. 석신보가 절을 올리고 가지고 온 보물을 바치면서 정백이 내린 명을 전했다.

「저희 군주께서 형만(荊蠻)의 초나라와 가까이 하고 감히 그 관계를 청산하지 못한 이유는 사실은 군후님의 휘하를 감히 떠나지 않기 위해서 입니다. 옛날 범한 무례로 인해 군후님께서 크게 진노하시고 있다는 사실을 저희 주군께서도 잘 알고 계십니다. 변변한 것은 못 되오나 우리 정나라에 대대로 물려 내려온 보물을 예물로 가져왔으니 좌우에 두고 즐기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저희 군주께서는 공자란을 데려가 곁에 두고 싶어 하십니다. 그런데 지금 당진국에 망명 중인 공자란은 우리 정나라에 대해 군후님의 자비만을 바라보며 살고 있습니다. 군후께서 공자란을 보내 정나라의 정사를 아침저녁으로 조정에 상주하게 하면서 감시토록 한다면 어찌 우리 정나라가 두마음을 품을 수 있겠습니까?」

「너희들은 섬진과 우리를 이간시켜 섬진의 군사들을 떠나게 했다. 그것은 섬진을 속여 우리 당진 혼자 힘만으로는 정나라를 공격할 수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런데 이번에 다시 화의를 구하니 이것은 우리들의 공세를 늦추게 하여 시간을 벌어 초나라의 구원병을 기다리겠다는 수작이 아니고 무엇이겠느냐? 만약에 우리의 군사가 진정으로 물러가기를 원한다면 너희들은 필히 나의 두 가지 조건을 받아 들여야만 할 것이다.」

「군후께서 하명하시기 바랍니다.」

「첫째는 공자란을 데려다가 정나라의 세자로 세워야 하고, 둘째는 너희들의 모신 숙첨을 이곳으로 보내 너희들의 진실 된 마음을 표해야 한다.」

석신보가 문공의 요구사항을 받고 정성으로 돌아와 정백에게 복명하였다. 정문공이 말했다.

「자화(子華)의 란 이래 아직 자식을 두지 못하고① 또한 천비 출신의 연길(燕姞)이 옛날 공자란을 낳을 때 꿈 이야기도 있으니 그를 세자로 세운다면 사직을 계속 지킬 수 있어 별 문제가 없는데 단지 숙첨은 곧 나의 팔다리와 같은 신하라 어찌 내 곁을 떠나게 할 수 있단 말인가?」

숙첨이 곁에 있다가 말했다.

「신은 ‘주군으로 하여금 근심하게 하면 그 신하된 자는 치욕을 당하게 되고, 주군으로 하여금 치욕을 당하게 하면 그 신하된 자는 마땅히 죽어서 그 죄를 빌어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오늘 당진의 군주가 신을 찾고 있는데 만일 신이 가지 않는다면 당진군은 포위를 풀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은 신이 죽음을 피하여 불충을 저질러 주군으로 하여금 근심하게 하는 행위이며 또한 치욕을 당하게 하는 일입니다. 바라옵건대 당진 군주의 부름에 응하도록 허락해 주시기 바랍니다.」

「경이 가면 결코 살아 돌아올 수 없을 터인데 내가 어찌 이를 용납할 수 있겠소?」

「주군께서 이 첨 한 사람을 용납하시지 못한다 하시면서 수많은 백성들이 위험한 곤경에 빠지고 사직이 끊어지는 일은 어찌 용납하시려고 하십니까? 한 사람의 신하 목숨으로 백성을 구하고 사직을 안정시키려고 하는데 주군께서는 어찌 그토록 애타 하십니까?」

정문공이 눈물을 흘리며 숙첨을 당진의 군영으로 보냈다. 석신보가 후선다(侯宣多)와 함께 숙첨을 데리고 가서 당진의 군주에게 접견하고 말했다.

「군후님의 진노하심을 두려워하신 저희 군주께서 군후님의 지시하신 두 가지 일을 모두 들어주시기로 하였습니다. 오늘 그 죄를 고하게 하기 위하여 숙첨을 군후 전하 안전에 대령시켰으니 오로지 전하의 관대한 처분만을 바라옵니다. 또한 공자란을 정나라로 환국시켜주면 세자로 책봉하여 우리 정나라의 군위를 잇도록 결심하시어 군주님이 명하신 바를 모두 이행하였습니다.」

문공이 크게 기뻐하며 즉시 호언에게 명하여 당진의 동쪽 변경에 머물고 있던 공자란을 불러오게 하여 석신보와 후선다와 함께 진영에 머물면서 다음 지시를 기다리게 했다. 그리고는 눈 앞에 대령하고 있던 숙첨을 쳐다보더니 큰소리로 질책했다.

「너는 정나라의 정사를 한 손에 쥐고 흔들더니 너의 군주로 하여금 나라를 지나가는 손님에게 실례를 하게 만들었으니 그 죄가 하나이며, 회맹에 참석하고서도 다시 두 마음을 품게 만들었으니 그 두 번째 죄이다.」

문공이 즉시 좌우에게 명하여 속히 가마솥을 준비하게 하여 숙첨을 삶아 죽이라고 하였다. 숙첨이 문공의 명하는 말을 들었으나 얼굴빛을 하나도 바꾸지 않고 두 손을 높이 들어 문공을 향해 말했다.

「원컨대 죽기 전에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할 말이 있으면 마지막으로 해보아라!」

「옛날 군주님이 천하를 유랑객 처지로 우리나라를 찾으셨을 때 신은 우리 주군께 ‘당진의 공자는 어질고 사리에 밝으신 분일뿐만 아니라 그 좌우에 붙어서 따라 다니고 있는 사람도 모두 재상의 재목이라 만약 환국하게 되면 반드시 방백의 자리에 오르실 분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후에 온(溫) 땅에서 열린 회맹에서는 신이 우리 군주께 권하기를 ‘반드시 당진을 섬겨야만 옛날에 저지른 실례에 대한 죄를 추궁 받지 않고 사직을 지킬 수 있지만 이번에 다시 회맹을 반하여 두 마음을 품고 초나라를 섬기다가는 주군께서는 그 죄를 용서받지 못할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늘에서 정나라를 벌하여 재앙을 내리기 위하여 저의 간언은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지금 군후께서 정나라의 정사를 맡고 있는 신에게 죄를 묻기 위해 소환할 때 자신의 허물을 깊이 깨달으신 과군께서도 이곳에 오겠다는 신의 청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신은 단지 ‘그 주군을 욕되게 하는 자는 마땅히 죽음으로서 사죄를 해야 한다’는 말에 따라 스스로 죽음의 길로 자청하여 왔을 뿐입니다. 신 한 사람의 목숨으로 위난에 처한 나라를 구하기 위해서입니다. 무릇 사리를 능히 헤아릴 수 있는 능력을 지(智)라 하고 나라를 위하여 온 힘을 다하는 마음을 충(忠)이라 하며, 위난에 처하여 피하지 않는 것은 용(勇)이라 하고 나라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은 인(仁)이라 합니다.② 지용충인(智勇忠仁) 모두를 갖춘 신하가 여기 있으니 당진에 법에 따라 가마솥에 넣어 삶아 죽이시기 바랍니다.」

숙첨은 말을 마치자 곧바로 가마솥 곁으로 걸어가 기대면서 큰 소리로 외쳤다.

「지금 이후로는 그 군주를 모시는 자는 이 숙첨이 당하는 모습을 보고 경계하여 처신하기 바란다!」

문공이 듣고 몰골이 송연해져서 숙첨을 삶아 죽이라는 명령을 거둬들이면서 말했다.

「과인이 한 번 경을 시험해 봤노라! 경이야말로 진실로 충성되고 어진 신하로다!」

문공은 숙첨을 예를 갖추어 극진하게 대했다.③ 그리고 하루도 미처 지나기 전에 공자란이 문공이 묵고 있는 군중에 당도하였다. 공자란에게 저간의 사정을 설명한 진문공은 숙첨, 석신보 및 후선다 등에게 세자의 예를 갖추어 상견시킨 후에 네 사람이 동행하여 정성으로 들어가게 했다. 정백이 공자란을 세자로 세우자 당진의 군사들은 바로 물러갔다. 이때부터 당진과 섬진 사이에는 틈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염옹이 이를 두고 시를 지었다.

사위와 장인이 함께 용병한 뜻은 서로 속이지 않았기 때문인데

단지 촉무의 몇 마디 말로 군사를 거두어 돌아가 버렸다.

동쪽으로 통하는 길을 얻기 위한 사소한 이익을 탐한 일이

몇 대를 걸쳐 병화를 일으키게 될 줄을 누가 알았겠는가?

甥舅同兵意不欺(생구동병의불사)

卻因燭武片言移(각인촉무편언이)

爲貪東道蠅頭利(위식동도승두리)

數世兵連那得知(수세병련나득지)

2. 賢不肖之間 父子不相及(현불초지간 부자불상급)

- 어짐과 불초는 부자지간이라 해서 전해지는 것이 아니다. -

그해에 위주가 술에 취하여 수레에서 떨어져 어깨를 다쳤는데, 옛날 불에 대인 내상이 다시 발병하여 피를 한 말 이상이나 토하고는 결국은 숨을 거두었다. 문공이 그의 아들 위과(魏顆)에게 위주의 작위를 잇게 했다. 그리고 얼마 후에 호모와 호언이 계속해서 죽었다. 문공이 목을 놓아 울면서 말했다.

「과인을 환난으로부터 몸을 빼내 오늘이 있게 한 것은 모두가 외숙들의 도움을 얻어서인데 뜻밖에 나를 버리고 곁을 떠나 버리니 과인에게서 실로 오른팔 한 짝이 떨어져 나가 버렸도다! 참으로 슬픈 일이로다!」

서신이 곁에 있다 말했다.

「주공께서는 호모와 호언 두 분의 재주를 애석해 하시어 이리 슬퍼해 하시는데 신이 두 분을 대신할 수 있는 인물을 천거하겠습니다. 가히 재상으로 쓸 수 있을 것입니다. 오로지 주공께서 판단하여 임용하시기 바랍니다.」

「경이 천거하려는 사람은 누구인가?」

「신이 옛날에 사자의 임무를 띠고 길을 가다가 기(冀)④ 땅의 들판에서 묵게 되었었습니다. 그때 한 사람이 밭에서 곰방메로 김을 매고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마침 점심때가 되어 그 처가 음식을 가져와 두 손으로 그 농부에게 바쳤습니다. 그 남편 되는 농부도 역시 몸가짐을 바로 하고 공손한 태도로 그 부인에게서 음식을 받아 놓고는 하늘과 땅에 간단한 제사를 지낸 후에 식사를 시작했습니다. 그의 처는 농부의 곁에서 식사가 다 끝날 때까지 서서 기다리며 자리를 뜨지 않았습니다. 농부가 이윽고 식사를 다 끝내자 그 처가 그릇을 챙겨서 돌아갔습니다. 식사를 끝낸 그 농부는 다시 곰방메를 잡고서 김매기를 다시 시작했습니다. 농부는 시종일관 얼굴에 즐거운 표정을 지으며 농사를 지었습니다. 남편과 부인 사이에 서로 존경하기를 마치 손님을 대하듯이 하니 하물며 다른 사람을 대할 때는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신은 ‘능히 손님에게 예를 행할 줄 아는 자는 필시 덕을 갖추고 있다.’ 라는 말을 들어 알고 있습니다. 제가 그 농부에게로 다가가서 그 성과 이름을 묻자 그 사람은 곧 극예(郤芮)의 아들 극결(郤缺)이었습니다. 이 사람을 불러 쓰신다면 돌아가신 호언의 뒤를 이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아비가 대역죄인인데 어찌 그 자식을 불러서 쓸 수 있겠소?」

「요(堯)와 순(舜) 두 임금은 각기 단주(丹朱)⑤와 상균(商均)⑥ 이라는 변변치 못한 아들을 두었고 곤(鯀)⑦과 같은 악인에게도 우(禹)같은 성인 아들이 있었습니다. 어진 것과 불초한 것은 부자지간이라 해서 전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주군께서는 어찌하여 옛날의 그 아비가 저질은 죄를 허물하여 유용한 인재를 버리시려 하십니까?」

「경의 말이 옳도다! 경이 나를 대신하여 그를 불러오기 바라오.」

「신은 그가 만약 타국으로 도망가서 그 나라에 임용이 되지나 않을까 걱정하여 이미 그를 데려와 저의 집에 머물도록 했습니다. 주군께서 명을 내려 사자를 보내 현자를 대하는 예를 행하십시오.」

문공이 서신의 말을 따라 내시를 시켜 높은 관리가 입는 도포와 관에 꽂는 비녀 및 관을 메는 갓끈을 가지고 극결에게 가서 문공의 부름을 알렸다. 극결이 군주의 명을 받들어 사절로 온 내시 앞에 엎드려 머리를 조아리며 사양의 말을 하였다.

「신은 곧 기 땅의 벌판에서 밭을 갈던 농부라! 주군께서 선친이 지은 죄를 물어 죽이지 않으신 것만으로도 하해와 같은 은혜를 입었는데 하물며 어찌 감히 은총에 기대어 벼슬에 나아가 조당을 더럽힐 수가 있겠습니까?」

사절로 간 내시가 재삼 문공의 명을 전하여 극결을 문공이 내준 어가에 태웠다. 극결은 문공이 보내 준 비녀 위에 관을 쓰고, 다시 도포를 단정하게 차려입고 조당에 들어가 문공을 알현했다. 극결은 신장이 아홉 척에 달했으며 콧날은 우뚝 솟았으며 턱은 넓고 목소리는 마치 큰 종소리가 울리는 것 같이 우렁찼다. 문공이 보고 크게 기뻐하며 즉시 극결을 하군부장으로 삼아 하군대장인 서신을 돕도록 했다. 옛날에 증편했던 삼행의 삼군을 다시 이군으로 줄여 그 명칭을 신상군(新上軍)과 신하군(新下軍)으로 했다. 사마의 직을 맡고 있었던 조쇠를 신상군의 원수로 기정(箕鄭)을 부장으로, 신하군의 대장에는 서신의 아들 서앵(胥嬰)을 그 부장에는 선도(先都)를 임명했다.⑧ 당진은 기존의 삼군과 새로운 이군을 더하여 모두 오군을 두어 천자국에 버금가는 군제를 갖게 되었다. 이어서 나라 안의 수많은 호걸들을 불러 장수로 삼은 결과 당진의 군정은 빈틈없이 잡혀가게 되었다.

한편 초성왕은 당진이 군제를 다시 5군으로 개편했다는 소식을 듣고 매우 두려워하여 대부 투장(鬪章)을 당진에 사자로 보내 수호를 맺도록 했다. 문공은 옛날에 성왕이 자신에게 베풀어준 은혜에 감사하여 수호를 맺자는 초나라의 청을 허락하고 대부 양처보를 답례사절로 초나라에 보냈다.

주양왕 25년 기원전 628년 정문공이 재위 45만에 죽었다. 정나라 군신들이 세자 공자란을 옹립하여 정백으로 세웠다. 이가 정목공(鄭穆公)이다. 옛날에 정문공의 비첩이었던 연길(燕姞)이 공자란을 낳을 때 꾸었던 태몽이 현실로 나타난 바가 되었다. 그해 겨울에 진문공이 병이 들어 위독하게 되자 조쇠, 선진, 호석고, 양처보 등 여러 신하들을 불러들여 마지막 유언을 내렸다. 세자 환(驩)으로 하여금 자기의 자리를 잇게 하고 잘 보좌하여 절대 백업이 다른 나라로 넘어가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당부했다. 문공은 그 전에 이미 많은 공자들 때문에 나라가 불안하게 되지나 않을까 걱정하여 공자옹(公子雍)은 섬진으로 공자락(公子樂)은 진(陳)나라로 보내어 각각 그곳에서 벼슬을 얻어 살도록 조치해 놓고 있었다. 공자옹은 곧 두기(杜祁)의 소생이고 공자락은 진영(辰嬴)⑨ 소생이었다. 다시 나이가 아직 어린 아들 흑둔(黑臀)은 왕실과 친분을 유지하기 주나라에 보내 살게 했다. 문공이 병석에서 다시 일어나지 못하고 재위 팔 년 만인 향년 68세에 죽었다. 사관이 시를 지어 문공의 업적을 찬양했다.

이곳저곳 천하를 떠돌아다니기를 장장 19년만에

신룡이 자기 집으로 돌아와 군위에 올랐다.

하양에서 조현을 다시 행함은 충심을 알렸고

성복의 싸움에서는 삼군의 의기를 세상에 드높였다.

道路奔馳十九年(도로분치십구년)

神龍返穴遂乘權(신룡반혈수승권)

河陽再覲忠心顯(하양재근충심현)

城濮三軍義門宣(성복삼군의문선)

치욕은 설욕하고 입은 은혜는 갚기를 분명히 했으며

신상필벌을 행하여 정실에 치우치지 않았다.

넒은 도량과 근검한 품성은 하늘이 내린 것이었지만

좌우의 수많은 현인들의 도움에 힘입은 바도 컸다.

雪恥酬恩中始快(설치수은중시쾌)

賞功罰罪政無偏(상공벌죄정무편)

雖然廣儉由天授(수연광검유천수)

左右匡扶賴衆賢(좌우광부뢰중현)

세자 환이 문공의 상례를 주재하고 당진의 군주 자리에 즉위했다. 이가 당진의 양공(襄公)이다. 양공은 문공의 장지를 곡옥(曲沃)으로 정했다. 당진의 문무백관들이 문공의 관을 끌고 강도(絳都)를 나가 곡옥으로 가는 도중에 관속에서 갑자기 마치 소울음 소리처럼 큰소리가 나면서 관의 무게가 태산처럼 무거워져 수레가 앞으로 나갈 수 없게 되었다. 군신들이 모두 놀라 태복 곽언에게 점을 치게 하여 다음과 같은 점괘를 얻었다.

서쪽에서 쥐새끼가 와서

내집 담장을 넘는 도다

내가 몽둥이를 집어들고

한번 내리치니 세 번 상하도다!

有鼠西來(유서서래)

越我垣墻(월아원장)

我有巨梃(아유거정)

一擊三傷(일격삼상)

곽언이 점사를 풀이했다.

「조만 간에 틀림없이 서쪽 변경에서 병사에 관한 소식이 들려오고 우리 군사가 그들을 물리쳐 크게 이길 괘입니다. 선군의 영령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입니다.」

군신들이 모두 문공의 관을 실은 수레에 절을 올리자 관속에서 나던 소리가 곧이어 멈추었다. 또한 관의 무게도 어느덧 가벼워져 평상시와 같이 행차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선진이 말했다.

「서방이라는 함은 곧 섬진입니다.」

선진은 즉시 사람을 몰래 섬진에 정탐병을 보내 소식을 알아오게 하였다.

3. 천리원정 노이무공 (千裏遠征 勞而無功)

- 천리 밖의 나라를 원정하는 일은 힘만 허비할 뿐 공을 세울 수 없다. -

한편 정나라에 남겨 둔 섬진의 장수 기자, 봉손, 양손 등 세 사람은 정성의 북문에 주둔하고 있으면서 공자란이 당진에서 귀국하여 세자에 책봉되는 광경을 보더니 화를 내며 말했다.

「우리들은 정나라를 위해 당진의 공격으로부터 성을 지켜주고 있는데 그들은 오히려 다시 당진에게 항복해 버렸다. 그 동안 우리들이 행한 일은 모두 헛일이 되어 버리지 않았는가?」

섬진의 세 장수들은 즉시 그 사실을 편지로 써서 본국에 보고했다. 섬진의 목공도 보고를 받고 노했으나 단지 진문공 위세에 눌려 화는 났지만 감히 항의는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얼마 후에 정문공이 죽고 공자란이 정백의 자리에 올랐다. 이가 정목공(鄭穆公)이다. 정나라의 새로운 군주 정목공은 기자 등의 섬진 장수들에게는 자신의 즉위에 대해 통고하지 않고 어떤 예도 취하지 않았다. 기자가 봉손 및 양손을 불러 같이 상의하였다.

「우리들이 원정 나와 외국에 주둔하고 있는데 언제 본국으로 돌아갈 지 알 수 없소. 우리가 만약 본국의 주군에게 권하여 군사를 몰래 출동시켜 정나라를 습격하여 점령하게 한다면 우리들은 모두 전공을 세움과 동시에 본국으로 돌아 갈 수 있을 것이오.」

섬진의 세 장수가 정나라를 습격할 계획에 대해 상의를 하는 도중에 다시 당진의 문공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세 사람이 손으로 이마를 치고 기뻐하며 말했다.

「이것은 하늘이 우리를 도와 계획을 성사시키고자 함이오!」

세 장수는 즉시 편지를 써서 심복에게 주어 진목공에게 바치게 했다.

「정나라가 우리들로 하여금 정성의 북문을 지키게 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아무도 몰래 군사를 보내 정성을 습격하고 우리가 안에서 내응한다면 정나라를 멸하여 우리가 차지할 수 있습니다. 당진은 상중이라 틀림없이 정나라를 구원할 경황이 없을 것입니다. 더욱이 지금의 정백도 군주의 자리에 새로 올라 외적의 침입에 대한 대비가 아직 되어 있지 않으니 이번 기회를 놓치면 안 될 것입니다.」

진목공이 비밀리에 세 장수의 보고를 받고 건숙과 백리해를 불러 상의했다. 두 사람의 노신이 이구동성으로 간하여 말렸다.

「섬진과 정나라는 천리가 떨어져 있습니다. 비록 우리가 싸움에서 이겨 정나라 사람을 포로로 잡아올 수는 있겠으나 정나라의 땅은 얻을 수 없습니다. 무릇 병사들을 이끌고 천리 길을 행군하는 일은 높은 산을 넘고 큰 강을 건너야 할뿐 아니라 그 소요되는 시간이 한 두 달이 아닐 진데 어찌 세상 사람들의 이목을 피해 가며 그 먼 거리를 행군할 수 있겠습니까? 만약 정나라가 우리의 계획에 대해서 알게 된다면 미리 대비를 하게 되고 그리되면 우리의 노력은 허사가 될 것입니다. 또한 우리 군사들도 행군도중 필시 뜻밖의 봉변을 당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무릇 그 나라를 지키게 한다고 군사를 남겨 놓고는 다시 그 군사를 이용하여 도모하는 일은 신(信)이 아니며, 또한 상을 당한 틈을 이용하여 그 나라를 공격하는 일은 인(仁)이 아닙니다. 설사 우리의 계획이 성공한다 할지라도 들어간 노력에 비해 그 이익은 적으니 그것은 지(智)가 아닙니다. 즉 신과 인과 지 세 가지를 모두 잃으시려고 하시니 신등은 도무지 그 까닭을 모르겠습니다.」

목공이 얼굴에 노기를 띄우며 말했다.

「과인이 당진의 군주를 세 번 세웠으며 당진의 난리를 두 번 평정하여 내 이름은 중원 천지에 드높게 되었소. 단지 당진의 군주가 성복(城濮)에서 초나라의 군사를 파하는 바람에 백업의 자리를 그에게 양보하게 되었을 뿐이오. 이제 당진의 군주가 세상을 뜬 이 마당에 천하에 누가 우리 섬진과 다툰다고 하겠소? 정나라는 마치 외로운 새가 되어 사람을 향하여 달려드는 형국과 같아 우리가 아니라도 다른 사람에게로 날아가 버리고 말 것이오. 이번 기회를 이용하여 정나라를 멸한 후에 그 땅과 당진의 하동(河東) 땅을 바꾸자고 한다면 당진도 필시 우리의 제안을 받아들일 것인데 어찌 유리한 점이 없다 하시오」

건숙이 다시 간했다.

「주군께서 그렇다면 당진에 조문 사절을 보내시고 그것을 기화로 정나라에도 조문 사신을 보내어 과연 정나라를 공격해도 되는지 살펴보게 하십시오. 기자와 같은 무리들의 허언에 현혹되어 일을 그르치지 마십시오.」

「만약 조문사절이 돌아올 때를 기다렸다가 군사를 출동시키게 되면 왔다 갔다 하는 시간은 일 년이 족히 걸릴 것이요. 무릇 군사를 움직일 때는 벼락 치듯이 하여 적군으로 하여금 귀를 막을 틈도 주지 말아야 하거늘 그대들 늙은이들은 어찌 그런 이치를 모른단 말이오!」

목공은 즉시 기자가 보내 온 사람에게 이월 상순에 군사를 정성 북문에 당도시키겠으니 안에서 호응하여 절대로 착오가 없도록 당부하였다.

밀사가 떠나자 맹명시를 대장으로 서걸술과 백을병은 부장으로 명하여 섬진의 많은 군사들 중 정예병으로 선발한 갑사 3천 명과 병거 5백 승을 동원하여 옹성의 동문밖에 대기하도록 했다. 맹명시는 곧 백리해의 아들이고 백을병은 건숙의 아들이다. 드디어 출병의 날이 되자 건숙과 백리해가 곡을 하며 군사들을 전송하면서 말했다.

「참으로 슬프도다! 내가 이제 너희들의 출병하는 모습을 보고 있지만 다시 돌아오는 모습은 보지 못하겠구나!」

목공이 두 노인이 한 이야기를 전해 듣고 노하여 불러서 물었다.

「군사들이 출동하는데 어찌하여 그대 노인들은 곡을 하여 군심을 어지럽히시오?」

건숙과 백리해가 한 목소리로 답했다.

「신들이 어찌하여 우리 군사들을 향하여 곡을 하겠습니까? 신들은 단지 저희들 자식 놈들을 위해서 곡을 했을 뿐입니다.」

부친이 슬프게 곡을 하는 모습을 본 백을병이 출전하지 않겠다고 건숙에게 말하자 건숙이 말했다.

「우리 부자가 섬진으로부터 록을 후하게 받아 살아왔는데 네가 출전하여 죽는다면 스스로 직분을 다하여 군주에게 충성을 바치는 일이다.」

건숙이 즉시 아무도 몰래 겉을 봉지에 싼 목간을 하나 건네주었는데 그 봉함이 심히 견고하였다. 건숙이 다시 당부했다.

「네가 어려운 지경에 빠지게 되면 내가 준 목간에 쓰여 있는 대로 행하기 바란다.」

백을병이 부친의 명을 받고 출전을 하였으나 그 마음은 매우 황당하고 처량하였다. 단지 맹명시만은 자기의 재주와 용기를 믿은 나머지 자신만만하여 기필코 공을 이루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을 하면서 마음을 태연하게 쓰며 개의치 않았다.

섬진의 대군이 이미 행군을 시작하여 도성을 떠나자 건숙은 병을 칭하고 조당에 나오지 않았다. 이어서 목공에게 표장을 써서 정사의 일에서 손을 떼겠다고 청해 왔다. 목공이 허락하지 않자 건숙이 다시 병이 매우 깊다고 하면서 자기의 고향인 명록촌(鳴綠村)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 청했다. 백리해가 문병하기 위해 건숙의 집을 찾아와 말했다.

「이 동생은 어느 길로 가야 옳은지를 모른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이렇게 구차스럽게 머물고자 하는 이유는 아직 내 자식이 생환하는 모습이나마 보고 싶어서 입니다. 형께서는 어찌하여 나에게 한마디 가르침이 없으십니까?」

「이번에 출전하면 우리 섬진군은 틀림없이 패할 것이네. 동생은 이 일을 자상(子桑)에게 몰래 고하여 하하(河下)⑩라는 곳에 배들을 모아 놓고 기다리라고 하고 만일 우리 장수들이 몸을 빼내어 도망쳐 온다면 배에 싣고 재빨리 섬진으로 귀환시키라고 하게나! 절대로 잊지 말게나.」

「형의 말씀대로 행하겠습니다.」

초야로 돌아가겠다는 건숙의 결심을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한 목공은 그에게 황금 20근과 채색비단 백 필을 하사했다. 섬진의 여러 관리들이 모두 교외에 있는 관문까지 나와서 전송하고는 돌아왔다. 건숙을 떠나보낸 백리해가 공손지의 손을 붙잡으며 건숙이 한 말을 전했다.

「건숙형이 이 일을 절대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지 말고 자상에게 부탁하라고 당부하셨소. 이는 장군께서 충성과 용기를 갖춘 분이시라 능히 나라의 우환을 같이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해서 입니다. 장군께서는 절대 이 일을 다른 사람에게는 발설하시지 마시고 비밀리에 혼자 준비하셔야 합니다.」

「명에 따르겠습니다.」

공손지는 백리해의 부탁을 받고 스스로 하수 변의 하하로 나가 배를 모으기 시작했다.

한편 맹명시는 백을병이 건숙에게서 밀봉된 목간을 받은 사실을 알고 그것이 정나라를 파할 수 있는 기계(奇計)라고 짐작했다. 그날 밤 영채를 세우기가 끝나자 맹명시가 백을병을 찾아와 그 밀간을 뜯어보기를 청했다. 백을병이 겉봉을 뜯고 나서 목간을 읽어봤다. 목간에는 다음과 같이 써 있었다.

「이번의 출정에서 염려할 나라는 정나라가 아니라 바로 당진이다. 행군하여 통과해야할 효산(殽山)⑪은 지세가 험하니 그대들은 마땅히 조심하고 조심해야 할 것이다. 내가 마땅히 너희들의 해골을 그곳에서 찾아야 될 것 같구나!」

맹명시가 눈을 감고 백을병의 막사에서 나오면서 소리쳤다.

「이 무슨 해괴한 소리인가! 참으로 불길한 말이로다. 불길한 말이로다!」

백을병도 역시 꼭 그렇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섬진의 삼수(三帥)가 그해 겨울 12월에 섬진의 군사들을 이끌고 옹성을 출발하여 다음해 봄 정월에 주나라 경게에 당도하여 그 도성 북문을 통과하게 되었다. 맹명시가 말했다.

「천자가 계시는 곳이라 비록 군사의 일로 천자를 알현하지는 못한다 할지라도 어찌 감히 존경하는 마음을 표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맹명시는 좌우에게 영을 전하게 하여 모두 투구를 벗어 들고 병거에서 내려 도보로 왕성을 통과하게 하였다. 그때 행렬의 선두에 서서 전봉을 맡고 있던 아장(牙將) 포만자(褒蠻子)는 사납고 용맹하기가 이를 데 없는 장수였다. 이윽고 섬진군의 행렬이 왕성 안으로 들어가 천자가 거하고 있는 궁궐 문 앞에 이르게 되자 갑자기 포만자가 몸을 날려 병거에 올라타더니 마치 나는 새처럼 질풍과 같이 앞으로 달려나가 이내 보이지 않게 되었다. 맹명시가 보더니 감탄하며 말했다.

「군사들 모두가 포만자처럼 용맹하다면 우리가 어떤 싸움에서인들 이기지 못하겠는가?」

여러 장수들과 사졸들이 맹명시가 하는 말을 듣고 시끄럽게 소리치며 말했다.

「우리들이 어찌하여 포만자보다 못하단 말인가?」

섬진의 군사들이 서로 앞을 다투어 두 팔로 가슴을 두드리며 여러 군중들 앞에서 큰 소리를 쳤다.

「달리는 병거에 뛰어오르지 못한 자들은 모두 전후(殿後)로 가서 행군하기로 한다. 」

-군대가 행군할 때 전후(殿後)에 선다는 말은 겁이 많은 군인임을 뜻한다. 군사들이 싸움에서 패하면 전후에 세워 분발하게 하여 용기를 갖게 했던 고대 군사 운영의 방법으로써 즉 전후에 세운다는 말은 군사들을 모욕하는 말이다. -

도보로 걷던 섬진군이 5백 승에 달하는 병거를 전방을 향해 힘껏 달리게 하고는 모두가 땅에서 뛰어 올라타고 질풍처럼 앞으로 내달아 삽시간에 섬진군의 행렬은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그때 주양왕은 왕자호를 시켜 왕손만(王孫滿)을 데리고 섬진의 군사들이 도성을 통과하는 모습을 관망하고 있었다. 이윽고 섬진군의 행렬이 모두 지나가 시야에서 사라지게 되자 왕자호가 왕손만과 함께 주양왕 앞으로 나가 섬진군의 용맹성을 감탄하면서 말했다.

「신이 보건대 섬진의 군사들은 용맹스럽고 강건하여 아무도 대적할 수 있는 나라가 없을 것 같습니다. 이번의 출병에 정나라는 필시 어려움에 처할 것 같습니다.」

당시 나이가 매우 어렸던 왕손만이 왕자호의 말에 얼굴에 미소를 띠기만 할뿐 말은 하지 않았다. 주양왕이 보고 물었다.

「어린 동자가 무슨 할 말이 있다고 웃고 있는가?」

왕손만이 입을 열어 말했다.

「천자가 계시는 궁궐 앞을 지날 때의 예란 반드시 갑옷을 벗어 둘둘 말고 병장기는 모두 끈으로 묶은 후에 모두 병거에서 싣고 군사들은 총총걸음으로 걸어서 지나가야만 합니다. 오늘 섬진군의 행군하는 모습을 보니 단지 투구만을 벗고 지나갔으니 이는 무례한 짓입니다. 또한 달리는 수레에 뛰어 올라 질풍처럼 내달렸으니 이것은 심히 경박한 행동이라 하겠습니다. 군사들의 행동이 가벼우면 계략이 못 미치게 되고 또한 예의가 없으니 이것은 쉽게 해이해질 것입니다. 이번의 출전으로 섬진의 군사들은 틀림없이 패전의 치욕을 당하게 되어 다른 나라를 해치지 못하고 스스로를 해칠 수 있을 뿐입니다.」

4. 현고호군(弦高犒軍)

- 섬진군을 호군하여 정나라를 멸망으로부터 구한 상인 현고 -

한편 정나라 상인 중에 이름을 현고(弦高)라는 사람이 있었다. 소를 팔고 사는 일을 업으로 하고 있었는데 옛날 주나라의 왕자퇴(王子頹)가 소를 좋아하여 수많은 소들을 사들이게 되자 정과 위 두 나라 상인들이 소를 주나라에 끌고 가서 팔아서 많은 이득을 취할 수 있었다. 그날에 이르기까지 현고가 가업을 이어 받아 아직 소장사를 하고 있었다. 현고는 신분이 비록 상인에 불과 하였지만 군주에게 충성하고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갖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환난을 극복하고 분쟁을 풀 수 있는 지혜도 갖추고 있었다. 단지 천거해서 이끌어 주는 사람이 없어 시정에서 몸을 굽혀 소를 팔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날도 현고는 살찐 소 수백 마리를 내다 팔기 위해 주나라로 가고 있는 중이었다. 현고의 일행이 여양진(黎陽津)⑫ 근처에 당도하자 우연히 고향사람 건타(蹇他)라는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건타는 방금 섬진에서 장사를 하다가 고향으로 가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현고와 건타 두 사람이 서로 만나 안부인사를 나누었다. 현고가 건타에게 물었다.

「근자에 이르러 섬진의 사정은 어떠합니까?」

「섬진이 삼수로 하여금 군사를 이끌고 출병하여 정나라를 습격하기 위해 옹성을 출발한 날이, 작년 겨울 12월 병술일이니, 머지않아 그 군사들이 이곳에 당도할 때가 되었습니다.」

현고가 듣고 크게 놀라 마음속으로 말했다.

「나의 부모가 계시는 땅에 갑자기 이러한 병란이 생기게 되었으니 내가 이 소식을 듣지 않았더라면 모르되, 소식을 이미 들었음에도 알리지 않아 만일 나라가 망하게 된다면 내가 무슨 면목으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겠는가?」

건타와 작별을 고한 현고는 즉시 마음속으로 한 가지 계책을 생각해 냈다. 그는 즉시 사람을 시켜 밤낮으로 정나라에 달려가 이 일을 고하여 속히 섬진의 습격에 대비하도록 하고 동시에 끌고 가던 소들을 여사에 맡기고 그 중에서 살찐 소 20마리를 고른 후에 종자들에게 호군(犒軍)에 필요한 기구를 갖추게 했다. 현고는 소를 끌고 길을 재촉하여 섬진의 군사들을 찾아 서쪽을 향해 계속 길을 걸었다. 마침내 활국(滑國)⑬의 경내에서 섬진군의 선발대에 소속된 전초(前哨)를 만났다. 현고가 앞길을 막고 큰소리로 외쳤다.

「저는 정나라 군주가 보낸 사자입니다. 원컨대 원수를 한번 뵙게 해주시기 바랍니다.」

섬진의 전초병이 중군으로 달려가 이를 보고했다. 섬진군의 대장 맹명시가 매우 놀라 속으로 생각했다.

「정나라가 어떻게 우리 군사들이 온다는 사실을 알고 사자를 이렇게 멀리까지 보내 영접하는가? 사신을 일단 만나보고 그가 온 연유를 알아봐야겠다.」

맹명시는 즉시 행군을 멈추게 하고 현고를 불러 서로 상견했다. 현고가 거짓으로 정백의 명이라고 하면서 맹명시에게 전했다.

「저희 군주님께서는 세 분 장군님들이 군사들을 이끌고 저희 정나라로 오신다는 소식을 들으시고 변변치 못하나마 하신(下臣)인 이 고(高)에게 소 20마리를 주시며 멀리까지라도 나가서 호군하라 이르셨습니다. 저희 정나라는 대국 사이에 끼어 있어 항상 외국으로부터 모욕을 당하며 나라를 지키기 위해 오랫동안 고생하고 있습니다. 단 하루라도 경계를 게을리 하거나 혹은 예측하지 못한 일이 일어나서 상국에게 죄를 얻게 되는 경우를 두려워하여 밤낮으로 경비를 철저히 하느라 감히 잠자리도 편히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로지 장군께서는 우리 정나라의 사정을 굽어 살펴주시기 바랍니다.」

맹명시가 듣고 말했다.

「정나라 군주께서 우리 군사를 호군하기 위해 사자를 보냈다면 국서가 있을 것인데 국서는 어디에 있습니까?」

「장군께서 작년 동짓달 12월 병술일에 출병하시었다는 소식을 말을 타고 밤낮으로 힘써 달려온 종자로부터 들으신 저희 군주님께서는 군명을 글로 쓰다가 잘못 써서 고쳐 쓰기를 기다리기라도 하게 되면 혹시라도 상국의 군사를 호군하는 시기를 놓치지나 않을까 걱정하신 나머지, 즉시 신에게 구두로써 하신 명을 받들어 이렇게 달려와 땅에 엎드려 장군에게 죄를 청하고 있음이지 다른 뜻은 없습니다.」

맹명시가 현고를 가까이 오게 하더니 귀에다 대고 속삭였다.

「우리 군주께서 이 맹명시를 보내신 이유는 이곳 활나라를 토벌하기 위해서이지 결코 정나라를 정벌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맹명시가 즉시 소리쳐 군령을 전하게 했다.

「이곳 연진에 주둔하겠으니 진채를 새워라!」

현고가 감사의 말을 올리고 물러갔다. 서걸술과 백을병이 맹명시에게 물었다.

「군사의 행렬을 이곳 연진에 멈추도록 내리신 명은 무슨 이유에서입니까?」

「우리 군사들이 천리의 먼 길을 행군하여 왔는데 뜻밖에 정나라 사자가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원래 정나라를 정벌하려던 계획을 중지하고 다른 방법으로 우리의 원했던 바를 이루고자 함입니다. 오늘 정나라 사자의 말을 들으니 그들이 이미 우리가 출병한 날짜까지 알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보면 정나라 본국에서는 오래 전부터 대비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설사 공격하더라도 성을 굳게 지킨다면 점령하기가 힘들 것입니다. 그렇다고 포위하여 그들이 지치기를 기다리는 작전을 펼친다 해도 우리가 끌고 온 병사들의 수가 적고 식량과 마초도 부족하여 싸움을 오래 계속할 수 없습니다. 대신 활국이 우리에 대해 전혀 대비를 하고 있지 않으니 이 기회를 이용하여 급습한다면 파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들의 포로와 전리품을 얻어 돌아가서 우리 주군께 바친다면 이번의 출병이 전혀 의의가 없었다고는 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윽고 그날 밤 삼경이 되자 세 장수가 섬진의 군사를 삼대로 나누어 일제히 활성을 습격하여 점령해 버렸다. 활나라 군주는 적(翟) 땅으로 도망갔다. 섬진의 군사들이 활나라의 여자와 어린아이들 및 값비싼 옥과 비단들을 대거 노략질한 한 후에 활나라의 도성 안을 폐허로 만들어 버렸다.

후세의 사관이 이를 두고 논했다. 현고가 다녀간 뒤에는 섬진의 장수들 눈에는 이미 정나라는 안중에 두지 않게 되었다고 했다. 만약 현고라는 상인이 교묘하게 군명을 빙자하여 섬진의 군사를 호군하여 그들의 행군을 멈추게 하지 않았더라면 정나라는 망했을 것이라고 했다. 현고의 활약으로 정작 정나라는 망하지 않고 대신 활나라만 망하게 되었다고 했다. 이 일을 두고 시어 지어 현고를 찬양했다.

이리와 같이 사나운 군사들이 천리를 달려와서는

어찌하여 보잘것없는 활나라에 칼을 겨누었는가?

지혜로운 현고가 군명을 빌려 섬진군을 호군하지 않았다면

정나라가 어찌 섬진의 칼날을 피해 망하지 않았겠는가?

千裏驅兵狠似狼(천리구병한이랑)

豈因小滑逞鋒鋩(개인소활령봉망)

弦高不假軍前犒(현고불가군전호)

鄭國安能免滅亡(정국안능면멸망)

활나라는 섬진의 습격을 받아 파괴된 이후에 그 군주는 다시 나라를 일으키지 못했다. 섬진군이 물러 간 뒤에 그 땅은 모두 당진이 차지했다.

한편 정목공은 상인 현고의 밀보를 받았으나 아직 그 사실을 완전히 믿지 못했다. 당시 계절은 봄 2월 상순이었는데 사람을 시켜 섬진의 장수들이 묶고 있는 객관으로 가서 눈치를 살펴보도록 했다. 과연 섬진의 세 장수들은 병사들에게 병거를 점검하게 하고 전투 준비를 시키고 있던 중이었다. 섬진의 군사들은 병장기를 정돈하고 개개인마다 여장을 꾸리고 있었는데 병사들은 모두가 원기가 왕성하였다. 그들은 오로지 섬진의 군사들이 당도하기만 하면 성문을 열어 맞이하려는 생각뿐이었다. 섬진군의 진영에 간 사자가 돌아와 보고하자 목공이 크게 놀랐다. 즉시 노대부 촉무를 섬진의 세 장수에게 보내어 각기 전별의 표시로 비단 뭉치를 주어 전하도록 하면서 자기의 말을 전하게 했다.

「여러분들이 오랫동안 우리나라에 머무르는 동안에 우리는 그에 필요한 양식과 물자들을 공급해 왔습니다. 이제 고라니와 사슴의 말린 고기가 모두 떨어져 버렸습니다. 근자에 여러분들이 경계를 엄하게 하는 모습을 보니 여러분들의 뜻이 다른 곳으로 군사를 움직이시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지금 귀국의 대장군인 맹명시께서 주나라와 활나라 사이에 주둔하고 있는데 그곳으로 이동하려고 하는 것입니까?」

기자가 듣고 크게 놀라 속으로 생각했다.

「우리들의 계획이 누설되었으니 본국의 군사들이 이곳에 당도한다 한들 공을 세울 수는 없게 되었고 오히려 죄를 얻게 되었구나. 이제 정나라에 더 이상 머무를 수도 없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본국으로 돌아갈 수도 없게 되어 버렸다.」

기자가 부드러운 말로 촉무에게 감사의 말로 답하고는 그 날로 심복 수십 인을 데리고 제나라로 도망쳐 버렸다. 봉손과 양손도 역시 본국에 돌아가면 죄를 면하기 어렵다고 생각하여 송나라로 몸을 피했다. 정나라를 지키라고 남겨 논 섬진의 3천에 달하는 군사들은 지휘자가 사라져 버리자 북문에 모여 진을 치고 난동을 일으키려고 하였다. 정목공이 일지호를 시켜 많은 물자와 양식을 가져가게 하여 군사들을 해산시킨 후에 각자 자기의 고향으로 돌아가게 하였다. 정목공은 현고의 공을 기록하게 하고 그에게 군위(軍尉)의 벼슬을 제수했다. 이후로 정나라는 안정을 찾게 되었다.⑭

한편 당진의 양공(襄公)이 곡옥으로 나와서 문공의 장례를 치르는 중에 섬진에서 온 첩자가 돌아와 보고를 하였다.

「섬진의 맹명시 장군이 군사를 이끌고 동쪽으로 행군을 하였는데 목적지가 어디인지 아무도 모르고 있습니다.」

양공이 크게 놀라 즉시 군신들을 불러 상의하게 하였다. 당진의 중군원수 선진은 이미 섬진에 보낸 첩자를 통해 섬진의 군주가 정나라를 습격하여 점령하려는 계획을 명백히 알고 있었다. 그는 즉시 양공을 향하여 자기의 생각을 말했다.

<제45회로 계속>

주석

①정문공은 여러 명의 아들들을 두었으나 자화의 란 때 세자 자화와 동생 자장(子臧)은 살해하고 다른 한 아들은 외교 사절로 초나라에 갔다가 짐독을 마시고 죽었다. 그 밖의 자하를 위시한 여러 공자들을 모두 나라 밖으로 쫓아 낼 때 공자란도 함께 당진국으로 몸을 피했다. 이후로 정문공은 아들을 얻지 못하여 후사를 세우지 못하고 있었다.

②夫料事能中, 智也; 盡心輔國, 忠也; 臨難不避, 勇也; 殺身救國, 仁也

③숙첨(叔詹) : 춘추 때 정나라 대부로 태어난 해는 알 수 없고 기원전 630년에 죽었다. 희(姬) 성에 이름은 첨(瞻)이라고도 한다. 정려공(鄭厲公)의 아들이며 정문공(鄭文公)의 동생이다. 진문공 중이(重耳)가 공자 시절 유랑객의 신분으로 정나라를 지날 때 정문공이 무례하게 대하자 숙첨은 후일을 생각해서 예를 갖추어 접대해야 한다고 했다. 정문공이 듣지 않자 그렇다면 차라리 중이를 죽여 후환을 없애야 한다고 했으나 정문공은 그것도 듣지 않았다. 후에 중이가 당진의 군주 자리에 올라 군사를 일으켜 정나라를 정벌하여 옛날에 당한 원한을 갚으려고 했다. 숙첨은 이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일설에는 정나라 사람들이 숙첨을 진문공에게 보내자 문공은 오히려 숙첨을 예를 갖추어 대접하고 정나라로 다시 송환했다고 했다. 다음은 진문공과 숙첨에 관련된 사마천의 사기(史記) 정세가(鄭世家)의 기사이다.

『진문공이 군사를 일으켜 정나라를 정벌하기 위해 쳐들어 온 이유는 옛날 그가 정나라를 지날 때, 정문공에게 그를 죽이라고 조언한 숙첨(叔詹)의 목을 얻기 위해서였다. 정문공이 두려워하였으나 감히 숙첨에게 대놓고 말하지는 못했다. 숙첨이 듣고 정백을 찾아와 말했다.「신이 옛날 진후(晉侯)가 공자 시절 우리 정나라를 지나갈 때 후대를 하던지 아니면 죽이던지 하라고 간언한 이유는 이와 같은 환란이 일어나지 않을까 걱정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과군께서 당시 신의 말을 듣지 않으시어 결국은 일이 이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당진이 우리 정성(鄭城)을 포위하여 정나라의 운명이 경각지간에 달려 있으니 이 숙첨의 한 목숨으로써 나라를 구할 수 있다면 어찌 제가 살기에 연연해하겠습니까?」숙첨이 말을 끝내고 밖으로 나가더니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정나라 사람들이 숙첨의 시신을 당진의 진영으로 보냈다.』

④기(冀) : 지금의 산시 성 직산(稷山) 북쪽에 있었던 고을로 춘추 초기의 제후국이었으나 당진(唐晉)에 병합되었다.

⑤단주(丹朱) : 요임금의 아들이다. 요임금이 단주를 불초하다고 생각하여 임금의 자리를 순임금에게 선양하고 그는 단연(丹淵)의 제후로 삼았다.

⑥상균(商均) : 순임금의 아들이며 요(姚) 성이며 유우(有虞) 씨이며 이름은 균(鈞)이다. 지금의 하남성 상구(商丘)의 상(商)에 봉해졌다. 그래서 상균이라 부르게 된 것이다. 요임금의 딸인 여영(女英)사이의 소생이나 불초하여 순임금이 제위를 상균에게 전하지 않고 우(禹)에게 전했다. 우는 상균을 지금의 하남성 평륙현인 우(虞) 땅에 봉했다.

⑦곤(鯤) : 원래 황하는 산맥에 가로막혀 평야지역으로 흐르지 않았다고 했다. 요(堯) 임금이 먼저 곤(鯤)이라는 사람을 시켜 황하의 치수 사업을 맡아보도록 했는데 그는 거북과 매의 도움으로 강 주위에 제방을 쌓았다. 그러나 황하의 물이 계속 불어나자 그는 상제(上帝)로부터 저절로 자라나는 식양(息壤)이라는 흙을 훔쳐서 제방을 다시 쌓았다. 이를 알게 된 상제는 곤을 죽이고 그 시체를 우산(羽山)에 방기하여 삼 년간을 썪지 않게 하였다. 칼로 곤의 배를 가르니 그 안에서 우(禹)가 나오더니 곤의 시체는 황룡으로 변하여 하늘로 날아가 버렸다. 상제가 식양을 가져가 버리자 황하의 제방이 무너졌다. 어버지의 치수사업을 물려받은 우는 용문산(龍門山)을 뚫어 황하의 물길을 트는데 성공하였고 천하의 백성들은 마침내 마음 놓고 농사를 지을 수가 있게 되었다.

⑧문공 8년 기원전 629년 당시 당진의 군제. 삼행(三行)을 신이군(新二軍)으로 개편하여 모두 5군을 두었다.

군별(軍別)

주장(主將)

부장(副將)

삼군(三軍)

중군(中軍)

선진(先軫)

극진(郤溱)

상군(上軍)

란지(欒枝)

선멸(先蔑)

하군(下軍)

서신(胥臣)

극결(郤缺)

신이군

(新二軍)

신상군(新上軍)

조쇠(趙衰)

기정(箕鄭)

신하군(新下軍)

서영(胥嬰)

선도(先都)

⑨진영(辰贏)/ 진목공의 딸 회영(懷贏)의 별칭이다.

9)하하(河下)/ 황하가 섬서성과 산서성을 가르며 북쪽에서 남쪽으로 내려오다가 동쪽으로 90도로 꺾이는 곳을 하곡부(河曲部)라 하고 하하(河下)는 꺾이기 전의 황하 하류지방을 말한다. 옛날 이곳에 섬서성에서 산서성으로 건너는 유명한 나룻터가 있었다.

⑪효산(殽山) : 지금의 하남성 서쪽 황하 남안의 동북에서 서남 쪽으로 뻗어 있는 산맥이름이다. 서쪽으로는 섬현(陝縣), 동쪽으로는 민지(澠池)에 접해 있고 서효산과 동효산으로 나뉘어져 있다.

⑫여양진(黎陽津) : 지금의 하남성 준현(浚县)에 여양진(黎阳镇)이라는 지명이 있으나 현고가 정나라를 향해 진군하고 있던 섬진군을 발견한 곳을 여양진이라고 한 연의의 내용은 원작자의 착오다. 지금의 하남성 북서부에 위치한 여양진은 정나라를 기습하기 위한 섬진군의 행군로와는 정반대 방향이기 때문이다.

⑬활국(滑國) : 희성(姬姓)의 소 제후국으로 원래는 지금의 하남성 수현(睢縣) 서북에 있었으나 후에 지금의 하남성 언사시(偃師市) 서남의 비(費) 땅으로 나라를 옮겼다. 섬진군에게 멸망당한 나라는 언사시로 옮겼던 활국이다. 이 때의 활국을 비활(費滑)이라고도 한다. 원문에는 연진(延津) 땅에 위치한 활국이라고 했으나 이 또한 원작자의 착오다. 활국의 위치는 지금의 하남성 언사시 경내 남쪽이고 송나라 이전의 연진은 지금의 하남성 개봉시 황하 북쪽 강안의 활현 일대의 황하를 건너던 나루의 총칭이며 송나라 이후로는 현 하남성 황하 북동부에 연진현이다.

⑭ 다음은 섬진군이 정나라를 정벌하는 『사기(史記)정세가(鄭世家)』기사다.

「정목공 원년 기원전 627년 봄 섬진의 목공(穆公)이 세 장수에게 군사를 주어 정나라를 습격하려고 했다. 섬진의 군사들이 활국(滑國)에 당도했을 때 마침 정나라의 현고(弦高)라는 상인이 지나가다가 섬진의 군사들을 발견했다. 현고가 주나라에서 사서 정나라로 끌고 가던 12 마리의 소를 정백의 하사품이라고 말하고 섬진의 군사들에게 바쳐 호군하였다. 정나라를 기습하려던 섬진의 장수들은 자기들의 계획이 이미 탄로 난 것으로 생각하고 군사들을 물리쳐 돌아가다가 효산(殽山)의 험지에서 당진의 매복에 걸려 전멸 당했다. 원래 정문공이 죽자 정나라의 사성(司城) 직에 있던 증하(繒賀)라는 자가 정성의 실정을 섬진 사람에게 뇌물을 받고 넘겼기 때문에 섬진의 군사들이 출동한 것이다.」

【평 설】

“ 위태로움에 처하여 자신의 목숨을 구한 숙첨” 편은 참된 기지가 무엇인지를 말하고 있다. 진문공은 정나라가 초나라와 통호를 맺은 것을 숙첨의 죄로 돌려, 그를 가마솥의 끓은 물속에 던져 팽살시킨 후에 세자 자란(子蘭)을 정나라에 들여보내 그 군주자리에 올려놓고 정나라를 자기 세력권 하에 두려고 했다. 그러나 팽살 당하기 전에 진문공을 향해 숙첨이 한 이야기는 군주와 국가와 그리고 신하의 임무에 대해서 모두가 인지충용(仁智忠勇)의 자세를 갖추어야한다고 설파하여 진문공의 모골이 송연(悚然)하게 만들어 그의 원래 생각을 바꾸게 만들었다.

그렇다면 진문공은 숙첨의 어떤 말에 대해 송연함을 느꼈는가? 진문공은 당진국의 대부들과 신료들이 인지충용의 자세로 자신을 대할지나 않을까 두려워한 것이다. 만일 진문공이 정나라의 인지충용을 갖춘 대신을 팽살한다면 당진국의 선비들은 인지충용의 자세로 자신을 받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진문공이 섬진과 협정을 맺어 두 나라가 힘을 합쳐 정나라를 공격했음에도 결국은 정나라를 얻지 못하고 섬진과 당진의 우호관계마저 깨진 결과 마침내는 정나라와 강화를 했고 군대를 철수시켜야 했다. 성복대전을 치를 때와는 달리 당진국이 사용한 전략에 차질이 생긴 것은 정나라의 모신 촉무와 숙첨의 지혜가 유난히 빛났기 때문이었다.

숙첨의 일이 있고 난 후, 정나라에는 또 한 사람의 지혜로운 사람이 나타났다. “군주의 명을 빌려 섬진군을 호군한 현고(弦高)” 편에서 현고의 뛰어난 지혜를 읽을 수 있다.

세자 자란(子蘭)이 당진국에서 귀국하자 섬진국이 당진국의 정나라에 대한 공격에 대비해서 남겨 논 섬진의 세 장수는 정나라가 당진국에 항복하는 광경을 보고, 섬진국이 군사를 보내 정나라를 기습하면 자기들은 성 안에서 호응하겠다고 했다. 진목공은 그때 마침 진문공이 죽어 좋은 기회라 여겨 황하 이동 쪽으로 세력을 확장할 생각으로 군사행동을 일으켰다.

천리 밖의 먼 정나라를 정벌하기 위해 출동한 섬진의 군대가 정국과 그리 멀지 않은 활국의 땅에 들어왔을 때, 락양을 오가면서 소를 팔았던 정나라의 상인 현고를 만났다. 섬진군의 목적을 알게 된 현고는 기지를 발휘하여 정나라 군주가 보낸 사자의 신분이라고 하면서 먼거리에 원정나온 섬진군을 호군하라는 명을 받았다고 했다. 그리고 자기 소유의 살찐 소를 섬진군 대장에게 바치면서 한편으로는 사람을 시켜 섬진군의 기습 사실을 정나라에 알렸다. 자신들의 기습 사실을 정나라가 미리 알고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된 섬진군은 정나라에 대한 기습작전을 포기할 수 밖에 다른 수가 없었다.

현고가 정나라 군주의 명을 가장하고 자기 소유의 소로 섬진군을 호군함으로 해서 정나라는 섬진군의 기습을 면할 수 있었다. 현고는 ‘ 싸우지 않고 적군을 굴복시킨’ 전례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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