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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9-05 16:38:52136 
포퓰리스트 정권의 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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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포퓰리스트적인 정권의 말로

권력이나 부의 획득 즉 인생을 공으로 이끄는 쉬운 방법을 놔두고 구태여 원칙을 지켜가며 요새처럼 새털처럼 가벼운 처신이 유행인 시대의 시각으로 보면 답답하기조차 한 어떤 정치인의 행보는 어떻게 보면 시대에 뒤떨어진 봉건왕조 시대의 사람으로 보인다. 탄핵정국으로 시작된 대선이 문재인의 당선으로 끝났다. 어쨌든 당선이 바로 선이고 가치이기 때문에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한 선거운동으로 마침내 대권을 손에 쥐었다. 문재인에게 배팅한 정치인들, 기업인들, 학자들, 언론인들 기타 등등의 한국의 내노라하는 인물들은 앞으로 있을 논공행상의 잔치에 들떠 있을 것이다. 좌우지간 어떤 싸움이던 붙으면 이겨야 하는 것이 인생을 실패자로 사는 대신 성공자로 살 수 있는 기본원리다. 그래서 일단 사람들은 쉽게 이기는 길을 선택한다. 누가 무엇을 달라고 하면 대통령만 시켜준다면 무엇이든지 준다고 약속을 하고 심지어는 이렇게 막 퍼주겠다는 데도 나에게 투표를 하지 않을 거야?라고 강제한다. 그 셀 수도 없는 수많은 공약들. 하나 하나 이행하기 위해서는 쏟아부어야하는 인력과 경비들. 특히 불경기로 국민들의 생활이 위축되어 세수확보가 어려운 때에 천문학적으로 소요되는 재원들을 생각하면 문재인정부의 앞날과 더 나아가 난장판이 될 국가의 장래가 심히 걱정된다. 무식한 김영삼, 그리고 재임 중 1만 달라 국민소득달성이라는 구호에 집착하여 나라의 곶간이 절단난지도 모르고 흥청망청하다가 결국은 미증유의 국가부도 사태를 일으킨 김영삼의 전철이 생각이 나서다. 말은 쉽지만 이행은 어렵다. 모든 이해집단간의 이해가 충돌하기 때문이다. 어떤 정책이 부자나 우파에게 좋으면 서민이나 좌파에게 나쁘고 그 반대의 경우도 또한 그렇다. 그래서 자고로 개인이나 국가도 신임을 상대방에게 신임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약속을 아꺼야한다고 했다. 지킬 수도 없는 허황된 공약을 남발해 놓고 하다가 안 되면 남탓하면 그만인 것이 국가를 경영하는 올바른 방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그 댓가를 치러야하기 때문이다. 문재인대통령이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 남발하신 공약중 제일 고약한 정책이 다음 몇 가지인 것 같다.

경제활성화

공공부문을 이용한 일자리 창출

자영업자를 사지로 모는 가계부채총량제

군복무 18개월

중국과 미국 사이의 줄타기외교

미국의존적인 국방정책의 자주국방화 정책

친일기득권 층과의 충돌

북한핵포기와 남북갈등 해소

모쪼록 잘 해결되면 좋겠으나 모두가 상호충돌되는 사안들 뿐이다.

옛날 중국의 춘추시대 초기에 천자 대신 제후국들에게 호령을 시작한 나라는 정나라다. 정나라는 지금의 중국 하북성 정주시 남 50키로 정도 되는 신정(新鄭)이라는 도시를 도성으로 삼고 그곳으로부터 반경 약 100-150키로 내의 지역을 지배했던 강대국이었다. 정나라를 강대국으로 발전시킨 군주는 정무공과 정장공이다. 춘추오패에 준하는 실력을 갖추었다고 해서 사가들은 정장공을 소패(小覇)라고 불렀다. 정장공의 장남은 세자로 책봉된 홀(忽)이고, 차남은 야심가인 돌(突)이다. 정장공은 죽을 때 군위를 장남에게 물려주고 야심가인 돌이 걱정되어 외가인 송나라에 보내 살게 했다. 정나라 군주자리가 탐난 돌은 송장공을 찾아가 자기를 도와 정나라 군주자리에 앉게 해 주면 다음과 물품들을 바치겠다고 맹세했다.

1. 정나라 3개의 성

2. 벽옥 백 쌍,

3. 황금 만일(萬鎰 : 1일은 300-400그람으로 황금 만일은 지금의 단위로 3-4천 키로다.)

4. 양식 3만 종(鍾 : 일 종(鍾)은 10 곡(斛)이고 일 곡은 10두로 3만 종은 30만 섬에 해당한다)

돌은 송나라가 보낸 군사들의 힘으로 정나라 군주의 자리에 올랐다. 돌이 정려공(鄭厲公)이다. 그러나 송장공은 곧바로 사자를 정나라에 보내기 시작해서 정려공이 약속한 공물을 갚으라고 한 달에도 몇 번씩이나 사자를 계속 보내 재촉했다. 정나라 도성 신정성과 송나라의 도성 수양성은 지금의 단위로 약 200키로 되는 거리다. 군주의 자리에 오를 욕심으로 송나라에 공물을 바치겠다고 약속은 했지만 당시의 상황으로 성 세 개를 포함한 막대한 량의 공물을 바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에 자연히 정장공은 송나라와의 약속을 지킬 수 없었다. 그는 마치 대통령 자리를 차지할 욕심만으로 앞뒤 안 가리고 국민을 향해 약속을 남발한 21세기 한국의 대통령 후보들의 먼 선배와 같은 존재였다. 결국은 송장공의 지나친 욕심과 정장공의 무책임한 공약으로 인해 두 나라 사이에 전쟁이 발생하고 그 과정에서 주변 제후국들이 가세하여 결국은 7국이 물고 물리는 국제전으로 비화되었다. 그 여파로 정려공은 구데타로 군주의 자리에서 쫓겨나고 제후연합군의 협격을 받은 송나라 역시 전화를 피할 수 없었다. 불가능한 약속을 한 후보자나 불가능한 약속을 믿고 찍어준 국민이나 종국적으로는 모두 치명적인 상처를 입게 되는 전형적인 고사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정장공의 사건이 발생한 지 정확히 50년 후인 기원전 651년에 정려공이 저지른 사건과 판박이처럼 닮은 사건이 당진(唐晉)이라는 제후국에서 발생했다.

당진의 헌공에게는 유능한 아들 셋을 두고 있었다. 나이는 어리지만 적자 신분으로 태자가 된 신생과 후에 당진국의 군주 자리에 차례로 오른 진혜공 이오와 진문공 중이가 그들이었다. 진헌공이 노년에 얻은 여융족 출신의 여희(驪姬)를 얻어 총애하여 그 사이에 해제라는 아들을 얻었다. 여희의 농간에 놀아난 헌공은 신생을 죽이고 중이와 이오를 외국으로 쫓아내고 어린 아들 해제를 태자로 세웠다. 이윽고 노환으로 헌공이 죽자 해제를 살해한 당진국의 국인들이 중이와 이오 두 사람 중 한 명을 불러와 그들의 군주로 세우려고 했다. 당시 황하를 사이에 두고 당진국의 이웃 나라의 군주 진목공은 중원의 패권을 노리고 있었던 영명한 군주였다. 진목공은 망명생활을 하고 있었던 중이와 이오 중 한 사람을 선택하여 당진국으로 들여보내 그들의 군주로 세우려고 했다. 그래서 사자를 두 사람에게 보내 그들의 의중을 떠보았다. 중이는 섬진국의 사자에게 아무런 언질을 주지 않으며 그저 자신의 부군 진헌공의 명복만을 비는 말만을 했다. 반면 이오는 섬진국이 자신을 도와 당진국의 군주 자리에 올려준다면 당진국의 영토 중 하외오성을 할양하여 섬진국이 중원진출의 전진기지를 삼게 해주겠다고 약속하고 사자로 간 사람에게 막대한 뇌물도 함께 주었다. 동시에 당진국의 유력한 세력의 우두머리들에게 자신이 군주의 자리에 오르는데 협력하면 광활한 넓이의 영토를 봉지로 할양하겠다고 약속했다. 자신이 군주자리에만 오를 수 있다면 어떤 대가도 지불할 용의가 있는 듯이 행동했다. 마침내 이오는 진목공과 당진국 내의 유력한 세력의 도움으로 당진국의 군주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이오가 진혜공이다. 약속을 남발하는 사람은 약속을 지키지 않는 법이다. 진혜공은 결국 하외오성을 할양하겠다는 약속을 파기하고 또한 국내에서 호응한 인사들에게 주기로 한 봉지도 하사하지 않았다. 그 결과 섬진과 당진사이에 전쟁이 발발하한 결과 진혜공은 섬진국의 포로가 된 연후에야 하외오성을 할양하고 자신의 태자를 인질로 보내야만 했다.

반대로 후에 춘추오패의 한 자리를 차지한 진문공의 경우는 확실히 차별성이 있다. 그는 우선 진목공이 당진국의 군주자리에 올려주겠다는 제안을 거절했다. 진목공의 도움으로 군주의 자리에 오르게 되면 섬진국에 지불할 대가가 너무 클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결과 이오가 보낸 자객에게 쫓겨 중원의 여러 나라를 전전했다. 우여곡절 끝에 초나라에 들어가 초성왕으로부터 환대를 받았다. 초성왕이 진문공에게 물었다.

「공자께서 만약이 귀국하여 당진국의 군주자리에 앉으신다면 어떤 방법으로 나에게 보답하시겠습니까?」

「대왕께서는 이미 아름다운 여자와 값비싼 옥과 비단은 넘쳐 나십니다. 또한 새의 깃털과 짐승의 털 및 상아와 가죽은 모두가 초나라에서 나는 진귀한 물건들입니다. 대왕의 마음에 드시는 물건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초왕이 웃으면서 말했다.

「설사 그렇다한들 보답할 것이 없겠습니까? 제가 꼭 듣고 싶습니다.」

「제가 만일에 대왕의 보살핌에 힘입어 당진의 군위에 오른다면, 원컨대 서로 수호하여 백성들을 편안하게 하도록 정치에 힘쓰겠습니다. 만약에 피치 못할 사정에 의해서 넓은 평원이나 소택지에서 대왕의 군사와 회전하게 될 경우 제가 대왕의 군사를 피하여 삼사(三舍)의 거리를 뒤로 후퇴하여 폐하의 은혜에 보답하도록 하겠습니다.」

- 보통 군사들이 하루에 걷는 행군거리는 일사(一舍 : 고대의 군대가 하루에 행군하는 단위이며 지금의 12키로에 해당한다.)라 하여 30리의 거리를 의미하고 삼사라 함은 군사들이 3일 동안 행군하는 90리의 거리를 뜻한다. 후일에 당진과 초가 피치 못해 전쟁을 하게 될 경우 초군을 피해 싸우지 않고 자기의 군사를 삼사의 거리만큼 후퇴시켜 초왕의 은혜에 보답하겠다는 말이었다. -

그리고 6년 후에 진문공은 초나라와 군사들과의 싸움에서 삼사(三舍)를 뒤로 후퇴하여 초성왕과의 약속을 지킨 후에 성복에서 초군을 대파하여 천자를 대신하여 제후들에게 호령하는 패자의 자리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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