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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05-11 12:05:586543 
제69회. 挾詐滅國(협사멸국) 巧辯服荊(교변복형)
양승국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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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제69회 挾詐滅國 巧辯服楚(협사멸국 교변복초)

속임수로 진채(陳蔡) 두 나라를 멸한 초영왕과

교묘한 변설로 초나라 대부들을 승복시킨 안영.

1. 총서초란(寵庶招亂)

- 서출을 총애하여 진나라에 변란을 불러들이는 진애공(陳哀公) -

한편 진애공은 이름이 익(溺)이라고 했는데 그의 정부인 정희(鄭姬)가 낳은 아들 언사(偃師)를 세자로 세웠다. 그리고 둘째 부인은 아들 공자유(公子留)를 낳고 셋째 부인은 공자승(公子勝)을 낳았다. 둘째 부인이 아양을 잘 떨어 진애공으로부터 총애를 받게 되어 그녀의 소생 공자유도 같이 사랑을 받게 되었다. 둘째 부인이 자기의 소생인 공자유를 세자로 세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단지 이미 세자로 세운 언사를 폐하는데 명분이 없었다. 진애공에게는 공자초(公子招)와 공자과(公子過)라는 동생이 있었다. 그래서 진애공은 공자유를 위해 사도(司徒) 공자초를 공자유의 태부에 공자과를 소부로 각각 삼고 그의 장래를 부탁하면서 말했다.

「후일에 언사가 죽게 되면 진나라의 군위는 마땅히 자유(子留)에게 전해지도록 너희들이 지켜 주도록 하라!」

주경왕 11년 즉 기원전 534년 진애공이 병으로 자리에 눕게 되어 오랫동안 조정에 나가지 못했다. 공자초가 공자과를 불러 상의하였다.

「언사가 만일 즉위한다면 필시 이미 장성한 아들 오(吳)를 세자로 세울 것이다. 그렇게 되면 진나라의 군위는 오에게 전해져 공자유를 군위에 앉히라는 주공의 당부를 저버리는 일이 된다. 지금에 이르러 주군께서 병이 들어 오랫동안 병상에 누워 계시니 모든 일은 우리의 생각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주군께서 아직 돌아가시지 않으셨으니 군명을 받았다 하고 언사를 죽인 후에 자유를 세우면 나중에 후회할 일이 없을 것이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공자과가 듣고 동의했다. 공자초가 다시 대부 진공환(陳孔奐)과 상의하였다. 진공환이 말했다.

「세자가 하루도 빠지지 않고 세 차례 입궁하여 주군의 병문안을 드리기 위하여 조석으로 주군의 곁에 붙어 있으니 주군의 명이라고 해봐야 믿지 않을 것입니다. 그럴 필요가 없이 궁궐의 으슥한 길목에 무장을 갖춘 자객을 매복해 놓았다가 세자가 나타나기를 기다려 칼로 찔러 죽인다면 한 사람의 장사만으로도 능히 일을 성사시킬 수 있습니다.」

공자과와 공자초가 공환의 계책을 따르기로 하고 모든 일은 공환이 알아서 처리하도록 맡겼다. 동시에 공환이 일을 성사시켜 자유가 진나라의 군위에 오르게 되면 대읍을 주어 봉지를 넓혀 주겠다고 약속했다. 공환이 집으로 돌아가 아무도 몰래 심복 장사를 불러 궁궐 안으로 들여보내 대궐문을 지키는 위병 속에 섞여 있도록 했다. 위병들은 공환이 보낸 자객이 세자를 따라온 종자인줄 알고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다. 세자 언사가 문안 인사를 마치고 한밤중에 궁궐 문을 나서자 자객이 불을 질러 궁궐 문 앞이 혼란하게 만들었다. 그 틈을 탄 자객이 세자 곁으로 접근하여 칼로 찔러 죽였다. 궁문 앞은 더 큰 혼란에 빠진 사이에 갑자기 궁문 앞에 당도한 공자초와 공자과가 벌어진 참상에 짐짓 놀래는 표정을 얼굴에 지으면서 데리고 온 수하들에게 자객을 잡아 오라 명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주위에 모인 사람들을 향해 큰 소리로 외쳤다.

「주군께서 병이 위중하신 데 오늘 다시 세자께서 도적의 칼에 맞고 돌아가셨으니 마땅히 차자인 자유가 그 뒤를 잇게 해야만 한다.」

진애공은 궁궐 밖에서 변이 났다는 소식을 듣고 분하고 원통한 마음을 금하지 못한 나머지 스스로 목을 매어 죽었다. 후세의 사관이 이 일을 두고 시를 지어 노래했다.

적장자로 군위를 잇게 함이 안정된 나라의 근본이거늘

서총(庶寵)을 세우려고 하여 분란의 빌미를 만들었는가?

자식을 편애하는 고금의 수많은 아비 된 자들이여

청컨대 진애공의 경우를 자세히 살펴보기 바란다.

嫡長宜君國本安(적장의군국본안)

如何寵庶起爭端(여하총서기쟁단)

古今多少偏心父(고금다소편심부)

請把陳哀仔細看(청파진애자세간)

2. 진화타겁(趁火打劫)

- 불난 집에서 도적질하는 초영왕 -

사도 공자초가 공자유를 상주로 삼아 진애공의 장례를 치른 후에 진나라의 군위에 앉혔다. 이어서 대부 우징사(于徵師)를 초나라에 사자로 보내 진후가 병으로 죽었다는 부고를 전하게 하고 그 뒤를 공자유가 이이받았다고 전했다. 그때 초영왕 곁에는 오거가 시립하고 있었다. 진나라 군주의 자리에는 이미 공자유가 섰다는 소식을 듣게 된 오거는 진나라의 세자 언사는 어떻게 되었는지 몰라 의심하는 마음을 품게 되었다. 그때 갑자기 밖에서 사람이 달려와서 고했다.

「진후의 삼자 공자승(公子勝)이 세자의 아들 오(吳)와 함께 와서 대왕의 알현을 청하고 있습니다.」

공손오는 언사의 아들이니 공자승에게는 조카가 되었다. 영왕이 불러 그들이 온 뜻을 물었다. 두 사람이 땅에 엎드리더니 통곡하며 말을 잇지 못했다. 먼저 울음을 그친 공자승이 입을 열어 말했다.

「적자이신 세자 언사 형님은 사도 공자초와 공자과가 꾸민 음모에 걸려 억울하게 살해 당하셨습니다. 이에 충격을 받으신 부친께서는 스스로 목을 매어 돌아가시자 두 사람이 자기들 마음대로 공자유를 진후의 자리에 앉혔습니다. 우리 두 사람은 그들로부터 죽임을 당할까 두려워하여 이렇게 상국에 몸을 피해 달려왔습니다.」

영왕이 우징사를 불러 공자승과 공손오의 면전에서 진후의 죽음에 대해 추궁했다. 우징사가 처음에는 완강하게 부인하였으나 곧이어 공자승이 하나하나 따져가며 지적하자 결국은 할 말이 없게 되었다. 영왕이 노하여 말했다.

「너는 곧 공자초와 공자과의 일당이로구나!」

영왕이 큰 소리로 도부수들을 불러 우징서를 포승줄로 묶게 한 후에 밖으로 끌고 나가 참수형에 처하도록 명했다. 오거가 말했다.

「왕께서 이미 반역자들이 보낸 사자를 죽였으니 마땅히 공손오를 앞세워 진나라의 공자초와 공자과의 죄를 물어 정의를 명분으로 순리를 따른다면 누가 감히 복종하지 않겠습니까? 진나라를 평정하고 후에 채나라의 내정을 바로 잡는다면 그것은 선왕이신 장왕님이 세운 공업에 비할 수 있는 위대한 업적입니다.」

영왕이 크게 기뻐하였다. 사자로 간 우징서가 초나라에서 살해당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공자유는 자기도 화를 입게 되지나 않을까 두려워한 나머지 진후(陳侯)의 자리를 버리고 정나라로 몸을 피했다. 어떤 사람이 공자초에게 어째서 공자유와 함께 정나라로 몸을 피하지 않았느냐고 묻자 공자초가 대답했다.

「초나라의 군사들이 우리 진나라에 당도해도 나에게는 그들을 물리칠 계책이 있으니 어찌 근심할 필요가 있겠는가?」

이윽고 초영왕이 몸소 대군을 이끌고 진나라에 당도했다. 진나라 백성들은 모두 언사의 죽음을 불쌍히 여겼기 때문에 초나라의 군중에 있는 언사의 아들 공손오(公孫吳)의 모습을 보고 모두가 기뻐하여 밥과 국을 대바구니와 항아리에 넣어 가지고 나와 초나라 군사들을 환영했다. 사태가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음을 감지한 사도 공자초가 사람을 시켜 초군을 물리칠 계책을 의논하겠다고 하면서 공자과를 불러오게 하였다. 공자과가 와서 자리에 앉으면서 공자초에게 물었다.

「형님께서 초나라 군사를 물리칠 계책이 있다고 했다는데 그 계책은 도대체 무엇입니까?」

「초나라 군사를 물리치는데 오로지 한 가지 물건이 필요하다. 너에게 그것을 빌리고자 한다.」

「그것이 무엇이기에 저에게 구하십니까?」

「빌리고자 하는 것은 너의 목이다.」

공자과가 대경실색하여 자리에 일어나 달아나려고 했으나 공자초가 여페 두었던 채찍을 주어들고 공자과를 향해 마구 휘둘렀다. 공자과가 채찍에 맞아 바닥에 넘어지자 즉시 허리에 찬 칼을 뽑아 그의 머리를 베어 손에 들고는 친히 초나라 진영의 영왕을 찾아가 머리를 숙이고 호소했다.

「세자를 죽이고 공자유를 추대한 일은 모두가 공자과의 짓입니다. 제가 대왕의 위엄에 의지하여 과의 목을 참하여 가지고 왔습니다. 원하옵건대 소신이 공자과의 불의한 짓을 막지 못하고 저지른 불민한 죄를 용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공자초의 지극하고 공손한 태도에 영왕은 마음이 매우 흡족하게 되어 공자초를 용서했다. 그러자 공자초가 무릎을 꿇은 상태로 앞으로 기어 나와 영왕의 왕좌에 다가와서는 귓속말로 아뢰었다.

「옛날 장왕께서 진나라의 변란을 평정하신 후에 우리 진나라를 이미 초나라의 현으로 만드셨으나 후에 다시 진나라를 복국 시킨 결과 그 공이 상쇄되어 버렸습니다. 오늘 공자유는 자기가 지은 죄에 대해 벌을 받을까 두려워하여 나라밖으로 도망쳐 버려 이제 진나라는 주인이 없게 되었습니다. 원컨대 이 기회에 대왕께서는 진나라를 거두어 초나라의 군현으로 삼으시고 절대 타성의 소유가 되지 않도록 하십시오.」

영왕이 듣고 크게 기뻐하며 말했다.

「그대의 말은 나의 뜻과 정히 같도다! 그대는 일단 성안으로 돌아가 과인을 위해 궁궐을 소제하고 내가 입궐하기를 기다리도록 하라!」

공자초가 사례의 말을 드리고 물러갔다. 영왕이 공자초를 용서하여 도성 안으로 돌아가게 했다는 소식을 들은 공자승은 영왕을 다시 찾아와 곡을 하며 호소했다.

「반역을 꾀하기 위한 음모는 모두 공자초의 머리에서 나왔습니다. 세자를 직접 시해한 진공환은 단지 공자과의 사주를 받은 하수인일 뿐입니다. 오늘 시역의 죄를 모두 과에게 넘겨 버리고 자기는 빠져나가려고 하니 돌아가신 선군과 세자께서 지하에서 눈을 감지 못하실 것입니다.」

공자승은 말을 마치고 다시 통곡했다. 초나라 군중의 병사들이 보고 공자승을 동정했다. 영왕이 공자승을 위로하며 말했다.

「공자는 너무 슬퍼하지 말라. 과인에게는 별도의 계책이 있노라!」

다음날 공자초가 법가를 준비하여 초나라 진영으로 와서 의례를 갖춘 후에 초왕을 태우고 진나라 도성 안으로 모셨다. 영왕이 진나라의 조당에 있던 옥좌에 앉자 진나라의 백관들이 빠짐없이 나와 참배를 드렸다. 영왕이 먼저 진공환을 불러 앞으로 나와 꿇어앉힌 후에 큰 소리로 꾸짖었다.

「너는 세자를 시해한 대역무도한 자다. 내가 너를 죽이지 않고서야 어찌 많은 사람들에게 경계를 줄 수 있으랴?」

영왕이 좌우의 무사들에게 소리쳐 진공환을 끌어내어 참수한 후에 공자과의 수급과 같이 성문 위에 걸어 놓으라고 했다. 다시 공자초를 호출한 영왕이 큰 소리로 꾸짖었다.

「과인이 원래는 너를 관대하게 용서하고자 했으나 여러 사람들의 의견이 너를 용서하면 안 된다고 하니 어찌하면 좋겠는가? 오늘 너의 목숨만은 살려주겠으니 속히 가솔들을 데리고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동해의 바닷가로 옮겨가 살라!」

공자초가 황망하여 감히 변명을 하지 못하고 감사의 말만을 올리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영왕이 사람을 시켜 공자초와 그의 가솔들을 월나라로 압송하여 그곳에 살게 하였다. 공자승이 공손오를 데리고 영왕을 찾아와 반역자들을 토벌해 준 은혜에 대해 감사의 말을 올렸다. 영왕이 공손오에게 말했다.

「원래 내가 그대를 진후로 세워 호공(胡公)①의 제사를 계속 받들게 하려고 하였으나 아직 진나라에는 반역도 일당들이 많이 남아 있어 그대에 대해 깊은 원한을 갖고 있으면서 해치려고 노리는 중이다. 잠시 나하고 초나라에 돌아가 그들의 세력이 잠잠해질 때까지 기다려야 되겠다.」

영왕이 즉시 좌우에게 명하여 진나라의 태묘를 부셔 버리게 했다. 마침내 진나라의 사직은 망하고 초나라의 현이 되고 말았다. 그때 영왕은 옛날 정나라의 포로 황힐(皇頡)을 생포한 공을 차지하기 위해 공자의 신분으로 억지를 부렸던 자신에게 아부하지 않고 오히려 감히 도리를 따져 다투었던 천봉수의 용기를 높이 사고 있었다. 영왕은 천봉수를 진공(陳公)에 임명하여 진나라를 지키게 했다. 진나라 백성들은 초영왕의 행위에 크게 낙담하였다. 염옹이 시를 지어 영왕의 무도한 짓에 대해 한탄했다.

의군이란 역도들을 주살하여 의를 행하기 위함인데

오히려 진나라 땅을 탐하여 현으로 만들어 버렸구나!

장왕 때 이미 혜전탈우라는 말을 얻었거늘②

충간을 올리는 신숙시같은 신하가 없음을 한하노라!

本興義旅誅殘賊(본흥의려주잔적)

却愛山河立縣封(각애산하립현봉)

旣得蹊田奪牛語(기득해전탈우어)

恨无忠諫似申公(한무충간사신공)

2. 협사멸초(挾詐滅蔡)

- 사술로 채후를 유인하여 살해하고 채나라를 멸하다. -

공손오를 데리고 초나라의 영도에 돌아온 영왕은 일 년의 기한으로 군사를 쉬게 하면서 다음 목표를 채나라의 정벌로 두었다. 오거가 영왕에게 계책을 말했다.

「채나라 군주 반(般)은 그가 저지른 시역은 이미 오래 되었다고 생각하여 그 죄를 잊고 있습니다.③ 만약에 우리가 군사를 일으켜 채나라를 토벌하러 간다면 오히려 우리가 침략을 하기 위한 핑계라고 하면서 죄가 없다고 제후들에게 호소할 것입니다. 차라리 그를 좋은 말로 이곳으로 유인한 후에 그의 죄를 추궁하고 죽이십시오.」

이윽고 시기가 무르익었다고 생각한 영왕이 오거의 말을 쫓아 초나라의 변경 지방을 순행한다고 핑계를 대고 군사를 신(申) 땅에 주둔시키고 사자에게 많은 폐백을 주어 채나라에 보냈다. 초나라의 사자는 채후 반에게 신 땅에서 서로 만나자는 초왕의 편지를 채후에게 바쳤다. 채후가 편지의 겉봉을 뜯고 읽었다.

『과인이 군후의 얼굴을 보고 싶어 청하오니 신 땅으로 왕림하여 뵙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변변치 못한 선물이나마 사자 편에 보내니 이곳으로 오실 때 호종하는 시자들을 위로하는데 보태 쓰시기 바랍니다.』

채후가 융거를 타고 길을 떠나려고 하는 순간, 대부 공손귀생(公孫歸生)이 조당으로 나와 초왕의 부름에 응하면 안 된다고 간했다.

「초왕이라는 위인은 탐욕스럽고 신의가 없는 자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유독 사자를 보내 많은 폐백과 함께 공손한 언사를 써서 초청하는 이유는 아마도 주군을 유인하여 해를 입히려고 하는 짓입니다. 결코 주군께서는 가시면 안 됩니다.」

「채나라의 영토는 초나라의 일 개 현 보다도 작은데 초왕이 불러서 가지 않는다면 그들은 필시 군사를 보내 나의 죄를 물을 것이오. 누가 감히 초왕의 명을 거절할 수 있단 말이오?」

「그렇다면 청컨대 세자라도 세우시고 가시기 바랍니다.」

귀생의 말을 따라 그의 아들 유(有)를 세자로 세우고 귀생으로 하여금 보좌하여 나라를 지키도록 조치한 채후는 어가를 몰아 당일로 신 땅에 당도했다. 채후의 배알을 받은 영왕이 말했다.

「지난 날 이곳에서 우리가 헤어진 이래 팔 년이 지났건만 군주의 풍모는 옛날과 조금도 다르지 않아 과인의 마음이 기쁘기 한량이 없구려!」

「이 반이 상국의 회맹부에 이름을 올려 그 명부를 욕되게 한 영광을 대왕으로부터 입어 폐읍을 진무할 수 있었습니다. 감사를 드리고자 하는 마음 이루 말할 수 없던 차제에 군왕께서 옛 상나라 땅을 개척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와 치하를 드리려고 하던 참에 신 땅으로 오라는 명을 받들어 달려와 감히 명을 받고자 합니다.」

영왕이 즉시 신 땅의 행궁에 채후를 접대하는 연회를 열게 하고 노래와 춤을 추는 여자 악사들을 대대적으로 동원하여 주인과 손님이 함께 술을 마음 놓고 마시면서 서로 즐거워하였다. 이윽고 날이 어두워지자 다시 술상을 침소로 옮기게 한 영왕은 오거를 시켜 채후를 따라온 호종들은 모두 궁궐 밖의 외부에 묵도록 한 후에 채후와 더불어 즐겨 술을 마셨다. 채후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술에 취해 떨어졌다. 이윽고 영왕이 술잔을 땅에 던지자 그것을 신호로 약속한 채후의 침소 벽장에 숨어 있던 갑사들이 뛰어 나와 채후를 포박하여 술상 앞의 영왕에게 대령시켰다. 취중의 채후는 몽롱한 정신에 한참 동안 자기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지 못했다. 영왕이 사람을 시켜 큰 소리로 주위에 있던 여러 사람들에게 알리게 했다.

「채후 반은 부군을 시해한 자다. 과인이 하늘을 대신하여 그의 죄를 묻고자 한다. 그를 따라온 종자들은 아무 죄가 없다 하겠으니 항복하는 자는 상을 줄 것이고 자기나라로 돌아가겠다고 원하는 자는 돌려보내 주리라!」

평소에 채후는 자기가 대리고 있던 시종들을 대할 때 예를 갖추어 은혜를 많이 베풀었기 때문에 영왕에게 항복한 신하나 종자들은 한 명도 없었다. 영왕이 큰 소리로 호령을 한번 하자 초나라 군사들이 채후의 종자와 신하들이 자던 관사를 포위하고 한 사람도 남김없이 사로잡았다. 그때서야 술에서 깨어난 채후는 자기 몸이 포승줄에 묶여 있다는 사실을 알고 눈을 부릅뜨고 영왕을 노려보며 외쳤다.

「이 반이 무슨 죄가 있다고 이렇듯 포승줄로 묶었습니까?」

「너는 손수 너의 부친을 시해하여 천리를 거역한 패역무도한 자가 아닌가? 오늘 내가 너를 죽인다 한들 이르다고 말할 수 없겠다.」

「내가 귀생의 말을 듣지 않은 것이 참으로 후회되는구나!」

영왕이 명하여 채후를 책형(磔刑)에 처하고 채후를 따라왔던 채나라의 신하들과 종자들 70명과 가마를 메는 가장 천한 노예들까지도 모두 죽여 한 명도 용서하지 않았다. 그런 다음 다시 명하여 채후 반의 시역죄를 판자에 커다란 글씨로 써서 성 안의 여러 곳에 붙여 알리게 하였다. 이어 공자기질(公子棄疾)에게 명하여 대군을 이끌고 거침없이 진군하여 채나라에 들어갔다. 송나라 때 유생 한 사람이 채후 반의 행위는 죽을죄에 해당하지만 그러나 그를 유인하여 살해한 것은 정정당당한 행위가 아니라고 논했다. 염옹이 이를 두고 시를 지어 논했다.

채후 반은 아버지도 없고 임금도 없는 자라

북소리를 한번 울리기만 해도 천도를 밝힐 수 있었다.

그럼에도 유인하여 죽인 일을 부당한 행위라고 말하지 말라!

초영왕도 원래는 그 임금을 죽인 자 였다!

蔡般无父亦无君(채반무부역무군)

鳴鼓方能正大倫(명고방능정대륜)

莫怪誘誅非法典(막괴유주비법전)

楚靈原是弑君人(초영원시시군인)

한편 채나라 세자 유(有)는 그 부군이 어가를 타고 초왕을 만나러 간 이후로 매일 아침저녁으로 첩자를 초나라에 보내 소식을 계속 알아보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첩자가 돌아와 자기의 부군이 초왕에게 피살되고 초나라 군사들이 채나라를 정벌하기 위해 조만간에 당도할 예정이라고 보고했다. 세자유가 즉시 병사들과 백성들을 모아 성가퀴에 올라 초나라 군사들의 공격에 대비했다. 이윽고 초나라 병사들이 당도하여 채성을 겹겹이 에워쌌다. 공손귀생이 세 유에게 말했다.

「채나라가 비록 오랫동안 초나라를 따랐지만 그러나 당진과 초나라가 화전을 맺을 때 이 귀생이 참석하여 서명하였습니다. 그러니 사람을 보내어 당진에 구원을 청하면 아직 그들이 그때의 회맹을 잊지 않고 있어 혹시 우리를 구원하러 병사를 보내 줄지도 모르겠습니다.」

세자유가 귀생의 말을 따라 성안의 백성들 중에서 능히 당진에 사자로 가서 구원병을 청할 수 있는 사람을 모집했다. 채유(蔡洧)의 부친 채략(蔡略)은 채후 반을 호종하여 신성으로 갔다가 피살당한 70여명의 신하들과 시종들 중에 포함되어 죽었다. 채유가 부친의 원수를 갚기 위해 당진으로 가는 사자를 자원하였다. 채유가 채후의 이름으로 된 편지를 받아 들고 밤이 되기를 기다려 성 위에서 밧줄을 타고 내려와 북쪽을 향하여 달려가 곧바로 당진의 도성에 당도했다. 그때 당진은 평공이 전 해에 죽고 그의 아들 이(夷)가 뒤를 이어 새로운 군주에 올라 있었다. 이가 소공(昭公)이다. 소공을 배알한 채유는 채나라에서 일어났던 일을 눈물로 호소하였다. 소공이 군신들을 소집하여 그 의견을 물었다. 순오(荀吳)가 상주했다.

「우리 당진은 천하 제후들의 맹주라 제후들이 우리의 힘을 의지하여 안정을 취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미 멸망하는 진(陳)나라를 구하지 못하고 바라만 보고 있었는데 다시 채나라를 구하지 못한다면 더 이상 우리는 맹주의 자리를 지킬 수 없게 됩니다.」

소공이 신하들을 향해 다시 물었다.

「초왕 웅건(熊虔)은 포악하고 전횡을 일삼는 자요. 우리 당진의 군사력은 초나라에 미치지 못하여 힘으로 당해 내지 못하니 무슨 방법으로 채나라를 구할 수 있단 말이오?」

한기가 나서서 말했다.

「비록 우리의 군사력이 초나라에 미치지 못한다고 할지언정 어찌 우리가 가만히 앉아서 좌시만 할 수 있단 말입니까? 어찌하여 제후들을 모이게 하여 같이 대책을 세우지 않으십니까?」

소공이 즉시 한기(韓起)에게 명하여 제후들을 궐은(厥憖)의 땅에 모이도록 했다. 송(宋), 제(齊), 노(魯), 위(衛), 정(鄭), 조(曹)나라는 각기 대부들을 회맹의 장소에 보내어 당진의 명을 받들었다. 한기가 채나라를 구원하는 일에 대해서 말하자 각국의 대부들은 모두 혀를 내 두르고 하나 같이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한 사람도 기꺼이 자기의 주장을 말하지 않았다. 한기가 보고 말했다.

「여러분들이 초나라를 두려워하기를 이와 같이 하니 앞으로 중화의 나라들은 모두 초나라에 잠식되지 않으리라고 어찌 장담하겠소? 만약에 초나라가 진나라를 경유하여 채나라를 잠식하고 다시 여러 중화의 여러 나라들을 삼키려 들 때가 된다면, 우리 당진의 군주께서는 중원의 일에 관여 하지 않으실 것이오.」

각국의 대부들이 서로간에 얼굴만 쳐다 만 보고 아무도 대꾸하지 않았다. 그때 회맹에 참석한 송나라의 우사 화해(華亥)를 향해 한기가 말했다.

「지난 날 남북 간의 전쟁을 중지하기로 하고 그에 대한 화의(和議)를 송나라 땅에서 맺은 미병지회는 그대의 가친 화원이 앞장서서 주장한 때문이었소. 그때 회맹의 내용은 먼저 군사를 움직인 나라는 천하의 모든 나라가 힘을 합하여 같이 정벌하기로 하였소. 오늘 초나라가 먼저 미병지회 때의 약속을 저버리고 군사를 동원하여 진과 채 두 나라를 공격하고 있는데 그대들은 팔짱만 끼고 한 마디의 말도 하지 않으니 신의가 없는 나라는 초나라가 아니라 그대 송나라요. 결과적으로 송나라가 우리 중원제후국들을 속였다고 할 수 있소. 」

화해가 몸을 떨며 두려운 모습으로 말했다.

「상국을 모시고 있는 우리 송나라가 어찌 감히 기만하여 맹주인 당진으로부터 구태여 죄를 얻으려고 하겠습니까? 단지 남쪽의 오랑캐 나라가 신의를 저버리니 보잘 것 없는 우리 송나라로서는 어찌하는 수가 없어 이렇게 아무 말도 드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작금에 있어서 중원의 제후국들은 전쟁에 대비한 군비가 느슨하여 일단 싸움이 벌어지면 이길 수 있는 보장이 없습니다. 그러니 싸움을 하지 말자는 옛날의 미병지회 때의 맹약을 지켜 채나라를 용서하라는 뜻을 초왕에게 전한다면 초왕도 어쩔 수 없이 우리들의 청을 거절하지 못할 것입니다.」

초나라를 두려워하는 각국의 대부들의 모습을 본 한기는 채나라를 구하는데 그들의 군사를 동원하는 일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그들과 상의하여 편지 한 통을 써서 대부 호보(弧父)에게 주어 신성으로 보내어 초왕에게 전하게 했다. 채유는 각국의 대부들이 군사를 동원하여 채나라를 구원할 생각이 없음을 알고 눈물을 흘리며 회맹의 장소에서 물러 나왔다. 호보가 신성에 당도하여 초왕에게 편지를 바치자 영왕이 겉봉을 뜯고 읽었다.

『당진과 초 두 나라는 옛날에 송나라 땅에서의 회맹을 통해서 남북간의 의견을 조절하여 군사 활동을 중지하자는 맹약을 맺고 그 이름을 미병지회(彌兵之會)라 했습니다. 후에 괵(虢) 땅에서 모여 다시 미병지회의 약속을 확인하고 그 자리에서 천지신명께 맹세를 한 바 있습니다. 제후들을 이끌고 계시는 우리의 군주께서는 미병지회 때의 약조를 지키시어 초나라에 대해 신의를 보여 드리고 감히 단 한 번도 군사를 동원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초왕 전하 께서는 지금 진채(陳蔡) 두 나라가 죄를 지었다하여 진노한 끝에 군사를 일으켜 그 죄를 물으려고 하십니다. 두 나라의 죄를 토벌하려는 뜻은 의분을 느껴 천하에 도리를 밝히기 위한 임기응변의 방법이라고 보아 이해할 수 있다 하겠지만, 죄인들을 잡아서 이미 죽이고도 군사들을 해산하지 않음은 어찌된 연유인지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정사를 담당하고 있는 제후국의 대부들이 우리 당진에 몰려와 물에 빠진 나라를 건져 주고 나라 사이의 분쟁을 해결해야 하는 의무를 태만히 했다고 우리 주군을 책망하고 있습니다. 이에 우리 과군께서는 이 일을 매우 부끄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열국의 군사들을 징발하여 채나라를 구하러 간다면 스스로 예전에 행한 맹약을 위반하는 결과가 되겠음으로 해서, 소신 한기를 보내어 열국의 대부들과 함께 채나라의 구명을 위해 편지를 써서 바치게 하셨습니다. 부디 왕께서는 옛날의 우호관계를 생각하시어 채나라의 종묘사직을 보존해 주시어 우리 당진국과의 동맹관계가 지속될 수 있게 되기를 바랄 뿐이옵니다. 채나라의 사직을 보전할 수 있게 해주신다면 군왕 전하의 은덕이 될 것이니 어찌 채나라 사람들만이 군왕의 은혜에 고마워하겠습니까?』

편지의 말미에 송과 제 두 나라를 필두로 각국 대부들의 이름이 연명으로 써 있었다. 영왕이 읽기를 마치자 웃으면서 사자로 온 호보를 향해 말했다.

「채성은 아침저녁 사이에 함락될 운명인데 너희들이 흰소리로 나를 핍박하여 채나라에 대한 포위를 풀어 주라고 하는가? 이것은 너희들이 과인을 아무 것도 모르는 삼척동자로 알고 있음이 아니냐? 너는 빨리 돌아가 너의 군주에게 진채 두 나라는 조만 간에 우리 초나라의 속국이 될 것이며, 또한 너희들 북방의 나라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이니 헛된 일에 힘을 너무 낭비하지 말라고 전하라!」

호보가 영왕에게 다시 간절하게 청을 드리려고 했으나 영왕은 말을 마치고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궁 안으로 들어가 버리고 당진의 편지에 대한 아무런 답장도 주지 않았다. 호보가 앙앙불락하며 빈손으로 당진에 돌아왔다. 당진의 군주와 신하들은 초나라에 무도함에 분한 마음을 참지 못했지만 어쩌는 수가 없었다. 그것은 마치 다음 시가 말하는 바와 같았다.

힘은 있으나 마음이 없으니 그 힘을 쓸 수가 없고

마음이 있다 한들 힘이 없으니 그 노력이 헛되도다!

만약에 마음과 힘을 다 갖추고 있기만 한다면야

바다를 마르게 하고 산을 옮긴다 한들 누가 막을 수 있겠는가?

有力無心空負力(유력무심공부력)

有心無力枉勞心(유심무력왕노심)

若還心力齊齊到(약환심력제제도)

涸海移山孰敢禁(학해이산수감금)

당진에서 돌아와 채성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던 채유가 초나라 보초들에게 들켜 사로잡히게 되어 공자기질의 장막 앞으로 끌려갔다. 기질이 위협하여 투항을 권했으나 채유는 듣지 않았다. 당진의 구원군이 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기질은 채성에 대한 공세를 더욱 세차게 했다. 채성을 지키던 귀생이 세자유를 보고 말했다.

「일이 매우 급하게 되었습니다. 신이 마땅히 죽음을 무릅쓰고 초나라 진영으로 가서 군사를 물리치도록 설득해 보겠습니다. 만일 다행히 초나라 군사들을 물리칠 수만 있다면 백성들이 도탄에 빠지는 사태만은 막을 수 있을 것입니다.」

세자유가 대답했다.

「성안의 모든 일은 전부 대부에게 의지하고 있는데 어찌 내 곁을 떠나려고 하십니까?」

「전하께서 제가 성 밖으로 나가 초나라 진영에 사자로 가는 일을 내키지 않으신다면 신의 아들 조오(朝吳)를 사자로 보내십시오. 불초자식이지만 능히 사자의 임무 정도는 수행할 수 있습니다.」

조오를 부른 세자유가 눈물을 흘리며 조오에게 초나라 진영에 사자로 갈 것을 명했다. 조오가 성밖으로 나가 초나라 진영을 찾아가 공자기질의 접견을 청했다. 기질이 조오를 예로써 맞이했다. 조오가 기질에게 말했다.

「공자께서 대군을 이끌고 와서 우리 채나라를 공격하고 있으니 우리 채나라는 조석지간에 멸망할 운명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채나라가 상국에 무슨 죄를 지어 망해야 되는지는 아직 그 이유를 모르고 있습니다. 만약 돌아가신 선군께서 부군을 시해한 죄를 물으시러 왔다면 선군께서는 용서를 받지 못하고 죄를 받아 이미 죽임을 당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아들인 세자에게는 무슨 죄가 있으며 또한 채나라의 종사에는 무슨 잘못이 있어 사직이 망해야 합니까? 부디 공자께서는 우리의 불쌍한 처지를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나 역시 채나라가 망해야 할 정도의 죄를 짓지 않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단시 군왕의 명을 받들어 성을 공격하고 있을 뿐이라 만약에 내가 공을 세우지 못하고 돌아간다면 필시 죄를 얻어 죽임을 면치 못하기 때문이오.」

「이 조오가 따로 드릴 말씀이 있사오니 주위사람을 물리쳐 주기바랍니다.」

「그대는 할 말이 있으면 하십시오.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들어도 무방하오.」

「지금의 초왕은 부정한 방법으로 왕위에 올랐다는 사실을 공자께서는 모른다고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천하의 양식있는 사람은 모두가 초왕에게 원한을 품고 있습니다. 나라 안으로는 백성들의 고혈을 짜내어 전대미문의 토목공사를 일으키고 나라 밖으로는 전쟁을 하느라 백성들의 뼛골을 빠지게 하고 있습니다. 백성들을 부려만 먹지 돌보아 주는 일은 하나도 없고 탐욕스러운 마음은 끝 간 데가 없습니다. 더욱이 지난번에는 진나라를 멸하더니 이번에는 다시 우리의 군주를 유인하여 죽인 후에 군사를 보내 채나라를 집어삼키려 하고 있습니다. 공자께서는 시해당한 주군의 원수를 갚으려는 생각은 하시지 않으시고 오히려 원수의 명을 받들어 남의 원한을 사는 욕된 짓만 하고 계시니 초왕이 저지른 잘못의 반은 공자의 책임이기도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공자께서는 현명하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으며 또한 옛날에 당벽(堂璧)의 상서로운 일도 있어 초나라 사람들은 모두 공자가 초왕이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만일 병사들이 들고 있는 창끝의 방향을 안으로 돌려 군주를 시해하고 백성들을 학정으로 시달리게 한 죄를 물어 주살한다면 초나라 백성들의 인심은 공자님에게 쏠리게 되는데 어찌 누가 감히 복종하지 않겠습니까? 무도한 임금을 받들며 만백성들의 원한을 사는 일보다는 더 낫지 않겠습니까? 공자께서 만일 저의 어리석은 계책을 들으신다면 이 오(吳)도 죽음에 처한 채나라의 백성들을 이끌고 공자님을 위해 앞장서겠습니다. 」

기질이 듣고 화를 내며 말했다.

「필부가 감히 교언으로 군신 간을 이간시키려 하느냐? 마땅히 참수형에 처해야 하나 잠시 너의 목을 붙여 두겠으니 빨리 너의 세자에게 돌아가 한시라도 지체하지 말고 스스로 몸을 결박한 후에 성을 나와서 항복하여 목숨이나마 보전하라고 전하라! 」

기질이 좌우의 무사들에게 큰 소리를 쳐서 조오를 강제로 끌고 나가게 하여 자기의 막사에서 쫓아냈다.

원래 초공왕에게는 사랑하는 후비 사이에서 아들 다섯을 낳았다. 제일 맏이는 웅소(熊昭) 즉 후의 강왕(康王)이고 차자는 공자위로써 즉 지금의 영왕 웅건(熊虔)이며 삼자는 자가 자간(子干)인 공자비(公子比)이며 사자는 자가 자석(子晳)인 흑굉(黑肱)이고 제일 막내가 바로 공자기질(公子棄疾)이었다. 공왕이 이 다섯 아들 중에 한 사람을 골라 세자로 세우려고 했으나 마음속으로 결정을 하지 못하고 있다가 여러 조상신들에 지내는 큰 제사 때가 되자 벽옥을 손에 들고 마음속으로 기도를 올리며 말했었다.

「원하옵건대 아들 다섯 중 제일 현명하고 복이 있는 자 한 명을 택하여 저의 후계로 삼아 초나라의 사직을 지킬 있도록 해 주옵소서!」

공왕은 즉시 벽옥을 아무도 몰래 태묘의 뜰 안에 묻어 놓고 마음속으로 그 장소를 기억한 다음 다섯 아들들을 각기 3일 동안 목욕재계시키고 오경 무렵에 태실로 불러 순서에 따라 조상들에게 참배를 하도록 했다. 벽옥이 묻혀 있는 곳에서 절을 올리는 아들은 곧 조상들의 선택을 받은 것으로 생각하여 초나라의 왕위를 물려주려고 했다. 후에 강왕이 된 웅소가 먼저 들어와 벽옥이 묻힌 곳을 지나쳐 앞으로 나가 조상들의 신위에 절을 올렸다. 영왕이 된 웅건의 차례가 되어 뜰 안으로 들어와 절을 할 때 그 손의 팔꿈치가 당벽 묻힌 자리에 겨우 닿았고 자간과 자석은 당벽이 묻힌 곳과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절을 올렸다. 당시 나이가 매우 어려 보모가 안고 나와 절을 올리게 한 기질이 벽옥이 묻힌 바로 그 위에 엎드려 절을 했었다. 마음속으로 하늘이 돕고 있다고 생각한 공왕이 기질을 더욱 사랑했다. 공왕이 죽었을 때는 기질의 나이가 아직 어렸기 때문에 장자인 강왕이 먼저 재위에 오르게 되었다. 그러나 당벽의 일애 대해 알고 있는 초나라 대부들은 모두가 장차 초나라 왕위를 물려받을 사람은 기질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당벽지사(堂璧之事)’가 기질에게는 상서로운 일이라고 한 조오의 말이 세상에 널리 퍼져 영왕의 귀에 들어가 그로 하여금 자기를 시기하게 만들지나 않을까 두려워했기 때문에 거짓으로 화를 내는 척하며 조오를 초군 진영에서 쫓아낸 것이다.

조오가 다시 성안으로 들어가 기질과 나눈 이야기를 전하자 세자유가 듣고 말했다.

「나라의 군주는 사직과 함께 죽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내가 비록 주군의 상을 치르지 못하고 아직 사위를 하지 못했으나 나라를 지키라는 분부를 받았으니 내 마땅히 나의 운명을 나라의 존망과 같이 해야 하겠습니다. 어찌 내가 원수에게 무릎을 꿇고 스스로 그의 노예가 되기를 자청하겠습니까?」

세자유와 채나라 군신들은 더욱 힘을 내어 초군의 공격에 대항해서 성을 지키려고 했다. 그해 여름 4월에 포위하여 그해 겨울 11월까지 저항을 계속하던 중 공손귀생은 피로가 쌓여 병이 들어 자리에 눕더니 결국은 일어나지 못했다. 성안의 모든 식량은 동이 나서 굶어 죽은 사람이 속출했다. 피로에 지쳐 초성의 군민들은 초나라 군사들의 공격을 더 이상 막아 낼 수 없게 되었다. 이윽고 초나라 군사들이 벌떼처럼 성벽에 달라붙어 기어오르기 시작하더니 결국은 채성(蔡城)은 함락되고 말았다. 세자유는 스스로 두 손을 묶고 포승줄에 묶이어 성루에 조용히 앉아서 초나라 군사들에게 잡혀가기만을 기다렸다. 공자기질이 채성에 입성하여 백성들을 위무하고 사로잡은 세자는 채유와 함께 함거에 실어 승전보와 함께 영왕이 있는 곳으로 보냈다. 조오가 당벽에 대한 말을 퍼뜨릴까 걱정한 기질은 본국으로 보내지 않고 자기 곁에 두었다. 그리고 얼마 후에 귀생이 죽었다. 조오는 채성으로 돌아가지 않고 초나라 진영에 남아 머물며 기질을 섬겼다.

주경왕 14년 즉 기원전 531년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때 초영왕은 어가를 움직여 영도에 이미 돌아와 있었다. 어느 날 꿈속에서 신인이 나타나 영왕에게 절을 하더니 자기는 구강산(九岡山)의 산신령이라고 하면서 영왕을 향해 말했다.

「나를 위해 제사를 지내 주면 내가 그대에게 천하를 얻게 해주겠다.」

영왕이 잠에서 깨어나 즉시 어가를 움직여 구강산을 찾아갔다. 그때 마침 공자기질이 보낸 포로와 함께 승전보가 당도했다. 영왕이 즉시 명하여 채나라의 세자유를 죽여 희생으로 삼아 신에게 제사를 지내려고 했다. 신무우가 듣고 간하며 말렸다.

「옛날에 송양공이 증자(鄫子)를 죽여 수수(睢水)의 물귀신에게 제사를 지내자 회수 동쪽의 제후국들이 등을 돌렸습니다. 왕께서는 어찌하여 어리석은 송양공의 전철을 밟으려 하십니까?」

「이 자는 시역의 죄인인 반의 아들이다. 어찌 제후들과 비교해 말할 수 있겠는가? 짐승을 대신해서 희생으로 삼아도 무방하다고 생각해다.」

신무우가 물러 나와 한탄하며 말했다.

「왕의 포학이 끝 간 데가 없으니 어찌 종말이 가까워졌다고 하지 않겠는가?」

신무우는 즉시 노령을 이유로 벼슬을 버리고 자기 고향으로 돌아가 버렸다.

결국 세자유는 살해되어 구강산의 신령에게 지내는 제사에 희생으로 바쳐졌다. 채유는 세자유의 죽음을 3일 밤낮을 계속해서 통곡하였다. 영왕이 충신이라고 생각하여 그를 석방하여 벼슬을 내리고 곁에 있게 했다. 채유는 옛날 채후 반(盤)이 영왕에게 유인되어 살해당할 때 따라가 같이 죽은 채략(蔡略)의 아들이라는 사실은 앞서 말한 바가 있다. 마음속으로 세자유와 자기 부친의 복수를 결심한 채유가 영왕에게 아첨의 말을 올렸다.

「천하의 제후들이 당진을 받들고 우리 초나라를 따르지 않는 이유는 당진은 가깝고 초나라는 멀리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대왕께서는 진채(陳蔡) 두 나라를 얻게 되어 이제는 중화의 나라들과 영토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만약에 이 두 나라에 기존의 성을 그 높이와 넓이를 더욱 크게 하여 증축하고 각 성에는 병거 천 승씩을 주둔시켜 그 위엄을 열국의 제후들에게 과시한다면 천하의 어떤 제후들이 감히 초나라에 복종하지 않겠습니까? 그런 다음 오월(吳越) 두 나라에 군사를 보내 초나라의 동쪽과 남쪽을 동시에 평정하고 이어서 서북의 당진과 섬진을 도모한다면 가히 천자가 되어 주나라를 대신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영왕은 채유의 아첨하는 말에 혹하여 날이 갈수록 더욱 총애하게 되었다. 채유의 말을 따라 진채 두 나라 도성의 규모를 그 높이와 넓이를 두 배로 크게 증축하고 채나라를 함락시킨 공이 있다고 하여 공자기질을 채공(蔡公)에 봉하여 그 두 나라의 옛 땅을 다스리도록 했다. 그리고 다시 진채 두 나라 사이에 동서로 두 개의 부갱성(不羹城)을 축성하고 초나라의 요해지로 삼아 이로써 세상에서 초나라를 당할 나라는 없으며 당장이라도 천하를 자기 손 안에 넣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영왕이 태복을 불러 나라의 부고에서 커다란 거북 껍데기를 내와 점을 치라고 하면서 물었다.

「과인이 언제 왕이 되겠는가?」

태복이 말했다.

「대왕께서는 이미 왕을 칭하고 계시는데 어찌하여 아직도 왕 운운하십니까?」

「초와 주(周)가 같이 병립하여 서로 왕이라 칭하고 있으니 내가 비록 왕이라 칭하고는 있으나 진짜 왕이라고는 할 수 없다. 오직 천하를 얻은 자만이 진짜 왕이라 칭할 수 있으니 내가 진짜 왕이 언제 될 수 있을지 점을 쳐 보라!」

태복이 거북등을 불에 태워 점을 쳤다. 거북등이 벌어지자 태복이 말했다.

「점괘에 따르면 대왕이 바라는 바는 이루어지지 않겠습니다.」

영왕이 거북등 껍데기를 집어서 땅에 던지고 두 손으로 자기의 가슴을 치며 외쳤다.

「하늘이여, 하늘이여! 구구한 천하를 어찌하여 저에게 주려고 하지 않으십니까? 이 웅건을 태어나게 하고는 어디에 어디에 쓰려고 하시는 것입니까?」

채유가 옆에 있다가 위로의 말을 했다.

「일이란 모두 사람이 하기에 달려 있습니다. 어찌 저와 같은 썩어빠진 뼈다귀가 어찌 사람의 일을 알겠습니까?」

영왕이 즉시 마음이 바뀌어 기분을 돌려 기뻐했다.

3. 견국지문(犬國之門)

- 사람의 나라인줄 알았더니 개의 나라로구나! -

중원의 제후들은 초나라의 강성함을 두려워하여 작은나라는 군주가 직접 와서 래조하고 큰나라는 친선사절을 보내와 인사를 드렸다. 초나라에 공물을 바치려는 사자들이 길거리에 줄을 이어 끊어지지 않았다. 그 래빙 사절 중에 제나라의 상대부 안영도 있었다. 자는 평중(平仲)인 안영이 제경공의 명을 받들어 초나라에 수호 사절로 오게 되었다. 초영왕이 여러 군신들을 모이게 하고는 물었다.

「안평중은 그 키가 불과 다섯 자에 불과하나 그 어진 이름은 천하에 널리 알려져 있다. 오늘날 천하는 오로지 초나라만이 가장 세력이 강하다고 할 수 있다. 과인이 안영을 욕보여 초나라의 위엄을 보여주고자 하는데 경들은 무슨 좋은 계책이 없는가?」

태재 원계강이 아무도 듣지 못하게 조용한 목소리로 영왕에게 말했다.

「안평중은 상대방의 말에 응대를 잘하는 사람이니 한번만의 일로써 그를 욕보이기는 어렵습니다. 그를 욕보이기 위해서는 이러저러한 방법을 써야 합니다.」

영왕이 듣고 크게 기뻐하였다. 원계강이 한 밤중에 병졸들을 선발하여 영도의 동문 옆 성벽에 별도로 그 높이가 겨우 다섯 자가 넘지 않은 조그만 구멍을 뚫게 했다. 그런 다음 성문을 지키는 군사들에게 분부하였다.

「제나라의 사신이 도착하거든 성문을 굳게 닫고 사자로 하여금 저 조그만 구멍을 통하여 들어오게 하라!」

그리고 얼마 있지 않아, 안영이 몸에는 다 찢어진 갖옷을 걸쳐 입고 야위어 말라비틀어진 망아지가 끄는 조그만 수레를 타고 영성의 동문에 당도하였다. 영도의 성문이 닫혀 있음을 본 안영이 수레를 세우고 마부를 시켜 큰 소리로 문지기를 불러 성문을 열게 했다. 성문을 지키는 문지기가 성문 곁의 성벽에 나 있는 조그만 문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대부께서는 저 구멍만으로도 들어오시고 남으십니다. 구태여 힘들게 성문을 열었다 닫았다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안영이 큰 소리로 말했다.

「저것은 개가 다니는 개구멍이지 사람이 출입하는 문이 아니다. 개들이 사는 나라라 개문만 있구나! 나는 사람이 사는 나라에서 온 사자라 사람이 다니는 문으로 들어가야만 되겠다.」

문을 지키던 군사가 달려가 안영이 한 말을 영왕에게 전했다. 영왕이 듣고 말했다.

「우리가 그를 희롱하려다가 오히려 우리가 그에게 희롱을 당했다.」

4. 교변복초(巧辯服楚)

- 교묘한 변설로 초나라 대부들을 심복시키다. -

영왕이 명하여 즉시 성문을 열어 안영을 맞이하라 했다. 안자가 영도 안으로 들어와 성안을 구경하는데 성곽이 견고하고 시정은 조밀하여 인걸은 땅에서 난다는 말처럼 영성은 진실로 강남의 빼어난 곳이었다. 송나라 학사 소동파가 지은 《영형문(咏荊門)》이라는 시를 보면 영도의 번성함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나그네가 장강의 삼협을 나서니

초나라 땅은 한없이 넓고 하천은 끝없이 흐른다.

북쪽의 손님들은 남쪽의 넓은 땅으로 모여들고

오나라의 돛배는 서촉으로 향한다.

游人出三峽(유인출삼협)

楚地盡平川(초지진평천)

北客隨南廣(북객수남광)

吳檣開蜀船(오장개촉선)

강물은 흘러 평야을 가르고

바람은 백사장을 맴도는데

묻노니 나라의 흥망은 무슨 뜻인가

철옹성은 옛날부터 괴이타 했다.

江侵平野斷(강침평야단)

風掩白沙旋(풍엄백사선)

欲問興亡意(욕문흥망의)

重城自古怪(중성자고괴)

안영이 바로 영도의 풍물을 구경하고 있는데 갑자기 기병이 탄 병거 두 대가 성안의 큰 대로를 따라 달려 왔다. 그 병거 위에는 덩치가 크고 수염을 길게 기른 정예한 풍채가 뛰어난 대한들이 타고 있었다. 대한들은 모두 선명한 투구를 쓰고 손에는 대궁(大弓)과 장극(長戟)을 잡고 서 있어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천신과 같은 형상을 하고 안영을 맞이했다. 그것은 체구가 왜소한 안자를 비교해서 초라하게 보이려는 수작이었다. 안자가 대한들을 보고 큰 소리로 외쳤다.

「오늘 내가 초나라에 사절로 온 목적은 좋은 마음으로 수호를 맺기 위해서이지 서로가 싸움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너희 같은 무사들을 어디다 쓴단 말인가?」

안영이 큰 소리를 쳐서 옆으로 비켜서게 하고 마차를 몰아 곧바로 초왕이 사는 궁궐로 향했다. 이윽고 안영이 초나라 조정에 당도하자, 조문 밖에는 사람마다 모두 높은 관을 쓰고 큰 띠를 두른 초나라의 쟁쟁한 인재들이 두 줄로 열을 지어 기다리고 있었다. 안자는 그 사람들이 모두 초나라의 호걸들이라는 사실을 알고 예를 갖추기 위해 황망히 수레에서 내렸다. 여러 군신들이 안자를 향해 서로 상견의 예를 취한 후에 다시 좌우로 늘어서서 순서에 따라 두 줄로 반열을 지어 초왕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그 사이에 반열 중의 한 젊은이가 나오더니 안평중을 향해 말문을 열었다.

「대부께서는 이유(夷維)④ 땅의 안평중이 아니십니까?」

안평중이 보니 초나라의 교윤(郊尹) 벼슬을 하고 있는 투위구(鬪韋龜)의 아들 투성연(鬪成然)이었다. 안자가 대답했다.

「제가 바로 그 사람입니다. 대부께서는 어떤 가르침을 주어 저를 깨우쳐 주시겠습니까?」

「제가 들으니 제나라는 태공께서 봉해진 나라라 싸움은 당진과 섬진 두 나라와 겨룰만하고 재화는 노(魯)와 위(衛) 두 나라에서 통할 정도로 넉넉하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환공(桓公)께서 한번 패업을 이룬 뒤에는 그 후손들은 서로 군위를 찬탈하며 당진과 송나라로부터 번갈아 가며 정벌을 당하더니, 오늘에 이르러서는 아침에는 당진에 저녁에는 초나라에 조빙을 다니느라 제나라의 군신들이 분주한 모습으로 도로를 가득 메우며 하루라도 편안할 날이 없게 되었습니까? 지금 재위에 있는 제후의 포부는 환공에 못지않고 평중의 현명함은 관중에게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제나라의 임금과 신하가 힘을 합하여 그들의 경륜을 크게 펼칠 생각을 하기는커녕 선인들의 위업을 빛내려고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또한 옛날 환공의 패업을 진흥시키려고 하지도 않으며 오히려 대국에 복종하여 받들며 스스로를 신복이라고 칭하고 있으니 어리석은 사람의 생각으로는 진실로 이해가 되지 않는 일입니다.」

안자가 소리를 높여 큰 소리로 대답했다.

「옛말에 시무(時務)를 알고 있는 사람을 준걸이라 하고 변화무쌍한 하늘의 뜻에 통하는 자는 영웅호걸이라 했습니다. 주나라가 강령을 잃고 제후들을 다스리지 못하자 오패가 잇달아 일어나 앞서거니 뒤서거니 했습니다. 제와 당진은 중원에서 패업을 이루었고 섬진은 서융의 패주가 되었습니다. 또한 초나라는 남만의 여러 제후국들을 거느리며 패자의 자리에 오른 일도 그대는 잘 알고 있는 일입니다. 이처럼 호걸들이 차례로 나타나 그 위업을 이어 갔다고는 하나 그것은 역시 하늘의 명으로 그리 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진문공은 웅대한 지략을 지니고 있었지만 그가 죽자 당진은 초나라와의 싸움에서 졌으며, 섬진의 목공은 견융의 패주가 되어 그 나라를 강성하게 만들었지만 그 자손들은 미약해 졌으며, 초장왕의 후손들 역시 당진과 오나라로부터 수모를 받고 있습니다. 어찌 우리 제나라만이 그렇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저희 군주께서는 하늘의 내린 운수의 성함과 쇠함을 알고 계시며 시무와 그 변화에 달통한 나머지 군사를 기르고 장수들을 훈련시키고 있으시면서 때가 되면 포부를 펴시려고 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제나라가 귀국과 수호를 맺기 위해 친선사절을 서로 교환하고 있는 이유는 곧 천자가 정한 법도에 따라 이웃나라끼리 왕래하는 예의를 갖추었을 뿐인데 어찌 신복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그대의 조부 자문(子文)은 곧 초나라의 이름난 신하라, 시무의 변화를 꿰뚫고 있는 분이라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대는 혹시 그의 적손이 아닌지 의심스럽습니다. 어찌 그런 패역한 말을 이웃나라의 사신에게 함부로 할 수 있단 말입니까?」

투성연이 얼굴 가득히 부끄러운 기색을 띄우며 목을 움츠리고 물러갔다. 잠시 후에 다시 오른 쪽 반열에서 한 사람이 나와 안자를 향해 물었다.

「평중은 스스로 시무에 능한 사람이라고 자부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제나라의 최저와 경봉이 란을 일으켰을 때 가거(賈擧)를 포함하여 수많은 제나라 신하들이 죽음으로써 절의을 지키고 진문자(陳文子)⑤는 10승의 수레도 버리고 나라 밖으로 도망쳐 최저와 경봉에게 항거했습니다. 그런데 평중 그대는 제나라의 대대로 내려온 대신의 집안사람이면서 능히 역적들을 토벌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벼슬을 버리고 몸을 피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목숨을 끊어 절개를 지키지도 않았으니 그것은 그대가 벼슬에 연연했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안자가 보니 그 사람은 곧 초나라의 상대부 양개(陽匃)였다. 자는 자하(子瑕)라 하고 곧 목왕의 증손이었다. 안자가 즉시 대답했다.

「옛말에『큰 절개를 품고 있는 자는 사소한 진실에 구애되지 않으며 먼 앞의 일을 걱정하는 자는 눈앞의 일에만 매달려 있으면 안 된다.』⑥고 했습니다. 내가 들으니 임금은 사직을 위해 죽으면 신하는 마땅히 그 뒤를 따라야만 한다고 했습니다. 선군이신 장공께서는 사직을 위하다가 돌아가신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그때 따라 죽은 사람들은 모두 선군으로부터 받은 사사로운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 안영은 비록 가지고 있는 재주는 없으나 어찌 감히 몸을 측간 곁에 두어 총신의 대열에 서서 목숨을 바쳐 그 이름을 팔 수 있었겠습니까? 이 사람은 신하된 자로써 나라가 위난에 처해 있을 때 능히 능력이 있으면 남아서 위난을 극복하고 능력이 없으면 물러나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벼슬에서 물러나지 않았던 이유는 새로이 재위에 오른 군주를 도와 종묘사직을 보전하자고 함이었지 그 벼슬을 탐해서가 아니었습니다. 국가가 위난에 처해 있는데 사람마다 모두 가버린다면 나라의 일은 누가 처리할 수 있으며, 더욱이 변란에 의해 군주가 바뀌는 일은 어느 나라에나 있는 일입니다. 지금 조당에 열을 지어 서 있는 초나라의 여러 대신들인 그대들은 모두가 죽음을 무릅쓰고 역적을 토벌한 사람들입니까?」

안영의 마지막 한마디는 은연중에 지금 초영왕 웅건이 어린 임금을 죽였으나 오히려 여러 신하들이 그를 초왕으로 추대한 일을 가리키며 단지 남의 잘못만을 알며 자기들의 잘못을 알지 못하고 있는 행동을 책한 말이다. 양개가 아무 대꾸도 못하고 물러갔다. 그러자 오른쪽 반열에서 다시 한 사람이 나오더니 큰소리로 외치며 말했다.

「평중! 그대가 말하기를 ‘새로운 군주를 안정시키고 종사를 보전하기 위해서였다.’라고 운운했는데 이는 그대의 공을 지나치게 부풀린 말이 아닌가? 최저와 경봉이 작당하여 란을 일으키고 다시 란(欒), 고(高), 진(陳), 포(鮑)씨들이 파당을 지어 서로 싸워 나라를 혼란으로 빠뜨릴 때 그대는 팔짱을 끼고 관망만 했지 아무런 대책도 세우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의 힘이 아니었으면 아무런 일도 해내지 못하지 않았는가? 온 마음을 다하여 나라의 은혜에 보답했다는 사람이 어찌 그와 같은 행동을 했었던 말이오?」

안영이 보니 그는 곧 자를 자혁(子革)이라 부르는 우윤 정단(鄭旦)이었다. 안자가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대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사람이구려! 최저와 경봉이 같이 란을 일으켰을 때는 이 안영만이 홀로 그들과 상종을 하지 않았고 다시 네 가문의 사람들이 서로 물고 뜯으며 서로 싸울 때는 이 안영은 우리 군주 곁에 있으면서 지켰소. 강할 때는 강하고 부드러울 때는 부드럽게 대처하고 임기응변의 묘를 발휘하여 군주와 사직을 보전하는데 주력을 했으니 이것이 어찌 팔짱만을 끼고 곁에서 방관했던 사람이 할 수 있었던 일이었겠소?」

그러자 반열의 왼쪽에서 한 사람이 다시 나오더니 말했다.

「대장부가 그 임금을 만남에 있어 시대의 잘못된 점을 바로 잡고 또한 커다란 재주와 지략을 갖추고 있다면 반드시 그 행동거지도 폭이 넓어야 하거늘 이 어리석은 사람의 견해로는 그대는 한낱 인색한 사람에 불과할 뿐이라고 생각하오!」

그 사람은 초나라의 태재 벼슬을 하고 있던 원계강이었다. 안자가 물었다.

「내가 어찌하여 인색한 사람이라고 하십니까?」

「대장부는 밝은 임금을 찾아서 힘껏 모시어 상국의 벼슬을 차지하여 귀한 몸이 되어 당연히 아름다운 옷으로 몸을 치장하고 화려한 장식으로 거마를 장식하여 군주에게 받은 은혜를 세상에 널리 알려야 되는 법입니다. 그러나 그대는 어찌하여 다 헤어진 갖옷을 입고 비쩍 마른 말들이 모든 수레를 타고 나라를 대표하는 사신으로 외국에 나다니고 있으니 그것은 그대의 군주가 그대에게 봉록을 충분히 주지 않아서입니까? 내가 들으니 안평중이라는 사람은 어렸을 때부터 입기 시작한 갖옷을 30년이 되어도 갈아입지 않고 제사를 지낼 때는 돼지다리 하나도 제사상에 올리지 못하게 한다고 하니 이것은 너무 인색한 처사가 아닙니까?」

안자가 박장대소하며 말했다.

「그대의 식견은 어찌하여 그다지 천박합니까? 이 영은 제나라의 재상의 자리에 앉은 이래로 우리 안씨 족속들에게 모두가 갖옷을 입게 만들었고 외가 쪽에는 모두 고기를 먹게 하고 또한 처가에도 은혜를 베풀어 찬 음식을 안 먹어도 살 수 있게 했습니다. 지금도 나의 고향에는 이 안영이 횃불을 들고 나타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벼슬을 하지 않고 있는 인사들이 칠십여 호나 있습니다. 우리 집은 비록 검소하게 지내고 있다 하나 나와 관계가 있던 삼족들은 모두가 풍족하게 살고 있으니 내 몸은 비록 말랐다하나 여러 선비들을 흡족하게 만들고 있으니 이것이야말로 군주에게서 받은 은혜를 세상에 널리 알리고 있으니 이 또한 즐거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안영이 말을 마치자 다시 오른쪽 반열에서 한 사람이 앞으로 나오더니 안영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웃음을 머금고 말했다.

「내가 듣기에 성탕(成湯)은 신장이 아홉 자에 달하는 거인에 어진 임금 노릇을 했으며 옛날 섬진의 자상(子桑)⑦은 그 힘이 만 명의 장정을 당할 수 있는 거한이라 명장으로 이름을 남길 수 있었소. 옛날의 명군이나 영달한 선비들은 모두가 그 신체가 우람하고 그 포부와 용기는 세상을 덮을 수 있어 자기의 시대에 능히 공을 세우고 그 이름을 후세에 남길 수 있었습니다. 오늘 그대의 신체를 보니 그 키가 불과 다섯 자가 넘지 못하고, 가지고 있는 힘은 닭 모가지도 비틀지 못할 정도로 연약한데 헛된 말만 늘어놓아 능력이 있다고 자부하고 있으니 정녕 스스로 부끄러움을 모른단 말입니까?」

안자가 보니 그 사람은 바로 공자진(公子眞)의 손자로써 자를 자상(子常)이라고 부르는 낭와(囊瓦)였는데 그는 현재 초왕 밑에서 차우장군의 직에 있었다. 안영이 얼굴에 미소를 띄우며 대답했다.

「내가 들으니 저울추는 비록 작으나 천근을 잴 수 있으며 배의 삿대는 비록 가늘고 길기만 하지만 커다란 배를 앞으로 나가게 합니다. 교여(僑如)⑧의 신장은 비록 10자가 넘었으나 노나라 장수에게 잡혀 주륙을 당했고 남궁장만은 그 힘이 천하에 당할 자가 없었지만 송나라로 잡혀가 죽임을 당했소. 그대의 체구도 역시 우람하여 비슷하니 어찌 그들의 운명과 다르리라고 장담할 수 있겠소? 이 안영은 스스로 무능하다고 알고 있으나 단지 그대가 묻기에 대답할 뿐이며, 어찌 내가 감히 변설로써 자존망대할 수가 있겠소?」

안영이 대답을 마치자 시자가 들어와 고했다.

「영윤 원파(薳罷)께서 들어오십니다.」

조당에 있던 초나라의 여러 군신들이 두 손을 올려 읍하고 원파가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오거가 원파와 같이 조문을 들어오더니 안자를 향해 읍을 하였다. 오거가 조당에 모여 있던 초나라의 여러 대부들을 향하여 말했다.

「안평중은 제나라의 어진 선비인데 여러분들은 어찌하여 쓸데없는 말로써 그에게 수고로움을 끼쳐 무례를 범하십니까?」

5. 小人使小國 大人使大國(소인사소국 대인사대국)

- 소인은 소인국에 대인은 대인국에 -

그리고 시간이 잠시 흐르자 영왕이 들어와 전당에 올라 자리에 앉았다. 오거가 안자를 인도하여 초왕을 접견하게 했다. 영왕이 안자를 한번 쳐다보더니 다짜고짜로 물었다.

「제나라에는 원래부터 사람이 없는가?」

「제나라에는 사람들이 숨을 쉬면 김이 서려 구름이 되고 땀을 흘리면 비가 됩니다. 길을 걸으면 어깨가 부딪치고 서있으면 서로 발꿈치를 밟게 될 정도로 사람이 많은데 어찌 사람이 없다 하십니까?」⑨

「그런데 어찌하여 그대 같은 소인을 사자로 우리나라에 보냈는가?」

「우리나라에는 사자를 타국에 보낼 때 적용하는 법이 있습니다. 어진 사람은 어진 나라에 못된 사람은 못된 나라에 사자로 보내고, 또한 소인은 소인들이 사는 나라에, 대인은 대인들이 사는 나라에 사자로 보내고 있습니다. 신은 소인이며 또한 제나라에서 제일 못된 사람이라 초나라에 사자로 오게 되었습니다.」

6. 橘化爲枳(귤화위지)

- 종자가 같더라도 토양에 환경이 다르면 귤도 되고 탱자도 되는 법이다.-

영왕이 듣고 매우 부끄러운 마음을 갖게 되었으나 마음속으로는 한편 놀라기도 하였다. 접견의 의식이 끝나자 마침 성밖 교외의 백성이 합환귤(合歡橘)을 바쳐왔다. 영왕이 먼저 귤을 한 개 먼저 꺼내어 안영에게 주었다. 안영이 귤을 받아 들자 껍질도 까지 않고 그대로 먹어 버렸다. 영왕이 보더니 박수를 치며 웃었다.

「제나라 사람들은 귤도 먹을 줄 모르는가? 어찌하여 껍질도 벗기지 않고 그대로 먹는가?」

「신은 듣기에 ‘군주로부터 하사 받은 참외나 복숭아는 깍지 않고 그대로 먹어야 하며 귤과 밀감은 껍질 채로 먹어야 한다.’라고 했습니다. 지금 대왕께서 내리신 귤은 저의 군주가 하사하신 것과 같습니다. 대왕께서 저에게 껍질을 까서 먹으라고 하지도 않으셨는데 어찌 제가 하사하신 과일을 모두 먹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영왕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안영에 대해 존경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안영에게 자리를 권하고 술을 내오게 하여 잔치를 베풀었다. 술자리가 시작되고 얼마가 지나자 무사 서너 명이 포승줄에 묶인 죄수 한 사람을 끌고 전당 밑을 지나갔다. 영왕이 갑자기 무사들을 향하여 물었다.

「그 죄수는 어디 놈이냐?」

「제나라 출신입니다.」

「무슨 죄를 지었느냐?」

「남의 물건을 훔치다 잡혔습니다.」

영왕이 묻기를 마치자 안영을 향하여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제나라 사람들은 모두 도적질을 잘 하는가?」

안자는 그것이 영왕이 자기를 조롱하기 위하여 일부러 꾸민 일임을 짐작하고 즉시 영왕을 향하여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신이 듣기에 강수의 남쪽에 나는 귤나무를 강수의 북쪽에다 옮겨 심으면 귤 대신에 탱자가 열린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소위 토양의 성질이 틀려서 입니다. 오늘 저 죄인이 제나라에서 살 때는 도적질을 하지 않았으나 초나라에 옮겨 살더니 도적이 되었습니다. 초나라의 풍토가 그를 도적으로 만들었지 제나라 사람이라는 사실과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영왕이 갑자기 말문이 막혀 아무 말도 못하더니 한참만에야 입을 열어 말했다.

「과인이 경을 욕보이려 여러 가지 일을 꾸몄으나 오히려 경에게 욕보임만을 당했소.」

영왕이 즉시 안영을 예를 다해 극진히 대했다. 이윽고 안영은 사자의 임무를 마치고 제나라로 돌아갔다.

7. 糟糠之妻不下堂(조강지처불하당)

- 조강지처는 쫓아내지 않는 법이다. -

제경공은 안영의 공로를 높이 사서 그의 벼슬을 상국에서 상상(上相)으로 높이고 천금에 해당하는 좋은 갖옷과 안영의 봉읍을 더해 넓혀 주려고 했다. 그러나 안영은 하나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다시 안영의 집을 크게 넓혀 주려 했지만 안영이 역시 거절하였다. 하루는 경공이 안영의 집을 찾았다가 그의 처를 보고 물었다.

「이 사람이 경의 집사람이요?」

「그렇습니다.」

경공이 웃으면서 말했다.

「하! 참으로 늙고 못 생겼도다! 과인에게 사랑스러운 딸이 있는데 나이가 젊고 자색이 제법 뛰어나오. 경에게 시집을 보내도록 하겠소.」

「여인이 젊어서 아름다울 때 한 남편만을 섬기는 이유는 그녀가 늙어서 아름다움을 잃었을 때에 그녀의 남편에게 의지하고자 해서입니다.⑩ 신의 처가 비록 늙고 못 생겼으나 옛날에 이미 나를 섬겨 지금의 노구를 나에게 맡겼으니 어찌 제가 그녀를 저버릴 수 있겠습니까?」

경공이 듣고 탄식하며 말했다.

「경이 추하고 늙은 처를 버리지 않은데 하물며 그 임금인들 버리겠소?」

그런 다음부터는 안자의 충성스러운 마음을 더욱 믿게 되어 제나라의 모든 일을 안영이 맡겨 처리하도록 했다.

《제 70회로 계속》

주석

①호공(胡公) : 이름은 규만(嬀滿)이다. 그의 선조는 우순(虞舜)의 자손이다. 순(舜)임금이 평민의 신분이었을 때 당요(唐堯)가 그의 두 딸을 그에게 주어 규예(嬀汭)라는 곳에서 살게 했던 관계로 순의 후손의 성씨는 규씨(嬀氏)가 되었다. 순이 죽자 천하는 우(禹)에게 넘어가 순의 아들 상균(商均)은 일개 제후의 신분으로 살게 되었다. 하왕조 때 순의 제사는 끊기게 되어 은(殷)왕조에 이르게 되었다. 주무왕(周武王)이 은(殷)의 주왕(紂王)을 토벌하고 주나라를 세울 때 순의 후손 중 규만(嬀滿)이라는 사람을 찾아 지금의 하남성 주구시(周口市) 동쪽 부근의 땅이었던 진(陳)에 봉하고 순의 제사를 받들도록 했다. 이 규만이라는 사람이 호공(胡公)이다. 기원전 672년 진(陳)나라에서 권력다툼이 일어나 진경중(陳敬仲) 즉 진완(陳完)이라는 공자가 제(齊)나라로 망명하고 이 진완(陳完)의 후손이 제나라에서 세력을 잡고 기원전 386년 전화(田和)가 주천자로부터 태공의 후손들인 강씨 대신 제후(齊侯)에 봉해지자 제나라에는 전씨의 정권이 들어서게 되었다.

②혜전탈우(蹊田奪牛) : 농부의 소가 남의 전답에 들어가서 다른 사람의 농작물을 망치게 했다고 해서 그 벌로 소를 빼앗는다는 뜻으로 죄보다 벌이 지나치게 무거운 것을 말한다. 초장왕이 하징서(夏徵舒)의 란을 진압하고 난 후에 진나라를 멸하고 초나라의 군현으로 만들어 버리자 이를 본 신공(申公) 신숙시가 남의 소가 자기 밭에 들어와 농작물을 밟아 피해를 주었다 해서 그 소를 빼앗는 것은 지은 죄보다 그 벌이 너무 심한 것으로서 사리에 맞지 않는 부당한 것이라고 말하면서 진나라의 사직을 폐한 것은 부당한 일이라고 비유해 간언했다. 초장왕이 깨닫고 진나라를 다시 복국시켜 줬다는 고사에서 유래한 말이다. 본서 53회 참조.

③채영후(蔡靈侯)가 그의 부군을 시해한 사건은 기원전 543의 일이고 초영왕이 채영후를 유인하여 살해한 후에 채나라를 멸한 해는 기원전 531년이다.

④이유(夷維) : 현 산동성 고밀현(高密縣)으로 안자(晏子)의 출신지

⑤진문자(陳文子) : 전제(田齊)를 새운 전상(田常)의 선조로써 진수무(陳須无)를 말함. 최저가 제장공(齊庄公)을 시해하자 가재를 다 버리고 송나라로 망명했다. 다시 경봉(慶封)이 최저를 죽이고 제나라의 정사를 독단하자 최저에 의해 추대된 경공의 명으로 송나라에 망명하고 있던 진수무를 돌아오게 하였다. 진수무는 나이를 이유로 벼슬을 사양하고 그의 아들 진무우(陳无宇)를 대신 내 보냈다.

⑥抱大節者, 不拘小諒, 有遠慮者, 勿固近謀

⑦자상(子桑) : 당진 제후의 먼 친척으로 섬진 공자집(公子縶)의 추천을 받아 섬진의 목공에게 출사했던 공손지(公孫枝)의 자(字)다. 백리해를 목공에게 천거하였고 후에 백리해의 뒤를 이어 섬진의 재상을 지낸 사람이다. 본서 25회 내용 참조

⑧교여(僑如) : 본서 47회에 나오는 적주(翟主) 백돈(白暾) 휘하의 장수로써 신장(身長)이 한 장 오 척에 달하는 거인(巨人)이었다. 적주 백돈이 교여(僑如)를 시켜 노나라를 침략하게 하자 노나라의 문공(文公)은 숙손득신(叔孫得臣)과 부보종생(富父終甥)을 시켜 막게 하였다. 교여(僑如)는 부보부종생(富父終甥)의 유인(誘引) 작전(作戰)에 걸려 함정(陷穽)에 빠져 죽었다.

⑨ 呵氣成雲,揮汗成雨,行者摩肩,立者並跡

⑩人以少姣事人者, 以他年老惡, 可相托也

[평 설]

“초영왕이 사술로써 진과 채 두 나라를 멸하다.”편은 정전협정을 파기하여 중원에 대한 패권을 혼자서 차지하려고 기도했던 전략의 첫 번째 단계였다. 진과 채 두 나라를 멸하기 위해 사용한 전략을 한 자로 표현한다면 ‘사(詐)’다.

기원전 534년 진(陳)나라에서 후계자 문제로 내란이 발생했다. 진애공(陳哀公)이 죽자 애공의 동생들인 공자 초(招)와 과(過)가 애공의 장자인 언사(偃師)를 살해하고 차자인 공자 유(留)를 군주로 세웠다. 초영왕이 진나라의 공자 초(招)와 과(過)의 시군(弑君)의 죄를 토벌한다는 구실로 출동했으나 실제로는 진나라를 멸하고 초나라의 한 현으로 만들려고 했다. 그래서 초영왕은 출병하여 언사를 살해한 자객을 참수하고 공자 초(招)를 벽지로 유배 보낸 후에 언사(偃師)의 장자 공손오(公孫吳)를 데리고 영도로 돌아왔다. 초영왕은 아무런 저항도 받지 않고 순조롭게 진나라를 점령하여 초나라의 일개 현으로 만들 수 있었다.

이에 사술에 한 번 맛을 들인 초영왕은 채나라를 정벌할 때 다시 매서운 사술은 사용했다. 기원전 531년 그는 회맹을 연다는 구실로 채영후(蔡靈侯)를 신(申) 땅으로 유인하여 살해하고 군사를 내어 채나라로 진공하게 했다. 채후의 아들 채유(蔡有)가 백성들과 군사들을 규합하여 결사적으로 저항하는 한편 사자를 당진으로 보내 구원을 청했다. 진후는 제후들을 소집하여 그 대책을 상의했으나 각국의 제후들은 모두 초나라의 세력을 두려워하여 아무도 구원군을 보내려고 하지 않았다. 초군은 마침내 고립무원에 빠진 채나라를 반년 동안이나 공격한 끝에 함락시키고 초나라의 현으로 삼았다.

이에 초영왕은 더욱 중원 제후국들의 병탄 전쟁에 구미를 붙이고 당진국과 같이 패권을 공유할 생각을 버리고 궁극적으로 주나라를 대신하려 천하의 주인이 되려고 하였다.

초나라의 세력이 당진국을 능가한다고 생각한 중원의 각 제후국들은 초나라에 조빙사절을 보내기 시작하자 그 행렬이 끊이지 않았다. 초영왕은 제후국들의 사절에게 초나라의 국세를 과시하려는 목적으로 그때 마침 초나라를 방문한 제나라의 사자 안영에게 모욕을 가하기 위해 그를 희롱하고자 했다. 《전국책(戰國策)ㆍ제책(齊策)ㆍ5》에는 ‘연회석 상에서 술잔을 주고받으며 성을 함락시키며 자리에 앉아서 상대방을 제압했다.’라고 안영을 칭송했다. 안영이 사자로 초나라 도성의 성문에 당도했을 때 개가 사는 동네의 문으로는 사람이 들어갈 수 없다는 이야기, 왜소한 체구의 안영이 거한의 호위 무사들을 호통쳐서 물리친 일, 초국 대부들의 안영에 대한 비난을 반박한 일, 제나라 사람들은 도둑질을 잘한다는 말에 응수한 일 등은 모두 제나라와 안영 자신의 존엄함을 지키고 초영왕의 방자하고 오만한 기세에 일대 타격을 가한 것이다.

안영의 외교 방면에 대한 노력은 군사적인 면에서도 소흘히 여기면 안 된다. 외교의 성과로 얻은 좋은 결과는 천군만마로 얻은 승리보다 값진 경우가 많다. 그것은 바로 손자병법의 ‘싸우지 않고 적을 굴복시키는’ 목적을 달성하는 경우가 되기 때문인 것이다. 안영이 초나라를 방문하여 사자의 임무를 훌륭히 수행한 것은, 제(齊)와 초(楚) 양국의 관계를 개선시켰을 뿐만 아니라 제나라의 국제적인 입지를 높이게 되어 아무도 제나라를 함부로 대하지 못하게 했다.

《안자춘추(晏子春秋)ㆍ내편(內篇)ㆍ잡하(雜下)》편에 다음과 같은 기사가 있다. ‘진평공(晉平公)이 제나라를 정벌하기 위해 준비를 하다가 다른 한편으로 제나라의 허실을 알아보기 위해 대신을 파견했다. 당진의 사자가 연회석 상에서 두 번이나 제경공에게 모욕을 가하려고 했으나 모두가 안영과 태사(太師)에 의해 저지당하고 말았다. 제나라의 대신들의 기민함을 본 당진국의 사자가 돌아와 고하자 진평공은 제나라 정벌 계획을 철회했다.’ 공자도 이 일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했다. ‘참으로 아름답도다! 술좌석에 앉아서 천리 밖의 싸움을 승리로 이끈 사람이야 말로 안자와 태사를 말하는 것이 아닌가!’

역사상 관중과 함께 제나라의 저명한 인물 안영은 춘추 말기 때 사람이다. 안영은 안평중(晏平仲)이라고 하는데 평(平)은 그의 시호(諡號)이고 중(仲)은 그의 자(字)다. 그에 관한 이야기는 후세 사람들에 의해 수집되어 안자춘추(晏子春秋)라는 책으로 편찬되었다. 《좌전(左傳)》, 《맹자(孟子)》 등의 많은 서적에서 그의 사적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그는 봉건시대의 전통적 천명사상을 부정하지는 않았지만, 인본주의적 사상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절충주의적 철학사상을 가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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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제70회 殺兄簒位 劫侯尋盟(살형찬위 겁후심맹)

제70회 殺兄簒位 劫侯尋盟(살형찬위 겁후심맹) 세 형을 죽이고 초왕의 자리를 차지한 초평왕과 제와 노 두 나라를 겁박하여 회맹을 행하는 당
운영자 13-01-16 1366
[일반] 제3부-6권 이일대로- 목차

제6권 이일대로(以逸待勞) 제58회 說秦迎醫 獻藝殺敵(설진영의 헌예살적) 적국의 군주를 설득하여 명의 고완(高緩)을 모셔 와 그 주
양승국 04-05-11 1698
[일반] 제69회. 挾詐滅國(협사멸국) 巧辯服荊(교변복형)

제69회 挾詐滅國 巧辯服楚(협사멸국 교변복초) 속임수로 진채(陳蔡) 두 나라를 멸한 초영왕과 교묘한 변설로 초나라 대부들을 승복시킨 안영.
양승국 04-05-11 1909
[일반] 제68회. 師曠辯聲(사광변성) 散財買國(산재매국)

제68회 師曠辨聲 散財買國(사광변성 산재매국) 당진의 태사 사광은 새로운 노래를 식별하고 제나라의 진씨(陳氏)들은 사재를 털어 나라를 사다. 1
양승국 04-05-11 1636
[일반] 제67회. 計逐慶封(계축경봉) 弑侄簒奪(시질찬탈)

제67회 計逐慶封 弑侄簒奪(계축경봉 시질찬탈) 계략을 써서 경봉을 쫓아내 제장공의 원수를 갚은 노포계와 조카를 시해하고 왕위를 찬탈한 초영왕
양승국 04-05-11 2022
[일반] 제66회. 子鱄出奔(자전출분) 慶封獨相(경봉독상)

제66회 族滅寧喜 季札論音(족멸영희 계찰논음) 군주를 세운 공만을 믿다가 멸족당한 영희와 중원 제후국들의 노래소리를 듣고 국운을 예언한 계찰
양승국 04-05-11 1477
[일반] 제65회. 弑君專權(시군전권) 納主擅政(납주천정)

제65회 弑君轉權 兩世逐主(시군전권 양세축주) 군주를 시해하고 정권을 오로지한 제나라의 최저, 경봉과 대를 이어 군주를 쫓아낸 위나라의 대
양승국 04-05-11 1672
[일반] 제64회. 欒氏滅族(란씨멸족) 杞梁死戰(기량사전)

제64회 欒盈滅族 杞梁死戰(란영멸족 기량사전) 곡옥성에서 멸족을 당한 란영과 거성(莒城)의 차우문에서 전사한 제장(齊將) 기량 1.
양승국 04-05-11 1477
[일반] 제63회. 叔向被囚(숙향피수) 智劫魏舒(지겁위서)

제63회 叔向被囚 智劫魏舒(숙향피수 지겁위서) 죄수가 된 당진의 대현(大賢) 숙향을 구한 노신 기해와 기지로 위서(魏舒)를 붙잡아 신강성을 구
양승국 04-05-11 1383
[일반] 제62회. 諸侯圍齊(제후위제) 計逐欒盈(계축란영)

제62회 諸侯圍齊 計逐欒盈(제후위제 계축란영) 제후들은 군사를 합하여 제나라를 포위하고 당진의 세가들은 계략을 꾸며 란영을 쫓아냈다.
양승국 04-05-11 1412
[일반] 제61회. 三駕服鄭(삼가복정), 因歌逐主(인가축주)

제61회 三駕服鄭 因歌逐主(삼가복정 인가축주) 어가를 세 번 움직여 정나라를 굴복시켜 패주가 된 진도공과 노래를 전해 듣고 군주를 쫓아낸
양승국 04-05-11 1794
[일반] 제60회. 分軍肆敵(분군사적), 三將鬪力(삼장투력)

제60회 分軍肆敵 偪陽鬪力(분군사적 복양투력) 군사를 나누어 적군을 지치게 만든 순앵과 복양성 싸움에서 용력을 뽐낸 노나라의 세 장군
양승국 04-05-11 1600
[일반] 제59회. 胥童大亂(서동대란) 趙氏復興(조씨부흥)

제59회 胥童大亂 趙氏復興(서동대란 조씨부흥) 당진의 나라 안을 크게 어지럽히는 서동과 조씨 집안이 다시 일으키고 죽은 정영(程嬰) 1.
양승국 04-05-11 1643
[일반] 제58회. 魏相迎醫(위상영의) 神弓養叔(신궁양숙)

제58회 魏相迎醫 神弓養叔(위상영의 신궁양숙) 진백을 설득하여 명의를 빌려온 당진의 위상(魏相)과 춘추 제일의 명궁(名弓) 양요기(養繇基) 1.
양승국 04-05-11 18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