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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5-14 06:09:502190 
[백가쟁명:강성현] ‘새벽 시장’과 ‘저녁 시장’의 맹상군(孟嘗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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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 머물 때마다 발이 닳도록 새벽시장을 들락거렸다. 어릴 적 습관은 타국에서도 버릴 수 없나보다. 새벽시장의 물건은 야채, 과일, 육류 가릴 것 없이 신선하고 풍성하다. 새벽시장은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가리지 않는다. 이방인도 반갑게 맞아준다. 그러나 물건이 다 팔리고 사람이 떠나간 뒤의 시장 풍경은 적막하기 그지없다.



전국시대 4공자(公子 *제후 또는 세도가의 자제)의 한 사람으로 불렸던 제나라 맹상군은, ‘새벽시장’의 화려함과 ‘저녁 시장’의 쓸쓸함을 몸소 겪은 인물이다. 새벽시장처럼 잘 나가던 시절에는 ‘떡밥에 똥파리 꼬이듯’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맹상군은 빈부귀천을 가리지 않고 다 포용하였다. 심지어는 개 흉내 내는 좀도둑이나 닭 울음소리를 잘 내는 ‘천한 사람’들도 받아들였다. 이들 덕분에 진(秦)에 갇혀있던 맹상군은 함곡관(函谷關, 지금의 허난성 링바오시靈寶市)을 무사히 빠져나와 가까스로 죽을 고비를 넘겼다. 여기에서 ‘계명구도(鷄鳴狗盜)’라는 해묵은 고사를 새삼스레 들먹이지는 않겠다.



맹상군이 실권을 잃고 쫓겨나자, 파장(罷場)한 것처럼 식객들이 모두 빠져 나갔다. 하루아침에 ‘새벽시장’에서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저녁 시장’ 신세로 전락한 것이다. 맹상군이 실의에 젖어 있을 때 유독 풍환(馮驩)만이 맹상군과 어려움을 같이하며 그의 곁을 지켰다.



맹상군과 풍환의 일화는《사기》와《전국책(戰國策)》에 전한다. 풍환이란 인물은,《전국책 》에서는 풍훤(馮?)으로 표기하였다. 인간의 흥망성쇠에 빗댄 새벽시장과 저녁 시장에 관한 예화는, 물러났다가 권좌로 되돌아 온 맹상군과 그의 빈객, 풍환과의 대화에서 비롯되었다. 먼저 맹상군과 풍환의 면모에 대해 살펴보자.



맹상군은 전국시대에 크게 세력을 떨친 인물로 생졸연대가 불분명하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었다. 3대에 걸쳐 제나라 왕을 섬겼던 재상 전영(田?)은 1만호에 이르는 설(薛) 땅을 봉토로 받았다. 그는 슬하에 이미 40여명의 아들을 두었다. 어느 해 5월 5일 그의 첩이 또 아들을 낳았다. 속설에 의하면, 이 날에 낳은 자식은 자라나 반드시 부모에게 해를 끼친다고 하였다. 전영은 이 아이가 불길하다고 여겨 기르지 말고 당장 내다 버리라고 하였다.



그러나 첩은 몰래 이 아이를 길렀다. 아이가 자라나 형제들의 노력으로 아버지와 대면하였다. 그 자리에서 전영은 아이의 당당한 태도, 지혜롭고 논리정연한 말솜씨에 압도됐다. 그를 예의주시하며 후계자로 점찍어두었다. 그에게 집안일과 손님을 접대하는 일을 맡겼다. 그가 이 일을 맡은 뒤 전영의 집은 찾아오는 빈객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아들의 명성은 자자하여 이웃나라 제후들에게도 전해졌다. 전영이 죽자 이 아들이 아버지의 뒤를 이어 설 땅의 주인이 되었다. 바로 맹상군 전문(田文)의 일화다.



맹상군은 비록 체구는 마르고 왜소하였으나 야심이 크고 영웅적 기질이 있었던 것 같다. 곳간에서 인심난다고 하였다. 잘 베풀고 덕이 있는 자에게 사람이 몰리는 것은 당연하다. 몰려드는 빈객들을 맞이하기 위해 맹상군은 큰 집을 짓고 정성을 다해 대접하였다. 설 땅에서 거둬들이는 조세 수입만으로 이들을 돌보기에 벅찰 정도였다. 왜 그렇게 빈객을 대접하고 식객을 늘리려고 힘썼는가? 당시에 강대한 진(秦)나라에 대항하기 위해, 제후나 세력가들이 경쟁적으로 학사ㆍ책사ㆍ방사ㆍ술사ㆍ협객 등을 모시고 받드는 풍토가 성행하였다. 일종의 자구책이라 할 수 있다. 관대한 맹상군에게 어릿광대, 백수건달, 깡패와 같은 어중이떠중이들까지도 몰려들었던 것 같다.



풍환은 맹상군이 빈객을 대접하기를 즐겨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는 보잘 것 없는 긴 칼 한 자루를 들고 짚신을 신은 채 맹상군을 찾아갔다. 그야말로 초라한 행색이었다. 맹상군은 허름한 숙소에 풍환을 머물게 하고 수하를 시켜 그의 동태를 살피게 하였다.



풍환은 반찬에 생선이 없다며 투덜거렸다. 그러자 생선이 나오는 좀 더 나은 숙소로 옮겨 주었다. 이번에는 나들이할 수레가 없다고 불평하였다. 다시 수레를 마음대로 탈 수 있는 고급 숙소를 마련해 주었다. 또 집이 없다고 볼멘소리를 하며 돌아가겠다고 하였다. 맹상군은 불쾌하였지만 꾹 참았으며 그를 내쫓지는 않았다.



풍환의 요구는 점입가경이다.《사기열전》에 전하는 위 이야기 외에,《전국책》에 실린 한 가지 내용을 덧붙인다. 풍환에게 노모가 있었다. 풍환은 노모를 돌볼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하였다. 노모의 의식주 문제가 해결되자 그는 ‘불평 타령’을 그쳤다. 원했던 것이 다 이뤄졌던 모양이다. 한유가 <송맹동야서(送孟東野序>에서 읊은 유명한 말처럼, “사물은 평정을 잃으면 운다(物不得其平則鳴).”고 하였다. 마치 계속해서 ‘울어댔던’ 풍환을 빗대 한 말 같다.



당시 맹상군은 늘어나는 식객들을 감당하기에 벅차, 어쩔 수 없이 봉지인 설 땅 사람들을 대상으로 이자놀이를 하였다. 그러나 대부분이 원금을 갚기는커녕 이자조차 내지 못하였다. 돈을 거둬들일 적임자를 찾던 중 어떤 사람이, 별다른 재능이 없어 무위도식하던 풍환을 추천하였다. 식객들의 눈에 비친 풍환은, 비록 나이는 들었지만 용모가 수려하였으며 달변가였다.



설 땅에 도달한 풍환은 이자를 10만 전(錢)이나 거둬들였다. 그리고 이자를 낸 자나 이자를 못 낸 자들을 모두 초청하여 풍성하게 잔치를 벌여주었다. 그 자리에서 이자를 낼 수 없는 자들의 차용증을 불태워버렸다. 부채를 모두 탕감해준 것이다. 이 소식을 듣고 분노한 맹상군이 그를 불러들여 꾸짖자 풍환이 거침없이 답변하였다.



“잔치를 벌이지 않고는 돈을 빌린 사람들을 다 모이게 할 수 없었고, 돈 있는 자와 돈 없는 자를 구별 수 없었습니다. 여유 있는 자에게는 갚을 날짜를 정하게 하였습니다. 가난한 자는 성급하게 독촉하면 바로 달아날 것이니 영원히 받을 수 없게 됩니다. 만일 성급하게 재촉하여 돌려받지 못한다면, 군주가 이익에 눈이 멀어 백성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 됩니다. …쓸모없는 차용증서를 불태워, 설 땅의 백성들이 군주를 가까이하고 군주의 이름을 칭송하게 하려고 한 일입니다(사마천 저, 김원중 역,《사기열전(상권)》, <맹상군 열전>, 288쪽 요약).”



이 말을 듣고 맹상군은 크게 기뻐하였고 풍환의 노고를 치하하였다.



맹상군의 명성이 높아지자 위협을 느꼈던 제나라 왕이 그를 내쫓았다. 그의 마당에서 북적거리던 식객들도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인생유전(人生流轉)이란 말처럼, 인생은 돌고 돈다고 하지 않았던가.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세상인심을 맹상군은 처절히 경험하였다. 그는 백담사에 유폐(幽閉)된 전직 대통령처럼 이를 갈았다. 아마 ‘손 보고’ 싶었던 사람도 많았을 것이다. 풍환이 맹상군의 지위를 회복시켜주기 위해 발 벗고 나섰다.



풍환은 먼저 수레에 예물을 가득 싣고 진(秦)나라에 가서 진왕을 만났다. 제나라에 반감을 품은 맹상군을 중용하면, 제 나라를 쉽게 멸망시킬 수 있을 것이라며 진왕을 회유하였다. 그는 풍환의 말에 흡족해하며, 수레에 황금을 가득 싣고 맹상군을 맞이하러 사절단을 국경으로 보냈다.



이 때 풍환은 맹상군을 영접하러 떠난 수레의 대열 보다 한 발 앞서 제나라로 돌아왔다. 그리고 이 소식을 제 나라 왕에게 흘리며 말했다. 맹상군을 곧 바로 불러들이지 않으면 제나라가 위태로울 것이라고 하였다. 제나라 왕이 확인해보니 맹상군을 맞이하려는 진나라의 수레 행렬이 국경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제나라 왕은 맹상군을 다시 불러 재상의 자리에 앉히고 식읍으로 1000호를 늘려 주었다. 이처럼 풍환은, 초라한 몰골로 찾아온 자신을 상객으로 예우한 맹상군의 은혜에 크게 보답하였다.



맹상군이 다시 권좌에 오르자 떠나갔던 빈객들이 ‘생선에 구더기 슬듯’ 슬금슬금 몰려들었다. 풍환이 이들을 기꺼이 맞아들이려고 하자 맹상군은 심한 알레르기 반응을 보였다. 맹상군은 풍환에게 가슴에 맺힌 속내를 털어 놓았다.



“나는 언제나 빈객을 좋아하여 그들을 대접하는 일에 실수가 없도록 노력했었소. 빈객이 3000여 명이나 있었다는 것은 선생께서도 잘 알 것이오. 그러나 빈객들은 내가 재상의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을 보자, 하루아침에 나를 버리고 떠나가 나를 돌봐주는 사람이 없었소. 이제 선생의 힘으로 다시 재상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지만, 다른 빈객들은 또 무슨 낯으로 나를 볼 수 있겠소. 만약 다시 나를 만나려고 하는 자가 있으면, 반드시 그 얼굴에 침을 뱉어서 크게 욕보일 것이오(위의 책, 291쪽).”



맹상군의 말을 듣고 풍환은 정중히 충고하였다.



“살아있는 자가 반드시 죽는 것처럼 존귀하면 사람이 모이고, 빈천하면 벗이 떠나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혹시 아침 일찍 시장으로 가는 사람들을 보신 적이 없습니까? 새벽에는 어깨를 맞대면서 앞 다투어 문으로 들어가지만, 날이 저물어 시장을 지나는 사람들은 팔을 휘저으면서 시장은 돌아보지도 않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아침을 좋아하고 날이 저무는 것을 싫어해서가 아닙니다. 날이 저물면 원했던 물건이 시장 안에 없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지위를 잃자 빈객들이 모두 떠나가 버렸다고 선비들을 원망하여, 일부러 빈객들이 오는 것을 막을 필요는 없습니다. 예전과 마찬가지로 빈객들을 대우하십시오(위의 책, 292쪽).”



맹상군은 풍환의 말 대로 빈객들을 맞이하고 변함없이 예우하였다.



맹상군에 대한 사마천의 평가는 냉정하다. 사마천은 맹상군이 다스렸던 설 땅에 들어선 뒤 그 곳의 풍속을 살펴보았다. 그 곳에는 난폭하고 사나운 젊은이들이 들끓었다. 요즘으로 말하면 불량배나 조직 폭력배 천지였던 것 같다. 인구도 6만호로 불어났다. 이것은 다 맹상군이 협객들과 무법자들을 불러들인 탓이라고 하였다.



왕안석도 <독맹상군전(讀孟嘗君傳)>이라는 짧은 글에서 맹상군에 대해 탄식하였다. 맹상군이 빈객으로 맞이한 사람들은 선비가 아니라 개 흉내 내는 좀 도둑이나 닭 울음소리를 잘 내는 천한 무리였다는 것이다. 이들 때문에 군자나 선비들이 맹상군에게 등을 돌렸다고 여겼다. 맹상군이 만일 진정한 선비를 영입하였더라면, 제나라의 선두에서서 진나라를 제압하였을 것이라며 아쉬워하였다.



《권력규칙》의 저자 쩌우지멍(鄒紀孟)은, 맹상군이 식객들을 극진히 대접한 이유는 이들이 자신에게 도움을 주기를 바랐기 때문이라고 하였다.《사기열전》을 번역한 김원중도 <맹상군 열전>의 해제에서, ‘명성과 이익만을 좇은 별 볼일 없는 인물’로 깎아 내렸다.



그러나 ‘편협한’ 시각으로 맹상군을 그렇게 단순하게 평가해서는 안 될 것이다. 맹상군은 왕이 두려움을 느낄 정도로 세력과 덕을 모두 갖춘 인물이었다. 맹상군에게서 묘한 인간적인 매력이 엿보인다. 중국 속담에 “바닷물은 온갖 하천을 다 받아들인다(海水容?百川).”고 하였다. 사람을 가리지 않고 정성스레 대했던 맹상군은 큰 그릇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죄를 짓고 도망친 자, 천한자도 모두 감싸 안았고, 풍환처럼 까다로운 늙은이도 배려하였다. 귀를 열고 경청하였고, 대화를 즐겼으며 모두와 소통하였다. ‘풍환의 차용증 소각 사건’에서 보듯, 충간(忠諫)은 괴롭더라도 받아들였다. 윗자리에 있으면서 겸허하고 소탈하였다. 빈객의 반찬과 그의 반찬은 똑같았다. 그에게서 진정한 ‘리더’의 풍모가 느껴진다.



시골 이장으로부터 장차관, 대기업의 총수, 사립학교 이사장, 경찰청장, 국가 정보기관의 수장에 이르기까지, 크든 작든 권력이 주는 단맛과 물러난 뒤의 쓴 맛을 누구나 한 번 쯤은 겪었을 것이다. 맹상군과 풍환의 대화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일깨워준다. 권력에서 멀어졌다고 허탈해할 필요도 없고, 다시 권력을 쥐었다고 오만해져 ‘빈객’을 내칠 필요도 없다. ‘지혜 주머니’ 풍환의 말처럼, ‘새벽시장’과 ‘저녁시장’의 이치를 깨닫는 지혜를 얻기 바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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