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국연의

 

   
 
춘추쟁패
1부1 제후굴기
2부2 관포지교
2부3 백리해
2부4 유랑공자
3부5 초장왕
3부6 이일대로
4부7 오자서
전국쟁웅
5부8 전국칠웅
6부9 합종연횡
7부10 진시황
초한축록
통일천하
홍곡지지
초한축록
토사구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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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05-11 12:03:356395 
제65회. 弑君專權(시군전권) 納主擅政(납주천정)
양승국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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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제65회 弑君轉權 兩世逐主(시군전권 양세축주)

군주를 시해하고 정권을 오로지한 제나라의 최저, 경봉과

대를 이어 군주를 쫓아낸 위나라의 대부 영식과 영희 부자

1. 偸情喪命(투정상명)

- 최저(崔杼)의 아내와 간통하다가 목숨을 잃은 제장공 -

주양왕 23년 기원전 549년 여름 5월에 거나라의 여비공이 화의를 맺기 위해 제나라의 임치성에 들어와 제장공을 알현했다. 그 1년 전 차우문에서의 싸움 끝에 여비공이 장공에게 항복하면서 대대손손 래조하여 조공을 바치기로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장공이 크게 기뻐하며 그를 위해 임치성의 북쪽 성곽 부근에 큰 잔치를 열게 했다. 그런데 최저의 최씨부도 역시 북곽(北郭)에 있었다. 최저는 장공이 잔치를 북곽에 벌린 이유를 간파하고 그를 살해할 마음을 품게 되었다. 제나라의 모든 대신들은 모두 장공이 벌린 잔치에 참석했지만, 최저만은 자기는 몸살이 걸려 도저히 몸을 운신할 수 없다고 거짓으로 고하여 참석하지 않았다. 최저가 아무도 몰래 심복 한 사람을 환관 고수(賈竪)에게 보내어 무슨 소식이 있나 알아보게 하였다. 고수가 최저의 심복을 통하여 장공의 동정을 알려 왔다.

「주공은 잔치가 파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궁궐로 돌아가는 길에 상국의 집에 들려 상국을 문병하겠다고 하십니다.」

최저가 듣고 웃으면서 말했다.

「주공께서 나의 몸을 어찌 이다지도 끔찍하게 걱정해 준단 말인가? 그것은 바로 나의 문병을 핑계로 당강(棠姜)과 염치없는 짓을 즐기기 위한 수작이다.」

최저가 즉시 그의 처 당강을 불러 당부했다.

「내가 오늘 그 무도혼군 놈을 죽이려고 하오! 당신이 만약 내 계획을 따라만 준다면, 나는 당신의 더러운 짓에 대해 더 이상 왈가왈부 하지 않고 그대의 소생인 명(明)을 약속대로 나의 적자로 삼겠소! 그러나 당신이 내 말을 따르지 않겠다면 나는 먼저 당신 모자의 목을 베겠소!」

당강이 듣고 말했다.

「아녀자는 마땅히 그 부군의 뜻에 따라야 하는 법이라 부군의 명이 있는데 어찌 감히 따르지 않겠습니까?」

최저가 즉시 당무구를 시켜 갑사 백 명을 불러와 내실의 벽 뒤에 숨기고 다시 최성과 최강 형제에게도 무사들을 이끌고 대문 안에서, 동곽언은 대문 밖에 각각 매복시켰다. 모두에게 각각의 임무를 나누어 정해주고 일단 종소리가 나면 그것을 신호로 삼아 일제히 일어나 장공을 공격하도록 했다. 만반의 준비를 끝낸 최저는 심복을 고수에게 보내 장공이 자기 집으로 출발하면 반드시 잊지 말고 이러저러하라고 전했다.

한편 장공은 당강의 아름다움을 사랑하게 되어 침식도 잊으며 마음 속으로 오매불망했으나 최저가 당강의 단속을 엄하게 한 관계로 근래에 들어서는 만날 수가 없었다. 그날 최저가 병으로 연회에 참석하지 않게 되자 당강을 만날 수 있다는 마음을 갖게 된 장공은 온통 당강 생각뿐이었다. 그러나 손님을 접대하는 연회의 예절을 따라야 했던 장공은 어쩔 수 없이 연회가 끝나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드디어 서둘러 연회를 끝낸 장공은 최저의 병을 문안한다는 핑계를 대고 어가를 최저의 저택으로 몰게 했다. 이윽고 장공의 일행이 최저의 집에 당도하자 그 집의 문지기가 대문을 열고 나오더니 장공에게 거짓으로 고했다.

「상국의 병이 매우 침중하여 방금 약을 드시고 잠자리에 드셨습니다.」

「상국은 지금 어느 방에 계시느냐?」

문지기가 다시 대답했다.

「바깥 사랑채에 누워 계십니다.」

장공이 기뻐하며 최저의 집안으로 들어오더니 곧바로 내실로 직행했다. 그때 주작(州綽), 가거(賈擧), 공손오(公孫傲,) 루인(僂堙) 등 네 명의 호위 장수들이 장공을 따라 최저의 집 내당 안으로 따라 들어가려고 했다. 고수가 뒤따라 온 장수들을 보고 말했다.

「주군이 무엇을 위해 이번 행차를 하시는지 여러 장군님들은 익히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모두들 여기서 기다리시되 시끄럽게 떠들어 상국을 놀라게 하지 마십시오.」

주작 등 네 명의 장수들은 가수의 말이 옳다고 생각하여 모두들 내당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문 밖에서 멈추어 섰다. 그러나 가거만이 유독 밖에서 기다리려고 하지 않으면서 말했다.

「한 사람 정도 따라 들어간다고 해서 그리 해가 될 것은 없지 않겠소?」

그래서 가거는 혼자 최저의 집 내당 안으로 들어 갈 수 있었다. 고수가 내당으로 통하는 문을 열고 들어가자 문지기가 대문을 닫은 후에 빗장을 질렀다. 내실로 들어선 장공을 예쁘게 화장을 하고 기다리고 있던 당강이 방문 밖으로 나와서 맞이했다. 두 사람이 미처 입을 열어 인사의 말도 나누기도 전에 시녀가 달려와 고했다.

「상국께서 갈증이 나시어 뜨거운 꿀물을 찾고 계십니다.」

당강이 장공에게 말했다.

「첩이 잠깐 꿀탕을 상국에게 가져다주고 바로 돌아오겠습니다.」

당강이 내실 곁에 붙어 있는 방으로 들어가더니 시녀와 같이 한가로이 사라졌다. 장공이 내당의 란간에 의지한 채 돌아오기를 기다렸으나 당강은 좀처럼 오지 않았다. 장공은 당강을 기다리다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깊고 그윽한 방이여,

미인이 노는 곳이로다!

깊고 깊은 방이여,

미인을 만날 수 있는 곳이로다!

미인이 보이지 않음이여,

울적한 마음 둘 곳이 없도다!

室之幽兮(실지유혜)

美所游兮(미소유혜)

室之邃兮(실지수혜)

美所會兮(미소회혜)

不見美兮(불견미혜)

懮心胡底兮(우심호저혜)

장공이 노래 부르기를 다하자 내당으로 통하는 복도에서 도검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 왔다. 장공이 의아하여 자기와 가까운 곳에 대기하고 있다고 생각되는 고수의 이름을 부르며 물었다.

「이곳에 어찌하여 군사들이 있는가?」

그러나 아무도 대답하는 사람이 없자, 고수의 이름을 큰 소리로 다시 불렀으나 역시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그 순간 내실의 좌우에 매복하고 있던 갑사들이 일제히 일어나 장공에게 달려들었다. 장공이 크게 놀라 그때서야 사단이 난 줄 알고 다급하게 갑사들을 피해 자기가 머물고 있던 난간 뒤 쪽으로 나있는 창문을 통해 달아나려고 했다. 그러나 내당의 모든 창문들은 굳게 닫혀 있었다. 원래 힘이 장사인 장공은 창문을 부수고 내당의 이층으로 올라갔다. 당무구가 갑사들을 이끌고 이층으로 쫓아 올라가 장공을 겹겹이 포위한 후에 목소리를 높여 외쳤다.

「상국의 명령이니 빨리 저 음탕한 도적놈을 잡아라!」

장공이 란간에 기대어 무구를 향하여 말했다.

「나는 너희들의 임금이다. 나를 갈 수 있도록 하라!」

당무구가 나서서 응대했다.

「상국의 명이라 저도 어쩔 수 없는 일이오!」

「상국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원컨대, 상국에게 맹세하겠노라! 내가 이곳에서 나가더라도 절대 해치지 않겠다는 말을 상국에게 전하라!」

「상국은 몸이 아파 이곳에 올 수 없소!」

「과인이 스스로의 죄를 알고 있도다! 그렇다면 내가 태묘에 가서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하니, 나의 뜻을 상국에 전해 나를 그곳까지 가게 해주면 어떻겠는가?」

「우리들은 단지 한 사람의 음탕한 도적놈만을 알뿐이지 임금이 누구인지 알지 못하오. 임금이 그의 죄를 이미 알고 있다면 당당하게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지 시정의 필부처럼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시면 되겠습니까?」

장공이 할 수 없이 이층의 창문을 통하여 밑으로 뛰어 내렸다. 그는 다시 화단으로 올라가서 내당을 둘러싸고 있는 담장을 뛰어 넘어 도망치려고 하였다. 무구가 도망치고 있던 장공의 등을 향하여 활을 쏘았다. 화살이 장공의 왼쪽 허벅지에 맞아 박히자 장공은 담장 위에서 굴러서 밑으로 떨어졌다. 갑사들이 장공에게 일제히 달려들어 칼로 난도질해서 죽였다. 무구가 즉시 사람을 시켜 종을 울리게 하였다. 그때는 이미 해가 져서 어두운 황혼 무렵이 되었다. 가거가 내당의 한쪽 구석에 있다가 무슨 소리인가를 들었다고 느낀 순간 갑자기 고수가 손에는 촛불을 들고 내실로 통하는 문을 열고 나오면서 그를 향해 말했다.

「내실에 도적이 있어 주공께서 장군을 부르고 있습니다. 장군은 주공에게 가 보도록 하십시오. 저는 주작(州綽)장군과 그 일행에게 이 일을 알려야 되겠습니다.」

「촛불을 나에게 주시고 가시오.」

고수가 촛불을 가거에게 건너다가 일부러 실수하는 척하고 땅에 떨어뜨리자 불이 꺼졌다. 가거가 검을 손에 들고 길을 더듬어 내실로 통하는 중문으로 들어서자 기다리고 있던 올가미에 발이 걸려 땅에 넘어져 버렸다. 그러자 문 옆에서 매복하고 있던 최강이 갑사를 몰고 뛰어나와 가거를 칼로 찔러 죽였다. 그때 주작 등의 호위무사들은 내당 문 밖에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에 집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서 동곽언이 대문 밖으로 나오더니 그들과 사귀고 싶다고 말하면서 주작 등의 호위무사들을 행랑채로 초대했다. 사람을 시켜 촛불을 키고 술과 고기를 내온 동곽언은 장사들에게 칼을 풀어놓고 마음껏 먹고 마시기를 권했다. 그 밖의 장공을 따라나선 종자들도 모두 술을 내어 마시게 했음은 물론이다. 술이 몇 순 배 돌아 좌중이 거나해 졌을 때 갑자기 최저의 집 안쪽에서 종이 울렸다. 주작이 무슨 종소리냐고 묻자 동곽언이 대답했다.

「주공께서 술을 드시고 계시다는 신호입니다.」

주작이 미심쩍어 하면서 물었다.

「상국이 들으면 좋아하겠습니까?」

「상국은 병이 중한데 누가 주공과 부인을 시기한단 말입니까?」

잠시 후 다시 한 번 더 종이 울리자 동곽언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제가 안으로 들어가 살펴봐야겠습니다.」

동곽언이 방안에서 나가자마자 밖에 잠복하고 있던 갑사들이 모두 일어나 방안으로 밀어 닥쳤다. 주작 등은 급히 병기를 찾았으나 동곽언이 미리 사람을 시켜 훔쳐내도록 시킨 줄 모르고 있었다. 주작은 자기의 무기가 도난당했다는 사실을 알고서 대노하여 주위를 살핀 끝에 문 앞에 수레를 딛고 타기 위해 가져다 논 섬돌을 발견했다. 주작이 섬돌을 두 손으로 들더니 갑사들을 향해 던졌다. 그때 공교롭게도 주작이 던진 섬돌은 그의 앞으로 달아나고 있던 루인에게 잘못 맞았다. 루인은 주작이 던진 섬돌에 맞아 한쪽 다리가 부러져 더 이상 도망칠 수 없게 되었다. 공손오는 말을 매 두는 기둥을 뽑아 춤을 추듯이 휘둘렀다. 그 바람에 다수의 갑사들이 상했다. 장공을 따라 나섰던 수행원들도 모두 횃불을 뽑아 들고 갑사들에게 대항했다. 갑사들 중 수염과 머리털이 모두 타 버린 사람도 있었다. 그때 갑자기 대문이 활짝 열리더니 최성과 최강이 이끌던 또 다른 갑사들이 집안에서 쏟아져 나왔다. 공손오가 맨손으로 최성에게 달려들어 붙잡아 그의 어깨뼈를 부러뜨렸다. 그러는 사이에 최강이 자루가 긴 과를 휘둘러 공손오와 루인을 함께 찔러 죽였다. 그 와중에 갑사가 들고 있던 극을 빼앗은 주작이 다시 싸움터에 돌아와 대항하려고 하자 동곽언이 보고 큰 소리로 외쳤다.

「어리석은 임금이 남의 부인과 간음하여 무도하기가 그지없어 우리가 이미 죽여 버렸다. 여러분들과는 상관이 없는 일인데 어찌하여 몸을 간수하여 새로운 임금을 모시려 하지 않는가?」

주작이 듣고 극을 땅에 던져 버리며 말했다.

「내가 나그네가 되어 망명해 온 사람인데 제후로부터 나를 알아주는 은혜를 입었다. 그러나 오늘 내가 힘도 제대로 쓰지도 못하고 오히려 동료인 루인만 해치고 말았다. 이것은 아마도 하늘의 뜻인가 한다! 내 마땅히 이 한 목숨을 바쳐 제후의 은총에 보답코자 한다. 내가 어찌 구차하게 목숨을 구걸하여 제와 당진 사람들에게 웃음거리가 될 수 있을 소냐?」

주작이 말을 마치자 돌담장이 있는 곳으로 달려가서 머리를 서너 차례 부딪치자 돌담이 깨져 나가면서 주작의 머리도 깨져 죽었다. 장공이 이미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 병사(邴師)는 조문으로 달려가 문 밖에서 스스로 목을 찔러 자결했다. 봉구(封具)는 최저의 집에서 무사히 도망치는데 성공했으나 이어서 장공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자기 집에서 목을 매달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또한 탁보(鐸父)와 양윤(襄尹)은 서로 약속하여 장공의 시신에 곡을 하러 가다가, 중도에 가거 등의 호위 장수들이 모두 죽었다는 소식을 듣더니 곧바로 두 사람 모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염옹이 시를 지어 논했다.

모두가 용력이 절륜한 범과 용 같은 장수들인데

임금의 은총에 보답하기 위해 목숨을 초개처럼 버렸다.

사사로운 은혜를 단지 사사로이 갚을 뿐이었으니

어찌 순사한 대신들이 없었다고 비난하겠는가?

似虎如龍勇絶倫(사호여용호절륜)

因懷君寵命輕塵(인회군총명경진)

私恩只許私恩報(사은지허사은보)

殉難何曾有大臣(순난하증유대신)

이때 장공의 호위무사 중의 일원이었던 왕하가 동료 노포계(盧蒲癸)를 찾아와 자기들도 장공의 뒤를 따라 같이 죽자고 하였다. 노포계가 말했다.

「우리가 죽는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차라리 도망가서 후사를 도모하는 편이 어떻습니까? 다행히 우리들 중 한 사람이 주군의 원수를 갚아 나라를 바로 잡게 되거든 남은 사람을 이끌어 주기로 합시다.」

왕하가 찬성했다.

「청컨대, 우리 둘이 하늘에 대고 맹세합시다」

둘이서 맹세를 하고 왕하는 즉시 도망쳐서 거(莒)나라로 몸을 피했다. 노포계도 어디론가 도망치려고 하면서 그의 동생 노포별(盧蒲嫳)에게 말했다.

「주군이 용작(勇爵)이라는 작위를 만들어 나를 자기의 호위대의 일원으로 삼았다. 나도 그 은혜를 입어 주군과 같이 죽을 수도 있으나 그것은 주군을 위해서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내가 나라 밖으로 도망치게 되면 너는 최저나 경봉을 찾아가 그들의 가신이 되어 반드시 나를 귀국시키도록 하라. 내가 돌아와 반드시 주군의 원수를 갚고야 말겠다. 일을 이룰 수만 있다면 내가 비록 목숨을 잃는다 해도 그리 헛된 죽음은 안 될 것이다.」

노포별이 그렇게 하겠다고 그의 형인 노포계에게 약속했다. 노포계는 즉시 제나라를 빠져나가 당진으로 도망쳐 몸을 숨겼다. 노포별은 노포계와 헤어진 뒤에 즉시 경봉을 찾아가 그를 받들겠다고 했다. 경봉은 노포별을 받아들여 그의 가신으로 삼았다. 신선우(申鮮虞)는 초나라로 도망쳤다가 나중에 초나라의 우윤(右尹)이 되었다.

2. 大智大勇(대지대용)

- 큰 지혜와 용기를 겸비한 안영(晏嬰) -

이윽고 제나라의 대부들은 최저가 란을 일으켜 장공을 시해했다는 사실을 모두 알게 되었다. 그들은 모두가 문을 닫아걸고 별도의 소식이 오기만을 기다리기만 했을 뿐, 아무도 감히 장공의 시신을 돌보러 가지 않았다. 오로지 안영(晏嬰) 한 사람만이 최저의 집을 찾아가 장공이 죽어 있는 방으로 들어가서 시신의 허벅지를 붙들고 방성대곡하였다. 그리고 일어나더니 허공으로 세 번 껑충껑충 뛰어 죽은 군주에 대한 상례를 행한 후에 빈소에서 나왔다. 이것은 그 당시 군주가 죽었을 때 신하들이 조상을 하는 방법으로써 안영은 절차에 따라 장공의 죽음에 대해 정식으로 조상을 행했음이다. 당무구가 보고 말했다.

「안영을 죽여야만 백성들의 비난을 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사람은 어진 이름으로 백성들의 존경을 받고 있는 제나라의 대현(大賢)이다. 그를 만약 죽인다면 백성들의 마음을 잃을 뿐이다.」

안영이 최저의 집에서 나와 진수무(陳須無)를 찾아가 말했다.

「어찌하여 대신들이 의논하여 새로운 군주를 세우려고 하지 않소?」

「이 나라의 수신(守臣)으로는 고지(高止)와 국하(國夏)가 있고 권신(權臣)으로는 최저와 경봉이 있는데 이 수무가 무슨 힘이 있어 일국의 군주에 대해 왈가왈부 할 수 있겠습니까?」

안영이 두 말하지 않고 물러가자 진수무가 혼자말로 한탄하며 말했다.

「역적 놈들이 조당을 차지하고 있으니 내가 어찌 그들과 같이 함께 살 수 있겠는가?」

그는 즉시 가복들이 준비한 수레를 타고 송나라로 달아나 버렸다. 한편 진수무와 헤어진 안영은 다시 고지와 국하를 각각 찾아가 만나 새로운 군주를 새우는 일에 대해 상의하고자 했으나 두 사람도 역시 사양하면서 말했다.

「최저가 장차 조당에 나타날 것이고 한편 경봉도 같은 편이니 우리가 주장한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지 않소?」

안영이 탄식하고 돌아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경봉이 그의 아들 경사(慶舍)를 시켜 장공이 총애하던 잔당들을 한 사람도 빠짐없이 잡아다가 죽이거나 추방하거나 해서 씨를 말려 버렸다. 그런 다음 수레를 최저에게 보내어 조당으로 모셔오도록 했다. 조당에 나온 최저는 고지와 국하를 불러오게 하여 새로운 군주를 세우는 일을 같이 의논하게 하였다. 고지와 국하는 사양하고 최저와 경봉에게 그 일을 미루었다. 경봉은 다시 최저에게 양보했다. 최저가 말했다.

「영공의 아들에 저구(杵臼)라는 분이 계시는데 이미 장성하셨습니다. 저구공자의 모친은 노나라 대부 숙손교여(叔孫僑如)의 딸이라 만일 우리가 저구공자를 군주로 세우면 노나라와의 관계를 호전시킬 수 있습니다.」

조당의 중신들은 최저의 말에 그저「예, 예」하며 말할 수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공자저구를 모셔와 제나라의 군주로 세웠다. 이가 곧 제경공(齊景公)이다. 그러나 그때 경공의 나이는 아직 어렸다. 최저는 스스로 우상이 되고 경봉은 좌상이 되었다. 최저는 군신들을 태공의 묘에 모이게 한 후에 희생을 잡아 이마에 피를 바르는 삽혈의 의식을 행하면서 맹세의 말을 했다.

「여기 모인 군신들 중에 이 최저 경봉과 뜻을 같이하지 않는 자가 있다면 하늘에 떠 있는 저 태양이 용서하지 않으리라!」

경봉이 최저의 뒤를 이어 맹세를 했고 계속해서 고지와 국하가 그 뒤를 따라 그 맹세를 했다. 군신들이 순서대로 나가서 맹세를 하다가 이윽고 안영의 차례가 되었다. 안영은 하늘을 쳐다보며 큰 소리로 외쳤다.

「여러분들은 주군에게 능히 충성을 다 하여 사직을 위해 힘써야 하되, 만일 여러분들 중 주군에게 충성하고자 하는 이 안영과 다른 마음을 갖고 있는 자가 있다면 하늘에 계시는 상제께서 용서치 않으리라!」

최저와 경봉의 얼굴색이 변하였다. 고지와 국하가 보고 말을 돌렸다.

「두 분 상국께서 행한 오늘 일은 정히 주군에게 충성스러운 일이고 사직을 위해 다행스러운 일이오!」

고지와 국하 두 사람의 말에 최저와 경봉의 굳어졌던 얼굴이 밝아졌다. 그때 거나라의 여비공이 아직 돌아가지 않고 제나라에 있었다. 최저와 경봉은 여비공을 불러와 경공 앞에서 맹세를 시켰다. 여비공은 그 즉시 도망치듯 거나라로 돌아갔다. 최저는 이어 당무구에게 명하여 주작과 가거 등의 시신을 거두어 납관을 한 후에 장공과 같이 임치성의 북쪽 성곽 근처에 장사 지내도록 했다. 그는 장공의 장사를 지내면서 살아 있는 사람은 물론이고 무기나 갑옷 같은 것을 포함하여 아무 것도 같이 부장(陪葬)①하지 못하게 하면서 말했다.

「그들이 지하에까지 가서도 그 힘을 자랑할까 걱정되어서이다!」

3. 據事直書 太史之職(거사직서 태사지직)

- 사실에 입각하여 사서를 쓰는 일은 사관들의 직분이다. -

최저가 태사백(太史伯)에게 명하여 장공이 학질에 걸려서 죽었다고 사서(史書)에 쓰도록 하였다. 태사백이 듣지 않고 목간에 다음과 같이 썼다.

「주양왕 24년 여름 5월 을해(乙亥) 일에 최저가 그의 군주인 광(光)을 시해했다.」

주양왕 24년은 기원전 548년이다. 최저가 목간의 기사를 보고 대노하여 태사백을 죽였다. 태사백에게는 제나라 사관(史館)에서 같이 근무하고 있는 동생이 셋이 있었는데 이름이 각각 중(仲), 숙(叔), 계(季)라 했다. 중이 다시 사서에 백이 기록한 기사와 똑같이 써 넣었다. 최저가 다시 중을 죽였다. 숙도 다시 그의 형들과 같이 썼다. 최저가 숙도 죽였다. 계가 다시 자기 세 형들이 쓴 것과 똑같이 쓰자 최저가 목간을 잡고서 계에게 말했다.

「너의 세 형들이 이 목간의 글자 몇 자 때문에 모두 죽었다. 이제 너 혼자 남았는데 어찌 너라고 해서 목숨이 아깝지 않겠느냐? 만약 네가 그 구절을 바꾸어 쓴다면 내 너를 용서하여 주겠다.」

계가 듣고 대답했다.

「있는 사실을 그대로 쓰는 일은 태사들의 직분이요. 그 직분을 잃고 목숨을 구하느니 차라리 죽느니만 못한 일이오. 옛날 당진의 조천(趙穿)이 그의 군주인 영공을 시해하자 태사 동호(董狐)가 조돈이 당시 정경으로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역적을 토벌하지 않자 사서에 ‘조돈이 그의 군주 이고(夷皐)를 죽였다.’라고 썼었소. 조돈은 개의치 않게 생각하고 동호를 태사의 직에서 폐하지 않았소. 내가 비록 쓰지 않는다 해도 세상의 어느 곳에는 필시 이를 바르게 쓰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오. 그 일을 쓰지 않는다 해서 상국의 잘못이 덮어지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식자들에게 웃음거리만 될 뿐이오. 내가 죽음을 그다지 좋아한다고는 할 수 없으나 모든 것은 상국의 생각에 달린 일이니 알아서 하시오!」

최저가 한탄하면서 말했다.

「내가 사직이 망하게 되어 걱정한 나머지 일이 이미 이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비록 직필(直筆)로서 그 일을 기록한다 할지라도 사람들은 나를 이해 할 것이다.」

최저는 즉시 목간을 던져서 계에게 돌려줬다. 계가 목간을 들고서 물러갔다. 계가 태사들이 근무하는 사관에 당도하자 남사씨(南史氏)가 당도해 기다리고 있었다. 계가 남사씨에게 무엇 때문에 왔는 지를 물었다. 남사씨가 대답했다.

「내가 들으니 그대 형제들이 모두 죽으면 금년 5월에 일어난 시해 사건을 기록할 사람이 없지나 않을까 걱정하여 내가 그 일을 대신 기록하려고 이렇게 왔소!」

그러자 계는 자기가 갖고 있던 목간을 남사씨에게 보여줬다. 남사씨가 보고 인사를 하고 물러갔다. 염옹(髥翁)이 사서를 읽다가 이 대목에 이르자 감탄하여 칭송하는 글을 지었다.

조정의 기강이 해이해지니

란신들이 날뛰는도다

부월은 들지 않았으나

붓 한 자루로 죽였다.

朝綱紐解(조강유해)

亂臣接迹(란신접적)

斧鉞不可(부월불가)

誅之以筆(주지이필)

죽음을 두려워했음이 아니라

사관으로써의 직분을 잃을까 걱정했네

남사씨도 같은 마음으로 따르려고 했으니

누가 그들을 막을 수 있었겠는가?

不畏身死(불외신사)

而畏溺職(이외익직)

南史同心(남사동심)

有遂無格(유수무격)

청천 하늘의 해는 밝고 밝은데

간웅은 넋을 빼앗겼다.

아아 슬프도다, 아첨배들이여!

이 사서를 읽고 부끄러워할지어다.

皎日靑天(교일청천)

奸雄奪魄(간웅탈백)

彼哉諛語(피재유어)

羞此史冊(수차사책)

최저가 태사들의 글쓰는 필법을 두려워하여 시군의 죄를 고수에게 뒤집어 씌워 죽였다. 그해 같은 달에 당진의 평공은 나라 안의 홍수가 어느 정도 빠지자 대군을 일으키고 동시에 제후들을 이의(夷儀)에 대대적으로 소집하여 연합군을 결성하여 제나라를 정벌하려고 했다. 최저가 좌상 경봉을 사자로 보내 장공의 죽음과 신군의 즉위를 당진에 고했다.

「저희 제나라 군신들은 대국이 죄를 물어 죽임을 당하고 사직이 끊길까 두려워하여 이미 대국을 대신하여 무도혼군을 죽이고 노희(魯姬)의 소생인 신군 저구를 세웠습니다. 원컨대 옛날의 일을 뉘우치고 상국을 다시 섬겨 예전처럼 우호관계를 유지하고자 합니다. 또한 지난번 혼군이 침입하여 빼앗은 조가의 땅을 옛날처럼 상국에 돌려 드리며, 더하여 우리 제나라의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던 보기들 약간과 그리고 얼마간의 악기를 바칩니다.」

최저는 다른 나라 모든 제후들에게도 역시 뇌물을 바쳐 그들의 환심을 샀다. 평공이 크게 기뻐하여 군사를 물리쳤다. 중원의 제후들은 모두 해산하여 각기 자기 나라로 돌아갔다. 이후로 당진과 제나라는 다시 평화를 유지했다.

그때 당진에서 도망쳐 위나라로 들어가 살고 있던 식작은 주작(州綽)과 형괴(邢蒯)가 모두 죽었다는 소문을 듣고 다시 제나라에 돌아갔다. 한편 손림보에게 쫓겨난 위나라의 헌공(獻公) 간(衎)도 제나라로 망명한 후에 당시에는 래성(萊城)에 머물고 있었다. 그는 평소에 식작의 용력에 대한 소문을 들어 알고 있었다. 식작이 제나라에 돌아왔다는 소식을 들은 위헌공은 공손정(公孫丁)에게 많은 폐백을 주어 불러오게 했다. 식작은 부름에 응하여 이후로 헌공을 받들게 되었다.

그해 즉 주양왕 24년에 오왕 제번이 초나라를 정벌하러 가다가 초나라의 변경 고을인 소(巢)②땅을 지나가게 되었다. 제번이 지나치지 않고 소성을 공격했다. 소 땅의 초나라 수장 우신(牛臣)이 소성의 담장 밑에서 몸을 숨기고 있다가 지나가는 제번을 향하여 화살을 쏘았다. 제번은 그 화살에 맞아 죽고 말았다. 오나라의 군신들은 수몽이 죽을 때 남긴 유언을 지켜 제번의 동생 여제(餘祭)를 왕으로 세웠다. 여제가 오왕의 자리에 오른 후에 말했다.

「소 땅에서 적의 화살을 맞고 죽은 나의 형님은 선왕의 유언에 따라 형제상속으로 왕위를 하루라도 빨리 계찰(季札)에 물려주기 위해 몸을 돌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날 밤 여제가 하늘에 기도를 드리면서 그 역시 빨리 죽게 해 달라고 빌었다. 좌우에 있던 측근들이 말했다.

「사람이라면 모두가 오래 살기를 원합니다. 대왕께서는 오히려 빨리 죽게 해 달라고 스스로 하늘에 기도를 드리니 그것은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는 같지 않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여제가 대답했다.

「옛날 우리들의 선조인 태왕(太王)③께서 막내인 계력(季歷)을 세우기 위해 그 위의 형들인 태백(太伯)과 우중(虞仲)을 폐한 끝에 결국은 대업을 이루게 되었다. 오늘 우리 4형제가 순서에 따라 서로 왕위를 전하고 있는데 만약에 모두가 명대로 살고 나서 죽는다면 계찰의 차례가 될 때에는 이미 늙어 소용이 없게 되지 않겠는가? 그래서 내가 빨리 죽게 해 달라고 하늘에 기도했다.」

4. 양세축주(兩世逐主)

- 대를 이어 그 군주를 쫓아낸 위나라의 대부 영식(寧殖)과 영희(寧喜) 부자 -

한편 위나라 대부 손림보와 영식은 그들의 군주인 헌공을 쫓아내고 그의 동생 표(剽)를 새로운 군주로 세웠다. 이가 위상공(衛殤公)이다. 그리고 얼마 후에 영식이 병이 들어 위독하게 되자 그의 아들 영희(寧喜)를 불러 유언했다.

「영씨들은 장공과 무공 이래 대를 이어 위나라에 충성을 바쳐 왔다. 지난번 군주를 쫓아낸 일은 손씨들이 행하여 어쩔 수 없이 따랐을 뿐이지, 나의 본뜻은 아니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모두 손씨들과 영씨들이 모의한 일로 알고 있다. 나는 지금까지 이 일을 스스로 밝히지 못했음을 한으로 여기고 있다. 나는 죽어서 선조들을 지하에서 뵐 면목이 없다. 너는 능히 옛날 쫓겨난 군주를 복위시켜 이 아비의 잘못을 늦게나마 씻어 주기 바란다. 그래야만 너는 내 아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 네가 내 말을 듣지 않는다면 나는 네가 올리는 제사 밥도 먹지 않겠다. 」

영희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어찌 감히 부친의 명을 따라 일을 행하지 않겠습니까?」

영식은 말을 마치고 숨을 거두었다. 영희는 영식의 뒤를 이어 위나라의 좌상이 되었다. 이때부터 영희는 자기 부친의 유언대로 헌공을 복위시킬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때 위상공 표는 쉴새없이 제후들의 회합에 참석하느라 바빴었고 위나라의 국경은 평화로웠다. 상경 손림보는 자기 때문에 쫓겨난 헌공이 자신을 철천지원수로 여기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경계심을 한시도 늦추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영식은 헌공을 복위시킬 적당한 기회를 잡지 못했다.

역시 같은 해인 주영왕 24년에 위헌공 간(衎)은 위나라 북쪽 경계에 있던 이의성(夷儀城)을 습격하여 그곳에 머물면서 복국의 기회를 엿보다가 영희가 다른 뜻을 품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윽고 헌공이 밀서를 써서 공손정에게 주어 영희에게 전달하도록 했다. 명을 받은 공손정은 아무도 몰래 위나라의 도성인 제구성에 잠입하여 영회를 찾아가 헌공의 편지를 전했다.

「그대가 만일 그대의 부친이 행한 일을 후회하고 나를 복국 시켜 준다면 위나라의 정치는 모두 그대에게 맡기고 과인은 단지 사직에 제사나 지내는 일을 주재하면서 살겠다.」

그러지 않아도 자기 부친이 죽으면서 당부한 유언을 잊지 않고 있던 영희는 쫓겨난 군주로부터 편지를 받고 또한 헌공이 복국하면 위나라의 정사를 모두 자기에게 맡기겠다는 내용의 편지에 마음속으로 여간 기뻐해 마지않았다. 그러나 마음속 한편으로는 의심하는 마음이 일어 생각했다.

「쫓겨난 위후가 복위하기 위해 다급한 나머지 일시적인 마음에서 이렇게 달콤한 말로 나의 환심을 사 놓고 복위한 후에 다시 그가 나에게 한 말을 거둔다면 그때는 어찌해야 하는가? 축군(逐君)의 동생 공자전(公子鱄)은 어질고 또한 신의가 있으니 만약 그로 하여금 증인을 세운다면 후일에 그가 군위에 다시 오른 후라도 이미 한 약속을 저버리지는 않으리라!」

마음속을 정리한 영희가 답신을 써서 밀봉한 후에 공손정에게 주어 헌공에게 전하게 했다.

「군주께서 말씀하신 일은 나라의 대사라 이 희 한 사람만의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습니다. 자선(子鮮)은 곧 나라의 백성들이 믿고 따르는 분이라 반드시 그를 찾아 저에게 보내시어 서로 상의하게 하신다면 좋은 방안이 나올 것입니다.」- 자선(子鮮)은 곧 공자전(公子鱄)의 자다. -

헌공이 즉시 공자전을 불러 당부했다.

「내가 복국하는 데는 전적으로 영희의 손에 달렸다. 너는 반드시 나를 위해 나라 안으로 들어가서 영희를 설득해 주어야 하겠다.」

공자전이 대답은 비록 했지만 차일피일 미루기만 하고 전혀 길을 떠날 채비를 하지 않았다. 헌공이 몇 번이나 불러서 재촉하자 공자전이 헌공에게 말했다.

「천하에는 정사와 무관한 군주는 없는 법인데 주군께서 말씀하시기를 ‘모든 정사는 영희에게 맡긴다.’라고 하셨습니다. 이 일로 후일 반드시 후회하시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이 전은 영희에게 신의를 잃게 되는 일이라 감히 명을 받들지 못하고 있는 중입니다.」

「과인이 금일 간신히 나라의 한 귀퉁이를 차지하여 몸을 숨기고 있는 신세인데 이것이 무정(無政)이라 할 수 있지 않겠는가? 만일 내가 선조들의 제사나 지내고 그 일을 자손들에게 전할 수만 있다면 나는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데 어찌 내가 감히 식언을 하여 동생에게 누를 끼치겠는가?」

「주군의 뜻이 정히 그렇다면 이 동생이 어찌 이 일을 마다하여 일국의 군주가 새로 서는 큰일을 그르치게 할 수 있겠습니까?」

공자전이 즉시 길을 떠나 제구성(帝丘城)에 잠입하여 영희를 찾아 다시 헌공이 약속한 말을 전했다. 영희가 말했다.

「자선께서 능히 주군의 말에 대해 책임을 져 주신다면 이 희는 주군의 명에 기꺼이 따르겠습니다.」

공자전이 하늘을 향해 맹세했다.

「이 전이 만약 영희와의 약속을 어기게 된다면 위나라에서 나는 곡식은 절대로 입에 넣지 않겠다고 하늘에 맹세합니다.」

「자선의 맹세는 태산보다 중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공자전이 이의로 돌아와 헌공에게 복명하였다. 영희는 거원(蘧瑗)을 찾아가 죽은 부친 영식의 유명이라고 말하고 쫓겨난 군주를 다시 불러 복위시키는 일을 고했다. 거원이 귀를 막더니 도망치며 말했다.

「이 원은 주군이 나라 밖으로 나간 일에 대해서 들은 바가 없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나에게 주군이 다시 위나라로 들어온다는 소식을 들려주십니까?」

거원은 짐을 챙겨 가지고 노나라로 도망가 버렸다. 영희가 다시 대부 석오(石惡)와 북궁유(北宮遺)를 찾아가 헌공을 복위시키는 일에 대해서 상의했다. 두 사람은 모두 찬성했다. 영희가 다시 우재(右宰)④ 곡(穀)을 찾아갔다. 우재곡이 듣고 고개를 완강하게 저으며 말했다.

「그것은 절대 불가한 일입니다. 지금 주군은 즉위한지가 이미 12년이 되도록 아직까지 조그만 잘못도 없이 나라를 잘 이끌어 오셨습니다. 그란데도 불구하고 지금 쫓겨난 옛 군주를 다시 세우려고 한다면 이는 지금의 군주를 폐하는 일이 됩니다. 부자가 대를 이어 두 군주에게 죄를 얻게 되면 천하의 누가 그 일을 용납하겠습니까?」

「나는 돌아가신 부친의 유명에 따르고자 하는 일이라 이 일을 그만 둘 수 없소!」

「내가 가서 구군을 한번 뵙고 그의 사람됨이 옛날과 어떻게 달라졌는지 살펴보겠소. 연후에 이 일을 다시 상의하면 어떻겠소?」

「그렇게 하시지요.」

우재곡이 즉시 이의로 가서 헌공의 알현을 청했다. 헌공이 발을 씻다가 우재곡이 왔다는 소리를 듣고 신발도 미처 신지 못하고 맨발로 뛰어나와 그를 맞이하면서 얼굴에 기쁜 기색을 띄우며 말했다.

「좌상 영희와 친분이 깊은 그대가 이렇게 나를 찾아 온 이유는 필시 좋은 소식을 갖고 왔음이라!」

「신은 주군을 뵙기 위해 스스로 찾아왔습니다. 좌상은 모르는 일입니다.」

「그대는 좌상에게 가서 과인을 위해 하루라도 빨리 그 일을 도모하여 성사시키라고 전하기 바라오! 좌상이 설사 과인의 복위에는 적극적이지는 않더라도, 위나라의 정사를 혼자 맡게 된다는 일에는 그렇지 않으리라!」

「군주가 되어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은 정사에 있는데 그 권한을 다른 사람에게 내주게 되면 주군은 무엇으로써 그 군주의 자리를 누리려고 하십니까?」

「그렇지 않다. 소위 군주란 그 말 자체가 존귀하고 영광스러운 일이다. 아름다운 옷과 맛있는 음식, 높은 층계 위의 화려한 궁궐에서 준마가 끄는 큰 수레를 타며 나라의 부고는 항상 가득 차 있고, 군주의 말을 전하는 사령들은 전당을 가득 메우며, 아름다운 비빈들과 시녀들의 시중을 받으며 들판에 나가서는 필익(畢弋)⑤을 써서 사냥을 하는 즐거움이 있는데 어찌하여 하필이면 정무에 시달리는 그런 일만이 즐겁다고 할 수 있겠는가?」

우재곡이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헌공에게서 물러나서 공자전을 찾아가서 헌공이 한 이야기를 전했다. 공자전이 듣고 말했다.

「주군께서 오랫동안 피난 생활을 하신 관계로 그 고생이 극심하여 군주가 되어 누릴 수 있는 즐거움만을 생각하여 그렇듯 말씀하신 것 같습니다. 무릇 군주되는 사람은 대신들을 대할 때 예를 갖추어 공경하여야 하며 국가의 록을 주고 쓰는 사람이란 반드시 어질고 능력 있는 사람이어야만 합니다. 또한 재물은 절약하여야 하며, 백성들은 보살핀 후에야 부려야 합니다. 일은 도모할 때는 필히 넓은 마음을 갖고 있어야 하며 일단 말을 입 밖으로 내면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야 능히 영광된 이름을 누릴 수 있고 또한 존귀하게 불리게 됩니다. 이것은 모두 주군이 평소에 익히 들어 알고 있는 일이라 군주의 자리에 다시 오르게 되면 잘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재곡이 제구성으로 돌아와 영희에게 고했다.

「나는 더러운 오물과 같은 말만 하고 있는 구군을 보았소! 옛날과 전혀 달라진 점이 없었소.」

「우재께서는 자선도 만나지 않았습니까? 자선이 무어라 하던가요?」

「자선의 말은 모두가 도리에 맞았소. 그러나 구군은 자기의 말을 모두 실천할 수 없는 사람이오.」

「나는 오로지 자선의 말을 믿을 뿐이오. 나는 선친의 유명을 받았기 때문에 비록 구군이 옛날과 다름없이 변하지 않았다고 할지라도 여기에서 일을 중단 할 수는 없는 노릇이오.」

「좌상께서 꼭 일을 도모하겠다면 때가 오기를 한 번 기다려 봅시다.」

그때 손림보는 이미 나이가 들어 그의 서장자 손괴(孫蒯)와 함께 척읍(戚邑)에 살고 있었고 그의 두 아들 손가(孫嘉)와 손양(孫襄)을 제구성에 머물게 하여 위나라의 정사를 살피고 있었다. 주영왕 25년 기원전 547년, 봄 2월에 손가(孫嘉)가 위상공(衛殤公)의 명을 받들어 제나라에 사자로 가서 제구성에는 손양(孫襄) 혼자만 남게 되었다. 그때 마침 헌공이 영희에게 공손정을 다시 보내어 일을 빨리 진행하라는 독촉장을 보내 왔다. 우재곡이 영희를 보고 말했다.

「좌상께서 거사를 행하려고 한다면 지금이 바로 그 기회요! 손림보와 손가가 없는 이때 거사를 한다면 손양은 쉽게 사로잡을 수 있소. 손양만 잡는다면 자숙(子叔:상공 표의 자)은 혼자서는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사람이라 대사가 이루어진 것이나 다름없소!」

「우재의 말은 정히 내 뜻과 같소.」

영희는 즉시 비밀리에 가갑들을 모아 우재곡과 공손정에게 주어 손양을 잡아오도록 했다. 손씨들의 저택은 크고 화려하여 거의 공궁과 같았다. 담장이 매우 견고하고 가갑만 해도 천 명이 넘었다. 손씨부에는 가신으로써 옹서(雍鉏)와 저대(褚帶)라는 두 명의 장수가 있었다. 두 사람은 번갈아 가면서 손씨부를 지키고 있었다. 그날은 저대가 지키는 차례였다. 우재곡이 이끄는 가갑이 손씨부 대문 앞에 당도하자 저대가 대문을 굳게 닫고 문루에 올라 우재곡에게 무슨 일로 왔느냐고 물었다.

「이 집주인을 만나 상의할 일이 있어 왔다. 」

「일을 상의하러 온 사람이 어찌하여 군사를 끌고 왔소?」

저대가 말을 마치고 활을 들어 우재곡을 쏘려고 했다. 우재곡이 급히 몸을 뒤로 빼며 데리고 온 갑병들에게 손씨부의 대문을 공격하도록 명령했다. 손양은 친히 문루에 올라 손씨부를 지키는 가병들을 독전했다. 저대는 활쏘기에 능한 가병들을 문루에 나 있는 창문 앞에 도열시키고 번을 정하여 문 앞으로 가까이 다가오는 자들을 재빨리 쏘도록 하여 우재국이 이끌고 있는 가갑들을 여럿 죽였다. 비번이었던 옹서도 손씨부에 변이 났나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역시 군사들을 끌고 와서 손씨부 담장 밖에서 호응하였다. 양쪽 군사들이 뒤섞여 혼전 중에 상호간에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마침내 싸움에서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한 우재곡은 가갑들을 이끌고 퇴각했다. 손양이 손씨부의 대문을 열라 이르고 친히 말에 올라타고는 우재곡의 뒤를 추격했다. 이윽고 손양이 우재곡을 뒤에서 따라 잡았다. 손양은 자루가 긴 갈고리로 우재곡이 타고 있던 수레의 뒤 부분을 찍어 잡으려고 하자 위험에 빠진 우재곡이 큰 소리로 외쳤다.

「공손은 빨리 활을 쏘아 나를 구하시오!」

우재곡의 외치는 소리를 듣고 자신의 뒤를 추격해 오고 있는 군사들의 지휘자가 손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공손정이 화살을 활에 재고는 힘껏 잡아 당겨서 손양을 향해 쏘았다. 화살은 날아가 곧바로 손양의 가슴에 명중했다. 옹서와 저대 두 장수가 달려와 손양을 구해 수레에 옮겨 싣고 손씨부로 돌아갔다. 호증 선생이 이 일을 시로 써서 노래했다.

손씨들은 쇠락하고 영씨는 번성하고자

하늘의 뜻으로 화살 한 대가 손양의 심장에 맞았다.

토끼굴을 마련하여 천년의 부를 쌓아 놨는데

식은 잿더미에서 불이 다시 일어 날줄 누가 알았으랴!

孫氏無成寧氏昌(손씨무성영씨창)

天敎一矢中孫襄(천교일시중손양)

安排兎窟千年富(안배토굴천년부)

誰料寒灰發火光(수료한회발화광)

우재곡이 돌아와서 영희에게 고했다.

「손씨부가 견고하여 파할 수 없었소. 만일 공손정의 귀신같은 활솜씨로 손양의 가슴을 맞추지 않았다면 나를 추격하던 손씨들의 가병들은 물러가지 않고 이곳까지 쫓아 왔을 것이오.」

「일차 공격에 성공하지 못했으니 다음에는 함락하기가 더욱 어렵게 되었소. 이미 손가의 주인이 화살에 맞아 그 가병들의 마음은 흩어진 틈을 이용하여 오늘 밤 내가 친히 군사들을 이끌고 공격하겠소. 이번에 출정해서도 성공하지 못한다면 즉시 외국으로 도망쳐 그 화를 피해야 하겠소. 우리와 손씨들은 이미 양립할 수 없게 되었소.」

영희는 다시 병거와 군장들을 정돈하게 하고 한편으로는 그의 처자들을 미리 위나라의 경계로 보내 놓고 만일 자기가 싸움에서 지기라도 한다면 나라 밖으로 달아날 계획이었다. 그런 다음 사람을 보내어 손씨부의 동정을 살피게 했다. 황혼 무렵이 되어서 손씨부의 동정을 살피러 갔던 사람이 돌아와 보고하였다.

「손씨부 안에서 호곡 소리가 요란하게 나면서 대문을 드나드는 사람들은 그 거동이 매우 급하여 어찌 할 바를 모르고 있습니다.」

영희가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이것은 필시 손양이 상처가 중하여 죽었음에 틀림없다.」

영희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북궁유(北宮遺)가 갑자기 달려오더니 말했다.

「손양이 이미 죽어 손씨부는 이미 주인이 없게 되었습니다. 이 기회를 이용하여 속히 공격하면 파할 수 있습니다.」

그때 시간은 이미 자정이 지나 삼경이 되었다. 영희가 군장을 갖추고는 북궁유, 우재곡 및 공손정과 함께 그의 집안의 모든 장정과 갑병들을 동원하여 손씨부로 향해 달려갔다. 이윽고 영희의 일행이 손씨부의 대문 앞에 다시 당도했을 때는 옹서와 대저는 손양의 시신 앞에서 호곡하고 있던 중이었다. 영씨들의 가병들이 다시 쳐들어와 대문 앞에 당도했다는 소식을 들은 두 사람은 황망 중에 군장을 갖추고 대문 앞으로 달려갔으나 그때는 이미 영씨의 가병들은 대문 안으로 진입한 후였다. 옹서 등이 중문을 황급히 닫았으나 손씨 집안의 가병들의 대부분은 이미 흩어져서 도망쳤기 때문에 중문을 지킬 군사들이 없었다. 영희의 가병들은 손씨부의 중문도 파하고 그 안으로 돌입했다. 옹서는 후원의 담을 넘어 몸을 숨긴 후 척읍의 손림보에게 도망쳤으나 저대는 란전 중에 목숨을 잃었다.

이윽고 아침이 되어 천지가 밝아 졌을 때는 영희가 손양의 집안 식구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죽이고 난 후였다. 다시 손양의 시신에서 머리를 베어 낸 영희는 공궁으로 들어가 상공 앞에 던지면서 말했다.

「손씨들이 정사를 자기들 멋대로 주무른 지 오래라 그들이 반역을 꾀하여 제가 미리 군사를 이끌고 그들을 토벌하여 손양의 목을 취했습니다.」

「손씨들이 정말로 모반을 꾀하였다면 어찌하여 나에게 아직까지 고하지 않았단 말인가? 이미 그대는 과인이 안중에도 없으면서 구태여 이렇게 찾아와 손씨들의 일을 고하는 참람한 짓은 도대체 무슨 도리인가?」

영희가 일어나면서 허리에 찬 칼을 어루만지면서 말했다.

「주군은 선군의 명에 의해서가 아니고 곧 손씨들에 의해 추대 되었습니다. 우리 위나라의 군신들과 백성들은 모두 구군을 사모하고 있습니다. 청컨대 군주의 자리에서 물러나 구군에게 물려주시어 요순의 덕을 이루도록 하십시오.」

상공이 얼굴에 노기를 띄며 말했다.

「네 놈이 멋대로 몇 대를 내려온 나라의 대신을 죽이고 그 군주를 마음대로 폐하고 세우고 하니 네 놈이야 말로 진실로 역적이 아니고 무엇이냐? 과인이 남면하여 이 나라의 군주가 된지 이미 13년이라! 내가 비록 죽을지언정 네놈에게 욕을 당할 수는 없다.」

상공이 즉시 옆에 있던 과를 들고 영희를 찌르려고 하자 영희가 궁문을 통하여 도망쳐 나왔다. 상공이 영희를 쫓다가 눈을 들어 밖을 쳐다보니 영씨 집안의 가병들이 궁문 밖을 둘러싸고 있었다. 그들이 들고 있는 창검은 하늘을 가리고 갑옷을 입고 과를 든 모습은 마치 나무 숲을 이룬 듯 했다. 정신이 황망해진 상공은 영희를 쫓다 말고 뒷걸음쳐서 조당 안으로 다시 돌아왔다. 궁문 밖으로 도망쳤던 영희가 소리를 질러 지시하자 갑사들이 일제히 조당 안으로 뛰어와 상공을 붙잡았다. 세자각(世子角)이 궁중에서 변란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칼을 빼 들고 상공을 구하려고 달려오다가 공손정이 휘두른 극에 찔려 죽었다. 영희가 령을 내려 상공을 태묘에 가두고 짐독을 강제로 마시게 하여 죽였다.

주영왕 25년 기원전 547년 봄 2월 신묘일(辛卯日)에 일어난 일이었다.

사람을 보내 국경에서 기다리고 있던 그의 처자들을 다시 불러온 영희는 즉시 구군을 모셔 오는 일에 대해 의논하기 위해 군신들을 조당으로 불러냈다. 태숙의(太叔儀)⑥를 제외한 모든 관리들이 조당에 모였다. 태숙의는 즉 성공(成公)의 아들이며 문공(文公)의 손자다. 그때는 나이가 이미 60이 넘어 병을 핑계 대고 조당에 나오지 않고 있었다. 어떤 사람이 조당에 나가지 않은 이유를 묻자 태숙이 대답했다.

「신군이건 구군이건 모두가 이 나라의 군주인데 그것은 나라에 불행한 일이라! 늙은 신하가 어찌 그 불행한 일을 참을 수 있겠는가?」

상공의 가족과 그를 모시던 비빈과 시종들을 모두 궁궐 밖으로 쫓아내고 궁실을 깨끗이 청소한 영희는 즉시 어가를 준비하여 석오, 우재곡 및 북궁유에게 공손정을 데리고 이의로 가서 헌공을 모셔 오게 했다. 헌공은 밤낮으로 쉬지 않고 수레를 달리게 하여 3일이 채 못 되어 제구성에 당도했다. 대부 공손면여(公孫免余)가 위나라 국경 밖까지 나와 헌공을 영접했다. 헌공은 자기를 맞이하기 위해 멀리까지 나온 면여의 행동에 감격하여 그의 손을 붙들고 말했다.

「나는 금일 그대와 군신의 관계로 다시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이 일로 해서 면여는 헌공의 총애를 받게 되었다. 위나라의 대부들은 모두 국경에 나와 기다리고 있다가 헌공을 영접했다. 헌공은 수레에서 내려 대부들에게 읍하며 감사의 마음을 표했다. 헌공은 이윽고 제구성에 입성하여 태묘에 고하고 조당에 임하자 백관들이 모두 나와 하례를 올렸다. 태숙은 그때에도 병을 칭하고 나와서 헌공에게 조례를 드리지 않았다. 헌공이 사람을 보내 태숙을 책하며 말했다.

「태숙은 과인이 복국한 것을 마땅치 않게 생각하십니까? 어찌하여 과인을 거부하십니까?」

태숙이 헌공의 말을 전하는 사자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옛날 주군께서 출국하실 때 저는 뒤를 따르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신의 첫 번째 죄입니다. 주군께서 나라 밖에 계실 때에 신이 두 마음을 품을 수 없었던 관계로 나라 안팎의 일을 주군에게 알려 드리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제가 저지른 두 번째 죄입니다. 곧이어 주군께서 입국을 하시는데 신은 다시 그 큰일에 대해 아무런 소식도 들을 수 없었습니다. 이것이 신의 세 번째 죄입니다. 주군께서 제가 지은 이 세 가지 죄로 저를 책하시니 신은 할 수 없이 나라 밖으로 나가 목숨을 건져야 되겠습니다.」

태숙의는 즉시 수레를 준비하게 하여 나라 밖으로 나가려고 하였다. 헌공이 사자가 전하는 말을 듣고 곧바로 달려와 태숙을 위나라에 머무르게 했다. 태숙이 헌공을 알현하며 눈물을 흘리며 상공의 상을 치를 수 있도록 청하였다. 헌공이 허락하고 태숙에게 조당에 나가 군신들 반열에 서게 했다.

헌공은 약속한 대로 영희에게 위나라의 정사를 오로지 하도록 맡겼다. 자기에게는 모든 정사를 일단 한 번 고하게 하고 나머지는 모두 영희가 알아서 전결하도록 했다. 그 외에 영씨들의 식읍에 3천 호를 더하게 해주었다. 북궁유, 우재곡, 석오, 공손면여 등은 모두 녹봉을 더해 주었다. 공손정, 식작 등은 헌공의 망명생활을 따라 다닌 공로로, 공손무지(公孫無地), 공손신(公孫臣) 등은 그의 부친이 죽음으로써 헌공을 위해 절개를 지켰다 하여 모두 작위를 올려 대부에 명했다. 그 외에 태숙의(太叔儀), 제오(齊惡), 공기(孔羈), 저사신(褚師申) 등은 옛날의 직을 그대로 유지하게 하였다. 다시 노나라에 도망가서 살고 있던 거원(蘧瑗)을 불러 그 직위를 돌려주었다.

한편 제나라에 친선사절의 임무를 마치고 돌아오고 있던 손가는 위나라에 변란이 일어나 손양과 상공이 살해당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척읍으로 발길을 돌렸다. 헌공이 필시 자신을 그대로 놔두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 손림보는 척읍을 들어 당진에 바쳤다. 손림보는 당진의 군주에게 시군의 죄를 범한 영희에게 그 죄를 물주기를 청했다. 또한 위후가 머지않아 척읍에 정벌군을 보내 정벌하지나 않을까 두려워한 손림보는 한시라도 급히 지원군을 보내 주면 힘을 합하여 당진을 위해 척읍을 방어하겠다고 자청했다. 당진의 평공이 3백 명의 군사를 보내 손림보를 돕도록 했다. 손림보가 당진의 군사들을 척읍의 동쪽에 있는 모씨(茅氏)⑦의 땅을 지키도록 했다. 손괴가 보고 간했다.

「3백 명의 당진군으로는 그 수가 너무 적어 위나라의 군사들을 막을 수 없습니다. 어찌 하시려고 그러십니까?」

손림보가 웃으면서 말했다.

「물론 3백 명의 군사들로 우리들을 지켜 주기에는 충분치 않다. 그래서 위나라가 이곳으로 쳐들어올 경우 길목에 해당하는 동쪽 변경의 모씨의 땅에 주둔시켰다. 만약 위나라 군사가 당진의 수비병들을 공격하여 모두 죽인다면 당진은 그 일로 격분하지 않겠느냐? 그리 되면 우리는 당진이 도와주지 않을까 가슴을 졸일 필요가 없게 된다.」

「아버님의 높으신 식견은 이 아들이 도저히 미치지 못하겠습니다.」

영희는 손림보가 당진에 붙어 원군을 청한 결과 당진이 겨우 3백 명의 군사들만을 원병으로 보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위나라의 군신들을 모이게 한 영희가 말했다.

「당진이 만약 진심으로 손림보를 도울 마음이 있다면 어찌하여 그들은 겨우 3백 명의 군사만을 보내겠습니까? 그렇지 않다면 그들은 우리를 너무 무시하는 처사가 아니겠소?」

영희는 즉시 식작에게 명하여 위나라 군사들 중 천 명을 선발하여 모씨의 땅에 가서 당진의 군사를 공격하도록 했다.

《제66회로 계속》

①부장(陪葬) : 춘추 때 제후들이 죽어 장사 지낼 때 살아 있는 사병이나 군마 및 병장기, 어떤 때는 생전에 데리고 살던 비빈(妃嬪)들을 같이 묻어 준 순장(殉葬)의 풍속이 있었다. 즉 최저는 장공에게는 부장을 하지 않게 했다는 말은 곧 제나라의 군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섬진의 목공이 죽었을 때는 살아 있는 사람을 170명을 같이 묻어서 그 후에 섬진의 국력이 약해진 것은 조정대신들을 모두 순장시켜 나라의 인재들이 없어졌기 때문이라고 했다.

②소(巢) : 지금의 안휘성(安徽省) 안경시(安慶市) 북 30키로에 있었던 지명으로 초나라의 영토였다.

③태왕(太王) : 주나라의 시조 문왕의 할아버지로써 이름은 고공단보(古公亶父)다. 주씨(周氏) 부족들을 원래 거주지인 빈(豳) 땅(현 섬서성 서북쪽 빈현(彬縣))에서 이끌고 칠수(漆水)와 저수(沮水)를 건너 기산(岐山) 밑으로 이주시키고 기산 땅의 원주민의 족장의 딸인 강원(姜嫄)씨와 혼인을하여 아들 셋을 낳았다. 맏이는 태백이고, 둘째는 우중이며 막내는 계력이라 했다. 태백과 우중은 족장의 자리를 막내인 계력에게 물려주기 위해 형만(荊蠻)으로 도망쳐 그곳에서 형만의 습속으로 바꾸고 살다가 오나라를 세운 자손들의 시조가 되었다. 계력은 태임(太任)과 혼인을 하여 창(昌)을 낳았는데 이 창이 은나라 왕으로부터 서백(西伯)에 봉해진 주문왕(周文王)이다.

④우재(右宰) : 궁정 안의 관리들을 총괄했던 위나라가 설치한 관직을 말한다.

⑤필익(畢弋) : 필(畢)은 새나 토끼를 잡는 손잡이가 달린 그물이며, 익(弋)은 주살이다. 즉 뒷 꽁무니 끝에 실로 된 줄을 매단 화살을 말한다.

⑥태숙의(太叔儀) : 위헌공(衛獻公)의 인척 관계는 다음에서 보는 바와 같이 태숙의(太叔儀)는 헌공에게 작은할아버지이며 상공(殤公)은 그의 사촌 동생이 된다.

文公

成公

穆公

定公

獻公

서자

太叔儀

公子鱄

서자

黑肩

殤公

⑦모씨(茅氏) : 지금의 하남성 복양시 동북 20키로 되는 곳으로 손림보의 식읍인 척(戚) 땅 동쪽 10키로 되는 곳에 있었다.

[평 설]

나라의 군주가 무도하면 내란이 일어나게 되어있다. 제장공(齊庄公 : 재위 전 553-548년)이란 위인은 황음무도한 끝에 결국은 살신지화를 입게 되었다. 제목 “弑齊光崔慶專權(시제광최경전권)”의 뜻은 “제나라의 우경(右卿) 최저(崔杼)와 좌경(左卿) 경봉(慶封)이 모의하여 제장공 광(光)을 살해하고 제나라의 권력을 장악했다.”라는 말이다.

제나라에 일어난 내란은 진평공(晉平公)이 대거 제후들을 규합하여 제나라를 정벌하려고 했던 과정에서 기인했다. 제장공을 옹립하는데 세운 공으로 제나라 정사를 담당하고 있던 최저와 경봉은 제나라의 사직이 끊어지지나 않을까 걱정한 나머지 제장공을 시해한 후 새로운 군주를 세운 후에 즉시 당진의 평공에게 당진국이 자기들의 패권에 여러 차례 도전하려 살해하려고 했던 제장공을 폐하고 새로운 군주 저구(杵臼)를 세워 당진의 패권을 인정하고 받들겠다는 뜻을 전했다. 제나라의 내란은 당진과 제나라의 대립적인 국면을 마감했으나 다른 제후국들의 경우는 그렇지 않았다.

“위헌공 간(衎)을 추대한 공을 빙자하여 정사를 마음대로 주무른 위나라의 대부 영희”편은 위나라에서 일어난 내란에 대한 이야기다. 위나라 대부 손림보가 그의 군주 위헌공을 축출하고 그의 사촌동생 공자표(公子剽)를 위후의 자리에 세웠다. 이가 위상공(衛殤公)이다. 그러나 좌상 영희는 위상공을 압박하여 죽음으로 몰고 위헌공을 복위시키려는 음모를 꾸몄다. 위헌공의 복위를 반대하던 손림보가 영희의 의도를 중지시키기 위해 당진국에 지원을 청하자 당진국은 마지못해 3백의 군사만을 보냈다. 당진의 지원군은 영희의 군사들에게 모두 섬멸되고 말았다. 손림보를 지지한 당진의 평공이 군사를 증파하려는 생각으로 위헌공의 군위를 승인받기 위해 당진을 방문한 위영공과 영희를 구금했다. 이에 제경공이 나서서 위군의 입장을 변호하면서 약한 나라를 돕고 강한 나라를 억제하여 패주의 권위를 보이고 덕을 베풀는 것이 패자의 직분이라고 말하자 평공은 위헌공과 영희를 방면하여 자기 나라로 돌려보냈다. 위나라에 돌아온 영희는 자기의 공을 과신한 나머지 전횡하다가 국인들의 분노를 일으켜 결국 피살되고 말았다. 제나라의 최저 역시 권력을 마음대로 휘두르다가 목숨을 잃고 경봉이 대신하여 제경공의 상국이 되었다. 이 일은 다음 회의 이야기다.

당진과 위 두 나라가 내란으로 국내 정세가 어지러울 때, 오왕 제번은 기원전 548년에 초나라를 정벌전에 친히 참전했다가 유시에 맞아 불의의 죽음을 당했으나 초나라를 동쪽 방면에서 압박하려는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다. 오나라의 초나라에 대한 도전은 당진국이 중권의 패권을 유지하는데 유리하게 작용했다.

당시 제후국들 간의 정세를 보면 당진과 초 두 나라는 여전히 대국의 면모를 유지하고는 있었으나 실제적으로는 제(齊), 오(吳), 섬진 등의 국가도 이미 기본상 두 나라와 대적할 만한 세력으로 등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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