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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03-02 19:54:111941 
9. 十月之交(시월지교) - 시월이 되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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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十月之交(시월지교)
- 시월이 되면 -

  주희는 절피남산(節彼南山), 정월(正月) 그리고 다음의 우무정(雨無正) 등의 시에 대하여 그것이 유왕 때의 시라는 주장에는 의심스러운 바가 있다고 했지만 이 시월지교(十月之交)에 대해서는 의심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 시에 나오는 시월 신묘일의 일식은 오래 전부터 중국의 천문학자들의 추산에 의하여 유왕 6년 기원전 776년에 있덨던 일식임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현(鄭玄)이 이 시 이하의 네 편을 여왕(厲王) 때의 시라고 한 것은 잘못이다.
  더구나 이 시가 유왕을 비방한 시라는 견해에 대해서는 이미 죽서기년(竹書紀年)에 ‘유왕 6년 6월10일 일식’이란 기사가 있고, 또 국어(國語)의 주어(周語)에서도 ‘유왕 2년 서주의 산천이 무너졌다.’고 했으며,나아가 죽서기년에서 ‘유왕 5년 황보(皇父)가 도읍을 상(向) 땅에 정했다. ’고 했다. 이 모든 기사가 너무나도 이 시의 내용과 일치하고 있어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것으로 생각했다. 따라 이시의 염처선방처(豔妻煽方處)란 시구는 당연히 포사를 가리키는 것이라 했고, 따라서 이 시가 유왕 6년의 것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는 듯이 여겨졌던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대해서도 이론이 없는 것은 아니다. 송나라의 鄭樵는 이 시월 삭일의 일식을 동주 평왕 2년 기원전 766년 신묘일의 일식이라고 했다. 특히 근래에 연구에 따르면 유왕 6년의 일식은 서주의 도성에서는 보이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에 이 일식은 평왕 36년 기원전 735년 11월 (夏曆 10월) 30일 신묘의 일식이라고 밝혔다. 독일의 천문학자 윌리 할트너의 계산도 이와 일치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일식이 있기 직전에 월식이 있었던 것까지도 밝히고 있어 이 시가 읊고 있는 바와 잘 맞아떨어지고 있다. 이같은 계산의 결과를 믿는다면 이 시는 마땅히 동주 평왕 36년의 일식을 읊은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바로 이것이 첫 번째 왕 36년의 일식을 읊은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바로 이것이 첫 번째 문제제기다.
  다음 두 번째로 문제가 되는 것은 이 시에 나오는 염처가 과연 누구냐라는 의문이다. 지금까지 이 시의 염처는 포사라하여 의심치 않았으나(정현의 경우 이 시를 厲王 때의 시라하고, 따라서 豔妻란 여왕의 비라고 했으나 확실한 증거는 대지 못했다.) 당시 천자의 비를 처라고 호칭했다는 점은 믿기 어렵다. 모시정의(毛詩正義)의 중후(中侯)를 인용문에서 이 염처의 염(豔)자를 염(剡)으로 쓰기도 했고 도 노시(魯詩)에서는 염(閻)이라고도 썼다.
  왕국유(王國維)는 옛 황부의 동기(銅器) 중에 그릇이 포함되어 있는데 그것은 황보(皇父)가 주나라로 시집간 딸 연(娟)씨를 위해 만든 것으로 이 시의 염처는 연(娟) 자의 가차(假借)라는 설을 제시했다. 그러나 왕국유는 유왕의 비는 강(姜)씨와 사(姒)씨로써 연씨가 아님으로 이는 오히려 정현의 설과 같이 여왕의 시대로 비정하는 것이 보다 사실과 가깝다고 생각해서 정현의 설을 옹호했다. 그러나 염처가 여왕의 비라고 단정하기에는 근거가 극히 빈약하기 때문에 이러한 설도 취하기 어렵다고 했다. 그래서 우성오(于省吾) 등은 ‘염처선방처’의 염(豔)은 염(焰)이고 처(妻)는 제(齊)로써 시에 나오는 황보 이하 일곱 사람의 권세가 불길(焰)처럼 성대했음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러나 이 설도 견강부회한 점이 없지 않다.
  세 번째 문제점은 바로 황보가 상(向) 땅에 성을 지었다는 것이다. 정초와 주자는 이 상 땅은 동도(東都) 맹주(孟州)의 하양현(河陽縣)에 있다고 했다. 그러나 정초가 말했듯이 대개 향사(鄕士)의 채읍은 반드시 천자가 거주하는 왕성의 반경 천리 안의 기내(畿內)에 있기 마련이기 때문에 이 시는 아무래도 서주의 시가 아니라 동천한 후에 지어진 시라고 하는 설이다.
  더구나 이 시에 나오는 황보가 상 땅에 도성을 짓고 삼유사(三有事)를 택하는 일이라든가, 모두가 스스로 쾌락을 추구하는 가운데서도 유독 혼자만은 끝가지 천자를 지키려고 하는 것 등은, 다음의 우무정(雨無正)의 시에 나오는 정대부(正大夫)가 도성을 떠나 삼사대부(三事大夫)조차 왕을 모시려 하지 않으며, 벗들이 다시 도성에 돌아오기를 갈망하는 시인의 말과 일치한다. 그럼으로 이 두 시는 같은 시기에 지어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이 외에 의문이 하나 더 있으니 그것은 이 시에 나오는 황보가 절남산(節南山)에 나오는 태자 윤(尹)씨와 같은 사람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대아·상무(常武)》의 시에는 태사 황보, 윤시 등의 이름이 나오며, 죽서기년에도 ‘왕이 태사 윤씨, 황보에게 명하시니’ 라는 기사가 구절이 있다. 가령 그들이 같은 사람이이라고 한다면 절남산, 정월, 시월지교, 우무정 등은 모두 같은 시대의 시라는 말이 되며 이것이 어쩌면 동주 때의 시로 추정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시를 해석하는데 있어서는 여러 가지 모순이 생겨나게 마련이며 염처라는 말의 해석이 바르지 못하다면 이 시가 지어진 연대가 언제라고 쉽게 단정할 수 없게 된다.


十月之交 朔日辛卯(시월지교 삭일신묘)
해와 달이 서로 만나는 시월 삭일 신묘일에

日有食之 亦孔之醜(일유식지 역공지추)
일식이 일어나니 이 또한 무슨 변괴인가?

彼月而微 此日而微(피월이미 차일이미)
지난 번엔 월식이고 이번에는 일식이니
 
今此下民 亦孔之哀(금차하민 역공지애)
지금 세상의 모든 백성들 크게 슬퍼하도다!

  부(賦)다. 지교(之交)는 일월교회(日月交會)로 해와 달이 만나는 날이다. 혹자는 9월이 지나고 10월 들어서는 날이라고 했다. ‘朔日辛卯(삭일신묘)’는 초하루 신묘일이다. 달빛이 다시 비추기 시작하는 삭(朔)은 하력으로 매월 초하루를 말하며 일식이 일어나는 날이다. 이 날 달이 지구와 해 사이에 놓여 해를 가리는 현상이 일식이다. ‘일유식지(日有食之)’ 즉 일식에 대한 기사는 양(梁), 수당(隋唐), 원(元) 대의 천문학자들의 추정에 의하면 주유왕 6년 기원전 776년의 이리라고 했다. 인류역사상 최초의 일식에 대한 기록이다. 미(微)는 무광(無光)으로 빛을 잃음이니 월식으로 란이 일어나 나라가 망할 징조인 것이다.
○ 소철(蘇轍)이 《시집전(詩集傳)》에서 말했다. “일식은 하늘에서 일어나는 대단히 큰 변고다. 그러나 정(正), 양(陽)의 달을 옛날에는 더욱 꺼렸다. 하나라의 4월은 순양(純陽)이기 때문에 정월이라고 이르고 10월은 순음(純陰)이니 양이 없음을 의심하기 때문에 양월(陽月)이라 불렀다. 순양에 먹힌다면 양의 기운이 심히 약함을 의미하고, 순음이 먹힌다면 음의 기운이 심히 성함을 말한다.”


日月告凶 不用其行(일월고흉 불용기행)
해와 달이 모두 흉사를 고하려고
제 갈 길을 가지 않고

四國無政 不用其良(사국무정 불용기량)
천하의 정치가 어지러워진 이유는
어진 사람 쓰지 않아서인데

彼月而食 則維其常(피월이식 즉유기상) 
지난번의 월식은 일상의 일이라고 하겠지만

此日而食 于何不臧(차일이식 우하불장)
이번의 일식은 이 무슨 불길한 징조인가?

  부(賦)다. ‘불용기행(不用其行)’은 해와 달이 정상 궤도를 돌지 않음을, 그 대구(對句)인 ‘불용기량(不用其良)’은 천자가 현신을 등용하지 않았음을 말한다. 즉 ‘상제는 해와 달을 정상적으로 운행시키지 않고 천자는 현신을 등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변란이 일어났다.’라고 했다. ‘즉유기상(則維其常)’은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평범한 일이다. 즉 월식은 늘상 일어나는 일이고 일식은 큰 변란이다. 그럼으로 춘추에 일식은 반드시 기록하지만 월식은 기록하지 않았다고 했다.
○ 무릇 해와 달의 먹힘은 모두 떳떳한 상도(常度)가 있는데, 취하지 않았다고 말한 것은 달이 해를 피하지 않아서 제 길을 잃었기 때문이며 그렇게 된 근본적인 연유는 현인들을 임용하여 세상에 정령이 세우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와 같다면 해와 달의 먹힘이 모두 떳떳한 일이 아니며, 월식을 떳떳하다 하고 일식은 상서롭지 못하다는 뜻이다. 즉 음이 양을 항거하다가 이기지 못한 것은 용납할 수 있으나 음이 양을 이겨서 가리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럼으로 춘추에 일식은 반드시 기록하되 월식은 기록하지 않는다고 했다.


爗爗震電 不寧不令(엽엽진전 불녕불령)
번개치고 천둥소리 요란하니
세상사람 모두 불안에 떨고

百川沸騰 山冡崒崩(백천비등 산총줄붕)
모든 개울물은 끓어 넘치고 
산꼭대기는 무너져 내리는도다!

高岸爲谷 深谷爲陵(고안위곡 심곡위릉) 
높은 언덕은 골짜기가 되고
깊은 계곡은 구릉이 되도다!
 
哀今之人 胡憯莫懲(애금지인 호참막징)
슬프도다, 사람들이여!
어찌하여 이런 변괴를 막으려고 하지 않는가?

賦(부)다. 爗爗(엽엽)은 번개빛의 모양이다. 震(진)는 천둥이다. 寧(녕)은 편안하고 한가한 모양이다.
○ 비단 일식이 일어날 뿐만 아니라 10월에 천둥벼락이 쳐서 산이 무너지고 물이 넘쳐 혹심한 재해가 닥쳤으니, 마땅히 근신하는 자세로 정사에 임했었어야 했지만, 하늘의 경고를 무시하고 징비(懲毖)하지 않았던 주유왕을 비난했다. 
송인 동적(董迪)이 말했다. “국가가 장차 도를 잃어 패망함이 있게 되려면 하늘이 마침내 먼저 재난을 내려 견책하여 알리고, 스스로 반성할 줄 모르면 또 괴이한 일을 내려서 경계하고 두렵게 한다. 그래도 변하지 않으면 상패가 그제야 이른다. 이는 하늘이 인군을 인애하여 재난을 그치게 하려고 하는 뜻을 엿볼 수 있다.”


皇父卿士 番維司徒(황보경사 파유사도)
황보는 경사요, 파씨는 사도이다.

家伯維宰 仲允膳夫(가백유재 중윤선부)
가백은 총재(冢宰)고, 중윤은 선부(膳夫)이다.

棸子內史 蹶維趣馬(취자내사 궤유취마)
취자는 내사(內史)이고, 궤씨는 취마(趣馬)이다.
 
楀維師氏 豔妻煽方處(우유사씨 염처선방처)
우씨는 사씨 벼슬을 맡았는데
아름다운 처첩과 군왕은 바야흐로 불이 붙었다.

  賦(부)다. 황부와 가백과 중윤은 모두 자(字)이고, 파(番), 추(棸), 궤(蹶), 우(楀)는 모두 성씨다. 경사(卿士)는 육경(六卿) 이외에 다시 도관(都官)을 두어 육관(六官)의 일을 총괄하는 관리의 우두머리다. 혹자는 말하기를 “경사는 경(卿)의 사(士)이니 주례(周禮)에 태재(太宰)의 속관에 상사(上士), 중사(中士), 하사(下士)가 있으며, 공양전(公羊傳)에는 재사(宰士), 좌씨전에는 주공(周公)이 채중(蔡仲)을 자기의 경사로 삼았다고 했다.”라고 했다. 즉 경사는 재(宰)의 등속으로 육관(六官)을 총괄하니, 지위는 낮되 권력은 중한 자이다. 사도는 나라의 교육을 관장했고, 총재는 나라의 다스림을 관장했으니 모두 경이다. 선부(膳夫)는 상사(上士)로 왕의 음식과 요리를 관장한 자요, 내사는 중대부로 작록을 내리고 빼앗거나 생사여탈의 법을 관장한 자이다. 취마(趣馬)는 중사(中士)로 왕의 마정(馬政)을 관장한 자이고, 사씨는 또한 중대부이니 왕실의 이재(理財)를 관장하는 관리다. 아름다운 자색을 염(豔)이라하니 바로 주유왕의 총첩 포사를 말한다. 선(煽)은 급하게 타오르는 불길을 말하고 방처(方處)는 병처(竝處)로 나란히 서서 어울려 지내는 모습니다. 
○  변란이 생기는 까닭은 소인들이 밖에서 전횡하고 총첩이 안에서 왕의 정신을 고혹(蠱惑)시키기 때문이다.


抑此皇父 豈曰不時(억차황보 개일불시)
아아, 황보여!
어찌 그대가 시의를 모른다고 하겠는가마는,

胡爲我作 不卽我謀(호위아작 부즉아모)
어찌하여 우리를 부리면서도
의논 한마디 하지 않았는가?

徹我牆屋 田卒汗萊(철아장옥 전졸한래) 
우리 집과 울타리 다 허물어지고
밭에는 물이 고이고 잡초만 무성하네

曰予不戕 禮則然矣(왈여부장 예즉연의)
그럼에도 자기 탓이 아니라는 말만하고
세상의 법도가 그러하니 어쩔 수 없다하네.

 부(賦)다. 억(抑)은 어조사다. 시(時)는 시(是)로 정전(鄭箋)에 ‘기왈아소위부시(豈曰我所爲不是) 즉 ‘어이하여 우리가 한 일이 잘못되었다고 하겠는가?’라고 했다. 작(作)은 역(役)으로 움직이게 한다는 뜻이고,  즉(卽)은 래(來)로 나아감이며, 졸(卒)은 진(盡)으로 다함이다. 래(萊)는 풀이 죽어 없어지는 것이고, 어(汙)는 오(汚)로 더렵히는 행위다. 장(戕)은 잔해(殘害)로 남을 해치는 것이다.
○ 황보가 스스로 때가 아니라고 이르지만, 어찌하여 우리를 이주시키려고 하면서, 우리와 상의 한마디 없으면서, 우리가 사는 곳의 담장과 지붕을 헐어버려서, 전답을 보살피지 못해, 낮은 곳은 웅덩이로, 높은 곳은 쑥대밭이 되게 만들었는가? 그리고는 말하기를 ‘내가 그대들을 해롭게 하는 게 아니라, 바로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부역을 바치는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皇父孔聖 作都于向(황보공성 작도우향)
황보는 큰 성인이니
상 땅에 도읍을 짓고

擇三有事 亶侯多藏(택삼유사 단후다장)
삼공을 뽑아 정사를 맡기니
수탈한 재물이 산더미다.

不憖遺一老 俾守我王(불은유일노 비수아왕)
단 한 명의 노신이라도 남겨두어
우리 왕 지키게 하지 않고
 
擇有車馬  以居徂向(택유거마 이거조향)
좋은 수레 좋은 말 골라
상 땅으로 보내 살게 한다.

  賦(부)다. 孔(공)은 심히 큰 모양이고 성은 총명함이다. 도(都)는 큰 고을이다. 《주례(周禮)》에 ‘기내(畿內)의 대도(大都)는 사방이 백리고, 소도(小都)는 50리’라고 했다. 도는 모두 공경(公卿)의 봉읍이다. 상(向)은 지명으로 동도(東都)의 기내에 있는 땅으로 지금의 맹주(孟州) 하양현(河陽縣)이다. 삼유사(三有事)는 삼공(三公)이다. 단(亶)은 진실되다는 뜻이고 은(憖)은 내키지 않는 마음에 억지로 행하는 것이다. 거마를 소유한 자는 부유한 백성이다.
○ 스스로 총명하다고 생각한 황보가 도읍을 세우는 일에 현인의 조언을 구하지 않고 부유한 사람을 뽑아 경(卿)으로 삼아 일을 맡겼다. 비록 마음에 내키지 않더라도 한 사람의 원로대신을 억지로라도 남겨 두어 천자를 지키게 하지 않고, 오로지 거마를 소유한 부유한 자만을 함께 데리고 상 땅으로 갔으니, 황보는 천자에게 충성하지 않고 스스로의 이익만을 탐할 자였다. 


黽勉從事 不敢告勞(민면종사 불감고노)
시키는 일 힘써 일하고도
감히 힘들다고 고하지 못한다.

無罪無辜 讒口囂囂(무죄무고 참구효효)
죄도 없고 허물도 없건만
헐뜯는 소리만 무성하고

下民之孽 匪降自天(하민지얼 비항자천) 
백성들이 받는 재앙
하늘에서 내린 것이 아니라

噂沓背憎  職競由人(준답배증 직경유인)
만나서는 칭찬하고 뒤에서는 헐뜯기를
서로 경쟁하듯 업으로 삼는 사람들 때문이라네!

  부(賦)다. 효(囂)는 많은 모양이다. 얼(孼)은 재해다. 준(噂)은 여럿이 모여 수군거리는 모습이고 답(沓)은 중복함이다. 직(職)은 말미암는다는 뜻으로 ‘직경유인(職競由人)’은 다툼을 즐겨하는 사람 때문에 일이 생긴다는 뜻이다.
○ 마지 못해 황보를 따라 일을 하지만 고생스러움을 감히 말하지 못하고 죄가 없으나 참소가 심하니, 이 재앙은 하늘이 내린 것이 아니라 사람이 공정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悠悠我里 亦孔之痗(유유아리 역공지매)
끝없이 우울한 내마음이여,
내게 큰 병이 되었구나!

四方有羨 我獨居憂(사방유선 아독거우)
사방의 백성들 모두들 잘 살건만
나만 홀로 근심에 싸여 있네

民莫不逸 我獨不敢休(민막불일 아독부감휴)
백성들 모두 즐기는데 나 홀로 감히 쉬지 못하니

天命不徹(천명불철)
천명이 이렇듯 고르지 못하기 때문이다.

我不敢傚我友自逸(아불감효아우자일)
지각없이 즐기는 저 친구들 흉내는 내지 않으리라!

  부(賦)다. 유유(悠悠)는 근심이 많은 모습이다. 리(里)는 속마음이고, 매(痗)는 아파서 괴로워함이다. 선(羨)은 여유가 있고 부유한 것이고 일(逸)은 즐거움이요 철(徹)은 도를 따름이다. 
○ 천하가 모두 병들었고, 나는 더욱 심하다. 사방이 여유로워도 나 홀로 근심하고, 백성이 다 편하여도  나홀 편하지 못하다. 그러나 이는 천명이 고르지 못한 것이니, 내 어찌 남과 같이 편함을 바라겠는가? 이는 어지 ㄴ대부가 변란을 당하여 나라를 근심하고 윗사람을 원망하뎐서도, 감히 편하고자 하는 뜻을 갖지 못한 것이다.

《시월지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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