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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05-11 11:59:016201 
제63회. 叔向被囚(숙향피수) 智劫魏舒(지겁위서)
양승국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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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제63회 叔向被囚 智劫魏舒(숙향피수 지겁위서)

죄수가 된 당진의 대현(大賢) 숙향을 구한 노신 기해와

기지로 위서(魏舒)를 붙잡아 신강성을 구한 나이어린 범앙

1. 叔向被囚(숙향피수)

- 정변에 연루되어 투옥되는 당진의 대현 숙향 -

기유(箕遺)가 그때 마침 숙호의 집에 `있으면서 황연과 그 일행이 당도하기를 기다렸다가, 밤이 깊어지면 일제히 들고일어나 성밖으로 탈출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들은 오히려 황연이 도착하기도 전에 범앙(范鞅)이 데리고 온 군사들에게 포위당하고 말았다. 숙호의 집으로 몰려들고 있던 란씨 가병들은 감히 그 집안으로 들어와 한 곳에 모이지 못하고 멀리서 쳐다만 보다가 대부분이 흩어져서 돌아가 버렸다. 숙호가 사다리를 타고 담장 위로 올라가 바깥을 향해 소리쳐 물었다.

「소장군께서는 어인 일로 군사를 끌고 와서 저희 집을 포위하십니까?」

「너희들은 평소에 란영과 무리 지어 다니더니, 오늘은 다시 성문을 지키는 군사들을 죽이고 성밖으로 나가 란영과 호응하려고 한다. 반역에 해당하는 죄라 주군의 명을 받아 너희들을 체포하기 위해 내가 특별히 이렇게 달려왔도다!」

「나는 그 일에 대해서 아무 것도 아는 바가 없습니다. 도대체 누구에게서 그런 말을 들으셨습니까?」

범앙이 즉시 장갱(章鏗)을 불러오게 하여 숙호가 꾸민 음모를 증언하게 했다. 힘이 장사인 숙호는 담장 속의 돌멩이 한 개를 비틀어 빼더니 장갱의 머리를 향하여 던졌다. 돌멩이가 날아가 장갱을 맞추자, 그는 머리통이 깨져 죽어 버렸다. 대노한 범앙이 군사들에게 불을 지르게 하고 이어서 대문을 부수고 집안으로 진입하라고 명했다.마음이 다급해 진 숙호가 기유를 향해 말했다.

「우리들이 설사 도망가다 죽을지언정 가만히 앉아서 포박을 받을 수는 없소!」

무기고에 달려가 극을 손에 들고 앞장선 숙호를 보고 기유도 허리에서 칼을 빼 들고 큰 함성 소리를 지르며 그 뒤를 따라 나섰다. 두 사람은 화광이 충천한 불 속으로 뛰어 들어 집밖으로 빠져나가려고 했다. 불길 속에서 두 사람의 모습을 발견한 범앙은 군사들에게 명하여 그들을 향해 일제히 활을 쏘라고 명했다. 그때는 이미 불길이 사납게 일어나 하늘에 충천하고 있어 숙호 일행은 몸을 피하기도 어렵게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범앙이 데리고 온 군사들이 쏜 화살이 비 오듯이 날아들어 비록 두 사람이 하늘을 나는 재주가 있다 한들 별수 없게 되어버렸다. 마침내 두 사람은 화살에 맞아 같이 땅에 쓰러지고 말았다. 범앙이 데리고 온 군사들이 갈고리를 이용하여 그들의 몸을 끌어냈으나 그 두 사람은 거의 반쯤은 죽어 있었다. 군사들이 그 둘을 포승줄에 묶어 수레에 실었다. 범앙은 군사들에게 불을 끄라고 명했다. 그때 갑자기 수레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 왔다. 이윽고 횃불을 든 많은 군사들이 밤하늘을 밝히면서 달려왔다. 그들은 바로 범앙을 돕기 위해 달려오고 있던 중군부장 순오 휘하의 본부병들이었다. 순오은 도중에 마침 맞은 편에서 다가오던 황연을 사로잡을 수 있었다. 순오의 군사를 합류한 범앙은 숙호, 기유 및 황연 등을 사로잡아서 중군원수 범개가 있는 곳으로 데려갔다. 범개가 범앙과 순오를 향해 말했다.

「수많은 란씨 일당들 중 체포한 사람들은 고작 이 세 사람뿐이란 말이냐? 아직도 환난의 뿌리가 없어졌다 할 수 없으니 마땅히 란씨 잔당들은 모조리 잡아 들이도록 하라!」

범개가 다시 군사들을 나누어 란씨 일당들을 수색하여 체포하도록 하였다. 그날 밤 신강성 성중에는 란씨 일당들을 수색하느라 밤이 새도록 소란스러웠다. 드디어 날이 밝아 오기 시작했다. 그날 밤 사이에 범앙은 지기(智起), 적언(籍偃), 주빈(州賓) 등을 체포하고, 순오는 중행희(中行喜)와 신유(辛兪) 및 양설숙호(羊舌叔虎)의 배다른 행제들인 양설적(羊舌赤)과 양설힐(羊舌肹)을 붙잡아 왔다. 범앙과 순오는 체포한 죄인들을 모두 조문 밖에 있는 방안에 임시로 가두어 놓고 평공이 조당에 나오기를 기다렸다. 두 사람은 평공에게 그들의 죄상을 고한 후에 각자에게 해당하는 죄를 판결하려고 했다.

한편 양설적의 자는 백화(伯華)이고 양설힐의 자는 숙향(叔向)①이라 했다. 세 사람은 모두 양설직의 아들이기는 했지마는 숙호는 두 사람과는 배다른 동생이었다. 당초 숙호의 모는 양설직 부인의 몸종이었다. 그녀의 자태가 대단히 아름다워 양설직이 욕심을 내었으나 오랫동안 양설부인이 그 남편의 잠자리에 보내지 않았다. 후에 장성한 양설 형제들이 그 모친에게 몸종을 투기하지 말라고 말했다. 양설부인이 웃으면서 말했다.

「내가 어찌 투기를 해서 몸종을 네 부친에게 보내지 않았겠느냐? 내가 들으니 미색이 너무 고우면 반드시 나쁜 일이 생긴다고 했다. 깊은 산중의 큰 연못에서 용과 이무기가 산다 했는데 내가 걱정하는 이유는 그녀가 용이나 이무기를 낳아 너희 형제들에게 화를 몰고 오지 않을까 걱정했기 때문에 네 부친의 침소에 보내지 않았다.」

양설 형제가 부친의 뜻을 따르라고 모친에게 계속 간청하자 모친은 결국은 몸종을 양설직의 침소로 보냈다. 하루 밤을 새고 나서 그 몸종이 아이를 배어 숙호를 낳았다. 숙호가 장성함에 따라 그 생김새가 생모를 닮아 매우 준수하였고 용력도 또한 뛰어났다. 란영과는 어렸을 때부터 같이 엎어지고 뒹굴면서 자랐기 때문에 서로 좋아하기를 마치 부부같이 했다. 숙호는 란영과 가장 가까운 죽마고우였다. 그래서 양설숙호의 배다른 두 형들도 사건에 연루되어 함께 끌려와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2. 媚行者, 主可亦可 主不亦不(미행자, 주가불가 주불역불)

- 아첨배는 주인이 가하면 자기도 가하고, 주인이 불가하면 자기도 불가하다고 하는 법이다. -

대부 악왕부(樂王鮒)의 자는 숙어(叔魚)라 했다. 그는 당시 평공의 총애를 받고 있었다. 평소에 양설 형제들의 어짐을 공경하여 사귀고자 하는 마음을 갖고 있었으나 기회가 닿지 않아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란씨들 때문에 성내가 소란한 와중에서 양설 형제들도 같이 잡혀갔다는 소식을 듣고 일부러 그들이 갇혀 있는 곳으로 찾아와 양설힐을 보고는 두 손을 높이 들어 읍을 하며 위로했다.

「대부께서는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주공을 뵙고 대부를 위해 선처를 부탁드리리라!」

양설힐은 악왕부의 말을 듣고도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악왕부가 얼굴에 부끄러운 기색을 띄우며 물러갔다. 악왕부에게 무례를 저질렀다는 말을 전해들은 양설적이 동생을 책망했다.

「우리 형제의 목숨이 여기서 끝나 양설씨의 대가 끊기려고 하는 마당에 어찌 악대부에게 무례하게 굴었느냐? 악대부는 주공의 총애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사람이라 그가 청하면 안 들어주는 일이 없는데 만약에 그가 우리를 위해 한 마디의 말이라고 거들어 준다면 천행으로 우리가 화를 면하여 양설씨의 대는 끊어지지 않을 수 있다. 그런데 너는 어찌하여 악대부의 말에 대꾸도 하지 않음으로써 그 분의 호의를 저버렸느냐?」

양설힐이 웃으면서 그 형에게 말했다.

「죽고 사는 일은 하늘의 뜻이라! 만약 하늘의 뜻이 우리를 돕고자 한다면 그것은 노대부 기해(祁奚) 님을 통해야만 가능한 일입니다. 숙어 따위가 어찌 우리를 위해 능히 주공에게 간청할 수 있겠습니까?」

「숙어는 아침저녁으로 주공의 측근에 있음에도 오히려 너는 그가 우리를 위해 간청을 올릴 수 없다 하고, 노대부 기해님은 이미 조정에서 물러나 자기 봉지에 은거하여 한가롭게 살고 있음에도 너는 기해님이 우리를 구할 수 있다 하니 나는 도저히 그 뜻을 이해 할 수 없다.」

「숙어는 단지 주공의 비위만을 맞추는 사람입니다. 주공이 가하다고 하시면 숙어도 가하다 하고 주공이 불가하다고 하면 숙어도 불가하다고 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노대부 기해님은 바깥일을 함에 있어서는 비록 원수가 되는 한이 있더라도 옳은 말은 피하지 않고, 안의 일을 함에 있어서 또한 아무리 친한 사이라 하더라도 사정(私情)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제가 오로지 기해님이 나서야만 우리들 목숨을 보전할 수 있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리고 얼마 있지 않아 평공이 조당에 나왔다. 범개가 밤 사이에 붙잡아 가두어 놓은 란씨들 무리의 성과 이름을 고했다. 평공도 역시 양설씨 형제들 세 사람이 모두 그 무리들에 들어가 있음을 보고 의아하게 생각하여 악왕부를 향해 물었다.

「숙호가 란을 도모했다는 사실은 내가 들어 알고 있지만 적(赤)과 힐(肹)에 대해서는 그 사실을 듣지 못했다. 어찌 된 일인가?」

악왕부는 마음속으로 양설힐의 태도에 대해 매우 괘씸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악왕부가 말했다.

「무슨 일이든 형제처럼 가까운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어찌 두 형제가 모른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평공이 즉시 잡혀 온 모든 사람들을 하옥하라 하고 사구를 시켜 그 죄를 묻도록 했다. 그때 기해는 나이가 많음을 이유로 벼슬에서 물러나 자기의 봉읍인 기읍(祁邑)②에서 은퇴하여 살고 있었다. 그의 아들 기오와 양설적은 친구지간으로서 사이가 각별하였다. 기오가 사람을 시켜 기읍으로 달려가게 하여 양설형제의 일을 부친에게 알렸다. 양설씨 형제들의 일을 알려 부친으로 하여금 범개에게 편지를 써서 양설적을 위해 관용을 베풀도록 청하기 위해서였다. 기해가 기오의 편지를 읽고 크게 놀라 말했다.

「적과 힐은 모두 당진의 현자들인데 이번 일에 억울하게 연루되었으니 내가 마땅히 도성으로 가서 그들의 목숨을 구해야만 하겠다.」

기해는 즉시 수레를 타고 밤낮으로 달려 신강성에 당도했다. 그는 자기 아들 기오도 찾지 않고 곧바로 범개의 집으로 가서 문을 두드렸다. 범개가 기해를 맞이하여 집안으로 맞아들인 후에 좌정하고 물었다.

「대부께서는 나이가 들어 거동이 불편하신 데도 불구하고 찬바람과 이슬을 무릅쓰고 도성에 서둘러 오셨으니 필시 저에게 긴히 하실 말씀이 있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당진국 사직의 존망이 눈앞에 달려 있어 노부가 만사를 제쳐놓고 이렇게 달려 왔습니다.」

범개가 크게 놀라 다시 물었다.

「사직의 존망과 관계되는 일이란 도대체 무엇이기에 노대부의 마음을 이렇듯 번거롭게 한단 말입니까?」

「나라의 현자는 사직을 지키는 주석(柱石)과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양설직은 우리 당진을 위해 많은 공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그의 아들들인 적과 힐도 역시 양설직의 뒤를 이어 받아 매우 슬기로운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양설직의 불초인 서자 한 명이 저질은 잘못으로 모두 한꺼번에 잡아서 그 후사를 끊어 버리려고 하니 어찌 안타까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옛날 극예(郤芮)가 반역을 했지만 그의 아들 극결(郤缺)은 조당에 올라 부자지간의 죄도 서로 미치지 않았는데 하물며 형제지간은 말할 필요도 없는 일입니다. 장군께서 사사로운 감정으로 무고한 사람을 많이 죽여 옥석구분(玉石俱焚)하려고 하니 이것이야말로 진실로 당진의 사직이 위태한 지경에 처했다고 생각해서 드린 말쓰밉니다.」

범개가 얼굴 표정을 숙연하게 바꾸더니 자리에 일어나며 기해를 향해 말했다.

「노대부의 말씀은 심히 합당하다고 생각합니다. 단지 주군의 분노가 아직 가라앉지 않았으니 저와 노대부께서 같이 궁궐로 들어가 주군을 뵙고 말씀을 드리도록 하면 어떻겠습니까?」

두 사람이 한 수레에 같이 타고 입조하여 평공에게 알현을 청했다. 기해가 평공을 보고 주청을 올렸다.

「비록 같은 형제간이라 할지라도 양설씨의 적과 힐 형제는 다 같이 어질고, 숙호는 불초하여 서로 같다고 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적과 힐은 필시 란씨들의 일에는 관여하지 않았다고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 또한 양설씨들의 나라를 위해 애쓴 공로를 생각해서라도 그 대를 끊어서는 안 됩니다.」

평공이 크게 깨닫고는 양설적과 힐 형제들을 사면하고 다시 원래의 관직을 복직시켰다. 지기(智起), 중행희(中行喜), 적언(籍偃), 주빈(州賓), 신유(辛兪) 등은 모두 내쳐 서인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숙호, 기유 및 황연 등의 세 사람은 참수형을 면치 못했다. 양설 형제 두 사람이 사면을 받아 감사의 말을 드리러 입조하였다. 두 사람이 평공에게 인사를 드리고 조당에서 물러 나오면서 양설적이 그 동생에게 말했다.

「우리가 마땅히 노대부 기해님이 계신 곳으로 찾아가 감사의 말을 드려야 하지 않겠느냐?」

「기해님이 우리를 구한 이유는 당진의 사직을 위해서이지 우리 형제 개인을 위해서 한 일이 아닙니다. 무슨 연유로 감사의 말을 드리러 일부러 찾아가야 한단 말입니까?」

양설힐이 말을 마치더니 형을 놔두고는 곧바로 수레를 타고 자기 집으로 갔다. 양설적은 마음속으로 그래도 일말의 불안감이 있어 기오의 집으로 찾아가 기해에게 인사를 드리려고 했다. 기오가 대답했다.

「부친께서 주공을 뵙고 난 후에 내 집에는 들르지도 않고 곧바로 기읍(祁邑)으로 내려가 버리셨네!」

양설적이 듣고 한탄하면서 말했다.

「기해님은 베풀기만 할뿐 남에게서 그 보답을 바라지 않는 분이시구나! 내가 동생 힐(肹)의 식견에 미치지 못하니 참으로 부끄러울 뿐이로구나!」

염옹이 이 일을 두고 시를 지었다.

티끌만한 수고에도 그 대가를 바라는 세상이라

사사로은 정으로 올리는 절이 부끄럽다고 어찌 알겠는가?

필시 기해와 양설힐이 행한 일을 공도(公道)라고 할진데

어지러이 구하는 뇌물은 정말로 가소로운 일이 아닌가?

尺寸微勞亦望酬(척촌미로역망수)

拜恩私室豈知羞(배은사실개지수)

必如奚肹才公道(필여해힐재공도)

笑殺紛紛貨賂求(소살분분화뢰구)

서인으로 만들어 방면한 주빈이 다시 란기(欒祁)와 왕래를 시작하여 정을 통하자 범개가 듣고 장사를 보내 죽였다.

3. 辛兪復恩(신유복은)

- 반목하는 주인과 군주 모두에게 의를 행하여 은혜를 갚은 신유 -

한편, 곡옥의 수장 서오(胥午)는 옛날 란서의 문객 출신이었다. 란영이 곡옥을 지날 때 서오가 마중을 하여 접대하기를 대단히 극진히 대했다. 란영이 저읍(著邑)에 성곽을 쌓는 일에 대해서 말하자 서오가 곡옥의 사람들을 보내어 돕겠다고 했다. 란영이 곡옥에서 묵기를 3일 째 되는 날 란락(欒樂) 등이 도망쳐 와서 그 사이에 도성 안에서 일어난 변란에 대해 소식을 전하면서 말했다.

「양필(陽畢)이 군사를 이끌고 조만간에 저읍에 당도할 것입니다.」

독융이 옆에 있다가 말했다.

「양필이 공실의 군사들을 이끌고 당도하면 물리쳐버리면 그만입니다. 제가 싸움에 지기야 하겠습니까?」

가병들을 이끌고 곡옥성에 당도한 주작과 형괴도 말했다.

「이 번 일로 인해 주인께서 혹시 저희들의 도움이 필요할 것 같아 수하 들을 이끌고 이렇게 급히 달려왔습니다.」

「내가 아직 주공에게 죄를 짓지 않았는데 일이 이 지경까지 이르게 된 이유는 우리 란씨에게 감정을 품고 있는 종족들의 모함을 받고 있기 때문이오. 만약 내가 주공이 보낸 군사들에게 항거한다면 나를 제거할 구실을 그들에게 줄 뿐이오. 일단은 이곳을 피하여 주공께서 우리의 억울함을 깨달을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있을 수 없소.」

서오도 역시 공실의 군사들에게 대항해서 싸우는 것은 불가하다고 말했다. 란영이 즉시 수레를 수습하여 올라타고 서오와 눈물을 흘리며 이별을 고하고 초나라를 향해 달려갔다. 그리고 얼마 후에 군사를 이끌고 저읍에 당도한 양필에게 저읍 사람들이 말했다.

「란영은 곡옥에 머물다가 나라 밖으로 도망쳤기 때문에 이곳에 있지 않았습니다.」

양필이 신강성으로 회군하면서 란씨의 시역죄를 저읍 사람들에게 알렸다. 그러나 저읍의 백성들은 모두가 란씨들이 나라에 공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며, 또한 란씨 종족들은 백성들에게 은혜를 베풀고 선비들을 사랑하였던 관계로 그들의 억울함을 안타까워하며 한탄하지 않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한편 신강성의 범개는 란씨의 가신들이 란영을 따라 나라 밖으로 나가면 안 된다고 엄금하고 만일 란영을 따르는 자가 있다면 사형에 처해야 한다고 평공에게 상주하였다. 평공이 허락했다. 주인이 초나라에 있다는 소식을 듣게 란영의 가신 신유는 즉시 가재를 수습하여 수레 몇 대에 싣고 란영을 따르기 위해 성밖으로 나가다 성문을 지키는 군사들에게 검문을 당했다. 신유는 군사들에게 잡혀서 평공 앞으로 끌려갔다. 평공이 신유를 보고 말했다.

「과인이 란영의 뒤를 따라가면 안 된다고 령을 발했거늘 너는 어찌하여 이를 어겼는가?」

신유가 절을 올리고 말했다.

「신이 어리석어 무슨 이유로 제가 주군께서 란씨의 뒤를 따르는 일을 엄금하셨는지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란씨를 따르려는 일을 금한 이유는 란씨가 군주인 나를 업신여겼기 때문이다!」

「군주를 업신여기는 행위를 진실로 금하시려고 하신다면 신은 죽을죄는 짓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신은 ‘삼세가 대를 이어 한 집안을 섬겼으면 그 주인은 즉 군주가 되며, 이세가 한 집안을 섬겼으면 그 집안의 어른은 주인으로 받들어 모셔야 하며, 또한 군주는 받들기를 죽음으로써 해야 하며, 주인은 받들기를 있는 힘을 다하여 성실히 모셔야 한다!’③라고 알고 있습니다. 신은 조부 때부터 부친을 거쳐 저에게 이르기까지 삼대를 걸쳐 란씨들의 가신이 되어 그들로부터 녹을 받아 지금까지 생활해 왔습니다. 그런 연유로 란씨는 신의 군주가 됩니다. 그래서 신은 단지 란씨를 따르고자 함이지 어찌 감히 군주를 업신여긴다 하겠습니까? 또한 란영이 비록 죄를 지었다고는 하지만 주군께서는 단지 나라 밖으로 쫓아내시기만 하셨지 죽이지는 않으셨습니다. 그 이유는 그의 선세들이 나라에 끼진 견마지로의 공을 염두에 두시어 그의 목숨을 보전케 하셨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란영이 타국을 오랫동안 떠돌아다니며 살림도구도 없이 의식도 떨어져 만에 하나 깊은 계곡에 떨어지기라도 한다면 주군께서 베푸신 덕은 아무 소용이 없이 끝이 나고 말 것입니다. 신이 이번에 가고자 하는 뜻은 신하된 자의 본분을 다하여 주군이 베푸신 덕을 이룩하기 위해서이며 또한 도성 안의 백성들에게 ‘주공께서 위난에 빠진 신하를 결코 버리시지 않으셨다.’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란씨를 따라가는 자는 군주를 업신여기는 자라 해서 금하신다면 주군께 큰 손해라고 생각합니다.」

평공이 신유의 말을 가상하다고 여겨 기뻐하며 말했다.

「그대는 차제에 이곳에 머물러 나를 섬기는 것이 어떠한가? 내가 그대에게 란씨들에게 준 봉록을 거두어 그대에게 주도록 하겠다.」

「란씨는 신의 주군이라고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한 군주를 버리고 다시 다른 한 군주를 섬기게 한다면 무슨 도리로 군주를 업신여기는 자들을 금하게 할 수 있겠습니까? 주군께서 저를 붙잡아 곁에 두시고자 하신다면 차라리 죽여주시기 바랍니다.」

「그대는 가도 좋다! 과인이 잠시 그대의 말을 듣고 그대가 가지고 있는 뜻을 이루게 해주려는 것 뿐이었다!」

신유가 머리를 숙여 재배하고 물러 나와 가재를 싣고 있던 여러 대의 수레를 이끌고 당당한 모습으로 신강성을 나가 란영이 있는 곳으로 갔다. 사관이 시를 지어 신유의 충성된 마음을 찬미했다.

구름을 뒤집어 비가 되게 함이 세상의 각박한 인심이나

송백은 이슬과 백설을 먹고 큰다는 사실을 비로소 알았다.

삼대에 걸친 신하가 죽음으로써 주인의 은혜에 보답하려는데

비록 군명이라 하지만 란영 대신 다른 주인을 섬기겠는가?

翻雲覆雨世情輕(번운복우세정경)

霜雪方知松柏榮(상설방지송백영)

三世爲臣當效死(삼세위신당효사)

肯將晉主換欒盈(긍장진주환란영)

한편 란영이 초나라 경계에 몇 개월을 머물면서 장차 영도로 들어가 초왕을 접견하고 초나라에 망명하려고 하던 중 갑자기 마음을 바꾸어 생각했다.

「나의 조부께서는 나라를 위해 온힘을 다하여 공을 세우셨는데 초나라는 우리 당진과는 대대로 원수지간이라 아직까지 서로 용납하지 않고 있으니 어떻게 해야 하는가?」

란영은 다시 마음을 바꿔 제나라로 가려고 했으나 가지고 있던 재물이 모두 거덜 나서 길을 떠날 노자가 없어 주저하고 있었다. 그때 마침 신유가 재물을 가득 실은 수레를 몰고 란영이 있는 곳에 당도했다. 란영이 기뻐하여 그 재물을 모두 받아들여 수레와 종자들을 다시 정비하여 제나라를 향하여 출발했다. 이때가 주영왕(周靈王) 21년, 즉 공자가 태어난 기원전 551년의 일이었다.

4. 志大才疎 必有凱覦(지대재소 필유개유)

- 뜻만 크고 재주가 모자란 사람은 필시 분에 넘치는 일을 도모하게 되는 법이다. -

한편 제장공이라는 위인은 힘이 센 장사들을 좋아하고 호승벽(好勝癖)이 있어 다른 사람 밑에 있는 것을 결코 참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 비록 당진과는 전연(澶淵)에서 회맹을 하여 당진의 명을 받는다고는 했지만 평음의 싸움에서 패한 이래로 줄곧 그것을 평생의 치욕으로 여겼다. 그래서 장공은 평음의 싸움에서 지고 난 후에 즉시 장사들을 널리 구하여 그들만으로 일대를 만들어 친히 그들을 인솔하고 천하를 횡행하고자 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경(卿), 대부(大夫), 사(士)로 나뉘어진 군신들의 직급에 따로 용작(勇爵)이라는 계급을 만들어 그 록을 대부에 준하게 했다. 용작의 기준으로는 반드시 천근의 물건을 들 수 있는 힘을 갖추어야 하고 일곱 개를 겹친 목간을 쏘아 맞추어 꿰뚫는 명궁들만을 선발하였다. 그 기준에 의해 식작(殖綽)과 곽최(郭最)가 일등으로 뽑혔고 그 다음으로 가거(賈擧), 병사(邴師), 공손오(公孫傲), 봉구(封具), 탁보(鐸甫), 양윤(襄尹), 루인(僂堙) 등 모두 아홉 사람의 장사들이 선발되었다. 장공은 그들 모두를 매일 궁중으로 불러 벌리는 활쏘기와 검술 시합을 구경하는 일로 락을 삼아 세월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장공이 조정에서 정사를 논하고 있는데 근신이 달려와서 보고하며 말했다.

「오늘 당진의 대부 란영이 자기 나라에서 쫓겨나 우리 제나라로 도망쳐 왔습니다. 」

장공이 기뻐하며 말했다.

「마침 과인이 당진에게서 대대로 받은 수모를 갚으려고 하던 순간 오늘 그 나라의 세가 출신 대신이 망명해 왔다. 이것은 과인이 뜻을 이룰 수 있게 하늘이 도왔기 때문이다!」

장공은 즉시 사람을 보내 란영을 맞이해 오라고 명했다. 그때 대부 안영(晏嬰)이 앞으로 나와 상주하였다.

「란영을 받아들이는 일은 절대 불가합니다. 세력이 약한 자가 강한 자를 받들 수 있는 방법은 오로지 믿을 신(信) 하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바로 전에 당진과 회맹하여 우호관계를 맺어 놓고 오늘 다시 그 나라에서 쫓겨난 신하를 받아들임으로 해서 만일 당진이 사람을 보내 우리를 책한다면 그때는 어찌 하시려고 그러십니까?」

장공이 웃으면서 말했다.

「대부의 말은 옳지 않소. 당진은 우리와 세력이 비등한 숙적이오. 어찌 약하고 강함을 따져 구분하시오? 옛날 우리가 회맹하여 당진에게 머리를 숙인 이유는 단지 한 때의 위급한 상황을 모면한 후에 기회를 엿보기 위해서였지 어찌 과인이 노(魯), 위(衛), 조(曺), 주(邾) 등과 같은 소국처럼 당진을 죽을 때까지 받들 수 있겠소?」

제장공은 안영의 간하는 말을 물리치고 사람을 보내 란영을 맞이하여 조당으로 데리고 오게 했다. 란영은 장공 앞으로 인도되어 배알하는 의식을 가졌다. 그는 머리를 조아리고 통곡을 하며 그가 당진에서 쫓겨난 내력을 호소했다. 장공이 듣고 말했다.

「경은 너무 걱정하지 마시오. 과인이 도와서 반드시 경으로 하여금 당진으로 돌아 갈 수 있도록 하리다!」

란영이 다시 절을 하며 감사의 말을 올렸다. 장공이 란영에게 큰 공관을 내주고, 다시 잔치를 성대하게 베풀어 접대를 극진히 했다. 주작과 형괴가 란영의 곁에서 한 발짝도 떨어지지 않고 시립 하여 모시고 있는 모습을 본 장공이 신체가 장대하고 풍채가 당당한 두 사람에게 성과 이름을 물었다. 두 사람이 사실대로 장공에게 고했다. 장공이 듣고 말했다.

「옛날 평음의 싸움 때에 우리의 식작과 곽최 두 장군을 사로 잡았다는 당진의 장군들이 바로 그대들이 아닌가?」

식작과 형괴가 머리를 조아리며 죄의 용서를 빌었다. 장공이 다시 말했다.

「과인이 그대들을 사모한지 오래라!」

장공은 즉시 좌우에게 명하여 란영의 일행을 위해 술과 음식을 준비시켜 배불리 먹을 수 있도록 했다. 하였다. 술이 몇 순배 돌아 자리가 거나하게 되었을 때 장공이 란영을 향하여 말했다.

「과인이 경에게 부탁할 말이 하나 있소. 경은 부디 나의 청을 들어주기 바라오.」

「만약에 제가 군주님의 명에 따를 수만 있다면 어찌 이 몸인들 아까워하겠습니까?」

「과인이 경에게 구하고자 하는 바는 저 두 장수를 잠시 빌려 내 곁에 두고 싶어서요.」

란영이 감히 거절하지 못하고 마지못해 장공의 청에 따랐다. 연희가 끝나 주작과 형괴를 장공에게 빼앗긴 채 혼자서 마차에 타고 공관에 돌아가던 란영은 즐겁지 않은 마음으로 생각했다.

「제후의 눈에 독융(督戎)이나마 눈에 띄지 않아 다행이로다. 그렇지 않고 독융도 같이 데려 왔더라면 그 역시 제후에게 빼앗겼을 것이다.」

장공이 주작과 형괴를 란영에게서 빼앗아 용작(勇爵)의 열 맨 끝에 세우자 두 사람은 마음속으로 불만을 품게 되었다. 하루는 두 사람이 식작과 곽최와 함께 장공의 곁에서 서서 시위하게 되었다. 두 사람이 일부러 놀라는 척 하며 식작과 곽최를 가리키며 큰 소리로 외쳤다.

「너희들은 나에게 사로잡혔던 포로들이 아닌가? 어떻게 하여 이곳에 와 있는가?」

기분이 상한 곽최가 나서서 대꾸했다.

「우리들은 옛날에 환관 놈이 일을 망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그리 되었다. 남의 뒤를 따라 쥐새끼처럼 도망쳐 이곳에 온 너희들과 어찌 비교할 수 있겠느냐?」

주작이 노하여 말했다.

「너희들은 그때 나의 손아귀에 있던 빈대에 불과했던 자들이었는데 그때도 지금처럼 날고뛰었다고 할 수 있느냐?」

식작도 역시 화가 나서 말했다.

「그렇다면 오늘은 우리 제나라에 있는 몸을 두고 있는 너희들 역시 우리들의 수중에 떨어진 고기 덩어리에 불과하다고 하지 않겠느냐?」

형괴가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정히 너희들이 우리 두 사람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한다면 우리는 지금 당장 우리의 주인에게로 돌아가겠다.」

곽최가 말했다.

「당당한 제나라에 너희 두 사람이 없다고 이룰 수 없는 일이 있겠느냐? 어찌 그렇게 어렵게 말하는가?」

네 사람의 말이 더욱 강경해지며, 이윽고 얼굴이 붉어져서 각기 자기들의 허리에 찬 칼을 손으로 어루만지며 점차 서로 간의 얼굴에 살기를 띠게 되었다. 장공이 좋은 말로 서로 감정을 풀도록 달래면서 술을 가져오게 하여 네 사람의 장사들을 위로했다. 장공이 주작과 형괴을 향하여 말했다.

「과인은 그대 두 사람의 장군이 제나라 사람 밑에 있기를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았노라.」

장공은 즉시 용작(勇爵)의 일대를 다시 용(龍)과 호(虎)라는 이름의 이대로 나누어 좌우로 분반하였다. 우반은 용작(龍爵)이라 하고 주작과 형괴를 맨 앞에 서게 하고 다시 제나라 사람 중에 노포계(盧蒲癸)와 왕하(王何)라는 용사(勇士)를 뽑아 두 사람 밑에 두었고, 좌반은 호작(虎爵)이라 하고 식작과 곽최를 맨 앞에 서게 하고 가거 등 7명을 옛날에 정해진 순서대로 서열을 정해주었다. 용작과 호작에 속한 모든 용사들은 자기들의 직위에 대해 영광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단지 주작, 형괴, 식작, 곽최 네 사람만은 마음속으로 서로 승복하지 않고 반목하는 마음을 계속 버리지 않았다.

한편 장공은 자기가 제후의 자리에 오르는데 공을 세운 최저와 경봉을 모두 상경에 벼슬을 내려 두 사람이 같이 국정을 돌보게 하고 있었다. 장공은 시간이 있을 때마다 그들의 저택으로 행차하여 술을 마시며 즐기다가 어떤 때는 칼춤을 추게 하거나 아니면 천막을 치게 하여 활쏘기 시합을 벌려 같이 즐기면서 군신간의 구별을 하나도 두지 않았다.

한편 제나라의 우경(右卿) 최저는 전처로부터 아들 둘을 낳았는데 그 이름을 성(成)과 강(疆)이라 했다. 두 아들이 몇 살도 먹기 전에 그 처가 죽자 최저는 다시 동곽씨(東郭氏)의 딸을 데려와 부인으로 삼았다. 그녀는 동곽언(東郭偃)의 누이 동생이었는데 처녀 때 당공(棠公)에게 시집을 가서 그의 처가 되었다. 그래서 그녀를 당강(棠姜)이라 불렀다. 당강은 당공(棠公)과의 사이에서 아들 하나를 낳아 그 이름을 당무구(棠无咎)라 했다. 당강은 그 용모가 매우 아름다운 절세미녀였다. 최저는 당공이 죽었을 때 문상을 갔다가 당강의 용모를 훔쳐보고는, 동곽언에게 간청하기도 하고 설득하기도 하여 그녀를 취하여 부인으로 삼았다. 이어서 최저는 당강과의 사이에서 아들을 하나 낳아 이름을 명(明)이라 했다. 최저가 당강을 사랑한 나머지 당강의 오라비인 동곽언과 당무구를 불러 최씨 집안의 가신으로 쓰면서 최명을 뒤에서 돌보게 했다. 그리고 최저는 당강에게 약속했다.

「명이 장성하면 내가 마땅히 우리 최씨 집안의 적자로 세워 주리다!」

이 말로 인하여 일어나는 최씨 집안의 참화는 후일의 일이다.

한편 제장공이 어느 날 최저의 집에서 술을 마시게 되었다. 최저가 당강을 불러 술시중을 들게 하였다. 당강의 미색에 혹한 장공이 즉시 동곽언에게 많은 선물을 주어 그의 사모한다는 뜻을 당강에게 전하게 했다. 두 사람은 최저의 눈을 피해 기회를 엿보다가 결국은 사통하게 되었다. 장공과 당강이 몰래 만나 밀회를 즐기는 사이에 최저가 차츰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최저가 당강에게 장공과의 간통사실을 추궁하자 당강이 대답했다.

「정말로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그가 나라의 임금이라는 위세를 내세워 나를 위협하는데 어찌 감히 일개 아녀자로써 그에게 거역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런데 너는 어찌하여 그 사실을 나에게 고하지 않았소?」

「첩이 지은 죄를 스스로 알고 있어 감히 말씀을 드릴 수 없었습니다.」

최저가 한참동안 말이 없다가 이윽고 입을 열어 말했다.

「이 일은 부인의 뜻과는 무관한 일이라 하겠소.」

이후로 최저는 장공을 죽이겠다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5. 出從叛死 公私不背(출종반사 공사불배)

- 주인이 나라를 떠나자 떠났고 반역을 꾀하자 목숨을 끊어 주인과 나라에 동시에 신의를 지킨 신유 -

주영왕(周靈王) 22년, 기원전 550년에 오왕 제번(諸樊)이 당진에 혼인을 청해 왔다. 당진의 평공이 그의 딸을 제번에게 시집을 보내기로 허락했다. 그 소식을 접한 제장공이 최저를 불러 물었다.

「과인이 란영을 받아들여 그가 당진으로 귀국하는데 도와준다고 약속하였으나 아직 그런 기회를 얻지 못했소. 내가 들으니 곡옥의 수장 서오는 곧 란영과 사이가 매우 돈독하다고 하오. 오늘 내가 당진의 군주에게 오왕 제번에게 시집가는 그의 딸을 위해 잉첩(媵妾)④을 보낸다 하고 그 일행에 란영을 끼어 넣어 곡옥으로 보내 서오와 힘을 합쳐 당진의 도성을 기습하게 하려고 하는데 경은 이 일이 성공할 것 같소?」

최저는 자기의 처인 당강의 일로 장공에게 원한을 품고 있던 참에 마음속으로 한 가지 계교를 생각해 내었다. 장공으로 하여금 당진에 원수를 지게 만들어, 당진의 군주가 군사를 이끌고 제나라를 토벌하러 오게 되면, 그때 모든 죄를 장공에게 뒤집어씌워 살해하고, 당진에게 환심을 사려고 했다. 그날 란영을 보내 당진의 도성을 습격하게 하려는 장공의 계획은 바로 최저의 계교에 떨어지는 경우가 되었다. 최저가 즉시 장공에게 말했다.

「곡옥의 사람들이 비록 란씨들을 위해 힘을 다 하겠지만 워낙 그 수가 부족하여 당진을 이길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당진을 이기기 위해서는 주공께서 반드시 일군을 직접 이끄시고 란영의 뒤를 따라 그 뒤를 호응해야 합니다. 란영의 곡옥 입성이 확인되면 주공께서는 위나라를 정벌하신다고 여러 나라에 공포하시고 복양(濮陽)을 경유하여 북쪽의 신강성의 북쪽을 향해 진격하십시오. 란영은 남쪽에서 주공께서는 북쪽에서 신강성을 협공하신다면 당진은 필시 버티지 못하게 되어 주공께서는 대망의 패업을 이루실 수 있을 것입니다.」

장공이 마음속으로 최저의 말이 옳다고 생각하였다. 다시 란영을 불러 최저와 상의한 계획을 말했다. 란영이 듣고 매우 기뻐하여 그의 가신인 신유와 상의하였다. 신유가 말했다.

「저 신유는 주인을 따라 이곳 제나라에 온 이유는 저의 온 마음을 다해 충성을 바치기 위해서입니다. 또한 주인께서는 온 마음을 다해 주인의 주인이신 당진의 군주에게 충성을 바치고 있다고 생각해서 입니다.」

「당진의 군주가 나를 자기의 신하로 여기지 않는데 내가 어찌 그를 나의 주인으로 생각할 수 있겠소!」

「옛날 은나라의 주왕이 주문왕을 유리(羑里)⑤에 가두었을 때 문왕은 은나라와 함께 비록 천하를 삼분할 정도로 세력이 컸으나 이에 자만하지 않고 은나라를 섬겨 복종하였습니다. 당진의 군주는 란씨들이 나라에 끼친 공로를 생각하여 주인이신 장군을 죽이지 않고 나라 밖으로 쫓아내어 목숨을 부지할 수 있도록 은헤를 베풀었습니다. 지금 당진국의 백성들은 모두가 그 일을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습니다마는 일단 장군께서 당진의 군주에게 불충하게 되면 천지간에 몸 둘 곳을 찾지 못할 것입니다.」

란영이 신유의 간하는 말을 듣지 않았다. 신유가 눈물을 흘리며 다시 말했다.

「이번에 장군께서 출행하시면 필시 화를 면할 길이 없을 것입니다. 이 유가 죽음으로써 전송을 해 드리겠습니다.」

신유는 말을 마치자 허리에서 즉시 칼을 빼어 목을 찔러 죽었다. 사관이 이를 두고 시를 지어 신유의 충성을 노래했다.

란영이 나라 밖으로 나가자 뒤를 따랐으며

란영이 반하자 서슴없이 목을 찔러 죽었다.

공적으로는 군주에 등을 지지 않았고

사적으로도 그 주인을 배반하지 않았다.

아아, 충신 신유여!

당진의 의로운 선비로다!

盈出則從(영출즉종)

盈叛則死(영반즉사)

公不背君(공불배군)

私不背主(사불배주)

卓哉辛兪(탁재신유)

晉之義士(진지의사)

6. 潛入曲沃(곡옥잠입)

- 곡옥에 잠입하여 내란을 일으키는 란영 -

제나라 장공은 대부 석귀보(析歸父)에게 명해 그의 종녀 강씨를 당진의 군주에게 잉첩으로 바치라고 했다. 장공은 여러 대의 온거에 나누어 탄 종녀의 일행들 틈에 란영의 일행도 끼워 곡옥으로 보내려고 했다. 주작과 형괴가 란영을 따라가겠다고 장공에게 청했다. 장공은 그들이 당진으로 돌아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까 걱정하여 두 사람 대신에 식작과 곽최를 대신 가게 하면서 당부의 말을 하였다.

「란영 장군을 모시기를 나를 섬기듯이 하라!」

이윽고 종녀들 틈에 끼어 온거를 탄 그들의 일행이 곡옥성을 통과하게 되자 란영 등의 일행은 수레에서 내려 옷을 바꾸어 입고 곡옥의 성내로 잠입하였다. 밤이 되기를 기다려 곡옥의 성주 서오(胥午)의 문을 두드렸다. 서오가 깜짝 놀라 물었다.

「저의 작은 도련님께서는 이 밤중에 어인 일로 이렇게 저를 찾아오시게 되었습니까?」

「내가 긴히 할말이 있으니 밀실이 있으면 그곳으로 가서 말씀드리리다!」

서오가 란영을 집안으로 들어오게 하여 깊은 밀실로 안내하였다. 란영이 서오의 손을 잡으며 할 말을 못하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두 눈에서 눈물을 흘렸다. 서오가 보고 말했다.

「장군께서 일이 있으시면 서로 상의하면 될 일이지 그렇게 슬퍼만 하지 마십시오.」

란영이 즉시 눈물을 거두고 서오에게 말을 했다.

「내가 범씨와 조씨들의 모함을 받아 종사를 지키지 못하게 되었으나, 다행히 나에게 죄가 없음을 알게 된 제후가 이를 가엾게 여겨 나를 이곳까지 보내 주고 제나라의 본군은 뒤를 따르게 하셨소. 장군께서 만약 곡옥의 병사들을 동원하여 나와 힘을 합하여 신강성의 남쪽을 공격한다면 신강성 북쪽에서 대기하고 있던 제나라 병사들이 호응하여 우리를 도울 예정이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신강성으로 들어가 우리를 모함한 여러 종족들에게 원수를 갚아 내 마음에 응어리져 있는 한을 풀고 다시 당진의 군주를 받들어 제나라와 화평하게 지내도록 하겠소. 란씨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유일한 기회라 할 수 있소.」

「우리 당진의 세력은 바야흐로 강성해지고 있으며, 범(范), 조(趙), 지(智), 순(荀)씨 등 여러 종족들이 서로 화목하게 지내고 있는데 우리가 요행수만 믿고 거사를 했다가 일을 성사시키지 못하고 낭패만 당하여 스스로 역적의 누명만을 쓰게 되지나 않을까 걱정됩니다.」

「나에게 독융(督戎)이라는 장사가 있는데 그는 혼자서 가히 일군을 당할 수 있는 용장이오. 또한 식작과 곽최는 제나라의 뛰어난 장수이며, 우리 일족인 란락(欒樂), 란방(欒魴) 등도 장사에다 활쏘기에 능하오. 우리 공실의 세력이 비록 강성하다 하나 이 정도면 그렇게 두려운 상대는 아니H. 그리고 옛날에 내가 하군부수로 위강(魏絳)을 보좌할 때 그의 손자인 위서(魏舒)가 나에게 도움을 청한 일이 있었소. 그때 나는 마다 않고 그를 도와 준 적이 있었소. 그 일로 해서 위서는 나에게 감사하게 생각하고 항상 보답하려는 마음을 갖고 있는 중이오. 만약 내가 신강성 안에서 위씨들의 내응을 받아 도움을 받을 수만 있다면 이 일은 십중팔구 성사된 것이나 다름이 없소. 만에 하나 이 일이 성사가 되지 않아 내가 비록 죽는다 할지라도 후회는 하지 않겠소!」

「내일 날이 밝기를 기다려 성안의 인심이 어떠한지 살펴 본 후에 거사를 할 수 있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상론을 마친 서오가 란영 등의 일행을 깊숙한 밀실에 숨겨 두었다. 다음날 아침이 되자 서오가 지난밤 꿈에서 공태자(共太子) 신생(申生)을 봤다고 하면서 사당에 제사를 지낸 음식으로 잔치를 벌려 곡옥성의 관리들을 접대한다고 하면서 란영을 사당의 벽 뒤에 숨어 있게 하였다. 술잔이 서너 배 돌았을 때 서오가 곡옥성의 관리들에게 잠시 먹기를 중지하고 자기의 말을 들어보라고 말했다.

「공태자 신생님이 억울하게 죽은 일을 생각한다면 우리들이 어찌 이렇게 음악을 들으며 즐길 수 있겠는가?」

좌중의 사람들도 서오의 말에 한탄해 마지않았다. 서오가 다시 말했다.

「신자 된 자의 도리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 법이다. 근자에 이르러 몇 대에 걸쳐 나라에 큰공을 세운 란씨들을 조당의 여러 가문들이 공모하여 주군에게 참소한 끝에 나라 밖으로 쫓아냈다. 이것 역시 공태자가 당한 일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좌중의 관리들이 말했다.

「이 일로 인해 온 나라의 백성들이 불평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라 밖으로 추방당한 란씨의 어린 종주가 다시 귀국하여 가문을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서오가 대중을 향해 속마음을 떠보았다.

「만약 그 나이 어린 종주가 오늘 이곳에 있다면 그대들은 어쩔 생각인가?」

곡옥의 관리들이 일제히 말했다.

「만약 란씨의 종주를 다시 모실 수 있다면 우리들은 있는 힘을 다하여 그를 위하다가 비록 죽는다 할지라도 후회하지 않겠습니다.」

좌중의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며 흐느껴 울었다. 대중의 마음을 확인한 서오가 본마음을 들어냈다.

「여러분들은 너무 슬퍼하지 마시오! 란씨의 종주되시는 란영장군이 여기에 계시오!」

란영이 병풍 뒤에서 나와 좌중을 향해 인사를 올리자 자리에 앉아있던 여러 관리들도 일제히 바닥에 엎드려 절을 올렸다. 란영이 여러 사람들에게 자기가 당진으로 다시 들어온 뜻을 밝히면서 말했다.

「비록 제가 죽는다 해도 신강성에 다시 들어갈 수만 있다면 원이 없겠소!」

곡옥의 관리들이 기쁜 마음에 환호하면서 란영의 뒤를 따르고자 하였다. 그날 란영과 곡옥성의 성주 및 관리들은 마음껏 술을 마신 후에 자리를 파하였다. 다음날 란영이 밀서 한 통을 써서 봉한 후에 곡옥의 장사꾼을 시켜 신강성의 위서에게 보냈다. 범씨와 조씨들이 란씨들에게 너무 심하게 대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위서 역시 기 때문에 란영의 밀서를 받자 즉시 답신을 써서 보냈다.

「제가 성안에서 갑병을 모아 기다리고 있다가 곡옥의 병사들이 신강성에 당도하면 즉시 나가서 맞이하겠습니다.」

란영이 위서의 답신을 받아 보고 크게 기뻐하였다. 서오가 곡옥의 갑병들을 전부 소집하여 모두 220승에 달한 병력을 란영에게 주었다. 란씨 종족들 중 싸울 수 있는 사람은 모두 란영의 뒤를 따라 종군하고 노약자들은 모두 곡옥에 머물렀다. 독융은 선봉에, 식작과 란락은 우군에, 곽최와 란방은 좌군에 임명하여 각각의 부서을 정한 후에, 이윽고 날이 황혼 무렵에 이르자 군사들을 어둠 속에서 행군시켜 신강성을 불의에 습격하려고 했다. 곡옥과 신강성과는 거리는 단지 60여 리 밖에 되지 않아 하루 밤 만에 란영이 이끄는 군사들은 신강성에 당도하게 되었다. 란영이 이끄는 곡옥의 군사들은 신강성의 외곽을 둘러싸고 있던 성곽을 부수고 진입하여 곧바로 남문 앞에 이르렀다. 신강성 안의 백성들은 그때까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질풍과 같은 내리치는 번개는 소리도 내지 않는다’라는 말과 같은 형상이었다. 신강성의 지키던 군사들이 간신히 성문을 닫기는 했지만 수비병이 많지 않아 불과 한식경도 지나지 않아 독융에 의해 성문이 부셔졌다. 그 뒤를 이어 란영이 본대가 마치 무인지경으로 성안으로 입성하였다.

7. 智劫魏舒(지겁위서)

- 기지를 발휘하여 위서를 잡아 사직을 지킨 범앙(范鞅) -

그때 범개는 자기 집에서 아침을 먹고 상을 물리치고 있던 중이었다. 갑자기 악왕부(樂王鮒)가 숨을 헐떡거리며 범개에게 달려와 보고했다.

「란씨들이 곡옥의 군사들을 동원하여 남문을 통하여 성안으로 이미 입성하였습니다.」

범개가 크게 놀라 그의 아들 범앙을 불러 성안의 갑병들을 모아 란영의 반군을 막게 하였다. 악왕부가 범개에게 말했다.

「사태가 매우 급하게 되었습니다. 주공을 모시고 고궁(固宮)으로 피하시어 굳게만 지키신다면 반도들로부터 화를 면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 고궁이란 문공 때 여성(呂省)과 극예(郤芮)가 반란을 일으켜 궁궐을 불사르자 다시 궁궐의 동쪽에 지는 별궁의 이름이다. 후에 혹시라도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날 때를 대비하여 넓이가 사방 10리에 이르는 공간에 안에는 여러 채의 궁실과 루대를 짓고 많은 양식을 비축하여 성안의 군사들 중 윤번제로 3000명을 뽑아서 지키게 하고 있었다. 고궁 외곽에는 참호를 깊이 파고, 성벽은 여러 장(丈)에 달하게 높이 쌓아 극히 견고하게 지어 성안에 지은 성채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 연유로 고궁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

범개가 성안에서 란영에게 내응하는 자가 있을지 모른다고 걱정하자 악왕부가 듣고 말했다.

「여러 대부들은 모두 란씨들에게 원한을 갖고 있어 걱정하실 필요가 없겠고 단지 걱정되는 종족은 위씨들 뿐입니다. 만약 속히 군명을 받아 위서를 부르신다면 위씨들을 공실쪽으로 끌어 올 수 있을 것입니다.」

범개가 악앙부의 말이 옳다고 생각하여 즉시 그의 아들 범앙에게 군명을 받아 위서를 불러오라고 시키고는 한편으로는 자기는 평공을 모시고 고궁으로 피신하기 위해 종복들에게 수레를 빨리 마련하라고 재촉하였다. 악왕부가 다시 말했다.

「일이 어찌 될지 모르는 일이니 마땅히 아무도 몰래 일을 행하여야 합니다.」

그때 평공은 자기의 외가에 초상이 나서 상중에 있었다. 범개와 악왕부가 안에는 갑옷을 두르고, 겉에는 상복을 입고, 머리에는 질(絰)을 둘러 여자로 분장하고 궁중으로 들어가 평공에게 란영이 란을 일으켰다고 고했다. 범개는 즉시 평공을 모시고 고궁으로 들어갔다.

한편 위서의 집은 성의 북문 부근에 있었다. 범개의 명을 받은 범앙이 초거를 타고 쏜살같이 달려와서 보니 위서의 집 문앞에는 이미 병거와 군사들이 도열하고 있으면서 즉시라도 출동할 수 있는 채비를 갖추고 있었고 전투복으로 무장한 위서 역시 병거에 올라 장차 남쪽으로 달려가서 란영과 내응하려고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던 중이었다. 범앙이 수레에서 내려 급히 위서가 타고 있는 병거 앞으로 뛰어가서 외쳤다.

「란씨들이 반란을 일으켜 주공께서는 이미 고궁으로 몸을 피하셨습니다. 저의 부친과 여러 대신들은 모두 주군과 함께 계시면서 나로 하여금 장군을 모셔 오라고 이렇게 보냈습니다.」

위서가 대답도 미처 하기도 전에 범앙은 몸을 한번 솟구쳐 위서가 타고 있던 수레에 뛰어 올라 오른 손으로는 검을 들고 왼손으로는 위서의 허리띠를 붙들고는 위협을 하자 위서는 감히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범앙이 하자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범앙이 수레를 모는 어자에게 소리를 크게 하여 외쳤다.

「빨리 수레를 몰아라.」

어자가 물었다.

「어디로 가는 것입니까?」

범앙이 성난 목소리로 다시 소리쳤다.

「동쪽의 고궁으로 간다.」

이렇게 해서 위서가 란영과 호응하기 위해 소집한 병거와 보졸들을 모두 동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고궁으로 직행하였다.

<제 64회로 계속>

주석

①숙향(叔向) : 춘추 때 진(晉)나라의 정경이다. 희성(姬姓)에 양설(羊舌) 씨다. 이름은 힐(肹)이고 숙향(叔向)은 그의 자다. 봉읍이 지금의 산서성 홍동현(洪洞縣) 동남에 있었던 양(楊)에 있었기 때문에 양힐(楊肹)이라고도 한다. 진무공(晉武公)의 후예로 양설대부(羊舌大夫) 돌(突)의 손자이다. 진도공 만년에 사마후(司馬侯)의 천거로 사적(史籍)을 정리하는 관리가 되었다가 곧이어 도공의 세자였던 표(彪)의 사부가 되었다. 이어서 표가 도공의 뒤를 이어 군주의 자리에 오르자 상대부의 봉작에 태부가 되어 국정을 맡았다. 표가 진평공(晉平公)이다. 그는 군주를 모실 때는 동덕동심(同德同心)으로 일치단결해야 하며(比德以贊事) 무리를 지어 자기의 사익을 추구하면 안 된다고 했다. 현인을 존중하여 능력을 발휘하도록 했으며 결코 용모를 보고 취하지 않아 당세에 이름이 높았다. 기원전 552년 진평공 6년, 범선자(范宣子) 개(匃)가 그의 이복동생 양설호(羊舌虎)를 살해하고 그를 감옥에 가두었으나 기해(祁奚)의 노력으로 곧바로 풀려났다. 제나라의 재상 안영이 사신으로 당진에 와서 그와 함께 진과 제나라의 장래에 대해 논할 때 그는 " 당진의 공족들이 거의 멸족하여 머지않아 진나라의 국권은 육경들에게 넘어갈 것이다."라고 예언했다. 후에 그가 초나라에 사절로 가자 초영왕은 그를 붙잡아 억류시켜 노복으로 만들어 당진을 욕보이고자 했으나 당진의 국세를 두려워한 영왕이 그 계획을 중지하고 송환했다. 정나라의 자산(子産)이 나라의 백성들을 다스리기 위해 형법을 정리하여 형서(刑書)를 만들자 그는 편지를 써서 반대의 뜻을 전했다. " 백성들이 법을 알아 그로써 다투게 되면, 장차 예를 버리고 모든 일을 법에만 의지하려고 할 것이다." 진소공(晉昭公) 때 여러 번에 걸쳐 주(周)와 제(齊) 등의 나라에 사절로 왕래하면서 그 나라의 국정에 대한 자문에 응하여 각 나라로부터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 그의 동생 양설숙어(羊舌叔魚)가 뇌물을 받고 형옥의 일을 잘못 처리하여 그 일로 인해 살해되자 그는 수차에 걸쳐 숙어의 죄상을 열거하고 그의 시신을 길거리에 전시했다. 공자가 춘추를 편찬할 때 형벌로써 나라를 다스림에 혈육의 정에 구애받지 않았음은 옛날 성인들의 가르침을 잘 따른 행위라고 평했다. 진경공(晉頃公) 즉위 초에 죽었다.

②기읍(祁邑) : 지금의 산서성(山西省) 진중시(晉中市) 기현(祁縣)으로 태원시(太原市) 남 약 40키로에 있었던 고을이다.

③三世事其家, 則君之, 再世, 則主之, 事君以死, 事主以勤.

④잉첩(媵妾) : 중국 고대에 신분제도의 일부로 공녀나 귀족의 딸이 시집갈 때 몸종으로 데려가는 여자 시녀를 말한다. 잉첩의 신분은 일종의 노예로써 그 주인이 죽으면 같이 순장되었다. 남자의 경우는 잉신(媵臣)이다.

⑤유리(羑里) : 지금의 하남성 안양시 남 탕음현(湯陰縣) 부근으로 주문왕이 숭후(崇侯) 호의 참언을 받아 은나라의 마지막 왕 주왕에 의해 잡혀 연금된 곳. 주문왕은 이곳에 갇혀 있던 중에 주역에 사(辭)를 붙였다고 했다.

[평 설]

항상 중원의 패자가 되려는 뜻을 품고 있으면서 기회만을 노리고 있던 제장공은 이윽고 기원전 551년 당진국에 대한 공격을 결심했다. 그는 이미 패자의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서 창건한 역사들로만 이루어진 특수부대를 보유하고 있었다. 당시로서는 제장공이 창건한 특수부대는 매우 혁신적인 군제였다. 그러나 제장공이란 위인은 가슴속에 품은 뜻에 비해 지모가 너무 모자랐다. 그는 당시 제후국들 간에 진행되고 있는 국제형세를 정확히 읽을 수 있는 안목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본성이 무모한 그는 안영의 충간을 아랑곳하지 않고 당진과 제 두 나라의 국력은 그 우열을 가름하기 어려울 정도로 비슷하다고 오판했다. 또한 지니고 있는 포부에 비해 능력을 갖추지 못한 제장공은 당진국을 받들어 국가의 안전을 꾀하려고 하는 지혜도 없었다. 그래서 그는 오랫동안 유지되어 왔던 제진(齊晉) 간의 우호조약을 일거에 깨뜨리고 당진국의 망명객 란영(欒盈)과 그 일족을 받아들였다. 더욱이 제장공은 그 품행이 극도로 문란하여 당시 제나라의 상경이었던 최저(崔杼)의 아내와 간통을 저지르고 있었다. 이 일로 해서 최저는 마음속으로 장공을 시해하려는 뜻을 가슴 속에 품고 있었다. 또한 제장공은 란영이 총애하던 가신출신의 장사 두 명을 빼앗아 그의 특수부대에 편입시킴으로 해서 난영으로 하여금 불만을 품도록 만들었다.

국제정세에 대한 무지와 내부적인 모순을 안고 있던 상태에서 제장공은 란영을 파견하여 당진국을 기습하려는 계획을 최저와 의논했다. 이에 최저는 제장공의 뜻에 영합하여 그에게 제나라의 대군을 이끌고 란영의 뒤를 따라 친정을 하도록 권했다. 최저의 목적은 당진국으로 하여금 제나라에 대한 토벌군을 일으키게 하여 그 기회를 틈타 장공을 시해하려는 뜻에서였다.

란영은 가신출신의 역사 주작(州綽)과 형괴(刑蒯) 및 옛날 평음의 싸움에서 포로로 잡은 바 있던 제나라 특수부대 출신의 장사 식작(殖綽)과 곽최(郭最)를 데리고 당진국에 잠입하기 위해 길을 떠났다. 그들 네 사람은 모두 제장공의 특수부대에 속해있으면서 서로 사이가 좋지 않았다. 그 네 사람 사이의 다툼은 란영이 이끌게 되는 곡옥성 부대의 전투력을 저하시키는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다.

기원전 550년, 제장공은 란영 일행을 당진에 보내는 몸종 신분인 소위 잉첩(媵妾)으로 위장시켜 곡옥으로 잠입시켰다. 란영의 지휘 하에 란씨 종족들이 당진국의 내부에서 란을 일으키면 자기는 외부에서 호응하여 당진국을 공격하려고 했다. 《좌전》양공(襄公) 23년 조에 “당진의 군주가 그 딸을 오나라에 시집보내려고 하자 제나라 군주는 석귀보를 사자로 삼아 제나라 여인을 그 몸종으로 보냈다.”라는 기사가 있다. 당진국 군주의 딸을 오나라에 시집보내는 일에 제나라 종실의 여인을 몸종으로 바친 목적은 단지 난영과 특수부대의 장사들을 몸종으로 변장시켜 곡옥으로 잠입시키기 위해서였다. 란영의 일행은 장막으로 안을 가린 봉거(篷車)에 타고 몸종으로 보내는 여인들 틈에 섞여 당진국의 옛날 도성이었던 곡옥성에 잠입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그러한 계획도 모두 당진군에 의해 간파되고, 또한 란영이 데리고 간 장사들의 분전으로 당진국을 일시적으로 몰아부칠 수 있었으나 결국 제장공의 계획은 실패로 돌아가고 란영과 그의 일족은 멸족을 당하고 말았다.

후속부대를 이끌고 란영의 뒤를 따라 진군했다가 태행산록에 주둔하고 있었던 제장공은 란영과 그 일족을 멸한 당진국이 대군을 일으켜 진격해오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황망 중에 군사를 이끌고 후퇴했다. 이것이야 말로 닭 훔쳐 먹으려다 모이만 축낸 경우라 하겠다. 전쟁이라는 막중한 국가대사를 수행하면서 그저 요행수만을 바라며, 군사를 지휘하고 움직이는 데는 아무런 대책을 세우지 않았으니 그의 계획이 실패로 끝나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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