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국연의

 

   
 
국풍
소아
대아
· 오늘 :  63 
· 어제 :  366 
· 최대 :  2,389 
· 전체 :  1,301,532 
 
  2008-03-14 15:21:164723 
정약용의 시경강의에 대하여
운영자
일반

중국의 공자(孔子)가 뛰어난 시 비평가였다고 하면 어떤 사람은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이상한 표정을 지을지도 모른다. 또 실학으로 유명한 우리나라의 정약용 역시 뛰어난 시 비평가였다고 하면 그 또한 얼른 수긍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중국의 공자와 우리나라의 정약용은 분명히 뛰어난 시 비평가였을 뿐만 아니라 2500년의 시간 차이와 중국과 조선이라는 공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 두 사람은 『시경 詩經』이라는 연결고리로 이어져 있다.




중국의 공자는 춘추시대 중기(B.C.11세기~B.C.6세기)까지 전해 온 3000여 편의 시 중에서 300 여 편을 골라『시경 詩經』을 편집한 사람이었고, 정약용은정조와 순조가 재위했던 1791년에서 1808년에 그『시경 詩經』안에 들어 있는 300여 편의 시를 조목조목 풀이해 놓았을 뿐만 아니라 그 300여 편의 시에 대한 800 개 항목의 질문에 답하며 자신의 견해와 강의식 평설을 곁들어『시경강의詩經講義』라는 책을 만들어 놓았다.




중국이나 우리나라에서는 전통적으로 시가문학(詩歌文學)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 그것은 중국과 우리나라가 아마도 한문문화권에 속해 있었으며, (漢文)이라는 글자 자체가 지극히 추상성을 지니고 있는 문자인데다 과거의 철인(哲人)이나 현자들의 글이 산문체보다는 운문체의 시가 형식을 취하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시적인 표현으로 가득찬 노자의 도덕경과 우화의 형태로 이루어진 장자의 철학은 아마 그 대표적인 예가 될 것이다. 그러나 어떠한 전통에 의해서 시가문학을 중요하게 여겼든 간에 중국과 우리나라에서는 시가 문리(文理)를 깨우치고 정서를 함양하는 제일의 교육 자료로 사용되었던 것만은 확실한 사실이다. 수많은 선비들의 글공부가 시를 읽는 것으로 시작하여 시를 짓고 시에 대해 논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해도 좋을 만큼 시는 가장 우대 받는 학습 과목이었다.




공자는 과거로부터 전해 내려온 3000 편 가량의 민요와 시들 중에서 300여 편을 골라 민요를 모은 <풍 風-160편>, 조정의 음악에 맞추어 부르던 노래인 <아 雅- 105편>, 종묘의 제사 음악에 맞추어 부르던 노래 <송 頌-40편>의 세 부분으로 이루어진 시집을 편집하였다. 후일 남송 시대에 이르러 주희(周熹)가 그 시집에『시경 詩經』이라는 이름을 붙였고, 우리는 그 시경을 역경(易經- 또는 周易), 서경(書經)과 더불어 삼경이라고 부른다. 공자가 시를 얼마나 중요하게 여겼는가는 그의 <논어 계씨편 論語 季氏編>에 “시를 공부하지 않고는 말 할 것이 없다. 不學詩 不以言”라는 글이 적혀 있는 것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공자는 모든 학문의 가장 중요한 출발점으로 시를 거론한 것이다. 한편, 그가 3000 편의 시 중에서 300 편을 골라냈다고 했는데 그의 시에 대한 이해력과 감식력을 가늠해 보려면 그가 고른 300 편의 시와 나머지 시들을 서로 비교해 보아야 하겠지만, 그의 시에 대한 이해와 감식력의 한 모서리는 그의 시평을 직접 읽어 보는 것으로도 가능 할 것이다. 공자의 시평으로 가장 유명한 글은『시경 詩經』의 첫번째 시, <관저(關雎)>에 대한 그의 평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관저(關雎)>라는 시가 “즐거우나 음(淫)하지 않고 슬프나 아파하지 않는다. 樂以不淫 哀以不傷”라고 평했다.




<즐거우나 음하지 않고 슬프나 아파하지 않는다>라는 공자의 시평이 얼마만큼 시를 정확히 이해한 것인가 하는 점은 그의 말이 오늘 날의 시인들에게도 시작(詩作)의 원리가 되고 있으며 시 비평의 중요한 판단기준이 되고 있다는 점을 통해 쉽게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오랜 과거 시점에서 그 보다 더 오래된 시들을 평한 공자의 시평이 오늘 날 우리나라 서정시의 시작과 시평에도 똑 같이 적용되고 있다는 것은 그가 시의 특성과 본질을 꿰뚫어 본 사람이었음을 입증하는 자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오늘 날 현대시의 주종을 이루는 시는 서정시이며, 그 서정시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 <시인의 주관성과 내면성>이라고 할 수 있다. 시인의 직접적인 발화(發話)를 통해 자신의 정서를 드러내든 자신의 정서를 대신 나타내 줄 수 있는 <객관적 상관물>을 통해 드러내든 결국 서정시는 <시인의 마음 속>을 드러냄으로써 중요한 기능과 역할을 수행한다. 그런데 공자는 시를 통해 자기 마음 속을 드러낼 때, 과도한 드러냄보다는 오히려 절제를 통해 마음의 어느 한 부분을 드러냄으로써 더욱 큰 암시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 하고 있다. 물론 그의 말을 단순히 수사학의 기교적인 측면에서 해석한다면, 부분을 통해 전체를 드러내는 환유의 기교를 암시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의 시평은 시 쓰는 사람의 시작(詩作) 태도와 표현의 총체적인 방법론으로 해석하는 것이 더 합당할 것이다.




한편, 우리나라의 정약용은 실학파 선비로 널리 알려졌고 그가 카톨릭 신자였다는 사실도 널리 알려져 있지만 그가 뛰어난 시 비평가였다는 사실은 그다지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정약용은 정조가 활쏘기 시합을 열었을 때(1791년), 임금님의 수행비서격인 시종신(侍從臣)으로 그 활쏘기 시합에 나갔다가 좋지 않은 성적을 거두었다. 그러자 정조는 그의 좋지 않은 성적에 대한 벌로 창덕궁 북쪽에 있던 훈련도감의 북영(北營)에서 숙직 근무를 하도록 명하였다고 한다. 정약용은 그곳에 머물며 평소 정조가『시경 詩經』에 대해 그에게 질문했던 800개 사항에 대한 답변을 강의식으로 상세하게 풀이한 답글을 썼으며,『시경 詩經』의 시편들에 대해 조목조목 자신의 견해를 적어 놓았다. 모두 12권 4책으로 이루어진 그 책에 정약용은『시경강의』라는 제목을 붙여 놓았다. (현재는 필사본으로 3권 1책만 전해오고 있으며 서울대 규장각에 보관되어 있다)




『시경 詩經』에 들어 있는 300여 편의 시에 800개의 물음을 던진 정조의 시읽기도 놀라운 것이었지만, 그 800개의 물음 하나하나에 상세한 풀이와 자신의 견해를 펼쳐보인 정약용의 시 이해도 놀라운 것이 아닐 수 없다. 애초 정약용은『시경강의』에 800 개에 달하는 정조의 물음들을 기록하였고 각 항목마다 한 자 내려서 그의 견해를 서술하였다. 그러나 17년이 지난 순조 재위 시절(1808년)에 정약용은 전라남도 강진에서 유배생활을 하고 있었고, 그곳에서 정약용은 자신이 과거에 만든『시경강의』가 완전하지 못하다고 생각하여 다시 그『시경강의』를 보완하였다. 정약용은『시경강의』제1권에서 서문에 해당하는 자서와 『시경 詩經』에 대한 전체적인 견해를 담은 총론, 주남(周南)에 대한 질문과 해설을 기록하였다. 그리고 제 2권부터는『시경 詩經』의 차례에 따라 각 항목에 대한 질문과 답변을 실었다. 보유에는 먼저 보유를 쓰게 된 까닭을 소개한 자서와 총론으로 국풍(國風)과 주남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소개하였고, 소서(小序)와 시경육의(詩經六義)에 대한 여러 유학자들의 주장과 자신의 생각들을 밝혀 놓았다. 그 밖에 보유의 뒷부분에서는 뛰어난 시(逸詩)에 대한 기록을 남겨 놓았다. 그것은 여러 경전에 흩어져 있는 신궁·이수 등 뛰어난 시의 구절들을 엮어 그 구절들을 설명한 것이었다. 정약용이 그처럼『시경 詩經』의 수사학에 매달린 것은 그가 시에 대해 뛰어난 안목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의 직접적인 진술에 의하면,『시경 詩經』에 수록된 시들을 통해 그의 사상적인 토대를 마련하고자 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의 <시경강의>는 정약용이 행한 경전 연구의 방법론뿐만 아니라 여러 시 작품에 대한 그의 평설과 견해를 통해 그가 주장하였던 실학의 일면도 추론해 볼 수 있다.




시를 배움의 출발점으로 삼은 공자와 실제로 시를 분석하고 시에 대한 평설을 씀으로써 자신의 사상적 토대를 구축해나간 정약용의 예를 통해 우리는 시가 <즐김의 대상>일 뿐만 아니라 우리의 사유를 완성시켜 나가는 하나의 통로가 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오늘 날과 같이 모든 학문 분야를 잘게 쪼개어 세세하게 나누어 놓기 전에는 순수 과학을 제외한 인문 분야와 사회-역사학 분야는 시를 통해 하나로 묶여 있었다. 공자와 정약용이 깊은 사유와 통찰력을 가지고 살펴보았던 시들은 철학적인 사유와 역사의 본질적인 모습을 꿰뚫어 보려는 통시적인 세상보기, 당대의 사회상황과 개개인의 특수한 삶의 일상적인 모습까지 그 모든 것을 하나의 통합된 촉각으로 포착한 시였다. 그리고 그 두 사람은 과도한 감정의 노출을 하지 않은 채 절제된 감정과 언어로 그것들을 표현한 시를 <좋은 시>라고 하였다. 오늘 날의 시도 그처럼 옛 시인들이 구축했던 통합적인 시각, 절제된 감정, 그리고 깊은 사유를 간직한 언어들을 어느 한 곳에는 지니고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http://blog.naver.com/lkintl/26691625












목록
2012
[일반] 시경을 왜 읽어야 하는가?

시경을 읽어야하는 이유 http://blog.naver.com/pondfire/140098276632 시(詩)는 내용에 따라 형식에 따라 여러 가지로 분류되지만 여기
운영자 10-03-10
[일반] 季札觀周樂(계찰관주락) - 노나라에 사자로 간 계찰이 시경의 노래를 듣고 품평하다. …

季札觀周樂(계찰관주락) - 노나라에 사자로 간 계찰이 시경의 노래를 듣고 품평하다. - 오(吳)나라가 계찰(季札)을 친선사절로 노(魯)나라에
운영자 13-04-01
[일반] 시경전목록(詩經全目錄)

詩經目錄 I. 국풍(國風) [1] 주남(周南) 1. 관저(關雎) : 꽌꽌 물수리 2. 갈담(葛覃) : 뻗어나는 칡넝쿨 3. 권이(卷耳) :
운영자 13-02-24
[일반] 주희의 시경집주(詩經集註) 서(序)

시집전주(詩集傳註) 서(序) 或有問予曰(혹유문여왈) 누군가가 나에게 묻기를 詩何爲而作也(시하위이작야) 시를 왜 짓느냐고 하기 (1)
양승국 05-09-22
[일반] 정약용의 시경강의 서문

시경강의(詩經講義) (1) 서문1 與猶堂全書』第一集 詩文集 ‘詩經講義序(辛亥冬)‘, ‘독서’라는 것은 오직 뜻과 이치만을 구하는 것
운영자 08-03-14
[일반] 정약용의 시경강의에 대하여

중국의 공자(孔子)가 뛰어난 시 비평가였다고 하면 어떤 사람은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이상한 표정을 지을지도 모른다. 또 실학으로 유명한 우리나라
운영자 08-03-14
[일반] 국풍 15개국 위치 비정도

주(周), 소(召), 패(邶), 용(鄘), 위(衛), 왕(王), 정(鄭), 제(齊), 위(魏), 당(唐), 진(秦), 진(陳), 회(檜), 조(曹), 빈(豳)
운영자 11-03-29
[일반] 11. 麟之趾(인지지) - 기린의 발꿈치 -

11. 麟之趾(인지지) - 기린의 발꿈치 - 一 麟之趾(인지지) 기린의 어진 발굼치 振振公子(진진공자) 인자하고 후덕한 여러 공자들
운영자 11-03-29
[일반] 10. 汝墳(여분) - 여수(汝水)의 강둑에서 -

10. 汝墳(여분) - 여수(汝水)의 강둑에서 - 부인이 군역에 나간 남편을 그리워하며 부른 노래다. 여수 강변에서 땔나무를 하던 부인은 원정나간
운영자 11-03-29
[일반] 9. 漢廣(한광) -넓고 넓은 한강-

9. 漢廣(한광) -넓고 넓은 한강- 한수(漢水)는 흥원부(興元府) 반총산(嶓冢山)에서 발원하여 한양(漢陽) 대별산(大別山)에 이르러
운영자 11-03-29
[일반] 8. 芣苢(부이) -질갱이를 캐자-

8. 芣苢(부이) -질갱이를 캐세- 《소서(小序)》는 “후비의 아름다움[后妃之美]”을 노래한 시가라 했고 《대서(大暑)》는 “부인
운영자 11-03-29
[일반] 7. 兎罝(토저) -토끼그물-

7. 兎罝(토저) -토끼그물- 교화가 행해져 풍속은 아아름다워지고 그 결과 현능한 인재들이 셀 수 없이 많이 등장하여 비록 토끼그물을 치
운영자 11-03-28
[일반] 6. 桃夭(도요) -무성한 복숭아나무-

6. 桃夭(도요) -무성한 복숭아나무- 문왕(文王)의 교화가 집에서부터 온 나라에 까지 미쳐 남녀의 행실을 올바르게 만들어 혼인을 때에 맞게 했을
운영자 11-03-28
[일반] 5. 螽斯(종사) - 많고 많은 메뚜기 떼

國風1•周南5 5. 螽斯(종사) - 많고 많은 메뚜기 떼 - 비(比)란 사물을 서로 비유해서 뜻하는 바를 나타내는 방법이다. 모서(毛序
운영자 11-03-28
[일반] 4. 樛木(규목) -굽은 나무

樛木(규목) - 늘어진 가지 - 가지가 땅으로 늘어진 나무를 규목이라고 부른다. 원래 시의(詩意)가 확실하지 않는 시가 중 하나다. 반복해서
운영자 11-03-28
1 [2][다음][맨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