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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12-06 06:15:166519 
인상여(藺相如)의 완벽귀조(完璧歸趙)에 대해 논함-王世貞
양승국
일반

인상여(藺相如)의 완벽귀조(完璧歸趙)에 대해 논함.

왕세정(王世貞)

모든 사람들이 인상여(藺相如)가 벽옥(碧玉)을 온전히 가지고 온 것을 칭찬하지만, 나는 사실 믿을 수 없다고 여긴다. 진(秦)나라가 열다섯 성을 준다고 거짓으로 말해서, 조나라를 속여 벽옥을 가져오도록 협박했다. 그 당시 그 벽옥을 취하고자 한 것은 사실이나, 기회를 엿보아 조나라를 점령하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 조나라는 진나라가 속여 벽옥을 빼앗으려 한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그 벽옥을 주지 않았을 것이고, 그 사실을 몰랐다면 벽옥을 주었을 것이다. 그 사실을 알고도 진나라를 두려워했으면 주었을 것이고, 그 사실을 알고 진나라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주지 않았을 것이다. 이 두 가지는 명백한 것인데 어찌하여 진나라를 두려워하면서도 화나게 하겠는가?

또 진나라가 벽옥을 가지려하고 조나라는 그것을 주지 않으려고 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벽옥을 받고 진나라가 성을 주려 했는데도 잘못은 진나라에 있는 것이며, 진나라가 성을 주려 했는데도 벽옥을 가지고 돌아온다면 잘못은 조나라에 있는 것이다. 그러니 진나라에 잘못이 돌아가게 하려면 벽옥을 주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두려워서 벽옥을 주는 것은 주지 않은 것만 못한 것이다.

진왕이 계획대로 성을 조나라에 주려고 구빈(九賓)의 예을 갖추어 목욕재계하고 벽옥을 받는다면, 이런 상황 하에서는 성을 주지 않을 수 없다. 벽옥을 받고도 성을 주지 않으면, 인상여가 왕 앞에 나아가

“ 신은 본래 대왕께서 성을 주시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 벽옥은 조나라의 보물은 아니지만, 열다섯 개성은 진나라 보물입니다. 지금 만약 대왕께서 벽옥 때문에 열다섯 개의 성을 잃으신다면, 열다섯 성의 젊은이들이 모두 대왕을 몹시 원망하면서, 자신들을 마치 지푸라기와 같이 가치 없게 여긴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대왕께서 성은 주시지 않고 조나라의 벽옥을 속여 가지신다면, 저의 벽옥 하나 때문에 천하에서 신용을 잃게 될 것입니다. 신은 이 나라에서 죽어 대왕께서 신용을 잃었다는 것을 세상에 드러나게 하겠습니다.”라고 하면, 진왕이 벽옥을 돌려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어찌 측근에게 벽옥을 감추고 조나라에 도망하게 하여, 진나라에 정당성을 부여했는가?

당시 진나라는 조나라와 국교를 단절할 의사가 없었다. 진왕이 노하여 인상여를 시장에서 죽이고, 무안군 백기(白起)에게 군대 십만을 주어 한단을 위협하며, 벽옥과 신용을 지키지 못한 것을 문책하면서 전쟁을 벌여 한 번만 승리했더라도 인상여는 멸족되었을 것이다. 두 번 승리했다면 벽옥은 끝내 진나라의 것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인상여가 벽옥을 보존한 것은 하늘의 뜻이다’라고 이야기한다. 그가 민지(澠池)에서 진왕을 만났을 때 강경하게 대하고 염파(廉頗)에게 유순하게 대한 것을 생각하면 정말 훌륭하기 이를 데 없다. 조나라를 능히 보전할 수 있었던 것은 하늘이 뜻을 굽혀 완성시킨 것이다.

-왕세정

자 원미(元美), 호 봉주(鳳州) ·엄주산인(弇州山人). 명나라 때 강소성(江蘇省) 태창(太倉) 출생으로 가정연간에 활악한 정치가이자 문인이다. 1547년 진사가 되고 형부(刑部)의 관리가 되었으나, 강직한 성격 때문에 당시의 재상 엄숭(嚴嵩)의 뜻을 거역하였다. 엄숭이 구실을 만들어 고도어사(古都御史)인 그의 아버지를 사형시키자, 벼슬을 그만두고 아버지의 무고함을 주장하여 8년간이나 노력한 끝에 명예를 회복시켰다. 그 뒤 다시 지방관에 복귀하였고, 난징[南京]의 형부상서(刑部尙書)를 마지막으로 관직에서 물러났다.

젊을 때부터 문명이 높아 가정칠재자(嘉靖七才子:後七子)의 한 사람으로 손꼽혔고, 학식은 그 중에서도 제1인자였다. 후칠자의 맹주격인 이반룡(李攀龍)과 함께 이왕(李王)이라 불려 명대 후기 고문사(古文辭)파의 지도자가 되었으며, 이반룡이 죽은 뒤에는 그 지위를 독점하였다. 격조를 소중히 여기는 의고주의(擬古主義)를 주장하였으나, 이반룡이 진한(秦漢)의 글과 성당(盛唐) 이전의 시만을 그대로 모방한 데 비하여 왕세정은 상당히 유연한 태도를 취하였다. 만년에는 당나라의 백거이(白居易) ·한유(韓愈) ·유종원(柳宗元), 송(宋)나라의 소동파(蘇東坡) 등의 작품에도 심취하였다.

그는 《엄산당별집(嚴山堂別集)》 등 많은 역사 관계 논문을 남겼다. 《엄주산인사부고(弇州山人四部考)》(174권) 《속고(續稿)》(207권)는 그의 전집이며, 문학 ·예술론은 《예원치언(藝苑卮言)》에 수록되어 있다. 중국 4대기서(四大奇書)의 하나로 알려진 《금병매(金甁梅)》가 그의 작품이라는 설이 있고, 희곡으로는 《명봉기(鳴鳳記)》가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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