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국연의

 

   
 
춘추쟁패
1부1 제후굴기
2부2 관포지교
2부3 백리해
2부4 유랑공자
3부5 초장왕
3부6 이일대로
4부7 오자서
전국쟁웅
5부8 전국칠웅
6부9 합종연횡
7부10 진시황
초한축록
통일천하
홍곡지지
초한축록
토사구팽
· 오늘 :  568 
· 어제 :  555 
· 최대 :  2,389 
· 전체 :  1,601,738 
 
  2020-02-14 06:54:44189 
21. 분봉제후(分封諸侯)
운영자
일반

21. 분봉제후(分封諸侯)
- 항우가 천하를 제후들에게 분봉하다. -

이윽고 함양성을 불태운 항우는 군사들을 이끌고 동쪽으로 물러가 희수(戱水) 서안에 이르자 영채를 세우고 자기를 따라 종군한 제후들에 대해 논공행상을 시작했다. 우선 진나라의 옛땅인 관중 땅은 삼분하여 진나라의 항장 세 사람에게 다스리게 하면서 한왕을 한중에 가둬두도록 했다. 항왕은 장함을 옹왕(雍王)으로 삼아 함양 이서의 땅을 다스리게 하고 도읍을 폐구(廢丘 : 지금의 서안시 경내 서쪽 흥평현(興平縣))에 정했다. 항왕은 옛날 역양(櫟陽)의 옥리였던 장사(長史) 사마흔(司馬欣)은 항량에게 덕을 베푼 일이 있었고, 또 도위 동예는 원래 장함에게 권하여 초나라에 항복시킨 공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항왕은 사마흔을 새왕(塞王)에 봉하여 함양 이동에서 하수까지 다스리게 하고 도읍을 역양(櫟陽 : 지금의 섬서성 위남시 북서 50리)으로 삼게 했으며, 동예는 책왕(翟王)에 봉하여 상군(上郡)을 다스리며 도읍을 고노(高奴 : 지금의 섬서성 연안시(延安市) 경내)에 두도록 했다.
계속해서 하구(瑕丘 : 지금의 산동성 연주시(兗州市) 경내 동북) 출신의 초장(楚將) 신양(申陽)은 하남왕(河南王)으로 도읍을 낙양(洛陽)에, 조장(趙將) 사마앙(司馬卬)은 은왕(殷王)으로 조가(朝歌)에, 당양군(當陽郡) 경포(黥布)는 구강왕(九江王)에 육(六 : 지금의 안휘성 육안현(六安縣))을, 초회왕의 주국(柱國) 공오(共敖)①는 임강왕(臨江王)에 강릉(江陵)을, 파군(番君)② 오예(吳芮)는 형산왕(衡山王)에 주(邾 : 지금의 호북성 황강현(黃岡縣) 서북)를 각각 도읍으로 삼게 했다. 연나라 장수 장도(臧荼)는 연왕(燕王)에 계(薊)를 도읍으로 정하고 원래의 연왕 한광(韓廣)은 요동왕(遼東王)으로 옮겼다.
제왕(齊王) 전불(田巿)을 교동왕(膠東王)으로 옮기고, 제왕의 자리에는 전도(田都)를 앉히고 치소를 임치에 두게 했다. 전도는 항우를 위해 제장(齊將)이 되어 제후군과 함께 조나라를 구원하고 다시 관중으로 들어가 공을 세웠다. 진나라에 의해 멸망당한 제나라의 마지막 왕 전건(田建)의 손자 전안(田安)은 항우가 하수를 건너 조나라를 구하려고 할 때 그는 휘하의 군사를 이끌고 제북(濟北)의 여러 성을 함락시킨 후에 군사들과 함께 항우에게 투항해 왔음으로 제북왕(濟北王)에 봉하고 도읍을 박양(博陽)이 두게 했다. 전영(田榮)은 여러 번에 걸쳐 항량의 뜻을 거스르고, 이어서 항왕이 진나라를 공격하는데 휘하의 군사를 이끌고 초군을 돕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어 봉지를 주지 않았다.
한편 거록에서 항우의 활약으로 진군의 포위에서 벗어난 조왕 헐은 신도(信都 : 지금의 하북성 기현(冀縣)으로 거록(鉅鹿) 동북 약 100키로)로 들어가서 머물고 장이는 항우와 제후들을 따라 관중으로 들어갔다.
한나라 원년, 기원전 206년 2월 항우가 제후들을 왕으로 세울 때 장이는 그 전에 이미 세상을 돌아다니며 교우관계를 넓게 가졌음으로 많은 사람들이 좋은 말로 칭찬했고 항우 역시 평소에 장이의 현능함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서 항우는 조나라를 나누어 장이를 상산왕(常山王)으로 봉하고 양국(襄國 : 지금의 하북성 형태시(邢台市))에 치소를 두도록 했다. 진여의 문객이었던 많은 사람들이 항우에게 말했다.
「진여와 장이는 모두 같이 조나라 땅에서 공을 세웠습니다.」
진여가 관중으로 들어갈 때 종군하지 않았다고 생각한 항우는 그가 남피에 머물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 주변의 3개 현에 봉하고 조왕 헐은 대왕(代王)으로 옮기도록 했다. 장이가 상산왕에 봉해지자 진여는 더욱 화를 내며 말했다.
「내가 지금까지 세운 공로는 장이와 같다. 그런데 지금 장이는 왕이 되었고 이 진여는 단지 후에 봉해졌다. 이것은 공평하지 못한 처사로 항우의 잘못이다.」
이윽고 제왕 전영(田榮)이 항우에 반하자 진여는 즉시 하열(夏說)을 사자로 보내 유세하도록 했다.
「항우는 천하의 일을 주재하면서 그 처사가 매우 불공평합니다. 자기가 거느렸던 장군들은 모두 좋은 땅의 왕으로 봉하고 옛날의 왕들은 나쁜 땅으로 옮기도록 했습니다. 그래서 원래의 조왕은 대왕이 되어 북쪽으로 옮겨가게 만들었습니다. 원컨대 저에게 얼마의 군사를 빌려주시면 남피의 땅을 제나라를 지키는 방어벽으로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전영은 원래 조나라 땅에 자기의 세력을 심어 초나라에 대항하려는 생각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곧바로 군사를 보내 진여의 지휘를 받도록 했다. 진여는 남피 주위의 3개 현의 군사를 모두 이끌고 북으로 진격하여 상산왕 장이를 공격했다. 싸움에서 패하여 도망가던 장이는 자기의 몸을 의탁할 말한 제후가 없다고 생각하며 말했다.
「한왕과 나는 옛날 친교가 있다고 하나 항우는 세력이 강해 나를 제후왕으로 세웠으니 항우에게 가야겠다.」
감공(甘公)이 듣고 말했다.
「한왕이 관중으로 들어갈 때 오행(五行)의 별③이 동정(東井)④에 모였습니다. 동정은 진나라의 별자리라 한왕이 먼저 천하를 제패한다는 징조입니다. 지금 초나라의 세력이 비록 강하다고 하나 후에는 틀림없이 한나라에 속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장이는 생각을 바꾸어 한왕(漢王)에게 투항했다.
그리고 파군(番君)의 장수 매현(梅鋗)은 10만 호의 제후로 봉했다. 항우 자신은 스스로 서초패왕(西楚覇王)이라 칭하고 9개의 군을 봉지로 삼으며 팽성(彭城)을 도읍으로 정했다.⑤
한왕(漢王) 원년 기원전 206년 4월⑥, 제후들에 대한 작위 수여를 마친 항우는 그 휘하의 군사들을 희수(戱水) 강안에서 해산하여 각기의 봉지로 돌아가 제후왕으로 취임하도록 했다. 항왕은 관중에서 나와 팽성으로 가는 중에 의제(義帝)에게 사자를 보내 그를 다른 곳으로 옮겨 살도록 하면서 말했다.
「옛날 제왕(帝王)들은 모두가 사방 천리 되는 땅을 흐르는 강의 상류에 살았습니다.」
항우는 계속해서 의제에게 사자를 보내 장사(長沙)의 침현(郴縣)으로 행차하기를 재촉했다. 이에 군신들은 점점 의제를 배반하고 그의 곁을 떠났다. 이어서 항우가 비밀리에 형산왕(衡山王) 오예(吳芮)와 임강왕(臨江王) 공오(共敖)에게 밀령을 내려 의제를 장강 가운데에서 죽였다.
한편 한왕 성(成)이 진나라를 멸하는데 세운 공이 아무 것도 없다고 생각한 항우는 그를 봉지로 보내지 않고 팽성으로 데려간 후에 왕에서 폐하고 후(侯)로 강등했다가 다시 얼마 후에 죽였다. 장도(臧荼)는 자신의 봉국으로 가서 원래의 연왕 한광(韓廣)을 요동으로 쫓아내려고 했으나 한광이 듣지 않았다. 이에 장도는 한광을 공격하여 무종(無終)에서 죽이고 그의 봉지를 자기의 땅으로 했다.
항우가 제왕 전불을 교동왕으로 옮기고, 제장(齊將) 전도(田都)를 제왕(齊王)으로 세웠다는 소식을 들은 전영(田榮)은 대노하여 교동왕이 된 전불에게 승복하지 않고 붙잡아 교동(膠東)으로 가지 못하게 막았다. 전영이 즉시 제나라 군사를 이끌고 전도를 공격하자 전도는 초나라로 달아났다. 항우를 두려워한 제왕 전불은 몰래 달아나 교동왕이 되려고 하였다. 이에 노한 전영이 전불의 뒤를 추격하여 즉묵(卽墨)에서 죽였다. 전영은 자립하여 제왕이 되고 이어서 서쪽으로 진격하여 제북왕(濟北王) 전안(田安)을 공격하여 죽였다. 전영은 삼제(三齊)를 망라한 제왕(齊王)이 되었다. 전영이 팽월(彭越)에게 장군의 인장을 주고 양나라 땅에서 초나라에 반기를 들도록 했다.

주석
①공오(共敖) : 태어난 해는 알 수 없고 기원전 204년에 죽은 진한 교체기의 기의군 장령이다. 초나라의 의제 밑에서 주국(柱國)이 되어 군사를 이끌고 남군을 공격했다. 한왕 원년 (전 206년) 관중에 들어가 서초패왕을 칭한 항우가 그를 임강왕(臨江王)에 봉하고 도읍을 강릉에 두도록 했다. 후에 초나라로 돌아온 항우는 의제를 장사(長沙) 침현(郴縣)으로 옮겨 살도록 명하고 다시 공오에게 밀령을 내려 도중에 의제를 살해하도록 명했다. 그리고 그는 2년 후에 병사했다.
②파(番) : 파양(鄱陽) 혹은 파양(番陽)을 말한다. 지금의 강서성 파양(波陽)의 옛 이름으로 진나라가 초나라를 멸하고 설치한 현 이름이다. 경포(黥布)의 출신지다.
③오행의 별 : 목, 화, 토, 금, 수 등의 다섯 개의 해성을 말한다.
④동정(東井) : 28수 중의 하나인 정수로 남방의 7수 중 첫 번째 수다.
⑤서초구군(西楚九郡) :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사수군(泗水郡), 탕군(碭郡), 설군(薛郡), 동해군(東海郡), 임회군(臨淮郡), 팽성(彭城), 광릉군(廣陵郡), 회계군(會稽郡), 장군(鄣郡) 등이라는 《사전(史詮)》의 설을 따른다.
⑥한원년(漢元年) : 기원전 206년으로 이 해에 한고조 유방이 한왕에 봉해져 왕호를 시작했기 때문에서 한나라 건국 원년으로 삼았다.

목록
2612
[일반] 27. 진평분육(陳平分肉)

27. 진평분육(陳平分肉) - 천하를 내게 맡긴다면 고기를 분배하듯이 잘 할 것이다. - 진평(陳平)은 양무현(陽武縣 : 지금의 하남성 개봉시 원양
운영자 20-02-14
[일반] 26. 진평투한(陳平投漢)

26. 진평투한(陳平投漢) - 진평이 초나라에서 도망쳐 한나라에 투항하다. - 한왕이 조가에서 나와 남하하여 수무(修武 : 지금의 하남성 획가현(
운영자 20-02-14
[일반] 24. 명수잔도(明修棧道) 암도진창(暗渡陳倉)

24. 명수잔도(明修棧道) 암도진창(暗渡陳倉) - 잔도를 수리하는 척하면서 몰래 진창을 통해 관중으로 나오다. - 한군의 대장군에 임명된 한신은
운영자 20-02-14
[일반] 23. 한신배장(韓信拜將)

23. 한신배장(韓信拜將) - 한신을 대장군에 임명하는 한왕 - 이윽고 오현(吳縣)에서 거병한 항량(項梁)이 북상하여 회수(淮水)를 건널 때 한신
운영자 20-02-14
[일반] 22. 과하지욕(胯下之辱)

22. 과하지욕(胯下之辱) - 동네 불량배 가랑이 밑을 기는 치욕을 당하다. - 한편 항우에게서 구사일생으로 몸을 빼낸 한왕이 잔도를 통해
운영자 20-02-14
[일반] 21. 분봉제후(分封諸侯)

21. 분봉제후(分封諸侯) - 항우가 천하를 제후들에게 분봉하다. - 이윽고 함양성을 불태운 항우는 군사들을 이끌고 동쪽으로 물러가 희수(戱
운영자 20-02-14
[일반] 20. 항우부약(項羽負約) 패공왕한(沛公王漢)

20. 항우부약(項羽負約) 패공왕한(沛公王漢) - 항우가 약속을 어기고 패공을 한왕으로 봉하다. - 패공을 노친 항우는 희수 강안의 주둔해 있던
운영자 20-02-14
[일반] 19. 홍문지연鴻門之宴)

19. 홍문지연鴻門之宴) - 홍문의 연회에서 구사일생하는 패공 - 한편 패상(霸上 : 지금의 섬서성 백록원(白鹿原) 북쪽으로 서안(西安)의
운영자 20-02-14
[일반] 18. 신안갱졸(新安坑卒)

18. 신안갱졸(新安坑卒) - 항우가 신안에서 진나라의 항졸 20만을 갱살하다. - 항우가 이끄는 제후군과 항복한 진군의 행렬이 신안(新安)①에
운영자 20-02-14
[일반] 17. 장함투항(章邯投降)

17. 장함투항(章邯投降) - 항우에게 항복하는 진나라의 대장 장한 - 거록의 싸움에서 대패한 장함은 극원(棘原 : 지금의 하북성 평향현(平鄕縣)
운영자 20-02-14
[일반] 16. 파부침주(破釜沈舟)

16. 파부침주(破釜沈舟) -솥을 깨고 배를 강물 속에 가라앉혀 결사항전의 의지를 불태우다- 항우가 초나라의 상장군 송의를 죽이자 그의 위세는
운영자 20-02-14
[일반] 15. 항우탈권(項羽奪權)

15. 항우탈권(項羽奪權) - 항우가 싸움을 두려워한 송의를 죽이고 군권을 탈취하다. - 한편 조군을 구원하라는 초왕의 명을 받은 송의는 휘하의
운영자 20-02-14
[일반] 14. 문경교도반목성구(刎頸交到反目成仇)

14. 문경교도반목성구(刎頸交到反目成仇) - 문경지교를 맺은 장이와 신여가 불구대천의 원수가 되다. - 한편 한단에 당도한 장함의 진나라 군
운영자 20-02-14
[일반] 13. 약법삼장(約法三章)

13. 약법삼장(約法三章) - 진나라의 가혹한 모든 법들을 폐기하고 세 조문만을 남기다. - 패공이 여러 현의 부로들과 호걸들을 패상의 막사로
운영자 20-02-14
[일반] 12. 패공입관(沛公入關)

12. 패공입관(沛公入關) - 회유작전으로 관중에 먼저 들어가는 유방 - 당시 조나라의 별장 사마앙(司馬卬)이 하수를 남하하여 함곡관(函
운영자 20-02-14
1 [2][다음][맨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