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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열전(日者列傳)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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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전68. 일자(日者)①

옛날부터 천명을 받은 자만이 왕이 되었지만 왕자가 일어날 때 복서(卜筮)로써 천명을 판단하지 않았던 적이 있었던가? 그와 같은 일은 주(周)나라 때 특히 심했고 진(秦)나라 때도 있었다. 대왕(代王) 유항(劉恒)이 장안(長安)으로 들어가 황제의 자리에 오를 때도 복자의 판단에 맡겨 결정했다.② 태복(太卜)③이란 관직은 한나라가 일어날 때부터 있었다.

사마계주(司馬季主)라는 사람은 초(楚)나라 사람으로 장안의 동시(東市)에서 점을 치고 살았다.

 중대부 송충(宋忠)④과 박사 가의(賈誼)⑤가 같은 날 세목(洗沐)⑥을 얻어 거리로 나와 함께 걸으며 담론했다. 두 사람은 역경(易經)을 말을 인용하여 선왕과 성인이 도술(道術)로 인정과 물정에 두루 통했음을 칭송하다가 서로 얼굴을 마주대하더니 작금의 세태를 한탄했다. 가의가 말했다.

「내가 들으니 옛날 성인들은 조정에 있지 않으면 필시 점쟁이나 의원들 중에 섞여 살고 있다고 했습니다. 오늘 제가 이미 조정에 있는 삼공(三公), 구경(九卿)과 사대부(士大夫)들을 모두 살펴보았는데 그들중에 성인이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한번 시험 삼아 점쟁이들 중에 성인의 풍도가 있는 사람이 있는지 살펴보기로 하면 어떻습니까?」

두 사람이 같이 즉시 수레를 타고 시정으로 나가 점쟁이 집을 찾았다. 그때 마침 비가 내려 거리에는 다니는 사람이 적었다. 사마계주(司馬季主)라는 점쟁이가 자리에 앉아있고 제자 3-4명의 제자가 옆에서 모시고 있었다. 그때 사마계주는 바야흐로 제자들에게 천지의 도, 일월(日月)의 운행, 음양과 길흉의 근본에 대해 강론하고 있는 중이었다. 두 대부가 재배하고 알현을 청하자 사마계주가 두 사람의 풍모를 살펴 학식이 있는 사람이라고 여겨 즉시 답례를 행하고 제자들로 하여금 인도하여 자리에 앉게 했다. 사마계주는 하던 이야기를 계속하여 하늘과 땅의 처음과 끝, 일월성신(日月星辰)의 운행법칙을 밝히고 인의(仁義)의 단계를 순서에 따라 정리하고, 길흉의 사례를 열거했다. 그의 말은 수천 마디에 이르렀지만 모두가 순리에 벗어난 말은 하나도 없었다.

송충과 가의는 악연히 놀라 두려워하며 깨달은 바가 있어 관을 고쳐 쓰고 옷깃을 여민 다음 자리를 고쳐 앉으며 말했다.

「저희들은 선생의 모습을 보았고 또한 선생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우리 같은 소인들은 지금까지 세상을 살아오면서 일찍이 선생과 같은 분을 뵙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선생께서는 이렇게 낮은 곳에 살면서 몸을 더럽히고 계십니까?」

사마계주가 그 말에 배를 얼싸안고 크게 웃으며 말했다.

「대부들을 살펴보니 제법 도와 술을 갖추고 있는 분들 같은데 어찌 그와 같은 비루한 말을 할 수 있고 언사는 촌스럽습니까? 지금 선생들께서 말하는 현자는 누구이고 높은 곳에 있는 사람은 도대체 누구를 말하십니까? 그리고 어찌하여 나를 낮은 곳에 살면서 몸을 더럽힌다고 생각하십니까?」

두 사람이 대답했다.

「높은 벼슬과 후한 봉록은 세상 사람들이 높이는 바이고 현능한 사람의 몫입니다. 지금 선생께서 그런 지위에 있지 않으니 저희가 낮은 곳에 있다고 말했습니다. 점쟁이가 하는 말은 신임을 받지 못하고 행하는 행동은 본받을 바가 없으며, 또한 부당한 방법으로 재물을 취하니 몸을 더럽히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무릇 복서는 세상의 풍속으로는 천하게 여기는 일입니다. 그래서 세상사람들은 모두 이렇게 말합니다.『점쟁이는 말이 많고 과장을 많이 해서 사람들의 마음을 얻고, 허황되게 사람의 복록과 생명을 높여 사람들의 마음을 들뜨게 만들어 함부로 화난과 재앙이 있다고 말해 사람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귀신을 빙자하여 남의 재산을 모두 뜯어내고 후한 사례를 요구하여 사사로운 이익을 취하고 있다.』이것들을 우리는 부끄러워하는 바이고 그래서 낮은 곳에 거하며 몸을 더럽히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사마계주가 대답했다.

「대부들께서는 편안히 앉아 제 말을 들어보십시오. 저 더벅머리 아이들이 보이십니까? 해와 달이 그들을 비춰주면 그들은 나가고 비추어주지 않으면 나가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월식이나 일식 및 길흉에 대해 물으면 대답할 수 없습니다. 이것으로써 알 수 있듯이 현능하거나 불초하거나를 확실히 구별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흔치 않습니다. 현능한 자가 하는 행동은 정간(正諫)으로써 바른 길로 삼아 세 번 간했음에도 듣지 않으면 물러납니다. 남을 칭찬할 때는 그 보상을 바라지 않고 남을 비방할 때는 그들의 원한을 사는 일을 생각하지 않으며 그저 나라의 이익을 위해 힘쓸 뿐입니다. 그런 연유로 관직이 적임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차지하지 않고 세운 공으로 인하지 않은 봉록은 받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이 올바르지 않은 행위를 봤을 때는 비록 그가 귀한 신분일지라도 공경하지 않으며, 또한 더러운 행위을 할 때는 비록 그가 높은 자리에 있다할지라도 그를 위해 몸을 굽히지 않습니다. 얻어도기뻐하지 않고 가버려도 한스럽게 여기지 않습니다. 자기의 죄가 아니라면 비록 욕됨을 입어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금 대부들께서 현능한 자들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모두가 부끄러워해야 할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몸을 너무 낮게 낮추어서 말하고, 권세로써 서로 이끌어주며 이익을 미끼로 서로 인도합니다. 그들은 나쁜 사람끼리 사당을 만들고 군자들을 배척합니다. 깊은 총애와 아름다운 명예를 속여 취하고 나라의 봉록을 누리면서도 개인적인 이익만을 추구하며 군주의 법령을 왜곡시켜 농민의 재산을 약탈합니다. 관직에 의지하여 위세를 부리며 법률을 수단으로 삼아 사리사욕을 추구하여 포학하고 도리에 어긋나는 행동만을 일삼고 있습니다. 이는 마치 예리한 칼을 들고 사람들을 위협하는 행위에 해당합니다. 처음 벼슬에 나갔을 때는 자신의 기량을 교묘한 수단으로 속여 두 배나 부풀리고, 있지도 않은 공적을 거짓으로 꾸며 치장하고 화려하나 실속이 없는 문서로 군왕을 기만하여 고위직을 차지합니다. 높은 자리에 앉아 현능한 사람에게 결코 양보하지 않습니다. 공적을 과장하여 늘려 말하고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작은 것을 큰 것처럼 꾸며 자기에게 유리한 권세와 직위를 구합니다. 그리고 술과 맛있는 음식을 찾아 수레를 타고 이곳저곳을 찾아다니며 미인과 가동(歌童)을 기르나 부모는 돌보지 않습니다. 법을 어겨 백성들을 해치고 국가의 창고를 비게 만듭니다. 이것은 마치 창과 활을 들지 않은 도적이고 활과 칼을 쓰지 않고 백성들을 공격하는 행위입니다. 자신의 부모를 속이고도 그 죄를 아직 받지 않고 그 군주를 시해했으나 아직 그 죄값을 치르지 않은 자들인데 어찌 그들이 고상하고 현능한 인재들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도적이 일어나도 막지 못하고, 오랑캐가 복종하지 않아도 누를 수 없습니다. 간교하고 사악한 무리가 발호해도 다스리지 못하고, 관리가 부패하고 타락해도 다스릴 수 없으며 사계절의 기후가 불순해도 조정할 수 없고 흉년이 들어도 마땅한 조치를 취할 수 없습니다.

현능한 재능이 필요할 때임에도 쓰지 않는 행동은 불충입니다. 재능이나 어질지도 않은 사람이 관직을 차지해 봉록의 이를 탐하며 관직에 진출하려는 현능한 사람을 방해하는 행위는 곧 현능한 사람들의 자리를 도둑질하는 짓과 같습니다. 무리를 지은 자들을 관직에 나아가게 하고 재산이 있는 자를 우대하며 존경하는 처사는 거짓된 마음의 결과입니다.

두 분께서는 올빼미와 봉황이 함께 하늘을 날아다닌다는 사실을 보지 못하십니까? 란(蘭), 지(芷), 궁(芎), 궁(藭같은 향초는 넓은 광야에서 버림을 받고 호(蒿)나 소(蕭) 같은 잡초는 숲속에 무성하게 자라듯이 훌륭한 군자가 몸을 피해서 대중 앞에 몸을 드러내게 하지 못하게 하는 현상은 두 분께서 현능하거나 고상하다고 말하는 자들 때문입니다.

‘옛 일을 이야기할 뿐 새로 만들어내지는 않는다.’는 말은 군자가 지켜야할 도리입니다. 지금 복자라는 사람은 반드시 천지의 법을 따르고 사시를 본뜨며 인의에 순응하여 책(策)⑦을 나누어 괘(卦)를 정하고 식(式)⑧을 돌펴 기(棋)를 바르게 한 후에 천지의 이해와 일을 성패를 말합니다. 옛날 선왕들께서 나라를 정할 때는 먼저 귀책으로 일월성신을 점친 후에 감히 하늘을 대신하여 시일을 바르게 하고 궁실에 임했습니다. 또한 집에 아들을 낳으면 반드시 길흉을 점친 후에라야 길렀습니다. 복희씨(伏犧氏)⑨가 팔괘를 만든 이래 주문왕(周文王)이 이를 부연하여 384효(爻)를 만들자 비로소 천하가 바로 다스려졌습니다. 월왕 구천(句踐)은 문왕의 팔괘의 효사를 본받아 행동하여 적국을 격파하여 천하의 패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이런 것들을 살펴보고 말한다면 복서가 어찌하여 사람을 배신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무릇 점을 치는 사람은 자리를 깨끗이 청소하고 마련한 자리에 좌정하여 관대를 바르게 한 후에 점을 칩니다. 이것은 예를 갖춤입니다.

점사(占辭)로 귀신의 일이나 혹은 귀신을 향응할 수 있고 충신은 그 임금을 섬길 수 있고, 효자는 그 어버이를 받들게 되며, 인자한어버이는 그 자식들을 양육하게 됩니다. 이것은 덕을 배품입니다. 그리고 점을 부탁하는 사람들은 그 대가로 수십이나 수백 전을 냅니다. 그 덕택으로 아픈 사람이 병을 낫는 수도 있고 죽을 사람도 살아나는 경우도 있으며 환난을 면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한 사업에 성공하는 사람도 있고 시집가거나 장가를 가거나 해서 자식들을 후손들을 양육합니다. 이런 은덕이 어찌 수십 혹은 수백 전의 가치뿐이겠습니까? 이는 노자가 ‘최상의 덕은 얼핏 보아 덕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런 연유로 덕이 있다고 말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지금 점치는 사람들이 천하에 베푼 덕은 대단히 큼에도 받는 사례는 적으니 노자가 한 말과 무엇이 다르다고 하겠습니까?

장자가 말했습니다. ‘군자는 안으로는 굶주리거나 추위에 떨 염려가 없고 밖으로는 약탈당할 걱정이 없다. 높은 자리에 있을 때는 존경을 받고 낮은 자리에 있을 때는 해를 입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군자의 도다.’ 지금 점치는 일을 생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은 재물을 모아도 쌓이지 않으니 간직하는데 창고가 필요 없으며 옮겨 다니는 데는 수레도 필요 없고 지고 다녀도 그다지 무겁지 않지만 머물러 쓰게 되면 떨어지는 법이 없습니다. 아무리 써도 떨어지지 않는 물건을 가지고 끝이 없는 세상에서 노닐 수 있으니 비록 자유롭게 살다간 장자인들 이렇게 여유롭게 살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두 분 대부들께서는 어찌하여 점치는 사람들을 불가하다고 하십니까? 하늘은 서북쪽이 부족했기 때문에 일월성신이 북쪽으로 옮겨갔으며 땅은 동남쪽이 부족했기 때문에 바다로써 못을 만들게 되었습니다.⑩ 해는 중천에 이르게 되면 반드시 이동하게 되고, 달은 차면 반드시 이지러지게 되어있습니다. 선왕이 세운 도는 있다가도 없어지고 없어졌다가도 나타나곤 합니다. 두 분 대부께서 점치는 사람들이 신의가 없다고 하는 비난은 잘못된 일입니다.

공들은 저 담사(談士)나 변사(辯士)들이 보이십니까? 일을 생각하고 계획을 세우는 사람들은 바로 저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한 마디의 말로 군주의 마음을 즐겁게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말하기를 선왕의 말을 빌리고 상고의 도를 인용해야 합니다. 일을 생각하고 계획을 꾸밀 때 선왕의 공적을 수식하거나 선왕의 실패나 피해를 말하여 군주의 마음을 두렵게 하거나 즐겁게 함으로써 그들이 바라는 바를 추구합니다. 말이 많고 일을 과장하는 데는 그들 보다 심한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나라를 부강하게 하고 공업을 이루며 그 군주에서 충성을 바치려고 한다면 이와 같은 방법을 취하지 않고는 성공할 수 없습니다. 지금 점치는 사람들은 미혹한 사람들을 인도하고 어리석은 사람들은 교화합니다. 무릇 어리석고 미혹한 사람들이 어찌 한 마디의 말로 깨닫게 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점치는 사람들은 말 많은 이들을 싫어하지 않습니다.

또 천리마는 비루먹은 노새와 사마(駟馬)로써 짝지을 수 없으며 봉황은 연작과 함께 무리를 짓게 할 수 없습니다. 이처럼 현능한 자와불초한 자는 같은 반열에 서지 않습니다. 그래서 군자는 낮고 드러나지 않은 곳에서 거하며 사람을 피해 스스로 몸을 숨겨 세속의 윤리를 피합니다. 드러나지 않은 곳에서 덕을 보이고 여러 가지 재해를 제거시켜 사람의 천성을 밝혀주고 위를 돕고 아래를 돌보아 세상에 공적과 이익을 많이 남기지만 자신을 위해 높은 영예를 구하지는 않습니다. 두 분 대부들처럼 세속에 부화뇌동하는 사람들이 어찌 장자의 도리를 알 수 있겠습니까?」

송충과 가의는 망연자실하고 창백한 얼굴에 어찌할 줄 모르며 입을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두 사람은 옷깃을 여미며 바로 일어나 재배하고 작별인사를 나뉜 뒤 정신없이 길을 걷다가 시문(市門)을 나와 간신히 수레에 올랐으나 수레 앞 횡대(橫帶)를 잡고 엎드려 고개를 떨구고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었다.

그리고 3일 후에 궁궐 문 앞에서 가의를 만난 송충은 서로 소매를 끌어당기며 다른 사람의 눈을 피해 대화를 나누었다. 두 사람은 서로 스스로를 한탄하며 말했다.

「도란 높을수록 더욱 편하지만, 권세는 높을수록 더욱 위태롭습니다. 혁혁한 권세를 가진 자리에 앉아있으면 몸을 망치게 되는 날이 오게 마련입니다. 점을 쳐서 확실하지 않은 일이 있어도 복채를 빼앗기는 일은 없지만 임금을 위해 세운 계책이 확실하지 않으면 몸 둘 곳이 없게 됩니다. 서로 간에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은 마치 머리에 쓰는 관과 발에 신는 신발과 같이 차이가 큽니다. 그래서 노자가 ‘무명(無名)은 만물의 시작이다.’라고 했습니다. 하늘과 땅은 넓고 넓으며 만물은 많기도 많아 혹은 안전한 곳도 있고 위태로운 곳도 있어 어디에 몸을 두어야할 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두 사람은 그 사람처럼 만족하며 살 수 있겠습니까? 그런 사람은 세월이 흐르면 더욱 편하게 살 수 있다고 말한 장자의 뜻과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오랜 후에 송충은 흉노에 사신으로 갔다가 임무를 포기하고 도중에 돌아온 사건으로 죄를 받았다. 양나라 회왕(懷王)⑪의 태부가 된 가의는 회왕이 말에서 떨어져 죽자 음식을 끊고 한스러워 하다가 그 일로 죽었다. 그들은 꽃을 피우려다가 뿌리가 끊겨 죽었다고 할 수 있다.

태사공이 말한다.

옛날의 점치는 사람에 대해 기록하지 않은 주된 이유는 그들에 대해 기록한 서적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마계주에 이르러 내가 직접 보고 이 편을 지었다.

저선생⑫이 말한다.

「신이 낭의 신분이었을 때 장안을 구경하다가 복서를 생업으로 삼고 있었던 현능한 대부를 만난 적이 있었습니다. 그가 기거하거나 보행하거나 앉았다가 일어나는 모습이나 행동을 보면 비록 시골사람이라고 해도 대할 때는 의관을 단정하게 대하니 진실로 군자의 기풍이 있었습니다. 상대방의 성정을 보고 점괘를 풀기를 잘했고 부녀자들이 와서 점을 부탁할 때는 엄숙한 얼굴도 대하며 한 번도 이를 드러내며 웃는 적이 없었습니다. 자고로 현능한 사람이 세속을 피해 잡초가 무성한 늪에 살기도 하며, 민간에 섞여 살면서 입을 다물고 말없이 살기도 하며, 점치는 사람들 사이에 숨어살며 자신을 보전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사마계주는 초나라의 현능한 대부로써 장안으로 유학을 와서 역경(易經)에 통하게 되어 황제(黃帝)와 노자(老子)의 학설을 말하고 널리 듣고 멀리 본 일이 많았습니다. 그가 송충과 가의 두 대부에게 대답한 말을 보면 옛날의 명왕(明王)과 성인들이 한 말을 인용하고 있는데 그것은 견문이 천박한 소인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점을 치는 일로써 천리 밖까지 이름을 떨치는 일은 가끔 있는 일입니다. 그래서 옛글에 “부(富)가 첫째고 귀(貴)가 다음이다. 그래서 이미 귀한 신분이 되었으면 각기 한 가지 기예를 배워서 그 몸을 세워야한다.”라는 말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황직(黃直)은 대부이고 진군부(陳君夫)는 그의 부인이었는데 두 사람은 말의 감별하는 일로 이름을 천하에 떨쳤습니다. 제(齊)나라의 장중(張仲)과 곡성후(曲成侯)⑬는 격검술로 학문을 이루어 그 이름을 천하에 세웠습니다. 유장유(留長孺)는 돼지를 잘 감별한 일로써, 형양(滎陽)의 저씨(褚는 소를 잘 감별한 일로써 세상을 이름을 세웠다. 이렇게 뛰어난 기예와 재능으로 세상에 이름을 떨친 수많은 사람들은 모두가 세상에 우뚝 솟아 일반 사람들을 뛰어 넘은 절세의 풍모를 있었음을 어찌 하나하나 언급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옛 말에 ‘그 땅이 아니면 심어도 나지 않고 그 뜻이 아니면 가르쳐도 소용이 없다’고 했습니다. 대체로 집에서 자손들을 가르칠 때 마땅히 그들이 좋아하는 바를 알아야합니다.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은 생활의 방법이니 좋아하는 것을 따라 가르쳐야 성공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한 집안을 다스리고 자식을 가르치는 모습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 그 자식에게 적합한 일을 찾아주는 부모는 현능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라고 했습니다.

신과 태복이 랑의 신분이었을 때 함께 같은 부서에서 일할 때가 있었는데 그때 그가 말한 바가 있었습니다. ‘효무제(孝武帝)께서 점가(占家)들을 모두 불러 모아놓고 모일에 며느리를 맞이하면 좋은지를 물으셨습니다. 그러자 오행가(五行家)는 좋다하고, 감여가(堪輿家)⑭는 불가하다 하고, 건제가(建除家)⑮는 불길하다 하고, 총진가(叢辰家)⑯는 대흉(大凶)이라고 역가(曆家)⑰는 소흉(小凶)하다 하고,천인가(天人家)⑱는 소길(小吉)하다 하고,태일가(太一家)⑲는 대길하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논쟁은 결론이 나지 않아 그대로 황제에게 보고했습니다. 황제가 듣고 모든 상서롭지 못한 일을 피하는 일에는 오행을 위주로 하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은 오행에 따라 살고 죽기 때문입니다.」

《 일자열전 끝 》

주석

①일자(日者)/ 통상적으로 천기를 보고 그 날의 길흉을 점치는 사람으로 통상적인 점쟁이의 명칭이다. 본 편은 원래 제목만 있었고 사마천의 원문은 일실되었으나 후에 저소손이 보충했다.

②여씨들의 란을 진압한 대신들이 사자를 보내 대왕 유항을 황제로 추대하려고 하자 대왕이 복자를 시켜 점을 치게 한 기사가 효문본기에 있다.

「귀갑(龜甲)을 이용하여 점을 쳐 보게 한 결과, 귀갑 위에 가로로 커다란 균열 무늬가 생겼다. 복사(卜辭)가 다음과 같이 나왔다. “커다란 가로 무늬가 이처럼 굳세니, 장차 천왕(天王)이 되어 하(夏)나라의 계(啓)처럼 부업(父業)을 계승하여 한(漢)나라를 성대하게 빛내리라! 」

③태복(太卜)/ 주나라 때부터 설치한 관직명으로 거북의 등껍질을 태워 그 갈라진 무늬를 보고 길흉을 점쳤다. 진한 때도 이 제도를 답습하여 태복령(太卜令)을 두어 태상(太常)의 속관으로 삼았다.

④송충(宋忠)/ 한문제 때의 관리로 후에 흉노에 사자로 가다가 중도에 돌아와 죄를 받았다.

⑤가의(賈誼)/ 기원전 200년에 태어나서 168년 33세의 나이로 요절한 하남성 낙양(洛陽) 출신의 서한 초기 문인에 학자이자 정치가이다. 시문에 뛰어나고 제자백가의 설에 정통하여 한문제(漢文帝)의 총애를 받아 약관의 나이로 최연소 박사가 되었다. 1년 만에 다시 태중대부(太中大夫)가 되어 진(秦)나라 때부터 내려온 율령 ·관제 ·예악 등의 제도를 개정하고 전한의 관제를 정비하기 위한 많은 의견을 상주하였다. 그러나 주발(周勃) 등 당시 창업공신 출신의 고관들로부터 견제를 받아 장사왕(長沙王)의 태부(太傅)로 좌천되었다. 자신의 불우한 운명을 굴원(屈原)에 비유하여 <복조부(鵩>와 <조굴원부(弔屈原賦)>를 지었으며, 《초사(楚辭)》에 수록된 <석서(惜誓)>는 그의 작품으로 알려졌다. 4년 뒤 복귀하여 문제의 막내아들 양왕(梁王)의 태부가 되었으나 왕이 낙마하여 급서하자 상심한 나머지 1년 후인 기원전 33세의 나이로 죽었다. 저서에《신서(新書)》 10권이 있으며, 진(秦)의 흥망성쇄를 논한 <과진론(過秦論)>은 유명하다. (열전24. 굴원가의열전 참조)

⑥세목(洗沐)/ 한나라 제도에 관리들은 5일 만에 하루 씩 휴가를 얻어 목욕과 휴식을 취했다. 당송 때는 10일만에 하루의 휴가를 주었다.

⑦책(策)/ 점치는 시초(蓍草)를 말한다.

⑧식(式)/ 식(栻으로 고대의 점치는데 사용했던 기구다. 전편 일자열전(日者列傳) ‘선식정기(旋式正棊’라는 말이 있는데 식(式)은 식(栻이고 선(旋)은 전(轉)으로 선식(旋式)이란 점을 치기 위해 나무로 만든 판때기를 돌리는 행위를 말한다. 윗 부분은 하늘 모양을 본떠 둥글고 아래 부분은 땅 모양을 본 떠 네모나게 생겼는데 하늘의 간(干)을 표시하는 기준점을 땅의 지(支)에 맞춰 점의 길흉을 판단했다. 그리고 정기(正棊는 점을 치는 시초를 보고 점괘를 짓는 일이다.

⑨복희씨(伏犧氏)/ 삼황오제(三皇五帝) 중의 한 사람으로 복희(宓犧), 포희(庖, 태호(太昊)라고도 한다. 여동생인 여와(女媧와 혼인하여 인류의 조상이라고 한다. 그는 음양 변화의 원리를 터득하여 주역의 시초가 된 팔괘(八卦)를 만들었고, 거미가 거미줄로 집을 짓는 모습을 모고 어망을 처음으로 만들어 사람들에게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쳤다. 또한 숲 속에서 번개가 쳐 자연적으로 일어나는 불을 인간에게 전해주어 이를 이용하여 음식을 익혀 먹는 법을 전했다. 금(琴)과 슬(瑟)의 악기를 만들었다 했다. 화서씨(華胥氏)의 딸이 뇌택(雷澤) 속에 남아 있던 거인의 발자국을 밟고 잉태하여 낳은 아이가 복희라 했다.

⑩ 중국 천지창조 신화에 공공(共工)과 전욱(顓이 임금의 자리를 다투다가 부주산(不周山)을 들이받아 하늘을 지탱하는 기둥이 부러지자 하늘이 서북쪽으로 기울어 일월성신이 그 방향으로 이동했고 땅은 동남쪽으로 기울어 물이 그곳으로 흘렀다고 했다.

⑪양회왕(梁懷王)/ 한문제의 4자 유읍(劉揖)을 말한다. 원래 한문제 유항(劉恒)은 네 아들을 두었는데 첫째가 한경제 유계(劉啓), 2자는 양효왕(梁孝王) 유무(劉武), 3자는 대왕(代王) 유삼(劉參), 그리고 4자가 유읍이다. 기원전 168年,유읍이 사고로 후사가 없이 죽자 당시 회양왕(淮陽王)이었던 유무를 양왕으로 개봉했다.

⑫저선생/ 서한의문학가이며 사가인 저소손(褚少孫)을 말한다. 지금의 하남성 우현(禹縣)인 영천(潁川) 출신으로 어렸을 때 지금의 강소성 패현(沛縣)인 패(沛)로 이주하여 살았다. 일찍이 당시의 저명한 유학자 왕식(王式)에게서 학문을 배웠다. 원제(元帝 : 전49-33년)와 성제(成帝 : 전33-7년) 연간에 박사(博士)가 되었다. 사마천의 사기에 누락된 부분이 있음을 발견하고 보찬(補撰)했다. 효무본기(孝武本紀), 삼왕세가(三王世家), 외척세가(外戚世家), 귀책열전(龜策列傳), 일자열전(日者列傳) 및 골계열전(滑稽列傳)을 보찬하거나 부록으로 달았다.

⑬곡성후(曲城侯) : 서한의 개국공신 충달(蟲達) 혹은 고달(蠱達)을 말한다. 한고조 유방이 진나라를 멸할 때 종군하여 세운 공으로 곡성후(曲城侯)에 봉해졌다. 시호는 어(圉다. 검술에 뛰어나 천하에 이름이 높았다. 서한의 왕충(王充) 지은 《논형(论�)·별통(别�)》에 다음과 같은 기사가 있다. “검술로 일가를 이루어 싸우면 반드시 이겨 곡성후에 봉해졌다.《한서(汉书·고혜공신표(高惠功臣表)》에 “곡성어후(曲城圉 충달(虫达은 탕에서 기의하여 고조를 따라 삼진을 평정하고 항적을 격파하고 연(燕)과 대(代)의 성을 함락시켰다. 검술에 정통하여 천하에 이름이 높았다. ”고 했다.

⑭감여가(堪輿家) : 풍수가다.

⑮건제가(建除家)/ 12지신(地神) 혹은 12방위로 길흉을 예언하는 점술가

⑯총진가(叢辰家)/ 12진(辰)에 따라 선신(善神)과 악살(惡煞)의 배열로 길흉을 예언하는 점술가

⑰역가(曆家)/ 날자를 계산해서 점을 치는 사람

⑱천인가(天人家)/ 천과 인의 감응으로 점을 치는 사람

⑲태일가(太一家)/ 천하 만물의 형상을 보고 점치는 사람. 태을가(太乙家)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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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외전5. 섭정(聶政)

學琴報仇(학금보구) 전국 때 섭정(聶政)의 부친은 한나라 왕을 위해 칼을 만들다가 기한을 넘기도록 만들지 못해 한왕의 명령에 의해 살해 되
운영자 13-01-13
[일반] 외전4. 자산(子産) 공손교(公孫僑)

외전 4. 자산(子産) 정간공(鄭簡公) 원년 기원전 565년 여러 공자들이 모의하여 자사(子駟)를 죽이려고 하였으나 자사가 미리 알고 무리를 모아
운영자 12-12-17
[일반] 외전2. 보임안서(報任安書)

보임안서(報任安書) 사마천이 자신의 친구인 임안(字:少卿)에게 보낸 유명한 서신이다. 이 서신은 『한서(漢書)』『사마천전(司馬遷傳)』 및 『문선
운영자 12-12-16
[일반] 외전1. 순우곤(荀于髡)

순우곤(荀于髡)  순우곤은 제나라 사람이다. 견문이 넓고 기억력이 좋아 어떤 특정한 주제를 가리지 않고 모두 배웠다. 그가 유세하거나 간
운영자 12-12-05
[일반] 화식열전(貨殖列傳)69

열전69. 화식(貨殖) 노자가 말했다. 「나라의 지극한 치세는 이웃한 마을이 서로 바라보면서 닭울음소리와 개 짖는 소리를 서로 들으며, 백성들
운영자 12-11-08
[일반] 귀책열전(龜策列傳)68

열전68. 귀책(龜策) 태사공이 말한다. 옛날부터 성왕이 천명(天命)을 받아 나라를 세워 왕업을 일으키려 할 때마다, 복서(卜筮)1)를 소중히
운영자 12-09-10
[일반] 일자열전(日者列傳)67

열전68. 일자(日者)① 옛날부터 천명을 받은 자만이 왕이 되었지만 왕자가 일어날 때 복서(卜筮)로써 천명을 판단하지 않았던 적이 있었던가? 그와
운영자 12-09-06
[일반] 골계열전(滑稽列傳)66

열전66. 滑稽(골계) 淳于髡•優孟•優旃(순우곤우맹우전) 공자가 말했다. 「나라를 운용하기 위해 육경을 공부하는 목
운영자 12-08-27
[일반] 영행열전(佞幸列傳)65

열전65. 영행(佞幸) 속담에 “ 힘써 농사짓는 것이 해를 이어 풍년이 든 것 보다는 못하고 관리가 영달하는 데는 직무에 충실한 것이 윗사
운영자 12-08-27
[일반] 유협열전(游俠列傳)64

열전64. 游俠(유협) 한비자가 말했다. 「유자(儒者)는 글로써 법을 어지럽게 하고 협객은 무로써 법을 범한다.」 그래서 두 부류를 모두 비판
운영자 12-08-27
[일반] 대원열전(大宛列傳)63

열전63. 대원(大宛)1) 대원의 사적은 장건(張騫)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장건은 한중(漢中) 출신이다. 건원(建元) 연간에 랑(郞)이 되었다. 그때 천
운영자 12-08-27
[일반] 혹리열전(酷吏列傳)62

열전62. 혹리(酷吏) 1341. 民倍本多巧(민배본다교), 백성들이 본분을 잃고 간사스럽게 되며 1342. 奸軌弄法(간궤농법), 간교함을 일삼아
운영자 10-10-05
[일반] 유림열전(儒林列傳)61

1336. 自孔子卒(자공자졸), 공자가 죽은 이래 1337. 京師莫崇庠序(경사막숭상서), 도성의 사람들은 아무도 교육의 필요성을 중시하지 않았다.
운영자 10-10-05
[일반] 급정열전(汲.鄭列傳)60

1329. 正衣冠立于朝廷(정의관립우조정), 의관을 바르게하고 조정에 서면 1330. 而群臣莫敢言浮說(이군신막감언부설), 여러 신료들이 이를 보고
운영자 10-10-04
[일반] 순리열전(循吏列傳)59

열전59 循吏(순리) 1324. 奉法循理之吏(봉법둔리지리), 법을 받들어 도리를 밝히는 관리들은 1325. 不伐功矜能(불벌공긍능), 자기들
운영자 10-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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