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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05-11 12:03:006310 
제64회. 欒氏滅族(란씨멸족) 杞梁死戰(기량사전)
양승국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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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제64회 欒盈滅族 杞梁死戰(란영멸족 기량사전)

곡옥성에서 멸족을 당한 란영과

거성(莒城)의 차우문에서 전사한 제장(齊將) 기량

1. 力士督戎(장사독융)

- 불세출의 장사 독융 -

비록 아들 범앙을 보내 위서(魏舒)를 데려오라고 하기는 했지만 그때까지 위서가 자기편에 설 것인지 아니면 란영의 편에 설 것인지를 알 수 없었던 범개는 앞으로의 일에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범앙은 범개가 오는지를 보기 위해 친히 고궁의 성루에 올라 성 밖을 살폈다. 이윽고 서북방으로부터 한 떼의 병거와 보졸들이 고궁의 문을 향해 달려오고 있는 것을 보였다. 그들이 가까이 당도하여 보니 범앙과 위서가 탄 수레와 그들의 뒤를 따르고 있던 병거와 군사들이었다. 범개가 기뻐하며 말했다.

「이제는 란씨들이 세가 고립되어 한 번 싸워 볼만하겠다.」

범앙은 즉시 군사들에게 명하여 고궁의 문을 열고 두 사람과 그 뒤를 따르고 있던 군사들을 들어오게 했다. 위서가 범개를 보자 안색이 돌연히 바뀌더니 불안하여 어쩔 줄 몰라 했다. 범개가 위서의 손을 붙잡으며 말했다.

「다른 사람들이 자세한 내막도 모르면서 장군이 란씨와 친분이 매우 깊다고 했지만 이 범개는 장군이 그럴 리가 없을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힘을 합쳐 란씨들을 없애 버릴 수만 있다면 내 마땅히 그 보답으로 곡옥의 땅을 장군에게 드리도록 하리다!」

위서는 이때 이미 범씨들이 만들어 놓은 우리 안에 갇힌 신세가 되어 그저 「 예, 예 」 라고 대답만 할 수 있을 뿐이었다. 곧이어 위서는 여러 군신들과 같이 평공을 배알하였다. 시간이 얼마간 지나자 조무(趙武), 순오(荀吳), 지삭(智朔), 한무기(韓无忌), 한기(韓起), 기오(祁午), 양설적(羊舌赤), 양설힐(羊舌肹), 장맹적(張孟趯) 등 많은 신하들이 줄을 이어 당도하였는데 모두가 병거와 군사들을 끌고 와 그들이 끌고 온 군사들은 그 수효가 시간이 갈수록 늘어났다. 원래 고궁은 남북으로 문이 두 개밖에 없었는데 모두가 견고하기가 그지없었다. 범개가 조무와 한기에게 두 집안의 군사들을 이끌고 힘을 합하여 남쪽의 관문을 두 겹으로 지키게 하고, 다른 한편 한무기 형제는 그 가병들과 함께 북쪽의 관문을 지키게 했다. 기오와 그 밖의 여러 신하들은 고궁의 주위를 순시하면서 경계하도록 하고 범씨 부자는 평공의 곁을 떠나지 않고 지켰다.

한편 신강성에 이미 입성한 란영은 위서가 나와서 자기를 마중하지 않자 마음속으로 의심을 품게 되었다. 즉시 성안의 저잣거리 어귀에 진을 치도록 하고 사람을 시켜 위서에 대한 소식을 알아보도록 했다. 정탐하러 간 사람이 돌아와 보고했다.

「주공은 이미 고궁으로 몸을 피했고 백관들도 모두 따라 갔다 합니다. 그 중에 위서도 섞여서 같이 동행했다고 합니다.」

란영이 크게 노하며 말했다.

「위서란 놈이 나를 속였구나! 내가 그를 만나게 된다면 내 마땅히 죽이리라!」

란영이 한편으로 독융을 격려하며 그의 등 뒤에 대고 말했다.

「장군이 있는 힘을 다하여 고궁을 공격하여 파한다면 부귀와 영화를 그대와 같이 누리겠소!」

「저에게 군사를 나누어 그 절반을 떼어 주시면 저 혼자서 고궁의 남쪽 관문을 공격하겠습니다. 장군께서는 남은 장수들을 이끌고 북쪽으로 돌아가 고궁의 북쪽 관문을 공격하시어 누가 먼저 고궁에 들어가는지 보도록 하십시다.」

이때 제나라의 장수 식작(殖綽)과 곽최(郭最)는 그들 군주인 제장공의 명에 의해 란영을 따라와 싸움에 임하기는 했지만 애써 싸우려고 하지 않았다. 그것은 란영의 부하들인 주작(州綽)과 형괴(邢蒯) 때문이었다. 옛날 란영을 따라 제나라로 들어간 주작과 형괴는 제장공의 총애를 받아 중임 되자 식작과 곽최 두 사람을 심한 말로 조롱하며 괄시했다. 그 일로 해서 식작과 곽최는 두 사람에 대해 마음속으로 깊은 원한을 품게 된 것이다. 속담에 ‘굽은 나무에 굽은 가지가 나온다’라고 생각한 식작과 곽최는 그 분노를 란영에게 옮긴 것이다. 더욱이 란영은 입만 열면 오로지 독융의 용력만 칭찬하고 식작과 곽최의 마음은 결코 헤아리지 않았다. 이에 두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자기들을 냉담하게 대하고 있는데 어찌 즐거운 마음으로 발 벗고 나설 수 있단 말인가?'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단지 곁에 서서 일의 성패만을 살펴볼 생각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온힘을 다해 란영을 도우려 하지 않았다. 란영도 또한 믿고 있는 사람은 오로지 독융 한 사람뿐이었다.

이윽고 독융이 쌍극을 손에 잡고 병거를 올라타더니 고궁의 남문을 향하여 쏜살같이 달려갔다. 고궁으로 달려간 독융은 관문 밖에 서서 형세를 살펴보았다. 그의 늠름하고 살기등등한 자태는 분명 하늘에서 내려온 하나의 검은 악귀와 같았다. 당진의 공실 군사들도 평소에 독융의 용맹을 듣고 알고 있었다. 그들은 독융을 한 번 보자 모두 하나같이 간담이 서늘해지며 두려움에 떨었다. 조무는 독융의 용맹한 모습을 보고 칭찬하는 소리를 끊이지 않으며 그와 같은 부하가 없는 것을 한탄해 마지않았다. 그의 부하 중 두 사람의 용장이 있었다. 그들의 이름은 해옹(解雍)와 해숙(解肅)이라 했는데 두 사람은 친형제간이었다. 모두가 긴 창을 잘 쓰기로 군중에 이름나 있었다. 그 형제는 자기들이 모시고 있던 장군의 입에서 독융의 용맹을 부러워하는 탄식소리를 듣고 마음속으로 승복하지 않으면서 말했다.

「독융이 비록 용력은 조금 있다 하나 그라고 해서 머리가 둘이고 팔이 네 개가 달린 것이 아닙니다. 우리 형제가 한 떼의 군마를 이끌고 관문 밖으로 나가 그를 사로잡아 장군에게 바쳐 공을 세워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대들은 조심하며, 절대 경적 하면 안 될 것이다.」

두 장수가 전차를 정비하고 군장을 꾸리더니 나는 듯이 관문 밖으로 달려 나가 해자 앞에 이르자 큰 소리로 외쳤다.

「거기 있는 사람은 독융장군이 아니신가? 어찌하여 그대 같이 영용한 장군이 역적의 뒤를 따라 다니는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속히 귀순하면 화를 돌려 복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독융이 듣고 대노하여 큰소리로 군사들에게 지시하여 해자를 메우고 앞으로 진격하라고 했다. 군사들이 흙과 돌멩이를 등에 짊어지고 날라 해자를 메우기 시작했다. 그러나 성질이 급한 독융이 기다리지 못하고 손에 들고 있던 쌍극을 해자 가운데에 박더니 있는 힘을 다하여 쌍극을 장대로 삼아 공중으로 몸을 한번 솟구쳤다. 눈 깜짝할 사이에 그의 몸은 공중을 날라 해자의 건너편에 서게 되었다. 해옹과 해숙이 놀라며 창을 들고서 병거를 몰아 독융에게 달려들었다. 독융이 쌍극을 휘둘러 병거에 타고 있는 두 사람을 맞이하여 싸우는데 전혀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해옹의 병거를 끄는 말이 독융이 휘두른 쌍극에 맞아 등뼈가 부러지는 바람에 병거가 더 이상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해숙의 병거를 끄는 말도 덩달아 놀라 울음소리를 크게 내며 역시 움직이지 않았다. 해옹과 해숙은 독융이 단신이라 업신여기고 수레에서 뛰어내려 땅위에서 싸우려고 했다. 독융이 두개의 대극을 양손에 들고 휘두르자 휙휙하는 소리가 공기를 갈랐다. 해숙이 장창으로 독융을 향하여 앞으로 찌르자 독융은 대극을 휘두르며 막았다. 그러나 독융이 휘두르는 대극의 기세가 대단히 커서 펑 소리와 함께 해숙의 장창이 부러져 두 동강났다. 해숙이 부러진 장창 자루를 땅에다 던지고 달아났다. 해옹도 역시 당황하여 황망 중에 손놀림이 무디어져서 독융이 휘두른 대극에 찔려 땅위로 쓰러지고 말았다. 독융이 몸을 돌려 도망가는 해숙의 뒤를 쫓았다. 해숙은 원래 달리기를 잘해 곧바로 북쪽의 관문으로 달려가 성 위에서 내려 준 밧줄을 타고 올라가 간신히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독융이 해숙의 뒤를 따라잡지 못하고 몸을 돌려 되돌아 와서 해옹을 결박하여 생포하려고 했으나 그때는 이미 성문 안에서 군사들이 달려 나와 구해서 데리고 가버린 후였다. 독융이 분기탱천하여 홀홀단신으로 대극을 손에 잡고 우뚝 서서 성문 위를 향해 소리쳤다.

「어떤 놈이건 나하고 싸우고 싶은 놈은 한꺼번에 나와 나의 수고로움을 덜게 하라!」

성문 위에서는 감히 응대하는 사람이 없었다. 독융이 한번 성문 앞에서 시위를 하고 나서 해자를 건너뛰어 자기 진영으로 돌아가서 군사들에게 다음날 성문을 공격하는데 군장을 정비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날 밤 해옹은 독융과의 싸움에서 입은 상처가 중하여 죽고 말았다. 조무가 애통해 하며 안타까워 마지않았다. 해숙이 조무에게 말했다.

「내일 소장이 다시 출전하여 죽기를 작정하고 싸워 형의 원수를 갚겠습니다. 제가 비록 싸우다 죽는다 할지라도 기필코 원수를 갚고야 말겠습니다.」

곁에 있던 순오도 거들었다.

「내 부하 중에 모등(牟登)이라는 나이 먹은 장수와 그 두 아들이 있는데 이름을 모강(牟剛), 모경(牟勁)이라 합니다. 두 사람이 모두 천근을 들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는 장사인데 현재 주공 휘하에서 경호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오늘밤 모등을 시켜 두 사람을 불러오게 하여 내일 해숙 장군과 함께 출전시키도록 합시다. 내일 세 사람이 힘을 합하여 독융 한 사람을 대적한다면 적어도 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조무가 대답했다.

「장군의 계획이 대단히 훌륭합니다.」

순오가 조무에게서 물러 나와 모등에게 그의 두 아들을 불러오라고 궁궐로 보냈다. 다음날 아침 모강과 모경 형제가 관문에 당도했다. 조무가 보니 과연 두 사람은 모두 신체가 장대하고 그 기상이 흉맹했다. 조무가 독려의 말을 한 번 하고는 해숙과 같이 관문 밑으로 내려가 싸움에 임하라고 명했다. 그때 독융은 아침 일찍부터 출전하여 군사들로 하여금 해자를 메우게 하여 평지를 만든 다음 관문 밑으로 달려와서는 싸움을 돋우고 있었다. 해숙, 모강, 모경 등 세 사람의 맹장들도 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독융이 보고 큰 소리로 외쳤다.

「죽음이 무섭지 않는 놈들은 모두 한꺼번에 덤벼라!」

세 장수가 독융이 하는 말에 대꾸도 하지 않고 한 사람은 장창을 두 사람은 각기 대도를 들고 한꺼번에 독융에게 달려들었다. 독융이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분기탱천하여 병거에서 뛰어 내리더니 대극 두개를 양손에 잡고는 바람개비 돌리듯이 돌렸다. 독융이 몸 안의 온 힘을 써서 극을 휘두르자 그 극이 닿는 곳은 천균(千鈞)1)의 힘이 실려 있어 그 세가 매우 흉맹하기 그지없었다. 이윽고 모경이 타고 있던 병거의 차축이 독융이 휘두르는 극에 맞아 부러지고 말았다. 모경이 할 수 없이 병거에서 뛰어내렸으나 다시 독융이 휘두르던 극에 맞아 떡이 되어 죽어 버렸다. 모강이 대노하여 목숨을 걸고 앞으로 나가려고 했으나 독융이 바람처럼 휘두르는 대극의 기세가 마치 화살이 쏟아지는 것과 같이 흉맹하여 도저히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 노장 모등이 그의 아들 모강이 위험에 처한 것을 보자 소리쳤다.

「그만 싸움을 멈추어라!」

성문 위의 군사들이 싸움을 멈추고 돌아오라고 쟁이를 울렸다. 모등이 친히 성문 밖으로 나와 모강과 해숙을 데리고 다시 성문 안으로 돌아갔다. 독융은 군사들에게 명하여 성문을 공격하도록 명했다. 고성 위에서는 화살과 바위가 비 오듯이 쏟아졌다. 독융의 군사들이 화살에 맞고 바위에 깔려 적지 않게 상했으나 오로지 독융 만은 서있던 자리에서 한 치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진실로 용장이라 할만 했다.

조무와 순오는 두 번의 싸움에서 계속 패하자 범개에게 사람을 보내 사태의 급함을 고했다. 범개가 듣고 말했다.

「독융 한 사람도 이길 수 없이 어찌 란씨들을 진압할 수 있단 말인가?」

2. 예부적수(隸夫敵手)

- 노예출신 적수에게 목숨을 잃은 독융 -

그날 밤 범개는 촛불을 켜고 앉아서 고민을 하면서 잠을 못 이루었다. 그때 한 사람의 몸종이 범개의 곁에 서서 시중을 들고 있었는데 머리를 조아리며 조심스럽게 범개를 향해 물었다.

「원수께서 오늘밤에 마음이 매우 울적해 계신데 혹시 독융의 일을 걱정하고 계시는 것입니까?」

범개가 눈을 들어 자기의 시중을 들고 있는 몸종을 쳐다봤다. 그 사람은 성명이 배표(斐豹)라 했는데 원래 도안가의 수하인 맹장 배성자(斐成子)의 아들이다. 그는 도안가의 일당이 주살 되면서 관직을 삭탈 당하고 노예가 되어 중군에서 범개의 시중을 들고 있었다. 범개가 배표의 말을 듣고 기이하게 생각하여 물었다.

「너에게 독융을 없애 버릴 만한 좋은 생각이라도 갖고 있느냐? 내 마땅히 너에게 중상을 내리리라!」

「소인의 이름은 단서(丹書)2)에 올라 있습니다. 하늘을 꿰뚫을수 있는 높을 뜻을 갖고 있음에도 죄를 지어 노예의 신분으로 전락한 신분이라 매일 이렇듯 헛되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원수께서 만약 저의 이름을 단서에서 빼 주신다면 소인이 독융을 죽여 그에 대한 보답을 하겠습니다.」

「네가 정말로 독융만 죽일 수 있다면 내가 마땅히 주공에게 청하여 네 이름이 적혀 있는 단서 자체를 불 속에 넣어 태워 버리고 너를 중군막사의 아장으로 임명하겠다.」

「원수께서는 말씀하신 바를 어기시면 안 될 것입니다」

「내가 만약 내가 한 말을 어긴다면 저 하늘의 붉은 태양도 나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쓸데 없는 걱정하지 말고 단지 네가 독융을 죽이기 위해서는 병거와 군사가 얼마나 필요한지나 말하라!」

「독융이 옛날에 신강성에 살고 있을 때 소인과는 안면이 있었습니다. 우리 둘은 만날 때마다 항상 힘자랑을 하여 내기를 했었습니다. 독융은 자기의 용기만을 믿고 항상 성격이 조급합니다. 그래서 언제나 혼자 싸우기를 좋아합니다. 제가 만약에 병거와 군졸들을 이끌고 출전하게 되면 그를 이기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소인은 단신으로 관문 밑으로 내려가 계교로써 독융을 잡겠습니다.」

「네가 단신으로 성문 밑으로 내려가서 도망치지 않는다고 내가 어찌 믿을 수 있겠느냐?」

「소인에게는 노모가 계시온데 금년 78세 이십니다. 또한 어린 자식과 아름다운 아내가 있는데 제가 어찌 지은 죄에 다시 더하여 불충과 불효의 죄를 저지를 수 있겠습니까? 만약에 제가 그와 같은 일을 저지른다면 저도 역시 원수님께서 맹세하신 바와 같이 저 하늘의 붉은 해가 용서치 않을 것입니다.」

범개가 크게 기뻐하며 술과 음식을 내와 배표로 하여금 배불리 먹게 하고 코뿔소 가족으로 만든 갑옷 한 벌을 상으로 주었다. 다음날 배표가 몸 안에는 범개가 상으로 준 갑옷에 겉에는 비단으로 짠 전포를 두르고 그 위에 다시 미늘을 묶어 만든 갑옷으로 무장을 갖춘 다음 범개가 있는 중군 막사로 나왔다. 그는 무두질한 가죽으로 만든 모자를 쓰고, 삼으로 엮어 만든 신발에, 허리에는 예리한 단검을 감추고서, 무게가 52근이나 나가는 동추를 손에 들고 범개 앞으로 나와 출전 인사를 올렸다.

「소인이 이번에 싸우러 나가서 독융을 죽여 개선가를 부르며 돌아 오겠습니다. 만약 그렇지 않게 되면 제가 독융의 손에 죽게 되어 살아오지 못할 것입니다.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반드시 죽게 될 것입니다.」

「내가 마땅히 남문의 성루에 올라 그대가 싸우는 모습을 지켜보리라!」

범개는 즉시 병거를 준비하라 이르고 배표로 하여금 수레를 몰게 하여 고궁의 남쪽 관문으로 갔다. 조무와 순오가 나와 범개를 맞이하였다. 조무와 순오순 두 사람이 범개에게 호소하였다.

「독융이 그 용력이 무쌍하여 우리의 장수 2명을 계속해서 죽였습니다.」

「오늘 내가 데리고 온 장수 배표가 단신으로 독융에 맞서 싸우겠다고 하니 만약에 그가 독융을 꺾을 수 있다면 그것은 오로지 우리 주공의 홍복일 것이오!」

범개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관문 밑에서 독융이 큰소리로 외치며 싸움을 돋우고 있었다. 배표가 관문 위에서 소리쳐 독융을 불렀다.

「독군(督君)은 이 배대(斐大)를 알아보겠는가?」

― 독군이나 배대는 모두 옛날에 그들이 만나서 사귈 때 부르던 이름이었다.―

「누군가 했더니 배대로구나! 네가 감히 오늘 다시 목숨을 걸고나와 한 번 싸워 보려고 하는 것인가?」

「다른 사람들은 너를 겁낼지 몰라도 이 배표는 전혀 네가 두렵지 않다. 네가 병거들을 뒤로 물리고 나와 너 두 사람이 아무 것도 타지 않고 싸움을 하여 맨손이면 맨손으로, 병기면 병기로 승부를 갈라 네가 죽으면 내가 살고 내가 죽으면 네가 살아 영웅의 이름을 후세에 전하지 않겠는가?」

「그것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독융이 즉시 군사들을 뒤로 물리치자 고성에서도 관문이 열리더니 그 안에서 배표가 단신으로 뛰어 나왔다. 두 사람이 관문 밑에서 싸우기 시작하여 20여 합에 이르도록 승부가 나지 않았다. 배표가 거짓으로 말했다.

「내가 급한 용무가 있으니 잠시 손을 멈추어라.」

독융이 배표의 이런 허튼 부탁을 들어줄 리가 없었다. 배표는 자기가 싸우는 곳의 서쪽에 빈 공터가 있고 그곳에는 높이가 낮은 담장이 있다는 것을 미리 살펴 두고 있었다. 배표가 싸우다 말고 그곳의 빈터를 향하여 달아나기 시작했다. 독융이 뒤를 쫓으며 큰 소리로 외쳤다.

「어디로 달아나려 하느냐? 거기 서지 못하겠는가?」

범개 등의 당진의 장군들은 관문 위에서 독융이 배표의 뒤를 쫓아가는 것을 보고 마음이 다급해져 손에 땀을 쥐었다. 그러나 그것은 모두 배표가 오히려 계교를 쓴 것인 줄은 아무도 몰랐다. 배표가 담장 가까이 다가와 비호같은 동작으로 담장을 훌쩍 뛰어 넘어 몸을 숨겨 버렸다. 독융이 뒤를 따르다가 배표가 담장을 뛰어 넘어 사라져 버리자 자기도 역시 담장을 뛰어 넘어 배표의 뒤를 계속 쫓으려고 했다. 독융은 다만 배표가 앞쪽에 있다고만 생각하였으나 배표는 사실은 담장 바로 앞의 큰 나무 밑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배표가 나무 밑에 숨어 있다가 독융이 담장을 뛰어 넘어 자기 앞을 지나가자 불시에 그의 52근 나가는 동추를 들어 독융의 등뒤를 향하여 날렸다. 동추가 독융의 머리에 명중했다. 독융의 머리가 깨지고 뇌수를 쏟으면서 땅에 쓰러졌다. 그러나 쓰러지던 순간에도 독융은 재빨리 오른쪽 발을 비호처럼 날려 배표의 가슴을 걷어찼다. 그 바람에 배표 입고 입던 갑옷에 달려 있던 미늘 한 개가 떨어져 나갔다. 배표가 다급히 허리에 숨겼던 예리한 단검을 꺼내어 숨이 넘어간 독융의 목을 잘라 가지고 다시 담장을 뛰어 넘어 넓은 공터로 나왔다. 범개 이하의 당진의 장군들은 배표의 손에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는 독융의 수급이 들려 있는 것을 보고 그가 싸움에서 이긴 것을 알았다. 이윽고 범개는 군사들에게 관문을 활짝 열고 란영의 진영으로 돌격하도록 했다. 해숙과 모강이 병사들을 이끌고 쇄도해 가자 란영의 군사들은 반은 싸움 중에 죽고 나머지 반 중에 다시 그 반은 항복했다. 독융이 데리고 온 란영의 군사들 중 도망친 사람들은 십의 일이도 못되었다. 한편 배표가 독융과의 싸움에서 이기고 중군 막사로 개선한 것을 본 범개는 술을 땅에 붓고 하늘을 쳐다보며 천지신명에게 말했다.

「참으로 이것은 우리 주공의 홍복이로다!」

그런 다음에 친히 술잔에 술을 채워 배표에게 권했다. 배표가 술을 다 마시자 그를 평공에게 데리고 가서 알현을 시켰다. 평공이 배표에게 상으로 병거 일승을 하사하고 공적부에다 일등의 공을 세웠다고 기록하게 했다. 잠연 선생이 이것을 두고 시를 지었다.

독융의 귀신같은 힘은 세상에 당할 자가 없었는데

그를 상대한 자는 뜻밖에도 노예 출신이었다.

믿음으로써 사람을 쓰니 파격일 수밖에 더 있겠는가?

조롱박에 무늬를 새기는 것과 같이 호의호식만하는 사람을 비웃노라!

督戎神力世間无(독융신력세간무)

敵手誰知出隸夫(적수수지출예부)

始信用人須破格(시신용인수파격)

笑他肉食似雕瓠3)(소타육식사조호)

3. 란영멸족(欒盈滅族)

- 곡옥성에 포위되어 멸족된 란영 -

한편 란영은 대부분의 거마를 이끌고 북쪽의 관문을 공격하고 있었다. 그는 독융이 해옹과 모경을 연달아 죽이고 싸움에서 이겼다는 승전보를 접했다. 란영이 그 부하들을 향하여 독융의 용기를 칭찬하며 말했다.

「내가 만약 독융과 같은 장군 두 명만 있다면 어찌 고궁을 파하지 못할 것을 걱정하겠는가?」

식작이 곽최의 발등을 밟으며 신호를 하자 곽최가 눈짓으로 답하고는 두 사람은 각기 머리를 조아리며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단지 란방(欒魴)과 란락(欒樂) 두 사람만이 공을 세우기 위해 시석도 마다하지 않고 앞장서서 북관을 공격했다. 한무기(韓無忌)와 한기(韓起)는 관 앞으로 나와 여러 번 란방과 란락 두 사람에게 패한 관계로 감히 싸움에 응하지 못하고 오로지 관문을 굳게 지켰다. 이윽고 고궁을 포위한지 3일 째 되는 날 란영은 남문을 공격하던 자기의 군사들이 싸움에서 패했다는 보고를 받았다.

「독융은 싸움 중에 전사하고 남문을 공격하던 군사들은 모두 전멸했습니다.」

란영이 놀라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다가 식작과 곽최를 불러 상의하려 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웃으면서 란영에게 말했다.

「그 대단한 독융장군도 이기지 못했는데 하물며 우리 같은 장수들이 어찌 할 수가 있겠습니까?」

란영이 듣고 낙담하여 눈물을 흘렸다. 란락이 곁에서 듣고 있다가 말했다.

「우리들이 죽고 사는 것은 오늘 밤 안으로 결정 날 것입니다. 마땅히 지금 당장 우리의 군사들을 북문에 집결시켰다가 시간이 삼경이 지나면 초거를 관문 밑에 대고 그 위로 올라가 불을 지른다면 혹시 운이 좋으면 고궁으로 들어갈 수도 있을 것입니다.」

란영이 란락의 계책을 따랐다. 한편 평공은 독융이 죽은 것에 대해 기뻐하며 술을 내어 그 일을 축하하였다. 한무기와 한기가 모두 평공이 있는 곳으로 와서 만수무강을 빌면서 술잔을 올리며 이경까지 마시고 술자리를 파했다. 두 사람이 북관으로 돌아와 순시를 끝내려고 하는 순간에 갑자기 병거 구르는 소리가 요란하게 일어났다. 이윽고 란영의 군사들이 대거 관문 밑으로 몰려들고 초거가 관문 밑으로 굴러와 사다리를 올리는데 그 높이가 관의 높이와 같았다. 초거에서 불화살이 벌 떼처럼 날아와 관문을 태우기 시작했다. 화염이 충천하여 관문을 지키는 군사들이 한 발자국도 가까이 다가갈 수 없었다. 란락이 앞장서고 란방이 그 뒤를 따라 승세를 타고 고궁의 외관(外關)을 점거할 수 있었다. 한무기는 군사들과 함께 내관(內關)으로 후퇴하고 중군에 비보를 띄워 구원을 청했다. 범개가 위서에게 명하여 남관으로 가서 지키게 하고 남관을 지키던 순오를 북관으로 보내 한무기와 한기를 구원하도록 했다. 곧이어 평공이 망루에 올라 북쪽을 살펴봤는데 고궁의 외관에 란영의 군사들이 주둔하고 있는 것이 보이기는 했지만 웬일인지 아무 소리도 나지 않고 조용하기만 했다. 범개가 의아하게 생각하며 말했다.

「이것은 필시 반군들이 흉계를 갖고 있음에 틀림이 없다.」

범개는 북문의 내관으로 전령을 보내 목숨을 걸고 온힘을 다하여 관을 지키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윽고 황혼 때가 되자 다시 란영의 군사들이 초거를 올라타고 예전처럼 불화살을 날려 내관의 성문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때는 이미 소가죽으로 된 장막을 만들어 그 위에 물을 부어 불린 다음 양쪽에서 잡아 당겨 관문 위를 덮었기 때문에 아무리 불화살을 쏴도 성문에 불이 붙지 않았다. 그날 밤 공성전이 끝나고 양 진영이 잠시 휴식을 취했다. 범개가 말했다.

「반군들이 이미 지근거리까지 접근하였으니 만약 오랫동안 물리치지 못하고 장기전으로 돌입한다면 제나라가 그 기회를 타고 쳐들어오면 우리나라는 필시 위험에 빠질 것입니다.」

범개는 즉시 그의 아들 범앙에게 명하여 배표와 한 떼의 군마를 인솔하고 남관을 우회하여 북관으로 가서 적의 배후에서 공격하도록 했다. 내관을 지키는 한무기 및 한기와 공격할 시각을 정하여 약속하고 순오에게는 모강과 한 떼의 군마를 인솔하고 내관에서 관문을 열고 나가 외관에 있는 적군을 공격하도록 하였다. 범개는 란영의 군사들을 전후에서 협공하도록 하여 그들로 하여금 앞뒤를 살필 수 없도록 할 작정이었다. 조무와 위서에게는 군사들을 외관으로 이동시켜 주둔하게 하여 란영이 남쪽으로 달아나는 것을 막게 하였다. 작전 지시를 끝낸 범개는 평공을 모시고 성루에 올라 싸움의 돌아가는 형세를 관망하려고 했다. 범앙이 출전을 하다가 범개에게 다시 와서 청했다.

「저는 나이가 아직 어려 부하들에게 무게가 없습니다. 저에게 중군기와 북을 사용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범개가 허락했다. 범앙이 칼을 뽑아 들고 병거에 올라 중군원수기를 세우고 행군을 시작했다. 남관의 관문을 나오자 그의 부하 장수들에게 말했다.

「오늘의 싸움은 단지 전진만 있을 뿐이지 후퇴란 없다. 만약 우리가 이 싸움에서 지기라도 한다면 내가 먼저 칼로 목을 찔러 자결하여 제군들만 죽게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범앙의 휘하 장수들과 군사들이 일약 용기백배하였다.

한편 순오가 범개의 장령을 받들어 장수들과 군사들을 배불리 먹이고 군장들을 정비하여 공격할 시간이 되기만을 기다렸다. 그때 란영의 군사들은 내관의 관문에 대한 공격에 별 소득이 없자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소란을 떨며 외관으로 모두 물러갔다. 내관을 지키던 순오는 범앙이 이끄는 바깥쪽의 군사들이 이미 당도한 것으로 짐작했다. 순오는 북소리를 한번 크게 울리게 하고는, 관문을 활짝 열어 모강을 선봉으로 삼고 자신은 갑사와 보졸을 이끌고 일제히 외관을 향해 돌진했다. 란영도 역시 안과 밖에서 동시에 적군의 협공을 받을까 걱정하여 란방으로 하여금 철엽거(鐵葉車)로 내관의 관문 입구를 막아 지키게 했다. 순오의 군사들은 란방의 철엽거로 인해 남관의 관문을 나갈 수가 없었다. 이때 마침 범앙이 이끄는 군사들이 외관 밖에 당도했다. 란영은 외관 밖에 중군원수기가 나부끼는 것을 보고서 놀라 말했다.

「중군원수가 직접 출정한 것이 아닌가?」

사람을 보내 자세한 내막을 알아보게 한바 돌아와 보고했다.

「중군원수 범개가 아니라 아들 범앙이 온 것입니다.」

란락이 듣고 말했다.

「그렇다면 너무 걱정할 필요가 없겠다.」

곧이어 란락이 활을 꺼내어 화살을 옆구리에 끼고 병거 안에 서서 좌우에 있던 군사들을 향해서 말했다.

「너희들은 밧줄을 들고 나를 따르다가 내가 쏜 화살을 맞고 쓰러진 자들을 묶어 끌고 오너라.」

란락이 즉시 병거를 몰아 당진군 속으로 들어가 좌우를 향해 화살을 날렸는데 한 발도 빗나가지 않고 모두가 당진의 군사들을 맞추었다. 그때 같은 수레를 타고 있던 그의 동생 란영(欒榮)이 란락을 보고 말했다.

「화살이 너무 아깝습니다. 이름 없는 소졸들만 맞추어서는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란락이 활쏘기를 멈추었다. 그러자 멀리서 병거 한 대가 자기가 있는 곳을 향하여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병거 위에 장수 한 명이 타고 있었는데 머리에는 무두질한 가죽으로 만든 모자를 쓰고 비단 전포를 입은 자였는데 그 모습이 몹시 괴이하였다. 란영이 그 장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말했다.

「저 놈은 이름이 배표라고 하는데 우리의 독융장군을 살해한 자입니다. 활을 쏴서 죽이십시오.」

「그가 달려와 백 보 안으로 가까이 다가오면 내가 쏴서 죽이겠으니 너는 그때 박수를 쳐도 좋을 것이다.」

그가 말을 채 마치기도 전에 또 다른 병거 한 대 가 란락의 곁을 달려 지나갔다. 란락은 병거에 타고 있는 장수가 범앙이라는 것을 알았다. 란락이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내가 만약 범앙을 쏴서 맞추는 것이 배표를 잡는 것 보다 낫지 않겠는가?」

란락은 마음을 고쳐먹고 즉시 병거를 몰아 범앙의 뒤를 쫓아 화살을 쐈다. 란락의 화살은 원래 백발백중이었는데 공교롭게도 그 화살 한 개만은 범앙을 맞추지 못했다. 범앙이 뒤를 돌아보고 큰 소리로 욕을 해대었다.

「역적 놈아! 죽음이 너희들 머리 꼭대기에 앉아 있는데 어찌 감히 한낱 화살 따위로 나를 범하려고 하느냐?」

란락이 병거의 방향을 바꾸게 해서 도망치도록 했다. 란락이 도망친 것은 범앙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아니었다. 그가 쏜 화살이 범앙을 맞추지 못하자 병거를 돌려 달아나는 척한 것이다. 란락은 범앙이 자기의 뒤를 쫓아와서 가까이 다가서면 좋은 기회를 포착하여 화살을 쏘아 맞추려고 한 것이다. 그러나 란영의 군중에 머물고 있던 식작과 곽최는 란락이 활을 쏘아 공을 이룰 것을 걱정하고 있었다. 그때 마침 범앙에게 쫓기는 척하며 도망쳐 오던 란락을 보자 두 사람은 즉시 큰 소리로 외쳤다.

「우리 군사들이 싸움에서 져 도망쳐오고 있다!」

란락의 병거를 몰던 어자가 그 소리를 듣더니 자기들의 다른 부대가 싸움에서 패한 것으로 잘못 알아듣고 머리를 들어 사방을 살펴보느라 손에 잡고 있던 고삐가 느슨하게 되었다. 그 사이에 병거를 끌고 있던 말들이 해이해지게 되었다. 란락이 달려오고 있던 길 위에 커다란 홰나무를 베고 남은 그루터기가 있었다. 란락의 병거 바퀴가 잘못하여 그 그루터기에 걸려 엎어졌다. 넘어진 병거에서 란락이 기어서 밖으로 나왔다. 그때 마침 란락의 뒤를 쫓아오던 배표가 긴 극으로 란락을 마구 찔러 그의 팔꿈치를 끊었다. 가련하게도 란씨 종족들 중 제일 가는 맹장이었던 란락은 금일 홰나무 그루터기에 수레가 전복되어 죽었다. 어찌 하늘이 정해준 운명이라고 할 수 없겠는가! 염옹이 이 일을 두고 시를 썼다.

원숭이처럼 팔이 긴 장군이 쏘는 화살은 원래 실수가 없었는데

공교롭게도 그 화살 한 개만은 맞추지 못하여 영웅을 그르치게 만들었다.

하늘이 이미 란씨들의 후사를 끊으려고 하는데

란락이 싸움 중에 큰공을 세우기를 용납했겠는가?

猿臂將軍射不空(원벽장군사불공)

偏敎一矢誤英雄(편고일시오영웅)

老天已絶欒家嗣(노천이절란가사)

肯許軍中建大功(긍허군중건대공)

그 수레에 같이 타고 있었던 란영(欒榮)은 엎어진 병거에서 먼저 기어 나와 자기 진영으로 달려가다가 란락이 배표에게 살해당하는 것을 보았으나 감히 되돌아가 구하지 못하고 급히 도망쳐 목숨을 건졌다. 란영의 군사들이 무너진 것을 본 식작과 곽최는 제나라로 돌아가기 어렵다고 생각하여 곽최는 섬진으로 식작은 위나라로 도망쳐 버렸다.

한편 란영은 란락이 전사했다는 보고를 받자 목을 놓아 크게 울었다. 란영의 군사들도 역시 슬퍼하여 모두 눈물을 흘리며 슬퍼했다. 내관에서 나오는 관문을 봉쇄하며 지키고 있던 란방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군사를 거두어 란영을 호위하고 남쪽을 바라보고 군사들을 후퇴시켰다. 순오와 범앙이 관문 밖에서 군사를 합하여 란영의 뒤를 추격했다. 란방이 곡옥에서 데려온 군사들과 함께 결사적으로 추격군에 대항하여 싸운 끝에 순오와 범앙 휘하의 군사들을 수없이 많이 죽였다. 순오와 범앙은 할 수 없이 군사를 물리칠 수밖에 없었다. 란영과 란방도 역시 치열한 싸움 끝에 몸에 중상을 입고서 고성의 남문에 이르렀다. 남문 밖에는 이미 위서가 군사를 이끌고 란영의 퇴로를 막고 있었다. 란영이 눈물을 흘리며 위서를 향해 말했다.

「장군은 제가 하군에서 같이 일할 때를 기억하고 있지 않으십니까? 이 란영은 필시 죽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이렇게 장군의 손에 죽을지는 몰랐습니다.」

위서가 마음속에 부끄러운 마음을 참지 못하고 병거와 보졸들을 좌우로 도열하게 하여 란영에게 길을 내주게 하였다. 란영과 란방이 곡옥의 병사들 중 아직 살아 있는 잔병들을 이끌고 황급히 곡옥의 성안으로 되돌아갔다. 이윽고 얼마 후에 위서가 지키고 있던 곳에 조무가 한 떼의 군마를 끌고 당도하여 그에게 물었다.

「란영이 이미 이곳을 지나간 것 같은데 어찌 그 뒤를 추격하지 않습니까?」

「그는 마치 가마솥 안의 고기이며 독 안에 든 자라와 같아 요리사의 손끝 하나에 운명이 달려 있는 처지라 하겠습니다. 제가 선인들의 동료로써의 정을 생각하여 진실로 그에게 칼을 들이 댈 수가 없었습니다. 부디 저의 입장을 헤아려 용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조무가 듣고 마음속으로 란씨들이 처한 운명이 측은하다고 생각하여 그 역시 란영의 뒤를 쫓지 않았다.

한편 범개는 란영이 이미 신강성에서 빠져나가 곡옥성으로 돌아갔다는 보고를 받았다. 범개는 란영이 무사히 곡옥으로 돌아갈 수 있었던 것은 위서가 란영에게 인정을 베풀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불문에 붙였다. 즉시 그의 아들 범앙에게 말했다.

「 곡옥의 군사들은 모두 란영을 따르고 있다. 이번에 가서 필히 곡옥을 탈환하여 란영의 발톱과 이빨을 모두 뽑아 버려야 할 것이다. 너는 일군을 끌고 먼저 가서 곡옥성을 포위만 하고 시간을 끌어라.」

순오가 범앙과 같이 곡옥으로 출정하고 싶다고 청하자 범개가 허락했다. 두 사람의 장수가 병거 3백 승을 이끌고 란영이 있는 곡옥성을 포위하였다. 범개는 평공을 고궁에서 나오게 하여 궁궐로 모셨다. 범개가 평공에게 청하여 배표의 이름이 적혀있는 노예들의 명부인 단서를 달라고 하여 불에 태웠다. 배표가 세운 공으로 20여 집안에 속한 사람들이 노예의 신분에서 해방된 것이다. 이어 범개는 배표를 아장으로 명하여 중군에 속하게 했다.

한편 제장공은 란영을 당진으로 보낸 후에 다시 병거와 군사들을 대거 동원하여 왕손휘(王孫揮)는 대장으로 신선(申鮮)은 부장으로 삼고 주작과 형괴는 선봉으로, 안리(晏氂)는 후위를 맡기고 가거(賈擧)와 병사(邴師)는 자기의 어가를 호위하는 무사로 삼아 길일을 택하여 당진국을 향해 출병했다. 장공이 거느린 제군은 당진으로 가는 길목인 위나라의 도성 제구성(帝丘城)을 지나면서 공격하자 위나라는 굳게 지키기만 할뿐 감히 출성하여 싸움에 응하지 못했다. 제장공은 할 수 없이 제구성의 북쪽으로 돌아 곧바로 당진의 경계로 들어가서 조가(朝歌)4)를 포위해 공격했다. 조가성은 포위한지 3일만에 함락시킬 수 있었다. 장공이 조가성 부근의 조양산(朝陽山)에 올라 군사들을 호군했다. 이어 군사들을 둘로 나누어 왕손휘와 여러 장군들은 전대를 맡아 좌측의 길을 취하여 맹문(孟門)5)의 험로로 진격하게 하고, 장공 자신은 친히 용호(龍虎) 이작(二爵)에 속하는 호위 무사들을 이끌고 후대를 맡아 우측의 길을 취하여 공산(共山)6)으로 진격하여 모두 태항산 어귀에서 만나기로 하였다. 제나라 군사들은 행군 중의 주변 고을에 살인과 약탈을 자행하여 그 피해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그때 형괴는 공산에 당도하여 노숙하다가 독사에 물려 그 독이 몸 속에 퍼져 죽었다. 제장공이 형괴의 죽음을 매우 애석하게 생각했다. 제군이 공산에서 다시 출발하여 하루도 채 걸리지 않아 태항산 입구에 당도하였다. 이곳에서 제나라의 양로 군사들은 서로 만나 한 대로 만들었다. 장공이 태항산 산록에 올라 당진의 심장부를 내려다보며 신강성(新絳城)을 공격하기 위해서 휘하 장군들과 그 전략을 의논했다. 제군이 신강성을 향해 행군을 시작하려는 순간 갑자기 첩자가 달려와 곡옥의 군사들로 신강성을 쳐들어간 란영은 이미 싸움에서 패하여 다시 곡옥성으로 되돌아가고 당진의 평공은 대군을 이끌고 제나라 군사들을 공격하기 위해 출병하여 조만 간에 장공이 있는 곳에 당도할 것이라고 고했다. 장공이 한탄했다.

「나의 뜻이 여기서 꺾이고 마는 구나!」

장공은 즉시 소수(少水) 강변에서 군사들을 열병하고 무력시위만 한 번 행한 다음 곧바로 본국을 향해 퇴각하기 시작했다. 한단을 지키던 당진의 대부 조승(趙勝)이 성내의 군사를 이끌고 제나라 군사들의 뒤를 추격했다. 장공은 다만 당진의 대군이 뒤를 따라 올 것만을 걱정하여 다시 제나라의 군사들을 두 대로 나누어 자기는 전대를 이끌고 서둘러 앞으로 나가고, 후대는 안리(晏氂) 한 사람에게만 맡겨 당진의 추격군을 막게 했다. 뒤에 처진 안리는 조승이 이끄는 한단성의 수비군과 싸워 패한 끝에 사로잡혀 참수 당하고 말았다.

한편 범앙과 순오는 곡옥성을 한 달이 넘게 포위하고 있었다. 란영은 성 밖으로 나와 여러 번 싸움을 걸었으나 이길 수가 없었다. 와중에 성중의 군민들 중 반 수 이상이 싸움 중에 죽어 결국은 힘이 다하여 더 이상 성을 지킬 수가 없었다. 곡옥성은 드디어 범앙과 순오가 이끄는 당진군에 의해 함락 당했다. 곡옥의 성주 서오는 칼 위에 엎어져 죽고, 란영(欒盈)과 또 다른 란영(欒榮)은 모두 당진군에게 사로잡혔다. 란영이 한탄하였다.

「내가 신유(辛兪)의 말을 듣지 않아 일이 이 지경이 되어 버렸구나!」

순오가 두 사람을 함거에 가두어 신강성으로 이송하려 했으나 범앙이 반대하면서 말했다.

「주공께서는 우유부단하시어 만일 란영이 주공에게 애걸하여 용서를 빌게 되면 죽이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의 원수를 놓아주는 것이나 다름이 없는 일일 것입니다.」

범앙은 즉시 밤이 되기를 기다려 사람을 시켜 밧줄로 란영의 목을 졸라 죽이게 했다. 그때 란영(欒榮)도 함께 죽였다. 이렇게 해서 당진에 살던 란씨 종족들은 멸족되고 말았다. 그러나 란방(欒魴)만은 곡옥성이 함락되기 직전에 밧줄을 타고 성을 탈출한 후 몸을 숨겨 송나라로 가서 간신히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범앙과 순오가 회군하여 평공에게 승전을 고했다. 평공은 란씨들이 반역을 꾀한 사실을 적은 국서를 제후들에게 돌려 알리도록 했다. 제후들은 사자들을 보내어 반란을 무사히 진압한 것을 축하했다. 후에 사관이 란영이 잘못하여 멸족을 당한 것에 대해 글을 지었다.

란빈(欒賓)은 환숙(桓叔)7)의 스승이었고

란지(欒枝)는 문공을 도와 공을 세웠다.

란돈(欒盾)과 란서(欒書)에 이르기 까지

대대세세로 나라의 인재를 배출했다.

란염 대에 이르러 사치가 극심하여

곧이어 훈신들 반열에서 빠지게 되었다.

염의 아들 영이 비록 선비를 좋아했다고는 하나

운이 다하여 목숨을 잃었으니

집안을 지키려면 법도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자손들에게 교훈으로 삼을지어다.

賓傅桓叔 枝佐文君 (빈부환숙 지좌문군)

傳盾及書 世爲國楨 (전돈급서 세위국정)

檿一汰侈 遂墜厥勛 (염일태치 수추궐훈)

盈雖好士 適殞其身 (영수호사 적운기신)

保家有道 以誡子孫 (보가유도 이계자손)

이때 범개가 나이를 이유로 관직을 사퇴했다. 조무가 그의 중군원수 직을 이어 당진의 정사를 맡아보게 되었다.

4. 杞梁死戰(기량사전)

- 거나라의 차우문(且于門) 앞에서 온힘을 다해 싸우다가 전사한 제나라의 장사 기량

한편 당진을 정벌하기 위해 군사를 동원하여 원정을 나갔으나 아무런 전과도 올리지 못하고 회군하던 제장공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호기를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이윽고 장공과 그 군사들이 제나라 경계에 당도했지만 곧바로 임치성으로 들어가비 않으려고 하면서 말했다.

「평음에서의 싸움에서 거(莒)나라 놈들이 당진국을 도와 스스로 향도로 자처하여 우리 제나라를 공격하려고 했다. 이 원수를 어찌 갚지 않고 참을 만 있단 말인가?」

제장공은 즉시 자기의 군사들을 제나라 경계 상에 주둔시키고 거마와 군졸들을 대대적으로 열병하였다. 장공은 주작과 가거에게 각기 특별히 견고하게 제작된 병거 5승씩을 주며 이들을 오승지빈(五乘之賓)8)이라 부르게 했다. 이는 병거 다섯 대에 해당하는 전투력을 갖춘 용사를 뜻한 것이다. 가거가 임치 사람 화주(華周)와 기량(杞梁)의 무용을 칭찬하며 천거하자 장공이 즉시 사람을 보내 불렀다. 화주와 기량이 와서 장공을 알현하자 장공이 그들에게 병거 일승을 주어 같이 타고 출전하여 공을 세우도록 했다. 화주가 장공 앞에서 물러 나와 음식을 전폐하고 기량을 향해 말했다.

「주공께서 오승지빈이라는 작위를 만들어 장수들을 임명한 것은 각기 그들이 갖추고 있는 무용의 정도에 따른 것이오. 주군께서 우리 두 사람을 부르신 것도 역시 우리가 용력이 있기 때문인데 다른 한 사람은 오승지빈에 임명하고 우리 두 사람은 일승지빈으로 하니 이것은 우리를 쓰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욕되게 하는 것이라 할 수 있소. 우리가 주공이 내린 일승지빈의 작위를 사양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어찌 생각하오?」

「저의 집에 노모가 계신데 내 마땅히 주공에게서 받은 명을 노모에게 품한 후에 그 말씀을 따라야 되겠소!」

기량이 집으로 돌아가 그 모친에게 장공에게서 자기가 일승지빈에 임명되었다고 고했다. 기량의 노모가 듣고 말했다.

「네가 태어난 이후로 의로운 일이라고는 행한 적도 없이 이름도 남기지 않고 죽는다면 비록 네가 오승지빈에 있다 한들 그 누가 너를 비웃지 않겠느냐? 네가 사람들의 비웃음을 사지 않으려면 군명을 피해 도망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기량이 모친의 말을 화주에게 전하자 화주가 말했다.

「아녀자의 몸으로 군명을 저버리지 않는데 우리 사나이 대장부들이 어찌 감히 군명을 저버리겠소?」

두 사람은 같은 병거를 타고 장공을 곁에서 시위하는 일을 맡았다. 제장공이 군사를 며칠간 휴식을 취하게 한 다음 령을 전하여 왕손휘는 대군을 지휘하여 제나라 경계에 주둔하게 하고 단지 오승지빈의 장수들과 정예병 3천 명만을 선발하여 입에는 함매를 물게 하고 북은 뉘어서 아무도 몰래 행군하여 거나라를 기습하려고 하였다. 장공을 시위하고 있던 화주와 기량이 선봉을 청하자 장공이 두 사람에게 물었다.

「그대들은 무장한 병거가 몇 대나 필요한가?」

화주와 기량이 말했다.

「우리 두 사람은 단지 맨몸으로 와서 주군을 뵈었습니다. 그래서 역시 우리 두 사람만이 나가 싸움에 임하려고 합니다. 병거는 주군께서 하사하신 한 대면 우리 두 사람이 타는데 충분합니다.」

장공이 그들의 무용을 시험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어서 얼굴에 웃음을 띠우며 허락했다. 화주와 기량이 서로 번갈아 가며 말을 몰기로 약속하고는 거성으로 출발하면서 군사들을 향해서 큰 소리로 외쳤다.

「우리가 출전하는데 융우(戎右)를 맡을 무사 한 사람만 더 구할 수 있다면 가히 일대를 이룰 수 있음이다. 너희들 중 우리와 같이 나아가 싸우고 싶은 사람은 없느냐?」

군사들 중 소졸 한 명이 몸을 일으켜 앞으로 나오더니 말했다.

「원컨대 소인이 두 분의 장군을 따라가고 싶으나 장군들께서 저를 거두어 주실지 모르겠습니다.」

화주가 물었다.

「그대의 이름은 무엇인가?」

그 소졸이 대답했다.

「저는 제나라 본국 출신 습후중(隰侯重)이라는 사람입니다. 두 분 장군님들의 무용을 평소에 흠모해 왔습니다. 부디 저를 거두어 주시기 바랍니다.」

화주와 기량이 습후중을 거두어 세 사람이 병거 한 대에 같이 타고 출전하게 되었다. 세 사람은 다시 병거에 장군기를 세우고 북을 달고서는 마치 바람처럼 거성을 향해서 달려갔다. 그들이 거나라 근교에 당도하자 날이 어두워져 그 날 밤은 노숙했다. 다음 날이 아침이 되자 제나라의 군사들이 쳐들어온다는 것을 알게 된 거나라의 군주 여비공(黎比公)은 친히 갑사 300명을 이끌고 근교를 순찰 중에 있었다. 여비공이 화주와 기량의 병거를 발견하고는 붙잡아서 심문하려고 하였다. 화주와 기량이 두 눈을 크게 부릅뜨며 큰소리로 외쳤다.

「우리 두 사람은 곧 제나라의 당당한 장수다! 누가 감히 앞으로 나와 우리와 한 번 싸워 보겠는가?」

여비공이 크게 놀랐으나 곧이어 그들이 단지 병거 한 대만을 끌고 온 것을 보자 그가 이끌고 온 갑사들에 그들이 탄 병거를 몇 겹으로 에워싸게 했다. 화주와 기량이 습후중을 향하여 말했다.

「너는 우리가 싸우고 있는 동안 쉬지 말고 북을 계속 치도록 하라!」

그런 다음에 그들은 각기 장극을 들고 병거에서 뛰어 내려 좌충우돌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두 사람 앞에 있던 거나라의 갑사들은 삽시간에 모두 죽어 나갔다. 여비공이 데리고 온 300 갑사들 중 거의 절반에 해당하는 인원이 순식간에 죽거나 부상을 당했다. 여비공이 보고 두 사람을 향해 말했다.

「과인은 이미 두 분 장군들의 무용에 대해 익히 알게 되었습니다. 구태여 싸우다가 죽을 필요 없이, 원컨대 나에게 항복하여 거나라를 나누어 함께 다스리면 어떻겠습니까?」

화주와 기량이 목소리를 같이하여 대답했다.

「자기 나라를 버리고 적국에게 귀순하면 그것은 충(忠)이 아니며 군주의 명을 받고서도 저버린다면 그것은 신(信)이 아니오. 우리가 군주의 나라에 깊이 들어와서 군사들을 한 명이라도 더 죽이는 것이 우리 장수된 자들의 본분이라 만약에 우리가 거나라에 가서 사리를 탐하는 행위는 신하된 자로써 할 짓이 아니오!」

두 사람이 말을 마치자 다시 극을 손에 들고 다시 싸움을 걸었다. 여비공은 도저히 당해 내지 못하고 많은 군사를 잃고 도망쳤다. 제장공이 본대를 끌고 거나라의 근교에 당도하자 화주와 기량 두 사람이 거나라의 많은 군사들과 싸워 이겼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장공이 두 장수를 불러 말했다.

「과인이 이미 두 장군들의 용력을 알았다! 또다시 나가 단거로 싸울 필요는 없느니라! 내가 앞으로 두 장군들에게 제나라의 땅을 떼어 주어 같이 다스리겠노라!」

화주와 기량이 대답했다.

「주군께서 오승지빈이라는 작위를 만드셨으나 우리 두 사람을 그 직에 두지 않으셨습니다. 그것은 우리들의 용력이 주공께서 생각하는 바에 미치지 못해서 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리(利)로써 저희들을 회유하시니 이것은 우리들의 행위를 모욕하시는 처사이십니다. 적진에 깊숙이 들어가서 적군을 한 명이라도 더 죽이는 것은 장수의 본분인데 그것을 기화로 나라로부터 사리를 탐하는 것은 신하된 자로써 취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두 사람은 말을 마치고, 이어 장공에게 읍을 하고 물러 나와 자기들이 타고 온 병거를 버리고 습후중과 함께 세 사람이 거나라 군사들이 주둔하고 있는 차우문(且于門)으로 곧바로 달려갔다. 이때 여비공은 사람들에게 령을 내려 좁은 길목에 도랑을 파고 숯을 넣어 불을 피우게 하였다. 숯불이 이글이글 타올라 아무도 앞으로 전진하지 못했다. 습후중이 그 광경을 보더니 말했다.

「저는 옛날의 선비들이 자기의 몸을 바쳐 후세에 이름을 남길 수 있었다는 것을 들었습니다. 제가 몸으로 저 좁은 길의 불길을 막아 건너 드리겠습니다.」

곧이어 습후중이 방패를 숯불 위에 올려놓고 자기가 다시 그 위에 엎드려 두 사람에게 자기의 등을 밟고 건너가라고 말했다. 화주와 기량이 습후중의 등을 밟고 이글이글 타오르는 불덩이 위를 건넌 후에 돌아서 습후중을 보았다. 그때는 습후중은 이미 이글거리는 숯불에 새까맣게 타 버린 후였다. 두 사람이 습후중이 있는 곳을 쳐다보며 큰 소리로 울부짖었다. 기량은 이윽고 눈물을 거두었으나 화주는 계속 곡하기를 그치지 않았다. 기량이 화주를 보며 말했다.

「그대는 죽는 것이 무섭습니까? 어찌하여 그렇게 오랫동안 곡만을 하고 계시는 것이오?」

「내가 어찌 이 마당에 죽음을 두려워하겠소? 이 사람의 용기는 우리와 같은데 우리 보다 먼저 죽으니 내 이렇게 슬퍼하는 바요.」

거나라 군주 여비공은 이미 숯불을 피워 논 좁은 길을 넘어 온 제나라의 두 장수의 모습을 보자 황급히 활을 잘 쏘는 군사 100명을 불러 성문 좌우에 숨게 하고는 그 들이 가까이 오면 일제히 쏘도록 했다. 화주와 기량이 성문 앞으로 와서 성문을 빼앗으려고 하자 잠복하고 있던 궁수들이 두 사람을 향해 일제히 활을 쏘았다. 두 장수가 쏟아지는 화살을 무릅쓰고 앞으로 돌진하여 다시 궁수들 중 27명을 살해했다. 차우문을 지키는 군사들이 성 위에서 동그랗게 둘러서서 성문 밑을 향하여 화살을 비 오듯이 날렸다. 기량은 화살을 수 없이 맞고서는 결국은 죽고 말았다. 몸에 화살을 10여 발을 맞고 힘이 다한 화주는 거나라 군사들에게 사로잡히게 되었다. 화주가 아직 숨이 붙어 있었기 때문에 여비공이 화주를 병거에 싣고 거성 안으로 데려갔다. 후세의 사관이 이 두 사람의 용력에 대해 시를 지어 노래했다.

용감한 무사들에게 내리는 오승지빈의 직을

부러워하며 서로 다투는데

그 모양은 마치 천균을 들 수 있는

곰과 호랑이 같은 천하장사들이었다.

그러나 누가 알았으랴?

적진에 몸을 던져 목숨을 바치고

단거로 달려가 싸움 끝에 순절한 사람은

오히려 일승지빈의 의인들이었네!

爭羨赳赳五乘賓(쟁선규규오승빈)

形如熊虎力千鈞(형여태호력천균)

誰知陷陣捐軀者(수지함진연구자)

却是單車殉義人(각시단거순의인)

한편 본대를 이끌고 뒤따라오던 제장공은 사람을 보내 기량과 화주 두 사람의 소식을 알아보게 하였다. 또한 장공은 두 장군이 싸움 중에 스스로 죽으려는 뜻을 알고 그들을 구하기 위해 본대의 군사를 이끌고 앞으로 전진하여 이윽고 거성의 차우문에 당도하였다. 장공은 세 사람이 이미 모두 전사했다는 소식을 듣고 대노하여 거국의 성을 공격하려고 했다. 이때 거국의 여비공이 제나라 진영으로 사람을 보내와 사죄를 청하면서 자기의 말을 전하게 했다.

「저희 군주께서는 단지 단거로 우리의 성을 공격하려고 달려드는 사람이 있어 이를 막았을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단거에 타고 있던 사람들이 대국의 장수들인지 몰랐기 때문에 할 수없이 싸움 중에 죽이게 되었습니다. 또한 대국은 이번 싸움에서 죽은 사람은 모두 세 명에 불과합니다만 대국의 세 장수에 의해 살해된 우리나라의 병사들은 백 명이 넘습니다. 더욱이 그들은 스스로 죽음을 청한 것이지 우리가 군사를 내어 죽인 것은 아닙니다. 저희 주군께서는 군주님의 위엄을 익히 알게 되어 저에게 특별히 당부하여 백배사죄를 드리고 우리는 대대로 제나라에 조공을 드리고 절대 두 마음을 품지 않겠다고 맹세하셨습니다.」

그러나 장공은 노기가 풀리지 않아 거나라의 화의 요청을 거절했다. 여비공이 다시 사자를 보내어 화의 신청을 받아 줄 것을 청하면서 기량의 시신과 함께 화주를 돌려보내 주고 황금과 비단으로 제나라 군사들을 호군하였다. 장공은 그래도 허락하지 않았다. 그때 갑자기 왕손휘가 급한 전갈을 보내 보고하였다.

「당진의 군주가 송(宋), 노(魯), 위(衛), 정(鄭) 등 중원의 여러 나라 군사들 동원하여 이의(夷儀)9)라는 곳에서 회동하여 우리 제나라를 정벌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하니 주공께서는 하루속히 군사를 물리쳐 당진과 중원 제국의 연합군의 침입에 대책을 강구하셔야 될 것입니다.」

본국의 화급한 보고를 받게 된 장공은 여비공의 화의 신청을 허락하였다. 거국의 여비공은 수많은 황금과 비단을 부고에서 꺼내어 장공에게 바쳤다. 그리고 그때까지 살아 있던 화주는 온거에 싣고, 기량의 시신은 자기가 타고 다니던 옥련(玉輦)에 태워 제나라 진영으로 보냈다. 단지 습후중의 시신만은 불덩이 위에서 모두 타서 재로 변해버려 수습할 수가 없었다. 장공이 화의를 맺은 즉시 회군하여 제나라로 향했다. 장공은 기량의 빈소를 교외에다 마련하라고 명하였다. 장공이 임치성 교외에 들어서자 기량의 처인 맹강(孟姜)이 나와서 남편의 시신을 맞이하였다. 장공이 수레를 멈추고 사람을 시켜 조의를 표하게 했다. 맹강은 장공이 보낸 사람에게 인사를 올리며 말했다.

「저의 부군인 기량이 만약 죄를 얻어 맞이한 죽음이라면 첩이 어찌 감히 욕되게 주군의 조문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가 죄를 지어 맞이한 죽음이 아니라면 비록 누추하지만 낭군의 집이 있는데 소첩은 감히 이렇듯 교외에서 낭군의 조문을 받을 수는 없습니다.」

장공이 얼굴에 부끄러운 기색을 띄우며 말했다.

「그것은 과인의 잘못이로다!」

장공은 즉시 기량의 집에 빈소를 마련하라고 좌우에 명했다. 맹강이 자기 부군의 관을 모시고 나가서 성 밖에 하관하고는 3일을 계속해서 들판에서 노숙을 하면서 기량의 관을 어루만지며 통곡을 했다. 맹강이 너무 애통해 하며 통곡을 하던 끝에 눈물이 마르더니 나중에는 두 눈에서 피가 흘러 나왔다. 그러던 어느 날 임치성(臨淄城)의 성곽이 수 척이나 무너져 내렸다. ― 너무나 애통해 하며 통곡을 했던 관계로 그 정성이 하늘을 움직여 성곽을 무너지게 한 것이었다. 이 이야기는 후세에 다음과 같이 변했다. 섬진의 범기량(范杞梁)이라는 사람이 장성을 쌓으러 갔다가 그곳에서 죽게 되었다. 그의 처 맹강녀(孟姜女)가 겨울옷을 가지고 그를 찾아 장성 밑에 당도했으나 그때는 그녀의 남편이 이미 죽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맹강녀는 그곳을 떠나지 않고 슬퍼하며 계속해서 통곡하자 그 울음소리에 성이 무너졌다고 했다. 그러나 아내 되는 사람이 슬피 울어 성이 무너졌다는 이야기는 모두 제나라 장수 기량의 죽음으로 인하여 그의 처 맹강이 너무 슬피 울었다는 고사에서 생긴 일이며, 장성이 무너진 맹강녀의 일은 이 이야기가 잘못 전해 진 것이다― 화주는 살아서 제나라에 돌아오기는 했지만 상처가 매우 중하여 얼마 있지 않다가 죽었다. 그의 처가 매우 슬퍼하였는데 다른 사람들보다는 두 배나 더 하였다. 이때부터 상을 당했을 때 곡을 하는 풍습이 생긴 것이다. 맹자가 이 두 여인에 대해 말했다.

「화주와 기량의 처는 그의 남편들이 죽었을 때 곡을 슬프게 하여 나라의 풍속을 바꾸게 했다.」

사관도 이 두 여인들에 대해 시를 지어 칭송했다.

천추에 빛나는 충성스럽고 용기 있는 사람은 기량이라고 할 수 있지만

비통한 마음에 성을 무너뜨린 그의 아내도 범상한 사람은 아니었다.

지금에 이르러 곡을 하는 것이 제나라의 풍속이 되었으니

미망인들은 슬퍼하며 우는 방법을 맹강에게서 배웠노라.

忠勇千秋想杞梁(충용천추상기량)

颓城悲恸亦非常(퇴성비통역비상)

至今齊國成風俗(지금제국성풍속)

嫠婦哀哀學孟姜(리부애애학맹강)

이 일은 주영왕 22년, 기원전 550년에 일어난 일로써 제장공 재위 4년째 되는 해였다. 그해에 곡수(穀水)와 락수(洛水) 일대에 큰비가 내려 황하가 모두 범람하여 평지의 수심이 한 자가 넘게 되었다. 뜻밖의 홍수로 인해 당진의 평공은 제나라를 정벌하려는 계획을 중지하였다.

한편 자기의 처와 간통한 제장공에 대해 원한을 품고 있던 제나라의 우경 최저는 당진의 군사들이 정벌하러 올 때를 이용하여 거사를 하려고 이미 좌경 경봉과 상의하여 그 날짜까지 정해 놓고 있었다. 최저는 거사가 성공하게 되면 둘이서 같이 제나라를 나누어 다스린다는 약속까지 경봉에게 해 놓았다. 그러나 홍수 때문에 당진의 군사들이 이의(夷儀)에서 돌아가 버린 사실을 알게 된 최저는 마음속으로 크게 실망했다. 장공에게는 이름이 고수(賈竪)라는 근시가 한 명 있었다. 그가 옛날에 사소한 잘못을 한번 저지르자 장공이 채찍으로 그의 등을 백대를 때리게 한 일이 있었다. 장공에게 원한을 품고 있는 고수에게 최저는 많은 뇌물을 주어 자기편으로 끌어 들였다. 이후로는 장공의 일거수일투족은 하나도 빠짐없이 최저에게 보고되었다.

< 제65회로 계속 >

주석

1)균(鈞)/ 춘추전국시대의 무게를 재는 단위. 일균은 30근으로 약 10키로임. 즉 3천 균이라 함은 30톤에 해당하는 무게를 말한다. 참고로 춘추 때의 한 근은 약350그람 임.

2) 단서(丹書)/ 죄를 지어 노예로 만든 사람들을 올려놓은 명부. 즉 노예명부이다.

3) 조호(雕瓠)/ 조롱박에 힘들여 예쁜 무늬를 새겨 넣다. 즉 기초가 튼튼하지 않은 것을 말함.

4)조가(朝歌) /지금의 하남성 기현(淇縣) 동북. 상(商)나라 때 제을(帝乙)이 천도하여 마지막 왕인 주왕(紂王) 때까지의 상나라 도읍이었다. 춘추 초기 위나라의 도성이기도 했다.

5)맹문(孟門)/ 춘추전국 시대 때 지금의 하남성 휘현(輝縣) 서쪽으로 나 있었던 당진으로 들어가던 험로. 사기(史記) 손자오기열전(孫子吳起列傳)의 기사에 ‘ 殷紂之國, 左孟門, 右太行, 常山在其北, 大河經其南.’라는 기사가 있다.

6)공산(共山)/ 하남성 휘현(輝縣) 북쪽에 있었던 산으로 기수(淇水)의 발원지다.

7) 환숙(桓叔)/ 당진에 봉해진 당숙우(唐叔虞)의 9세손인 목후(穆侯)는 두 아들을 두었다. 장자는 태자 구(仇)이고 차자는 성사(成師)라 했다. 세자 구는 목후의 뒤를 이어 문후(文侯)가 되었고 성사는 곡옥에 봉해져 환숙이라 불렀다. 그의 아들 장백(庄伯)이 환숙의 뒤를 이었고 이어서 무공(武公)으로 이어졌다. 진문공의 부친 헌공은 무공의 아들이다. 무공 때 곡옥의 세력이 본국의 세력보다 커져 무공이 본국의 군주인 애후(哀侯)와 그의 아들 소자후(小子侯)를 차례로 죽인 후에 뇌물을 주왕실에 바쳐 당진의 군주로써 인정을 받았다. 환숙은 실질적으로 당진국의 창시자라 할 수 있다.

8) 오승지빈(五乘之賓)/ 오승의 전투력에 해당하는 장수라는 뜻. 승(乘)이라 함은 네 마리의 말이 끄는 전차와 그곳에 타는 지휘관인 아장(牙將) 1명, 말고삐를 잡고 전차를 모는 마부(馬夫) 1명, 전투무사(戰鬪武士) 1명과 예비갑사 7명과 그 전차의 뒤를 따르는 보졸 20명으로, 모두 30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춘추 말기에 접어들어서 일승은 100명의 병력으로 늘어났다. 춘추전국 시대 때의 최소단위의 전투부대다.

9) 이의(夷儀)/ 지금의 산동성 요성시(聊城市) 서

[평설]

군사이론가들은 옛날부터 전쟁을 행할 때는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그러나 제장공(齊莊公)은 전쟁을 하기를 마치 어린아이 골목싸움 하듯이 했다. 당진을 정벌하기 위해 원정을 행했다가 아무런 공도 이루지 못하고 퇴각하다가, 갑자기 생각을 바꾸어 소국인 거(莒)를 정벌하기 위해 진로를 바꿨다. 명분은 평음(平陰)의 싸움에서 거국(莒國)이 당진이 소집한 제후군에 참가하여 제나라를 공격한 것에 대한 복수였다.

제장공이 거나라를 공격할 때 사용한 전법은 당진국을 기습할 때 사용한 대역사를 위주로 편성한 일종의 특수부대였다. 그는 소수의 대역사들 각각에게 특수부대를 위해 특별히 고안한 장비로 무장한 전차 5승씩을 주고 그 이름을 ‘오승지빈(五乘之賓)이라 명했다. 다시 정예병 3천 명을 선발하여 그들의 뒤를 따르게 했다.

당시 신규로 특수부대에 일원이 된 대역사 화주(華周)와 기량(杞梁)은 장공에게 일승의 전차를 주면 거국을 공격하는 부대의 선봉을 맡겠다고 청했다. 장공이 웃으면서 허락했다. 그는 그와 같은 행위가 후에 어떤 결과를 초래할 것인지 전혀 고려에 넣지 않았다. 그 한 번의 웃음은 전쟁에 임하는 그의 태도가 자기 부하의 생명에 대해 책임을지지 않는 얼마나 경솔한 행위인지를 보여주는 극명한 사례인 것이다. 화주와 기량은 비록 몸을 돌보지 않고, 용기와 충성심으로 수많은 적군과 분전했으나 결국은 죽음을 면치 못했다. 장공은 화주가 중상을 입고, 기량이 전사하고 나서야 비로소 대군을 진격시켜 거성(莒城)의 차우문(且于門)에 당도했다. 본대를 조금만 일찍 진격시켰다면 화주와 기량 두 사람이 그런 지경까지는 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은 제공의 군사지휘자라로써의 무지한 행동을 말해주는 것이다. 당시 소제후국들의 입장은 시간이 갈수록 그 입지가 좁아졌다. 제군이 거국의 차우문에 당도하자, 대항할 길이 없다고 생각한 거공(莒公)은 황급히 성에서 나와 장공에게 사죄하고 제나라에 세세대대로 조공을 올리겠다고 맹세했다. 제장공은 다시 거공의 제의를 무시하고 대답도 하지 않다가, 당진이 다시 제후국들을 대거 규합하여 제나라를 정벌하려고 한다는 소식을 듣고서야 비로소 거국의 항복을 받아들였다. 그것은 진실로 권하는 술은 마시지 않고 벌주를 청해 마시는 격이었다.(敬酒不吹, 吹罰酒)

본편의 기사는 <좌전(左傳)> 양공(襄公) 23년(기원전 550년)의 기록과 대체적으로 일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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