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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05-11 12:10:304427 
제72회. 捐軀父難(연구부난) 變服過關(변복과관)
양승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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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제72회 捐軀父難 變服過關(연구부난 변복과관)

목숨을 버려 부친과 위난을 같이 맞이한 오상과

변복하여 소관을 넘어 오나라로 들어간 오자서

1. 兄孝弟報(형사제보)

- 형은 죽어 효를 행하고 동생은 살아서 부친의 원수를 갚아야 한다.-

한편 오원(伍員)의 자는 자서(子胥)라 했고 감리(監利)①에서 태어났다. 신장은 한 장이 넘고 허리는 십 위(圍)②나 되는 거인이었다. 눈썹과 눈썹의 사이는 한 자가 넘었고 안광은 마치 번개처럼 번쩍였으며, 힘은 세 발 달린 가마솥을 들 수 있는, 산이라도 뽑을 수 있을 만한 장사에 문무를 겸전한 재사였다. 또한 태자의 태부이며 연윤(連尹)인 오사(伍奢)의 아들이며 당공(棠公) 오상(伍尙)의 동생이었다. 이때 오상과 오원 형제는 부친 오사를 따라 성보에 머무르고 있었다. 평왕의 밀명을 받은 언장사가 오사의 두 아들을 도성으로 유인하기 위해 먼저 오상을 만난 자리에서 오원도 같이 보기를 청했다. 오상이 부친의 편지를 들고 집안으로 들어가 오원과 같이 읽은 후에 말했다.

「초왕이 다행히 부친의 죽음을 면하게 하고 우리 두 사람을 후에 봉하기 위해 보낸 사자가 와서 문 밖에 기다리고 있으니 동생은 대문 밖으로 나가 명을 받들기 바란다.」

「부친께서 죽음을 면하셨다는 소식은 다행한 일이지만 우리 두 사람이 무슨 공을 세웠다고 또 다시 후에 봉하려고 하겠습니까? 이것은 우리를 유인하려고 하는 짓입니다. 부름에 응하여 도성으로 들어가게 되면 반드시 죽임을 당할 것입니다.」

「부친이 친필로 쓰신 편지가 여기 있는데 어찌 우리를 속인다고 말할 수 있는가?」

「우리 부친께서는 나라에 충성을 다하시는 분이시라 뒷날 내가 원수를 갚을 줄 아시고 우리 형제가 함께 죽도록 하여 초나라의 후환을 없애려고 하시기 때문입니다.」

「동생의 말은 지나친 억측이다. 만일 부친의 서신이 진정이라면 우리들이 저지르게 되는 불효의 죄에 대해서는 어떻게 변명하겠는가?」

「형님께서는 잠시 앉아 계시기 바랍니다. 동생이 잠시 그 길흉을 점쳐 보겠습니다.」

오원이 산가지를 늘어놓아 괘를 얻더니 말했다.

「오늘은 갑자 일에 시간은 사시라 상하 점괘가 서로 어긋나고 전혀 그 기가 화합을 하지 않으니 ‘주군이 신하를 속이고, 신하가 자식을 속이도다!’ 이번에 가시면 필시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어찌 후에 봉해지겠습니까?」

「후의 봉작에 탐이 나서가 아니라 단지 부친을 보기 위함이다.」

「우리 형제가 외국에 나가 있게 되면 초왕은 우리들의 위세를 두려워하여 감히 부친을 죽이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만약 부름에 응하여 간다면 아버님만을 빨리 돌아가시게 할 뿐입니다.」

「부자간의 정은 뗄 내야 뗄 수가 없는 천륜이니 만약 내가 한 번 뵙고 죽는다 한들 그것 역시 내가 원하는 바라!」

오상의 말을 들은 오원은 하늘을 쳐다보며 한탄했다.

「부친과 함께 죽는다고 우리 일에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형님은 꼭 가시겠다고 하지만 이 동생은 가지 않겠습니다.」

오상이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너는 장차 어디로 가려고 하느냐?」

「부친과 형님의 원수를 초나라에 갚을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가겠습니다.」

「나의 지모는 너에 훨씬 미치지 못한다. 내가 초도에 가거든 너는 마땅히 타국으로 도망쳤다가 내가 효를 위해 부친과 같이 죽게 되면 너는 부친의 원수를 갚아 효를 행하도록 하라! 이번에 각기 자기의 생각대로 행하게 되면 우리 형제는 다시는 만나지 못하게 되겠구나!」

오원이 오상에게 절을 네 자리를 올려 그것으로 미리 영결을 대신했다. 절을 네 자리나 올린 이유는 부친에게 올려야 할 절까지 오상에게 했기 때문이다. 오상이 눈물을 닦으며 밖으로 나와 언장사를 보고 말했다.

「동생이 봉작을 받기를 원하지 않아 제가 강권 할 수 없었습니다.」

언장사가 할 수 없이 오상만을 수레에 태워 초도로 돌아왔다. 평왕이 오상을 보자 오사와 같이 가두어 두도록 했다. 감옥에 있던 오사는 단신으로 영도에 돌아온 오상을 보자 한탄해 마지않으며 말했다.

「나는 원래 오원이 따라오지 않을 줄 알고 있었다.」

무극이 다시 평왕에게 상주하였다.

「오원이 아직 밖에 있으니 마땅히 사람을 보내 잡아들이도록 하십시오. 시간이 늦으면 외국으로 달아날 것입니다.」

평왕이 그 말이 옳다고 여겨 대부 무성흑(武城黑)에게 군사 200명을 이끌고 성보에 가서 오원을 잡아오도록 명했다. 초왕이 자기를 잡으러 군사를 보냈다는 사실을 들은 오원이 통곡하며 말했다.

「부친과 형님이 과연 화를 면하지 못하셨구나!」

오원이 즉시 그의 처 가씨(賈氏)에게 말했다.

「내가 지금 사세가 급하여 타국으로 도망가서 그들로부터 군사를 빌려와 부친과 형님의 원수를 갚으려고 하오. 때문에 내가 더 이상 부인을 돌볼 수가 없으니 이를 어찌하면 좋소?」

가씨가 눈을 크게 뜨고 노려보면서 말했다.

「대장부가 부친과 형님이 억울하게 세상을 떠난 원통함을 가슴에 품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것이 마치 간과 폐가 찢어지는 듯한 슬픔일 텐데 어찌 한가로이 아녀자의 일에 신경을 쓰십니까? 이 첩은 신경 쓰시지 마시고 속히 길을 떠나십시오.」

가씨가 말을 마치고 방안으로 들어가더니 스스로 목매어 죽었다. 오원이 통곡을 한바탕 다시 하고 나서 그 부인의 시체를 짚에 싸서 땅에 묻었다. 그런 후에 행낭을 수습하여 등에 짊어진 오원은 하얀 도포 차림에, 어깨에는 활을 가로질러 메고, 허리에는 검을 차고 집을 떠났다. 오자서가 집을 나선 지 반나절도 못되어 병졸들을 거느린 무성흑이 당도하여 그의 집을 포위하고 수색하였으나 오자서를 발견할 수 없었다. 오자서가 필시 동쪽을 향하여 도망쳤다고 짐작한 무성흑은 즉시 수레를 모는 어자를 재촉하여 속력을 다하여 오자서의 뒤를 쫓았다. 무성흑의 수레가 동쪽으로 질주하여 300여리 쯤 갔을 때 사람이 아무도 살지 않은 광야에 이르게 되었다. 오원이 길을 가다가 단거로 자기 뒤를 추격해 오는 무성흑의 모습을 발견하고 걸음을 멈추고 어깨에 메고 있던 활을 벗어 화살을 쏘았다. 오원이 쏜 화살은 날아가 수레를 모는 어자를 맞추어 죽였다. 다시 화살을 한 개 더 뽑아 무성흑을 겨누자 무성흑은 겁을 먹고 수레에서 내려 도망치려 했다. 오원이 무성흑을 향해 소리쳤다.

「내가 너를 죽이려고 했지만 잠시 너의 목숨을 살려주는 이유는 초왕에게 돌아가 나의 말을 전하기 위해서이다. 초나라의 종사를 계속 받들려고 한다면 절대로 우리 부친과 형님의 목숨을 살려 두어야만 할 것이다. 만약에 그렇지 않고 부친과 형님을 죽인다면 내 반드시 초나라를 멸망시키고 친히 초왕의 머리를 베어 이 원한을 씻으리라!」

무성흑이 머리를 움츠리고 쥐새끼처럼 도망쳐 초성에 돌아와 평왕에게 보고했다.

「오원은 미리 도망쳐 버려서 잡을 수 없었습니다.」

평왕이 대노하여 즉시 비무극에게 명하여 오사와 오상 부자를 저자거리에 압송하여 참수하도록 하였다. 형을 집행하려는 순간에 오상이 앞에 서서 형의 집행을 감독하고 있던 무극의 얼굴에 침을 뱉으며, 참언으로 주군을 현혹시켜 충신과 어진 사람을 살해하는 간신이라고 욕을 해댔다. 오사가 오상을 말리며 말했다.

「나라의 위태로움을 보고 명을 받아 죽음에 임하는 행동은 신하된 자의 도리이다. 충신과 간신은 누가 말하지 않아도 자연히 밝혀지게 되어있는데 어찌 그리 욕을 해대는가? 나는 단지 원이 오지 않아 앞으로 초나라의 군주들이건 신하들이건 오늘 이후로 편안한 마음으로 아침저녁을 먹을 수 없게 되었음을 걱정할 따름이다!」

오사가 말을 마치자 두 부자는 목을 길게 내밀고 참수형을 받았다. 참수형에 처해지는 충성스러운 두 부자의 모습을 본 백성들은 모두가 눈물을 흘리며 슬퍼했다. 그 날 갑자기 하늘에 떠 있던 태양이 어두워지면서 처량한 바람이 불었다. 후세의 사관이 시를 지어 이를 한탄했다.

처참하고 구슬픈 바람이 일고 태양은 빛을 잃더니,

삼대에 걸친 충신의 자손들이 갑자기 화를 당해 죽었다!

이때부터 초나라의 조정에는 간신들로만 가득차게 되어

마침내 오나라 병사들을 영도에 불러들이게 되었도다!

慘慘悲風日失明(참참비풍일실명)

三朝忠裔忽遭坑(삼조충예홀자갱)

楚庭從此皆讒佞(초정종차개참녕)

引得吳兵入郢城(인득오병입영성)

2. 子能覆楚 吾能存楚(자능복초 오능존초)

- 그대는 초나라를 뒤짚어 엎게나! 나는 초나라를 붙들겠네! -

평왕이 오사 부자의 형 집행을 감독하고 돌아온 비무극에게 물었다.

「오사 부자가 형을 당할 때 원망하던 소리를 안 하던가?」

「별다른 말은 없었고 단지 오원이 부름에 응하지 않고 죽음을 피했음으로 앞으로 초나라의 군신들은 마음 놓고 식사도 하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한탄했습니다.」

「오원이 비록 도망 쳤다고 하나 필시 멀리는 가지 못했을 것이다. 마땅히 다시 쫓아가 잡아드리도록 하라!」

평왕은 즉시 좌사마 심윤술(沈尹戌)에게 군사 3천 명을 주어 오원을 끝까지 추격하여 잡아오도록 명했다. 한편 회수(淮水) 강변에 당도한 오원은 마음속에 한 가지 계책을 생각해 냈다. 그는 즉시 흰색 도포를 벗어 강변의 버들 나무 가지 위에 걸어 놓고 다시 양쪽 신발을 벗어 강변에다 버렸다. 그런 다음 자기는 신발을 짚신으로 바꾸어 신고 강물을 따라 계속 밑으로 내려갔다. 오원을 추격하여 강구(江口)③에 이르게 된 심윤술(沈尹戌)은 오원이 버리고 간 하얀 도포와 신발을 발견하여 주어 가지고 초왕에게 돌아와 보고하였다.

「도포와 신발만 발견하고 오원은 어디로 갔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비무극이 다시 상주하였다.

「신에게 한 가지 계책이 있습니다. 가히 오원이 도망치는 길을 끊을 수 있습니다.」

「무슨 계책인가?」

「초나라 전역에 현상금을 걸고 방을 붙여 어떤 사람이건 간에 불구하고 오원을 잡아 가지고 오는 자는 양식 5만 석과 상대부의 벼슬을 내린다는 명을 발하시고 누구든지 간에 오원을 놓아준 자는 그의 일가족을 참수형에 처한다고 하십시오. 모든 길의 관문과 강의 나루터에 조칙을 내려 통과하는 행인들을 엄중히 기찰하라 하시고 다시 중원의 제후국들에게 통고하여 오원을 보면 감추어 주지 말고 즉시 잡아서 초나라로 송환하라고 하십시오. 그렇게 되면 일시적으로 그를 잡을 수는 없을지 몰라도 그는 세상에서 고립시킬 수는 있습니다. 어찌 그가 능히 큰일을 이루어 내겠습니까?」

평왕은 비무극의 말을 하나도 빠짐없이 시행하게 했다. 그리고 오원의 얼굴 모습을 그린 체포령이 초나라의 모든 관과 요충지에 붙이자 나라 안의 백성들은 혈안이 되어 오원을 잡으려고 했다.

한편 오로지 오나라로 가려고만 했던 오원은 강가를 따라 계속 동쪽으로 방향을 잡고 길을 갔다. 그러나 길을 가는 도중에 오나라까지의 길이 너무 멀어 그곳에 가는 데는 몇 개월이 걸리는 여정이라는 생각이 들어 갑자기 마음을 바꾸었다.

「태자가 송나라에 몸을 피하고 있으니 그곳으로 가서 태자를 모시면 되겠다.」

오원은 오나라로 가던 길을 바꿔 송나라의 수양성으로 향하였다. 그가 혼자서 길을 재촉하며 가고 있는데 갑자기 앞에서 한 떼의 거마가 오는 모습이 보였다. 자신의 앞길을 막기 위해 오는 초군으로 의심한 오원은 감히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길가의 숲 속에 몸을 숨겨 그들의 거동을 살펴 본 바 그들은 다름이 아니라 옛날 친구인 신포서(申包舒) 일행이었다. 옛날 오원과 결의형제를 맺은 가까운 친구 사이였던 신포서는 그때 타국에 사신으로 갔다 초나라로 돌아가고 있는 중이었다. 오원이 숲 속에서 나와 몸을 들어내어 신포서가 타고 있던 수레의 왼쪽에 섰다. 신포서가 오원을 보고 놀라 황망히 수레에서 내려 반갑게 대하면서 물었다.

「자서는 어이하여 이런 곳에 혼자서 길을 가고 있는가?」

오원은 평왕이 자기의 부친과 형을 아무 죄도 없이 죽인 일의 시말을 말하면서 통곡했다. 신포서가 듣고 애통한 마음이 들어 물었다.

「그런데 자네는 지금 어디로 가는 중인가?」

「‘부모를 죽인 원수와는 같은 하늘을 지고 살 수 없다’ 라는 말이 있듯이 다른 나라로 도망치던 중이네! 나는 후에 다른 나라로부터 군사를 빌려 초나라를 정벌한 후에, 초왕을 죽여 그 고기를 씹어 먹고, 비무극은 거열형에 처해 사지를 찢어 죽여 나의 원한을 풀려고 하네!」

신포서가 듣고 오자서에게 말했다.

「초왕이 비록 무도하다고는 하나 우리들의 군주라! 그대의 집안은 몇 대를 걸쳐 그의 록을 받아먹었으니 군주와 신하간의 관계가 이미 정해 졌다 할 수 있는데 어떻게 신하의 직분으로써 그 군주에게 원수를 갚는다고 할 수 있단 말인가?」

「옛날 걸주(桀紂)가 그의 신하들에게 죽임을 당한 이유는 단지 그가 무도하다는 한 가지 뿐이었는데 초왕이란 자는 그의 며느리를 가로채고 그의 적자를 버렸으며 아첨만을 일삼는 간신을 말을 믿고 충성스럽고 훌륭한 신하를 무고하게 죽였네! 더욱이 나의 골육들을 죽인 원수인데 내가 어찌 가만히 있을 수가 있단 말인가? 나는 때가 되면 타국의 군사를 빌려 영도로 쳐들어가 초나라의 더러운 놈들을 모조리 쓸어 없애 버리겠네! 만약에 내가 초나라를 멸하지 못한다면 천지간에 내가 서 있을 곳이라고는 없을 것이라고 맹세하네!」

「내가 만약 자네에게 원수를 갚으라고 권한다면 그것은 나라에 대한 불충이고 그렇다고 자네에게 원수를 갚지 말라고 권한다면 그것은 또한 자네를 불효자로 만드는 일이라! 자네는 가서 자네 뜻대로 행하게나! 나는 자네와의 친구지간의 정의를 생각하여 자네를 만났다는 사실을 다른 사람에게 발설하지 않겠네! 자네가 초나라를 뒤엎는다면 나는 반드시 초나라를 일으켜 세울 것이고 그대가 초나라를 위태롭게 한다면 나는 반드시 초나라를 안정하게 하겠네!」

오원이 신포서와 작별을 하고 계속 길을 재촉하여 달려간 끝에 드디어 송나라에 당도하였다. 오원이 수소문하여 태자건을 찾아 만나게 되었다. 오원은 태자건에게 머리를 조아려 절을 하며 통곡을 하고 평왕이 행한 악행을 호소하였다. 이윽고 마음을 진정시킨 오원이 태자건을 향해 말했다.

「태자께서는 송군을 만나 보셨는지요?」

「송나라는 조금 전에 내란이 일어나서 군신 간에 싸움이 벌어지는 바람에 내가 아직 송군을 만나 볼 기회가 없었소.」

그때가 주경왕(周景王) 23년 기원전 522년의 일이었다.

3. 화상작란(華向作亂)

- 화씨와 상씨로 인해 내란이 일어난 송나라. -

한편 오원이 송나라로 들어가기 전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당시 송나라의 군주는 송원공(宋元公) 좌(佐)였다. 그는 곧 송평공(宋平公)이 사랑하는 첩의 소생이었다. 옛날 평공이 살아 있을 때 시인(寺人) 이려(伊戾)의 참소하는 말을 듣고 태자 좌(痤)를 죽이고 좌(佐)를 세웠었다. 이윽고 주경왕 13년 기원전 532년에 송평공이 죽고 좌(佐)가 그 뒤를 이어 송군의 자리에 올랐다. 이가 송원공이다. 원공이란 위인은 추악한 외모에 성격이 유약하고 옹졸한 성격에 신의가 없는 자였다. 대대로 송나라 국정을 담당해 온 화씨들의 세력을 싫어했던 송원공은 공자인(公子寅), 공자어융(公子御戎), 상승(向勝), 상행(向行) 등과 공모하여 그들을 몰아내려고 하였다. 상승이 그들의 음모를 상녕(向寧)에게 발설하자 상녕은 평소에 화상(華向), 화정(華定), 화해(華亥) 등과 친했기 때문에 그들과 함께 먼저 란을 일으키기 위해 모의했다. 화해가 거짓으로 병을 핑계 대고 자리에 눕자 군신들이 모두 병문안을 왔다. 화해가 문병 온 공자인과 어융을 붙잡아 죽이고 상승과 상행은 자기 집 창고 안에 잡아 가두었다. 변이 일어 난 사실을 알게 된 원공은 재빨리 수레를 타고 친히 화씨들의 부중에 당도하여 상승과 상행을 풀어 주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오히려 화해가 원공을 협박하여 세자와 측근의 신하들을 인질로 보내 주면 두 사람의 상씨를 풀어 주겠다고 했다. 원공이 듣고 말했다.

「옛날 주나라와 정나라가 군신 간에 인질을 교환한 전례에 따라 과인도 세자를 경의 집에 보내겠으니 경의 아들도 역시 과인에게 인질로 맡기시오!」

화씨들이 상의하여 화해의 아들 화무척(華无慼)과 화정(華定)의 아들 화계(華啓), 상녕의 아들 상라(向羅)를 원공에게 인질로 보내기로 했다. 원공도 역시 세자 란(欒)과 그의 동모제인 공자지(公子地)를 불러 화해의 집에 인질로 들여보냈다. 화해가 상승과 상행을 석방하자 원공이 조당으로 돌아갔다. 원공과 그의 부인은 세자 란을 못 잊어 매일 화씨의 집에 한 번씩 들려서, 세자가 식사를 다하는 모습을 본 후에 돌아갔다. 매일 자기 집에 들르는 원공 부부를 싫어한 화해가 세자를 석방하여 궁궐로 돌려보내려고 하였다. 원공이 듣고 대단히 기뻐했다. 그러나 상녕이 세자를 궁궐로 돌려보내는 일을 찬성하지 않고 말했다.

「태자를 인질로 삼은 일은 오로지 우리가 주군을 믿지 못해서인데 만약 인질을 보내 버린다면 필시 화가 우리에게 미치지 않겠습니까?」

화해가 상녕의 말을 듣고 세자를 궁궐로 들여보내지 않기로 마음을 바꾸었다. 그러자 소식을 전해들은 원공은 대노하여 대사마(大司馬) 화비수(華費遂)를 불러 갑사들을 이끌고 가서 화해의 집을 공격하도록 했다. 화비수가 듣고 말했다.

「세자가 그들에게 인질로 잡혀 있는데 주군께서는 세자의 안위가 걱정되지 않으십니까? 」

「죽고 사는 문제는 하늘에 달려 있다! 과인은 더 이상 그들로부터 치욕스러운 일을 당할 수 없다!」

「주군께서 뜻을 이미 정하셨으니 늙은 제가 어찌 감히 사사로운 종족들을 비호하기 위해 군명을 어길 수 있겠습니까?」

원공은 당일로 궁중의 갑병을 점검하여 그들에게 명하여 인질로 잡혀 와 있던 화무척, 화계, 상라는 모두 참수형에 처하게 한 후에 화씨들의 집을 공격하게 했다. 평소에 화해하고 친하게 지냈던 화등(華登)은 그 일을 알고 황급히 화해의 집으로 달려가, 원공이 인질로 잡고 있던 화해의 아들과 나머지 두 명을 모두 참수형에 처하고 장차 화씨들의 집을 공격할 예정이라고 알렸다. 화해가 황망 중에 집안의 가갑들을 모아 원공이 보낸 군사들에게 대항하였으나 당할 수 없었다. 상녕이 인질로 와있던 세자를 죽이려고 하자 화해가 만류하며 말했다.

「군주에게 죄를 지었는데 다시 군주의 아들까지 살해한다면 사람들이 장차 우리를 무엇이라고 하겠는가?」

화해는 즉시 인질로 있던 사람들을 모두 돌려보내 주고 자기는 화등 등의 일당들과 함께 진(陳)나라로 도망쳤다.

화비수에게는 아들을 셋을 두었는데 이름이 각각 장자는 화추(華貙), 차자는 화다료(華多僚), 삼자는 바로 화해와 친하게 지내고 있던 화등(華登)이었다. 다료와 추(貙)와는 평소에 사이가 나빠 불목했다. 이윽고 다료는 화씨들의 란이 일어나자 아무도 몰래 원공을 찾아가 자기 형을 참소했다.

「저의 형 화추는 실은 화해, 화정과 같이 반란을 모의하고 있습니다. 진(陳)나라에 망명하고 있는 그들을 부른 후에 자기는 안에서 내응하여 란을 일으키려고 합니다.」

원공이 믿고 시인(寺人) 의료(宜僚)를 시켜 화비수에게 고하게 했다. 화비수가 듣고 말했다.

「이것은 틀림없이 다료가 추를 참소했기 때문이다. 주군께서 이미 추를 의심하고 계시니 즉시 주군에게 청하여 화추를 나라 밖으로 쫓아내야 하겠다.」

화추의 가신에 장개(張匃)라고 있었다. 그는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 졌는지 알아보기 위해 화비수를 만나고 나오는 의료를 붙잡고 물었다. 의료가 쉽사리 말하려고 하지 않자 장개는 칼을 뽑아 손에 들고 위협하며 말했다.

「만약 무슨 일인지 말하지 않는다면 당신을 이 자리에서 죽이겠소.」

겁에 질린 의료가 화추에게 있는 사실을 그대로 말해 주었다. 장개가 돌아가 화추에게 고하고 나서 자기가 다료를 죽이겠다고 청했다. 화추가 듣고 말했다.

「등(登)이 나라 밖으로 쫓겨나서 부친은 이미 마음이 상해 계시는데 남은 우리 형제가 다시 싸운다면 어찌 감당하실 수 있겠소? 내가 피하는 편이 좋겠소!」

화추가 부친 화비수에게 가서 작별 인사를 드린 후에 나라 밖으로 도망치려고 하였다. 장개도 그의 뒤를 따랐다. 그때 공교롭게도 조당에서 일을 마치고 귀가하던 부친이 탄 수레의 말고삐를 잡고 귀가하던 다료와 마주치게 되었다. 장개가 보더니 분함을 참지 못하고 허리에 찬 칼을 빼들고 달려들어 다료를 찔러 죽였다. 이어서 그는 화비수를 칼로 위협하여 송나라 도성의 남문인 로문(盧門)을 통하여 성 밖으로 나가 남리(南里)라는 곳에 진을 치고 머물렀다. 이어서 사람을 시켜 진나라로 보내 화해와 상녕 등을 불러와 같이 힘을 합하여 원공을 쫓아내려고 하였다. 송원공이 락대심(樂大心)을 대장으로 삼아 군사를 끌고 가서 남리를 포위한 후에 그들을 소탕하도록 했다. 그러자 화등이 초나라로 달려가 군사를 청했다. 초평왕은 원월(薳越)에게 군사를 주어 송나라에 가서 화씨를 구하라고 명했다.

이때에 오원이 송나라에 들어온 것이다. 장차 초나라 군사들이 송나라에 당도할 예정이라는 소식을 듣게 된 오원이 태자건에게 말했다.

「송나라에는 더 이상 머무를 수가 없겠습니다.」

오원은 즉시 태자건과 그의 부인 및 아들과 함께 초군을 피해 정나라로 도망쳤다. 이를 노래한 시가 있다.

천리 길도 뛰어와 아직 숨도 돌리기 전인데

송성의 로문에 징소리가 울려 천지를 진동시키네

외로운 신하와 버림받은 아들은 낭패를 당하여

또다시 정나라의 형양으로 말머리를 돌렸다네.

千里投人未息肩(천리투인미식견)

盧門金鼓又喧天(로문금고우훤천)

孤臣孽子多顚沛(고신얼자다전패)

又向滎陽快著鞭(우향형양쾌저편)

초나라 군사들이 화씨들을 구하러 오자 당진의 경공도 역시 제후들을 이끌고 송나라를 구하러 달려왔다. 초나라를 두려워하고 있던 제후들이 싸움을 원하지 않았음으로 경공은 송나라 남리(南里)의 포위를 풀고 화해와 상녕을 놓아주어 초나라에 가서 살게 하고 양쪽의 군대는 물러갔다. 이것은 후일의 이야기다.

4. 謀襲鄭國 信義俱失(모습정국 신의구실)

- 자신을 후대한 정나라를 기습하여 믿음과 의를 모두 잃는 태자건.-

오원과 태자건 일행이 정나라에 들어갔을 때는 상경으로 있던 자산 공손교가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정정공(鄭定公)이 매우 애통해 하고 있던 중이었다. 정공은 평소에 오원은 곧 초나라의 3대에 걸친 충신의 집안의 후예이며 천하에 둘도 없는 영웅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더욱이 그때 정나라는 당진과는 친하게 지내고 초나라와는 원수같이 지내고 있었다. 정공은 태자건과 함께 오원이 정나라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 마음속으로 대단히 기뻐하며, 즉시 사람을 시켜 오원의 일행을 역관에 묶게 하고 양식과 기물을 후하게 주도록 했다. 태자건과 오원은 정백을 볼 때마다 곡을 한 후에 그들의 원통한 사연을 호소하곤 하였다. 정공이 듣고 대답했다.

「정국은 아주 작은 나라에 군사의 수는 많지 않아 용병하기에 마땅치 않습니다. 그대들이 초나라에 원수를 갚고자 한다면 어찌하여 당진에 가서 군사를 청하지 않습니까?」

태자건이 오원을 정나라에 남겨 두고 당진으로 가서 경공(頃公)을 접견했다. 경공이 자세하게 그 정황을 물은 후에 태자건을 역관으로 보내 기다리게 하고 육경을 불러 초나라를 정벌하는 문제를 의논했다. 당시 육경에는 위서(魏舒), 조앙(趙鞅), 한불신(韓不信), 사앙(士鞅), 순인(荀寅), 순력(荀躒) 등이 역임하고 있었다. 당시 당진의 육경들은 각기 서로 간에 화목하게 지내지 못하여 일을 일사불란하게 처리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군주의 세력은 미약해지고 신하들의 세력은 강해져서 경공 독단으로는 아무 일도 하지 못하고 있던 정황이였다. 그 중에 단지 위서와 한불신 만이 어질다는 이름이 있었고 나머지 네 사람은 모두 집안의 세력을 믿고 권세만을 탐하는 무리였다. 그 중에서 유독 순인은 뇌물을 지나치게 좋아했다. 자산이 정나라의 국정을 맡아 했을 때는 예의를 지켜 서로 대등하게 대했기때문에 당진의 육경들은 마음속으로 심복 하여 아무런 문제가 일어나지 않았었다. 그러나 자산이 죽고 그를 대신하여 유길(游吉)이 집정하자 순인이 사람을 보내 뇌물을 요청했으나 유길은 그의 요청을 들어주지 않았다. 그런 일로 인해 순인은 정나라에 대해서 감정을 품고 있던 중에 경공이 태자건의 일로 상의를 하자 순인이 좌우를 물리치고 독대하여 자기의 의견을 말했다.

「정나라는 항상 당진과 초나라 사이를 왔다갔다하는 원숭이 같은 나라라 그 마음이 한결같지 않음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늘 초나라의 태자를 자기 나라에 머무르게 하고 있다는 사실은 정나라가 틀림없이 태자건을 믿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태자건이 정나라 안에서 내응할 수만 있다면 우리가 군사를 일으켜 정나라를 점령한 후에 당진의 군현으로 만들고, 다시 그 땅에태자건를 봉해 서서히 초나라를 도모하십시오.」

경공이 순인의 말을 쫓아 즉시 그 계책을 태자건에게 비밀리에 전달하게 했다. 태자건이 순인의 말을 듣고 흔쾌히 허락했다.

당진의 경공에게 작별을 고한 태자건은 정나라에 돌아와서 오원과 그 일에 대해 상의했다. 오원이 깜짝 놀라 말리면서 말했다.

「옛날에 섬진의 장수 기자(杞子)와 양손(楊孫)이 정나라를 기습하려고 계획했다가 일을 이루지 못하고 자기 몸 하나 둘 곳을 찾지 못하고 천하를 떠돌아다닌 적이 있었습니다. 무릇 다른 사람이 충성스러운 마음과 믿음으로써 우리를 대해 주고 있는데 어찌하여 그들을 속이려 하십니까? 이것은 요행을 바라는 계책이니 반드시 실패할 것입니다.」

「내가 이미 당진의 군신들에게 허락한 일이라 지금에 와서 그만 둘 수 없소!」

「당진의 요구에 응하지 않았으니 아직 우리가 죄를 지었다고 할 수 없습니다. 만약에 정나라를 기습하려는 음모에 참가한다면 그것은 바로 신의를 잃어버리는 행위입니다. 어찌하여 다른 사람의 계획을 위하여 자기의 귀중한 신의를 포기한단 말입니까? 태자께서 만약에 이 일을 결단코 행하신다면 이로 인하여 당하게 될 화는 불을 보듯 뻔한 일입니다.」

나라를 얻고자 하는 욕심을 버리지 못한 태자건은 오원의 간하는 말을 듣지 않았다. 그는 초나라에서 가져온 가재를 털어 비밀리에 사병들과 장사들을 모으고 다시 정백의 좌우에 있던 측근들과도 교제를 맺어 그들의 지원을 바랬다. 정백의 측근들이 태자건으로부터 뇌물을 받고 서로 간에 돌아가며 결의를 맺었다. 당진에서 비밀리에 사람을 태자건이 묵고 있던 처소에 보내 정나라를 기습할 날짜를 정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그 음모가 점점 밖으로 새어 나가 그중 어떤 사람이 그 일을 정공에게 고변했다. 정정공과 유길이 상의하여 대책을 세운 후에, 후원에서 같이 술을 마시자고 태자건을 부르게 했다. 태자건이 당도하자 종자들은 밖에서 기다리게 하고 그 혼자만 후원으로 들어오게 했다. 술이 돌아 3배가 되자 정백이 태자건을 보고 말했다.

「과인이 호의를 갖고 태자를 우리나라에 머무르게 했을 뿐만 아니라 아직껏 소홀히 대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태자는 어찌하여 우리 정나라를 도모하려고 하십니까?」

「제가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하겠습니다.」

정정공이 그 사실을 고한 사람을 불러오게 하여 대질을 시켰다. 태자건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정백이 대노하여 주위에 있던 장사들에게 큰 소리로 령을 내려 연회석에 앉아 있는 태자건을 포박한 후에 밖으로 끌고 나가 참수하도록 했다. 또한 정정공의 측근들 중 태자건에게서 뇌물을 받아먹고 아무 말도 하지 않은 20여 명을 끌어내어 같이 참수형에 처했다. 그때 오원은 역관에 있었는데 갑자기 자기 살이 떨려 오기 시작하더니 멈추지가 않았다. 오원이 혼자 말로 했다.

「태자가 위급하구나!」

그러고 나서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태자건의 종자 중에 한 사람이 역관으로 도망쳐 와서 태자가 피살된 일을 오원에게 고했다. 오원이 즉시 태자건의 아들 미승(羋勝)을 데리고 무작정 정성을 탈출하여 성 밖의 교외로 나왔다. 어디로 도망쳐야 할지 망설이던 오원은 오로지 갈 수 있는 곳은 오나라 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염옹이 시를 지어 태자건은 단지 스스로 화를 자초하여 몸을 망쳤다고 했다.

자신을 가마솥에 삶아 죽이려던 원수가 생부였는데

역관을 주어 호의를 베푼 타성의 정군을 해치려고 했다.

인정이 모두 이와 같다면 참으로 살기 힘들지 않겠는가?

의기에 가득 찬 영웅의 마음을 우울하게 만들었다.

親父如仇隔釜鬵(친부여구격부심)

鄭君假館反謀侵(정군가관반모침)

人情難料皆如此(인정난료개여차)

冷盡英雄好義心(냉진영웅호의심)

5. 變服過關(변복과관)

- 금선탈각(金蟬脫殼)의 변복으로 철통같은 관문을 통과하다.-

한편 오원은 정나라가 추격군을 보낼까 두려워하여 공자승을 데리고 낮에는 산에 숨어 있다가 밤에만 길을 가고 있는데 그 고생이란 이루 말로 표현 할 수 없었다. 정나라 경계를 벗어나 진(陳)나라에 들어서게 된 오원과 공자승은 그곳도 안심하고 머물 수 있는 곳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다시 동쪽으로 몇 날 며칠을 걸어서 소관(昭關)④과 멀지 않은 곳에 당도하였다. 소관이라는 곳은 소현산(小峴山)의 서쪽에 있던 관문으로 그 산의 두 산봉우리 사이에 나 있는 조그만 소로 사이에 관을 세우고 려(廬)⑤와 호(濠)⑥땅을 왕래하는 사람들은 꼭 지나가야만 하는 요충지였다. 그 소관만 넘어가면 바로 강수(江水)에 임하게 되어 수로를 이용하면 바로 오나라로 들어 갈 수 있었다. 그 소관의 형세가 매우 험하여 원래는 군사들이 지키지 않던 곳이었으나 최근 들어 오원을 붙잡기 위해 특별히 우사마 원월(薳越)을 보내 대군을 이곳에 주둔시키고 지키도록 했다. 오원이 다시 소관과는 약 60여 리 떨어진 역양산(歷陽山)이라는 곳에 당도하여 지친 몸의 휴식을 취하기 위해 깊은 숲 속으로 들어가 그곳에서 배회하면서 감히 소관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 그러던 중 갑자기 노인 한 사람이 지팡이를 집고 숲 속으로 들어와 오원이 있는 곳을 향해 걸어 왔다. 생김새가 기이한 오원의 모습을 보고 그 노인이 다가와 읍을 하며 인사를 했다. 오원이 답례하자 노인이 말을 걸어왔다.

「그대는 혹시 오씨 댁의 자녀가 아니오?」

오원이 크게 놀라 말했다.

「어찌하여 이런 곳에 사시는 분이 나에 대해 묻습니까?」

노인이 다시 말했다.

「나는 곧 편작(扁鵲)의 제자 동고공(東皐公)이라고 하는 사람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의술을 펼치기 위해 천하의 열국들을 돌아다니다가 지금은 나이가 들어 이곳에 은거하고 있습니다. 며칠 전에 원월 장군이 몸이 아프다고 하여 내가 불려가서 그를 진찰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관문 위에 걸려있던 오자서의 모습을 그린 방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모습이 그대와 비슷하게 생겨 이렇게 묻게 되었습니다. 그대는 구태여 나를 속일 필요가 없습니다. 내 누추한 집이 이 산 뒤에 있는데 몇 발자국만 더 옮겨 우리 집으로 가서 같이 저 소관을 지나가는 일을 상의해 봅시다.」

그 노인이 보통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한 오원은 즉시 공자승과 같이 동고공을 따라 그의 집으로 갔다. 몇 리를 걸으니 초가집 한 채가 있었는데 동고공이 읍을 하며 오원으로 하여금 안으로 들어오기를 청했다. 초당 안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자 오원이 허리를 굽혀 인사를 올렸다. 동고공이 황망 중에 답례하며 말했다.

「이곳은 그대가 머무를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초당에서 나온 동고공이 오원을 이끌고 뜰 안으로 들어가니 초가집 뒤의 서쪽 편에 버드나무를 엮어 만든 조그만 문이 보였다. 다시 그 문을 열고 들어가자 다시 대나무 밭이 나왔다. 그곳을 지나니 그 뒤에 흙으로 지은 세 칸 자리 집이 있었다. 그 집의 문은 마치 개구멍처럼 작아서 머리를 숙이고 간신히 들어 갈 수 있었다. 그 집의 방안에서는 침상 몇 개가 준비되어 있고 좌우에는 조그만 창이 나 있어 그 곳을 통해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방안으로 들어온 동고공은 오원을 밀어 상좌에 앉히려고 했다. 오원이 공자승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동고공에게 말했다.

「이분은 저의 어린 주인으로 제가 마땅히 옆에서 서서 시립해서 모셔야 할 분입니다.」

동고공이 물었다.

「누구이십니까?」

「이 분은 초나라 태자건의 아들 공자승이고 제가 바로 오자서 입니다. 공께서는 군자이시라 제가 감히 속이지 못하겠습니다. 저의 부친과 형님이 억울하게 돌아가시어 그 원수를 갚겠다고 하늘에 맹세를 했습니다. 혹시라도 공께서는 이 일을 다른 사람에게 누설하지 마십시오.」

동고공이 즉시 공자승을 상좌에 앉히고 자기와 오원은 동서 양 쪽에 앉아 마주 대하고 앉았다.

「단지 사람을 살리는 기술만을 알고 있는 노부가 어찌 감히 사람을 죽이는 마음을 품겠습니까? 이곳에 제가 비록 일 년 반을 넘게 살아왔지만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는 곳입니다. 단지 소관을 통과하는 사람들을 너무 엄중히 조사하여 공자를 데리고 어떻게 통과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마땅히 만전지책을 마련해야만 일이 잘못되지 않을 것입니다.」

오원이 무릎을 꿇고 말했다.

「선생께서는 위난에 빠진 우리들을 구하실 방도가 있는지요? 후일에 반드시 이에 대한 보답을 크게 하겠습니다.」

「이곳은 벽진 곳이라 아무도 찾아오는 사람이 없으니 공자님과 그대는 마음 놓고 머무르시기 바랍니다. 그사이에 내가 소관을 통과 할 수 있는 계책을 하나 마련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오원이 감사의 말을 올렸다. 동고공은 매일 술과 음식을 가져와 오원과 공자승을 접대했다. 그곳에 묵은 7일 째가 되어도 동고공은 소관을 통과하는 일에 대해서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다. 오원이 참지 못하고 동고공에게 물었다.

「제가 원수를 갚을 생각을 가슴속에 품고 있어 마치 일각이 일 년처럼 느껴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시간이 지체되니 그것은 마치 죽은 사람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선생께서 부디 높으신 의기로 저를 불쌍히 여겨 주시기 바랍니다.」

「노부의 계책이 이미 서서 사람을 한 명 기다리고 있는데 아직 오지 않고 있어서 입니다. 조금만 더 기다려 보기로 합시다.」

오원은 그 말을 믿지 못했다. 이윽고 밤이 되어 침상에 누었으나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당장 동고공과 작별을 고하고 길을 떠나고 싶었으나 만약에 관문을 무사히 통과할 수 없게 되면 오히려 화를 입게 된다고 생각했고, 그렇다고 기다리는 사람이 누구인지도 모르는데 무작정 기다리며 시간만 보내게 될 것도 걱정했다. 오원이 잠을 못 이루고 엎치락뒤치락하며 생각에 잠기며, 다시 돌아눕게 되고, 그래도 마음이 안정이 안 되어 심신이 마치 바늘방석에 누워 있는 것처럼 안절부절 했다. 오원이 누워 있지 못하고 결국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서 방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사이에 어느덧 동쪽의 하늘이 밝아 오기 시작했다. 이윽고 동고공의 기침 소리가 들리더니 방안으로 들어왔다. 동고공이 방안에 있던 오자서의 얼굴을 한번 보더니 크게 놀라 말했다.

「장군의 수염과 머리가 어찌하여 갑자기 하얗게 되었소! 밤사이에 너무 고심을 많이 해서 그리 된 것이 아니오?」

오원이 동고공의 말을 믿지 못하고 거울을 찾아서 자기 얼굴을 비춰 봤다. 거울 속에 비친 자기의 모습은 이미 반백이 된 노인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세간에서 전해지고 있는 오자서에 관한 일화 중 그가 소관을 통과 할 때 하루밤 사이의 고민으로 머리가 하얗게 변했다는 일야백두(一夜白頭)라는 고사는 낭설이 아니라 사실이다.― 오원이 거울을 땅에다 던져 버리고 땅에 앉아 통곡을 하며 말했다.

「한 가지 일도 이루어 놓은 것이 없는데 머리만 이미 새하얗게 되어 버렸구나! 오, 하늘이여! 이일을 어찌해야 한다는 말입니까?」

「장군은 너무 상심하지 말기 바라오. 이것은 귀하를 위하여 좋은 징조라 할 수 있소.」

오원이 눈물을 닦으며 그 이유를 물었다.

「어찌하여 좋은 징조란 말입니까?」

「귀하는 체구가 우람하고 용모가 뛰어나 누구든지 한 번 보면 쉽게 알아 볼 수 있었는데 이번에 머리가 하얗게 변해 쉽게 알아 볼 수 없게 되어 대중 속에 섞여서 세속의 사람들 눈을 속일 수 있게 되었고 더욱이 노부의 친구가 이미 당도하였으니 이제 우리의 계획이 이루어 질 수 있겠습니다.」

「선생의 계획은 어떤 것입니까?」

「노부의 친구에 황보(皇甫)라는 복성에 이름은 눌(訥)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이곳에서 서남 70리 되는 용동산(龍洞山)이라는 곳에 살고 있습니다. 신장이 9척에 그의 미간은 8촌이 되어 흡사 귀하를 빼다 밖은 사람처럼 생겼습니다. 그를 족하처럼 분장하게 하고 귀하는 그의 종자로 변장하여 따르다가 만일 그가 관을 통과하던 중에 붙잡혀 의논이 분분하게 되면 귀하는 그 틈을 타서 소관을 통과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선생의 계책은 참으로 훌륭합니다. 단지 선생의 친구분에게 누가 미치지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그것은 아무런 일도 아니오. 장군이 무사히 소관을 통과하고 난 후에 그를 구할 계책을 따로 세워 놓고 있습니다. 그리고 노부가 이미 나의 친구인 황보눌에게 상세하게 사정 이야기를 하였더니 두말 안하고 흔쾌히 응낙하였으니 장군은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동고공이 말을 마치자 사람을 보내 황보눌를 토옥으로 불러 오원과 상면시켰다. 오원이 황보 노인을 살펴보니 과연 그 모습이 자기와 거의 똑 같이 생겼음을 알았다. 오원이 마음속으로 대단히 기뻐했다. 동고공이 다시 약탕을 오원에게 주어 그것으로 세수를 하여 얼굴색을 변하게 하였다. 황혼 무렵이 되자 동고공은 오원의 옷을 벗겨 황보눌에게 입히고, 삼베옷 한 벌을 별도로 가져와 오원에게 입혀 황보눌의 종복으로 분장시켰다. 공자승도 역시 삼베옷으로 바꿔 입게 하여 마치 벽촌의 어린 동자처럼 보이게 하였다. 오원이 공자승과 같이 동고공에게 절을 올리고 말했다.

「후일에 만약 제가 다시 선생을 뵙게 된다면 내가 틀림없이 이 은공을 크게 갚겠습니다.」

「노부는 단지 장군이 당한 억울함을 애통하게 생각하여 위험한 처지에서 벗어나게 해주려는 것뿐이오! 어찌 내가 귀하에게 보답을 바라고 한 일이겠소?」

오원과 공자승이 황보눌의 뒤를 바짝 붙어서 뒤따라 밤 시간을 이용하여 소관으로 길을 떠났다. 어느덧 여명이 되어 날이 밝아 오던 시간에 그들 일행은 소관에 당도했다. 그때는 마침 소관의 문이 열리는 시각이었다.

한편 초나라 장수 원월(薳越)은 관문을 지키며 오고가는 사람들을 엄중하게 감시하라고 부하들을 독려하면서 말했다.

「북쪽에서 남쪽으로 가려고 하는 모든 사람은 반드시 그 심문을 철저히 하여 그가 말한 사실이 분명히 확인되는 경우에만 이 관문의 통과를 허락하라!」

관문 앞에는 오자서의 모습을 그린 방을 붙여 놓고 한 사람 한 사람 일일이 대조해 가며 사람들을 통과시키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한 방울의 물도 새 나갈 수 없고 한 마리의 새도 넘어 갈 수 없다[水洩不通,鳥飛不過].’라는 말이 표현하려고 하는 형국이었다. 황보눌 일행이 드디어 관문 앞에 당도하자 관문을 지키던 수비병이 보더니 그림에 그려진 모습과 비슷하고 몸에는 하얀 두건을 썼으며 또한 겁을 먹고 있는 거동이라 즉시 황보눌을 붙잡아 두고 즉시 원월에게 달려가서 보고했다. 원월이 나는 듯이 관문 앞으로 달려가면서 멀리서 보니 과연 오원이었다. 원월이 소리쳤다.

「저자가 오원이 맞다!」

원월은 즉시 좌우에게 령을 내려 일제히 달려가 황보눌를 붙잡아 관의 성루로 데려오게 하였다. 황보눌이 짐짓 무슨 영문인지 모른 척하며 단지 놓아 달라고 사정만을 거듭했다. 관문을 지키던 군사들과 관문 근처에 살던 백성들은 오자서를 잡았다는 소식을 듣자, 모두가 뛰어나와 오자서를 구경하려고 하는 바람에 관문 앞은 일대 혼잡을 이루게 되었다. 또한 오자서를 잡은 바람에 관문이 닫혀 그 사이에 관문을 통과 못한 사람들이 줄을 서서 오랫동안 기다리게 했던 관계로 수비병들이 관문을 활짝 열어 사람들을 한꺼번에 지나가게 했다. 오원은 그 틈을 타서 공자승을 데리고 여러 중인들 틈에 끼어 소관을 빠져 나올 수 있었다.

― 오자서가 소관을 무사히 넘을 수 있었던 원인은 첫째는 백성들이 몰려들어 관문 앞이 소란스러웠기 때문이며 둘째는 오원의 분장이 방에 그려진 모습과 같지 않았고 셋째는 오자서의 얼굴이 약탕으로 세수를 하는 바람에 시꺼멓게 변하고, 더욱이 수염과 머리가 모두 하얗게 세어 버려 그 모습이 노인의 모습을 하고 있어 모두가 급한 마음에 아무도 알아보는 사람이 없었고 넷째는 모든 사람들은 오자서가 이미 잡혔다고 알고 있어 심문을 오자서를 잡기 전처럼 엄하게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마침내 오원은 빽빽이 들어찬 사람들 사이에 섞여 천하의 관문인 소관을 넘을 수 있었다. 그것은 마치 낚시에 걸린 잉어가 줄을 끊고 달아나 다시는 걸리지 않겠다며 머리와 꼬리를 흔들며 달아나는 형국이었다. 이것을 노래한 시가 있다.

용맹한 수많은 군사들이 지키던 천하의 험관을

도망치던 신하 한 사람이 이미 지나가버렸도다!

이것으로 해서 오나라에 기운이 더욱 뻗쳐

영도의 병마는 한가로울 때가 없게 되었다.

千軍虎豹据雄關(천군호표거웅관)

一介亡臣已下山(일개망신이하산)

從此勾吳添勝氣(종차구오첨승기)

郢都兵革不能閑(영도병혁불능한)

한편 초나라 장수 원월은 황보눌를 결박하여 고문을 가해서라도 자백을 받아 장계를 만들어 같이 영도에 압송하려고 했다. 황보눌이 변명하였다.

「저는 곧 용동산 밑에 숨어사는 황보눌이라는 사람입니다. 저의 오래된 친구인 동고공을 따라 관문 동쪽으로 나가 놀려고 했을 뿐인데 어찌하여 저를 결박하십니까?」

원월이 황보눌의 목소리를 듣고 의심이 생겨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오자서의 눈은 마치 번개와 같이 빛나고 그의 목소리는 마치 커다란 종에서 나는 소리처럼 우렁찬데 이 사람은 그 생김새는 비록 비슷하다고는 하나 그 목소리가 낮은데 혹시 모진 고생으로 음색이 변했기 때문인가?」

원월이 의혹에 차서 궁리를 하고 있던 참에 갑자기 군사 한 명이 달려와 보고했다.

「동고공이란 분이 찾아와 장군님을 뵙고자 합니다.」

원월이 황보눌을 압송하여 한 곳에 가두어 놓도록 하고 동고공을 자기가 있던 곳으로 들어오게 했다. 인사를 나눈 다음에 각기 주인과 손님의 자리를 찾아 좌정 하였다. 동고공이 먼저 입을 열었다.

「노부가 관문 밖 동쪽으로 놀러 나가려고 하여 이곳에 왔는데 제가 들으니 장군께서 도망치려고 하던 오자서를 붙잡았다고 해서 축하의 말을 올리려 이렇게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관문을 지키던 소졸이 그 모습이 자서와 비슷하다고 해서 잡아 왔는데 정작 잡힌 사람은 자기가 자서가 아니라고 하고 있습니다.」

「장군과 오자서 부자와는 조당에 같이 서서 나라 일을 보지 않으셨습니까? 어찌하여 그자가 오자서인 지를 분간하실 수 없단 말입니까?」

「오자서의 안광은 마치 번개와 같고 그 목소리는 큰 종에서 나는 우렁찬 소리와 같은데 지금 잡힌 사람은 눈은 작고 그 목소리는 닭 우는 소리처럼 가늘어 혹시 오자서가 오랫동안 험난한 길을 헤매고 다녀 고생한 결과 그의 본래 모습을 잃어 버려서 그리 되지 않았나 하고 의심하고 있는 중입니다.」

「저도 오자서와는 한 번 만난 적이 있으니, 청컨대 이 사람에게 한 번 심문하게 하시면 그가 정말로 오자서인지 한번 알아 볼 수 있겠습니다.」

원월이 명하여 죄수를 앞으로 끌어오라고 했다. 황보눌이 군졸들한테 끌려 나와 동고공을 보자 황급히 소리쳤다.

「자네는 나보고 관문 동쪽으로 놀라 나가자 하며 나를 불러 놓고 어찌하여 일찍 나오지 않아 나를 이렇게 욕보이는가?」

동고공이 얼굴에 미소를 띠며 원월에게 말했다.

「장군께서 사람을 잘못 잡으셨습니다. 이 사람은 나의 고향친구 황보눌이라는 사람입니다. 제가 관문 동쪽으로 나가 놀자고 하여 관문 앞에서 오늘 아침 만나기로 약속했는데 뜻 밖에 그가 길을 빨리 떠나 이렇게 오해를 받은 것 같습니다. 장군께서 믿지 못하시겠다면 여기 노부에게 관문을 나다닐 수 있는 허가증이 여기 있습니다. 어찌하여 무고한 사람을 도망치고 있는 범인 취급하십니까?」

동고공이 말을 마치자 즉시 소매 안에서 문건을 꺼내어 원월에게 보여주었다. 원월이 크게 부끄러워하며 친히 황보눌의 포승줄을 풀어 주고 술자리를 마련하도록 명하고 두 사람에게 술을 권하고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말했다.

「이것은 곧 관문을 지키던 병사들이 잘못 보아 그리되었으니 부디 저의 잘못을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장군께서는 조정의 명을 받아 법을 시행하다가 그리 되었으니 노부들이 어찌 노엽게 생각하겠습니까?」

원월이 황금과 비단을 내오게 하여 두 사람에게 주며, 관문의 동쪽으로 나가 노는데 여비로 보태 쓰게 하였다. 두 사람이 원월에게 감사의 말을 올리고 관문을 빠져나갔다. 원월이 군사들에게 호령하여 관문을 예전과 같이 엄히 지키도록 했다.

6. 詐失寶珠 巧計脫身(사실보주 교계탈신)

- 거짓 보옥을 잃어버렸다는 교묘한 계책으로 몸을 빼내다.-

한편 오원이 소관을 빠져 나오게 되자 마음속으로 대단히 기뻐하며 가던 길을 재촉했다. 오원 일행이 몇 리를 걸어 앞으로 가고 있다가 사람을 한 명 만나게 되었는데 그 사람은 성은 좌(左)에 이름은 성(誠)으로 전에 오자서가 사인으로 데리고 있던 자였다. 오원은 그의 옷차림으로 봐 그가 지금 소관에서 딱다기를 쳐서 시간을 알리는 일을 맡아 하고 있는 하급 관리로 일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좌성(左誠)은 원래 성보 사람이었는데 오씨 부자가 사냥을 나갈 때 항상 데리고 다녔던 자였다. 그래서 좌성은 오자서를 매우 잘 알고 있었다. 좌성이 오원을 보더니 크게 놀라 말했다.

「초나라 조정에서 공자를 잡기 위해 이 잡듯이 찾고 있는데 공자께서는 어떻게 관문을 통과하게 되었습니까?」

「초왕께서 우리들이 야광주 한 개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우리에게 물어 그것을 찾으셨는데 그 야광주는 이미 다른 사람 손에 넘어가 버려 우리를 보내 찾아오게 하셨다. 그래서 내가 원월 장군에게 초왕의 명을 고하니 그가 나를 놓아주어 이렇게 소관을 넘어 오게 되었다.」

좌성이 믿지 않고 말했다.

「초왕께서 령을 내리시어 공자를 놔주어 도망치게 하는 자는 전 가족을 참수한다 하셨습니다. 제가 공자님과 같이 잠시 관으로 돌아가 원월 장군께 여쭈어 일을 확실히 한 후에 다시 가시면 안 되겠습니까?」

「만약 그대와 같이 가서 원장군을 보고 내가 이미 그 야광주를 그대에게 주었다고 말한다면 그대는 해명할 길이 없지 않겠나? 인정을 베풀어 나를 그냥 가게 해주어 후일에 우리 좋은 얼굴로 서로 만나면 서로 좋지 않겠는가?」

좌성은 오원의 사람됨이 영용하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어 감히 그 뜻을 거역하지 못하고 오원 일행이 동쪽으로 계속 길을 가게 내버려 둘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는 관으로 돌아온 후에 자기가 오원을 만났던 사실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7. 過江入吳(과강입오)

- 오자서가 어옹의 도움으로 장강을 건너 오나라로 들어가다. -

소관을 무사히 빠져 나온 오원은 바람과 같은 빠른 걸음으로 악저(鄂渚)⑦에 당도하여 장강을 바라보니 망망대해에 파도만 일렁이며, 주위의 아무 곳에도 배가 보이지 않아 건널 수가 없었다. 오원은 길을 가다가 장강에 가로막히자 혹시 그의 뒤를 쫓는 초나라 군사들이라도 따라오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매우 초조하였다. 그런데 갑자기 고기를 잡는 어옹(漁翁)이 하류 쪽에서 물살을 거슬려 올라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오원이 기뻐하며 말했다.

「하늘이 나를 아직 버리지 않았구나!」

오원이 마음이 급하여 어부를 큰 소리로 외쳐 불렀다.

「어부는 빨리 이곳으로 와서 나를 건너게 해 주시요!」

어부가 배를 물가에 대려고 하다가 맞은 편 강안에 움직이는 사람의 모습을 보더니 갑자기 소리를 높여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해와 달이 강물을 환하게 비추어

물속을 헤엄쳐 재빨리 달려가노나!

내 그대와

갈대 밭 언덕에서 만날거나!

日月昭昭乎(일월소소호)

侵已馳(침이치)

與子其乎(여자기호)

蘆之漪(로지의)

오원이 그 노래말의 뜻을 알아듣고 강안을 따라 하류를 향하여 달려가 갈대가 무성한 곳에 당도하게 되었다. 오원이 갈대 숲 속에 몸을 숨기고 배가 오기를 기다렸다. 이윽고 어부가 배를 타고 갈대숲이 우거진 언덕에 대고 다시 노래를 불렀다.

해는 이미 저물었음이여

그대의 마음은 근심과 슬픔뿐일세

달이 이미 솟았으니

어찌 건너지 못하겠는가?

日已夕兮(일이석혜)

子心懮悲(자심우비)

月已馳兮(월이치혜)

何不渡爲(하불도위)

갈대 밭 사이에서 일어나 모습을 드러낸 오원과 공자승을 본 어옹이 재빨리 노를 저어 다가와서 배를 타라고 소리쳤다. 두 사람이 강가의 돌을 딛고 배에 올라타자 어옹은 긴 삿대를 강물에 찌르고 목란(木蘭) 돛대를 붙들어 매자 배는 경쾌한 모습으로 유유히 앞으로 나아갔다. 오원 일행을 태운 배는 불과 반 시진도 못되어 맞은편 강 언덕에 닿았다. 어옹이 오원을 내려 주며 말했다.

「어제 밤에 꿈을 꾸었는데 유성이 내 배에 떨어져서 이 늙은이가 이는 필시 이인(異人)이 와서 강을 건너 달라는 징조라고 생각하여 배에 돛을 꺼내어 달고 나왔는데 뜻밖에 그대를 만났소! 내가 그대의 용모를 살펴보니 보통 사람은 아닌 것 같으니 나에게 사실대로 말해 주면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겠소.」

오원이 즉시 자기의 성과 이름을 알려주었다. 어옹이 탄식해 마지않았다. 어옹이 오자서에게 말했다.

「그대의 얼굴에 허기진 기색이 완연하니 내가 가서 음식을 구해 가지고 와야 되겠소! 잠시 이곳에서 기다리고 계시오.」

어옹이 배를 강가의 버드나무 밑에 동여 메더니 촌락이 있는 곳으로 음식을 구하려 사라졌다. 이윽고 시간이 오래 경과되었음에도 어옹이 돌아오지 않자 오원이 공자승에게 말했다.

「사람의 마음은 알 수 없으니 그가 우리를 붙잡기 위해 사람들을 끌고 오지 않으리라고 어찌 알 수 있겠습니까?」

오자서는 즉시 공자승과 같이 다시 갈대 밭 가운데에 몸을 숨겼다. 그리고 나서 시간이 조금 지나자 어옹이 보리밥과 쌀을 넣고 끓인 전복죽을 가지고 돌아왔으나 오원과 공자승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큰 소리를 쳐서 두 사람을 불렀다.

「갈대밭에 숨어 있는 사람은 들으시오! 나는 이를 탐하는 사람이 아니오!」

오원이 즉시 대답하며 갈대밭에서 나왔다. 어옹이 오원을 보며 말했다.

「그대가 배가 고픈 것을 알고 특별히 내가 촌락에 가서 음식을 구해 가지고 왔는데 어찌하여 나를 피해 있었소?」

「목숨은 하늘에 달려 있다고는 하나 오늘은 노인장의 손에 달려 있어 마음속에 있던 근심이 쌓인 결과 마음이 혼미하게 되어 이렇게 몸을 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옹이 음식을 앞으로 내밀자 오원과 공자승은 오랜만에 배불리 먹고 길을 떠나려고 하였다. 오원이 어옹에게 감사의 말을 하고 허리에 찬 칼을 풀어 어옹에게 주며 말했다.

「이것은 옛날 초나라 왕이 하사하여 우리 조부께서 차고 다니신 이래로 삼대를 걸쳐 물려받은 보검입니다. 칼에는 별이 일곱 개가 새겨져 있습니다. 그 가치로 따지면 황금 백관에 해당합니다. 이것으로 노인의 은혜에 보답하고자 하니 받아 두시기 바랍니다.」

어옹이 웃으면서 대답했다.

「내가 들으니 초왕이 령을 내려 오원을 잡거나 알리는 자에게는 곡식 5만 석을 하사하고 상대부 벼슬을 내린다고 하였소. 내가 상대부의 벼슬과 5만 석의 곡식도 마다하는 사람인데 어찌 황금 백 관 밖에 나가지 않는 물건을 탐하겠소? 또한 군자는 칼을 차지 않고는 돌아다닐 수 없다고 하니 그대에게 필요한 물건이지 고기나 잡는 이 어부에게 무슨 소용이 있겠소?」

「노인께서 이 검을 받지 않으신다 하니 원컨대 성함이라도 알려 주시면 후에 보답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어옹이 화를 내며 말했다.

「억울한 죄를 뒤집어 쓴 그대를 불쌍히 여겨 내가 강을 건너게 해주었을 뿐이오. 그런데 그대는 후에 나에게 보답을 하겠다 하며 이익으로써 나를 꾀하려고 하니 그것은 장부가 할 말이 아니오!」

「노인께서 비록 보답을 바라고 한 일이 아니라 할지라도 아무런 보답을 드릴 수 없다면 저의 마음이 어찌 편할 수 있겠습니까?」

오원이 고집을 부려 계속 이름을 알려 달라고 조르자 어옹이 대답했다.

「오늘 우리가 서로 만났는데 그대는 초나라의 란을 피해 도망치고 있는 망명객이고 나는 초나라의 도적인 그대를 놓아 주었소. 어찌 서로 간을 위해서 이름을 말할 수 있겠소! 하물며 내 배를 저어 풍랑에 몸을 맡기면서 끼니를 잇고 살아가는 사람이라 비록 이름을 알려 드린다 한들 어찌 우리가 다시 만나기를 기약할 수 있겠소? 만일 하늘이 우리를 만나게 해준다면 나는 단지 그대를 갈대밭의 사나이라고 부르겠으니 그대도 나를 어옹(漁翁)이라고 부르시오. 그 정도면 우리가 기억하는데 부족함이 없지 않겠소?」

오원이 흔연히 머리를 조아려 절을 올리고 어옹과 헤어졌다. 그리고 발걸음을 떼어 몇 걸음을 앞으로 가던 오원이 갑자기 다시 뒤 돌아서더니 어옹을 향해 당부의 말을 하였다.

「만약에 초나라의 추격병을 만나게 되면 절대 나를 만났다는 말을 하지 마십시오.」

오원이 몸을 돌려 한 이 말 한마디가 어옹이 목숨을 잃게 만들었다.

< 제 73회로 계속 >

주석

①감리(監利) : 지금도 호북성(湖北省)과 호남성(湖南省) 접경지역에 감리현(監利縣)이라는 지며의 고을이 있다.

②위(圍) : 한 위(圍)는 한 뼘의 거리를 말하는 5촌을 말하며 1촌은 1 :10 척임으로 10 위는 5척임. 춘추 때의 한 자는 약 23cm 이고, 한 장은 소척으로 8자임으로 오자서의 키는 180-190cm, 허리 둘레는 110-115cm에 해당하는 우람한 체구임을 의미한다.

③강구(江口) : 현 안휘성(安徽省) 영상현(潁上縣), 영수(潁水)가 회수(淮水)와 합류하는 곳

④소관(昭關) :지금의 안휘성 함산현(含山縣) 북쪽의 소관산(小觀山)의 서쪽의 관문. 초나라의 동쪽 경계에 설치했던 관문으로 당시 오와 초 두 나라 사이의 교통 요충지였다.

⑤려(廬) : 지금의 안휘성 려주(廬州)지방으로 명나라 때 여주부(廬州府)는 지금의 합비시(合肥市), 육안시(六安市), 소호시(巢湖市)를 관할했다.

⑥호(濠) : 지금의 안휘성(安徽省) 저주시(滁州市) 일대를 가리키는 말이다.

⑦악저(鄂渚) : 지금의 호북성(湖北省) 무한시(武漢市) 동 50키로의 악주시(鄂州市)를 말한다. 그러나 본문의 내용에 비추어 보면 오자서(伍子胥)가 소관(昭關)을 빠져 나와 장강으로 나와 그 맞은편의 마안산시(馬鞍山市)를 거치지 않고 장강 상류 쪽으로 700키로나 걸어 악저(鄂渚)까지 가서 장강을 건넜다는 원작의 내용은 원작자인 풍몽룡(馮夢龍)의 잘못이다. 이후로 전개되는 내용을 보면 오자서는 소관에서 장강 북안으로 나와 어부를 만나 도강하여 지금의 마안산시를 거쳐 율수(溧水)를 따라 동진하다가 태호를 북쪽으로 돌아 지금의 강소성(江蘇省) 소주(蘇州)에 당도한 것으로 되어 있다. 오자서의 오나라 망명 경로도 참고.

[평설]

“ 미복으로 바꿔 입고 소관을 통과한 오자서(伍子胥)” 편은 군사상 개발된 위장전술에 그 의의를 둘 수 있다.

오자서의 부친 오사(伍奢)는 충직한 초나라의 대신이었다. 그는 자신의 며느리를 빼앗아 부인으로 삼고 오히려 태자를 폐한 패륜적인 초평왕의 행위를 비난했다. 기원전 523년 초평왕은 참언을 믿고 오사와 그의 두 아들 오상(伍尙)과 오원(伍員)을 죽이기 위해 오사로 하여금 편지를 쓰게 하여 두 아들을 영도로 유인하려고 했다. 부친의 편지를 본 오자서는 초평왕이 그들 형제를 유인해서 살해하려는 음모라고 판단했다. 그래서는 그는 그의 부친과 형의 원수를 갚겠다고 굳게 맹세하고 송과 정 두 나라를 거쳐 마지막으로 오나라에 들어가려고 했다. 그러나 그가 오나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소관(昭關)이라는 관문을 통과해야만 했다. 소관은 지금의 안휘성 소호시(巢湖市) 함산현(含山縣) 소관진(昭關鎭) 성구(城區) 북 8키로 지점에 있었던 관문이다. 초나라 군사들은 오자서의 모습을 그린 그림을 걸어 넣고 소관을 삼엄하게 지키고 있었다. 소관을 통과할 길이 없다고 생각한 오자서는 고민한 나머지 하루 저녁 사이에 수염과 살쩍이 모두 하얗게 변하고 말았다. 후에 동고공(東皐公)의 도움으로 위장을 하고 간신히 소관을 통과해서 오나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위장술은 군사행동에 있어서 항상 채용되어 사용되는 중요한 전술이다. 위장을 성공적으로 행하는 것은 적의 눈을 속여 손쉽게 아군의 목적을 달성한다. 만일 오자서가 성공적으로 위장을 하지 않고 단지 혈기만을 믿고 돌격했다면 그는 결코 소관을 무사히 통과할 수 없었을 것이다.

탕약을 써 오자서의 얼굴을 변색시킨 동고공의 행위에서 알 수 있는 일은 위장술에는 많은 지식과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오자서가 초나라를 떠나 오나라로 들어가게 된 일은 모두가 비무극의 모함 때문에 생겼다. 비무극이 오자서를 모함하여 함정에 빠뜨린 일은 <좌전(左傳) 소공(昭公) 23년>조에 상세하게 기술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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