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국연의

 

   
 
춘추쟁패
1부1 제후굴기
2부2 관포지교
2부3 백리해
2부4 유랑공자
3부5 초장왕
3부6 이일대로
4부7 오자서
전국쟁웅
5부8 전국칠웅
6부9 합종연횡
7부10 진시황
초한축록
통일천하
홍곡지지
초한축록
토사구팽
· 오늘 :  217 
· 어제 :  344 
· 최대 :  2,389 
· 전체 :  1,682,140 
 
  2004-05-11 12:05:246580 
제68회. 師曠辯聲(사광변성) 散財買國(산재매국)
양승국   (1662)
 楚靈王2.jpg  (262.9K)   download : 140
 그림68-1. 賀사祁師曠辯新聲.jpg  (654.2K)   download : 81
일반

제68회 師曠辨聲 散財買國(사광변성 산재매국)

당진의 태사 사광은 새로운 노래를 식별하고

제나라의 진씨(陳氏)들은 사재를 털어 나라를 사다.

1. 盜所隱器 與盜同罪(도소은기 여도동되)

- 아무리 왕이지만 도적을 숨겨준 자는 도둑과 같은 자다. -

초영왕은 한 가지 괴벽이 있었는데 남녀를 불문하고 가는 허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을 좋아하였다. 허리가 굵은 사람을 일단 보았다 하면 마치 눈 속의 가시처럼 여겼다. 그래서 장화궁이 완공되자 허리가 가는 미인들을 가려 뽑아 그곳에서 살게 했다. 이 일로 해서 장화궁의 이름은 세요궁(細腰宮)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장화궁의 궁인들은 왕의 총애를 구하기 위해 식사량을 줄이고 배고픔을 참으며 허리를 가늘게 만들려 온갖 노력을 다했다. 심지어는 너무 먹지 않아 굶어 죽으면서도 절대로 후회하지 않았다. 백성들도 따라 하기 시작해서 모두가 가는 허리로써 아름다움의 기준으로 삼게 되어 감히 음식을 포식하는 자가 없어지게 되었다. 백관들조차도 모두가 입조 할 때는 부드러운 허리띠를 착용하여 초왕 앞에서는 단단히 붙들어 매어 왕의 눈 밖에 벗어나지 않으려고 했다. 영왕이 가는 허리의 미인들이 가득한 장화궁을 좋아하게 되어 밤낮으로 그 안에서 술에 취하여 놀면서 음악 소리가 주야로 끊어지지 않도록 했다.

하루는 장화대에 올라 놀이를 시작하여 자리가 이윽고 무르익으려고 하는 순간, 갑자기 대 아래에서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곧이어 영왕의 호위군 대장 반자신(潘子臣)이 관원 한 사람을 잡아 가지고 자기 앞으로 다가왔다. 영왕이 보니 그 사람은 우읍(芋邑)의 윤(尹)으로 있는 신무우(申無宇)였다. 영왕이 놀라 그 연고를 물었다. 반자신이 대답했다.

「무우가 왕명도 받지 않고 왕궁을 함부로 침입하여 자기 멋대로 궁궐을 지키는 수졸(守卒)을 잡아가려고 했습니다. 이것은 무례하기 그지없는 행위입니다. 신에게는 왕궁을 지키는 책임이 있는지라 그를 잡아와 대령했으니 부디 대왕께서 처분하시기 바랍니다.」

영왕이 신무우에게 물었다.

「경은 그 자를 무슨 연유로 잡아가려고 했소?」

「그 자는 바로 신의 집에서 문지기를 하던 자였습니다. 제가 그에게 문을 지키라고 명했으나, 곧바로 신의 집 담장을 넘어 제가 애용하던 술 마실 때 사용하던 그릇과 기구들을 훔쳤습니다. 그러나 그 일이 사람들에게 발각되자 도망쳤습니다. 제가 사방으로 그 놈을 수소문하였으나 지금까지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제가 계속 수소문 끝에 그 자가 왕궁으로 숨어 들어와 수졸이 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심히 잘못된 일입니다. 그래서 제가 그 놈을 잡아가 죄를 주기 위해서였습니다.」

「이미 그가 과인의 궁을 지키는 수졸이 되었으니 그만 용서해주면 어떻겠소?」

「하늘에 있는 열 개의 해도 순서가 있어 각기 그 하는 일이 다르듯이, 땅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열 등급이 있습니다. 왕 밑으로 공(公), 경(卿), 대부(大夫), 사(士)와 천역에 종사하는 노예 신분인 조(皂), 가마나 말을 모는 일을 업으로 하는 여(輿), 관청에 소속되어 궂은일을 맡아 하는 관속 요(僚), 사가에서 종으로 일하는 복(僕), 그리고 심부름하는 노예 대(臺)가 있어 순서에 따라 각기 복종함으로써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거느리고 아랫사람은 윗사람을 받들고 있어 상하 간에 서로 질서를 지켜 나라가 혼란하지 않게 된 것입니다. 신이 부리고 있는 문지기가 죄를 지었는데 그 주인 되는 제가 그를 잡아 법을 집행하지 못하고, 죄를 지은 자가 오히려 왕궁의 위세를 빌려 스스로를 비호하려고 합니다. 더욱이 만에 하나라도 그가 왕궁을 그의 피난처로 만들 수 있게 된다면 세상의 도적들이 공공연히 활보하게 되어도 아무도 잡을 수 없게 됩니다. 신은 비록 죽을지언정 감히 대왕의 명을 따를 수 없습니다.

천자는 천하를 경략하고 제후는 자기의 봉토를 바로 다스리는 일이 옛날부터 전해오는 제도입니다. 그러니 봉토 안은 어느 곳인들 임금님의 땅이 아닌 곳이 있겠으며 그 땅에서 나는 물건을 먹고 사는 자들이 누구라고 임금님의 신하가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시경(詩經)》에도 말하기를 '넓은 하늘 아래가 임금님의 땅이 아닌 곳이 없고 전 영토의 끝까지 임금님의 신하가 아닌 자가 없도다.'①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십등급으로 구분된 사람들은 신분에 따라 왕은 공(公)을 신하로 삼고 공은 대부를 신하로 삼으며 대부는 사(士)를 신하로 삼고 사는 조(皂)를 신하로 삼으며 조는 여(輿)를 신하로 삼고 여는 예(隸)를 신하로 삼으며 예는 요(僚)를 신하고 삼고 요는 복(僕)을 신하고 삼으며 복은 대(臺)를 신하로 삼습니다. 말에게는 어인(圉人)있고 소에게는 목인(牧人)이 있어 온갖 일에는 제 각기 소임을 맡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궁전의 관리가 “너는 어째서 왕궁 안에서 사람을 잡으려 하느냐? 장차 그를 잡이 어떻게 하려고 하는냐?”라고 말했습니다. 주문왕의 법에 “도망간 자를 대대적으로 수색하라.”고 했음으로 문왕은 천하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또 우리 문왕께서도 복구지법(僕區之法)②을 만드시어 “훔친 물건을 감추어 준 자는 도적과 같은 죄로 다스려라.”고 하셨음으로 우리 초나라의 영토가 여수(汝水)의 강가까지 넓어진 것입니다 만약 궁궐의 무사가 한 말을 그대로 따른다면 도망간 신하를 잡을 길이 없습니다. 도망간 자를 내 버려둔다면 가장 천한 신분의 대(臺)도 남아 있지 않게 되니 왕의 명을 받들어 실천할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옛날 주무왕은 은나라 주왕(紂王)의 죄를 꾸짖어 제후들에 알렸습니다. “주왕은 천하의 도망자를 위한 임금이 되어 그들의 무리를 많이 모았다.”라고 했음으로 천하인이 달려들어 그를 죽였습니다. 그런데 처음으로 제후들을 모으시는 왕께서 주왕을 본받는다면 불가하지 않습니까? 만약 주문왕과 초문왕이 만든 법으로 이 일을 따진다면 도적을 숨긴 왕도 바로 도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경의 말이 옳소! 경은 도적질 했던 종을 잡아가시오. 그러나 이 도둑은 하늘의 사랑을 받고 있어 잡아 갈수가 없을 것이오.」

영왕은 즉시 명을 내려 그 문지기를 신무우에게 넘겨주어 그가 마음대로 왕궁의 수졸을 잡으려고 했던 죄를 용서하여 주었다. 무우가 감사의 말을 드리고 물러갔다.

2. 寶弓既贈 巧言索還(보궁기증 교언색환)

- 선물한 보궁을 교묘한 변설로 다시 빼앗은 초나라의 원계강 -

그런 일이 있고 나서 며칠 후에 노나라에 사신으로 갔던 대부 원계강(薳啓疆)이 노나라의 노소공(魯昭公)을 대동하고 귀국했다. 초영왕이 크게 기뻐하였다. 원계강이 노나라에 사신으로 갔다 온 일을 복명 했다.

「노후가 처음에는 오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신은 옛날 일을 들어 설득했습니다. 저희 선왕이신 공왕으로부터 노나라를 정벌하라는 명을 받은 공자영제가 군사를 이끌고 출동하여 노나라의 양교(陽橋)③에 진을 쳤었습니다. 이에 놀란 노나라가 숙손표(叔孫豹)를 보내 정나라의 여인들과 악공들을 바치면서 화의를 청했었습니다. 그래서 영제는 양교와 가까운 촉(蜀)④ 땅에서 정나라와 화의를 맺었던 일을 상기시켰습니다. 만약 그때 맺은 맹약을 저버린다면 우리 초나라가 다시 군사를 보내 정벌하겠다고 위협하여 가까스로 노후의 마음을 움직여 데려 올 수 있었습니다. 노후는 예에 밝은 사람이라 대왕께서는 이점을 유념하시어 노후의 비웃음을 사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노후의 풍채는 어떻게 생겼는가?」

「얼굴은 분을 바른 듯 하얗고 수염은 한 자나 더 되게 밑으로 드리워 그 위풍이 실로 당당하기 그지없습니다.」

영왕이 즉시 비밀리에 령을 내려 나라 안의 신장이 크고 긴 수염을 기른 사람을 모집하여 그 중에서 선발한 비슷한 용모의 거인 열 명에게 의관을 갖추게 한 후에 3일 동안 예의를 훈련시켜 손님을 접대하는 직무를 맡겼다. 이윽고 그들이 노후를 접대하게 되자 노후가 보고 깜짝 놀라 마지않았다. 이어서 영왕이 노후와 함께 나가 장화궁을 구경시켜 주었다. 규모가 장엄하고 또한 극도로 화려한 모습의 장화궁을 본 노후는 감탄하는 소리를 끊이지 않고 연발하였다. 영왕이 노후를 보고 말했다.

「노나라의 궁궐도 이와 같이 아름답습니까?」

노후가 허리를 굽혀 절하며 대답했다.

「우리나라는 변방에 치우친 조그만 나라인데 어찌 감히 상국의 만 분지 일이나마 따를 수 있겠습니까?」

이윽고 영왕은 얼굴에 교만한 기색을 띄었다. 이어 두 사람이 장화대를 걸어 오르면서 장화대가 참으로 높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30인(仞)이나 되는 장화대의 높이에 대해 남북조 시대의 시인이 지은《임고대(临高臺》⑤라는 시가 있다.

높은 대 하늘로 치솟아 구름 위를 떠가고

아득히 높아 끝이 보이지 않는구나.

땅 위의 초목은 무삼하여 구별이 안 되고

산과 물은 다 같이 한 색깔이었다.

高臺半行雲(고대반출운)

望望高不極(망망고불극)

草木無參差(초목무삼차)

山河同一色(산하동일색)

낙양으로 가는 길이 보이는 듯 하지만

요원한 길은 구별하기 힘든데

옥계에 사는 옛 정인의 사랑

고대에까지 전해져 서로 그리워한다.

髣髴洛阳道(방불낙양도)

道远离别识(도원이별식)

玉阶故情人(옥계고정인)

情来共相忆(정래공상억)

장화대는 매우 높은 건물이라 그 안의 계단이 구불구불 하고 멀리 이어져 있었기 때문에 수십 층을 돌아서 올라가게 되었다. 매 층마다 건물 바깥 주위를 복도로 돌리고 복도 바깥쪽에는 난간을 동그랗게 만들어 둘러쳤다. 그리고 초나라 안에서 스무 살 이하의 미동을 뽑아 그 복장을 색깔도 선명한 화려한 옷을 입혀 마치 여자처럼 분장하게 했다. 이어서 그 미동들의 손에는 조각한 쟁반 위에 옥으로 만든 술잔에 술을 가득 따라서 들게 했다. 미동들은 온갖 악기가 쉴 새 없이 연주하는 곡에 맞추어 영도를 찬미하는 노래를 불렀다. 영왕과 노후가 드디어 장화대 꼭대기에 올랐다. 즐거운 노래 소리가 더욱 쟁쟁하게 울리고 모두가 하늘나라에 날아 오른 듯한 기분이었다. 술잔을 세는 산가지들이 서로 뒤섞이고 분과 향기가 바람에 날려 솔솔 불어오니 마치 신선들이 살고 있는 동부(洞府)에 온 것 같았다. 이윽고 정신이 혼미해지고 넋이 빠지더니 그들은 자기들이 세상 사람들이란 사실을 잊게 되었다. 두 사람이 크게 취하여 헤어지게 되었을 때 영왕은 노후에게 대굴(大屈)이란 활을 선물했다. 대굴이란 활 이름인데 초나라가 갖고 있었던 귀중한 보물이었다. 다음날 아침 영왕이 술에서 깨어나자 마음속으로 대굴이 아까운 생각이 들어 크게 후회했다. 영왕이 원계강을 불러 자기의 뜻을 전하자 그가 말했다.

「신이 능히 노후로 하여금 그 대굴을 자기 손으로 대왕께 다시 바치도록 하겠습니다.」

원계강이 곧바로 노후가 묶고 있는 공관으로 달려가서 접견을 청하고 아무 것도 모르는 듯이 물었다.

「저희 왕께서 어제 저녁 연회에서 마음이 즐거운 나머지 군주님께 선물을 한 가지 했다던데 그것이 무엇인지요?」

노후가 대굴을 꺼내와 원계강에게 보여주었다. 원계강이 대굴을 보더니 노후를 향하여 재배하며 칭하의 말을 하였다. 노후가 기이하게 여겨 물었다.

「활 한 개로 어찌 축하의 말까지 받을 수 있겠소?」

「이 활은 천하에 이름이 나 있어 당진(唐晉)과 제(齊) 및 월(越)나라에서 모두 사람을 보내와 서로 구하려고 했던 명궁입니다. 우리 왕께서는 활의 대가로 가져온 재물들의 후하고 박하고를 떠나 한사코 허락을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저희 왕께서 군주님께 주셨으니 그것은 매우 특별하게 생각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세 나라는 장차 대굴을 노나라에서 구하려고 할 것이기 때문에 노후께서 그 활을 간수하시기 위해서는 장차 그 세 나라에 대한 대비를 철저히 하tu야 할 것입니다. 그와 같은 귀중한 보물을 받으셨는데 제가 어찌 감히 경하의 말을 올리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노후가 얼굴에 불안한 기색을 띄우며 말했다.

「과인이 이 활이 그렇게 귀중한 보물인지 알지 못했소. 어찌 감히 이렇듯 귀중한 보물을 받을 수 있겠소?」

노소공은 즉시 좌우의 사람을 시켜 대굴을 초왕에게 돌려주게 하고는 이어 노나라로 돌아갔다. 오거가 그 일에 대해 알고 한탄하였다.

「왕께서는 좋지 않은 종말을 맞이하겠구나! 장화궁의 낙성식을 위해 중원의 제후들을 청하였건만 아무도 오지 않고 단지 노후 한 사람만이 힘든 길을 마다하고 왔는데 오히려 활 한 개를 아까워하여 노후로부터 신의를 잃었구나! 무릇 남에게 베풀 줄 모르는 자는 필시 남의 것을 빼앗는 법인데, 남의 것을 빼앗게 되면 필시 많은 원망을 사게 되어 종국에는 몸을 망치게 되는 법이다.」⑥

주경왕(周景王) 10년 기원전 535년의 일어난 일이었다.

3. 靡靡之樂(미미지악)

- 복수(濮水)의 강심에서 들려오는 망국의 노래 -

한편 당진의 평공은 초나라가 장화궁의 낙성식을 위해 제후들을 초청하였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평공이 여러 대부들을 불러 말했다.

「초나라는 남쪽의 오랑캐 나라라! 오랑캐인 그들마저도 능히 그렇게 아름다운 궁궐을 지어 놓고 제후들에게 세를 과시하고 있는데 어찌 우리 당당한 당진이 오히려 그들 보다 못하단 말인가?」

대부 양설힐이 앞으로 나와 말했다.

「백주가 제후들을 복종시키는 방법은 덕에 의해서이지 큰 궁궐로 한다는 말은 못했습니다. 장화대의 축성으로 초나라는 이미 덕을 잃었습니다. 주군께서는 어찌하여 초나라를 본받으려고 하십니까?」

평공이 양설힐의 말을 듣지 않고 곡옥(曲沃) 땅의 속천(涑川) 강안에 장화궁을 모방한 궁궐을 짓기 시작했다. 크기와 규모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아름답고 정교한 면에서는 오히려 장화궁보다 나았다. 당진의 새로 축조한 궁궐의 이름을 사기궁(虒祁宮)이라 했다. 당진의 평공도 역시 제후들에게 사자를 보내 사기궁의 축조를 알리고 낙성식에 초청하였다. 염옹이 시를 지어 이 일을 한탄하였다.

장화대는 온 백성들의 근심과 원한으로 세워졌는데

사기궁이 다시 장화대의 어리석음을 본받았다!

원려가 없어 비웃는 제후들을 걱정하기보다는

오히려 토목공사를 일으켜 제후들을 부르려 하였다.

章華築怨萬民愁(장화축원만민수)

不道虒祁復效尤(부도사기복효우)

堪笑伯君无遠計(감소백군무원계)

却將土木召諸侯(각장토목소제후)

열국의 제후들은 당진의 평공으로부터 사기궁의 낙성식에 참석하라는 명령을 받아들고 모두를 비웃었으나 당진의 위세에 눌려 감히 사자를 보내 경하를 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정간공은 지난 번에 초왕이 소집한 맹회에 참석하고 난 이후 한 번도 당진에 들르지 않았던 관계로 겸사해서 낙성식에 참석하게 되었다. 또한 위나라에서는 이미 양공이 죽고 그 뒤를 이은 영공이 군위에 올랐지만 그때까지 당진의 평공에게 조현을 올리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위영공도 당진의 군주에게 자기가 위후로 새로 섰음을 고하기도 할 겸해서 낙성식에 참석하려고 했다. 열국의 제후들 중 정, 위 두 나라 군주가 사기궁의 낙성식에 친히 참석하기 위해 행장을 꾸려 당진으로 출발했다.

위영공의 일행이 당진으로 오던 도중에 복수(濮水)⑦가에 이르자 날이 저물어 역사에 묶게 되었다. 밤이 깊어졌음에도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는데 멀리서 금을 타는 소리가 들려 왔다. 영공이 옷을 챙겨 입고 자리에 앉아 베개에 비스듬히 기대어 경청하였다. 들려오는 음악 소리는 매우 가늘었지만 소리가 청아하여 매우 또렷하게 들을 수 있었다. 그 노래 소리는 옛날에 한번도 들어 본적이 없었기 때문에 자리에 일어나 좌우를 불러 아는 사람이 있느냐고 물었다. 좌우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가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위영공은 평소에 음악을 매우 좋아하여 연(涓)이라는 태사(太師)를 데리고 다녔다. 태사 연은 사계절에 맞추어 새로운 노래를 만드는데 능했다. 사연을 매우 사랑한 위영공은 당진에 조현을 올리기 위해 가는 이번의 행차에 대동하고 있었다. 영공은 즉시 좌우에게 명하여 사연을 불러 자신의 침실에 들이라고 명했다. 사연이 당도하였을 때도 밖에서 들려오는 음악 소리는 여전히 끊어지지 않고 있었다.

「저 소리를 들어 보라! 자못 귀신의 소리와 유사하지 않는가?」

사연도 귀를 기우려 경청하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음악소리가 끊기게 되었다. 사연이 영공에게 말했다.

「신이 대략은 짐작할 수 있겠으나 하루 밤을 더 머물러 다시 한 번 들을 수 있다면 제가 그 곡을 따라 연주를 할 수도 있겠습니다.」

영공이 사연의 말대로 하루 밤을 더 머물기로 했다. 이윽고 다음 날 밤이 되자 그 음악 소리가 다시 들렸다. 사연이 금을 가지고 와서 들려오는 소리에 따라 연주를 반복하여 그 기묘한 음을 모두 습득하게 되었다. 며칠 후 당진의 도성에 당도한 위영공 일행이 조당에 나가 평공에게 하례를 드렸다. 평공은 사기궁의 고대(高臺)에 연회를 준비하게 하여 영공을 접대하였다. 술이 몇 순 배 돌고 이윽고 자리가 무르익자 평공이 말했다.

「내가 옛날에 들으니 위나라에는 사연이라는 사람이 있어 새로운 곡을 짓는데 매우 능하다고 하던데 이번에 오실 때 데리고 오셨습니까?」

「같이 와서 지금 대 밑에 있습니다.」

「불러서 저를 위해 음악을 한 번 연주해 보도록 해 주시면 어떻겠습니까?」

영공이 사연을 불러 대 위로 오르라고 명했다. 평공도 역시 좌우에게 명하여 사광을 불러오라고 명했다. 사광은 당진의 태사로 평공의 총애를 받고 있었다. 평공의 시종이 앞을 보지 못하는 사광을 옆에서 부축해서 모셔왔다. 사광과 사연 두 사람은 계하에 엎드려 머리를 조아리며 두 나라 군주에게 인사를 올렸다. 평공이 사광에게 옆자리를 내주며 앉게 하고 다시 사연은 그의 옆에 앉게 했다. 평공이 사연에게 물었다.

「요즘 들어 지은 새로운 노래가 있는가?」

「상국으로 오는 도중에 우연히 새로운 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원컨대 저에게 금을 주시면 한번 타 보도록 하겠습니다.」

평공이 좌우에게 명하여 금을 탈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게 한 후에 오래된 오동나무로 만든 금을 가져오게 하여 사연에게 주도록 했다.

5. 樂不可妄興(악불가망흥)

- 음악은 망령되게 일으켜서는 안 되는 법이다. -

사연이 우선 7개의 줄을 퉁겨 조율하여 화음을 맞춘 다음 손가락을 휘날려 금을 타기 시작했다. 사연이 금을 연주하여 소리를 내기 시작하자마자 평공이 찬탄의 환호성을 질렀다. 사연이 연주하던 곡이 반도 채 끝나기도 전에 사광이 황급히 손을 들어 사연이 타고 있던 금을 손으로 잡으며 말했다.

「연주를 그만 하시오. 이 곡은 망국의 노래라 연주하면 안 되는 노래입니다.」

평공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어찌 아는가?」

「은나라 말기에 사연(師延)이라는 왕실의 악사가 있었습니다. 그는 주왕(紂王)에게 퇴폐적인 노래만 들려주어 세상사에 싫증을 내게끔 만들어 나라를 망하게 했습니다. 이 노래가 바로 그때 사연이 만든 곡입니다. 이윽고 주무왕이 주왕을 토벌하자 사연은 금을 가슴에 품고 동쪽으로 달아나다 복수의 강물에 뛰어 들어 자살했습니다. 그 뒤로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 그 곳을 지나가게 되면 홀연히 수중에서 음악 소리가 흘러나오곤 했습니다. 사연이 이곳으로 오는 도중에 음악 소리를 들은 곳은 틀림없이 복수 강변일 것입니다.」

위영공이 사광의 말을 듣고 마음속으로 매우 놀랐다. 평공이 다시 물었다.

「지금 사연이 연주했던 음악은 옛날에도 즐겨 했던 음악인데 연주하여 즐긴다 한들 무슨 문제가 있겠소?」

「주왕이 음탕한 짓과 노래를 좋아함으로 해서 나라를 망쳤습니다. 이 노래는 매우 상서롭지 못한 노래라 더 이상 연주하게 하면 안 됩니다.」

「과인은 원래 새로운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사연은 과인을 위해 남은 부분을 마저 연주하라!」

사연이 다시 금을 타기 시작하자 그 소리의 높고 낮음이 마치 호소하기라도 하는 듯 흐느껴 울기라도 하는 듯 했다. 평공이 크게 기뻐하며 사광에게 물었다.

「이 곡의 이름은 무엇이라 하는가?」

「이 노래의 곡명은 《청상(淸商)》이라 합니다.」

「그렇다면《청상(淸商)》이라는 노래가 가장 슬픈 곡인가?」

「《청상》이란 곡이 슬프기는 하지만 《청징(淸徵)》이라 는 곡에는 미치지 못합니다.」

「《청징(淸徵)》 이라는 곡을 들어 들을 수 있는가?」

「불가합니다. 옛날부터 청징이라는 곡을 들은 사람은 모두가 덕과 의로움을 갖춘 성군이었습니다. 지금 주군은 덕을 갖추지 못했으니 이 곡을 듣고 감당해 내실 수 없습니다.」

「과인이 새로운 음악을 너무 좋아해서 그러니 그대는 과인을 위해 한번 연주해 주기 바라노라!」

사광이 할 수 없이 금을 사연으로부터 건너 받아 타기 시작했다. 한번 연주하니 검은 학들이 남쪽으로부터 날아들어 궁문의 마루기둥 앞에 점점 모이기 시작하더니 그 수가 여덟 쌍을 이루었다. 다시 한 번 연주하니 그 여덟 쌍의 학들이 소리를 내며 대 위로 날아와 단 밑에서 열을 지어 좌우로 각기 8마리 씩 늘어섰다. 다시 세 번째 연주하니 학들이 목을 길게 빼고 울어대며 날개를 펄럭거리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 곡 중에 궁상(宮商)의 음은 하늘 끝까지 사무치는 듯 했다. 평공은 박수를 치며 크게 즐거워하였고 자리를 메운 모든 사람들은 환희에 벅차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대 위에 있던 사람이건 대 아래에 있던 사람이건 사광이 연주한 노래를 들은 사람은 누구를 불문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몸이 날아갈 듯 했다. 평공이 명하여 백옥으로 만든 잔에 청아하고 향기가 그윽한 술을 가득 따르게 하여 친히 사광에게 하사하였다. 사광이 술잔을 받아 마셨다. 평공이 한탄하며 말했다.

「소리의 경지가 《청징》에 이르게 되면 더 이상의 곡은 없겠도다!」

「그 위에 다시 《청각(淸角)》이라는 곡이 있습니다.」

평공이 크게 놀라 말했다.

「《청징》위에 다른 곡이 있단 말인가? 그렇다면 어찌하여 과인에게 들려주지 않았는가?」

「《청각》은 다시《청징》에 비할 바가 못 됩니다. 신이 감히 연주하지 못하겠습니다. 옛날 오제 중의 한 분이신 황제(黃帝)께서 태산에서 세상의 귀신들을 불러내셨습니다. 교룡(蛟龍)⑧과 필방(畢方)⑨에게는 수레를 끄는 코끼리의 고삐를 같이 잡게 하였고, 치우(蚩尤)⑩는 그 수레의 앞에 세웠습니다. 또한 풍백(風伯)⑪에게는 바람을 불어 먼지를 쓸어 내도록 했으며, 우사(雨師)⑫에게는 길 위에 비를 뿌리도록 했습니다. 이어서 호랑이에게는 수레의 앞장을 서서 인도하라 하고, 그 밖의 귀신들은 모두 수레의 뒤를 따르게 했으며, 등사(螣蛇)⑬는 땅에 엎드리고 봉황은 하늘에서 날아 수레를 감쌌습니다. 이렇게 함으로 해서 세상의 모든 귀신들을 한 곳에 불러 모으신 후에《청각》이라는 곡을 지으셨습니다. 이후로 임금들의 덕이 쇠하여 져서 귀신들을 복종시키지 못하게 되어, 그 사이가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만약 제가 이 곡을 연주한다면 세상의 귀신들이 모두 달려와 화만 생기지 복된 일이라고는 하나도 생기지 않을 것입니다.

「과인은 이제 살만큼 나이가 들었으니 진실로 내가 《청각》이라는 노래를 한번 들어 볼 수 만 있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노라!」

사광이 계속해서 연주하기를 사양하자 평공이 자리에서 일어나서 계속해서 사광을 재촉하여 강제로 연주시켰다. 사광이 할 수 없이 금을 다시 잡으며 켜기 시작했다. 한번 연주하니 검은 구름이 서쪽에서 일어났다. 두 번 연주하니 광풍이 일어나 창문을 가리운 장막이 찢어지고 제기들은 허공으로 날라 깨지면서 지붕 위의 기왓장들이 어지러이 날아다니고 낭하의 기둥들은 한꺼번에 흔들거렸다. 이어서 질풍뇌성이 들리더니 장대같은 비가 쏟아져 대 밑에는 물이 차서 그 깊이가 여러 자가 되었다. 대 안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가 쏟아지는 비에 몸을 흠뻑 적시었다. 시중을 들던 종자들은 모두 놀라 흩어져 도망가 버리고 평공도 역시 놀라 두려움에 떨면서 위영공과 함께 복도와 복도 사이에 있는 방으로 들어가 엎드려 숨었다. 시간이 얼마간 지나자 바람이 멎고 비가 그치자 종자들이 다시 돌아와서 평공과 영공을 부축하고 대를 내려와 각기 그들의 침소로 모시고 갔다.

6. 民怨神怒 石頭說話(민원신노 석두설화)

- 원한 맺힌 백성과 분노한 귀신이 돌무더기를 통해 뜻을 밝히다. -

그날 밤 평공이 너무 놀라 가슴이 두근거리는 병을 얻게 되었다. 밤이 깊어 어느덧 잠이 들게 되었는데 꿈결에 괴물을 하나 보았다. 몸은 노란색에 크기는 마치 수레바퀴만 했다 그 귀신이 비틀거리는 걸음걸이로 평공이 자고 있는 침실로 다가왔다. 평공이 자세히 살펴보니 그 괴물의 모양은 마치 자라처럼 생겼는데 앞에는 다리는 두개이고 뒤에는 다리가 한 개 달려 있었다. 그 괴물의 발이 닿는 곳은 모두 물이 용솟음쳐서 흘러 나왔다. 평공이 꿈속에서 크게 놀라 크게 부르짖으면서 꿈에서 깨어났으나 꿈속에서의 일이 마치 생시에 일어난 일만 같았다. 이어 아침이 되자 백관들이 병이 들어 누워 있는 평공에게 문안을 드리러 몰려들었다. 평공이 꿈 이야기를 백관들에게 말했다. 아무도 꿈을 해몽하지 못했다. 그러고 있는 사이에 역사에서 일을 하는 관리가 들어와서 고했다.

「정나라 군주가 당도하여 하례를 드리기 위해 지금 관사에 들어 계십니다.」

평공이 양설힐을 보내 정간공에게 먼 길을 달려온 노고를 위로하게 하였다. 양설힐이 정백을 만나러 가는 길에 문득 깨달은 바가 있어 종자들에게 말했다.

「주군의 꿈을 해몽할 수 있겠다.」

종자들이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해 묻자 양설힐이 대답했다.

「내가 들으니 정나라 대부 자산은 박학다식하다 하니 정백이 예를 행하는데 자문 격으로 자산을 틀림없이 데려왔을 것이다. 내가 자산에게 주군의 꿈 이야기를 물어 보면 해몽을 얻을 수 있어서다!」

양설힐은 정간공 일행이 묶고 있던 관사에 당도하여 음식을 들여보내고 겸하여 당진의 군주는 병으로 자리에 누워 있는 중이라 당분간 접견을 할 수 없다는 뜻을 전했다. 그때 위영공도 역시 놀램 병을 얻어 몸이 불편함을 이유로 귀국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진후(晉侯)가 병중이라는 말을 들은 정간공은 본국으로 돌아가겠다는 의사를 전하고 자산은 뒤에 남겨 평공의 병을 위문하도록 했다. 정간공과 그 일행의 귀국을 위해 벌린 환송연이 끝나자 양설힐이 공손교를 보고 말했다.

「우리 주군께서 잠을 자다가 꿈을 꾸었습니다. 꿈속의 괴물은 그 몸 덩어리는 자라 같았고, 몸의 색은 노랬으며 발은 세 개가 달렸다고 하셨습니다. 그 괴물이 주공이 자고 있던 침실의 문으로 기어왔다고 합니다. 그것이 과연 무슨 괴물입니까?」

「이 교가 들은 바에 의하면 다리가 셋 달린 자라를 능(能)이라 합니다. 옛날 하나라를 창건한 우(禹)임금의 아버지는 곤(鯤)⑭이라 했는데 황하의 치수공사에 공을 세우지 못했습니다. 요임금에게서 제위를 이어 받은 순임금이 곤을 동해에 있던 우산(羽山)에 감금한 다음 주살하고 그 다리를 하나 끊었습니다. 그가 죽은 다음에 황능(黃能)이라는 신으로 변하여 우산의 연못으로 들어가 살게 되었습니다. 그의 아들 우가 제위에 오르자 그 황능을 위해 사당을 짓고 제사를 지내 왔습니다. 삼대(三代)⑮이래 해마다 제사를 끊지 않고 지내 오고 있습니다. 근자에 이르러 주왕실의 힘이 쇠미해져서 맹주가 천자를 대신해 천하를 다스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맹주가 마땅히 천자를 도와 여러 신들에게 제사를 지내야 하는데 혹시 맹주이신 진후께서 아직 황능에게 제사를 지내지 않았기 때문인지 모르겠습니다.」

양설힐이 자산의 말을 평공에게 가서 전했다. 평공이 대부 한기(韓起)에게 명하여 곤을 모시고 있는 사당에 가서 제사를 지내도록 했다. 그러자 평공의 병세가 잠시 안정을 찾게 되었다. 평공이 감탄하며 말했다.

「자산은 진실로 아는 것이 많은 진정한 박물군자(博物君子)로다!」

평공은 거국(莒國)에서 조공으로 바쳐 온 네 귀퉁이가 각이 진 솥을 자산에게 하사했다. 자산이 이윽고 정나라로 돌아갈 때가 되자 조용히 양설힐에게 말했다.

「당진의 군주께서 백성들의 괴로움을 보살피지 않고 오히려 초나라의 사치스러운 풍속만을 본받으니 민심이 떠났다 하겠소. 그 병은 다시 재발하게 되면 그때는 어쩌지 못하고 죽게 될 것입니다. 제가 지난번 대부께 드린 말씀은 단지 상국 군주의 마음을 안심시키고자 잠시 말을 돌려 댄 것입니다.」

그때 어떤 사람이 위유(魏楡)⑯ 지방을 지나가다가 산 밑에서 여러 사람이 모여 웅성거리면서 당진의 나라 일에 대해 의논하는 소리를 들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사람은 보이지 않고 단지 잡석 10여 개만 있었다. 다시 그 사람이 돌아서서 길을 가는데 사람들이 말하는 소리가 다시 들렸음으로 고개를 돌려 쳐다보니 그 소리는 바로 잡석들로부터 나오는 소리였다. 그 사람이 대단히 놀라서 그 곳에 사는 토인들에게 그 사실을 말했다. 토인들이 말했다.

「우리들은 돌무더기가 말하는 모습을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그 일이 하도 괴이하여 감히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지 못하고 있었을 뿐입니다.」

이 말이 얼마 후에 강주성까지 전해져 평공의 귀에까지 들리게 되었다. 평공이 사광을 불러 물었다.

「돌들이 어떻게 말을 할 수 있소?」

「돌은 말을 할 수 없습니다. 귀신들이 돌을 빌려 하는 말입니다. 무릇 귀신이란 백성들에게 붙어서 살아가는 신령입니다. 백성들의 원한이 한 곳에 모이게 되면 바로 귀신들은 마음이 불안하게 되어 요사스러운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법입니다. 지금 주군께서 높고 화려한 궁실을 짓느라고 생활이 피폐해져 죽은 백성들의 귀신들이 돌에 붙어서 고통을 호소하고 있는 입니다.」

평공이 아무 대답도 못했다. 사광이 물러가면서 양설힐을 보고 말했다.

「귀신이 노하고 백성들의 원성이 자자하니 주군께서는 사실 날이 오래 남지 않았습니다. 사치하는 마음은 실은 초나라로 인해서 생긴 일이니 초나라 왕이 당할 화를 우리 주군이 먼저 당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다가오는 그날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로 목전의 일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한 달 남짓 지나자 평공의 병이 다시 도져서 결국은 일어나지 못하고 죽었다. 사기궁을 짓고서 평공이 죽는데 까지는 불과 3년이 채 되지 못했다. 또한 그 3년간 대부분은 병상에 누워 있었던 관계로 공연히 백성들만 못살게 굴고는 자기는 스스로 편안하게 사기궁에 거처하지도 못했으니 이것이야말로 어찌 가소로운 일이 아니라고 할 수 있겠는가? 후세의 사관이 시를 지어 이를 한탄했다.

높고 넓은 대를 지어 신성을 연주하게 했지만

고혈을 빨린 백성들의 원성만 나라 안에 가득 채웠네!

괴물은 새로이 나타나 임금의 목숨을 재촉했고

사기궁은 비게 되어 헛된 노력만 들게 되었구나!

崇臺廣廈奏新聲(숭채광하주신성)

竭盡民脂怨黷盈(갈진민지원독영)

物怪新妖催命去(물괴신요최명거)

虒祁空自費經營(사기공자비경영)

평공이 재위 26년 만에 죽자 당진의 군신들은 세자 이(夷)를 받들어 그 뒤를 잇게 하였다. 이가 소공(昭公)이다.

주경왕 13년 기원전 532년에 일어난 일이었다.

7. 齊四族相攻(제사족상공)

- 파당을 짓고 가병을 동원하여 싸우는 제나라의 네 종족들 -

한편 고지(高止)를 쫓아내고 다시 사람을 시켜 여구영(閭邱嬰)을 살해한 고채(高蠆)의 행위에 대해서 제나라 대부분의 대부들은 마음속으로 불만을 품고 있었다. 이어 고채가 죽고 고강(高彊)이 그의 뒤를 이어 대부가 되었으나 나이가 어리고 술을 좋아하여, 역시 술을 좋아한 란시(欒施)와 어울리게 되어 두 사람은 매우 친밀한 사이가 되었다. 그렇게 되자 두 사람은 자연히 진무우(陳无宇)와 포국(鮑國)과는 사이가 벌어져 소원하게 되었다. 자연히 제 나라의 네 종족은 두 당으로 나뉘어 졌다. 란시와 고강은 매일 서로 만나 술을 마시고는 진씨와 포씨들의 흉을 보았다. 진무우와 포국이 전해 듣고 점차로 두 사람에 대해 의심하는 마음을 품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술을 마시던 고강이 그 옆에서 시중을 들던 어린 동자가 실수를 하자 그를 엎어놓고 채찍으로 때렸다. 란시도 곁에 있다가 같이 동자를 때렸다. 어린 동자가 한을 품고 밤을 도와 진무우 집으로 달려가 고했다.

「란씨와 고씨들이 그들의 가병들을 모아 진씨와 포씨 두 집안을 내일을 기하여 공격하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

그 동자가 다시 포국의 집으로 달려가 같은 말로 고했다. 그 말이 사실이라고 믿은 포국은 가병을 무장시킨 후에 황급히 어린 동자를 앞세우고 진무우 집으로 달려가 두 집안이 힘을 모아 란씨와 고씨의 집을 공격하려고 했다. 이때 진무우도 역시 무장한 가정들을 이끌고 수레에 타고 포국의 집을 향하여 달려갔다. 진무우가 포국의 집으로 달려가고 있는데 도중에 역시 수레를 타고 자기 쪽으로 오고 있던 고강을 만났다. 술이 이미 반쯤 취해 있던 고강이 두 손을 높이 들어 진무우에게 인사를 하며 물었다.

「무사들을 데리고 어디로 가시는 중이십니까?」

무우가 딴청을 부리며 대답했다.

「반노 한 놈을 잡으러 가는 길이오! 그런데 자량(子良)은 어디를 가는 길이요?」

「술을 마시러 란시의 집에 가는 중입니다.」

이어 두 사람은 작별 인사를 하고 서로 헤어졌다. 진무우가 말을 모는 사람을 재촉하여 수레를 빨리 달리게 하여 포국의 집 대문 앞에 당도했다. 포국의 집 앞에는 이미 병거와 군졸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도열하고 창과 칼을 치켜들어 그 분위기가 자못 삼엄했다. 그때 포국은 갑옷과 활로 무장을 갖추고 바로 수레에 올라타 출발하려고 하는 순간이었다. 두 사람이 한 곳에서 만나 앞일을 의논하였다. 무우가 고강이 한 말을 포국에게 전하면서 말했다.

「란씨의 집에 가서 술을 마신다고 했는데 그 말이 정말인지 알 수가 없으니 사람을 시켜 한 번 알아보도록 합시다.」

포국이 사람을 시켜 란씨 집의 동정을 염탐하도록 했다. 염탐하러 간 사람이 돌아와 보고하였다.

「란시와 고강 두 대부는 집안에 틀어박혀 의복과 관을 벗어놓고 술 먹기 시합을 벌이고 있습니다.」

포국이 말했다.

「그 어린 동자 놈이 거짓말을 하였구나!」

그러자 진무우가 이번 기회에 끝장을 내자고 하면서 말했다.

「그 동자 놈이 고한 내용이 사실이 아니라도 내가 이곳으로 오는 도중에 고강이 갑병들을 이끌고 이곳으로 달려오는 나를 보고 어디로 가느냐고 물어서 나는 말을 돌려 반노를 토벌하기 위해 출병한다고 대답했소. 지금 토벌할 대상이 없으니 내일이면 필시 그가 마음속에 의심을 품고 우리들을 쫓아낸다면 그때는 후회해도 소용이 없게 되오. 차라리 이번 기회에 술을 마시면서 아무런 준비가 없는 틈을 이용하여 우리가 그들을 먼저 공격하면 그들을 제거할 수 있을 텐데 어떻게 생각하오?」

「대부의 뜻에 따르겠소.」

두 집안의 갑병들이 일시에 행군을 시작하여 무우가 앞장을 서고 포국은 뒤에 서서 란씨의 집을 향해 쇄도해 들어갔다. 란씨의 집에 당도한 두 사람은 앞문과 뒷문을 철통같이 에워쌌다. 그때 란시는 커다란 술잔에 술을 가득 부어 마시려고 하는 순간에 진씨와 포씨 두 집안의 가병들이 몰려오는 소리에 놀라 자기도 모르게 잔을 땅에 떨어뜨렸다. 그러나 그래도 고강은 비록 취하기는 했지만 아직 대책을 세울 만한 정신은 갖고 있었다. 고강이 정신을 수습하고 란시를 향해 말했다.

「속히 가병들을 한 곳으로 모이게 하여 갑옷과 무기로 무장시켜 입조한 다음 주공의 뜻을 받들어 진씨와 포씨를 토벌한다면 그들을 이기지 못할 것도 없소!」

고강의 말을 쫓아 집안의 가병들을 모아 무장을 시킨 포국은 고강과 함께 후문을 통하여 일제히 돌격을 감행하여 한줄기 혈로를 뚫고 밖으로 빠져나가 궁궐로 향했다. 란시와 고강 두 사람이 제후를 등에 업고 군명으로써 자기들을 토벌하지 않을까 걱정한 진무우와 포국은 두 사람의 뒤를 바싹 추격했다. 고씨 종족들도 변이 났음을 알고 역시 가병들을 모아 달려와서 고강의 일행과 합류했다. 그때 궁중에 있던 제경공은 네 종족이 가병들을 동원하여 서로 공격하며 싸우고 있다는 소식을 듣기는 했으나 무슨 이유 때문에 싸움이 일어났는지 그 이유는 모르고 있었다. 즉시 궁문을 지키는 수문장을 불러 문을 굳게 닫고 궁중의 갑사들을 동원하여 굳게 지키라는 명을 내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내시를 보내 안영을 불러 입궁하도록 했다. 란시와 고강이 당도하여 궁문을 공격하였으나 궁문은 끄덕도 하지 않아 궁 안으로 진입할 수 없었다. 고강과 란시 두 사람은 할 수 없이 궁문의 오른 쪽에 진을 쳤다. 뒤따라오던 진무우와 포국도 궁문의 왼 쪽에 진을 쳐서 양쪽이 좌우에서 마주보며 대치하게 되었다. 잠시 후에 조복과 관을 단정하게 차려 입은 안영이 수레를 타고 궁문 앞에 당도하였다. 네 집안에서 각기 사람을 보내어 안영을 모셔가려고 다투었다. 안영이 네 집안에서 보내 온 사자들을 보고 말했다.

「이 안영은 오로지 군명에 따를 뿐입니다. 어찌 감히 내 마음대로 당신들의 말을 따를 수가 있겠습니까?」

궁문을 지키는 군사들이 안영을 위해 문을 열었다. 안영이 궁중으로 들어가 경공을 접견했다. 경공이 물었다.

「네 종족이 서로 공격하여 싸우면서 그들의 가병들이 궁문에까지 와서 진을 치고 있는데, 도대체 그들은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요?」

「란씨와 고씨 두 종족은 대대로 입은 은총을 믿고 자기들 멋대로 정사를 전횡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고지를 자기들 멋대로 나라 밖으로 쫓아내고 자객을 시켜 여구영을 암살하여 도성 안 백성들의 원한을 샀습니다. 더욱이 오늘은 감히 궁문을 범하려고 하니 진실로 용서받지 못할 죄를 범했습니다. 단지 진씨와 포씨 두 종족은 군명도 받지 않고 함부로 군사를 일으켰으니 그 들도 역시 죄가 없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오로지 주군께서 알아서 처리하시기 바랍니다.」

「란고(欒高) 두 종족의 죄가 진포(陳鮑) 두 종족의 죄보다 무겁다 하겠으니 마땅히 란고 두 종족을 먼저 물리쳐야 하겠소. 누가 능히 사자로 가서 궁문 앞의 군사들을 물리칠 수 있겠소?」

안영이 말했다.

「대부 왕흑(王黑)이면 능히 이 일을 처리할 수 있습니다.」

경공은 명을 내려 왕흑으로 하여금 궁중을 지키던 공실의 군사들을 동원하여 진포의 군사를 도와 란고의 군사들을 공격하게 했다. 이윽고 얼마 간의 시간이 지나자 란고의 군사들은 싸움에서 져서 성안의 넓은 저자거리로 밀려났다. 도성 안의 국인들도 란고 두 종족들을 싫어하여 모두 두 팔을 걷어 부치고 나서서 진포 두 종족에 가담하여 싸움을 도왔다. 고강은 그때까지도 술이 덜 깨어 온 힘을 다하여 싸울 수가 없었다. 란시가 먼저 동문 쪽으로 달아나기 시작하자 고강이 그 뒤를 따랐다. 왕흑이 진포 두 사람과 같이 그 뒤를 추격하여 동문에서 전투가 벌어졌다. 란고의 군사들은 점점 흩어져서 도망치기 시작하였다. 곧이어 란시와 고강은 동문으로 통해 성밖으로 탈출하여 노나라로 도망쳤다.

8. 散財買國(산재매국)

- 재물을 풀어 나라를 산 제나라의 진씨(陳氏)들 -

진무우와 포국은 란씨와 고씨 집안의 처자들을 모두 쫓아내고 그 두 집 재산을 나누어 가졌다. 안영이 진무우에게 말했다.

「그대는 군주의 명도 없이 함부로 제나라의 대대로 내려온 집안의 대신을 쫓아내고 그들의 재산을 가로챘으니 다른 사람들이 장차 그대의 행위에 대해 비난할 것이오. 그들로부터 빼앗은 재산을 모두 여러 대신들에게 같이 나누어주고 그대는 한 개도 취하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필시 그대를 겸양의 덕을 갖추고 있는 사람이라고 찬양할 것이오. 그리하면 얻을 수 있는 것도 적지 않으리라!」

「가르침에 감사드립니다. 이 무우가 어찌 명에 따르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진무우는 자기의 식읍과 재산을 모두 장부에 기록한 후에 경공에게 바쳤다. 경공이 크게 기뻐하였다. 경공의 모친 맹희(孟姬)는 무우가 다시 그의 재산을 바쳤다는 소식을 듣고 경공에게 말했다.

「진무우가 전횡을 일삼는 란씨와 고씨를 제거하여 공실을 진작시키고 그 전리품은 또한 그 주군에게 바치니 그의 겸양의 덕은 모른 체 할 수 없을 것이다. 고씨들의 식읍인 고당(高唐)⑰을 진무우에게 하사하면 어떻겠소?」

경공이 그 모친의 말을 따라 고당의 읍을 진무우에게 하사했다. 진씨들은 그 때부터 부유해지기 시작했다. 진무우가 사람들에게 인심을 얻을 목적으로 경공에게 말했다.

「많은 공자들이 고채에 의해 이 나라에서 쫓겨났는데 사실은 아무 죄도 없이 무고당한 것입니다. 마땅히 불러 들여서 옛날의 직위를 찾아 주시기 바랍니다.」

경공이 옳다고 생각하여 진무우에게 제후의 명으로 옛날 고채에게 쫓겨났던 자산(子山), 자상(子商), 자주(子周) 등의 공자들을 불러들이게 했다. 진무우는 그들의 장막과 집안에서 쓰는 일체의 기구 및 심지어는 그들 종자들이 입고 신는 옷과 신발 등까지도 자기의 비용으로 마련하여 그들의 집에 가져다 놓고 사람을 보내 한 사람씩 모셔 오게 하였다. 여러 공자들은 고국에 돌아오는 것만으로도 이미 그 마음은 기뻐 어찌 할 줄을 몰랐는데 이어 집으로 와보니 집에서 쓰는 일체의 기구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완비해 있었다. 수소문해본 결과 모두 진무우가 보내 주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공자들은 감격해 마지않았다. 무우가 다시 공실에 그 은혜에 보답한다는 뜻으로 많은 재물을 바치고 공자나 공손의 신분이면서 나라로부터 녹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모두 자기의 사재를 털어 봉록을 지급했다. 또한 나라 안의 가난한 사람, 병들어 노약한 사람, 부모가 없는 고아, 그리고 의지 할 데가 없는 과부들을 모아 그들에게 양식을 나누어주었다. 그리고 그가 양식을 빌려 줄 때는 큰되를 사용하여 많이 내주고 받아들일 때는 작은되를 사용하여 적은 량을 받았다. 가난하여 도저히 빌려 간 빚을 갚지 못하게 되었을 때는 즉시 그 차용증을 불살라 버려 빚을 탕감해 주었다. 제나라 도성 안에서는 진씨들의 덕에 대해 칭송하지 않은 사람은 하나도 없게 되어 누구든지 진씨를 위해서라면 죽음도 마다하지 않을 정도로 백성들의 환심을 얻게 되었다. 이를 두고 사관이 분을 삭이지 못하고 사서에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진씨들이 백성들에게 매우 인심을 후하게 베풀었으니 이것은 곧 후일에 나라의 주인이 바뀌게 되는 원인이 되었다. 이것은 역시 나라의 군주가 덕을 베풀지 않았기 때문에 신하가 사사로이 조그만 은혜를 베풀어 백성들의 마음을 모이게 했던 것에 기인했음이라!』

이어서 사관이 시를 지어 이를 한탄했다.

임금만의 고유한 형상(刑賞)의 대권을 감히 엿보고서

재빨리 개인적인 은혜를 베풀어 민심을 끌어 모았다.

청컨대 진씨가 제나라를 빼앗는 계책을 보라!

후한 덕을 베풀어 민심을 크게 감동시켰을 뿐이었다.

威福君權敢上侵(위복군권감상침)

輒將私惠結民心(첩장사혜결민심)

請看陳氏移齊計(청간진씨이제계)

只爲當時感德深(지위당시감덕심)

제경공은 안영을 상국으로 삼았다. 제나라의 민심이 모두 진씨에게로 쏠려 있다고 생각한 안영은 조용히 경공에게 그 일을 말하고 형벌은 너그럽게 하고 세금은 줄여서 걷도록 하며 생산을 발전시키며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고 은혜를 베풀어 백성들의 마음을 붙잡아야 두어야 한다고 간했다. 경공은 불행히도 그 말을 따를 수 있는 역량이 없었다.

한편 초나라의 영왕은 나라의 온 힘을 기우려 세운 장화궁의 낙성식에 제후들을 초청하였지만 참석한 제후라고는 오로지 노후 한 사람 밖에 없어 기분이 상해 있었다. 그리고 얼마 있지 않아 당진이 사기궁을 지어 제후들을 초청하자 제후들이 모두 축하의 사절을 보냈다는 소식을 듣게 된 초영왕은 마음속으로 제후들에게 불만의 뜻을 품게 되었다. 영왕은 오거를 불러 군사를 일으켜 중원을 쳐들어가 제후들의 버릇을 고쳐 놓고 싶은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오거가 자기의 생각을 말했다.

「대왕께서 덕으로써 제후들을 불렀는데 제후들이 오지 않는다면 그것은 죄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커다란 토목공사의 준공을 위해 제후들을 불렀는데 오지 않았다고 그 죄를 물으시고자 하신다면 어찌 제후들이 복종하겠습니까? 대왕께서 꼭 용병을 행해 중원의 제후국들에게 위엄을 보이시려고 하신다면 반드시 죄가 있는 자를 골라 그 나라를 정벌하십시오. 그래야만 명분을 세울 수 있습니다.」

「근자에 죄를 물을 수 있는 나라들은 어떤 나라들인가?」

「채나라 세자 반(般)이 그 부군인 소후(昭侯)를 시해하고 채후의 자리에 오른 이래 이제 9년이 되었습니다. 대왕께서 처음에 제후들을 신성에서 소집했을 때 채후도 참석했지만 여러 제후들의 입장을 보아 차마 죽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시역의 죄는 비록 자손일지라도 법의 처단을 받아야 하는 법인데 하물며 그 자신에게는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고 채나라는 우리 초국과 가까이 있습니다. 만약에 우리가 채나라를 토벌하고 그 땅을 합병한다면 의를 세상에 밝힐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땅을 얻은 실익도 적지 않아 일거양득이라 하겠습니다.」

오거의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초왕을 모시는 근시가 와서 보고하였다.

「진나라가 상을 당했다고 소식을 전해왔습니다. 진후는 물에 빠져 죽어 공자유(公子留)가 그 뒤를 이었다고 합니다.」

「진나라의 세자 이름은 언사(偃師)라고 하여 제후들에게 이미 통보되어 명책(名策)에 이미 이름이 올라있습니다. 오늘 그 뒤를 이은 자가 공자유라고 하니 세자인 언사는 도대체 어디로 보냈단 말입니까? 이것으로 미루어 신이 헤아려 보건대, 진국에서도 필시 시역의 란이 일어났음에 틀림없습니다.」

《 제 69회로 계속 》

주석

①《시경(詩經)․소아(小雅)․북산(北山)》의 시구다.

溥天之下 莫非王土(부천지하 막비왕토), 하늘 아래 땅 모두, 왕토가 아닌 곳이 없고/ 率土之濱 莫非王臣(솔토지빈 막비왕신), 왕토에 사는 사람 모두, 왕의 신하가 아닌 자 없는데/ 大夫不均 我從事獨賢(대부불균 아종사독현), 대부들의 처사 공정하지 않아 나 홀로 많고 힘든 일 맡았네

②복구지법(僕區之法) : 초문왕이 제정한 초나라의 형법이다. 복(僕)은 은(隱)이고 구(區)는 익(匿)으로 장물과 죄인을 감추는 죄를 다스리는 법이다. 지금의 와장(窩藏)법 즉 장물법에 해당한다.

③양교(陽橋) : 현 산동성(山東省) 제남시(濟南市) 남 약 30키로 태산(泰山) 서쪽에 있었던 노나라 소유의 고을 이름.

④촉(蜀) : 양교(陽橋) 남동 10키로의 태산(泰山) 남쪽에 있었던 고을 이름.

⑤작자가 양무제(梁武帝) 소연(萧衍)이라는 설과 양무제의 아들 간문제(簡文帝) 소강(蕭綱)이라는 설이 있다.

⑥夫不能舍己, 必將取人,取人必多怨, 亡无日矣

⑦복수(濮水) : 춘추시대 때 중원을 동서로 흐르던 제수(濟水)의 지류. 하남성 형양시(滎陽市) 부근에서 발원한 제수는 동쪽으로 흐르다가 하남성 봉구현(封丘縣)에서 남북 두 갈래로 갈라진 후 다시 산동성 평음현(平陰縣)에서 다시 합류했다. 즉 복수(濮水)는 하남성 봉구현에서 북쪽으로 갈라진 제수의 지류다.

⑧교룡(蛟龍) : 하늘로 승천하여 용이 되기 전의 이무기를 말한다.

⑨필방(畢方) : 불을 입에 물고 다니면서 산이나 인가에 불을 일으키는 신화상의 새

⑩치우(蚩尤) : 산동, 하남, 하북의 경계상에 있던 구려(九黎)국의 군주였다가 병장기를 인류 최초로 만들어 황제(黃帝)에게 반기를 들었다. 탁록(涿鹿)의 들판에서 황제의 군사들과 싸웠다. 치우는 큰 안개를 일으켜 황제군을 혼란에 빠뜨렸으나 황제가 지남차(指南車)를 만들어 싸움에 임하자 치우가 싸움에 졌다. 치우는 황제에게 잡혀 살해되었다. 중국 사람들에게 군신(軍神)으로 추앙되고 있다.

⑪풍백(風伯) : 중국위 고대 신화에 나오는 바람을 주관하던 신. 사슴의 머리에 새의 형상을 가진 신(神)으로써 일명 비렴(飛廉)이라고 불리우는 바람을 일으키는 신

⑫우사(雨師) : 중국 고대신화에 나오는 비를 주관하는 신. 개구리 울음 소리를 내어 비를 내리게 하는 일명 병예(屛翳)라는 비의 신

⑬등사(螣蛇) : 용을 닮은 신사(神蛇). 구름을 일으켜 그 속에 몸을 감추고 날아다니는 용과 비슷한 뱀.

⑭곤(鯀) : 요(堯) 임금이 곤에게 황하의 치수 사업을 맡겼다. 곤은 거북과 매의 권유에 따라 강에 둑을 쌓으려고 했으나 물이 계속 불어나자 천제(天帝)로 부터 저절로 자라나는 식양(息壤)이라는 흙을 훔쳐 와 그것으로 황하의 제방을 쌓았다. 상제가 알고 대노하여 식양을 빼앗아 가 버린 바람에 황하가 범람하여 세상은 다시 대홍수로 시달리게 되었다. 요(堯)임금은 그를 우산(羽山)에 감금하여 죽였으나 그의 시체는 3년 동안이나 썩지 않았다. 그이 몸을 보검으로 자르자 그 안에서 아이가 나왔는데 이름을 우(禹)라 했다. 우는 순임금으로부터 선양을 받아 하나라를 세웠다.-사마천의 사기-

⑮삼대(三代) : 하(夏), 상(商), 주(周) 세 왕조를 가리킴

⑯위유(魏楡) : 지명 미상(未詳)

⑰고당(高唐) : 현 산동성(山東省) 제남시(濟南市) 북서의 고당현(高唐縣) 경내 동쪽.

[평 설]

초영왕(楚靈王)은 장화대(章華臺)를 짓고, 진평공(陳平公)은 사기궁(虒祁宮)을 지었다. 두 패권국의 군주가 마침내 대대적인 토목공사를 일으켜 백성들을 고통에 빠지게 하고 국가 재정을 탕진해서 축조한 아름다운 궁전을 제후들에게 과시한 것은 당시의 세상 풍조를 더욱 사치와 부패에 빠지게 했다. ‘사기궁의 락성식에서 새로운 노래를 판별하는 당진의 태사(太師) 사광의 이야기’는 경지에 이르게 된 음악가도 그와 같은 사치는 용납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위나라의 태사(太師) 사연(師涓)이 연주한 신곡을 알아들은 사광은 진평공에게 은(殷)나라를 멸망으로 이끈 주왕(紂王)의 전철을 밟으면 안 된다고 간했다. 이와 함께 돌인형들의 대화에 관한 기이한 이야기는 백성들이 분노하면 귀신도 원한을 갖게 된다는 생각을 반영하고 또한 백성들을 동원하고 재화를 낭비하여 사기궁의 축조를 위해 대대적인 토목공사를 일으킨 진평공을 비난한 것이다. 사광은 사치풍조를 일으킨 초영왕은 몸에 병이 들어 죽게 되는 진평공과 함께 조만간에 화를 입게 될 운명이라고 예언했다. 사광은 음악을 통하여 미래를 예언할 정도로 경지에 이른 음악가였다. 과도하게 사치하고 음란한 사회풍조는 나라를 패망으로 이끈다는 사광의 말은 지금도 영원불멸의 진리다.

《좌전(左傳)ㆍ소공(昭公) 23년》 기사의 ‘ 기궁을 완성한 당진국에 조현을 행하고 돌아가는 제후들 모두는 다른 마음을 품게 되었다.’라는 말은 비록 제후들이 당진을 방문하여 겉으로는 받드는 것처럼 했으나 마음속으로는 당진국의 행위에 대해 반감을 갖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당진국의 사기궁 축조는 확실히 제후들의 반감을 야기시켰고, 이에 신곡의 해석을 통하여 진평공을 비난한 사광은 그와 같은 제후들의 정서를 반영했다.

목록 비추천
1411
占쏙옙占쏙옙천
[일반] 제70회 殺兄簒位 劫侯尋盟(살형찬위 겁후심맹)

제70회 殺兄簒位 劫侯尋盟(살형찬위 겁후심맹) 세 형을 죽이고 초왕의 자리를 차지한 초평왕과 제와 노 두 나라를 겁박하여 회맹을 행하는 당
운영자 13-01-16 1404
[일반] 제3부-6권 이일대로- 목차

제6권 이일대로(以逸待勞) 제58회 說秦迎醫 獻藝殺敵(설진영의 헌예살적) 적국의 군주를 설득하여 명의 고완(高緩)을 모셔 와 그 주
양승국 04-05-11 1730
[일반] 제69회. 挾詐滅國(협사멸국) 巧辯服荊(교변복형)

제69회 挾詐滅國 巧辯服楚(협사멸국 교변복초) 속임수로 진채(陳蔡) 두 나라를 멸한 초영왕과 교묘한 변설로 초나라 대부들을 승복시킨 안영.
양승국 04-05-11 1945
[일반] 제68회. 師曠辯聲(사광변성) 散財買國(산재매국)

제68회 師曠辨聲 散財買國(사광변성 산재매국) 당진의 태사 사광은 새로운 노래를 식별하고 제나라의 진씨(陳氏)들은 사재를 털어 나라를 사다. 1
양승국 04-05-11 1662
[일반] 제67회. 計逐慶封(계축경봉) 弑侄簒奪(시질찬탈)

제67회 計逐慶封 弑侄簒奪(계축경봉 시질찬탈) 계략을 써서 경봉을 쫓아내 제장공의 원수를 갚은 노포계와 조카를 시해하고 왕위를 찬탈한 초영왕
양승국 04-05-11 2086
[일반] 제66회. 子鱄出奔(자전출분) 慶封獨相(경봉독상)

제66회 族滅寧喜 季札論音(족멸영희 계찰논음) 군주를 세운 공만을 믿다가 멸족당한 영희와 중원 제후국들의 노래소리를 듣고 국운을 예언한 계찰
양승국 04-05-11 1508
[일반] 제65회. 弑君專權(시군전권) 納主擅政(납주천정)

제65회 弑君轉權 兩世逐主(시군전권 양세축주) 군주를 시해하고 정권을 오로지한 제나라의 최저, 경봉과 대를 이어 군주를 쫓아낸 위나라의 대
양승국 04-05-11 1734
[일반] 제64회. 欒氏滅族(란씨멸족) 杞梁死戰(기량사전)

제64회 欒盈滅族 杞梁死戰(란영멸족 기량사전) 곡옥성에서 멸족을 당한 란영과 거성(莒城)의 차우문에서 전사한 제장(齊將) 기량 1.
양승국 04-05-11 1506
[일반] 제63회. 叔向被囚(숙향피수) 智劫魏舒(지겁위서)

제63회 叔向被囚 智劫魏舒(숙향피수 지겁위서) 죄수가 된 당진의 대현(大賢) 숙향을 구한 노신 기해와 기지로 위서(魏舒)를 붙잡아 신강성을 구
양승국 04-05-11 1421
[일반] 제62회. 諸侯圍齊(제후위제) 計逐欒盈(계축란영)

제62회 諸侯圍齊 計逐欒盈(제후위제 계축란영) 제후들은 군사를 합하여 제나라를 포위하고 당진의 세가들은 계략을 꾸며 란영을 쫓아냈다.
양승국 04-05-11 1455
[일반] 제61회. 三駕服鄭(삼가복정), 因歌逐主(인가축주)

제61회 三駕服鄭 因歌逐主(삼가복정 인가축주) 어가를 세 번 움직여 정나라를 굴복시켜 패주가 된 진도공과 노래를 전해 듣고 군주를 쫓아낸
양승국 04-05-11 1854
[일반] 제60회. 分軍肆敵(분군사적), 三將鬪力(삼장투력)

제60회 分軍肆敵 偪陽鬪力(분군사적 복양투력) 군사를 나누어 적군을 지치게 만든 순앵과 복양성 싸움에서 용력을 뽐낸 노나라의 세 장군
양승국 04-05-11 1644
[일반] 제59회. 胥童大亂(서동대란) 趙氏復興(조씨부흥)

제59회 胥童大亂 趙氏復興(서동대란 조씨부흥) 당진의 나라 안을 크게 어지럽히는 서동과 조씨 집안이 다시 일으키고 죽은 정영(程嬰) 1.
양승국 04-05-11 1691
[일반] 제58회. 魏相迎醫(위상영의) 神弓養叔(신궁양숙)

제58회 魏相迎醫 神弓養叔(위상영의 신궁양숙) 진백을 설득하여 명의를 빌려온 당진의 위상(魏相)과 춘추 제일의 명궁(名弓) 양요기(養繇基) 1.
양승국 04-05-11 18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