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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05-11 11:56:396287 
제59회. 胥童大亂(서동대란) 趙氏復興(조씨부흥)
양승국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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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제59회 胥童大亂 趙氏復興(서동대란 조씨부흥)

당진의 나라 안을 크게 어지럽히는 서동과

조씨 집안이 다시 일으키고 죽은 정영(程嬰)

1. 嗜酒身亡(기주신망)

-술에 탐닉하여 몸을 망친 초나라의 사마 공자측(公子側)

초나라의 중군원수 공자측은 평소에 술 마시기를 지나치게 즐겨했다. 그는 술을 한번 마시기 시작하면 백 잔이 되어도 그만두지 않고 계속 마셔 결국은 취해 쓰러져 하루 종일 깨어나지 못하곤 했다. 그래서 초공왕은 그의 주벽을 알고 출군할 때마다 반드시 경계를 주어 술을 못 마시게 했다. 공자측도 당진군과 서로 교전하고 있는 초나라 대군의 지휘를 맡아 막중한 책임을 통감하여 그때까지 한 방울의 술도 입에 대지 않고 있었다. 그날 화살을 맞아 한 눈을 잃고 본진으로 돌아온 초공왕은 그 분함을 참지 못하고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공자측이 진언했다.

「이미 두 나라 군사들은 모두가 피로에 지쳤습니다. 내일 하루는 잠시 휴식을 취하고 신은 그 동안 대왕이 당한 수모를 갚을 계책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공자측이 초공왕에게 인사를 올리고 중군 막사로 되돌아갔다. 밤이 깊도록 앉아서 싸울 계책을 골똘히 생각해 봤으나 별로 신통한 생각이 떠오르지 않아 노심초사했다. 공자측에게는 평소에 총애하고 있던 곡양(穀陽)이라는 수발드는 동자가 있었다. 곡양은 자기 주인이 잠도 못 자고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고 손님 접대용으로 보관하고 있던 삼중미주(三重美酒)를 병에 담아서 따뜻하게 데워서 가지고 들어와서 바쳤다. 냄새를 맡아 보고 그것이 술임을 알게 된 공자측이 놀라서 물었다.

「이것은 술이 아니냐?」

술을 마시고 싶다는 주인의 마음을 알아차린 곡양은 주위 사람들의 이목을 피하기 위해 거짓말로 대답했다.

「이것은 술이 아니라 초탕(椒湯)입니다. 」

공자측도 그 뜻을 짐작하고 병 안에 들어있던 술을 단숨에 다 마셔 버렸다. 그 술의 맛이 달기도 하고 향기롭기도 해서 매우 상쾌한 별미였다. 공자측이 물었다.

「초탕이 더 없느냐?」

「더 있습니다.」

곡양은 오로지 초탕이라는 말만 되뇌며 큰 사발에 가득 따라 가지고 와서 바쳤다. 오랫동안 술을 마셔 보지 못한 공자측은 계속 맛있다는 말과 함께 마시기만 했다.

「정말로 초탕 맛이 좋구나. 동자가 나의 마음을 아는구나!」

곡양이 가져다주는 술을 다 받아 마신 공자측은 마침내 대취하여 자리에 쓰러져 잠이 들어버렸다.

한편 그때 초공왕은 당진의 군사들이 닭이 울 무렵에 출격할 계획이며 노와 위 두 나라의 군사도 전투에 합세할 예정이라는 보고를 접하고 있었다. 그는 급히 내시를 보내 공자측을 불러 내일 전투에 대한 대책을 같이 의논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술을 너무 많이 마셔 취해 깊은 잠에 빠져 버린 공자측은 시종들이 아무리 흔들어 깨워도 일어나지 않았다. 시종들이 억지로 부축하여 일으켜 세워 깨워 보려 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공자측의 입에서 술 냄새를 맡은 공왕이 보낸 내시는 그 이유가 술을 과음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내시가 초왕에게 돌아와 그대로 보고했다. 초왕이 십여 차례에 걸쳐 사람을 보내 재촉했다. 이윽고 전투가 벌어질 시간이 점점 다가와 사태가 위급하게 전개되고 있는 반면에 공자측의 잠은 시간이 갈수록 더 깊어졌다. 동자 곡양이 울면서 말했다.

「내가 본시 원수님을 생각하여 술을 갖다 바쳤는데 일이 이렇게 되어 오히려 원수님을 해치게 되었구나! 초왕이 알면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우니 도망가느니만 못하리라!」

초공왕은 아무리 불러도 공자측이 오지 않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다가 할 수없이 영윤 영제를 불러 대책을 의논했다. 평소에 공자측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영제가 공왕에게 아뢰었다.

「신은 원래 당진의 군세가 강대하여 싸울 경우 반드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이유로 처음부터 정나라를 구원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씀 드렸었습니다. 이것은 모두가 사마가 주장한 탓에 일어난 일입니다. 지금 사마가 술을 탐하여 일을 그르쳤으니 신 역시 별다른 계책이 있을 리 없습니다. 밤을 도와 소리 없이 군사를 거두어 회군하면 패전의 치욕만은 면할 수 있을 뿐 다른 방법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일이 비록 이렇게 되었으나 사마가 술에 취해 중군에 있소. 그를 그냥 중군 막사에 버려두면 반드시 당진군에 의해 사로잡힐 것이오. 초나라의 사마가 적군에게 사로잡히면 그 치욕도 작지 않은 일이오.」

공왕은 곧바로 양요기를 불러 명령을 내렸다.

「장군은 신전(神箭)으로 사마의 호위에 만전을 다하시오.」

공왕은 즉시 소리 없이 명령을 하달하여 그 날이 밝기 전에 진채를 거두고 퇴군해 버렸다. 정성공은 친히 군사를 거느리고 초왕과 그 군사들을 국경 밖에까지 전송했다. 양요기가 홀로 뒤에 남아서 후퇴하는 본대의 배후를 엄호했다. 양요기는 혼자 속으로 생각했다.

「사마가 술에서 깨어나기를 언제까지 기다려야 되는지 알 수 없겠다」

양요기는 즉시 좌우에 명하여 공자측을 부축하여 일으켜 가죽끈으로 수레 위에다 단단히 묶어 굴러서 떨어지지 않게 조치한 후에 군사들을 독려하여 먼저 출발한 본대의 뒤를 전속력으로 쫓아가게 하였다. 양요기 본인 자신은 궁노수 300명을 인솔하고 유유히 그 뒤를 따라 회군 길에 올랐다. 이윽고 날이 밝자 당진군이 진채의 영문을 열고 싸움을 걸기 위해 초나라 진영으로 곧바로 돌격했다. 그러나 잠시 후에 초나라 막사가 모두 비어 있음을 발견한 당진군은 초군이 이미 야밤에 아무도 몰래 퇴군한 사실을 알았다. 란서가 초군의 뒤를 추격하려고 했으나 사섭이 불가하다고 간곡히 말렸다. 전방을 정탐하러 간 첩자가 와서 보고했다.

「정나라가 각 요처에 군사를 배치하고 굳게 지키고 있습니다.」

정나라 도성을 쉽게 함락시킬 수 없다고 생각한 란서는 군사들로 하여금 개선가를 부르게 하면서 본진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진채를 거둔 당진군이 곧바로 행군을 시작하여 본국으로 향하자 이어서 노와 위 두 나라의 군사들도 흩어져 각각 자기 나라로 되돌아갔다.

한편 수레에 실려 50여 리 정도 왔을 때야 비로소 술에서 깨어난 공자측은 자기의 몸이 가죽끈으로 단단히 묶여 있음을 알고 부지중에 큰소리로 외쳤다.

「어떤 놈이 나를 이렇게 결박했느냐?」

좌우에 있던 군사들이 말했다.

「양요기 장군께서 술에 취한 사마께서 수레가 전속력으로 달릴 경우 그 위에서 굴러 떨어지지나 않을까 걱정되어 결박했습니다.」

군사들이 황급히 달려가 공자측을 묶고 있던 가죽끈을 풀어 주었다. 그의 두 눈은 술이 덜 깨어 아직도 몽롱한 상태였다. 그가 정신을 가다듬고 좌우의 군사들에게 물었다.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느냐?」

「퇴군하여 본국으로 돌아가고 있는 중입니다.」

「어찌하여 퇴군하게 되었느냐?」

「지난밤에 왕께서 계속해서 여러 번 원수를 불렀습니다. 그러나 원수께서는 너무 취하신 나머지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당진의 군사가 쳐들어오면 대항하여 싸울 수 있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신 대왕께서 퇴군을 결정하셨습니다.」

공자측은 대성통곡하면서 말했다.

「어린 동자 녀석이 나를 망쳤구나! 」

공자측이 급히 곡양을 불러 찾았으나 이미 도망쳐서 어디로 간지 몰랐다. 언릉의 전장에서 2백 리 되는 곳까지 후퇴를 해도 별다른 추격군의 동정이 없자 마음을 놓은 초공왕은 공자측이 자기의 죄를 두려워하여 자살하지나 않을까 걱정하여 사자를 보내 자기의 명을 전하게 했다.

「옛날 대장 자옥이 성복에서 당진과의 싸움에서 패했을 당시 성왕께서는 성복대전에 직접 참전하시지 않으셨기 때문에 자옥이 그 패전의 책임을 지고 죽었소. 그러나 이번 언릉의 팽조강 싸움에서는 과인이 지휘를 했으니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소. 이번 패전은 결코 원수의 잘못이 아니오!」

그러나 영제는 공왕의 사면령에 의해 공자측이 죽음을 면할 것을 예견하고 별도로 사람을 시켜 자기의 말을 전하게 했다.

「옛날 자옥이 전쟁에서 지고 어떻게 처신하였는지는 사마도 잘 알고 있는 일이오. 대왕께서 비록 그대를 주살하지 않고 용서를 하셨다고 하지만 사마는 장차 무슨 면목으로 또다시 초나라 군대를 지휘할 수 있겠소?」

공자측이 듣고 한탄했다.

「영윤이 대의로 나를 책망하니 내가 어찌 삶을 탐하겠는가?」

공자측은 영제로부터 책망의 뜻을 전달받고 수치심에 못 이겨 즉시 목을 메달아 죽고 말았다. 공왕이 소식을 듣고 애통해 마지않았다. 이것은 주간왕 13년, 기원전 573년에 일어난 일이었다. 염선(髥仙)이 시를 지어 술 때문에 대사를 망쳐 죽게 된 공자측을 애도했다.

애꾸눈 임금이 불러 지혜를 얻고자 했으나

영웅이 술독에 빠져 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주인을 위한 동자의 마음은 오히려 목숨을 잃게 만들었으니.

술이 만 가지 근심을 없앤다고 말하지 말지어다.

眇目君王資老謀(사목군왕자노모)

英雄誰想因槽邱(영웅수상인조구)

竪兒愛我翻成害(수아애아번성해)

謾說能消萬事愁(만설능소만사수)

2. 胥童亂晉(서동란진)

- 군주의 총애를 믿고 당진에 내란을 일으켜 혼란에 빠뜨리는 서동(胥童) -

다른 한편 초나라와 언릉에서의 싸움에서 이기고 돌아온 당진의 려공은 이제 천하에는 자기에게 대적할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여 더욱 교만해지고 사치와 방탕을 일삼게 되었다. 머지않아 당진에 대란이 일어난다고 예상한 사섭은 마음을 쓰다가 병이 나서 자리에 드러눕고 말았다. 그러나 그는 의원의 치료를 받기를 거부하고 오히려 무당을 불러 자기를 빨리 죽게 해 달라는 굿을 하게 했다. 과연 사섭은 병이 난지 얼마 되지 않아 죽었다. 사섭의 뒤를 그의 아들 범개(范匃)①가 그 직위를 이어 받았다.

그때 당진의 조정에서는 서동(胥童)이라는 자가 있어 교활하고 아첨을 잘하여 려공의 총애를 한 몸에 받고 있었다. 서동은 진문공과 19년을 함께 유랑했던 오현(五賢) 중의 한 명인 서신(胥臣)의 증손자로 서극(胥克)의 아들이었다. 려공이 서신을 육경의 자리에 앉히려고 했으나 비어 있는 경의 자리가 없어서 시킬 수가 없었다. 서동이 상주하여 의견을 말했다.

「현재 삼극(三郤)이 병권을 잡고 있어 그 부족의 세력이 너무 커졌습니다. 자기들의 세력을 믿는 나머지 전횡을 일삼아 앞으로 틀림없이 모반을 일으킬 것입니다. 지금 제거하여 후환을 미리 방지해야 합니다. 또한 극씨 종족을 제거하여 그들이 차지하고 있던 자리가 많이 비게 되면 그때 주군께서 마음에 드는 신하들을 가려서 그 자리에 임명하면 누가 감히 복종하지 않겠습니까?」

「극씨들이 반역을 도모하고 있다는 증거도 없이 잡아서 죽인다면 여러 신하들이 복종하겠는가?」

「언릉에서 우리가 초나라와 싸울 때 극지가 정성공을 포위한 상태에서 두 사람이 같이 병거에서 내려 오랫동안 사담을 나눈 후 즉시 포위망을 풀어 성공을 놓아 준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틀림없이 초나라와 내통하려는 의도였습니다. 그 사실은 우리에게 잡혀있는 초나라의 공자 웅패(熊茷)를 불러서 물어 보시면 사실을 확인 할 수 있습니다. 」

려공이 즉시 명하여 서동을 보내 웅패를 불러오게 하였다. 서동이 도중에 웅패에게 말했다.

「공자께서는 초나라에 돌아가고 싶지 않으십니까?」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으나 사정이 허락하지 않으니 한스러운 일일뿐입니다.」

「공자께서 제가 부탁한 일을 한 가지만 들어주시면, 제가 귀국을 주선하여 드리겠습니다.」

「돌아갈 수 있게만 해 준다면 오로지 명에 따르겠습니다.」

「공자가 우리의 주군을 알현할 때 주군이 극지에 대한 일을 묻거든 제가 일러 준대로 만 대답하면 되는 일입니다.」

서동이 려공에게 대답할 내용을 웅패에게 일러주었다. 웅패가 시키는대로 하겠다고 말했다. 서동이 웅패를 데리고 조정에 나아가 려공을 알현했다. 려공이 좌우의 사람들을 물리치고 웅패에게 물었다.

「극지가 이전에 공자의 초나라와 내통을 했는지 사실대로 이야기하면 공자를 본국으로 돌려보내 주겠소.」

「신에게 죄를 주시지 않으신다면 사실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사실대로 말하는 데 어찌 죄를 주겠소?」

「극지와 우리나라의 영윤 공자영제는 이전부터 오랫동안 서로 친하게 지내 왔습니다. 그래서 편지 왕래도 여러 번 했습니다. 제가 본 편지에는 ‘우리나라 군주께서 대신들을 믿지 않고 도에 지나치게 음락에 빠져 모든 백성들의 원성이 자자하니 임금으로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다. 백성들의 마음은 선군이신 양공(襄公)을 사모하고 있습니다. 양공에게는 주(周)라는 손자가 있는데 현재 주왕실을 섬기고 있습니다. 후일에 당진과 초나라 사이에 싸움이 벌어질 때 다행히 당진이 싸움에서 패할 경우 우리는 양공의 손자 주를 데려와 군주로 모시고 초나라를 섬기겠습니다.’라는 내용도 있었습니다. 이 일은 오로지 저만이 알고 있는 사실이며 다른 사람은 모르고 있는 일입니다.」

옛날 진양공(晉襄公)의 서장자 담(淡)은 조돈이 영공(靈公)을 추대하자 주나라로 몸을 피신하여 선양공(單襄公)의 문객이 되었다. 후에 담이 아들을 낳았는데 주나라에 있으면서 낳았다고 해서 이름을 주라고 했다. 한편 진영공이 조돈의 조카 조천에 의해 도원에서 시해되자 백성들의 마음은 문공의 치세를 그리워하여 주나라에 살고 있던 그의 다른 아들 흑둔(黑臀)을 데려와 당진의 군주로 세웠다. 이가 당진의 성공이었다. 성공 흑둔은 경공(景公) 유(儒)에게, 경공(景公) 유(儒)는 려공(厲公) 주포(州浦)에게 군위를 전하여 지금까지 오게 되었다. 려공이 황음무도하고 자식을 낳지 못하자 당진 백성들의 인심은 양공의 치세를 그리워하게 되었다. 그런 이유로 서동이 웅패에게 교사하여 양공의 손자 주를 데려와 군위에 앉힐 음모를 꾸미고 있다고 려공 앞에서 위증하도록 했다. 그 말은 려공의 마음을 충분히 흔들어 놓을 수 있었다. 웅패의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서동이 중간에 나서서 말했다.

「지난 번 언릉에서의 싸움에서 한 가지 더 이상한 일은 극주(郤犨)와 영제(嬰齊)가 대치하고 있는 중에도 화살 한 발 쏘지 않았던 일입니다. 아마도 그들이 서로 내통하지 않고는 일어날 수 없는 일입니다. 그것만 보더라도 정군(鄭君)을 포로로 잡지 않고 놓아준 극지의 행위는 두 마음을 품었다고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주공께서 만약 아직도 믿지 않으신다면 극지를 주나라에 사신으로 보내 초나라와의 싸움에 대한 첩보를 올리도록 하시고 사람을 몰래 보내 극지의 행동을 살펴보십시오. 만약 극지가 무슨 음모를 꾸민다면 반드시 공손주(公孫周)에게 들려 둘이 만나 음모를 꾸밀 것입니다."

「매우 훌륭한 생각이다.」

서동의 말을 따라 려공은 즉시 극지를 주나라에 보내 초나라와의 싸움에 대한 승전보를 올리게 했다. 서동이 몰래 별도의 사람을 공손주에게 보내 말을 전하게 했다.

「지금 당진국 정사의 절반은 극씨들의 수중에 있습니다. 지금 온계(溫季)가 이곳 왕도에 들려 언릉의 싸움에 대한 첩보를 천자께 올리려하고 있습니다. 한번 만나 보시고 후일에 공손께서 귀국하실 때를 대비하여 서로 알아두시면 좋을 것입니다.」

공손주는 그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윽고 극지가 주나라에 도착하여 사신으로서 임무를 마치고 공관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 공손주가 찾아와 서로 예를 갖추어 인사했다. 아무래도 공손주는 본국의 일에 대해서 상세하게 묻게 되고 극지는 하나하나 대답하여 반나절이나 시간을 같이 보내고 헤어지게 되었다. 려공이 보낸 밀정이 이 일을 탐지하여 당진에 돌아와서 보고했다. 웅패가 고한 말이 사실이라고 믿게 된 려공은 이 일로 해서 극씨들을 제거한 뜻을 결심했으나 다른 사람에게 뜻을 밝히지는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려공이 부인과 술을 마시다가 갑자기 사슴고기 요리를 찾았다. 려공은 내시 맹장(孟張)을 시켜 시정에 가서 사슴을 구해 오라고 시켰다. 맹장이 명을 받아 시중에 나가서 사슴을 구하려고 했으나 구할 수 없었다. 그때 마침 극지가 성 밖에서 잡은 사슴 한 마리를 수레에 싣고 성안으로 들어와 지나가고 있는 모습이 맹장의 눈에 띄었다. 맹장이 보고 한마디 말도 없이 극지가 몰고 있던 수레에 달려들어 사슴을 빼앗아 갔다. 극지가 화가 나서 화살을 쏘아 맹장을 죽이고 사슴을 다시 찾아갔다. 려공이 듣고 화를 내며 말했다.

「극지라는 놈이 나를 몹시 업신여기는 구나」

려공은 곧바로 서동과 이양오(夷羊五)등 여러 총신을 불러 극지를 죽이기 위해 의론했다. 서동이 말했다.

「극지를 죽이면 극기(郤錡), 극주(郤犨)가 반드시 반역을 꾀할 것입니다. 한꺼번에 같이 제거해야 후환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습니다.」

이양오가 계책을 말했다.

「궁궐의 병사와 사병을 합하면 800명 정도 됩니다. 군명으로 야밤을 이용하여 군졸들을 이끌고 출동하여 준비가 미처 안 된 극씨들 부중으로 쳐들어가면 별 문제 없이 일을 성사시킬 수 있습니다.」

이양오의 뒤를 이어 장어교가 앞으로 나와 한 가지 계획을 진언했다.

「삼극의 종족들이 보유하고 있는 갑사들 수효는 궁궐의 갑사보다 두 배가 넘어 싸움이 벌어지게 되면 이길 수 없습니다. 만약 일이 실패한다면 그 화가 주군께 미치게 됩니다. 얼마 전에 사구(司寇)의 직을 극지가, 사사(士師)②의 직은 극주가 육경의 직과 함께 겸직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거짓으로 송사를 고한다고 하면서 극씨들 부중에 들어가서 다투다가 기회를 봐서 찔러 죽인 후에 서동과 이양오 등은 군사를 이끌고 부중을 들이치면 일을 쉽게 성사시킬 수 있습니다.」

려공이 말했다.

「묘한 계책이다. 장사 청비퇴(淸沸魋)를 시켜 너를 돕도록 하겠다.」

장어교는 그날이 바로 극씨들이 자신들의 강무당(講武堂)에 모여 종족들의 일을 의논하는 날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그는 청비퇴와 함께 각기 닭피를 얼굴에 바른 후에 두 사람이 각자 단도를 손에 들고 마치 서로 죽이려고 싸우는 모습처럼 보이기 위해 몸싸움을 하면서 극씨들 부중의 강무당으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들어가 그 곡절을 하소연하였다. 극주가 그 음모를 모르고 두 사람의 다툼을 판결하기 위해 자리에 앉으며 그들이 싸우는 이유를 물었다. 청비퇴가 거짓으로 고하는 척 하면서 자기의 몸이 극주와 가까워질 때만을 기다렸다. 이윽고 극주가 자기를 부르며 가까이 다가오라고 명했다. 청비퇴는 자리에서 일어나 극주 곁으로 다가가더니 품속에서 단도를 번개처럼 뽑아 극주를 찔렀다. 복부에 칼을 맞은 극주는 땅바닥으로 쓰러졌다. 곁에 있던 극기가 보고 황급히 옆구리에 찬 칼을 빼 들고 청비퇴를 공격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장어교가 극기를 향해 달려들어 두 사람은 강무당 밑에서 서로 엉겨 싸웠다. 극지가 그 틈을 타서 뛰어나가 마차를 타고 도망쳤다. 청비퇴가 극주를 다시 한번 칼로 찔러 그의 죽음을 확인한 후에 장어교를 돕기 위해 극기에게 달려들었다. 극기는 비록 전쟁터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무장이었으나 천근을 들 수 있는 힘을 가진 청비퇴와, 역시 나이가 젊어 칼을 쓰는 손놀림이 경쾌한 장어교 두 사람을 자기 혼자 힘으로는 당해 낼 수 없었다. 곧이어 극기도 역시 청비퇴의 단도에 찔려서 땅에 쓰러졌다. 장어교가 도망가는 극지를 보더니 외쳤다.

「도망치게 해서는 안 된다. 내가 추격해서 잡아야겠다!」

그날은 아마도 삼극이 같은 날 죽게 될 운명이었던지 극지가 수레를 타고 전속력을 다해 달아나는 도중에, 마침 8백 명의 궁궐 소속 갑사를 이끌고 극씨 부중으로 오고 있던 서동과 이양오와 마주치고 말았다. 서동과 이양오 두 사람이 극지를 보고는 일제히 큰소리로 외쳤다.

「주군의 명이 여기에 있다. 역도 극지를 잡아라. 절대 놓치면 안 된다.」

중과부적으로 싸울 수 없다고 생각한 극지가 마차를 되돌려 그들과 반대 방향으로 달아났으나 곧이어 강무당에서 뒤따라온 장어교와 마주치게 되었다. 극지를 본 장어교가 몸을 한번 솟구쳐 수레에 뛰어 올랐다. 마음이 이미 황망해진 극지는 미쳐 손을 쓸 사이도 없이 장어교의 칼에 무수히 찔렸다. 장어교는 쓰러진 극지의 목을 잘랐다. 청비퇴도 극기와 극주의 목을 잘라서 가지고 왔다. 서동 일당은 피가 낭자하게 묻은 세 사람의 수급을 보자기에 싸서 궁궐로 가지고 들어갔다. 이 일에 대하여 지은 시가 있다.

무도혼군에 망나니 신하로다

못된 총신들이 조당을 함부로 어지럽히니

어느 날 아침에 참소하는 말을 듣고

연무당(演武堂) 앞을 전쟁터로 만들었구나!

無道君昏臣不良(무도혼군신불량)

紛紛嬖幸擅朝堂(분분폐행천조당)

一朝過聽讒人語(일조과청참인어)

演武堂前起戰場(연무당전기전장)

그때 상군부수 순언(荀偃)은 상군원수 극기가 그들의 강무당 앞에서 도적을 만나 피살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으나 그때까지 확실한 전말은 모르고 있었다. 순언은 즉시 마차를 몰아 입조하여 려공의 허락을 받은 후에 도적들을 토벌하려고 했다. 중군원수 란서도 소식을 듣고 입조하던 길에 순언을 만나 같이 동행했다. 두 사람은 궁궐 문 앞에서 서동이 이끄는 군사들과 마주치게 되었다. 란서와 순언이 부지중에 크게 노하여 서동의 일행을 꾸짖었다.

「어떤 놈들이 란을 일으켰나 했더니 바로 쥐새끼 같은 네 놈들이었구나. 무장을 못하게 되어 있는 금구에 어찌 감히 갑사들을 데리고 소란을 피우느냐? 빨리 군사들을 해산시키지 못하겠느냐?」

서동이 란서의 호령을 무시하며 자기가 거느리고 있던 갑사들을 향하여 소리쳤다.

「란서, 순언은 삼극과 같이 음모를 꾸민 반역자들이다. 사로잡는 자에게 큰상을 내리겠다.」

갑사들이 용기백배하여 단으로 올라와 란서와 순언을 에워싸서 사로잡아 결박하여 조당 앞으로 끌고 갔다. 려공이 장어교 등이 일을 마치고 돌아왔다는 소리를 듣고 즉시 어전에 들었다. 시끄럽게 떠들며 다가오고 있는 수많은 갑사들의 모습을 본 려공이 놀라서 서동에게 물었다.

「죄인들이 이미 죽었는데 어이하여 수많은 갑사들을 해산시키지 않는가?」

「반역자와 그 일당인 란서와 순언을 잡아 왔습니다. 주공께서 직접 처리하시기 바랍니다.」

「이 번 일은 란서, 순언과는 무관한 일이다.」

장어교가 려공 앞으로 무릎을 꿇은 채 나아가 귀속에다 대고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란서와 삼극들은 공을 같이 세워 한 마음을 갖고 있는 사이이며 순언 역시 극기가 이끌던 상군의 부수입니다. 삼극이 모두 주살 되었으니 란서와 순언 두 사람은 반드시 불안함을 느껴 머지않아 극씨의 원수를 갚기 위해 반란을 일으킬 것입니다. 주공께서 오늘 죽이지 않으신다면 조정은 평안하지 못할 것입니다.」

「하루아침에 삼경을 죽였는데 또다시 다른 씨족에게까지 파급시켜 죽일 수 있겠느냐? 나는 더 이상 허락할 수 없노라!」

려공은 즉시 란서와 순언은 죄가 없다 하여 용서하고 원래의 직을 유지시켜 돌려보냈다.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부지하게 된 두 사람은 은혜에 감사한다고 인사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장어교가 탄식하며 말했다.

「주군은 두 사람을 살려 줬으나 두 사람은 주군과 우리들을 살려 두지 않으리라!」

말을 마친 장어교는 그 길로 서쪽으로 달아나 서융 속으로 몸을 숨겼다.

3. 離淵之龍 童子可制 (이연지룡 동자가제)

- 연못을 떠난 용은 동자라도 잡을 수 있다. -

서동을 시켜 삼극을 주살한 려공은 갑사들에게 후한 상을 내리고 그들의 수급을 조문에 걸어 놓으라고 명했다. 3일이 지나서야 극씨 종족들에게 삼극의 수급을 수습하여 장례를 지낼 수 있도록 허락했다. 조정에서 벼슬을 하고 있던 극씨 종족들은 겨우 죽음을 면하여 갖고 있던 벼슬을 내놓고 모두가 시골로 내려갔다. 죽은 삼극의 자리는, 극기의 상군원수 직에는 서동을, 극주의 신군원수 직에는 이양오를, 극지의 신군부장 직에는 청비퇴를 임명했다. 초나라 공자 웅패도 석방시켜 자기나라로 돌려보냈다. 서동이 육경 중의 한 명이 되어 란서와 순언의 반열에 서자 두 사람은 이를 수치로 생각하여 칭병하고는 조정에 거의 나오지 않았다. 려공의 총애를 믿고 방자하게 굴던 서동은 못하는 짓이 없었다. 어느 날 려공이 서동을 대동하고 총신 장려(匠麗)의 집에 나들이를 나가게 되었다. 장려의 집은 태음산(太陰山) 남쪽으로, 신강성(新絳城)에서 20여 리 떨어진 곳에 있었다. 려공이 그곳에 들려 3일 밤이나 지내고도 궁정으로 돌아갈 생각을 안 했다. 신강성의 집에 칩거하다시피 하고 있던 순언이 란서를 은밀히 찾아가 말했다.

「주군의 포학무도한 행위는 원수께서도 알고 계시리라 믿고 있습니다. 우리가 병을 핑계로 조정에 나아가지 않아서 지금 이 순간만은 어떻게 연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후일 서동 등이 우리를 의심하게 되어 또다시 우리에게 원망하는 마음을 품고 주군에게 무고 한다면, 삼극이 당한 화를 종내는 면할 수 없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어떻게 하면 좋겠소?」

「대신의 길은 사직을 중히 여기고 그 군주는 가볍게 생각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 당진국의 백만 군사의 병권은 원수의 수중에 있습니다. 원수께서 비상수단을 써서 지금의 군주를 폐하고 어진 사람을 모셔와 새로운 임금으로 세우면 누가 감히 따르지 않겠습니까?」

「그 일이 틀림없이 성사 될 수가 있겠소?」

「용이 연못에 있으면 아무도 엿보지 못합니다. 그러나 연못을 떠나 뭍에 나오면 삼척동자라도 용을 잡을 수 있습니다. 지금 임금이 장려씨 집에 나들이를 하여 3일이 경과하여도 회궁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것 역시 연못을 떠난 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찌 일이 성사되지 않겠습니까?」

란서가 탄식하며 말했다.

「우리 종족은 세세대대로 당진에 충성을 해 왔는데 금일 사직이 존망에 달려 부득이 대사를 도모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후세 사람들은 반드시 우리를 시역자라고 부르겠지만 어쩔 수 없구나!」

그들은 장소를 옮겨 계획을 세운 후에 자신들의 병이 쾌차하여 군주를 뵙고 중요한 일을 상의해야 한다고 려공에게 먼저 통고하고, 아장 정활(程滑)을 시켜 갑사 300명을 태음산 좌우에 매복시겼다. 두 사람이 장려의 집에 당도하여 려공을 알현하고 상주했다.

「주공께서 정사를 돌보지 않고 나들이를 하여 3일이 지나도록 환궁치 않으시니 신료와 백성들은 매우 크게 실망하고 있습니다. 신등이 이렇게 특별히 와서 뵙는 뜻은 주군의 어가를 모셔 환궁토록 하기 위함입니다.」 란서와 순언이 완강하게 도성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하자 려공도 어쩔 수 없이 어가를 타고 신강성을 향해 출발했다. 서동이 앞에 서고 란서와 순언이 뒤를 따랐다. 행렬이 태음산 밑을 지날 때 갑자기 일성포향이 울리면서 복병이 일제히 일어나 려공 일행의 앞을 막아섰다. 정활이 앞으로 나와 먼저 서동을 잡아서 죽였다. 려공이 크게 놀라 수레에서 내려서 도망치려고 했다. 란서와 순언이 갑사에게 명하여 려공을 잡아오라고 명했다. 두 사람은 태음산 밑에 영채를 짓고 려공을 군중에 가두었다.

「범(范), 한(韓) 두 집안사람들이 앞으로 다른 소리를 할까 두렵습니다. 군명을 가장하여 부르도록 합시다.」

「옳으신 말씀이십니다.」

두 사람은 즉시 연락용 마차 두 대에 사자 한 사람씩을 각각 태워 범개와 한궐을 부르러 보냈다. 사자가 범개의 집에 당도하여 주공이 부른다고 전하자 그가 사자에게 물었다.

「주공께서 무슨 일로 나를 부르시는가 ?」

사자가 대답을 못했다. 범개가 말했다.

「수상한 일이로구나!」

범개가 즉시 사람을 보내 탐문하게 했다. 그 중 한 사람은 한궐에게 보내 그가 부름에 응하여 가는지 안 가는지 알아보게 했다. 그 사람이 돌아와 한궐은 병을 핑계로 가지 않았다고 보고했다. 범개가 말했다.

「지혜로운 사람의 의견은 비슷한 법이다.」

자신의 부름에 범개와 한궐이 응하지 않음을 본 란서가 순언에게 물었다.

「이제는 어떻게 하면 되겠소!」

「우리들은 이미 호랑이 등을 올라탔는데 어찌 내릴 수가 있겠습니까?」

란서는 여러 사람을 불러 회의를 열고 그날 밤이 되자 정활에게 명하여 려공에게 독주를 마시게 하여 죽였다. 려공의 시체는 군사들에게 명하여 익성(翼城)의 동문 밖으로 싣고 가서 묻도록 했다. 범개와 한궐은 려공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같이 성을 나와 문상을 하였으나 임금이 어떻게 죽었는지 물어 보지 않았다. 이윽고 려공의 장례가 끝나자 란서는 여러 대부들을 조당으로 불러 모이도록 했다. 란서는 누구를 당진의 군주로 세워야 하는 지를 여러 대신들로 하여금 의논하게 했다.

「삼극이 죽은 일은 서동이 려공에게 공손주를 모셔다 군주의 자리에 앉히려 한다고 무고한 일 때문이었습니다. 이것은 앞일에 대한 예언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영공이 도원에서 죽자 양공의 후사가 끊겼습니다. 하늘의 뜻이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땅히 가서 모셔 와야 합니다.」

순언의 말을 들은 여러 군신들은 모두 기뻐하며 찬성하였다. 란서는 즉시 순앵을 주나라에 보내 공손주를 모셔와 당진의 군주 자리에 앉히기로 결정했다. 그때 공손주는 나이가 14살이었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매우 총명하고 지략이 출중했다. 이윽고 순앵이 주나라에 당도하여 그를 당진의 새로운 군주로 모시려고 한다는 뜻을 밝히고 당진국의 국내 정세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공손주가 곧바로 선양공(單襄公)에게 달려가 하직인사를 올린 후에 순앵과 함께 당진으로 들어왔다. 공손주의 행렬이 청원(淸原)③이라는 곳에 이르자 란서, 순언, 범개, 한궐 등의 대부들이 모두 영접하러 마중 나왔다. 공손주가 먼저 입을 열어 말을 했다.

「내가 부친을 따라 오랫동안 타향에서 객지생활을 하다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리라고는 꿈에도 생각못했습니다. 하물며 군주의 자리를 어떻게 바랐겠습니까? 군주의 자리가 존귀하다고 말할 수 있음은, 오로지 스스로 명령을 내릴 수 있기 때문이라고 나는 알고 있습니다. 만일 이름뿐인 군주로 그 령을 신하가 따르지 않는다면 그런 군주는 없는 편이 낫습니다. 경 등이 과인이 명령을 받들겠다면 오로지 금일 중에 결정해야 하고, 그렇지 않다면 다시 다른 사람을 찾아서 모시기 바랍니다. 나는 허울뿐인 이름을 갖고 있었던 주포(州蒲)처럼 되지는 않겠습니다.」

란서 등 모든 신하들이 공손주의 추상같은 말에 몸을 떨면서 다시 엎드려 절을 하고 말했다.

「저희들 모든 신하들은 어진 임금을 받들어 모시기를 원하옵니다. 어찌 감히 전하의 명을 거역할 수 있겠습니까?」

란서가 공손주 앞에서 물러 나와 여러 신하들에게 말했다.

「새 임금은 옛날 려공과 비할 바가 아닙니다. 모쪼록 조심해서 모셔야 하겠습니다.」

4. 趙氏復興(조씨부흥)

- 한궐의 신원으로 도안고를 주살하고 조씨들을 복권시키는 진도공(晉悼公) -

공손주가 신강성에 입성하여 즉시 태묘에 고하고 그 군주 자리에 올랐다. 이가 진도공(晉悼公)이다.④

도공은 자기의 즉위식이 끝나자마자 바로 이양오와 청비퇴를 불러다 임금을 잘못 모신 죄를 꾸짖었다. 이어서 좌우에게 명하여 조문 밖으로 끌어내어 참수하라고 하고 그 가솔들은 나라밖으로 추방했다. 또한 려공의 시해사건의 죄를 정활에게 물어 시정에 내다가 사지를 찢어 죽이도록 하였다. 란서가 놀라 밤중에 잠을 못 이루었다. 다음날 그는 나이를 이유로 상경과 중군원수의 직을 내어놓으면서 한궐을 자기의 후임으로 천거했다. 도공은 한궐이 어질다는 소문을 듣고 란서의 직을 대신하게 했다. 란서는 은퇴를 한지 얼마 안 있어 울화병이 들어 죽었다.

한궐이 감사의 말을 드린다는 핑계로 도공에게 독대를 청해 허락받고 들어가 조씨 집안의 일을 상주했다.

「신 등은 모두가 선세의 공로에 힘입어 군주의 옆에서 모시는 영광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당진에서는 선세가 세운 공로로써는 조씨 문중의 것이 제일 큽니다. 조씨 문중을 일으킨 조쇠는 충성과 성의를 다하여 문공을 보필했습니다. 그의 아들 조돈도 양공을 모셔 나라에 위엄을 갖추게 만들어 우리 당진이 패업을 계속 이어갈 수 있는 공을 세웠습니다. 불행하게도 영공께서 실정을 하고 간신 도안고를 총애하여 조돈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조돈이 화를 면하기 위해 국경 밖으로 피신을 하고 있던 사이에 영공은 군사들의 반란을 맞이하여 도원에서 피살되고 그 뒤를 주나라에서 머물고 계시던 성공(成公)께서 귀국하여 군위를 이었습니다. 이어서 선군이신 경공에 의해 다시 기용된 도안고는 이미 죽은 조돈을 기만하여 조씨가 시역의 죄를 저질렀다고 무고했습니다. 도안고는 경공의 허락을 받아 조돈의 죄를 치죄 한다고 하면서 조씨 문중을 멸절시켜 버렸습니다. 그 일로 인해 신료들과 백성들의 원성이 쌓여 지금도 불평이 많습니다. 다행히 조씨 문중의 유복자인 조무(趙武)가 아직 살아있어 지금이라고 주공께서 상벌을 분명히 하신다면 우리 당진을 크게 일으킬 수 있습니다. 이미 이양오 등의 죄는 벌하여 바로 잡으셨으면서 어이하여 조씨들의 공로에 대해서는 눈을 감고 그 억울함을 풀어 주시지 않으십니까?」

「조씨들의 일에 대하여는 선친으로부터 들은 바가 있습니다. 지금 조무는 어디에 있습니까?」

「당시 도안고가 조씨의 유복자를 혈안이 되어 찾고 있었기 때문에 조씨 집안의 문객 공손저구와 정영이 조씨고아를 구하기 위해 모의했습니다. 저구가 정영의 갓난아이를 안고 스스로 도안고로부터 같이 죽음을 당하고 조무를 위급한 지경에서 빼내었습니다. 정영이 조무를 데리고 우산(盂山)에 가서 숨은 지 이제 15년이 되었습니다. 」

「경이 과인을 대신해서 그들을 불러오십시오.」

「도안고가 아직 조정에 있으니 그들이 이곳에 당도할 때까지 주공께서는 반드시 이 일을 비밀에 부치셔야 합니다.」

「알겠소!」

한궐이 도공에게 인사를 드리고 궁문을 나가서 조무를 데려 오기 위해 몸소 마차를 몰아 우산으로 갔다. 한궐이 조무를 데리고 돌아올 때는 정영이 마차를 몰았다. 15년 전에 옛날의 도성 강성(絳城)을 탈출하여 신강성(新絳城)으로 돌아오니 성곽이 서로 같지 않고 해서 정영의 마음은 감상에 젖어 감개무량했다. 조무를 데리고 아무도 몰래 궁궐의 내궁으로 들어간 한궐은 조무 일행과 함께 도공을 배알했다. 도공은 조무를 내궁에 감추고 자기는 거짓으로 병이 났다고 전하게 했다. 다음날 한궐이 조정의 백관들을 인솔하고 궁궐에 들어가서 문안을 올렸다. 도안고 역시 백관들 중에 끼어서 같이 도열했다.

「경들은 내가 어떤 병에 걸렸는지 아시오? 사실은 조정의 공적부에 분명치 않은 일이 있어 그 일로 신경을 쓰다 보니 이렇게 병이 나게 되었소!」

여러 대부들이 머리를 조아리면서 물었다.

「공적부 상의 분명치 않은 일이 무슨 일입니까?」

「조쇠, 조돈 부자는 나라에 공을 세운 공신인데 어찌하여 지금은 그 집안의 종사가 끊기게 되었는지 의아스러웠기 때문이오!」

여러 대신들이 일제히 대답했다.

「조씨 집안이 멸족된지 벌써 15년이 되었습니다. 이제 주군께서 조씨 집안의 공로를 추모하여 상을 주시려고 한다 해도 그 후손이 없어 상을 줄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도공은 병풍 뒤에 숨어있던 조무를 불러 나오게 하여 여러 신하들에게 인사를 드리게 했다. 여러 신하들이 물었다.

「이 젊은 이는 누구입니까?」

「이 아이가 조씨 집안의 유복자 조무입니다. 조씨의 갓난아이로 그때 죽은 갓난아이는 바로 조씨 집안의 문객 정영의 아들이었습니다.」

도안고는 이때 넋이 나가고 얼이 빠져서 아무 말도 못하고 땅에 엎드려 있을 뿐이었다.

「이것은 모두 도안고로 인해 일어난 일이오. 지금 안고를 족형⑤에 처하지 않고는 어찌 지하에 있는 조씨들의 원혼을 위무할 수 있겠소?

도공이 즉시 좌우의 무사들에게 명하였다.

「안고를 결박해서 밖으로 데리고 나가 참수하라!」

이어서 도공은 한궐에게 명하여 조무와 같이 군사를 끌고 가서 안고의 집을 포위한 후에 늙고 젊고를 가리지 않고 모두 죽이라고 명했다. 조무가 안고의 수급을 청하여 자기 부친인 조삭의 묘에 바쳐 제사지냈다. 나라 안의 백성들 중 기뻐하지 않는 자는 한 사람도 없었다. 잠연(潛淵) 선생이 이 일을 두고 시를 지어 노래했다.

옛날에는 안고가 조씨를 멸했는데

지금 와서는 조씨가 도씨를 멸했구나

15년 동안의 세월을 다투어

철천지원수를 받은 만큼 되갚았도다!

岸賈當時滅趙氏(안가당시멸조씨)

今朝趙氏滅屠家(금조조씨멸도가)

只爭十五年前后(지쟁십오년전후)

怨怨仇仇報不差(원원구구보불차)

도안고를 처형한 도공은 곧바로 조무를 조당에 불러 관을 씌워 주고 사구 벼슬을 내려 도안고가 갖고 있던 벼슬을 대신하게 하고 옛날의 조씨 문중의 전답과 녹봉을 다시 거두어 돌려줬다. 계속해서 정영이 행한 의로운 이야기를 듣고 그를 군정(軍正)에 임명하려고 했다. 도공의 부름을 받은 정영이 사람들에게 말했다.

「당시 내가 조씨를 따라 죽지 않은 이유는 조씨의 고아를 돌봐 주기 위해서였다. 오늘날 이미 조씨의 관직이 복권되고 원수도 갚았으니 어찌 내가 스스로 부귀를 탐하여 공손저구만 홀로 죽게 만들겠는가? 내가 지하에 있는 저구에게 가서 이 기쁜 일을 알려야 되겠다! 」

정영은 말을 마치고 스스로 목을 찔러 죽었다. 조무가 그 시체를 만지면서 통곡하면서 도공에게 청하여 장례를 후하게 치르고 공손저구와 함께 운중산(雲中山)에 묻었다. 사람들이 그 무덤을 이의총(二義冢)이라고 불렀다. 조무가 정영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그의 장례를 치르고 난 후에도 3년 동안 상복을 입어 부친상을 행하는 것과 같이 했다. 공손저구와 정영이 행한 일을 칭송한 시가 있다.

깊은 계곡에서 숨어 지내기를 15년 만에

바지 속에 숨겼던 아이가 자라 문중의 원한을 갚았다.

정영과 저구를 한 쌍의 의로운 사람이라고 일컫느니

죽음은 어차피 한번인데 구태여 선후를 따지겠는가?

陰谷深藏十五年(음곡심장십오년)

褲中兒報祖宗寃(고중아보조종원)

程嬰杵臼称雙義(정영저구칭쌍의)

一死何須問后先(일사하수문후선)

5. 用賢復覇(용현복패)

- 현인을 등용하여 진문공의 패업을 다시 이룩하는 진도공 -

도공이 조무를 불러서 조씨 문중을 다시 세워주고 곧이어 송나라에 망명하여 살고 있었던 조승을 불러서 한단의 땅을 봉읍으로 주었다. 그리고 다시 신하들의 지위를 대폭적으로 다시 조정하여 현자는 높여서 존중하고, 재능 있는 자는 기용하고, 녹봉은 공로에 따라 정했으며, 작은 죄는 불문에 부치고, 모든 관리들은 적재적소에 배치하여 맡은바 임무를 다하게 했다.

당진의 군제를 삼군(三軍)과 신군(新軍)을 다시 개편하여 모두 사군(四軍)으로 축소 개편하고 중군의 원수와 부수에는 한궐과 범개를, 상군의 원수와 부수는 순앵과 순언을, 하군의 원수와 부수에는 란염과 사방(士魴)을 임명하고 다시 중군사마에는 위강(魏絳), 중군의 정위(正尉)⑥에는 기혜(祁奚), 부위(副尉)에는 양설직(羊舌職) 등을 임명하여 당진의 군제를 대대적으로 혁신하였다.⑦ 그밖에 유명한 관리들만 든다면 다음과 같았다.

장로(張老)는 후엄(候奄)⑧에, 한무기(韓无忌)는 공족대부(公族大夫)에 임명하여 공족들의 일을 관리하게 하고, 태자의 태부(太傅)는 사악탁(士渥濁)을, 사공(司空)에는 가신(價辛)을, 친군어융(親軍戎御)⑨에는 란규(欒糾)를, 차우장군(車右將軍)에는 순빈(荀賓)을, 찬복(贊僕)에는 정정(程鄭)을, 그리고 탁알구(鐸遏寇)는 여위(輿尉)에, 적언(籍偃)은 여사마(輿司馬)로 임명했다.

백성들에게는 체납한 세금은 면제해 주고 부세를 가볍게 했으며,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고 부역을 줄여주었다. 경제가 막힌 것은 뚫고 침체된 것은 부흥시켰고, 홀아비와 과부를 구휼하자⑩ 당진의 국정은 크게 혁신되어 백성들은 도공의 선정에 크게 기뻐하였다. 송과 노 등의 중원 제후국은 그 소식을 듣고 당진에 래조하여 조공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정성공만은 정나라를 구하기 위해서 당진과 싸우다 한쪽 눈을 잃은 초왕에게 진실로 마음속으로 승복하고 있었기 때문에 당진을 받들기 위해 래조하러 오지 않았다.

한편 초공왕은 당진의 려공이 시해되었다는 소식을 듣자 희색이 만면하여 자기의 한쪽 눈을 잃은 원수를 갚기 위해 군사를 일으키려고 했다. 그러나 곧이어 당진의 군주로 등극한 도공이 상벌을 분명히 하고 현자를 기용하여 치세를 이루고, 조정의 생활을 근검하게 하여 나라 안팎으로 인심을 얻어 문공이래 다시 백업(伯業)을 일으키려고 한다는 소식을 듣고 자연히 기쁨이 수심으로 변했다. 군신들을 소집한 공왕은 중원을 혼란스럽게 만들어 당진으로 하여금 백업을 이룩하지 못하도록 하는 계책을 내도록 했다. 영윤 영제(嬰齊)가 별다른 계책을 내지 못하자 공자임부(公子壬夫)가 앞으로 나와서 말했다.

「중원의 나라들 중에 오로지 송나라만이 작위도 높고 나라도 크다고 하겠습니다. 항차 송나라의 위치가 당진과 오나라 사이에 있어 현재 우리가 당진의 백업을 이루는데 방해를 놓자면 반드시 송나라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지금 송나라의 어석(魚石), 상위인(向爲人), 인주(鱗朱), 상대(向帶), 어부(魚府) 등 오대부가 송나라 우사 화원과 반목하여 우리나라로 도망쳐 와 있습니다. 그들에게 병력을 주어서 송나라를 치게 하여 만약 그 땅을 얻게 되면 그들에게 봉지로 주겠다고 하십시오. 이것은 적을 이용하여 적을 치는 계책이라 하겠습니다. 당진이 만약 구원하러 군사를 보내지 않으면 제후들의 신임을 잃게 되며, 송나라를 구하러 오면 반드시 어석 등을 공격하게 되니 우리는 앉아서 그 성패만 관망하면 될 뿐입니다."

초공왕은 즉시 임부의 계책을 받아들여 그를 대장으로 어석 등을 향도로 삼아 대군을 일으켜 송나라로 쳐들어갔다.

《제60회로 계속》

주석

①范匃(士匃)/ 사씨들의 봉읍이 지금의 산동성 양산(梁山)부근에 있던 범(范)이었기 때문에 그들의 성을 범씨로 바꾸어 부르게 되었다.

②사사(士師)/ 중국 고대의 형옥(刑獄)의 일을 관장하던 관리로써 사구(司寇)의 속관이었다.

③청원(淸原)/ 지금의 산서성 문희현(聞喜縣) 서북 약 20키로에 있었던 당진(唐晉) 소속의 고을

④진문공(晉文公) 이래 도공까지의 당진국 군주 계보도는 다음과 같다.

⑴문공(文公) 중이(重耳) : 재위 전 636-626

⑵양공(襄公) 환(歡) : 재위 전 627-621, 문공의 장남.

⑶영공(靈公) 이고(夷皐) : 재위 620-607, 양공의 아들

⑷성공(成公) 흑둔(黑臀) : 재위 606-600년, 진문공의 막내아들

⑸경공(景公) 거(據) : 재위 599-581년, 성공의 아들

⑹려공(厲公) 주포(州蒲) : 재위 580-573년, 경공의 아들

⑺도공(悼公) 주(周) : 재위 572-558년, 양공의 증손자

⑤족형(族刑)/ 옛날 혹형(酷刑)의 하나로 범죄자의 삼족(三族)을 멸했던 연좌제의 형벌

⑥정위(正尉)/사마(司馬) 밑에서 군사에 관한 사무를 맡아보던 군리(軍吏)들의 장(長)

⑦기원전 572년, 진도공(晉悼公) 원년에 새로 개편한 당진의 군제표는 다음과 같다.

군별(軍別)

원수(元帥)

부수(副帥)

기타(其他)

중군(中軍)

한궐(韓厥)

범개(范匃)

중군사마(中軍司馬):위강(魏絳)/ 중군정위(中軍正尉):기해(祁奚)/ 중군부위(中軍副尉): 양설직(羊舌職)

상군(上軍)

순앵(荀罃)

순언(荀堰)

하군(下軍)

란염(欒黶)

사방(士魴)

신군(新軍)

조무(趙武)

위상(魏相)

⑧후엄(候奄)/궁중의 환관을 감시하고 규찰한 관직

⑨친군어융(親軍御戎)/ 군주의 병거를 모는 마부

⑩蠲逋薄斂(견포박렴), 濟乏省役(제핍성역), 振廢起滯(진폐기체), 恤鰥惠寡(휼환혜과)

[평 설]

기원전 583년 진경공(晉景公)이 조씨 종족들을 멸족시키자 당진국의 정치는 날이 갈수록 문란해진 가운데 공손저구(公孫杵臼)와 정영(程嬰)은 조씨들의 유일한 혈육인 보호함으로 해서 그들의 충직과 지혜를 드러냈다.

그 두 사람은 당진의 상경 조돈(趙盾)의 심복 문객이었다. 진경공이 총애했던 도안고가 모함하여 조씨가족들을 참살하고 있던 와중에 그들은 감히 사악한 세력에 대항해서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조씨의 유일한 혈육을 보존시켰다. 정영은 자기의 갓 낳은 아들을 저구(杵臼)에게 주어 수양산에 숨어있도록 했다. 이어서 도안고를 찾아가 천금의 상금을 타기 위해서라고 하면서 저구가 조씨 혈육을 데리고 수양산에 숨어있다고 고변했다. 그 결과 저구와 그의 아들은 모두 목숨을 잃었다. 저구는 죽기 전에 도안고의 면전에서 정영이 조씨들을 은혜를 저버렸다고 크게 비난함으로 해서 정영을 교묘하게 엄호했다. 정영은 천금의 상금으로 조씨들의 장래를 치렀다. 그런 다음 조씨 고아를 데리고 우산으로 들어가 몸소 길렀다.

기원전 573년 진려공이 아첨배를 가까이 하고, 직간하는 충신들을 멀리한 결과, 대신들에게 살해당했다. 그 뒤를 이은 진도공(晉悼公)은 선행을 한 사람에게는 상을, 악행을 한 사람에게는 벌을 주고, 현인을 임용하여 치세를 이루겠다는 목표를 갖고 국정에 임했다. 이에 조씨 종족들의 억울한 누명은 벗겨지게 되었고, 조씨 고아 조무(趙武)는 도공에 의해 임용되어 옛날 조씨 종족들의 작위와 봉지를 돌려받았다. 정영은 조씨들의 억울한 누명이 벗겨지고 밝은 햇빛을 보게 되자 옛날에 죽은 저구를 생각한 끝에 자기만 살 수 없다고 해서 스스로 칼로 목을 찔러 죽었다. 사람들은 두 사람을 의인이라고 불렀다.

의(義)라는 것은 누구든지 마땅히 행해야 하는 일이다. 전장에 임해 정의를 위해 싸울 때의 마음 자세는 죽음을 마치 집에 돌아가듯이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정치적인 문제로 사악한 세력에 맞서는 싸움은 역시 자기희생을 각오한 용기를 필요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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