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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05-11 11:32:154610 
제45회. 墨縗敗秦(묵최패진), 免胄殉翟(면주순적)
양승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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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제45회 墨縗敗秦 免殉翟(묵최패진 면주순적)

검은 상복을 입고 효산에서 섬진군을 무찌른 당진의 양공과

적(翟)과 싸우다가 갑주를 벗어 순사한 선진.

1. 일일종적 수세지환(一日縱敵數世之患)

- 적을 쫓다가 하루를 못 참고 풀어주면 그 재앙은 몇 대에 이르게 된다. -

정나라를 기습하려는 섬진의 계획을 미리부터 알고 있었던 당진의 중군원수 선진은 양공에게 말했다.

「진백(秦伯)이 건숙과 백리해의 간함을 듣지 않고 천리를 행군하여 정나라를 기습하려고 합니다. 지난번 곽언이 산가지 점을 쳐서 얻은 ‘서쪽에서 쥐가 달려서 우리 집 담장을 넘으려고 한다.’라는 점사는 바로 이 일을 예언한 것입니다. 우리가 급히 그들의 퇴로에 매복하고 있다가 요격한다면 크게 무찌를 수 있습니다.」

란지가 앞으로 나와서 말했다.

「섬진은 우리 선군에게 큰 은혜를 베풀었으나 우리는 아직 그들의 은혜에 보답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그들의 군사를 공격한다면 지하에 계신 선군께서 어떻게 여기실지 모르겠습니다.」

선진이 란지의 말을 반박했다.

「우리가 섬진군을 공격하여 방백으로써의 위엄을 밝히는 것은 바로 선군의 뜻을 계승하는 일입니다. 선군이 돌아가시자 동맹국들은 모든 일을 제쳐놓고 조문 사절을 보내와 그들의 슬픔을 전했었습니다. 그러나 섬진은 사절을 보내오기는커녕 전혀 내색도 하지 않고 오히려 군사를 동원하여 우리의 국경을 넘나들면서 우리와 동맹을 맺고 있는 정나라를 정벌하려고 했습니다. 섬진은 우리나라에 대해 너무 심한 무례를 저질렀습니다. 지하에 계신 선군께서도 역시 그들의 무례 대해 매우 분개하고 계실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섬진의 옛날 은혜에 보답한다고 하며 덕을 베푸는 행위에 대해 선군의 신령이 무슨 까닭으로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입니까? 더욱이 두 나라의 군주가 하양(河陽)에서 만나 맺은 군사동맹의 약속에 따라 두 나라가 군사를 동시에 동원하여 정나라를 포위하게 되었으나, 섬진이 중도에 우리를 배신하고 철수해 버렸습니다. 따라서 섬진은 두마음을 품고 우리를 대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이 우리에게 신의를 시키지 않는데 우리가 무엇 때문에 그들에게 덕을 베풀어야 합니까?」

란지가 다시 자기의 주장을 굽히지 않고 말했다.

「섬진이 아직 우리의 경계를 범하지 않았는데 그들을 공격하는 행위는 너무 심하다고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선진이 란지의 말을 계속 반박했다.

「진백이 우리 선군을 도와 당진의 군주 자리에 오르게 한 일은 우리나라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의 이익도 도모하기 위해서였었습니다. 그리고 선군께서 성복에서의 싸움에서 초나라의 대군을 물리치고 백업을 이루자 섬진은 겉으로는 복종하고 있는 척 했지만 마음속으로는 시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근자에 이르러 상을 당한 우리가 능히 정나라를 보호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 섬진이 군사행동을 일으켰습니다. 만약 이를 방관만 한다면 우리가 정말로 힘이 없음을 섬진에게 인정하는 꼴이 됩니다. 섬진군이 천리가 넘는 머나먼 길을 행군하여 정나라를 점령하려는 계획은 결코 실현할 수 없는 지극히 어려운 일입니다. 따라서 정나라에 대한 계획이 틀어지면 그들은 퇴군하는 길에 우리 당진을 기습할 것이 뻔합니다. 속담에 ‘적을 쫓다가 하루를 못 참고 풀어주면 그 재앙은 몇 대에 이르게 된다.’고 했습니다. 만약에 섬진군을 요격하지 않고 서서 방관만 한다면 어떻게 우리 당진이 스스로 선군이 일으킨 패업을 지킬 수 있겠습니까?」

조쇠가 나서서 말했다.

「섬진을 요격하는 일은 가하다고 하겠으나 단지 상중인 주군께서 군사를 일으키는 행위가 예에 어긋나지나 않을까 우려됩니다.」

선진이 언성을 높여 말했다.

「상을 당하면 거적자리를 깔고 흙덩이를 베개로 삼아 거처함으로 해서 효를 행하는 일을 예라고 하지만,다른 한편으로는 강대한 외적의 예봉을 잘라내어 사직을 안전하게 지키는 사업도 예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쳐들어오는 외적을 피해 상례를 지키는 것과, 상중임에도 쳐들어온 외적을 막는 일 중 어느 편이 더 큰 효(孝)라고 감히 말할 수 없는 법입니다. 여러 경들께서 계속 불가하다고 하신다면 저라도 단독으로 가서 섬진군을 요격하도록 하겠습니다.」

서신 등을 위시한 당진의 신료들은 모두가 선진의 말에 따르기로 했다. 선진이 즉시 양공에게 상복을 입은 채로 군사를 열병하도록 청했다. 양공이 선진에게 물었다.

「원수께서는 섬진군이 회군하는 시점을 언제쯤으로 보십니까? 또한 회군한다면 어느 길을 택하리라고 보십니까?」

선진이 손가락으로 날짜를 꼽아 보고 나서 말했다.

「신의 생각으로는 섬진군은 결코 정나라를 함락시킬 수 없습니다. 천리 길을 행군하고도 아무 공도 이룰 수 없으니 그 기세가 어찌 오래 가겠습니까? 섬진군의 행군기간을 전부 따져 보니 그들의 회군하여 민지(澠池)①를 통과하는 시점은 필시 여름철4월 경이 될 것입니다. 민지는 당진과 섬진의 국경이 접하는 곳이며 그 서쪽에 효산(崤山)②이라는 봉오리가 두 개인 산이 있는데 동쪽과 서쪽으로 나누어져 있어 그 거리는35리 정도 됩니다. 섬진군이 본국으로 회군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길을 통과해야만 합니다. 그 산은 수목이 울창하고 봉우리가 높고 험하며 길 중에 몇 군데는 거마가 다니지 못할 정도로 험준하여 그 곳을 지나갈 때는 필히 병거에서 말을 풀어야만 합니다. 만약 이곳에다 복병을 숨겨 놓고 갑자기 들이친다면 섬진군과 장수들은 한사람도 빠짐없이 죽이거나 사로잡을 수 있습니다.」

「모든 일을 원수에게 일임하겠으니 오로지 만사에 조심하여 낭패를 당하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

선진이 즉시 선발대5천 명을 뽑아 아들 선차거(先且居)를 대장으로 도격(屠擊)을 부장으로 삼아 효산 좌측에 매복하도록 명하고 서신의 아들 서영(胥嬰)에게는 호국거(狐鞫居)와 함께 다시 군사5천의 선발대를 이끌고 효산 우측에 매복하고 있다가 섬진군이 당도하기를 기다려 좌우에서 협공하도록 하였다. 다시 호국거의 형인 호석고(狐射古)와 한자여(韓子輿)에게 군사5천을 주어 서효산에 가서 미리 나무를 베어 길을 막고서 숨어 있게 하고, 양요미(梁繇靡)의 아들 양홍(梁弘)에게는 래구(萊駒)와 함께 역시5천의 군사로 동효산에 매복하고 있다가 섬진군이 지나가면 일제히 일어나 그 뒤를 치라고 했다. 선진 자신은 조쇠, 란지, 서신, 양처보, 선멸 등의 원로대신과 노장들을 이끌고 양공을 모시고 효산에서2십 리 되는 곳에다 세운 진채에서 각각 대오를 정하여 기다리고 있다가 섬진군과 전투가 벌어지면 호응하도록 하였다. 이것은 마치 ‘덫을 놓고 맹수가 달려들기를 기다리며, 향기로운 미끼를 던져 큰 거북이 물기를 기다린다.’라는 형국이었다.

2. 효산복멸(崤山覆滅)

- 효산의 험지에서 전멸하는 섬진군-

한편 그해 봄2월에 활국(滑國)을 멸한 후에 포로들을 이끌고 노획한 전리품을 가득 실은 수레를 끌며 귀국 길에 오른 섬진군은 단지 정나라에 대한 기습을 포기하여 세우지 못한 공을 대신하여 속죄할 수 있기만을 바라는 마음뿐이었다. 섬진군의 행렬은 여름철인4월이 접어들 쯤에 민지의 경계에 당도했다. 백을병이 맹명시에게 말했다.

「민지의 서쪽으로 쭉 따라가면 효산의 험준한 길이 나타나는데 나의 부친께서 이곳을 지날 때 절대 조심하라고 간곡하게 당부하신 곳이니 주수(主帥)께서는 신중하게 대처하기 바랍니다.」

「내가 천리 길을 해군하던 중에도 아직까지 아무 탈이 없었소. 이제 저 앞의 효산만 지나면 바로 우리나라의 경계에 이르게 되어 집이 바로 코앞이라 빨리 가거나 늦게 가거나 모두 우리들 마음에 달린 일입니다. 어찌 걱정이 그리 많으십니까?」

서걸술이 나서서 말했다.

「주수께서 비록 호랑이 같은 위엄을 갖고 있다하나 조심한다고 해서 잃을 것은 없습니다. 또한 매복이라도 시켜 놓은 당진군이 갑자기 들고일어나 우리 군사들을 들이친다면 우리는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말 것입니다.」

맹명시가 불복하고 발끈한 기색으로 답했다.

「장군들께서 당진을 무서워하기를 이렇듯 하니 내가 마땅히 앞장서서 만약에 복병이라도 만나게 되면 내가 스스로 감당하리라!」

맹명시는 말을 마치고 즉시 군사를4대로 나눈 후에 맹장 포만자를 불러 백리(百里)라고 쓰인 원수기를 주어 일대를 이끌고 앞으로 나아가 길을 열도록 했다. 맹명시는2대를 이끌고 그 뒤를 따르고, 서걸술은3대를, 백을병은4대를 맡아 맨 후미로 따랐는데, 각대의 거리는 불과1-2리에 불과했다. 선두에서 서서 일대를 이끌고 행군하고 있던 포만자는 평소에 들고 다니는 무게가80근이나 나가는 방천화극을 들고 공중에 휘두르며 자기의 무예를 뽐냈는데 그 동작은 마치 나는 새와 같이 날렵하였다. 스스로 자기의 용력에 자만하고 있던 포만자는 천하에 자기와 겨룰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맹명시가 이끄는 섬진군은 병거를 몰고 민지를 통과하여 서쪽을 바라보며 앞으로 계속 나아갔다. 이윽고 섬진의 선발대가 동효산 기슭에 당도하자 갑자기 산 속에서 북소리가 울려 천지를 진동시키더니 한 떼의 군마가 나는 듯이 나타났다. 대장인 듯한 사람이 병거를 타고 나와 섬진군 앞길을 막아서며 물었다.

「네가 섬진의 장수 맹명시냐? 우리들이 이곳에서 너희들을 기다린 지 오래다!」

포만자가 나서서 응대했다.

「그러는 너의 이름은 무엇이냐?」

그 대장이 대답했다.

「내가 바로 당진의 장군 래구(萊駒)라는 사람이다.」

「내가 너에게 일러주겠는데 너희 나라에서 란지나 위주가 와서 한꺼번에 같이 덤빈다면 장난삼아 몇 합 겨루어 보겠다만 너 같은 무명소졸이 어찌 감히 내 앞길을 막을 수 있단 말이냐? 속히 길을 열어 우리를 지나가게 하라. 만약 지체하게 되어 내가 할 수 없이 이 방천화극으로 너의 목을 꿸까 봐 걱정이 된다! 」

래구가 대노하여 자루가 긴 과를 손에 들고 포만자의 가슴을 찌르려고 달려들었다. 래구의 공격을 가볍게 몸을 돌려 피한 포만자는 그 세를 이용하여 화극을 들고 래구를 향해 내리쳤다. 래구가 급히 몸을 돌려 화극을 피했다. 그러나 무서운 기세로 찔러오는 화극이 래구가 타고 있던 병거의 끌채에 댄 횡목(橫木)에 박혔다. 포만자가 극을 한번 비틀자 횡목이 부러지며 두 동강이 났다. 래구가 포만자의 귀신같은 용력을 보더니 자기도 모르게 찬탄했다.

「과연 맹명시의 용력은 소문 그대로구나!」

포만자가 껄껄 웃으며 말했다.

「나는 곧 맹명시 원수의 휘하 장수인 아장 포만자이니라! 우리 원수님께서 어찌 너희 같은 시러배들과 직접 칼을 맞대겠느냐? 너는 빨리 몸을 피해 목숨을 건져야 할 것이다. 우리 원수께서 군사를 이끌고 이곳에 당도하시게 되면 너희들은 한 사람도 살아 남지 못하리라!」

파만자의 용력에 놀란 래구가 넋이 나가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아장 정도 되는 자의 용맹이 이렇듯 흉맹하니 항차 맹명시야 말해 무엇하리!」

래구가 즉시 소리를 높여 포만자를 향해 소리쳤다.

「내가 너희들을 지나갈 수 있도록 허락하겠으니 우리 군사들은 해치말라!」

래구는 당진의 병거와 군졸들을 길 한쪽으로 비켜서도록 하여 포만자가 이끌던 섬진군의 전대를 지나가도록 했다. 포만자가 즉시 군사 중에서 전령을 한 사람 뽑아 후대의 맹명시에게 달려가 보고하도록 했다.

「당진의 군사 몇 명이 매복을 하고 있었으나 우리가 이미 쫓아 버렸습니다. 속히 오셔서 전대와 군사를 합친 후 효산을 통과한다면 별일이 없을 것 같습니다.」

맹명시가 보고를 받고 크게 기뻐하며 뒤따라오는 서걸술과 백을병에게 군사들의 행군을 재촉해서 전 부대가 한꺼번에 효산을 통과하자고 말했다. 한편 래구가 군사를 끌고 후퇴하여 양홍을 만나 포만자의 무용을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양홍이 웃으며 말했다.

「비록 포만자라는 장수가 바다에 사는 고래나 교룡이라 한들 그는 이미 우리가 친 쇠그물 안에 떨어졌는데 설사 하늘을 변화시키는 신통력을 갖고 있다 한들 무슨 수로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겠소? 우리는 병사들을 통제하며 움직이지 않고 있다가 그들이 전부 효산 속으로 들어가기를 기다려 그 뒤를 쫓는다면 그들은 독안에 든 쥐가 되어 우리의 포로가 되고 말 것이오.」

한편 맹명시 등의 삼수가 이끄는 섬진군이 모두 동효산의 길로 들어서서 대략 몇 리를 앞으로 계속 나아갔다. 지나가는 곳의 이름이 하늘로 올라가는 계단이라는 뜻의 상천제(上天梯), 말이 떨어지는 벼랑이라는 뜻의 타마애(墮馬崖), 너무 높아 절명한다는 뜻의 절명암(絶命巖), 혼백이 떨어져 나간다는 뜻의 낙혼간(落魂澗), 근심하는 귀신이 살고 있는 동굴이라는 뜻의 귀수굴(鬼愁窟), 구름도 들어가지 못하는 골짜기라는 뜻의 단운욕(斷雲峪) 등 모두 그 지형이 모두 험준하여 무시무시한 이름뿐이었다. 길이 갈수록 험하게 되어 이윽고 거마가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여 통행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그러나 포만자와 그가 이끄는 전대는 본대와 떨어져 이미 멀리 가버려 종적을 찾을 수 없었다. 맹명시가 말했다.

「포만자가 이미 앞길을 무사히 빠져나갔으니 매복은 없는 것 같다.」

맹명시가 즉시 장수들과 군졸들에게 분부하여 병거와 말들을 붙들어 맨 굵은 밧줄을 풀어서 전투장비를 해체하도록 명하고 이어서 갑옷과 투구를 벗게 한 군사들에게 말에다 수레를 묶고 앞에서는 끌고 뒤에서는 밀게 하였다. 그러나 협소한 산길 때문에 군사들은 앞으로 나아가다 계속 미끄러져 넘어졌다. 길은 갈수록 험난하게 되어 가다 쉬고 가다 쉬고 행군은 지체되었고 또한 행군 중에 전혀 대오를 갖출 수가 없었다. 행군하고 있던 어떤 군사가 말했다.

「우리가 출정할 때도 이 효산을 지났는데 이렇게 험한 길을 만나지 않았다. 지금 돌아가는 마당에 어찌하여 이렇듯 행군하기가 어려운가?」

그것은 원래 섬진군이 출동하여 이 효산을 지날 때는 군사들 모두가 원기가 왕성하였었고, 또한 당진군이 앞을 가로막지 않아 병거가 가벼워 말들이 신속히 움직일 수 있었으며 또한 군사들은 여유있는 마음자세로 서두르지 않고 행군하여, 지금과 같은 고통을 맛보지 않고도 가벼운 마음으로 효산을 통과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금일의 돌아가는 길에는 천리 길을 행군하여 사람이나 말들이 지쳐서 피곤한 상태였고, 또한 활국에서 노획한 전리품을 병거에 가득 싣고, 거기에다가 포로로 잡아가는 허다한 어린아이들과 부녀자들까지 끌고 가는 바람에 행군속도가 지체되어 올 때와는 달리 고난의 행군이 되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더욱이 중도에 한 떼의 당진군까지 만나 비록 한 번 지나온 길이라 했지만 앞길에 혹시 당진군이 매복해 있지나 않을까 걱정한 나머지, 마음속에 급한 생각이 들어 그 어려움이 두 배로 늘어나게 된 것은 자연의 이치라고 할 수 있었다. 맹명시 등이 맨 처음 마주친 상천제를 간신히 통과하여 앞으로 행군을 계속하고 있는 와중에 갑자기 북소리와 뿔나팔 소리가 은은하게 들리더니 후대에서 전령이 달려와 보고하였다.

「당진군이 우리의 뒤를 따라 추격해 오고 있습니다.」

맹명시가 듣고 말했다.

「우리도 행군하기에 이렇게 힘이 드는데 그들이라고 해서 우리를 쫓아오는 쉽겠느냐? 단지 앞에 복병이 있어 우리의 앞길을 가로막지나 않을까 걱정은 하고 있지만 어찌 뒤에 쫓아오는 적들까지 걱정하겠느냐? 각 군에게 명을 전하여 온힘을 다해 앞으로 나아가라고 전하라!」

맹명시가 다시 명을 바꾸어 백을병의4대를 앞장세우고 말했다.

「내가 친히 후미를 맡아 뒤따라오는 추격병을 막겠소!」

섬진들의 장수들이 군사들을 휘몰아 타마애를 재빨리 통과하여 이윽고 절명암에 이르자 앞장서 가던 군사들이 시끄럽게 몰려오면서 맹명시에게 보고했다.

「전면에 나무들을 베어 길을 막아 사람이건 말이건 아무 것도 지나가지 못하게 막아 놓았습니다.」

맹명시가 듣고 놀라 속으로 생각했다.

「저 나무들을 누가 가져다 놓았겠는가? 전면에 복병이 있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그는 즉시 앞으로 나가 친히 살펴보았다. 암벽 옆에 비석이 한 개가 서 있었는데 그 비에는 ‘문왕피우처(文王避雨處)’라는 다섯 글자가 쓰여 있었다. 그것은 옛날 문왕이 지나가다 비를 피했던 곳이라는 뜻이었다. 또한 비 옆에 약3장 정도 길이의 깃대에 붉은 기가 한 개 꽂혀 있었는데 진(晉)이라는 글자가 쓰여 있었다. 그 깃대 밑에는 다른 곳에서 베어다 날라다 놓은 나무토막들이 가로 세로로 어지러이 쌓여 있었다. 맹명시가 마음속으로 계속해서 생각했다.

「이것은 분명히 거짓으로 군사들이 있음을 알려 우리를 속이려고 하는 짓이다! 일이 여기까지 왔으니 설사 전면에 매복이 있다 한들 어쩔 수 없이 행군을 계속할 수밖에 없지 않는가?」

즉시 군사들에게 명하여 당진이라고 쓴 깃발을 뽑아 땅에 쓰러뜨리도록 한 맹명시는 어지러이 쌓여 길을 막고 있던 나무들을 치우게 하고는 전방을 향해 행군을 계속하도록 했다. 그러나 진(晉)이라고 써진 붉은 깃발은 바로 주위에 매복하고 있던 당진군에게 하나의 신호였다. 암벽 뒤에 숨어있던 당진군은 자신들이 신호로 삼기 위해서 꽂아 두었던 깃발을 살펴보고 있었다. 이윽고 그 깃발이 쓰러지자 섬진군이 드디어 당도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당진군은 일제히 매복에서 일어나 함성을 지르면서 섬진군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섬진군은 길을 막고 있던 나무더미들을 치우려고 하던 순간 앞쪽에서 북소리가 마치 벼락 치듯이 나며 숨어 있던 군사들이 지르는 함성소리를 듣게 되었다. 그러나 멀리 떨어진 곳에서 수많은 깃발이 번쩍거리며 휘날리는 모습만이 보였기 때문에 정작 당진군의 수효가 많고 적음은 알 수 없었다. 백을병이 군사들에게 명을 내려 병장기를 정비하여 전투태세를 갖추도록 했다. 그때 산 속의 높은 바위 위에서 한 사랍의 장군이 시야에 나타나 섬진군을 향하여 자기의 성명을 밝히면서 큰 소리로 말했다.

「나는 당진국의 대장 호석고다. 너희들의 선봉대장 포만자는 이미 우리들에게 사로 잡혀 포승줄로 묶여서 이곳에 있다. 너희들도 빨리 무기들을 버리고 투항하여 죽음을 면하라!」

앞서 당진군은 자기의 무용만을 믿고 앞으로 전진하던 포만자를미리 파 놓은 함정에 빠뜨린 후 갈고리로 건져내어 밧줄로 묶은 채로 수레에 가두어 놓고 있는 중이었다. 백을병이 크게 놀라 사람을 시켜 후진의 서걸술과 주장 맹명시에게 이 사실을 통지하였다. 섬진의 세 장수들은 서로 만나 어떻게 해서든 길을 열어 그곳을 벗어나려는 대책을 세우려고 상의했으나 뚜렷한 방법을 찾지 못했다. 맹명시가 보니 계곡 옆으로 조그만 길이 하나 나 있는데 단지 넓이가 한자 정도 되어 보였다. 군사들을 이끌고 그 길을 따라 얼마쯤 행군을 하였는데 길은 갈수록 험해졌다. 이윽고 섬진군의 본대는 한쪽은 깎아 지르는 아득한 절벽이 가로막고 다른 한쪽은 그 끝이 안 보이는 깊은 낭떠러지에 나 있는 길에 당도하게 되었다. 그 길은 너무 험해서 비록 천군만마가 있다 한들 별도리가 없는 곳이었다. 맹명시가 마음속으로 한 가지 계책을 생각하고는 뒤따라오는 군사들에게 영을 전하게 했다.

「이곳은 적군을 맞이해서 싸울 수 없는 지형이다. 전군에게 명을 내려 일제히 동효산(東殽山) 뒤쪽으로 후퇴하여 넓은 곳에 진을 치고 당진군과 죽음을 각오하고 한번 싸운 다음 다른 방법을 찾아야 되겠다!」

백을병이 맹명시의 명을 받들어 군사들에게 방향을 돌려 뒤로 후퇴하도록 했다. 도중에 당진군이 두드리는 북소리와 쟁이 소리가 끊어지지 않고 계속 들려왔다. 드디어 섬진군이 후퇴하여 얼마 전에 지나왔던 타마애란 곳에 다시 이르자 동쪽 편에 수많은 깃발들을 펄럭이며 행군해 오고 있던 당진군들이 보였다. 그러나 그 행렬의 끝은 볼 수 없어 당진군의 수효가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었다. 그 군사들은5천 명을 이끌고 섬진군의 뒤를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추격하여 오고 있는 바로 당진군의 대장 양홍과 부장 래구의 군사들이었다. 섬진군은 결국은 타마애의 계곡을 벗어나지 못하고 할 수 없이 다시 다른 곳으로 방향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마치 개미떼들이 뜨거운 솥 안에서 한곳에 머물러 있지 못하고 이리저리 우왕좌왕 하며 몰려다니는 형상과 같았다. 맹명시는 할 수 없이 명령을 다시 내려 군사들에게 좌우로 나뉘어서 산으로 기어오르든가 깊은 계곡 쪽으로 내려가 탈출로를 찾든지 군사들 각자가 알아서 행동하도록 했다. 그러나 타마애 계곡의 좌측 산꼭대기에서도 갑자기 쟁이와 북소리가 요란하게 울리더니 한 떼의 군마가 나타났다. 당진군 가운데 한 사람이 앞으로 나오며 산을 기어오르고 있던 섬진군을 향하여 큰 소리로 외쳤다.

「당진의 대장 선차거(先且居)가 여기 있다. 맹명시는 어서 빨리 항복을 하지 않고 무엇을 하느냐?」

이어서 오른쪽 계곡 건너편에서도 대포소리가 한번 울리자 계곡에 숨어있던 군사들이 일제히 함성을 지르더니 ‘대장서영(大將胥嬰)’이라고 쓴 깃발을 세웠다. 이때 맹명시의 마음은 수많은 화살에 맞아 가슴이 뚫려 심장이 도려내어지는 듯한 아픔을 느꼈으나 이제는 군사들에게 어찌 명령을 내릴 수도 없게 되어 버렸다. 이리저리 흩어져서 달아나기 시작한 군사들은 어떤 자들은 산으로 기어오르고 또 어떤 자들은 계곡 밑으로 내려갔으나 모두가 당진군에게 포로가 되거나 칼에 찔려 죽었다. 그 모습을 목도한 맹명시가 대노하여 서걸술과 백을병 두 장군을 데리고 조금 전에 떠났던 타마애로 달려서 돌아 왔다. 그러나 당진의 장수 한자여는 길을 막고 있던 나무들 위에 이미 유황과 염초 등의 인화물질들이 뿌려놓고 있다가, 몰려오는 섬진군의 모습을 보고 군사들에게 명하여 재빨리 불을 붙이게 했다. 이윽고 나무들을 태우는 화염이 기세가 등등하게 일어나고 연기가 솟아올라 하늘을 자욱하게 덮었다. 곧이어 화염은 시뻘건 불덩어리로 변하여 땅위로 퍼져 나갔다. 설상가상으로 섬진군의 뒤에서는 양홍이 거느린 당진군이 당도하여 진퇴양난에 처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는 섬진의 세 장수들을 압박해 왔다. 타마애 계곡의 전후좌우에는 모두 당진군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 맹명시가 백을병에게 말했다.

「그대의 부친은 진실로 귀신과 같은 사람이라! 내가 오늘 당진의 함정에 빠져 오도 가도 못하게 되어 나는 이곳에서 죽게 되었소. 그대들 두 분은 각자 알아서 이곳을 빠져나가 다행히 한 사람이라도 우리 섬진에 돌아갈 수 있다면 이 사실을 우리 주군에게 알려 군사를 끌고 와서 우리의 원수를 갚아 주기 바라오. 그래야만 내가 지하에서나마 이 원한을 잊을 수가 있을 것이오!」

서걸술과 백을병이 눈물을 흘리면서 말했다.

「우리들은 주수와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겠습니다. 설사 우리가 이곳을 빠져나간들 무슨 면목으로 혼자서 돌아갈 수 있단 말입니까?」

그들의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마지막 남은 수하의 군사들마저 모두 뿔뿔이 흩어져 버리고 세 장수만 외로이 남게 되었다. 길에는 온통 섬진군이 달아나면서 버린 병장기들로 산을 이루게 되었다. 맹명시 등 섬진의 삼수는 도저히 어찌해 볼 도리가 없게 되어 산길의 바위 밑에 모여 앉아서 포승줄만 기다릴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당진군이 사면에서 포위망을 좁혀 오자 섬진군은 마치 가마솥의 만두와 같은 신세가 되어 버려 한 사람도 남김없이 두 손을 묶여 포로가 되고 말았다. 군사들이 흘린 피는 계곡 물을 붉게 물들였으며 죽은 군사들의 시체는 온 산을 뒤덮었다. 말 한 마리 병거 바퀴 한 개도 당진군이 쳐 놓은 포위망을 벗어나지 못했다.

염옹이 이 효산의 싸움에 대해 시를 지었다.

천리를 달려온 영웅의 기개는 하루아침에 잿더미로 화하고

서효산에는 두 번 다시 병거의 바퀴가 구르지 못했네!

당진의 장수들이 세운 계책이 훌륭하다고 칭찬하지 말라!

건숙은 이미 알고 눈물을 머금으며 고향으로 돌아갔도다!

千里雄心一旦灰(천리웅심일단회)

西崤无復只輪回(서효무복지륜회)

休誇晉帥多奇計(휴과진수다기계)

蹇叔先曾墮淚來(건숙선증타루래)

선차거 등 당진의 여러 장수들이 동효산 아래에 모여 섬진의 장수 세 명과 포만자를 함거에 가뒀다. 또한 당진군은 한 번의 싸움으로 수많은 섬진군을 포로로 잡고 병거를 포함한 산더미 같은 병장기를 노획할 수 있었다. 게다가 섬진군이 잡아 가지고 본국으로 호송하던 활국의 포로들 및 아녀자들, 그리고 비단과 귀중한 보물과 같은 노획품들은 모두 당진군의 차지가 되었다. 당진군의 대장 선진은 효산의 싸움에서 잡은 섬진군의 세 장수를 포함한 포로들과 모든 노획물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양공이 묶고 있던 대채로 가져가 바쳤다. 상복을 입은 양공이 포로와 전리품을 접수하자 당진군이 지르는 함성소리가 천지를 진동하였다. 양공이 포로로 잡아온 섬진의 세 장수 이름을 묻고 이어서 말했다.

「어떤 자가 포만자라는 장수인가?」

양홍이 대답했다.

「이자가 포만자라고 하는데 비록 직급은 아장에 불과 하지만 무예와 용기를 겸비한 장수라 우리의 부장 래구가 한 번 겨루어 지고 말았습니다. 만약 우리가 파 놓은 함정에 빠지지 않았다면 사로잡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양공이 놀라서 말했다.

「저자가 그렇듯 용맹하다고 하니 살려 두었다가는 후일에 우리에게 낭패가 될 수 있겠다.」

즉시 래구를 앞으로 나오게 한 후에 명했다.

「장군은 전에 그와 겨루어 졌다고 하는데 오늘 과인 앞에서 그의 목을 베어 전날 싸움에서 진 치욕을 풀도록 하시오.」

래구가 양공의 명을 받들어 포만자를 대채의 기둥에 묶어 놓고 손으로 대도를 잡고 포만자의 목을 향하여 내리치려고 했다. 그 순간 갑자기 포만자가 큰 소리로 외치며 말했다.

「너는 지난 번 나와 싸워 진 패장이 아니냐? 어찌 패장 주제에 감히 나를 범하려고 하느냐?」

포만자가 지르는 소리는 마치 공중에서 내리치는 벼락소리와 같이 우렁차서 대채 안을 찌렁찌렁 울리게 하였다. 포만자가 소리를 한번 크게 외치고 양쪽 팔을 한번 잡아당기니 그를 묶고 있던 포승줄이 끊어져 버렸다. 래구가 크게 놀라 자기도 모르게 몸이 떨려, 손에 잡고 있던 대도를 땅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그 틈을 타서 포만자가 래구가 떨어뜨린 칼을 빼앗기 위해 달려들었다. 그때 포만자의 뒤에는 이름이 랑심(狼瞫)이라는 직급이 낮은 소교(小校)가 한 명 서있다가 그 광경을 보고 재빨리 달려들어 래구가 떨어뜨린 대도를 빼앗아 손에 쥐고는 포만자를 향해 내리쳤다. 한 번의 칼질에 포만자의 목이 떨어지지 않자 다시 한 번 더 내리 쳐 만자의 목을 잘랐다. 랑심이 포만자의 목을 들고 와 바치자 양공이 크게 기뻐하며 말했다.

「장군이라는 자의 무용이 일개 하급의 소교에도 미치지 못하는구나!」

양공은 즉시 래구를 대채에서 쫓아내고는 다시 쓰지 않았다. 이어서 랑심을 차우장군의 직에 명하여 전투에 임할 때 자기를 보호하도록 했다. 랑심이 감사의 말을 드리고 양공의 안전에서 물러나면서 스스로 양공으로부터 인정을 받았다고 자만하여 중군원수였던 선진에게 가서 인사를 드리지 않았다. 선진의 마음속 한 구석에 랑심에 대하여 괘씸한 생각을 갖게 되었다.

3. 縱歸三帥(종귀삼수)

- 애써 잡은 섬진의 삼수를 방면하는 진양공-

다음날 양공이 당진의 여러 장수들을 데리고 개선가를 부르며 귀환 길에 올랐다. 아직 끝나지 않은 선군의 상을 계속하기 위해 양공의 일행은 다시 곡옥으로 갔다. 양공은 미처 못 치른 문공의 장례를 끝내고 강도로 돌아간 후에 섬진의 세 장수를 처형하여 그 목을 태묘에 바치려고 생각했다. 먼저 문공의 빈소에 섬진군과의 싸움에서 이긴 공로를 고하기를 마친 양공은 관을 묻기 위해 무덤을 파게 했다. 양공이 상복을 입고 장례를 치르면서 섬진을 이긴 전공을 표로 만들어 문공의 묘소에 같이 묻었다. 그때 양공의 모후인 회영(懷嬴)도 문공의 상을 치르기 위해 곡옥에 와 머물고 있었다. 그녀는 이미 섬진의 세 장수가 사로 잡혀 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회영이 양공에게 세 장수의 일에 대해 물었다.

「우리가 섬진과의 싸움에서 이기고 맹명시 등의 적국의 장수들은 모두 우리의 포로가 되어 이곳으로 잡혀 왔다고 들었다. 이것은 실로 우리나라 사직의 복이라고 할 수 있겠다. 사로잡은 섬진의 세 장수는 이미 처형했는가? 아니면 아직 살려 뒀는가?

「아직 처형하지 않았습니다.」

「섬진과 당진 두 나라는 대대로 혼인을 하여 맺어진 우호국이다. 맹명시 등이 공을 탐하여 두 나라 사이를 이간시키고 망령되이 군사를 출동시켜 두 나라 사이의 쌓인 은혜를 원한으로 변하게 하였다. 나는 친정아버지이기도 한 섬진의 군주 성격을 잘 알고 있다. 생각해 보니 섬진의 군주는 틀림없이 이 세 장수에 대해 틀림없이 깊은 원한을 갖고 있을 것이다. 우리가 섬진의 세 장수를 죽여 봐야 이로운 점은 하나도 없을 것이니 차라리 자기나라로 돌려보내 내 친정아버지로 하여금 죽이도록 한다면 이것으로서 두 나라 사이의 원한이 풀어지지 않겠느냐? 이것 또한 아름다운 일이 아니겠느냐?」

「세 명의 장수들은 섬진을 위해 싸웠던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포로로 잡았다가 다시 놓아준다면 후에 우리 당진의 우환거리가 될까봐 걱정됩니다.」

「‘싸움에서 진 장수는 필히 참한다 ’는 법은 모든 나라에 있다. 초나라 군사가 성복에서 우리에게 한번 패하자 초왕은 성득신을 죽게 했다. 어찌 섬진만 유독 군법이 없겠는가? 하물며 옛날 우리의 혜공(惠公)이 섬진과의 싸움에서 사로잡혔으나 섬진의 군주가 또한 예의를 갖추어 다시 우리나라에 돌려 보내주지 않았는가? 섬진이 우리에게 예를 갖추기를 이와 같이 했는데 어찌 변변치 못한 패장 몇 명을 구태여 우리 손으로 죽이려고 하는가? 섬진은 우리보고 무정하다고 하지 않겠는가?」

양공이 처음에는 회영의 말에 수긍을 하지 않다가 다시 옛날 혜공이 당진에서 풀려난 일을 듣고 나서야 두려운 생각이 들게 되어 마음이 움직이게 되었다. 그는 즉시 옥리를 불러 섬진의 세 장수를 석방하여 자기나라로 돌려보내라고 명했다. 맹명시 등의 삼수가 죄수의 몸에서 해방되자 양공에게 들려 감사의 말도 올리지 않고 재빨리 온힘을 다하여 섬진이 있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도망치듯 달아났다. 그때 집에서 식사를 하고 있던 선진은 양공이 이미 섬진의 세 장수를 용서하여 방면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는 입에 씹고 있었던 음식을 뱉어 내고는 노기가 등등하여 양공이 있는 곳으로 달려와 말했다.

「섬진의 장수들은 어디에 있습니까?」

「모친께서 청하여 자기나라로 돌려보내 그곳에서 형을 받게 하라고 해서 과인이 이미 방면하여 돌려보냈소!」

선진이 얼굴에 노기를 띄우며 갑자기 양공의 얼굴에 침을 뱉으며 말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로다! 아무리 나이가 어리다고 하지만 어찌하여 이렇듯 세상물정에 어둡단 말인가? 우리들 무장들이 천신만고 끝에 붙잡은 적장들을 일개 아녀자의 말 한 마디에 놓아주어 일을 망치게 했도다! 이것은 호랑이를 산으로 돌려보낸 격이니 훗날 아무리 후회한들 아무 소용이 없으리라!」

양공이 선진의 꾸짖는 소리를 듣고 금방 깨우쳐 얼굴에 묻은 침을 닦더니 사죄의 말을 하였다.

「이것은 과인의 잘못이로다!」

즉시 여러 대신들의 반열을 향하여 물었다.

「누가 섬진의 세 장수 뒤를 추격하여 잡아오겠는가?」

양처보가 앞으로 나와 자원했다. 잠시 후에 노기가 풀린 선진이 말했다.

「장군이 있는 힘을 다하여 뒤를 추격하여 그들을 잡아 올 수 있다면 그것은 일등상에 해당하는 공으로 쳐주겠소!」

양처보가 병거에 올라타서 질풍과 같이 말을 몰아 양공이 하사한 참장도(斬將刀)를 크게 휘두르며 곡옥성의 서문을 통하여 서을 빠져나가 섬진의 세 장수 뒤를 추격했다.

훗날 사관은 양공이 자기 얼굴에 감히 침을 뱉은 선진을 용납할 수 있는 아량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능히 문공의 뒤를 이어 백업을 이어 받을 수 있었다고 하면서 시를 지어 찬양했다.

무장들이 이룩한 공을 아녀자가 허사로 만들었다고

노기충천한 선진은 양공의 얼굴에 침을 뱉었으나

오히려 화를 내지 않고 용납한 양공의 모습을 보고

비로소 백업은 양공에게 이어 졌음을 알게 되었다.

婦人輕喪武夫功(부인경상무부공)

先軫當時怒氣沖(선진당시노기충)

拭面容言无慍意(식면용언무온의)

方知嗣伯屬襄公(방지사백속양공)

한편 맹명시 등 섬진의 세 장수들은 죄수의 몸에서 풀려나 길을 걸으면서 서로 상의했다. 맹명시가 두 사람을 향해 말했다.

「우리들이 만약 하수만 건널 수만 있다면 살아서 돌아갈 수 있겠지만, 만약 건너지 못한다면 조만 간에 우리를 풀어 준 일을 후회한 진후가 추격병을 보내 다시 잡혀가고 말 것이오. 어찌하면 좋겠소?」

그들이 서둘러 하하(河下)라는 곳에 당도하였으나 배라고는 한 척도 보이지 않자 세 사람이 한탄하며 말했다.

「하늘이 우리를 버렸구나!」

세 사람이 한탄을 하며 넋이 빠져 있는데 하수의 서쪽 편에서 갑자기 어부 한사람이 조그만 배를 타고 노래를 부르면서 다가왔다.

우리 안에 갇힌 원숭이가 밖으로 나왔구나.

갇혀 있던 날짐승도 새장 밖으로 나왔구나.

사람이 있어 나를 만난다면

패전을 거울삼게 하여 공을 세우게 하리라!

囚猿離檻兮(수원리함혜)

囚鳥出籠(수조출롱)

有人遇我兮(유인우아혜)

反敗爲功(반패위공)

노래말이 기이한 생각이 든 맹명시가 어부를 불렀다.

「어부는 이쪽으로 와서 우리들을 건너게 해주오!」

어부가 말했다.

「나는 섬진 사람만을 건네주지 당진의 사람들은 건네주지 않습니다.」

삼수가 한 목수리로 어부를 향하여 외쳤다.

「우리야말로 섬진 사람입니다. 빨리 이곳으로 와서 우리를 태워 주시오!」

「그대들은 혹시 효산의 싸움에서 패한 장수들이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제가 공손지 장군의 명을 받들어 이곳에 배를 대고 세 장군님을 기다리고 있은 지가 하루 이틀이 아닙니다. 이 배는 아주 작아서 모두 태울 수 없습니다. 앞으로 반 리 정도 가면 큰 배가 감추어져 있으니 장군들께서는 빨리 가셔서 그 배를 타고 하수를 건너시기 바랍니다.」

어부는 배를 돌리더니 노를 저어 마치 나는 듯이 서쪽으로 사라져 버렸다. 세 장수가 강가를 서쪽으로 돌아서 반 리쯤 가자 과연 큰 배가 몇 척 강 가운데에 정박해 있었는데 그 거리가 화살이 날아서 당도할 수 있는 거리의 반쯤 되었다. 그곳에는 이미 어부가 당도하여 세 사람의 장수를 부르고 있었다. 세 장수가 신발을 벗고 물을 건너 큰 배에 올라탔다. 그러나 미처 배를 저어 앞으로 나가기도 전에 동쪽 강안에 한 사람의 장수가 멈추어 선 병거위에서 자신들을 쳐다보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당진의 대장 양처보였다. 그는 배에 이미 올라 탄 섬진의 세 장수의 모습을 보자 큰 소리로 외쳤다.

「섬진의 장군들은 잠깐 멈추시오!」

양처보의 외치는 소리에 맹명시 등은 모두 놀랐다. 하수의 동안에 병거를 멈춘 양처보는 섬진의 세 장수들이 이미 큰 배에 올라타고 있는 모습을 보고 마음속으로 한 가지 계책을 생각해 냈다. 자기의 병거를 몰고 온 네 마리 말 중 맨 왼쪽의 말이 명마라 재빨리 병거에서 풀고서는 거짓으로 양공의 명이라고 맹명시 등에게 전했다.

「우리 주군께서는 장군들을 방면할 때 경황 중에 탈 것도 마련해 주시지 못했음을 안타깝게 생각하시어 이 양모에게 여기 있는 양마를 하사하시고 장군들 뒤를 쫓아가서 전하고 공경하는 마음을 표하라고 명하셨습니다. 원컨대 장군들께서는 이곳에 잠시 납시어 이 말을 받아 가시기 바랍니다.」

양처보의 계획은 맹명시가 만약 말을 받기 위해 자기가 있는 곳으로 오게 된다면 그 기회를 이용하여 사로잡으려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맹명시 등은 그물에서 벗어난 거북이였고 낚시 바늘을 물었다가 빠져 나온 물고기와 같은 신세였기 때문에 다시 몸을 돌려 양처보가 오라는 곳으로 갈 이유가 전혀 없었다. 또한 마음속으로 양처보가 유인책에 대비하고 있었던 그들이 무엇 때문에 배에서 내려 다시 강변으로 오를 수 있겠는가? 맹명시가 뱃머리에 서서 양처보를 향하여 고개를 숙이고 감사의 말을 올렸다.

「상국의 군주께서 우리를 죽이지 않고 방면한 일만 해도 이미 큰 은혜를 입었다고 할 수 있겠는데 어찌 감히 양마까지 받을 수 있겠습니까? 이번에 제가 섬진으로 돌아가 우리 군주께서 다행히 저를 죽이지 않고 살려 두신다면3년 후에 내가 친히 상국을 방문하여 귀국의 군주께 인사를 드린 후 받아 가도록 하겠습니다.」

양처보가 다시 입을 열어 말을 하려고 했으나 뱃사공과 수부(水夫)들이 노와 삿대를 저어 이미 물살을 따라 강 한복판으로 들어가 버린 배의 모습만을 볼 수 있었을 뿐이었다.

맹명시를 눈앞에서 놓쳐 버린 양처보는 망연자실하여 풀이 죽은 모습으로 곡옥에 돌아와 양공을 배알하고 맹명시가3년 후에 말을 직접 받으러 오겠다고 한 말을 전했다. 선진이 화를 내며 말했다.

「그가3년 후에 주군에게 인사를 드리고 말을 받아 가겠다고 한 말은 장차 우리 당진을 정벌하여 원한을 갚겠다는 뜻입니다. 이왕지사 그들이 싸움에서 져서 사기가 떨어져 있을 때 우리가 먼저 정벌하여 그들의 계획을 사전에 분쇄해야 다가올 전란을 미연에 방지해야 할 것입니다.」

양공이 선진의 말을 쫓아 섬진을 정벌할 계획을 세우게 하였다.

한편 섬진의 목공은 맹명시 등 세 명의 장수들이 당진에게 포로로 잡혀갔다는 소식을 듣자 마음속으로 괴롭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화가 나기도 하여 침식을 모두 폐하고 자리에 들어 누워 버렸다. 며칠을 자리에 누워 있던 중 다시 세 장수가 당진에서 석방되어 귀국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자 얼굴에 기쁜 기색을 띄우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자 좌우에 있던 군신들이 목공에게 간했다.

「맹명시 등 세 장수가 군사를 모두 잃어버리고 나라를 욕보여 그 죄는 죽음에 해당한다고 하겠습니다. 옛날에 초나라는 성복의 싸움에서 패한 성득신을 죽여 삼군에게 경종을 울렸습니다. 주군께서도 마땅히 군법을 엄히 시행하셔야 할 것입니다.」

「내가 건숙과 백리해가 간한 바를 듣지 않고 고집을 세워 군사를 출병시킨 결과 그 화가 세 장수에게 미쳤다. 그것은 나의 죄이지 그들이 무슨 죄를 지었다고 하겠는가?」

목공은 즉시 소복을 차려 입고 성문 밖의 교외에까지 마중나가 죽은 군사들을 조상하면서 곡했다. 목공이 세 장수를 다시 임용하여 병사의 일을 맡기고는 더욱 예를 갖추어 대했다. 백리해가 맹명시의 문안을 받고 한탄의 말을 하였다.

「우리 부자가 다시 만났으니 더 이상 무엇을 바라겠는가?」

그는 즉시 목공에게 고하여 나이가 너무 많이 들었다는 이유를 들어 관직에서 물러날 것을 청했다. 목공이 허락하고 요여(繇余)와 공손지(公孫枝)를 각각 건숙과 백리해가 맡고 있었던 좌우 서장(庶長)에 명했다.

4. 선진순적(先軫殉翟)

- 군주에 행한 무례를 스스로 벌하여 적과의 싸움에서 순사한 선진의 중군원수 선진-

진양공이 섬진을 정벌할 계획을 여러 군신들과 상의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국경을 지키던 관리가 달려와 보고했다.

「적국(翟國)의 군주 백부호(白部胡)가 군사를 끌고 와서 우리 당진의 땅을 침범하여 이미 기성(箕城)②을 통과했습니다. 원하옵건대 군사를 일으켜 그들의 침략을 막아야만 합니다.」

양공이 듣고 크게 놀라며 말했다.

「적국과 우리 당진은 아무런 원수 진 일이 없는데 어찌하여 적주(翟主)가 우리나라의 경계를 침범했단 말인가?」

선진이 대답했다.

「선군이신 문공께서 옛날에 적국으로 망명하자 적주가 이외(二隗)라고 불리고 있던 자기의 친딸과 양딸을 선군과 조대부에게 각각 주어 처로 삼게 했습니다. 선군과 조대부는 적국에서12년을 살면서 그 동안 적주로부터 극진한 대접을 받았습니다. 곧이어 선군께서 환국하여 군위에 오르시자 적주가 다시 사람을 보내와 축하의 인사를 올리고 다시 두 여인을 우리 당진으로 보내 주었습니다. 선군께서 살아 계실 때 단 한 필의 비단도 보내어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지 않으셨지만 적주는 선군과의 좋은 관계를 생각하고 이에 대한 아무런 불평도 하지 않고 참고 지내 왔습니다. 오늘 적주의 자리를 이어 받은 그의 아들 백부호가 평소에 우리 당진국에 품은 불만을 풀기 위해 스스로 그 용기만을 믿고서 우리가 당한 국상을 기회로 여겨 쳐들어 온 것입니다.」

「선군께서는 천자의 일로 바쁘셨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입은 은혜를 돌볼 여지가 없었다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오늘 적군(翟軍)이 우리의 국상을 이용하여 쳐들어 왔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원수라 선 원수께서는 과인을 위해 군사를 이끌고 나가 적병의 침입을 막아 주기 바라오!」

선진이 절을 올리고 사양했다.

「신은 주공께서 섬진의 삼수를 석방하셨다는 소리를 듣고 화를 참지 못하고 전하의 얼굴에 침을 뱉어 심히 무례한 짓을 저질은 자입니다. 신이 듣기에 ‘병사의 일은 항상 질서가 정연해야 함을 원칙으로 해야 하며, 오로지 상하 간에 예를 갖춤으로서만이 백성들을 정연하게 다스릴 수 있다’라고 했습니다. 저와 같이 예의를 갖추지 못한 자가 어찌 감히 원수의 직을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원컨대 주군께서는 신의 직책을 파하시고 따로 좋은 장수를 뽑아 적군(翟軍)을 물리치게 하시기 바랍니다.」

「경이 화를 낸 일은 곧 충성심에서 마음이 격하게 되어서 그리 되었으니 과인이 어찌 그만한 일도 이해하지 못하겠소? 오늘 적군의 침략을 물리치는 일은 경이 아니면 불가하니 경은 결코 사양하지 말기 바라오.」

선진이 할 수 없이 양공의 명을 받고 물러 나오면서 한탄을 하였다.

「내가 원래 섬진의 땅에서 죽고자 했건만 누가 알았으랴? 적 땅에서 죽게 될 줄이야!」

옆에 있던 사람이 선진의 한탄하는 말을 들었으나 그 뜻을 알지 못했다. 양공은 문공의 상례를 끝내고 강도로 돌아갔다. 선진이 중군원수가 거하는 장막으로 여러 장수를 모이게 하고는 물었다.

「누가 이번 싸움에서 선봉을 맡겠는가?」

장수들의 반열에서 한 사람이 의기양양하게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저에게 선봉을 맡겨 주십시오.」

선진이 보니 얼마 전에 양공에 의해 차우장군에 임명된 랑심이었다. 그때 선진은 차우장군에 새로 임명된 랑심이 자기를 찾아와 인사를 올리지 않았다고 해서 마음속으로 매우 불쾌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이번에도 그가 다시 선봉장이 되겠다고 건방지게 앞으로 나서자 선진은 랑심을 더욱 불쾌하게 생각했다. 선진이 랑심을 향해 소리를 높여 꾸짖었다.

「너는 무명소졸 주제에 한 사람의 죄수 목을 쳐서 우연히 주군의 눈에 띄어 중용되었다. 지금 많은 적군이 우리나라 경계를 침범하여 큰 싸움을 앞두고 있는데 어찌 겸손한 마음을 갖고 있지 못하고, 오히려 내 장막 안에 훌륭한 장수가 한 명도 없다는 듯이 기고만장하여 깔보고 있느냐?」

랑심이 선진의 말에 불끈했다.

「소장은 단지 나라를 위해 열심히 싸워 보겠다는 뜻인데 원수께서는 어찌하여 저의 뜻을 막고자 하십니까?」

「지금 이 장막 안에 너 정도의 용력을 쓸 수 있는 장군들이 적지 않다. 그런데 어찌 너 같은 하찮은 무명소졸 출신이 지모와 용기를 조금 갖고 있다고 여러 장군들을 업신여기고 건방지게 그 위에 서려고 하느냐?」

선진이 큰소리로 외쳐 랑심을 밖으로 쫓아 버리고는 쓰지 않았다. 이어서 호국거(狐鞫居)가 효산의 싸움에서 협공할 때 전공이 있다 하여 그의 직을 대신하여 차우장군으로 삼았다. 랑심이 목을 늘어뜨리고 마음속으로 억울한 마음을 달래며 군영 밖으로 나오면서 한탄해 마지않았다. 랑심이 낙담하여 길거리를 걷고 있는데 우연히 그의 오랜 친구인 선백(鮮伯)을 만나게 되었다. 낙심하여 목을 늘어뜨리고 있던 랑심에게 선백이 물었다.

「내가 들으니 선진 원수께서 장수들 뽑아 적군을 물리치고자 한다는데 그대는 어찌하여 이곳에서 배회하고 있는가?」

「내가 선봉을 서기를 자청하여 나라를 위하여 있는 힘을 다 해보려 했으나 뜻밖에 선진이라는 놈의 비위를 건드리게 되어 그의 분노를 사게 되었네! 그가 나에게 말하기를 ‘네가 무슨 지모와 용기를 갖고 있다고 여러 장군들을 제쳐놓고 그 위에 서려고 하느냐?’라고 하면서 나를 쓰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나의 차우장군 직마저 빼앗아 갔다네!」

선백이 듣고 크게 노하며 말했다.

「선진이 그대의 능력을 질시해서 일세! 나와 그대가 집안의 가병을 모아 끌고 가서 선진 그 놈을 찔러 죽이고 가슴에 맺혀 있는 분함을 푼 후에 우리 스스로 죽어 버린다면 이것 또한 호쾌한 일이 아니겠는가?」

「그것은 절대 불가한 일이네. 대장부가 죽을 때는 반드시 그 명분이 있어야 되는데 그렇게 죽는 것은 의를 위해서도, 또한 용기있는 행동이라고도 할 수 없네. 내가 용기가 있다 하여 주군으로부터 인정을 받아 차우장군의 직을 얻게 되었는데 선진이 나를 용기가 없다 하여 다시 차우장군의 직에서 쫓아냈네. 나의 의롭지 못한 죽음은 오늘 내가 축출 당한 일은 곧 한낱 의롭지 못한 자를 쫓아낸 결과가 되어, 오히려 나를 질시하여 쫓아낸 선진의 행위를 정당화시켜 주는 일이 되지 않겠나? 그대는 내가 따로 생각하는 바가 있으니 잠시 기다려 주게나!」

선백이 감탄하며 말했다.

「그대의 높은 식견에는 내가 도저히 미치지 못하겠네!」

곧이어 랑심은 선백과 함께 동행하여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후세사람이 있어 시를 지었는데 선진이 랑심을 쫓아낸 것은 옳지 못하다고 했다.

과를 집어들고 적장을 참수한 용기가 호분(虎賁)과 같아

군주의 은혜를 입어 차우장군에 발탁되었도다.

진충보국하고자 했건만 무슨 허물로 쫓아냈는가?

원래 충신과 용사는 남의 원한을 사게 마련이라!

提戈斬將勇如賁(제과참장용여분)

車右超升屬主恩(차우초승속주은)

效力何辜遭黜逐(효력하고조출축)

從來忠勇有寃呑(종래충용유원탄)

한편 선진은 자기의 아들인 선차거(先且居)를 선봉으로, 란돈(欒盾), 극결(郤缺)을 좌우 양대(兩隊)로, 호석고(狐射古)와 호국거(狐鞫居)는 같이 후대를 맡게 하고 병거400승을 동원하여 강성의 북문을 통과하여 기성(箕城)에 주둔하고 있던 적군을 물리치기 위해 출동했다. 드디어 당진의 대군이 기성에 당도하여 적군과 조우하게 되자 그 자리에 행진을 멈추고 진채를 세우게 했다. 선진이 여러 장군들을 불러들여 각기 그 계책을 일렀다.

「기성의 땅에는 대곡(大谷)이라는 이름의 땅이 있다. 그 계곡은 땅이 매우 넓어 바로 전차전을 벌이기에 적합한 곳이다. 그 옆의 숲은 나무들이 빽빽이 들어차 있는데 군사를 매복시킬 만한 곳이다. 란돈과 극결 두 장군은 군사를 좌우 이대로 나누어 그곳에 매복해 있다가 선차거가 적군과 싸우다가 거짓으로 패하여 계곡 안으로 유인하여 오면 일제히 일어나 앞뒤에서 협공하라. 적나라 군주를 능히 사로잡을 수 있을 것이다. 호석고와 호국거는 군사를 이끌고 후미에 있다가 자기들의 군주를 구하려 달려오는 적군을 막아라.」

선진으로부터 작전지시를 받은 여러 장군들은 각자 자기의 부서로 돌아갔다.

다음날 아침 당진군과 적군 양쪽 군사들은 각기 진채를 세우고 대치상태로 들어갔다. 적나라 군주 백부호가 친히 군사를 이끌고 당진의 진채 앞으로 나와서 싸움을 돋우었다. 선차거가 당진의 영문을 열고 나오더니 백부호와 몇 합을 겨루는 척 하다가 병거를 뒤로 돌려 달아나기 시작했다. 백부호가 백여 기의 기병을 이끌고 용기백배하여 선차거의 뒤를 추격했다. 이윽고 선차거의 유인에 말려든 백부호가 대곡 안으로 들어오자 좌우에 매복하고 있던 당진군이 일제히 일어나서 공격했다. 달아나던 선차거도 말머리를 돌려 백부호를 공격했다. 백부호가 정신을 가다듬고 좌충우돌하며 포위망에서 벗어나려고 했으나 그의 뒤를 따라온 백여 기의 기병들은 하나 둘씩 당진군에게 살해되어 한 명도 살아남지 못했다. 당진군 역시 적군의 기병들에게 죽은 숫자가 적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후에 백부호는 마침내 죽을힘을 다하여 겹겹이 둘러싸인 당진군의 포위망을 뚫고 밖으로 탈출할 수 있었다. 당진군은 백부호의 용력에 놀라 감히 그의 앞을 막지 못했다. 백부호가 탄 말이 대곡의 입구에 다다르자 전차를 타고 입구를 막고 있는 당진의 장수 한 사람을 보게 되었다. 그 장수가 활에 화살을 메겨 시위를 당겨 백부호를 노려보더니 쉿 소리와 함께 시위를 놓아 화살을 날렸다. 화살이 날라 가 백부호의 얼굴에 정통으로 맞아 몸이 앞으로 꼬꾸라지며 말 위에서 땅으로 굴러 떨어졌다. 그 틈을 이용하여 군사들이 달려들어 백부호를 잡았다. 활을 쏘아 백부호를 죽인 당진의 장군은 바로 하군대부에 새로 임명된 극결이었다. 얼굴에 명중한 화살이 머리를 관통하여 뒤통수까지 튀어나온 백부호를 병거에 실었을 때는 이미 숨이 넘어간 뒤였다. 죽은 적국의 장수가 백부호라는 사실을 알게 된 극결은 그의 목을 잘라 원수의 진영으로 가지고 가서 바쳤다. 그때 선진은 중군의 진영에 있었는데 백부호를 잡아 이미 죽였다는 소식을 듣고 머리를 하늘로 쳐들고는 연이어 부르짖었다.

「우리 주군의 복이로다! 참으로 주군의 복이로다!」

선진이 즉시 목간과 붓을 찾아 당진의 군주에게 올리는 표문을 써서 탁자 위에 올려놓고는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영채에 있던 심복 몇 명만을 데리고 병거를 타고 적군의 진지 쪽으로 달려갔다.

한편 백부호의 동생 백돈(白暾)은 그때까지 아직 백부호가 죽었는지 모르고 있었다. 이윽고 자기 진영의 군사들을 이끌고 백부호를 구하기 위해 출동하려는 순간에 갑자기 당진의 진영으로부터 자기들 진영 쪽으로 달려오는 병거 한 대를 보았다. 당진의 유인작전일 것이라고 생각한 백돈이 황급히 대도를 손에 들고 적군에 대항하기 위해 앞으로 달려나갔다. 선진이 창을 어깨에 비스듬히 꼬나 잡고 눈을 치껴 뜨며 큰소리로 백돈을 향하여 외치며 돌진해 왔다. 선진의 양쪽 눈꼬리가 찢어지면서 흐르는 피가 그의 얼굴을 적셨다. 백돈이 크게 놀라 뒤로 수십 보 물러섰다. 그러나 잠시 후 그의 뒤를 따르는 군사들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궁수들에게 명하여 선진을 포위하고 활을 쏘아서 죽이도록 했다. 선진이 귀신같이 무서운 용력을 발휘하여 적군이 몰려 있는 곳으로 달려가 손에 들고 있던 창으로 장수로 보이는 지휘관 세 명과 병사20여 명을 찔러 죽였으나 선진의 몸에는 상처하나 입지 않았다. ― 원래 적군의 궁수들은 선진의 악귀와 같은 무서운 용력에 겁을 먹고 모두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활을 쏘았기 때문에 화살에는 힘이 하나도 없게 되었고 또한 그때 선진은 두꺼운 갑옷을 입고 투구를 쓰고 있었기 때문에 적군이 쏜 화살에 상처를 한 군데도 입지 않은 것이다. -

선진이 한탄하며 말했다.

「내가 적군의 장수와 병사들을 죽이지 않았다면 나의 용맹을 알릴 수 없었음이라! 이 정도 했으면 이미 나의 용력을 알게 했으니 적군을 많이 죽여서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내가 죽을 곳은 바로 이곳임이라!」

즉시 갑옷과 투구를 벗어버린 선진에게 화살이 빗발치듯이 날아와 고슴도치가 된 몸으로 숨을 거뒀다. 그러나 섬진의 몸은 이미 시체가 되었으나 쓰러지지 않고 여전히 그 자리에 꼿꼿이 서 있었다. 백돈이 선진의 목을 베어 수급으로 삼고자 했으나 선진의 시신이 눈을 부릅뜨고 수염을 곤두세워 백돈을 노려보는 모습이 마치 살아 있는 것과 같아 마음속으로 매우 놀랐다. 백돈의 부하 중에 선진을 알고 있는 사람이 있어 앞으로 나와 백돈에게 고했다.

「이 사람은 선진이라는 당진군의 중군원수입니다.」

백돈이 즉시 여러 군사들과 함께 선진의 시신 앞에 절을 올리며 한탄하는 말을 했다.

「진실로 장군은 신과 같은 사람입니다.」

백돈이 선진의 시신을 향하여 축을 했다.

「장군이시어! 제가 우리 적국으로 모시고 가서 제사를 지내 드리려고 합니다. 허락하신다면 서있지 마시고 누우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선진의 시신은 쓰러지지 않고 여전히 서 있었다. 백돈이 다시 축을 바꿔서 했다.

「장군이시여! 당진국으로 돌아가시고자 함이 아니십니까? 제가 돌아가시도록 해 드리겠습니다.」

이윽고 백돈이 축을 끝내자 서 있던 시신이 쓰러지면서 수레 위에 눕게 되었다. 백돈이 명하여 선진의 시신을 다른 수레에 옮겨 싣게 하고 자기 진영으로 돌아갔다.

<제46회로 계속>

주석

①민지(澠池)/지금의 하남성 민지현(澠池縣) 경내. 낙양시 동쪽 약50키로 지점에 위치한 고을로서 섬서성(陝西省)에서 중원으로 진출하는데 거쳐야 하는 요충지다.

②효산(崤山,xiáoshān) : 섬서성과 경계를 이루는 하남성 서부의 영보시(灵宝市)、섬현(陕县) 및 삼문협시(門峽市)를 걸쳐 동쪽으로는 망산(芒山)으로 이어지고 서쪽으로는 진령산맥(秦岭山脉)의 동쪽 끝과 만난다. 황하를 사이에 두고 그 북쪽 연안은 중조산(中条山)과 마주보며 아벽으로 이룬 협곡을 이루고 있다. 주봉은 청강봉(青岗)으로 해발1900미터다.

③다음은 《사기(史記)․진세가(晉世家)》의 효산의 싸움에 관한 기록이다.

『삼진군를 공격하기로 결정한 진양공은 검은 색의 상복을 입고 질(絰)을 두른 채로 싸움터에 임했다. 그 해4월 당진군은 효산의 험지에서 매복하고 있다가 회군 중인 섬진의 군사들을 기습하여 궤멸시키고 섬진의 장수 세 사람을 포로로 잡아 개선하였다. 섬진의 세 장수들이란 맹명시(孟明視), 백을병(白乙丙), 서걸술(西乞術) 등이었다.』

④기성(箕城) : 지금의 산서성 포현(蒲縣) 동남20키로.

【평 설】

섬진(陝秦) 과 당진(唐晉) 사이에 벌어진 효산(崤山)의 싸움에서 당진군은 험한 지형을 이용한 매복 작전을 펼침으로 해서 섬진군을 궤멸시켰다. 진문공(晉文公)은8년이라는 비교적 짧은 집권기간 중에 패자의 지위에 올랐다. 이때 서쪽 변방에 자리잡은 섬진(陝秦)의 군주 진목공(秦穆公)은 기원전628년 죽은 진문공의 후계자 진양공(晉襄公)이 그 장례를 치르느라 여념이 없을 때를 노려 대군을 일으켜 동쪽의 정나라를 기습함으로 해서 당진의 패권에 공공연하게 도전했다. 새로이 군주의 자리에 오른 진양공은 당진국의 패권을 방어하기 위해 강력한 도전자를 잘라내 사직의 안정을 꾀하려고 결심했다. 그래서 그는 기원전627년 군사를 일으켜 주도면밀하게 효산의 험로에 군사들을 매복시켜 섬진군을 공격하여500 승에 달하는 군사를 모두 궤멸되었다. 500 승에 달하는 병력은 각 전차에 타는 3명의 갑사을 포함하여 뒤를 따르는 보졸75명을 합하면 모두4만 명에 가까운 춘추초기 당시로써는 보기 드문 대규모의 원정군이었다.

섬진군이 참패한 원인으로써 우선 자존망대한 교만함에 있다. 그래서 그의 장수들 역시 흥분하여 판단력을 잃고 천리밖의 정나라를 기습하여 손쉽게 손에 넣을 수 있다고 맹목적으로 생각했다. 또한 그들은 진문공의 장례문제로 당진국은 감히 출병을 감행하지 못할 것이라고 오판했다. 그래서 건숙과 백리해는 맹목적인 출병은 불가하다고 온 힘을 다해 간했으나 진목공과 그 장수들은 무시하고 출병했다. 예상치 못한 돌발사태, 정찰병이 보지 못한 여러 가지 정보 등의 전쟁에 있어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에 대한 안이한 자세와 또한 정나라를 비록 점령했을 경우라도 과연 지킬 수 있었겠는가에 대한 가능성을 고려치 않고 단지 목전의 이익에만 눈이 어두워 실패를 본 것이다.

《여씨춘추(呂氏春秋)․<회과(悔過)》 편에 섬진군의 정나라에 대한 기습전이 실패하고 회군 도중 효산(崤山)에서 전멸한 일에 대해 「진목공은 효산의 싸움에서 패한 주요한 이유는 지혜의 부족 때문이다.」라고 했다. 즉 싸움에서 실패한 이유는 효산의 험준한 지형 때문이이 아니라 마땅히 갖춰야할 수준의 지혜와 재능을 갖추지 못한 데에 있었다고 했다. 지혜가 부족하면 믿음을 얻을 수 없고, 지혜와 재능이 일정한 수준에 이르지 못한다면 왕왕 다른 사람의 명철한 견해를 믿지 못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지혜있는 사람의 간함도 믿지 않게 되어 결국은 군대들이 돌아오지 못하는 일이 발생한다. 부족한 지혜로 인해 생긴 피해는 참으로 크다고 할 것이다. 다른 사람의 정확한 의견을 믿지 않고 단지 자기의 감정적인 희망 사항만을 믿었던 결과 섬진군의 대규모 원정군은 귀환도중 전멸한 참상이 발생했다. 이것으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전쟁지도자의 저급한 지혜와 재능은 실로 커대한 재앙의 원인이 된다는 사실이다.

다른 한편 당진국의 입장에서 생각해서 보면 효산의 싸움에서 비록 승리했다고는 하지만, 전략상으로 볼 때는 실패였다. 당진국의 경쟁 상대는 초나라였음에도 작은 이익에 탐하여 섬진국과 대립하게 되고 스스로 양면에서 적을 맞이하는 결과가 되었다. 효산의 싸움으로 인해 섬진국이 초나라 편으로 돌아선 결과 당진국에 대한 적대세력은 늘어나게 된 것이다. 만일 섬진국과 초나라가 서로 대립하게끔 국제정세를 조성했다면 당진국은 그 서쪽 변경으로부터의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효산의 싸움에서 승리한 직후 곧바로 섬진의 도성으로 진격하여 아에 화근을 미리 자르는 계책을 채택하지 않은 것은 절호의 기회를 잃어버렸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섬진국을 멸하여 서쪽 변경에 대한 위협을 제거했을 경우 초나라와의 패권쟁탈전을 보다 용이하게 수행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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