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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1회. 二桃殺三士(이도살삼사) 取媳逐太子(취식축태자)
양승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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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제71회 二桃殺三士 取媳逐太子 (이도살삼사 취식축태자)

복숭아 두 개로 제나라의 세 장사를 죽인 안평중과

며느리를 가로채고 태자를 쫓아낸 초평왕 이야기

1. 전개강(田開疆)과 공손첩(公孫捷)

평구(平邱)의 회맹에서 돌아온 제경공은 비록 당진군의 위세에 눌려 할 수 없이 삽혈을 행하고 복종하는 척 했으나 당진에게는 패업을 계속 이어 나갈 원대한 포부가 없음을 알고 제환공의 패업을 다시 일으키려는 뜻을 품게 되었다. 경공이 상국 안영에게 말했다.

「당진은 중국 천하의 서북을 제패하고 나는 동남을 제패하면 되지 않겠소?」

「당진이 백성들을 고생시켜 분수에 맞지 않는 사기궁을 지어 제후들로부터 외면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주군께서 패자가 되고 싶다면 반드시 백성들을 잘 다스려야만 합니다.」

「백성들을 잘 다스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형벌을 줄이면 백성들의 원망이 줄어들고, 세금을 적게 거두어 드리면 백성들이 은혜를 알게 됩니다. 옛날 왕들은 봄에는 밭에 나가 백성들과 같이 밭을 갈아 농부들을 도와주고 여름에는 그 수확의 다과를 살펴 작황이 좋지 않은 백성들에게는 세금을 경감해 주었습니다. 어찌하여 주군께서는 옛 왕의 법도를 행하지 않으십니까?」

경공은 안영의 충언에 따라 즉시 번거로운 형벌을 없애고 창고에 쌓여 있던 곡식을 내어 가난한 백성들에게 빌려주었다. 온 나라의 백성들은 감격에 겨워 즐거워하였다. 이윽고 제나라 백성들의 마음을 어느 정도 샀다고 생각한 경공은 동방의 제후들을 향하여 조빙 사절을 보내라고 통고했다. 서자(徐子)가 경공의 말을 듣지 않았음으로 전개강(田開疆)을 장수로 삼아 군사를 출동시켜 서나라를 정벌하도록 했다. 전개강이 포수(蒲隧)①라는 곳에서 크게 싸워 서나라의 장수 영상(嬴爽)을 사로잡아 참하고 그 휘하의 갑병 5백 명을 포로로 했다. 서자가 몹시 두려워하여 제나라에 사자를 보내 화의를 청했다. 경공이 담자(郯子)②와 거자(莒子)에게 통고하여 서자와 같이 포수에서 모여 회맹을 행하겠다고 했다. 서자가 와서 갑보(甲父)③의 정(鼎)을 뇌물로 제경공에게 바쳤다. 당진의 소공과 그 신하들은 제경공이 제후들을 소집하여 회맹을 한 사실을 알았으나 감히 죄를 물을 수 없었다. 제나라는 이때부터 더욱 강성해지기 시작하여 당진과 같이 패자가 되어 천하의 제후들 위에 군림하게 되었다.

경공은 전개강이 서나라를 평정한 공로로 전호를 주어 록으로 삼게 하고 고야자는 자라의 목을 벤 공로를 치하하여 즉시 그에게 오승지빈(五乘之賓)의 작위를 내리고 행차할 때에는 그의 수레에 오승지빈이라고 쓴 정기를 꽂고 다니게 하였다. 전개강이 다시 공손첩이라는 사람이 용기가 있다고 경공에게 천거하였다. 공손첩의 얼굴은 짙은 남색이었고 두 눈은 밖으로 툭 튀어나오고 신장은 한 장이 넘고 힘은 천균(千鈞)의 물건을 들 수 있는 장사였다. 공손첩의 용모를 보고 기이하게 생각하던 경공이 어느 날 그를 호위무사로 삼아 동산(桐山)으로 사냥을 나갔다. 일행이 사냥에 열중해 있는데 갑자기 산 속에서 눈이 치껴 올라가고 이마가 하얀 호랑이 한 마리가 나타나서 큰 소리로 포효하더니 허공을 박차고 날라서 경공의 수레를 끌던 말을 덮쳤다. 경공이 보고 크게 놀랐다. 그때 공손첩이 경공의 곁에 있다가 수레에서 뛰어내려 아무런 무기도 들지 않고 맨 주먹으로 호랑이를 향해 달려들었다. 왼손으로는 호랑이의 목덜미를 움켜잡고 오른손으로는 주먹을 휘둘러 단 한 주먹에 그 거대한 호랑이의 머리를 터뜨려 죽여 경공을 위험한 순간에서 구해 냈다. 경공이 공손첩의 용기를 가상하게 여겨 그에게도 역시 오승지빈의 작위를 내렸다. 공손첩, 전개강, 고야자 세 장사는 함께 결의형제를 맺고 자기들 스스로를 제나라의 삼걸(三傑)이라고 높여 불렀다. 그 세 사람은 큰 공을 세웠다고 으스대며 완력을 믿으면서 입으로는 호언장담을 일삼고 남을 업신여기며 시정의 여염집을 돌아다녔다. 또한 조정의 공경대부들 조차도 무시하며 안하무인으로 행동했다. 심지어는 제경공 면전에서 서로 반말을 하면서 전혀 예의라고는 갖추지 않았다. 그러나 경공이 그들의 재주와 용기를 아까워하여 잠시 두고볼 뿐이었다.

2. 二桃殺三士(이도살삼사)

- 복숭아 2개로 세 장사를 죽이다. -

그때 제나라 조정에는 간망스러운 신하가 한 명 있었는데 이름을 양구거(梁邱据)라고 했다. 양구거는 어떻게 하면 경공의 마음을 받들어 즐겁게 해 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만을 하고 있던 사람이었다. 경공이 양구거를 매우 총애하였다. 양구거가 안에서 경공에게 아첨하여 총애를 돈독히 받게 되자 밖으로는 삼걸들과 교분을 맺고 그들 무리의 세력을 키우려고 하였다. 더욱이 그때는 진무우(陳无宇)가 인정을 많이 베풀어 제나라의 백성들로부터 인심을 많이 얻고 있는 때라서 이미 제나라의 국권이 옮겨가려는 징조가 잠복해 있던 상태였다. 안평중은 양구거와 교분을 맺게 된 삼걸 중의 전개강은 진씨의 일족이라 후일에 두 세력이 결탁하여 목소리를 높이면 국가의 우환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안영은 매 번마다 삼걸을 죽이려고 했으나, 경공이 안평중의 말을 듣지 않게 되면 오히려 삼걸로부터 원한을 사지 않을 까 걱정하여 감히 일을 행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고 있던 어느 날 갑자기 옛날 당진의 군주가 소집한 평구의 맹회에 불복했던 노소공이, 대신 제나라와 수호를 맺기 위해 친히 수레를 타고 경공에게 조빙을 드리기 위해 내조하였다. 제경공이 술자리를 마련하여 노소공을 환대하였다. 노나라와 제나라의 상례는 숙손야(叔孫婼)와 안영(晏嬰)이 각각 맡았다. 삼걸은 칼을 허리에 차고 단하에 서 있었는데 그 모습이 의기양양하고 방약무인했다. 두 나라 군주들이 술잔을 권커니 받거니 하여 술자리가 거나하게 어우러졌을 때에 안영이 자리에 일어나 말했다.

「후원에 금도(金桃)가 이미 익었습니다. 명을 내리시면 새로 익은 복숭아를 따와 두 군주님들의 축수를 빌까 합니다.」

경공이 안영의 말을 허락하여 후원을 책임지고 있던 관리에게 명하여 금도를 따와 바치라고 하였다. 안자가 다시 말했다.

「금도는 참으로 얻기 힘든 과일입니다. 신이 마땅히 직접 살펴보겠습니다.」

안영이 즉시 열쇠를 받아 가지고 후원을 쪽으로 향하여 걸어가더니 이윽고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경공이 노소공을 보고 말했다.

「이 복숭아는 선공이신 장공 때에 동해의 해변가에 살던 사람이 그 복숭아씨가 큰 것을 보고 가져와 바쳤습니다. 복숭아의 이름이 만수금도(萬壽金桃)라 하는데 그 원산지는 바다건너 도색산(度索山)4)이라고 하며 다른 이름으로는 반도(蟠桃)5)라고도 합니다. 심은 지 30년이 넘어 잎은 비록 무성하게 되었지만 꽃이 피어 열매를 맺지 않았습니다. 금년에 열매가 비로소 몇 개가 열렸는데 과인이 이를 아까워하여 후원의 문을 자물쇠로 잠그게 하여 아무도 접근하지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오늘 군주께서 왕림하셨으니 과인이 감히 혼자 그것을 맛볼 수 없이 이렇게 특별히 노나라의 현군, 현신들과 같이 맛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노소공이 두 손을 높이 올려 읍을 하며 사의를 표했다.

그리고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자 안자가 후원을 돌보고 있던 관리들 데리고 조각을 새겨 겉을 화려하게 장식한 쟁반에 복숭아 6개를 담아 바쳤다. 복숭아의 크기가 마치 사발만 하고 색깔은 이글이글 타오르는 불꽃과 같이 새빨갛고 향기는 온 실내를 진동시켰다. 진실로 세상에 보기 드문 진기한 과일이었다. 경공이 안자를 향해 물었다.

「익은 복숭아의 수가 어이하여 이렇게 적습니까?」

「아직 가지에는 덜 익은 복숭아가 서너 개 더 달려 있지만 익은 복숭아만 골라 따왔습니다.」

경공이 안자에게 명하여 술을 따라 소공에게 바치게 하였다. 안자가 두 손으로 옥잔에 술을 따라 바쳐 들고 공손히 노소공 앞으로 나아가 올렸다. 좌우의 시종들이 금도를 쟁반에서 꺼내어 제공과 노소공에게 먼저 각각 한 개씩을 바치자 안평중이 치사의 말을 올렸다.

「복숭아의 크기가 마치 항아리만 하니 세상에 보기 드문 진기한 과일이라 하겠습니다. 두 분 군주님들께서는 잡수시어 천세를 누리도록 하십시오!」

노후가 술을 마시고 복숭아를 집어 입으로 베어 물었다. 감미롭기가 그지없어 과연 진미라고 찬탄해 마지않았다. 경공의 차례가 되자 역시 술을 한잔 마시고 복숭아를 들고 먹었다. 경공이 말했다.

「이 복숭아는 얻기가 참으로 어려운 것입니다. 숙손야(叔孫婼) 대부께서는 천하에 어진 이름이 드높으신 분이시고 오늘 또한 이번에 상례를 맡아 공을 세우고 계시니 마땅히 복숭아를 드시도록 하십시오.」

숙손야가 자리에서 일어나 무릎을 꿇으면서 경공을 향해 말했다.

「신의 어진 이름은 안상국에 미치지 못합니다. 상국께서는 국정을 바로 잡으시고 외국의 제후들을 제나라에 복종시켰으니 그 공이 작다고 할 수 없습니다. 이 복숭아는 마땅히 상국이 드셔야 할 것입니다. 어찌 감히 제가 상국을 제치고 무례를 저지르겠습니까?」

「숙손 대부께서 겸양하시어 안상국에게 양보를 하시니 상국에게도 함께 각기 술 한 잔씩에 복숭아 한 개를 같이 올리라!」

두 사람이 같이 무릎을 꿇고 술잔을 받아 마시고 복숭아를 들고 감사의 말을 올리고 자기자리로 돌아갔다. 안자가 일어나 경공을 향해 말했다.

「지금 쟁반에는 아직 복숭아 두 개가 남아 있습니다. 주공께서는 당하에 서 있는 여러 신하들에게 령을 전하여 스스로 자기의 높고 중한 공로를 말하게 한 다음 이 복숭아를 먹게 하여 그의 어진 것을 표창하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참으로 좋은 생각입니다.」

경공이 즉시 좌우에게 말하여 자기의 뜻을 단하의 여러 신하들에게 전하게 하였다. 스스로 자기가 세운 공이 높고 중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에 남은 복숭아를 먹고 싶은 사람은 반열에서 나와 스스로 자기의 공을 말하면 상국이 판단하여 그 복숭아를 하사한다고 하였다. 그러자 공손첩이 몸을 뻣뻣이 세우며 반열에서 나와 연회석 앞에 서서 먼저 말했다.

「소신은 옛날 주공이 동산(桐山)에서 사냥하실 때 따라가 주공을 해치려고 한 호랑이를 맨손으로 잡아 주공을 위험에서 구한 공을 세웠습니다. 그만하면 그 복숭아를 먹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무너져 내리는 하늘을 붙들어 어가를 보호했으니 그 공은 참으로 크다 하겠소! 술 한 잔과 함께 복숭아를 가지고 반열에 돌아가도록 하시오.」

고야자(古冶子)가 보더니 분연히 반열 앞으로 나가 말했다.

「호랑이 한 마리 잡은 것을 가지고 어찌 큰 공을 세웠다고 하시는 것입니까? 나는 옛날에 요사스러운 자라를 황하를 건널 때 잡아 주군을 위험에서 구하여 안전하게 모셨습니다. 이 공이라면 어떻습니까?」

경공이 고야자의 공을 치하했다.

「그때 파도가 높이 일어 장군이 요사스러운 자라를 죽이지 않았다면 필시 배가 뒤집혀 우리 일행은 물에 빠져 죽었을 것이오. 이것은 세상을 덮을 수 있는 큰 공로라! 술 한 잔을 마시고 복숭아를 먹으라! 어찌 의심하는가?」

안자가 황망하게 고야자에게 술잔을 내리고 마지막 남은 복숭아를 내어 주었다. 그러자 전개강이 반열에서 나오며 위통을 벗어부치고 보무도 당당하게 걸어 나와 말했다.

「나는 옛날에 주군의 명을 받들어 서나라를 정벌하러 가서 그 장수의 목을 베고 갑병 5백 명을 사로잡았습니다. 서자가 두려워하여 갑보(甲父)의 정(鼎)을 바쳐 회맹의 장소에 나오게 하였습니다. 담과 거 두 나라의 군주도 우리의 위세를 두려워하여 일시에 모두 모여 주군을 맹주로 받들게 되었습니다. 그 공이라면 복숭아를 먹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안자가 경공을 향해 돌아서며 말했다.

「전개강 장군의 공은 전의 두 장군과 비교하면 열 배나 더 높고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복숭아가 떨어져 버려 하사할 수가 없으니 술이나 한 잔 내리고 내년이 되기를 기다리는 수밖에는 별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장군의 공이 가장 큰데 애석하게도 너무 늦게 고하여 하사할 복숭아가 떨어져 버려 그 공로가 빛이 나지 않게 되었도다!」

전개강이 허리에 찬 칼을 잡고 소리 높여 말했다.

「자라의 목을 베고 호랑이를 주먹으로 때려잡은 것쯤은 나라의 아주 작은 일에 불과합니다. 나는 산과 강으로 막힌 나라 밖의 험난한 천리 길을 행군하여 혈전 끝에 공을 이루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복숭아를 먹지 못하고 두 나라 군주들과 신하들 사이에서 욕만 당했으니 이것은 만대의 웃음거리라 하겠습니다. 무슨 면목으로 조정의 높은 자리에 서 있을 수가 있겠습니까?」

전개강이 말을 마치자 칼을 뽑아 들더니 스스로 자기의 목을 찔러 죽었다. 공손첩이 크게 놀라 그 역시 칼을 빼 들며 큰 소리로 외쳤다.

「나는 하찮은 공을 세워 복숭아를 먹었는데 전장군은 큰 공을 세우고도 오히려 먹지 못했으니 이것은 내가 복숭아를 그에게 양보하지 않아서이다. 나의 염치없는 행동으로 다른 사람이 죽었는데 내가 그를 따를 수 없다면 그것은 또한 용기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공손첩이 말을 마치자 그 역시 칼로 목을 찔러 죽었다. 그러자 고야자가 분연히 반열에서 나와 큰 소리로 소리쳤다.

「우리 세 사람은 골육과 마음을 하나로 하여 동생동사하기로 결의형제를 맺은 사이인데 두 사람이 이미 죽어 나만 홀로 구차하게 살면 내 마음이 어찌 편하겠는가?」

고야자 역시 칼을 뽑아 자기 목을 찔러 죽었다. 경공이 사람을 시켜 막으려 했지만 삽시간에 이루어진 일이라 어쩔 수가 없었다. 노소공이 자리에 일어서며 말했다.

「과인은 저 세 사람의 신하는 모두 천하에 보기 드문 장사라고 들었는데 하루아침에 모두 죽어 버렸으니 참으로 애석한 일입니다.」

경공이 듣고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얼굴색을 붉히며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안영이 조용히 경공 앞으로 다가와 말했다.

「저 자들은 모두 우리나라에 널려 있는 한 사람의 장사에 지나지 않습니다. 비록 약간의 공로는 있다 하지만 입에 담아 화제를 삼기에는 부족한 인물들이니 너무 상심하시지 말기 바랍니다.」

「상국에는 이와 같은 용장들이 얼마나 더 있습니까?」

「조당에 앉아서 계책을 마련하여 나라의 위엄을 수천 리 밖까지 떨칠 수 있는 장상의 재주를 갖춘 인물들은 수십 명이 넘고 혈기만 믿고 만용을 부려 과군의 부림이나 받을 수 있는 보잘것없는 자들은 사방에 널려져 있는데 그 세 사람이 생사가 제나라의 앞날에 무슨 영향을 미치겠습니까?」

안영의 말에 경공의 마음이 비로소 풀리기 시작하였다. 안자가 다시 두 나라의 군주에게 잔에 술을 따라 바치자 즐거운 마음으로 마신 다음 술자리를 파했다. 제나라의 3걸의 무덤은 현재 탕음리(湯陰里)6)라는 곳에 있는데 후한의 제갈공명이 양보음(梁父吟)이라는 노래를 지어 불렀다.

제나라 임치성 동문 밖으로 걸어 나서면

탕음리가 멀리서 보이는데

그곳에는 무덤이 세 개가 있다.

모두가 같은 모습으로 나란히 늘어져 있다.

步出齊東門(보출제동문)

遙望湯陰里(요망탕음리)

里中有三墳(리중유삼분)

累累正相似(누누정상사)

지나가던 사람이 누구의 무덤이냐고 물으면

전개강, 고야자, 공손첩 삼걸의 무덤이라 한다.

힘은 남산을 등에 업을 수 있었고

지략은 능히 지기(地紀)를 끊어 놓을 만 했는데

問是誰家冢(문시수가총)

田開古冶子(전개고야자)

力能排南山(력능배남산)

文能絶地紀(문능절지기)

하루아침에 음모에 떨어져

복숭아 두 개로 삼사가 죽음을 당했도다!

누가 능히 삼사를 이렇게 죽일 수 있었는가?

제나라의 상국 안자이었더라!

一朝中陰謀(일조중음모)

二桃殺三士(이도살삼사)

誰能爲此者(수능위차자)

相國齊晏子(상국제안자)

3. 才士不但擇主 兼欲擇友(재사부단택주 겸욕택우)

- 재사는 모실 군주뿐만 아니라 같이 일하는 자들도 가리는 법이다. -

노소공이 작별을 고하고 돌아가자 경공이 안영을 불러 물었다.

「경은 연회석 상에서 호언장담을 하여 비록 우리 제나라의 체면을 일시적으로 세우기는 했지만 단지 걱정되는 점은 삼걸의 뒤를 이을 만한 장사를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요. 이를 어찌해야 되겠소?」

「신에게는 천거할 사람이 한 명 있는데 3걸을 대신 할 만 합니다.」

「어떤 사람입니까?」

「전양저(田穰苴)라는 사람이 있는데 지략은 능히 대군을 부릴 수 있고 무예는 능히 적을 위압할 수 있는 재능을 갖춘 사람이라 진실로 대장의 재목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는 전개강의 일족이 아닙니까?」

「이 사람은 비록 전씨 문중의 사람이나 서얼의 미천한 출신이라 전씨들에게 따돌림을 받아 지금은 동해의 바닷가의 한적한 곳에 살고 있습니다. 주군께서 만약 대장의 재목을 찾으시려 하신다면 이 사람보다 능력이 뛰어난 인재는 찾기 어려울 것입니다.」

「경이 이미 그의 능력을 이미 알았다면 어찌하여 일찍이 나에게 고하여 천거하지 않았습니까?」

「능력을 갖춘 선비는 자기의 군주를 가려 섬길 뿐만 아니라 또한 같이 일할 친구들도 가리는 법입니다. 양저같은 훌륭한 사람이 어찌 전개강과 고야자 같은 혈기만 믿고 방자하게 구는 하찮은 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겠습니까?」

경공이 안자의 말에 입으로는 거저 「예, 예」 하고 대답을 하고 있었지만 안자가 천거하는 사람이 결국은 진씨와 같은 동족임을 싫어하여 양저의 발탁을 주저하며 마음을 정하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변방의 관리가 급보를 보내 왔다.

「당진이 우리 제나라의 삼걸이 모두 죽어 버렸다는 소식을 듣고 군사를 일으켜 우리의 변경 고을인 동아(東阿)로 쳐들어오고 북쪽의 연나라도 역시 이 틈을 타서 북쪽 변경을 침입하여 소란하게 하고 있습니다. 」

경공이 크게 놀라 다시 안자를 불러 비단을 예물로 준비하여 동해의 해변으로 가서 양저를 데려와 입조시키라고 명했다. 양저가 입조하여 병법에 대해 논하니 경공이 듣고 마음속으로 매우 만족해하였다. 그날로 양저를 대장의 직을 제수하고 병거 5백 승을 동원하여 당진과 연 두 나라의 병사들을 물리치라고 했다. 양저가 경공에게 청했다.

「신은 원래 동해의 한적한 곳에 살고 있던 비천한 출신인데 주군께서 발탁하시어 병권을 맡기셨으니 다른 사람들이 아마 마음속으로 복종하지 않을 것입니다. 원컨대 주군께서 사랑하시어 백성들이 평소에 존경하고 떠받드는 총신 한 분에게 감군(監軍)으로 명하시면 신의 령이 군사들에게 설 것입니다.」

경공이 그 말을 따라 자기가 가장 사랑하는 공족 출신의 신하인 장가(庄賈)를 불러 양저가 이끄는 군영으로 가서 감군의 직을 수행하라고 명했다. 양저와 장가 두 사람이 경공에게 치사를 드리고 물러 나왔다. 두 사람이 조문 밖으로 나오자 장가가 양저에게 출병하는 날짜를 물었다. 양저가 대답했다.

「날짜는 내일이고 시간은 오시(午時)오. 내가 군문에서 대부를 기다렸다가 같이 출군하겠소! 절대 시간을 어기지 마시오!」

양저가 말을 마치고 가 버렸다. 다음날 오전에 양저가 먼저 군중에 당도하여 군리를 부르더니 나무를 세워 표시를 세운 다음 해의 그림자를 살피게 하였다. 한편으로는 사람을 보내어 장가를 재촉하여 시간에 늦지 않도록 하였다.

4. 將在軍中 不受君命(장재군중 불수군명)

- 군중의 장수는 왕의 명령이라 할지라도 명을 받들지 않는다.

장가라는 위인은 나이가 어리고 평소에 그 신분이 높다고 교만한 자였다. 경공의 총애를 믿고 양저 같은 사람은 안중에도 두지 않았는데 지금은 자기도 감군의 직을 받았으니 자기의 권세가 양저에 미치지 못할 것이 없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장가는 오고가는 완급은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날 아침이 되자 장가의 친척과 손님들이 전별연을 위한 술자리를 마련하고 장가를 끌고 가서 술을 권하자 자리에 계속 머무르면서 유쾌하게 술을 받아 마셨다. 양저가 보낸 사람이 와서 계속해서 독촉했지만 시간에 늦는 것을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양저가 계속 장가를 기다리다가 막대기의 해 그림자가 서쪽으로 넘어가는 것을 보고 군리에게 시간을 묻자, 시간은 마침내 오시를 지나 미시가 되었음을 알렸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장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양저가 즉시 막대기를 뽑아 버리고 다시 물시계의 누수(漏水)를 땅에 쏟아 버리라고 명령하였다. 이윽고 양저가 단상에 올라 군사들을 향하여 훈령을 내리고 이어서 맹세를 한 다음 군사들이 지켜야 할 조항을 천명하였다. 호령을 끝내자 시간은 이미 신시가 끝날 때 쯤 되어 해가 서산으로 넘어 가려고 했다8). 그때서야 장가가 탄 커다란 수레가 네 필의 말에 끌려오고 있는 모습이 보이더니 여유를 부리며 한가한 모습으로 다가왔다. 얼굴에 술기운을 가득 품고서 군문에 당도한 장가는 좌우의 부축을 받으며 천천히 단위로 올라갔다. 양저가 단위에서 자세를 고쳐 앉으며 정색을 하며 일어나지도 않고 단지 묻기만 했다.

「감군은 어찌하여 약속한 시간이 지나서 왔소?」

장가가 두 손을 높이 올려 인사를 하며 말했다.

「오늘 먼 원정길을 떠난다고 하여 친척들과 옛 친구들이 술을 가져와 전별연을 마련하여 그 자리에 참석하느라 이렇게 늦게 되었습니다.」

「무릇 장수된 자들은 군명을 받는 날부터는 곧바로 그 가족을 잊어야 하며, 군중에 임하는 날짜를 약속할 때는 그 친척과 친구들을 잊어야 하는 법이다. 또한 북채를 손에 잡거나 시석을 무릅쓰고 적진을 향해 돌진할 때는 자기 몸을 돌보지 않아야 하는 법이다. 적국의 침략으로 나라가 능멸을 당하여 소란스러운 변경으로 인하여 주군께서 잠을 편히 주무시지 못하고 음식의 맛도 느끼지 못하시며 노심초사하시고 계시다. 그래서 삼군의 군사들을 우리 두 사람에게 내어 주시어 아침저녁으로 적군을 몰아내어 공을 세워 누란의 위기에 처한 백성들의 위급함을 구하라고 당부하셨다. 그런데 그대는 어찌하여 친구들과 음주를 하며 즐기느라 엄중한 시간을 어겼는가?」

장가가 그때도 여전히 얼굴에 웃음기를 머금으며 양저를 향해 변명했다.

「어쩌다 약속시간을 어기게 되었으니 원수께서는 나를 너무 책하지 말기 바랍니다.」

양저가 단 위에 놓인 탁자를 발로 차며 자리에 일어나며 말했다.

「너는 주군의 총애를 믿고 군심을 태만하게 하니 만약에 우리가 적군을 눈앞에 두고도 네가 이렇게 처신한다면 어찌 일이 어긋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겠느냐?」

즉시 군정사(軍政司)를 불러 대령시켜 물었다.

「군법에 약속시간을 지나서 오게 되면 어떤 죄에 해당되는가?」

군정사가 대답했다.

「참수형에 해당합니다.」

장가가 군정사의 입에서 ‘참(斬)’이라는 말을 듣자 그때서야 비로소 두려운 생각을 갖게 되어 그 자리에서 달아나기 위해 단 밑으로 내려가려고 했다. 양저가 수하들에게 큰 소리로 외쳐 장가를 붙들어 원문 밖으로 끌고 가서 참수형에 처하도록 했다. 장가가 놀라 술기운이 달아나며 무릎을 꿇고 애걸복걸하며 ‘목숨을 끊는 것은 너무 하지 않는가!’라고 빌었다. 장가를 모시던 좌우의 종자들이 황급하게 제후에게 달려가 장가가 죽게 되었음을 알리고 빨리 부절을 보내 장가의 목숨을 구해야 한다고 고했다. 경공도 역시 대경실색하여 급히 양구거를 불러 부절을 가져가게 하여 특별히 장가의 죄를 한번만 용서해 달라는 유지를 전하게 했다. 경공은 양구거가 시간에 늦게 당도하여 장가의 목숨을 구하지 못하게 될 것을 염려하여 그에게 속도가 빠른 초거를 타고 질풍같이 달려가라고 당부하였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장가는 참수되어 그의 머리는 원문 앞에 걸려 있었다. 양구거가 아직 그 사실을 알지 못하고 손으로 경공이 내린 부절을 받들고 군중의 막사를 바라보고 마차를 달리게 하였다. 양저가 소리쳐 초거를 멈추게 하고 옆에 있던 군정사에게 물었다.

「군중에는 수레를 타고 달리지 못하게 되어 있다. 지금 당도한 사자는 어떤 죄에 해당하는가?」

군정사가 대답했다.

「군법에 역시 참수형에 해당합니다.」

양구거의 얼굴이 흙색으로 변하더니 몸을 사시나무 떨듯 하더니 말했다.

「군주의 명을 받들어 온 것이지 저하고는 아무 상관없는 일입니다.」

「군명으로 왔다 하니 군법에 따라 죽일 수는 없겠다. 그러나 군법은 시행하지 않을 수 없다.」

양저는 즉시 군령을 내려 양구거가 타고 온 초거는 부셔 버리고, 초거를 끌던 참마는 끌어다 목을 베어 왕의 사자가 지은 죄를 벌하는 것을 대신 했다. 양구거가 간신히 목숨을 구해 가지고 목을 잔뜩 움츠리고 쥐새끼의 모습을 하고 달아났다. 그래서 양저가 이끄는 삼군의 군사들은 떨지 않는 사람이 없게 되었다. 양저가 군사들을 이끌고 교외를 미처 빠져나가기도 전에 당진의 군사들은 이미 소문을 듣고 물러가 버렸다. 연나라 군사들도 역시 하수를 건너 북쪽의 자기나라로 돌아가 버렸다. 양저가 그 뒤를 추격하여 연나라의 군사들의 수급을 만 여 개나 베었다. 연나라가 대패하여 뇌물을 바치면서 화의를 청해 왔다. 양저가 군사를 물리쳐 회군할 때가 되자 경공이 친히 교외에게까지 나와 양저에게 대사마(大司馬)의 벼슬을 내리고 제나라의 병권을 맡겼다. 후세의 사관이 시를 지어 이 일을 노래했다.

총신도, 부절을 지닌 사자도 형을 면치 못하니

국법은 무사하여 한 번 내리면 필히 행하도다!

양저가 오늘 일어나 공을 이룰 수 있었음은

적개심을 크게 일으켜 창생을 위로했기 때문이었다!

寵臣節使且罹刑(총신절사차이형)

國法無私令必行(국법무사령필행)

安得穰苴今日起(안득양저금일기)

大張敵愾慰蒼生(대장적개위창생)

중원의 제후들이 양저의 명성을 듣고 모두가 두려워하여 마음속으로 복종하였다. 경공이 나라 안의 일은 안영에게 나라 밖의 일은 양저에게 맡기자 제나라는 크게 다스려지고 군사들은 용맹스럽게 되었다. 나라의 변경이 안정이 되고 나라는 잘 다스려지자 경공은 매일 사냥에 술을 마시며 마치 옛날에 관중에게 나라의 모든 일을 맡기고 자기는 줄과 사냥을 즐긴 환공과 같이하였다.

5. 將相治國 佞臣樂身(장상치국 영신락신)

- 장상과는 나라를 다스리고 영신과는 즐거움을 누리다. -

하루는 경공이 궁중에서 희첩들과 같이 술을 마시다가 밤이 이슥해지자 마음이 흡족하지 못했다. 갑자기 안영이 생각이 나서 좌우에게 명하여 술단지와 술 마시는 기구들을 꾸리게 한 다음 술자리를 안영의 집으로 옮기라고 하였다. 사자가 앞서 달려가 안영에게 경공이 방문할 것이라는 것을 알렸다. 안영이 검은 관복을 입고 허리띠를 단정하게 맨 다음에 홀(笏)을 두 손으로 들고는 대문의 밖으로 나가 경공이 오기를 기다렸다. 수레가 당도하여 경공이 미처 내리기도 전에 안영이 앞으로 나가 맞이하며 황망한 태도로 물었다.

「이 야심한 밤에 갑자기 소신의 집에 왕림하시니 갑자기 제후들에게 무슨 일이 있어서 입니까? 아니면 나라에 무슨 일이 있어서 입니까?」

「아무 일도 없소!」

「그렇다면 주군께서 어쩐 일로 야심한 시간에 밤길을 달려 신의 집에 왕림하시는 것입니까?」

「상국께서 번거로운 정무에 노고가 많으셔서 오늘 과인만 좋은 술맛과 즐거운 음악을 혼자 즐길 수 없어 상국과 같이 즐기러 왔소!」

「무릇 국가를 안정하게 하고, 제후들을 평정하는 일이라면 신이 시간에 관계하지 않고 계책을 세우겠지만 보궤(簠簋)9)를 정돈하여 술상을 마련하는 사람들은 주공의 좌우에 많이 있는데 신이 감히 그 일은 하지 못하겠습니다.」

경공이 수레를 돌리라고 명하여 사마양저의 집으로 향하게 하였다. 전번과 똑같이 시종이 먼저 달려가 경공의 행차를 양저에게 알렸다. 사마양저가 관을 쓰고 끈으로 붙들어 맨 다음 갑옷을 입고 손에는 극을 들어 무장을 갖춘 다음 대문 앞으로 나와 경공이 오기를 기다렸다. 경공의 수레가 다가오자 앞으로 나가 무릎을 꿇으며 물었다.

「제후들이 군사들을 이끌고 우리나라를 쳐들어 왔습니까? 아니면 혹시 대신들 중에 반란을 일으킨 자가 있습니까?」

「없소.」

「그런데 어찌하여 이 야심한 밤에 신의 집에 어가를 몰고 행차하신 것입니까?」

「과인이 별 뜻이 있어서가 아니라 군무에 열중하여 노고가 많은 장군을 생각하던 참에 마침 좋은 술과 즐거운 음악이 있어 장군과 함께 즐겨 볼까 하고 왔소.」

「무릇 나라의 변경을 어지럽게 하는 외적을 물리치고 란을 일으킨 반역자들을 처단하기 위해서 주공과 함께 대책을 세우는 일은 신이 감히 받들어 모시겠지만 술상을 준비하고 그 위에 보궤를 올려놓는 일은 할 수 있는 사람들은 주군의 좌우에 적지 않은데 어찌하여 그런 일을 갑옷을 입고 싸움을 하는 장군에게 시키시려 하십니까?」

경공이 머쓱해져 같이 술을 마시고 싶은 흥취를 잃어 버렸다. 좌우의 시종들이 물었다.

「이만 궁으로 돌아가시겠습니까?」

「양구거의 집으로 수레를 몰아라!」

시종이 앞서 달려가 양구거에게 경공의 행차를 알렸다. 경공의 수레가 미처 양구거의 집에 당도하기도 전에 양구거가 왼손에는 거문고를 오른손에는 피리를 들고 노래를 크게 부르며 골목길을 걸어 나와 경공을 영접했다. 경공이 크게 기뻐하여 양구거의 집에 들어가 어의와 관을 벗어버리고 양구거와 함께 같이 음악을 듣고 술을 마시며 즐거워하던 중에 닭 우는 소리를 듣고야 궁으로 돌아왔다. 다음날 안영과 양저가 같이 입조하여 경공에게 지난밤의 일을 사죄하였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경공이 야심한 밤에 신하의 집에 들러 음주로 밤을 지샌 일은 부당하다고 간했다. 경공이 듣고 말했다.

「과인에게 두 경이 없다면 어찌 내가 이 나라를 다스릴 수 있겠소? 그러나 또한 양구거 같은 신하가 없다면 과인이 어찌 이 세상을 즐겁게 살아 갈 수 있겠소? 과인이 두 경의 하는 일을 간섭하지 않을 터이니 두 경들도 과인의 일에 너무 간섭하지 말기 바라오!」

사관이 이 일을 두고 시를 지어 노래했다.

안영과 양저는 제나라를 떠받치고 있던 두 기둥이었는데

어찌 일반 소신(小臣)들과 같이 행동했겠는가?

제경공은 어진 신하에게 능히 나라 일을 맡길 수 있어

그의 아름다운 이름을 해동에 떨치게 되었다.

雙柱擎天將相公(쌍주경천장상공)

小臣便辟豈相同(소신편벽개상동)

景公得士能專任(경공득사능전임)

嬴得芳名播海東(영득방명파해동)

그때 중원에서는 많은 일들이 일어났으나 당진은 그 일들을 해결할 수 없었다. 당진의 소공이 재위 6년 만에 죽고 세자 거질(去疾)이 즉위하였다. 이가 당진의 경공(頃公)이다 경공 원년에 한기와 양설힐이 모두 죽어 위서가 상경이 되어 순력(荀躒), 범앙(范鞅) 등과 함께 당진의 정사를 맡아 다스렸다. 그러나 순력과 범앙은 재물을 탐하여 그 소문이 중원의 여러 제후들에게 파다하게 퍼졌다.

그때 기씨들 문중에 기승(祁勝)이라고 있었다. 그는 우장(鄔臧)의 처와 간통하다가 기영(祁盈)에게 붙들려 기씨 부중에 갇히게 되었다. 기승이 사람을 시켜 순력에게 뇌물을 바쳐 목숨을 구해 줄 것을 부탁했다. 순력이 경공에게 기영을 참소하여 오히려 기영을 잡아들이게 하였다. 양설식아(羊舌食我)가 기씨들과 힘을 합하여 기승을 잡아 죽였다. 경공이 노하여 기영과 양설식아와 함께 기씨와 양설씨 종족들을 모조리 잡아들여 주살하도록 명했다. 당진의 국인들이 두 종족들의 죽음을 원통하게 생각했다.

한편 노소공은 제나라를 방문하고 돌아간 뒤에 노나라의 권신 계손의여(季孫意如)에 의해 쫓겨났다. 순력이 다시 의여에게 뇌물을 받고 노소공을 복위시키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제경공이 언릉(鄢陵)에 제후들을 모이게 한 다음 노나라의 내란을 평정하려고 했다. 천하의 제후들은 모두 제경공의 의기를 높이 샀다. 제경공의 이름이 제후들 사이에 떨치기 시작했다. 이것은 후일의 이야기다.

주경왕 19년, 기원전 526년에 오왕 이매가 재위 4년만에 병이 들어 위독하게 되었다. 그래서 자기의 동생 계찰을 불러 부왕과 형들의 유언대로 오나라의 왕위를 전하려고 하였다. 계찰이 사양하며 말했다.

「내가 왕의 자리를 받지 않겠다고 분명히 말했습니다. 옛날에 부왕께서 살아 계실 때 내린 명도 제가 감히 받들지 않았습니다. 부귀는 나에게 있어서는 마치 지나가는 바람과 같을 뿐인데 제가 어찌 그 자리에 앉을 수 있겠습니까?」

계찰은 말을 마치고 즉시 자기의 봉지인 연릉(延陵)으로 돌아가 버렸다. 오나라의 여러 신하들이 이매의 아들 주우(州于)를 받들어 오나라 왕으로 세웠다. 주우가 이름을 요(僚)로 개명하였다. 이가 오왕 왕료(王僚)다. 수몽의 장자였던 오왕 제번의 아들에 광(光)이라고 있었는데 용병에 능하였다. 왕료의 명을 받은 공자광이 대장이 되어 오군을 이끌고 초나라를 공격하여 장안(長岸)10)에서 초나라의 사마 공자방(公子魴)을 사로잡아 죽였다. 초나라가 이를 두려워하여 주래(州來)11)에 성을 쌓아 오나라의 침입에 대비했다.

6. 唆父取媳 陰使連環(사부취식 음사연환)

- 아버지를 부추겨 며느리를 가로채게 하고 아무도 몰래 다른 여자를 대신 아들에게 주다. -

그때 초나라에서는 비무극이 아첨하는 말로 초평왕의 총애를 한 몸에 받고 있었다. 다른 한편 채평공 려(廬)는 이미 세자로 적자인 주(朱)를 세자로 세워 놓고 있었다. 평공의 서자에 동국(東國)이라고 있었는데 그는 세자의 자리를 노리고 비무극에게 뇌물을 바쳤다. 무극이 먼저 조오(朝吳)를 평왕에게 참소하여 정나라로 쫓아냈다. 이어서 채평공이 죽자 세자 주가 뒤를 이었다. 무극이 거짓으로 초왕의 명이라고 전하여 채나라 사람들을 시켜 주를 쫓아내고 동국을 채후로 세웠다. 평왕이 채나라의 일에 비무극에게 대해 물었다.

「채나라 사람들이 어찌하여 주를 쫓아냈는가?」

「주가 초나라에 반기를 들려고 했기 때문에 채나라 사람들이 스스로 그것을 원치 않아 주를 쫓아 냈습니다.」

초평왕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무극이 다시 태자건의 일을 마음속으로 매우 꺼리고 있어 장차 두 부자간을 떼어놓으려고 하고 있었지만 그때까지 별다른 계책을 세우지 못하고 있었다. 하루는 무극이 평왕에게 상주하였다.

「태자의 나이 이미 장성하였는데 어찌하여 혼처를 구하지 않고 있습니까? 만약 태자의 혼처를 구하신다면 섬진에서 구하십시오. 진은 강국이며 또한 우리와 대를 이어가며 좋은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두 강국이 서로 혼인으로 우호관계를 맺어 놓으면 초나라의 세력은 더욱 커질 것입니다.」

평왕이 그 말을 쫓아 무극으로 하여금 섬진의 사자로 가게 하여 태자의 혼사를 청하게 하였다. 섬진의 애공(哀公)은 여러 신하들을 불러 초나라에서 청한 혼사를 허락할 것인지를 상의하였다. 여러 군신들이 뜻을 모아 상주하였다.

「옛날 섬진과 당진은 몇 대를 걸쳐 혼인으로 우호관계를 맺은 나라이지만 지금은 국교가 단절된 지가 이미 오래 되었습니다. 근래에 초나라의 세력이 성하게 되었으니 청혼을 거절하면 안 될 것입니다. 」

섬진의 애공은 즉시 대부 중 한 사람을 뽑아 초나라에 답례사절로 보내고 그이 누이동생인 맹영(孟嬴)을 초나라에 시집보내기로 했다.

- 시정의 통속소설에 무상공주(無祥公主)라고 부르는 여인이다. 그러나 공주라는 칭호는 한나라 시대 이후로 사용하게 된 것이라 춘추시대에는 이런 호칭이 사용되지 않았다. -

평왕이 다시 무극에게 명하여 황금과 구슬과 오색 비단 등을 가지고 섬진에 가서 맹영을 모셔 오라고 하였다. 무극이 사자를 따라가 섬진에 들어가 예물을 바치고 맹영을 모시러 왔다고 고했다. 애공이 크게 기뻐하여 즉시 공자포(公子蒲)로 하여금 맹영을 초나라까지 모셔다 주고 오라고 명했다. 예물을 실은 수레가 백 대에 달했고, 맹영에게 딸려 보낸 잉첩(媵妾)만 해도 수 십 명이었다. 맹영이 그의 오라버니가 되는 애공에게 인사를 하고 초나라로 길을 떠났다. 맹영을 데리고 오던 비무극은 도중에 그녀가 절세미녀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또한 맹영의 잉첩 중에 자태가 제법 단아하고 예쁘게 생긴 여인이 있었다. 비무극이 아무도 몰래 출신을 알아본바 그 여인은 곧 제나라 출신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녀는 어릴 때 섬진에서 벼슬을 살게 된 부친을 따라 왔다가 이어서 섬진의 궁중으로 들어가 맹영의 몸종이 되었다고 했다. 제녀에 대해 상세히 알아본 비무극이 행렬이 역관에 묶게 되었을 때 아무도 몰래 제녀를 불러서 말했다. 「

「내가 너의 관상을 보아하니 귀인의 풍모가 있다. 너를 천거하여 태자비를 만들어 주려 하니 너는 이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 그리하면 장차 너는 부귀를 마음껏 누리게 될 것이다.」

제녀가 고개만을 푹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무극이 앞서 길을 달려 하루 먼저 영도에 당도하여 평왕에게 고하였다.

「진녀가 이미 당도하여 도성 밖 3사의 거리에 묶고 있습니다.」

평왕이 물었다.

「경은 진녀의 모습을 이미 보았는가? 그녀의 자태는 어떠하던가?」

무극은 평소에 평왕이 주색을 밝히는 위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맹영의 자태가 아름답다는 것을 과장되게 말하여 초왕의 올바르지 못한 마음을 흔들어 놓으려고 하던 참에 ,때에 맞춰 평왕이 질문을 던지게 되어 무극은 과연 자기의 계획을 이루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비무극이 즉시 평왕의 질문에 답했다.

「신이 지금까지 많은 여인들을 보아 왔지만 아직까지 맹영과 같이 아름다운 여인은 보지 못했습니다. 우리 초나라의 궁실에 있는 여인들을 통틀어 봐도 그녀의 미모에 비견할 수 있는 여인은 한 명도 없을 뿐만 아니라 옛날부터 전해 오는 달기나 려희라 할지라도 모두가 허명에 불과하여 맹영의 만 분의 일에도 못 미친다 할 것입니다.」

평왕이 진녀의 아름다움에 대해 무기의 극찬하는 말을 듣자 얼굴에 홍조를 띄우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더니 이윽고 한탄하며 말을 했다.

「과인이 헛되이 왕 노릇만 했지 그와 같은 천하의 절색도 얻지 못하니 이것은 진실로 인생을 헛살았다고 할 수 있겠다.」

무극이 평왕에게 좌우의 시종들을 물리치기를 청한 다음 조용한 목소리로 평왕에게 말했다.

「대왕께서 진녀의 아름다움을 사모하시면서 어찌하여 스스로 취하지 않으십니까?」

「진녀는 며느리로 불어오지 않았는가? 인륜에 어긋나는 일이라 차마 내가 행할 수 없다!」

「그렇지 않습니다. 진녀는 비록 태자의 부인으로 데려왔지만 아직 혼인을 하지 않아 동궁에 들어가지 않았으니 대왕께서 궁중으로 불러온다 한들 누가 감히 이의를 말하겠습니까?」

「여러 신하들의 입은 비록 막을 수 있다 하겠지만 태자의 입은 어떻게 막을 수 있겠는가?」

「신이 진녀가 데려온 잉첩을 살펴봤는데 그 중에 제나라 출신의 여인이 그래도 제법 미모와 재주가 있어 그녀라면 진녀를 대신시킬 수 있습니다. 신이 먼저 진녀를 왕궁으로 불러들이고 다시 제녀는 동궁으로 보내면서 그 일에 대한 것을 발설하지 말라고 당부해 놓아 우리와 제녀만 이 일을 말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모두에게 아름다운 일이 되지 않겠습니까?」

평왕이 크게 기뻐하여 무극에게 아무도 몰래 일을 행하도록 당부하였다. 무극이 섬진의 공자포를 찾아가 말했다.

「초나라의 혼례의 법도는 다른 나라와 다릅니다. 먼저 왕궁으로 입궁하여 시아버지를 먼저 알현한 다음에 혼례를 치릅니다.」

「명에 따르겠습니다.」

무극이 이어서 좌우에게 명하여 맹영과 그 잉첩들을 병거(輧車)12) 태우고 모두 왕궁 안으로 가게 했다. 이어서 맹영은 왕궁에 남게 하고 제녀는 동궁으로 보냈다. 궁중의 비첩들을 맹영의 잉첩으로 분장하게 만들어 태자건에게 명하여 동궁으로 맞이하여 성례를 치르게 하였다. 조정의 문무 대신들과 태자 모두가 무극이 꾸민 음모를 알지 못했다. 맹영이 좌우의 시녀들에게 물었다.

「제녀는 어디에 있는가?」

옆에 있던 시종이 대답했다.

「이미 태자의 동궁으로 갔습니다.」

잠연(潛淵) 선생이 이 일을 두고 시를 지어 한탄했다.

위선공이 처음으로 나쁜 선례를 만들어 신대를 짓더니

채경공은 며느리와 간통하여 반역의 사단을 만들었고

뒤어이 초평왕이 통탄할 폐륜을 저질렀으니

며느리로 데려온 진녀를 자기 침실로 끌어들였다.

衛宣作俑是新台(위선작용시신대)

蔡國奸淫長逆胎(채국간음장역태)

堪恨楚平倫理盡(감한초평윤리진)

又招秦女入宮來(우초진녀입궁래)

평왕은 태자가 진녀의 일을 알게 되지나 않을까 걱정하여 태자로 하여금 입궁하지 못하게 하여 두 사람이 서로 상면을 막았다. 그는 조석으로 진녀와 후원에서 잔치를 벌려 즐기면서 국정을 돌보지 않았다. 궁궐 밖에서는 여론이 비등하여 많은 사람들이 진녀의 일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비무극은 태자가 그 일을 알게 되어 혹시라도 변이 나서 화를 당하지나 않을까 걱정하여 곧이어 한 가지 꾀를 내어 평왕에게 말했다.

「당진이 오래 동안 능히 천하를 지배할 수 있었던 것은 중원의 나라들과 가까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난날 영왕께서 진과 채 두 나라에 큰 성을 축조하여 중원의 제후국들을 진압하려 했던 것은 바로 천하의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오늘 두 나라를 다시 봉하여 초나라는 예전처럼 남방으로 물러나게 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패업을 바라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태자에게 명하시어 옛날 영왕이 건계(乾溪)의 땅에 축조한 성보(城父)에 주둔하게 하여 우리 초나라가 북방으로 통하는 기지로 삼으시면, 대왕은 남방의 일에만 전념할 수 있게 되어 천하를 앉아서 호령할 수 있을 것입니다.」

평왕이 주저하며 결정을 내리지 못하자 무극이 가까이 다가와 귓속말로 조용히 다시 말했다.

「섬진과의 혼사 일은 시간이 지나게 되면 알려지게 될 것입니다. 만약이 태자를 멀리 보내신다면 나라를 위해서나 또한 대왕 자신에게나 모두 좋은 일입니다.」

평왕이 즉시 크게 깨닫고 즉시 태자건에게 명하여 군사를 데리고 가서 성보를 지키도록 했다. 분양(奮陽)을 성보의 군사를 관장하는 사마로 임명하면서 당부의 말을 했다.

「경은 나를 모시듯이 태자를 모시라!」

태부 오사(伍奢)가 무극의 참언을 알아채고 장차 평왕에게 나아가 간언을 하려고 했다. 그러나 무극이 미리 알고 태부(太傅)인 오사도 성보로 가서 태자를 보좌해야만 할 것이라고 고해 같이 보냈다. 태자가 성보로 간 다음에 평왕은 즉시 진녀 맹영을 부인으로 삼고 태자의 생모인 채희(蔡姬)는 운(鄖) 땅으로 보내 그곳에서 살게 하였다. 태자가 성보에 당도하고 나서야 비로소 진녀가 부왕에 의해 바뀌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어찌하는 수가 없었다.

맹영이 비록 왕의 총애를 받고는 있다 하지만 평왕은 이미 나이가 들었기 때문에 항상 우울한 마음으로 살았다. 평왕도 스스로 자기는 맹영에 어울리는 짝이 되지 못한 다는 점을 알았기 때문에 감히 맹영에게 그 이유를 묻지 못했다. 그러고 몇 년이 지나자 맹영이 아들을 낳게 되었다. 평왕이 귀중한 보물을 얻기나 한 듯이 애지중지하였다. 그래서 이름을 진(珍)이라고 지었다. 진이 다시 돌이 지나게 되자 평왕이 맹영에게 물었다.

「부인이 이곳으로 들어온 이후로 수시로 한숨을 쉬며 웃는 모습을 보기가 힘드니 어찌된 일이오?」

「첩이 오라버니의 명을 받들어 군왕을 섬기게 되었습니다. 첩은 스스로 생각하기를 섬진과 초나라는 서로 다 같이 대국이니 신첩도 젊은 나이의 상대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초나라에 들어와 보니 대왕의 춘추가 너무 연로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제가 감히 대왕을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스스로 대왕과 같이 오래 살수 없음을 한탄할 뿐입니다.」

평왕이 웃으면서 말했다.

「우리가 이렇게 만나 살게 된 것은 현세의 일이 아니라 전생에 맺어진 인연으로 그리 된 것 같소. 부인은 과인에게 너무 늦게 시집 오기는 했으나 대신 몇 년이나 앞당겨서 육궁의 주인이 되지 않았소?」

맹영이 평왕이 하는 말을 듣고 마음속에 의혹이 일었다. 그래서 평왕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궁녀들을 불러 꼬치꼬치 따져 물었다. 궁녀들이 더 이상 숨기지 못하고 그 동안의 이야기를 말했다. 맹영은 마음이 처연해져 눈물을 흘리며 날을 보내게 되었다. 평왕이 그 이유를 알고서 백방으로 맹영의 마음을 달래려 애쓴 나머지 맹영의 소생인 공자진을 세자로 세워 주겠다는 약속을 했다. 그때서야 맹영의 마음이 어느 정도 누그러졌다.

7. 欲避王矛 权借王盾(욕피왕모 권차왕순)

- 왕의 방패를 빌려 왕의 창을 막아 죽음을 면한 분양(奮陽) -

한편 비무극은 계속해서 태자건이 후일에 왕위에 오르게 되면 그 화가 필시 자기에게 닥칠 것이라는 것을 염려한 나머지 다시 평왕에게 태자건을 참소하였다.

「세자가 오사와 모의하여 반역을 꾀하고 아무도 몰래 사람을 제와 당진에 보내어 두 나라의 도움을 청하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왕께서는 대비하십시오.」

「내 아들은 원래 유순한 아이인데 어찌 그런 일을 저지를 수 있겠는가?」

「태자는 진녀의 일로 오래 동안 대왕께 원망을 하고 있었습니다. 지금 성보에서 무기를 정비하고 병사들을 훈련하고 있습니다. 항상 입으로 말하고 다니기를 목왕이 대사를 행한 다음 초나라는 안정이 되고 그 자손들은 번성하였다고 하면서 자기도 그 일을 본 받아야 되겠다고 하고 다닌다고 합니다. 대왕께서 만약 그 일을 믿으시지 못하시겠다면 신이 먼저 벼슬을 버리고 목숨을 구해 타국으로 도망쳐 태자로부터 주륙을 당하는 것을 피해야 되겠습니다.」

평왕도 원래 태자건을 패하고 어린 아들 진을 세우려고 하던 참에 다시 비무극의 참소하는 말을 듣고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하여 한편으로는 비무극의 말을 믿지 않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믿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평왕이 즉시 태자건을 폐하려는 결심을 굳혔다. 비무극이 다시 말했다.

「세자가 나라 밖에 있으면서 군권을 손에 쥐고 있어, 만약에 세자를 폐한다는 령을 전한다면 그 마음이 격하게 되어 반란을 일으키게 될 것입니다. 태사(太師) 오사는 태자의 모사입니다. 왕께서 먼저 오사를 불러 태자 곁에서 떼어놓은 다음에 병사들을 보내어 세자를 잡아오게 하면 대왕의 근심거리는 없어지게 될 것입니다.」

평왕이 비무극의 건의를 받아 들여 즉시 사자를 보내 오사를 불러오게 하였다. 오사가 영도에 당도하자 평왕이 물었다.

「건이 반역을 꾀하고 있다는데 경은 그 일을 알고 있는가?」

오사는 원래 강직한 사람이라 즉시 평왕에게 사실을 말했다.

「왕께서는 태자의 비를 가로채시어 잘못을 저지르시더니 다시 간사한 자의 말을 들으시고는 이제는 골육의 정 마저 의심하시면서 어찌 마음이 편하십니까?」

평왕이 오사의 하는 말에 무참하게 되어 좌우에게 소리쳐 명하여 오사를 잡아 옥에 가두도록 했다. 무극이 다시 말했다.

「오사가 왕께서 태자의 비를 차지했다고 책하니 그들이 왕에 대해 원망하는 마음을 갖고 있음이 명백해 졌습니다. 오사가 잡혀 옥에 갇혔다는 사실을 태자가 알게 되면 군사를 움직이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습니다. 만약 태자가 제와 당진의 도움을 얻어 반란을 일으킨다면 우리 초나라는 당해 낼 수 없습니다.」

「내가 사람을 시켜 태자를 죽이려고 하는데 누구를 보내면 되겠는가?」

「다른 사람을 보내면 태자가 필시 저항할 것입니다. 성보의 사마 분양에게 밀사를 보내 세자를 습격하여 죽이라고 명하십시오.」

평왕이 즉시 사람을 비밀리에 성보로 보내어 분양에게 명을 전하게 하며 말했다.

「태자를 죽이면 후한 상을 내릴 것이며 태자를 놓아 보내면 죽음을 면치 못하리라!」

분양이 령을 받고 즉시 심복을 시켜 아무도 몰래 태자에게 알리며 말을 전하게 했다.

「즉시 목숨을 구해 도망치기 바랍니다. 목숨이 경각에 달렸습니다.」

태자건이 크게 놀랐다. 그때 태자건은 제녀와의 사이에 승(勝)이라는 아들을 두고 있었다. 건이 그의 처자와 함께 야음을 틈타 성보를 탈출하여 송나라로 도망쳤다. 세자가 이미 다른 나라로 달아난 것을 확인한 분양은 성보의 관리들을 시켜 자기를 잡아 함거에 가두어 영도로 압송하도록 했다. 압송되어 평왕 앞에 선 분양이 말했다.

「세자는 도망갔습니다.」

평왕이 크게 노하여 소리쳤다.

「령은 내 입에서 나와 너의 귀에만 전해 진 것이다. 누가 건에게 알렸느냐?」

「사실은 신이 말해 주었습니다. 왕께서 예전에 저에게 ‘ 나를 모시듯이 건을 모셔라!’ 라고 명하였습니다. 신은 당부하신 말씀을 명심하고 절대 다른 마음을 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태자에게 몸을 피하라고 일렀으나 지금은 제가 왕께 죄를 지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네가 네 마음대로 태자를 몰래 풀어 주고 다시 감히 과인을 찾아왔으니 너는 죽음이 두렵지 않느냐?」

「제가 이미 왕께서 나중에 내린 명을 받들지 못했는데 다시 죽음이 두려워 오지 않는다면 이것은 두 가지 죄를 짓는 일입니다. 또한 세자는 뱐역의 뜻을 품고 있지 않아 죽일 수 있는 명분이 없습니다. 저로 인하여 대왕의 아들이 목숨을 부지할 수 있다면 저로서는 죽어도 그리 억울하지 않습니다.」

평왕이 듣고 측은한 표정을 지으며 마음속으로는 일말의 양심의 가책을 받은 듯 한참 동안 말이 없더니 이윽고 입을 열어 말했다.

「분양이 비록 왕명을 거역했다 하나 충직한 마음은 가상하다 하겠다.」

즉시 그의 죄를 용서하교 다시 옛날처럼 성보사마의 직을 계속하라고 했다. 사관이 이를 두고 시를 지어 노래했다.

무고한 세자가 이미 목숨을 구해 달아나자

감히 도망가지 않고 끓는 가마솥 앞으로 왔다.

분분한 참소와 아첨으로 종내는 죽음을 당했지만

분양의 이름은 천추에 남아 빛나도다!

無辜世子已偸生(무고세자이투생)

不敢逃刑就鼎烹(불감도형취정팽)

讒佞紛紛終受戮(참녕분분종수륙)

千秋留得奮陽名(천추유득분양명)

8. 父質誘子(부질유자)

- 아버지를 인질로 삼아 아들을 유인하여 죽이려고 한 초평왕 -

평왕은 즉시 진녀의 소생인 공자진을 태자로 세우고 비무극은 진의 태사로 세웠다. 무극이 다시 평왕에게 말했다.

「오사에게는 아들이 둘이 있는데 이름이 상(尙)과 원(員)이라고 합니다. 모두가 호걸들이라 만약에 그들이 오나라에라도 도망친다면 필시 우리 초나라에 크나큰 화근이 될 것입니다. 그 부친을 시켜 죄를 사하여 준다고 하면서 부르시기 바랍니다. 두 아들들은 그 부친을 매우 사랑하여 반드시 부름에 응할 것입니다. 그들이 불러 세 부자를 같이 죽이면 후일의 화근은 미리 제거할 수 있습니다.」

평왕이 옥중에 있던 오사를 데려오게 하여 좌우에게 명하여 필묵을 내어 주며 말했다.

「너는 태자로 하여금 모반을 일으키도록 교사했다. 따라서 마땅히 여러 사람이 보는 앞에서 참수형에 처해야 하지만 너의 조(祖)와 부(父)가 선조 때에 세운 공로를 생각하여 감히 죽이지 못하겠다. 네가 편지 한 통을 써서 두 아들을 불러 조정으로 돌아오게 한다면 그들에게는 다른 관직을 주고 너는 죄를 용서하여 너의 봉읍으로 돌아가 조용히 살게 해 주겠다.」

오사는 마음속으로 이미 초왕이 자기를 속여 두 아들들을 불러 같이 죽이려고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오사가 평왕을 향해 말했다.

「신의 큰아들 상은 마음이 온유하여 어질며 신의가 있습니다. 신이 부른다면 반드시 올 것입니다. 그러나 작은아들 원은 어렸을 때부터 학문을 좋아하고 무예를 즐겨 닦아 학문은 능히 한나라의 안정을 취하기에 족하고 무는 능히 외적으로부터 나라를 지킬 수 있습니다. 그는 온갖 치욕과 어려움을 참고 견디어 능히 대사를 이룰 수 있는 재능을 갖춘 인재입니다. 이 일은 그가 이미 알고 있을 터인데 어찌 기꺼이 부름에 응하여 오겠습니까?」

「너는 단지 과인이 말한 대로 편지를 써서 부르기만 하면 된다. 부름을 받고도 오지 않는다면 그것은 너의 책임이 아니다. 」

오사가 군주의 명이라고 생각하여 감히 왕명을 거역하지 못하고 전당 앞에 앉아서 붓을 들어 편지를 썼다. 편지의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았다.

「상(尙)과 원(員) 두 아들은 보아라, 내가 간언을 드리다가 왕의 뜻을 거스르게 되어 죄를 얻고 옥에 갇히게 되었다. 나는 우리 선조들이 초나라에 끼친 공로에 힘입어 일단은 죽음은 면하게 되었다. 장차 군신들이 나의 공로는 의논하여 속죄하게 해 주고 너희들의 관직을 다시 내려 준다고 한다. 너희 형제들은 밤낮을 가리지 말고 달려와 나의 명을 따르기 바란다. 만약에 명을 어겨 늦게라도 당도한다면 나는 필시 죄를 얻어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오사가 편지 쓰기를 다 마치고 평왕에게 올렸다. 평왕이 편지를 읽기를 마치고 봉투에 봉한 다음 좌우에게 잘 보관하도록 하고 오사는 다시 예전의 감옥으로 돌려보냈다. 평왕은 언장사(鄢將師)를 사자로 삼아 새로운 관직의 인수를 함에 넣어 편지와 함께 건네주고 네 필의 말이 끄는 수레를 타고 먼저 오상 형제가 살고 있는 당읍(棠邑)으로 가게 하였다. 그러나 그때 오상 형제는 이미 성보에 가 있었다. 언장사가 당읍에서 길을 바꿔 성보에 당도하여 오상을 보자 다짜고짜로 말했다.

「축하드립니다!」

「부친이 지금 죄수의 신분으로 감옥에 갇혀 계신대 어찌하여 축하한다는 말을 하십니까?」

「왕이 다른 사람의 말을 잘못 알아듣고 부친을 옥에 가두셨는데 지금은 군신들이 모두 들고일어나 공의 집안은 삼대에 걸쳐 초나라에 공을 세운 충신의 후손이라 하며 석방시키기를 상주했소. 참소를 받아들여 제후들의 웃음거리가 될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신 왕께서 오히려 부친을 높여 상국으로 삼고 그대들 두 아들들은 봉지를 내려 그대에게는 홍도후(鴻都侯)에 동생 원에게는 개후(盖侯)에 봉하셨소. 부친께서는 오랫동안 감옥에 계셨던 관계로 그대 두 아들을 보고 싶어 하여 다시 편지를 손수 써서 나에게 주어 모셔 오라고 했소. 지체하지 말고 속히 수레를 타고 영도(郢都)로 가서 부친의 보고 싶은 마음을 위로해야 될 것이오.」

「부친께서 감옥에 계시어 나의 마음은 찢어지듯이 아팠으나 다행히 화를 면하셨다니 이보다 기쁜 일이 있을 수 없는데 어찌 감히 내가 인수 같은 것에 탐을 낼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왕명이니 그대는 사양하지 마시오.」

오상이 크게 기뻐하여 즉시 부친의 편지를 받아 들고 내실로 들어가 그의 동생 오원에게 전했다.

< 제 72회로 계속 >

주석

①포수(蒲隧) : 현 강소성(江蘇省) 홍택호(洪澤湖) 북안에 있는 회녕시(淮寧市) 부근에 있었던 고을

2) 담자(郯子) :현 강소성과의 경계지역인 산동성 남쪽의 담성(郯城)에 있었던 소제후국의 제후를 말함.

3)갑보(甲父) : 지금의 산동성 창읍현(昌邑縣)에 있었던 군소제후국이다.

4)도색산(度索山) : 해외경(海外經)에 나온 것을 사기집해(史記集解)에서 배인(裴駰)이 인용한 구절에 따르면 동해바다 섬 한 가운데에 도색산이 있고 그 산에는 반목(蟠木)이라는 복숭아나무가 삼천여 리 뻗혀 있다. 동해가 항상 파란 것은 그 복숭아나무의 영향 탓이라고 했다.

5)반도(蟠桃) :도색산(度索山)의 복숭아나무를 반목(蟠木="槃木)," 복숭아 열매를 반도(蟠桃)라 한 것이다.

6) 탕음리(湯陰里) : 제나라의 도성 임치성(臨淄城) 밖의 고을 이름.

7) 지기(地紀) : 지유(地維)라고도 하며 땅을 지탱하는 밧줄. 이것이 끊어지면 땅이 기울어 뒤집어 진다는 중국의 옛 신화. 하늘을 받드는 기둥과 땅을 지탱하는 밧줄 즉 천주지유(天柱地維)가 있어 세상이 보전된다고 보았음.

8) 양저(穰苴)와 장가(庄賈)가 약속한 시간 오시(午時)는 오전 11시부터 오후 1시 사이의 시각이다. 장가가 나타난 시각은 미시(未時)를 지나 신시(辛時)가 끝날 때쯤이라는 한 것은 오후 5시에 가까워 졌다는 말이다.

9) 보궤(簠簋) :제사를 지낼 때 쌀과 보리를 담는 목제(木製)나 청동제(靑銅製)의 제기(祭器). 보(簠)는 네모진 것을, 궤(簋)는 원형으로 만든 것을 말한다.

10) 장안(長岸) :현 안휘성(安徽城) 동릉시(銅陵市)와 무호시(蕪湖市) 사이의 장강(長江) 연안(沿岸) 일대

11) 주래(州來) : 현 안휘성 회남시(淮南市) 서쪽 약 20키로의 봉태현(鳳台縣) 부근에 있었던 회수 강안(江岸)의 고을.

12) 병거(輧車) : 사방에 휘장을 두른 부인들이 타는 수레

[평설]

당진이나 초나라는 모두 국내에서 발생한 많은 문제를 해결하느라 그 눈길을 밖으로 돌릴 여력이 없었다.

이에 당진과 초 두 나라의 지배를 달갑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던 제경공(齊景公 : 재위 전 547-490년)은 기회라 여기고 제환공(齊桓公)이 이룩했던 패업을 다시 일으키려고 결심했다.

제경공이 패업을 일으키기 위해 ‘ 맹주란 항상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덕을 갖추기만 하면 누구든지 될 수 있다.’라는 말을 명분으로 삼아 중국의 일부인 동남쪽의 패자가 되는 것을 최소한의 목표로 했다. 제경공이 행한 방법은 대내적으로는 백성들을 보살피는 정책 즉 백성들의 질고를 세심하게 살피고, 대외적으로는 동방의 제후국들을 정벌하거나 수호를 맺어 회맹을 주재하려고 했다.

제나라는 패자로 군림했던 제환공(齊桓公) 이후, 효공(孝公), 소공(昭公), 의공(懿公), 혜공(惠公), 경공(頃公), 영공(靈公), 장공(莊公) 등의 7대에 걸친 100여 년 동안, 당진(唐晉)과 초(楚) 두 강대국들 사이에 벌어진 패권쟁탈전을 옆에서 빤히 쳐다봐야만 했다. 제나라가 비록 강대국이기는 했지만 국제적으로는 아무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는 처지로 전락하여 단지 당진과 초의 지배하에 생존만을 추구해야만 했다. 안영(晏嬰)이라는 걸출한 인물의 보좌를 받게 된 제경공은 그와 같은 상황 하에서 패자에 대한 뜻을 세우게 된 것이다.

안영(晏嬰)이 초나라에 조빙사절로 가서 행한 의연한 활동은 제경공의 위신을 크게 높였고, 다시 당진의 소공(昭公)이라는 위인을 알아보기 위해 직접 당진국으로 들어가 ‘ 투호(投壺)’ 놀이를 하면서 당진의 역량을 가늠하고 자기도 패자가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그는 당진국으로 돌아와 형벌을 줄이고 부세를 가볍게 하여 백성들의 환심을 삼으로 해서 대내적인 조건을 조성한 후에, 이윽고 기원전 526년 동방의 제후국들을 초치하여 포수(蒲遂)에서 회맹을 주재했다. 그러나 서국(徐國)은 제나라의 패권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에 제경공은 군대를 보내 서국(徐國)에 타격을 가했다. 서국이 비로소 제나라에 화의를 청했다. 제나라가 행한 회맹의 규모는 비록 작다고는 하지만 회맹을 임의로 주재한 다는 것은 당진과 초 두 패권국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었다. 당진과 초 두 나라는 제나라의 행위를 알고 있었지만 감히 시비를 걸지 못함으로 해서 사실상 제나라의 회맹을 주재할 수 있는 자격을 승인한 것이다. 이로써 제나라는 당진과 초와 함께 패권국의 대열에 합류한 것이다. 근 100년 가까이 잠자고 있었던 제나라가 마침내 중국의 동부 일각을 차지한 패권국으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

안영은 제나라가 패권의 일각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우선 국내적으로 장기간에 걸친 치세로 안정을 이루고, 다시 훌륭한 장수가 지휘하는 강대한 군대를 보유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 안평중이 두 개의 복숭아로 세 명의 장사를 죽언 것’은 안영의 그러한 생각을 반영한 것이다. 전개강(田開疆), 고야자(古冶子), 공손첩(公孫捷) 등의 세 사람은 천하에 보기드믄 용사로 모두 제경공을 위해 공을 세워 오승지빈(五乘之賓)의 직에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경공의 신임을 이용하여 민가에 들어가 행패를 부리고, 공경대부들을 능멸하면서, 서로 작당하여 결의형제를 맺어 스스로 제나라의 삼걸이라고 칭했다. 그와 같은 행위는 그들이 충직한 장수의 재목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 것이다. 문제는 그것뿐만 아니라 아첨배 양구거(梁邱据)가 그들에게 가세함으로 해서 간당들의 세력이 더욱 화대되었다. 설상가상으로 진무우(陳無宇)는 그 당시 막대한 사재를 털어 민심을 사들임으로 해서 그때는 이미 국권이 움직이려는 징조를 보이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전개강은 또한 진무우의 일족이었다. 만일 어느 날 간당들과 삼걸이 일시에 변란을 일으킨다면, 제경공의 앞날을 아무도 예측할 수 없었던 상황이었다.

안영은 삼걸의 공적을 빙자하고 용력을 과시하려는 성격을 이용하여 천도복숭아를 미끼로 제경공 앞에서 그들의 공적을 스스로 자랑하도록 해서 싸우게 했다. 두 개의 복숭아를 얻기 위해서 그들은 모두가 자기가 세운 공적이 가장 크다고 하면서 남은 두 사람을 폄하했다. 그 결과, 세 사람은 서로 뒤를 따라 자살하고 말았다. 그들이 죽은 방법은 삼걸이 진정한 호걸이 아니라 단지 용력만 갖춘 필부에 지나지 않는 인사들에 불과하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다.

안영에 의해 제경공에게 천거된 전양저(田穰苴)는 문무를 겸비한 사람이었다. 그는 장군에 임명되어 제군의 면목을 일신시켰다. 전양저가 장가(莊賈)의 목을 베어 군영의 정문에 건 일은 사마천의 사기(史記)에 매우 장중하게 묘사되어 있다. 그 일은 전양저의 군대를 지휘하는 방법을 반영한 것으로, 군법은 귀족을 두려워하지 않는 공평무사하게 집행되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제나라의 삼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당진과 연나라가 군대를 파견하여 제나라 국경을 침범했다가 전양저가 장가의 목을 베었다는 소식을 듣자 싸움을 하기도 전에 물러갔다. 이에 제군은 그들의 뒤를 추격하여 그 동안 두 나라에 빼앗겼던 땅을 모두 찾았다. 제경공은 그 일로 인해 제후들 사이에 이름이 높아지게 된 전양저를 대사마로 임명하여 제나라의 병권을 맡겼다. 문무를 겸전한 전략가였던 전양저는 <사마양저병법(司馬穰苴兵法)>이라는 병법서를 저술하여 후세에 남겼다.

제경공은 문(文)은 안영에게 무(武)는 전양저에게 일임했다. 그 두 사람은 모두 덕과 재주를 갖춘 현인으로써 제나라는 크게 다스려지고 강한 군사력을 갖추게 되었다. 이로써 제후들은 모두 두려워하여 복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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