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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07-07 08:27:334554 
무령왕과 호복기사-3, 아사사구(餓死沙邱) 사구에서 굶어죽은 무령왕
운영자
일반

사구궁에 갇혀 굶어 죽은 무령왕




이태가 말을 마치고는 한참동안 앉아서 눈물만을 흘리더니 이윽고 자리에 일어나서 돌아갔다.




이태가 돌아간 뒤 비의는 그가 남기고 간 말을 생각하느라고 음식을 먹어도 목으로 삼킬 수가 없었으며 밤이 되어 잠자리에 들어 이리저리 뒤척이며 잠을 자지 못했으나 좋은 계책을 생각해 낼 수 없었다. 뜬눈으로 밤을 세운 이태는 아침이 되자 조당으로 나가 혜왕을 모시던 근시(近侍) 고신(高信)을 불러 당부의 말을 했다.




“ 오늘 이후로 다른 사람이 만약에 왕을 부르는 일이 생기거든 반드시 나에게 먼저 알려야 될 것이다. ”




고신이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했다. 그러던 어느 날 주보와 혜왕이 동행하여 사구(沙邱)로 놀이를 나가는데 안양군(安陽君)도 역시 수행하게 되었다. 사구에는 높은 대(臺)가 두 곳이 있었는데 그것은 상나라의 마지막 임금인 주왕(紂王)의 이궁(離宮)으로 서로 오륙 리를 사이에 두고 지은 궁궐이었다. 주보와 혜왕이 각각 일궁(一宮) 씩을 사용하고, 안양군의 관사는 마침 두 이궁(離宮) 사이의 중간에 있었다. 전불례가 안양군에게 말했다.




“ 왕이 유람을 나와서 도성 밖에 있으니 그 따라온 병사들의 수가 많지 않습니다. 만약 이 기회를 이용하며 주보의 명이라고 속여 왕을 부르면, 왕은 틀림없이 부름에 응할 것입니다. 제가 중도에 군사들을 매복시켜 놓았다가 그가 나타나면 죽인 다음 주보의 명을 받들었다고 왕의 추종자들을 선무(宣撫)한다면 누가 감히 명에 거역하겠습니까?”




장 “ 참으로 훌륭하신 계책입니다.”




안양군이 즉시 심복 내시를 주보가 보내는 사자로 꾸미게 하고 이윽고 날이 어두워지자 그를 혜왕에게 보내 거짓으로 주보가 전하는 명을 전하게 했다.




“ 주보께서 갑자기 병이 나서 위독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급히 왕을 찾고 있으니 속히 가서 뵙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고신(高信)이 즉시 상국 비의(肥義)에게 달려가 주보가 왕을 찾는다고 고했다. 비의가 듣더니 말했다.




“ 몸이 강건하여 평소에 병치레를 한 적이 없었던 주보께서 이 야심한 밤에 왕을 부르다니 뭔가 수상한 구석이 있는 것임에 틀림없다!”




비의가 즉시 침소에서 주보를 뵙기 위해 준비중에 있던 혜왕에게 말했다.




“ 신이 앞서겠으니, 기다리셨다가 저에게 아무런 변고가 생기지 않으면, 그 때 움직이시기 바랍니다.”




비의가 다시 고신을 향해 말했다.




“ 궁문을 단단히 잠그고, 절대로 함부로 문을 열어주지 말라!”




비의가 몇 명의 기병(騎兵)들을 데리고 사자의 뒤를 따라나섰다. 이윽고 비의와 그 행렬이 중간쯤 왔을 때 안양군이 매복시켜 놓았던 복병들이 일어나 비의를 왕으로 오인하여 그 일행을 모조리 죽였다. 전불례가 횃불을 들어 살펴보니 죽은 사람은 곧 비의였다. 전불례가 크게 놀라 장(章)을 향해 외쳤다.




“ 일이 이미 어그러져 버렸습니다. 아직 우리의 거사 계획이 들어 나지 않은 것 같으니 우리는 마땅히 거느리고 있는 군사들을 모조리 끌고 가서 왕이 거처하는 궁궐을 습격하면 혹시나 일을 이룰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전불례가 안양군과 함께 군사들을 이끌고 혜왕이 기거하는 궁궐로 쳐들어가 공격을 감행하여 성안으로 진입하려고 했다. 그러나 이미 비의의 분부를 받은 고신은 이에 대해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전불례는 있는 힘을 다해 혜왕이 머물고 있는 이궁(離宮)을 공격했으나 성문을 뚫고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이윽고 날이 밝아오자 고신(高信)이 왕의 호위군사들에게 궁궐의 지붕 위로 올라가 활을 쏘도록 하자 수많은 반군들이 죽거나 다쳤다. 그러나 화살이 다 떨어져 사태가 위급하게 된 혜왕 측의 군사들도 나중에는 지붕의 기와를 떼어내어 성벽 밑의 반군을 향해 던졌다. 승세를 잡은 전불례가 군사들에게 명하여 커다란 바위를 통나무에 잡아 멘 다음 성문을 향해 던지게 했다. 큰돌들이 궁문에 부딪치는 소리가 마치 천둥소리처럼 요란했다. 혜왕의 운명이 바야흐로 위급한 처지에 놓이려는 순간에, 갑자기 궁문 밖에서 군사들의 함성소리가 크게 나더니 양 떼의 기마대(騎馬隊)들이 나타나 반군을 향해 돌격해 왔다. 전불례와 반군들은 졸지에 싸움에서 대패하고 분분히 흩어져 달아나 버렸다. 원래 도성 안에 남아 조왕이 유람을 나간 틈을 이용하여 안양군이 란을 일으키지나 않을까 걱정하고 있던 공자성(公子成)과 이태(李兌)가 서로 상의한 결과, 각기 한 떼의 기병들을 이끌고 출동했다가, 마침 혜왕이 기거하는 궁궐을 포위하고 있던 반군들과 조우하게 되어 위기에 빠진 혜왕을 구하게 된 것이다.




안양군이 싸움에 패하고 도망치다가 전불례를 향해 물었다.




“ 지금은 내가 어찌해야 합니까?”




전불례 “ 주보의 처소에 빨리 달려가서 눈물을 흘리며 목숨을 구해 달라고 애걸하면 주보께서는 틀림없이 군을 보호해 줄 것입니다. 저는 잔병을 수습하여 추격병을 있는 힘을 다해 막겠습니다.”




전불례가 잔병을 수습하여 다시 공자성과 이태가 거느린 기병(騎兵)들과 싸움을 벌렸으나 중과부적(衆寡不敵)으로 싸움에서 패하고 그 자신은 사로잡혀 이태에게 목이 잘렸다. 이태는 안양군이 주보 외는 몸을 의탁할 데가 없다는 것을 알고, 즉시 군사들을 이끌고 주보가 머물고 있는 궁궐을 포위했다. 이태와 공자성 두 사람은 궁문을 열고 성안으로 진입하여 장검을 손에 들고 군사들의 앞장에 서서 주보의 처소로 들어갔다. 두 사람이 주보를 보자 엎드려 절을 올린 다음 고했다.




“ 안양군이 반란을 일으켰으니 법에 따라 처단해야 합니다. 원컨대, 주보께서는 안양군을 저희에게 넘겨주시기 바랍니다.”




주보 “ 그가 아직 이곳에 오직 않았다. 내 말을 못 믿겠으면 두 사람은 이 곳을 수색해도 좋다. ”




이태와 공자성은 여러 차례에 걸쳐 주보에게 안양군을 넘겨달라고 청했지만 주보는 두 번 다시 입을 열지 않았다. 이태가 말했다.




“ 어차피 일이 이 지경까지 왔으니 마땅히 이 궁궐을 한번 수색해봐야 되겠습니다. 제가 반적을 찾아내지 못한다면 그때 죄를 받아도 늦지는 않을 것입니다.”




공자성 “ 대감의 말씀이 옳습니다.”




두 사람이 즉시 자기가 데리고 온 친위군 수백 명을 궁안으로 들어오게 하여 궁중 안을 샅샅이 뒤지게 하자, 결국은 이중으로 된 벽 속에 숨어있던 안양군을 찾아냈다. 군사들이 안양군을 끌어내어 이태 앞으로 대령시키자 이태가 번개같이 칼을 뽑아 안양군의 목을 베었다. 이 모습을 본 공자성이 이태를 보고 말했다.




“ 어찌 이리 일을 급하게 처리하는 것입니까?”




이태 “ 만약 우리가 주보라도 만나 그가 우리에게서 안양군을 빼앗아가려고 덤빈다면, 우리는 마땅히 대항해야 할 것이니다. 그것은 신하된 자가 군왕에게 실례를 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주보의 뜻을 따르게 된다면 적도를 놓아주게 될 것이니 차라리 죽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여 그를 벤 것입니다.”




공자성이 이태의 행위를 받아들였다. 안양군의 수급을 들고 궁 안에서 밖으로 나오던 이태는 주보가 안양군의 죽음을 슬퍼하며 흐느끼는 소리를 들었다. 이태가 뒤따라오던 공자성을 향해 말했다.




“ 주보께서 성문을 열고 장(章)을 받아들인 것은 그를 심히 가엾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이 장(章)을 붙잡기 위해 주보가 거처하는 궁궐을 포위하고 다시 궁궐을 뒤져 장을 찾아내어 죽였으니 주보는 그 마음이 얼마나 상심이 되었겠습니까? 이 일이 마무리되고 사태가 평상으로 돌아오게 되면 주보는 궁궐을 포위한 죄를 물어 우리들의 목숨은 물론 멸족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 왕은 나이가 어려 함께 의논하기가 어려우니 우리 두 사람이 스스로 결정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이태가 즉시 군사들에게 명을 내렸다.




“ 절대로 이 궁궐에 대한 포위를 풀면 안 될 것이다.”




이태는 다시 사람들을 시켜 혜왕의 명이라고 거짓으로 궁궐 안의 사람들에게 전하게 했다.




“ 지금 궁 안에 있는 사람들 중 먼저 나온 사람들은 죄를 묻지 않을 것이나 나중에 나오는 사람들은 모두 반란군으로 간주하여 그 족속을 멸할 것이다.”




주보를 따라나선 관리와 내시들은 조왕의 명령을 전해 듣자 서로 앞다투어 궁 밖으로 나왔다. 결국은 궁 안에는 주보 한 사람만 남게 되었다. 주보가 사람들을 불러보았으나 대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궁 밖으로 나가려고 했으나 문은 이미 밖에서 자물쇠로 굳게 잠궈 놓은 후였다. 몇 일 간 계속해서 궁중에 갇혀 있던 주보는 아무 것도 먹지 못해 배가 고파 견디기 어려웠으나 아무도 음식을 가져다주지 않았다. 주보는 궁정 뜰 안의 나무 위에 있었던 참새 둥지에서 새알을 꺼내어 먹고 연명하다가 이윽고 한 달이 조금 지나서 굶어 죽었다. 염선이 시를 지어 한탄했다.




胡服行邊靖虜塵(호보행변정노진)

호복을 입고 사방으로 말로 달려 조나라의 변경을 안정시키고




雄心直欲幷西秦(웅심직용병서진)

가슴속의 웅대한 야심은 서쪽의 진나라마저도 집어삼키려고 했다.




吳娃一脉能貽禍(오왜일맥능이화)

그러나 오왜가 난 핏줄 하나로 화를 입게 되었으니




夢里琴聲解誤人(몽리금성해오인)

꿈속의 거문고 소리가 영웅의 앞길을 망쳤도다!







성을 포외하고 있던 군사들은 주보가 이미 죽은 것을 오랫동안 알지 못했다. 이태(李兌) 등도 감히 성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계속해서 석 달여를 기다리다가 비로소 궁문의 열쇠를 열고 들어가 살펴보았다. 그때는 이미 주보의 시신은 말라비틀어지고 썩어 버려 흉칙하게 변해있었다. 공자성이 혜왕을 모시고 사구궁(沙邱宮)으로 달려와 시신을 거두어 상을 발하고 대(代) 땅에 묻었다. 지금의 영구현(靈邱縣)이라는 지명의 이름은 무령왕(武靈王)의 묘를 쓴 언덕이라는 뜻에서 유래된 것이다. 혜왕이 도성인 한단성(邯鄲城)으로 돌아와 공자성을 상국으로 이태를 사구(司寇)로 임명하여 안양군(安陽君) 장(章)의 반란을 진압한 공로를 표창하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공자성이 노환으로 죽자 혜문왕은 자기의 동생인 공자승(公子勝)이 옛날에 나라를 둘로 나누려는 주보의 생각에 반대하여 그만두도록 했다는 것을 생각하여 그를 상국의 자리에 임명하고 평원(平原)의 땅에 봉했다. 이가 전국 사군자(四君子) 중의 한 명인 조나라의 평원군(平原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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