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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0회 殺兄簒位 劫侯尋盟(살형찬위 겁후심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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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제70회 殺兄簒位 劫侯尋盟(살형찬위 겁후심맹)

세 형을 죽이고 초왕의 자리를 차지한 초평왕과

제와 노 두 나라를 겁박하여 회맹을 행하는 당진의 소공


1. 기초음음(祁招愔愔)

- 기초의 노래로 회군을 간함을 듣지 않은 초영왕 -


주경왕 12년 기원전 533년, 초영왕은 진채(陳蔡) 두 나라를 멸하고 허(許)①, 호(胡)②, 심(沈), 도(道)③, 방(房)④ 등의 다섯 나라와 신성의 백성들을 형산(荊山)⑤의 땅으로 옮겨 살게 하였다. 백성들은 정든 고향을 떠나야 했으며 길거리에는 영왕을 원망하는 소리로 가득 차게 되었다. 그러나 천하는 조만 간에 자기 손에 떨어지게 되었다고 스스로 자부한 영왕은 밤낮으로 장화대에서 잔치와 주연을 열어 세월을 보냈다. 다시 천자의 상징인 구정(九鼎)을 초나라로 보내라는 전갈을 전하기 위해 주나라에 사자를 보내려고 했다. 우윤 정단이 간하며 말렸다.

「지금 당진과 제나라를 아직 세력이 강하고 오와 월나라는 아직 우리에게 복종하지 않고 있습니다. 주나라가 우리 초나라를 두려워한다지만 제후들이 보고만 있지 않을 것입니다.」

영왕이 정단의 간하는 소리를 듣더니 갑자기 자리에 일어나며 큰 소리로 말했다.

「과인이 그 동안 깜빡 잊고 있었다. 옛날에 신 땅에서 회맹을 할 때 서자(徐子)의 죄를 용서하여 함께 오나라를 정벌하려고 했었다. 그러나 서자가 자기나라로 돌아가더니 마음을 바꿔 오나라에 붙어 우리 초나라를 위해 힘써 노력하지 않았다. 오늘 과인이 서나라를 먼저 정벌하고 다음에 오나라를 쳐서 강수의 동쪽 땅을 모두 초나라에 속하게 하리라! 그렇게 되면 천하의 반을 내가 평정했다고 말할 수 있음이라!」

영왕은 즉시 원파와 채유로 하여금 세자 록(祿)을 보좌하여 영도를 지키게 하고 자기는 대군을 징발하여 동쪽으로 행군하여 주래(州來)⑥에서 사냥을 대대적으로 행하고 다시 영수(穎水)와 회수(淮水)가 합쳐지는 영미(穎尾)라는 곳으로 이동하여 사냥을 계속하면서 사마독(司馬督)에게 3백 승의 군사를 별도로 내주어 서나라를 정벌하도록 명했다. 영왕 자신은 대군을 이끌고 건계(乾溪)⑦로 북상하여 그곳에 진채를 세우고 사마독의 뒤를 호응하려고 했다. 그때가 주경왕 15년으로 영왕이 초왕의 자리에 오른 지 11년 째 되는 기원전 530년의 일이었다.

때는 겨울철이라 그해에 유난히 큰 눈이 내려서 그 깊이가 세자에 달하도록 쌓였다. 당시의 정경을 노래한 시가 있다.


검은 구름 하늘 가리고 노한 바람 울부짖는데

새털 같은 눈송이가 흩날리는구나!

순식간에 뭇 산 봉오리들은 푸른색을 잃고

한가로운 땅은 온통 은빛 파도를 일으키는 도다

彤雲蔽天風怒號(동운폐천풍노호)

飛來雪片如鵝毛(비래설편여아모)

忽然群峰失靑色(홀연군봉실청색)

等閑平地生銀濤(등한평지생은도)


온 나무 가지 위 둥지 속의 새들은 얼어 죽고

화로불도 꺼지고 껴입은 갖옷은 너무 얇도다.

싸움터의 군사들은 더욱 가련하고

철갑옷도 얼어붙으니 참으로 난감한 일이다.

千樹寒巢僵鳥雀(천수한소강조작)

紅爐不煖重裘薄(홍로불난중대박)

比際從軍更可怜(비제중군경가령)

鐵衣冰凝愁難著(철의빙응수난저)


초영왕이 추위를 참지 못하고 좌우를 돌아보며 말했다.

「옛날에 섬진에서 바쳐온 복도구(復陶裘)⑧와 취우피(翠羽被)⑨를 꺼내와 입어야 되겠다.」

시종들이 즉시 갖옷과 외투를 가져와 영왕에게 바쳤다. 갖옷을 입고 그 위에 외투를 걸친 영왕은 머리에는 가죽으로 만든 관을 쓰고 발에는 표석(豹舃)⑩을 신었다. 다시 비단실로 꼬아서 만든 채찍을 손에 들고 장막 안에서 밖으로 나와 들판에 수북히 쌓인 설경을 구경했다. 우윤 정단이 가까이 다가오자 영왕이 외투를 벗어 들고 손에 들고 있던 채찍과 함께 정단에게 건넸다. 정단이 외투와 채찍을 받아 들고 곁에 서 있자 영왕이 말했다.

「참으로 추운 날씨로구나!」

정단이 그 말을 받아 간했다.

「몸에는 두꺼운 갖옷을 껴입으시고 발에는 표석을 신으신 대왕께서는 호랑이 가죽 장막으로 만든 막사에 머물고 계시는데도 춥다고 고통을 호소하고 계십니다. 그러니 짧은 소매의 홑적삼을 입고 앙상한 복사뼈를 드러내면서 투구를 머리에 쓰고 갑옷을 입은 군사들이 추위로 당하고 있는 고통이야 오죽하겠습니까? 서나라 정벌군을 소환하여 어가와 같이 영도로 돌아가신 후에 봄이 되어 날씨가 풀리기를 기다려 다시 정벌군을 내시면 대왕께서도 이렇게 추위에 떨지 않으셔도 되고 또한 군사들도 고생할 필요가 없으니 모두에게 좋은 일이 되지 않겠습니까?」

「경의 말이 옳소. 그러나 과인이 군사를 이끌고 이르는 곳에서 싸움을 했다하면 이기지 못한 때는 없었소. 지금 서나라를 공격하고 있는 사마독으로부터 조만간에 승전보가 당도할 것 같아 이렇게 기다리고 있는 중이오.」

「서나라와 진채 두 나라와는 그 상황이 같지 않습니다. 진채 두 나라는 우리 초나라와 가까이 있어 오랫동안 우리의 보호 하에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쉽게 정벌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서나라는 초나라와는 동북으로 3천여 리나 떨어져 있고 또한 오나라와 더 가까이 지내고 있는 나라입니다. 대왕께서 공을 탐하여 서나라를 정벌하신 결과 초나라의 삼군을 오랫동안 나라밖에 주둔시켜 추위에 피로에 지치게 만들고 계십니다. 또한 저의 좁은 소견으로는 만일 군사들의 마음이 동요된다면 대왕의 처지가 위태롭게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 입니다.」

영왕이 웃으면서 말했다.

「천봉수는 진을, 기질은 채나라를 오거와 태자 록은 도성에 있으면서 지키니 이것은 삼초(三楚)라 할 수 있는데 과인이 어찌 걱정하겠소?」

그때 좌사(左史) 벼슬을 하고 있는 의상(倚相)이라는 사람이 영왕의 앞을 지나갔다. 영왕이 손가락으로 의상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저 좌사는 모르는 것이 없는 선비다. 《삼분(三墳)》⑪, 《오전(五典)》⑫,《팔색(八索)》⑬,《구구(九邱)》⑭ 등 통달하지 않은 경전이 없으니 자혁(子革/정단의 자)도 그를 잘 눈여겨보시기 바라오.」

「대왕께서는 잘못 알고 계십니다. 옛날 주목왕(周穆王)이 팔준마(八駿馬)가 끄는 수레를 타고 천하를 돌아다니자 제공(祭公) 모보(謀父)⑮가 《기초(祁招)》라는 시를 지어 간했습니다. 목왕이 시로 간하는 말을 듣고 마음을 돌려 왕성으로 돌아가 화를 면했습니다. 신이 이미《기초》라는 시에 대해 의상에게 물어 봤으나 그는 알고 있지 못했습니다. 당대의 일도 모르는 자가 어찌 먼 옛날 일을 알겠습니까?」

「기초라는 시의 내용은 어떠하오? 나를 위해 한 번 낭송할 수 있겠소?」

「신이 능히 외울 수 있습니다. 제가 낭송해 보겠습니다.」


기초의 노래는 평안하고 화평하고,

훌륭한 덕을 나타내는도다!

나로 하여금 왕자의 도량을 생각하게 하니

옥과도 같고

금과도 같이 견고하도다!

백성들의 노고를 헤아리니

언제나 취포지심은 품지 않도다.

祁招之愔愔(기초지음음)

式昭德音(식소덕음)

思我王度(사아왕도)

式如玉(식여옥),

式如金(식여금)

形民之力(형민지력)

而無醉飽之心(이무취포지심)


영왕이 물었다.

「시의 뜻은 어떻게 되오?」

「음음(愔愔)이란 말은 기보가 거느린 군사들이 평안하고 화평스러운 복을 누리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왕자의 덕음(德音)을 능히 빛낼 수 있음은 옥과 같이 견고하고 금과 같이 무게 있음에 비유합니다. 그래서 남의 왕된 사람은 능히 백성들의 고생을 돌봐주고 멈추게 해야 합니다. 지나치게 취하고 포식하려는 마음을 취포지심(醉飽之心)이라고 하는데 스스로 이를 삼가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정단이 비유로써 자기의 일을 말하고 있음을 눈치 챈 영왕은 입을 다문 채 오랫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침묵을 지켰다. 이윽고 한참 후에 입을 열더니 말했다.

「경의 회군하자는 말을 내가 깊이 생각해 보리라!」

그날 밤 영왕은 정단이 간함을 쫓아 군사를 거두어 영도로 회군하려고 결심했다. .

그런데 다음 날 아침 갑자기 시자가 달려와 첩보를 고했다.

「사마독께서 서나라 군사들과 싸워 여러 번 승리를 거두고 지금은 서성(徐城)을 포위하여 맹공을 퍼붓고 있는 중이라고 합니다.」

영왕이 듣고 말했다.

「서나라는 조만간에 떨어지겠구나!」

영왕은 고대하던 승전보에 고무되어 회군하려는 마음을 바꾸어 건계에 계속 주둔하며 겨울을 나기로 했다. 마음 속의 욕망을 억제하지 못한 영왕은 매일 사냥으로 락을 삼으면서 다시 사방의 백성들을 끌어 모아 궁궐과 고대를 지으면서 결코 영도로 돌아가려고 하지 않았다.


2. 모복채국(謀復蔡國)

- 채나라의 복국을 위해 모략을 꾸미는 조오(朝吳) -


그때 채나라 대부 귀생(歸生)의 아들 조오(朝吳)는 채공으로 임명된 공자기질을 곁에서 모시고 있으면서 매일 밤마다 채나라를 복국 시킬 궁리만 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채공 밑에서 현재(縣宰)로 일하는 관종(觀從)을 찾아가 상의했다. 관종이 말했다.

「초왕이 군사를 함부로 동원하여 원정 중에 있어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고 있습니다. 나라 안은 비어 있고 중원의 제후들은 초왕을 원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머지않아 망할 초왕의 운명을 하늘이 전해 주고 있습니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채나라는 결코 다시 일어설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채나라를 복국시키기 위한 좋은 방도가 있습니까? 가르침을 주시기 바랍니다.」

「초왕 웅건은 강왕의 아들 겹오(郟敖)를 죽이고 스스로 왕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살아 있는 세 공자들은 그 사실을 마음속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단지 그들이 힘이 부족하여 참고 있을 뿐입니다. 만일 채공의 명이라고 꾸며서 외국에 망명하고 있는 자간(子干)과 자석(子晳) 두 사람을 이곳으로 불러들여 별도의 계획을 세워 일을 진행시키면 초나라의 영도를 점령할 수 있습니다. 영도를 점령하면 초왕 웅건은 둥지를 잃은 새가 되어 죽음을 피할 수 없게 됩니다. 웅건의 뒤를 잇게 되는 초왕은 우리의 공을 참작하여 틀림없이 채나라를 복국 시켜 줄 것입니다.」

조오가 채공의 명을 가장하여 당진과 정나라에 각각 망명하고 있던 자간과 자석을 불러오기 위해 관종에게 그 일을 맡아달라고 청했다. 관종은 심복 편에 다음과 같은 편지를 두 공자에게 각각 보냈다.

『채공이 진채 두 나라의 군사를 이용하여 두 공자님들을 초나라에 모셔 웅건을 몰아내려고 합니다.』

자간과 자석이 크게 기뻐하며 채나라의 교외에 같은 시간에 당도하여 함께 채성으로 들어가 기질을 만나려고 했다. 두 사람을 마중한 관종은 일단 교외에 그들을 기다리게 한 후에 채성(蔡城)으로 들어가 조오에게 통고했다. 조오가 교외로 나가 두 사람을 만나 말했다.

「사실은 두 공자님들을 모셔온 것은 채공의 명에 의해서가 아닙니다. 그러나 두 분께서 채공을 위협하면 쉽게 그를 설득할 수 있습니다. 」

자간과 자석이 조오의 말을 듣더니 얼굴에 두려운 기색을 띄웠다. 조오가 두 사람을 설득하기 위하여 말을 이었다.

「초왕이 외국으로 나가 즐기느라 오랫동안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 바람에 나라가 비어 무방비 상태에 있습니다. 또한 영도에 남아서 세자와 같이 지키고 있는 채유는 자기 아버지의 원수를 갚으려는 생각뿐이라 우리에게는 매우 원군이나 다름없습니다. 또한 영도의 교윤(郊尹)으로 있는 투성연은 채공과 사이가 매우 가까워 채공이 거사를 하게 되면 틀림없이 내응하여 도울 것입니다. 천봉수는 비록 진공에 봉해졌지만 그의 마음은 초왕을 성심으로 받들지 않고 있어 만약 채공이 부르면 역시 부름에 응할 것입니다. 따라서 진채 두 나라의 군사를 동원하여 텅 빈 영도를 기습한다면 그것은 마치 주머니에서 물건을 꺼내는 지극히 쉬운 일과 같습니다. 그러니 공자님들께서는 일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걱정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조오의 설득에 두 사람은 적이 마음을 놓으면서 말했다.

「원컨대 가르침에 따르겠소.」

조오가 두 사람과 같이 맹세하기를 청해 희생을 잡아 삽혈을 한 후에 선군 겹오의 원수를 갚겠다는 맹세를 하늘을 향해 했다. 말로는 비록 경겹오의 원수를 갚는다고 맹세했으나 문서에는 채공의 주도 하에 자간, 자석과 함께 영도를 습격하여 웅건을 쫓아낸다고 쓰고 그 밑에 각기 서명한 후에 땅을 파서 구덩이를 만들어 희생과 함께 묻었다. 맹세의 의식이 끝나자 조오는 즉시 그의 집안 가정들을 이끌고 채성으로 돌입했다. 그때 마침 아침을 먹기 위해 밥상 앞에 앉아있던 채공 기질은 창졸간에 생각지도 않았던 두 형님들이 들이닥치자 크게 놀라서 몸을 일으켜 자리를 피하려고 했다. 조오가 뒤이어 두 공자의 뒤를 따라와서 채공의 앞을 가로막으며 소매를 붙잡고 말했다.

「일이 이미 여기까지 왔는데 공자께서는 어디로 가시려고 하십니까?」

자간과 자석이 거질을 껴안으며 큰 소리를 내며 울면서 말했다.

「역적 웅건이 무도하여 조카를 죽이고 초왕의 자리를 차지하였다. 그것도 모자라 자기의 동생들인 우리들을 나라 밖으로 쫓아냈다. 우리 두 사람이 여기에 온 목적은 네가 거느리고 있는 병사들의 힘을 빌려 조카의 원수를 갚고 일이 성사되면 너를 초왕으로 앉히기 위해서다.」

기질에게는 모든 일들이 너무 창황 중에 일어난 일이라 별 생각 없이 대답했다.

「일단은 조용한 곳으로 가서 서로 상의해 봅시다.」

조오가 말했다.

「두 공자님들께서도 아직 식사 전이라 마침 식사 준비가 되어 있으니 같이 식사를 하면 어떻습니까?」

조오는 식사를 마친 자간과 자석을 몰래 불러 초나라로 먼저 떠나게 재촉하여 출발시키고 자기는 여러 대중들 앞에서 공공연히 큰 소리로 외쳤다.

「사실은 채공이 거사를 일으키자고 두 공자님들을 불러서 교외에서 같이 맹세를 했습니다. 두 공자님들은 먼저 초나라를 향해 출발했소.」

기질이 조오의 말을 막으며 말했다.

「어찌하여 없는 말을 꾸며 나를 무고하느냐?」

「교외에서 구덩이를 파고 희생과 함께 맹세문을 묻어놨는데 어찌 그것을 본 사람이 없다 하겠습니까? 공께서는 피하려고 하시지만 마시고 행동을 빨리 취하여 일이 성사되도록 하여 부와 귀를 같이 취하심이 상책일 것입니다.」

조오가 다시 집밖의 시정으로 나가 큰 소리로 외쳤다.

「초왕이 무도하여 우리 채나라를 멸하였다. 오늘 채공이 우리 채나라를 다시 세워 주겠다고 허락했다. 그대들은 모두 채나라 백성들인데 어찌 채나라가 망했음을 눈뜨고 볼 수 있단 말인가? 채공과 두 공자의 뒤를 따라 모두 같이 초나라의 도성으로 쳐들어갑시다.」

채나라 백성들이 조오의 외치는 소리를 듣고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삽시간에 농기구와 무기들을 손에 든 백성들은 채공의 집 앞으로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조오가 채공에게 말했다.

「백성들의 마음이 이미 한 곳으로 모였으니 공께서는 마땅히 위무하여 거두셔만 합니다. 만약에 잘못되면 큰 변을 당하게 됩니다.」

「너는 나를 호랑이 등에 태우려고 하는구나!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나를 부추기는가?」

「두 공자님들은 아직 성 밖 교외에 머무르고 계십니다. 마땅히 불러 힘을 합하고 다시 채나라 백성들을 모두 따르게 한 후에 저는 진공 천봉수에게 가서 그로 하여금 군사를 이끌고 공을 따르게 하겠습니다. 」

기질이 드디어 조오의 말을 따르기로 하였다. 자간과 자석은 그들이 거느린 무리들을 이끌고 채성으로 들어와 채공이 거느린 군사들에게 속하게 했다.

한편 조오는 관종을 시켜 밤낮으로 달려 진나라에 보내 진공 천봉수를 만나도록 했다. 관종이 길을 가던 도중에 진나라 사람 하교(夏嚙)를 만났다. 하교는 곧 하징서(夏徵舒)의 현손(玄孫)이었는데 평소에 관종과 친교가 있었다. 관종이 하교에게 채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우려고 한다는 뜻을 말했다. 하교가 듣고 말했다.

「나는 진공의 문하에 있으면서 그를 위해 일을 하고 있지만 나 역시 평소에 진나라를 다시 세우려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진공 천봉수는 병이 들어 자리에 누워 오랫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대부는 가 봐야 별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대부께서 먼저 채나라로 돌아가 기다리고 있으면 내가 마땅히 진나라 백성들을 모아 일대를 이루어 채나라로 가겠습니다.」

관종이 채나라에 돌아와 채공에게 보고했다. 조오가 다시 편지를 한 통 써서 영도의 채유에게 보내어 그로 하여금 안에서 호응하라고 전했다. 채공 기질은 그의 가신 수무모(須務牟)를 주장으로 사패(史猈)를 부장으로 삼아 선봉을 맡기고 관종은 향도로 삼아 초나라의 정예병들을 이끌고 먼저 영도를 향해 진군토록 했다. 그때 마침 하교가 진나라 백성들을 모아 이끌고 채성에 당도했다. 채공 앞에서 하교가 말했다.

「천봉수는 병을 앓다가 며칠 전에 죽어 제가 대의를 밝혀 진나라 백성들을 모아 공자님의 의로운 일을 돕고자 이렇게 찾아 왔습니다.」

채공이 크게 기뻐하며 자기는 초군을 직접 지휘하여 중군으로 삼고 조오에게는 채나라 백성들을 우군으로 삼아 이끌고, 하교에게는 진나라 백성들을 좌군으로 삼아 이끌도록 했다. 채공이 두 사람에게 말했다.

「자고로 기습이란 지체하면 안 된다고 했다.」

채공은 휘하의 모든 군사들에게 즉시 밤낮으로 행군을 재촉하여 영도를 향하여 진격하도록 했다. 한편 세자 록과 함께 영도를 지키고 있던 채유는 채공의 군사들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아무도 몰래 자기의 심복을 성 밖으로 보내어 맞이했다. 교윤 투성연도 역시 군사를 거느리고 나와 교외에서 채공을 환영하며 맞이했다. 영윤 원파가 군사를 모아 영도를 지키려고 했으나 채유가 미리 성문을 열어 채나라 군사들을 들어오게 하자 속수무책이었다. 수무모가 성안으로 먼저 들어와 소리쳐 말했다.

「채공이 건계에 있던 초왕을 공격하여 죽이고 그의 대군은 이미 성 밖에 당도했다. 」

평소에 영왕이 포학무도하여 마음속으로 싫어하고 있던 성 안의 모든 백성들은 채공이 초왕의 자리에 오르기를 원했다. 그래서 영도의 백성들 중 아무도 채공에게 대항해 싸우려고 하지 않았다. 원파는 세자 록을 모시고 성밖으로 달아나기 위해 왕궁으로 달려갔으나 그때는 수무모가 이끄는 병사들이 이미 왕궁을 포위하고 있었기 때문에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자기 집으로 돌아가 스스로 칼로 목을 찔러 죽었다. 참으로 슬픈 일이라고 호증 선생이 시를 지어 한탄했다.


작당하면 임금을 섬길 수 있다고 장담하지 말라.

철옹성 같은 영도에는 이미 내통자가 있었다.

만약에 원파가 겹오를 지하에서 만난다면

피차 비명에 죽어 어찌 얼굴을 맞댈 수 있겠는가?

漫夸私党能扶主(만과사당능부주)

誰料强都已釀奸(수료강도이양간)

若遇郟敖泉壤下(약우겹오천양하)

一般惡死有何顔(일반악사유하안)


3. 暴君自縊(폭군자액)

- 신해의 집에서 목매어 죽은 폭군 초영왕 -


마침내 영도에 입성한 채공의 대군이 왕궁을 공격하여 점령했다. 채공은 세자 록과 공자 파(罷)를 붙잡아 모두 죽였다. 채공이 왕궁을 깨끗이 청소하고 자간을 왕으로 추대하려고 하였다. 자간이 왕위를 사양하자 채공이 말했다.

「장유의 순서는 결코 어길 수 없습니다.」

자간이 더 이상 사양하지 못하고 초왕의 자리에 올랐다. 자석은 영윤, 채공은 사마가 되었다. 조오가 채공을 찾아와 조용히 말했다.

「이번 거사는 공께서 앞장섰는데 어찌하여 왕위를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셨습니까?」

「영왕이 아직 건계에 대군을 거느리고 살아 있어 나라가 아직 안정되지 않았소. 거기다가 내가 두 형을 제치고 왕의 자리에 앉는다면 백성들이 나를 욕하지 않겠소?」

조오가 채공의 뜻을 알아듣고 즉시 계책을 말했다.

「왕을 따라 출전한 군사들은 고향을 떠난 지 오래되어 필시 집으로 돌아오려는 생각이 간절할 것입니다. 사람을 보내 이해를 말하고 불러 드린다면 틀림없이 초왕의 군사들은 흩어져 붕궤 시킬 수 있습니다. 그런 후에 대군을 이끌고 출전하면 초왕은 쉽게 사로잡을 수 있습니다. 」

채공은 조오의 계책을 옳다고 생각하여 관종을 시켜 건계로 가서 초나라 병사들을 향해 소문을 퍼뜨려 영도에서 변란이 났음을 알리게 했다.

「채공이 이미 영도에 들어가 두 왕자를 죽이고 자간을 왕으로 모셨다. 오늘 새로 등극한 왕이 령을 내려 전한다.

1. 먼저 초성으로 돌아온 자는 그가 소요하고 있던 전답을 모두 돌려주겠으나 나중에 돌아온 자는 그의 코를 베겠다.

2. 역적 웅건을 계속 따라다니다가 나중에 잡히는 자는 그 죄를 삼족에게 묻겠다.

3. 혹시 역적 웅건과 그를 따라 다니는 일당들에게 음식을 바치는 자에게도 똑 같이 죄를 묻겠다.」

초왕과 같이 건계에 주둔하고 있던 초나라 군사들은 관종이 퍼뜨린 말을 듣고 일시에 흩어져 그 병력이 절반으로 줄어 버렸다. 영왕은 그때도 여전히 건계에다 별도로 지은 왕궁의 높은 누각에서 매일 취해 자리에 누워 지내고 있던 중, 정단이 황망히 들어와 초나라 본국에서 변란이 일어나고 건계의 군사들이 흩어져 달아난 사실을 보고하였다. 자기의 두 아들이 살해당했다는 소리를 들은 영왕이 누워 있던 침상에서 땅 바닥으로 구르면서 큰 소리를 내며 목 놓아 울었다. 정단이 옆에서 보고 있다가 말했다.

「군사들의 마음이 이미 이반 되었으니 대왕께서는 속히 영도로 돌아가야 만 합니다.」

영왕이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다른 사람들도 자기 아들을 사랑하기를 나와 같이 하는가?」

「하늘을 나는 새나 땅을 기어 다니는 짐승도 자기 새끼를 사랑하는데 하물며 사람인데 어찌 자기 자식을 사랑하지 않으리까?」

영왕이 한탄하며 말했다.

「과인이 다른 사람의 자식들을 너무 많이 죽여, 다른 사람도 나의 아들을 죽였다고 할 수 있으니 어찌 이것을 괴이타고 생각할 수 있으랴?」

그리고 잠시 후에 초마가 다시 와서 보고하였다.

「새로운 왕이 투성연과 채공을 함께 대장으로 삼아 진채 두 나라의 군사들을 이끌고 이곳 건계로 진격하고 있는 중이라고 합니다.」

영왕이 듣고 대노하여 말했다.

「과인이 투성연을 대하기를 그리 박절하게 하지 않았거늘 어찌 감히 나를 배신할 수 있단 말인가? 내가 싸우다가 죽을지언정 어찌 내가 그 놈들 손에 잡혀 포승줄을 받을 수 있겠는가? 」

영왕이 즉시 진채를 거두어 행군 준비를 하게 하였다. 영왕은 건계를 출발하여 하구(夏口)⑯를 거쳐 한수를 거슬러 올라가 양주(襄州)⑰에서 도강하여 영도를 기습하려고 했다. 그러나 영왕이 거느린 군졸들이 행군 도중에 도망치기 시작했다. 영왕이 몸소 칼을 빼들고 도망가는 군졸들을 쫓아가 몇 명을 죽였으나 결코 군사들의 탈주를 멈추게 할 수는 없었다. 영왕이 자량(訾梁)⑱에 이르렀을 때는 그를 따르는 군사들은 대부분이 도망치고 남은 자들은 200 명도 채 못 되었다. 영왕이 보고 말했다.

「만사가 모두 물 건너가 버렸구나!」

영왕이 가던 길을 멈추고 의관을 벗어 강가의 버드나무 가지에다 걸어 놓았다. 그때까지 영왕을 곁에서 지키던 정단이 영왕에게 말했다.

「왕께서는 잠시 영도의 근교로 가서 잠시 머무르시면서 백성들의 인심을 살펴 보신다음에 별도의 계획을 세우시면 어떻겠습니까?」

「백성들이 모두 나에게 등을 돌렸는데 어찌 민심이 돌아서기를 기다린단 말인가?」

「그렇다면 다른 나라로 일단 달아났다가 군사를 빌려 나라를 찾는 방버블 강구하시면 어떻겠습니까?」

「제후들 중에 누가 나를 용납하겠는가? 나는 대복(大福)은 결코 두 번 다시 오지 않는다고 들었다. 헛되이 그들에게 가서 스스로 욕됨을 얻을 필요는 없다.」

정단은 영왕이 자기의 계책을 받아들이지 않자 자기도 새로운 왕에게 문죄를 당할까 두려워하여 밤이 되기를 기다려 의상과 함께 도망쳐 영도로 향했다.

아침이 되어 정단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그도 역시 도망쳤음을 알았다. 영왕은 마치 수족이 없어진 것처럼 가슴이 아팠다. 리택(釐澤)⑲이라는 소택지를 배회하던 영왕은 그나마 따르던 종자들도 모두 흩어져 버리고 혼자가 되고 말았다. 음식이라고는 아무 것도 먹지 못하여 촌마을로 들어가 음식을 구해 보려고도 했지만 그곳을 찾아갈 길도 알지 못했다. 또한 촌백성들도 역시 그가 초왕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흩어져 멀리 했다. 군사들이 도망가면서, 새로운 왕이 초왕을 도와주는 사람은 모두 엄벌에 처한다고 소문을 퍼뜨려 놨기 때문에, 모두들 두려워하여 아무도 선뜻 도와주려고 하지 않고 그저 먼발치에서 두 눈을 크게 뜨고 쳐다만 볼뿐이었다. 계속해서 3일 동안 아무 것도 먹지 못한 영왕은 이윽고 배가 고파 길거리에 쓰러져 더 이상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단지 길가에 누워 두 눈만 크게 뜨고 길 앞만을 응시하며 아는 사람 중 한 명이라고 그 길을 지나가게 되어 자기를 구해 주기를 바랐다. 그때 갑자기 길 앞쪽에서 사람이 한 명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자세히 보니 옛날에 성문을 지키던 관리였는데 최근에 이름을 연주(涓疇)라고 지어 부르고 있는 자였다. 영왕이 있는 힘을 다해 간신히 소리쳤다.

「연주야, 나를 구해 다오.」

자기 이름을 부르는 영왕의 모습을 발견한 연주는 할 수 없이 그 앞으로 와서 고개를 숙여 인사를 올렸다. 영왕이 연주를 보고 말했다.

「과인이 3일 동안 아무 것도 먹지 못하고 굶고 있다. 너는 밥 한 그릇을 구해 와서 과인이 숨을 쉴 수 있도록 도와주지 않겠느냐?」

연주가 대답했다.

「백성들이 모두가 새로운 왕의 령을 두려워하여 아무도 도와주려고 하지 않습니다. 소인인들 어디서 밥을 구해 올 수 있겠습니까?」

영왕이 듣고 한숨을 한번 쉬더니 연주에게 명하여 가까이 다가와 앉으라고 하고는 그의 허벅지를 베개 삼아 잠시 동안 휴식을 취하려 했다. 영왕이 이윽고 잠이 들자 연주는 흙으로 무더기를 만들어 그 위에 영왕의 머리를 옮겨 놓고는 도망쳐 버렸다. 영왕이 잠에서 깨어나 부지 간에 연주의 이름을 불렀으나 아무 대답도 들을 수 없었다. 이에 영왕이 손으로 자기가 베고 있었던 것을 더듬었으나 곧이어 그것은 연주의 허벅지가 아니라 흙무더기임을 알게 되었다. 연주마저 자기를 버리고 도망쳐 버리자 영왕은 자기도 모르게 하늘을 쳐다보며 통곡을 하였지만, 기력이 떨어져 그의 목에서는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그러고 있는 사이에 잠시 후에 다시 사람 하나가 작은 수레를 타고 영왕이 누워있는 곳을 향해 다가왔다. 그가 가까이 다가와 영왕의 울음소리를 알아듣고는 수레에서 내려 자세히 살펴보니 과연 영왕이었다. 그 사람이 즉시 땅에 엎드려 영왕에게 절을 올린 다음에 물었다.

「대왕께서 어인 일로 이 먼 땅에 오셔서 이렇게 쓰러져 계십니까? 」

영왕이 온 얼굴을 눈물로 적시며 그 사람에게 되물었다.

「그대는 누구인가?」

그 사람이 영왕에게 아뢰었다.

「신은 성이 신(申)이고 이름은 해(亥)라 하는 사람입니다. 곧 우윤(芋尹) 신무우의 아들입니다. 신의 부친께서 임종하시면서 두 번에 걸쳐 대왕께 죄를 얻은 사람을 대왕께서는 죄를 용서하여 죽이지 않으셨다고 하시면서 저에게 ‘내가 두 번에 걸쳐 왕에게 죽을죄를 용서받은 은혜를 입었으니 후일에 만일 왕이 곤란한 처지에 놓이게 되면 너는 반드시 목숨을 걸고 왕을 따라 다니며 모시도록 하라!’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신이 마음속에 부친의 당부하신 유언을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던 중에 근자에 이르러 영도(郢都)가 이미 반도들에게 함락당하고 자간이 들어와 스스로 왕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제가 집을 떠나 밤낮으로 건계로 달려가 대왕을 뵙고자 했으나 대왕은 이미 그곳을 떠난 후였습니다. 그래서 대왕의 뒤를 계속 뒤따라오고 있던 중인데 하늘이 도우셔서 이렇게 대왕을 뵐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 온 세상은 모두 채공의 무리들이라 왕께서는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겨야 합니다. 신의 집이 극촌(棘村)이라는 곳에 있는데 이곳에서 그리 멀지 않습니다. 왕께서는 잠시 저의 집에 머무시면서 후일을 다시 저와 상의하시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신해가 즉시 자기가 가지고 온 마른 음식을 꺼내어 영왕에게 바쳤다. 영왕이 받아서 입어 넣고 간신히 목구멍으로 넘겼다. 잠시 후에 영왕이 기력을 찾아 몸을 일으키자 신해가 부축하여 자기가 몰고 온 수레에 태워 극촌에 있는 자기 집으로 데려갔다. 평소에 영도의 장화대 안의 높은 누각과 깊은 방에서 살았던 영왕은 섶나무와 쑥대나무로 엮어 만든 울타리와 문짝이 달려 있는 신해의 농가에 당도하여 낮은 문지방에 머리를 숙이고 집안으로 들어가서 앉았다. 평소에 호강만 하고 살았던 영왕이 신해의 집에 들어와 앉아 있으니 자기 신세가 처량하게 느껴져 계속 눈물만 흘렸다. 신해가 무릎을 꿇고 엎드려 말했다.

「대왕께서는 부디 마음을 넓게 가지십시오. 이곳은 매우 깊고 멀리 떨어진 곳이라 지나가는 행인들도 없습니다. 잠시 이곳에 며칠 머물며 나라 안의 사정을 살펴가며 다시 진퇴를 강구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영왕은 계속 슬퍼하며 말을 잇지 못했다. 신해가 다시 무릎을 꿇고 음식을 바쳤으나 영왕은 계속 울기만 할뿐 입에 대지 않았다. 신해가 이어서 자기가 난 두 친딸을 불러 시침(侍寢)을 들게 하여 영왕의 마음을 즐겁게 하려고 하였다. 영왕이 옷도 벗지 않고 밤새도록 한탄하는 소리만 하더니 시각이 오경에 이르자 이윽고 잠잠해졌다. 두 딸이 문을 열고 나와 그의 부친에게 고했다.

「왕이 방안에서 스스로 목을 메어 숨이 이미 넘어갔습니다.」

호증선생이 이를 두고 시를 지어 한탄하였다.


잡초만 끝없이 우거진 장화대를 보니

옛날 영왕의 호사스러움이 가소롭구나!

고대의 재목이 마르기도 전에 노래소리 끊기고

가련하게도 황량한 들판의 야인 집에서 죽었구나!

茫茫衰草設章華(망망쇠초설장화)

因笑靈王昔好奢(인소영왕석호사)

臺木未干簫管絶(대목미간소관절)

可怜身死野人家(가령신사야인가)


신해는 영왕이 죽었다는 소리를 듣고 비통한 마음을 이기지 못하고 자기가 친히 시신을 거두어 염을 하고 그의 두 딸을 죽여 같이 묻어 주었다. 후세 사람이 논하기를 신해가 영왕에게 은혜를 갚기 위해 장례를 치러 준 행위는 옳았지만 그의 두 딸을 죽여서 순장시킨 행위는 너무 과했다고 한탄하며 시를 지었다.


장화대에서 이룬 패업은 이미 무너졌는데

두 딸을 무슨 죄로 무덤에 같이 묻었는가?

폭군은 죽어서도 한을 남기니

재앙이 규방의 여인들에게까지 미쳤다!

章華霸業已沉論(장화패업이심론)

二女何辜伴穸窀(이녀하고반석돈)

堪恨暴君身死后(감한폭군신사후)

餘殃猶自及閨人(여앙유자급규인)



4. 僞敗奪宮(위패탈공)

- 싸움에 졌다고 거짓 고하여 형들을 죽음으로 몰고 왕좌를 차지하다. -


그때 채공 기질은 투성연과 조오 및 하교 등의 여러 장수들을 이끌고 영왕을 찾아 건계로 행군하고 있었다. 채공의 일행은 도중에 영왕 곁에서 도망쳐 나온 정단과 의상을 만났다. 두 사람은 초왕의 처한 사정을 채공에게 상세하게 알리면서 말했다.

「지금 초왕의 곁에는 시중을 들던 종자들도 모두 흩어져 버리고 초왕 홀로 남아 죽을 지경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들이 도저히 지켜 볼 수가 없어 이렇게 초왕의 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채공이 물었다.

「그대들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두 사람이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영도로 돌아가려고 하던 참입니다.」

「두 분은 잠시 나의 군중에 머물면서 초왕의 있는 곳을 같이 찾아본 후에 나와 함께 영도로 돌아갑시다.」

정단과 의상을 향도로 삼은 채공 거질은 대군을 이끌고 두 사람이 영왕과 마지막으로 헤어졌다는 자량(訾梁)으로 갔으나, 영왕의 행적을 발견할 수 없었다. 그때 촌로 중에 채공을 찾아와 초왕이 벗어 논 왕관과 의복을 가져와 바치면서 그것을 얻은 경위를 고했다.

「3일 전에 강가의 버드나무 숲에서 이것을 얻었습니다.」

채공이 촌로에게 물었다.

「그대는 초왕이 살았는지 죽었는지 알고 있는가?」

촌로가 대답했다.

「알지 못합니다.」

채공은 촌로가 바친 왕관과 의복을 받아 챙기게 하고 촌로에게 후한 상을 주고 돌려보냈다. 채공이 다시 영왕의 행적을 계속 추적하려고 하자 조오가 간하며 말했다.

「자기의 의관을 벗어 놓고 어디론가 사라진 초왕은 신세가 궁하게 되어 힘이 다한 듯 싶습니다. 아마도 도망치다가 도랑에 빠져 죽었을 가능성이 많으니 중요한 시간을 허비해가면서 더 이상 그의 뒤를 추격할 필요는 없습니다. 지금 가장 시급한 일은 초왕의 자리에 있는 자간이 만약 왕명으로 호령을 발해 민심을 수습하게 되면 다시는 도모할 수 있는 기회를 얻지 못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어찌해야 하오?」

「초왕이 도성 밖에 있어 아직도 영도의 백성들은 그가 죽었는지 모르고 있습니다. 지금 민심이 아직 정해지지 않은 틈을 타서 병졸 수십 명을 시켜 공께서 초왕과의 싸움에서 졌다고 하면서 ‘초왕의 대군이 쫓아와 머지 않아 이곳에 당도할 것이다!’라고 영도의 성 주위를 돌며 큰 소리로 외치게 하십시오. 그리고 다시 투성연을 시켜 성안으로 달려가 자간에게 직접 공께서 싸움에서 패했다고 고하게 하십시오. 그러면 자간과 자석은 모두 유약하고 지모가 없는 자들이라 일단 초왕이 영도로 진군해오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면 필시 경황 중에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공께서는 군사들을 정비하여 서서히 진군하여 성안으로 들어가 자연스럽게 보위에 올라 베개를 높이하고 아무 근심 없이 잠을 청할 수 있습니다.」

채공이 조오의 말을 따라 즉시 관종에게 병졸 백여 명을 딸려 보내 초왕과의 싸움에서 패했다고 가장하고 영도를 향해 달려가서 성 주위를 돌며 큰 소리로 외치게 했다.

「채공은 싸움에서 져서 살해당하고 초왕은 대군을 이끌고 우리 뒤를 따라오고 있다.」

성안의 백성들은 그 말을 사실로 알아듣고 모두가 놀라지 않은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잠시 후에 투성연이 패잔병으로 꾸민 군사들을 이끌고 성안으로 들어가자, 성안의 백성들은 조금 전에 성 밖에서 들려 온 소리와 일치하여 그 소문을 확실히 믿게 되었다. 이어서 성안의 모든 백성들은 성벽 위로 올라가 영도로 들어오고 있다는 초왕의 모습을 살펴보려고 했다. 투성연이 자간에게 달려가 말했다.

「초왕의 분노가 극에 달해 주군께서 자기 멋대로 초왕의 자리에 앉은 죄를 물어 옛날 채반(蔡般)과 제나라의 경봉(慶封)처럼 죽이겠다고 했습니다. 주군께서는 빨리 이에 대해 대책을 강구하시어 치욕스러움을 면하기 바랍니다. 신도 목숨을 구해 어디론가 달아나야 되겠습니다.」

투성연은 말을 마치고 미친 듯이 밖으로 달려 나가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자간이 자석을 불러 투성연이 한 말을 전했다. 자석이 듣고 말했다.

「조오가 우리를 망쳤습니다.」

두 형제가 서로 부둥켜안고 큰 소리를 내어 울었다. 궁 밖에서 다시 사람들이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초왕의 군사들이 이미 성안으로 들어왔다!」

자석이 먼저 허리에 찬 칼을 빼 들고 그의 목을 찔러 죽었다. 자간도 황망 중에 역시 자석의 칼을 주워 들고 자기의 목을 찔렀다. 궁중에는 큰 난리가 일어나 환관들과 궁녀들도 서로 놀라 자살하는 자가 속출하여 궁 안에 그 시체가 즐비하게 깔리고 통곡하는 소리가 오랫동안 끊이지 않았다. 투성연이 군사들과 성안의 백성들을 데리고 궁궐 안으로 다시 들어와 시체들을 치우고 다시 깨끗이 청소를 한 후에 백관들을 이끌고 성 밖으로 나가 채공을 영접하였다. 백성들은 사실을 알지 못하고 투성연이 맞이하고 있는 사람이 초왕으로 생각하였다. 채공이 성안으로 들어오고 나서야 사람들은 그가 영왕이 아니고 채공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이윽고 백성들은 전후사정을 깨닫고 그것이 모두 채공의 계책임을 깨달았다.


5. 安葬假屍 玩弄輿論(안장가시 완농여론)

- 가짜 시체를 장사지내 여론을 농단한 초평왕 -


채공이 영성 안으로 들어와 즉위하고 그의 이름을 웅거(熊居)라고 개명하였다. 이가 곧 초나라의 평왕(平王)이다. 옛날에 공왕이 종묘의 신에게 벽옥이 묻힌 곳 위에서 절을 한 자가 초나라의 왕이 되게 해 달라고 마음속으로 빈 것이 이때에 이르러 과연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겠다. 백성들은 아직 영왕이 죽었는지 모르고 있어 인심이 흉흉해져서 심지어는 한 밤중에 초왕이 성안으로 들어왔다고 와전되어 성안의 남녀들이 모두 놀라 자리에 일어나 대문을 열고 밖의 동정을 살펴보곤 했다. 평왕이 이것을 걱정하여 아무도 몰래 관종을 불러 계책을 꾸몄다. 한수의 강변에 미리 구한 시체에 영왕의 관을 씌우고 왕의 복장을 입힌 후에 상류에서 하류로 띄워 보냈다. 관종이 짐짓 발견한 척하며 와서 거짓으로 고하게 하였다. 관종이 계책대로 평왕을 알현하고 고하였다.

「이미 초왕의 죽은 시체를 발견하여 자량(訾梁)의 땅에다 묻어 놓고 왔습니다.」

평왕이 다시 투성연을 시켜 자량으로 가서 영채를 세운 후에 장사를 지내게 하고 시호를 영왕이라고 했다. 그런 다음 방을 붙여 백성들을 위무하자 비로소 백성들의 마음은 안정이 되었다. 그리고 3년이 지나서 평왕이 다시 영왕의 시체를 찾으려고 하자 신해가 나타나 영왕을 장사지낸 곳을 고했다. 평왕이 영왕의 시체를 자량의 가짜 무덤으로 옮겨가 묻게 했다. 이것은 나중의 일이다.


한편 사마독은 초나라의 군사를 이끌고 서나라를 오랫동안 포위하였으나 아무런 공을 세우지 못했다. 그대로 회군하면 영왕에게 죽임을 당하지나 않을까 두려워하여 감히 군사를 돌리지 못하고 아무도 몰래 서나라와 내통하고 영채에 의지하며 서로 지키기만 했다. 그러다가 영왕이 거느린 군사들은 붕궤 되고 그 자신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을 듣고 즉시 서나라에 대한 포위를 풀고 군사를 거두어 초나라로의 귀국 길에 올랐다. 초나라 군사들의 행렬이 예장(豫章)의 땅에 당도했을 때 오나라 군사를 이끌고 기다리던 공자광(公子光)과 조우하여 회전에 들어갔다. 초왕의 죽음으로 이미 사기가 죽은 초군은 싸움에 패하여 사마독과 3백 승의 군사들은 모두 오나라의 포로가 되고 말았다. 공자광은 승세를 타고 초나라의 성읍인 주래(州來)를 공격하여 점령했다. 이것은 모두 영왕이 무도하여 일어난 일이었다.


6. 陳蔡復國(진채복국)

- 망국의 유신들 노력에 의해 복국 되는 진채 두나라 -


한편 영도의 초평왕은 초나라의 백성들을 불러 모아 자간과 자석을 공자의 예를 갖추어 장례를 지냈다. 공이 있는 자는 록을 주고 능력이 있는 자는 벼슬을 주었다. 투성연은 영윤으로 삼고, 자가 자하(子瑕)인 양개(陽匃)는 좌윤에 임명했다. 또한 원엄(薳掩)과 백주리(伯犨犁)는 억울하게 죽었다고 생각하여 백주리의 아들 백극완(伯郤宛)을 우윤으로 원엄의 동생 원사(薳射)와 원월(薳越)은 모두 대부로 삼았다. 조오와 하교 및 채유는 모두 초나라의 하대부가 되었다. 또한 공자방(公子魴)은 싸움을 하는데 용기가 있다고 여겨 사마에 제수되었다. 그때 오거는 이미 노환으로 죽었으나 평왕이 그가 살아생전에 직간을 서슴지 않던 미덕을 갖춘 사람이라고 해서 그의 아들 오사(伍奢)를 연윤(連尹)에 봉하고 그를 연공(連公)이라고 부르게 했다. 오사의 아들 오상(伍尙)도 역시 당(棠)에 봉해져 당공(棠公)이라고 불렸다. 그밖에 원계강과 정단 등 옛날 영왕을 모셨던 일반 신하들은 옛날의 관직에 그대로 있게 했다. 평왕이 관종에게도 벼슬을 주려고 하자, 그는 자기의 선인들이 옛날에 점을 치던 사람들이라 복윤(卜尹)의 자리를 원한다고 했다. 평왕이 허락했다. 초나라의 군신들이 평왕에게 은혜를 표하는 감사의 인사를 올렸으나 조오와 채유 두 사람만은 벼슬도 받지 않고 감사의 말도 올리지 않으며 초나라를 떠나려고 했다. 평왕이 그 까닭을 묻자 두 사람이 말했다.

「원래 우리가 왕을 도와 군사를 일으켜 초도를 습격하게 목적은 우리 채나라를 일으키기 위해서였습니다. 오늘 대왕의 자리는 이미 정해져 안정되었다고 하지만 채나라의 종사에는 한줌의 혈식(血食)도 올리지 못해 신 등이 무슨 면목으로 대왕의 조정에 서 있을 수 있겠습니까? 옛날 영왕이 공을 탐하여 진과 채 두 나라를 병합하였으나 그 결과 민심을 잃게 되어 결국은 비명에 죽었습니다. 그러나 왕께서는 그 반대의 일을 하셨기 때문에 비로소 백성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영왕과 반대되는 일 중에는 진채 두 나라를 복국 시켜 사직에 제사를 지낼 수 있도록 해 주는 것 보다 좋은 방법은 없을 것입니다. 」

평왕이 대답했다.

「두 분의 말을 따르리라!」

평왕은 즉시 사람을 시켜 진과 채 두 나라 군주들의 후손들을 찾게 하였다. 진나라 세자 언사(偃師)의 아들 오(吳)와 채 나라 세자 유(有)의 아들 려(廬)를 찾은 다음, 태사에게 명하여 길일을 택하여, 오를 진에, 려를 채나라 군주에 봉했다. 이들이 진혜공(陳惠公)과 채평공(蔡平公)이다. 평왕은 즉시 두 군주를 귀국시켜 각기 자기 나라의 종사를 받들도록 했다. 조오와 채유가 채평공 려를 따라가 채나라로 돌아가고, 하교는 진혜공 오를 따라 진나라로 돌아갔다. 영도로 행군했던 진채 두 나라의 백성들은 각기 자기나라의 군주들을 따라 돌아가려고 하자 평왕이 그들을 모아 음식을 준비하여 배불리 먹였다. 옛날에 영왕이 진채 두 나라를 침략하여 그들의 귀중한 그릇과 보물들을 노략질해 가서 초나라의 부고에 넣어 두었으나 평왕은 모두 꺼내어 다시 두 나라에게 돌려주도록 했다. 그리고 형산(荊山)의 땅으로 이주시킨 여섯 나라의 백성들에게 명하여 모두 자기 나라로 돌아가도 좋다는 령을 내리고 추호도 그들을 범하지 못하게 했다. 각국의 군신들과 백성들이 기뻐하며 환성을 질러 그 소리가 천지를 진동시키고 마치 고목나무에 싹이 새로 돋고 썩어 버린 해골이 다시 부활한 것 같았다. 이때가 주경왕 16년 즉 기원전 529년의 일이었다. 이를 두고 염옹(髥翁)이 시를 지어 노래했다.


헛되이 백성들의 고혈을 빨아 두 성을 세워

지키라던 장수가 주인이 되어 인정을 베풀었다.

어차피 옛 주인에게 돌아갈 줄 일찍 알았더라면

악명을 무릅쓰면서까지 백성들을 고생시켰겠는가?

枉竭民脂建二城(왕갈민지건이성)

留將後主作人情(유장후주작인정)

早知故物仍還主(조지고물잉환주)

何苦當時受惡名(하고당시수악명)


6. 奸中之奸 佞中之佞(간중지간 영중지영)

- 간신 중의 간신 비무극 -


평왕의 장자는 이름을 건(建)이라고 했는데 자는 자목(子木)이라 했다. 곧 채나라의 운양(鄖陽) 땅을 다스리던 관리의 딸에게서 난 소생이었다. 채공이 초왕의 자리에 올랐을 때는 건이 이미 장성하여 그를 곧 태자로 세우고 연윤 오사를 태부(太傅)로 임명하여 태자의 스승으로 삼았다. 그때 초나라 사람 중에 비무극(費無極)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오래 전부터 평왕을 가까이 모셔 왔다. 아첨의 말에 능한 비무극은 평왕의 총애를 받아 대부의 벼슬을 받았다. 비무극이 태자를 모시고 싶다고 청하자, 평왕이 그를 태자의 소부(少傅)로 삼고, 분양(奮陽)을 다시 동궁사마(東宮司馬)에 명하였다. 평왕이 초왕의 자리에 즉위하여 초나라의 변경이 어느 정도 안정이 되자 가무와 미색에 빠지기 시작했다. 오나라가 쳐들어와 주래(州來)를 빼앗아 갔으나 평왕에게는 그곳을 찾아올 능력이 없었다. 무극은 비록 태자를 모시는 소사였으나 매일 평왕의 좌우에 있으면서 평왕이 음락을 즐기는 것을 거들었다. 태자건은 평왕에게 아첨을 일삼는 비무극을 싫어하여 일부러 멀리했다. 영윤 투성연이 자신이 세운 공을 믿고 방자하게 굴자 비무극이 평왕에게 참소하여 죽였다. 양개가 투성연의 후임으로 영윤이 되었다. 태자건이 기회가 있을 때마다 투성연의 억울함을 평왕에게 호소하자 비무극이 태자에 대해 두려운 마음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아무도 몰래 평왕과 세자 사이에 틈이 생기게 만들었다. 무극이 언장사(鄢將師)라는 사람을 평왕에게 천거하여 우령(右領)⑳의 벼슬을 내리게 했다. 언장사 역시 평왕의 총애를 받았다.



7. 勇士古冶子(용사고야자)


한편 당진의 평공이 백성들의 고혈을 짜내어 호사스러운 사기궁(虒祁宮)을 짓자 중원의 제후들은 당진이 패업에 뜻을 두지 않고 일시적인 호사만을 탐한다고 여겨 다른 뜻을 품게 되었다. 평공이 죽고 새로 즉위한 소공(昭公)은 다시 당진의 옛날 선군들의 유업을 이어 받아 패업을 이루어 보려는 뜻을 갖고 있었다. 그때 제후(齊侯)가 안영을 초나라에 보내어 수호를 맺었다는 소식을 접한 소공도 역시 사자를 제나라로 보내 당진에게도 조공 사절을 보내라고 청했다. 제경공은 당진과 초 두 나라에 많은 일이 일어나 다망한 틈을 타서 그 역시 백업을 도모하려는 생각을 품게 되었다. 당진의 새로운 군주가 어떤 사람인가를 살펴볼 겸해서 즉시 행장을 꾸려 당진으로 길을 떠난 제경공은 수행원으로 상국 안영과 함께 장사 고야자(古冶子)를 경호원으로 삼아 데리고 갔다. 경공이 그 수행원들을 데리고 길을 떠나 이윽고 황하를 건너는 나루에 이르렀다. 평소에 그의 수레를 끌던 좌참마(左驂馬)㉑를 매우 사랑했던 경공은 말을 관리하던 어인(圉人)에게 령을 내려 배를 끌어오라고 명했다. 어인이 배를 끌고와 경공의 좌참마를 뱃머리에 줄로 묶고 종자들이 사료를 먹이는 일을 친히 감독했다. 그때 갑자기 강 위에 큰비가 몰아치고 파도가 일어나 경공이 타고 있던 배들이 요동치며 전복하려던 순간 전방에서 커다란 자라의 머리가 수면 위로 서서히 나타나더니 커다란 입을 벌리고 뱃머리를 향하여 돌진해 왔다. 뱃머리에 머리를 부딪친 자라가 경공의 좌참마를 입에 물고는 깊은 물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경공은 그 모습을 보고 크게 놀랐다. 고야자가 경공의 곁에 있다가 말했다.

「주군께서는 너무 놀라지 마십시오. 신이 주군을 위해 찾아오겠습니다.」

고야자가 즉시 옷을 벗어 던지며 칼을 뽑아 입에 물고는 물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는 파도를 타고 풍랑을 헤치며 앞으로 나아갔다. 물 속으로 들어갔다가는 떠오르기를 몇 번 반복하며 물살을 타고 앞으로 나아가기를 9리쯤 헤엄쳐가더니 이윽고 고야자의 모습은 사람들의 시야에서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경공이 보고 탄식했다.

「고야자가 결국은 물에 빠져 죽고 말았구나!」

그리고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자 풍랑이 멎고 파도가 가라앉더니 수면에 붉은 빛을 띠고 흐르는 물살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윽고 고야자가 왼손에는 참마의 꼬리를 부여잡고 오른 손으로는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는 자라의 머리를 들고는 파도를 물살을 가르며 배 쪽으로 다가왔다. 경공이 크게 놀라 말했다.

「진실로 귀신과 같은 장수로다. 옛날에 선군께서 용작(勇爵)이라는 관직을 만드시어 용사들을 모으셨다 하지만 어찌 이와 같은 장사를 보실 수 있었겠는가?」

경공은 고야자에게 많은 상을 내렸다.


8. 盟無常主 豈惟齊國(맹무상주, 개유제국),

- 맹주는 일정한 주인이 없으니, 우리 제나라인들 되지 못되겠는가?


이윽고 경공의 일행이 강주성에 당도하여 당진의 소공을 접견했다. 소공이 제후를 위해 연회를 마련했다. 당진은 순오(荀吳)를 제나라는 안영을 각각 상례로 삼았다. 술이 몇 순배 돌아 잔치가 어느 정도 무르익자 소공이 경공을 향해 말했다.

「술자리에 이렇다 할 즐길 놀이가 없으니 항아리에 화살을 던져 넣기를 하여 지는 사람이 벌주를 마시기로 하면 어떻습니까?」

경공이 좋다고 대답했다. 술자리를 돌보던 시종들이 항아리를 놓고 화살을 가져왔다. 제후가 두 손을 높이 들고 진후에게 먼저 던지라고 양보했다. 소공이 화살을 뽑아 들고 던질 준비를 하자 순오가 앞으로 나오며 칭하의 말을 올렸다.

「술은 회수(澮水)의 강물처럼 철철 흐르고 고기는 작은 산을 이루게 하시라! 우리의 주군께서는 화살을 항아리 속에 던져 넣으시어 천하의 제후들을 이끄는 방백이 되소서!」

소공이 던진 화살이 항아리 속으로 들어가자 남은 화살을 땅에 던졌다. 당진의 신하들이 모두 땅에 엎드리더니 모두 ‘천세’라고 외쳤다. 옆에 있던 제경공의 마음은 기분이 좋지 않았다. 자기도 역시 화살을 집어들며 큰 소리로 말했다.

「술은 승수(澠水)㉒처럼 많이 흐르고 고기는 큰 언덕을 이루게 하시라! 과인이 저 항아리에 화살을 맞추게 하시어 진후(晉侯)를 대신하여 패업을 일으키게 해 주시라!」

경공이 정신을 집중하여 화살을 던져 항아리에 명중되어 진후의 것과 같이 꽂혔다. 제경공이 크게 웃으며 그도 역시 나머지 화살을 땅에 던지더니 자리에 앉았다. 안영도 역시 땅에 엎드리더니 ‘천세’ 라고 외쳤다. 소공이 보더니 얼굴에 노한 기색을 띄웠다. 순오가 앞으로 나와 제경공을 향하여 말했다.

「군후께서는 실언하셨습니다. 군후께서는 하신 말씀은 우리나라를 욕보인 것입니다. 오늘 군후께서 우리나라에 오신 목적은 우리 당진국의 선세들의 패업을 이어 받아 중원의 회맹을 주관하고 계시는 과군에게 조현을 올리기 위해서입니다. 군후께서 대신해서 패업을 이루시겠다고 말씀하셨는데 그 말은 도대체 어떤 뜻으로 하신 말씀입니까?」

안영이 대신 대답했다.

「어떤 특정한 사람만이 항상 맹주가 되리란 법은 없습니다. 오로지 덕을 갖춘 자만이 맹주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옛날 제나라가 폐업을 잃자 당진이 곧바로 대신했습니다. 만약 당진이 덕을 갖추고 있다면 누가 감히 불복하겠습니까? 그러나 덕이 없으니 오나라나 초나라 같은 만이의 나라도 패자가 되겠다고 나서는 형편인데 어찌 우리 제나라라고 패업을 대신하지 못하겠습니까?」

양설힐이 앞으로 나와 말했다.

「당진은 이미 제후들을 거느리고 있는 패자인데 어찌 항아리에 대고 패자 운운하십니까? 순백(荀伯)께서 실언하셨습니다.」

순오는 자기의 잘못을 깨닫고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제경공을 호종하고 온 고야자가 단하에서 큰 목소리로 소리쳤다.

「해도 이미 기울고 주군께서는 피로하시니 이만 자리에서 일어나 숙소에 드십시오.」

제경공이 당진의 소공에게 즉시 겸사의 말을 올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관사로 가서 휴식을 취했다. 다음날 곧바로 제후는 행장을 수습하여 제나라로 돌아갔다. 양설힐이 소공을 보고 말했다.

「중원의 제후들이 장차 우리 당진에게서 등을 돌리려 하고 있으니 힘으로 눌러 놓지 않으면 필시 패업을 잃게 될 것입니다.」

양설힐의 말이 옳다고 생각한 진소공은 즉시 당진의 군사들을 크게 열병하고 점검하니 병거는 총수가 4천 승에 달했고 갑병은 무려 30만 명이나 되었다. 양설힐이 보고 말했다.

「우리 당진이 비록 덕이 부족하다고는 하나 병사들의 수가 많으니 패업을 계속 이을 수가 있겠습니다.」

소공은 먼저 사자를 주나라 왕성으로 보내 천자의 신하 한 명을 청하여 회맹에 참석시켜 달라고 청했다. 그리고 모든 제후들에게 사자를 각기 보내어 그해 칠월에 평구(平邱)㉓의 땅에서 열리는 맹회에 참석하라고 통보했다. 천자가 신하를 보내 회맹에 참석시킨다는 소식을 들은 제후들은 감히 참석하지 않을 수 없었다. 회맹을 하기로 약정한 날이 되자 당진의 소공은 한기를 강주성에 남아 나라를 지키게 하고 순오, 위서, 양설힐, 양설부(羊舌鮒), 적담(籍談), 양병(梁丙), 장격(張骼), 지력(智躒)등과 함께 당진의 병거 4천 승과 갑병 30만 명을 이끌고 복양성(濮陽城)㉔을 바라보고 행군을 시작했다. 당진의 군사들은 30여 개에 달하는 영채를 세워 서로 연결 시켜 주둔하니 위나라의 모든 땅에는 당진의 군사들로 가득 차게 되었다. 주나라의 경사 유헌공(劉獻公) 지(摯)가 먼저 회맹장으로 약속한 평구의 땅에 당도했다. 제(齊), 송(宋), 노(魯), 위(衛), 정(鄭), 조(曹), 거(莒), 주(邾), 등(滕), 설(薛), 기(杞), 소주(小邾) 등 십이로(十二路) 제후들이 모두 당도하여 회맹장에 열병하고 있던 당진의 군사들을 보는 순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군사들의 모습에 모두가 하나같이 얼굴에 두려운 기색을 띄웠다. 이윽고 회맹의 날이 되자 양설힐이 희생의 피를 담은 쟁반을 받쳐 들고 제후들 앞으로 걸어 나와 말했다.

「선대의 신하 조무가 지난 미병지회 때 약속을 잘못하여 초나라와 통호를 했으나 초왕 웅건이 신의를 지키지 않아 스스로 자기의 운명을 재촉했습니다. 오늘날 과군께서 우리의 선군이신 문공께서 천토에서 행하신 일을 본받아 천자가 보내신 대신을 모시고 여러 제후들을 진무하고자 하십니다. 청컨대 제후들께서는 이 희생의 피를 바르시어 신의를 보여주십시오.」

여러 제후들이 모두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어찌 감히 명을 받들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유독 제경공 만은 양설힐의 말에 응하지 않았다. 양설힐이 보고 말했다.

「제후께서는 어찌하여 삽혈을 하여 맹세하지 않으십니까?」

경공이 대답했다.

「여러 제후들이 복종하지 않는다면 다시 맹세를 한다고 하겠지만 만약 명을 따른다면 구태여 다시 맹세를 할 필요가 있겠소?」

양설힐이 경공을 쳐다보며 강경한 어조로 말했다.

「천토의 회맹에서 복종하지 않았던 제후가 있었던가요? 만약에 군후께서 이번 회맹에 맹세를 하지 않겠다면 과군께서는 할 수 없이 병거 4천 승과 갑병 30만 명을 동원하여 제나라의 도성 밑에서 죄를 물을 수밖에 다른 방법이 있겠습니까?」

양설힐 말을 마치고 손을 들어 신호를 하자 단상에 있던 군사들이 북을 치기 시작했다. 곧이어 단하에 도열하고 있던 군사들이 일제히 일어나 대패기(大旆旗)를 세워 기치를 삼엄하게 했다. 경공은 당진이 대군을 발하여 제나라를 공격하지나 않을까 두려워하여 즉시 말을 돌려 사과했다.

「대국이 이미 맹주의 역할을 꼭 하겠다고 하는데 과인만 혼자 회맹을 하지 않을 수 있겠소?」

그래서 진후가 맨 먼저 삽협을 하고 이어서 제와 송이 그 뒤를 따랐다. 천자가 보낸 유헌공 지는 단지 회맹을 감독하기 위해 참석했기 때문에 삽혈을 하지 않았다. 회맹의 의식이 끝나자 주(邾)와 거(莒) 두 나라는 노나라의 빈번한 침략을 받아 시달림을 받고 있어 그 일을 진후에게 호소하였다. 진후가 노소공이 회맹에 참석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소공 대신 회맹에 참석한 노나라의 상경 계손의여(季孫意如)를 붙잡아 막사 안에 가두었다. 자가 자복(子腹)인 당진의 대부 혜백(惠伯)이 조용히 순오를 찾아와 말했다.

「노나라의 땅은 주와 거 두 나라의 땅을 합친 것 보다 열 배는 더 큰 나라입니다. 우리 당진이 만약에 노나라를 버린다면 노나라는 장차 우리에게 등을 돌려 제나라마 초나라를 받들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 당진에게 무슨 이득이 되겠습니까? 지난번 초나라가 진채 두 나라를 멸망시킬 때 우리가 구하지 않아 제후들의 신망을 잃었는데 이제 다시는 형제의 나라를 버리면 안 됩니다.」

순오는 혜백의 말을 옳다고 생각하여 우선 집정을 맡고 있던 한기에게 헤백의 뜻을 전했다. 한기가 다시 소공에게 말하여 즉시 계손의여를 풀어주어 노나라에 돌아가게 하였다. 이후로 제후들은 당진이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하여 더욱 받들지 않았다. 당진은 이후로 다시는 맹주의 자리를 차지하지 못했다. 사관이 시를 지어 이 일을 한탄했다.


사치하려는 마음에 장화대를 본딴 사기궁을 지어

마음이 떠난 제후들을 무력으로 복종시키려 했다.

투호(投壺)의 영험으로 제후들이 흩어졌으니

땅은 옛날과 같되 일은 모두가 변해 버렸도다!

侈心效楚築虒祁(치심효초축사기)

列國離心復示威(열국이심복시위)

壺矢有靈侯統散(호시유영후통산)

山河如故事全非(산하여고사전비)



《제 71회로 계속》

주석

1) 허(許)/초나라에 망하기까지 여섯 번의 이동이 있었는데 그 이동 경로는 다음과 같다. 초영왕(楚靈王)이 형산(荊山)으로 주민을 소개시킬 때의 허나라의 소재지는 다섯 번째로 옮긴 섬서성(陝西省)과의 경계에 있었던 하남성의 서협(西峽)인 듯 하다.

①. 하남성 허창시(許昌市) ⇒ ② 하남성 엽현(葉縣) 남 10키로 ⇒③ 안휘성 박주시(亳州市 )⇒ ④하남성 엽현 남 10키로 ⇒ ⑤하남성 서협(西峽) ⇒ ⑥ 하남성 엽현 동 20키로의 노산현(魯山縣)

2) 호(胡)/ ① 춘추와 서주 때 지금의 안휘성(安徽省) 부양시(阜陽市)에 있었던 귀성(歸姓) 제후국. 하남성을 가로질러 안휘성에서 회수(淮水)와 만나는 영수(穎水)의 하류 강안에 있었다. 호는 영왕(靈王)을 몰아낸 공자기질 (후에 초평왕)에 의해 다시 복국 되었으나 결국은 주경왕(周敬王)24년 기원전 496년 초평왕의 뒤를 이은 초소왕(楚昭王)에 의해 멸망당했다. ② 서주 초기 지금의 하남성 언성시(鄢城市) 서남에 봉해졌던 희성(姬姓) 제후국으로 춘추 초기 정무공에 의해 멸망당했다. 여기서는 ①번을 말한다.

3) 도(道)/ 현 하남성 학산현(确山縣) 경내에 있었던 춘추시대 때의 중소제후국.

4) 방(房)/ 지금의 하남성 수평현(遂平縣) 부근에 있었던 춘추 시대 때의 중소 제후국

5) 형산(荊山)/호북성의 양번시(襄樊市) 남쪽의 하남성과 호북성을 가르는 한수(漢水) 이서(以西) 쪽의 남북으로 늘어져 있는 산맥

6) 주래(州來)/ 현 안휘성 봉태현(鳳台縣)으로써 회남시(淮南市) 서쪽 20키로

7) 건계(乾溪)/ 지금의 안휘성 박주시(亳州市) 동남쪽 약 50키로의 와양현(渦陽縣)에 있었다.

8) 복도구(復陶裘)/ 섬진(陝秦)의 특산품으로써 새털을 짜서 만든 외투다.

9) 취우피(翠羽被)/ 물총새의 깃털로 장식한 두루마기다.

10) 표석(豹舃)/ 바닥을 여러 겹으로 만든 표범 가죽 신

11) 삼분(三墳)/ 삼황(三皇) 즉 태호(太昊) 복희씨(伏羲氏), 여왜(女媧) 수인씨(燧人氏), 염제(炎帝) 신농씨(神農氏)에 관한 책.

12) 오전(五典)/오제(五帝) 즉 황제(黃帝), 전욱(顓頊), 제곡(帝嚳), 당요(唐堯), 우순(虞舜)에 관한 책.

13) 팔색(八索)/ 팔괘(八卦)에 관한 역술 책

14) 구구(九邱)/ 중국의 구주(九州) 즉 지리에 관한 책

15)제공 모보/ 서주의 대신이고 희성(姬姓)에 이름은 실전 되었으며 모보는 그의 자이다. 제(祭)나라의 국군이며 주공단의 후손이다. 그의 부 제공은 경사의 직으로 주소왕을 따라 남쪽으로 원정을 갔다가 소왕과 함께 물에 빠져 죽었다. 부친의 뒤를 이은 모보가 주나라의 경사가 되어 주목왕(周穆王)을 모셨다. 목왕이 견융을 정벌하려고 하자 여러 차례 불가하다고 간했으나 왕은 듣지 않았다. 주목왕의 유랑벽을 간하기 위해 지은《기보(祈父)》라는 시가 시경의 소아(小雅) 기보지습(祁父之什) 편에 올라 있어 지금까지 전한다.

16) 하구(夏口)/ 현 호북성 무한(武漢)으로 한구(漢口)를 말함.

17) 양주(襄州)/ 지금의 호북성 양번시를 말한다.

18) 자량(訾梁)/현 호북성(湖北省)과의 경계에 있는 하남성 신양시(信陽市) 부근

19)리택(釐澤)/ 지금의 호북성 감리현(監利縣) 서북에 있었던 이호(離湖)를 말한다.

20) 우령(右領)/춘추 때 하급 무관들의 인사를 담당했던 초나라의 중추(中樞) 소속의 관리

21)좌참마(左驂馬)/ 수레를 끌던 네 필의 말 중에 바깥쪽의 오른쪽 편의 말을 말함.

22) 승수(澠水)/ 산동성 임치(臨淄) 북쪽에서 발원하여 발해만으로 흘러 들어갔던 강의 이름

23) 평구(平邱)/ 현 하남성 개봉시(開封市) 북서쪽 약 40키로 황하 북안의 고을

24) 복양성(濮陽城)/ 지금의 하남성 복양시(濮陽市), 위(衛) 나라 도성인 제구(帝丘)를 복양성(濮陽城)이라고도 불렀음.


미주) 기보(祈父) : 군(軍)의 사마(司馬)

시경(詩經) 소아편(小雅篇) 기보지습(祁父之什)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祁父, 予王之爪牙(기보, 여왕지조아)

기보여! 나는 임금의 발톱과 이빨이거늘


胡轉予于恤, 靡所止居(호전여우휼,미소지거),

어찌 나를 근심스러운 오랑캐의 땅으로 옮겨,

머물 곳이 없게 만드는가?



祁父予王之爪士(기보여왕지조토)

기보여! 나는 임금의 발톱과 같은 무사이거늘


胡轉予于恤, 靡所底止(호전여우휼,미소저지)

어찌 나를 근심스러운 오랑캐 땅으로 몰아,

갈 곳이 없게 만드는가?



祁父, 亶不聰(기보, 단불총)

기보여 정말 당신은 귀가 밝지 못하오.


胡轉予于恤, 有母之尸饔(호전여우휼, 유모지시옹)

어찌 나를 근심스러운 오랑캐 땅으로 옮겨

어머님께 손수 밥짓는 수고를 끼치게 하는가?


[평설]

진(陳)과 채(蔡) 두 나라를 멸하여 초나라의 군현으로 만든 초영왕(楚靈王)은 천하의 패주가 되기 위해 다음 단계로 진입했다. 즉 서(徐)나라를 정벌하고 그 여세를 몰아 오나라로 진격하여 남중국을 완전히 초나라의 강역으로 만들려고 했다. 그러나 그 해 초영왕의 군사행동은 뜻밖의 예기치 못한 복병을 만났다. 즉 대설과 함께 온 혹독한 한파였다. 또한 초군에 대항한 서국의 군사력이 예상 외로 강력한 줄도 짐작하지 못했다. 그래서 서나라와의 싸움은 장기화 되었다. 그리고 그가 모르는 사이에 그의 집 뒷뜰에서 난 불로 인하여 왕관은 땅에 떨어지고 몸은 황량한 벌판에서 죽고말았다.


초공왕(楚共王 : 재위 전 590-560년)은 총애하던 아들이 다섯이 있었다. 장자는 웅소(熊昭), 차자는 자위(子圍) 웅건(熊虔), 삼자는 자간(子干) 웅비(熊比), 사자는 자석(子晰) 웅흑굉(熊黑肱)이며, 막내 오자는 웅기질(熊棄疾)이었다. 공왕이 죽자 장자 웅소가 뒤를 이었다. 이가 초강왕(楚康王 : 재위 전559-545년))이다. 다시 강왕이 죽자 그의 아들 웅균(熊麇)이 초왕의 자리에 올랐으나 웅건이 죽이고 스스로 왕위에 올랐다. 이가 초영왕(楚靈王 : 재위 전 540-529년)이다. 초영왕은 초나라를 패업의 정상에 올려놓기는 했으나, 후유증으로 군사들은 피로에 지치고 백성들의 고통은 극도에 달하게 되었다. 그가 서나라를 정벌하기 위해 원정 나가 나라 밖에서 오랫동안 체재하고 있는 동안 그의 동생들은 조카를 죽이고 왕위를 찬탈한 형을 쫓아내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었다. 해외에 원정 중에 있던 그를 사지에 내몬 자는 그의 막내 동생 기질이었다. 기질은 참으로 간교하고, 다른 한편으로 치밀한 사람이었다. 그는 옛날 영왕의 명을 받고 군사를 이끌고 채나라를 정벌할 때, 그에게 ‘시군(弑君)과 학정을 행한 죄’를 물어 영왕을 죽이고 스스로 왕이 되라고 권하는 채나라의 유신 조오(朝吳)의 권하는 말에 거짓으로 노한 척 하면서도 그를 방면한 적이 있었다. 기질은 채나라를 멸한 후에 영왕에게 승전보를 띄우면서 채나라의 군신들을 포로로 잡아 압송했으나, 유독 조오만은 보내지 않고 그의 측근에 두었다. 영왕에 의해 채공에 피봉된 기질은 대군을 이끌고 옛 채나라 땅에 주둔하면서 중원 제후국들에게 무력시위를 하던 중 조오가 채공 기질의 이름으로 그의 형들인 자간(子干)과 자석(子晰)을 끌어들여 같이 영왕을 공격하려는 모략을 알았다. 기질은 조오를 향해 ‘너는 나를 호랑이 등에 태우려고 하느냐?’라고 힐난했으나, 마지못한 척하면서 영도(郢都)를 기습하는데 동의했다. 이윽고 기질이 영도의 왕궁을 점령하고, 장유유서라는 이유를 들어 그의 형 자간을 왕으로 자석을 영윤으로 받들고 자기는 사마를 맡았으나 실은 영왕이 영도에 입성할 경우 핑계를 댈 수 있는 여지를 남겨 놓은 아주 간교한 술책이었다. 다시 영왕이 혼자 몸이 되어 결국은 죽음에 이를 수밖에 없다는 정황을 알게 된 기질은 계략을 꾸며 자간과 자석을 자살하게끔 만들었다. 기질은 실로 교묘하고 간교하기 짝이 없는 모략으로 자신의 세 형을 모두 제거하고 명분과 함께 자연스러운 과정을 거쳐 초왕의 자리에 올랐다. 기질이 초평왕(楚平王)이다.


새로 즉위한 초평왕은 영왕의 패권 전략은 대거 수정했으나, 음락을 즐기는 일만은 고치지 않았다. 그가 진(陳)과 채(蔡) 두 나라를 복국 시키자 두 나라 백성들로부터 환호를 받았다. 한편 사마독(司馬督)이 이끄는 서(徐)나라를 정벌군은 초영왕의 죽음으로 공격을 중지하고 군사들은 별다른 성과 없이 회군하다가 중도에 오군의 매복에 걸려 전부 전멸하고 말았다. 오군은 승세를 타고 계속 진격하여 초나라 전략적인 거점인 주래(州來)를 점령했으나 초평왕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그는 아첨배들을 중용하고 충신을 살해했다. 나중의 이야기이지만 고 심지어는 자기의 며느리를 취하여 부인으로 삼고, 자기 아들을 죽이려고 했다. 이로써 초나라 조정은 아첨배로 가득 차게 되고 초나라는 초평왕으로 인해 결국은 파국을 향해 질주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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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04-05-11 1730
[일반] 제69회. 挾詐滅國(협사멸국) 巧辯服荊(교변복형)

제69회 挾詐滅國 巧辯服楚(협사멸국 교변복초) 속임수로 진채(陳蔡) 두 나라를 멸한 초영왕과 교묘한 변설로 초나라 대부들을 승복시킨 안영.
양승국 04-05-11 1945
[일반] 제68회. 師曠辯聲(사광변성) 散財買國(산재매국)

제68회 師曠辨聲 散財買國(사광변성 산재매국) 당진의 태사 사광은 새로운 노래를 식별하고 제나라의 진씨(陳氏)들은 사재를 털어 나라를 사다. 1
양승국 04-05-11 1662
[일반] 제67회. 計逐慶封(계축경봉) 弑侄簒奪(시질찬탈)

제67회 計逐慶封 弑侄簒奪(계축경봉 시질찬탈) 계략을 써서 경봉을 쫓아내 제장공의 원수를 갚은 노포계와 조카를 시해하고 왕위를 찬탈한 초영왕
양승국 04-05-11 2086
[일반] 제66회. 子鱄出奔(자전출분) 慶封獨相(경봉독상)

제66회 族滅寧喜 季札論音(족멸영희 계찰논음) 군주를 세운 공만을 믿다가 멸족당한 영희와 중원 제후국들의 노래소리를 듣고 국운을 예언한 계찰
양승국 04-05-11 1508
[일반] 제65회. 弑君專權(시군전권) 納主擅政(납주천정)

제65회 弑君轉權 兩世逐主(시군전권 양세축주) 군주를 시해하고 정권을 오로지한 제나라의 최저, 경봉과 대를 이어 군주를 쫓아낸 위나라의 대
양승국 04-05-11 1734
[일반] 제64회. 欒氏滅族(란씨멸족) 杞梁死戰(기량사전)

제64회 欒盈滅族 杞梁死戰(란영멸족 기량사전) 곡옥성에서 멸족을 당한 란영과 거성(莒城)의 차우문에서 전사한 제장(齊將) 기량 1.
양승국 04-05-11 1506
[일반] 제63회. 叔向被囚(숙향피수) 智劫魏舒(지겁위서)

제63회 叔向被囚 智劫魏舒(숙향피수 지겁위서) 죄수가 된 당진의 대현(大賢) 숙향을 구한 노신 기해와 기지로 위서(魏舒)를 붙잡아 신강성을 구
양승국 04-05-11 1421
[일반] 제62회. 諸侯圍齊(제후위제) 計逐欒盈(계축란영)

제62회 諸侯圍齊 計逐欒盈(제후위제 계축란영) 제후들은 군사를 합하여 제나라를 포위하고 당진의 세가들은 계략을 꾸며 란영을 쫓아냈다.
양승국 04-05-11 1455
[일반] 제61회. 三駕服鄭(삼가복정), 因歌逐主(인가축주)

제61회 三駕服鄭 因歌逐主(삼가복정 인가축주) 어가를 세 번 움직여 정나라를 굴복시켜 패주가 된 진도공과 노래를 전해 듣고 군주를 쫓아낸
양승국 04-05-11 1854
[일반] 제60회. 分軍肆敵(분군사적), 三將鬪力(삼장투력)

제60회 分軍肆敵 偪陽鬪力(분군사적 복양투력) 군사를 나누어 적군을 지치게 만든 순앵과 복양성 싸움에서 용력을 뽐낸 노나라의 세 장군
양승국 04-05-11 1644
[일반] 제59회. 胥童大亂(서동대란) 趙氏復興(조씨부흥)

제59회 胥童大亂 趙氏復興(서동대란 조씨부흥) 당진의 나라 안을 크게 어지럽히는 서동과 조씨 집안이 다시 일으키고 죽은 정영(程嬰) 1.
양승국 04-05-11 1691
[일반] 제58회. 魏相迎醫(위상영의) 神弓養叔(신궁양숙)

제58회 魏相迎醫 神弓養叔(위상영의 신궁양숙) 진백을 설득하여 명의를 빌려온 당진의 위상(魏相)과 춘추 제일의 명궁(名弓) 양요기(養繇基) 1.
양승국 04-05-11 18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