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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03-02 15:19:421947 
7. 節彼南山(절피남산) - 깎아지른 저 남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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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節彼南山(절피남산)

- 깎아지른 저 남산 -

모서(毛序)에서는 절남산(節南山) 이하의 시를 주유왕(周幽王)의 변소아(變小雅)라고 칭했다. 정현(鄭玄)은 또 시월지교(十月之交) 이하 네 편을 주려왕(周厲王) 시대의 시로 보았다. 그러나 이 시가 지어진 시대에 대해서는 이론이 많기 때문에, 뭐라고 단정할 수 없는 실정이다. 문제의 초점은 이 시를 지었다고 하는 가보(家父)라는 사람의 존재다. 좌전(左傳)의 노환공(魯桓公) 8년 대목에, 천자가 가보를 노나라에 사신으로 보냈으며, 15년 기사에는 그로 하여금 수레를 구하게 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에 대하여 주희는 만일 좌전의 가보가 절남산(節南山)을 지은 사람이라면, 유왕 시대에서 75년이나 지나도록 살아 있었다는 말이 됨으로 과연 같은 사람이라 할 수 있을는지 크게 의심스럽다고 했다. 이어서 주희는 서(序)에서 말하는 시대는 대부분이 믿을 것이 못되기 때문에, 이 시의 제작 연대에 대해서는 잠시 덮어두는 편이 나으리라고 했다. 공영달(孔穎達)의 모시주소(毛詩注疏)에 의하면 위소(韋昭)는 이 시가 지어진 때를 동주의 평왕(平王) 시대라고 했으나 옛날 사람들은 아버지와아들이 같은 이름을 쓰기도 했기 때문에 좌전의 가보와 이 시를 지은 가보는 같은 사람이 아니라고 했다.

송대에 이르자 이 시는 유왕 때의 작품이 아니라 동주 이후의 작품으로 보는 사람이 점점 많아지게 되었으며 정초(鄭樵)는 가보를 좌전의 가보와 같은 사람으로 보았고 왕질(王質)은 그 견해에 동조했다. 또한 춘추에 의하면 은공(隱公) 3년애 평왕이 죽고 4년에는 윤씨도 죽었다고 했으나 절남산에 나오는 윤씨가 바로 이 윤씨라면 춘추의 가보와 같은 시대가 되며, 따라서 이 시가 동주 이후의 작품이라는 근거가 높아진다. 그 당시에 이 윤씨가 태사(太師)로써 크나큰 권세를 가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 절남산이 동주 시대의 작품이라고 한다면, 시편 가운데의 국기졸참(國旣卒斬)이라는 싯귀는 정월(正月)의 혁혁종주(赫赫宗周), 포사멸지(褒姒滅之)의 싯귀와 함께 서주가 멸망한 다음, 그것을 애통하게 여겨 읊은것이 됨으로 매우 이해하기 쉬워진다.


節彼南山 維石巖巖(절피남산 유석암암)

높고 가파른 저 남산 쌓여있는 뾰쭉한 바위


赫赫師尹 民具爾瞻(혁혁사윤 민구이첨)

세도 당당한 태사 윤공, 우러러보는 백성들


憂心如惔 不敢戱談(우심여담 불감희담)

근심에 싸여 타는 듯한 내 마음 농담 한마디 못하네


國旣卒斬 何用不監(굴기졸참 하용불감)

마침내 나라의 명맥 끊어졌건만 어찌하여 살펴보지 않는가?

흥(興)이다. 절(節)은 높은 모양이고 암암(巖巖)은 높고 험준한 모습이고 혁혁(赫赫)은 뚜렷하고 성대한 모습이다. 사윤(師尹)은 태사(太師) 윤씨다. 태사(太師)는 삼공(三公) 중의 한 명이고 주선왕(周宣王) 때 대신 윤길보(尹吉甫)의 후손인 듯하다. 구(具)는 모두고 첨(瞻)은 살펴봄이며 담(惔)은 불이 타는 것이다. 졸(卒)은 마침내이고 참(斬)은 끊김이며 감(監)은 봄이다.

¡ 가보(家父)가 지은 이 시는 왕이 윤씨를 등용하여 란이 일어났음을 풍자했다.

「뾰쭉한 바위의 저 험준한 남산은 까마득히 높고, 혁혁(赫赫)한 태사 윤씨는 백성들이 모두 살펴보고 있거늘, 그의 하는 바가 선하지 못하여 사람들의 마음은 불타는 듯이 근심하고 있으나 그의 위세를 두려워하여 감히 말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나라가 끝내 참절(斬截)할 터인데, 네 어찌하여 이를 살피지 않는가?」


節彼南山 有實其猗(절피남산 유실기의)

높고 가파른 저 남산 한쪽으로 기운 언덕


赫赫師尹 不平謂何(혁혁사윤 불평위하)

세도 당당한 태사 윤공 한쪽으로 치우친 정사 어찌하리오?


天方薦瘥 喪亂弘多(천방천채 상란홍다)

하늘이 재앙을 잇따라 내려 백성들 수없이 떼죽음 당하니


民言無嘉 憯莫懲嗟(민언무가 참막징차)

백성들 원성 드높아 가건만 어찌하여 막지도 않는가?



尹氏大師 維周之氐(윤씨대사 유주지저)

저 태사 윤씨, 주나라의 기둥


秉國之均 四方是維(병국지균 사방시유)

나라의 대권을 잡은 몸으로 마땅히 온 세상을 잘 다스리고


天子是毗 俾民不迷(천자시비 비민불미)

위로는 천자를 돕고 아래로는 백성을 올바르게 이끌어야 하거늘


不弔昊天 不宜空我師(불조호천 불의공아사)

무정한 하늘이여, 우리 백성들 못살게 하지 마소서!




弗躬弗親 庶民弗信(불궁불친 서민불신)

친히 정사를 돌보지 않으면 백성들 믿지 않게 되고


弗問弗仕 勿罔君子(불문불사 물망군자)

그대 정사를 살피지 않더라도 임금님은 기망하지 말아야지


式夷式已 無小人殆(식이식이 무소인태)

공정한 사람 임용하고 소인들은 가까이 하지 말며


瑣瑣姻亞 則無膴仕(쇄쇄인아 즉무무사)

보잘 것 없는 인척 크게 등용하지 마시오!




昊天不傭 降此鞠訩(호천불용 항차국흉)

하늘은 공평하지 못하여 지독한 재난을 내리시고


昊天不惠 降此大戾(호천불혜 항차대려)

하늘은 은혜롭지 못하여 크나큰 변괴를 내리셨네.


君子如屆 俾民心闋(군자여계 비민심결)

군자가 올바르면 흉흉한 민심 가라앉고


君子如夷 惡怒是違(군자여이 악노시위)

군자가 공정하게 처리하면 쌓였던 원망도 흩어지리!




不弔昊天 亂靡有定(불조호천 란미유정)

무정한 하늘이여 굽어살피소서! 나라의 어지로움 가라앉지 않고


式月斯生 俾民不寧(식월사생 비민불녕)

갈수록 더욱 어지러워지니 백성들 마음 편할 날 없네


憂心如酲 誰秉國成(우심여정 수병국성)

근심하는 마음 술에 취한 듯한데 나라의 대권 쥔 사람 누구이건데


不自爲政 卒勞百姓(불자위정 졸노백성)

스스로 국사를 돌보지 않아 끝내 백성들만 괴롭히는가?




駕彼四牡 四牡項領(가피사모 사모항령)

저 사모를 타니, 사모의 목 굵기도 하네


我瞻四方 蹙蹙靡所騁(아첨사방 척척미소빙)

동서남북 아무리 둘러보아도 좁은 길뿐 달려갈 곳이 없구나!


方茂爾惡 相爾矛矣(방무이오 상이모의)

그대에 대한 원한이 사무칠 때는 조급히 창을 겨누지만


旣夷其懌 如相酉壽矣(기이기역 여상유수의)

마음 풀려 즐거운 날이 오면 곧 술잔을 주고받으리




昊天不平 我王不寧(호천불평 아왕불녕)

하늘이 공평하지 못하니 우리 임금도 공평하지 못하네


不懲其心 覆怨其正(부징기심 복원기정)

그래도 마음 고치지 않고 도리어 충언을 원망하네


家父作誦 以究王訩(가부작송 이구왕흉)

마침내 가보가 이 노래 지어 재앙의 원인 캐보려 하는데


式訛爾心 以畜萬邦(식화이심 이축만방)

이는 그대가 마음 고쳐 온 천하편히 살게 하기를 바라서라네


부(賦)다. 윤씨(尹氏)의 공평하지 못한 처사는 마치 하늘이 시킨 것 같다. 즉 호천(昊天)이 공평하지 못하니 우리 왕도 또한 편안할 수 없음이다. 그러나 윤씨는 아직도 그 마음을 뉘우치지 않고 도리어 자기를 바로잡아주는 사람들을 원망하니 그의 악행이 어느 때에나 그치려고 하는가? 가보(家父)는 주나라 대부다. 구(究)는 궁구(窮究)함이요 와(訛)는 변함이다. 축(畜)은 기르는 것이다.

¡ 가보는서 왕정이 혼란한 이유를 구명하여 마음을 고치고 생각을 바꾸어서 천하의 백성들을 잘 보살펴주기 바라는 마음에서 이 시를 지었다고 했다. 진씨(陳氏)가 말했다.

“윤씨가 사납고 위엄이 있어서 사람들로 하여금 농담을 하지 못하게 했는데, 가보가 시를 짓고 다시 이 시가 자기에서 나왔음을 표명하여 자기몸으로써 윤씨의 노여움을 당하고 사양하지 않음은 가보는 주나라의 세신(世臣)이어서 의리상 국가의 존망을 함께 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여조겸(呂祖謙)이 말했다.

“변란의 근본을 규명하여 왕의 마음을 돌렸으니 변란을 일으킨 사람은 비록 윤씨이나, 윤씨를 등용한 것은 왕의 마음이 가리워져서이다.” 이씨(李氏)가 말했다.

“맹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인재의 등용을 일일이 나무랄 수가 없으며, 잘못된 정사를 일일이 트집 잡을 수가 없다. 오직 대인어이야 군주의 나쁜 마음을 바로잡을 수 있다.’하였으니, 인재 등용의 잘못과 정사의 잘못은 비록 모두 군주의 잘못이나 이것은 굳이 먼저 논할 일이 못된다. 오직 군주의 마음의 잘못을 바로 잡는다면 정사가 선하지 않음이 없을 것이오, 인재를 등용함이 모두 마땅함을 더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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