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국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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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05-11 11:25:454584 
제35회. 報恩三舍(보은삼사) 懷嬴重婚(회영중혼)
양승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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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제35회

報恩三舍 懷嬴重婚(보은삼사 회영중혼)

삼사(三舍)를 후퇴하여 초왕의 은혜를 갚겠다고 약속하는 중이와

당진의 공자들과 중혼한 섬진의 공녀 회영(懷嬴)

1. 봉상만인(鳳翔萬仞)

- 우리에서 빠져나온 봉황이 하늘 높이 비상하다. -

호언의 계략에 빠져 제나라를 떠나게 된 일을 분하게 생각한 중이는 위주가 들고 있던 창을 빼앗아 호언을 찌르려고 했다. 호언이 급히 수레에서 내려 도망쳐 중이의 창을 피했다. 중이가 멈추지 않고 창을 꼬나들고 수레에서 같이 뛰어내려 호언의 뒤를 쫓았다. 조쇠, 서신(胥臣), 호모, 호석고(狐射姑)①, 개자추 등이 일제히 중이에게 달려들어 노여움을 풀고 진정하라고 권했다. 중이가 창을 땅바닥에 던져 버리기는 했으나 분함을 이기지 못해 씩씩거리며 숨을 가쁘게 쉬었다. 호언이 돌아와 머리를 조아리며 죄를 청하며 말했다.

「이 호언을 죽이시어 공자님이 뜻이 이루어진다면 저는 차라리 공자님의 손에 죽겠습니다.」

「이번 행차에 내가 뜻을 얻을 수 있다면 다행이지만 만약에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다면 내 필히 외삼촌의 고기를 씹으리라!」

호언이 얼굴에 미소를 띄우며 답했다.

「우리가 품고 있는 뜻을 이룰 수 없다면 이 호언인들 묻힐 곳이 있기나 하겠습니까? 어찌 공자님에게 잡혀 먹힐 시간인들 있겠습니까? 그리고 반대로 만약 공자께서 뜻을 이루게 된다면 옥좌에 앉아 세상의 온갖 맛있는 음식을 드실 터인데 어떻게 이 호언의 바짝 말라비틀어진 비린내 나는 고기를 드실 수 있겠습니까?」

조쇠 등의 일행이 앞으로 같이 나와 말했다.

「우리들이 공자께서 큰 뜻을 품고 계시다는 생각으로 처자식도 버리고 고향을 떠나 천하를 유랑하면서 아직까지 공자님의 곁을 떠나지 않고 있는 이유는 우리가 세운 공이 사서에 기록되어 역사에 길이 남게 되기를 바라서입니다. 오늘날 우리 당진국의 군주가 무도하여 나라의 사대부들은 하나같이 공자님을 초빙하여 군주로 추대하려고 합니다. 공자께서 스스로 찾아가지 않는다면 그들 중 누가 제나라까지 와서 공자님을 모시고 가겠습니까? 오늘의 일은 실은 우리들 모두가 같이 상의하여 행했지 단지 호언 한 사람이 꾸며서 그리 된 것이 아닙니다. 공자께서는 노여움을 푸시기 바랍니다.」

곁에 있던 위주가 목소리를 높여 외쳤다.

「대장부라면 이름을 천하에 떨치고 그 명성을 후세에 전하도록 온힘을 다하여 노력을 하여야 마땅하거늘 어찌하여 일개 아녀자와의 일시적인 환락에 연연하여 평생을 두고 품고 다니던 뜻을 돌보지 않으려고 하십니까?」

중이가 마음을 진정하고 얼굴빛을 고쳐 말했다.

「일이 이왕 이렇게 되었으니 오로지 여러분들의 뜻을 따르겠소!」

호모는 마른 주먹밥을 가져오고 개자추는 물을 떠와 중이와 그 일행은 아침식사를 배불리 먹었다. 호숙(壺叔) 등의 시자들은 풀을 베어와 배불리 먹인 말에게 고삐를 물리고 수레의 여기저기를 살펴 점검한 후에 중이와 그 일행을 태우고 앞을 보고 길을 떠났다. 이일을 노래한 시가 있다.

봉황은 닭 무리에서 몸을 빼어 하늘 높이 날았고

호랑이는 승냥이의 굴을 나와 깊은 산을 달린다.

중이가 무엇으로 백업을 이루었는지 알고 싶으면

천하의 열국간을 유랑하면서 얻은 지혜였음이라!

鳳脫鷄群翔万仞(봉탈계군상만인)

虎离豹穴奔千山(호리표혈분천산)

要知重耳能成伯(요지중이능성백)

只在周游列國間(지재주유열국간)

2. 중동변협(重瞳騈脇)

- 겹눈동자와 통갈비의 체형 -

중이의 일행은 제나라를 떠난 지 하루도 되지 않아 조(曹)나라 국경에 당도했다. 한편 조나라의 군주 공공(共公) 양(襄)이라는 위인은 놀기에 정신이 팔려 조정의 정사는 전혀 돌아보지 않고 소인배와 가까이 지내고 군자를 멀리했다. 그는 또한 아첨배를 심복으로 삼고 신하들에게 작위를 내리기를 마치 오물을 버리듯이 함부로 행했다. 조회를 행할 때 조복에 적불(赤芾)①을 착용하고 초헌(軺軒)③을 타고서 드나드는 사람만 3백 명이 넘었는데 모두가 시정의 잡배들로서 비위만을 맞추며 아양만을 떠는 족속들이었다. 당진의 공자 중이가 일단의 호걸들을 데리고 조나라에 당도한 일은 마치 향초와 악초는 같은 그릇에 담을 수 없는 격이 되었다. 조나라의 관리들은 오로지 중이의 일행이 조나라에 오래 머무르게 되어 비용이 축나는 일만을 걱정하여 모두 몰려와 조공공에게 중이의 일행을 받아들이면 안 된다고 말했다. 대부 희부기(僖負羈)가 앞으로 나와 공공에게 간했다.

「조와 당진은 희성(姬姓)의 동성 제후국입니다. 공자가 궁하여 이곳을 지나가게 되었는데 마땅히 후하게 대접함이 마땅한 예절입니다.」

「조나라는 작은 나라다. 열국 가운데에 끼어 있어 여러 나라 자제들의 왕래가 셀 수도 없이 잦은데 일일이 예를 갖추어 접대하다가는 비용이 과중하게 되어 국고가 비게 될 텐데 내가 어떻게 그 많은 비용을 감당할 수 있겠는가?」

「당진의 공자 중이는 그 어진 덕으로 천하에 이름이 나 있습니다. 또한 중동(重瞳)④과) 변협(騈脅)⑤이라 앞으로 크게 귀할 상입니다. 일반 제후들의 자제들과 같이 취급해서는 안 됩니다.」

조공공이 평소의 장난기가 동하여 중이가 어질고 덕이 높다는 말에는 전혀 개의치 않고 단지 중동과 변협이라는 말에 관심을 보이더니 희부기에게 다시 물었다.

「눈동자가 두 겹인 중동의 사람은 과인도 본적이 있지만 변협은 아직 보지 못했다. 변협이란 어떻게 생겼는가?」

「변협이란 늑골 뼈가 여러 개로 되어 있지 않고 한 개로 된 기이한 체형을 말합니다.」

「과인은 도저히 믿지 못하겠노라! 그를 성안으로 불러 관사에 머물게 하여 그가 목욕할 때를 기다려 내가 한 번 엿보아야 하겠다.」

공공이 관사에 일하는 사람을 시켜 중이를 공관에 들어오게 했으나 물과 밥만을 내놓고 다른 음식이라고는 하나도 제공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술상은 고사하고 관사에 들려 주인으로써 손님을 맞이하는 예도 행하지도 않았다. 중이가 노하여 식사를 하지 않았다. 이윽고 관사에 일하는 사람들이 데운 물을 가져와 목욕하기를 청했다. 먼 길을 달려오느라 먼지를 많이 뒤집어써서 몸이 더럽혀 졌던 중이는 마침 목욕 생각이 간절했던 참이었다. 중이는 관사의 관리들이 준비한 목욕물을 보고 즉시 옷을 벗고 욕조로 들어가 목욕을 시작했다. 평복으로 변장하고 평소에 가까이 지내는 총신 몇 명과 함께 관사에 들어와 기다리고 있던 조공공은 이윽고 중이가 목욕을 시작하자 아무 거리낌 없이 중이의 곁으로 다가가 그의 변협을 살펴본 후에 혼자 시끄럽게 떠들고는 밖으로 나갔다. 밖에 있던 호언 등은 안에서 나는 소리를 듣고 급히 중이이 방으로 들어가 살펴보았다. 얼굴을 모르는 여러 사람들이 목욕하고 있던 중이 옆에 모여서 시끄러운 소리로 시시덕거리며 밖으로 나가는 모습을 본 호언 등은 공관의 관리들에게 물어 그들이 조공공과 그의 신하들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중이의 일행은 조공공의 무례한 행위에 대해 모두 크게 분노했다.

3. 僖負羈妻識人(희부기처식인)

- 영걸을 알아보고 후일을 대비한 희부기의 현처 -

한편 조공공에게 중이를 예로써 대하여야 한다고 간했던 희부기는 자기의 말이 먹히지 않자 조당에서 물러나 집으로 돌아갔다. 그의 부인 여씨(呂氏)가 희부기를 맞이하였으나 그 안색이 밝지 않음을 보고 물었다.

「조당에서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희부기는 당진의 공자가 조나라를 지나가는데 조군이 무례하게 대한다고 말했다. 여씨가 듣고 말했다.

「첩이 성 밖의 뽕나무밭에 나가서 뽕잎을 따고 있는데 그때 마침 당진의 공자가 탄 수레와 그 일행이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당진의 공자는 내가 확실히 보지 못했지만 그를 따르고 있던 일행들은 모두 영걸들 이었습니다. 제가 듣기에 ‘그 신하에 그 임금이고, 그 임금에 그 신하라’했습니다. 당진의 공자를 따르고 있던 여러 사람들의 면면을 살펴보니 당진의 공자는 필시 군주 자리를 찾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원한을 품은 공자가 군사를 일으켜 우리 조나라를 정벌한다면 옥석이 다함께 불에 태워질 것입니다. 그때 가서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주군이 대감의 충언을 이미 듣지 않았으니 대감 스스로 그들과 친교를 맺어 두시기 바랍니다. 첩이 이미 여러 가지 음식을 준비하여 놓았으니 그 안에 벽옥(璧玉)을 넣어 가져가 당진의 공자를 뵙고 인사를 드리도록 하십시오. 아직 서로 만나지 못하여 모르는 처지에서 먼저 친교를 맺어야 하니 대감께서는 마땅히 서두르시기 바랍니다.」

희부기가 그의 부인의 말을 듣고 밤중에 공관을 찾아가 중이가 묶고 있던 방문을 두드렸다. 그때 중이는 관사에서 내 준 저녁식사를 먹지 않았기 때문에 배가 매우 고픈 상태에서 조공공에 대한 분노를 삭이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던 참에 조나라 대부 희부기가 밤참을 가지고 와서 뵙기를 청한다고 소리를 들은 중이는 즉시 희부기를 자기 방으로 들게 했다. 희부기가 절을 두 번 올리고 먼저 조군이 저지른 무례에 대해 대신 사과를 드렸다. 평소에 공자의 명성을 들어 잘 알고 있어 존경하는 마음에 이렇게 찾아뵙게 되었다고 말했다. 중이가 크게 기뻐하며 탄식해 마지않았다.

「조나라에 그대 같은 현명한 신하가 있었다니 뜻밖의 일이오! 내가 비록 지금은 망인의 신세이지만 후에 기회가 닿으면 이 은혜를 갚으리라!」

중이가 가져온 음식을 먹는 중에 음식 안에서 벽옥이 나오자 희부기를 향해 말했다.

「대부께서 하찮은 망인의 처지인 사람에게 이렇듯 큰 은혜를 베풀어 길을 가다가 굶어 쓰러지지 않게 해준 것만도 고마운 일인데 어찌하여 이렇게 귀한 보물까지 저에게 주십니까?」

「이것은 공자님을 존경하는 외신으로써 바치는 마음의 성의이오니 바라옵건대 물리치지 마십시오.」

중이는 재삼 돌려받기를 사양하던 희부기에게 끝내 되돌려 주었다. 희부기는 벽옥을 되돌려 받아 가지고 물러나오며 탄식했다.

「당진의 공자가 이루 말할 수 없이 곤궁한 처지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바친 벽옥을 탐하지 않으니 그는 헤아릴 수 없이 큰 뜻을 가슴에 품고 있음을 알 수 있구나!」

다음날 날이 밝자 중이의 일행은 지체 없이 조나라의 공관을 떠났다. 희부기가 개인적으로 나와서 중이의 일행을 도성 10리 밖까지 전송했다. 사관이 이 일을 두고 시를 지어 칭송했다.

용과 호랑이를 너구리나 사슴새끼로 잘 못 알았던

눈 뜬 장님 조공공의 식견이 천박하구나!

한심스러운 조나라의 초헌대부 삼백 명 중에

한 명도 희부기 처의 식견에 미치지 못했음이라.

錯看龍虎作貍麑(착간용호작리예)

盲眼曹共識見微(맹안조공식견미)

堪嘆秉軒三百輩(감탄병헌삼백배)

無人及得負羈妻(무인급득후기처)

중이가 조나라를 떠나서 송나라에 당도했다. 호언이 먼저 걸음을 빨리 해서 송나라 도성인 수양성에 들어가 사마(司馬) 공손고(公孫固)를 찾아가 만났다. 공손고가 호언을 향하여 말했다.

「우리의 주군께서 스스로의 힘을 재보지 않으시고 초나라와 전쟁을 벌려 군사를 크게 꺾이고 허벅지에 활을 맞아 당한 상처가 덧나 병상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공자님의 명성을 오래 전부터 전해 들어 항상 만나 뵙기를 원하고 계셨습니다. 우선 관사를 청소시켜 공자님을 곧 바로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공손고는 병상의 송양공에게 가서 공자 중이가 조만 간에 송나라에 당도할 예정이라고 고했다. 송양공은 이때 초나라에 한을 품고 현인을 구한 후 그로부터 도움을 받아 원수를 갚을 생각에 골똘해 있었다. 그러던 참에 당진의 공자가 먼 길을 떠나 송나라에 몸을 의탁하러 온다는 보고를 받게 되었다. 당진은 곧 대국이고 공자 중이는 또한 현인으로 이름을 얻고 있다고 생각한 양공은 즐거운 마음을 억제하지 못했다. 그리나 초나라와 싸움 때 입은 허벅지의 상처도 아직 아물지 않아 병상에 있던 송양공으로써는 공자 중이를 직접 영접하기 위해 거동을 할 수 없었다. 송양공은 즉시 공손고에게 명하여 성 밖까지 마중 나가 중이를 영접하고 관사로 안내하라고 하면서 제후의 예우를 행하고 음식은 칠뢰(七牢)로 접대하게 했다. 다음날 중이가 송나라를 떠나 타국으로 가려고 하자 양공의 명을 받든 공손고가 송나라에 묵어주기를 재삼 청했다. 이어서 호언과 자리를 따로 만들어 조용히 물었다.

「제나라에 계실 때 제환공이 어떻게 공자님을 대하던가요?」

호언은 제환공이 자기의 종족 중에 예쁜 여인을 골라 중이와 혼인시키고 수십 필의 말을 주어 극진히 대접을 받은 일을 상세히 설명해 주었다. 공손고가 양공에게 가서 호언이 한 말을 전하자 송양공이 말했다.

「당진의 공자는 옛날에 이미 우리 송나라 여인과 혼인을 한 적이 있음으로 여인을 보내는 일은 내가 하지 못하겠고 말은 제환공이 내린 숫자에 맞춰 보내 주도록 하시오!」

중이의 일행은 송양공의 후한 대접에 모두가 감격해 마지않았다. 그들이 공관에 묶고 있던 중에 송나라의 관리들이 음식을 가져와 연회를 끊이지 않게 열어 접대했다. 송양공의 상처가 언제 아물지 알 수 없다고 생각한 호언은 공손고를 조용히 만나 공자 중이의 복국에 관한 일을 상의했다. 공손고가 말했다.

「공자께서 만약에 천하를 유랑하시는 노고를 더 이상 꺼리고 계신다면 폐읍은 비록 나라는 작지만 충분히 휴식은 취하실수 있는 곳입니다. 그러나 공자께서 큰 뜻을 펼치시고자 하신다면 폐읍은 얼마 전에 초나라와 싸워서 지고 군사를 크게 잃어 아직 힘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도움을 청하기 위해서는 다시 큰 나라로 가셔야 할 것입니다.」

「사마의 폐부에서 우러나온 말씀,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호언은 그 날로 공자 중이에게 송나라의 정세를 고하여 알렸다. 중이가 듣고 행장을 꾸려 다른 나라로 출발하려고 했다. 중이 일행이 다른 나라로 길을 떠나려고 한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송양공은 다시 많은 양식과 의복 및 신발 등 일체의 여행에 필요한 물건들을 보내 주었다. 중이의 일행들은 모두가 크게 기뻐했다.

중이 일행히 송나라를 떠난 후, 양공의 상처는 날이 갈수록 상태가 악화되어 얼마 안 있어 숨을 거두었다. 양공이 임종에 임하여 세자 왕신(王臣)을 불러 유언했다.

「내가 너의 백부 자어의 말을 듣지 않아 일이 이 지경에 이르렀다. 내가 죽거든 너는 마땅히 나라의 정사를 자어에게 맡기도록 하라! 초나라는 우리의 철천지원수라 앞으로 대를 이어 절대 통호하지 말라. 또한 당진의 공자가 만약 자기 나라로 돌아가게 되면 그는 반드시 군주의 자리에 올라 능히 천하를 호령하는 방백으로 군림하게 될 것이다. 너는 항상 공자에게 공손한 태도를 견지하여 이 나라를 편안하게 만들어라!」

세자 왕신이 절을 하며 양공의 유언을 받들었다. 송양공은 재위 14년 만인 기원전 637년에 죽고 세자 왕신이 상을 치른 뒤 송공의 자리에 올랐다. 이가 송성공(宋成公)이다. 염선이 시를 지어 송양공은 이룩한 업적이 하나도 없는데 춘추오패의 대열에 세움은 온당하지 못한 일이라고 말했다.

이룬 공은 하나도 없이 싸움에서 입은 상처로 죽었고

엉뚱한 말만을 늘어놓으며 자존망대한 위인인데

부유의 무리들이 명분과 실리를 전혀 살피지 않고서

송양공과 같은 위인을 오패의 반열에 올려놓았도다!

一事無成身死傷(일사무성신사상)

但將迂語自稱揚(단장우어자칭양)

腐儒全不稽名實(부유전불계명실)

五伯猶然列宋襄(오백유연열송양)

4. 禮禁未然之前(예금미연지전)

- 예란 화란을 미연에 방지하는 행위다. -

송나라를 떠난 중이와 그 일행은 이윽고 정나라 경계에 당도했다. 당시 정나라의 군주는 정려공의 아들 정문공으로 정백의 자리에 오른 지 37년 째 되는 해였다. 중이의 일행이 정나라 국경에 당도했다는 소식을 들은 정문공은 군신들을 불러 물었다.

「중이가 부왕을 거역하여 도망치고 있는데 열국들이 받아 주지 않아 유랑 중에 여러 번 굶어 죽을 뻔했다고 했소. 변변치 못한 위인인 것 같으니 구태여 예를 갖추어 맞이할 필요가 있겠소?」

상경 숙첨이 나와서 간했다.

「당진의 공자를 돕고 있는 것이 세 가지가 있습니다. 그를 보호하고 있는 세 가지 모두가 하늘의 뜻임으로 절대 태만히 대하지 마십시오.」

「그 세 가지가 무엇 무엇이오?」

「동성끼리 혼인하면 그 자손들은 번창하지 못합니다. 작금의 중이는 호녀(狐女)의 소생인데 호(狐)와 희(姬)는 같은 종족입니다. 비록 같은 동족사이에서 혼인하여 태어났지만 가는 곳마다 어진 이름을 얻고 또한 나라 밖으로 나가서도 해를 입지 않으니 이것이 하늘이 돕고 있다는 첫 번째입니다. 중이가 본국에서 쫓겨난 이래 오래도록 본국의 정세는 안정이 안 되고 있으니 이것은 나라를 다스릴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는 하늘의 뜻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두 번째입니다. 조쇠, 서신, 호언 등 중이의 곁에 있는 인사들은 모두 당세의 영걸들입니다. 중이가 이렇듯 영걸들을 신하로 두고 있으니 이것이 그 세 번째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와 같이 중이 공자를 돕고 있는 것이 세 가지나 되니 주군께서는 예로써 그를 대하신다면 그것은 동성의 예를 행하게 되고 또한 곤궁한 처지의 공자를 보살펴 은혜를 베푸는 일이 됩니다. 또한 동시에 현인을 높이게 되며, 마지막으로 하늘의 명에 순응하는 일이 됩니다. 이 네 가지가 모두 아름다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중이는 이미 육십이 넘은 늙은이인데 그가 이제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이오?」

「예란 장래에 일어나는 화란을 미연에 방지하는 행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군께서 그를 예를 갖추어 대하고 싶지 않다면 차라리 죽이십시오. 결례를 하여 공연히 원수를 산다면 후에 크나큰 후환이 되어 되돌아오게 됩니다.」

정문공이 웃으면서 말한다.

「경의 말은 너무 심하지 않습니까? 이미 나에게 예를 다하여 맞이하라고 해 놓고 이제 와서 또 죽이라고 하니 예를 행하여 은혜를 베풀 일도, 그를 죽여서 원한을 살 일도 없소!」

정문공이 즉시 문을 지키는 관리에게 자기의 영을 전해 성문을 닫아 걸고 중이의 일행을 성안으로 들이지 않았다.

5. 보은삼사(報恩三舍)

- 앞으로 초군과 전쟁터에서 만날 경우 삼사의 거리를 양보해서 은혜를 갚겠습니다. -

정나라가 영접관을 보내지 않아 자신을 맞이하지 않고 홀대한다고 생각한 중이는 즉시 수레의 방향을 남쪽으로 돌려 정나라 경계를 지나 초나라로 향했다. 이윽고 초나라에 당도한 중이와 그 일행은 초성왕을 알현했다. 성왕 역시 공자 중이를 제후의 예로써 대하고 잔치상을 준비하여 구헌례(九獻禮)⑥로 접대하려고 했다. 중이가 감당할 수 없다고 겸양했다. 조쇠가 중이의 곁에 시립하고 있다가 말했다.

「공자께서 십 수 년 동안 나라 밖으로 떠돌아다니면서 예의를 모르는 소국으로부터 무시와 모욕을 당해 왔지만 항차 이런 대국이야 예의를 모를 리가 있겠습니까? 이것은 아마도 하늘의 뜻인가 하니 사양하지 마시고 받으십시오.」

중이가 조쇠의 말을 듣고 초왕이 마련한 잔치상을 받았다. 주연이 끝났음에도 초왕의 극진한 태도는 변하지 않았다. 중이의 언사도 역시 더욱 겸손해졌다. 이로써 두 사람은 상대방의 마음을 깊이 이해하게 되어 서로 친해졌다. 중이는 초나라에서 당분간 편안히 지낼 수 있게 되었다.

하루는 초성왕이 중이와 같이 운몽(雲夢)⑦ 늪지에 사냥을 나갔다. 초왕이 무예를 뽐내면서 활을 연달아 두 번 쏘아 사슴과 토끼를 각각 한 마리씩 잡았다. 여러 장수들이 모두가 땅에 엎드려 칭하의 말을 올렸다. 그때 마침 곰 한 마리가 난데없이 나타나 중이가 타고 있던 수레를 들이받으려고 달려들었다. 초성왕이 보고 중이에게 말했다.

「공자는 어찌하여 활을 쏘아 곰을 잡지 않습니까?」

중이가 활을 잡아당겨 화살을 재고 마음속으로 하늘을 향하여 빌었다.

「내가 만약에 본국에 돌아가 군위에 오를 수 있다면 이 화살이 저 곰의 오른쪽 발바닥을 맞추게 해주옵소서!」

중이가 쏜 화살이 쉬잇 하는 소리와 함께 날아가 곧바로 곰의 오른쪽 발바닥에 꽂혔다. 군사들이 곰을 잡아 가지고 와서 중이에게 바쳤다. 초성왕이 보고 놀라면서 말했다.

「공자의 활 솜씨는 가히 귀신과 같습니다. 」

그리고 잠시 후에 짐승을 몰기 위해 사냥터를 에워싸고 있던 군사들 사이에서 함성소리가 진동했다. 초왕이 좌우에 있던 시종을 보내 알아보게 했다. 시종이 다녀와서 고했다.

「산골짜기에서 한 마리의 괴수가 뛰어 나왔는데 그 모습은 곰과 같이 생겼고, 코끼리 코에, 사자 머리에, 발은 호랑이의 것과 같습니다. 또한 몸에 난 털은 승냥이의 것과 같고, 목의 갈기는 멧돼지의 것에, 소꼬리를 하고 있습니다. 몸의 크기는 커다란 말과 같고 몸통에는 희고 검은 반점이 마치 얼룩말의 그것처럼 엇갈려 나 있습니다. 군사들이 겹겹이 둘러싸고 검과 창으로 찌르거나 활로 쏘아도 들어가지 않아 상처를 입힐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쇳덩어리란 쇳덩어린 모두 씹어 잘게 부수고 또한 수레의 바퀴에 붙어 있는 쇳덩어리조차도 모두 물어뜯어서 씹어 삼켜서 먹습니다. 더욱이 그 괴수의 행동이 흉맹하고 민첩하기까지 해서 군사들이 도저히 어찌 해볼 도리가 없어 도망치면서 저렇게 소리쳐 소란을 피우고 있는 중입니다.」

초왕이 중이를 쳐다보며 말했다.

「공자는 중원에서 살았으니 널리 전해들은 것이 많아 필시 그 괴수의 이름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중이가 머리를 돌려 조쇠를 쳐다보자 조쇠가 앞으로 나와 말했다.

「신이 그 괴수를 알고 있습니다. 이름은 맥(貘)이라 하며 천지간의 있는 쇠의 기운을 받고 생겨난 것이기 때문에 머리는 작고 발은 짧으며 구리와 쇠를 먹으며 쇠를 먹은 후 대소변을 보면 그것이 변하여 오금(五金)⑧이 됩니다. 왜냐하면 모든 쇠붙이는 그 괴수 몸 안에 들어가면 물로 변하기 때문입니다. 괴수의 뼈는 골수가 없는 단단한 물체라서 능히 망치로 대용할 수 있으며 그 가죽은 이불로 만들어 덮고 자면 돌림병을 물리칠 수 있으며 습기로 인하여 생기는 병을 예방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잡아야 하오?」

「가죽과 피부가 모두 쇠로 되어 있어서 어떤 무기를 사용하더라도 잡을 수 없으나 단지 콧구멍 중에 빈 공간이 있어 그곳을 매우 단단한 강철로 만든 무기를 사용하여 찌르면 잡을 수 있습니다. 아니면 그 짐승을 불로 태우면 즉시 죽습니다. 쇠는 불과 상극이기 때문입니다.」

조쇠가 말을 마치자 위주가 목소리를 높이며 말했다.

「신은 병기를 사용하지 않고 그 맥이라는 괴수를 사로잡아 어가 앞에 올리겠습니다.」

위주가 말을 끝내고 즉시 수레에서 뛰어내려 나는 듯이 맥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초왕이 중이를 보고 말했다.

「공자님과 같이 가서 저 장사가 맥이라는 괴수를 잡는 광경을 구경합시다.」

초왕이 즉시 어자에게 명하여 수레를 괴수가 있는 곳으로 몰게 했다.

한편 위주가 군사들이 에워싸고 있는 사냥터의 서북쪽 모퉁이로 달려가서 그 맥을 보자 다짜고짜로 달려들어 연달아 주먹을 쥐고 맥의 몸뚱이를 가격했다. 맥은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큰 소리로 울었는데 그 소리는 마치 소가 우는소리와 비슷했다. 맥이 두 발로 서서 덤벼들며 혓바닥으로 위주를 향하여 한 번 핥자 위주의 허리에 차고 있던 금으로 장식한 번쩍번쩍 빛나는 허리띠가 딸려가 맥의 목구멍으로 들어가 버렸다. 위주가 대노하여 소리쳤다.

「천한 짐승이 어찌 이리 무례하단 말인가?」

위주가 몸을 공중으로 한번 솟구쳐 땅에서 다섯 자나 높이 뛰어올라 내려오면서 그 괴수의 정수리를 걷어찼다. 그러나 위주의 발길에 걷어차인 야수는 그 자리에서 땅에 한번 구르더니 금방 다시 일어나 한쪽 편에 살포시 앉고서는 위주를 노려보았다. 위주가 가슴속에서 분한 마음이 더욱 세차게 치밀어 올라 다시 한 번 몸을 솟구쳐 그 기세를 타고 온 평생의 모든 힘을 다하여 몸을 날려 그 괴수의 등 뒤에 올라타고 두 손으로 목덜미를 껴안고 힘껏 졸랐다. 그 짐승도 있는 힘을 다하여 군사들이 에워싸고 있는 사냥터 가운데에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등 뒤에 붙어 있는 위주를 떼어버리려고 했으나 위주는 결코 목덜미를 조이고 있던 두 손을 놓지 않았다. 그 괴수가 한참동안 발버둥을 치더니 그 기세가 점점 수그려졌다. 그러나 위주는 여전히 흉맹한 기세를 누그러뜨리지 않고 목을 조르고 있던 양팔에 더욱 힘을 주었다. 드디어 괴수의 목덜미가 꺾이더니 숨이 끊어져 미동도 하지 않게 되었다. 위주가 등에서 뛰어 내려와 괴수를 쇠줄로 다리와 팔을 묶었다. 코끼리처럼 생긴 괴수의 코를 한 손으로 잡고 마치 개나 양 새끼를 끌듯이 끌고 와서 초왕과 중이 안전에 갔다 바쳤다. 진실로 호랑이 같은 장수였다.

조쇠가 군사들에게 명하여 불을 피우게 하여 괴수의 코 속으로 훈기를 집어넣자 그 괴수의 몸뚱이가 한 개의 물렁물렁한 무더기로 변했다. 위주가 손을 들어 허리에 차고 있던 보검을 뽑아 그 무더기를 향해 내리쳤으나 칼에서 불빛만 일어날 뿐 괴수의 털 하나도 상하게 하지 못했다. 조쇠가 보더니 말했다.

「이 괴수를 죽여서 가죽을 얻기 위해서는 불을 주위에 펴서 구워야 합니다.」

초왕이 조쇠의 말을 따라 그대로 행하게 했다. 마치 쇠처럼 단단한 그 괴수의 가죽과 근육은 사방에서 불을 때어 주변을 덥게 하자 점점 부드러워지기 시작했다. 군사들이 칼로 괴수의 가죽을 벗겨 냈다. 괴수의 일이 경황 중에 끝낸 초왕이 중이를 향하여 말했다.

「공자님을 따라 다니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모두 문무를 겸비한 호걸입니다. 우리나라에는 이와 같은 호걸이 한 사람도 없구려!」

그때 초성왕 곁에 성득신이 서 있다가 얼굴에 아주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초왕에게 말했다.

「대왕께서 당진국 신하들의 무예를 칭찬하시니 신이 한번 그들과 무예를 겨루어 보고 싶습니다.」

초왕이 허락하지 않았다.

「당진의 공자와 그 일행은 우리의 손님이다. 그대는 마땅히 존경하는 마음으로 대하라!」

이윽고 사냥을 끝낸 초왕은 중이 일행과 함께 궁궐로 돌아와서 연회를 열고 서로 크게 즐거워했다. 술이 거나해진 초왕이 중이에게 말을 걸었다.

「공자께서 만약이 귀국하여 진후의 자리에 앉으신다면 어떤 방법으로 나에게 보답하시겠습니까?

「대왕께서는 이미 아름다운 여자와 값비싼 옥과 비단은 넘쳐 나십니다. 또한 새의 깃털과 짐승의 털 및 상아와 가죽은 모두가 초나라에서 나는 진귀한 물건들입니다. 대왕의 마음에 드시는 물건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초왕이 웃으면서 말했다.

「설사 그렇다한들 보답할 것이 없겠습니까? 제가 꼭 듣고 싶습니다.」

「제가 만일에 대왕의 보살핌에 힘입어 당진의 군위에 오른다면, 원컨대 서로 수호하여 백성들을 편안하게 하도록 정치에 힘쓰겠습니다. 만약에 피치 못할 사정에 의해서 넓은 평원이나 소택지에서 대왕의 군사와 회전하게 될 경우 제가 대왕의 군사를 피하여 삼사(三舍)의 거리를 뒤로 후퇴하여 폐하의 은혜에 보답하도록 하겠습니다.」

보통 군사들이 하루에 걷는 행군거리는 일사(一舍)⑨라 하여 30리의 거리를 의미하고 삼사라 함은 군사들이 3일 동안 행군하는 90리의 거리를 뜻한다. 중이의 말은 후일에 당진과 초가 피치 못해 전쟁을 하게 될 경우 초군을 피해 싸우지 않고 자기의 군사를 삼사의 거리만큼 후퇴시켜 초왕의 은혜에 보답하겠다는 말이었다.

이윽고 그날 연회가 끝나자 화가 잔뜩난 성득신이 초왕에게 말했다.

「대왕께서 당진의 공자 일행들을 매우 극진히 대해 주시고 계시는데 오늘 중이의 말은 불손하기가 그지없습니다. 앞으로 그가 진후의 자리에 오른다면 반드시 초나라의 화근이 될 것입니다. 청컨대 중이를 죽일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당진의 공자는 현인이다. 또한 그를 따라 다니는 일행들도 모두 나라를 맡길 만한 큰그릇들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하늘이 중이를 돕고 있는 것 같다. 어찌 내가 하늘의 뜻을 거스를 수 있겠는가?」

「대왕께서 중이를 죽이지 못하신다면 일단은 호언과 조쇠 등 몇 명을 이곳에 억류시켜 호랑이의 날개 격인 그들을 떼어놓아야 합니다.」

「우리가 억류시켜 놓고 쓰지 않는다면 많은 사람들에게 원망을 사는 일이다. 과인이 지금까지 공자에게 은혜를 베풀었는데 다시 원한을 얻는 일은 좋은 계책이 아니다.」

초왕은 계속하여 중이 일행을 극진히 대접하였다.

6. 秦納重耳(진납중이)

- 중이를 불러오는 섬진(陝秦)의 목공 -

한편 주양왕15년 기원전 636년 당진의 혜공이 즉위한지 14년 째 되는 해다. 이 해에 혜공은 몸에 병이 들어 정사를 못 보게 되었다. 혜공의 태자 어(圉)는 오래 전에 섬진에 인질도 가 있었다. 어의 모친은 곧 양나라 군주의 딸이다. 양군(梁君)이 무도하여 백성들의 노고를 전혀 생각하지 않고 성을 대대적으로 축조하고 그 주위에 연못을 조성하는 등 대역사를 벌리는 일만을 능사로 했다. 백성들이 원망을 하며 양나라를 떠나 섬진으로 들어가 혹독한 노역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했다. 섬진의 목공은 양나라에 민심이 변한 틈을 이용하여 백리해에게 명하여 군사를 일으켜 양나라를 멸하게 했다. 양나라 군주는 란민(亂民)들에게 살해되었다. 태자어가 양나라가 망하는 모습을 보고 한탄하면서 말했다.

「섬진이 나의 외가 양나라를 멸망시킨 행위는 나를 업신여기기 때문이라!」

양나라를 멸한 섬진에 대해 원한을 품게 된 태자어는 또 혜공의 몸에 병이 나서 정사를 보지 못한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혼자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나는 단지 몸이 외국에 잡혀 있어 밖으로는 나를 가엽게 여겨 도와주려는 친구도 없고, 안으로는 심복도 하나 없어 도움을 받을 수가 없는 처지에, 만약에 부군께서 갑자기 돌아가시게 되어 여러 대부들이 공자들 중에서 한 사람을 추대하여 군주로 세운다면 나는 죽을 때까지 이곳 섬진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그때는 내 신세가 들판의 초목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이곳을 도망쳐 본국으로 돌아가 부군의 병구완을 하다가 돌아가시면 그 뒤를 이어야 되겠다. 」

태자어는 밤이 되어 잠자리에서 부인 회영에게 자기가 낮에 생각한 바를 이야기했다.

「내가 이곳에 인질로 잡혀있음으로 본국에 돌아갈 수 없다면 당진의 군주 자리는 남의 차지가 될 것이오. 내가 본국으로 도망치려고 하나 다른 한편으로는 부득이 부부의 정을 버리게 되는 일이라, 부인도 나와 함께 이곳에서 도망쳐 당진으로 들어가 나의 군부인으로 살게 되면 공사(公私)가 모두 이루게 되지 않겠소?」

회영이 흐느껴 울며 태자어에게 말했다.

「부군께서는 일국의 태자 신분으로써 이곳에서 굴욕을 당하고 계신데 본국으로 돌아가시고자 하심은 심히 당연한 일입니다. 섬진의 군주이신 저의 부군께서 첩에게 명하여 시중을 들게 하심은 세자의 마음을 붙들어 두고자 함입니다. 오늘 제가 세자를 따라 당진으로 가 버리면 이는 부왕의 명을 저버린 큰 죄를 짓는 일입니다. 태자께서는 스스로 방편을 택하여 행하시고 첩에게는 더 이상 말씀하지 마십시오. 첩은 감히 세자를 따를 수가 없으나 또한 세자께서 돌아가신다는 말을 다른 사람에게 누설하지 않겠습니다.」

태자어가 다음날로 섬진에서 몰래 도망쳐 당진의 본국으로 돌아갔다.

태자어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몰래 도망쳐 버렸다는 보고를 받은 목공은 화가 나서 큰 소리로 욕을 했다.

「배은망덕한 놈들이로다! 하늘이 결코 너를 용서치 않으리라!」

목공은 즉시 여러 대부들을 불러 말했다.

「이오 부자는 모두 나의 은혜를 저버렸다. 내가 반드시 이에 대한 죄를 물으리라!」

목공은 옛날에 자기가 중이를 도와 진후(晉侯)로 세우지 않았던 일을 후회하고 곧 바로 사람을 시켜 중이의 종적을 찾게 했다. 얼마 후에 중이가 초나라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몇 달 동안 기회를 보다가 공손지를 초왕에게 사절로 보내어 중이를 섬진으로 데려와 진후로 세우려고 한다는 뜻을 전하게 했다. 초왕이 중이를 불러 진백의 뜻을 전하자 중이는 짐짓 아무 것도 모르는 체하고 초왕에게 말했다.

「대왕의 은혜를 입고 있는 망인은 모든 것을 대왕의 명대로 하고자 합니다. 원컨대 섬진으로 가고 싶지 않습니다.」

초왕이 중이의 말에 대답했다.

「초나라와 당진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공자께서 만일 당진으로 들어가시려고 하신다면 반드시 중간의 여러 나라를 거쳐야만 합니다. 그러나 섬진과 당진은 국경이 접한 이웃 나라들이라 아침에 출발하면 저녁 때 닿을 수 있는 거리입니다. 또한 진백은 원래 영명하고 더욱이 지금의 진후와는 사이가 좋지 않으니 이번에 공자를 섬진에서 부른 일은 실로 하늘이 주신 좋은 기회라 할 수 있습니다. 공자께서는 섬진의 부름을 거절하지 마십시오.」

중이가 초왕에게 절을 올리며 감사의 말을 했다. 초왕이 황금과 비단을 가득 실은 수레와 말을 중이 일행에게 주어 그 행렬이 매우 장려하게 되었다.

7. 회영중혼(懷嬴重婚)

- 섬진의 공자들과 두 번 혼인하는 진목공의 딸 회영(懷嬴) -

중이 일행은 여러 달 동안의 노정 끝에 드디어 섬진의 경계에 당도했다. 섬진으로 들어가는데 비록 여러 나라를 거쳐야 했지만 모두가 섬진과 초나라를 따르는 제후국들이고 더욱이 제후국 사이에 이름이 높은 공손지가 동행했기 때문에 중도에 대접을 정중히 받으며 편안한 여행을 할 수 있었다.

중이가 섬진의 도성 밖에 당도했다는 소식을 들은 목공은 얼굴에 기쁜 기색을 띄우며 성 밖으로 친히 마중 나갔다. 중이 일행을 인도하여 공관에 들게 한 목공은 극진한 예를 행하고 수많은 음식을 장만하여 대접했다. 중이의 이복동생으로 평소에 그의 인품을 공경하고 사랑했던 목공의 부인 목희도 역시 대단히 기뻐했다. 또한 자기의 딸을 버리고 당진으로 달아난 태자어를 괘씸하게 생각하고 있던 목희는 목공에게 권하여 회영을 중이의 처로 삼아 혼인을 맺어 두 나라 사이의 우호를 맺도록 청했다. 목공이 부인을 시켜 회영의 뜻을 알아보게 했다. 회영이 말했다.

「저는 이미 태자어에게 몸을 허락한 사람인데 어찌 다시 혼인을 할 수 있습니까?」

같이 있던 목희가 말했다.

「태자어란 놈이 다시 돌아오겠느냐? 중이는 어질고 또한 많은 사람들이 곁에서 돕고 있으니 반드시 당진의 군주가 될 수 있다. 그가 당진의 군위에 오른다면 너를 필시 부인으로 세울 텐데 이것은 섬진과 당진이 대를 이어 혼인으로 우호관계를 맺게 되는 일이 아니겠느냐?」

회영이 오랫동안 아무 말도 안하고 묵묵히 있다가 입을 열어 말했다.

「진실로 사정이 그러하다면 제가 어찌 일신상의 일만을 생각하여 두 나라가 우호를 이루는데 방해가 되겠습니까?」

목공이 공손지를 보내 회영과의 혼인데 대한 중이의 뜻을 알아보게 했다. 태자어와 중이는 숙질간이고, 회영 역시 중이에게는 집안의 조카며느리에 다시 목회는 중이의 여동생이라 그것은 곧 회영은 중이에게는 생질이기도 했다. 조카며느리에 생질과 혼인을 하는 일은 윤리에 어긋나는 행위라고 생각한 중이는 목공의 구혼을 물리쳤다. 조쇠가 보고 자기의 의견을 말했다.

「신은 회영이 미모와 재주를 겸비하여 진백과 그 부인이 매우 사랑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회영을 거부하시면 섬진의 환심을 살수 없습니다. 신이 듣기에 ‘다른 사람의 사랑을 받고자 한다면 자기가 먼저 그 사람을 사랑하여야 하고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를 따르게 하려면 자기가 먼저 다른 사람을 따라야만 한다.’⑩라고 했습니다. 혼인을 거부하여 섬진의 환심을 얻지 못한다면 그 힘을 빌릴 수 없어 아무 일도 이룰 수 없습니다. 공자께서는 절대 사양하면 안 됩니다.」

「동성끼리 혼인도 서로 피하는데 하물며 조카며느리에 생질되는 사람과 어떻게 혼인을 한단 말이오?」

호가 구계(臼季)인 서신(胥臣)이 나서서 말했다.

「옛날 말에 동성이라 함은 동덕(同德)을 말함이지 동족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옛날 황제(黃帝) 헌원씨(軒轅氏)와 염제(炎帝) 신농씨(神農氏)는 모두 웅국(熊國)의 임금인 소전(小典)의 아들들로써 황제는 희수(姬水)를 낳고 염제(炎帝)는 강수(姜水)를 낳았습니다. 두 임금이 덕이 서로 달랐기 때문에 황제는 희성을 갖게 되었고 염제는 강씨 성을 취했습니다. 후에 희족(姬族)과 강족(姜族)들은 대대로 혼인을 하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25명에 달하는 황제의 아들들 중 성씨를 얻은 자는 14명이었습니다. 그 중 오로지 희(姬)와 기(己) 두 성씨만이 동덕이 되었습니다. 덕도 같고 성도 같다면 비록 먼 종족간이라 할지라도 혼인을 할 수 없습니다. 덕도 다르고 성도 다르다면 비록 가까운 종족이라 할지라도 남녀의 혼인은 꺼려하지 않습니다. 요임금은 제곡(帝嚳) 임금의 아들이고 황제의 5대 손입니다. 그리고 순임금은 황제의 8대 손이라 요임금의 딸은 순 임금에게는 고모할머니가 됩니다. 요임금이 자기의 딸을 순임금과 혼인을 시키려고 하자 순임금은 사양하지 않았습니다. 옛날 성인들이 행한 혼인의 도가 이러할 진데, 태자어의 덕이라 할 수 있을 일을 어찌 공자님과 같은 덕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또한 친척간이라는 말은 섬진 군주의 딸에 불과한데 어찌 고모할머니에 비하겠습니까? 하물며 태자어가 아끼는 여인을 빼앗는 행위가 아니라, 그가 버린 여인을 걷어 들이는 일입니다. 어찌 윤리를 해친다고 하십니니까?」

중이가 다시 호언을 불러 어찌하면 좋은지 그의 의견을 물었다.

「외숙부께서는 섬진 군주 딸과의 혼인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공자께서 섬진에 들어오신 목적은 힘을 빌려 당진의 본국으로 들어가 군주자리에 오르기 위해서가 아닙니까? 그것이 아니라면 진후의 군주 자리에 다른 사람을 대신 앉히려고 하십니까?」

중이가 계속해서 뜻을 굽히지 않자 호언이 다시 말했다.

「당진의 군위는 장차 태자어에게 전해져 만일 회영이 절개를 지켜 태자어를 받든다면 그녀는 불려가 당진의 국모가 될 것입니다. 또한 만일 공자님께서 장차 태자어의 자리를 대신 차지하게 되면 그때는 회영은 원수의 처자가 됩니다. 어찌 다시 물으십니까?」

중이가 얼굴에 부끄러운 기색을 띄우며 여전히 주저하자 이번에는 조쇠가 끼어들어 말했다.

「나라를 빼앗는데 처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큰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작은 일에 구애받지 말아야 합니다. 나중에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중이가 결국 뜻을 굽히고 회영을 맞이하기로 결심했다. 공손지가 중이의 허락을 받아 목공에게 돌아가 복명했다. 중이는 길일을 택해 폐백을 보내고 공관을 빌려 혼례를 올렸다. 회영의 미모는 제나라에 두고 온 강씨보다 더 예뻤다. 또한 목공은 공실의 여인들 중 4명을 뽑아 회영의 잉첩(媵妾)으로 중이에게 주었는데 모두가 미색이 출중했다. 처음에 주저하던 중이가 뜻밖에 많은 미녀를 얻어 희색이 만연하게 되었다. 곧이어 회영과의 생활에 빠져 유랑 생활을 할 때의 고생스러움도 잊어버리게 되었다. 후에 사관이 회영에 관하여 시를 지어 논했다.

한 여인에게 어찌하여 하늘같은 지아비가 둘이던가?

더욱이 두 사람은 숙질간의 인척인데

오로지 섬진의 환심만을 얻고자 하여

인간으로써 지켜야 할 예의와 염치를 돌보지 않았다.

一女如何有二天(일녀여하유이천)

況于叔姪分相懸(항우숙질분상현)

只因要結秦歡好(지인요결진환호)

不恤人言禮義愆(불휼인언예의연)

섬진의 목공은 평소에 공자 중이의 인품을 우러러보고 있었다가 또한 혼인을 맺어 사위와 장인 사이가 되자 그 정의가 더욱 돈독하게 되었다. 3일마다 한 번씩 잔치를 열고 5일마다 한 번씩 향응을 베풀어 중이 일행을 접대했다. 섬진의 세자 앵(罃) 역시 중이를 매우 공경하여 시시때때로 음식을 가져와 이모부에 행하는 예로 문안을 올렸다. 조쇠, 구계, 호모 등은 섬진의 건숙과 백리해 및 공손지 등의 중신들과 친교를 깊이 맺었다. 하지만 그들 모두는 비록 섬진의 극진한 접대에 즐거운 마음으로 지냈지만, 마음 속 한 구석에는 당진으로 들어가는 일이 늦어지는 일을 걱정했다. 하나는 공자가 신혼의 단꿈에 젖어 복국하는 일에 대해 그다지 열의를 갖고 있지 않았고, 둘은 당진의 국내 정세에 별다른 변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그들은 감히 경거망동할 수는 없었다. 그들 모두들 서로 다짐하며 때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그것은 마치 옛말에 다음과 같이 이르는 것 같았다.

「때가 오면 쇠로 된 나무에도 꽃이 피게 되는 법이다.」⑪

하늘이 중이 공자를 내어 진후의 자리에 앉혀 백업을 이루게 하려 하니 때가 되면 자연히 기회가 생길 것이라고 그들은 생각했다.

8. 狐突被殺(호돌피살)

- 원로대신 호돌을 죽여 사대부들의 신망을 잃는 진회공(晉懷公) -

한편 당진의 태자어가 섬진에서 도망쳐 와서 부친인 혜공을 배알했다. 혜공이 크게 기뻐하며 말했다.

「내가 앓아누운 지가 오래 되었음에도 후사를 맡길 사람이 곁에 없어 근심을 하고 있던 차에 오늘 네가 섬진의 새장에서 탈출하여 태자의 자리에 돌아왔으니 내 마음이 심히 기쁘구나!」

그해 가을9월에 혜공이 병이 위독하게 되자 여성(呂省)과 극예(郤芮) 두 사람을 불러 태자 어를 부탁하면서 말했다.

「내가 죽게 되면 다른 공자들은 그다지 염려할 바가 없겠지만 중이만은 각별히 경계해야만 할 것이오!」

여성과 극예 두 사람이 머리를 조아리고 혜공의 명을 받았다. 그날 밤에 혜공이 죽었다. 태자 어가 장례를 치르고 당진의 군위에 즉위했다. 이가 회공(懷公)이다.

회공은 군주의 자리에 오르자마자 중이가 나라 밖에서 변을 일으킬까 두려워하여 즉시 명을 내리면서 말했다.

「중이를 따라 나라 밖에서 유랑하는 당진국 신하들의 친척들은 모두3개월을 시한으로 하여 나라 안으로 불러 들여라! 기한 내에 돌아온 자는 죄를 묻지 않고 옛날의 관직을 주겠으나 만약에 그 기한을 어겨 돌아오지 않는 자들은 녹봉을 호적에서 지워 버리고 죄인의 명부인 단서(丹書)에 사(死)자로 주(注)를 달아 놓겠다. 그자들의 부자나 형제들 중 부르지 않고 좌시만 하고 있는 자는 모두가 죽음을 면하지 못하리라!」

노국구 호돌의 두 아들 호언과 호모는 모두 중이를 따라다니다가 현재 섬진에 있었다. 극예가 조용히 호돌을 찾아와 두 사람을 불러들이는 편지를 쓰라고 권유했다. 호들이 계속 편지를 써 주지 않았다. 극예가 회공에게 호돌을 일을 고했다.

「호돌의 두 아들 호언과 호모는 모두 장상의 재목입니다. 지금 중이와 같이 섬진에 있으니 이것은 마치 호랑이에게 날개가 달린 격입니다. 호돌이 불러들이지 않고 있으니 그 뜻을 짐작하지 못하겠습니다. 주군께서는 그를 불러 추궁하십시오.」

회공이 사람을 시켜 호들을 불러오라고 했다. 살아 돌아오지 못하리라고 짐작한 호돌이 집안사람들과 작별인사를 한 후에 궁궐로 들어가 회공을 보고 말했다.

「노신은 몸에 병이 들어 아무 일도 못하고 집안에만 있어 왔습니다. 어찌하여 저를 부르시는지 그 까닭을 모르겠습니다.」

「경의 두 아들 호언과 호모가 나라 밖에 있는데 노국구께서 이미 귀국하라는 편지를 써서 보내셨는지 알고 싶어 불렀습니다.」

「아직 편지를 쓰지 못했습니다.」

「과인이 영을 내려 기한 내에 돌아오지 않는 자의 가족들도 같은 죄로 다스리겠다고 했는데 노국구께서는 어찌하여 이 일을 모르신다고만 하십니까?」

「신의 두 아들놈이 중이에게 몸을 맡긴지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님은 세상 사람이 다 알고 있습니다. 충신은 그 주군을 모시다가 죽을지언정 다른 사람은 모시지 않는 법입니다. 두 아들놈이 중이에게 충성을 다하고 있는 일은 마치 여기 있는 여러 신하들이 주군께 총성을 바치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만일 그들이 도망쳐 이곳으로 온다면 신은 그들의 불충을 꾸짖고 가묘(家廟)에 데리고 가서 죽일 것입니다. 그런데 어찌 제가 그들을 부르겠습니까?」

회공이 듣고 크게 노하여 즉시 장사 두 명에게 소리쳐 명하여 시퍼렇게 날이 선 칼을 호돌의 목에 겨누게 하고는 말했다.

「너의 두 아들놈들을 불러오겠다고 한다면 죽음을 면하게 해주겠다.」

회공이 면포를 가져오게 하여 호돌의 앞에 놓자 극예가 호돌의 손을 붙잡고 강제로 편지를 쓰게 하려고 했다. 호돌이 소리쳐 말했다.

「내 손을 놓아라! 내가 직접 쓰리라!」

호돌은 즉시 여덟 개의 글자를 크게 면포 위에 썼다.

「자무이부(子無二父), 신무이군(臣無二君)」⑫

회공이 보고 대노하여 호돌을 향하여 말했다.

「너는 죽음이 두렵지 않느냐?」

「자식으로써 효를 다하지 못하고 신하로써 충성을 다하지 못하게 될 일만을 노신은 걱정하고 있을 뿐입니다. 만약 죽게 된다면 그것은 곧 신자된 자로써 항상 있을 수 있는 일인데 어찌 두려워하겠습니까?」

호돌이 말을 끝내고 목을 길게 늘어뜨리며 형을 받으려고 했다. 회공의 명을 받은 무사들은 호돌을 시정으로 끌고가 참수형에 처했다. 태복 곽언(郭偃)이 호돌의 시체를 쳐다보며 탄식하였다.

「군주가 그 자리에 오른지 어제인데 어찌 그 덕이 일개 필부만도 못한가? 나라의 원로대신을 함부로 죽이니 얼마 가지 못하리라!」

곽언은 즉시 몸이 아프다고 핑계를 대고 두문불출했다. 호씨의 가신들이 허겁지겁 도망쳐 섬진으로 와서 호언과 호모 형제에게 호돌이 회공에게 잡혀 참수형에 처해졌다고 고했다.

<제36회로 계속>

주석

①호석고(狐射姑)/ 호언(狐偃)의 아들이다.

②적불(赤芾="赤韍," 赤黻)/ 고대에 대부 이상이 관리가 조복이나 제복을 입을 때 붉은 색의 가죽으로 만들어 무릎을 가리던 예복

③초헌(軺軒)/ 한 필의 말이 끄는 수레로서, 그 지붕은 활 모양으로 되어 가운데가 높고 사방 주위는 차차 낮아지는 모습을 하고 있다. 고대에 대부이상의 고관들만 타고 다녔다. 즉 적불이나 초헌은 대부이상의 고관만이 입거나 타고 다니게 되어 있는 것을 조공공이 자기와 친한 사람은 아무에게나 허용하여 법도가 어지러워졌음을 이야기한 것이다.

④중동(重瞳)/ 두 겹으로 된 눈동자. 사마천의 사기 항우본기에 다음과 같은 기사가 있다. “ 나는 주생이「순임금의 눈동자는 중동(重瞳)의 두 개였다.」라고 한 말을 들었다. 또 나는 항우의 눈동자도 두 개였다는 말을 들었다. 그렇다고 어찌 항우가 순임금의 후예이겠는가? 또한 그렇지 않다면 항우가 어찌 그리 갑자기 일어날 수 있었단 말인가?”

⑤변협(騈脇)/ 통갈비. 갈비가 나란히 붙어 통뼈 같은 늑골

⑥구헌례(九獻禮)/ 고대에 있어서 국가간의 외교상 가장 성대한 의식이다. 9명의 영접관이 구주의 이름 순에 의해 도열했다가 호명하면 차례대로 나와 사자를 전당으로 인도했다.

⑦운몽(雲夢)/ 지금의 호북성 강한평원(江漢平原)의 신주(神州), 감리(監利), 형문(荊門), 종상(鐘祥), 운몽(雲夢) 등 동서 8백리, 남북 5백리에 걸친 산림과 늪지로 이루어진 수택(藪澤)을 지칭한다.

⑧오금(五金)/ 다섯 가지 금속으로 금(金), 은(銀), 동(銅), 철(鐵), 석(錫)을 말한다.

⑨일사(一舍)/ 고대의 거리의 단위이며 지금의 12키로에 해당한다.

⑩) 欲人愛己 必先愛人, 欲人從己 必先從人.

⑪運到時來, 鐵樹花開

⑫자무이부(子無二父), 신무이군(臣無二君)/ 자식에게 두 아버지가 없듯이 충신에게도 두 임금이 있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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