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국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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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6 이일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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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05-11 11:29:434349 
제41회. 子玉自殺(자옥자살), 踐土主盟(천토주맹)
양승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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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41-1. 연곡성으로 들어가 자살한 초나라의 대장 성득신 001.jpg  (646.5K)   download : 80
일반

제41회

子玉自殺 踐土主盟(자옥자살 천토주맹)

연곡성에서 패전의 책임을 지고 자살한 성득신과

천토에서 천자를 불러 회맹을 주재한 진문공

1. 탐공패적(貪功敗績)

- 공을 탐해 군사를 잃고 패전한 초장 성득신-

한편 초나라 장수 투월초와 나이 어린 장군 성대심은 기만의 뒤를 쫓다가 중지하고 방향을 돌려 당진의 중군 영채를 향해 돌진했다. 투월초는 화살을 쏘아 바람에 나부끼는 당진군의 원수기를 땅에 떨어뜨렸다. 원수기가 사라지자 당진군은 즉시 큰 혼란에 빠졌다. 그러나 곧바로 순림보와 선멸이 이끄는 당진의 기동부대가 중군 부대의 싸움을 돕기 위해 달려와 순림보의 좌익군은 투월초의 군사들을 향해 쇄도하고 선멸의 우익군은 성대심의 군대를 향해 돌격을 감행했다. 이에 초군의 중군 진영에 전세를 살펴보던 성득신이 마침내 대군을 휘몰아 당진군을 향해 진군을 명을 발하면서 자기 가슴을 주먹으로 두드리며 외쳤다.

「금일 내가 당진의 군사들을 한 놈이라도 살려 보내면 결코 살아 돌아가지 않으리라!」

성득신이 바야흐로 당진군의 중군 진영을 향하여 돌격하려는 순간 마침 선진과 극진의 부대가 초군의 좌군을 격파하고 돌아와 본진에 당도하여 전투에 합세하는 바람에 당진과 초 양쪽 진영의 군사들 사이에 몇 시간 동안에 걸쳐 혼전이 벌어졌다. 이윽고 란지, 서신, 호모, 호언 등이 당진의 상하 양군을 일제히 끌고 와서 철옹성을 이루며 초군을 포위하고 압박해 왔다. 그때서야 초나라의 좌군과 우군이 모두 당진군과의 싸움에 패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성득신은 전의를 상실하고 급하게 징을 쳐서 군사들을 불러들이려고 했다. 그러나 숫적인 면에서 절대적으로 우세했던 당진군은 초군을 십여 개의 소부대로 고립시켜 포위하고 맹공을 퍼부었다. 소장군 성대심은 한 손에 화극을 들고 문중의600여 군사들을 휘몰고 다니면서 일당백의 기세로 신출귀몰했다. 그는 부친 성득신을 호위하면서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고 죽을힘을 다해 겹겹이 둘러싸인 당진군의 포위망을 돌파했다. 이윽고 당진군의 포위망을 뚫고 나온 성대심은 투월초가 보이지 않자 그를 구하기 위하여 다시 몸을 돌려 당진군의 포위망 속으로 들어갔다. 투월초는 영윤 자문의 종제로써 생기기는 마치 곰과 호랑이를 섞어 놓은 듯이 우락부락 했고 또한 그 목소리는 이리의 것과 같아 카랑카랑했다. 그는 만부부당의 용기를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신기에 가까운 활솜씨오 지니고 있었다. 그가 쏜 화살은 일단 쏘았다 하면 빗 맞추는 일이 없었다. 투월초는 당진군의 포위망에 갇혀 있으면서도 좌충우돌하며 성득신 부자를 찾아다니던 중에 성대심을 만나게 되었다. 성대심이 투월초를 보자 소리쳤다.

「원수께서는 이미 몸을 빼셨으니 장군께서도 속히 포위망을 뚫고 나가시기 바랍니다.」

두 사람이 힘을 합쳐 한 곳을 향하여 짓쳐 나가니 그 위세가 하늘을 찌를 듯 흉맹했다. 그들은 다시 수많은 초나라 군사들을 이끌고 당진군의 포위망을 무너뜨리고 탈출할 수 있었다. 유신(有莘)의 뒷산 정상에서 당진군이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는 모습을 지켜보던 진문공이 급히 사람을 중군원수 선진에게 보내 자신의 영을 각 군에게 전달하게 했다.

「이번의 싸움에서 단지 초나라 군사들을 송나라로부터 철수시키고 위나라와의 경계를 정한 것으로 만족하노라! 구태여 많은 초군을 사로잡거나 죽여 두 나라 사이의 정의를 해쳐 옛날 초왕에게서 입은 은혜를 저버릴 필요가 없음이라!」

선진이 명을 받들어 즉시 여러 장군들에게 초나라 군사의 뒤를 더 이상 쫓지 말라고 했다. 이어서 자기의 영을 어기고 출전하여 당진군을 위험에 빠뜨린 기만을 함거에 가두어 후군으로 보내 감금하게 하고 급한 일이 끝난 후에 죄를 묻기로 했다. 호증선생이 이 일에 대해 시를 지었다.

초군을 만나 삼사를 후퇴하여 옛날의 은혜를 갚고자 했고

다시 명을 내려 궁지에 몰린 초군을 쫓지 말라고 했다.

전쟁터에서 싸운 두 나라도 은혜를 못 잊어 했거늘

평소에도 은혜를 저버린 사람들은 어찌 된 연유인가?

避兵三舍爲酬恩(피병삼사위수은)

又誡窮追免楚軍(우계궁추면초군)

兩敵交鋒尙如此(양적교봉상여차)

平居負義是何人(펑거부의시하인)

초나라 진영에 참가한 진(陳), 채(蔡), 정(鄭), 허(許) 사국의 장수들과 병사들은 싸움에서 태반이 꺾이고 남은 잔병들은 흩어져 각기 목숨을 구하여 본국으로 돌아갔다. 단지 성득신은 성대심, 투월초 등의 장수들을 데리고 겹겹이 쳐진 당진군의 포위망을 뚫고 나와 급히 대채로 달려갔다. 앞서 나간 초병이 와서 보고하였다.

「우리 중군의 대채는 이미 제와 섬진의 두 나라 깃발이 꽂혀있습니다!」

선진 원수의 작전에 따라 초군 진영 부근에 매복하고 있던 제군 대장 국귀보와 섬진의 주장 소자은(小子憖) 두 장수는 성득신이 주력군을 이끌고 출전하자 대채를 급습하여 초나라의 군량 및 마초 등 일체의 치중들을 노획하여 차지했다. 초나라의 패잔병들은 감히 대채로 향하지 못하고 유신산 후면으로 우회하여 수수(睢水)의 강변을 따라 행군하여 초나라 본국으로 회군하려고 했다. 투의신과 투발도 각기 좌군과 우군의 남은 패잔병들을 수습한 다음에 인솔하여 성득신의 본대에 합류해 왔다.

성득신의 행렬이 이윽고 공상(空桑)의 땅에 당도했을 때 갑자기 전면에서 연주포(連珠炮) 소리가 콩 볶듯이 나며 한때의 군마가 성득신 일행의 퇴로를 막고 나섰다. 군사들이 들고 있는 깃발을 쳐다보니 대장위(大將魏)라고 써있었다. 당진군의 장수 위주는 옛날 문공을 따라 초나라에 머무르고 있었을 때 맥(貘)①을 맨손으로 잡은 일이 있어 초나라 사람들은 모두가 위주의 귀신같은 용력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이렇듯 험한 곳에서 용력이 고강한 적을 만났으니 초나라의 패잔병들은 모두가 상궁지조(傷弓之鳥)의 처지가 되어 넋이 빠져 바람도 불기 전에 스스로 쓰러져 버린 풀잎과 같이 되었다. 앞장서 가던 투월초가 대노하여 소장군 성대심에게 성득신을 잘 보호하라고 외친 후에 정신을 한 번 추스리더니 위주에게 달려들었다. 투의신과 투발은 단지 온힘을 다하여 옆에서 도울 수 있을 뿐이었다. 위주는 초나라의 세 장수를 상대하면서 휘하의 군사들에게 명하여 아무도 지나가지 못하도록 철통같이 길목을 막게 했다. 그때 갑자기 북쪽에서 한사람이 비호 같이 말을 타고 달려오면서 큰 소리로 외쳤다.

「장군은 싸움을 멈추시오! 선진 원수께서 주공의 명을 받들어 ‘초나라 장수들과 병졸들을 방면하여 본국에 생환시켜 주공이 유랑생활을 하셨을 때 환대를 받은 은혜에 보답하라!’라는 군령을 내리셨습니다.」

위주가 즉시 손쓰기를 멈추고 군사들에게 지시하여 양쪽으로 비켜서게 하여 길을 내주면서 큰소리로 외쳤다.

「빨리 내 앞에서 사라지지 않고 무얼 그리 꾸물대고 있느냐?」

위주가 지키던 공상의 험지를 구사일생으로 빠져 나와 쉬지 않고 행군한 성득신의 초군 행렬을 이윽고 연곡성(連谷城)에 당도했다. 군사들을 점검하여 보니 중군은 어느 정도 꺾이기는 했지만 남은 병력은 십의 육 칠은 되었다. 그러나 나머지 좌군과 우군의 군사 및 양군에 속해있었던 신읍(申邑)과 식읍(息邑) 두 고을의 군사들은 단지 십에 일 이 밖에 안 남고 거의 전멸하다시피 하였다. 참으로 참혹한 패전이었다. 옛날 어떤 사람이 이 성복의 싸움터에서 전사한 군사들을 위해 시를 써서 조의를 표했다.

싸움을 하면 승리만이 병가의 법칙이라

얼마나 많은 노장들이 모래밭의 싸움터에서 사라졌는가?

놀란 금수(禽獸)는 날아가거나 굴속으로 몸을 숨겼고,

군사들의 살점과 힘줄은 칼날만 배부르게 했도다.

勝敗兵家不可常(승패병가불가상)

英雄幾个老沙場(영웅기개노사장)

禽奔獸駭投坑阱(금분수해투갱정)

肉顫筋飛飽劍鋩(육전근비포검망)

허공의 혼백은 귀신불로 변하여 풀잎에 머물렀구나!

쏴-소리의 구슬픈 바람에 해골은 서리를 맞았다.

권하건대 제후에 책봉됨을 부러워하지 말라!

한 명의 장군이 세운 공은 만 명의 생령이나니!

鬼火熒熒魂宿草(귀화형형혼숙초)

悲風颯颯骨侵霜(비풍삽삽골침상)

勸君莫羨封侯事(권군막선봉후사)

一將功成万命亡(일장공성만명망)

2. 자옥자살(子玉自殺)

- 패전의 책임을 지고 자살한 자옥-

연곡성으로 들어가 군사들을 정비하고 한숨을 돌린 성득신이 원통해 하며 말했다.

「내가 초나라의 위엄을 만리 밖에까지 세우려고 하였더니 뜻밖에 당진 놈들의 계략에 빠져 공을 탐하다가 싸움에 져서 병사들만 잃어 버렸으니 이 죄를 어떻게 고하여야 되겠는가?」

성득신은 즉시 투의신 및 투발과 함께 스스로 연곡성에 있는 감옥에 들어가 죄수가 된 후에 아들 성대심을 시켜 잔병을 이끌고 성왕에게 가서 자기들의 패전에 대한 죄를 물어 죽음을 청하게 했다. 그때까지 신성(申城)에 머물고 있던 초성왕은 성대심이 패잔병을 이끌고 와서 성득신의 말을 전하려고 하는 모습을 보자 화가 나서 말했다.

「너의 부친이 ‘싸움에 이기지 못한다면 군령을 달게 받겠습니다’라고 한 말이 아직 내 귀에 생생한데 지금 무슨 말을 다시 하려고 하느냐?」

성대심이 고개를 땅에 조아리고 말했다.

「신의 부친은 그 죄를 알아 스스로 죽음을 택하고자 하시었으나 실은 신이 잠시 만류했습니다. 군주로부터 직접 명을 받아 죽어야 나라의 법을 밝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싸움에서 진 장수는 죽음으로써 사죄함이 초나라의 국법이다. 이번 싸움에 패전한 모든 장수들은 책임을 지고 마땅히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할 것이다. 죽음을 머뭇거려 나로 하여금 부월(斧鉞)을 쓰게 만들어 욕을 당하지 말기 바란다.」

결코 패장들의 죄를 용서하지 않겠다는 초왕의 말을 듣게 된 성대심은 흐느껴 울며 성왕의 면전에서 물러 나왔다. 초왕이 보낸 사자가 연곡성에 당도하여 성득신에게 초왕의 뜻을 전했다. 성득신이 듣고 한탄했다.

「설사 대왕께서 나를 용서했다 한들 신읍(申邑)과 식읍(息邑)의 로 얼굴들을 무슨 면목으로 볼 수 있겠는가?」

성득신은 즉시 북쪽을 향해 절을 두 번 올리더니 허리에 찬 검을 뽑아 스스로 자기의 목을 찔러 죽었다.

한편 위가가 집에 있다가 그의 부친 위여신에게 물었다.

「제가 듣기에 자옥 영윤이 싸움에 졌다던데 그것이 사실입니까?」

「사실이다.」

「대왕께서는 어찌 처리하셨습니까?」

「자옥과 여러 장수들이 죽음을 자청하여 왕이 허락하셨다.」

「자옥은 고집이 세고 교만하여 홀로는 감당하지 못할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의지가 강하여 쉽게 꺾이지 않는 사람이니 지모있는 사람을 찾아 보좌하게 하면 그에게 공을 새워 패전의 치욕을 씻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비록 이번의 싸움에서 패하기는 했다지만 후일에 능히 당진에게 그 원수를 갚을 수 있는 사람은 자옥 외에는 없습니다. 부친께서는 어찌하여 대왕께 간하여 자옥의 목숨을 구하지 않으셨습니까?」

「대왕의 분노가 매우 커서 간해 봐야 쓸데없을 것 같아서 아무 말도 드리지 못했다.」

「부친께서는 범(范)②) 땅의 무속인 율사(矞似)가 한 말을 기억하지 못 하십니까?

「무슨 말인지 말해보라.」

「율사는 관상을 잘 보았는데 주상이 왕위에 오르시기 전에 그를 불러 관상을 보게 했습니다. 율사가 주상의 관상을 보더니 말하기를 ‘ 주상과 자옥(子玉), 자서(子西)③ 세 사람 모두는 후일에 제명을 다하지 못하고 죽을 상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후에 왕위에 오른 주상께서는 율사의 말을 기억하고 계시다가 자옥과 자서에게 면사패(免死牌)를 주어 율사의 예언이 맞지 않도록 했습니다. 주상이 노하시어 그 일을 잊고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부친께서 입조하여 그 일을 말하여 주상의 기억을 일깨워 준다면 주상께서는 필시 두 분 장군의 목숨은 살려줄 것입니다.」

위여신이 즉시 입조하여 초왕을 알현한 후 말했다.

「자옥의 죄는 죽어 마땅하나 옛날에 대왕께서 면사패를 그에게 주셨으니 그 면사패를 회수하고 죽음을 면하게 해야 할 것입니다.」

초왕이 듣고 놀라 묻는다.

「어떻게 하여 범 땅의 무속인인 율사와의 일을 알고 있는가? 미자(微子)의 말이 아니었다면 내가 잊을 뻔했도다!」

미자는 위여신의 자다. 성왕은 즉시 대부 반왕(潘尫)과 성대심에게 급히 연곡성에 가서 초왕의 명을 전하게 하였다.

「성복 싸움의 패장들은 모두 죽음을 면하게 한다.」

두 사람이 연곡성에 당도하였을 때는 득신은 죽은지 이미 한나절이 지난 후였고 좌군대장 투의신은 대들보에 목을 매었으나 체구가 너무 무겁고 커서 목을 맨 비단 끈이 끊어져 다행히 목숨만은 건지게 되었다. 투발은 원래 성득신과 투의신의 시체를 거둔 후에 죽으려고 했었기 때문에 그 역시 죽지 않고 살게 되었으며 단지 죽은 사람은 자옥 성득신 한 사람뿐이었다. 성득신은 진실로 비명에 죽었다고 할 수 있었다. 잠연 선생이 자옥을 조상하는 시를 지었다.

초나라에 기세가 등등한 한 대장부가 있었다.

당진을 삼키고 천하를 움켜쥐려는 영웅의 뜻을 가졌었다.

그러나 일조에 한 번의 실족으로 목숨을 잃게 되었으니

원래 강함에 의지하는 자는 헛되이 죽게 되는 법이다.

楚國昻藏一丈夫(초국앙장일장부)

氣呑全晉挾雄圖(기탄전진협웅도)

一朝失足身軀喪(일조실족신구상)

始信堅强是死徒(시신견강시사도)

성대심은 그 부친의 시신을 거두어 연곡성에서 장례를 치렀다. 투의신, 투발, 투월초 등은 반왕을 따라 신성에 있는 성왕을 배알했다. 모두들 땅에 엎드려 목숨을 살려준 은혜에 감사의 말을 하였다. 그러나 성득신만은 이미 죽어 살아있지 않는 것을 알고 후회해 마지않았다. 성왕은 다시 어가를 움직여 영도(郢都)로 돌아가서 위여신을 영윤으로 올리고 투의신은 상읍(商邑)④의 대부로 봉해 북방의 변경을 지키도록 했다. 투의신은 이 때부터 상공(商公)으로 불리게 되었다.다시 투발은 양성(襄城)⑤의 수장으로 명해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당진의 공격에 대비하게 했다. 성득신의 죽음을 애통하게 생각한 성왕은 그의 아들 성대심과 성가(成嘉) 형제에게 모두 대부의 벼슬을 내렸다.

2. 熊虎之相 豺狼之声(웅호지상 시랑지성)

- 곰과 호랑이 상에 승냥이와 이리의 목소리를 한 투월초로 인해 투씨들의 멸족을 예언한 자문(子文) -

한편 성득신에게 영윤의 자리를 물려주고 관직에서 물러나 집안에 은거하던 자문은 성득신이 싸움에 졌다는 소식을 듣고 한탄하면서 말했다.

「위가가 한 말이 하나도 틀리지 않았구나! 나의 식견이 어린 동자보다 못하니 진실로 부끄러운 일이다!」

성득신의 일로 괴로워하다가 입으로 피를 몇 되를 토하더니 자리에 눕게 되어 다시 일어나지 못하게 된 자문은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스스로 알고 그의 아들 투반(鬪班)을 불러 당부했다.

「나는 조석지간에 죽을 것이다. 죽기 전에 너에게 당부할 말이 있다. 너의 종형 월초(越椒)는 곰과 호랑이를 섞어 놓은 상에다 그 목소리는 이리의 것을 닮아 카랑카랑한 목소리를 갖고 태어났다. 그는 우리 가문을 멸족시킬 상이라 내가 옛날에 너의 작은아버지에게 키우지 말고 밖에다 버리라고 말했으나 듣지 않았다. 내가 보니 위여신도 오래 살지 못할 상이고 투발과 투의신도 모두가 비명에 죽을상이다. 초나라의 정사는 결국은 모두 너의 종형 월초에게 맡겨 질 것인데 월초는 오만방자하고 잔인할 뿐만 아니라 사람을 죽이기를 좋아하는 성격이라 만약에 정사를 맡게 되면 필시 분수에 넘치는 일을 바라게 되어 투씨 문중의 제사는 그로 인하여 끊어지게 될 것이다. 내가 죽은 후에 만약 월초가 정사를 맡게 되면 너는 필히 도망쳐서 그가 저질러서 맞게 되는 화를 피하여 투씨 집안의 제사를 잇도록 하라!」

투반이 재배하고 부친의 명을 받들었다. 얼마 되지 않아 자문이 숨을 거두었다. 자문이 죽자 곧이어 위여신도 뒤따라 죽었다. 성왕이 자문의 공을 추모하여 그의 아들 투반에게 위여신 대신 영윤의 직을 잇게 하고 투월초는 군사의 일을 관장하는 사마에 위가는 공정(工正)에 임명했다.

한편 당진의 문공은 초나라의 군사들을 격파한 후에 본영을 초나라가 세우고 버리고 간 진채로 옮겼다. 초나라 진채에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군량과 마초를 본 진문공은 군사들을 배불리 먹이면서 기쁜 마음으로 농담했다.「

「초인들이 우리들을 접대하기 위하여 숙소와 식량을 이렇듯 성대하게 준비하여 두었구나!」

제와 섬진의 두 나라의 장수들도 모두 북면하여 문공에게 경하의 말을 올렸다. 그러자 문공이 갑자기 안색을 바뀌더니 얼굴에 수심을 띄우고 경하의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여러 장수들이 그 연유를 물었다.

「주군께서 싸움에서 이기시고도 한편으로는 수심이 있으시니 이것은 어떤 연유에서입니까?」

「자옥은 절대 자기가 졌다고 승복할 사람이 아니다. 우리가 싸움에서 한 번 이겼다고 자만하고 있는 듯한 생각이 들어서이다.」

제나라의 국귀보와 섬진의 소자은이 작별인사를 고하고 휘하의 군사를 이끌고 본국으로 돌아가려고 하자 문공은 싸움에서 얻은 전리품의 반을 떼어 두 나라 군사들에게 나누어주었다. 두 나라의 군사들이 개선가를 부르며 돌아갔다. 송나라의 공손고도 역시 본국으로 돌아갔다. 송성공은 별도로 제와 섬진에 각기 사자를 보내어 감사의 뜻을 표했다.

3. 위자필벌(違者必罰)

- 령을 위반한 자는 반드시 벌을 주어 경계로 삼다. -

이윽고 전후 처리가 어느 정도 끝났다고 생각한 선진이 후군에 가두어 두었던 기만을 문공 앞으로 끌고 오게 하여 명령을 위반하여 군사들을 위험에 빠뜨리게 한 죄를 고했다. 문공이 말했다.

「만약에 우리의 상군과 하군이 싸움에서 먼저 이겼기에 초나라 중군을 간신히 제압할 수 있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기만의 경솔한 행동 때문에 싸움에서 졌을 것이다.」

대사마 조쇠에게 명하여 그 죄를 정하게 한 문공은 군리들에게 기만을 끌고 다니며 널리 죄명을 알렸다.

「이후로도 원수의 명을 거역하자는 자가 있다면 기만과 같이 참수형에 처하겠다!」

당진군의 군중 분위기는 더욱 숙연해 졌다. 이어서 당진의 대군은 유신에서3일을 더 머물다가 하수를 건너기 위해 그 남쪽 강안으로 이동하였다. 앞서 나간 초마가 다녀와서 보고하였다.

「강나루에는 아직 강을 건너는 데 필요한 배가 준비되어 있지 않습니다.」

문공이 주지교를 불러오게 하였으나 그 역시 자리에 없었다. 원래 주지교는 괵국의 항장 출신으로 당진의 조정에서 벼슬을 한지 이미 오래라 이번 싸움에 중용되어 공을 세우기를 잔뜩 기대하고 있었으나 오히려 그를 하수 강안의 나루터에 보내 배나 준비하라는 명령을 받아 마음속으로 크게 불평했다. 그때 마침 집에서 그의 처가 중병에 걸려서 몸져누웠다는 전갈을 해왔다. 당진과 초가 싸우게 되면 필시 시일이 오래 걸리던가 아니면 싸움에 져서 회군을 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 주지교는 잠시 본국으로 돌아가서 처의 병세를 한번 살펴보려고 한 것이 화근이었다. 뜻밖에 그해 여름 사월 무신일에 군사가 성복으로 후퇴하더니 기사일에 접전을 한 끝에 초나라 군사를 크게 격파한 것이다. 이어서3일 간을 휴식한 후에 계유일에 대군이 회군하기 위하여 하수의 나루에 당도하는 데는 앞뒤로 불과6일 동안 밖에 걸리지 않았다. 초군과의 싸움에 대승한 당진의 군사들이 북상하기 위해 하수 남쪽 강안의 나루터에 도착했으나 일이 잘못되어 하수를 건너지 못하게 되었다. 문공이 대노하여 군사들에게 명하여 주변의 민간이 가지고 있는 배를 빼앗아 하수를 건너려고 하였다. 선진이 만류하며 말렸다.

「이곳의 백성들은 우리가 초나라를 패주 시켰다는 사실을 이미 소문을 들어 알고 있을 것입니다. 누가 감히 두려워 떨지 않겠습니까? 만약 군사들을 풀어 배를 빼앗으려고 한다면 그들은 모두 도망쳐서 숨어 버릴 것입니다. 차라리 영을 내리시어 배를 가지고 오는 자에게는 상을 후하게 준다고 하시면 쉬게 배를 모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도록 하시오!」

문공이 즉시 명을 내려 영문에 방을 붙여 걸고 배를 가져오는 자에게는 상을 후하게 준다고 했다. 그러자 백성들이 앞을 다투어 배를 타고 와서 삽시간에 마치 메뚜기 떼처럼 많은 배를 모을 수 있었다. 이윽고 당진의 대군은 예상보다 빠르게 하수를 건널 수 있었다. 문공이 조쇠에게 물었다.

「조와 위 두 나라에서 받은 치욕은 이미 갚았으나 오직 정나라에게 만은 아직 원수를 갚지 못했소. 어찌해야 하겠소?」

「주군께서 군사를 정나라로 돌리시어 정나라에 대한 화근을 없애시기 바랍니다.」

4. 수건명당(修建明堂)

- 명당을 세워 천자를 부르다. -

문공이 조쇠의 말을 따라 행군의 방향을 바꾸어 군사들을 다시 정나라로 향하여 행군토록 했다. 문공이 군사들을 이끌고 황하를 다시 도하하여 며칠 동안 행군하던 중에 멀리 전방에서 말이 끄는 수레를 탄 한 떼의 무리가 귀인처럼 보이는 한 사람을 호위하면서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행렬의 전대를 맡고 있던 란지가 앞으로 나가 물었다.

「어디서 오시는 분들이십니까?」

귀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앞으로 나와서 답했다.

「나는 주왕실에서 경사(卿士)의 직에 맡고 있는 왕자호(王子虎)라는 사람입니다. 진후가 초나라를 정벌하러 출병한 끝에 승리를 거뒀다는 소식을 들으신 천자께서 이 일로 인하여 중화의 열국들이 잠시 안정을 찾았다고 생각하신 나머지 어가를 움직여 친히 이곳에 왕림하여 삼군을 호군하시기 위해 먼저 이 호를 보내 알리게 하셨습니다.」

란지가 즉시 왕자호를 이끌고 문공에게 갔다. 왕자호의 이야기를 전해들은 문공은 여러 신하들을 불러 물었다.

「지금 천자께서 과인의 노고를 행군지간에 치하하시려고 하는데 어디에서 뵈어야 하오?」

조쇠가 먼저 말했다.

「이곳에서 멀지 않은 것에 형옹(衡雍)⑥이라는 지방이 있는데 그 땅에 천토(踐土)⑦라는 곳이 있습니다. 그 땅의 지세는 넓고 평평하여 밤낮으로 공사를 한다면 왕이 거처할 수 있는 궁궐을 지을 수 있습니다. 그런 다음 주공께서 열국의 제후들을 이끌고 어가를 맞이하여 천자에게 조례를 드리면 완벽하지는 못하나마 군신간의 도리는 표할 수 있습니다.」

문공이 곧 왕자호에게 천자를 알현하는 날짜를5월 중의 길일을 택하고 천토의 땅에서 천자의 어가가 임하기를 기다리겠다고 약속했다. 왕자호가 작별 인사를 하고 왕성으로 돌아갔다. 당진의 대군은 형옹의 땅으로 방향을 바꾸어 행군을 시작했다. 도중에 다시 말이 끄는 수레로 한 떼의 무리를 지어 당진군의 행렬을 향해 오는 일행을 만났다. 그 무리 중에서 한 사람이 앞으로 나오더니 자기는 정나라의 대부 자인구(子人九)라고 했다. 혹시나 당진의 군주가 죄를 물어 토벌하러 오지나 않을까 걱정한 정문공이 화의를 청하기 위해 특별히 자인구를 사자로 보낸 것이다. 당진의 문공이 노하여 말했다.

「정백이란 놈이 초나라가 성복의 싸움에서 우리 당진군에게 패했다는 소식을 듣고 두려워하여 사자를 보낸 것이지, 본심에서 우러나온 행위라고 볼 수 없다. 일단 천자를 배알하고 난 후에 내 친히 군사를 인솔하고 가서 죄를 물으리라!」

조쇠가 문공을 보고 말했다.

「우리가 군사를 일으킨 이래 위후를 쫓아내고 조백을 붙잡아 가두었을 뿐만 아니라 초나라의 군사를 성복에서 대파하여 그 위세가 하늘을 진동시키고 있습니다. 이 마당에 다시 정나라에 너무 많은 것을 구한다면 우리 군사들의 노고가 적지 않게 됩니다. 주군께서는 정나라의 화의를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만약 정나라가 진실로 우리와 화의를 청하려고 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면 이만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다시 그들이 두 마음을 품는다면 병사들을 얼마간 휴식을 취하게 한 후에 토벌하여도 늦지는 않을 것입니다.」

문공이 조쇠의 말을 따라 정나라의 화의 요청을 허락했다. 당진의 대군이 형옹에 당도하여 진채를 세우고 한편으로는 호모와 호언 형제에게 본부병을 인솔하고 천토의 땅으로 이동하여 천자가 기거할 수 있는 궁궐을 축조하도록 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란지를 정나라의 신정성으로 보내 정백과 수호의 맹약을 맺도록 명했다. 란지와 정백이 맹약의 의식을 행하고 두 나라 사이에 맺어진 수호를 천하에 선포했다. 이어서 정백은 란지를 따라 친히 형옹의 땅으로 왕림하여 가져온 예물을 문공에게 바치며 그 동안 저지른 무례에 대한 용서를 구했다. 문공이 희생을 잡아 정백과 다시 삽혈의 의식을 행하하고 수호를 맺고 두 마음을 품지 않겠다고 하늘에 맹세했다. 의식이 끝나자 두 군주가 앉아서 대화를 나누던 중 문공이 초나라의 장수 성득신의 용맹과 장수로써의 인물됨을 칭찬하였다. 정백이 말했다.

「자옥은 이미 연곡성에서 자결하였습니다. 」

정백이 몇 마디 말을 더 나눈 후에 자리에서 일어나 물러가자 문공이 한탄했다.

「내가 오늘 정나라를 얻은 일은 그렇게 큰 기쁨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자옥이 죽었다는 소식은 기쁘기 이를 데가 없다. 자옥이 죽었으니 다른 사람인들 내가 어찌 두려워하겠는가! 여러 경들은 이제부터 베개를 높이 베고 두 다리를 쭉 펴고 잠을 자도록 하시오!」

염옹(髥翁)이 이를 두고 지은 시가 있다.

성득신은 비록 거칠고 사나운 사내였지만

장차 다시 싸운다면 승부는 알 수 없었을 것이다.

모두를 초나라가 오늘 다시 싸움에서 패했다고 하니

연곡성에 시체가 되어 누워있는 자옥만 불쌍하구나!

得臣雖是莽男兒(득신수시망남아)

勝負將來未可知(승부장래미가지)

盡說楚兵今再敗(진설초병금재패)

可怜連谷有輿尸(가령연곡유여시)

한편 호모와 호언은 왕이 묶는 궁을 지을 때 지켜야 할 규정에 따라 천토에 왕궁을 지었다. <명당부(明堂賦)⑧>란 글이 있는데 이를 보면 그 모습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양지녘에 자리잡은 빛나는 명당은 하늘을 향하여 우뚝 솟아 천하를 내려다본다. 하늘 아래 한 명뿐인 천자가 정령을 발하면 만국의 제후들이 달려와 배알하며 조공을 바친다. 명당의 내부는 종횡으로 각각 세 개씩의 방을 만드니 모두 아홉 개의 방으로 나누어진다. 정 가운데의 큰방에 태묘(太廟)를 모시고 그곳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으로 네 개의 태실(太室)을 두었다. 또한 각 태실의 한 가운데는 토지신에게 제사를 지낼 수 있는 유(溜)를 두었다. 열고 닫는 단짝 문으로36개의 문을 내고72개의 창문을 열을 지어 달았다. 왼쪽 것과 오른 쪽 것은 윗사람과 아랫사람은 그 직분이 같지 않음을 말하고 명당의 윗 모습은 둥글고 아래 모양은 네모진 것은 하늘과 땅이 기수와 우수로 이루어진 법칙에 따름이다. 관리들이 서는 곳을 여러 군데 만들어 놓음은 관리들 중 가장 높은 지위에 있는 삼공이 마땅히 명당의 가운데 계단에 늘어서서 여러 군신들과는 같이 서지 않음을 말한다. 작위가 후작인 제후들은 동쪽 계단의 동쪽 편에 서서 서쪽을 쳐다보다가 천자가 나타나면 북쪽으로 몸을 돌려 절을 올리고, 백작들은 서쪽 계단의 서쪽으로 서서 동쪽을 바라보다가 천자에게 절을 올린다. 자작들은 정문의 동쪽 폄에 늘어서고 남작들은 자작들의 서쪽 맞은편에 도열한다. 융족은 금(金)이니 서문 밖에, 이(夷)족은 목(木)이니 동문 밖에, 북문 밖에는 화(火)의 종족인 적(狄)족이, 남문 밖에는 수(水)의 종족인 만(蠻)족이 선다. 천하 구주의 지방 관원들은 명당 담장 밖에서 오른 쪽으로 열을 서서 도열하고 변경을 지키는 수장들은 담장 밖에 도열하여 지방 관원들의 맞은편인 왼쪽에 서서 도열한다. 주홍색 방패와 옥으로 자루를 장식한 의장용 도끼들은 마치 수많은 나무들이 우뚝 솟아나서 앞 다투어 천자에게 배알하듯이 하고 표범 가죽으로 깃대를 장식한 용이 그려진 천자의 깃발은 바람에 힘차게 펄럭이며 또한 엄숙하고 무성한 모습에 높은 산과 깊은 계곡을 이루고 있는 듯하다. 연기가 걷히고 여러 백관들이 일제히 도열하면 하늘에서 태양이 나타나고 천자께서 주옥을 꿰어 늘어뜨린 면류관을 쓰시고 임하시어 명당의 용좌에 앉으신다. 비단에 도끼의 문양을 수놓은 병풍을 뒤에 둘러치시고 남쪽을 향하여 앉으시어 땅에 엎드려 머리를 조아리며 절을 하는 천하 제후들과 구름 같은 관리들을 굽어보시며 온 천하가 복종하고 있음을 아신다.』

진문공은 왕궁 좌우에 몇 채의 관사를 더 짓기로 하고 밤낮으로 공사를 강행하여 한 달여 만에 공사를 끝낼 수 있었다. 이윽고 명당의 수건 공사가 끝나자 제후들에게 참석을 요청하는 격문을 써서 전하게 했다.

「5월 초하루에 천토(踐土)에서 모두 모여 천자를 배알하기를 바랍니다.」

마침내 약속한 날이 되자 초나라를 받들다가 이 번에 새로 당진과 수호를 맺은 정문공(鄭文公) 첩(捷)을 필두로, 평소에 당진과 우호적이었던 송성공(宋成公) 왕신(王臣), 제소공(齊昭公) 반(潘)이 그 뒤를 이어 회맹장에 당도했다. 비록 초나라와 수호를 맺기는 했지만 불참할 경우 당진으로부터 후환을 두려워한 노희공(魯僖公) 신(申)도 부득이 참석하지 않을 수 없었고, 더욱이 성복의 싸움에서 군사를 보내어 초나라를 도왔던 진목공(陳穆公) 관(款), 채장공(蔡庄公) 갑오(甲午)는 회맹에 참석하지 않았을 경우 당진의 보복을 받을까 두려워하여 회맹에 참가하지 않을 수 없었다. 주(邾)와 거(莒) 두 나라는 소국이라 말할 필요가 없고 단지 허나라 희공(僖公) 업(業)은 오랫동안 초나라만을 받들어 왔기 때문에 당진을 따르기를 원하지 않아 참석하지 않았다. 또한 섬진의 목공(穆公) 임호(任好)는 비록 당진과 우호를 맺고 있었지만 아직 중원에서 행해지는 회맹에 참석한 적이 없어 망설이고 주저하다가 시간을 놓쳐 참석하지 못했다. 위성공 정(鄭)은 양우(襄牛)에 몸을 피하고 있었고, 조공공 양(襄)은 오록에 잡혀 있었는데 후에 당진의 군주가 복국을 허락하기는 했지만 그때까지 확실하게 그들의 죄를 용서하지 않아 역시 회맹에 나올 수 없었다.

5. 천견참언(歂犬讒言)

- 아첨이 먹히지 않자 오히려 어진 숙무(叔武)를 모함하는 위나라의 공자 천견-

한편 위성공은 당진의 군주가 여러 제후들을 모이게 하여 회맹을 주재한다는 소식을 듣고 양우로 따라와 자기를 측근에서 모시고 있던 영유에게 물었다.

「회맹에 초청하는 편지가 위나라에는 오지 않은 이유는 진후의 노여움이 아직 풀리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 내가 이곳에 더 이상 머물러서는 안 될 것 같소!」

「주군께서 이곳에서 도망쳐 초구성으로 돌아간다 한들 나라의 사대부들 중 누가 나와서 맞이하겠습니까? 차라리 숙무(叔武)께 양위하시고 원훤(元咺)을 숙무와 함께 천토에 보내 회맹에의 참석을 허락해 달라고 애걸하게 한 후에 주군께서는 스스로 죄를 뉘우친다고 하면서 몸을 피해 다른 곳으로 장소를 옮기시면 어떻겠습니까? 다행히 하늘이 우리 위나라의 사직을 돌보아 숙무가 회맹에 참석할 수 있다면 우리 위나라의 군위는 숙무에게 돌아갈 것입니다. 숙무가 위나라 군주로 진후에게서 인정받는 일은 주군이 인정받는 경우와 같습니다. 왜냐하면 평소에 형제간의 우애가 깊은 숙무는 틀림없이 주공에게 군위를 양보하여 복위시키려고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위성공의 비록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지금 자기의 처지로써는 어쩌는 도리가 없었다. 위성공은 영유가 권한대로 손염(孫炎)을 초구성에 보내 숙무에게 나라의 일을 모두 맡긴다는 군명을 전하게 했다. 손염은 명을 받들어 초구성에 들어가 위성공의 말을 전했다. 위성공이 다시 영유에게 물었다.

「과인이 다시 이곳 양우의 땅에서 나가려고 하는데 어느 나라로 가야 하는가?」

영유가 주저하며 대답을 못했다. 위후는 영유가 대답을 하지 않자 다시 물었다.

「초나라로 가면 어떻겠는가?」

「초나라와는 비록 우리와 혼인을 하여 국교가 맺어진 나라이긴 하지만 실은 당진과는 원수 사이입니다. 또한 예전에 우리가 이미 국교를 끊는다고 선언하여 몸을 의탁할 수 없습니다. 차라리 진(陳)나라에 가심이 좋겠습니다. 진은 장차 당진을 받들기로 한 나라이며 또한 주군께서 앞으로 당진과 통하는데 그들의 힘을 빌릴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다. 초나라와 국교를 끊는다고 선언한 일은 과인의 뜻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초나라는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당진과 초나라 사이의 일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숙무로 하여금 당진을 받들게 하고 나는 초나라에 몸을 의탁하여 양쪽을 다 같이 관망하여 때를 보아 복국하면 이것 역시 한 가지 방법이 아니겠는가?」

위후가 즉시 양우를 빠져 나와 초나라를 향하여 길을 떠났다. 초나라의 변경을 지키는 관리가 위후의 뒤를 따라다니며 위나라의 의리 없음을 계속 매도했다. 할 수 없이 길을 바꾸어 진나라로 들어가게 된 위성공은 영유의 선견지명에 대해 진심으로 승복하게 되었다.

한편 손염으로부터 위후의 명을 전해 받든 숙무가 말했다.

「내가 나라를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섭정을 하기는 하겠지만 어찌 감히 양위를 받을 수 있단 말인가?」

숙무 자신은 즉시 원훤과 같이 회맹이 열리는 천토로 향해 길을 떠나면서 손염을 다시 위후에게 보내 자기의 말을 전하게 했다.

「당진의 군주를 배알하게 되면 내가 반드시 형을 위해 간청을 올려 위후의 자리에 돌아올 수 있게끔 하겠습니다.」

원훤이 숙무를 향해 말했다.

「우리 주군의 성격은 의심하고 시기하는 마음이 많아서 제가 아들이나 동생을 인질로 보내지 않으면 믿지 않을 것입니다.」

원훤이 즉시 자기의 아들 원각(元角)을 손염에게 딸려 위후에게 보냈다. 명분은 비록 위후에게 문후를 드린다고 했지만 실은 인질의 뜻이었다. 공자 천견(歂犬)이 아무도 몰래 원훤에게 말했다.

「지금 주공이 양우에서 돌아와 위후의 자리에 다시 오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대부께서는 어찌하여 주군이 양위한 일을 나라의 사대부들에게 공포하여 숙무님을 옹립하시지 않으십니까? 그렇게 되면 천토의 회맹장에 참석하여 진후(晉侯)로부터 정중한 환대를 받고 위나라에 돌아올 수 있어 대부께서는 숙무님과 이 나라를 같이 다스릴 수 있지 않겠습니까?」

「숙무님께서는 감히 형님을 저버리지 못하고, 나는 또한 감히 주군을 저버리지 못할 뿐이요! 이번 행차에는 오로지 진후에게 청하여 주군을 복위시키는 일 외는 다른 뜻이 없소!」

천견이 원훤의 단호한 의지를 듣자 말문이 막혀 자리에 일어나 물러갔다. 후일에 성공이 복위하게 되어 원훤이 자기가 한 말을 성공에게 전하여 그 죄를 면하지 못할까 걱정한 천견은 그 즉시 아무도 몰래 진나라에 머물고 있던 위성공을 찾아갔다. 그는 아무도 없는 자리에서 성공에게 원훤을 무고했다.

「원훤은 이미 숙무를 군위에 앉히고 맹회에 참석하여 그 군위를 인정받기 위해 진후에게 간청하려고 합니다.」

위성공이 그 말에 혹하여 손염을 불러 물었다. 손염이 듣고 대답했다.

「신은 모르는 일입니다. 원각이 현재 주군 곁에 있으니 만일 그의 아비가 음모를 꾸미고 있었다면 그 자식인 각이 필시 알고 있을 것입니다. 주군께서 불러서 한번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위후가 불러 그 일에 대해 물었으나 원각은 그 일에 대해 할 말이 있을 수 없었다. 영유가 곁에 있다가 말했다.

「원훤이 만약 주군께 불충한다면 어찌 기꺼이 그의 자식을 보내 주군을 모시라고 했겠습니까? 주군께서는 의심하지 마십시오.」

천견이 다시 아무도 없는 데에서 위후에게 말했다.

「주군의 복위에 반대한 원훤의 소행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그가 그의 자식을 이곳에 보낸 목적은 주군에게 충성을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주군의 동정을 엿보게 하여 숙무를 군위에 앉히려는 목적을 위해서입니다. 만약 숙무와 원훤이 회맹에 참석하여 진후에게 주군을 복위시켜 달라고 애걸할 생각이라면 그들은 감히 회맹에의 참석을 사양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공공연히 회맹에 참석하려고 하는 이유는 주군으로 하여금 믿게 하려는 생각에서입니다. 주군께서는 아무도 몰래 회맹장에 사람을 보내어 한 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위후가 천견이 말을 쫓아 비밀리에 천토에 사람을 보내 숙무와 원훤이 행동을 살펴보게 하였다. 호증선생이 시를 지어 이 일을 논했다.

우애의 동생과 충성된 신하가 정성을 다하고 있는데,

어찌하여 간악한 천견의 황당한 참언에 놀아나는가?

옛부터 부귀에는 시기(猜忌)가 생겨나는 법이라

충효는 항상 만고에 사무친 원한을 품고 있음이라!

弟友臣忠無間然(제우신충무간연)

何堪歂犬肆讒言(하감천견사참언)

從來富貴生猜忌(종래부귀생시기)

忠孝常含万古寃(충효상함만고원)

6. 천토주맹(践土主盟)

- 천토의 땅에서 천자를 모시고 맹주가 되는 진문공. -

한편 주양왕은 그해 여름5월 정미일에 어가를 움직여 천토를 향했다. 진문공이 제후들을 거느리고 천토에서30리 되는 곳까지 와서 영접하여 새로 지은 왕궁으로 모셨다. 양왕이 궁궐의 어전에 있는 옥좌에 앉자 제후들이 머리를 숙여 배알하였다. 천자를 배알하는 의식이 끝나자 문공이 성복의 싸움에서 노획한 전리품 중 무장을 갖춘 병거 백 승과 보졸 천 명 및 기타 병장기와 갑옷 등을 실은3십여 대의 수레를 주왕에게 바쳤다. 양왕이 크게 기뻐하여 친히 그 노고를 치하했다.

「제후(齊侯)가 세상을 뜬 이후로 형만의 초나라 세력이 더욱 커져서 중원을 능멸하고 있던 차제에 숙부께서 의를 세워 그들의 가지를 잘라 왕실의 위신을 세웠습니다. 우리 주나라는 문왕과 무왕 이래 모두 숙부의 노고에 힘입어 팔다리를 뻗고 편안히 쉴 수 있는데 어찌 짐인들 허리를 굽히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문공이 머리를 땅에 조아리며 절을 올리면서 말했다.

「신 중이가 요행히 초나라 오랑캐를 물리칠 수 있었던 것은 모두가 천자의 보살핌에 의해서입니다. 어찌 신만의 공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다음날 양왕이 문공을 위하여 주연을 준비했다. 주왕실의 상경 윤무공(尹武公)과 내사(內史) 숙흥(叔興)을 시켜 진후를 방백으로 임명한다는 칙명을 내렸다. 이어서 문공에게 대로(大輅)⑨에 천자만이 치장할 수 있는 장막과 천자가 제사를 지낼 때 입는 의복⑩, 융로(戎輅)⑪를 장식하는 치장물 그리고 무두질한 가죽으로 만든 모자, 또한 천자만이 사용할 수 있는 붉은 칠로 장식한 동궁(彤弓) 한 개, 동시(彤矢) 열 개, 검은 칠을 한 활 열 개와 화살 천 개, 검은 기장에 향기로운 풀을 넣어서 빚어서 천자가 제사 지낼 때 쓰는 거창주(秬鬯酒)⑫ 한 통 등을 하사하고 천자와 같이3백 명의 호위무사를 거느리고 행차할 수 있는 의전을 허락했다. 운무공과 숙흥이 왕명을 문공에게 전하면서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들을 수 있도록 큰 소리로 읽어 선포했다.

「그대 진후에게 이르노니 천자의 명을 거역하는 자는 스스로 판단하여 짐에게 허락을 받을 필요 없이 토벌을 할지어다!」

문공이 겸양하여 재삼 사양하고 나서야 주왕의 하사품과 명을 받았다. 양왕은 그 즉시 천자의 명으로 천하의 모든 제후들에게 글로 써서 포고하도록 했다. 다시 천자의 명을 받은 왕자호가 문공을 맹주로 지명하고 제후들을 규합하여 맹회를 주재하도록 했다. 문공이 천자와 같이 걸어서 왕궁의 어전에 임하자 제후들은 회맹장으로 직접 행차하지 못하고 먼저 들려 배알을 행했다. 주양왕은 왕자호에게 명하여 맹회의 의식을 감독하도록 했다. 진후가 먼저 등단하여 희생으로 잡은 소머리의 귀를 잡자 다른 제후들도 작위의 순서에 따라 맹단 위로 올라왔다. 위나라의 원훤도 숙무를 인도하여 진후 앞으로 오게 하여 인사를 올리도록 했다. 그날 숙무는 위나라 군주를 대신하여 맹회의 서약문에 맨 마지막으로 서명할 수 있었다. 왕자호가 서약문을 낭독하였다.

「무릇 맹회에 참석하여 서약한 제후들은 모두 맹세하노니 주왕실을 받들고 서로 해치지 말 것이며 이 맹세를 저버리는 자는 천지신명께서 용서치 않으시어 그 재앙은 자손 대대로 이어 받아 그 제사가 끊어지리라!」

제후들이 한 목소리로 소리 높여 답했다.

「왕명이 서로 화목하게 지내라고 하시는데 누가 감히 지키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제후들이 답하기를 마치고 작위의 순서에 따라 맹단에 올라가 삽혈을 하여 그 징표로 삼았다. 잠연 선생이 사서를 읽다가 이 대목이 이르자 시를 지어 논했다.

당진국의 군주와 신하들이 큰 계략을 세우더니

위엄을 떨치고 방백이 되어 제후들을 복종시켰다.

성복에서 승리의 깃발을 얻은 노흭물을 자랑하자⑬

소매를 서로 맞잡고 왕궁의 천자를 배알했다.⑭

晉國君臣建大猷(진국군신건대유)

取威定伯服諸侯(취위정백복제후)

揚旌城濮觀俘馘(양정성복관부괵)

連袂王宮覲冕旒(연몌왕궁근면류)

또다시 천토에 맹회를 열어 제후들의 부러움을 샀으나

규구⑮에서 자존망대하여 천자와 제후들을 속인

제환공의 말로는 깊은 유한을 남기게 되었으니

중이는 능히 천자의 뜻에 보답할 수 있겠는가?

更羨今朝盟踐土(갱선금조맹천토)

謾夸當日會葵邱(만과당일회규구)

桓公末路留遺恨(환공말로유유한)

重耳能將此志酬(중이말로유유한)

이윽고 맹회의 의식이 끝나자 진후가 숙무를 대리고 양왕을 접견한 후에 위나라 군주로 세워 성공을 대신하게 했다. 숙무가 엎드려 눈물을 흘리며 사양하는 말을 올렸다.

「옛날 영모(寧母)⑯의 회맹 때 정나라의 공자 자화(子華)가 그 부군을 환공에게 참소하여 몰아내려 하였으나 환공이 거절한 적이 있었습니다. 지금 군주께서는 어찌하여 환공의 백업을 계승하자마자 곧바로 이 숙무로 하여금 그 형을 참소하여 몰아내라고 하시는 것입니까? 군주께서 만일 이 숙무에게 은혜를 베푸시겠다면 부디 저의 처지를 불쌍히 여기시어, 바라옵건대 저의 형님으로 하여금 위나라의 군위를 다시 앉게 해주시기 바랍니다. 신의 형 정(鄭)이 군후 전하를 어찌 감히 목숨이 다하도록 받들지 않겠습니까?」

원훤 역시 땅에 엎드려 머리를 조아리며 위후의 죄에 대해 용서를 간절히 빌었다. 진후가 드디어 두 사람의 뜻을 들어주었다.

<제42회로 계속>

주석

①맥(貊) : 생김새는 곰같이 생겼으며 코는 코끼리 처럼 생기고 머리는 작고 다리는 짧으며 동과 철을 먹고 사는 괴수. 전회35회에 참조

②범(范) : 현 산동성(山東省) 양산(梁山) 부근의 고을로 당진(唐晉) 범씨들의 식읍. 당진의 유력한 세가 중 하나인 사씨(士氏)들은 이곳을 식읍으로 받자 자기들의 성을 범씨로 바꾸었다.

③자서(子西) : 성득신의 부하 장수 투의신(鬪宜申)을 말한다. 후에 초성왕(楚成王) 자신은 태자 상신(商臣-초목왕)을 폐하려고 하다가 오히려 반란을 일으킨 상신에게 살해당했다. 그리고 투의신은 성왕의 원수를 갚기 위해 모의했으나 사전에 계획이 발각되어 투월초(鬪越椒)에 의해 살해당했다. 즉 세 사람 다 제명에 살지 못하고 비명에 갔다.(46회 내용 참조)

④상읍(商邑) : 지금의 하남성 남양시(南陽市) 서쪽 약70키로의 석천현(淅川縣) 경내.

⑤양성(襄城) : 지금의 호북성 양번시(襄樊市)를 말함.

⑥형옹(衡雍) : 지금의 하남성 원양현(原陽縣) 서남에 있었던 정나라 령이다.

⑦천토(踐土) : 지금의 하남성 원양현(原陽縣) 경내에 있던 지명으로 형옹(衡雍)의 서남 쪽. 하남성의 성도인 정주시 북15키로.

⑧명당(明堂) : 왕실의 태묘(太廟)로 조상에게 제례를 행하는 집. 옛날에 상제(上帝)와 선조들의 제사를 지내고 제후를 입조 시키는 등 나라의 큰 전례는 모두 이곳에서 치러졌다. 여기에서 인용한 명당부는 당나라 때 문인 사관(謝觀)의 작품이다.

⑨대로(大輅) : 제후가 평상시 타고 다니던 수레를 말한다.

⑩별면(鷩冕)을 말한다. 별면은 물고기 가죽과 꿩털로 만든 제복(祭服)이다.

⑪융로(戎輅) : 전쟁을 할 때 천자나 제후가 타고 다니던 수레를 말한다.

⑫거창주(秬鬯酒) : 울창주(鬱鬯酒)라고 하며 제사를 지낼 때 주로 사용하기 위해 울금향을 넣어서 빚은 술을 말함.

⑬괵(馘) : 벨 괵. 전쟁에서 전공을 증명하기 위하여 적의 왼쪽 귀나 머리를 베는 행위

⑭면류(冕旒) : 옛날 임금 또는 대부(大夫)이상의 귀인이 조례(朝禮)나 제례(制禮) 때에 입는 조복(朝服)에 갖추어 쓰던 관. 겉은 검으며 속은 붉고 위에는 장방형의 판이 놓이고 판 앞으로 끈을 늘이어 주옥을 꿰었는데 임금은12줄, 제후(諸侯)는9줄, 상대부(上大夫)는7줄, 하대부(下大夫)는5줄을 달았다.

⑮규구(葵邱) 회맹 : 제환공(齊桓公)이 추대하여 주나라 왕위에 앉은 양왕이 그 원년 기원전651년 환공에게 감사의 표시를 하겠다고 하자 환공이 열국의 제후들을 규구(葵邱: 지금의 하남성 조현(曹縣) 서쪽 약20키로 지점)에 모이게 하였다. 주양왕은 천자만이 행할 수 있는 여러 가지 권한을 제환공에게 부여하자 이에 고무된 환공은 더 나아가 천자만이 행할 수 있는 봉선(封禪) 의식 마저 행하겠다고 하여 스스로 자존망대(自尊妄大) 한 것을 비난한 것임. (전회24회 참조)

⑯영모(寧母) : 지금의산동성(山東省) 미산호(微山湖) 중간되는 곳에 있던 땅으로 용고촌(龍賈村) 부근이다. 기원전654년 정나라가 초나라를 받들자 제환공이 군사를 이끌고 정벌하러 왔으나 초나라는 구원군을 보내주지 않았다. 정문공은 친초파였던 신공(申公)을 죽여 제나라에 강화를 청했다. 제환공이 강화조약을 맺기 위해 제후들을 영모로 부르자 정문공은 자기 대신 세자 화(華)를 보냈다. 세자 화가 영모의 회맹에 참석하여 환공에게 부군인 문공을 쫓아내고 자기를 정군으로 세워 주면 제나라를 영원히 받들겠다고 했다. 관중이 듣고 반대하여 자화의 일을 문공에게 통지하여 자화는 정문공에게 살해당했다. (24회 참조)

【평 설】

성복의 싸움 이후, 중원제후국은 당진국의 깃발 아래에서 북상하는 초나라와 백여 년에 걸친 패권 싸움에 끼어들게 되었다. 당진과 초의 남북 양대 세력 사이의 중원 제후국들은 마치 두 개의 배 위에 한 다리를 올려놓고 있는 형국이었다. 천토의회맹 직전 진문공에게 포로로 잡힌 위성공(衛成公)의 태도가 대표적이었다. 어쩔 수 없이 그의 군주자리를 동생 숙무에게 양위 한 후에 진문공이 주재하는 천토회맹에 참석하도록 한 위성공은 한편으로는 아무도 몰래 나라밖으로 도망쳐서 사태의 추이를 지켜봐가며 적절한 행동을 취하려고 했다.

형으로부터 사직을 보존하라는 명을 받은 숙무는 군위에 절대 오르지 않겠다고 천명했다. 이윽고 천토의 회맹에 참석하여 진문공을 접견한 숙무는 그의 형 위성공에 대한 죄를 빌고 복위시켜달라고 애원했다. 그러나 위성공은 오히려 숙무가 자기를 대신하여 위나라 군주 자리를 차지하려는 야심을 갖고 있다고 의심했다.

다음편 이야기지만 우여곡절 끝에 숙무가 진문공으로부터 허락을 받은 위성공은 환국하게 되자 성공과 숙무 사이에서 양다리를 걸치고 있던 천견(歂犬)은 위성공의 복위 외는 아무런 사심을 갖고 있지 않던 숙무를 살해하게 된다. 이에 위나라의 내부투쟁을 조사하여 명백히 밝히고 위성공의 측근들을 모두 처형한 진문공은 위나라에 위성공 대신 다른 사람을 세우기로 결심했다. 진문공이 패자의 권위로 제후국들 내부 문제를 직접 관장하기 시작한 것은 제후들을 호령하는 맹주로써의 권력을 휘두른 것이다.

연곡성(連谷城)은 좌전 희공(僖公) 28년(전632) 조에 성복대전에서 당진군에 패배한 자옥(子玉) 성득신(成得臣)이 잔병을 수습하여 들어간 후 패전의 책임을 지고 자살한 곳이라고 했다. 확실하지는 않으나 지금의 호북성 양번시(襄樊市) 서쪽의 곡성현(谷城縣)이라는 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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