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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05-11 22:12:334818 
무령왕과 호복기사-1
양승국
일반

무령왕 19년 기원전 306년 봄 정월에 신궁(信宮)에서 백관들로부터 조하를 받았다. 비의(肥義)를 불러 천하의 일을 논하다가 5일 만에 끝마쳤다. 무령왕은 북쪽의 중산국(中山國)을 공략하고 이어서 방자(房子)에 이르렀다.

▶1)방자(房子)/조나라 땅으로 지금의 하북성 고읍현(高邑縣) 서남쪽에 있었다.


이어서 대(代)나라로 들어가서 북쪽으로 무궁(無窮)에 다다르고 서쪽으로는 황화산(黃華山)에 올랐다.

▶2 )무궁(無窮)/ 설이 확실치 않으나 무종(無終)을 칭하며 춘추 때 산융(山戎)이 세운 나라 이름이라고 했다. 원래 지금의 천진시 계현(薊縣)에 있었으나 후에 지금의 하북성 장가구시(張家口市) 북쪽 숭례현(崇禮縣) 일대로 옮겼다고 했다.

▶3 )황화산(黃華山)/ 지금의 하남성 임현(林縣) 서쪽에 있던 산이름이라고 하나 무령왕이 오른 산을 말하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왕이 누완(樓緩)을 불러 의논하며 말했다.

▶4)누완(樓緩)/ 전국 때 조나라 공족 출신의 귀족으로 조나라의 무령왕이 호복의 도입을 추진하려고 하자 조나라의 모든 대신들은 반대했으나 오직 그만이 적극적으로 지지했다. 기원전 306년 조나라를 떠나 진나라로 망명했다. 소양왕(召襄王)은 그를 진나라의 상국으로 임명했으나 2년만에 면직되었다.


“ 나의 선조들께서는 시세의 변화에 따라 남쪽 변방의 땅에서 수령 노릇을 하시다가 장수(漳水)와 부수(滏水)의 험고(險固)를 이용하여 장성을 쌓으셨으며, 다시 서쪽으로 나가 인(藺)과 곽랑(郭狼)을 차지하셨다.

▶5)장수(漳水)/ 지금의 산서성과 하북성의 경계로 삼고 있는 장하(漳河)를 말한다. 모두가 산서성 동남부에 발원하는 탁장하(濁漳河)와 청장하(淸漳河) 두 지류가 있다.

▶6)부수(滏水)/ 하북성 자현(磁縣) 서쪽의 팽성진(彭城鎭) 부산(滏山)에서 발원하여 동쪽으로 흘러 장수(漳水)와 합류하는 강 이름. 조나라의 도성 한단성을 방어하기 위한 장성은 장수와 부수 사이에 있었다.

▶7)곽랑(郭狼)/택고랑(宅皐狼)의 다른 이름으로 지금의 산서성 이석현 일대를 말한다.


다시 북쪽으로 나아가 임(荏) 땅에서 임호(林胡) 사람들과의 싸움에서 이기셨으나 아직 그들을 복종시키지는 못했다.

▶8)임(荏)/지금의 하북성 임현(林縣) 동남


지금 중산국은 우리 조나라의 한 복판에 자리 잡고 있으며 북쪽에는 연나라와 이웃하고 있다. 동쪽으로는 호(胡), 서쪽으로는 임호(林胡), 누번(樓煩) 그리고 진(秦), 한(韓)과 국경을 접하고 있으나 강한 군사들로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어 결국은 사직이 망하게 될 지경에 있다. 이를 어찌해야 하는가? 무릇 세상에 높은 공명을 이루기 위해서는 세상에서 행해지는 습속을 위배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고 한다. 나는 조나라 백성들에게 호복을 입히고자 한다. ”


누번은 좋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조나라의 대부분의 국인들은 무령왕의 계획에 반대했다.

이때 곁에서 왕을 모시고 있던 비의(肥義)를 보고 왕이 말했다.


“ 간자(簡子)와 양자(襄子) 두 분의 선조들께서 이루신 공업은 호(胡)와 적(狄) 두 이민족들로부터 이익을 취하려고 하신 것이오. 무릇 신 신하된 자로, 임금으로부터 총애를 받을 때는,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공경하고, 장유(長幼)의 도리에 밝아 순종하는 절조가 있어야 하며, 뜻을 얻었을 때는 백성들에게 이익을 주어 그 임금이 공업을 세우려는 것을 도와야 하오. 이 두 가지가 신하된 자의 본분이라고 말할 수 있오. 오늘 내가 양자(襄子)의 유지를 계승하여 호(胡)와 적(翟)의 땅을 개척하려고 하는데 내가 죽을 때까지 그런 신하들을 만나지 못할 것 같소. 내가 뜻한 바를 이루게 되면 적을 약하게 만들어 적은 힘을 들이고도 많은 공을 세울 수가 있으니 이것은 또한 백성들을 고생시키지 않아도 두 분 선조의 유업을 계승할 수 있는 것을 의미하오.



▶9)夫有高世之功者, 負有俗之累; 唯獨智之慮者, 任傲民之怨


오늘 내가 백성들에게 호복(胡服)을 입혀 말을 타고 활을 쏘는 법을 가르치려고 하는데, 세상 사람들은 틀림없이 과인을 비난할 것이니, 이를 어찌하면 좋겠오!”


비의 “ 신이 듣기에 <의심스러운 일을 행하면 공을 세우지 못하고, 의심하면서 일을 행하면 명예를 얻을 수 없는 법이다>라고 했습니다.

▶10)疑事無功, 疑行無名


왕께서 이미 나라의 오랫동안 내려온 풍속을 위배했다는 비난을 감수하시려고 이미 마음을 굳히셨으니, 아마도 천하사람들의 의견을 무시하셔야 할 것입니다.



▶11)夫論至德者不和于俗, 成大功者不謀于衆


옛날 순임금은 묘인(苗人)의 춤을 추어 그들을 복속 시켰고, 우임금은 나국(裸國)에 가서 옷을 벗고 그들과 같이 지냈습니다.

▶12)묘인(苗人)/삼묘족(三苗族)을 말한다. 중국 고대에 지금의 하남성 남부에서 호남성 동정호 및 강서성의 파양호 일대에 분포하여 살았던 이민족 이름으로 순임금때 삼위(三危) 일대로 옮겨 살았다. 삼위에 대한 위치 비정은 지금의 감숙성 돈황 등 많은 설이 있다.

▶13)나국(裸國)/ 옛날 남만의 이민족이 세운 나라 이름으로 후한서 동이전(東夷傳)에 주유(侏儒)가 동남쪽으로 배를 타고 일년을 가니 나국(裸國)이 있다고 했다. 주유(侏儒)라는 말은 키가 아주 작아 주로 잡기(雜技)를 펼칠 수 있는 예인(藝人)을 말한다. 지금으로 말하면 단구(短軀)의 곡예사를 칭한다


이는 자기의 욕망을 채우고, 즐거움을 찾으려고 한 것이 아니라 덕을 논하여 공업을 이루고자 노력한 것입니다. <어리석은 자는 일이 성사가 된 뒤에도 알지 못하나 지혜로운 사람은 일이 이루러지기도 전에 알아봅니다.>

▶14)愚者闇成事, 智者睹米形


왕께서는 주저하실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무령왕 “ 나는 백성들에게 호복을 입히는 것을 주저하는 것이 아니라, 천하사람들이 나를 비웃는 것을 걱정하는 것이오. <무지한 자의 즐거움은 현명한 자의 슬픔이며, 어리석은 자가 비웃는 일은 지혜로운 사람이 이미 통찰하고 있는 바요.>

▶15)狂夫之樂, 智者哀焉; 愚者所笑, 賢者察焉.


비록 세상 백성들이 내 명을 따른다 할지라도 그들은 호복의 효능을 이루 다 짐작할 수 없을 것이라, 설사 백성들이 이 일로 나를 비난한다 할지라도 오랑캐 땅과 중산국은 내가 꼭 차지하고 말 것이오.”


이어서 무령왕은 백성들에게 호복을 입으라는 명을 내리고 왕설(王緤)을 시켜 공자 조성(趙成)에게 자기의 말을 전하게 했다.

▶16)조성(趙成)/조성후(趙成侯)의 아들이며 무령왕(武靈王)의 숙부이다. 당시 조나라의 귀족들의 신망을 받았다. 무령왕이 호복기사를 채용하려고 하자, 처음에는 반대를 하다가 무령왕이 대의를 밝혀 설득하자 지지로 돌아서며 개혁이란 순리에 따라 행해야만 이르어질 수 있다고 했다. 조성은 무령왕이 조왕의 자리를 차자인 혜문왕(惠文王) 하(何)에게 전하자 폐출된 공자 장(章)이 불복하여 마음속으로 반심을 품고 있는 것을 알았다. 이윽고 혜문왕 4년 공자 장(章)이 군사를 일으켜 반란을 일으키자 이태(李兌)와 함께 군사를 이끌고 나가 반란군을 진압했다. 공자 장이 싸움에서 패하고 무령왕이 기거하고 있던 궁궐로 몸을 피하자 군사를 궁궐 안으로 진입시켜 장을 잡아서 죽이고 궁궐의 포위를 풀지 않아 무령왕을 굶어 죽게 만들었다. 스스로 상국이 되어 조나라의 국정을 담당했다. 호는 안평군(安平君)이다.


“ 과인이 백성들에게 호복을 입고 조회에 참석하려고 하니 숙부께서도 역시 호복을 입고 나오시기 바랍니다. 집안에서는 부모의 말을 따라야 하고 나라안에서는 임금의 명을 따라야 하는 것은 고금을 통한 공인의 행동인 것입니다. 아들 된 자는 부친의 명을 거역해서는 안되고, 신하는 군주의 명에 역행하지 말아야 할 것이며, 형제는 의로써 서로 우애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과인이 교지(敎旨)를 내려 복식을 바꾸려 하는데 숙부께서 입지 않으신다면, 천하의 백성들이 나의 뜻에 대해 의론이 분분하게 될까봐 걱정하는 것입니다. 나라를 다스리는데는 상도가 있는 법이니, 백성들을 이롭게 하는 것이 그 근본이며, 정치에 참여하는데 원칙이 있으니, 영(令)에 따라 행동하는 것을 제일로 치는 것입니다. 덕정을 펴기 위해서는 먼저 일반 백성들을 이해 시켜야 하며, 정령을 펴기 위해서는 먼저 귀족들로부터 신임을 얻어야 합니다. 오늘 내가 호복(胡服)을 입는 목적은 나의 욕망을 채우고, 즐거움을 찾으려고 한 것이 아니라, 일을 하는 데는 목적하는 바에 도달해야만 공적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며, 일단은 공업이 이루지면 결과는 좋게 끝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과인은 정사의 원칙을 위배하여 세상 사람들의 비난을 받을 까 걱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더욱이 과인이 듣기에 나라의 이익을 도모하는 사람은 사악한 마음을 갖으면 안 될 것이며, 귀척을 빙자하여 그 이름에 누를 끼치지 않는다고 했으니, 원컨게 저는 숙부님의 의로운 이름을 빌려서 호복의 제도를 시행하여 공업을 이루려고 합니다. 이에 왕설(王緤)을 보내 숙부님을 배알하고 내일 아침 조회에 호복을 입고 나오시라고 부탁드리는 것입니다.”


공자성이 두 번의 절을 오린 후에 머리를 조아리고 말했다.


“ 신은 옛날부터 왕께서 호복(胡服)의 착용을 시행하려고 하시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신은 재주가 없고 또한 마침 병으로 자리에 눕게 되어 아직도 왕께 달려가 자주 진언을 올리지 못했습니다. 왕께서 저에게 호복을 착용하라고 명하시니, 신이 이에 대하여 어리석으나 충정을 다하여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신은 알고 있건 데, 이 곳 중화의 땅은 모두 총명하고 지혜로운 사람이 사는 곳이라, 세상의 온갖 만물과 재화가 모여드는 땅이고, 성현의 교화가 행해지는 곳이며, 인의가 행해지고 있는 땅이며, <시(詩)>, <서(書)>, <예악(禮樂)>이 일어나 쓰이는 곳이며, 기이하고 교묘한 기능이 펼쳐지는 땅에, 먼 지방의 사람들이 이 땅의 문물을 관람하러 오는 곳이며, 변방의 만이들이 즐거이 모범으로 삼으려고 하는 땅입니다. 지금 왕께서는 이러한 것들을 버리시고 먼 지방의 복식을 시행하려고 하시니 그것은 옛 성현의 교화를 개변하는 것이며, 옛부터 전해오는 도를 바꾸려는 것이며, 백성들의 마음에 반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학자들의 가르침을 저버리는 행위며 중화의 문물과는 동떨어진 것입니다. 왕께서는 이와 같은 이유를 생각하시어 신중하게 처리하시기 바랍니다.”


왕설이 돌아와 공자성의 말을 전하자 무령왕이 말했다.


“ 내가 이미 숙부께서 병으로 누워 계시다는 말을 들었으니 직접 가서 뵙고 호복의 착용을 청해야 겠다.”


왕이 이윽고 공자성의 집을 방문하여 호복의 착용을 청하며 말했다.


“ 무릇 복장이란 입기에 편리해야 하며, 예란 일을 행하는데 편리해야 합니다. 성인은 그 지방의 풍속에 순응하여 알맞은 제도를 만들고, 일의 상황에 따라 예절을 제정하니 그것들로 하여 백성들에게 이익을 가져다주고 국가를 부강하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머리를 짧게 자르고, 몸에는 문신을 그려 넣으며, 팔에는 그림을 그려 넣고 옷깃을 왼쪽으로 여미는 것은 구월(甌越) 일대의 만이들 풍속입니다.

▶17)구월(甌越)/ 지금의 절강성(折江省) 및 복건성(福建省) 일대에 분포되어 살었던 중국 고대의 이민족 이름.


검은 이빨에, 이마에 무늬를 넣고 물고기 가죽으로 만든 모자에, 조악하게 바느질한 의복을 입는 것은 오나라의 풍속인 것입니다. 그런 이유로 의복과 예는 지방마다 같지 않으나 편리함을 추구하는 것은 다 같은 것입니다. 각기 사는 곳이 다르기 때문에 사용하는 방법에 변화가 있고 받드는 것이 다르기 때문에 예법도 바뀌는 것입니다. 따라서 비록 성인일지라도 만약에 그것들이 나라에 이득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들을 행하는 방법을 꼭 하나로 일치시킬 필요가 없고, 또한 그것들이 일을 행하는데 편리한 것이라면 행하는 예법이 서로 같을 필요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유자(儒者)의 경우에도 그들이 배웠던 스승은 한 사람이었지만, 그들이 주장하는 예법은 천차만별이고, 중화의 예법은 동일하나 그 교화는 같지 않으니, 하물며 산간벽지에서 행해지는 복식과 예법의 편리함은 말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해서 그 변화에 대해 진퇴와 취사선택을 함에 있어서, 비록 지혜로운 사람일지라 해도 항상 그것들과 일치시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먼 지방과 가까운 지방의 복식을 대해서도 비록 성인일지라도 그 일치됨을 강요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궁벽한 벽촌에는 다른 풍속이 많으며, 천박한 견해에는 궤변이 많은 법>입니다.

▶18)窮鄕多異, 曲學多辯


알지 못하나 의심을 품지 않고, 자기의 의견과 다름에도 상대방을 비난하지 않은 것은, 공개적으로 널리 중지를 모아 최선의 방법을 찾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숙부께서 말씀하신 바는 일반적인 풍속을 말씀하신 것이고, 제가 말씀드른 바는 새로운 풍속을 만드는 일인 것입니다. 우리 조나라의 동쪽에는 하수(河水)와 박락(薄洛)이 있어 제(齊)와 중산국(中山國) 두 나라와 같이 국경으로 삼고 있으나, 그것을 지킬 선박 시설도 없습니다.

▶19)박락(薄洛)/ 지금의 하북성 광종현(廣宗縣) 서북으로 흐르던 장수(漳水)의 나룻터인 박락진(薄洛津)을 말한다. 광종현은 한단히 동북 약 30키로에 있다. 여기서는 장수(漳水)를 말한다.


동북쪽의 대(代)에서 상산(常山), 상당(上黨)에 이르기까지 동쪽으로는 연(燕), 동호(東胡)와 접하고, 서쪽으로는 누번(樓煩), 진(秦)과 한(韓) 나라와 국경을 접하고 있으나 그들을 막을 기병(騎兵)과 사수(射手)가 없습니다.

▶20)상당(上黨)/ 지금의 산서성 화순현(和順縣)과 유사현(楡社縣) 일대에 설치했던 조나라의 군현 이름이다. 남쪽으로는 한나라가 설치한 상당군과 접했다. 관하에 24개의 현을 거느렸다.


또한 과인은 선박과 그 시설도 없이 물가에 의지하여 살고 있는 백성들로 어떻게 하수(河水)와 박락수(薄洛水)를 지킬 것인지 걱정하게 되었습니다. 호복(胡服)으로 복식을 바꾸어 입혀 기병(騎兵)과 궁수(弓手)를 양성하여 연(燕), 삼호(三胡), 진(秦), 한(韓)과의 국경을 방비하고자 하는 뜻입니다.

▶21)삼호(三胡)/ 임호(林胡), 누번(樓煩), 동호(東胡)의 중국 북방에서 살던 이민족을 통틀어 칭하는 말이다.


옛날 선군이신 조간자(趙簡子)께서 진양(晉陽)에서 상당(上黨)에 이르는 지역과 요새를 지어 통하게 하셨고, 그 뒤를 이은 조양자께서는 융적(戎狄)의 땅을 병탄하고 대국(代國)을 취하여 여러 오랑캐 부족들을 물리치신 것은 어리석은 자나 지혜로운 자나 모두 알고 있는 바입니다. 그리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강력한 제나라의 지원에 힘입은 중산국(中山國)이 우리 조나라를 쳐들어와 노략질을 하고, 이어서 백성들을 포로로 한 다음 계속 호성(鄗城)까지 진격하여 그곳에 강물을 끌어들여 포위를 했었습니다.

▶22)호성(鄗城)/ 지금의 하북성 백향현(柏鄕縣) 북쪽에 있던 고을로 춘추 때 당진(唐晉)의 영토였다가 전국 때 조나라의 무령왕이 그의 재위 3년 때 되는 해에 이 곳에 성을 축조했다. 진나라 때 호현(鄗縣)을 설치했다가 한나라가 그대로 따랐다.


만약 사직을 지키는 신령의 보우하심이 없었다면 아마도 우리는 호성(鄗城)을 지키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선왕께서는 이것을 치욕으로 여기셨으나, 아직도 갚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오늘 우리가 기병과 사수(射手)를 양성하여 가깝게는 상당의 지형을 이용하여 외적의 침입을 막을 수 있고, 가깝게는 중산국에게 그 원한을 갚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숙부께서는 중화의 풍속을 따른다고 하며 간자(簡子)와 양자(襄子)의 뜻을 거스리려고 하고 복식을 바꾸었다는 오명을 얻지 않으려고 호성(鄗城)에서 당한 치욕을 잊고 있습니다. 그것은 과인이 바라고 있는 바가 아닌 것입니다.”


공자성이 무령왕이 하는 말을 다 듣더니 두 번의 절을 올린 다음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 신이 어리석어 왕의 뜻을 미처 헤아리지 못하고 단지 속세의 떠돌아다니는 말만을 했으니 이것은 신의 크나큰 죄입니다. 오늘 왕께서 간자(簡子)와 양자(襄子)의 유지를 계승하고 선왕의 뜻을 따르신다고 하시는데 어찌 감히 신이 왕의 명을 거역하겠습니까?”


공자성이 말을 마치자 다시 재배하고 머리를 조아렸다. 무령왕이 공자성에게 호복 한 벌을 하사하자 다음 날이 되자 호복을 착용하고 조회에 나가니 그때서야 무령왕은 백성들에게 호복을 입으라는 조칙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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