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국연의

 

   
 
춘추쟁패
1부1 제후굴기
2부2 관포지교
2부3 백리해
2부4 유랑공자
3부5 초장왕
3부6 이일대로
4부7 오자서
전국쟁웅
5부8 전국칠웅
6부9 합종연횡
7부10 진시황
초한축록
통일천하
홍곡지지
초한축록
토사구팽
· 오늘 :  235 
· 어제 :  232 
· 최대 :  2,389 
· 전체 :  1,652,886 
 
  2004-05-11 11:30:194117 
제42회. 河陽受覲(하양수근), 君臣對獄(군신대옥)
양승국
 그림42-1. 하양(河陽)으로 나아가 제후들의 조현을 받은 주양왕 001.jpg  (502.7K)   download : 163
 군신대옥.jpg  (235.7K)   download : 72
일반

제42회 河陽受覲 君臣對獄(하양수근 군신대옥)

하양의 땅에서 제후들의 조현을 받은 주양왕과

자신의 군주와 옥사를 벌리는 위나라의 원훤

1. 의심암귀(疑心暗鬼)

- 천견(歂犬)의 참언에 미혹되어 어진 동생 숙무를 의심하여 살해한 위성공-

천토(踐土)에서 회맹의 의식을 끝낸 진문공이 자기나라로 귀국하자 각국의 제후들도 헤어져 각기 자기들 본국으로 돌아갔다. 주양왕21년, 기원전632년의 일로써 진문공이 진후의 자리에 오른 지5년 째 되는 해였다.

이때 천견(歂犬)의 말에 미혹되어 숙무와 원훤을 의심한 위성공은 심복을 몰래 천토의 회맹장에 보내 두 사람의 행동을 살펴보게 했다. 성공의 심복은 원훤의 권유에 따라 맹단에 오른 숙무가 회맹의 맹세문에 자신의 이름을 써넣는 모습을 보았다. 그 심복은 상세한 정황을 더 알아보지도 않고 즉시 진(陳)나라로 달려와 성공에게 자기가 본 대로 고했다. 성공이 듣고 크게 노했다.

「숙무란 놈이 과연 위나라의 군위에 앉으려고 하는 심보를 갖고 있구나!」

분을 삭이지 못한 성공이 계속해서 큰소리로 욕을 해댔다.

「원훤이라는 놈은 그 군주에게 반역하는 역적임에 틀림없다. 스스로 부귀와 영화를 탐하여 새로이 군주를 세우려고 하면서 오히려 그 아들놈을 나에게 보내어 나의 동정을 살피게 했도다! 내가 어찌 너희 부자를 용납할 수 있겠느냐?」”

원훤의 아들 원각이 곁에 있다가 무어라고 변명의 말도 미처 하기도 전에 위성공이 칼을 빼어 들고 한번 휘두르니 그의 목이 땅에 떨어져버렸다. 정말로 억울한 일이었다! 원각의 시종이 황급히 도망쳐 원훤에게 가서 그의 아들이 성공에게 살해된 일을 고했다. 원훤이 듣고 말했다.

「아들놈의 생사는 다 자기가 타고 태어난 명이다! 주군이 비록 이 원훤을 버린다고 해서 신하인 신분으로써 어찌 주군을 버릴 수 있겠는가!」

사마만(司馬瞞)이 곁에 있다가 원훤을 향하여 말했다.

「주공께서 이미 대부를 의심하고 있는데 마땅히 몸을 피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찌하여 관직을 버리고 위나라를 떠남으로써 대부께서는 사사로운 마음이 추호도 없다는 사실을 밝히지 않으십니까?」

「내가 만약 이 시점에서 벼슬을 버린다면 누가 주군을 위해 군위를 회복시켜 이 나라를 지킬 수 있겠습니까? 아들이 살해된 일은 사원(私怨)이고 나라를 지키는 일은 공사입니다. 사사로운 원한 때문에 국가 대사를 그르친다면 이것은 신하된 자로써 나라에 보답해야 하는 대의에 어긋나는 행위입니다.」

사마만과 헤어진 원훤은 그 즉시 숙무을 찾아가 성공을 위후의 자리에 복위시켜 달라는 글을 써서 진후에게 올리게 했다. 원훤이야 말로 사사로운 것을 버리고 대의를 쫓은 위나라의 훌륭한 신하였다.

한편 진후는 주양왕으로부터 방백으로 책봉을 받고 귀국 길에 올라 무사히 강도(絳都)에 당도했다. 이윽고 도성에 입성하는 날, 노인들은 부축하고 어린아이들은 등에 엎은 백성들이 길을 가득 메우고 앞다투어 문공의 위엄스런 용모와 군사의 장중한 행렬을 구경하려고 하면서 반찬과 음식을 장만해 문공이 이끌고 온 군사들을 마중했다. 백성들이 지르는 탄성이 여러 곳에서 자자하더니 모두를 소리치기 시작했다.

「우리들의 영명하신 군주님이시여!」

백성들의 얼굴에는 기쁨과 웃음이 넘쳐흘렀다. 모든 백성들은 하나 같이 말했다.

「우리 당진국은 앞으로 크게 일어리라!」

그 때의 광경을 노래한 시가 있다.

만난을 헤치고 군위에 오른 문후①의 사업을 계승하여

초나라를 물리쳐 제환공의 공적을 다시 일으켰다.

옛날 19년간을 구걸하며 유랑하던 나그네가

하루아침에 성가가 높아져 푸른 구름을 탔구나!

捍艱復纘文侯緖(한간복찬문후서)

攘楚重修桓伯勛(양초중수환백훈)

十九年前流落客(십구년전유락객)

一朝聲價上靑雲(일조성가상청운)

문공이 조당에 임하여 여러 신하들의 하례를 받은 후에 성복의 싸움에 대한 논공행상을 행하여 호언의 공을 맨 앞에 놓고 선진을 두 번째로 했다. 문공의 처사에 수긍하지 못한 여러 장수들이 말했다.

「성복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인은 귀신같은 작전을 펼쳐 초군을 격파한 선진의 전공 때문입니다. 오늘 오히려 호언의 공을 선진 원수의 앞에 놓으니 어찌된 연유입니까?」

「선진 원수는 초군과 성복에서 싸우기 전에 ‘초나라와 싸우게 되면 절대 져서는 안 됩니다.’라고 말했다. 반면에 호언은 ‘만일 초나라와 싸우게 되면 우리가 양보하여 초나라에 신의를 잃으면 안 됩니다‘라고 했다. 무릇 싸움에서 승리를 쟁취하는 일은 한 때의 공이라 할 수 있지만 신의를 보전하는 일은 만세에 걸친 이로움이라! 어찌하여 일시의 공이 만세에 이르게 한 공에 앞선다 하겠는가? 이런 연유로 호언의 공을 앞세운 것이다.」

여러 제장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복종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호언이 다시 상주했다.

「옛날 순식(荀息)은 해제(奚齊)와 탁자(卓子)를 지키다가 죽었습니다. 그의 충절이 가상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마땅히 그의 후손들에게 작록을 내려 순식의 충절에 보답해야 한다고 사료됩니다.」

문공이 허락하고 즉시 순식의 아들 순림보를 대부로 삼았다.

그때 마침 집에 머물며 그 처자를 돌보고 있던 주지교는 문공이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성밖까지 나가 마중을 나갔으나 문공이 명하여 잡아서 포승줄에 묶은 후 함거에 실어 뒤따라오게 하였다. 논공행상이 끝나고 사마 조쇠를 불러 주지교의 죄를 논하게 했다. 조쇠가 참수형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주지교가 처자가 병이 나서 본의 아니게 맡은바 임무를 소홀히 했다고 하면서 관대한 처분을 구했으나 문공이 준열하게 꾸짖었다.

「‘군주를 모시고 다니는 자는 그 몸을 뒤돌아보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하물며 그 처자야 말해서 무엇하리!」

문공은 즉시 큰 소리로 명을 내려 참수형에 처한 후 그의 수급을 성루에 메달아 성중의 백성들에게 보이게 했다. 문공이 군사를 한 번 출동하매, 맨 처음 전힐을, 두 번째로 기만을, 금일 다시 세 번째로 주지교를 참수형에 처한 것이다. 이 세 명은 모두 당진의 이름난 숙장들이었지만 령을 어기면 반듯이 죽여 전혀 그 죄를 가볍게 감하여 주지 않았다. 이렇게 함으로써 삼군에 기강이 서고 제장들이 명에 따르게 되었다.『상벌이 분명하지 않으면 이룰 수 있는 일은 한 가지도 없고 상벌이 분명하면 천하도 다스릴 수 있다.』②라는 옛말이 있는데 이런 경우를 두고 한 말인 것이다. 문공이 제후들을 호령하는 방백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신상필벌을 엄격하게 행했기 때문이었다.

패자로써의 지위를 확고히 하기 위해 문공은 군사의 수를 늘리기 위해 선진과 상의했다. 군사의 편제를 확대하여 군사의 수를 늘리고자 하였으나 감히 천자만이 보유할 수 있는6군의 편제로 할 수가 없어3군에 더하여3행(行)이라는 편제를 새로 만들었다. 그래서 당진은 삼군의 기존 편제에 더하여3행을 별도로 두게 되어 순림보를 중행대부(中行大夫)로 삼고 선멸은 좌행대부(左行大夫), 도격(屠擊)은 우행대부(右行大夫)로 삼았다. 삼군과 삼행의 편제는 분명6군에 해당되었으나 단지 그 이름만 달리 했을 뿐이었다.③ 이때부터 군사의 수를 늘려6군을 보유하게 된 당진과 천하를 놓고 다툴 수 있는 나라는 없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문공이 조당에 앉아 호언 등과 조와 위 두 나라의 일을 논하고 있었는데, 근시가 갑자기 들어오더니 문공에게 고했다.

「위나라에서 국서를 보내 왔습니다.」

「이 편지는 필시 숙무가 그의 형을 위해 용서를 구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문공이 편지의 겉봉을 뜯고 읽었다.

「군후께서 우리 위나라의 사직을 망하게 하시지 않으시고 구군의 복국을 허락하셨습니다. 이에 나라 안의 모든 신료들과 백성들은 목을 길게 빼고 군후의 의롭고 높은 뜻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진목공(陳穆公)도 역시 사절을 진후에게 보내 위성공 정(鄭)이 죄를 뉘우치고 스스로 새로운 마음으로 당진을 받들려고 한다는 뜻을 전했다. 문공이 즉시 위나라 숙무에게는 위후가 자기나라로 돌아가 복위를 해도 좋다는 편지를 써서 보내고, 또한 진(陳)나라 목공에게는 사자를 보내 위성공의 복위를 허락했다는 사실을 알리게 했다. 계속해서 오록을 지키고 있던 노장군 극보양에게는 위후가 복국하기 위해 초구성에 들어가더라도 군사를 이끌고 가서 막을 필요가 없다는 내용의 령을 써서 보냈다. 성공의 죄를 용서한다는 진후의 편지를 받은 숙무는 급히 어가를 준비하여 진나라로 보내 위후를 모셔 오게 하였다. 진나라 목공 역시 사람을 위성공에게 보내 위나라로 들어가 군위에 오르라고 권했다. 천견이 성공에게 말했다.

「숙무님께서 위후의 자리에 계신지 이미 오래라 나라 안의 사대부들 중 숙무님을 따르는 무리들이 적지 않을 것이고 이웃 나라들과도 동맹을 맺고 있어 이번에 모셔 가기 위해 어가를 보냈다 하지만 가볍게 믿으시면 안 되는 일입니다.」

「과인도 역시 그것을 걱정하고 있었노라!」

성공이 즉시 영유를 먼저 초구에 보내 성안의 분위기를 알아보게 했다. 영유는 위후의 명을 받들어 내키지 않은 마음으로 초구성에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영유가 초구성 안으로 들어가자, 그때 마침 숙무가 조당에서 정사를 보고 있었다. 영유가 조당에 들어가서 살펴보니 숙무는 그때 전당의 동쪽에 마련한 의자에 앉아 나라 일을 보고 있었다. 이윽고 숙무가 조당으로 들어오는 영유를 보더니 당상에서 내려와 몸소 영유를 맞이하는데 그 태도가 공손하기 그지없었다. 영유가 짐짓 물었다.

「태숙께서 섭정을 하시면서 어전의 옥좌에서 앉으시지 않으시고 어찌하여 이리 구차한 모습으로 정무를 보고 계십니까?」

「저 옥좌는 형님이 돌아 오셔서 앉으실 자리라 제가 비록 그 옆자리에나마 서 있게 되어도 마음이 불안하여 무서워 벌벌 떨게 되는데 어찌 감히 그 자리에 정좌하여 일을 볼 수 있단 말이요!」

「이 영유는 금일 태숙님의 진실한 마음을 알았습니다.」

「내가 형님을 생각하고 그리워하는 마음이 아침저녁으로 간절하니, 원컨대 대부께서는 하루 빨리 형님께 환국 하도록 권유하여 나의 마음을 위로해 주시기 바랍니다.」

영유가 즉시 숙무와 날짜를 정하여 유월 신미일을 길일로 택하여 입성하기로 약조하였다. 영유가 조당에서 나와서 성중의 백성들이 하는 말을 들어봤으나, 아무런 의심스러운 말을 듣지 못했으나, 단지 조정에 있던 백관들의 의견만이 분분했을 뿐이었다.

「옛날의 군주가 만약 다시 환국하면 여기에 남아 있던 사람들과 구군을 따라 나선 사람으로 구분하여, 따라나선 사람에게는 상을 주고 남아 있게 된 사람들은 죄를 줄 것인데 이를 어찌해야 하는가?」

영유가 듣고 말했다.

「나는 구군의 명을 받들어 여기에 왔습니다. 이 자리에서 구군의 유지를 전하겠습니다. ‘따라 나선 사람이나 머무른 사람이나 논하지 않겠으며, 따라서 공을 주지도 죄를 묻지도 않겠다.’ 만약에 그대들이 믿지 못하겠다면 내가 마땅히 희생을 잡아 그 피로 맹세를 하겠소!」

여러 백관들이 말했다.

「대부께서 능히 같이 맹세를 한다는데 어찌 우리가 다시 의심을 할 수 있겠소?」

영유가 즉시 하늘에 대고 맹세했다.

「따라 나선 사람들은 주군을 위함이었고, 남게 된 사람들은 사직을 지키기 위함이었으니 나라 안에 있었건 밖에 있었건 각기 그 힘을 다하였다. 군주와 신하들이 일심협력하여 사직을 보전하게 되었다. 만약에 아직도 서로 속이는 것이 있다면 천지신명께서는 천벌을 내리리라!」

위나라의 군신들은 마음이 흔쾌하게 되어 서로 헤어지면서 한 목소리로 말했다.

「영유는 결코 우리를 속이지 말지어다!」

숙무가 다시 대부 장장(長牂)을 위나라의 교외를 지키는 관으로 보내 분부를 전하게 했다.

「만일 남쪽에서 사람이 오거든 시간에 구애받지 말고 즉시 나라 안으로 맞아들이라!」

한편 초구에서 돌아온 영유가 성공에게 보고하였다.

「숙무님이 진심으로 주군을 맞이하고자 하십니다. 다른 나쁜 생각은 갖고 있지 않으십니다.」

위후도 더 이상 믿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위후의 면전에서 늘상 숙무를 음해했던 천견은 성공이 위후의 자리에 복위하면 자신이 두 사람을 이간한 사실이 알려져 죄를 받게 되지나 않을까 걱정하여 또다시 숙무를 참소했다.

「태숙과 영대부가 입국한 날짜를 정해 약속했는데 그 전에 주군을 해치려는 준비기간을 갖기 위해 그런 줄 누가 알겠습니까? 주군께서 미리 약속한 날짜에 앞서서 초구성에 입성하시면 그것은 아무도 예상치 못한 행동이라 틀림없이 입국에 성공할 수 있습니다.」

위후가 다시 천견의 말에 혹하여 약속한 날자를 기다리지 않고 즉시 어가를 출발 시켰다. 천견이 선도를 맡아 혹시 궁궐에서 일어날지 모르는 뜻밖의 사고에 대비하겠다고 하자 위후가 허락했다. 영유가 위후에게 간했다.

「신이 이미 도성 안의 백성들과 입국하는 기일을 정했는데 주군께서 만약에 약속기일을 어겨 먼저 당도하시게 되신다면 백성들은 틀림없이 의심할 것입니다.」

천견이 큰소리로 영유를 나무랐다.

「그대는 주공께서 하루속히 환국하여 군위에 오르시는 것을 원하지 않고 있는가? 무슨 뜻으로 빨리 환국하시겠다는 주공의 뜻을 반대하는가?」

영유는 감히 더 이상 자기의 뜻을 세우지 못하고 말했다.

「주군께서 기어이 어가를 지금 당장 출발시키겠다고 하신다면 신이 먼저 성안으로 들어가 신료들과 백성들에게 이 일을 미리 알려 성안의 사람들의 마음을 안심시키도록 하겠습니다. 」

「경의 말은 성안의 백성들을 위해서이다. 그러나 과인이 서두르는 이유는 성안의 신료들과 백성들의 얼굴을 먼저 보고 싶어서가 아니다. 그들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이다.」

영유가 하릴 없이 위후의 앞을 물러나가자 천견이 위후를 향해 말했다.

「영유가 먼저 가서 우리가 약속 기일에 앞서 당도한다는 사실을 알려 준다면 의심을 받을 우려가 있습니다. 주군께서는 마땅히 속히 서둘러야 합니다.」

위후가 수레를 모는 어자를 재촉하여 전속력을 내어 초구성을 향해 달리게 했다.

한편 성공의 일행에 앞서 위나라 변경의 관문에 당도한 영유를 관문을 지키고 있던 장장(長牂)이 알아보고 즉시 관문 열고 안으로 영접했다. 영유가 보고 말했다.

「주군께서 곧바로 뒤따라 당도하실 예정이오.」

「지난 번에 약조하기를 신미일에 들어오시기로 하였는데 오늘은 아직 무진일 입니다. 어찌3일이나 빨리 오시게 되었습니까? 대부께서는 먼저 성안으로 들어가서 이 소식을 전하십시오. 나는 이곳에 남아서 주군을 맞이하겠습니다.」

영유가 즉시 성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출발하려는 순간 선발대를 이끌고 당도한 천견이 말했다.

「주군께서는 바로 뒤에 계신다. 」

장장이 급히 수레들을 마련하여 올라타고 위후를 맞이하기 위해 관문 밖으로 달려 나갔다. 그러나 천견은 위성공의 본대를 기다리지 않고 곧바로 선발대를 이끌고 성안으로 들어갔다. 그때 숙무는 친히 궁노(宮奴)들을 거느리고 궁실의 청소를 마친 후에 정원의 한 곳에 가서 목욕과 이발을 하고 있었다. 영유가 와서 주군이 이미 당도하였다는 말을 전하자 숙무는 한편으로는 놀라고 한편으로는 기뻐했지만 그것은 전혀 뜻밖의 일이었다. 숙무가 갑작스러운 일에 잠시 머뭇거리다 마음을 진정시키고 위후가 무슨 연고로 기일을 앞당겨 오게 되었는지영유에게 물어 보려고 했다. 그러나 그때 맹렬한 기세로 달려오는 천견이 거느리는 선발대의 거마 소리가 들렸다. 숙무는 위후가 이미 당도하였다고 생각하고, 마음이 기쁜 나머지 이발이 다 끝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자리에 일어나더니 한 손으로 머리를 틀어쥐고 위후를 맞이하기 위해 밖으로 달려 나가려고 했다. 그 순간 숙무는 자기가 있는 곳을 향하여 다가오고 있는 천견을 보았다. 천견의 마음은 오직 숙무를 살려 두어서 그 형제가 상봉하게 될 경우, 일의 내막이 밝혀져 돌아오게 될 후환만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는 자기 쪽으로 오고 있던 숙무를 향해 활에다 화살을 재어 쉿 소리와 함께 쏘았다. 화살은 정통으로 날아가 숙무의 명치끝을 명중했다. 가엾게도 숙무는 형님을 마중 나가다가 생각지도 않은 화살을 맞고 죽고 말았다. 영유가 황망 중에 숙무를 부축하여 구하려고 했으나 이미 숨이 넘어간 뒤였다. 숙무가 살해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원훤은 크게 놀라더니 종내에는 사건의 내막을 짐작하고 큰소리로 욕했다.

「무도혼군아! 어찌 무고한 사람을 그렇게 함부로 죽인단 말인가! 하늘이 어찌 너 같은 사람을 용납하여 살려 두겠느냐? 내가 마땅히 진후에게 달려가 이 일을 호소하여 네가 앉은 군주 자리가 편안하겠는지 내가 한 번 보리라!」

원훤은 말을 마치고 일장통곡을 한번 하더니 급히 행장을 꾸려 당진국을 향해 달려갔다. 염옹(髥翁)이 이일을 두고 시를 지었다.

굳은 마음으로 나라를 지켰음은 형을 위함이었는데

무정한 화살은 유정한 동생의 가슴을 맞추었구나!

그러나 위후가 의심하고 시기하지 않았다면

어찌 선발대가 제 멋대로 병기를 휘둘렀겠는가?

堅心守國爲君兄(견심수국위군형)

弓矢无情害有情(궁시무정해유정)

不是衛侯多忌忮(부시위후다기기)

前驅安敢擅加兵(전구안감천가병)

한편 위나라 경계를 지키는 관문에 당도해 장장의 영접을 받은 성공은 어떻게 해서 자기를 영접하러 나오게 되었는지 물었다. 장장은 숙무가 군주께서 일찍 오면 일찍 오는 대로 늦게 오면 늦게 오는 대로 관문을 열고 안으로 모시라는 분부에 따라 기다리고 있었다고 성공에게 말했다. 위후가 한탄하면서 말했다.

「내 동생이 과연 다른 뜻이 없음을 알겠다.」

곧이어 장장의 인도에 따라 관문을 통과하여 초구성에 당도한 성공을 접견한 영유가 눈물을 흘리면서 말했다.

「숙무님은 주공께서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기쁜 마음에 이발도 끝내시지 못하고 한 손으로 머리를 붙들고 영접을 하러 나오시다가 뜻밖에 주군께서 보내신 선발대가 쏜 화살을 맞고 살해 당하셨습니다. 소신 영유가 이로 인하여 성중의 백성들에게 신의를 잃었으니 만 번 죽어 마땅합니다.」

일의 전말을 알게 된 위후가 얼굴에 부끄러운 기색을 띄우며 영유를 향해 말했다.

「과인은 이미 숙무가 원통하게 죽었다는 사실을 알았노라! 내가 숙무의 원한을 풀어 줄 것이니 경은 더 이상 슬퍼하지 말라.」

위후가 말을 마치고 어가를 달리게 하여 조당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그때까지 위후가 입국한 사실을 모르고 있었던 위나라 관리들은 갑자기 위후가 나타나자 당황하여 모두 한꺼번에 배알(拜謁)을 올리며 갈팡질팡한 모습이 되어 조당 안은 혼란에 빠졌다. 이윽고 백관들의 배알이 끝나자 영유가 위후를 이끌고 숙무의 시신이 있는 곳으로 갔다. 숙무는 두 눈은 부릅뜨고 있어 마치 살아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위후가 숙무의 머리를 들어 그의 무릎에 놓더니 손으로 숙무의 시신을 어루만지면서 목을 놓아 통곡하였다.

「숙무야, 숙무야! 내가 너 때문에 돌아오게 되었는데 너는 나를 위해 죽었구나!」

숙무의 두 눈에서 빛이 나와 반짝반짝 하더니 곧이어 눈이 감겼다. 영유가 말했다.

「선발대의 책임자를 죽여 영전에 바침으로서 숙무님의 원한을 풀어주시기 바랍니다.」

위후가 즉시 선발대를 이끌고 온 천견을 잡아오도록 명했다. 그때 천견은 죽음을 피해 나라 밖으로 도망치려는 중이었다. 영유가 보낸 군사들은 미처 도망치지 못한 천견을 잡아와 위후 앞에 끌고 왔다. 천견이 위후를 보자 말했다.

「신이 숙무님을 죽인 것은 모두가 주군을 위한 일이었습니다. 」

위후가 크게 노하여 말했다.

「너는 나의 동생을 음해하더니 결국은 네 멋대로 무고한 사람을 살해하고서는 오늘 그 죄를 나에게 돌리려고 하는구나!」

성공이 좌우에게 명하여 천견을 끌고 나가 참수형에 처하라고 호령했다. 이어서 숙무는 군주의 예를 갖추어 장례를 후하게 치르도록 분부했다. 성중의 백성들은 처음에 숙무가 피살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의론이 분분했으나 곧이어 성공이 숙무를 죽인 천견을 주살하고 숙무의 장례를 성대하게 치러주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성안의 인심은 차츰 안정되기 시작했다.

2. 하양수근(河陽受覲)

- 천자를 하양으로 불러 제후들의 조현을 받게 한 진문공-

한편 위나라에서 도망쳐 당진의 도성에 당도한 원훤은 문공에게 알현을 청했다. 문공 앞으로 인도된 원훤은 땅에 엎드려 일장통곡을 한 다음, 위후가 그 동생 숙무를 의심하고 시기한 끝에 사람을 시켜 숙무를 활로 쏘아 죽였다고 호소했다. 영유는 말하고는 곡을 하고 곡을 하고는 말을 하여 위나라에서 일어난 일의 전말을 문공에게 소상하게 고했다. 원훤의 하소연을 듣고 난 문공은 곤혹스러운 기색을 얼굴에 띄우며 좋은 말로 원훤을 위로하고 관사에 머물러 하회를 기다리도록 했다. 문공이 군신들을 불러 모이도록 한 다음 물었다.

「과인이 여러 경들의 도움을 받아 한 번 싸워 초나라를 물리침으로 해서 천토의 땅에서 회맹을 주재했습니다. 이에 천자께서 수고로움을 아끼시지 않으시고 친히 왕림하시어 제후들은 나의 명을 즐거이 따랐습니다. 과인이 이룬 백업은 제환공의 것과 어느 정도 견줄 수 있다고 하겠으나 그러나 섬진의 군주도 회맹에 참석하지 않았고 허나라 같은 소국도 감히 불복하고 있으며 정나라는 비록 맹회에 참석은 했지만 아직도 두 마음을 품고 있으며 위나라는 복국을 시킨지 어제인데 벌써 맹회에 참석하여 서명을 한 동생을 멋대로 살해했습니다. 그래서 과인은 맹회에서 한 서약을 이번 기회에 밝혀 위약한 자들을 토벌하고 주살하여 법의 준엄함을 보여야 하겠습니다. 그렇지 않고 지난번처럼 제후들을 다시 모이게 한다 한들 시간이 지나면 유야무야 되어 흩어지게 될 것입니다. 여러 경들은 이것을 막을 수 있는 좋은 계책이 있습니까?」

선진이 앞으로 나와 말했다.

「회맹을 열어 두 마음을 갖고 있는 나라를 토벌함은 방백이 해야 할 일입니다. 원컨대 저에게 한 떼의 군마를 떼어 주시면 군명에 따라 두 마음을 갖고 있는 나라를 토벌하겠습니다.」

호언이 나서서 간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방백이 제후들을 호령하여 부릴 수 있음은 천자의 위엄을 등에 업고 행하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천자께서는 천토의 땅에 친히 왕림하시어 각국의 제후들을 회견했는데 이것은 매우 어렵게 행한 일이라 하겠습니다. 또한 천토의 회맹 이후로 지금까지 주공께서는 아직 천자를 조현하는 예를 행하지 않으셨습니다. 이는 실로 우리가 저지른 결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찌 다른 제후들을 복종시킬 수 있겠습니까? 주공을 위해서 계책을 하나 말씀드린다면 천자를 조현한다는 명분을 삼아 제후들을 소집하시고, 그래도 오지 않는 제후들이 있다면 그때에는 천자의 명을 받들어 토벌에 임하십시오. 천자를 조현하는 일은 커다란 예이고 조현을 하지 않아 천자를 대하기를 태만히 하는 죄를 토벌하는 일은 큰 명분입니다. 큰 예를 행하고 큰 명분을 받드니 이것 또한 큰 업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시면 주군께는 대업을 행하실 수 있습니다.」

조쇠가 나서서 우려하는 바를 말했다.

「자범의 말은 대단히 훌륭한 계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의 어리석은 소견으로는 주공께서 왕도에 입조하여 주왕에게 조현을 올리는 일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어찌하여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합니까?」

「제후들이 주나라 왕성에 입조하여 주왕에게 조현을 올리는 의식은 오랫동안 행해지지 않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 당진의 강한 국세를 이용하여 여러 제후들을 취합한 후 왕성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여러 나라를 통과해서 행진해야합니다. 우리 당진국의 대군이 천자국을 향해 행진한다면 천하의 백성들은 놀라 불안에 떨 것입니다. 신이 우려하는 바는 천자가 주군을 의심하여 조현을 올리겠다는 주공의 청을 물리치는 경우입니다. 천자가 조현의 청을 받아들이지 않게 되면 자연히 주군의 위엄은 천하의 제후들에게 깎이게 됩니다. 따라서 천자를 온(溫) 땅에 임하게 한 후에 주군께서는 제후들을 이끌고 조현를 행하십시오. 군신 간에 서로 의심하지 않음이 그 첫 번째이며 제후들의 수고로움을 덜하게 하니 그 두 번째 이로움입니다. 그리고 온에는 옛날 숙대가 새로 지은 궁궐이 있으니 왕궁을 다시 짓는 번거로움이 없으니 그 세 번째 이로움입니다.」

「우리가 청하면 천자께서 과연 온으로 오시겠습니까?」

「우리 당진과 친하게 지내는 것을 기뻐하시고 계시는 천자께서는 즐거운 마음으로 온 땅에 납시어 제후들의 조현을 받으실 것입니다. 어찌 불가하다 하십니까? 신이 청하옵건대 주군을 위하여 주나라에 사자로 가서 천자의 뜻을 살펴 반드시 천자로 하여금 온 땅으로 납시어 조현을 받도록 하겠습니다.」

문공이 기뻐하여 즉시 조쇠를 사자로 삼아 주나라에 보냈다. 왕도에 도착한 조쇠는 양왕을 알현하고 말했다.

「저희 당진의 군주이신 중이(重耳)가 천자께서 방백으로 책봉한 은혜에 보답하고자 제후들을 거느리고 왕성에 들어와 조현의 예를 행하고자 하십니다. 엎드려 바라옵건대 허락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가타부타 대답을 못한 주양왕은 조쇠에게 물러가 관사에 쉬라는 명을 내린 후에 즉시 왕자호를 불러들여 조쇠가 주청한 일에 대해 의견을 물었다.

「진후가 여러 제후들을 거느리고 왕성에 와서 조현의 예를 행하겠다고 하는데 그 본마음을 알 수가 없으니 어떤 구실을 붙여 물리쳐야 하는가?」

「신이 우선 당진의 사절을 한번 만나 그 뜻을 살펴보고 이유가 있으면 거절하겠습니다.」

왕자호가 양왕의 면전에 물러 나와 관사에 묵고 있는 조쇠를 찾아가 조현의 일에 대해 물었다.

「당진의 군주께서 주왕실을 받들어 제후들을 이끌고 이미 행하지 않은지 오래된 조현의 예를 거행하고자 하시는 일은 진실로 왕실의 큰복이라 하겠습니다. 단지 열국들이 물고기의 비늘처럼 수없이 많이 모여 한꺼번에 몰려오게 되면 그 짐을 실은 마차와 행렬로 길이 막히게 될 뿐만 아니라, 아직 그러한 광경을 목격하지 못한 백성들이 망령되게 함부로 의심하여 난리가 났다는 요언을 퍼뜨리거나, 혹은 서로 비방하면서 조소하게 되어, 오히려 당진 군주의 충성스러운 일편단심을 뜻을 저버리지나 않을까 걱정되니 그만 그만두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저희 군주께서 천자를 뵙고 싶은 지극한 생각에 소신이 나라를 떠날 때 이미 각국의 제후들에게 소집을 알리는 격문을 모두 띄워 온읍에 일제히 모이라고 했습니다. 만약에 이일을 폐하여 조현은 거행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왕실의 일이 우스꽝스럽게 될 것입니다. 소신은 감히 돌아가 저희 군주께 복명하지 못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어찌해야 합니까?」

「소신에게 한 가지 계책이 있지만 차마 말씀을 올리지 못하겠습니다.」

「자여께서는 어떤 좋은 계책을 갖고 계신데 감히 명을 따르지 않으려 하십니까?」

「옛날부터 천자께서는 열국을 순행을 행하신 전례가 있습니다. 그 목적은 사방을 두루 시찰하시고 백성들의 생활상을 살펴보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천자께서 만약 순렵(巡獵)을 행한다는 명목으로 어가를 움직이시어 하양(河陽) 땅의 온읍에 임하신다면 저희 군주께서도 제후들을 인솔하여 조현의 예를 올릴 수 있을 것입니다. 위로는 왕실의 존엄함을 잃지 않으며 밑으로는 저희 군주님의 지성스러운 충성된 마음을 저버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어찌 생각하십니까?」

「자여의 계책은 진실로 상하가 모두 만족할 만한 합니다. 내가 돌아가 마땅히 천자께 주청을 드리겠습니다.」

왕자호가 입조하여 조쇠가 제안한 일을 전했다. 양왕이 크게 기뻐하여 그해 겨울 시월 중 길일을 택하여 하양에서 만나기로 약정하였다. 조쇠가 당진으로 돌아와 문공에게 복명했다. 문공이 주천자에게 조현의 예를 행한다고 천하의 제후들에게 널리 알리고 모두 이번 겨울 시월 초하루에 온(溫) 땅에 모이라고 했다.

이윽고 약정한 날짜가 되자 제소공(齊昭公) 반(潘), 송성공(宋成公) 왕신(王臣), 노희공(魯僖公) 신(申), 채장공(蔡庄公) 갑오(甲午), 섬진(陝秦)의 목공(穆公) 임호(任好), 정문공(鄭文公) 첩(捷) 등이 줄을 지어 계속해서 당도하였다. 섬진의 목공이 진후를 보고 먼저 말했다.

「지난번 천토의 회맹 때는 길이 멀어 회맹의 날짜를 넘기지나 않을까 걱정하여 길을 떠나지 못했습니다. 이번에는 기필코 참석하여 제후들의 맨 말석에나마 서려고 이렇게 오게 되었습니다.」

진문공이 먼 길에도 불구하고 회맹에 참석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치사했다. 그때 진(陳)나라는 목공(穆公) 관(款)이 죽고 세자 삭(朔)이 새로 진후(陳侯)의 자리에 올라 상중이었으나 당진의 위세에 눌려 상복을 입고 참석했다. 주(邾)와 거(莒) 두 나라는 소국이라 참가할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위성공 정은 스스로 죄가 있음을 알고 회맹에 참석하지 않으려고 했으나 영유가 간하며 설득했다.

「주군께서 만약에 참석하시지 않으신다면 죄가 더욱 무거워져 회맹이 끝나면 진후는 필시 우리나라를 토벌하기 위해 군사를 보낼 것입니다.」

위성공은 할 수 없이 무거운 마음으로 회맹장으로 길을 떠났다. 영유(寧兪), 침장자(鍼庄子) 및 사영(士榮) 세 사람이 성공을 수행했다. 성공 일행이 온읍에 당도하여 당진의 문공에게 접견을 청했다. 그러나 문공은 성공이 알현하겠다는 청을 거부하고, 군사를 보내 성공 일행을 구금시키고 보초를 세워 삼엄하게 지키게 했다. 오직 허나라 만이 여전히 옛날부터 시종일관 초나라 편에 섰기 때문에 당진의 명에 따르지 않고 회맹에 참석하지 않았다. 온읍에 당도한 열국의 제후들은 그금된 위성공을 제외하고 당진(唐晉), 제(齊), 송(宋), 노(魯), 채(蔡), 섬진(陝秦), 정(鄭), 진(陳), 주(邾), 거(莒) 등을 합해 모두 열 명이었다. 십국의 제후들은 한 곳에 모두 모여 서로 상견례를 치렀다. 그 다음날 주양왕의 어가가 회맹장에 당도하자 진후가 여러 제후들을 인솔하고 양왕을 마중하여 옛날 태숙대가 살았던 왕궁으로 인도했다. 왕이 이윽고 왕궁의 어전에 당도하자 여러 제후들이 머리를 조아리며 조현의 예를 올렸다. 그 다음날 오고에 면류관과 화려한 예복을 잘 차려입은 십국의 제후들이 소리도 요란한 값비싼 패옥을 몸에 두르고 위풍도 당당히 왕궁에 들어서자 뜰 안을 가득 메운 무희들이 앞으로 나와 징소리에 맞추어 춤을 추기 시작했다. 이윽고 무희들이 일으킨 먼지가 온 하늘을 뿌옇게 덮었다. 제후들은 각자가 가져온 방물을 조공으로 바치며 각기 다스리는 땅의 주인 자격으로 보고하면서 천자의 즐거운 안색을 쳐다보며 작위에 맞은 예를 취하는데 그 태도가 공손하기 그지없었다. 그날의 조현 의식은 천토에서 행한 의식에 다시 엄숙함을 더했다고 평할 수 있었다. 하양 땅의 온읍에서 회맹을 한 후 조현의 예를 행한 일에 대해 노래한 시가 있다.

화려한 의관의 제후들이 모여 하양땅을 가득 채우고

수많은 수레에 조공품을 싣고와 다투어 바치는도다!

제후들이 천자를 배알하고 결백한 지조를 밝히자

용안을 들어 굽어보시며 은혜와 광영을 베푸셨다.

衣冠濟濟集河陽(의관제제집하양)

爭睹云車降上方(쟁도운거항상방)

虎拜朝天鳴素節(호배조천명소절)

龍顔垂地沐恩光(용안수지목은광)

풍(酆)④의 왕성은 주나라의 위엄을 전례가 없이 드높였으나

겹욕(郟鄏)⑤의 궁궐은 허명만 남아 땅에 떨어지게 되었다.

왕을 모셔 왔다고는 하나 올바른 전례가 아니니

순수를 핑계로 왕을 불러낸 일을 어찌 무방하다고 하겠는가?

酆宮勝事空前代(풍궁승사공전대)

郟鄏虛名慨下堂(겹욕허명개하당)

雖則致王非正典(수즉치왕비정전)

托言巡狩亦何妨(탁언순수역하방)

3. 군신대옥(君臣對獄)

- 신하가 그의 군주를 향해 옥사를 벌리다. -

조현의 의례가 끝낸 진문공은 위나라 숙무의 억울한 죽음에 대해 양왕에게 고하고 왕자호로 하여금 그 일에 대해 판결을 내려달라고 청했다. 양왕이 허락했다. 문공이 왕자호를 자기가 묶고 있던 공관으로 모셔 오게 한 후에 손님과 주인을 따져 좌정한 후에 사람을 시켜 왕명으로 위성공을 불러오게 하였다. 위성공이 죄수복을 입고 사람들 앞으로 끌려왔다. 위나라 대부 원훤도 역시 같은 시각에 당도했다. 양쪽의 관계되는 사람이 공관에 들어 온 것을 확인한 왕자호가 말했다.

「군주와 신하가 대면하여 시시비비를 따진 일은 예에 없는 법이니 군주 쪽에서는 다른 사람을 대신 내세워도 무방하오!」

왕자호가 즉시 위후를 공관의 낭하에 기다리게 하자 영유는 위후의 곁에 따라 다니며 단 한 발자국도 떨어지지 않으려 했다. 그래서 침장자를 시켜 위후를 대리하여 원훤과 도리를 따지게 하고 사영은 옥사를 다루는 관리를 도와 그 일에 대한 시비를 가리게 했다. 원훤의 말은 마치 물이 흐르는 듯하여 막힘이 없었다. 처음 위후가 초구성에서 탈출하여 양우로 피신할 때 숙무에게 나라를 지키라고 한 일과 후에 자기가 위후를 안심시키기 위해 자진하여 인질로 보낸 아들 원각을 살해한 이야기며, 숙무를 의심하여 믿지 못한 나머지 천견(歂犬)을 선발대로 보내고 다시 천견이 숙무를 살해한 일을 하나도 빠짐없이 세세하게 이야기했다. 침장자가 듣고 말했다.

「그 일은 천견의 참소하는 말을 위후가 잘못 받아들여 그리 되었으니 그 모든 일이 위후의 잘못만으로 일어났다고 할 수 없습니다.」

「천견이 처음에 이 훤을 찾아와서 숙무님을 옹립하자고 했을 때 만일 제가 그의 말을 쫓았다면 어찌 위후께서 다시 환국하여 복위할 수 있었겠습니까? 단지 이 훤은 형제간에 우애하려는 진실한 마음을 지니고 계셨던 숙무님을 존경하고 있었기 때문에 천견이 유혹하는 말을 거절했습니다만 뜻밖에 천견이 망동하여 오히려 형제사이를 이간시키게 되었습니다. 위후가 만약 숙무님의 마음에 대해 의심하는 마음을 갖고 있지 않았다면 천견이 아무리 참소를 했던들 어찌 그 말을 들었겠습니까? 이 훤이 아들 각을 보내 위후를 모시라고 한 일은 나의 마음에 아무런 사심이 없다는 사실을 스스로 밝히고자 한 것입니다. 이것 또한 아름다운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만 위후는 오히려 무고한 사람을 의심하여 살해하였습니다. 원각을 살해한 위후는 똑 같은 마음으로 또한 태숙을 살해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영이 옆에 있다가 원훤의 말을 끊고 위성공을 위해 변명했다.

「그대는 아들 원각이 살해된 원한을 풀기 위함이지 태숙을 위해서가 아닌 것 같소!」

「이 훤은 내 아들이 죽자 어떤 사람이 몸을 빼내어 도망가라는 소리를 듣고 ‘자식이 죽은 일은 사사로운 원한이지만 나라를 지키는 일은 큰일이다.’라고 말했소. 이 훤이 비록 보잘 것 없는 사람이지만 어찌 감히 사사로운 원한 때문에 큰일을 그르칠 수가 있겠소. 그래서 내 아들이 살해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그날로 태숙님에게 편지를 써서 진후에게 올리게 하여 위후의 복위를 간청하도록 했었소. 그 편지는 이 훤의 손으로 직접 써서 숙무님에게 드린 것이오. 만약 이 훤이 자식의 죽음에 원한을 품고 있었다면 어찌 이러한 일을 기꺼이 할 수 있었겠소? 나는 단지 위군이 일시적으로 생각을 잘못하여 저지른 일이라 아들 각을 죽인 일을 후회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소. 그런데 뜻밖에 다시 태숙님까지 함부로 살해하여 결코 인간으로써 용서받지 못할 천인공노할 짓을 저지를 줄은 몰랐소.」

그러자 침장자가 나서서 사영을 거들었다.

「태숙이 위후의 자리에 뜻이 없었다는 사실은 위후도 역시 이미 알고 계시는 일입니다. 단지 천견의 손아귀에 놀아난 것뿐이지 위후가 본마음에서 그리 했던 것은 아니었소.」

「만약 위후가 태숙이 군위를 탐내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어찌하여 천견에게 죄를 주지 않고 오히려 그의 참소를 들었겠소? 또한 무엇 때문에 다시 천견의 말을 쫓아 그로 하여금 앞서가게 하고, 다시 나라의 도성에 당도하게 되자 천견으로 하여금 선발대를 만들게 하여 먼저 성안으로 들여보냈겠소? 그것은 바로 천견의 손을 빌려 숙무님을 살해하려고 계획했음이 명명백백한데 어찌 이를 몰랐다고 하시오?」

침장자가 고개를 숙이고 더 이상 대꾸를 하지 못하자 사영이 다시 위후를 위해 변명했다.

「태숙이 비록 무고하게 살해당하기는 했지만 태숙도 또한 위후의 신하라! 옛날부터 신하된 자가 그 군주로부터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자의 수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고 할 수 있소. 하물며 위후는 이미 천견을 잡아 죽였고 또한 태숙님의 장례를 후하게 치러 주어 상벌을 분명하게 행하였으니 어찌하여 아직까지도 위후에게 죄가 있다고 주장하시오?」

「옛날 하나라의 걸왕(桀王)이 관룡봉(關龍逢)을 무고하게 살해하자 은나라의 탕왕(湯王)이 토벌하여 나라 밖으로 추방했소. 다시 은나라의 주왕(紂王)이 충신 비간을 무고하게 살해하자 주나라의 무왕이 토벌했소. 탕왕과 무왕은 모두 걸왕과 주왕의 신하였소. 충성스럽고 훌륭한 신하들이 죄도 없이 살해당하는 모습을 본 탕왕과 무왕은 즉시 의로운 병사들을 일으켜 그 군주 되는 자를 죽여 백성들을 위로했던 것이오. 하물며 태숙은 위후와 피를 나눈 형제간이며 또한 나라를 지켜 낸 공이 있는 사람이라 관룡봉이나 비간에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훌륭한 사람이오. 우리 위나라는 비록 후작으로 봉해진 나라이기는 하나, 위로는 천자를 모시고 밑으로는 방백의 명령을 받아야 하는 처지에 있는 제후국 중의 한 나라요. 걸왕이나 주왕처럼 천자의 고귀한 지위도 갖고 있지 않으며 사해(四海)에 걸친 부(富)를 가지고 있지도 못하오. 그런데 어찌하여 죄가 없다고 하시오?」

사영이 할 말이 없게 되자 다시 말을 돌렸다.

「그렇다면 그대의 말대로 위후가 잘못을 저질렀다고 하고 그대는 그의 신하된 사람인데 신하된 자가 자기의 주군을 위하여 충심으로 받들어야 하거늘 어찌하여 그 군주가 입국하는 마당에 그대는 오히려 나라 밖으로 도망쳐서 입조하여 군위에 복귀하는 주군에게 경하의 인사를 드리지도 않았소? 그것은 무슨 도리요?」

「이 원헌에게 태숙과 함께 나라를 지키라고 명한 사람은 실은 위후의 명이었소. 위후가 자기의 동생인 태숙도 용납하지 못하고 죽이는데 어찌 이 사람인들 용납했겠소? 이 훤이 나라 밖으로 도망친 이유는 죽음이 두려워하여 목숨을 탐해서가 아니라 실은 태숙의 억울한 죽음을 밝히기 위해서였소.」

4. 국군유죄(國君有罪)

- 군주가 유죄판결을 받다. -

쌍방간에 오가는 변론과 진술을 듣고 난 문공이 왕자호에게 말했다.

「사영과 원훤 사이에 오고가는 말을 들어보니 그 일의 전말을 알 수 있겠습니다. 원훤이 하는 말은 모두가 이치에 맞습니다. 위후 정(鄭)은 곧 천자의 신하된 자입니다. 위후의 처분은 감히 제 마음대로 처리하지 못하겠으니 우선 그 신자된 자들부터 형을 집행해야 되겠습니다.」

문공이 즉시 좌우를 돌아보며 호령을 하며 말하였다.

「위군을 따라온 신하된 자들은 한 놈도 남김없이 죽여라!」

왕자호가 듣고 문공에게 말했다.

「내가 들으니 위군을 따라온 영유란 사람은 위나라의 현인이라 들었습니다. 그가 형제지간을 조정하느라 마음속 고생이 매우 심했을 것이나 결국 위후가 듣지 않았으니 그로서도 어찌 할 도리가 없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이 옥사에서 영유를 함께 포함하여 죄를 주는 일은 무고한 사람을 죽이는 처사가 되어 너무 가혹한 것 같습니다. 이 송사는 영유와는 무관한 일이니 그에게 누를 끼치면 안 될 것입니다. 사영은 위나라의 사사(士師)의 일을 대신 행했을 뿐만 아니라 그 이치를 따지는 논리에 억지가 심하여 그 죄가 제일 크다고 하겠으며 침장자가 원훤의 말에 대꾸를 하지 못한 것은 그 스스로 도리를 알고 있는 듯하니 그 죄를 감하여 사형만은 면하게 해주기 바랍니다. 오로지 군후께서는 잘 생각하시어 열국의 제후들에게 본보기를 보이시기 바랍니다.」

문공이 왕자호의 권하는 말대로 사영은 참수형에 처해 죽이고 침장자는 한쪽 다리를 자르게 했다. 영유는 그 죄를 사면하여 불문에 부쳤다. 문공과 왕자호가 위후를 다시 함거에 싣고 동행하여 양왕에게 가서 배알하면서 위나라 군신간의 옥사에 대해 복명했다. 문공이 양왕에게 복명했다.

「위후에 대한 원한이 이렇듯 높으니, 만약 그를 죽이지 않는다면 하늘도 용서하지 않고, 백성들도 복종하지 않을 것입니다. 바라건대 사구(司寇)를 불러 위후에 대한 형을 집행하여 천자의 법이 지엄하다는 사실을 세상에 알리시기 바랍니다.」

「위나라 군신간의 옥사에 대한 숙부의 판결은 명백하다하겠으나 위후를 처형한다 할지라도 천하의 백성들에게 훈계가 되지 못할 것이오. 짐은 주왕실의 법에 평민이 제기하는 소송에는 원고와 피고 쌍방을 두어 각기 곡절을 들은 연후에 판결을 한다는 조문은 들었어도 군신간의 소송이나 부자지간의 소송을 판결한다는 조문에 대해서는 들어본 바가 없소! 만약 신하된 자가 그 군주에 대해 소송을 제기하고 그 자식된 자가 그 아비에게 소송을 제기한다면 상하가 구분이 안 될 뿐만 아니라, 설상가상으로 신하된 자가 소송에서 이겨 그 군주를 죽인다면 이것은 반역을 행하는 행위와 같소. 짐은 신하가 제기한 소송의 결과 군주의 죄를 물어 천하에 알리는 행위는 반역을 널리 가르치는 행위와 다름없다고 생각하오. 나는 결코 사사로이 위후만을 위해서 하는 말이 아니니 오해는 하지 말기 바라오.」

문공이 황공하여 사죄의 말을 올렸다.

「중이의 부족한 생각이 미처 거기까지 미치지 못했습니다. 이미 천자께서 죽이시지 않으시겠다면 마땅히 위군을 왕도로 호송하시어 처분대로 하옵소서!」

문공이 다시 위후를 함거에 싣고서 공관으로 돌아와서 군사를 시켜 처음과 같이 엄중하게 지키도록 했다. 또한 원훤은 위나라에 돌아가게 하여 별도로 어진 공자를 택해 위군으로 세워 위성공을 대신하라고 했다. 위나라에 도착하여 여러 군신들을 만나 새로운 군주를 세우는 일은 진후의 명이 아니고 왕명이라고 거짓으로 둘러댔다.

「위후가 이미 왕명에 의해 폐위가 되었습니다. 왕명을 받들어 어진 공자 중에서 한 분을 뽑아 새로운 군주를 세우라고 했습니다.」

여러 군신들이 다 같이 한 사람을 천거하니 그 사람은 곧 숙무의 동생 공자괄(公子适)이었다. 자가 자하(子瑕)인 공자괄은 위인이 숙무를 닮아 어질고 인심이 후했다. 원훤이 말했다.

「이 분을 위후로 새로 세우면 이것은 마치 ‘형이 죽어 동생이 그 뒤를 잇는다.’라는 예에 부합된다고 하겠습니다.」

원훤은 즉시 공자괄을 위후의 자리에 즉위시키고 원훤 자신은 스스로 재상이 되었다. 사마만(司馬瞞), 손염(孫炎), 주천(周歂), 야근(冶廑)등 일반 문무대신들이 서로 힘을 합쳐 원훤을 돕자 위나라는 차츰 안정을 찾기 시작했다.

< 제43회로 계속>

주석

① ‘捍艱復纘文侯緖(한간부찬문후서) : 문후(文侯)는 기원전805년 태어나서746년에 죽은 춘추 초기 당진국의 군주로 이름은 구(仇)다. 목후(穆侯) 비왕(費王)의 태자로 기원전780년 즉위했다. 전785년 목후가 죽자 그의 동생 상숙(殤叔)이 스스로 군위에 앉자 나라 밖으로 달아났다. 상숙4년 기원전781년 그의 무리를 이끌고 상숙을 공격하여 죽이고 군위에 올랐다. 문후10년 기원전771년 주유왕이 견융의 침입을 받아 살해되자 그는 군사를 이끌고 주나라를 구원하고 주나라가 동쪽의 낙읍으로 동천하는데 도왔다. ‘捍艱復纘文侯緖’의 시구는 뜻은 곤궁한 처지를 극복한 진문후(晉文侯) 구(仇)가 일으킨 사업을 진문공이 이어받았다는 뜻이다. 처음에 동생인 상숙(殤叔)에게 쫓겨났다가4년 후에 무리를 이끌고 상숙을 공격하여 죽이고 진후의 자리를 복위한 다음 다시 서주가 견융의 침략으로 망하고 동주정권을 세울 때 공을 세워 방백이 된 진문후의 행적이 여희의 란으로 나라에서 쫓겨나고 이어서 동생 이오에게 진후의 자리를 뺏기고 유랑생활을 하다가 수많은 죽을 고비를 넘기고19년 만에 복국하여 진후의 자리에 앉은 후에 주나라의 내란을 진압하고 패주가 된 진문공의 행적과 비교했다.

②賞罰不明百事不成(상벌불명 백사불성) 賞罰若明 四方可行(상벌약명 사방가행)

③군(軍)과 행(行) : 원래 춘추시대를 포함하여 중국의 고대 군사편제는4마리의 말이 끄는 병거를 일승(一乘)의 단위로 하고100승은 일사(一師), 삼사(三師)를 일군(一軍)이라 했다. 일승(一乘)의 기본 단위는10명의 갑사와20명의 보졸로 구성되어 있었다. 귀족이나 그 자제로 충원된10명의 갑사 중3명은 수레에 타고 나머지7명은 예비병력으로 보졸과 함께 수레의 뒤를 따랐다. 한편 춘추시대 중기에 이르자 개활지에서 포진하고 전차를 돌진시키는 전투 외에 산악지역이나 도로가 없는 곳에서도 전투를 치루어야 할 필요에 의해 보병으로만 이루어진 군대가 창설되었다. 지금으로 말하면 군(軍)은 전차와 보졸로 이루어진 혼성기갑사단이고 행(行)은 보병사단을 말한다. 1행은 약10,000명으로 편성되었다. 주례에 따르면 천자만이6군을 보유할 수 있고 제후국들은 등급에 따라 공작국은3군, 후작과 백작국은2군 자작과 남작국은1군을 보유할 수 있었다. 당진국이 군사력을3군에3행을 더한 행위는 천자국만이6군을 보유할 수 있다는 주례의 규정을 피하기 위한 편법이었다.

4)풍(酆) : 서주가 도읍을 정한 곳으로 호경(鎬京)이라 했다. 지금의 섬서성 호경 부근이다.

5)겹욕(郟鄏) : 동주가 도읍으로 정한 낙읍을 포함한 지역의 별칭이다.

[평 설]

진문공이 패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여러 가지 요인이 있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군사실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성복대전이 있었던 기원전 632년 진문공은 당진의 군사비를 대폭 증액시켰다. 당시 주례에 따르면 천자만이 6군에 해당하는 군사력을 보유할 수 있었으며, 제후국은 아무리 세가 크다 할지라도 3군을 넘지 못했다. 진문공은 주례(周禮)의 규정을 위반하는 것을 원치 않았지만 반대로 그 규정에 얽매일 생각도 없었다. 그래서 편법을 이용하여 원래 3군(軍)의 편제에 3행(行)이라는 군대를 창건한 것이다. 3군에 3행을 더한 것은 분명 6군에 해당했으나 외형상 6군이라고 칭하는 것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이다. “ 이 군제들로 군사들을 확충할 경우 천하에는 그 강함을 겨룰 수 있는 제후국은 없을 것이다.”라고 했다. 이로써 제후국들 중 군사들 숫자나 전투력에 있어서 가장 강력한 무장을 갖추었다고 할 수 있다.

3행이라는 이름은 진실로 절묘한 점이 있다. 진문공의 임기응변은 과연 탁월했다.

기원전 629년 당진군은 대거 열병식을 거행하고 3군3행 편제에서 5군으로 개편했다. 5군은 천자국 주나라에 비해 1군이 적은 편제다. 주례의 규정에 의한 천자국을 권위를 해치지 않으면서 패자의 신분에 부합되는 조치였다. 그것은 즉 명분으로는 천자국 밑에 있으면서 실제로는 제후국 위에 군림하는 자세인 것이다. 비록 제후국은 3군은 초과하는 군사력을 보유하면 안 된다는 주례의 규정을 위반한 것이지만 당진국은 이미 패자의 지위를 차지한 관계로 사람들의 비난을 염두에 두지 않았고, 실제적으로 당진국의 그러한 편제에 대해 비난한 사람은 당시에 아무도 없었다.

목록
1311
[일반] 제2부4권 유랑하는 공자 중이-목차

제2부 패자의 길(覇者之道) 제3권 유랑공자(流浪公子) 중이(重耳) 제35회 報恩三舍 懷嬴重婚(보은삼사 회영중혼) 삼사(三舍)를 후퇴하여
양승국 04-05-11
[일반] 제45회. 墨縗敗秦(묵최패진), 免胄殉翟(면주순적)

제45회 墨縗敗秦 免冑殉翟(묵최패진 면주순적) 검은 상복을 입고 효산에서 섬진군을 무찌른 당진의 양공과 적(翟)과 싸우다가 갑주를
양승국 04-05-11
[일반] 제44회. 叔詹自救(숙첨자구), 弦高犒軍(현고호군)

제44회 叔詹自救 弦高犒軍(숙첨자구,현고호군) 팽살형에 임하여 자신의 목숨을 구한 정나라의 숙첨(叔詹)과 섬진의 군사를 호군하여 정나
양승국 04-05-11
[일반] 제43회. 假鴆復衛(가짐복위), 縋城說秦(추성세진)

제43회 假鴆復衛 蜀武說秦(가짐복위 추성세진) 가짜 짐독(鴆毒)으로 위후를 복위시키는 지혜로운 영유와 섬진(陝秦)의 군주에게 유
양승국 04-05-11
[일반] 제42회. 河陽受覲(하양수근), 君臣對獄(군신대옥)

제42회 河陽受覲 君臣對獄(하양수근 군신대옥) 하양의 땅에서 제후들의 조현을 받은 주양왕과 자신의 군주와 옥사를 벌리는 위나라의 원훤 1.
양승국 04-05-11
[일반] 제41회. 子玉自殺(자옥자살), 踐土主盟(천토주맹)

제41회 子玉自殺 踐土主盟(자옥자살 천토주맹) 연곡성에서 패전의 책임을 지고 자살한 성득신과 천토에서 천자를 불러 회맹을 주재한 진
양승국 04-05-11
[일반] 제40회. 詭謀激將(궤모격장), 城濮大戰(성복대전)

제40회 詭謀激將 城濮大戰(궤모격장 성복대전) 기묘한 계책으로 적장을 격분시켜 성복(城濮)에서 초군을 크게 물리친 당진
양승국 04-05-11
[일반] 제39회. 授詞却敵(수사각적), 伐衛破曹(벌위파적)

제39회 授詞却敵 伐衛破曹(수사각적 벌위파조) 유하혜①로부터 계책을 받아 침략군을 물리친 전희(展喜)와 위(衛)와 조(曹)를 정벌하여
양승국 04-05-11
[일반] 제38회. 逐兄盜嫂(축형도수) 守信降原(수신항원)

제38회 逐兄盜嫂守信降原(축형도수 수신항원) 숙대의 란을 피해 정나라로 몽진한 주양왕과 신의를 지켜 원성(原城)의 항복을 받아낸 진문공
양승국 04-05-11
[일반] 제37회. 錦上焚志 (면상분지) 怙寵通姦(호총통간)

제37회 錦上焚志 怙寵通姦(면상분지 호총통간) 면상산의 화염 속에 절개를 태운 개자추와 총애를 믿고 왕중을 출입하며 왕비와 사통한 태
양승국 04-05-11
[일반] 제36회. 親讐免禍 (친수면화) 三立晉君(삼립진군)

제36회 親讐免禍三立晉君(친수면화 삼립진군) 원수를 용납하여 화를 면하는 진문공(晉文公)과 당진의 군주를 세 번 세우는 진목공(秦穆公) 1.
양승국 04-05-11
[일반] 제35회. 報恩三舍(보은삼사) 懷嬴重婚(회영중혼)

제35회 報恩三舍 懷嬴重婚(보은삼사 회영중혼) 삼사(三舍)를 후퇴하여 초왕의 은혜를 갚겠다고 약속하는 중이와 당진의 공자들과 중혼한
양승국 04-05-11
[일반] 12제후연표(기원전 636-627)

제4권 유랑하는 공자 진문공 편에 해당하는 기간 동안의 12제후 연표입니다. 2부4권 유랑공자 중이(636-627) 기원 전 周 대사(
25.8K 양승국 04-05-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