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국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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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05-11 11:56:036780 
제58회. 魏相迎醫(위상영의) 神弓養叔(신궁양숙)
양승국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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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제58회 魏相迎醫 神弓養叔(위상영의 신궁양숙)

진백을 설득하여 명의를 빌려온 당진의 위상(魏相)과

춘추 제일의 명궁(名弓) 양요기(養繇基)

1. 病入膏肓 疾不可爲(병입고황 질불가위)

- 병이 고황에 침입하면 고칠 수 없다.

당진의 경공은 봉두난발의 거한 귀신에게 동추로 머리를 얻어맞아 선혈을 입으로 가득 쏟고 땅에 쓰러졌다. 내시들이 경공을 부축하여 궁궐의 내실로 옮겨 침상에 눕혔다. 이윽고 경공이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에 깨어나자, 여러 신하들은 모두 즐겁지 않은 마음이 되어 흩어져 집으로 돌아갔다. 경공이 정신을 차리기는 했으나 자리에서 곧바로 일어나지 못하자 곁에서 수발을 들던 내시들이 고했다.

「귀신을 백 일 동안이나 능히 볼 수 있는 큰무당이 성 밖의 뽕나무밭으로 나가는 상문(桑門) 근처에 살고 있습니다. 어찌하여 불러와 물어 보지 않으십니까?」

내시들의 말을 들은 경공은 사람을 상문으로 보내 대무를 불러왔다. 상문의 대무가 경공의 침실에 들어오자마자 다짜고짜로 소리쳤다.

「귀신이 방안에 있습니다.」

경공이 의아해 하며 대무에게 물었다.

「귀신의 모습은 어떻게 생겼는가?」

「봉두난발에 키는 한 장이 넘고 손으로는 자기의 가슴을 두드리고 있는데 대단히 화가 난 모습입니다.」

「그대가 말한 귀신의 모양과 내가 본 귀신의 모양이 일치하다. 그 거한 귀신이 말하기를 내가 함부로 그의 자손을 죽였다고 하는데 나는 그 귀신이 누구인지 알지 못하겠다.」

「누대에 걸쳐 나라에 공적을 쌓은 집안의 자손이 최근에 화를 입었는데 그중 가장 처참하게 죽은 사람의 귀신입니다.」

경공이 크게 놀라 말했다.

「그렇다면 조씨 집안을 말함이 아닌가?」

경공의 옆에 시립하고 있던 도안고가 말했다.

「무당은 조씨 집안의 문객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일을 빌미로 조씨들의 원한을 풀려고 하는 짓입니다. 주군께서는 결코 무자의 헛된 말에 귀를 기우리시지 마십시오.」

경공이 한참동안 말이 없다가 다시 대무에게 물었다.

「제사를 지내고 굿을 한다면 이 방안에 있다는 저 귀신이 물러가겠는가?」

「매우 화가 나 있어 굿을 해 봐야 소용이 없을 듯 합니다.」

「그렇다면 나는 언제까지 살 수 있겠는가? 」

「제가 죽음을 무릅쓰고 말씀드리면 대왕께서는 햇보리를 맛보기 전에 돌아가실 것입니다.」

도안고가 다시 끼어들어 대무를 나무랐다.

「보리는 한 달만 있으면 익게 되는데 왕께서 비록 병이 들었다고 하지만 정신이 아직도 왕성한데 어찌하여 망언을 입에 담느냐? 주공께서 햇보리를 살아서 잡수시게 되면 너는 마땅히 죽음을 면치 못하리라!」

도안고가 경공의 말을 기다리지도 않고 대무를 꾸짖어 쫓아냈다. 무자가 물러간 후에도 경공의 병은 더욱 깊어졌다. 이어서 나라 안의 많은 의원들이 와서 경공의 병세를 진찰했지만 그 원인을 알아내지 못하여 감히 약도 쓰지 못했다. 대부 위기의 아들 위상(魏相)이 여러 사람 앞에서 말했다.

「내가 소문에 들으니 섬진에는 고완(高緩), 고화(高和)라는 명의가 있다고 합니다. 그들은 신의로부터 의술을 전수 받아 음양의 도에 능통하여 내환이건, 외환이건 사람의 병을 잘 다루어 섬진의 군주가 불러 두 사람 모두 태의로 삼았다고 합니다. 마땅히 이 두 사람의 신의를 초빙해서 주공의 병을 치료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찌하여 사람을 보내 모셔오지 않는지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위상의 이야기를 들은 주위의 여러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섬진과 우리는 누대에 걸친 원수지간이다. 무슨 이유로 섬진의 군주가 명의를 보내 우리의 군주를 구해 주겠는가?

위상이 대답했다.

「환난을 동정하고 재난을 같이 나누는 행위는 이웃나라 사이의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제가 비록 재주는 없으나 세 치의 혀를 놀려 섬진의 명의를 우리나라로 데려와 주공의 병을 고쳐 보도록 하겠습니다.」

주위에 있던 여러 사람들이 모두 말했다.

「그렇게만 된다면 온 나라 사람들이 그대에게 절을 올려 감사를 표시할 것이오.」

위상이 그날로 행장을 꾸려 수레를 몰아 주야로 길을 재촉하여 섬진으로 들어갔다. 위상이 섬진의 환공(桓公)에게 알현을 청했다. 위상의 접견을 허락한 환공이 무슨 일로 왔냐고 물었다.

「저희 군주께서 불행히 광질(狂疾)에 걸려 위태한 지경에 처해있습니다. 신이 들으니 상국에는 고완과 고화라는 명의가 있어 기사회생의 의술을 지니고 있다고 했습니다. 신이 특별히 온 이유는 군주께 청을 드려 명의 한 사람을 당진으로 데려가 우리 군주를 구하기 위해서입니다.」

「너희 당진은 신의가 없어 우리 섬진의 군사를 여러 번에 걸쳐 속이고 다치게 했다. 우리나라에 비록 명의가 있다 하나 무슨 이유로 너희 나라 군주를 구해 준단 말인가?」

위상이 정색하면서 대답했다.

「군주님의 말씀은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섬진과 당진 두 나라는 국경을 맞대고 있는 전통적인 우호국입니다. 그런 까닭에 옛날 우리의 선군이신 헌공과 상국의 목공께서는 혼인을 맺어 영원토록 좋은 관계를 맺고자 했습니다. 또한 목공께서는 우리의 혜공(惠公)을 도와주었지만 후에 한원(韓原)이라는 곳에서 싸웠습니다. 계속해서 천하를 유랑하고 계시던 문공을 받아들여 우리나라의 군주 자리에 올려 주었지만 후에 사남(汜南)①에서 맹약을 어겼습니다. 그 끝이 좋지 않게 된 건 모두가 상국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나라 문공께서 돌아가시고 양공이 즉위하자 상국은 우리의 새로운 군주가 유약하다고 얕보아 맹명시에게 군사를 주어 효산(崤山)으로 나아가 우리나라의 속국을 습격하게 하여 스스로 피를 흘리고 싸움에서 패하였습니다. 우리나라는 귀국의 삼수(三帥)를 사로잡아 죽이지 않고 방면했으나 곧바로 서약을 어기고 우리의 관리들을 잡아갔습니다. 상국의 강공(康公)과 폐국의 영공(靈公) 치세 때 우리 당진이 귀국의 속국 숭(崇)을 한번 쳐들어가자 귀국은 즉시 우리나라에 정벌군을 일으켰습니다. 이어서 지금의 우리나라 군주이신 경공(景公)께서 로국(潞國)의 죄를 물어 토벌할 때 군주께서는 우리나라의 빈틈을 노려 두회(杜回)를 보내 침범해 왔다가 보씨(輔氏)의 땅에서 우리의 위과(魏顆) 장군에게 패했습니다. 실패했을 때 교훈을 찾을 줄 모르고, 성공했을 때 만족할 줄 모르며, 이웃 나라와의 좋은 관계가 원수사이로 된 이유는 모두 섬진 스스로 자초했다는 사실은 전하께서 생각 해 보시면 알 수 있는 일입입니다. ‘당진이 섬진을 범했는가? 아니면 섬진이 당진을 범했는가?’는 자명한 일입니다. 지금 저희 주군께서 병환을 앓고 계셔서 제가 이웃에 있는 상국에서 명의를 데려오자고 말하자 우리나라의 많은 신하들이 말했습니다. ‘섬진은 우리나라와 절교한지 오래 되었는데 어찌 명의를 보내 주겠는가?’ 신이 대답했습니다. ‘그렇지 않다. 섬진의 군주께서는 여러 번 실수를 하셨지만 어찌 후회하는 마음을 갖고 있지 않겠소? 이번 행차에 섬진의 태의를 데려올 수만 있다면 선군 때 맺은 우호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단초가 될 것이오.’ 그런데 군주께서 만약 명의를 보내는 일을 허락하시지 않으신다면 우리나라 신하들이 말한 대로 제가 한 말은 틀리게 됩니다. 무릇 이웃나라 사이에는 상대방 나라의 환난을 동정하는 우의가 있어야 하는데 군주께서는 오히려 이를 가볍게 여기실뿐만 아니라, 더욱이 의원의 직분은 사람을 살리는 일을 최우선으로 하여야 함에도 군주께서는 등을 돌리시는 처사는 군주를 위해 좋지 않은 일이라고 감히 말씀드립니다.」

섬진의 환공은 위상의 조리가 있고 기개 있는 말에 부지중에 몸을 일으켜 공손한 태도로 말했다.

「대부께서 올바른 말로 과인을 깨우쳐 주니 감히 그 가르침을 듣지 않을 수 없겠소.」

환공은 즉시 고완에게 조칙을 내려 당진으로 가서 경공의 병환을 보살펴 주도록 했다. 위상이 감사의 말을 드리고 고완과 함께 옹성(雍城)을 나와서 밤낮으로 길을 재촉하여 신강성에 도착했다. 이 일을 노래한 시가 있다.

혼인으로 동맹을 맺었으나 지금은 원수가 되었다.

원수 나라의 재난은 자기나라의 즐거움이 아니겠는가?

만약 위상이 현하(懸河)와 같은 변설로 호소하지 않았다면

어찌 섬진의 명의를 얻어 강도로 데려 올 수 있었겠는가?

婚媾于今作仇寇(혼구우금작구구)

幸災樂禍是良謀(행재락화시양모)

若非魏相瀾翻舌(약비위상란번설)

安得名醫到絳州(안득명의도강주)

그때 당진에서는 경공의 병세가 더욱 악화되어 위독한 지경에 이르러 섬진의 명의가 오기만을 학수고대하고 있던 중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경공이 꿈을 꾸었는데 자기의 코 구멍에서 두 명의 조그만 한 동자가 뛰어 나오더니 그 중 한 동자가 말했다.

「섬진의 고완은 당세의 명의라 만약 그가 와서 약을 쓰면 우리는 몸을 상하게 되는데 어디로 피하면 되겠는가?’」

그러자 다른 한 동자가 대답했다.

「고황(膏肓)사이에 있는 명치끝에 들어가 숨어 있으면 아무리 명의라 한들 우리를 어찌할 수 있겠는가?」

곧이어 경공이 잠에서 깨어났으나 명치에 통증이 어찌나 심하게 오는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그는 너무 고통이 심하여 앉아 있을 수도 누워 있을 수도 없었다. 위상이 고완을 데리고 당진에 당도하여 입궁했을 때는 경공이 고통에 못 이겨 신음하고 있던 중이었다. 이윽고 고완이 경공의 진맥을 짚고 그 병세를 살펴보고 말했다.

「이 병은 고칠 수 없습니다.」

「무슨 이유에서인가?」

「병세가 고황에 까지 미치어 뜸을 뜰 수도 없고 또한 침을 놓을 수도 없습니다. 즉 약을 사용하여도 약효가 병이 있는 곳까지 미치지 못해서 입니다. 이것은 하늘의 뜻인가 합니다.」

「그대의 말은 과연 나의 꿈과 일치하다. 참으로 명의로다!」

경공이 고완에게 예물을 후하게 주고 섬진으로 돌려보냈다. 그때 강충(江忠)이라는 어린 내시가 있었는데 경공을 밤낮 없이 모셔 고생이 심했다. 어느 날 아침 너무 피곤한 나머지 깜빡 잠이 들었는데 경공을 업고 날아서 하늘나라로 올라가는 꿈을 꾸었다. 꿈에서 깨어나자 꿈 이야기를 좌우에 있던 사람에게 이야기했다. 그 때 마침 도안고가 경공의 병문안을 드리기 위해 입궁 했다가 그 꿈 이야기를 듣고 경공에게 치하의 인사를 드렸다.

「하늘은 밝은 것을 말하며 병은 어두운 것을 뜻합니다. 즉 하늘로 날아서 올라갔다는 것은 어두운 곳에서 밝은 곳으로 갔음을 뜻하니 주군의 병은 틀림없이 점차로 나아질 것입니다.」

경공도 역시 이날은 명치끝의 통증이 조금 나아진 것 같은 느낌을 갖고 있던 차에 도안고의 위로하는 말을 듣자 매우 기뻐하였다. 이 때 밭일을 감독하는 관리가 입궁하여 햇보리를 바쳤다. 경공은 햇보리를 맛보기 위해서 요리사에게 그 반을 절구에 찧어서 죽을 만들어 오라고 했다. 도안고는 얼마 전에 상문(桑門)의 대무가 경공을 괴롭히고 있는 귀신이 조씨의 원귀라고 한 말에 앙심을 품고 경공에게 말했다.

「예전에 상문의 무자가 주공께서 햇보리를 맛볼 수 없다고 말했었습니다. 그러나 금일 그 말이 맞지 않으니 불러서 햇보리를 드시는 모습을 그에게 보여 주시기 바랍니다.」

경공이 그 말을 따라 사람을 상문으로 보내 대무를 입궁토록 해서 도안고를 시켜 꾸짖도록 했다. 대무를 본 도안고가 크게 화를 내며 물었다.

「햇보리가 여기 있는데 너는 어찌하여 주군께서 맛보기 전에 죽는다고 하였느냐?」

도안고의 비난하는 말에 대무는 주저 없이 대답했다.

「아직 알 수 없는 일입니다. 」

경공의 얼굴빛이 대번에 바뀌자 도안고가 큰 소리로 밖의 무사들을 향해 외쳤다.

「하잘 것 없는 무자가 어찌하여 임금을 저주하는가? 당장 끌고 가서 참하도록 하라!」

도안고의 명을 받든 무사들이 무자를 끌고 밖으로 나갔다. 대무가 끌려가면서 탄식하며 말했다.

「내가 조그만 재주를 어설프게 배워 스스로 화를 불러 들여 몸을 망치니 슬픈 일이로다!」

그리고 얼마 후에 무사들이 대무의 목을 가져와 경공에게 바쳤다. 그때 마침 궁전의 요리사가 햇보리를 찧어 요리한 죽을 가지고 왔는데 때는 이미 해가 중천에 있었다. 경공이 바로 햇보리로 만든 죽을 먹으려는 순간에 갑자기 복통이 오더니 설사가 나서 강충을 불러 그에게 업혀 변소에 갔다. 변소에 앉자마자 통증이 엄습해 와서 앉아서 지탱 할 수가 없어서 변기통 속으로 떨어져 버렸다. 강충이 변기통의 더러운 것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 속으로 들어가 경공을 안고 꺼내 왔으나 그때는 이미 숨이 넘어간 뒤였다. 경공은 끝내 햇보리를 먹지 못하고 죽고 말았다. 사람들은 상문의 대무가 억울하게 죽은 사정을 알고 도안고가 잘못한 일이라고 비난했다. 상경 란서가 백관을 거느리고 세자 주포(州浦)를 모시고 장례를 주례하고 군주의 자리에 오르게 하였다. 이가 당진의 려공(厲公)이다. 또한 당진의 대신들이 의논하기를 강충이 꿈속에서 경공을 업고 하늘로 올라갔을 뿐만 아니라 깨어서도 경공이 죽기 직전에 임금을 업고 변소에 모시고 갔으니 그가 꾼 꿈이 현실에서 일어 난 일과 부합된다고 하여 강충을 경공과 함께 순장을 하기로 했다. 어떤 사람이 강총이 당시 꿈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면 순장의 화를 당하지 않았을 터인데 혀를 잘못 놀려 몸을 망치게 되었으니 부디 말을 할 때는 신중하게 생각한 다음에 하라고 평했다.

경공이 무서운 귀신이 던진 동추에 맞아 죽은 일을 진나라의 많은 사람들은 억울하게 죽은 조씨의 일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 당시 란씨와 극씨 두 종족이 도안고와 서로 가깝게 지냈기 때문에 한궐은 고장난명의 처지가 되어 감히 조씨들을 위해 신원(伸寃)을 하지 못했다.

2. 惟利則進 何以盟爲(유리즉진 하이맹위)

- 이익이 있으면 쳐들어가면 되지, 어찌 맹약 같은 것을 어디다 쓴단 말입니까? -

한편 송나라의 공공(共公)이 상경 화원(華元)을 당진에 사자로 보내 경공의 서거에 조의를 표하고 새로운 군주의 즉위를 경축했다. 화원은 이 기회에 당진과 초가 화의를 맺어 남북 간의 전쟁을 종식시키고 백성들을 도탄에서 구해야 한다고 란서에게 말했다. 란서가 화원을 향해 말했다.

「초나라는 믿지 못할 나라입니다.」

「저는 초나라의 영윤을 맡고 있던 공자영제와 친분이 있습니다. 한 번 저에게 맡겨 봐 주시기 바랍니다.」

란서는 곧 그의 어린 아들 란침(欒鍼)을 사신으로 해서 화원과 동행하여 초나라로 보냈다. 화원 일행은 먼저 공자영제를 찾아갔다. 영제는 란침이 어린 나이임에도 풍모가 범상치 않음을 보고 화원에게 그 청년이 누구냐고 물었다. 란침이 당진의 중군원수 란서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영제는 그의 재능을 시험해 보기 위해 물었다.

「그대 나라는 군사를 어떠한 방법으로 부리는가?」

「가지런할 정(整)입니다.」

「그밖에 다른 좋은 방법이 또 있는가?」

「느긋할 가(暇)입니다.」

「상대방이 어지러울 때 아군은 질서정연하고 상대방이 분주할 때 아군은 느긋하니 어찌 싸움에서 이기지 못하겠는가? 정(整)과 가(暇) 두 자는 가히 간단명료한 병법의 극치라 하겠소.」

이후로 영제는 젊은 란침을 더욱 존중하게 대했다. 이어서 그는 화원 일행을 끌고 초왕에게 인도하여 초와 당진 양국이 화의를 맺도록 상주했다. 당진과 초 두 나라는 각기 자기나라 경계만을 지키기로 하고, 누구라도 먼저 약속을 깨고 병사를 동원하여 전쟁을 일으키는 자는 천지신명으로부터 천벌을 받는다는 내용으로 날짜를 정하여 맹약을 맺도록 하자고 초왕에게 청했다. 초공왕이 허락했다. 당진의 사섭(士燮)과 초나라 공자파(公子罷)가 송나라의 서문 밖에서 만나 피를 마시고 각기 자기나라를 대표하여 맹약의 의식을 치렀다. 그러나 초나라 사마 공자측은 영제가 자기와는 일언반구 상의하지 않고 자기 임의대로 맹약을 맺은 사실을 알고 대노하여 말했다.

「남북간에 통호가 끊겨 서로 원수지간이 된지가 어제오늘이 아니거늘 자중(子重)이 자기 멋대로 당진과 초나라 간에 맹약을 맺은 행위는 자기 혼자 공을 차지하려고 하는 짓이다. 내가 반드시 당진의 군사를 무찔러 보이겠다.」

공자측은 하희를 대리고 진나라로 도망간 무신이 당진을 대표해서 오나라 군주 수몽(壽夢)과 노(魯), 제(齊), 송(宋), 위(衛), 정(鄭) 등의 제후국 대부들을 종리(鍾离)②에 모이도록 해서 회맹을 행하려는 계획을 탐문하여 알게 되었다. 공자측이 공왕에게 나아가 말했다.

「당진과 오 두 나라가 서로 통호하려는 목적은 필시 두 나라가 협력하여 초나라를 도모하려는 뜻에서입니다. 송과 정까지 모두 당진에게 복종하고 있으니 초나라를 따르는 나라는 이제 하나도 없어 고립되게 되었습니다.

「내가 정나라를 토벌하려는 생각을 갖고 있지만 당진과는 이미 송나라의 도성 수양성 서문에서 서로 만나 맹약을 맺었는데 그 맹약을 위반하고 군사를 일으키는 행위는 명분에 어긋나는 일이오. 어떻게 하면 명분을 찾아 군사를 일으킬 수 있겠소?」

「송과 정 두 나라가 초나라와 맺은 맹약은 하루 이틀 사이에 있었던 일이 아닙니다. 지금도 또한 그들은 우리들과 맺은 맹약을 저버리고 당진에 붙었습니다. 우리에게 이익이 있으면 진군하면 되는 일이지 맹약 따위를 지켜 어디다 쓴단 말입니까?」

초공왕이 즉시 공자측을 대장으로 삼아 정나라를 토벌하는 군사를 일으켜 진군토록 했다. 초나라의 위협에 굴복한 정나라는 다시 당진에게서 등을 돌려 초나라를 따랐다. 때는 주간왕(周簡王) 10년으로, 기원전 595년의 일이었다.

3. 언릉대진(鄢陵對陣)

- 진초(晉楚)가 언릉에서 만나 영채를 세우고 대진하다. -

정나라가 다시 초나라에 붙자 당진의 려공(厲公)이 대노하여 여러 대부들을 소집하여 정나라 토벌문제를 논의하였다. 그 때에는 란서가 비록 정사를 도맡아 하였지만 실제로는 삼극(三郤)이 실권을 잡고 전횡하고 있었다. 삼극이란 극기(郤錡), 극주(郤犨), 극지(郤至) 등의 극씨 가문의 사람들을 말한다. 극기는 상군원수, 극주는 상군부수, 극지는 신군부수의 직을 각각 맡고 있었다. 그 외에 극주의 아들 극의(郤毅), 극지의 동생 극걸(郤乞)은 모두가 대부의 직으로 조정에 나와 국정에 참여하고 있었다. 경공 때의 모사인 백종은 정직무사하여 여러 번 려공에게 간하였다.

「극씨 종족들의 세력이 너무 커서 마땅히 현자와 어리석은 사람을 구분하여 그 권세를 조금 눌러 놓아야 다른 공신들의 후예들도 무사하게 보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려공은 백종의 말을 듣지 않았다. 삼극은 백종이 려공에게 자기들을 비방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마음속에 깊은 한을 품었다. 곧이어 삼극은 백종이 조정을 비방하고 다닌다고 모함했다. 여공이 그 말을 믿고 백종을 죽였다. 백종의 아들 백주리(伯犨犁)는 초나라로 도망쳤다. 초나라는 백주리를 태재로 삼아 당진과 싸우는데 그의 지모를 이용하려고 했다. 려공은 원래 성질이 교만하고 사치스러운 사람이었기 때문에 안팍으로 총애하는 남녀가 대단히 많았다. 남자로서는 서동(胥童), 이양오(夷羊五), 장어교(長魚矯), 장려(匠麗) 등 일반 소년들이었는데 모두 대부 벼슬을 내렸다. 특히 서동은 서신(胥臣)의 증손자로 서극(胥克)의 아들이다. 려공이 좋아하는 미녀와 여복들은 수를 셀 수도 없이 많았다. 매일 음사를 즐기고 아첨하는 사람을 좋아했으며 바른 소리를 하는 사람을 싫어했다. 려공이 정사를 돌보지 않고 음락만을 즐기자 여러 신하들의 기강도 해이해지게 되었다. 당진의 조정이 날이 갈수록 어지러워지는 모습을 본 사섭은 정나라를 정벌할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사섭의 말에 극지가 물었다.

「정나라를 토벌하지 않으면 어떻게 제후들을 규합할 수 있겠습니까?」

중군원수 란서가 대신 대답했다.

「만일 오늘 정나라를 잃으면 내일은 노와 송 두 나라도 잃게 됩니다. 온계(溫季)③의 말이 옳습니다.」

초나라 투월초의 아들로 당진에 망명해 온 묘분황(苗賁皇)도 역시 정나라를 토벌하라고 주장했다. 려공이 두 사람의 말을 쫓아 순앵(荀罃)에게는 본국에 남아 도성을 지키도록 명하고, 란서를 대장으로, 사섭(士燮), 극기(郤錡), 순언(荀偃), 한궐(韓厥), 극지(郤至), 위기(魏錡), 난침(欒鍼) 등의 장수와 전차 6백 승을 친히 인솔하여 호호탕탕 정나라로 쇄도해 쳐들어갔다. 다른 한편으로는 극주를 노와 위 두 나라에 사자로 보내 그들로 하여금 군사를 일으켜 초나라와의 싸움에서 당진을 돕도록 청했다.

당진군의 군세가 매우 커서 대항할 수 없다고 생각한 정성공은 그 즉시 성문을 열고 나아가 항복하려고 했다. 그러나 대부 요구이(姚鉤耳)가 말리면서 말했다.

「정나라의 땅은 좁고 큰 대국 사이에 끼어 있어 그 중 강한 나라를 택하여 섬기게 되어 있습니다. 어찌하여 아침에는 초를 섬기고 저녁에는 당진을 섬겨 시도 때도 없이 매번 침략을 당하고만 있습니까?」

「그렇다면 좋은 방도가 있는가?」

「우선 사자를 보내 초나라에 구원을 청하십시오. 초군이 당도하여 당진군과 대치하고 있을 때 우리가 군사를 내어 협공한다면 당진군을 이길 수 있어 몇 년 간은 걱정 없이 지낼 수 있습니다.」

정성공은 요구이를 초나라에 사자로 보내 구원병을 청해 오도록 했다. 초공왕은 송나라 도성의 서문에서 당진과 화의를 맺었던 서문지약(西門之約)의 파기를 싫어하여 정나라의 구원 요청에도 불구하고 군사를 출병시키기를 주저하였다. 공왕이 영윤 공자영제와 공자측을 같이 불러 대책을 물었다. 영제가 먼저 말했다.

「우리가 실은 신의를 지키지 않아 당진이 군사를 일으켰습니다. 이제 와서 정나라를 비호하여 당진과 전쟁을 한다면 백성들을 고생시키게 될 뿐만 아니라 싸움에서 반드시 이긴다고 장담할 수 없습니다. 군사를 출동시키지 말고 기다려 봄이 좋을 듯합니다.」

그러나 공자측은 정나라를 구원해야 한다고 강변하면서 말했다.

「정나라 사람들이 초나라를 배반할 수 없어 이렇게 급하게 구원을 청하고 있습니다. 옛날 저희가 제나라를 구하지 않아서 제나라가 당진을 섬기게 만들었습니다. 이제 와서 다시 정나라를 구하지 않는다면 우리나라를 섬기는 나라는 하나도 없게 됩니다. 신이 비록 재주가 없으나 저에게 한 떼의 군마를 내어 주신다면 어가를 모시고 출전하여 옛날처럼 ‘작은 공〔掬指之功〕’이나마 반드시 이루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초공왕이 크게 기뻐하며 사마 공자측을 중군원수, 영윤 공자영제를 좌군원수, 우윤 공자임부(公子壬夫)를 우군원수로 각각 삼고 자기 자신은 친히 양광(兩廣)의 대장이 되어 친정에 나섰다. 공왕이 이끄는 초나라의 대군은 정나라를 구하기 위하여 북쪽을 향하여 행군을 시작했다. 초군은 하루에 백 리를 행군하여 그 움직임은 마치 질풍과 같이 빨랐다. 북쪽을 향해 질풍같이 진군하고 있는 초나라의 대군의 정황을 당진군의 초마가 탐지하여 중군 막사에 보고했다. 사섭이 란서에게 말했다.

「우리나라의 군주께서는 국사를 돌보지 않으시니 우리가 거짓으로 초나라 군세가 매우 성하다고 말씀드려 이 싸움을 피한다면 우리가 주군께 경종을 울릴 수 있습니다. 주군께서 조심하여 두려워하는 마음을 갖게 되면 어느 정도 국가의 안정을 꾀할 수 있습니다. 」

란서가 결심하지 못하고 사섭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초나라 군사를 무서워하여 싸움을 피했다는 오명을 저는 감당하지 못하겠습니다.」

사섭이 물러 나와 탄식을 하며 말했다.

「이번 싸움에서는 우리가 져야만 나라에는 다행스러운 일이 되겠지만 만일 이 싸움에서 우리가 이긴다면 나라 밖의 일은 안정이 되겠지만 나라 안에서는 반듯이 내환이 생기리라! 내가 어찌 두렵게 생각하지 않겠는가?」

그때는 이미 초군의 본대가 언릉(鄢陵)④을 통과했기 때문에 당진군은 더 이상 전진을 못하고 팽조강(彭祖崗)⑤이라는 곳에서 행군을 멈추었다.

4. 치자기모(稚子奇謀)

- 어린 동자의 기묘한 계책으로 안정을 찾아 패전을 면한 당진군 -

이윽고 당진과 초 양군은 언릉의 팽조강을 사이에 두고 조우하여 각각 진영을 세워 대치했다. 그 이튿날은 유월 갑오(甲午) 일로서 그 달의 맨 마지막 날인 그믐날이었다. 그믐날은 군사를 움직이지 않는다는 풍속에 따라 당진군은 초군의 기습에 대해 전혀 준비를 하지 않았다. 이윽고 시간이 오경이 지나고 새벽녘이 밝아 올 무렵이 되자 갑자기 진영 밖에서 함성소리가 크게 일어났다. 진영을 지키던 수비군사가 황급히 달려와서 보고했다.

「초군이 본영 앞으로 쳐들어와 진을 쳤습니다.」

란서가 대경실색하여 휘하의 장수들에게 말했다.

「적군이 이미 아군의 코앞에 당도했으니, 우리군사들이 대오를 갖추기가 어렵게 되었소. 이런 상태로 교전에 들어가면 십중팔구 승리할 수 없소. 영채를 굳건히 지키고 초군을 격파할 좋은 계책이 없소?」

장수들의 의견이 분분하여 어떤 장수들은 정예군사를 뽑아서 먼저 상대방 진영으로 돌격하자고 하고, 또 다른 장수들은 일단은 군사를 물리쳐 다음 기회를 기다리자고 했다. 그때 당진군의 진영에는 사섭의 아들 사개(士匃)가 종군하고 있었다. 사개는 그 때 나이가 16살이었다. 여러 장군들의 의견이 분분하여 결론을 못 내리고 있는 모습을 본 사개가 중군 막사에 달려와 란서에게 한 가지 계책을 말했다.

「원수께서는 우리 군사의 대오를 갖출 평평한 땅이 없음을 걱정하고 계시지 않으십니까? 이 일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너에게 무슨 좋은 생각이라도 있는가?」

「우선 원수께서 영을 내려 영문을 굳게 지키게 한 후에 영채 안의 군사들에게는 몰래 아궁이는 흙으로, 우물은 널빤지로 덮어 영채내의 땅을 평평하게 하십시오. 불과 반 시각이면 평평하게 만든 땅에서 전투대형을 갖출 수 있습니다. 연후에 대오를 갖춘 군사를 이끌고 영문을 열고 앞으로 나아가시면 전투를 벌릴 수 있습니다. 초나라는 결코 우리를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을 것입니다.」

「아궁이와 우물은 군무에 있어서 급한 일 중에 하나인데 다 메워 버리면 어떻게 군사들을 먹일 수 있겠느냐?」

「먼저 각 군에게 하루 이틀 분의 말린 식량과 식수를 호로병에 준비하라고 이르고 대형이 갖추어질 때를 기다려 노약자를 가려내어 진영 뒤로 보내 우물의 널빤지를 걷어내고 아궁이이의 흙을 파게 하시면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원래 초군과의 싸움을 피하려고 했었던 사섭은 계책을 내놓는 아들을 보고 크게 노해 꾸짖었다.

「군사의 승패는 하늘의 뜻에 달려 있는데 어린놈이 무엇을 안다고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혓바닥을 함부로 놀리느냐!」

사섭은 곁에 있던 과를 꺼내 들고 사개를 찌르려고 하였다. 여러 장군들이 사섭을 몸으로 싸안아 막는 사이에 사개는 그 자리에서 도망칠 수 있었다.

란서가 웃으면서 말했다.

「동자의 지혜가 그 아버지 보다 낫구나!」

곧이어 란서는 사개의 계책에 따라 명령을 내려 각 군에게 영채를 세우고, 말린 식량을 준비한 후에 아궁이를 메우고 우물을 널빤지로 덮어 대형을 갖추게 했다. 마침내 당진군은 준비를 끝내고 다음 날의 교전에 대비할 수 있었다. 호증(胡曾)선생이 시를 지어 사섭의 사려 깊은 지혜를 노래했다.

군중의 병사가 낸 계책은 참으로 훌륭했는데

사섭은 과를 뽑아 자식을 원수처럼 대했다.

어찌 사섭의 깊은 뜻이 동자보다 못해서였겠는가?

나라의 운명을 걱정한 늙은 이의 원려에서였다.

軍中列陣本奇謀(군중열친본기모)

士燮抽戈若寇仇(사섭추과약구구)

豈是心機遜童子(개시심기손동자)

老成懮國有深籌(노성우국유심주)

5. 人才難得 莫借敵國(인재난득 막차적국)

- 인재는 얻기 어려우니 적국에 빌려주지 말라! -

한편 초공왕은 곧바로 당진군 진영 가까이 다가와서 진을 세우고 스스로 말했다.

「내가 이번에 행한 작전은 출기불의(出其不意)⑥라고 할만 하니 당진의 군중은 반드시 혼란에 빠졌을 것이다」

그러나 공왕의 생각과는 달리 당진군 진영에서는 적막하기만 하고 별다른 동정이 보이지 않았다. 곧 태재 백주리를 불러 물었다.

「당진의 군사들이 진영을 굳게 지키고 움직이지 않으니 그대는 그 사정을 알 수 있겠소?」

「저로 하여금 초거(轈車)⑦에 올라가서 적진을 살펴보게 해주시기 바랍니다.」

초공왕이 백주리를 데리고 초거에 올라 당진군의 진영을 살펴보며 물었다.

「진나라 군사들이 말을 타고 빨리 달리는데 어떤 군사는 좌로 어떤 군사는 우로 다니는데 무슨 이유에서인가?」

「군리(軍吏)들을 부르기 위해서입니다.」

「지금은 중군 막사 앞에 여러 사람들이 모이고 있소.」

「모여서 계책을 의논하고 있는 중입니다.」

「갑자기 천막을 치고 있는데 무슨 까닭이오?」

「선군의 영령에 축도(祝禱)를 올리기 위해서 입니다.」

「장막이 걷혔소」

「바로 군령을 발하기 위해서입니다.」

「진영 안이 매우 시끄럽고 흙먼지가 계속 일어나고 있소.」

「그들은 아직 대오를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우물을 덮고 아궁이를 메우고 해서 평지를 만들어 전투대형을 만들고 있습니다.」

「모든 병거에 말을 메고 장교와 군졸이 병거에 올라탔소.」

「영채를 세우기 위해서입니다.」

「병거에 탔던 사람이 다시 내리는 이유가 무엇이오?」

「싸움에 임하여 신에게 기도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중군의 사기가 매우 높은 것 같소. 당진의 군주는 어디에 있소?」

「란씨와 범씨 종족들 가운데에 있습니다. 경적하시면 안 됩니다.」

초왕이 진군의 정세를 다 살펴보고 여러 장군들에게 다음날 교전에 만전을 기하여 점고를 철저히 하도록 명했다.

그때 당진의 진영에서도 묘분황(苗賁皇)이 진려공 곁에 있으면서 초나라에 대한 계책을 말했다.

「초나라 영윤 손숙오가 죽은 이래 군정이 안정되지 않고 양광의 정예 군사들은 오랫동안 바꾸지 않아 늙은 군사가 많아 싸움에 능한 자가 별로 없습니다. 더욱이 좌우 두 장군이 서로 불목하고 있습니다. 이번 일전에 초나라를 격파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을 두고 염옹(髥翁)이 시를 지어 한탄했다.

초나라의 백주리는 본래 당진의 훌륭한 신하였고

당진도 초나라의 장수 묘분황을 받아 들였다.

인재 구하는 일은 어려우니 마땅히 소중히 여겨

지모있는 신하를 나라 밖으로 보내지 말지어다.

楚用州犁本晉良(초용주리본진량)

晉人用楚是賁皇(진인용초시분황)

人才難得須珍重(인재난득수진중)

莫把謀臣借外邦(막파모신차외방)

5. 百步穿楊(백보천양)

- 백보의 거리에서 버들잎을 쏘아 백발백중시키는 초나라의 신궁 양요기

두 나라 군사들은 다음날이 되었으나 각각 자기 진영만을 굳게 지키고 교전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초나라 장군 반당(潘党)이 진영 뒤쪽에서 활쏘기 시합을 하여 과녁의 중심을 세 번 연거푸 맞췄다. 주위의 여러 장군들이 반당의 활 솜씨를 칭찬해 마지않았다. 그때 마침 양요기(養繇基)가 다가오자 여러 장군들이 일제히 외쳤다.

「신궁이 왔다!」

옛날 초나라와 명궁으로 알려진 투월초(鬪越椒)를 활쏘기로 겨뤄 사살했던 양요기를 초나라 사람들은 신전장군(神箭將軍)으로 호칭하고 있었다. 반당이 양요기를 보고 화를 내며 말했다.

「나의 활 솜씨가 어찌하여 양숙(養叔) 그대 보다 못하단 말인가?」

양요기가 대꾸했다.

「그대는 과녁의 중심을 맞출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뛰어난 경지에 이르렀다고는 말할 수 없소. 나는 능히 백보천양(百步穿楊)을 할 수 있소.」

여러 장군들이 물었다.

「백보천양이 무슨 말인가?」

「옛날 어떤 사람이 표식으로 삼은 버드나무 잎사귀를 내가 백 보 밖에서 활을 쏴서 그 잎의 중심을 꿰뚫은 일이 있었소. 사람들이 그 일을 가지고 백보천양이라 말했소.」

여러 장군들이 말했다.

「마침 이곳에도 버드나무가 있는데 솜씨를 한 번 보여주시오.」

「못 할 것도 없습니다.」

장군들이 매우 기뻐하여 말했다.

「오늘 우리가 양숙의 귀신같은 활솜씨를 구경하게 되었으니 이 얼마나 기쁜 일인가?」

초나라 장수들은 그 즉시 병졸들을 시켜 버들나무의 잎사귀 한 잎에 검은 먹으로 표식을 하게 한 후에 양요기보고 백 보 밖에서 활을 쏘아 맞춰 보라고 했다. 이윽고 양요기가 버드나무 잎사귀를 향해 화살을 날렸다 그러나 여러 장수들은 양요기의 화살이 섬광과 같이 날아가 순식간에 버드나무 잎사귀를 꿰뚫었음으로 그 광경을 미처 볼 수 없었다. 장군들이 다가가서 보니 양요기가 쏜 화살은 버드나무 가지에 꽂혀 있는데 그 화살촉은 버들잎 정 가운데를 뚫고 있었다.

반당이 보고 말했다.

「한번으로는 우연히 맞출 수 있을지도 모르오. 내 생각에는 적어도 표식을 한 버들잎 3개 정도를 차례로 쏘아 맞추어야 능히 명궁이라 할 수 있소.」

「제가 다 맞출지는 자신이 없지만 한번 시도는 해 보겠소.」

반당이 버드나무 가지에 달려 있는 잎사귀 중에서 서로 높이가 같지 않은 곳의 잎사귀를 골라서 먹으로 1, 2, 3이라는 숫자를 표시했다. 양요기가 가까이 가서 글씨를 확인하고 백보 밖으로 물러 나와 자기의 화살에도 역시 1, 2, 3이라고 각기 표시하고 순서에 따라 화살을 날렸다. 순서에 따라 쏜 화살은 추호도 어긋남이 없이 숫자에 맞춰 모두 버들잎 가운데에 꽂혔다. 여러 장군들이 두 손을 높이 올려 예를 올리며 말했다.

「장군은 진실로 신궁입니다 」

반당이 비록 마음속으로는 놀라 마지않았으나 자기가 갖고 있는 장기를 자랑할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양요기에게 말했다.

「양숙의 활 솜씨는 과연 훌륭합니다. 그러나 적병을 죽일 수 있는 수단은 솜씨도 있어야 하지만 힘이 있어야 합니다. 소장은 여러 개를 겹쳐 놓은 갑옷을 활로 꿰뚫을 수 있습니다. 저도 저의 솜씨를 여러 장군들 앞에서 시험해 보이겠습니다.」

여러 장군들이 말했다.

「원컨대 장군의 솜씨를 보고 싶습니다.」

반당이 옆에서 수행하던 수졸 병사에게 갑옷을 벗어서 가져와 포개 놓으라고 지시하자 갑옷의 두께가 다섯 겹이 되었다. 여러 장군들이 그만 하면 되었다고 하는데도 다시 더 쌓으라고 명령하여 일곱 개가 되었다. 여러 장군들이 속으로 생각했다.

「일곱 개의 갑옷 두께는 거의 한자에 해당하는데 무슨 수로 그 두꺼운 갑옷을 꿰뚫을 수 있단 말이오?」

반당이 개의치 않고 일곱 겹으로 쌓인 갑옷 무더기를 끈으로 묶어 팽팽하게 매달아 놓고 백 보 밖으로 물러나서 낭아전(狼牙箭)을 활시위에 걸고 검은 조궁(雕弓)⑧을 힘껏 잡아당겨 조준했다. 반당의 활 쏘는 모습은 마치 왼쪽 손은 태산을 떠받치는 듯이 힘이 있었고 오른쪽 손은 마치 갓난아이를 안고 있는 듯한 부드러운 형세였다. 반당은 눈을 가늘게 뜨고 자세를 단정하게 하여 온 힘을 다하여 화살을 날렸다. 화살이 과녁에 박히는 소리가 나자 반당이 외쳤다.

「맞았다.」

곁에 있던 여러 사람들은 화살이 날아가는 모습만 보았지 과녁을 꿰뚫는 순간은 보지 못했다. 여러 장수들이 과녁으로 걸어가 눈으로 본 다음에야 일제히 박수를 치며 일어나서 말했다.

「훌륭한 솜씨로다, 정말로 훌륭한 솜씨로다!」

활을 당기는 반당의 힘이 매우 강했음으로 일곱 겹의 갑옷을 뚫고 들어 간 화살은 마치 못을 박은 것 같이 단단했다. 군사들이 다가가 갑옷에 박힌 화살을 아무리 흔들어 봐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반당이 얼굴에 아주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군사들에게 소리쳐 화살이 박힌 갑옷을 그대로 끌고 오라고 했다. 화살로 꿰어 있는 갑옷을 들고서 진영을 돌면서 자기의 솜씨를 자랑하고 싶어서였다. 이때 양요기가 손을 허공에 저으며 군사들을 막아서며 말했다.

「잠깐만 움직이지 말고 그대로 두어라. 나도 한번 쏴봐야겠다. 결과는 어떻게 나올지 모르겠다만!」

여러 장군들은 양요기의 귀신같은 활 솜씨를 다시 한 번 보고 싶어 했다. 양요기가 활을 당겨 화살을 날리려다 말고 다시 활을 밑으로 내리며 쏘지 않았다. 여러 장군들이 물었다.

「어찌하여 활을 쏘지 않습니까?」

양요기가 대답했다.

「단지 남이 쏜 표적을 그대로 따라서 맞추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소. 나는 화살을 실어 나르는 법을 보여 주겠소.」

양요기는 말을 마치자, 화살을 장전하여 쉿 소리를 내며 화살을 날렸다. 여러 장군들이 외쳤다.

「명중이다!」

양요기가 쏜 화살은 반당이 먼저 쏜 화살의 정 중앙을 맞추어 반당의 화살을 밖으로 밀어내고 그 자리에 대신 박혔다. 그 모습에 여러 장군들은 할 말을 잃었다. 반당도 어쩔 수 없이 양요기에 대해 진심으로 복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양숙의 솜씨는 실로 내가 도저히 따를 수가 없구나!」

사서에 양요기에 대한 다음과 같은 전설과 같은 기사가 있다.

『초왕이 형산(荊山)에 사냥을 나갔는데 산꼭대기에 팔이 긴 원숭이가 살고 있었다. 그 원숭이는 날아오는 화살을 모두 잡아 낼 수 있다고 했다. 초나라 군사가 원숭이를 몇 겹으로 에워 싼 후 초왕의 명으로 활을 쏘았으나 원숭이가 모두 잡아냈다. 초왕이 소리쳐 양요기를 불러오라고 좌우에게 명하자 원숭이는 양요기라는 소리에 놀라서 비명을 질렀다. 곧이어 당도한 양요기가 한 개의 화살을 쏘아 원숭이의 심장을 꿰뚫어 버렸다.』

이 사서의 기사를 보아도 그가 춘추시대 제일의 사수라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잠연(潛淵) 선생이 양요기와 반당의 활쏘기 시합을 시를 지어 노래했다.

나는 새를 떨어뜨리고, 기어 다니는 이를 관통한 궁사가 있었다지만

백보천양의 경지는 두 번 다시 볼 수 없는 신기한 궁술이었다.

버들잎을 맞추고 갑옷을 뚫는 솜씨도 신기하기에는 충분치 않으니

강궁 속에 또한 강궁이 있었고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었음이다!

落鳥貫虱名無偶(낙조귀슬명무우)

百步穿楊更罕有(백보천양갱한유)

穿札將軍未足奇(천찰장군미족기)

强中更有强中手(강중갱유강중수)

6. 鄢陵交兵(언릉교병)

- 언릉에서 대전을 벌리는 진초(晉楚) -

두 사람의 귀신과 같은 활솜씨를 본 여러 장군들이 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초군은 나라의 명운을 걸린 큰 싸움을 눈앞에 두고 당진군과 서로 대치하고 있습니다. 지금이야말로 우리 대왕께서는 그 어느 때보다도 유능한 인재가 필요하실 때입니다. 그런데 두 장군이 이렇듯 활을 귀신같이 다루니 마땅히 왕께 상주하여 중용 될 수 있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두 장군을 중용하지 않음은 아름다운 구슬을 함 속에 감추어 놓은 일과 같습니다.」

곧이어 여러 장군들은 군사들에게 명하여 화살이 박혀 있는 갑옷을 가져오게 하여 공왕에게 몰려가 보였다. 양요기와 반당이 함께 초공왕 앞으로 불려 나왔다. 여러 장군들이 두 사람이 화살로 시합한 이야기를 공왕에게 상세하게 설명했다.

「우리나라에 이와 같은 신궁이 두 분이나 있으니 어찌 당진의 군사가 백만 명이라 한들 두렵겠습니까?」

초공왕이 크게 화를 내며 말했다.

「싸움에서 이기고 지는 것은 전략에 의해서이지 어찌 화살 한두 개를 믿고 요행을 바란단 말인가? 그대들이 스스로 조그만 재주를 뽐내고 있으니 후일 이 재주로 죽지 않을까 심히 걱정되오!」

공왕은 곧바로 양요기의 화살을 전부 몰수하고 다시는 화살을 쏘지 못하도록 명령을 내렸다. 양요기가 얼굴에 면구함을 감추지 못하고 물러갔다.

다음날 오경 때가 되자 두 나라의 원수들이 각각 북을 두드려 군사를 앞으로 나아가게 했다. 당진의 상군원수 극기는 초나라 좌군을 이끌고 있는 공자영제와 대치하고, 하군원수 한궐은 초나라 우군을 지휘하고 있는 공자임부를 맡아 대적케 했다. 란서와 사섭이 본부병을 이끌고 려공의 융거를 호위하면서 초나라 공왕과 공자측이 지휘하는 중군과 대치하였다. 한편 진려공은 극의(郤毅)로 하여금 융거의 말고삐를 잡게 하고 란침으로 차우장군을 삼았다. 신군원수 극지는 후위를 담당했다. 그리고 초군 쪽의 진영은, 원래 오전에는 우광의 군사를 이끌고 나올 차례였으나, 공왕은 우광 대장 양요기가 궁술에 대해서 허풍을 떠는 사람으로 괘씸하게 여겨 좌광을 끌고 나왔다. 그리고 팽명(彭名)을 융어로, 굴탕을 차우장군으로 삼았다. 얼마 후에 정나라의 군마를 이끌고 전쟁터에 당도한 정성공이 초군과 합류하여 그 후위를 맡아 본대와 접응하도록 했다.

한편 머리에는 하늘을 올라가는 봉황의 날개모습을 본 따 만든 충천봉시(沖天鳳翅)라는 투구를 쓰고, 몸에는 용을 수놓은 붉은 비단전포를 입은 진려공은 허리에는 보검을 차고, 손에는 방천화극을 잡고서 금빛 나는 철판을 두른 큰 병거에 올라탔다. 이윽고 우측에는 란서, 좌측에는 사섭이 호위를 받으면서 영문을 나온 진려공은 초나라 진영을 향하여 돌진해 갔다.

그러나 그때는 아직 날이 밝지 않은 여명이라 밖의 사물이 자세히 보이지 않는 시각이었다. 려공이 탄 융거를 어자 극의가 용맹스럽게 몰아 초나라 진영을 향해 앞으로 달려가다가 앞에 큰 구덩이에 빠져버렸다. 날씨가 어두워 아무도 큰 구덩이를 발견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여공이 탄 융거는 구덩이에 빠져 움직일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초공왕의 아들 웅패(熊茷)는 나이는 어렸지만 용기가 있었다. 초군의 선봉을 맡고 있던 웅패는 려공의 융거가 구덩이에 빠져 움직이지 못하는 모습을 발견하고 자기의 병거를 비호같이 몰아 달려왔다. 그때 당진의 차우장군 란침이 황급히 융거에서 뛰어내려 구덩이 가운데에 서서 온 힘을 발휘하여 두 손으로 융거의 수레바퀴를 떠밀어 올렸다. 란침이 융거의 바퀴를 들자 이윽고 말이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네 마리의 말이 한 발자국씩 한 발자국씩 힘을 최대한으로 발휘하여 드디어 려공의 융거가 구덩이 속에서 빠져 나오게 되었다. 바로 그때는 웅패가 이끄는 초나라의 선봉대가 바야흐로 려공이 탄 수레가 빠져 있는 곳에 당도하여 덮치려고 하던 순간이었으나, 간발의 차이로 란서가 군사를 이끌고 웅패의 앞을 가로막으며 큰소리로 외쳤다.

「어린 녀석이 너무 무례하구나

웅패는 중군원수라고 쓴 장군기을 앞세우고 당진의 대군이 몰려오는 모습을 보고 놀라 전차를 돌려 도망치려고 하였다. 그러나 웅패는 미처 도망치지 못하고 란서에게 추격을 당해 사로잡히고 말았다. 당진군에 의해 사로잡힌 웅패를 구하기 위해 초군의 선봉대가 일제히 앞으로 돌격해 왔다. 그러나 당진군 쪽에서 사섭이 군사를 몰고 달려오고, 이어서 후방에 있던 신군원수 극지 등의 군사들까지 모두 달려와 합세하자 초군은 중간에 매복이 있을까 두려워하여 군사를 거두어 돌아갔다. 당진군도 초군의 뒤를 더 이상 추격하지 않고 각자 자기 진영으로 되돌아갔다. 당진군의 정탐병이 돌아와 초나라의 좌군은 움직이지 않고 진영을 지켰으며 당진의 상군도 출전하지 않았다고 려공에게 보고했다.

한편 당진의 하군을 이끌던 한궐은 출전하여 초나라 장수와 이십여 합을 싸웠으나 서로 간에 얼마간의 사상자가 난 것 말고는 승부가 나지 않아서 다음날 다시 교전하기로 하였다. 란서가 웅패를 려공에게 바치자 려공이 죽이려고 하였다. 묘분황이 나와서 말했다.

「초왕이 그의 아들이 사로잡혔다는 소식을 들으면 내일은 반드시 친히 출전할 것입니다. 웅패를 함거에 가두어 진영 앞에 세워 놓고 초왕을 유인하는데 이용하십시오.」

려공이 좋은 계책이라고 허락하고 웅패를 죽이려던 생각을 바꿨다. 그 이후로 그날 밤은 아무 일 없이 지났다. 그 다음날, 날이 밝아 오자 란서가 영문을 열고 출전하여 초군을 향해 싸움을 걸었다. 장군 위기(魏錡)가 찾아와 자기가 지난밤에 꾼 꿈 이야기를 했다.

「제가 어제 밤에 꿈을 꿨는데 하늘에 큰 수레바퀴 같은 밝은 달이 걸려 있어 제가 활을 쏘아 달 가운데를 맞췄습니다. 그러자 달 속에서 한 가닥 금빛 광선이 나와 아래쪽으로 향해 내려 비춰 제가 황망 중에 뒤로 물러나던 중 발을 잘못 디뎌 진영 앞의 웅덩이 속에 빠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와중에 꿈을 깨었습니다. 이것은 무슨 징조이겠습니까?」

란서가 상세하게 해몽을 해주었다.

「주왕실과의 동성은 해(日)이고 이성은 달(月)입니다. 장군이 쏜 달은 틀림없이 초나라 왕이오.그러나 후에 웅덩이 속에 빠진 것은 길조가 아니오. 장군은 부디 조심해서 몸을 보중하시오.」

위기가 듣고 말했다.

「초왕을 맞추어 초군을 격파할 수 있다면 비록 죽는다 한들 무슨 여한이 있겠습니까?」

란서는 위기를 선봉으로 삼아 초나라 진영을 공격하도록 했다. 초나라 진영에서는 장군 공윤양(工尹襄)이 앞으로 달려 나와 위기를 상대했다. 그러나 공윤양이 위기와 몇 합도 겨루기 전에, 당진군은 웅패를 함거에 가두어 끌고 나와 진영 위에 세워 놓았다. 포로가 되어 함거에 갇힌 체 진영 앞에 나타난 웅패의 모습을 발견한 초공왕은 마음속에서 열화와 같은 분노가 일어났다. 그는 급히 융어 팽명에게 명하여 융거를 웅패가 갇혀 있는 함거가 있는 곳으로 달려가게 했다. 이때 초왕의 융거를 발견한 위기가 공윤양을 버리고 곧바로 그 뒤를 추격했다. 융거를 쫓던 위기가 화살 한 대를 뽑아 활시위에 놓고 쉿 소리와 함께 날렸다. 위기의 화살은 초왕의 왼쪽 눈을 정확히 맞췄다. 반당이 죽을힘을 다하여 초왕의 융거를 호위하여 퇴로를 열었다. 초왕이 아픔을 참고 화살을 눈에서 뽑아내자 그 눈동자가 화살촉에 달려 빠져 나왔다. 초왕이 눈동자를 땅에다 던져 버리자 소졸 하나가 주어서 다시 갖다 바치면서 말했다.

「이것은 용안입니다. 함부로 버릴 수 없습니다.」

초왕이 받아서 화살을 담는 전대에 담았다. 위기가 초왕을 활로 쏘아 부상을 입혀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한 당진군은 용기백배하여 초나라 진영을 향하여 일제히 쇄도해 돌진했다. 공자측이 군사들을 독려하며 죽기를 각오하고 당진군의 공세를 막아내어 초왕을 구했다. 한편 당진군의 후위를 맡았던 극지는 정성공과 그 군사들을 포위했다. 그러나 성공의 어자가 임금의 깃발을 거두어 그의 활집에 감춘 덕분에 포위망을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었다.

한편 위기가 쏜 화살에 한 눈을 잃은 초왕은 화가 나서 급히 신전장군 양요기를 불러 왕의 융거를 구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양요기는 초왕의 부름을 받고 서둘러 왔기 때문에 신변에 화살을 하나도 갖고 있지 않았다. 초왕이 자기의 전통에서 화살을 두 대를 꺼내 주며 당부의 말을 했다.

「과인의 눈을 활로 쏘아 맞춘 자는 녹포를 입은 곱슬머리 수염을 기른 자요. 장군은 나를 위해 원수를 갚아 주시오. 장군의 활솜씨는 신기에 달해 많은 화살은 필요 없을 것이오.」

양요기가 초왕으로부터 화살을 받아 들고 진나라 진영 쪽으로 달려가서 녹포에 곱슬머리 수염을 한 장군을 찾았다. 이윽고 위기를 발견한 양요기가 그를 향해 큰소리로 꾸짖었다.

「필부가 무슨 연유로 우리의 임금에게 화살을 쏴서 상처를 입혔느냐?」

위기가 그 말에 대답하려고 하는 순간, 양요기가 쏜 화살이 이미 날아와서 위기의 명치를 정확히 맞추었다. 위기는 화살을 맞고 숨이 넘어가 활집 위로 넘어졌다. 란서가 군사를 끌고 와서 위기의 시신을 찾아갔다. 양요기는 남은 한 개의 화살을 다시 공왕에게 돌려주면서 말했다.

「대왕의 위엄을 보여 녹포에 곱슬머리 수염의 적장을 한 개의 화살로 쏴서 죽였습니다.」

공왕이 대단히 기뻐하며 자기의 비단 옷을 벗어 양요기에게 주었고 더불어 낭아전(狼牙箭) 백 개를 하사했다. 초나라 군중에서는 이 일로 해서 모두 양요기를 양일전(養一箭)이라고 불렀다. 양요기는 화살 한 개로도 충분하여 두 개는 필요 없다는 뜻이었다. 양요기의 활솜씨를 노래한 시가 있다.

천마가 끄는 수레를 타고 호랑이와 같이 달려드니!

당진의 군사가 한 번 보자 간담이 서늘해 졌구나!

만인이 보는 앞에서 명장을 활로 쏘아 죽이니

화살 한 개로 공을 이루어 개선가를 불렀다.

鞭馬飛車虎下山(편마비차호하산)

晉兵一見膽生寒(진병일견담생한)

萬人叢里誅名將(만인총리주명장)

一矢成功奏凱還(일시성공주개환)

한편 당진군은 후퇴하는 초군을 뒤에서 바싹 추격했으나 양요기가 화살을 뽑아 들고 초나라 진영 앞에 서서 진격해 오고 있던 당진군을 하나하나 활을 쏘아 죽였기 때문에 당진군들은 더 이상 감히 추격하지 못했다. 초장 공자영제와 임부가 공왕이 화살에 맞았다는 소식을 듣고 싸움을 돕기 위해 각기 군사를 이끌고 달려오자 이윽고 전장은 혼전상태로 변했다. 이윽고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자 당진군이 싸움을 멈추고 자기 진영으로 돌아갔다. 그때 마침 후퇴하던 당진의 차우장군 란침은 초나라 영윤의 깃발을 멀리서 발견했다. 란침은 일단의 군사들은 공자영제의 초군임을 알고 려공에게 나아가 청했다.

「신이 예전에 사신의 임무를 띠고 초나라에 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초나라 영윤 자중(子重)이 저에게 진나라의 용병하는 전술을 물었습니다. 신은 정제할 ‘정(整)’자 한가로울 ‘가(暇)’자 두 자로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두 나라 군사가 혼전을 하다 보니 그 정(整)을 보여주지 못했고 비록 각각 후퇴하였으나 가(暇)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신은 원컨대, 제가 옛날 용병하는 전술에 대해 한 말을 실천하는 의미에서 행인을 시켜 초장에게 술 한 통을 보내 주고 싶습니다.」

「좋은 생각이오. 술을 보내 주도록 하시오!」

란침이 즉시 행인에게 술통을 들려 영제의 진영으로 가서 바치고 자기의 말을 전하게 했다.

「저희 군주께서 주위에 인재가 부족하여 이 란침을 창을 잡고 싸우는 차우장군에 명하셨습니다. 그런 이유로 부득이 저를 대신하여 종자를 시켜 장군을 위문하게 되었습니다. 종자로 하여금 저를 대신하여 장군에게 술을 한잔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영제는 옛날 란침이 말한 ‘정(整)과 가(暇)’라는 말을 생각해 내고는 탄식했다.

「나이도 어린 장군이 그때 일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구나!」

영제는 란침이 보내 준 술통을 받고 한 잔의 술을 따라 마신 후 심부름을 온 종자에게 말했다.

「내일 교전하기 전에 면대하여 인사를 올리리라!」

종자가 돌아와서 영제의 말을 전했다. 란침이 듣고 말했다.

「초왕이 활에 맞아 부상을 당했는데도 후퇴할 생각이 없는 듯 하니 심히 난처한 일이로다!」

묘분황이 듣고 말했다.

「대오를 새로 짜고, 병거를 수리하도록 명하십시오. 또한 결원이 생긴 보졸들은 다시 보충하고 말에게 여물을 배불리 먹이십시오. 파괴된 진채는 다시 수리하여 견고하게 하신 후에 날이 밝기 전에 병사들에게 식사를 배불리 먹여 한 번 결사적으로 싸우게 한다면 어찌 초와 같은 나라를 이길 수 없겠습니까?」

그때 지원군을 얻기 위해 노와 위 두 나라에 갔던 극주(郤犨)와 란염(欒黶)이 돌아와 두 나라가 당진을 돕기 위해 각기 군사를 내어 현재 당진군의 진영 20리 밖에 주둔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초나라 첩자가 이를 탐지하여 초왕에게 보고했다. 초왕이 크게 놀라 말했다.

「당진의 병사들만도 우리한테는 이미 너무 많은데 노와 위 두 나라 군사가 또 왔으니 어떻게 하면 좋은가?」

초왕은 대책을 강구하기 위해 즉시 중군원수 공자측을 불렀다.

《제59회로 계속》

주석

①사남(汜南) : 정나라 도성 신정성(新鄭城)의 외곽을 방어하는 곳으로 사수(汜水)의 상류에 있던 고을 이름이다. 사수는 숭산(嵩山)의 북쪽에서 발원하여 지금의 공의시(鞏義市)인 호뢰(虎牢)를 거쳐 황하와 합류한다. 이곳에서 섬진의 목공(穆公)과 당진의 문공(文公)이 군사동맹을 맺은 후, 두 나라가 연합하여 정나라를 공격하였으나 싸움 도중에 섬진의 목공이 조약을 위반하고 정나라와 일방적으로 강화조약을 맺은 후에 철군한 일을 말한 것이다. 본서 43회 내용 참조

②종리(鐘離) : 지금의 안휘성 방부시(蚌埠市) 봉양현(鳳陽縣) 경내로서 회수(淮水)의 남안(南岸)에 있던 고을

③온계(溫季) : 온(溫)은 극씨들의 봉지(封地)이며 지금의 하남성 온현(溫縣) 서쪽 20키로 떨어진 황하 강안의 고을이다. 극지(郤至)가 극씨 4형제들 중 막내이기 때문에 계(季)라하여 극지를 온계라 했다.

④언릉(鄢陵) :지금의 하남성 언릉현(鄢陵縣) 북 10키로. 초와 당진이 중원의 패권을 놓고 다툰 성복(城濮), 필(邲)에 이어 세 번째로 전면전이 벌어진 곳이다.

⑤팽조강(彭祖崗) : 지금의 하남성 언릉시(鄢陵市) 북쪽의 팽점진(彭店鎭)을 말한다. 명나라 때의 지명은 팽조점(彭祖店)이다. 팽조(彭祖)는 고대 전설상의 인물로 성은 전(籛)이고 이름은 갱(鏗)이다. 전(翦)이라고도 한다. 전욱의 현손(玄孫)이고 육종(陸終)의 아들이다. 요(堯), 순(舜), 우(禹)와 동시대인으로 순임금이 팽조를 대팽(大彭), 즉 지금의 강소성 서주(徐州)에 봉해 천하 12목(牧) 중 하나로 삼았다. 방중술에 통달하여 800년을 살았어도 오래 살지 못했다고 한탄했다. 장수한 사람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⑥출기불의(出其不意) :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때를 택하여 군사를 움직이는 것.

⑦초거(轈車) : 사닥다리나 망루를 장착한 수레로써 휴전 중에는 성안의 적진을 정찰하거나 전투 중에는 성벽에 사닥다리를 대어 군사들이 타고 오르는데 사용되는 병거를 말한다.

⑧조궁(雕弓) : 표면에 조각을 하고 색칠을 하여 아름답게 꾸민 활

【평 설】

중원제후국들에 대한 지배권을 확보하려는 진초(晉楚) 두 나라간의 패권 싸움은 더욱 치열해졌다.

기원전 576년 공자측(公子側)은 당진이 오나라와 공수동맹을 맺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것은 필시 초나라를 도모하기 위해서라고 확신했다. 그 동맹에 정(鄭)과 송(宋)도 참여했기 때문에 진초간에 체결한 정전협정을 깨고 정나라 정벌군을 일으켰다. 공자측은 협정을 깨고 정나라를 공격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말했다. “이익이 있으면 나아가면 되는 것이지, 맹약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맹약이 아군에게 불리하면 일고의 가치도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초나라는 정나라를 정벌했고 그 결과 정나라는 초나라의 세력권에 들어오게 되었다. “ 유리하면 나아간다.”라는 원칙은 그 후로 수많은 사람이 신봉하게 되는 군사사상의 한 축을 이루게 되었다. 그래서 역사상 맹약을 파기하는 일이 끊어지지 않게 된 것은 이 일로 시작되었다.

초나라의 압박을 받은 정나라가 초나라를 따르게 되자 당진이 군사를 일으켜 정나라에 쳐들어왔다. 이에 정나라의 대부 요구(姚鉤)가 매년마다 끊이지 않고 발생하는 병화를 피하는 계책을 내었다. 즉 ‘조초모진(朝楚暮晉)’ 정책이다. 아침에는 초나라를 저녁에는 진나라를 따름으로써 양강 중 한 나라를 택해 의지한다는 외교정책을 채택하면 몇 년 동안은 나라가 평안을 유지할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정성공(鄭成公)은 즉시 당진국에 투항하기로 하고, 그와 동시에 요구(姚鉤)를 초나라에 보내 구원을 요청하게 했다. 요구의 계책은 큰 손해를 작은 손해로 막기 위한 방법이며 두 가지 방법이 모두 손실을 자초하는 일이라면 그 중 가벼운 쪽을 택하기 위해서였다.

정나라 사자 요구(姚鉤)의 요청을 받은 초나라는 정나라를 구원하기 위해 군사를 출동시켰다. 진초(晉楚) 양군은 정나라 경내에서 조우하여 회전에 들어갔다. 이 싸움에서 쌍방이 취한 전략전술은 다음 몇 가지 점에서 유의할 필요가 있다.

1. 당진의 장수 사섭(士燮)의 ‘외녕필유내우(外寧必有內懮)’론이다. 즉 외부의 안녕은 내부의 우환을 불러온다는 이야기다. 정치적인 각도에서 본 사섭은 적군과의 전투를 앞두고 초군을 두려워하는 척 하면서 싸움을 피하자고 주장했다. 그것은 나이가 어린 진려공(晉厲公)으로 하여금 당진국에 외환이 있음을 깨닫게 해서 내정을 정비하게끔 하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진려공은 즉위하자마자, 곧바로 음락을 즐기고, 아첨의 말을 좋아하며, 충간을 멀리하고 정사를 보살피지 않았다. 그 결과 군신들 사이의 관계가 해이해지고, 국정이 올바른 방향으로 행해지지 않게 되었다. 만일 당진군이 초군과 싸움을 벌려 승리를 취한다면 더욱 교만해진 진려공은 전횡을 일삼아 제 멋대로 국정을 운영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사섭은 자기의 심모원려를 당진군의 장수들에게 이해시키지 못했다. 사섭의 예상대로 초군과의 싸움에서 대승을 거둔 당진국은 얼마 있지 큰 내란에 휩싸이게 된다.

2. 귀중한 인재에 관한 문제

백주리(伯州犁)는 원래 당진국의 인재였으나 초나라에 망명하여 중용되었다. 교전 중에 그는 당진군의 일거수일투족의 의미를 모두 초왕에게 명명백백히 설명하여 초군이 당진군의 전술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게 했다. 투월초의 아들인 묘분황(苗賁皇)은 초나라의 인재였다. 반란을 일으킨 투월초가 살해당하자 그는 목숨을 구해 당진국으로 망명했다. 그는 당진국에 망명한 이후 당진의 군주 곁에서 항상 시립해서 초군을 패퇴시킬 수 있는 방안을 올렸다. 병사를 움직이는 원칙은 궤(詭) 즉 기만술이다. 그러나 진초(晉楚) 쌍방은 모두 상대방에서 건너온 인재들의 힘으로 적정을 소상히 파악하여 기만술을 격파할 수 있었다. 그래서 염옹(髥翁)은 시를 지어 적국으로 인재를 노친 일을 한탄했다.

人才難得須珍重(인재난득수진중)

인재 구하기가 어렵다는 사실을 깨달아 마땅히 소중하게 여겨

莫把謀臣此外邦(막파모신차외방)

자기 나라의 지모가 있는 신하를 외국으로 보내지 말지어다.

3. 초공왕의 모승론(謀勝論)과 기승론(技勝論)

초나라 진영에는 두 사람의 신전(神箭) 즉 귀신과 같은 솜씨를 갖춘 명궁이 있었다. 반당(潘黨)과 양요기(養繇基)다. 반당은 7겹으로 쌓은 갑옷을 뚫을 수 있는 괴력의 장수였고, 양요기는 능히 백보천양(百步穿楊)을 할 수 있었던 신궁(神弓)이었다. 백보천양이라는 말은 백보의 거리에서 버들잎을 명중시킨다는 말이다. 전투가 벌어지기 직전 활쏘기 시합을 한 두 사람은 각기 절기를 뽐냈으나 우열을 가리지 못했다. 그들의 활솜씨에 고무된 초군의 여러 장수들은 활쏘기 시합의 정황을 상세히 초왕에게 고했다. 그러나 초왕은 오히려 화를 내며 말했다. “장수가 지략이나 계책으로 싸움에 승리하는 것이지, 어찌 화살 한 대에 기대어 요행수를 바랄 수 있겠는가?” 초왕의 말은 절반은 맞고 절반은 맞지 않는다. 군사를 이끌고 전쟁에 임하는 장수들은 마땅히 전략에 중점을 두어야한다. 그러나 전략적인 요소 외에 별도의 일신상의 절기를 구태여 버릴 필요는 없는 법이다. 그리고 어떤 전투에서는 절기가 전략보다 더 효과를 발휘하는 경우가 있다. 더욱이 그 절기가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대신할 수 없을 때는 효과가 더욱 크다. 그리고 벌어진 전투에서 적장이 쏜 활에 한 눈을 잃은 초공왕은 양요기를 불러 자기의 원수를 갚았다. 신기에 가까운 활솜씨를 업신여겼던 초왕의 생각은 잘못된 견해라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으며 최소한으로 생각해도 편파적인 시각이다. 장수라면 당연히 전략을 제일로 여겨야 하지만, 기술로 승리를 취하는 것을 소홀히 하면 안 되는 법이다. 현대전에 있어서 고도의 과학기술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같은 이치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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