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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06-25 10:00:254655 
옛날 중국의 양치기들 이야기
양승국
일반

 

옛날 중국의 양치기들 이야기



(1)삼인성호(三人成虎) - 세 사람이 말하면 호랑이가 있다.


방총(龐葱)이라는 위(魏)나라의 장군이 자기나라의 태자와 함께 조(趙)나라의 수도 한단(邯鄲)에 인질로 가게 될 때 위왕(魏王)에게 말했다.


" 지금 어떤 사나이가 대량(大梁)의 시중에 호랑이가 나왔다고 전하께 말하면 그 말을 믿으시겠습니까?"


" 믿지 않겠오!"


" 그렇다면 두 사람이 달려 와 말씀드리면 어쩌시겠습니까?


" 혹시 그럴지도 모르겠다고 의심해 보겠오."


" 세 사람이 한꺼번에 달려와 말씀드리면 어쩌시겠습니까?"


" 그때는 믿지 않을 수가 없겠소."


" 대저 거리 한복판에 호랑이가 있을 리 없다는 것쯤은 명백합니다. 그런데도 세 사람이 알려 드리면 대량의 시중에도 호랑이가 생기는 것이지요. 지금 한단은 대량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서 왕궁과 대량의 시중과의 거리에 댈 것이 아닙니다. 게다가 저에 대한 험담을 하고 거짓을 꾸며 참소하는 사람은 세 사람만이 아닐 것입니다. 전하, 아무쪼록 헤아려 살피시기 바랍니다."


" 내가 장군의 말을 명심하여 스스로 알아서 판단하도록 하겠소. 거짓을 꾸며 참소하는 말도 믿지 않으리라!"


그래서 방총은 위왕에게 하직 인사를 하고 대량성을 떠나 한단으로 출발했다. 그러나 방총이 조나라에 미처 도착하기도 전에 사람들이 거짓을 꾸며 참소하는 말이 왕에게 전해졌다. 후에 태자는 인질에서 풀려 위나라에 돌아왔지만 방총은 두 번 다시 위왕을 만나지 못했다.


▶방총/ 제나라의 병법가 손빈(孫臏)에게 마릉(馬陵)의 싸움에서 패하고 죽은 위나라 장수 방연(龐涓)의 조카이다.


▶위왕(魏王)/ 양혜왕(梁惠王)을 말한다.



(2) 증삼살인(曾參殺人) - 세 사람이 말하면 자기 아들도 의심한다.


공자(孔子)의 제자인 증삼(曾參)이 노나라의 비(費)라는 곳에 살고 있을 때, 비의 거리에는그와 동성동명을 가진 자가 있었다. 그 자가 살인 사건을 일으켰다. 어떤 사람이 베틀에 앉아 베를 짜고 있던 중삼의 어머니에게 와서 ' 댁의 아들이 사람을 죽였소!'하고 알렸으나 증삼의 어머니는 ' 내 아들이 살인을 할 리 없소!'라고 말하며 조금도 동요하는 기색이 없이 하던 일을 계속했다. 다시 조금 후에 또 어떤 사람이 달려와 ' 댁의 아들이 살인을 했소!'라고 증삼의 모친에게 말했다. 그래도 증삼의 모친은 자기 아들이 그럴 리가 없을 것이라고 대답하며 태연히 베틀에 앉아 천 짜는 일을 계속했다. 그리고 다시 얼마 있다가 또 어떤 사람이 달려와 ' 당신의 아들이 사람을 죽여서 관청에 끌려가고 있소!'라고 알리자 증삼의 모친은 그 말이 사실인 줄 알고 북을 집어던지며 담을 넘어 도망치기 시작했다.


증삼과 같은 대현(大賢)에 대한 어머니의 깊은 신뢰도 세 사람이나 차례로 달려와 이구동성으로 의심하면 무너진다는 말이다.


3. 전국 때 위문후(魏文侯)와 그 장군 악양(樂陽)


위문후가 악양을 대장으로 삼아 중산국(中山國)을 정벌하게 했다. 악양은 중산국을 포위했으나 완강한 저항에 부딪쳐 그 성을 쉽게 함락시킬 수 없었다. 이윽고 중산국 왕이 악양의 아들을 죽여서 끓여서 보낸 국을 들이키는 등 우여곡절 끝에 중산국을 점령하고 개선하면서 의기양양한 태도를 취하며 위문후를 배알했다. 위문후가 악양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밀봉된 나무로 된 궤 하나를 악양에게 하사했다. 악양은 자기가 세운 공을 포상하기 위해 금은 보화를 상으로 내린 것으로 생각했다. 악양이 집에 가서 뜯어보니 궤 안에는 금은보화 대신에 죽간과 목간으로 된 서책이 가득차 있었다. 그 서책은 모두 한결 같이 악양이 중산국과 대치하며 싸우고 있을 때 그의 무능을 탄핵하며 악양을 갈아치워야 한다고 하는 내용이었다. 위문후는 그 많은 상소에도 불구하고 악양의 능력을 끝까지 믿고 그 상소하는 서책들을 궤 안에 쌓아 둔 것이었다. 악양은 자기가 세운 공이 순전히 자기의 능력만으로 이루어 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마음속으로 매우 부끄러워했다. 다음은 열국연의 분문 중 악양이 중산국을 정벌하고 개선하고 나서부터의 내용이다.



위문후는 악양이 싸움에서 이겨 공을 세웠다는 소식을 듣고 친히 성문 밖으로 나가 악양을 맞이하며 그 노고와 공을 치하하면서 말했다.


" 장군이 나라를 위하다가 자식을 잃은 것은 실은 과인의 잘못이라!"


악양이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 신하의 본분으로써 어찌 감히 사사로운 정을 돌볼 수 있었겠습니까? 제가 공을 세울 수 있었던 것은 주군께서 미천한 저를 발탁하시어 부월(斧鉞)을 내려주신 덕분이옵니다."


악양이 위문후(魏文侯)에 대한 조현(朝見)의 의식을 마치고 중산국의 지도와 중산국의 부고(府庫)에서 가져온 금은 보화와 그 목록을 바쳤다. 군신들이 모두 칭하해 마지않았다. 위문후가 궁정의 누각 위에 주연을 베풀어 친히 술잔에 술을 부어 악양에게 내렸다. 악양이 술잔을 두 손으로 받아 마시더니 의기양양한 자세로 자기의 공을 과시하려는 기색이 농후하였다. 이윽고 주연이 파하자 문후가 좌우에게 명하여 단단히 밀봉한 길쭉한 상자를 가져오게 하여 악양에게 주도록 했다. 문후를 좌우에서 모시던 시종들이 두 개의 상자를 악양에게 전하자 악양이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 상자 안에는 필시 진주와 금은 보화와 같은 것들이 가득 들어 있을 것이다. 주공께서는 군신들이 나를 시기하게 되는 것을 걱정하여 이렇게 상자의 뚜껑을 밀봉하여 나에게 하사한 것일 것이다."


이윽고 악양이 집에 돌아와 가노들에게 명하여 상자를 집의 대청으로 들고 오게 한 다음 상자의 밀봉된 뚜껑을 열고 보니 그 안에 들어 있는 것들은 조당의 군신들이 써서 바친 상주문들이었다. 그 안에 있던 상주문들은 모두가 악양이 반역을 꾀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악양이 그 안의 문서들을 읽고 나서 크게 놀라 말했다.


" 원래 조당에서는 나를 이렇듯 비방하고 있었는데 만약 주군께서 나를 깊이 믿지 않으시고 이와 같은 참소에 현혹되셨다면 내가 어찌 공을 이룰 수 있었겠는가?"


다음날 악양이 입조하여 자기를 믿어준 은혜에 대해 감사의 말을 올렸다. 문후가 군신들과 의논하여 가장 큰 공을 더 내렸다. 악양이 재배하며 사양의 말을 올렸다.


" 중산국을 멸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가 주공께서 안에서 있는 힘을 다하여 소신을 지켜주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신은 다면 나라 밖에 있으면서 견마지로(犬馬之勞)를 했을 뿐이지 어찌 제가 무슨 힘으로 그런 큰공을 세울 수 있었겠습니까?"


문후 " 내가 아니었다면 경을 장군으로 임용하지 않았을 것이오. 그리고 경이 아니었다면 역시 내가 의도한 소임을 이루지 못했을 것이오. 그럼으로 해서 장군의 노고가 많았으니 이제는 식읍에서 편안히 지내도록 하시오."(전국책 위책)


4) 식양(息壤) - 식양의 맹세


진나라는 육국(六國)이 모두 그 재상들의 호칭을 상국으로 부르고 있어 그들 나라와 같이 부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하여, 특별히 승상(丞相)이라는 최고의 관직을 새로 만들어 좌우(左右)에 각각 한 사람씩 두어 감무(甘茂)를 좌승상(左丞相)에, 저리질(樗里疾)을 우승상(右丞相)으로 삼았다. 위장(魏章)은 자기가 승상의 자리에 오르지 못한 것에 불만을 품고 위나라로 갔다. 무왕이 옛날에 장의가 한 말을 생각해 내고는 저리질(樗里疾)과 감무(甘茂)를 향해 말했다.


"과인은 서융(西戎)에서 태어난 사람이라 아직까지 중원(中原) 제국의 번성한 모습을 보지 못했오. 만약 우리가 삼천을 얻어 중원과 통하는 길을 뚫는다면 나는 한 번 중원으로 가서 공성(鞏城)과 락읍(洛邑) 사이를 구경하고 싶소.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죽어도 한이 없겠오. 두 분 승상 중 어느 분이 나를 위해 한나라를 정벌하여 삼천으로 통하는 길을 뚫어 주겠오?"


▶저리질(樗里疾)/진혜왕(秦惠王)의 서제(庶弟)로써 저리(樗里="지금의" 섬서성 渭縣 남)에 살았기 때문에 그곳의 이름을 성으로 삼았다. 처음에 서장(庶長)으로 임명되었다가 우승상(右丞相)이 되었다. 지략이 뛰어나 지낭(智囊)이라는 별명으로 불리었다.

▶공(鞏)/지금의 하남성 공의시(鞏義市)를 말한다. 춘추때는 제(制)와 호뢰(虎牢)로 바뀌었다가 다시 전국 때 공(鞏)으로 바뀌었다. 진(秦)나라가 중원으로 들어가기 위해 거쳐야만 하는 전략상의 요충지다.


저리질이 먼저 자기의 생각을 말했다.


" 우리가 삼천으로 통하는 길을 얻기 위해서는 한나라의 의양(宜陽)을 취하여야 하는데 의양으로 가는 길은 험난하고 멀어 군사들의 노고가 많을 뿐 아니라 그 비용도 적지 않게 들 것입니다. 더욱이 위(魏)와 조(趙) 두 나라가 한(韓)나라를 구원하기 위해 군사를 동원할 것이니 신은 삼가 삼천으로 통하는 길을 얻기는 불가하다고 생각합니다."


▶의양(宜陽)/전국(戰國) 때 한나라가 신정성(新鄭城)으로 천도하기 전의 도성(都城)이다. 지금의 하남성 의양현(宜陽縣)이다. 한나라는 그 도성을 평양성(平陽城 ; 지금의 산서성 임분시)-의양성(宜陽城)-신정성(新鄭城)으로 옮겼다.


무왕이 다시 감무의 의견을 물었다. 감무가 대답했다.


"신은 왕을 위해 위나라를 설득하여 같이 한나라를 정벌하도록 하겠습니다."


무왕이 크게 기뻐하며 감무를 위나라 왕에게 보내 설득하도록 하자 위애왕(魏哀王)은 진나라가 한나라를 공격한다면 돕겠다고 약속을 했다. 감무는 원래 저리질과 의견이 서로 달랐기 때문에 혹시 저리질이 중간에 자기가 하는 일을 방해나 하지 않을까 걱정하여 먼저 자기와 함께 한나라에 갔던 부사(副使) 향수(向壽)를 보내 진무왕에게 고하게 하였다.

“ 위나라는 이미 대왕의 명을 받들기로 하였습니다. 그러나 비록 위나라가 우리를 돕는다할지라도 원컨대 대왕은 한나라를 정벌하려는 생각을 잠시 거두시기 바랍니다.


진무왕은 향수가 전한 말을 의심하여 즉시 식양(息壤)의 땅까지 가서 감무를 만났다. 무왕이 감무를 보자 물었다.

▶식양(息壤)/ 사기 저리자감무열전(樗里子甘茂列傳)에 나오는 진나라의 지명이나 그 위치는 미상이다. 원래는 우(禹)의 아버지 곤(鯤)이 요임금의 명을 받아 황하의 치수를 위하여 제방을 쌓았으나 계속 무너지자 상제가 갖고 있던 스스로 자라나는 흙을 훔쳐 공사를 완공했다. 그러나 상제가 이를 알고 식양을 가져가 버리자 황하의 제방이 다시 무너져 요임금에게 죽임을 당했다는 신화에 나오는 식양(息壤)이라는 흙의 이름이다.

“ 상국께서 과인을 위해 위나라의 도움을 얻어 한나라를 정벌하겠다고 하면서, 위나라에 가서 과인의 명을 전하여 그들의 허락을 받아 놓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상국께서 다시 ' 잠시 한나라 정벌을 멈추십시오!'하니 무슨 까닭에서입니까?”


감무 "무릇 천리의 험지를 통과해서 한나라의 대읍을 공격하는 것은 몇 달 동안의 짧은 시간으로 이루어질 싸움이 아닌 것입니다. 옛날에 증삼(曾參)이라는 공자의 제자가 비읍(費邑)에 살고 있을 때 증삼과 동명이인인 노나라 사람이 살인을 하자 어떤 사람이 달려가 증삼의 모친에게 ' 증삼이 살인을 했습니다.'라고 고했습니다. 그때 베틀에 올라가 베를 짜고 있던 증삼의 모친은 그 사람을 돌아보며 ' 내 아들은 사람을 죽일 사람이 아니오!'라고 대답하더니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하던 베틀 일을 계속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있다가 또 다른 사람이 달려와 ' 증삼이 사람을 죽였습니다.'리고 고하자 증삼의 모친은 잠시 베틀의 북을 멈춘 다음에 생각해 보더니 ' 내 아들은 절대로 살인을 할 사람이 아니오!' 라고 말하며 베를 짜기를 계속했습니다. 다시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 또 한 사람이 달려와 ' 살인을 한 사람을 확인해 보니 정말로 증삼 이었습니다.' 라고 말하자 증삼의 모친은 곧바로 베틀의 북을 던져버리고 담장을 뛰어 넘어 도망쳤습니다. 무릇 증삼의 어진 마음이야 그 모친이 제일 잘 알고 있었겠지만, 세 사람이 계속해서 달려와 증삼이 살인을 했다고 말하니 그 인자한 증삼의 모친마저도 결국은 증삼을 의심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신의 지혜로움은 증삼에 미치지 못하고 대왕께서 신을 믿으시는 마음은 증삼의 모친이 증삼을 믿는 마음에 미치지 못합니다. 그러나 대왕의 옆에 있으면서 신을 비방하는 자는 어찌 세 사람에 한하겠습니까? 신은 단지 대왕께서 다른 신하들의 말을 듣고 일의 중도에 베틀의 북을 던져버리지나 않을까 걱정되어 한나라의 정벌을 잠시 미루라고 말씀드린 것입니다."


▶비(費)/지금의 산동성 비현(費縣)에 있었던 제후국이었으나 춘추 때 노나라에 편입되어 노나라 삼환씨(三桓氏) 중 계손씨(季孫氏)의 식읍이었다가 전국시대 때는 독립상태를 유지하고 있었음


무왕 "과인이 다른 사람의 참소하는 말을 듣지 않겠다고 이 자리에서 상국과 함께 맹세하리다!"


이윽고 그 임금과 신하가 서로 희생을 잡아 그 피를 입술에 바르며 맹세를 하고 다시 그 증거로 '식양(息壤)'이라는 글자를 써서 감무에게 주었다. 진무왕은 즉시 오만의 군사를 일으켜 감무를 대장으로 향수를 부장으로 삼아 한나라의 의양을 공략하게 하였다.


감무가 이끄는 진나라의 오만 군사가 의양성(宜陽城) 밑에 당도하여 포위하기를 다섯 달이 넘었지만 의양성을 지키던 수장(守將)이 굳게 지켜 결코 함락시킬 수가 없었다. 그러자 진나라 본국에 있던 우승상(右丞相) 저리질(樗里疾)이 무왕에게 감무를 비방하면서 말했다.


"우리 군사들이 출전한지가 오래되어 피로에 지쳤습니다. 지금 철군하지 않으면 큰 변을 당하지나 않을까 걱정됩니다."


무왕이 저리질의 말을 듣고 감무에게 철군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감무는 철군의 명령을 듣지 않고 즉시 서찰 한 통을 밀봉하여 무왕에게 보냈다. 무왕이 봉함을 뜯어보니 그 안에서는 '식양(息壤)'이라는 두 글자가 써 있었을 뿐이었다. 무왕이 감무가 출전할때 한 말을 생각해 내고는 말했다.


"감무가 옛날에 이렇게 될 것이라고 미리 말했음에도 내가 철군령을 내린 것은 나의 잘못이로다!"


진무왕은 철군령을 취소하고 오히려 감무에게 많은 증원군을 보냈다. 용기백배한 감무는 의양성을 공격하여 결국은 함락하여 진무왕은 한나라를 통하여 주나라로 들어가 구정을 엿볼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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