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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05-11 11:27:334379 
제38회. 逐兄盜嫂(축형도수) 守信降原(수신항원)
양승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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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38-2. 주왕이 진문공에게 하사한 네 고을.jpg  (308.2K)   download : 79
일반

제38회 逐兄盜嫂守信降原(축형도수 수신항원)

숙대의 란을 피해 정나라로 몽진한 주양왕과

신의를 지켜 원성(原城)의 항복을 받아낸 진문공

1. 逐兄(축형도수)

- 형을 쫓아내고 형수를 훔친 주나라의 태숙대. -

주양왕이 궁녀 소동(小東)의 말을 듣고서야 비로소 지금까지 태숙과 외후가 자기 몰래 간통을 해 왔다는 사실을 알았다. 마음속에서 분노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한 양왕은 급히 침상 머리맡에 걸려 있던 보검을 꺼내 들고 태숙을 죽이기 위해 중궁을 향해 달려갔다. 그러나 몇 발자국을 달려가다 마음속으로 다른 생각이 들었다.

「태숙이란 놈은 태후의 총애를 받고 있는데 내가 만약 그를 죽인다면 그의 죄를 모르는 주위 사람들은 필시 나를 불효자라고 비난하지 않겠는가? 하물며 태숙의 무예는 나보다 고강하여 만약에 불손한 태도로 나에게 칼을 빼 들고 대항하여 서로 칼싸움이라도 벌어지게 된다면 오히려 내가 당할 수도 있음이라! 잠시 분노를 가라앉히고 참고 있다가 날이 밝기를 기다려 그들을 불러 사실을 밝힌 후에 장차 외후를 중궁의 자리에서 폐하고 나라 밖으로 내쳐야 되겠다. 그렇게 되면 국내에 더 머무를 염치가 없는 태숙은 놀라 외국으로 도망지 않겠는가? 잠시 분노를 가라앉히고 차분하게 처리해야 되겠다.」

양왕이 숨을 한번 크게 내쉬더니 손에 들고 있었던 보검을 땅에 던져 버리고, 궁궐의 침실로 돌아와서 심복 내시를 시켜 태숙의 소식을 알아 오게 했다. 내시가 돌아와 보고했다.

「태숙은 소동이 대왕의 침실로 들어가 모든 일을 고하여 자기의 일이 발각되었다고 생각하고 이미 궁궐 밖으로 도망쳤다 합니다.」

「궁궐을 출입하는데 어찌하여 나에게 품하지 않고 마음대로 한단 말인가? 이것 역시 궁궐 단속을 너무 소홀히 한 나의 잘못이로다!」

다음날 아침 양왕이 중궁의 내시들과 궁녀들을 모두 잡아와 심문했다. 처음에는 모두 완강하게 머리를 흔들며 부인하였으나 소동을 불러 대질시키자 더 이상 숨기지 못하고 태숙과 외후가 벌린 전후의 추악한 전모가 하나도 빠지지 않고 전부 들어났다. 양왕이 외후를 정궁의 자리에서 폐하여 냉궁에 가두고 그 문을 막아 담장에 구멍을 하나 뚫어 음식만을 통할 수 있게 했다. 숙대는 스스로 큰 죄를 지었음을 알고 적국으로 달아났다. 혜후는 놀란 나머지 병이 들어 자리에 눕더니 결국 다시는 거동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한편 퇴숙은 외후가 중궁의 자리에서 쫓겨나 유폐당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계책을 마련하기 위해 도숙을 찾아가 상의했다.

「당초 적국에 군사를 청해 정나라를 공격하자고 한 것이나 외후를 청하여 혼인을 하라고 권유한 것도 역시 우리 두 사람이었습니다. 오늘 갑자기 외후가 쫓겨나 냉궁에 갇힌 사실을 적주가 알게 되면 우리를 괘씸하게 생각할 것입니다. 태숙이 지금 몸을 피해 적국으로 가는 중인데 이는 필시 적군에게 일의 전말을 거짓말로 꾸며서 고할 것이고, 만약 적국의 병사들이 쳐들어 와서 우리들의 죄를 묻는다면 우리들은 어떤 말로 스스로를 변명할 수 있겠소?」

두 사람은 그날로 속도가 빠른 수레를 타고 태숙의 뒤를 쫓아 도중에 태숙을 만나 적주를 만나면 대처할 요령에 대해 상의했다. 퇴숙과 도자가 한 목소리를 내어 태숙에게 말했다.

「적주를 만나면 반드시 저희가 상의한대로 하셔야 됩니다.」

이윽고 그들 일행이 적국의 경계에 당도하자 태숙은 수레를 교외에서 잠시 기다리게 하고, 먼저 퇴숙과 도자 두 사람이 성안으로 들어가 적군을 만나 고했다.

「원래 우리들이 적국에 청한 혼인은 실은 태숙을 위해서였으나 외후의 미모에 혹한 주왕이 빼앗아 정궁으로 삼았습니다. 외후가 태후에게 문안 인사를 드리러 갔다가 우연히 만나게 된 두 사람이 옛날에 있었던 혼사에 대해 말을 나누다가 시간이 오래 걸리게 되었습니다. 그때 옆에 있던 궁인들이 달려가 무고한 말을 자세히 알아보지도 않고 경솔하게 믿게 된 주왕은 옛날 정나라를 정벌해준 공로도 잊어버리고 외후를 정궁의 자리에서 내쫓고 냉궁에 유폐시킨 후에 태숙도 나라 밖으로 추방했습니다. 형제간의 우의를 망각하고 또한 남에게서 받은 은혜를 저버리니 이것은 무의무은(無義無恩)한 일입니다. 저희에게 한 떼의 군마를 빌려주시면 왕성으로 쇄도해 들어가 주왕을 쫓아내고 태숙을 왕으로 모신 후 외후를 구출하여 예전처럼 국모로 받들겠습니다. 이것은 진실로 적국으로써 천하에 의로운 일을 행하는 일입니다.」

적주가 두 사람의 말을 믿고서 물었다.

「지금 태숙은 어디에 있는가?」

퇴숙과 도자가 같이 대답했다.

「지금 귀국의 도성밖에 머무르고 있으면서 군주님의 명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

적주가 즉시 태숙을 마중 나가 성안으로 들였다. 적주를 접견한 태숙은 사위가 장인에게 올리는 예를 취했다. 적주가 크게 기뻐했다. 적주는 즉시 기병5천을 뽑아 적정(赤丁)을 대장으로 삼고 태숙 일행을 대동하고 주나라를 토벌하기 위해 출병했다.

한편 적국의 군사들이 쳐들어와 국경에 이르렀다는 소식을 듣게 된 주양왕은 대부 담백(譚伯)을 사자로 삼아 적국의 군중으로 보내어 태숙이 내란을 일으키고 도망쳤다는 내용을 설명하려고 했다. 그러나 다짜고짜로 담백을 살해한 적정이 군사들을 휘몰아 왕성까지 진격하여 진을 쳤다. 주양왕이 대노하여 경사(卿士) 원백관(原伯貫)을 대장으로 모위(毛衛)를 부장으로 임명하고 병거300승을 주어 적국의 병사를 막도록 했다. 군사를 이끌고 성밖으로 출명한 원백관은 용맹한 적병들이 싸움을 잘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는 돈거를 서로 연결하여 하나의 성곽과 같은 견고한 영채를 세워 적병과 대치했다. 적정이 여러 번에 걸쳐 돌격을 감행했으나 돈거로 연결된 주나라 영채를 돌파 할 수 없었다. 적병들은 매일 싸움을 돋웠지만 주나라 군사들은 지키기만 할뿐 결코 싸움에 응하지 않았다. 화가 머리끝까지 오른 적정이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궁리 끝에 계책을 하나 쓰기로 했다. 즉시 취운산(翠雲山) 정상에 높은 정자를 만들어 그 위에 천자를 표시하는 정기를 세우게 했다. 이어서 비슷한 용모를 한 군사 한 사람을 뽑아 태숙으로 분장시켜 그 정자 위에서 술을 마시며 노래와 춤을 즐기도록 했다. 다시 퇴숙과 도자에게 각기 일천 명의 기병을 주어 취운산 좌우에 매복하게 하고 주나라 군사들이 당도하면 정자 위에서 포성을 울려 그것을 신호로 일제히 일어나 주나라 군사들을 무찌르도록 했다. 적정은 다시 그의 아들 적풍자(赤風子)에게5백 기의 기병을 주면서 명했다.

「너는 군사를 끌고 주나라 진영 앞으로 가서 욕설을 퍼부어라. 주나라 군사들이 격분하여 진영을 열고 싸우려고 달려 나오면 일부러 못이기는 척하고 도망쳐 그들을 취운산으로 통하는 길로 유인하라. 이 일을 성공만 시킨다면 싸움에서 이긴 공로로 쳐주겠다.」

작전지시를 마친 적정은 태숙과 같이 나머지 대군을 인솔하고 후방에 남아 호응하기 위해 군사들을 적절하게 나누어 배치했다.

한편 적정의 명을 받은 적풍자는 기병5백 기를 이끌고 주나라 진영 앞으로 나아가 싸움을 돋우었다. 망루에 올라 적병의 동태를 살펴본 원백관은 그들 병사의 수가 매우 적은 것을 보고 진영 앞으로 나가 싸우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부장 모위가 간했다.

「적인들은 속임수가 많은 종족들입니다. 오로지 신중하게 지키고 있다고 그들이 해이해진 다음에야 나가서 싸워야 합니다.」

모위의 말에 원백관은 출병하려는 생각을 거두었다. 이윽고 시간이 흘러 정오가 되자 적나라 병사들이 모두 말에서 내려 땅에 앉더니 주나라 진영을 향하여 모두 욕을 해대기 시작했다.

「주왕이라는 놈은 무도한 혼군이라 저렇듯 무능한 놈을 장수로 삼았구나! 싸우지 않으려면 항복하던지 항복하기 싫으면 싸우던지 할 일이지 도대체 무엇을 하자는 짓들이냐?」

그 중에 몇 명은 아예 땅 바닥에 들어 누워 욕을 하는 군사들도 있었다. 원백관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진영의 문을 열라고 소리쳤다. 영문이 열리자 병거 백여 승이 앞으로 돌진해 나갔다. 그 선두의 전차에는 금빛 투구에 비단 전포를 두르고, 손에는 자루가 긴 대도를 든 원백관이 늠름한 모습으로 타고 있었다. 적풍자가 황급하게 외쳤다.

「빨리 말에 올라타서 적군을 막아라!」

적풍자가 장창을 꼬나 쥐고, 주나라 병사들의 앞을 막아서며 싸웠다. 그러나 적풍자는 주나라 장수와 싸움을 시작한 지10여 합도 되기 전에 못 당하는 척하며 말고삐를 끌어 당겨 서쪽으로 향하여 달아나기 시작했다. 미처 말을 타지 못한 적국의 많은 군사들은 주나라 병사들에 의해 말을 빼앗겼다. 도망치던 적풍자가 말머리를 돌려 돌진해와 몇 합을 교전하다가 다시 달아나곤 하면서 주나라 병사들을 점점 취운산 쪽으로 유인했다. 이윽고 주나라 군사들을 취운산 입구까지 유인한 적풍자는 말과 무기들을 무수히 남겨 놓고 몇 명의 기병만을 데리고 산 후면으로 사라져 버렸다. 적풍자의 뒤를 추격하다가 종적을 놓친 원백관이 주위를 살피다가 산 위의 정자에서 술을 마시고 있는 태숙을 발견했다. 자세히 보니 용이 새겨진 붉은 깃발이 바람에 나부끼는데 그 밑에 수놓은 비단으로 만든 우산 아래에서 태숙이 소란을 떨며 술을 마시고 있었다. 원백관이 소리쳤다.

「저 역적의 목숨은 이제 내 손에 달렸다!」

그는 즉시 평탄한 곳을 찾아 병거를 탄 채로 태숙이 앉아 있는 산 위로 돌진했다. 그러자 갑자기 산 위에서 굵은 통나무와 바위들이 비 오듯이 밑으로 굴러 떨어졌다. 원백관이 병거를 멈추고 달리 뾰족한 궁리를 찾지 못해 주저하고 있는 사이에 갑자기 일성포향이 울리더니 산등성이에서 한 떼의 적병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바로 취운산 좌우에 매복하고 있던 도자와 퇴숙이 이끌던 적병들이었다. 양로에서 일어난 철기(鐵騎)들은 마치 광풍에 휘날리는 소나기처럼 내달아 와서 원백관과 그 군사들을 포위했다. 마음속으로 적의 계략에 떨어 졌다고 생각한 원백관은 급히 병거의 방향을 바꾸어 후퇴하려고 했으나 전면의 길은 이미 적국의 병사들이 나무들을 잘라서 만힌 후였다. 원백관이 큰소리로 보졸들에게 명하여 나무들을 치워 길을 열라고 외쳤다. 그러나 마음이 이미 황망하게 되어 간담이 서늘해진 주나라 군사들은 싸움도 하기 전에 각기 목숨을 구해 달아나기 시작했다. 원백관은 도망가는 군사들을 쳐다볼 수밖에 저지시킬 별다른 대책을 세울 수 없었다. 할 수 없이 원백관 자신도 병거에서 내려 전포를 벗어버리고 일반 군사들 속에 섞여 도망쳐 목숨을 구하려고 했다. 군사들 중에 원백관을 알아보는 자가 있어 큰 소리로 외쳤다.

「장군께서 이리로 오신다!」

퇴숙이 듣고 혹시 원백관을 지칭하는지 의심이 들어 적나라 기병을 이끌고 소리를 쳤던 군사들 무리를 추격한 끝에20여인의 패잔병들을 사로잡았다. 그들을 조사해 보니 과연 그 안에 원백관이 섞여 있었다. 한편 적군 대장 적정이 대군을 이끌고 전쟁터에 당도했을 때는 적군의 대승으로 전투는 이미 끝나 있었다. 포로로 잡은 주나라 군사들과 노획한 그들의 병거와 말 그리고 병장기들의 수효는 셀 수 없이 많았다. 적군의 포로가 되지 않고 요행히 도망친 주나라 군사가 있어 영채로 돌아와서 패전의 소식을 부장 모위에게 보고했다. 모위는 오로지 진영을 굳게 지키는 한편 한편으로는 사람을 주왕에게 보내어 패전의 소식을 전하고 증원군과 자기를 도와줄 장수들을 보내 달라고 청했다.

한편 퇴숙은 원백관을 포승줄에 묶어서 끌고 가서 태숙에게 바쳤다. 태숙은 원백관을 일단 감옥에 가두어 놓고 싸움이 끝난 후에 그 처분을 결정하기로 했다. 퇴숙이 말했다.

「오늘 싸움에서 원백관이 사로잡혔으니 모위는 필시 간담이 서늘해 졌을 것입니다. 만약 밤이 깊어지기를 기다렸다가 그의 진영을 기습하여 화공으로 공격한다면 모위도 사로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퇴숙의 계책이 그럴듯하다고 생각한 태숙은 적정에게 그 말을 전했다. 적정이 퇴숙의 계책을 쫓아 비밀리에 야습을 감행한다는 령을 부하 장수들에게 내렸다. 이윽고 자정이 되자 적정이 도끼로 무장한 보군 천여 명을 직접 인솔하여 주나라 진영에 접근했다. 적군은 돈거와 돈거 사이를 연결한 굵은 밧줄과 쇠사슬을 끊고 주나라 영채 안으로 돌입했다. 적병들은 각기 병거 위에다 준비해 간 갈대를 쌓고 불을 붙였다. 잠깐 사이에 불길이 번져 온 진영 안에는 불덩어리가 이리저리 굴러다니게 되어 아수라장이 되었다.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퇴숙과 도자 두 사람이 각기 적군의 정예 기마병을 데리고 주나라 진채 안로 쇄도해 들어오자 주나라의 군사들은 결코 당해 낼 수 없었다. 모위가 혼비백산하여 작은 수레에 타고 영채의 뒷문을 향해 달아나려고 했다. 그때 마침 적군의 보졸들을 이끌고 주나라 진영을 향해 돌격해 오던 태숙과 마주쳤다. 모위를 본 태숙이 큰소리로 외치며 말했다.

「모위는 빨리 수레에서 내려 항복하지 않고 어디로 도망치려고 하느냐?」

모위가 황망하게 되어 태숙이 휘두른 창에 찔려 수레 밑으로 떨어지자 적군이 달려들어 포박을 지웠다. 적군이 주나라 군사들과의 싸움에서 크게 이기고 여세를 몰아 진격하여 왕성을 포위하였다.

2. 몽진거정(蒙塵居鄭)

- 란을 피해 정나라로 몽진하는 주천자-

주양왕은 두 사람의 장수가 적군에게 포로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부신을 보고 말했다.

「일찍이 그대의 말을 듣지 않아 화가 여기까지 미치게 되었다.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

「적군의 세가 흉맹하여 싸워 물리칠 수가 없으니, 왕께서는 잠시 가까운 제후국에 몸을 피하신다면 여러 제후들이 필시 군사를 일으켜 적군을 물리쳐줄 것입니다.」

주공공(周公孔)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우리의 군사들이 비록 싸움에 졌다 하지만, 성안의 백관들이 가솔들을 동원하여 성을 의지하고 한 번 싸워 볼만한데 어찌하여 그렇게 가볍게 사직을 버리고 제후들에게 목숨을 맡기시려 하십니까?」

소공이 앞으로 나와 주공의 말을 반박했다.

「말로만 싸우자고 주장하는 행위는 매우 위태롭습니다. 어리석은 신의 소견으로는 이번의 화는 모두 숙외로부터 생긴 것입니다. 왕께서 먼저 숙외를 죽여 정의를 밝히신 후에 성을 굳게 지키면서 제후들의 구원군들이 오기를 기다린다면 가히 만전을 기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짐이 불명하여 스스로 화를 불러들였다. 금일 태후께서 태숙의 일로 병이 위독하시다. 내가 잠시 이 자리를 피하여 태후의 마음을 위로하고자 하노라! 만약 주나라의 백성들이 나를 잊지 않고 있다면 천하의 제후들이 듣고 스스로 군사들 일으켜 나를 도우리라!」

주양왕이 다시 주공과 소공을 향하여 말했다.

「태숙이 적군(翟軍)을 끌고 이곳까지 쳐들어온 것은 외후(隗后) 때문이오. 태숙이 만약 외후를 취하더라도 나라 안의 사대부들로부터 쏟아지는 비난을 무서워하여 왕성 안에 거주하지는 못할 것이오. 두 분의 경들께서는 나를 위하여 병사들을 이끌어 내가 제후들의 도움을 받아 다시 돌아 올 때까지 성을 잘 지켜 주시오」

주공과 소공이 머리를 조아리고 명을 받았다. 양왕이 부신에게 물었다.

「우리 주왕실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이웃 제후국들은 오로지 정(鄭), 위(衛), 당진(唐晉)) 세 나라인데 어느 나라로 몸을 피하는 편이 좋겠는가?」

「위나라는 국세가 너무 약하고, 당진은 그 군주가 선지 얼마 되지 않아 우리 주나라를 돌볼 여유가 없을 것입니다. 정나라로 가시는 편이 좋을 것입니다.」

「내가 일찍이 적나라에 원병을 청하여 정나라를 치게 만들었다. 정나라가 나에게 원한을 품고 있지 않겠는가?」

「신이 정나라로 가시라고 대왕께 권한 이유는 그렇게 행하는 것이 바른 길이기 때문입니다. 정나라의 선조는 주나라 왕실에 공을 많이 세웠습니다. 그들의 후손들도 그 일을 지금까지 결코 잊지 않고 있습니다. 왕께서 옛날에 적나라를 시켜서 정나라를 토벌하게 하였는데 그 일로 해서 정나라는 불평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그 후로는 정나라는 밤낮으로 적나라가 주나라를 배반하여 그 순리가 자명해지기를 기다려 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일이 이렇게 된 지금 왕께서 정나라로 몸을 피하신다면, 정나라는 필시 기뻐하며 맞이할 것입니다. 결코 원한을 품고 대왕을 거절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주양왕이 부신의 말을 쫓아 즉시 정나라로 몸을 피하기로 결심했다. 부신이 다시 주청을 드렸다.

「왕께서 적군의 예봉을 뚫고 성밖으로 나가시게 되면 적군은 온힘을 다하여 앞을 막을 것입니다. 왕께서 성문을 무사히 탈출하지 못할까 심히 걱정됩니다. 신이 가속들을 이끌고 나가 적군과 결전을 하겠으니 왕께서는 그 틈을 이용하여 성밖으로 탈출하십시오.」

부신은 즉시 그의 아들과 동생들 및 종족들을 전부 불러서 수백 명을 모았다. 그는 자기의 종족들에게 왕에게 충성과 의리를 다해야 한다고 설득하여 그들 모두를 이끌고 성문을 열고 나가 적군의 영채를 향해 돌진하여 그들의 시선을 끌려고 했다. 양왕은 그 사이에 간사보(簡師父)와 좌언보(左鄢父) 등10여 명에 이르는 신하들의 호위를 받으며 왕성을 탈출하여 정나라를 향하여 달려갔다. 적정이 이끄는 적군의 본대에 포위당한 부신과 그 일족은 용기백배하여 수많은 적군의 병사들을 살상했다. 이윽고 중과부적의 부신은 적병의 칼에 맞아 몸에 중상을 입었다. 그때 퇴숙과 도자 두 사람이 다가 와서 부신을 보고 위로했다.

「그대의 충성스러운 간언은 천하가 다 아는 바이오. 금일 빨리 항복하여 죽음을 면하기 바라오!」

부신이 듣고 말했다.

「옛날 내가 누차 왕에게 간했지만 왕이 듣지 않아 일이 여기에 이르렀다. 내가 만약 이곳에서 싸우다가 죽지 않는다면 왕은 필시 나를 원망할 것이다.」

부신이 다시 온힘을 다하여 싸움을 시작하여 얼마간을 더 싸우다가 힘이 다하여 죽었다. 그와 함께 죽은 자식들과 친척을 포함한 종족들 은300여 인에 달했다. 사관이 시를 지어 이를 노래했다.

오랑캐를 불러 중원의 나라를 쳤으니 좋은 계책이라 하겠는가?

적녀를 불러와 음행을 행하게 하여 스스로 화를 불러들인다고

아무리 간해도 듣지 않아 종내는 싸움에 나가 죽으니

부신의 충성스러운 마음은 춘추에 빛났도다!

用夷凌夏豈良謀(용이능하개량모)

納女宣淫禍自求(납녀선음화자구)

驟諫不從仍死戰(취간부종냉사전)

富辰忠義播春秋(부신충의파춘추)

부신이 죽고 얼마 후에 주양왕이 그 틈을 이용하여 성을 빠져나간 사실을 알게 된 적정이 감옥에 가두어 두었던 두원관을 데려와 왕성의 수비군을 향해 성문을 열라고 외치도록 시켰다. 주공과 소공이 듣고 성루 위에서 태숙을 향해 말했다.

「우리는 성문을 열고 태숙을 맞이하고 싶지만 적병들이 따라 들어와 백성들을 노략질하지나 않을까 걱정되어 감히 명을 받들지 못하겠습니다.」

태숙이 적정에게 청하여 군사들을 물리쳐 성 밖에 주둔시키면 자기가 성안으로 들어가 부고에 쌓여 있는 재물들을 꺼내어 호군(犒軍)하겠다고 약속했다. 적정이 허락했다. 태숙이 성안으로 들어가 먼저 냉궁에 갇혀있던 외후를 구해 두 사람이 병상에 누워 있는 태후를 알현했다. 뜻밖에 태숙을 보게 된 태후는 기뻐 어쩔 줄 몰라 하면서 한번 웃더니 그만 숨이 넘어가 죽고 말았다. 태숙이 혜태후의 장례도 치르기도 전에 먼저 외후와 궁중의 내실로 들어가 서로 음락을 즐겼다. 이어서 소동을 죽이기 위해 사람을 시켜 잡아오도록 했으나 그때는 이미 태숙에게 지은 죄를 두려워한 소동은 우물에 몸을 던져 자진한 후였다.

다음 날 태숙이 거짓으로 태후의 유명이라 전하고 스스로 왕위에 오른 후에 숙외를 왕후로 삼아 조당을 열어 군신들의 하례를 받았다. 후에 태숙은 주나라의 부고를 열어 적군을 크게 호군하여 적정과의 약속을 지킨 후에 태후의 상을 치렀다. 나라 안의 사대부들이 노래를 지어 불렀다.

저녁에 모친이 죽었는데 아침에 아내를 취했다.

형수를 취하여 아내로 삼고 신하된 자가 임금의 부인을 취했다.

그래도 부끄러운 줄 모르니 가히 짐승이 라고 불러도 되겠다.

누가 그를 쫓아내겠는가? 나와 그대가 쫓아내야 되지 않겠는가?

暮喪母旦娶婦(모상모단취부)

婦得嫂臣娶后(부득수신취후)

爲不慚言可醜(위불참언가추)

誰其逐之(수기축지)

我與爾左右(아여이좌우)

나라 안의 백성들이 부르는 노래 소리를 전해 들은 태숙은 사대부들의 여론이 자기에게 복종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혹시 변란이라도 일어날까 마음속으로 몹시 두려워했다. 그는 즉시 외후(隗后)와 함께 온(溫)①으로 거처를 옮겨 궁실을 크게 수리하여 매일 외숙과 음락을 즐겼다. 왕성 안의 국사는 주공과 소공 두 사람에게 모두 맡겨 알아서 처리하도록 하여 비록 명색이 왕이라고는 하나 실은 백성들이나 신하들과는 한 번도 접견하지 않았다. 그 사이에 원백관은 감시가 허술한 틈을 타서 감옥에서 빠져 나와 자기의 영지인 원성(原城)②으로 도망쳤다.

한편 왕성을 탈출한 주양왕은 정나라를 바라보고 행군을 하고는 있었으나 마음속으로 과연 정나라가 자기를 좋은 마음으로 받아 주지 않을 것을 걱정했다. 그들의 일행이 이윽고 정나라 령의 범(氾)③ 땅에 당도했다. 그 땅에는 공관이라고는 없고 대나무만 무성하게 자라고 있어 일명 죽천(竹川)이라고도 불리던 곳이었다. 양왕이 그곳에 사는 토인들을 불러 정나라고 가는 길을 물었다. 토인들이 그곳은 이미 정나라 경내라고 대답했다. 양왕은 즉시 수레를 멈추게 하고 봉씨(封氏)라는 농민의 초당을 빌려 그곳에서 머물려고 했다. 봉씨가 주양왕에게 물었다.

「보아하니 관직에 계신 것 같은데 무슨 벼슬을 하고 계십니까?」

양왕이 대답했다.

「나는 주나라 천자이다. 나라 안에서 반란이 일어나서 몸을 피하여 이곳까지 오게 되었도다!」

봉씨가 크게 놀라 머리를 땅에 조아리고 자기가 지은 죄를 용서해 달라고 하면서 말했다.

「저희 동생이 어제 밤에 잠을 자면서 붉은 해가 초당을 비치는 꿈을 꾸었다고 저에게 말했는데 과연 지존하신 천자께서 저희 집을 방문하셨습니다.」

봉씨가 즉시 동생을 불러 닭을 잡고 저녁을 준비하게 했다. 양왕이 물었다.

「동생은 어떤 사람인가?」

「소인의 계모가 데려온 동생입니다. 소인과 이 집에 같이 살면서 밥을 지어먹고 농사를 지으며 계모님을 봉양하고 있습니다.」

양왕이 한탄하면서 말했다.

「그대 농부들 형제들도 이렇듯 화목하게 지내는데 짐은 귀한 천자의 몸으로써 오히려 어머니와 동생으로부터 해를 입어 도망 다니는 신세가 되었으니 진실로 내 처지가 그대 형제들 보다 못하구나!」

말을 마친 양왕은 이내 처연한 마음이 되어 두 눈에서 눈물을 흘렸다. 대부 좌언보가 양왕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희 선조이진 주공단은 성인이셨지만 살아 계실 때 골육의 란을 당해 그 친동생 관숙을 죽이기도 하셨습니다. 왕께서는 마음을 너무 상하지 마십시오. 지금 먼저 해야 할 일은 저희가 처한 어려움을 천하의 제후들에게 시급히 알려 제후들로 하여금 우리를 헤아려 돕도록 만드는 일입니다.」

주양왕이 즉시 편지를 써서 사자로 하여금 제(齊), 송(宋), 정(鄭), 진(陳), 위(衛) 등의 제후국에 전하게 했다. 편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짐이 부덕하여 모후가 총애하는 동생 대(帶)에게 죄를 얻어 왕도를 떠나 정나라의 범 땅에 나와 있음을 감히 천하의 제후들에게 고하노라!』

편지를 받은 사자가 출발하려고 하자 간사보가 보고 말했다.

「지금 제후들 중 방백에 뜻을 둔 사람은 오로지 진백(秦伯)과 진후(晉侯)뿐입니다. 섬진은 건숙, 백리해, 공손지 등 여러 어진 신하들이 정사를 돌보고 있어 국세가 날로 번성해 지고 있습니다. 또한 당진도 호언, 조쇠, 서신 등의 어진 신하들이 정사를 맡고 있습니다. 두 나라의 현신들은 필시 그들의 군주에게 천자를 모시라고 권할 것임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겠으나 다른 나라는 아마도 기대할 수 없을 것입니다.」

주양왕이 즉시 간사보의 말을 쫓아 간사보 자신에게는 당진에, 좌언보는 섬진에 각각 사자로 보내 구원을 청하게 했다.

한편 정문공은 양왕이 란을 피해 범 땅에 체류한다는 소식을 듣고 웃으면서 말했다.

「천자는 이제서야 적국(翟國)이 우리 정국보다 못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모양이구나!」

정문공은 그날로 공사(工師)를 범 땅에 보내어 임시거처를 짓게 하고 우선 양왕을 옮겨 살게 했다. 또한 자기도 친히 그곳에 왕림하여 기거하면서, 천자가 생활하는데 필요한 모든 일체의 기구를 세심히 살핀 후에 갖다 바치도록 했다. 이어서 정나라의 관리들에게 명하여 천자가 지내는데 부족함이 없도록 양식과 기타 비용을 후하게 주도록 했다. 주양왕은 정문공의 얼굴을 볼 때마다 무참한 기색이 되었다. 노(魯)와 송(宋) 등의 여러 제후국들 역시 문안 사절과 함께 음식을 준비하여 바쳤다. 그러나 위문공 만은 천자에게 사절을 보내지 않았다. 자가 문중(文仲)인 노나라 대부 장손신(臧孫辰)은 위문공이 천자를 위문하는 사절을 보내지 않았다는 소식을 듣고 한탄하면서 말했다.

「위후가 머지않아 죽겠구나! 제후에게 왕이란 마치 나무에는 뿌리와 같고 강물에는 그 근원과 같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나무에 뿌리가 없으면 말라죽고 물의 근원이 없으면 강은 반드시 마르게 되니, 위후가 어찌 죽지 않겠는가?」

그때가 주양왕18년 기원전633년 겨울10월의 일이었다.

3. 근왕도패(勤王圖覇)

- 천자의 복위를 도와 패업을 도모하는 진문공-

한편 양왕의 명을 받들어 사자로 당진에 간 간사보가 문공을 접견하고 구원을 청했다. 문공의 자문을 받은 호언이 대답했다.

「옛날에 제환공이 능히 제후들을 거느릴 수 있었던 이유는 오로지 주왕실을 받들었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지금 우리 당진은 근자에 이르러 군주가 자주 바뀌자 백성들은 그 일을 당연하다고 여겨 군신 간에 지켜야 할 대의를 모르고 있습니다. 주군께서 태숙대를 토벌하고 주왕을 복위시켜 백성들로 하여금 군주는 둘이 아니라는 것을 사실을 게 하여야 할 것입니다. 저희 선조이신 문후(文侯)께서 주왕을 보좌한 공훈과④ 무공(武公)께서 당진의 공적을 천하에 빛내신 위업⑤을 이번 한 번의 의거로 이룰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 우리 당진이 주왕의 구원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섬진이 이를 필시 받아들여 방백의 자리는 자연히 진백의 차지가 될 것입니다.」

문공이 태사 곽언을 불러 복점을 치게 했다. 곽언이 말했다.

「크게 길할 조입니다. 이것은 황제(黃帝)가 판천(阪泉)에서 치우(蚩尤)와 싸워 크게 이기는⑥는 괘입니다.」

문공이 듣고 미심쩍어했다.

「나 같은 사람이 이 일을 어찌 감당하겠는가?」

「주나라 왕실이 이미 쇠하기는 했지만 천명은 아직 바뀌지 않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의 왕은 옛날의 제(帝)에 해당합니다. 출병한다면 태숙대의 란은 틀림없이 평정할 수 있습니다.」

「이 번에는 산가지로 점을 더 쳐보시오.」

곽언이 다시 산가지 점을 쳤는데 건하(乾下), 리상(離上)의 《대유(大有)》⑦ 괘(卦)를 얻었다. 다시 그 세 번째 효(爻)가 움직여 태하(兌下), 리상(離上)의 《규(睽)》⑧라는 변괘(變卦)를 얻었다.

곽언(郭偃)이 점괘를 풀이했다.

「대유(大有)의 구삼(九三) 효사(爻辭)는 ‘공용형우천자(公用亨于天子) 효(爻)인데 이는 싸워 이겨 천자와 같이 누리리라!’입니다. 이보다 좋은 점괘는 없습니다. 또한 건(乾)은 하늘이고 리(離)는 태양을 가리키니 이는 ‘해가 하늘로 떠올라 온 세상의 만물을 밝게 비쳐 준다’라는 뜻입니다. 건(乾)이 변하여 태(兌)가 되고 태가 변하여 택(澤)이 되어 《규(睽)》 즉 화택규(火澤睽)라는 변괘(變卦)가 되었습니다. 즉 택(澤)이 밑에 있다는 것은 당연히 태양으로부터 비추임을 받을 수 있다는 뜻이며 이것은 천자의 은혜가 우리 당진에 임했음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어찌하여 의심하십니까?」

문공이 듣고 크게 기뻐하며 즉시 대대적으로 열병한 군사와 병거들를 좌우 이군(二軍)으로 나누어 좌군대장과 부장에는 조쇠와 위주를, 우군대장과 부장에는 극진과 전힐을 임명했다. 문공 자신은 호언과 란지 등을 데리고 별도의 군을 이끌며 좌우의 군에 호응하려고 했다. 이윽고 문공이 군사들을 출동시키려고 하는 순간 하동(河東)⑨을 지키는 장수가 달려와 보고했다.

「섬진의 대군이 친히 대군을 거느리고 왕을 모시기 위해 이미 배를 타고 하수를 건너고 있는 중입입다. 아마 오늘 중에 전군이 하수의 도하를 끝낼 수 있을 것입니다.」

호언이 나와서 고했다.

「천자를 구원하려는 뜻을 가지고 있는 진백(秦伯)이 하외(河外)⑩에 주둔하고 있던 군사들을 하수를 도하시키려고 하는 이유는 동쪽으로 나가는 길이 통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초중(草中)⑪의 융족과 여토(麗土)⑫의 적족(狄族) 땅을 보졸들과 병거가 반드시 통과하여야 하는데 이 두 종족과는 평소에 통호를 하지 않아 그들이 순종하지 않을까 걱정한 결과 감히 앞으로 행군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군께서 많은 뇌물을 두 이족(夷族)의 군주들에게 주면서 우리가 군사를 일으켜 왕을 구원하려 한다는 뜻을 설명하면 두 이족의 군주들은 틀림없이 우리의 청을 허락할 것입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사람을 진백에게 보내 치하의 말을 전하게 하고 우리 당진군이 이미 출동했으니 섬진은 군사를 거두어야 돌아가도 좋다는 뜻을 전하시기 바랍니다.」

문공이 호언의 말을 따라 호언의 아들 호석고에게 황금과 비단을 주어 융적의 땅으로 보내어 그 군주들에게 각각 뇌물을 바쳐 길을 빌리도록 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하수를 건너고 있던 섬진의 목공에게 는 서신(胥臣)을 사자로 보내 섬진군의 행군을 중지토록 청하게 했다. 서신이 목공을 알현하고 문공의 명을 전하면서 말했다.

「천자께서 이족의 침략을 피하여 나라밖으로 피신 중에 계십니다. 군주의 걱정하는 마음은 또한 저희 군주님의 걱정이기도 합니다. 저희 군주님께서는 이미 경내의 군사를 모아 출동 중에 있어 군주님의 수고로움을 대신하셨습니다. 이미 일을 이루기 위한 계획도 다 섰으니 감히 군주님의 대군이 멀리 까지 진군하는 수고로움을 면하게 하고 싶어 하십니다. 」

목공이 말했다.

「군주의 자리에 오른 지 얼마 되지 않은 진후(晉侯)가 미처 군사들을 모으지 못하리라고 생각한 과인이 천자의 어려움을 구하기 위해 서둘러 이곳까지 왔소. 이미 진후가 군주가 대의를 위해 군사를 일으켰다니 나는 마땅히 돌아가 승전보를 기다리기로 하겠소!」

건숙과 백리해가 목공을 향해 말했다.

「진후가 대의를 혼자서만 행하여 제후들을 위에 군림하려고 합니다. 주공께서 이번에 출병하여 공업을 쌓게 되면 그 공을 나누지 않을까 걱정하여 사람을 보내 군사를 거두라고 한 것입니다. 이왕에 군사를 일으켰으니 이 기세로 나아가 천자를 같이 모신다면 이것 또한 아름다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과인이 군사를 끌고 가서 어려움에 처한 왕을 구원하는 일이 공업을 쌓는다는 사실을 모르는 바가 아니나 단지 동쪽으로 나아가는 길이 뚫리지 않아 융(戎)과 적(翟)이 방해를 하지나 않을까 두려워해서입니다. 또한 진후는 얼마 전에 군위에 올랐기 때문에 나라가 아직 안정되지 않았다고 할 수 있어 큰공을 세우지 않고서는 그 자리를 굳게 지킬 수 없을 것입니다.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보아 이번에는 차라리 그에게 양보하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목공은 즉시 공자집에게 좌언보를 따라 범(氾) 땅으로 가서 주양왕을 위문하게 하고 목공 자신은 군사를 거두어 옹성으로 돌아갔다.

한편 서신은 당진으로 돌아와 문공에게 진백이 군사를 물리쳐 돌아갔음을 고했다. 문공이 당진군을 이끌고 행군하여 양번(陽樊)⑬에 주둔하자 그곳의 수장 창갈(蒼葛)이라는 장수가 나와서 문공의 군사를 맞이하여 위문했다. 문공이 우군 대장 극진에게는 태숙대와 외후가 함께 머물고 있던 온성을 포위하여 공격하게 하고 좌군 대장 조쇠에게는 그 군사들을 이끌고 범 땅으로 가서 양왕을 영접하여 왕성으로 호송토록 했다. 그해 여름4월 정사(丁巳)일에 주양왕이 범 땅을 출발하여 다시 왕도로 돌아오게 되자 주공과 소공이 성밖으로 나와 영접했다. 주양왕17년, 당진의 문공이 진후의 자리에 오른 지2년 째 되던 기원전635년의 일이었다.

온성의 백성들은 주왕이 다시 복위했다는 소식을 듣고 떼를 지어 성안으로 몰려가서 퇴숙과 도자 두 사람을 공격하여 죽이고 성문을 크게 열어 당진의 군사들을 맞이했다. 한편 온성의 태숙은 황망한 마음이 되어 외후를 수레에 태우고 성문 밖으로 탈출하여 적국으로 달아나려고 했다. 그러나 성문을 지키는 군사가 문을 닫고 열어주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성안에서 갇히고 말았다. 분기탱천한 태숙이 칼을 빼 들고 군사 몇 명을 찔러 죽이며 싸우고 있던 중에 갑자기 위주가 쫓아오더니 큰 소리로 호령했다.

「역적 놈이 어디로 달아나려 하느냐?」

태숙이 위주를 보고 사정하였다.

「그대가 나를 성밖으로 나가게 해준다면 후일에 크게 보답하리라!」

「천자에게 물어 보고 좋다고 하면 그때 내가 인정을 쓰겠다.」

태숙이 대노하여 칼을 들어 위주를 찌르려고 앞으로 달려오자 위주가 땅에서 한번 솟구치더니 태숙이 타고 있던 수레에 뛰어 올라 단칼에 태숙을 베어 두 동강 내버렸다. 군사들이 외후를 잡아서 위주 앞으로 데리고 왔다. 위주가 보고 소리쳤다.

「이런 음란한 계집을 살려서 어디에다 쓴단 말인가?」

위주가 즉시 군사들에게 명하여 외후를 세워 놓고 활을 쏴서 죽이도록 했다. 가련하게도 이족의 꽃같이 아름다운 여인은 태숙대와 만나 즐기기를 반년도 채 되지 못하여 이날을 당하여 수많은 화살을 맞고 죽게 되었다. 호증선생이 이를 두고 시를 지었다.

형을 내쫓고 형수를 훔쳐 남양 땅에 살아

즐기기를 반년 만에 재앙을 만났구나!

음녀와 역신에게 대가를 치르게 하지 않았다면

세간에는 다시는 강상이 돌아오게 하지 못할 것이다

逐兄盜嫂居南陽(축형도수거남양)

半載歡娛幷罹殃(반재환오병이앙)

淫逆倘然無速報(음역당연무속보)

世間不復有綱常(세간불복유강상)

위주가 두 구의 시체를 끌고 와서 극진에게 보고하자 극진이 물었다.

「죄인들을 함거에 실어 천자에게 보내어 그 죄를 묻게 하는 편 옳지 않았겠소?」

「천자가 우리 당진의 손을 빌린 이유는 자신의 동생을 죽였다는 오명을 얻고 싶지 않아서입니다. 차라리 빨리 죽여 일을 명쾌히 하는 편이 좋다고 생각해서였습니다.」

탄식해 마지않은 극진이 그 즉시 명을 내려 두 구의 시체를 신농(神農)⑭땅을 흐르던 개울가에 묻어주도록 했다. 이어서 온성의 백성들을 위무한 극진은 사람을 시켜 양번에 주둔하고 있던 문공에게 승첩을 고했다.

태숙과 외후가 이미 죽임을 당했다는 보고를 받은 문공은 그 즉시 어가를 타고 친히 왕도로 들어갔다. 그는 양왕을 배알하고 온(溫) 땅의 태숙 일당을 토벌했음을 고했다. 양왕이 잔치를 베풀어 많은 음식으로 접대했다. 다시 많은 황금과 비단을 내어 문공에게 하사했다. 문공이 엎드려 절을 올리면서 감사의 말을 올렸다.

「신 중이는 감히 왕께서 하사하신 물품들을 받을 수 없습니다. 단지 신이 훗날 죽은 뒤에 수장(隧葬)⑮이나 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신다면 신은 지하일망정 폐하의 무궁한 은혜를 입고자 합니다.」

「선왕께서 예를 만드실 때 임금과 신하의 신분을 구분하기 위해 아무도 이를 어길 수 없게 만들었소. 짐이 사사로이 왕실의 대전(大典)을 문란하게 할 수는 없는 일이오. 그러나 숙부(叔父)께서 대공을 세우셨으니 내가 어찌 그 은혜를 잊을 수 있겠소?」

주양왕은 즉시 기내(畿內)⑯의 땅에 있는 온(溫), 원(原), 양번(陽樊)과 찬모(攢茅)⑰의 네 고을을 문공에게 하사하여 당진의 봉지에 더하도록 했다. 문공이 감사의 말을 올리고 물러 나왔다. 백성들이 노인들은 부축하고 어린아이는 손을 붙잡고 나와서 길을 가득 메우고는 문공을 보기 위해서 서로 다투면서 말했다.

「제환공이 다시 환생했구나!」

4. 수신항원(守信降原)

- 신의를 지켜 원읍의 항복을 받아낸 진문공-

문공은 다시 영을 내려 좌우 양로 군사들을 모두 이동하게 하여 태항산(太行山) 남쪽에 주둔시키고 위주로 하여금 양번의 땅을, 전힐에게는 찬모의 땅을, 문공 자신은 친히 조쇠를 대동하고 란지를 대장으로 삼아 원 땅을 접수하러 행군했다. 문공이 직접 원 땅을 접수하러 행차한 이유는 원래 원읍이란 곳은 주나라 왕실의 경사 벼슬을 하고 있던 원백관(原伯貫)의 영지였기 때문이었다. 원백관이 적국의 적정(赤丁)과 싸움에서 져서 공을 세우지 못하고 본인은 적족의 포로가 되었음으로 주양왕이 그 봉읍을 빼앗아 문공에게 하사한 것이다. 그래서 문공은 지금 원성(原城)에 들어앉은 원백관이 혹시나 봉읍을 내놓지 않을까 걱정했다. 전힐과 란지가 각기 찬모와 온 땅에 당도하자 두 고을의 수장들이 나와서 두 사람을 맞이한 후에 술과 음식을 내와 접대했다. 한편 위주는 양번 땅에 당도하여 그 고을을 접수하려고 하자 그곳의 수장 창갈(蒼葛)이 그의 부하들에게 말했다.

「주나라가 기(岐)와 풍(豊)땅을 버리기 시작하더니 계속해서 여러 제후들에게 나누어주어 이제 남은 땅이 별로 없는데 다시 당진에게 네 고을을 주어 버린단 말인가? 나와 당진은 똑 같은 왕의 신하들인데 어찌 내가 복종할 필요가 있겠는가?」

창갈이 말을 마치고 즉시 병장기를 든 백성들을 이끌고 성루에 올라 위주가 이끈 당진의 군사들과 대치했다. 위주가 대노하여 병사들에게 성을 포위하게 명한 후에 큰 소리로 말했다.

「만사가 모두 망가지기 전에 빨리 성에서 나와서 항복하라. 만일 우리가 공격하여 성을 함락시키게 된다면 너희들을 한 사람도 남김없이 죽이겠다!」

창갈이 성루에 서서 대답했다.

「내가 들으니 ‘덕으로써는 중화의 나라를 회유하고 형벌을 엄하게 함으로써는 사방의 오랑캐에게 위엄을 세운다’고 들었다. 오늘 이곳 기내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주왕실의 백성들이라, 왕의 종족들이 아니면 왕의 친척들이다. 당진의 백성들도 역시 왕의 신자들인데 어찌 병사들을 끌고 와서 위협을 가하여 탈취하려고 드는가?」

위주가 그 말에 마음이 움직여 사람을 보내 문공에게 양번의 정황을 보고했다. 문공이 편지를 써서 보내 창갈에게 전하게 했다

「네 고을은 곧 천자가 하사한 땅이라 과인이 감히 명을 거역할 수 없었다. 장군께서 만약 천자의 친척임을 생각하신다면 성안의 백성들을 이끌고 주나라로 들어가십시오. 과인 역시 장군의 명을 따르리라!」

문공은 위주에게 양번성에 대한 공격을 늦추고 그곳의 백성들이 자기 뜻대로 옮겨 살 수 있도록 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창갈은 문공이 쓴 편지를 받아 보고 성안의 백성들에게 말했다.

「주나라의 다른 땅으로 옮겨 살고자 하는 자는 나를 따르고 이곳에 그대로 살고 싶어하는 자는 남아도 좋다.」

양번성의 백성들 중 주나라의 땅으로 옮겨 살고자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어서 창갈이 모두 데리고 지촌(軹村)⑱이라는곳으로 옮겨갔다. 위주가 양번성의 경계를 정하고 돌아왔다.

한편 조쇠를 대동한 문공이 원성의 경계에 당도하자 원백관이 거짓으로 그 부하들에게 말했다.

「양번성을 포위한 진후가 그 백성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죽여 버렸다.」

원성의 백성들이 듣고 모두 두려워하여 다같이 목숨을 걸고 성을 지키기로 맹세했다. 이윽고 당진의 군사들이 진군해와 성을 포위했다. 조쇠가 문공에게 말했다.

「백성들이 우리 당진에게 복종하려고 하지 않는 이유는 우리를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주군께서는 마땅히 신의를 보이셔야 합니다. 그리하면 우리가 직접 공격하지 않아도 성은 스스로 무너지게 됩니다.」

「어떻게 신의를 보여야 하오?」

「명령을 내리시어 군사들 각자3일 치의 식량을 지참케 하고 만약3일 동안 원성을 공격하여도 함락시키지 못하면 즉시 포위망을 풀고 물러나겠다고 하시기 바랍니다. 」

문공이 그 말을 쫓아 명을 내렸다. 드디어 약속한3일이 지나자 군리가 와서 고했다.

「오늘 먹을 양식밖에 남아 있지 않습니다. 」

문공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날 밤이 되자 원성의 백성들 중에 성을 빠져 나와 당진의 군중을 찾아와서 말했다.

「성중에는 이미 양번의 백성들이 아무도 살해당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내일 오후에 성문을 열고 항복하고자 합니다.」

「과인이 원래3일의 기한을 정하여 성을 공격하고 그 동안에 성을 함락시키지 못하면 포위망을 풀고 군사를 돌려 돌아가기로 약속했다. 오늘이 그3일째 되는 날이다. 과인은 내일 아침 일찍이 군사를 이끌고 물러갈까 한다. 그대 백성들은 스스로 온힘을 다하여 성을 지켰으니 이제 다른 마음을 가질 필요가 없음이라!」

군리가 와서 말했다.

「원성의 백성들이 내일 오후에 성을 바치려고 하는데 주공께서는 어찌하여 잠시 더 머무르시어 성을 얻지 않으시고 돌아가려 하십니까? 식량이 떨어졌기 때문이라면 여기서 양번 땅이 멀지 않으니 즉시 가서 구해올 수 있습니다.」

「믿음은 나라의 가장 귀중한 요체라 백성들이 그것을 믿고 따르는 것이다. 내가 내린3일간의 명령을 듣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만약에 내가 다시 하루를 더 머문다면 이것은 믿음을 버리는 일이다. 원성을 얻고 믿음을 잃어버린다면 어떻게 백성들이 나를 믿고 의지하겠는가?」

문공은 이윽고 다음날 아침이 되자 즉시 명을 내려 원성의 포위망을 풀고 회군준비를 시켰다. 원성의 백성들이 서로 상의하면서 말했다.

「진후가 성을 얻지 못하더라도 신의를 잃지 않으니 이것이야말로 도리를 아는 군주라 하겠다.」

원성의 백성들은 즉시 성루에 항복하는 깃발을 세우게 하고 모든 성안의 사람들은 성을 빠져 나와 문공이 이끄는 군사들의 뒤를 따르게 되어 그 행렬이 끊이지 않았다. 백성들의 행동을 막지 못한 원백관은 할 수 없이 성문을 열고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 염선이 시를 지어 노래했다.

입에 피를 머금고 창을 들고 싸움에 임한다면

그 누가 한마로 산하를 차지 할 수 있겠는가?

일단 버린 원읍의 백성들이 쫓아와 복종했으니

속임수가 신의가 어찌 같을 수 있겠는가?

口血猶含起戰戈(구혈유함기전과)

誰將片語作山河(수장편어작산하)

去原畢竟原來服(거원필경원래복)

譎詐何如信義多(휼사하여신의다)

당진의 군사들이 퇴각을 시작하여30리쯤 앞으로 갔을 때 원성의 백성들이 뒤를 따라 쫓아와서 원백관이 쓴 항서를 문공에게 전했다. 문공이 군사들의 행군을 멈추게 하고 아무도 대동하지 않고 단거로 원성 안으로 들어갔다. 원성의 백성들이 모두 나와 북을 두드리고 춤을 추면서 경축했다. 원백관이 와서 문공을 배알했다. 문공이 원백관을 주왕실의 경사로 예를 갖추어 대한 후에 그 가족과 식솔들을 하북으로 옮겨 살게 했다. 문공이 새로 얻은 네 고을의 수장을 임명하면서 말했다.

「옛날에 자여가 항아리에 넣어 가지고 온 비상식량을 등에 짊어지고 위나라로 나를 따라왔다. 그때 자여도 음식을 먹지 못해 매우 배가 고팠지만 나를 생각하여 먹지 않고 가져와서 바쳤다. 이것이야말로 신의 있는 선비라 할 수 있겠다. 과인이 신의로써 원읍을 얻었으니 다시 이 고을을 신의 있는 선비에게 지키도록 해야 되겠다. 」

문공은 즉시 조쇠를 원의 대부로 명하고 양번 땅을 겸하여 관할토록 했다. 다시 극진에에 말했다.

「그대는 그대의 종족도 돌보지 않고 란씨와 같이 마음을 통하여 나를 맞이하였으니 과인은 결코 그대의 은혜를 잊을 수 없노라!」

곧이어 극진을 온 땅의 대부로 명해 찬모와 같이 관할토록 하고 각기 수비에 필요한 병사2천 명씩을 남겨 두어 지키게 했다. 후일에 어떤 사람이 문공이 주왕을 환국시킨 일은 의를 행했음이고 원읍을 얻은 일은 믿음을 행한 것이라고 하여 이것이 바로 백업을 이루기 위한 첫 걸음이었다고 했다.

《제39 회로 계속》

주석

①온(溫)/ 현 하남성(河南省) 온현(溫縣). 낙양(洛陽)에서 동쪽 약60km 지점으로 황하(黃河) 북안(北岸)의 도시

②원성(原城)/ 지금의 하남성 제원현(濟源縣) 북쪽 약10키로 지점.

③범(氾)/ 지금의 하남성 양성현(襄城縣) 경내.

④기원전808년 당진(唐晉)의 군위(君位)에 오른 목후(穆侯)는 아들 둘을 두었는데 장남은 구(仇라)했고 차자는 성사(成師)라 했다. 목후가 재위27년( BC 785년)에 죽자 그의 동생인 상숙(殤叔)이 태자 구를 제치고 스스로 진후의 자리에 올랐다. 상숙4년(BC 781)년, 도망가서 기회를 노리던 태자 구가 그를 지지하던 무리들을 이끌고 와서 상숙을 죽이고 목후의 뒤를 이어 군주의 자리에 오르고 시호를 문후(文侯)라 했다. 문후 재위10년(BC 771) 주나라의 유왕(幽王)이 견융의 침략을 받아 살해당하고 그 아들 평왕이 동쪽의 낙읍으로 천도할 때 문후가 군사를 이끌고 가서 평왕을 도왔다. 문후가 주왕실을 보좌한 공훈을 이 일을 말하는 것이다.

⑤목후(穆侯)의 차자 성사(成師)는 문후(文侯)가 죽고(BC 746) 그의 아들인 소후(昭侯) 백(伯)이 뒤를 있고 이어서 소후는BC 745년 성사(成師)를 곡옥에 봉하고 환숙(桓叔)이라 불렀다. BC 732년 환숙의 뒤를 이은 장백(庄伯)이BC 725년에 당진(唐晉)의 효후(孝侯)를 살해하고 그 군주 자리를 차지하려고 했으나 당진국 사대부들의 결사적인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BC716에 죽었다. 장백의 뒤를 이은 무공이 칭이BC 709년 당진을 공격하여 애후를 사로잡았으나 당진의 사대부들은 항복하지 않고 애후의 아들 소자후(小子侯)를 옹립하여 곡옥의 무공에 대항했다. 같은 해에 무공은 사로 잡아온 애후를 죽이고3년 뒤인BC 706년에 당진을 공격하여 소자후(小子侯)를 잡아서 죽이자 주나라 환왕이 괵중(虢仲)을 보내어 곡옥의 무공을 토벌하기 위해 군사를 보냈다. 무공은 할 수 없이 곡옥으로 철수 했다. 당진은 다시 애후의 동생인 민(緡)을 당진의 군주에 앉혔다. BC 679년 무공이 다시 당진(唐晉)을 공격하여 멸하고 나라 안의 모든 기물과 금은보화를 주나라 리왕(釐王)에게 바치자 리왕은 무공을 당진의 국군으로 임명했다. 후에 무공은 당진의 국토의 대부분을 정벌하여 그 국토를 넓혀 명실공히 열후의 대열에 서게 되었다. 이를 두고 무공(武公)이 당진의 공적을 천하에 빛냈다고 한 것이다.

⑥판천(阪泉)/ 삼황오제(三皇五帝) 때 백성들에게 농사 짓는 법을 가르친 임금은 염제(炎帝) 신농씨(神農氏)였다. 신농씨에게는 두 사람의 신하가 있었다. 한 사람은 인류 최초로 달력을 만들어 사시(四時) 사철의 절기변화를 알게 하고 오곡의 씨앗을 만들어 백성들에게 나누어 준 황제(黃帝) 헌원씨(軒轅氏)였고, 다른 한 사람은 인류 최초로 병장기를 만들어 전쟁에 사용했던 치우(蚩尤)였다. 치우는 그 생김새가 뱀의 몸, 황소의 머리를 하고 있던 전쟁의 신으로 공상(空桑) 나무를 배어 태양이 하늘로 올라가지 못하게 하여 인간세상을 영원한 암흑세계로 만들고자 풍백(風伯)과 우사(雨師) 두 사람의 부하를 거느리고 신농씨에게 반기를 들었다. 황제 헌원씨는 곰, 표범, 호랑이로 이루어진 맹수 부대로 치우를 토벌하려고 했으나 풍백과 우사가 만들어 내는 바람과 비로 인하여 싸움에서 이길 수 없게 되었다. 이에 황제는 익룡(翼龍)의 딸인 가뭄의 여신 발(魃)을 하늘로부터 불러서 치우(蚩尤)와의 싸움에 임했다. 발(魃)은 눈이 머리 꼭대기에 달려 있었기 때문에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 몰랐다. 그래서 누가 가뭄으로 죽어 가는 지도 몰랐다. 결국 치우(蚩尤)는 가뭄으로 죽었고 여신은 하늘로 돌아가지 못하고 현 섬서성의 서북으로 추방당하자 그곳은 순식간에 풀 한 포기 없는 황토고원(黃土高原)으로에 변해 버렸다. 황제와 치우가 크게 싸웠던 전설상의 장소가 판천(阪泉)이다.

⑦대유(大有)/ 주역64괘 중14번째인 건하(乾下), 리상(離上)의 화천대유(火天大有: 한 낮의 태양)의 괘. 구삼(九三) 효(爻)의 점사(占辭)는<公用亨于天子(공용형우천자) 小人弗克(소인불극) 제후가 천자에게 조공을 드리니, 소인은 싸워도 이기지 못하리라!>이다.

⑧규(睽)/ 주역64괘 중 화택규(火澤睽: 며느리와 시어머니). 규(睽)의 괘는 불(離)이 타서 위로 오르고 연못(兌)은 흘러 아래로 내리니, 두 여인이 동거하면서 그 생각이 다른 것과 같다. 상하의 중효(中爻)가 바로 응해 있어서 내면에서는 일치함을 나타내고 있다. 규(睽)는 작은 일을 행하는 데 길한 것이다.

⑨하동(河東)/ 산서성(山西省) 서남(西南) 지역을 말한다

⑩하외(河外)/ 춘추전국 때 하남성과 산서성 경계 중 황하 이남 지방을 가리키는 말이다. 즉 하남성 섬현(陝縣)과 화음현(華陰縣) 일대를 말한다.

⑪초중(草中)/지금의 산서성 진성현(晉城縣) 남쪽의 이천향(犁川鄕) 부근

⑫여토(麗土)/ 초중(草中)과 인접해 있던 이족의 거주지

⑬양번(陽樊)/ 지금의 하남성 제원현(濟源縣) 동남. 춘추 초기 때 주왕실의 직할령이었다가 당진에 할양했다. 문공의 중신 조쇠(趙衰)의 식읍이다.

⑭신농(神農)/ 온(溫) 땅에 있었던 지명으로 삼황오제(三皇五帝) 때 신농씨(神農氏)가 오곡의 씨앗을 처음으로 심었다는 곳이다.

⑮수장(隧葬)/ 고대에 무덤을 만들 때 지하에다 길을 내고 관을 안치하는 것으로 왕이나 황제의 무덤에만 할 수 있는 의례다.

⑯기내(畿內)/ 주나라 왕성(王城)을 중심으로 사방 오백 리 내의 땅을 기내라고 하였다

⑰찬모(攢矛)/ 현 하남성 신향시(新鄕市) 서쪽20키로 지점

⑱지(軹)/ 지금의 하남성 제원현(濟源縣) 남. 양번(陽樊)은 제원현 북쪽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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